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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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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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S_로고.png 가요대상 대상

임창정
그때 또다시
(1997)

H.O.T.

(1998)

조성모
For Your Soul
(1999)


파일:mbc.png 가요대상 대상

김건모
스피드
(1996)

H.O.T.
행복
(1997)

H.O.T., 김종환

사랑을 위하여
(1998)

H.O.T.
행복
(1997)

H.O.T., 김종환

사랑을 위하여
(1998)

조성모, 송대관
For Your Soul
네 박자
(1999)


파일:SBS로고.png 가요대전 대상

클론
꿍따리 샤바라
(1996)[1]

H.O.T.
행복
(1997)

H.O.T.

(1998)

H.O.T.
행복
(1997)

H.O.T.

(1998)

핑클
영원한 사랑
(1999)


파일:골든디스크 시상식_로고.png
음반 대상

김건모
<스피드>
(1996)

H.O.T.
<행복>
(1997)

김종환
<사랑을 위하여>
(1998)


파일:seoulmusicawards2.png
서울가요대상 대상

클론
꿍따리 샤바라
(1996)

H.O.T.
We are the Future
(1997)

젝스키스, H.O.T.
커플

(1998)

H.O.T.
We are the Future
(1997)

젝스키스, H.O.T.
커플

(1998)

조성모, 핑클
상처
영원한 사랑
(1999)


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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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

H.O.T.

영문

High-five Of Teenagers

멤버

문희준, 장우혁, 토니 안, 강타, 이재원

활동기간

1996년 9월 ~ 2001년 5월

데뷔

1996년 9월 정규 앨범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

장르

댄스, 갱스터 랩, 발라드, 힙합, R&B, 테크노

소속사

SM 엔터테인먼트 (1996~2001)

파일:highfiveofteenager-20180223-155603-000.jpg

2018년 토토가3 - H.O.T.로 17년 만에 재결합한 모습
(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토니 안, 장우혁, 문희준, 강타, 이재원


1. 개요2. 그룹명3. 멤버4. 영향과 파급 효과5. 장르6. 평가
6.1. 실력6.2. 작사/작곡
7. 해체
7.1. 노예계약7.2. 개인 활동 및 이슈
8. 재결합9. 팬덤
9.1. 팬픽 문화의 시초
10. 표절 논란11. 음반12. 콘서트13. 수상내역

1. 개요[편집]

SM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었던 5인조 남성 아이돌 보이밴드다. 1996년 9월 7일에 데뷔, 2001년 5월에 사실상 해체되었다. 데뷔하자마자 신드롬을 일으키며 1990년대 후반을 평정한 전설의 아이돌 그룹이고 중국 시장까지 사로잡아 한류의 문을 연 그룹이다. 아이돌 그룹 최초로 연간 최다 음반 판매량 달성, 방송 3사 가요대상 그랜드 슬램 달성, 자작곡으로 대상 수상, 국내가수 최초로 잠실 주경기장 공연 매진, 역대 최대 팬클럽 등 전설적인 아이돌답게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1996년 9월 7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첫 데뷔하여 1집 타이틀곡인 학원폭력을 주제로 한 갱스터 랩 '전사의 후예'로 주목을 받았다. 1996년 10월 중순경부터 KBS 가요프로에서 10위권, MBC에서는 4위에 안착했으며 1996년 11월 17일 SBS TV가요20에서는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이어서 후속곡인 '캔디'가 메가히트급으로 대박이 나면서 최정상의 인기를 거머쥐게 되었고, ‘행복’[2], ‘We are the future’, ‘열맞춰’, ‘빛’[3], ‘아이야’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9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데뷔곡 ‘전사의 후예’ MV


1집 후속곡 ‘캔디’ 무대

2018년 현재는 다양한 컨셉의 아이돌 그룹들이 춘추전국시대를 이루고 있지만 1990년대 후반은 그냥 H.O.T.로 10대들이 단결할 수 있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나마 유일한 라이벌로 젝스키스가 활동했지만, 실질적인 인기는 H.O.T.의 적수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H.O.T.의 대성공으로 한국 대중가요계는 빠른 속도로 아이돌이 주도하는 가요계로 재편됐다. 당장 젝스키스부터가 타도 H.O.T.를 기반으로 등장한 그룹이다. 그외의 수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대중음악을 다루는 프로그램엔 아이돌 그룹들이 거의 점령하게 되었다.[4] 1990년대 후반 대중가요계의 판도를 바꾸는 변화의 시초격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 그룹이다.[5]

서태지와 아이들을 아이돌 그룹의 태동으로 본다면 H.O.T.는 아이돌 그룹의 정의를 완성한 그룹이다. 현재 거의 모든 아이돌 그룹들이 담당하고 있는 구성들인 메인 보컬(강타), 서브보컬(문희준, 토니안), 래퍼(장우혁, 이재원) 등의 구성이나 성격적/음악적 설정들인 카리스마 리더(문희준), 대표비쥬얼(강타), 댄디한 훈남(토니안), 남성다움(장우혁), 순수한 막내(이재원) 등 현재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에게 등장하는 기믹과 컨셉적 역할들을 최초로 완벽히 구현한 선배 아이돌 그룹이다.

실제로 2집의 수록곡인 Go! H.O.T.! 의 가사에서 멤버들의 이미지를 위트 가이 희준, 섹시 가이 강타, 무드 가이 토니, 와일드 가이 우혁, 샤이 가이 재원이라고 칭했으며 1집 캔디 때부터 멤버 각자에게 고유 번호[6]와 고유 컬러[7]를 부여했다.[8] H.O.T.의 아이돌 그룹의 구성은 나중에 거의 모든 아이돌 그룹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당장 H.O.T.가 데뷔하고 바로 데뷔한 젝스키스, NRG, 신화, god 등 다른 1세대 남성 아이돌 그룹들도 H.O.T.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나 당시 아이돌 업계에서 나름 선구자였던 DSP의 이호연 사장은 H.O.T.의 성공을 보고 급하게 듀엣에서 6인조 그룹으로 노선을 수정해 젝스키스를 데뷔시켰다.[9]

2. 그룹명[편집]

이 그룹의 정확한 이름은 'H.O.T.'로 표현해야 좋은 말로 할때 반드시 쩜을 세개 다 찍어야 한다. High-five Of Teenagers의 약자며 '10대들의 승리'를 의미한다. 앨범 재킷에 확인해보면 Teenagers 하고 확연히 표시되어 있음에도 복수가 아닌 Teenager 단수로 사용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god와 H.O.T.가 함께 출연한 방송에서 김태우의 말로는 원어민인 박준형이 H.O.T.의 뜻을 듣고 웃었다는 후문이 있다.

초창기에는 너도 나도 '핫'으로 읽는 통에 난감했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첫 데뷔 무대에서 김혜수는 H.O.T.와 '핫'을 동시에 사용하기도[10]. H.O.T.를 어떻게 읽느냐로 신세대와 구세대를 판단하기도 했다. 약칭도 있는데 에쵸티 혹은 쵸티.

3. 멤버[편집]

  • 문희준(1978년 3월 14일생) 리더, 리드댄서, 안무 담당, 서브 보컬, 래퍼 예능 담당, 위트가이

  • 장우혁(1978년 5월 8일생)[11]: 메인댄서, 안무 담당, 리드래퍼 짐승랩, 샤우팅 랩 담당, 와일드가이

  • 토니 안(1978년 6월 7일생): 서브 보컬, 래퍼 영어 랩 담당, 무드가이

  • 강타(1979년 10월 10일생[12]): 메인 보컬 비주얼 담당, 섹시가이

  • 이재원(1980년 4월 5일생): 메인래퍼 막내 담당, 샤이가이


처음 결성 당시에는 졸업 시스템을 적용해서, 20세가 되면 탈퇴하고 새 멤버를 받는 식으로 운영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 외로 큰 인기를 끌면서 그냥 그대로 가기로 했다고. SM은 이후 슈퍼주니어에서 졸업 시스템을 계획했지만 역시나 팬들의 큰 반발로 무산되었다.

참고로 원빈이 데뷔 전에 SM에 오디션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이수만이 원하던 컨셉과는 이미지가 안 맞아서 탈락했다고 한다. 만약 붙었다면 십중팔구 에쵸티 멤버가 되었을 거라고. 김종민 역시 이 당시에 오디션을 봤었는데 백댄서부터 시작하라는 말을 듣고 탈락인 줄 알고 스스로 그만뒀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문희준이 밝히기로 그게 합격 통보였다고. 만약 김종민이 그대로 남았다면 김종민 역시 H.O.T. 멤버가 되었을 확률이 높다. 이외에 개리, 앤디, 황대균, 장용진[13] 등 여러 후보가 있었다.[14]

4. 영향과 파급 효과[편집]

10대들의 대통령[15]

당시 영세 기획사였던 SM엔터테인먼트를 한국 최고의 기획사로 키워낸 그룹으로[16], 서태지와 아이들의 혜성같은 등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10대 팬덤을 타켓으로한 기획형 아이돌의 시작이다. 이때부터 대형기획사가 철저하게 사전분석하고 조립한 아이돌의 댄스뮤직이 대중문화를 석권하고 한류의 시작이 된다.[17] 이때 외국에서의 인기도 엄청나서, 2000년초 중국에서 한국가수 최초로 베이징단독콘서트를 개최하였고[18] 중국언론에선 한류가 몰아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련기사 2000년말에는 중국에서 농심의 광고모델을 하였으며영상 '당대가단'이라는 중국음악잡지에서 해외인기가수 순위 1위를 장기간 유지할 정도로 인기가 상당했다. 당시 중국의 H.O.T. 팬 수가 800만명이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였다. 따로 활동하지 않던 일본이나 아시아권 뿐만 아니라 북미와 유럽권에서도 매니아층이 있었으며, 미국 MTV VMA에서는 1999년에 'international viewer's choice'라는 부문에서 H.O.T.의 '열맞춰' MV가 수상하였다. 관련기사
파일:IMG_7526.jpg
베이징콘서트


1999 MTV VMA 수상 장면

파일:6CE87E74-5ED3-48EC-BDFA-1CC92C39C89A.png
<시사저널>에서 발표한 문화 • 스포츠인 영향력 순위에서 1999년에 종합 5위로, 배우, 가수를 통틀어 연예인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였다.[19]

서태지 문화를 향유하기에는 조금 어렸던 사람들 대부분(통상적으로 1996년~2000년경 초등학생~중고등학교 학생이었던 사람들)은 H.O.T.에 관한 추억들이 남아있을 것이다. 1992년~ 1995년 당시 초등학생 때 서태지와 아이들 신드롬을 본 그 초등학생들이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 1세대 아이돌 문화의 주축이 되었다. 실제로 서태지 세대보다 어린 사람, 1996년~2000년경에 초등학생~중고등학생이었던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H.O.T. 세대"라고 칭하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흔히 서태지 세대는 70년대생(X세대)이며 H.O.T.세대는 80년대생(N세대)로 구분된다.[20]

음반판매량은 1집 100만장으로 시작해서 2집이 150만장[21], 3집이 110만장에 4집 138만장, 5집 88만장으로 네 개의 밀리언셀러 앨범 기록을 세웠다.

“돌멩이에 H.O.T.이름만 새겨도 팔린다.”는 말이 생길정도로 H.O.T.관련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1집 캔디 무대에서 착용했던 장갑, 가방, 모자, 먼지인형집게 등을 착용한 학생들을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영상참조 그외에도 H.O.T. 사진이 들어간 공책, 지우개, 편지지, 저금통 등 온갖 학용품과 팬시상품들이 팔렸다.

인기에 힘입어 H.O.T.자서전도 출간되었다. 출간 이후 열흘만에 베스트셀러 1위를 달성하여 역사상 최단 기록을 세웠다.당시 기사 단순히 팬들만 사는 “굿즈”차원을 넘어 일반 서점가를 강타하며 베스트셀러가 되자 기성세대들이 “나이도 어린데 무슨 자서전을 내냐”고 한마디씩 거들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1999년에는 H.O.T. 캐릭터를 그려넣은 ‘틱톡에쵸티’라는 음료수도 발매되었다. 폭발적인 판매량으로 당시 음료업계 1위였던 코카콜라의 판매량을 앞지르기도 했다. 종류는 핑크, 블루, 그린 세종류. 디자인은 3종 모두 밝은 형광색으로 한것이 특징. '이 음료수는 신기하게도 전부 모아 섞으면 투명한 색으로 변한다'라는 루머가 있었지만 그럴 리가...광고영상

3집 무렵엔 한불 화장품과 손을 잡고 H.O.T. 향수도 발매했으며, 4집 때는 DNA 목걸이를 팔기도 했다. 이 무렵엔 '평화의 시대'라는 한일합작 3D입체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흑역사 흥행 실적 약 2만4천이라는 성과로 묻혔다.[22] 보다 보면 정말 열심히 연기하는 멤버들이 불쌍할 지경. 아이러니하게도 멤버들이 프로듀싱한 평화의 시대의 OST 음반은 30만장이 팔렸다고 한다.[23]

영화 평화의 시대의 사운드트랙 'OP.T' MV. 문희준이 작사/작곡/편곡을 맡았다.

1998년, IMF외환위기에 해외관광객 유치를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스포츠스타들, 주요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한 국가홍보CF에 대중음악 보이그룹으로는 유일하게 출연하였다. 해당영상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후보 시절에도 좋아하는 가수로 H.O.T.를 꼽았고기사참조, 1998년 10월에는 H.O.T.를 청와대에 초청하여 오찬을 함께하였다. 오찬 소감 영상(30초 부터)

그 외에도 당시 해외가수에게만 대관되던 잠실주경기장에서 최초로 단독콘서트를 한 국내가수며 콘서트를 이유로 지하철 막차 시간을 바꾸고 교육청에서 조퇴금지령을 내린 가수였다.

5. 장르[편집]


간단하게 보는 주요 활동곡들

활동 당시 모습은

  1. 타이틀곡은 사회비판 가사와 강렬한 SMP(SM Music Performance)가 인상적인 반항적인 곡으로 활동
    2. 후속곡은 밝고 귀여운 곡 or 얌전한 가창력 발라드곡


이런 설정이 반복된다. 이는 같은 회사의 후배 가수들도 이어 받게 되는 SM의 전형적인 설정인데 이러하다 보니 보통은 타이틀곡보다 후속곡이 대중들에게 더 많은 인기를 얻는 것이 대부분이다. H.O.T.의 대표곡 중 하나인 캔디, 행복, 빛이 대표적.[24] 예외로 4집은 타이틀곡인 아이야나 후속곡인 투지 모두 1번 속성을 가진 노래인데, 두 노래 모두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4집의 타이틀곡인 아이야는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의 추모곡으로 인기를 얻었다.[25][26] 4집은 H.O.T.의 음반 중 가장 명반으로 손꼽히는 음반이기도 하다.[27]

매 앨범마다 기대치와 주목도가 높았던 만큼, 활동 당시에 굉장히 트렌디하고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였다.

  • 갱스터 랩: 전사의 후예, 늑대와양, Korean pride

  • 얼터너티브 락/클래식 크로스오버(SMP): 열맞춰, 아이야, NBK, Outside castle, Age of Peace, 투지

  • R&B: 널 사랑한 만큼, 후에, The way that you like me,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우리들의 맹세, Tragedy, 내가 필요할 때

  • 발라드: 늘 지금처럼, 하나라는 아름다운 느낌, 너와 나, 축복, For 연가, 꿈의 기도

  • 힙합: Puhaha, You got gun, Do or die, Good-bye 이젠,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열등감, 버려진 아이들, Monade, 8.15, in I, My mother, 홀로서기

  • 테크노: 테크노러브[28], 영혼, 투혼, op.t

  • Funky 댄스: 빛, 캔디, 행복, H.O.T.(아빠 사랑해요), 그래 그렇게

  • 유로비트 댄스: We are the future

  • 트립 합/팝: Wedding X-mas

  • 드럼 앤 베이스: 환희, 신비, the Best, illusion

6. 평가[편집]

현재는 아이돌 시장이 케이팝 시장을 견인하며 나름의 영역으로 존중받고 있지만, 아이돌이 처음 등장했던 90년대 후반만해도 ‘아이돌’이란 단어조차 생소했으며 개념이 정립되지 않아 아이돌 그룹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한국형 아이돌의 시초이자 얼굴격이었던 H.O.T.는 언론과 평론가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10대들은 왜 이들에게 열광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이들의 인기요인을 분석하는 칼럼이나 뉴스 보도도 등장하였다. 부정적인 평가로는, ‘기획사의 철저한 전략으로 만들어진 상품이다’, ‘10대 청소년들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된다’, ‘기획사에서 만들어주는 음악을 한다.’ 등이 주요 비판 내용이었다. 한 방송사에서는 고교생 가수의 출연을 금지한다는 방침을 발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29] H.O.T.의 대성공으로 아이돌 그룹들이 가요계를 장악하자 성인층 가수들의 설 자리가 없다는 비판도 많았다.

긍정적인 분석도 있었다. 라디오 음악PD들이 집필한 <에쵸티 즐거운 반항>이란 책에서는 이들의 인기요인을 ‘차별화와 일체화’ (각기 개성이 뚜렷한 멤버구성으로 ‘다름’을 내세우면서도 집단 유행에 뒤쳐지지 않는 10대들의 특성을 충족), ‘재빠른 변신’ (곡마다 달라지는 빠른 컨셉 변화로 급변하는 젊은이들의 취향에 기민하게 대응), ‘착한 이미지’(H.O.T.에 열광하는 자녀들을 걱정하는 부모들을 안심시키고 좋아해도 무해하다고 허락하게끔 만든 모범생 이미지)라고 분석하였고 이전까지 이런 지위를 누린 가수는 없었다고 평하였다.

사실 H.O.T.는 대중들의 선입견과는 달리, 음악이나 컨셉, 안무 등의 창작 전반에 많이 참여한 아이돌이기도 하다. 안무는 문희준과 장우혁이 거의 다 만들었고, 데뷔 초부터 멤버들이 스스로 작곡 공부를 하였으며[30] 3집부터 모든 멤버가 앨범제작 전반에 참여하여 타이틀곡[31]이나 후속곡[32]도 자작곡으로 활동하였다. 데뷔 초반의 아이돌 이미지가 강한 탓에 이런 아티스트적인 면모는 많이 저평가되었고 현재도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6.1. 실력[편집]

1집과 2집에서 강타에게 비중이 치중되어 사실상 1보컬 4래퍼 체제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에서는 강타도 랩을 하는데 그러다 보니 노래의 80% 정도를 강타가 다 부르고 나머지 멤버들은 거의 한 파트씩 부르곤 했다.[33] 그러나 2집부터 파트 정리가 되면서 파트가 애매했던 이재원이 래퍼로 굳혀지고, 서브 보컬인 문희준과 토니 안의 보컬비중이 꽤 상승하여 3집 때부턴 두 사람이 가끔 강타보다 더 많은 파트를 맡기도 했다. 토니 안은 캔디에서 많은 클럽 H.O.T. 회원들이 그렇게도 단지라는 사람을 극혐했다는 킬링파트인 후렴구를 불렀고, 문희준 역시 캔디에서는 랩 없이 보컬만 했으며 사실 이 노래는 장우혁만 랩한다. 이재원도 짧게나마 노래만 한다 행복, 빛 등의 노래에서도 이 둘의 매력적인 보컬을 들을 수 있다.

SMP의 원조로서 카리스마있는 퍼포먼스를 잘 소화하였다. 퍼포먼스를 중시하다보니 립싱크 무대를 선호하였다. 90년대만해도 헤드셋 음향 기술이 발전되지 않아 라이브를 하려면 손에 마이크를 들어야했고 춤을 생략해야했기 때문에 퍼포먼스를 다 보여주기 위해서는 립싱크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34] (이건 H.O.T.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9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대부분의 가수들이 립싱크를 하던 시절이었다. [35])그렇지만 의외로 콘서트 영상이나 라이브 영상들을 찾아보면 나름 안정적인 라이브를 하는 영상을 찾을 수가 있다.[36] 물론 초창기엔 프로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라이브 영상들이 있는데 지금과 같은 트레이닝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멤버들은 훗날 데뷔 전 제대로 된 트레이닝을 받지 않았다고 고백했다.영상참조[37]이들은 안무도 본인들이 직접 짰다고 한다. 1집에 비해 2집과 3집의 라이브 영상을 비교해 보면 급성장한 실력들을 볼 수 있고 ‘늑대와양’, ‘열맞춰’, ‘we are the future’, ‘너와 나’의 라이브 무대들이 존재하며 2집 ‘행복’은 공중파 음악방송의 거의 대부분을 라이브로 활동했다. 2집부터 매년 개최했던 콘서트들에서도 대부분 립싱크 없이 라이브로 소화했다.


‘마이클잭슨과 친구들’ 공연에서 ‘열맞춰’ 라이브


2집 ‘행복’ 라이브 무대

기획형 아이돌, 기획사의 꼭두각시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지만 안무와 컨셉 등에있어 많은 부분들을 스스로 창작하였다.

문희준은 데뷔 전 부터 '송파구 노란바지'로 유명한 춤꾼이었고, 장우혁은 전국 청소년 댄스 대회에서 대상을 입상하여 sm에 스카웃 되었다. 이 둘이서 콘서트 곡 까지 H.O.T.의 모든 활동곡을 안무하였는데, 비교적 쉬우면서 포인트 안무를 잘 만들었던 문희준에 비해[38] 장우혁의 안무는 어려운 기교가 많이 들어가 안무 지분은 문희준이 장우혁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39] 대표적으로 '캔디'의 안무는 당시 전국의 초중고 학생들이 춤을 외울 정도로 유명하며 문희준이 바닥에 앉아 엉덩이를 튀기는 '파워레이서춤'과 장우혁의 '망치춤'은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늑대와양', 'We are the future'의 고난이도 안무와 '진공관춤' 역시 많은 청소년들이 따라하였다. 비보이 박재민은 수많은 춤꾼들과 댄서들이 H.O.T.의 춤을 보고 댄서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2집 ‘We are the future’ 무대


4집 ‘환희’ 무대[40]

또한 자신들의 의상 컨셉 및 타이틀곡 선정 등의 작업을 회사의 의견에 일방적으로 맡기지 않고 주도적으로 했으며 작사/작곡 작업을 시작한 후에는 직접 앨범 프로듀싱을 맡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캔디'를 데뷔곡으로 하려고 했으나 멤버들이 '전사의 후예'를 강력하게 밀어 데뷔곡이 바뀌었다고 한다. '캔디'의 의상 컨셉도 멤버들의 의견이 반영되어 만든 컨셉이며, 특히 장우혁이 패션에 관심이 많은 멤버였는데 직접 구상한 의상을 그림으로 그려 코디에게 주면, 그 그림대로 코디가 의상을 제작하여 주었다고 한다. 4집 ‘아이야’와 ‘투지’ 활동기에는 멤버들이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하였는데, 두발규제 방침이 있었던 kbs에서 H.O.T.에게 두건을 쓰고 출연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H.O.T.멤버들이 ‘두건 유행은 이미 지났고[41] 팬들에게 방송사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며 거절하여 4집 때는 아예 kbs에 출연하지 않았다.이수만도 이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4집 콘서트 중 ‘아이야’ 공연

6.2. 작사/작곡[편집]

멤버들은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데뷔초부터 작곡을 배웠고[42]3집부터 자작곡을 앨범에 싣기 시작하여 5집은 멤버들만으로 프로듀싱을 시도 하였다. 멤버 전원이 작곡/작사 뿐만아니라 편곡, 믹싱, 마스터링, 스크래치(장우혁)[43]까지 직접하며 뮤지션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노력했다. 3집의 후속곡인 '빛'은 강타가 작사/작곡한 노래며, 4집의 후속곡인 '투지'는 문희준이 작사/작곡했으며, 4집의 세번째 활동곡인 '환희'는 강타가 작사/작곡한 곡이다. 또한 5집 타이틀곡인 'Outside Castle'은 문희준이 작사/작곡한 곡이며, 5집의 후속곡인 '그래! 그렇게!'는 강타가 작사/작곡한 곡이다. 모든 자작곡의 영어랩은 토니 안이 메이킹하였다. 문희준은 ‘Outside Castle’의 오케스트라 선율을 샘플링이 아니라 직접 작곡해 만드는가 하면 ‘투혼’, ‘영혼’, ‘op.t’ 를 통해 ‘스페이스테크노’[44] 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등 아이돌 차원을 넘어선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45]

수록곡 중에는 3집 'You got gun'(이재원 자작곡)[46], 'Wedding X-mas'(강타 자작곡), '홀로서기'(토니 자작곡), 4집의 '영혼'(문희준 자작곡), 'Do or die'(장우혁 자작곡), 5집의 'NBK'(토니안 자작곡)[47]가 숨은 명곡으로 인기를 끌었다.

H.O.T.의 데뷔 시기는, 데뷔때 부터 아티스트 형으로 '앨범' 자체를 직접 만들어내던(앨범 전체를 기획, 작곡, 편곡하고 음반의 분위기, 연주 등 제작 전반을 지휘하고 완성한 경우임) 서태지와 아이들서태지, 듀스이현도 등 바로 직후였고, 그로인해 이런 선배뮤지션들, 특히 서태지와 자주 비교 당하였으며, 아이돌로서 충분히 거대한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기획되어 만들어진 아이돌 이미지(남이 만들어준 음악과 소속사의 강력한 지원으로 편하게 음악하는)’로 인해 안티 및 평가절하에 시달려야 했다. [48]

아이돌이란 태생적인 한계, 또 아이돌의 개념이 자리잡히지도 않은 90년대 말 고교생에 불과한 이제 막 연예인이 되었던 이들에게 '작사 작곡 연주 프로듀서등 의 모두'를 소화해내는 뮤지션이 아니라고 깍아 내렸던 것은 과도한 흠집 내기 였으며,[49] 5집 이후 올프로듀싱 앨범을 몇 번 더 내었다면 "완성형으로 성장한", "아이돌을 넘어선 뮤지션"이라는 더 큰 찬사를 받는것이 충분히 가능하였을 것이고, 본인들의 음악적인 커리어 역시 더 긴 수명을 가졌을 것이나, 그런 탑을 쌓기 전에 결국은, "어른들의 사정"에 의하여 안타깝게 해체되고 말았다.

아이돌의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던 시절, '완성형의 뮤지션'이 아니라며 평가절하 당하거나 하는, 지금으로서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비교당하고 안티가 만들어졌던 당시의 상황은, 당사자로서도 억울한감이 있을것이고, 그에 대한 불만을 방송에서도 여러번 표시 했었다. (강타-무릎팍 도사 출연 외)

해체 후 문희준은 락, 강타는 재즈와 발라드, 장우혁, 토니안, 이재원은 jtL을 결성하여 댄스음악과 힙합을 추구하며 자작곡을 꾸준히 창작하였다. 문희준의 솔로 초반의 곡들은 락매니아들과 안티들에게 집중공격을 받았으나 sm을 나가고 ps엔터테인먼트를 직접 설립한 후 낸 앨범인 'triple X' 부터는 서서히 호평을 받기 시작하였다. 문희준은 2001년 그룹 밀크(걸그룹)의 앨범 프로듀싱을 담당하여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jtL역시 'a better day'(이재원 작사/편곡), 'without your love'(장우혁 작사/작곡), 'enter the dragon'(jtL 공동작사/작곡) 등으로 활동하며 H.O.T.시절 다 보여주지 못했던 작곡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토니안 작곡의 'My lecon'은 인도네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재원은 2017년 태국 오디션프로의 음악프로듀서를 맡았다. 강타는 '북극성', '상록수', '프로포즈', ‘그 해 여름' 등 다수의 자작곡들을 히트시켰고 이지훈, 신혜성 듀엣의 ‘인형’, 보아의 '늘', 소녀시대의 '7989' 등 후배가수들에게도 곡을 주거나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음악감독을 맡는 등 싱어송라이터로서 자리잡았다.

자작곡

3집 (Resurrection)

1 빛 (Hope) : 작사/작곡/편곡 강타
3 투혼(鬪魂) :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4 우리들의 맹세 : 작사 강타, 유영진 작곡/편곡 유영진
6 In I -이세상에 버려진 모든 아이들을 위하여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8 Techno Love : 작사/작곡/편곡 강타
9 You Got Gun? : 작사/작곡/편곡 이재원
10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 작사/작곡/편곡 장우혁
11 홀로서기 (All Alone) : 작사/작곡/편곡 토니안
12 후에... (Since, You've Gone) :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14 Wedding X-Mas : 작사/작곡/편곡 강타

4집 ( I Yah! )

1.투지(鬪志) (Get It Up!) H.O.T :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7 나의 너 (My Girl) : 작사/작곡/편곡 강타
8 8.15 (제 2의 독립을 위하여...) :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10 Korean Pride : 작사/작곡/편곡 토니안
12 Do Or Die : 작사/작곡/편곡 장우혁
14 축복 (Celebrate) : 작사/작곡/편곡 강타
16 영혼 (Soul) :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18 Pu Ha Ha : 작사/작곡/편곡 이재원
20 환희 : 작사/작곡/편곡 강타
22 다시 시작해 : 작사/작곡/편곡 이재원
24 고마워, 미안해 : 작사/작곡/편곡 강타

평화의 시대 O.S.T (Age Of Peace)

1 Age Of Peace(Instrumental) : 작곡/편곡 문희준
2 OP.T :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3 OP.T#1-사투 : 작곡/편곡 문희준
4 OP.T#2-ZEUS : 작곡/편곡 문희준
5 THE BEST : 작사/작곡/편곡 강타
6 TTTRACK#1 : 작곡/편곡 강타
7 TTTRACK#2 : 작곡/편곡 강타

5집 (Outside Castle) [50]

1 Outside Castle :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2 신비 (Delight) : 작사/작곡/편곡 강타
3 그래! 그렇게! (We Can Do It) : 작사/작곡/편곡 강타
4 My Mother : 작사 장우혁 작곡 장우혁, 강타 편곡 장우혁, 송광식
5 꿈의 기도 (Pray For You) : 작사/작곡/편곡 강타
6 파랑새의 소원 :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7 Time Will Tell : 작사/작곡/편곡 이재원
8 One Last Love : 작사 토니안 작곡 토니안, 윤치웅 편곡 토니안, 윤치웅
9 Good-Bye 이젠 : 작사 장우혁 작곡 장우혁, 강타 편곡 장우혁
10 For 연가(姸歌) :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11 Illusion : 작사/작곡/편곡 강타
12 Natural Born Killer(NBK) : 작사/작곡/편곡 토니안
13 버려진 아이들 : 작사/작곡/편곡 이재원
14 늘 지금처럼 : 작사/작곡/편곡 강타

7. 해체[편집]



2001년 2월 27일, 해체 전 마지막 라이브 공연 및 KBS 뉴스 방영 장면이다.

해체 원인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발표도 없고 관련 인물들의 말도 다 다른지라 정확한 정보는 없다. 알려진 것은 먼저 계약만료를 앞둔 멤버들이[51] 재계약 협상과정에서 일방적인 해체통보를 받았다는 것 정도[52]. 멤버 간 각각 상이한 계약 문제로 인해 일부 멤버가 반발하기 시작하고 멤버들간 불화가 생긴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 중론.

7.1. 노예계약[편집]

당시 멤버 개개인이 받았던 인세가 평균 20원[53] 밖에 안 되었다는 사실이 해체 후에야 뒤늦게 드러나면서(참조)이수만은 당시 H.O.T.의 열렬한 팬이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게 된다. 심지어 현진영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20원이 어디냐'고 한 적이 있다.[54]

장우혁해피투게더에서 H.O.T.로 활동하며 번 돈은 거의 없었고 JTL로 활동하며 번 돈이 대부분이라고 밝혔고 토니 안, 문희준 역시 H.O.T.로 활동할 때보다 이후 활동으로 번 돈이 훨씬 많았다고 밝혔다.

7.2. 개인 활동 및 이슈[편집]

문희준은 그룹 해체 이후 SM 엔터테인먼트에 남아 파란과 논란의(…) 록커 생활을 하였다. 그 당시엔 전국민이 문희준의 안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후 SM을 떠나 PS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여 활동하다 2005년 현역으로 군에 입대. 제대 후에는 싸이더스HQ로 소속사를 옮겨 활동을 했으며 2012년 라인 엔터테인먼트, 2015년 코엔스타즈를 거쳐 2018년 아이오케이컴퍼니로 이적하여 토니안, 이재원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강타는 H.O.T. 5집 후속곡 활동 중 음주운전에 걸려 면허가 취소되었고 이로 인해 H.O.T.는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H.O.T.의 마지막 활동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게 한 강타를 원망하는 팬들도 상당수. H.O.T. 해체 이후에는 문희준과 함께 SM 엔터테인먼트에 잔류하여 솔로 앨범을 발매하였으며, <북극성>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아시아 활동에 매진하던 중 SM의 이사가 되었다. 역시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고 현재는 SM에서 고위 임원직을 겸임하고 있다. 중국 위주로 활동하는데, 중국에서는 본명인 안칠현으로 활동 중이다.

장우혁과 토니 안, 이재원은 해체 이후 SM에서 나와 2001년에 프로젝트 그룹인 jtL을 결성하여 2003년까지 활동하다 이후로는 솔로의 길을 걷는다.

장우혁은 솔로로 전향하여 <지지않는태양>이 히트하였고 x맨, 연애편지 등에서 왕성한 예능활동을 하다 턱관절 문제로 인해 멤버들 중 유일하게 공익근무 후 제대했다. 원래도 평발 때문에 공익판정이었으나, 신체검사를 받기 조금 전에 모 높으신 분 아들의 병역문제가 터져 신검기준이 대폭 강화된 탓에 현역 판정을 받았다는 안습한 스토리가 있지만 결국 공익으로 판정 받았으며 이로 인해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제대 후에는 2011년 6월 솔로 앨범을 내고 활동을 재개했으나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고 한국보단 중국에서 더 많은 활동을 했으며 wh creative를 설립하여 가수양성중이다. 소속 가수로는 프로젝트 그룹 레인즈서성혁이 있다.

토니안 역시 솔로곡 <유추프라카치아>를 히트시켰으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다가 TN 엔터테인먼트, 스쿨룩스 등의 사업이 성공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현역으로 입대하여 군복무를 마쳤으며 제대 이후 무릎팍도사에서 말하길 당시 심각한 우울증으로 인해 약을 처방 받아 먹었는데 군생활로 우울증을 극복했다고 한다. 2008년에는 스매시라는 보이 그룹을 제작, 같이 활동하기도 했었다. 2013년 초엔 걸스데이혜리랑 공개 연애를 하여 화제가 됐으나 몇개월만에 결별하였다. 2013년 가을엔 불법도박으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가 현재는 방송에 복귀해 MC로 활약하고 있다. 2018년 2월 TN엔터테인먼트가 아이오케이컴퍼니에 흡수합병 되었고 토니안은 현재 아이오케이컴퍼니의 사내이사가 되었다.

jtL 이후 이재원도 음반을 발매하며 솔로 활동을 하였고 지망생에 대한 성폭행 의혹 사건으로 준비 중이던 정규 2집은 중단되었다. 조사를 받는 중에, 이재원은 범인이 아니고 일행 중에 한 명이 피해자에게 성희롱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사전 구속 영장이 발부되기 전에 고소 취하가 되지 않아 합의를 거치게 된 것이었다. 피해자는 일행 중 한 명에게 성희롱을 당한데다가 당시에 상황에 대해 정확히 기억을 하지 못 한 상태에서 진범이 누구인지 알 수 없기에, 사건 전 자신과 같이 있었던 일행원들 모두에 대해 일방적인 오해를 하여 일행 모두를 고소하였다고 한다. 이재원의 경우 성폭행범이 아닌 사실이 밝혀져서 고소가 취하되었으며, 피해자에게 사과를 받았다고 한다. 참조참조 이후 2009년 5월, 군대에 현역으로 입대하게 하였고 이후 2011년 3월 제대하여 중국과 아시아권을 위주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토니 안의 지원을 받아 예능에 조금씩 나오고 있다. 이재원이 전역하는 날, H.O.T. 전 멤버들이 이재원의 전역을 축하해주기 위해 한자리에 모여 화제가 된 바 있다.

멤버들이 죄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것 같은 건 착각이다

8. 재결합[편집]

2010년 7월 7일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강타가 그룹이 해체된 것은 멤버 간에 계약과 관련하여 서로 오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으며 오해는 1년 정도 후에 각자 다 풀었다고 한다. 문희준 역시 3:2 분열 당시 사이가 좋지 않았음을 인정한 바 있다.

SM과 결별한 세 멤버들은 'jtL'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고 활동을 시작. 1집이 53만장을 기록하여 2001년 음반 판매량 10위의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SM 측의 보이콧 등으로 인해 제대로 된 방송은 커녕 시상식조차 참석하지 못한다. 자세한 내용은 연제협 MBC 출연 거부 사태 참고.

2010년 6월 24일SM 엔터테인먼트 이사인 강타가 재결합을 천명하겠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오보임이 밝혀졌다. 그날 기자의 이메일, 전화, 팩스는 모두 불통이 되었다고.

핫젝갓알지의 은희상담소에서 재결합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던 중 문희준이 밝힌 바로는 해체 이후 재결합 이야기가 몇 번 오갔지만 전설은 전설로 남기자는 데에 멤버들이 모두 동의를 했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과연 전설로 남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다고.. 이재원 역시 라디오 스타에서 재결합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는 데 이재원이 제대하던 날 멤버들 전원이 모여 재결합 시기를 밝힐 계획이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결국 불발되었다고 한다.

2014년 11월 무한도전 토토가에서 H.O.T.의 섭외를 위해 강타가 출연했는데,[55] 강타는 H.O.T.의 재결합을 조심스럽게 보고 있는 시각이 비춰졌고 결국 토토가 출연은 불발되었다.[56] 하지만 토토가 본편에서 무한도전 멤버들이 H.O.T. 코스프레를 하였고 이후 토토가에 출연했으면 싶은 가수 설문조사에서 H.O.T.가 1위로 뽑히기도 하였다.

꾸준히 제기되던 재결합설이 2016년 데뷔 20주년을 맞아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있다. 특히 2016년 4월, 당시 라이벌이었던 젝스키스가 무한도전 토토가2 - 젝스키스를 통해 재결합을 공식화함에 따라 H.O.T. 재결합에 대한 관심과 기대도 증가하게 된다. 또한 토토가2 - 젝스키스 말미에 유재석과 하하가 토토가 3를 예고했던 장면을 통해 사실상의 최유력 후보로도 거론되었던 상황이었고, 멤버들과 이수만 프로듀서가 비밀리에 회동을 가졌다는 기사를 통해 더욱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이후 재결합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는 거의 90%까지 진행되었으나 최종적인 협의 과정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내부 측의 주장. 이로 인해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게 나돌았던 20주년 프로젝트는 오랜 설왕설래 끝에 무산되고 만다. 이후 라디오 스타 젝스키스 편에서 김구라가 H.O.T. 재결합 무산의 원인이 어느 한 명에게 있다는 찌라시를 폭로한 이후 대다수는 여러 정황상 장우혁일 것이라 추측하기도 했으나 장우혁은 방송을 통해 수차레에 걸쳐 의혹을 일축한 바 있다.

15년 동안 빈번하게 논의와 무산을 거듭해온 재결합설과 문희준의 결혼에서 비롯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한 팬덤 내 갈등이 팽배했던 가운데 2018년 1월 23일,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시즌 3 기획 차 멤버 전원이 회동을 열었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하였고 6일 뒤, 마침내 토토가3 - H.O.T.방송이 확정되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문에 2주 내내 토요일 밤 10시대에 방송하였다. 무한도전과 동시간대 방송중에 문희준이 출연 중인 불후의 명곡 2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긴 하지만 이건 겸사겸사...

그리고 토토가에서 말했던 팀원들과의 상의 끝에 17년만의 재결합 콘서트가 확정되었다.

9. 팬덤[편집]



드림콘서트에서 잠실주경기장을 가득 메운 Club H.O.T.

H.O.T.가 인기가 많아지면서 흔히 말하는 팬클럽, 빠순이라는 말이 퍼지게 됐는데, 공식 팬클럽을 비롯해 팬덤 문화라는 것은 H.O.T. 팬들이 거의 만들다시피한 것들이 많다. 응원 도구로 흰색 풍선만 사용한다거나, 현수막, 플랜카드, 응원봉 등을 조직적으로 사용한 것도 Club H.O.T.가 최초다. 심지어 응원봉을 만들기 위해 팬들이 직접 일본에서 흰색 LED를 직수입해와 만들 정도로 열성과 충성도도 높다. 그럴려고 준 용돈이 아닐텐데 가사가 없는 전주 부분에 멤버들의 이름을 외치거나 구호를 외치는 것도 Club H.O.T.가 처음이며, 심지어 가사 검열로 묵음처리 된 원가사를 팬들이 대신 불러주기도 했다.

공식 팬클럽은 Club H.O.T. 활동 당시에 공식 팬클럽 최다회원수 10만명(club H.O.T. 5기 한 기수 기준.[57] 단순히 카페 회원수가 아닌 유료가입자 수만 집계한 수치이다. 당시 인터넷 가입이 아닌 우편으로 가입신청, 거기다 14세 이상이라는 나이제한까지 있었고 가입비가 15000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수치. [58])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최초로 안티사이트가 생긴 가수로도 기록에 남았다. 문희준이 과거 해피투게더에 출연했을 때 전성기 시절땐 공식으론 78만, 비공식적으론 158만 정도였다고 직접 인증했다.

매년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리는 드림콘서트의 경우 H.O.T.가 활동할 당시 H.O.T. 팬덤을 수용하기 위해 세로가 아닌 가로로 무대를 설치하고 플로어 좌우 트랙에도 스탠딩석을 만들어 수용인원을 두배로 늘려야 했다.

또한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면 전국의 여학생들이 대부분 조퇴를 해서 교육부에서 조퇴금지령을 직접 공문까지 내렸으며 9시 뉴스에 멤버 토니 안문희준의 생일파티가 이뤄졌다/강타가 수능을 보았다는 식의 보도도 나오기도 했다.
파일:IMG_7327.jpg

게다가 H.O.T. 9.18 콘서트에서는 문희준이 무대에서 미끄러져서 떨어질 때 200여명의 팬들이 실신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관련 영상 문희준은 이때 수술을 하면 다시 춤을 출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진단결과를 받았으나, 걱정하는 팬들의 돌발행동을 우려해 이 사실을 숨기고 6개월간 재활운동을 했다고 후에 밝혔다.영상

2001년 5월 13일 해체보도가 나면서 SM사옥 앞에서 팬들의 해체반대 시위가 진행되자 교육청으로부터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지 않도록 각별히 생활지도하라는 공문이 각 학교에 하달되기도 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젝스키스가 라이벌로 여겨지고 있지만 실제로 사회적 파장과 인기규모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확실하게 H.O.T.가 당시 아이돌 계의 넘사벽 1인자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은지원이 2011년 해피투게더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해당영상, "사람들이 젝스키스가 H.O.T.의 라이벌이라고 하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따라가기도 벅찼다.", "공연을 하면 팬석이 계란후라이였다."[59]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한편 실제 격차와 상관없이 언론에서는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 두 그룹의 경쟁을 부추겼다. 이 때문에 팬덤 간 경쟁도 과열되었는데 H.O.T.가 2집 '늑대와양'의 컴백무대를 가질 때 관객석에 있던 젝키팬들이 '늑대 빌어먹을 에이치오티'라고 외치는 사고해당영상(3분35초)가 발생하였고 이후 두 팬덤간 사이가 극도로 악화되어 드림콘서트나 시상식 현장에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60] 다행히 두 팀이 해체를 겪을 때 서로 위로를 하면서 극적으로 화해를 하였고 이후 프로젝트팀 '핫젝갓알지'의 응원을 위해 연합하는 등 현재는 사이가 나쁘지 않다고 한다.

풍선색은 흰색. 해체되고 멤버들이 솔로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도 흰색을 사용하고 있다. 팬들에게는 신성시해서 H.O.T. 외에는 신승훈[61]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 2NE1, 비스트등 후대 가수들과 응원색을 가지고 엄청나게 대립했고 2013년 봉색이 정해진 마이네임과 첨예하게 대립한다. 2016년 현재 야광봉 건으로 인해 가장 크게 대립하고 있는 팬덤은 EXO의 팬덤인 EXO-L이다. 장우혁이 트위터에 쓴 문구와[62] 문희준도 강심장에서 흰색은 우리거라는 간판을 썼을 만큼 멤버들도 소중히 여긴다.

현재도 H.O.T.를 파는 코어 팬들이 있다. H.O.T.의 데뷔 기념일마다 전시회와 영상회를 꾸준히 개최할 정도로 팬들의 충성심이 정말 크다.

2012년에는 H.O.T.의 토니 팬이 주인공인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방영되기도 했다.

H.O.T.의 팬클럽 활동을 하는 열성팬들은 중고교 여학생들에게 집중되어 있었지만 여성팬들만큼 광적이진 않을지라도 앨범을 사서 듣고 그들의 춤과 패션스타일을 따라하며 추종하는 남학생들도 상당히 많았다. 초중고 수련회나 축제 등에서 ‘캔디’, ‘we are the future’, ‘ 열맞춰’ 는 남학생들의 단골 커버곡이었다. 특히 리더 문희준이나 카리스마 이미지인 장우혁의 남성팬 비율이 많았다. 지금도 H.O.T. 관련 기사나 유투브 영상 댓글에서 남성팬들이 ‘우혁이형’을 외치는 댓글들을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유명인 성덕도 매우 많다. 김연아, 김연경, 이효리, 옥주현, 이진, 문근영, 윤하, 김신영, 박지선, 유진, 유이, 정유미, 유인영, 한혜진(배우), 한채아, 안젤라베이비, 아이비, 한채영, 서지혜, 박한별, 선우정아, 신소율, 박규리, 신아영, 오정연, 장신영, 남상미, 고준희, 김성은, 손예진, 김지민, 레이디제인, 안영미, 홍현희, 장도연, 서유리, 이국주, 아유미, 이시언, 정준영, 박성광, 권혁수, 브라이언, 김준수, 김재중, 먼데이키즈의 이진성과 한승희, 슈퍼주니어의 은혁, 성민, 이특, 앰블렉의 이준, 위너의 이승훈, 루한 등 많은 연예인 및 유명인들이 학창시절에 H.O.T.의 팬이었음을 고백했다.

9.1. 팬픽 문화의 시초[편집]

나우누리와 천리안 시대. H.O.T.의 팬들은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등장하는 팬픽을 처음으로 썼다. 다비도프 쿨워터 쓰는 남자 주인공의 원조가 되었다. 초기에는 이성애를 소재로 한 팬픽도 있었지만 점차 동성애를 소재로 한 팬픽이 대다수가 되었고 대표적인 커플로는 톤혁(장우혁X토니안), 준타(문희준X강타) 등이 있었다.[63]

또한 실제 팬픽이 서적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유일무이한 기록일듯 제목은 '협객기'로 무협 소설이다. 작가는 이지련. 이후 이 작가는 '새디'라는 H.O.T의 또다른 팬픽도 출간한다. 그 당시 H.O.T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는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2012년 11월 17일 SNL 코리아장우혁토니 안이 출연했다.[64] 망가지거나 짤방이 될 만한 H.O.T.의 팬들에게 동심파괴를 동반한 호응을 얻었다. H.O.T.를 재현하기 위해 SNL의 크루인 권혁수, 김민교, 박상우가 나머지 멤버 대역을 맡았다. 이를 역이용해 이미테이션 상황극에서 가짜 멤버들이 진짜 멤버들을 구박했다.[65]선배 왈 어디서 말대꾸야! 결정타는 팬픽의 BL을 소재로 그대로 재현한 드라마. 팬픽의 오글거리는 대사[66]와 사랑의 방해꾼 난입, 키스까지 우혁 왈 감히 날 거부해? 그대로 재현했다.

10. 표절 논란[편집]

  • 전사의 후예 : 싸이프레스 힐의 'I Ain't Goin' Out Like That'과 ‘Locotes’ 표절 의혹을 받았으며, 앨범의 자켓사진은 밴드 랜시드의 앨범자켓 표절 의혹을 받았다. 그러나 이 곡의 경우, 곡의 사운드나 분위기가 흡사할 뿐 랩이 두 마디 이상 유사한 부분은 없어 표절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67] 단지 레퍼런스를 한 것으로 보인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 역시 싸이프레스 힐 표절의혹을 받았으나 마찬가지로 장르의 특성상 창법이나 사운드가 유사했을 뿐 랩이나 멜로디가 같은 부분은 없었다. 두 경우 모두 당시 갱스터란 장르가 생소한 탓에 생긴 오해다.

강타는 2017년 임진모와의 인터뷰에서 '몇 년 후에 미디를 접하면서 알게 됐는데, '전사의 후예'에 있는 베이스 루프가 당시 갱스터 랩 하는 뮤지션들이 많이 쓰던 샘플 시디에 있던 루프였다. 몇 곡 안 되는 비슷한 곡들이 그 시기에 나왔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68]

  • We are the future : 댄스 브레이크 간주 부분이 크라프트베르크의 'Tour De France', 슬레이어즈 넥스트 오프닝 Give a Reason 등의 짜깁기 표절 의혹을 받았다. 그러나 해당 샘플은 당시 작곡가들 사이에서 샘플 CD로 구매할수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69][70]

  • 행복 : 프랑스 캐롤이자 찬송가인 Angels We Have Heard On High(한국 번역명 '천사들의 노래가')와 똑같다.#, [71]

  • 나의 너 : '나의 너'의 후렴부는 재닛 잭슨의 'Together Again' 후렴부와 멜로디 진행이 흡사하여 논란이 있었다.


H.O.T.의 표절 의혹을 받은 모든 곡들의 작곡가는 유영진이며 행복의 작곡가는 장용진이고 나의 너의 작곡가는 강타이다.

11. 음반[편집]

정규앨범

발매연월

제목

싱글(활동곡)

판매량

1996.09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

전사의 후예/캔디

1,030,000장[74]

1997.07

Wolf and Sheep

늑대와 양/행복/We Are The Future

1,520,000장[75]

1998.09

Resurrection

열맞춰/

1,103,255장

1999.09

I Yah!

아이야!/투지/환희

1,383.985장

2000.10

Outside Castle

Outside Castle/그래! 그렇게

875,386장


비정규앨범

발매연월

제목

판매량

1999.04

Live In Seoul

204,616장

2000.01

99 Live In Seoul

110,542장

2000.07

Age Of Peace OST

231,223장

2001.04

H.O.T. Forever(Live Album)

145,051장

총판매량 합계

6,604,058장


H.O.T. 19주년 : 2nd Listen[76]

12. 콘서트[편집]

  • 1998년 1월 23일~25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 1999년 1월 22일~27일 (세종문화회관)

  • 1999년 9월 18일 (잠실올림픽주경기장)
    국내가수 최초로 잠실주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했다. 문희준이 추락사고로 부상을 당해 팬들이 실신한 것으로도 악명높은 918 콘서트.

  • 2000년 2월 1일 (북경공인체육관)
    중국에서 개최된 콘서트로 10,000명 관객을 동원하였다. 본 공연 개최 후 중국 언론에서 최초로 '한류'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한류의 시작이자 향후 SM 엔터테인먼트의 중국 시장 진출의 첫 걸음이 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2001년 2월 27일 (잠실올림픽주경기장)
    원래 2월 23일~27일 5일간 체조에서 열 예정이었으나 폭설로 체조경기장 지붕이 무너지면서 주경기장 1일로 대체되었다. 국내 공연 사상 최단기간 최다판매 기록으로 약 7만장의 표가 티켓판매시작 10분 24초만에 매진되었다.(인터넷예매없이 은행에 줄을서서 구매했던 시절임) 당시 서울시에서 콘서트 관련 사회적 비용을 추산하였는데, 비상사태 대비로 인한 인원 및 장비동원과 공연 끝난 후 예상되는 교통체증에 따른 사회적비용 약 2억 6천만원으로 추산되었다.(지하철 혼잡 최소화를 위해 2호선 삼성역과 성수역에서 임시열차 운행, 지방팬 대절버스 약3백대, 경찰병력 5백명, 경호원 7백명, 119구조대 1백 50명)뉴스참조

  • 2018년 10월 13일~14일 (잠실올림픽주경기장)
    17년만에 개최되는 단독 콘서트로, 약 8만석의 표가 티켓판매시작과 동시에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13. 수상내역[편집]

2008 Mnet KM 뮤직페스티벌 Remember1999상
2000 MBC 가요제전 30대 미만이 뽑은 인기가수상
2000 Mnet 영상음악대상 최고 인기뮤직비디오상 대상
2000 KMTV 가요대상 네티즌 인기상
2000 KMTV 가요대상 본상
1999 문화관광부장관 표창
1999 MTV VMA International viewer’s choice
1999 제 10회 서울가요대상 본상
1999 KMTV 가요제전 최우수 댄스 가수상
1999 KMTV 가요제전 최우수곡상
1999 KMTV 가요제전 네티즌 최고인기상
1999 KMTV 가요제전 ARS 인기상
1999 Mnet 영상음악대상 최고 인기뮤직비디오상 대상
1999 Mnet 영상음악대상 시청자 최고 인기상
1999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상 본상
1999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
1998 한국경제소비자대상 음반부문
1998 MBC 가요제전 대상
1998 MBC 가요제전 30대 이상이 뽑은 인기가수상
1998 MBC 가요제전 30대 미만이 뽑은 인기가수상
1998 KBS 가요대상 대상
1998 제9회 서울가요대상 대상
1998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 부문 본상
1998 SBS 가요대전 대상
1998 KMTV 가요대전 대상
1997 KMTV 가요대전 대상
1997 SBS 가요대전 10대 가수상
1997 SBS 가요대전 대상
1997 MBC 가요제전 대상
1997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1997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 대상
1997 서울 가요대상 올해의 최고 가요상
1997 제8회 서울가요대상 대상
1996 KMTV 가요대전 인기가수상
1996 SBS 10대 가수 가요대전 신인가수상
1996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 부문 신인상

[1] 이 해에는 SBS 가요대전이 처음 신설되었지만 대상은 시상하지 않았고, 가수 대상은 SBS 스타상 가수부문 대상으로 대체되었다.[2] H.O.T.의 최다1위곡으로 총 12번 1위를 하였고 ‘행복’과 ‘We are the future’가 수록된 2집 앨범으로 1997년 연간 음반판매량 1위를 달성하여 대상을 수상하였다. 2008년에 슈퍼주니어가 리메이크하였다.[3] 강타의 자작곡으로 공중파 3사 대상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였다.[4] 보이그룹으로는 젝스키스, NRG, 태사자, UNO(우노), TNB, OPPA, 신화, 이글파이브, A4, 팬클럽, 클릭비, Y2K, god, 량현량하, 플라이 투 더 스카이, 1TYM, UN, 디베이스, K-POP, 블랙비트, 테이크, 악동클럽, 5tion 등 수많은 그룹들이 쏟아져 나왔다.[5] 김국진의 스타다큐, H.O.T. 2집 다큐.[6] 문희준 - 23, 장우혁 - 35, 토니 - 07, 강타 - 27, 이재원 - 48[7] 문희준 - 노란색, 장우혁 - 파란색, 토니 - 빨간색, 강타 - 초록색, 이재원 - 주황색[8] 이 컨셉은 훗날 직계 후배라고도 할 수 있는 SM의 보이그룹 샤이니EXO에게 각각 민망한 닉네임 컨셉과 멤버별 고유번호 및 초능력 컨셉으로 계승되며 이후 고유 컬러 컨셉은 레드벨벳의 마케팅으로 사용되기에 이른다.[9] 원래 젝스키스는 은지원강성훈이 2인조로 데뷔할 예정이었으나, H.O.T.의 대성공으로 그룹의 계획을 바로 수정해 6인조 아이돌그룹으로 데뷔했다. 이 과정에서 강성훈은 자기는 빠지겠다고 강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NRG는 이미 이성진천명훈이 2인조 그룹 가수 하모하모로 데뷔하였으나 H.O.T.의 대성공으로 자극을 받아 NRG라는 5인조 체제로 리데뷔하게 된다. 그리고 god는 본래 남자 5명에 여자 1명이었으나 박진영이 프로듀서를 맡고나서 남자 랩퍼 한명이랑 여자 한명을 퇴출하고 메인보컬 김태우를 영입한다. 저 두명을 퇴출한 이유 역시 박진영이 혼성그룹이면 망한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멤버 별로 H.O.T.의 멤버들을 한명씩 대응시켰다.[10] 박소현 또한 라디오 진행 당시 "핫"의~ 라고 노래 소개를 했다[11] 현재 포털 사이트에는 그의 생년월일이 비공개로 되어있으나 네이버에서는 프로필 더보기를 누르면 생년월일이 나온다.[12] 음력[13] 캔디와 행복의 작곡가다.[14] 본래 당시 초기에 연습생은 10명이었지만 결국 5명이 나가고 마지막 남은 5명이 데뷔한 게 바로 H.O.T.다.[15] 서태지가 ‘문화 대통령’으로 불렸다면, H.O.T.는 ‘10대들의 대통령’, ‘청소년의 우상’으로 불렸다. H.O.T.로 인해 10대가 대중문화의 주소비층으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16] 1995년 소자본으로 시작하였던 SM은 2000년 4월, 국내 엔터기업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했다.[17] 최근에 아이돌 세대 구분을 하면서 나오게된 '1세대 아이돌'이라는 말에 어폐는 있을지언정 소속사에 의해 철저히 멤버 각각의 역할이 분담되고, 10대 팬덤을 타깃으로 하는 등 현 세대 아이돌의 기본적인 구조를 성립한 그룹으로서 H.O.T.가 선두에 서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것이다.[18] 당시 콘서트 티켓값이 중국 직장인 월급값과 맞먹을 정도로 비쌌음에도 불구하고 매진이 되었다.[19] 2001년은 해체를 하여 순위에 등장하지 않았다.[20] 그 중에서 90년대 후반에 고등학생이었던 78년생~83년생들은 서태지와 아이들1세대 아이돌문화를 둘 다 향유한 세대이다.[21] 그 해 최고 판매량으로 아이돌 그룹 최초로 음반 대상인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했다.[22] KMDb 자료에 의하면 서울관객기준 23,824명. 당시 유료팬클럽 회원 수가 9만7천이었으니 전국관객수는 이보다 더 많았을 가능성이 높다. 안타깝게도 이 시기에는 서울관객수로만 집계하였다.[23] 여담이지만 이렇게 열심히 앨범이 팔린 덕에 당시 영화의 흥망과 상관없이 역대 OST 부문 누적 판매량에서는 판매량 2위라는 기염을 토해냈다. 참고로 그 당시 OST 누적 판매량 1위는 영화 접속의 OST였다. 사실 따지고보면 이럴 수밖에 없는게, H.O.T.의 음악은 음반판매량에서 보이듯 일반 대중들에게 선호도가 상당히 높았다. 즉, "H.O.T.의 음악"은 어느 정도 퀄리티가 있는 물건인 만큼 정규앨범이 아니라도 구매하는 라이트팬들이나 非팬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런 핵지뢰작은 정말 광팬 중 광팬이 아니면 보러갈 생각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24] 특히, 빛 이전에 활동한 3집 타이틀곡 열맞춰는 표절 논란이 워낙 심해서 4집 타이틀곡들에 비해 인기가 그리 많지 않았다.[25] 약 15년 후. 2014년 4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아이야가 재조명되었다. 음악캠프, 아이야 [26] 한국의 리듬게임 펌프 잇 업에도 아이야가 나온다. 펌프, 아이야 [27] 2007년 12월. 다음 카페에서 투표한 결과 H.O.T.의 4집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28] 랩 파트는 Prodigy 풍의 리듬이 나오다가 후렴에서 유로비트로 바뀐다.[29] 그랬던 방송사가 이제는 ‘더유닛’이라는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30] 이수만도 처음에는 H.O.T.를 '엔터테이너'그룹으로만 키울 생각이었지 이들의 작곡 실력에는 큰 기대가 없었으나 강타가 만든 '빛'을 들은 후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31] 5집 Outside castle[32] 3집 빛, 4집 투지, 환희, 5집 그래그렇게, For 연가[33] 문희준은 1절에만 파트가 있고 토니 안은 2절에 나오는 영어 랩만 불렀으며, 장우혁은 인트로와 마지막 후렴구 전에 약간에 랩 파트가 있는게 전부. 그리고 이재원은 1절 후렴구 중 딱 한 줄만 불렀다. 이재원은 캔디에서도 마지막 후렴구만 부르는 데 이것마저 막줄은 강타가 장식한다[34] ‘열맞춰’와 ‘아이야’의 경우 문희준은 손에 복싱장갑이나 가위손을 끼는데 마이크를 쥘 순 없지않은가[35] 서태지와 아이들, 룰라 등 최정상급 가수들도 립싱크를 했고, 발라드가수들도 립싱크를 했다. 이는 당시 열악했던 음향시설 탓도 있다.[36] 다만 이때도 보컬 중 수준급이라고 할수 있을만한건 강타 뿐이고 문희준과 토니안은 그냥 평타 수준이다. 게다가 애초에 고음 올라가는건 전부 강타에게 몰빵하는 구조라...장우혁이 랩할때 목청이나 발성이 좋긴하다.[37] 특히 가장 늦게 합류한 토니안은 연습 기간이 고작 70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38] SES I'm your girl의 '둥글게춤'도 문희준이 만든 안무이다.[39] 장우혁이 100%만든 안무는 jtl과 장우혁 솔로 활동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40] 강타의 자작곡으로 컨셉과 퍼포먼스가 여성팬들에게 유독 인기가 많은 곡이다. 간주의 ‘고미사영’응원법을 개그우먼 박지선이 무한도전 토토가3에서 언급하여 유명해졌다. “우린 그렇게 매일 미안해요~”[41] 2집, 3집까지는 kbs 출연때마다 두건을 써 염색머리를 가렸는데 그 덕분에 두건패션이 유행하였다.[42] ‘전사의 후예’시절 잡지 소개에서 2집에 자작곡을 싣기위해 신시사이저와 화성악 공부를 하고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출처[43] 장우혁이 자신의 곡의 디제잉을 직접 하였다. 2014년에는 디제잉앨범을 발표하였고 2017년에는 LA와 샌프란시스코에서 DJ 투어를 하였다.[44] space techno 테크노에 공간감을 가미하여 우주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하는 테크노의 한 종류[45] 문희준은 해체 후 솔로로 데뷔해서 안티의 아이콘이 된 적도 있지만 노래를 만드는 능력은 괜찮았다. 하지만 록을 하겠다고 해서 문제였다.[46] 멤버들이 가장 극찬하는 곡이다.[47] 5집 타이틀 후보로 거론된 곡이기도 하다.[48] 서태지는 고교 시절부터 시나위에서 연주를 하며 바닥에서부터 시작했었고, 기획사에서 아이돌을 선발하여 육성하는 지금의 형태와 완전히 다른길을 걸었다.[49] 어린시절에 데뷔하였던 마이클 잭슨 역시 10대 시절 자작곡 앨범을 만들었던것은 아니다. 작곡자로서 두각을 나타낸것은 '아이돌(잭슨파이브 - 잭슨스)'로서 활동 하던 시기가 아닌 성인 솔로 앨범이 나온 다음 부터이며, 비틀즈의 막내였던 조지해리슨 역시 존레논이나 폴메카트니에 가려져있다 중반 이후에야 작곡자로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어떤 천재도 처음부터 잘하지 않는다. 왜 아이돌이 작곡을 못한다고, 혹은 나중에야 한다고 비난을 받아야할까?[50] 전곡을 멤버들의 자작곡으로 채워 유영진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 앨범이다.[51] 토니안 2001년 3월, 이재원 2001년 4월, 장우혁 2001년 5월 계약만료를 앞두고 있었고 문희준과 강타는 2002년초까지 계약이 남아있었다.[52] SM측에서는 이 사실을 부인하였다.[53] 이마저도 멤버 간 인세에 차이가 있었다.[54] 사실 앨범 판매에 의한 수익분배 문제는 H.O.T. 등의 SM 소속 가수들의 문제가 아닌 국내외 음악계 전반에 널리 퍼져있는 문제다. 지금도 곡 하나를 MP3로 사면 가수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20원. 일본도 1000엔짜리 싱글 한장이 팔리면 가수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1%가 안되는 9엔에 불과하다. 음원유통사 46%, 제작사40%, 저작권자(작사, 작곡)9%, 실여자(연주, 가수)5% [55] 강타의 절친한 친구들이자 S로도 함께 활동한 바 있는 이지훈, 신화신혜성도 함께 출연했었다.[56] 문희준이 동시간대 타 방송 프로에 고정패널로 출연 중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섭외였다. 워낙 90년대 후반 H.O.T.의 위상이 어마어마하다보니 아예 무시할 수도 없었던 지라 섭외는 불가했지만 근황이라도 전해듣고 싶었던 듯.(이는 역시 비슷한 이유로 출연이 불가능했던 젝스키스도 마찬가지.)[57] 1기부터 5기까지 존재했으며 매해 새로 가입을 받았다. 참고로 개그우먼 김신영은 2기, 박지선은 4기, 가수 윤하는 5기에 가입했었다고 한다.[58] 90년대의 15000원은 지금의 15000원과는 개념이 다르다.[59] 계란 후라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흰자는 H.O.T. 팬이고 흰자에 둘러싸인 작은 노란자는 젝스키스 팬을 비유한 것이다.[60] 대형 합동콘서트에서 현수막 자리 선점이 중요했는데 H.O.T.팬들이 먼저 설치한 현수막을 젝키팬이 무단으로 떼버린것이 싸움의 발단이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단체싸움 장면이 재연되기도 했다.[61] 원래 신승훈의 팬들이 H.O.T.의 팬들보다 먼저 썼지만 당시에는 '공식 색깔'의 개념이 없었다. 애초에 이렇다 보니 Club H.O.T. 창단 초기에 신승훈 팬덤과는 협의가 진행되어서 양쪽에서 함께 사용하는 것으로 공식 협의가 완료된 상태이다.[62] 흰색은 무조건 우리꺼죠. 누가 뭐라고 하던가요?[63]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성시원이 톤혁 커플을 소재로 팬픽을 쓰는 장면이 나온다.[64] 일명 '톤혁' 커플[65] 아예 본인들이 "믹키유천(토니안)이랑 슈주 은혁(장우혁) 이미테이션하다 왔어요"라고 한다.[66] 동방신기팬픽인 '가시연'에 등장하는 "너구나, 8반 이쁜이가." 라는 대사도 나왔다. 이는 팬픽을 연상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요소들 중의 하나다.[67] 당시 법적기준으로는 8마디 이상이 같아야 표절이었다. 현재는 원작자가 소송을 걸어 승소하면 표절이 성립된다.[68] 전사의 후예인 경우 모 샘플 회사에서 발매한 룹을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했는데 샘플CD는 구매한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든 아무 문제가 없다.(당시 같은 회사에서 발매한 샘플이 서태지의 Come Back Home에 쓰이기도 하였다) 크리스브라운의 Turn Up The Music 역시 벤젠스라는 샘플 회사가 출시한 샘플과 거의 흡사한 방식으로 곡이 발표되고 리한나의 Umbrella 또한 Logic의 Apple Loops 샘플을 사용하여 발매되었다. 갱스터랩의 유사성은 요즘의 트랩에서 자주 나오는 3연절플로우 등 당시로서 일종의 유행이라 보여진다. 참고) 샘플의 경우 어떠한 뮤지션의 음악이 유명해지면 그와 비슷한 스타일의 샘플들이 대거 제작되어 발매되어진다. 당장 힙합만 하더라도 릴웨인,에이셉라키 부터 일렉트로닉의 체인스모커즈,스크릴렉스 타입 샘플들이 수십 수백개로 제작되어 판매된다. 전문적으로 샘플을 만드는 회사도 있으며 샘플 디자이너 혹은 사운드 디자이너 등을 전문 직업으로 가진 음악가들도 전세계에 수백명이 있다. 그만큼 샘플을 만들고 사용하고 판매하고 구입하여 다시 시장출시되는 과정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외국의 수많은 힙합,일렉트로닉 프로듀서들도 당연히 샘플을 사용한다고 인터뷰 등지에서 밝히고 있다.물론 이러한 샘플을 구입하여 만든 곡들의 크레딧에는 따로 샘플을 만든 회사나 제작자의 이름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처음의 "유료"구입이 끝인것이다.[69] 샘플 CD를 정식으로 구매하면 따로 표기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70] 관련장면 독일 노래 Kraftwerk - Tour De France (Remix) 12부분.[71] 물론 당연히 샘플링이다. 2집 앨범 부클릿의 행복 설명 부분에도 언급되어 있다. 이렇게 유명한 클래식곡의 멜로디라인을 차용하는 일은 가요계에서 흔하며, 기본적인 반주의 모티브로 원곡을 사용하고 있을 뿐 전혀 다른 주제를 중심으로 곡이 전개되므로 표절은 아니다. 비슷한 사례로는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 헬로비너스의 차 마실래?, 악동뮤지션의 오랜날 오랜밤 등.[72] killing In The Name의 "Now you're under control! Now you do what they told you!" 부분에선 "열맞춰!"와 가사를 바꿔불러도 싱크로가 맞는다. 심지어 한 부분은 정상적으로, 한 부분은 효과음을 넣어서 지직거리는 것까지 유사하다. 또한 이후 "Those who died! Are justified!" 부분은 "모두가! 꿈꿔왔던 세상!"까지 전개되는 부분도 똑같다. 물론 곡 전체로 보면 RATM은 해당 리프가 반복되고 열맞춰는 다른 스타일로 이어지지만 앞서 언급한 분량만 해도 표절 요건으론 충분하다.[73] 공식적인 표절판정을 받은건 아니지만 심한 논란을 겪은 데다가 IMF 금융위기까지 겹쳐 초동 판매량이 2집에 비해 줄어들어서 멤버들은 ‘열맞춰’때 반응이 좋지 않았다가 ‘빛’으로 다시 사랑받는 느낌이었다고 한다.둘다 5주연속 1위했는데?? 음악방송 1위는 팬덤들의 대결이기 때문에 당시 어떤 팬덤과도 비교불가의 규모를 자랑했던 H.O.T.가 1위를 석권하는 건 당연했다. 막말로 당시 H.O.T.의 팬덤이라면 멤버들이 나와서 염불을 외워도 (...) 1위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맹목적이고, 거대했으며 화력이 강력했다. 그러나 대중적 선호도에서 빛과 열맞춰는 비교불가다. 게다가 토토가 특집에서 보다시피 빛은 지금도 대표곡 중 하나로 언급되는 곡이다. 문희준이 2011년, 해피투게더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 3집 타이틀곡으로 먼저 내정됐던 곡은 T.O.P.(1999년, 신화의 2집 타이틀곡)였다고 한다. 그런데 1집이 부진했던 신화의 2집을 성공시키기위해 곡을 양보하자고 소속사에서 설득하여 양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74] 96년 31만장+97년 72만장 판매. 1996년12월말부터 캔디가 대박남. 이는 다음해 음반판매량으로 이어져 1집앨범이 1997년 연간 음반판매량 4위를 차지.[75] 연간 1위로 골든디스크 대상 수상[76] 참고로 이 웹진은 2015년 9월경 H.O.T. 관련 기획기사를 많이 내서 시리즈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