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RG(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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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

NRG
엔알지

활동기간

1997년 10월 28일 ~ [4]

데뷔앨범

1997년 정규 1집 New Radiancy Group

소속사

뮤직팩토리[5][6]

팬덤

천재일우

공식색

분홍색[7]

링크

공식팬카페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V Live[8]


1. 소개2. 공연 장면3. 음반 목록4. 활동
4.1. 데뷔 초기
4.1.1. NRG 1, 2집의 불법 샘플링 도용 문제
4.2. 중국 진출4.3. 천명훈이성진의 탈퇴, 부진한 3집 활동4.4. 김환성의 갑작스런 사망4.5. 2001 ~ 2002년4.6. 2003년 이후4.7. 2006년 이후, 공백기4.8. 2010년대 초반 ~ 2016년4.9. 2017년, 컴백과 데뷔 20주년
5. 트리비아6. 관련 링크

1. 소개[편집]

파일:엔알지 티파니에서 아침을 움짤.gif
[9]
원조 한류돌[10]
아이돌계 최고 꽃미남돌[11]
1997년 10월 28일에 데뷔한 남자 아이돌 그룹.[12] 정확히는 1996년 이성진, 천명훈의 듀오로 데뷔한 '하모하모'[13]에 멤버가 추가되면서 이름 역시 교체된 것이다. 소방차의 멤버 정원관김태형이 함께 프로듀싱했다. NRG의 뜻은 'New Radiancy Group' 즉, '새로이 빛나는 그룹'이다.[14] NoRaGo노라조 아니다.

공식 팬클럽의 이름은 '천재일우'[15] 이고, 상징색은 분홍색 , NRG가 쓰인 길다란 분홍색 풍선과 NRG와 千載一遇가 쓰인 분홍색 우비를 응원 물품으로 사용했다.[16][17]

2. 공연 장면[편집]

NRG는 무대에서 활발한 멤버간의 동선 이동[18], 덤블링, 격한 안무, 미소년의 이미지[19], 병맛같은 뮤직비디오 등으로 유명했다.[20][21]


1997년 11월, MBC 생방송 음악 캠프에서 해준 1집 <할 수 있어>의 무대 장면이다. <할 수 있어> 무대 중 그나마 덜 격한 무대다.[22]


그 유명한 1집 <티파니에서 아침을 (Remix)> 라이브 클립. 그리고 격한 안무와 천명훈, 노유민의 짝짝쿵 춤은 덤.[23]


1998년 8월 7일 발표된, 2집 <사랑만들기>의 무대이다. 그치? 맞지? NRG![24] [25][26][27]


1998년 8월 7일 발표된, 2집 후속곡 <Messenger>의 라이브 클립. NRG의 노래 가운데 <Messenger>의 안무가 가장 격하다.[28] 중간 간주 부분에 나오는 공중으로 붕 떴다가 떨어진 뒤 단체로 전갈춤을 추는 장면과 천명훈의 비보잉[29], 활발한 무대 동선 등이 특징이다. NRG는 이 곡으로 중국 진출에 크게 성공하게 된다.


1998년 12월 19일 발표된, MBC 생방송 음악 캠프에서 해준 캐롤 앨범 'Season's Greetings' <우리만의 세상>의 무대 장면이다. NRG 특유의 덤블링은 없지만 여전히 쉴 틈 없는 격한 안무를 볼 수 있다. 귀여운 NRG. 반박자 빠른 문성훈

3. 음반 목록[편집]

자세한 음반 정보는 NRG(아이돌)/음반 목록으로.
굵은 글씨는 타이틀 곡이다.

발매일

앨범명

활동 곡명

1997.11.01

New Radiancy Group

할 수 있어 / 티파니에서 아침을

1998.08.07

Race

사랑만들기 / Messenger

1999.11.06

NRG 003

Face / 너! 나

2001.06.05

悲: Sorrow

비 (悲) / 삶은…계란

2003.02.07

Hit Song

Hit song / 나 어떡해 / 친구

2004.04.30

NR6G

대한건아 만세 / 롤리 박 / 풍수지탄(風樹之嘆)

2005.11.22

One of Five: 따로 또 같이

별책부록

2017.10.28

20세기 Night

20th 세기 Night

2018.01.25

통화중

통화중

4. 활동[편집]

4.1. 데뷔 초기[편집]

1집 앨범의 <할 수 있어>가 2위를 했고, 2집 앨범의 <사랑 만들기>가 40만장이 팔려 1위 후보를 통보받았으나 NRG가 1위 후보로 올랐을 때 하필 IMF가 터져서 음악방송 순위 제도가 사라지는 바람에 1위를 하지 못했다. 이후로 김환성은 항상 소원을 묻는 인터뷰에서 소원이 음악방송 1위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 시점부터 아이돌 방송 복장 규제가 강화되어 김환성은 종종 가발을 쓰고 무대에 오르곤 했다.

데뷔 초(1 ~ 2집)에는 Hi-NRG 장르를 하는 그룹이라고 활동했지만 실제로는 90년대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던 유로비트 장르 음악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유로비트는 하이에너지의 영향을 받은 장르이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두 장르는 별개의 장르다.

NRG는 격한 퍼포먼스와 고난이도 춤을 전 멤버가 소화해서[30] 화제가 되었고 이런 격한 퍼포먼스 덕에 중국에서 컬쳐쇼크 급의 큰 인기를 얻었다.[31]

당시 H.O.T.젝스키스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32] 특히 이성진의 뛰어난 예능감 덕분에 각종 쇼 오락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했다.[33] 쉽게 비유하자면 H.O.T.젝스키스가 1군이라면 NRG는 1.5군인 셈.

4.1.1. NRG 1, 2집의 불법 샘플링 도용 문제[편집]

NRG의 초기 곡들은 외국의 유로비트 장르 곡들을 무단으로 샘플링 또는 도용해서 사용하였다. 원작자와의 합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부클릿에도 원곡 작곡가의 이름은 표기되지 않았다. 대부분 일본에서 96년 ~ 97년 발표된 SUPER EUROBEAT 시리즈에 수록된 곡들이다. 90년대에는 국내에 유로비트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NRG 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도 비슷한 방식으로 표절을 하는 등 표절과 무단 샘플링이 가요계 전반의 악습이었기 때문에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고 NRG 그룹 활동이 종료된 후에야 이런 문제가 알려졌다. 게다가 NRG 초기의 곡들은 NRG 멤버들이 작곡하지 않았으며, 3집부터는 멤버들 스스로 앨범에 참여하는 비중을 높히며 독창적인 스타일의 곡들을 배출했기 때문에 결코 멤버들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멤버들이 참여한 곡도 샘플링한 곡이 많다. 대표적으로 Hit Song.

NRG의 대표곡 중 하나인 <할 수 있어(NRG Version)>는 소리 바다 등의 일부 음원사이트에 원곡인 Domino & Aki의 Hot & Soul이 함께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해당 음원사이트의 자체적인 피드백으로 추정된다. <할 수 있어>를 비롯해 문제가 있는 곡들을 음저협 DB에서 검색하면 작/편곡자가 이용민, 신동관 등으로만 나온다. 훗날 20세기 미소년의 방송 기획으로 리메이크한 핫젝갓알지 버전은 원곡에 쓰인 문제의 무단 샘플링 부분을 그대로 리메이크했음에도 노래방에서 선곡하면 '이용민 작곡'이라고 표기된다. 따라서 해당 방송사와 핫젝갓알지 멤버들도 비판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1집: 1집은 그래도 4곡밖에 안 배꼈으니 양심적(?)이다. <미소>, <진 자의 심판>은 유로비트 스타일이지만 전주까지 오리지널로 만들었으며 당시 한국 댄스 가요 수준을 생각하면 사운드도 준수하다. 그러나 타이틀 곡이었던 <할 수 있어>가 표절곡에 포함되어 있다. [34]

  • 10. <할 수 있어 (NRG Ver.)>: Domino & Aki <Hot & Soul>


2집: 오히려 2집에 표절곡이 더욱 많으며 타이틀 곡이었던 <사랑 만들기> 역시 이에 포함되어 있다.

4.2. 중국 진출[편집]

1998년 한중수교 6주년 기념 축하공연 차 중국을 방문했는 데, 당시의 반응이 상당히 선풍적이었다. NRG의 공연을 본 중국인들은 그들의 퍼포먼스에 놀라워했고[35] [36] , 이에 대응하여 NRG는 1999년부터 중국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대성공. 중화권에서 한류 1세대의 역할은 안재욱 클론[37] , 베이비복스와 NRG가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NRG는 한국 가수 최초로 중국 기업의 CF에 출연했다. 중국에서는 나중에 진출한 H.O.T.보다 더 인기가 많아서 #, 호텔에 레드카펫이 깔리고[38], NRG가 이용하는 호텔 벽에는 NRG 멤버들의 사진이 붙어있었으며 , 호텔 한 층을 전부 비워줬고 , 리무진 차량이 각 멤버의 수 만큼 대기해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정도면 중국에서 국빈(國賓)에 준하는 대우를 받은 셈.

인기만 보면 수익을 억 단위로 쓸어모았을 것 같지만 정작 그렇게까지 큰 수익을 얻지는 못했는데, 당시 계약 구조가 불평등했기 때문에 중국 공연을 하면 공연사가 9 , NRG는 고작 1밖에 못 받는 식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39]

4.3. 천명훈이성진의 탈퇴, 부진한 3집 활동[편집]

1999년 8월말, NRG는 기자회견을 통해 천명훈과 이성진이 탈퇴한다고 발표했다. 기자회견에서 이성진은 "팀 불화가 아닌 명훈이와 저의 자진 탈퇴"라고 진술했고 , 3집은 문성훈, 노유민, 김환성의 3인 체제로 활동하였다. NRG 비주얼 유닛 사실 데뷔 초부터 소속사에서는 형들보다 어린 멤버들 위주로 푸쉬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NRG의 인기를 끌어올린 건 리더 이성진이었고, 결국 3집 앨범은 두 리더의 부재가 음반성적의 부진으로까지 이어졌다.[40][41]

이후 천명훈이 탈퇴의 전말에 관하여 해명했는 데, 2집 <사랑만들기>로 활동하던 당시 무대 의상이 땀복이라 멤버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이성진과 함께 가서 사장님께 의상 교체를 몇 번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에 화난 천명훈은 그 자리에서 고가의 의상을 찢어버렸고, 소속사 사장은 이를 빌미로 이성진과 천명훈을 강퇴시켰다. 기자회견에서는 논란을 방지하고자 '자진탈퇴'로 진술했던 것. 이후로 천명훈은 음악 공부를, 이성진은 Mnet 핫라인스쿨에서 VJ로 활동하기도 했다.[42] 탈퇴했다고는 하지만 그 후로도 김환성이 이성진에게 전화를 시도때도 없이 거는 식으로 멤버들끼리는 여전히 가깝게 지냈다.[43]

4.4. 김환성의 갑작스런 사망[편집]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에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던 그 때, 팀의 막내였던 김환성이 돌연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4.5. 2001 ~ 2002년[편집]

김환성의 사망 이후 탈퇴했던 이성진천명훈이 재합류하여[44] 북경에서 추모콘서트(For Antonio)를 열고 약 1년 간의 공백기를 가진 뒤, 2001년 6월, 타이틀 곡 <비(悲)>를 내세운 4집으로 음반 활동을 재개한다. 김환성을 기억하는 추모 앨범 형식이었으며 타이틀 곡은 강타가 직접 작사, 작곡했다. 이 때부터 천명훈이 작곡한 곡이 들어가면서 NRG의 전체적인 컨셉이 바뀌기 시작한다.[45][46]

이후 NRG의 업적은 이성진이 절반 이상을 쌓아 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는 멤버를 잃고 무너져가는 NRG를 다시 살리기 위해 개인활동을 시작하면서 그간 쌓아 온 미소년 이미지를 과감히 버리고[47] '주접쟁이' 이미지를 선보이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48]

4.6. 2003년 이후[편집]

NRG의 최전성기

데뷔 6~7년 차이던 2003년 2월경, 5집 <Hit Song>[49] 이라는 천명훈 작사•작곡의 타이틀곡[50]으로 활동해서 노래 제목에 걸맞게 가요프로그램에서 데뷔 6(7)년만에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51]

음악캠프의 MC를 맡고 있었기도 했던 이성진은 울먹이면서 수상소감으로 "원래 이 자리에 같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환성이에게 너무 고맙고 이 상을 하늘에 있는 환성이에게 바치겠습니다"라는 말을 해 팬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SBS 인기가요에서는 이성진과 친분이 있었던 강타가 "이성진 씨가 제게 가슴 아픈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게 있다고요. 열심히 하니까 되죠?"라고 말했다. 맴찢

또한 연말 가요대상에서도 본상을 수상했으며, 이때 NRG의 인기는 남성그룹 중에서도 독보적이었다.

2004년에는 <대한건아 만세>라는 곡으로 체감 인기로는 5집에 버금가는 성과를 거둔 편으로, 아테네 올림픽을 겨냥했기 때문인지 이성진문성훈이 올림픽 성화 주자로 뛰었다.

2005년에는 천명훈도 활발하게 예능에서 활동하면서 '부담보이' 이미지도 이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2005년 10월문성훈이 탈퇴하고, 3인조로 7집을 발표하여 <별책부록>이라는 곡으로 활동했으나 5, 6집에 비해서는 신통치 않았다.[52]

4.7. 2006년 이후, 공백기[편집]

2006년 이후로 NRG 그룹 활동은 중단된다. 공식적으로 해체 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NRG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것은 중단되고 각자의 길을 걷는다. 이 시기 개인의 근황에 대해서는 개인 항목을 참고. 가시밭길 주의

이 시기 NRG에 대한 인식은 "개그맨 그룹"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아이돌 이미지를 완전히 버리고 이미지를 망가뜨리며 예능 활동에 집중했기 때문에 NRG가 H.O.T., 젝스키스, 신화, god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아이돌'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53][54] 2010년을 넘어서도 계속되다가 1990년대 중반 ~ 2000년대 중반까지의 가요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2013년이 돼서야 1세대 아이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천명훈20세기 미소년에 출현하면서 비로소 NRG에 대한 인식이 '깨방정 아이돌'로 돌아오게 된다.[55]

사실 천명훈노유민의 군 제대 이후인 2010년도에 컴백할 가능성도 있었으나 이성진이 불미스러운 송사에 휘말리게 되면서 그룹 활동의 휴지기는 본의 아니게 더욱 길어져만 갔고 이후 천명훈노유민만 간간히 방송에 출연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멤버 가운데 한 명이 연예계를 떠나고 활동 당시 가장 인지도가 높았던 멤버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활동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어 나머지 멤버들이 팀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방송 활동을 계속 이어가는 모습은 재결합 이전의 젝스키스의 행보와도 많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4.8. 2010년대 초반 ~ 2016년[편집]

파일:external/upload.enews24.net/92531866.jpg

2016년, 다시 모인 NRG


2014년을 기하여 1세대 아이돌 팀의 잇단 재결합 러쉬 및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히든 싱어 등의 음악 예능을 통한 90년대 가요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NRG 컴백에 대한 궁금증도 커져갔다.

노유민이 "이성진이 대중에게 용서를 받는다면 NRG로 컴백한다."고 밝히고, 문성훈과 오랜만에 만나 사진을 올리는가 하면 천명훈은 인스타그램 프로필을 'NRG singer songwriter'로 바꾼다던가 나 혼자 산다와 플랜맨에서 "재결합 의지가 매우 강하고 만나고 있다."며 기대감을 높였다.

이후 노유민2016년 6월 7일인스타그램에 사진 한장을 올렸는데 바로 NRG의 네 멤버들이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하고 연습실에 모인 사진이었고 사진에는 없지만 NRG의 소속사 뮤직팩토리의 대표인 소방차김태형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당시 H.O.T.이수만과 회동을 가지면서 재결합 여부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데다, 젝스키스YG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하여 이슈가 되었던 시점에 NRG 역시 김태형과 회동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관심을 받은 바 있었는데...[56]

2016년 10월 22일, 문성훈을 제외한 3명의 멤버가 참여한 19주년 팬미팅에서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을 통해 컴백을 공식화하며 20주년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57]

4.9. 2017년, 컴백과 데뷔 20주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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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0주년 기념 컴백 공식 사진

파일:2017 엔알지_20세기 앨범 자켓.jpg

NRG 미니앨범 '20세기' 자켓

데뷔 20주년을 맞이했던 10월 28일, 크레용팝의 '빠빠빠'를 배출한 작곡가 김유민의 프로듀싱으로 제작된 20주년 기념 미니앨범 20th 세기 Night (20세기 나이트)를 발표하였고 이에 발맞춰 당일 쇼케이스를 기점으로 약 2개월 간의 앨범 활동을 벌였다. 아울러 최대 걸림돌이었던 KBS, MBC에서의 이성진의 출연금지[58]도 2017년 11월에 해제되었다.

방송 출연 외에도 V앱을 통한 대기실, 출퇴근길, 그리고 먹방을 로케로 한 생방송을 진행하였다.
V앱을 비롯하여 다양한 노선의 떡밥 양산을 통해 오랜 기간 그룹 활동을 고대했던 팬들의 오랜 기간의 그룹 활동 중단에 대한 아쉬움을 충족시켰고, NRG 멤버 전원이 인스타그램을 개설함으로써 인스타그램 게시물 외에도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물론 시간은 랜덤 심지어 노유민은 그걸로 팬들이랑 같이 라이브 방송 하기도 하였다 특히 노유민은 인스타그램으로 팬들과 소통을 자주 하기 시작하였다. 컴맹이라고 기대 못했던 이성진도, 천명훈도 인스타그램으로 천재일우들에게 자주 고마움을 표하였다. 이를 보면 NRG가 팬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한 셈.

여러 컨텐츠로 진행된 방송과 팬들을 위한 이벤트를 통해 멤버들 간의 케미가 자주 목격되었다. 하모하모라인인 이성진과 천명훈은 투닥거리면서도 그들의 오래된 우애를 보여줬고, 맏형 이성진이 무대와 무대 밖에서 현 막내 노유민을 귀여워 하는 모습이 많이 보여졌다[59]. 천명훈노유민도 서로 잘 지내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무대에서 실수가 없었으며, 프로 아이돌답게 무대를 상당히 즐겼다. 세월도 세월이지만, 무대가 많이 그리웠던지 2018년 1월 13일에 방영된 KBS 불후의 명곡에서 무대가 끝난 후 다같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60] 특히 노유민점수를 떠나서 형들과 함께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감사하다. 라고 말하여 모두를 울컥하게 하였다. 추가로 이 무대에서 마지막 파트에 노유민이성진이 무려 백덤블링을 선사하였다. 그들의 녹슬지 않은 백덤블링[61] 기술을 증명하였으며, 무대는 좋은 호평을 받았다. 불후의 명곡 NRG '통화중' 영상 그리고 방영된 지 약 한 달여 만에 경연곡이었던 '통화중'을 편집해서 음원으로 발매하고 활동까지 했다! 딱히 좋은 일은 아니지만 나름 열심히 활동했으나 방송 중에 무대 실수로 이성진이 갈비뼈를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반전미 또한 많이 발견되어서 팬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성진은 자상한 면을, 천명훈은 예능에서의 모습과 달리 평소에는 시크한 면을, 노유민은 예전보다 어른스러워진 면을 보였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아무말대잔치 팬들 사이에선 환장 아이돌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2018년 3월 6일 비디오스타를 통해 문성훈을 포함한 4명의 완전체로 방송에 출연하였고. 후반부에 완전체로의 선택을 통해 13년만에 합류를 하게 되었다.

5. 트리비아[편집]

  • 데뷔 초 꽃미남, 귀여운 컨셉으로 강한 컨셉이었던 기존 1세대 아이돌과는 차별화를 두었고, H.O.T., 젝스키스 , 그리고 후발주자들인 god, 신화 등 다른 1세대 남성 아이돌 그룹 중 신화 다음으로 오랜 팀 활동을 해온 케이스이며, 데뷔 6년차의 중견그룹이 되어서야 1위를 하는 등 나름 근성있게 활동해온 그룹이다.

  • 서로 감싸주는 아이돌의 우정과 애착 , 헌신같은 진지하고 아름다운 가치와는 오히려 거리가 있는 것이 NRG만의 매력. 서로 디스한다.

  • 멤버 자신들도 자기 그룹의 이름 뜻을 잘 모른다고 한다.한 방송에서 자기 그룹이름은 누룽지나 노른자의 약자일 거라고 말하기도(....) 한 적 있다.

  • god가 데뷔 전 역경이 많았다면 NRG는 데뷔 후에 역경을 많이 겪은 팀이다. 예능에서야 웃기는 얘기로 넘어가지만 사실 굉장히 절박하고 심각한 사건들을 겪어왔다. 어느 프로그램에 가도 '고생'하면 NRG가 압도적이었으며[62] 그러다 보니 NRG는 '비극적인 그룹'과 '예능 그룹'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공존하여 가진 묘한 그룹이 되었다.

  • <할 수 있어>로 활동했던 1997년 S.E.S.와 함께 1위 후보에 오른 주에 IMF가 터지면서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모두 없어지고 아이돌의 복장 규정이 엄격해졌고[63] 인생은 타이밍[64] 신인상을 받고 중국 진출을 성공하나 싶었지만 그나마도 불공정 계약으로 공정한 수익을 받지 못했고[65] 3집에서는 강제 탈퇴하고 앨범 성적은 저조했다. 여기까지는 다른 아이돌들도 겪을 수 있는 일이니 그렇다쳐도 이듬해 막내 김환성이 사망하는 최악의 일이 발생한다. 이에 탈퇴했던 이성진천명훈이 다시 합류하지만 4집도 성적이 신통치 않아 팀은 벼랑 끝에 몰렸고[66] 변변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여느 실패한 아이돌들처럼 힘 없이 사라져버리지 않기 위해[67] 이성진이 예능 프로그램과 시트콤 등에서 필사적으로 활동하면서[68] 근근히 명을 이어오다가 멤버들의 참여도가 가장 높은 5집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그야말로 고생 끝의 보답을 받는다. 하지만 2005년도 이후로는 "NRG가 아이돌이었나?"할 정도로 관심에서 멀어져 예능 그룹으로 평가절하되고[69][70]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이미지가 하락한다. 제대로 아이돌로서 재평가를 받게 된 건 거의 10년이 지난 뒤의 이야기.

  • 말 그대로 환상, 판타지였던 다른 아이돌들에 비해 고생이 많았고 평가절하가 많이 됐다보니 천명훈20세기 미소년에서도 천데렐라 위축된 모습을 보여 팬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실제로도 20세기 미소년다른 멤버 천명훈에게 기죽을 필요가 뭐가 있냐며 격려해 주기도 했다.

  • 데뷔 당시가 아이돌들의 립싱크 논란으로 인한 라이브 붐이 일었던 시기였음에 따라 라이브 무대에서 대부분 립싱크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삑사리도 많이...

  • 멤버들 간의 팀워크가 꽤나 좋은 편이었다. 사실, 멤버 변화 등의 변수를 엄격하게 따지지만 않는다면 공백기는 부득이하게 길었지만 해체를 겪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1세대 아이돌 중에선 신화보다도 최장수 팀이라 할 수 있다.[71]

  • 격한 안무와 함께 무대에서 매우 활발한 멤버간의 위치 이동 또한 볼 수 있다.

  • 그룹의 입지가 H.O.T., 젝스키스, god, 신화에 비해 크게 못 미치는 1.5군의 위치에 서있었던 지라 방송가에서 NRG가 이 팀들과 동등한 1세대 아이돌의 전설로 대우를 받는 데에 대해 거부감을 표하는 이들이 많은 데 그럼에도 NRG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유는 한류 1세대 이미지 + 이성진과 천명훈의 예능 활동을 통한 인지도 공헌 + Hit Song 1위로 요약할 수 있을 듯 하다.

  • 2집 <사랑만들기>로 활동하던 1998년, 추석특집 예능프로그램에 단체로 출연하여 노유민요요 묘기, NRG 특유의 덤블링과 무려 불타는 링 넘기 묘기를 보여주었다. [72]

  • NRG 하면 덤블링이라는 이미지는 상당히 강해서, NRG 활동 당시였던 1998년에 출간된 만화 플라이 하이에서는 체조부 신입부원들이 물구나무 서기 연습을 하는 곳에서 상급생인 사나다 토시히코가 덤블링을 하며 잘난체를 하자 신입생들을 봐주던 역시 상급생인 우치다 미노루가 "지가 무슨 NRG라고..."라며 마뜩찮아 하는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원문 역시 아마도 아이돌을 예[73]로 들었을 것이므로 적절한 번역일텐데, 어쨌든 당시의 NRG에 대한 이미지(일반 만화에까지 인용될 정도)를 알 수 있는 부분일 듯.

  • NRG가 1위를 차지했던 5집 당시보다 IMF였음에도 무려 40만장이 팔린 1집 활동 당시를 리즈 시절로 회자하는 이들도 많다. 즉, 1집 시절이 제 1의 전성기라면 5집은 제 2의 전성기라는 것.

  • 멤버 전원이 역변했다(...)

  • 2집 타이틀곡 <사랑 만들기> 컨셉이 유니섹스였다. 따지면 원조 유니섹스 컨셉을 한 그룹.

  • 당시 아이돌 그룹 중 특이하게 그룹 명 사이에 점을 찍는 것에 민감하지 않은 그룹이다. 음원, 음반에는 N.R.G , 그 외에는 NRG라고 적는다. 혹은 누룽지 노른자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 멤버들 모두 여동생이 없다.[76]

  • 노유민이 예능에 출연하여, 과거 NRG 시절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을 때는 한달에 1억 5천만원을 벌었다고 말해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천명훈이 그 말은 방송의 재미를 위해 과장된 것이라고 밝혔다.출처(원문: -노유민씨 얘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얼마전 한 방송에서 'NRG 시절 한달에 1억5000만원씩 벌었다'고 밝혀 화제가 됐어요. // 명훈:"유민이 때문에 자꾸 오해를 듣게 돼 죽겠어요. 당시 사장님이 유민이만 따로 챙겨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그렇게 받아본 적이 없어요. 종종 한번씩 큰 돈을 받기도 했고 철없이 펑펑 쓰기도 했지만 유민이 말처럼 그렇게 벌진 못했어요. 방송의 재미 때문에 종종 말을 부풀리는 경우가 있는데 못하게 말려야돼요.")

6. 관련 링크[편집]

[1] 긴 앞머리를 넘기기 위해 스타일리스트가 특수 제작한 하얀 머리띠를 쓰고 다녔다. 그냥 하얀 철사 두개 꼬았다. 덕분에 머리띠가 잘 어울리는 남자 아이돌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 머리띠를 본 한 사람은 '머리띠를 벗는 순간 앞머리가 확 벗겨져 비명을 지를법한 머리띠.'라고 표현했다.[2] 2집 <사랑만들기> 활동 당시. 참고로 이때 천명훈은 앞머리를 넘기기 위해 테를 착용했는데 녹이 슬었고(...) 은으로 바꿨더니 이번엔 은이 시커멓게 변했다고(...). 당시 컨셉이 세일러문이었다고 한다.[3] 데뷔 20주년 컴백을 앞두고 새로이 공개된 자켓 사진.[4] 공식적으로 해체하지 않았다.[5] 직속 후배로는 세이예스가 있다.[6] 여담으로 게임빌사의 모바일 게임과 이름이 같다.[7] 후에 천상지희 The Grace의 공식색도 분홍색으로 정해지자 논란이 일어났다.[8] 2017년 10월 17일에 개설되었다.[9] 참고로 이 움짤은 1집 <티파니에서 아침을> 리믹스 버전의 엔딩 포즈이다.[10] 이때 시점으로 가요계에서도 해외진출 시스템이 시작되었다.즉, NRG는 최초로 한류계 대표스타로 나간것이다. H.O.T.,젝스키스한테 밀려서 은근 슬쩍 해외진출해 인기 얻었다고 하드라.[11] 초반때는 따로 비주얼담당이 없을정도로 모든 멤버가 미소년이었다. 지금은 부담보이,주접이,노사장 다 아저씨들 뿐..[12] 당시 독보적인 인기를 누렸던 H.O.T.를 견제하기 위해 결성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H.O.T.젝스키스와 경쟁하게 되고 NRG는 태사자, 클릭비, OPPA와 경쟁하게 된다.[13] 하모하모는 부산사투리로 "그래, 그래"라는 뜻이라고 방송에서 직접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나무위키에서도 이 단어로 검색하면 이 문서로 리다이렉트된다. 사실, 이성진천명훈이 늘상 방송에서 하모하모의 반응이 신통치 않아서 NRG로 리데뷔한 것이라 자폭하곤 했지만 활동 당시 2~30위권안에 머물곶 했으며 팬층도 어느 정도 존재했다. 실제로 하모하모의 노래를 접한 이들은 '망한 것치곤 노래가 너무 좋은데?'라는 반응을 보인다.[14] 사실 하이에너지를 뜻하는 Hi-NRG에 끼워맞춘 이름이다.[15] 한자로 千載一遇 , '천 년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깊은 인연'을 의미한다. 4집 수록곡 중 천명훈이 작곡한 <천재일우>는 팬들에게 보내는 노래.[16] 원래는 일반 분홍 풍선을 사용한 뒤 이후 긴 막대 형태의 분홍 풍선을 사용하게 된다. 그 뒤로 5집부터 다시 NRG의 로고가 쓰여있는 일반 분홍 풍선으로 교체하였다.[17] NRG 막대 풍선NRG 풍선NRG 티셔츠NRG 우비 #1NRG 우비 #2NRG 우비 #3[18] NRG의 무대영상을 보면 동선 이동을 할 때 멤버들이 무대에서 뛰어다닌다(...).[19] 당시 큰 인기를 끌던 H.O.T.젝스키스의 경우 강한 남자 컨셉을 밀고 나갔기 때문에 다른 그룹들도 인기를 얻고자 강한 컨셉으로 나와서 NRG의 미소년 이미지는 가히 이례적이었다.[20] 실제로 <할 수 있어>, <사랑 만들기>의 뮤직 비디오를 보면 가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말며 노래를 부르거나(...) 뒷배경에 웬 뜬금없는 비행선이 날아다니고(...) 멤버들이 노래에 맞춰 안무를 추는데 몸이 번쩍번쩍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할 수 있어> MV <사랑 만들기> MV[21] 다만, 2집 <Messenger>와 5집 <용서> , <하루> 뮤직비디오는 나름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Messenger>는 두 가지 버전으로 나왔고, <용서>와 <하루>는 당시 이성진이 출연한 영화 '건달과 계란'이라는 영화를 요약하여 하나로 이어지는 스토리이다.[22] 안무가 매우 격하다. 언뜻 보면 쉬워 보이지만, 일단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하고 중간 간주 부분과 끝에 있는 덤블링이 압권. 실제 20세기 미소년에서 춤 실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럽던 문희준이 "이게 뭐가 어렵냐"면서 춤을 췄지만, 결국 쉴 틈이 없다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은지원은 젝스키스 활동 당시 다른 그룹은 다 한번쯤 들어가고 싶었지만 NRG는 덤블링 때문에 너무 힘들 것 같아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의 덤블링은 실제로 당시의 은퇴한 국가대표 체조 선수에게 배웠다고 한다. 당시 음악 프로그램 무대는 급하게 만들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라 덤블링을 하다가 손에 못이 박히기도 했었다고 한다. 실제로, 춤이 격하고 중간의 덤블링 때문에 라이브할 때는 핸드 마이크를 놓치거나 밟아서 망가뜨리는 실수도 자주 했다. 실제 천명훈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데뷔 무대에서 마이크를 놓쳐 잡으려고 했으며 다행히도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 바람에 나중엔 음악방송 관계자들이 NRG에게 좋은 마이크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로 가장 많이 망가뜨린 멤버는 노유민이었다.[23] 1집 활동 당시 원곡 버전보다는 리믹스 버전으로 더 많이 활동했는데 이 리믹스 버전은 후에 2집에 수록되었다.[24] <사랑 만들기>에 나온 그치? 맞지? NRG!라는 가사는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유명한 가사다.[25] NRG의 특징인 덤블링이 여전한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할 수 있어> 때처럼 모든 무대에서 덤블링을 하지는 않았다. 중간의 문성훈 , 김환성의 쌍둥이 춤은 덤.[26] 이건 아예 리믹스 버전으로만 활동했다.[27] 보면 알겠지만 무대 의상이 땀복이다... 잘 빨지도 않아서 멤버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였고 천명훈은 의상 교체를 요구하다가, 횟김에 옷을 찟어버렸고, 결국 강제탈퇴(...)당한다.[28] 아이돌의 립싱크 문제가 제기되던 시기여서 NRG는 대부분을 라이브로 했다. 저런 안무에 라이브라니...[29] 당시 천명훈은 비보잉 유망주였다.[30] 기본적으로 온 몸을 쓰는 춤이 쉴 틈 없이 이어진다. <할 수 있어> 간주에는 그 악명 높은 트레이드 마크, 전원 백덤블링이 있고, <Messenger>의 안무는 공중에 붕 떠서 떨어지거나 전갈춤과 윈드밀이 있는 등 몸을 확 던지듯이 거칠다. (여기서 말하는 던지듯이는 그만큼 격하다는게 아니라 진짜 말그대로 몸을 던진다;;;) 애초에 천명훈은 당시 비보잉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었다.[31] 당시 춤으로 아이돌 중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었던 문희준이 NRG의 1집 타이틀 곡인 <할 수 있어>를 봤는데 일단 노유민의 비주얼에 한 번 놀라고 전 멤버가 덤블링을 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은지원은 다른 그룹에 들어간다 해도 백덤블링 때문에 NRG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고.(...)(실제로 지금도 단체로 덤블링을 하는 그룹은 없다;;; 굳이 꼽아봤자 갓세븐 정도?)[32] 다만, 중국에서는 H.O.T., 젝스키스보다 인기가 많았다.[33] 현재는 천명훈이 예능 위주로 활동하고 있지만 의외로 그 당시땐 꽤나 조용했는 데 과묵한 미소년 이미지를 통한 신비주의 컨셉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인 듯 하다. (실제 이런 이미지 덕분에 당시 천명훈의 별명은 '카리스마 천' , '천장군'이었다) 하지만 적자엔 못 버텼다. NRG가 나왔던 예능을 봐도 알 수 있지만 다른 멤버들은 말수가 적었던 거에 비해 유독 이성진만 굉장히 시끄러웠다(...).[34] 여담으로, 원래 타이틀 곡으로 선정되었던 <와>가 R.ef의 노래와 닮았다며 표절 시비가 붙어 앨범 발매 직전 <와>를 앨범에서 제외시키고 <할 수 있어>를 실었다. 후에 <와>를 다시 녹음해서 이벤트성으로 공개했는데 이는 故김환성이 생전 마지막으로 녹음한 곡이 되었다. 와 - NRG[35] 당시 선보인 곡이 2집 후속곡 <Messenger>였는데, 랩과 비트가 상당히 강한 곡이었고 퍼포먼스도 곡에 맞게 매우 강렬했다. 곡이 끝나고 마지막 동작으로 붕 떴다 옆으로 누워 착지했는데, 3초 간 조용하더니 다음 순간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고 한다. 정적이 흐르던 3초 동안 이성진은 '망했어요 끝났다, 이게 무슨 망신이냐' 생각했다고.[36] 그런데 <Messenger>의 실제 안무는 이 설명과 조금 다르다. 붕 떴다가 옆으로 누워 착지하는 동작은 곡이 끝날 때가 아니라 간주 때 나온다. NRG - 한중 우호 방송 문화교류 공연[37] 단, 클론은 NRG와 반대로 중화인민공화국보다는 중화민국 중심으로 인기몰이를 한 편.[38] 이 때 레드카펫을 처음 본 멤버들은 자기들 것이 아닌 줄 알고 당황해서 레드카펫을 밟지 않고 옆문으로 기어들어갔다고 한다. 하도 인상깊었는지 중국 진출에 대해 물으면 다들 이때 경험을 이야기한다.[39] 실제로 천명훈이 작곡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NRG 활동으로 돈을 벌지 못하자 작곡으로 돈을 벌자는 마음에서 였다고.[40] 당장 메인보컬인 이성진이 떠났고, 천명훈 역시 나머지 고음을 김환성과 분담했던 멤버였다. 이 둘이 동시에 탈퇴하였으니... 문성훈은 랩 전담이고 노유민은 랩, 노래 모두 참여는 했지만 비주얼 담당 측면이 강했기에... 보컬 셋 중에 라이브도 제일 불안했던 김환성 혼자 남았고 김환성 혼자 짊어지기엔 부담이 컸으니 어떻게 보면 예견된 일.[41] 실제로 이성진 탈퇴 당시 팬들 사이에선 메인보컬을 누가 할 것이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결국 메인보컬은 김환성이 맡았다. 그리고 망했어요.[42] 이 프로그램에 003이 출연하기도 했는데 서로 모르는 척 장난치다가 003이 "아빠 앞에서 재롱떠는 건데요."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43] 김환성이 하도 전화를 많이 걸어서 나중에는 이성진에게 전화가 오면 천명훈이 "또 환성이야?"라고 물어볼 정도였다고..[44] 이후 탈퇴 선언이 자신들의 생각이 아니었다고 밝혔다.[45] 이 때문인지 사람들 사이에서 NRG는 미소년 그룹의 이미지와 웃긴 그룹의 이미지가 합쳐져 있는 묘한 그룹으로 인식되기도 한다.[46] 후속곡이 천명훈이 만든 <삶은... 계란>이었는데 저작권료가 8만원(...) 들어왔다고.[47] 사석에서와 이미지 차이가 굉장히 컸다고 한다. 사석에서는 큰 형답게 점잖고 조용했지만 카메라가 도는 순간 주접... 그래서인지 5집이 크게 성공하고 나서부터는 원래 성격대로 주접을 최대한 자제하기도 했다.[48] 모 방송에서 자신을 하이에나라고 표현했는데 다른 연예인들이 펑크낸 방송을 다 주워먹고 다녀서. 이때도 NRG는 유난히 고생하고 구박받는 신데렐라 이미지가 강했다.[49] 사실 이 곡은 Boney M.의 Happy Song이라는 노래를 샘플링했다.[50] 당시 인기 개그맨이었던 정종철이정수가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51] 여담으로 이 당시에 이성진천명훈의 통장을 슬쩍 봤는데 <Hit Song> 저작권료가 억단위로 들어왔다고 한다.[52] 정확히는 활발했던 예능 활동에 비해 음악적인 실적의 갭이 매우 컸던 것.[53] 이 시기가 하필 예능 프로그램의 가학성과 자극성, 외모비하가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는 것도 이미지 악화를 가속시킨 원인이었다.[54] 사실 2000년경까지만 해도 NRG는 아이돌 이미지가 강했지만 2001년 이성진이 주접쟁이로 인기를 얻고, 2003년 5집 히트송부터 발랄한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개그맨 그룹 이미지가 굳어져버렸다.[55] 방송에서 틀어주는 영상을 통해서만 과거를 알 수 있었던 예전과는 달리 유튜브나 방송사 아카이브 VOD를 통해서 개인이 얼마든지 NRG의 아이돌 시절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한 몫 했다.[56] 젝스키스를 따라한다는 비난 여론이 많았지만, 천명훈에 따르면 NRG의 컴백은 젝스키스의 컴백 이전부터 계획되었다고 한다.[57] 이후 당초 2월로 예정되어 있던 컴백은 2017년으로 미뤄졌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후술.[58] 천명훈이 과거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 때, NRG를 언급하면서 5인 단체 사진을 들고 나왔는데, 이성진은 이 출연금지 처분 때문에 이 사진에서조차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 (...) 되었다.[59] 이 라인은 노유민의 과거 본명인 갑성 + 성진을 합쳐 '갑성진'이라고 불린다. [60] 방송에선 편집되었지만, 녹화날 현장에서 NRG와 팬들이 많은 눈물을 흘렸고, 오열한 팬도 있었다.[61] 무대 끝나고 썰을 풀었는데, 연습 때 노유민이 백덤블링 연습을 하다가 팔을 휘둘렀는데 허리춤을 잡아주고 있던 이명호 유도선수가 얼굴에 팔을 정통으로 맞아서(...) 코피가 터졌다고 했다. 그것도 쌍코피(...) 이명호 선수는 난생 처음으로 코피가 터졌다고... 얼마나 크게 맞았는지 영상에서 엄청난 소리가.[62] 한 방송에서는 '방송을 때려치고 싶었을 것 같은 사람'으로 이미지 투표를 하자 아주 당연하다는 듯 NRG가 선정되었고 MC들은 생각만해도 눈물이 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63] 실제로 당시 활동 사진을 보면 몇몇 무대에서 김환성이 가발을 착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64] 이 때 교통사고를 겪기도 하고 덤블링을 하다가 손에 못이 박히거나 왼쪽 손목이 부러지고 척추를 다치기도 했다. <할 수 있어> 활동 중반부 영상에서 이성진을 보면 안무에서 왼손을 쓰지 못하는데 부러졌기 때문.[65] 당시 계약이 무대 수익금 중 9가 공연 관계자 , 1을 NRG가 갖는 식이었다고. 심지어 그 1마저도 소속사와 다섯 명이서 나눠 가져야 했다.[66] 사실 추모 앨범이라 대중적인 성공을 바라볼 수 있는 앨범은 아니었다. 다만 다시 돌아왔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데 의의가 있다.[67] 현재 1세대 남성 아이돌 중에서 지금까지 이름이 남겨진 그룹은 거의 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1군들이다. 1.5군 중에는 NRG 외에 클릭비, 더 깊게 가면 태사자OPPA 외에는 없다시피 하다.[68] 김환성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1년 반만에 NRG가 예능 이미지를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멤버의 죽음으로 인한 비극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예능 위주로 활발하게 활동했기 때문. 비극 이미지를 씻어내지 못했다면 무슨 활동을 하고 어떤 노래를 내도 우울하고 애잔한 동정받는 그룹이 되어 도리어 장기적인 활동의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완전히 유쾌한 그룹으로 선회한 것이 승부수가 된 것. 어찌보면 현재의 레이디스 코드의 과제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레이디스 코드의 경우 멤버들이 본인 입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속사인 폴라리스엔터테인먼트리세은비 사후 사실상 레이디스 코드를 토사구팽했는지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없어졌으며 치유 3부작 또한 새로운 앨범 없이 데뷔 5주년 기념 V LIVE <CODE#R3BORN>으로 초라하게 마무리된 상태다. 그나마 2018년 하반기에 레이디스 코드의 컴백이 예정되어 있다.[69] 지금이야 '자체 프로듀스가 가능한 아이돌'하면 그것 자체가 엄청난 우상이 되지만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NRG는 멤버 모두가 자체 프로듀스 능력이 뛰어났음에도 이상할 정도로 별로 부각되지 못했다. 천명훈이 작곡 능력으로 주목받게 된 것도 2013년 이후의 이야기. 심지어 천명훈이성진자신이 NRG에서 탈퇴했던 NRG 3집에도 수록곡을 작곡해 주었다.[70] 게다가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봐도 '지금 데뷔하면 흥할 것 같은 그룹'에 NRG가 항상 랭크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래서 소속사를 잘 만나야 한다.[71] 신화와는 데뷔일의 간극이 불과 5개월이다. (NRG-19971028, 신화-19980324)[72] 당시에는 별 논란이 되지 않았으나 현재에 들어서 조금씩 논란이 되고 있다. 영상에서 보듯이 멤버들은 눈치를 보며 사장님이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라 말하고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다. 심지어 김환성은 첫번째로 뛰어넘었는데 링에 걸려서 다섯번째에 다시 넘기도 했다.[73] 당시 일본의 남성 아이돌의 대세였던 쟈니스 사무소 소속 가수들 상당수가 덤블링이 가능했다. TOKIO 같은 경우 NRG와 마찬가지로 멤버 전원 백덤블링이 가능[74] 신화는 NRG가 2집 활동을 할 때 데뷔했다. 당시 신화랑 NRG는 숙소 생활을 했었는데 서로의 숙소가 가까워서 신화가 NRG 멤버들이 스케쥴을 나가 숙소에 없으면 NRG 숙소에 잠입(...)하여 먹을 거와 모자, 악세서리를 훔쳐갔고 NRG는 신화가 숙소에 없으면 신화 숙소를 털어갔다고(...).[75] 실제로도 NRG 앨범 Thanks To에 신화 멤버들의 이름이 들어가 있으며 당시 신화 앨범 Thanks To에도 NRG 멤버들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후에 김환성 추모식에도 신화 멤버들이 참석했었다.[76] 여자 형제가 있지만 장남 겸 막내이거나 , 아니면 2남 1녀 중 막내이며 , 아예 3남 중 둘째인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