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남북 공동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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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 중앙정보부장(左)과 김일성(右).

1. 개요2. 상세3. 한계

1. 개요[편집]

1972년 7월 4일 박정희제3공화국 당시의 대한민국김일성북한이 발표한 공동성명. 데탕트 분위기 속에서 분단 이후 남북이 처음으로 합의한 성명.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이라는 평화 통일 3대 원칙을 설정하였다. 하지만 발표 후 남한은 유신헌법, 북한은 사회주의 헌법 등으로 독재 체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는 한계를 가진다.

2. 상세[편집]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김영주 조직지도부장의 이름으로 7.4 남북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해야 한다.

  •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1974년 8월 15일 박정희는 '한반도 평화정착 → 상호 문호개방과 신뢰회복 → 남북한 자유총선거'라는 '평화통일 3단계 기본원칙'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그냥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 전쟁 이후 20년 동안 남북은 서로를 '괴뢰 집단'으로 여기면서 무조건 전쟁을 통해서만 통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분단 후 처음으로 대화를 하고, 평화통일 원칙에 합의한 것이었다. 남북은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이전까지 밟았던 격렬한 대립 관계에서 벗어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선언은 굉장한 사건이었으며 이 선언이 발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남북통일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들떴다.

3. 한계[편집]

남한에선 10월 17일 대통령 특별선언이 발표되고 박정희는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며 날치기된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헌법의 효력을 일부 정지시키고 여당이 개헌을 못하는 국회를 해산하고 국회의 기능을 비상국무회의로 이관시켜 정치활동을 금지시키고, 계엄령과 휴교령을 내렸다. 그리고 김기춘 검사 등이 주도해서[1]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맞게', '통일을 준비해 갈', '한국적 민주주의' 헌법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유신헌법이다.

북한에선 12월 27일 김일성조선로동당의 우월적 지위를 명시하고 주체사상을 헌법 규범화하며, 국가주석제 도입 및 권한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사회주의 헌법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배경엔 불안해진 그들의 체제가 있었다. 남한은 대선에서 김대중이 턱밑까지 쫓아오고, 총선에서 사실상 패배하며 개헌이 불가능해지는 등 박정희의 정권 연장이 불투명해졌다. 한편 북한은 경제가 점점 악화되고, 중국소련의 관계도 악화되면서 중-소-북 3각체제가 흔들려 김일성의 일인독재체제가 불안해졌다.

결국 박정희김일성이 안팎으로 불안한 자신들의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남북공동성명을 이용한 것이다. 2015년 중앙일보에서 발간한 김종필 증언록에서 이에 대한 뒷이야기가 나왔는데, 처음부터 박정희는 공동성명이니 데탕트니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 박정희는 '다른 것도 아니고 통일을 자신의 권력을 위하여 써먹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1] 이 사람이 바로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장인 김기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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