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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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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에스케이그룹
SK Group

파일:ci.jpg

'행복날개' CI

정식 명칭

에스케이[1]

영문 명칭

SK

이전 명칭

선경 (鮮京, SUNKYOUNG)[2]

국가

대한민국

설립일

1953년[3]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26

창업주

최종건

회장

최태원

유형

기업집단

산업 분야

통신, 화학, 반도체

시가총액

134조 4,010억원[4]#

홈페이지

홈페이지


파일:external/image.ohmynews.com/han_200160_1%5B262337%5D.jpg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린동(종로1가 종각역 앞)에 있는 본사[5] 간판에 붙은 로고가 바뀌기 전으로 보아 2005년 이전인 듯 하다.

1. 개요2. 역사3. 역대 그룹 CI4. 사가
4.1. 선경 시절 - <선경의 노래>4.2. 로고송 - <나는 SK>
5. 스포츠계와의 관계6. 그 밖의 이야기
6.1. 수원시와의 깊은 인연6.2. 기타 여담
7. 그룹 계열사
7.1. 지주회사7.2. 에너지/화학7.3. 정보통신/반도체7.4. 마케팅/서비스7.5. 기타
8. 스포츠9. 스폰서10. 참고

1. 개요[편집]

대한민국기업집단. SK그룹 시가총액은 134조(2018년 3월 기준)로 국내 재계서열 시가총액 기준 2위, 자산순위 기준 3위다. #

경영원칙은 '인간위주의 경영, 합리적인 경영, 현실을 인식한 경영'.

현재 SK텔레콤SK에너지는 이동통신과 정유 사업에서 각각 업계 1위[6]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동통신 사업이나 정유나 사실상 과점 시장이라는 것을 감안해 보면 이들의 시장 지배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룹의 양대 축인 석유와 이동통신산업이 그 특성상 현금이 꾸준히, 매출에 비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삼성그룹현대차그룹과 비교했을 때 덩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현금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

통신과 석유는 필수 소비재이므로 매달 당기순이익성 현금이 수천억 원씩 들어온다. 물론 석유는 국제유가와 환율, 국내외 경기 상황에서 비롯되는 수요-공급 문제와 얽혀 있기 때문에 한여름 가뭄 같은 불경기를 타기도 한다. 그러나 통신 분야 회사들은 국가기간산업으로 지정되어 외인 주식 보유량에 제한이 걸려 있고,(최대 50퍼센트-1주) 통신설비만 주기적으로 교체하고 주파수만 잘 낙찰 받아서 통신망만 잘 유지하면 매달 수천억 원 단위의 현금을 당기순이익으로 뽑아내는 등 충분히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빵빵한 현금줄 덕분에 SK텔레콤이 지주회사 SK의 지원없이 하이닉스를 인수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 SK하이닉스는 최태원 회장의 결정으로 인해 수조 단위의 투자를 받은 데다, 경쟁업체였던 엘피다가 파산하면서 공급자 중심으로 바뀐 반도체 업계 호황을 맞은 덕분에 실적과 주가가 엄청나게 올랐다. 여기에 힘입어 SK텔레콤 또한 SK하이닉스의 최대주주로서 주가가 올라갔다. 네이트싸이월드, 네이트온 등 SK의 인터넷 사업부문(SK컴즈)이 거대한 자금력에도 침몰했던 것도 SK텔레콤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너무 크다보니 SK텔레콤의 이익을 침해할 여지가 컸던 이들 사업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지 않아서라는 분석이 있을 지경이다.

이를 기반으로 한 국내 최대의 멤버십 마일리지 프로그램인 OK캐쉬백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하나금융지주와 합작하여 하나SK카드를 설립, 신용카드 사업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이 후 외환은행 카드부문을 분리된 외환카드와 합병하여 하나카드가 된 상태이며 하나카드에 25%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1970년대 선경이라면 교복[7]과 자전거,[8] 1980년대는 카세트 테이프와 비디오 테이프[9]로 유명했다. 그 밖에도 역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SKC 플로피 디스크 사업을 하던 적이 있다. 더불어 영화광들이라면 기억하실 영상사업에도 참여한 적이 있는데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SKC 비디오[10]를 운영하면서 미국의 워너브라더스 및 MGM/UA 영화들을 비디오로 정식 발매했던 역사도 있다.[11]

또한 70년대 ~ 80년대 사람들에게 선경에 대해 꽤 괜찮은 호감을 가지게 만든 것 중 하나가 MBC의 학생대상 장수 프로그램 장학퀴즈의 스폰서를 오래도록 했던 것도 있다.[12] 중국에서도 '좡위안방(壮元榜)'이라는 이름의 중국판 장학퀴즈를 장기간 후원하면서 중국에서의 네임벨류도 상당하다.

취업시 학벌을 가장 많이 보는 회사로 악명높다. 오죽하면 SKY만 뽑아서 SK라는 말이 돌 정도.하지만 최근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바이킹 전형 같은 특별 전형도 있고 정식 공채에서도 원서 평가시 학벌 배제 및 블라인드 면접[13] 실시로 출신성분이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도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14] 대학교와 관련하여 또 하나 특이한 점은 4대 거대 재벌 중 유일하게 대학 재단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15]

상술했듯 정유와 이동통신 산업의 메이저인지라 내수에만 의존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정유산업만 해도 엄연한 주력 수출산업이고[16] 2000년대 들어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 분야가 다양해진 덕분에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그룹 차원에서도 이런 부정적인 인식이 억울했는지 회사 블로그에 포스팅까지 따로 하며 13년 들어 수출 비중이 절반에 이른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룹 전체의 경영실적을 보면 2014년 매출 165조, 당기순이익 5조 8천억, 시가총액 91조, 부채비율은 88%이다.#

2. 역사[편집]

파일:p1OXak9.jpg

일제강점기에 설립한 '선경직물(鮮京織物)[17]'을 모체로 한 재벌그룹으로, 창업주 故 최종건 회장이 일제시대 선경직물에 입사, 해방 후 선경치안대를 결성해 공장 보호와 일본인 귀환을 돕기도 했다.

그러나 선경은 원래 최씨 것이 아니었다. 해방 뒤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1946년부터 귀속재산이 되어 황청하와 김덕유가 관리하면서 조업이 재개되었으나, 한국전쟁으로 공장이 폐허가 된 적이 있었다. 휴전 뒤인 1953년에 임직원이었던 최종건이 적산이었던 선경직물을 불하받아 경영인으로 선출되면서 그룹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대기업이 옷까지 만들어 판다고 욕할게 아니라 SK는 원래 직물회사였다.[18]

1973년 창업주 최종건 회장이 타계하면서 동생 최종현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고[19] 1980년 대한석유공사[20]를 인수한 것[21][22]을 시작으로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외치며 현재 SK그룹의 근간을 만들어냈고, 1988년 최종현 회장의 장남 최태원 씨와 당시 유력 대통령 후보이던 노태우 대통령의 장녀 노소영 씨의 결혼[23]으로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받게 되었다. 때문에 1992년 쌍용, 동부, 동양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획득할 당시 주위로부터 정경유착이란 비난을 받게 된다[24]. 그리하여 당시 대선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유로 제2이동통신사업권을 도로 반납한다.[25] 관련 기사 #

하지만 1994년 한국이동통신[26]을 인수하여 사세를 더욱 키워간다.[27] 이후에도 SK커뮤니케이션즈를 통해 라이코스코리아, 싸이월드, 이글루스, 엠파스 등등의 IT업체들, SK텔레콤을 통해 신세기통신, 하나로텔레콤 등 통신업체들, SK에너지를 통해 인천정유(이후 합병) 등등 각종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삼성그룹, 범 현대그룹, LG그룹과 함께 단숨에 대한민국 4대 재벌로 급부상하게 된다. 1999년에는 을지로입구에 있던 지상 13층짜리 사옥을 헐고[28] 종각역 인근인 종로구 서린동 사옥으로 그룹 본사를 이전하였다.

이런 점을 보면 SK그룹의 주요사업이 M&A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 물론, IT 계열, 특히 인터넷사업 인수합병은 대부분 실패했지만, 정말로 규모가 큰 인수합병은 승부사적 기질과 다방면의 노력으로 성공시킨 게 SK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SK하이닉스 인수합병 건으로 최근까지 진행된 그룹 내 인수합병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SK그룹은 대한민국 경제사에 2번 큰 흔적을 남긴다.

  1.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의 분식회계사태.
    일개 무역회사인 SK글로벌이 1조 5,000억이 넘는 금액을 장부에서 몰래 누락시켜 오다가 적발된 사건.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수법은 지극히 전형적이고 단순한데 수 십년 간 누적돼온 1조원 대의 외상 채무를 장부에서 누락시키고, 있지도 않은 가공자산을 계상하는 등 수법이 너무 간단해 감독 시스템만 제대로 작동됐다면 충분히 적발해낼 수 있는 사안이었다.[29] 이로 인해 당시 코스피지수가 530선이 깨지는 등 여파가 상당하였다.[30] 그런데 이 사건으로 코스피를 뒤로 밀더니 뒤이어 일어난 사건[31][32] 으로 코스피를 다시 끌어당겼다. 흠좀무..[33]
    2. 외국 투자펀드에 의한 적대적 M&A 피인수위협.
    소버린자산운용은 자회사인 크레스트증권을통해 SK(주)의 지분을 14.99%까지 확보하여 2대주주로 등극한후 SK경영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명분은 SK(주)의 투명경영으로 SK오너인 최씨일가와 현 경영진의 퇴진.[34] 당시 최태원 회장의 SK(주)지분은 1%가 채 안되는 상황이었고[35], 단일 외국인이 15%이상 지분을 취득하여 최대 주주가 되면 SK(주)는 외국인으로 분류되어 SK(주)의 SK텔레콤지분의 의결권이 반토막으로 제한되어 SK텔레콤의 경영권까지 위협받게 되는 상황.. 결국 팬택 등 백기사들이 도와줘 표대결에서 승리해 최태원 회장의 경영권은 지켜 냈으나, 경영권 분쟁 중 주가가 엄청나게 상승하여 소버린은 1800억원에 매입했던 지분을 1조가 넘는가격에 매각하여 매각 차익이 7800억원에 달했다. 그것도 세금 한 푼 안내고.(자본거래는 비과세) 한 마디로 대한민국 경제계가 외국펀드에 제대로 관광당한 호구인증 사건.[36] [37]

3. 역대 그룹 CI[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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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에 사용한 마름모꼴 도안 CI를 거쳐 1988년부터 영문표기로 '선경'을 표기한 CI로 변경, 이후 여담 문단에서 서술할 어른의 사정으로 인하여 1990년대 후반 그룹명 자체를 'SK'로 변경하면서 CI 역시 단순하게 바뀌었다.

맨 아래쪽의 CI가 2005년 가을에 발표하여 2006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 중인 '행복날개' CI.

4. 사가[편집]

4.1. 선경 시절 - <선경의 노래>[편집]

1977년에 제정되었으며, 작사는 시인 조병화, 작곡은 김성태가 맡았다.

(1절)새 역사 새 물결 파도치는 세계에
드높이 기를 세워 인류복지 앞장서

바다로 육지로 오대양 육대주로
우리는 선경가족 약진하는 새 일꾼

(2절)현실과 합리로 이념을 빛내고
창의와 성의로 몸과 마음 다하여

인류의 번영을 높여가는 그 이름
우리는 선경가족 슬기찬 새 일꾼

(후렴)아아~ 역사는 사람이 만드는 거
선경은 창조의 기수 인류의 사랑

4.2. 로고송 - <나는 SK>[편집]


아이유가 부르게 된 계기는 현재 카카오M으로 사명을 바꾸고 결국 카카오의 사업부분으로 합병된 로엔엔터테인먼트가 아이유의 소속사이기 때문. 로엔은 과거 SK계열이었으며, 현재도 일부 지분을 SKT에서 보유중이다. 그래서 여전히 SK제휴 할인이 로엔의 음원서비스 멜론에서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제 카카오의 얼굴마담으로 열심히 활약중이다[38]

5. 스포츠계와의 관계[편집]


이상할 정도로 각 종목 프로 스포츠와는 악연이 많은 재벌로 악명이 자자하다. '스포츠 윤리는 개나 주라'는 듯 기업 경영하듯 가차없고 무자비한 전횡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오죽하면 SK가 스폰서로 들어오면 팬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격하게 표현하자면 '깡패 수준'.

  • 1998년 2월, SK증권 여자농구단 농구대잔치 우승 다음 날 팀 해체, 그리고 슈퍼리그 준우승을 일궈 낸 SK케미칼 여자배구단[39]도 같은 해 4월 해체. 그 이유는 1997년 외환 위기였다.[40]

  • 청주 SK 나이츠[41]부천 SK의 연고지 이전.[42]

  • 2000년 쌍방울 레이더스를 의도적으로 인수하지 않으면서 해체시키고 갈 곳 없어진 선수들과 개별적으로 계약하며 현대 유니콘스가 떠난 인천광역시를 연고지로 삼아 SK 와이번스를 창단. 신규 창단이기 때문에 일단 옛 쌍방울의 연고권인 전주시나 전북권과의 관계는 일절 없다고 봐도 되나, SK와 똑같은 형태로 창단한 넥센 히어로즈와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결국 2008년 5월 4일 넥센(당시 우리 히어로즈) 앞에서 태평양 데이를 했다가 자신의 창단 전적에 발목이 잡히고 만다. 게다가 신생 팀을 표방하면서도 쌍방울 해체 전에 지명했다가 대학으로 진학했던 선수들의 지명권을 전부 챙겨갔기 때문에[43] 전주시, 군산시를 비롯한 전북지역 야구 역사에 흑역사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야구계 역사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데 공헌했다. 그래서 정통성 시비가 발생하면 SK는 입을 열지 못한다.

  • SK 와이번스 프런트와 팬덤이 충돌한 문학구장 소요사태SK 와이번스 프런트 퇴진운동.

  • 2004년 4U를 인수하여 SKT T1라는 기업팀을 창단하나 이후 2005년 KeSPA 회장직을 꿰찬 이후부터.... 자세한 내용은 KeSPA 문서 참조. 그래도 SKT T1 자체는 게임단 중 최고의 성적을 거둔 게임단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핸드볼, 펜싱최태원 회장이 아낌없이 지원해서 그런지 저 두 종목 관계자들에게 SK는 호감 이상으로 은인이나 다름없는 기업이다. 실제 SK가 핸드볼, 펜싱에 쏟은 성과가 대단한데, 핸드볼의 경우 국가대표팀 공식 후원사이기도 하고, 올림픽 2체육관을 리모델링하여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으로 개장하는가 하면, 용인시청 여자 핸드볼 팀을 인수하여 SK 슈가글라이더즈라는 이름으로 개칭하여 운영하고 있다. 펜싱의 경우 2012년 런던 올림픽의 효자종목으로 급부상하는 데 아낌없는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44]

6. 그 밖의 이야기[편집]

6.1. 수원시와의 깊은 인연[편집]

SK그룹의 모태 계열사인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가 수원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SK그룹 오너 일가들이 모두 수원에서 태어났거나 자란 탓에[45] 수원시내 곳곳에 SK그룹과 관련하여 이것저것 남아있는 것들이 많다.

과거 선경합섬(현 SK케미칼)과 선경화학(현 SKC) 공장이 수원 정자동에 있었으며 선경합섬 공장은 없어졌으나 SKC는 굳건히 공장과 중앙연구소를 운영하며 현재도 수원 정자동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수원 선경도서관은 이름 그대로 SK에서 1991년에 도서관 부지를 기증, 1993년에 도서관을 착공하여 1995년도에 도서관을 완공, 수원시에 기부채납한 대표적인 사례이다.[46]

또한 SK케미칼 구 공장 부지에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수원SK아트리움을 건립해 역시 수원시에 기부채납하였다. 그리고 SK네트웍스의 본사는 서울이 아니라 수원에 있는데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의 한 주유소를 주소지로 두고 있다. 원래는 권선구 평동에 있는 구 선경직물 공장 터를 본사 법인 주소지로 썼으나 수원시가 이 부지를 매입하면서 본사를 영화동으로 옮긴 것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본사 기능을 하는곳은 서울 을지로 사옥(SK네트웍스 서울지점)[47]이 담당한다. 그러니까 영화동 주소는 서류상의 본사인 셈이다. 실제로 이 주소지에 가보면 주유소와 SK네트웍스 수원사옥이 있는데 수원사옥은 고객센터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SK네트웍스 회장을 맡고 있는 최신원[48] 회장은 현재도 수원지역 경제단체인 수원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다.

2000년에 KBO 리그 SK 와이번스가 창단될 때도 현재 연고지인 인천광역시가 아니라 그룹의 발상지이자 총수의 출신지인 수원시 중심의 경기도 광역권을 연고지로 정할 했다. 그러나 결국은 광역시인천을 연고지로 정했다.[49]

다만 현재는 SK그룹에서 수원의 흔적을 지우는 움직임이 보인다는 평이 중론. 이는 창업주 최종건 회장이 젊은 나이에 사망하면서 경영권이 최종건 회장의 동생인 고 최종현 사장, 그리고 최태원 회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최종건 회장의 장남인 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과 최태원 회장 사이의 불화가 있었기에 정통성에 약점을 가진 최태원 회장이 SK그룹 초기의 흔적을 지우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50]

6.2. 기타 여담[편집]

  • 삼성그룹처럼 이전 사명인 선경을 그대로 로마자 표기하여 사용하려 했으나 공교롭게도 로마자 명인 Sunkyongsunk: 가라앉다 + young: 젊다란 단어와 발음이 같아 젊은 시절부터 ×망테크란 기절초풍할 네이밍 센스가 되어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1990년대 후반에 '선' 과 '경'의 맨 앞 철자만 따와 SK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는 우스갯소리가 아닌 실제 사정이다.

  • 발음 그대로 읽어서 '스크' 또는 '', '솩' 이라고 읽기도 한다. 이렇게 줄여읽는 경우는 본래 프로야구 커뮤니티에서 한/영 전환을 귀찮아 한 유저들이 발음 그대로 부른데서 유래하지만[51] 현재는 기업, 스포츠 구단 등등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예를 들어 매우 화가 나는 어떤 회사와 SK의 합작회사는 화나스크. 진화하면 '이 된다.


  • 선경그룹이었을 당시에는 기업PR 광고가 상당히 보수적이고 무거웠었다. 장학퀴즈용이라서 그랬는지도. 이름과 CI를 바꾼 뒤 가볍고 발랄한 광고들이 나온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


2016년 5월 18일에 나온 광고로 현재 SK그룹의 가장 최신 기업광고이다. 세월을 감안하더라도 기업 PR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밝고 무겁지 않게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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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에화가 되어 있다.언리쉬드에 특전으로 나오는 선경티스토레그것. 보면 알겟지만 유니폼부터가 SK의 상징색인 빨강색주황색으로 구성되어 있고, 스킬들도 야구, 검색어, 지원하지 않는 기종등 SK그룹의 사업들과 관련된 내용들이 나온다. 게임속 관련 태그도 SK그룹의 자회사인 "T Store". 티스토어에서 10만원 이상 구매한 사람에게 지급되는 특수카드.

7. 그룹 계열사[편집]

파일:external/image.thebell.co.kr/2015091401000271500016592_l.jpg

SK그룹의 지배구조 현황. 출처. 상기 자료와 홈페이지에 소개된 계열사 현황을 참고하여 작성한다. 후술하겠지만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SK케미칼과 SK가스는 사실상 계열분리 된 상태로 2007년 SK그룹이 지주사 전환을 할 때부터 최창원 부회장이 독립경영을 하고 있었다.

7.1. 지주회사[편집]

  • SK주식회사
    SK그룹의 지배구조 최상위에 위치한 지주회사이다. 원래 총수일가 → SK C&C → 지주회사 라는 다층형 지배구조[52]였지만 양사를 합병하면서 옥상옥 구조를 탈피했다. SK C&C는 국내 3위의 시스템 보수 대기업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SK 엔카라는 브랜드로 중고차 사업도 영위했었다.

7.2. 에너지/화학[편집]

  • SK이노베이션
    국내 석유 화학 업계 매출액 부동의 원탑이자 수많은 에너지/화학 자회사들을 거느리고 있는 모회사이기도 하다. 다만 흔히들 정유사라는 인식과는 달리 정유 사업을 영위하는 건 자회사인 SK 에너지이다. SK 이노베이션 자체는 별도 기준으로 보면 매출이 14년 1조 5천억에 불과하다(?). SK이노베이션이 직접 운영하는 사업은 석유개발(자원개발)과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정보소재 등이다. 13년 7월부로 5개 자회사 체제로 재편되었다.# 연결대상 기업들을 모두 포함하면 14년 기준 매출 65조원.

    • SK에너지
      정유산업 부문. 원래 SK에너지는 석유제품 생산 및 도매업만 담당하였으나, 2017년 소매분야(주유소)를 SK네트웍스로부터 인수하였다.

    • SK종합화학
      종합 석유화학 회사. 자동차, 전자, 통신의 첨단 소재에서 페인트, 볼펜, 콘택트렌즈, 화장품, 세제 등의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산업영역에서 필수적인 원, 부자재를 생산하고 있다. 자세한 사업 내역은 여기를 참고바람. 외계어가 난무하니까 주의.

    • SK루브리컨츠
      윤활유 전문 생산기업. ZIC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 SK인천석유화학
      인천에 있는 석유화학단지. 합성섬유 원료인 파라자일렌(PX) 등 석유화학제품 전문기업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화그룹 소속의 한국 최초의 정유사 경인에너지까지 이어진다. 사명이 한화에너지로 잠시 바뀌었다가, 이를 현대정유에서 인수 후 인천정유로 다시 변경. 현대정유에서 은행관리로 넘어간후 SK에서 인수, SK인천정유로 사명 변경 후 SK에너지에 합병, SK에너지 인천Complex가 되었는데, 다시 분사되었다.

    •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화학제품 및 석유 트레이딩 전문 회사.

  • SKC
    화학과 필름, 태양광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자회사까지 모두 포함하여 2014년 기준 매출 2조 8천억, 영업이익 1,500억을 기록하였다. 부채비율은 15년 3분기 기준 138%로 양호한 편. 국내에 몇 안되는 화학/소재/부품 제조 및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대기업 중 하나로서 SK 그룹 계열사 중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과거 비디오, 플로피 디스크, CD 등을 생산하였으나 현재는 주로 화학 솔루션, 산업용 필름, 신규 소재 등 B2B 위주 사업을 영위하는 중이다. SK케미칼과 자주 혼동되곤 하나 서로 다른 계열사다.

    • SK텔레시스
      4G LTE 기반의 중계기, 전송장비, WiFi, FemtoCell 등을 생산하는 통신장비 전문 회사. 계열사 분류상 통신/반도체 쪽이 더 맞겠지만 SKC의 자회사인지라.

  • SK E&S
    구체적인 사업 영역은 여기를 참고. 여러 사업 중에서 대중에게 친숙하고 압도적인 매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도시가스 부문이다. 코원에너지서비스, 부산도시가스, 영남에너지서비스, 충청에너지서비스, 전남도시가스, 강원도시가스, 전북에너지서비스 등이 소속되어 있다.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국내 도시가스 시장의 21%를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14년 말 기준 매출 5조 6천억, 순이익 4,000여 억.

7.3. 정보통신/반도체[편집]

  • SK텔레콤: 국내 1위의 통신사. 정보통신/반도체 자회사들을 거느리고 있는 모회사이기도 하다. 자회사까지 포함하여 14년 매출 17조, 영업이익 1조 8천억을 기록하였다. 부채비율도 80% 남짓으로 매우 우수한 편. 참고로 하이닉스는 텔레콤의 지분율이 20%밖에 안 되기 때문에 지분법 이익에 따라 20%만을 계상한다. 즉 2조 가까운 영업이익에 하이닉스 몫의 80%는 별개로 존재한다.

    • SK브로드밴드: 유무선 인터넷 통신, IPTV, 전화, IDC, 네트워크 솔루션 상품 등

    • SK스토아: 스토가 아님에 유의하자. 영문명칭도 stoa'다. SK브로드밴드가 100% 출자한 자회사이자 SK텔레콤의 손자회사. 기존에 브로드밴드에서 운영하던 B쇼핑을 아예 하나의 자회사로 분할하여 T커머스를 전담하도록 한 자회사라고 보면 된다.

    • SK하이닉스: 한국 2위, 세계 3~4위의 반도체 전문 회사이다. 14년 기준 매출 17조원, 영업이익 5조원을 벌었고, 부채비율은 50%도 안 된다. 15년에는 이보다 잘 벌었다. 17년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매출 30조, 영업이익 13조를 돌파했다. 영업이익률이 무려 46%!!

    • SK텔링크: 국제전화 및 알뜰폰 사업 등.

    • PS&Marketing: 약칭 PS&M. SKT와 SKB의 유선, 무선 통신상품을 판매하는 자회사이다. 직영 소매매장 운영 및 판매점을 상대로 도매영업을 운영하는 영업전문자회사.

    • SK플래닛: 2011년 10월 SK텔레콤에서 분할하여 SK 텔레콤 자회사격으로 설립되었다. 2013년 2월에는 광고/마케팅 전문회사인 SK M&C와 다시 합병하여 사업을 확장하였다. 합병 당시, 티맵, OK캐쉬백, 기프티콘, 스마트 월렛(Syrup), 호핀, 티스토어와 자회사(SK 텔레콤의 손자회사)를 통해 11번가(커머스 플래닛), 멜론(로엔, 이 당시 아이유가 SK 그룹 사가를 부르기도.), 네이트, 싸이월드(SK컴즈) 및 광고 사업까지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였다. 2016년 3월, O2O 커머스 사업을 위주로 사업을 개편하여 자회사인 커머스 플래닛과 합병하여 현재는 11번가와 함께 OK 캐쉬백, 기프티콘, 시럽(스마트 월렛)과 광고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O2O 커머스 사업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SK 타계열사로 이전 (티맵은 SK텔레콤이 다시 회수, 호핀은 SK 브로드밴드) 및 회사 분할( 티스토어원스토어로 이름 변경 및 별도 회사 설립, 그리고 SK 테크엑스(SK텔레콤 플렛폼 운영/개발)되었다.

    • SK엠앤서비스: IT솔루션 기업에서 출발하여 현재 OK캐시백, 여행, 컨택서비스와 보험 사업을 진행 중이다.

    • NSOK: 국내 무인경비업계 4위를 차지하고있는 무인경비 자회사이다. 2015년 SK텔레콤에 인수되었다.

    • SK실트론: 실리콘 웨이퍼

    • 네트웍오앤에스: SK텔레콤 유무선 설비 운용과 고객접점을 담당하는 자회사이다.

    • SK텔레텍: SKY 휴대폰 제조사. 2005년 팬택에 인수되었다.

    • 아이리버: MP3 제조업체. 2014년 8월에 인수했다.

7.4. 마케팅/서비스[편집]

  • SK해운
    2014년 매출 2조 3천억으로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해운사. 의외지만(?) 내부거래 비중은 20% 정도로 얼마 되지 않으며, 바다 위에 떠 있는 선박에 선박연료(벙커)를 공급하는, 일종의 해상 주유소라고 할 수 있는 벙커링 사업부문이 매출의 30%를 차지한다. 극심한 해운업의 침체 속에서도 13, 14년 연속 영업흑자를 찍고 2015년에도 이익이 확실시되는 등 그럭저럭 선전하고 있다. 2015년 3분기 기준 부채비율이 950%(!)[53] 구조가 매우 안 좋은 것이 흠이지만, 장기적인 전망은 나쁘지 않다.#

  • SK네트웍스
    무역 사업, 정보통신 사업, 에너지 유통 사업, 소비재 사업, 렌터카 사업 등 다양한 사업군을 영위하는 종합상사. SK그룹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선경직물이 종합상사로 발전한 형태이다. 워커힐호텔도 운영 중이다. 2014년 매출액 22조, 영업이익 2,000억으로 대우인터내셔널을 제치고 국내 종합상사 1위다.# 그러나 매출, 영업이익의 대부분이 그룹 계열사에서 몰아 준 유류 유통(2000년 SK유류판매를 흡수합병, SK에너지의 직영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과 휴대폰 판매(SK텔레콤 휴대폰 판매를 담당)[54]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 둘을 제외하면 2014년 매출은 7조 원에 영업이익은 3년 연속 적자다.[55] 패션 사업부도 있었으며 타미 힐피거, 아메리칸 이글, 루즈&라운지 등을 판매 중이었으나, 2016년 11월 27일 현대백화점에 3,000억원 대의 인수 대금을 받고 매각하여 2017년 3월에 현대지앤에프로 개칭했다. 이에 따라 SK네트웍스의 의류 인터넷 쇼핑몰명인 SK패션몰은 H패션몰로 변경됐다.

2016년 최신원 회장이 SK네트웍스 복귀 후 3개월 만에 직원의 40배가 넘는 급여를 받아 고액 연봉 논란이 일어났다. 또한 2018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경영악화 및 주가폭락에 소액주주들이 반발할 것을 우려하여 출입을 통제하는 등 참석을 방해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여기에 최신원 회장이 30억원을 2017년에 보수로 수령했다는 기사가 나왔다가 삭제되었는데 이 과정에서도 의혹이 제기되었다.

  • SK매직
    렌탈사업 강화를 위해 2016년 11월 동양매직을 인수하면서 사명을 변경했다. 동양매직을 인수한 무렵에 SK네트웍스의 패션사업부를 현대백화점에 매각했다.

7.5. 기타[편집]

  • SK케미칼
    SK그룹 계열사라고 오해하기 쉬운 SK케미칼은 SK그룹이 2007년 지주사 전환했을 때부터 지배구조에서 벗어난, 사실상의 독립적인 회사들로 故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3남으로 최태원 SK 회장의 사촌 동생 최창원 부회장이 실질적인 지배 주주로 있다. 조만간 관련 지분을 모두 정리하고 계열분리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존재한다.#

  • SK가스

    LPG 전문 공급기업. 전국적인 유통망을 기반으로 국내 LPG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LPG 트레이딩(국내 도입부터 중계무역, 이종제품 Swap 및 선물거래 등), 탱크터미널 사업, 가스화학(PDH ; 프로판에서 수소를 제거하여 프로필렌을 만드는 설비) 사업 등에 진출해 있다.

  • SK건설
    화공플랜트, 발전플랜트, 토목, 건축을 담당하는 업체이다.

8. 스포츠[편집]

SK스포츠 참조.

9. 스폰서[편집]

  • 장학퀴즈

  • 한국고등교육재단 - 최종현 2대 그룹 회장이 생전에 세계 수준의 학자를 양성해 학술 발전을 통한 국가 발전을 촉진한다는 취지로 1974년 설립한 비영리 공익법인.

  • 대한민국 펜싱 국가대표팀 공식 후원사

  • 대한민국 핸드볼 국가대표팀 공식 후원사

10. 참고[편집]


[1] 법인명은 영어로 등록이 불가하다.[2] 그래서 선경그룹이라는 옛 이름으로도 이 문서에 접근할 수 있다. 사실 SK라는 명칭은 1970년대부터 그룹 로고에 삽입될 정도로 자주 쓰였지만 그룹의 공식 명칭이 SK로 바뀐 것은 1998년부터다. 그룹 계열사 중에서는 1987년 선경화학이 SKC로 사명을 바꾸면서 정식 사명에 SK가 등장했고 1997년 3월 한국이동통신이 SK텔레콤으로 사명을 바꾸면서 SK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3] SK그룹이 공식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그룹의 탄생 시점은 최종건 창업주가 폐허가 된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을 재건시킨 1953년이다. 물론 선경직물의 실제 창립연도는 1939년이다.[4] 2018년 3월 26일 기준[5] ATM은 지하에 있다. 이 건물 2층에 KEB하나은행 SK센터지점이 있다. 본사 좌측의 건물은 알파빌딩이다.(나무경영아카데미가 있는 그 건물)[6] SK텔레콤은 정부의 독과점 제재가 두려워 시장 점유율 51%를 넘기지 않으려 자제한다.[7] 그 유명한 '스마트'. SK가 교복 사업에 진출한 건 1970년으로 삼성의 제일모직, LG패션 못지 않게 오래 됐다.[8] 1969년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신원산업이라는 곳을 1976년에 인수, 1978년에 선경 '스마트 자전거'로 브랜드화 한다. 1999년경 SK에서 독립해 중소기업으로 이어가고 있었으나 2007년에 에이모션이라는 기업에 인수되었다.[9] SKC. 전술한 한국이동통신을 선경이 인수하면서 슬슬 신경을 안 쓰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그저 그런 자회사 수준.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게임 매니아들에게도 유명했는데, 동서게임채널과 함께 2대 PC 패키지 게임 유통사였기 때문이다. 훗날 전설로 남을 게임을 많이 유통했는데, 울티마 시리즈,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 심시티 시리즈 등을 유통했고, 시드 마이어의 문명 1편도 여기서 유통했다.[10] 호환, 마마를 가장 두려워했던 옛날 어린이들은 이거 한편으로도 미래가 바뀔 수 있었다.[11] 이전 문서에 이 문단과 관련하여 선경이 80년대 말까지 50대 그룹에 들어올까 말까한 중견기업이라고 명백히 오류를 기술하고 있었다. 아래 표에도 있지만, 선경은 이미 70년대에 재계순위 10위권에 진입했다. 82년 프로축구 출범시 유공축구단을 창단할 정도였다. 50위권 기업이 프로구단을 창단할 리가 없지 않은가 ?[12] 74년도에는 최종현 선대 회장이 비영리 공익법인인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하여 해외 유학생, 국내 대학원생 등 우수 인재를 지원하는 장학사업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유학생 커뮤니티에서는 SK 장학금, KFAS 장학금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비슷한 성격의 삼성장학회과 함께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장학 프로그램 중 하나로서 역사로는 삼성장학회보다 더 오래되었다. 이공계 전반과 소수의 인문/상경계의 장학생을 지원하는 삼성장학회와 달리 고등교육재단에서는 정보통신, 순수과학, 순수인문학 위주의 장학생을 선발한다.[13] 학벌, 지연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실격 처리된다.[14] 신입사원들의 출신 학교를 보면 블라인드인데도 불구하고 학벌이 상당히 좋다. 이유는 당연히 '명문대라서 뽑은게 아니라 뽑고 나니 명문대'. 에라이......[15] 삼성그룹성균관대, 현대중공업울산대, LG그룹연암대학교연암공대.[16] 정유업이 내수 의존이라는 건 정말로 큰 오해이다. 산업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14년 정유 섹터의 수출액은 약 50조로 자동차와 반도체 다음으로 높으며 전체 수출의 10%를 넘게 차지한다. 그 다음이 48조인 석유화학. 물론 석유를 사다가 분별증류하여 파는 특성상 명목 수출액에 비해 부가가치는 매우 낮은 편이지만 이건 산업 자체의, 혹은 자원빈국인 한국의 특성이라 내수도 마찬가지다.[17] '선경'이란 이름은 조선 소재 일본인 기업 만주단(満綢緞)과 일본 교토의 토직물(都織物)의 머릿글자를 합친 것이다. 일본 교토직물은 시부사와 재벌 계열사였으며 1968년 경영 악화로 파산해서 없어졌다.[18] 참고로 SK 최종건 회장 생가가 수원시 권선구 평동에 위치하여 있으며, 선경직물도 위치해있었다.[19] 타계 당시 최종건 회장의 나이가 48세로 젊었기 때문에, 장남 최윤원(후에 SK케미칼 회장)이 24세로 어렸다. 그래서 동생인 최종현 회장이 뒤를 잇게 되었고, 이 문제는 최종현 회장 사후 양가에서 다툼이 일어난 원인이 되기도 했다.[20] 약칭 유공. 현재 중간지주회사인 (주)SK이노베이션과 사업회사인 SK에너지(정유부문), SK종합화학(석유화학부문), SK루브리컨츠(윤활유부문),SK인천석유화학(인천 Complex),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에너지트레이딩사업부) 로 나뉘어져 있다. 유공의 인수 과정에서 유공 산하인 유공 여자배구단도 함께 인수하였다가 1982년에 국제그룹에 팔아버렸다. 해당 팀은 1985년 국제그룹 강제해체 이후 한일그룹에 넘겨졌다가 이듬해에 해체되었다.[21] 1979년 기준 전체 매출액이 3천억을 조금 넘었던 선경그룹이, 매출 1조 원이 넘는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큰 유공을 인수한 것을 두고 새우가 고래를 먹었다고 했다. 게다가 그 인수대금 9,300만 달러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억 달러의 차관을 들여와 해결. 이후 SK는 단숨에 재계 9위에서 5위로 상승, 대기업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22] 당시 선경이 삼성그룹을 제치고 어떻게 유공을 인수하는 것이 가능했는지에 대해, 관련 뉴스에 따르면 당시 동력자원부 차관이었던 최동규에게 전두환이 유공을 선경에 넘긴 건 노태우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다고 얘기를 했다 한다. 또한 유양수 당시 동자부 장관의 말에 따르면, 선경 회장이 그 서슬 퍼런 시절 장관 방에 와서는 유공을 내놓으라고 요구를 했다고[23] 본인들은 미국 유학시절부터 시작하여 5년간에 걸친 자유연애 결혼이라고는 하지만 당시에도 위에서 언급된 유공의 인수,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나는 일들을 본 사람들은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라고 보지 않았다. 2015년 최태원 회장의 혼외자 고백과 그에 이은 이혼 선언이 터지자 이 정략결혼(?)을 기억하는 호사가들은 'SKT와 SK에너지는 노소영 관장에게 토해줘야 하는 게 맞지 않냐'는 드립까지 쳤을 정도다.[24] 당시 최종현 회장이 전경련 회장까지 맡고있던 터라 비난은 더욱 심했다.[25] 이 과정에서 생긴 제2이동통신사가 바로 신세기통신이다.[26] 지금의 SK텔레콤이다. 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의 자회사. KT 회장이 회식자리에서 '한때는 SKT도 우리 것이었다'라고 했다는데 역사를 따져보면 맞는 말이다. 아무튼 011을 뺏긴 한국통신은 후에 016으로 진출한다.[27] 이전 문서에 한국이동통신 인수로 드디어 재계순위 10위권에 올랐다고 적혀있는데, 선경은 이미 70년대 후반부터 10위권에 진입하고, 1980년대 초중반도 내내 5~7위권에서 놀던 그룹이다. 물론 유공과 한국이통의 인수가 지금의 사세를 만들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맞다.[28] 이 자리에 지하 6층, 지상 33층 규모의 새 건물이 지어졌고 2004년부터 SK텔레콤의 본사로 쓰여지고 있다.[29] 회계감사에서 기업내부 통제 시스템과 감독은 철저하게 보아야 한다고 나온다.[30] 당시 가입한 펀드에 SK글로벌 주식이 포함되어 있다면 증권사에서 투자자에게 전화를 걸어 주식팔까요? 말까요? 라고 물어보기까지 했다.[31] 이것은 SK글로벌 분식회계사태와 카드업계의 연체율 상승이 만든 합작품으로 봐야한다.. SK글로벌 분식회계사태로 회사채에 대한 환매가 급증하면서, LG카드의 부실문제(연체율/연체금액의 급등)가 부각되었다. 그 결과는 카드업계의 극한의 카오스... LG카드는 결국 채권단의 손을 거쳐 신한카드가 되고, LG그룹은 금융계열회사의 운영을 포기하게 된다.(이 포기선언은 지주회사 설립 전의 이야기로, 지주회사체제 전환시 금융자회사를 둘 수 없는 현 규정을 볼 때 포기할 명분을 제공하였다.)[32] 참고로 당시 카드업계(전업계 카드사 위주로 설명한다)는 살아남기 위해 국민신용카드,우리신용카드,외환신용카드가 각각 자금여력이 있던 국민은행, 우리은행, 외환은행으로 합병되었고(유상증자와 감자도 있었다), 삼성카드는 삼성캐피탈과 합병 및 유상증자 실시, 현대카드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의 유상증자참여,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던 신한카드(LG카드 합병 이전의 (구)신한카드-조흥은행 카드도 제외)는 지주회사로부터 유상증자, 롯데카드는 대주주 롯데쇼핑으로부터 백화점카드 부문 양도를 받아 살아남았다.[33] 사족으로 SK는 분식회계로 유명한 미국엔론사와 합작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34] 장하성 고려대학교 교수는 이 중 특히 지배구조 개선을 두고 "대한민국 정부가 몇년을 걸려서도 못해낸 일을 소버린이 단 1년만에 해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35] 대신 최태원 회장이 대주주인 SK C&C 가 11%, SK(주) 자사주가 17%.[36] 이 일 때문에 이 사례는 순환출자 등 여러 꼼수 경영기법의 부작용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사례다. 지못미[37] 이 사건은 영화 투 빅 투 페일의 초반부에도 나온다.[38] 카카오게임 시작화면 징글의 목소리가 아이유이며, 카카오의 서비스 광고에도 종종 등장한다. 카카오 본사의 임직원 행사에도 종종 나타나서 우리는 한가족이라며 축가 불러주는일도 많다. [39] GS칼텍스(당시 LG정유)를 92연승에서 제동을 걸어 버린 팀. 한일합섬과 함께 무적함대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장소연, 강혜미가 대표적인 선수.[40] 다만, 이 시기에는 정말로 국가 경제가 많이 어려웠다는 점, 똑같은 인건비로 농구팀이나 배구팀을 해체하는 게 나을지 사무직이나 기술직을 해고하는 게 나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41] SK 나이츠는 사실 청주시의 지원 미비로 인하여 서울이 중립연고에서 해제되자마자 올라갔다.[42] 특히 부천 SK는 아예 팀을 해체하려고 시도하려다 연고지를 이전했다. 자세한 사항은 제주 유나이티드 해당 문서 참조.[43] 정대현, 이영욱(투수), 박정권 등. 정상적이라면 이들은 모두 지명권이 풀려 다시 지명 대상이 되어야 했다.[44]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대한펜싱협회장을 겸임하고 있다.[45] 최종건 창업주, 최종현 선대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 다만 최태원 회장은 어릴 때 서울로 올라왔다.[46] 그래서 도서관 정원에 SK 창업주 고 최종건 회장의 흉상이 있다.[47]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건너편 & KB금융그룹 본사 사옥 바로 옆에 있는 건물[48] 최종건 창업주의 세 아들 중 둘째. 해병대 출신으로 유명하다.[49] 안용태 당시 창단준비팀장이 수원을 연고지로 정하겠다고 그룹 고위층에 얘기했다가 "다른 팀은 다 광역시 연고팀인데 왜 우리만 모양 빠지게 특례시를 연고지로 받느냐"며 된통 깨졌다. 그래서 결국 현대 유니콘스연고지 이전으로 자리가 빈 인천이 연고지로 결정됐다.[50] 수원시에서 박물관 전시를 목적으로 선경합섬 공장 철거시 방적기 기증을 요청하였으나 SK에서 거부했다는 카더라가 있었다.[51] 증권계에서 사용하는 은어였다는 설이 있으나 스크는 프로야구에서 먼저 생겨났다는 설이 정설이다. 반면에 헬지나 헬지전자 등은 증권계에서 먼저 사용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솩'의 경우엔 두산 베어스의 비하성 멸칭인 '돡'을 그대로 김성근 감독 시절 SK 와이번스의 소위 '재미 없는 야구'로 타팀 팬들이 시비를 걸면서 적용해 생겨난 용어다.[52] 전 버전에서는 이를 두고 이상하다고 했지만, 하이네켄이나 LVMH그룹도 이런 옥상옥 구조로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 하이네켄은 하이네켄 홀딩스 1-하이네켄 홀딩스 2-하이네켄 사업회사라는 구조로 지배하고, LVMH는 아르노 가문이 100퍼센트 보유한 그룹 아르노-크리스찬 디올-LVMH로 이어지는 출자고리와 그룹 아르노-LVMH로 바로 이어지는 출자구조로 그룹을 지배하는 식.[53] 이는 SK해운이 일반적인 선박관리회사가 아닌, 선주회사여서 그런 것이다. 2007년부터 가속화된 VLCC 15척, 추가로 발주하는 고가 선박인 LNG 선박 때문에 그런 것이지, 선박의 손익분기인 약 10년을 생각했을 때 모두 상환가능한 금액이라고 볼 수 있다.[54] 참고로 LG유플러스는 본사가 직접 판매, KT는 KT M&S라는 자회사에서 담당. [55] 한국신용평가의 2015년 4월 Rating Report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