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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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초기형 MSX SPC-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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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XturboR 파나소닉/마츠시타 FS-A1GT. MSX 규격의 최종테크이다.

1. 개요2. 설명3. MSX 규격의 변천
3.1. MSX(1983)3.2. MSX2(1985)3.3. MSX2+(1988)3.4. MSXturboR(1990)
4. MSX의 원형5. 대한민국에서의 MSX
5.1. 하드웨어5.2. 소프트웨어5.3. 출판물5.4. 국내에서 생산된 MSX
6. 현재의 MSX7. 게임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1983년 6월 27일 일본의 아스키(現 아스키 미디어 웍스, 카도카와 그룹 자회사)에서 발표한 8비트 개인용 컴퓨터의 규격. 아스키에서는 규격의 상세 스펙만을 제정하고 실제로 완제품을 생산하지는 않았으며 일종의 오픈 아키텍처 형태로 참여를 원하는 제조 기업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도록 하였던 것이 특징이다. 자사가 완제품을 만들면서 규격을 공개한 IBM PC 호환기종보다는 3DO처럼 규격만 제시한 경우와 유사한 케이스. 사실 이런 케이스의 원조에 가깝다. 일반적으로는 '아스키와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제안 규격'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아스키의 독자규격에 가까우며 사실 여기에는 약간의 뒷사정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

2. 설명[편집]

Machines with Software eXchangeability[1][2]의 약자로서, 일본의 아스키(현 아스키 미디어 웍스)와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공동으로 창안한 8비트 컴퓨터의 규격이지만 미국에서는 만드는 회사가 거의 없었고, 일본, 한국 (대우전자, 삼성전자, LG전자), 네덜란드 (필립스)에서 주로 생산되었다. NEC, 샤프, 후지쯔 등 기존에 독자 규격의 컴퓨터를 제작하고 있던 기업들에서는 참여에 소극적이었던 반면, 소니, 파나소닉, JVC 등 일본의 가전제품 회사들에 있어서는 가정용 컴퓨터 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역할을 했으므로 주로 가전회사들이 이쪽 규격의 컴퓨터를 만들었다.

MSX와 같은 '표준 규격'의 등장에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오늘날에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는 IBM PC에서 발전해온 소위 윈텔 규격의 컴퓨터가, 모바일 시장에서는 안드로이드가 일종의 표준 규격의 역할을 하고 있으나 당시에는 업체별, 기종별로 다양한 하드웨어가 난립하였고 제조사가 다르면 소프트웨어의 호환성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현재도 윈도 PC와 매킨토시, 아이패드안드로이드 태블릿 간에는 호환성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인데, 그런 상황이 수십 배(...)쯤 심각했다고 보면 된다. 이게 일본만 그랬던 게 아니라 PC 시장의 본산지였던 미국도 마찬가지라서 애플 II, 라디오샤크 TRS-80, 코모도어64, 아타리 800 등 수많은 PC들이 군웅할거 했으며 이들 역시 일본에서처럼 서로 소프트웨어가 호환되지 않았다. 심하면 같은 회사의 하드웨어끼리도 호환성이 없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을 정도[3][4]라서 소프트웨어 제작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저 수많은 기종에 맞춰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해야 했으니 지옥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이 시절엔 어셈블리어 크리... 이런 환경 가운데 아스키가 제창한 "제조사가 달라도 MSX 규격이라면 소프트웨어는 모두 호환된다!"라는 통일규격 제안은 상당히 새롭고 긍정적인 것이었다.

실질적인 규격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니시 카즈히코. 아스키의 창립멤버이자 당시 일본 마이크로소프트의 대주주이기도 했다. 한 때 일본의 빌게이츠라 불렸으며 손정의(손 마사요시) 현 소프트뱅크 회장과 라이벌이었던 인물이지만 현재는 쫄닥 망해서 존재감이 별로 없어졌다. 사업 실패 후에는 모 학원의 이사장을 역임한 적도 있고 모 대학 총장에 출마하여 교육자의 길을 걸으려 했으나 낙선한 바도 있다.

그가 MSX를 만든 이유는 소프트뱅크손정의와의 라이벌 의식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당시 일본 PC 업계에서는 하드웨어는 NEC, 샤프, 후지쯔의 3강[5]이, 소프트웨어의 유통은 소프트뱅크에서 거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PC 사업에 발을 들여놓아 첨단기술회사 이미지[6]을 갖고 싶어 하던 파나소닉, 소니와 같은 일본의 기존 가전사들에서는 하드웨어 설계능력이 모자랐고, 무엇보다 빈약한 소프트웨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나마 소니에서는 1983년 발표한 SMC-777이라는 독자 규격의 PC를 내놓은 적이 있으나 선발업체에 비해 극심한 소프트웨어 부족 때문에 사실상 망했어요가 된 상태였다. 이런 시장상황에서 소프트뱅크와 라이벌 의식을 가진 아스키에서는 위 가전사들을 끌어들여 기존 PC시장의 기득권을 깨려고 한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실제적으로 규격 제정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지는 않았고 BASIC, MSX-DOS 등의 소프트웨어만을 제공했으며 실질적인 규격은 아스키, 정확히는 니시 카즈히코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애초에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에 전념하여야 한다는 방침이어서 그다지 MSX 규격에 대해 탐탁찮아 했던 것을 니시 카즈히코가 설득해서 승인받았다고도 한다. 참고로 MSX 규격은 니시의 오리지널 설계는 아닌데, 이에 대한 설명은 후술하도록 한다.

또한 니시 카즈히코는 주식회사 아스키를 통해 MSX 매거진이라는 잡지 또한 창간해서 MSX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판매를 증대시키고자 했다.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노린 셈인데 이 잡지 또한 대히트하여 일본의 서브컬처에 큰 영향을 주었다.

PC 시장의 본산이었던 미국을 위시한 북미지역에서의 MSX의 위상은 그냥 망했어요 수준이지만 의외로 남미나 유럽 등지에서는 MSX가 대히트하여 아직도 브라질, 네덜란드 등의 국가에서 MSX 팬덤의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현재도 이들 국가에서는 MSX 관련 행사가 열리고 있다.[7][8]

특히 코나미에서 MSX 기종으로 그라디우스 시리즈, 메탈기어, 불새, 격돌 페넌트레이스와 같은 많은 명작 게임을 내놓아 MSX 유저들에게 그 당시의 코나미는 현재 PC 게임계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와 비슷한 위치로 인식되었다.[9] 이 시절의 코나미는 그야말로 다른 회사와는 넘사벽이어서 스페이스 맨보우메탈기어 2 솔리드 스네이크 등의 말년작 쯤 가면 MSX로 이런 걸 할 수 있나 싶은 수준의 연출을 보여준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는 게임의 용량이 점차 커지면서 롬팩이 아닌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하는 게임들이 비중을 많이 차지하기 시작했고, 이 시기부터 이스 시리즈 등 PC-8801의 게임들의 이식이 많이 되기 시작했다. 상당수가 MSX2보다 발색수가 낮은 8801판 그래픽을 그대로 때려 박아서 MSX2의 그래픽 성능을 잘 살리지 못했지만, 이스 시리즈나 영웅전설1 등 몇몇 작품은 MSX2에 맞게 그래픽을 갈아엎어 초월이식의 경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3. MSX 규격의 변천[편집]

3.1. MSX(1983)[편집]

최초의 MSX 규격이다. 그냥 MSX라고 하면 원래 이 초대규격을 가리키지만 MSX 시리즈 전체를 가리키기도 하므로 후대의 규격들과의 구분을 위해서 MSX1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MSX 규격은 8비트 중에서도 그래픽 성능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그것은 MSX2 이후의 이야기로, 당초 MSX 규격은 커스텀 부품을 최소화하고 당시에 일반화된 상용부품들을 끌어모아 낮은 가격으로 홈컴퓨터를 구축하는데 역점을 두었기 때문에 그래픽 성능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대신 가격은 평균 3만엔대 정도로 상당히 저렴했던 편. 애초에 타겟으로 삼은 가격이 3만엔 대였다고 한다.

이를 위해 CPU는 가장 보편적이었던 자일로그 Z80A, 사운드는 제네럴 인스트루먼트 AY-3-8910, 그래픽(VDP)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TMS9918을 사용하였는데, 이 조합은 당시에 그렇게 드문 조합이 아니었던지 세가의 게임기인 SG-1000이 이와 비슷한 조합을 가지고 있으며 MSX보다 1년 먼저 등장한 콜레코비전이나 Sord M5[10] 역시 유사한 조합을 가지고 있다.

규격에 외부에 확장슬롯을 갖출 것을 명시하고 있는데, 확장슬롯은 외부장비 연결에 사용하기 위한 것이나[11] 게임팩을 꽂는 용도로도 쓸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그리고 그 용도로 더 많이 쓰였다!). MSX가 게임기와 컴퓨터의 중간적인 물건이라는 평가를 종종 듣는 이유일지도. 그리고 당시 컴퓨터들 중에서는 드물게 하드웨어적으로 스프라이트를 처리할 수 있었는데 덕분에 MSX 게임들은 동시대의 경쟁기종들에 비해서 동적인 장르, 즉 슈팅, 액션 등이 강세를 보이는 편이었다.[12] 스프라이트는 당시에는 아케이드 머신, 혹은 패미컴 같은 게임기에나 들어가는 기능이었고 게임지향적인 기능이라 생각했는지 컴퓨터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 편인 기능이었다. 미국에서는 아타리 800과 코모도어 64 같은 시스템에 들어간 바가 있는데 이들 역시 MSX와 마찬가지로 게임 지향의 홈 컴퓨터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참여 업체 중에는 원래 컴퓨터에 관심이 있었던 히타치, 도시바, 미쓰비시라던가 새롭게 홈컴퓨터 시장에 진출하려는 파나소닉, 소니, 산요는 물론 카시오(공학용 계산기 만드는 그 카시오 맞다), 캐논(DSLR 업계 킹왕짱인 그 회사 맞다), 야마하(악기와 바이크로 유명한 그 야마하다), 파이오니어, JVC 등 지금 생각하면 좀 '응?'스러운 업체들도 있는데, 이들 중에서 파이오니어는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를 MSX용 디바이스로 쓸 수 있게 만든 대인배스러운 물건을 내놓기도 했다.(...) 이것으로 나온 작품이 아는 사람은 아는 '스타 파이터'와 '인터스텔라'. LD 영상으로 뿌려지는 당시로서는 호화로운 프리렌더 CG 배경에 오버랩 되는 빈약한 MSX 화면 사이의 시각적 괴리가 장난 아니다(...). 스타 파이터 플레이 영상, 인터스텔라 플레이 영상. 또한 야마하는 전자악기의 콘트롤러로 MSX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I/F카드들을 만들어서[13] 아예 콘셉트 자체를 뮤직 컴퓨터로 했다. 기존의 시장지배자였던 NEC, 샤프, 후지쯔 정도를 제외하면 그 시절 좀 이름 있는 일본 전자회사는 거의 모두 MSX 규격에 뛰어들었다고 보아도 좋았을 정도.

  • CPU: Zilog Z80A 상당품[14]@3.58MHz

  • VDP: Texas Instruments TMS9918 상당품.[15]

  • 사운드: Gereral Instruments AY-3-8910 3채널

  • 메모리: Main 8~64KB, VRAM 16KB

  • 해상도/발색: 40×24 텍스트, 256×192/16컬러. 다만 그래픽 방식은 비트맵이 아닌 PCG이다.[16]

  • 확장슬롯: 최소 1개

3.2. MSX2(1985)[편집]

저렴한 가격과 적당히 괜찮은 성능, 다양한 소프트웨어 등으로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MSX였으나 가격을 억제하기 위해 성능을 많이 제한하였으므로 이런저런 불만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우선 메모리가 최소 8KB라는 점은 메모리가 비쌌던 83년 당시에는 가격 억제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사양이었으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불편한 점이 많았고, 해상도 역시 모자라다. 특히 일본에서는 한자로 가로 40 컬럼의 표현이 가능한 워드프로세서에 대한 수요가 있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동시대의 PC-8801 등이 갖추고 있던 640×200 정도의 해상도가 요구되었다.

이에 따라 메모리와 비디오 메모리를 최소 64KB로 규정하고 512×212의 비트맵 그래픽스를 채용한 신규격이 1985년에 등장했는데 이것이 바로 MSX2. MSX2 규격의 발표에 따라 MSX는 저렴한 게임 위주의 홈컴퓨터 이미지를 벗어나 동시대의 경쟁기종들에 뒤지지 않는 스펙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가 MSX의 절정기로 'MSX는 그래픽이 강하다'는 이미지가 생겨난 것도 이 MSX2 덕분이다. 동시대의 경쟁기인 PC-8801mkIISR이나 X1Turbo 등과 비교할 때 MSX2의 그래픽 성능이 우수하기 때문. 특히 컬러 표현이 512 팔레트/16색, 혹은 256색 고정 팔레트로 동시대 기종 사이에서는 매우 앞서가는 편이었다.[17] 일본 내에서 발매된 8비트 기종 가운데 MSX2보다 그래픽 성능이 뛰어나는 기종은 후지쯔의 8비트 끝판왕 FM77AV 정도 밖에 없다.

MSX2의 VDP인 V9938은 원본인 TMS9918에 비해 게임에 관련된 기능도 강화되어 있는데 특히 약간은 빈약했던 스프라이트 기능이 대폭 강화되어 패미콤 등의 게임전용기에 뒤지지 않게 되었고, 세로방향만이기는 하지만 하드웨어 스크롤 기능도 갖추고 있다. 덕분에 MSX2용으로 등장한 슈팅이나 액션게임들은 대개가 세로 스크롤(종 스크롤) 타입이고, 가로 스크롤(횡 스크롤) 타입은 드물다. 하드웨어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는 가로 스크롤은 소프트웨어적으로 구현해야 하는데,[18] MSX2의 비트맵 그래픽은 MSX1의 PCG 그래픽에 비해 처리량이 엄청나게 늘었기 때문에 느린 Z80A의 성능으로 소프트웨어 스크롤 구현이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사이드뷰 게임들, 예를 들면 악마성 드라큘라나 힘내라 고에몽 MSX2판은 원작인 패미콤 판에 있는 스크롤이 사라지고 화면전환 식으로 변경되었다. 다만 후기에 가면 프로그래머를 갈아넣어서[19] MSX2에서도 부드러운 소프트웨어 스크롤을 구현한 스페이스 맨보우[20] 같은 작품도 등장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처음부터 전 방향 스크롤을 지원했더라면 MSX2의 게임 성향은 상당히 달랐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꽤 있다.

이러한 향상된 성능들을 갖추면서도 기존의 MSX1 소프트웨어도 100% 상위호환성을 보장하였기 때문에[21] MSX2의 보급은 비교적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선순환으로 MSX2용 소프트웨어도 발매 초기부터 무리 없이 시장에 나와 주었다. 발매 초기에는 평균 5만엔 대 정도로 MSX1에 비해 가격이 많이 비싼 편이었는데 아예 표준 사양 모델 밖에도 옵션 규격인 JIS 2 수준 한자 ROM이나 슈퍼 임포즈를 내장하고[22] 키보드 분리 및 FDD 내장[23] 등 전체적인 사양을 고급화하여 전문가 지향의 10~20만엔 대 고가 모델도 제법 나왔다. 이 웨이브의 영향을 받은 국내 모델이 바로 X-II(CPC-400). 87년 무렵부터는 옵션 규격의 내장보다는 커스텀 칩 화를 거친 원가절감에 치중, 가격 하락이 상당히 이루어져서 MSX2로의 시장 이행이 가속화되어 시장에 나오는 소프트웨어도 기존의 MSX1용 소프트웨어보다 MSX2용 소프트웨어가 많을 정도로 역전되었다.

사운드는 MSX1과 기본적으로 같으나 MSX-Audio라는 옵션 규격을 마련하여 소극적이나마 강화를 꾀했다. 야마하 OPL(Y8950)칩의 채용으로 2오퍼레이터 FM 사운드와 1채널 ADPCM을 제공했으나 가격이 너무 비싸서 보급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8년 파나소닉에서 FMPAC이라는 이름으로 OPL2(YM3812)[24]의 저가판인 OPLL(YM2413)칩을 채용한 사운드 확장장비가 발매됐는데, 성능은 MSX-Audio보다 많이 떨어지지만, 가격이 1/4 정도였기 때문에 급격하게 보급이 이루어졌고, 결국 MSX2+에 MSX-Music이라는 이름으로 옵션 규격으로 채용됐다. 표준규격이나 확장장치로 발매된 것은 아니나 코나미의 커스텀 사운드칩인 SCC가 코나미제 카트리지에 탑재된 것도 비슷한 시기인 1987년부터. 상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 CPU: Zilog Z80A 상당품@3.58MHz. MSX1과 동일.

  • VDP: 야마하 V9938[25](E-VDP)

  • 사운드: Gereral Instruments AY-3-8910 3채널. MSX1과 동일

  • 메모리: Main 64KB 이상, VRAM 64~128KB

  • 해상도/발색: MSX1 표준에 더해서 80×24 텍스트, 256×212/고정 256 컬러, 256 or 512×212/512 컬러 중 16컬러 비트맵 그래픽. VRAM 128KB 모델은 인터레이스 모드를 거쳐서 세로 424 픽셀 표현도 가능하다.

3.3. MSX2+(1988)[편집]

MSX2 규격이 나온 지 3년이 지난 1988년에 그래픽을 더욱 강화한 MSX2+ 규격이 발표되었다. MSX'3'가 아닌 '2+'인 이유는 MSX1에서 2로 변했던 것과 달리 업그레이드의 폭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 주로 옵션이었던 규격들이 표준규격으로 들어온 것 외에는 큰 변화점은 많지가 않다. MSX도 슬슬 저물어가는 기미가 보였던 것인지 MSX2+에 와서는 소니, 파나소닉, 산요 3사만이 남고 나머지는 모두 철수했다. 소니와 파나소닉은 초기 MSX 시절부터 가장 큰 지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2사만이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이렇게 참가 기업수가 급감했어도 MSX의 위세가 참가 기업 수만큼 줄어든 것은 아니었지만 MSX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가장 큰 차이점은 VDP가 V9938에서 V9958로 변경된 것이다. V9958은 V9938의 업그레이드 버전이기는 하나 업그레이드의 규모 자체는 크지 않았다. 스크롤 기능이 업그레이드되어 가로 스크롤이 추가, 전 방향 하드웨어 스크롤이 가능하여 보다 게임 제작이 용이해지게 되었다. MSX2 때부터 이랬으면 MSX 게임 소프트의 발매방향이 상당히 달랐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되는 부분인데, MSX2+ 전용 게임은 동시발매작인 '레이독 2'와 'F1 스피리트 3D 스페셜' 2작으로 끝나버린 관계로 거하게 망했다. 다만 MSX2/2+ 동시 지원으로 MSX2+에서 가동 시에 MSX2+의 하드웨어 스크롤이 활성화되거나 자연색 모드로 일러스트가 출력되는 케이스는 많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있다.

새로운 그래픽 모드로 자연색 모드가 추가되었다. YJK 방식이라고도 하는 이 화면모드는 픽셀단위로 색상을 지정할 수 없고 가로 4픽셀 단위로 색상을 지정하고 그 4픽셀 안에서는 휘도만을 지정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26] 색상 표현수를 늘리면서도 VRAM의 이용량은 늘리지 않기 위해 머리를 굴린 고육지책. 19,268색이라는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색상을 표현 가능해서 잠시 이목을 끌었지만 실제로는 사진 등의 제한된 용도에만 최적화되어 게임에서 이용하기에는 용량이나 속도 등의 문제로 타이틀 화면 정도에서만 잠깐 사용하는 수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YJK방식과 기존의 RGB 방식(512색 중 16색 표현, 픽셀단위 색상지정 가능)을 혼합할 수 있는 모드도 있으나 이 경우에는 YJK의 색상표현이 12,499색으로 줄어든다.

옵션 규격이던 JIS 제 2수준 한자 ROM은 표준 규격화되어 모든 MSX2+에 실장되었다. 가끔 게임에 이 한자 ROM을 사용하는 바람에 국내산 MSX2에서는 제대로 안돌아가는 괴악한 물건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프린세스 메이커. 전년 발매되었던 FMPAC, 즉 MSX-Music도 옵션 규격으로 추가되었는데, 산요 Wavy 35와 파나소닉 FS-A1FX를 제외한 전 기종이 MSX-Music을 내장했기 때문에 사실상 표준규격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대우전자)에서도 MSX2+를 개발하였으나 시장성 문제로 출시가 되지 않았다는 후문이 있다. 사실 바로 이듬해인 1989년 여름에 불어 닥친 8비트 컴퓨터 대멸종을 생각하면 현명한 판단이었을 것이다. 다만 재믹스 터보가 V9958을 탑재하여 MSX2+의 프로그램을 일부 수행할 수 있다. 이것이 MSX2+ 개발과 관련이 있던 것인지는 불명.[27]

  • CPU: Zilog Z80A 상당품@3.58MHz. MSX1,2와 동일.[28]

  • VDP: 야마하 V9958(E-VDP-II)

  • 사운드: Gereral Instruments AY-3-8910 3채널. MSX1, 2와 동일

  • 메모리: Main 64KB 이상, VRAM 128KB

  • 해상도/발색: MSX2 표준에 더해서 256×212/12,499~19,268 컬러의 YJK 모드 추가.

3.4. MSXturboR(1990)[편집]

1990년, 16비트 RISC로 CPU를 교체한 turboR이라는 후속규격이 발표되었으나 제조사는 파나소닉 한 회사만 남고 모두 철수. 이 규격의 기종은 그래서 파나소닉 FS-A1ST와 FS-A1GT 둘 뿐이다.

CPU는 아스키에서 설계한 RISC 16비트 CPU인 R800을 사용하여 이론적으로는 기존 MSX의 무려 8배의 속도를 낼 수 있었고[29] 최소 메모리도 256KB로 4배나 확대되었지만 VDP는 MSX2+와 동일한 V9958, VRAM도 여전히 128KB를 장착하여 그래픽 성능이 전 세대인 MSX2+와 똑같다라는 것이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V9958의 속도가 꽤 느려서 빠른 CPU에도 불구하고 VDP가 처리속도에서 발목을 잡는 일이 많았고 그래픽 성능 자체도 이미 시대에 뒤쳐져있었기 때문에 turboR은 시장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였다. 보조기억장치인 플로피디스크도 이미 고밀도인 2HD가 일반화되기 시작한 시점이고 하드디스크도 어느 정도 가시권 안에 들어오는 옵션이었던 시점에서 계속해서 720KB 2DD만을 고집한 점 역시 시대착오적이었다. 거기에 가격도 FS-A1GT를 기준으로 하면 89,800엔의 고가여서 이미 저렴한 가격의 홈컴퓨터는 아니게 되어 보급률에 악영향을 주었다.[30] 그렇다보니 소프트웨어들도 기존의 MSX2/2+ 시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서 몇몇 전용 소프트웨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MSX2/2+와 호환성을 유지하며 turboR의 고속모드에만 대응하는 식으로 나왔다.

turboR에 와서는 S-Video 단자가 생긴 대신 카세트 단자가 삭제되어 데이터 레코더를 쓸 수 없게 되었다. turboR 규격이 변경되었다기보다는 파나소닉의 MSX2+인 FS-A1WSX의 세팅이 이어져 내려온 것인데 실질적으로 turboR 규격 기종은 파나소닉 제품뿐이므로 결국 turboR은 데이터 레코더를 쓸 수 없게 된 셈.

명목상이나마 옵션규격이었던 MSX-Music은 표준규격으로 탑재되었다. 또한 확장 카트리지로 제공되던 MSX-DOS2 역시 표준으로 탑재하였다. 최종테크인 FS-A1GT에서는 FS-A1ST에서는 별매 소프트웨어였던 GUI 환경 'MSX-View'가 ROM에 내장되고 메인메모리 512KB, 별매 미디 인터페이스였던 '뮤PACK'을 탑재하였다.

일설에는 V9958 대신 야마하의 신형 VDP인 V9978을 탑재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V9978의 계속되는 개발연기로 인해 결국 칩 자체가 취소되어 V9958을 쓰기는 했지만, 이후 V9978에서 TMS9918~V9958의 하위 호환기능을 제거하고 나온 V9990(E-VDP-III)의 그래픽 성능은 당대의 킹왕짱이었던 X68000의 뺨을 찰지게 후려치는 수준이라 실제로 탑재되었더라면 상당한 성능향상을 기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참 나중에 유럽 양덕능력자들의 가내수공업 아이템으로 GFX9000이라는 확장장치가 나오기는 했는데 이것을 사용한 동인 게임을 보면 확실히 당대의 아케이드 기판에 비견할만한 그래픽 성능을 내고 있었다.

1995년 파나소닉이 FS-A1GT의 생산을 중단함으로서 MSX의 역사는 종지부를 찍었다. 이외에 MSX3이 기획되었다는 소문도 있으나 실제로 출시된 기종은 없다. MSX3이 TurboR을 가리키는 것이었는지 별도의 기획인지는 불명.

  • CPU: ASCII R800@7.16MHz(Z80 환산클럭 28.64MHz)+Zilog Z80A(3.58MHz)

  • VDP: 야마하 V9958. MSX2+와 동일

  • 메모리: Main 256KB(ST)/512KB(GT), VRAM 128KB

  • 사운드: MSX2+ 표준에 더해서 MSX-Music(YM2413/FM 9채널)+8비트 ADPCM

  • 해상도/발색: MSX2+와 동일

4. MSX의 원형[편집]

MSX 규격의 원형은 의외로 아스키의 오리지널이 아니다. 위 MSX1 문단에서 전술했듯 이미 Z80A에 TMS9918을 조합하는 기종은 Sord M5같은 선례가 있고, 세가의 SG-1000도 같은 조합이기 때문에 이런 조합 자체는 흔한 것이었지만 실제로 직접적인 원형이 되는 기종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미국의 회사인 '스펙트라비디오'(Spectravideo)에서 MSX와 같은 1983년에 발표한 SVI-318/328.

MSX 규격과 일절 호환성이 없는 물건이지만 하드웨어 구성이 비슷한 것도 아니고 완전히 똑같으며 BASIC도 마이크로소프트의 것을 사용하고 있는 상당히 닮은 것이라서 예전부터 연관성이 의심되던 물건이었는데, 나중에 나온 비화에 따르면 스펙트라비디오는 SVI-318/328을 만들면서 설계/제조를 홍콩의 Bondwell이라는 회사에 맡겼는데, 여기에 BASIC 인터프리터 등의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제공한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이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동아시아권 창구 역할을 한 회사가 바로 아스키이다. 아스키는 SVI-328의 훌륭한 완성도를 보고 이를 바탕으로 아사리 판이었던 복잡한 시장을 통일할 표준 규격을 만드는 것이 어떤가 하는 아이디어를 내어 당시 제작 중이던 프로토타입을 각 가전회사에 제시하고 참가 의견을 타진했다고 한다. 그리고 참가할 가전회사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SVI-328의 사양을 바탕으로 개량하여 나온 것이 MSX1 규격이라는 것. 여기에 대해서는 개발자인 니시 카즈히코 본인도 비슷한 언급을 했는데 니시의 코멘트에 따르면 SVI-328은 또 NEC PC-6000 시리즈의 영향을 받은 모양.

MSX 규격 발표 후 반대로 스펙트라비디오에서 MSX 규격에 참가했다. 북미 지역의 유일한 MSX 규격 참가업체로 SVI-728이라는 MSX 규격의 컴퓨터를 시장에 내놓았고, IBM PC XT 호환 기종이지만 MSX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굴릴 수 있는(!) SVI-838 같은 기괴한 물건도 내놓았지만 이미 북미시장에는 애플 II코모도어 64 등이 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는지라 결국 MSX 규격의 보급에 실패한 끝에 1988년 회사가 도산하고 시장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미국 시장에서의 MSX는 이 스펙트라비디오에서 내놓은 SVI 시리즈가 전부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관여한 기종임에도 미국 내에서 MSX는 좋게 말해 마이너한 기종, 좀 적나라하게 말하면 MSX 그거 먹는 건가요 수준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5. 대한민국에서의 MSX[편집]

5.1. 하드웨어[편집]

국내에서도 1984년에 금성, 대우, 삼성의 가전 3사가 나란히 MSX 규격의 컴퓨터를 냈고, 심지어 대우에서는 이듬해인 1985년에 MSX의 게임 기능만을 이용한 게임기 재믹스를 발매하기도 했다. 재믹스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MSX1이 국내에 들어온 1984년에는 삼성전자, 금성사(현 LG전자), 대우전자의 가전 3사가 모두 참여했다. 한국 PC업계에서 선발주자였던 삼성과 금성은 각각 SPC-1000이나 금성 패미콤이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이미 갖고 있으면서 MSX 규격에도 발을 뻗은 것이었던 반면에 후발주자인 대우전자는 DPC 시리즈(상품명 IQ-1000)로 MSX에 닥치고 올인했다. 그에 따라서 가장 많이 보급된 MSX 기종은 대우의 DPC 시리즈였다. 메모리 등의 사양을 다양하게 하여 여러 가격대를 공략한 것도 대우 DPC 시리즈의 장점. 3사의 기종 공히 MSX 규격이므로 당연히 소프트웨어는 서로 호환되었고 FDD, 조이스틱, 프린터 같은 외장 하드웨어도 호환되었다. 한글 BIOS도 동일한 것을 사용하여 한글을 사용한 데이터 호환에도 문제가 없었다. 나름대로 MSX 규격의 이상을 잘 지키면서 국내 도입에 성공한 편이라고 하겠다. 키보드에는 기계식 스위치를 채택하였는데, (당시 키보드는 모두 기계식이긴 했다) 금성은 알프스 리니어 메탈 스위치, 대우는 후타바 스위치를 사용했다.출처

이렇게 매끄럽게 국내에 MSX가 3사 공통규격으로 도입될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원조 벤처기업이라고도 일컬어지는 큐닉스(Qnix)[31]가 다리를 놓은 덕분이었다. 1983년 당시 가전3사는 일본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던 MSX 규격 도입을 두고 각자 사내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하는데,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와 기술제휴 및 에이전트 계약을 맺고 있던 큐닉스에서 가전3사와 접촉하면서 공통규격의 필요성에 대해 설득을 하여 MSX 규격 도입이 결정된 것이라고 한다. 각 3사가 한글 지원을 독자개발하지 않고 큐닉스에서 만든 한글 바이오스를 공통적으로 받아다 썼기 때문에 한글 소프트웨어도 호환성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으로 큐닉스는 초창기 MSX 소프트웨어의 수입 및 개발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 덕에 재미나, 프로소프트, 크로바소프트 등의 복제팩 제조업체들이 뛰어들기 전 아주 초창기 MSX 게임 카트리지를 보면 크레디트가 Qnix로 되어있는 것이 흔하지는 않지만 몇 가지 쯤 있다. 대체로 1983~1984년작 게임들. 물론 큐닉스도 재미나, 크로바소프트 등과 마찬가지로 합법적인 로고갈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의 모든 국산 MSX에는 공통적으로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내장돼 있지 않았지만 본체 후방에 외장 드라이브를 달 수 있는 단자가 있어 외장형 5.25인치나 3.5인치 드라이브를 달 수 있었는데 5.25인치는 초기에만 조금 쓰였고 대부분 3.5인치를 사용했다. 일본산 MSX는 대부분 별도의 FDD 단자가 없고 대신 FDD를 내장했거나 외장 드라이브를 다는 경우에는 카트리지 슬롯에 롬팩 형태로 된 FDD 인터페이스를 꽂아 사용했는데 이 때문에 일본제 FDD는 본체에 달린 슬롯이 2개였다. 그러나 국산 MSX의 경우는 본체 슬롯이 2개인 기종이 없었고 공통적으로 슬롯 1개+전용 FDD 단자를 채용했는데, 이 단자는 사실 내부적으로는 슬롯과 동일한 인터페이스고 외형만 다른 형태로, 국산에만 있던 건 아니고 일본을 제외한 외산 MSX(필립스 등)에는 종종 달려있던 단자다. 슬롯과 동일한 인터페이스였기 때문에 FDD 단자에 카트리지를 연결해주는 컨버터(일명 FRC)도 존재했다.

놀랍게도 MSX는 오락실에도 설치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아케이드 기판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 들여놓을 수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훗날 슈퍼 패미컴, 메가 드라이브 같은 콘솔 게임기에 타이머를 달아 코인당 시간제로 운영하던 모습의 원조뻘 쯤 된다. 어찌보면 '일정 금액으로 일정시간 컴퓨터를 임대하여 사용한다'는 콘셉트는 오늘날의 PC방과도 맥락이 닿아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락실에 설치된 것은 거의 상당수가 대우 DPC 시리즈였으며, 금성 FC-80도 어느 정도는 보였고, 삼성 SPC-800은 매우 보기 힘들었다. 실제 MSX1 시절 보급률이 대우-금성-삼성 순서였던 것도 관련이 있을 듯.[32] 재믹스항목에도 나오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게임을 할 때에도 키보드 입력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인지[33] 재미있게도 아케이드 캐비넷에 조이스틱만 노출시킨 형태가 아니고 컴퓨터 본체의 키보드 부분이 직접 드러나게 설치를 해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방향키는 키보드 우측에 있다보니 컴퓨터 방향키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들은 양손을 서로 교차시켜서(...) 왼손으로 캐릭터 조작을, 오른손으로 버튼 조작을 하려 하는 경우도 있었다.

MSX2로 넘어오자마자 삼성과 금성은 MSX 노선을 완전히 포기하였고[34] 대우전자에서 1986년 IQ-2000(모델명 CPC-300)이라는 명칭으로 MSX2 규격의 컴퓨터를 발매하였다. IQ-2000은 남미, 아랍에도 교육용 컴퓨터로 다수 수출되어 인터넷에서 MSX관련 정보를 수집하다 보면 IQ-2000에 대해 다루는 남미, 아랍쪽 글이 의외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MSX 시장의 끝물 즈음에는 대우전자에서 일부 게임을 정식 수입하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서 재미나 등에서 판매한 복제팩과 다른 점을 소비자에게 어필하기 어려웠고 대우 측에서도 MSX가 몰락하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지면광고를 요란하게 때린데 비해 카트리지의 출고량 자체가 극히 적어 실제로 대우 정품팩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1987년 대우에서 마지막으로 8비트 컴퓨터인 발매한 X-II(모델명 CPC-400/S)라는 기종은 키보드 분리 데스크탑 PC 외형에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내장, 미려한 완성형 명조체 한글[35]/한자, 동영상 캡쳐기능(!),[36] 비싼 가격[37] 등으로 당시 선망의 대상이었다. 국내산 MSX의 최종 테크. 값이 비싸다는 부분도, FDD 내장형이라는 점. 당시로서는 상당히 예쁜 내장 한글 글꼴[38]과 확장기능, 더 인체공학적인 디자인 등을 감안하면 의외로 CPC-300+외장 FDD[39]보다 비싸다 하기는 어려웠다. 거의 끝물이던 1988년에 X-II를 구입하려다 마침 대우전자 파업으로 구하지 못해 IQ-2000을 사고 '피눈물"을 쏟은 매니아들이 있다. 이게 왜 피눈물이냐 하면, 얼마 안 가 정부가 16비트 컴퓨터를 교육용으로 지정하면서, 100만원 대 후반에서 슬슬 내려가던 16비트 컴퓨터 값이 폭락해 훨씬 빠르고 용량 큰 IBM XT가 본체+FDD기준으로 IQ-2000기반 컴퓨터와 별 차이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40] 학교 컴퓨터부에서 바로 외면당하는 신세로 전락했는데, 그렇다고 X-II처럼 최종테크 자부심이나 넘을 수 없는 하드웨어적인 차별성이 있지도 않았으니.

어차피 기술의 발전과 함께 사라질 운명이었지만, 특히 국내에서는 1989년 여름에 각급 학교의 교육용 PC 사업의 기종 선정 과정에서 16비트 PC가 선정되고 8비트 PC가 탈락하면서 한순간에 몰락하자, PC메이커들도 적극적으로 8비트 PC에 대한 보상판매를 실시하며 기존 보급 물량도 빠르게 사라져갔다. 역설적으로 게임기였던 재믹스만이 대격변의 혼란에서도 살아남았지만 이것도 삼성 겜보이와 대만산 패미클론의 대히트로 내리막길을 걷다가 1991년 삼성 수퍼겜보이, 현대 슈퍼컴보이를 중심으로 하는 16비트 게임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함과 동시에 결정타를 입으면서 시장 수명을 다했다.

5.2. 소프트웨어[편집]

MSX는 기본적으로 프로그래밍 언어로 MSX-BASIC을 내장하고 있으며, 운영체제로 MSX-DOS가 있었고 워드프로세서, PC통신, 그래픽편집, 프로그래밍 등 일반 PC로 하는 일은 거의 다 할 수 있었던 명실상부한 개인용 컴퓨터지만 기능 확장을 위해 두었던 외장 슬롯에 롬 팩을 꽂을 수 있었고 결정적으로 그 특성을 활용한 재믹스라는 한 시대를 풍미한 MSX 호환 게임기가 나왔던 탓에 당대에는 반쯤은 게임기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로 게이밍 성능이나 소프트웨어 풀은 당대 국내 컴퓨터 기종 중에서 가장 앞섰다. 사실 현재의 PC들도 이걸 가지고 게임밖에 안하는 사람들한테는 말 그대로 게임기이니 이러한 맥락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사실 이것은 좀 아이러니한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데, 처음부터 애플은 '개인이 소지하고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의 구현'이라는 콘셉트에서 출발했지만 MSX는 가정용 가전제품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시작했다. 실제로 MSX 규격에 참가했던 업체들은 기존에 컴퓨터 산업에 손댔던 업체들이 아니라 소니, 산요, 마츠시타와 같은 가전제품으로 자리 잡은 업체들이었다. 애플 II의 개방성과 조잡한(...) 기본 성능은 많은 확장카드와 유틸리티 소프트웨어 개발로 이어졌지만, MSX는 애플 II와 같은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당대에 애플 수준에 이른 PC가 있기는 있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미국에서 쏟아진 다양한 애플 II용 실용 소프트웨어는 국내에도 유입되었고 국내 개발자들에게도 이러한 성향은 영향을 미쳐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를 쓴 가정신문출판 소프트웨어 '독립신문'이나 워드프로세서 '중앙한글' 등이 나와 유저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MSX는 실용 소프트 쪽으로는 교육용 컴퓨터 선정에 대비한 CAI/CAE소프트웨어 개발 정도에 쓰였고, 일찍 보급된 학교에서는 성적처리에 활용한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컴퓨터를 대하는 문화 자체가 조금 달랐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정말로 없었냐, 라고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애플 II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있을 만큼은 있었지만 국내 MSX 환경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했다는 관점이 옳을 듯 싶다. FDD 인터페이스에는 '디스크 베이직'이라 부르는, FDD용 확장 명령어 세트도 내장되어 있었고 공식 운영체제로 MSX-DOS를 사용할 수도 있었는데 꽤 많은 소프트웨어가 나와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본체에 버금가는 높은 가격 탓에 FDD의 보급률 자체가 낮았고 MSX는 반쯤 게임기 취급을 당하는 경향도 있었던 터라 DOS 환경은 그다지 사용되지 않았다. MSX-DOS는 나중에 아스키에서 MSX-DOS2 라는 이름으로 도스 파이프라인을 지원하는 버전까지 나왔고 툴 디스크까지 하면 MS-DOS 에서 볼 수 있었던 명령어 상당수를 포함했지만[41], MSX가 게임용으로 주로 쓰였던 데다 정품 패키지에 세트로 들어있는 확장 카트리지가 필수적이어서 이 버전은 그리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

MSX용 프린터와 모뎀, 마우스, 플로터 등도 나왔고 나중에는 교육용으로 로고 언어를 조합해 간단한 프로그래밍으로 동작시키는 하드웨어 키트도 나왔지만 무척 비쌌기 때문에, 사용자 대부분은 기본번들인 조이스틱과 카세트테이프레코더, 그리고 롬 팩으로 판매되는 학습용, 게임용, 시스템 유틸리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선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겨우 FDD를 추가하는 정도였다. 덕분에 이런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BBS나 PC통신, 개인출판소프트웨어와 워드프로세서, 그래픽 프로그램은 소개되어도 인기를 끌지 못했다. 소프트웨어 유통 상의 문제와 함께 다양한 주변기기가 싸게 팔리지 못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해 MSX의 용도를 게임기 내지 베이직 언어 교육용으로 한정시켰다.

MSX-DOS용으로는 MS의 멀티 플랜 같은 스프레드시트, dBase II, M80 어셈블러[42] 볼랜드의 터보파스칼 3.0, MSX-C, PROLOG, FORTRAN, COBOL 같은 다양한 언어의 컴파일러 등 상당히 다양한 소프트웨어가 포팅되거나 CP/M에서 가져와서 사용되었지만 국내에서의 MSX의 취급은 반쯤 게임기였던 관계로, 그리고 비싼 FDD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보급률은 안습. 덕분에 한국에서는 16비트 컴퓨터로 먼저 접한 사람이 대다수이며 나중에 MSX로 이런 소프트웨어들이 다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는 왕년의 MSX 유저도 종종 있다.

사양 자체가 업무용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는데, 일단 한글 처리에 약점이 많았다. 우선 해상도가 낮다보니 텍스트 화면에서 뿌려줄 수 있는 한글 16×12~20×12문자 정도. 한글은 16×16 픽셀을 점유하다보니 8×8 픽셀을 사용하는 알파벳에 비해 화면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넓을 수밖에 없고, 기본적으로 해상도가 낮다보니 표시할 수 있는 글씨 수가 적었는데 이 점은 애플 II도 마찬가지긴 했다. 텍스트 모드에서의 한글 처리는 빠르다고는 할 수 없어도 그나마 봐줄 만은 했는데 글꼴 모양은 그리 보기 좋지 않았다.[43]. IQ-2000/X-II에서는 높은 해상도에 비교적 미려한 글꼴을 보여주는 screen 9 모드가 추가되었으나 대우에서 screen 6 고해상도 그래픽 모드에 인터레이스 모드를 조합하여 뚜룩쳐서만든거라 당대의 16비트 PC와 비슷한 40x25문자 표시를 구현할 수는 있었으나 그것을 대가로 토 나오는 속도를 감수해야 했다. 이렇다보니 대우에서 만든 한글 워드프로세서에서도 이 모드를 사용하지 않고 screen 7 그래픽 모드(512×212/16컬러)에서 한글을 그려서 출력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screen 9의 토 나오는 속도보다는 나았지만 이것도 꽤 느렸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해주는 SAS 한글카드 같은 애드온 장치도 나오긴 했지만 보급률은 높지 않았다. 나중에 정내권씨의 한글 램 상주 소프트웨어가 나왔는데 이것은 기본 screen 9모드보다 훨씬 빨라서 당시 16비트 IBM PC의 한글출력속도에 비견할 정도였다(악명 높은 느리디 느린 세로스크롤도 VDP커맨드를 사용한 하드웨어 방식[44]으로 개선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업무용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 등에서 유용했지만, 이미 정부가 16비트로 길을 정한 이후라 대세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거기에 지나치게 가격이 비쌌던 외장 FDD[45]도 업무용으로의 활용을 힘들게 만드는 약점이 되었을 것이다.[46] 애플 II의 경우 FDD의 가격이 비싸긴 해도 이보다는 훨씬 쌌기 때문에 비교적 FDD의 보급률이 높았다. 이런 MSX의 업무용 환경의 한계점은 나름대로 극복하려는 시도도 없지는 않았으나 결국 시장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못했고, 비록 컬러도 화음도 그냥은 안 되지만 허큘리스카드 덕분에 어쨌든 고해상도 표현이 용이했고 모든 기종에 FDD가 기본 내장된 IBM-PC/XT로 시장 중심이 옮겨가고 나서야 해결되었다. 애초에 IBM PC는 업무용이었으니까

게임성능이 뛰어났던 기종이니만큼 MSX로 국산 게임을 만들려는 시도도 당연히 있었다. 이러한 시도는 1987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이는데, 당시에는 변변한 게임업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던 시대여서 프로그래밍에 재능이 있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혼자, 혹은 두세명이 모여 게임을 만들고 이걸 단골 소프트웨어 가게[47]에 가져가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퍼블리싱...같은 오늘날로 치면 인디게임스러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대에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MSX로 자체 제작 게임을 가장 많이 내놓은 곳은 역시 재미나였고 FA 소프트, 으뜸 소프트, 프로 소프트, 토피아 등 MSX게임을 복돌이 유통했던 업체들은 1988~1989년쯤 되면 자기네 이름 달고 나오는 게임이 한두 개 씩은 있었다. 재미나의 작품에 대해서는 문서를 참고하기 바라며, 그 밖에 유명한 작품은 토피아의 '대마성', 으뜸 소프트의 '악마지대', 미키소프트의 '꾀돌이' 등이 있었으나 어느 것이나 밀려들어오는 일본제 게임에 다 묻혀버렸다.

5.3. 출판물[편집]

MSX 관련 서적은 주로 일본 서적을 번역한 것이 많이 출판되었다. ASCII의 MSX 어셈블리어 텍스트[48]도 나왔고, 'MSX2 테크니컬 핸드북' 같은 명저가 해적판(...)으로 번역되어 나오고는 했는데 아무래도 당시 여건상 번역의 질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지경사 같은 어린이 서적 전문 출판사에서도 MSX 서적을 내놨는데 주로 BASIC, BASIC+기계어 코드 조합, 순수 기계어로 제작한 게임의 코드를 실은 책들이었다. 당시의 IT 꿈나무(...)들은 이런 책을 보면서 직접 소스를 타이핑 쳐서 게임을 즐기고는 했다.

국내 MSX 문화에 영향을 크게 준 잡지라면 현재도 나오고 있는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와 1998년에 폐간된 '월간 마이컴'의 전신인 '월간 컴퓨터학습'을 들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웨어는 아예 잡지 레이아웃 자체를 애플과 MSX로 나누었고, 컴퓨터학습도 당시의 8비트 PC를 다룬 종합잡지로서 MSX를 비중있게 다루어 MSX 사용자들의 필독서 취급을 받았으나, 1989년에 교육용 PC가 16비트 IBM PC 호환기종으로 결정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웨어는 지면을 IBM PC 중심으로 개편하였고[49] 컴퓨터학습은 1990년 '마이컴'으로 제호를 바꾸면서 16비트 PC를 중심으로 지면을 전면개편하고 애플/MSX의 8비트 지면은 크게 축소했다가 결국 90년대 중반 폐간되었다. SPC는 제호가 바뀌자마자 내다버렸다 컴퓨터학습을 출판했던 민컴에서는 MSX 프로그래밍 테크닉을 담은 서적인 'MSX 파워업 테크닉'과 '테크뱅크'를 출간하기도 했는데 일본 서적들에 못지 않은 알찬 내용으로 MSX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MSX만을 다루는 잡지인 'MSX와의 만남'이라는 잡지가 1988년부터 나왔는데, 가격은 저렴했지만 지면도 적고 편집이 열악한 편이었다. 좀 가혹하게 말하면 아마추어의 동인출판물 수준으로 전문 출판인이 스태프 중에 없었던 것 같다. 기사 내용도 일본 잡지 기사의 번역물이 많았고 심지어는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나 컴퓨터학습 등 타 잡지의 기사를 무단전재한 사례까지 있었지만 시대가 시대라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던 모양. 필진의 부족을 독자투고로 메우는(...) 빈곤하고도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독자 투고가 의외로 알찬 정보를 많이 제공했다. 독자 투고가 알찼던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웨어나 컴퓨터학습도 비슷하긴 했지만 이쪽은 독자투고의 비중 자체가 매우 높았던 덕에 전문성을 지닌 앞의 두 잡지와는 또 다른 독특한 동인스런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5.4. 국내에서 생산된 MSX[편집]

  • 대우전자

    • DPC-100: MSX1 규격. RAM 16KB/VRAM 16KB. 대우 DPC 시리즈는 'IQ-1000'이라는 상품명으로 출시되었다. 원가절감을 위해 채용한 멤브레인 키보드[50]가 꽤 욕을 먹었다(...).

    • DPC-180: MSX1 규격. RAM 32KB/VRAM 16KB. 키보드는 DPC-100과 동일하나 메모리가 늘어났다.

    • DPC-200: MSX1 규격. RAM 64KB/VRAM 16KB. 키보드가 변화되고 롬 영역과 중복이기는 하나 메모리가 더 늘어남.[51] MSX1 풀스펙이다. 디자인 면에서 묘하게 내쇼날 CF-2000과 닮았다.

    • CPC-300: MSX2 규격. RAM 128KB, VRAM 128KB. 'IQ-2000'이라는 상품명으로 출시되었다. 한글 2.0(조합형 고딕체) 내장.

      • CPC-300E: MSX2 규격. RAM 64KB, VRAM 128KB. IQ-2000의 교육용 납품버전. 학교나 컴퓨터학원 등에 납품되었다. E는 Education의 E인듯. 게임기능을 제한하려고 했는지 조이스틱 포트가 없다. 그러려면 카트리지 슬롯을 없앴어야지!

    • CPC-400: MSX2 규격. RAM 128KB, VRAM 128KB. 1FDD 내장(2FDD는 옵션), 분리형 키보드 채용. 한글 3.0(완성형 명조체 및 한자) 내장. 'X-Ⅱ'라는 상품명으로 출시되었다.

      • CPC-400S: MSX2 규격. RAM 128KB, VRAM 128KB. CPC-400에는 옵션으로 되어있는 디지타이즈/슈퍼임포즈 기능 내장. 국산 MSX의 최종테크로 취급받는다.


그 외에도 대우전자는 위에서 설명한 재믹스 시리즈, 코보(MSX2 기반 유아용 컴퓨터) 등 MSX 기반의 파생기종도 여럿 발표하였다. 해당 기종에 대한 설명은 링크된 문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 금성전자

    • FC-80/U: MSX1 규격. RAM 64KB/VRAM 16KB. U는 색상이 다른 버전으로 사양은 동일. DPC-200과 같은 MSX1 풀스펙이다. 금성 패미콤 시리즈 중 하나로 발매되었다.

    • GFC-1080/A: MSX1 규격. RAM 64KB/VRAM 16KB, FC-80의 개량모델. 파소칼크(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 모니터프로그램 내장. '패미콤' 브랜드를 떼고 모델명만으로 나왔다. 1080A는 내장 프로그램 삭제로 사실상 FC-80과 거의 동일한 스펙.

  • 삼성전자

    • SPC-800: MSX1 규격. 64KB/VRAM 16KB. DPC-200과 같은 MSX1 풀 스펙이다. 1991~1992년께 뒤늦게 튀어나온 재고품이 모처에서 슈퍼컴돌이라는 이름의 게임기(?)로 팔려나가는 굴욕을 겪었다.(...)

6. 현재의 MSX[편집]

다른 많은 클래식 컴퓨터들이 그렇듯 현재는 당연히도 완전히 단종되었지만, 몇몇 장잉취미가들이 나름 현대의 기술을 적용하면서 즐기고 있다. 예를 들면 메모리 카드를 대용량 디스크처럼 이용하는 CF-IDE나 MMC/SD, OPL4 사운드를 지원하는 MoonSound, V9990을 탑재하여 아케이드 기판급의 그래픽을 구현하는 GFX9000 등이 있다.

2007년에는 FPGA 기술을 이용하여 원칩에 MSX의 모든 기능을 때려넣은 MSX 키트인 '1칩 MSX'가 발매되기도 하였다.(1Chip MSX Wiki) 말하자면 일종의 하드웨어적인 에뮬레이터. 이것도 사연이 좀 있는 물건인데 꽤 오래 전부터 일본의 MSX 동인인 '츠지카와 카즈히로'라는 사람이 PLD를 기반으로 개발하고 있던 ESE-MSX System를 베이스로 하고 있다. ESE-MSX System의 최종 버전인 3판의 설계를 바탕으로 아스키가 라이센스를 허용하여 합법성을 획득하고 D4 엔터프라이즈를 통해 실물을 발매한 것이 이 1칩 MSX. 기본적으로 MSX2 사양이지만 FPGA의 특성상 칩의 설계를 재프로그래밍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차후 MSX2+/turboR도 지원이 가능하다. 실제로 2012년, 유럽의 어느 능력자가 실제로 MSX2+를 지원하는 업데이트를 발표해버렸다! turboR까지는 원칩 MSX에 쓰인 FPGA칩(Altera Cyclone)의 게이트 수 제약 때문에 현실적으로 조금 어렵다는 발언이 있었다는 듯. 이 키트를 재프로그래밍 해서 다른 기종(샤프 MZ-700)을 구현한 사례도 있다. FPGA의 특성상 만들 능력만 된다면 칩이 지원하는 게이트 수 범위 안에서 어떤 하드웨어든 구현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판매 당시에도 광고 문구에 '당신만의 MSX3를 만들 수 있다'는 문구가 있었는데 아주 거짓말은 아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 원칩 MSX의 원본 격인 ESE-MSX System의 VHDL 소스와 하드웨어 설계는 공개가 되어있기 때문에 이를 베이스로 만든 클론도 만들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OCMC(One Chip MSX Clone)과 재믹스 네오가 대표적인 프로젝트. 재믹스 네오에 대해서는 재믹스 문서를 참조.

재믹스 네오를 제작한 팀에서 'IQ3000 큐티'라는 제품을 만들기도 했다. 관련 자료는 팬 사이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베이스는 재믹스 네오와 동일한 ESE-MSX System3+KDL 펌웨어 기반이다. 스피커 및 키보드 내장형이며 RGB 모니터 혹은 LCD 등을 연결할 수 있는 커넥터도 내장되어 있다. FDD 커넥터도 IQ2000 과 동일한 형태로 내장되어 있고, Zemmix Neo에서 파생된 모델이므로 스캔라인 제너레이터 기능이 기본 내장되어 있다. 본인들의 말로는 키보드 내장형 MSX로는 세계 최소형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바이오스에도 대대적인 수정을 가하여 한글과 일본어가 동시에 지원되어 어떤 면에서는 실기 MSX보다 언어 호환성은 더 높다고 할 수 있다.(한글용 프로그램과 일본어용 프로그램이 동시에 지원)

러시아의 개발사 'AGE Labs'에서도 2011년에 복각버전 MSX인 'GR8BIT'라는 제품을 제작했다.(#) 컴퓨터 하드웨어 학습용 키트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1칩 MSX에 비해 좀더 본격적인 것이 특징. 메인보드와 CPU 보드, IO 보드 등이 분리되어있으며 메인보드는 ATX 규격에 맞추어져 있으므로 일반 PC용 케이스와 전원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에뮬레이터도 잘 돌아간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에뮬레이터는 blueMSX로 상당한 호환성과 다양한 하드웨어 에뮬레이션을 제공한다. SDL 기반의 멀티 플랫폼으로 제작되는 에뮬레이터인 openMSX 역시 완성도가 높고 다양한 플랫폼을 지원하는 것이 장점이지만 인터페이스가 약간 불편해서 윈도 환경에서는 blueMSX보다는 덜 쓰이는 편이다. Marat Fayzullin이라는 개발자가 94년부터 제작하고 있는 전통의 에뮬레이터인 fMSX 역시 유명하다. 안드로이드에서 구동되는 MSX 에뮬레이터도 있는데, 우선 fMSX의 안드로이드 포팅버전이 있고 blueMSX를 베이스로 개발한 MSX.emu라는 에뮬레이터도 있다. MSX.emu 쪽은 유료 앱이고, fMSX 쪽은 유료판과 무료판[52]이 존재한다. 이외에 openMSX와 paraMSX[53] 등도 유명하다.

파일:external/pc.watch.impress.co.jp/image02.jpg
한편으로는 PC 본체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키보드와 본체를 일체화 시키는 제품이 간혹 출현하고 있는데(#, #), 이런 제품들이 MSX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MSX를 접하지 못한 세대들은 노트북에서 화면을 떼서 쓰는 것이 아닌 노트북에서 화면을 버리고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키보드 일체형 PC는 코모도어 64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동세대 8비트 PC에는 흔한 레이아웃이어서 MSX의 전유물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저런 형태의 PC로 제일 유명했던 것은 역시 MSX일 것이다. 국내에서 동세대를 양분한 애플II 계열 역시 일체형이기는 했으나, 모니터를 올릴 수 있는 넓적한 본체 앞에 키보드가 튀어나온 형태라서 모습이 달랐다.

어떤 재야의 괴수는 여기서 mp3를 재생했다.(...)#

7. 게임[편집]

8. 관련 문서[편집]

[1] 발매 당시에는 Microsoft Super eXtended, MicroSoft X(X는 미지수의 X라나... IT 들이라면 어디라도 한 번 쯤 남발했던 그 X다. OS X는 아니다), MicroSoft X(cross) compatible 등의 이설이 있었고, 한때는 실제로 그것들 중 몇 가지가 공식적인 약칭이었지만 현재 MSX 어소시에이션에서 인정하는 공식 약칭은 니시 카즈히코의 발언에 따라 Machines with Software eXchangeability 뿐이다. 여담이지만 규격에 적극적이던 두 참가업체의 이름을 따서 Matsushita Sony X(X는 나머지 업체들)였다는 설도 있지만 이것은 공식적으로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2] 1985년 니시 카즈히코의 발언에 따르면, 원래 MSX는 MX 미사일에서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소프트웨어 호환 기계 따위는 나중에 지은 말이라고.[3] 일단 NECPC-8801PC-9801이나 코모도어의 코모도어 64아미가처럼 세대나 타겟 시장이 다르면 같은 회사 제품이라도 호환성이 없는 게 당연했을 정도였다. 좀 심한 경우로 샤프전자의 MZ시리즈와 X1시리즈는 같은 8비트 머신에 가정용 타겟이고 CPU까지 같은 주제에 사업부가 다르다는 이유로 호환성이 없었다.(...)[4]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금성 패미콤과 삼성 퍼스컴의 동시대 발매된 모든 라인업이 전부 비호환이다.[5] NEC, 후지쯔는 PC 이전부터 중, 대형 컴퓨터를 만들던 회사였고 샤프는 그 시절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정신이 매우 강한 회사였다. 이 밖에도 중, 대형 컴퓨터를 만들던 히타치 또한 일찌기 자체 아키텍쳐의 PC를 만들었지만 점유율은 위 3사보다 낮았다.[6] 1982년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로 컴퓨터가 선정되는 등 당시에는 컴퓨터 붐이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었다.[7] 사실 PC 문화는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 시작했고, 이후 일본에 상륙한 뒤, 동아시아(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로 전파되었는데 유럽에는 동아시아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PC 문화가 전파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생적 PC 문화가 늦게나마 생긴 영국, 프랑스, 독일을 제외한 상당수 유럽 국가(특히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의 경우 일본에서 들어온 MSX가 그들의 첫 PC 문화이다. 물론 경제력이 동아시아 4마리 용 보다 앞섰던 관계로 기기의 보급 및 문화의 정착은 훨씬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참고로 프랑스의 THOMSON에서도, 네덜란드의 필립스에서도 MSX 기종을 선보였다.[8] 물론 소수 얼리 어답터들만이 향유했던 PC 문화는 유럽에도 꽤 일찍부터 있었다. 여기서의 PC 문화는 어느 정도 일반에게도 보급되어 연관산업이 생긴 시대를 말한다. 한국의 경우, 1983년에 이를 정부주도로 밀어붙였기 때문에 첫 PC 도입에서 PC 문화 발전까지의 시기가 유례없이 빨랐는데 이게 예외적인 경우.[9] MSX2+ 규격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MSX에서 점차 손을 떼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확인 바람.[10] 이 기종을 금성사가 라이센스해서 발매한 것이 금성 패미컴 FC-150이고 디테일을 좀 바꿔서 삼성 퍼스컴 SPC-500으로도 발매되었다.[11] 디스크 드라이브 연결포트와 배선이 완전히 동일했다[12] 그래도, 당시 기술력으로 움직이는 오브젝트 표현은 2색이 한계였기 때문에, 스프라이트에 디테일을 준 게임(ex: 컴파일걸케이브, 자낙 등)들은 오브젝트가 배경스프라이트에 묻혀서 보기 어려운 경우가 잦았다.[13] 심지어 파이프오르간을 MSX로 컨트롤하기까지 했다![14] Z80은 호환되는 CPU가 종종 있는데 이런 것도 관계가 없다는 이야기. 실례로 일부 MSX 기종 중에는 히타치의 Z80 상당품인 HD64180을 탑재한 경우가 있다.[15] 기종별로 TMS9928, 9929 등을 쓰기도 하였다.[16] 일종의 패턴을 미리 정의해 놓고 이를 화면에 덮어서 표현하는 방식. MSX에서는 각각의 패턴은 8×8 크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를 화면에 8×8 단위 위치에 표시하도록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이용할 수 있는 패턴의 수로 화면을 모두 덮을 수 있어서 비트맵에 가깝게 이용할 수도 있었다. 다만 가로 8픽셀 단위로 팔레트에서 2색만 선택할 수 있는 제한이 있었다. 이로 인해 생기는 제한은 여기 참고. MSX BASIC 등을 이용해서 SCREEN 2 모드로 진입 후 아무 색이나 선택해 도형을 그리고 다른 색을 선택해 그 위에 도형을 또 그려 보면 제1색으로 그려진 도형의 일부분에 제2색이 전염(?)되어 표시되는 것을 볼 수 있다.[17] IBM PC 호환기의 EGA보다는 확실히 낫고 VGA보다는 좀 못하거나 경우에 따라 비슷한 정도다. 스프라이트와 VDP 커맨드 등을 사용한 게임 가속의 도움을 받으면 게임용으로는 VGA를 단 XT/AT보다 못하다고 하기 어려웠을 정도.[18] VDP 커맨드를 사용해 하드웨어스크롤을 흉내 낼 수는 있었다.[19] MSX2의 스크린4와 스크린5를 상하로 섞은 변태 스크린모드를 사용해서 스크린5에는 고정표시용 스크린으로 사용하고 스크린4에는 8도트간격의 횡 스크롤과 1도트 간격의 스크린위치조정 기능을 섞어서 마치 1도트씩 스크롤 되는 것처럼 보이는 부드러운 횡 스크롤을 구현했다.[20] 사실상 MSX2에서 부드러운 횡 스크롤을 구현한 최초의 게임은 사이코 월드(1988년).[21] 실제로는 극히 드물지만 호환이 되지 않는 소프트웨어가 있기는 하다. 약간의 조정으로 해결이 가능한 문제이므로 MSX2에서도 호환이 되도록 조정되어 재발매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22] 이 기능 덕에 단종 이후에도 비디오 자막 작업 기기로서 오래 살아남았다.[23] 당시 FDD는 상당히 비싼 주변기기였다.[24] 애드리브 카드에 쓰인 것으로 유명하다.[25] TMS9918의 커스터마이즈/성능개량 버전. TMS9918과 상위호환성을 갖춘다. 여담이지만 원조 TMS9918과 야마하의 커스텀 버전인 V99x8 시리즈는 미묘하게 색감이 다르다. TMS9918 쪽이 약간 채도가 낮아 부드러워 보이고 야마하 쪽은 선명한 원색이라는 느낌.[26] 사람의 눈이 색상보다 밝기에 민감한 것을 이용한 것이다. JPEG, MPEG 등에도 크로마 서브샘플링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기능이 있다. 특히 MPEG의 4:1:1이 YJK와 유사한 배열을 하고 있다.[27] 재믹스 시리즈는 부품 재고처리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추정을 하는 것이다. 초기 재믹스였던 CPC-50은 MSX2인 CPC-300(IQ-2000)이 나오면서 기존의 MSX1용 VDP를 처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고 MSX2 규격인 재믹스 슈퍼V(CPC-61)은 교육용 PC 사업으로 MSX 사업 자체를 접으면서 남아도는 MSX2용 VDP를 처분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따라서 대우전자가 재믹스 모델 하나를 새로 만들만큼 대량의 V9958과 Z80B의 재고를 갖고 있었다는 것은 교육용 PC 사업 발표 전에 MSX2+ 규격의 기종을 준비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하게 만드는 부분.[28] 예외적으로 워드프로세서 내장 기종인 파나소닉 FS-A1WX, FS-A1WSX는 규격 외품인 Z80B@5.38MHz를 사용하였다. 평소에는 3.58MHz로 동작하지만 내장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할 때는 5.38MHz로 동작하여 빠른 속도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MSX2용 워드프로세서들을 굴려보면 알겠지만 대체로 입력 후 반응이 상당히 느리기 때문에 취한 대책. 참고로 재믹스 터보도 고속모드를 지원한다.[29] CPU의 클럭은 2배 밖에 상승하지 않았으나 8비트 호환모드 사용 시 기존 Z80 대비 클럭 당 처리 능력(IPC) 향상에 의한 것이었다. 실제로는 최대 10배까지 속도 차이가 나는 커맨드가 있다고도 한다.[30] 물론 풀셋을 갖추면 30만엔을 넘어가는 X68000 같은 놈도 있었고 10만엔을 넘는 컴퓨터는 드물지 않았지만 MSX가 원래 3만엔대에서 출발한 홈컴퓨터 콘셉트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가격이 오른 것이다. 전 세대였던 MSX2+의 경우 대부분 69,800엔 선.[31] IMF때 부도를 맞았던 그 큐닉스 컴퓨터 맞다.[32] 당시 삼성은 자체 기종인 SPC-1000 쪽의 사업에 더 치중했다. MSX 규격인 SPC-800은 부업(...) 수준으로 하다가 곧 접었다.[33] 합팩 형태로 여러 가지 게임 중에 하나를 고르게 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때 게임 선택을 키보드로 하게 되어있기도..[34] 금성은 이미 1985년 봄부터 업무용 16비트인 '마이티' 시리즈에 주력하게 되면서 개인용 8비트인 패미콤 시리즈를 단종시킨 상태였다. 삼성도 금성이 업무용 16비트 컴퓨터에 집중하는 것을 보고 같은해부터 그럭저럭 잘 나가던 SPC-1000 라인을 제외한 나머지 8비트 라인업은 모두 단종시킨 상태였다. SPC-1000 마저도 1986년 여름에 단종된다.[35] CPC-300(IQ-2000)에서는 조합형 고딕체 한글만을 지원했다. 참고로 완성형 한글이라고 해도 PC 쪽의 KS C-5601 코드와는 다른 것이고 한글 코드는 2바이트 상용 조합형과 호환성이 있다. 2바이트 조합형을 채용했던 CPC-300의 한글 바이오스 2.0 버전과 호환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36] 컴퓨터에 동영상을 저장하는 기능은 아니고, 슈퍼 임포즈/디지타이즈 기능이라고 영상을 입력하면 배경으로 표시되고 여기에 자막 등 그래픽을 추가하여 출력하는 기능. 원래 MSX2 사양에 옵션으로 제공되는 것인데 CPC-400S에서는 이 기능을 내장하였다. CPC-400에서는 옵션으로 추가 가능. 일부 업소나 유선방송 등에서는 이것을 비디오 자막기 용도로 활용하기도 하였다.[37] 1987년 발매 당시 정가는 CPC-400이 65만원, CPC-400S가 78만원. CPC-300의 2배 이상에 육박하는 가격으로 당시 물가를 고려하면 매우 고가였다. 다만 3.5" 1FDD를 내장하고 있었는데 단품으로 사려면 299000원짜리였기 때문에, CPC-400이 CPC-300보다 비싸다고 할 수는 없었다. 둘 중에서는 당연히 CPC-400이 나았고 카세트드라이브의 악명을 모르거나 파업 등으로 물량이 없는 경우에나 구기종을 샀다.[38] IQ-2000 에서는 정내권씨가 만든 한글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했다. IQ-2000의 screen 9 모드 한글은 매우 느렸지만, 정내권씨의 프로그램은 무척 빨라서, 당시 초창기였던 IBM PC 8088/8MHz + 허큘리스 카드 상에서 동작하는 워드프로세서가 표현하는 한글과 비교해 그렇게 딸리지 않았다.[39] MSX용 3.5인치 1FDD가 29만8천원이었다. 참고로 2FDD는 39만8천원.[40] 단, 여기서의 우월한 성능이라는 것은 업무용에 한한다. 게임용으로는 아무런 추가 파츠를 달지 않고도 미려한 컬러 그래픽과 화음이 나오는 MSX가 확실히 우위였기 때문에, 16비트라는 녀석이 왜 8비트만도 못한 삑삑거리는 소리와 흑백 화면만 보여주는 건지 의문을 갖는 사람도 많았다(초창기 16비트 교육용 PC는 256kB램, 약 600*400 해상도 모노크롬 비디오카드, 5.25" 1FDD에 12인치 이하의 그린모니터 조합이었고, 마우스조차 옵션이었다). 물론 93~94년쯤 되면 고해상도에 하드웨어 가속기능이 들어간 비디오카드와 사운드 블래스터 호환 사운드카드가 기본 옵션화 되면서 대중화되며 게임 성능도 따라잡혔지만, 92년까지만 해도 모노크롬 모니터에 애드립 카드조차 달지 않은 사양을 교육용으로 팔았다. 80386+80387+SVGA+no sound card = CAD용으로 인식되던 시절.[41] MSX DOS가 MS-DOS의 마이너판이라 디스크IO 시스템콜은 MS-DOS와 똑같이 느껴질 만큼 비슷하다.[42]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인텔 8080용 어셈블러. 원래 CP/M에서 쓰던 건데 MSX-DOS가 CP/M과의 호환성이 있는 관계로 MSX에서도 많이 쓰였다. 하지만 MSX에서는 MSX-BASIC에서 주석문 형태로 코드를 작성하고 어셈블이 가능했던 MAD80(미쳤다는 뜻이 아니라 Monitor Assembler Disassembler의 두문자를 딴 이름이다)의 사용률이 더 높았다.[43] 어찌 보면 오늘날의 탈네모꼴 글꼴과 비슷한 자형인데, 의도적으로 이렇게 만든게 아니라 기술적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자형이다.[44] 기존 방식이 스크롤할 부분을 모두 비디오램을 이동시키는 것인데 반해, V9938에 내장된 VDP커맨드를 사용하면 고속 영역복사가 되고, 커서가 화면 맨 아래로 내려가거나 맨 위로 올라간 뒤의 화면 전체 스크롤 업, 스크롤다운은 그냥 화면 자체를 롤 업, 롤 다운해버리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45] 3.5인치 더블 외장형 FDD가 39만8천원으로 IQ-2000본체 가격인 34만5천원보다 조금 더 비싼 수준을 자랑했다. 심지어 IQ-1000 시판 시기에 나온 5.25인치 2D만 지원하는 싱글 외장형 FDD는 49만9천원, 더블 외장형 FDD는 무려 79만9천원이었다! 대우 IQ-1000 최상위 사양인 DPC-200의 정가가 29만8천원이었으니 거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던 것이다.[46] 하도 FDD가 비싸서 데이터 레코더, 퀵 디스크 드라이브같은 저속 미디어를 울며 겨자 먹기로 사용하거나, 심지어 종이에 출력한 기계어 바이너리를 한 땀 한 땀 직접 입력하는 눈물겨운 노가다를 하는 유저들도 많았다.[47] 당시에는 정품 소프트웨어 유통망이 없다시피...가 아니라 그냥 없어서 지역마다 있는 소프트웨어 가게에서 대량의 소프트웨어를 구비해두고 이를 일정 액수를 받고 플로피 디스크에 복사를 해주는 시스템이 정착되어있었다. 복돌문화의 출발점[48] 핸드어셈블부터 시작한다. 맨 뒷부분에 콘웨이의 라이프 게임 코드가 실려 있다.[49] 사실 마이크로소프트웨어의 16비트 중신으로의 개편은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다.[50] FC-150과 비슷한 평평하고 얇은 키캡을 사용했는데 재질마저 플라스틱이었는데다 유격이 별로 없어 키감이 매우 뻑뻑했다. FC-150의 경우 고무키보드였기에 키감이 이보다는 나았다.[51] 이러한 64KB 램 탑재 모델은 베이직 롬 내용 전체를 램으로 복사 후 램 영역만 선택 사용하는 방법으로 베이직 인터프리터 등 시스템영역에 대한 약간의 조작이 가능했었다. 폰트 두껍게 만들기 등등...[52] 무료판은 FD 파일 교체가 없는 등 일부 제한이 있다.[53] 개발자가 운영하는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