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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hone/1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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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의 현행 iOS 모바일 제품

iPhone

iPod Touch

오리지널, 3G, 3GS, 4, 4s, 5, 5c/5s, 6/6+

1세대, 2세대, 3세대, 4세대, 5세대

6s/6s+, SE, 7/7+, 7s/7s+/8(가칭)

6세대

iPad

12.9인치

10.5인치

9.7인치

7.9인치

Pro 12.9 1세대

-

1세대, 2, 3세대, 4세대, Air,
Air 2, Pro 9.7 1세대

mini, mini 2, mini 3

Pro 12.9 2세대

Pro 10.5

5세대

mini 4

굵은 글씨 - 최신 제품 / 일반 글씨 - 판매 중인 제품 / 초록 글씨 - 단종 제품 / 기울어진 글씨 - 공개 전 제품

파일:attachment/iPhoneGen1.jpg

Say Hello to iPhone.[1]


현대 스마트폰의 원조이자 전설의 시작.
현대인들의 생활 양식과 문화를 바꾼 디지털 기기

1. 개요2. 사양3. 상세4. 단점5. 한국에서의 반응6. 기타

1. 개요[편집]

애플이 2007년 1월 9일(한국 시각 1월 11일)에 공개한 첫번째 아이폰. iPhone OS를 장착했다.

2007년 6월 29일부터 판매가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통신망이 호환되지 않는 문제로 출시되지 않았다. 한국에는 2GGSM으로 서비스했던 이동통신사가 단 한 곳도 없었기 때문. 한국에 GSM을 서비스했던 통신사가 단 한 곳이라도 있었다면 한국 아이폰 초창기의 독점 통신사는 KT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2. 사양[편집]

프로세서

삼성 S5L8900 SoC. ARM11 412 MHz CPU, PowerVR MBX Lite 3D GPU

메모리

128 MB LPDDR1 SDRAM, 4 / 8 / 16 GB 내장 메모리

디스
플레이

3.5인치 HVGA(480 x 320) RGB 서브픽셀 방식의 TFT-LCD
멀티터치 지원 정전식 터치 스크린

네트워크

GSM & EDGE

근접통신

Wi-Fi 802.11b/g, 블루투스 2.0+EDR

카메라

후면 200만 화소

배터리

내장형 Li-lon 1400 mAh

운영체제

iPhone OS 1.0 → 1.1 → 2.2 → 3.1.3

규격

61 x 115 x 11.6 mm, 135 g

단자정보

USB 2.0 Apple 30-pin x 1, 3.5 mm 단자 x 1

기타

가속도계, 근접 센서 탑재

3. 상세[편집]

http://images.anandtech.com/reviews/gadgets/iPhone/box3.jpg
초창기 아이폰의 구성품. 다른 세대의 아이폰 구성품과는 달리 독(Dock)이 포함되어 있다.

세계 최초의 정전식 멀티 터치 스크린을 탑재한 제품으로 Quad band GSM 버전으로 미국, 유럽 일부 국가에만 판매되었다.[2] 당시 기준으로 200만화소의 쓸만한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었다. 3.5인치 디스플레이는 당시로썬 꽤 큰 편이었고, 무엇보다 별도의 키패드가 없는 전면 정전식 터치스크린은 최초였다. 스티브 잡스가 발표하면서 했던말이 "버튼은 너무 거추장스럽다. 스타일러스(터치펜)는 대체 왜 써야 하냐?"[3]]

http://www.telegraph.co.uk/content/dam/technology/2016/02/25/iphone1_1419283k-large_trans++qVzuuqpFlyLIwiB6NTmJwaLZSda5aZtNQNzY7CWqnYQ.jpg

스티브 잡스 : 이게 바로 아이폰입니다.


문자메시지에도 영향을 주었다. 다른 기기들은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마치 이메일을 받듯이 순차적으로 문자를 받게 되는데, 아이폰의 메시지 앱은 인물별로도 분류를 하는 것. 그래서 대화 내용을 종합해서 볼 수 있었다. 지금이야 이런 방식이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애플 아이폰과 삼성 블랙잭의 SMS 비교 리뷰. 아이폰이 보낸이를 기준으로 정렬하는데 반해 블랙잭은 문자가 온 순서대로 정렬한다.

여러면에서 진일보한 스마트폰이었는데, 특히 소프트웨어 부분은 그야말로 애플이 매킨토시에서 얻은 경험을 모두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 키노트의 설명대로 스마트하면서도 사용하기 쉬운 컨셉을 제대로 구현한 기념비적인 휴대폰이다.

4. 단점[편집]

하지만 발매 당시에는 단점이 많은 폰이기도 했다.

  • 키노트에서 스티브 잡스가 보여준 대로 아이폰은 멀티미디어성을 강조한 단말기임에도 불구하고, 출시 초기에는 지금은 전설이 된 '앱스토어'의 부재로, 과연 이 단말기로 소비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많았다. [4] 다만 당시에는 소프트웨어적으로 기능이 다양한 스마트폰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시대상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앱스토어는 iPhone OS 2의 업데이트로 추가되었다.

  • 전화/문자 기능이 당시엔 정말로 아쉬운 수준이었는데, 통화품질 측면에서는 한참 후대 모델인 아이폰 4에서까지 계속 지적되었을 정도였고, 문자의 경우 당시의 피쳐폰이 수 초이내에 문자메세지를 수/발신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몇분이 지나도 문자가 안오거나 자꾸 메시지 발신 실패가 뜨는 현상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 한국에선 기본도 못하는 휴대전화라면서 깠다.

  • 가격면에서도 출시 당시부터 상당히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2년 약정 기준으로는 최초 출시가가 4GB 모델 기준으로 499달러, 8GB 모델 기준으로는 599달러였다. 이는 약정 할인 적용 후 가격으로, 실제 출고가는 4GB 모델이 949달러(115만원), 8GB 모델은 1049달러(130만원)에 달했다. 당시 휴대폰 시장은 피쳐폰과 PDA폰으로 양분되어 있었고, 피쳐폰은 고급형 출고가가 60만원대, 블랙베리 등 의 PDA폰은 100만원을 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비쌌다. 하지만 이는 초기 수요 예측의 어려움에 따른 문제임으로 어느정도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긴 하다. 특히, 외형이나 그래픽 성능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단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발매 당시 3G 기술이 이미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2G의 통신모듈을 탑재하여, '인터넷 브라우징'이 되는 폰으로서는 아쉽다는 평이 많았다. 2007년 6월에 판매가 시작된지 4개월만에 판매량이 엄청나게 늘어나자 출고가를 200달러나 인하하는 바람에, 먼저 구매한 미국 소비자들이 강하게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 당시 출시된 PDA폰에서는 별도로 강한 보안력의 푸쉬 서버를 두고 메일을 전송해주어 굳이 통신사의 데이터 요금을 낭비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업무처리가 가능했던 점을 보면 그러한 기능적 지원의 부재가 아쉬웠다. 특히 당시 블랙베리는 아주 특이한 통신망을 사용하는 블랙베리 7100i 같은 모델들도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아이폰은 PDA[5]과는 다른 카테고리의 제품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이러한 단점은 iPhone OS 2와 OS 3에서 해소되었다.

5. 한국에서의 반응[편집]

해외 리뷰들을 읽어보면 아이폰과 다른 스마트폰들을 비교하는 내용이 많은데, 마치 미래에서 온 휴대폰과 비교하는 느낌이다.(...)

아이폰이 유독 국내에서는 소프트웨어로는 도무지 상대가 안된다고 판단한 경쟁사들의 언플 때문에 실컷 까여왔는데, 어차피 GSM인데? 사실 1세대부터 하드웨어적으로도 상당히 빠방한 스마트폰이었다. OpenGL ES 1.1[6]의 3D 가속 및 2D 가속(Bit Blip) 지원, 블루투스(OS 업데이트로 사용 가능), 근접 센서, 조도 센서, 중력 센서, 멀티 터치 등 웬만한건 다 갖춘 휴대폰이었다. 괜히 기념비적인 휴대폰이 아니다. GPS 센서와 온도 센서가 빠졌을 뿐

아이팟에 이어 애플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스마트폰 대중화를 촉발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미출시 제품이라 나무위키 항목 설명이 매우 빈약하다(...). 당시 한국에서의 반응은 신기하네 정도. 하지만 지금은 그 이상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지금 어떤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전 설명에는 아이폰 1세대의 출시 당시에 국내 이통사나 해외 휴대폰 제조사나 내일모레 부도날 것처럼 걱정하진 않았다는 지적이 있는데 근거 없는 사견에 지나지 않는다. 일단 아이폰을 무시하기에는 터치 스크린을 십분 활용한 유저 인터페이스가 충격적인 수준으로 직관적이기도 했고 운영체제의 기능성이나 유용성에 있어서 그 수준이 매우 높았다. 얼리어답터들과 IT 리뷰어들도 긍정적인 리뷰를 올리기 시작했고 대중도 새롭게 재정의된 "스마트폰"에 대해 관심을 보이던 때였기 때문에 휴대폰 제조사들이 하루바삐 대응을 해야 했던 분위기는 조성되어 있었다. 다른 휴대폰 제조사들도 역량만 된다면 정전식 터치 기반 스마트폰으로 갈아타고 싶어했고 안드로이드 OS가 등장하자마자 여러 제조사들은 덥썩 안드로이드를 탑재하기 시작했다. 마음은 얼른 애플을 따라가고 싶지만 소프트웨어적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친국내기업 정서다만 모토로라가 국내기업이 아니라는건 넘어가고..가 매우 강해서 아이폰 뿐만 아니라 노키아나 소니 등의 해외 단말기[7]를 WIPI 의무적 탑재 등으로 막은 전례가 있어왔었기 때문에 당장에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8]그리고 한국 기업들은 LG의 프라다폰이나 삼성의 터치위즈 폰처럼 터치 기반 휴대폰을 아이폰의 등장 이전이나 비슷한 시기에 내놓은 바가 있었고 (지금은 피쳐폰이라 불리는 단말기들이지만) 이미 여러 기능을 실험적으로 추가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한국 기업 입장에선 기술적으로 충분히 경쟁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폰이 3세대가 출시될 때까지 한국 기업에서 내놓은 소위 스마트폰이란 물건들이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 아이폰만큼의 높은 사용자 경험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은 계속 되어 왔고 한국 기업들 역시 다른 기업들처럼 안드로이드로 갈아타게 된다. 애초에 걱정을 안했다면 해외 단말기들의 시장진입에 왜 장벽을 쳤단 말인가

6. 기타[편집]

  • 2013년 6월 아이폰 1세대의 기술 지원이 완전히 종료되었다. 즉, AS를 더이상 받을 수 없다는 것. 소프트웨어는 iPhone OS 3.1.3에서 지원이 멈췄다. 이로써 한 역사를 장식한 아이폰 1세대는 사라졌다.

  •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제품이지만 의외로 기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 애플에서 아이폰을 출시한다는 루머는 2004년부터 쭉-있어왔으며 루머만 굉장히 무성하던중 출시되어 많은 사람들이 충공깽이 되었다.

  • 아이폰 출시 이후 아이팟 -> 아이팟나노 처럼 아이폰나노가 출시한다는 루머도 돌았었다.

  • 아이폰이 출시되고 난 다음 전화기능이 제거된 아이팟터치가 출시되었다. 아이팟터치가 먼저 출시된게 아니다.

  • 출시된지 5년이 지난 2012년에 미개봉제품이 무려 1,100만원의 시작가로 경매에 올라온적이 있다. 링크참조.

  • 위에서 선술했듯이 콜렉터나 IT덕후들 사이에서 활발히 중고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마 애플 아이폰 시리즈의 기념비적인 첫 제품임과 동시에 현대식 스마트폰의 원조, 원형이라는 역사성 때문에 (상태가 좋은 제품)은 상당한 레어템 취급을 받고있다.


[1] 매킨토시부터 내려온 애플사의 캐치프레이즈.[2] 위에 썼듯이 GSM이라 우리나라에서 개통할 수 없다.[3] 이때 잡스가 스타일러스와 관련해서 했던 말은 전후 맥락과 당시 시대상을 잘 살펴보지 않으면 단순히 스타일러스는 무조건적으로 필요 없다라고 왜곡해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아이패드용으로 애플 펜슬이 등장했을 때도 잡스가 이때 했던 말을 곧이곧대로 잘라와 애플은 스타일러스 무용론을 주장했다는 식으로 어거지를 부리는 주장이 있는데 별 상관이 없다. 당시 시대상을 보면 아이폰 말고도 터치 기반 스마트폰은 이미 시장에 여럿 있었고 이들은 대개 스타일러스에 의존했다. 왜냐하면 당시 터치 기반 스마트폰들은 감압식이라 조작을 위해서는 스타일러스든 뭐든 뾰족한 조작용 막대기가 "필수"에 가까웠다. 즉, 잡스가 말한 스타일러스는 이런 조작용 막대기를 의미한 것이지, 2017년 기준으로 시장에 나와있는 다양한 기능의 스타일러스까지 전부 싸잡아 비판한 것이 아니었다. 잡스는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아이폰도 결국 터치 기반인 만큼) 스타일러스를 써야죠?"라고 관중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고 말한다음, "아뇨! 우린 가장 직관적인 조작기인 우리가 모두 갖고 태어난 손가락을 사용하게 하였습니다."라고 강조하면서 관중의 예측을 부순 것이다. 그러면서 스타일러스는 늘 들고 다녀야 하고 또 잃어버리고 거추장스럽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스타일러스 무용론을 펼쳤다기 보다는 당시 시대에서 조작용 막대기 정도 아니면 쓸모가 없었는데 조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고 다녀야 하는 스타일러스를 조롱하면서 아이폰의 조작의 직관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보는게 합당하다. 게다가 애플 펜슬은 잡스 사후 한참 후에 나온 물건이고 애플이 잡스 철학을 늘 좇을 이유도 없고 또 잡스 사후 잡스 철학을 부정하는 라인업을 이미 여러번 선보인 만큼 잡스가 키노트에서 했던 표현을 가지고 애플이 스타일러스 무용론을 펼쳤다고 과대해석하는건 합당하지 않다.[4] 분명히 인터넷도 되고, mp3도 되고, 전화도 되는 단말기지만 그 외에 할 수 있는게 그다지 많지 않았다. 선탑재 앱도 15개를 넘지않아 검정 배경화면에 덜렁 몇개의 아이콘만 있는 것이 전부였으니. 아이러니하게 요즘은 통신사가 기본으로 수십개씩 깔아먹는 지경이라 줄이는게 인기가 많다.[5] 현재 스마트폰에 비하며 보급률은 훨씬 낮았지만 PDA폰도 나름의 상당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상태였다. 당시엔 블랙베리 vs 심비안 vs 윈도우 모바일의 삼각 구도를 이루고 있었다.[6] OpenGL ES 1.1을 지원한 기기는 아이폰 이전에도 있었지만 아이폰만큼의 퍼포먼스를 구현한 사례는 없었다. 참고로 휴대용은 아니지만 거치형 게임기인 PS3의 XMB라는 UI도 OpenGL ES 기반이다.[7] 2009년까지 유일한 해외 단말기는 다름아닌 모토로라(...) 모토로라는 아예 WIPI와 통메를 꾸준히 탑제해주고 있었고 한국전용 모델로 v14w같은것도 있었다.[8] 왜 Windows Mobile에서도 WIPI가 들어갔는지 알것이다. SKT로 출시된 소니의 초창기 스마트폰도 WIPI가 탑제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