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사무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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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사무라이 (1954)
七人の侍 / Seven Samurai

파일:Seven Samurai.jpg

감독

쿠로사와 아키라

각본

오구니 히데오, 하시모토 시노부, 쿠로사와 아키라

개봉일

1954년 4월 26일

배급

토호

음악

하야사카 후미오

주연

미후네 토시로
시무라 타카시
카토 타이스케
미야구치 세이지
키무라 이사오
이나바 요시오
치아키 미노루 등

러닝타임

207분

박스오피스

¥268 million

1. 개요2. 주역 7인방3. 줄거리4. 일화5. 평가6. 미디어 발매7. 영향력

1. 개요[편집]

1954년 4월 26일에 개봉한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로 상영시간 207분의 흑백영화이다.

긴 러닝타임을 가지는 과거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막간(Intermission)도 있는 등 손이 쉽게 가지 않는 영화로 비칠 수도 있으나 당 영화를 감상한 이들의 고금에 걸친 거의 공통된 평은 '시간을 잊고 보게 된다.'였으며 같은 해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1].하며 작품성에서도 인정받고 전 세계에 구로사와 감독의 명성을 확립시켜준 작품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는 2004년에 저작권이 만료되었...으나 자막 상태가 개판임을 감안해서 보기 바란[2]다.

2. 주역 7인방[편집]

  • 시마다 칸베에島田勘兵衛 (배우: 시무라 타카시)
    주역인 7인의 사무라이 중에서도 두령격인 존재. 과거 한 성의 주인이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전쟁에 패하고 섬기던 다이묘도 멸망했는지 작중 시점에서는 나이 든 낭인 신세이다. 하지만 군략이 탁월하고 전술적인 안목과 탁월한 식견을 겸비하였으며 덤으로 활솜씨도 무시무시한 문무 겸비의 사무라이이고 여기에 인덕도 갖추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물론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치른 전투에서도 노련하고 치밀한 준비와 과감한 지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미국판 황야의 7인에서 같은 역할인 율 브리너 때문에 헷갈리는 시청자도 있지만 이 인물은 원래부터 대머리는 아니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스님 행세를 하고자 머리를 일부러 밀어버린 것으로 이 이야기는 카미이즈미 노부츠나가 그 모티브.

  • 시치로지七郎次 (배우: 카토 타이스케)
    과거 칸베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웠던 칸베에의 휘하 무장이자 가신. 칸베에가 패한 후 그도 낭인 신세로 전락했지만 꽤 젊은 나이에 씨름꾼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별달리 신세를 한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유쾌한 인상. 극중에서 직접적인 활약은 별로 없지만 도적떼와 싸우기 위해 동료들과 농민들을 지위하는 간베에의 부관으로서 조력자 역할에 충실하였다. 그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에, 시치로지와 칸베에가 주고받는 대사가 이 영화 전체를 꿰뚫는 한마디이기도 하다.

  • 하야시다 헤이하치林田平八 (배우: 치아키 미노루)
    소탈하고 익살 맞으며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사무라이. 도적떼 토벌팀에 참가하게 된 연유도 밥값 대신 장작 패는 일을 대신해주는 걸 본 고로베에가 밥을 미끼로 낚은 것이다.(…) 단지 실력은 낚은 고로베에마저도 중하로 평할 만큼 그다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나 주변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능력으로 위험한 싸움에 뛰어든 일동을 잘 다독여 주었다. 작중 '싸움에 뭔가 휘두를 게 없으면 재미가 없지.'라며 도적떼들과의 싸움에서 휘두를 깃발을 그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다만 이렇게 이런저런 플래그를 세웠기 때문인지 본격적인 전투 시작 전에 나선 염탐에서 따라나선 농부 리키치의 실수로 도적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다.

  • 가타야마 고로베에片山五郎兵衛 (배우: 이나바 요시오)
    그 실력과 감도 뛰어나 첫 등장 당시 칸베에가 동지로 규합할 만한 이들의 실력을 가늠코자 카츠시로에게 문 옆에서 서서 들어오는 자들을 후려치라고 말해두었는데, 고로베에는 이 시험을 멋지게 통과한다. 특히 이 장면에서 문으로 들어서다 "허허, 이러시면 곤란하지요." 라며 말하는 이 장면은 이후 많은 영화에서도 오마주된다. 이후 칸베에가 농민들 편에 서서 도적떼를 토벌하고자 하는 이유를 십분 이해하여 선선히 그의 조력자가 된다. 다만 그후 작전을 짜는 장면 정도에서만 어느 정도 비중이 있고 도적떼와의 전투 후반부에 전사하여 생을 마감한다.

  • 오카모토 카츠시로岡本勝四郎 (배우: 기무라 이사오)
    영화에서는 겉보이기는 20대 중반이지만, 극 중에서는 아직 성년식을 치루지 않아서 머리를 밀지 않은 10대 중후반 설정. 칸베에가 기략을 발휘하여 아이를 구출하는 것을 보고 맘대로 스승으로 여기며 그를 뒤쫓다가 자연스럽게 도적떼 토벌팀에 합류한다. 이후 연륜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다소 찌질한 면모도 보여주나 기본적으로 성실한 인품이라 집단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마음이 여려서 요헤이와 리키치가 유일하게 사무라이를 고용할 수단인 쌀을 도둑맞자 몰래 자신의 돈을 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감명받은 리키치는 칸베이가 미숙한 카츠시로를 두고 가려고 하자 카츠시로도 데려가 달라고 칸베이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 처음에는 칸베에만을 존경하고 따르지만 작중 규조가 단독으로 도적 소굴에 침투하여 철포를 가져오는 활약을 보여준 이후 그 실력에 감복하여 그역시 존경하고 따른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통해 성숙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을의 남장을 한 여자애와 가슴을 주무르고 사랑에 빠진다.

  • 큐죠久蔵 (배우: 미야구치 세이지)
    과묵하며 주역 중 최고의 칼솜씨를 지닌 사무라이. 첫 등장 장면에서 떠돌이 무사와 시비가 일어 대련하다 합을 겨룬 후 자세를 바로잡고 "승부는 결정났소. 진검이었으면 당신은 죽었소."라고 말한 장면을 통해 이를 잘 보여준다. 참고로 이 장면은 야규 미츠요시(통칭: 야규 쥬베)의 일화에서 본딴 것이며 이후 많은 영화에서 두고두고 오마주되었다. 오직 검술 수련을 위해 세상을 주유하는 모습, 무뚝뚝해 보이지만 근본은 다정한 모습, 예를 들어 자신의 몫의 밥을 시노에게 넘기는 걸 큐죠가 눈치채서 이번에는 자신의 몫을 가져가라고 할 정도로 인격은 훌륭하다. '순수한 소년 같은' 면을 가진 캐릭터로 쿠로사와 감독은 이 점을 십분 발휘케 하고자 전투중 다른 주역들이 갑옷이나 투구로 무장하는 와중에도 그만은 평소 입는 차림으로 임하게 한 것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 솜씨를 바탕으로 작중 여러 장면, 특히 단독 액션 장면에서 눈부시게 활약하지만 후반의 본전투에서 도적떼가 쏜 철포에 맞아 사망. 하지만 이 와중에도 칼집을 던져 철포가 발사된 방향을 동료에게 알려주는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들은 훗날 이 영화를 기반으로 리메이크 된 작품 《사무라이 7》에서도 반영되었다.

  • 키쿠치요菊千代 (배우: 미후네 도시로)
    홍보 포스터로 보나 작중 대사 및 클로즈업 등의 연출상 비중으로 보나 여러모로 진 주인공인 사내. 하지만 다른 사무라이들과 달리 수염이 성성한데다 걸걸하기까지 한 산적같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일행에 합류하게 된 건 카츠시로처럼 간베에의 솜씨에 이끌려 그를 뒤쫓다가 사무라이만 일행으로 받는다하자 부랴부랴 어딘가에서 가계도를 하나 구해와서 자신을 키쿠치요라 칭한 이후부터. 당시에는 가계도와 나이가 맞지 않음을 지적당해 놀림감이 되었지만 [3] 이후 동고동락하며 결국 키쿠치요로 인정받았고, 헤이하치는 특유의 익살을 담아 그를 △로 깃발에 그려넣었다.(그 외의 6인은 동그라미) 이후 영화 내내 활약하다 막판 철포에 맞아 쓰러지지만 다시 일어나 도적떼의 우두머리를 죽이고서 쓰러져 최후를 맞이한다. 사실 이 사내는 농민 출신으로, 그 위치상 이 영화가 소위 '엘리트들이 약한 이를 돕는 입장'만을 그린 편향적이고 보수적인 영화가 되는 것을 막고 감독의 페르소나로서 그 역할을 다하여 시대를 떠나 명작 반열에 드는 영화로 자리매김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다. 특히 작중 가장 인구에 회자되는 장면은 주민들이 전쟁에서 패하고 낙오한 사무라이들을 죽이고 그 물자를 빼앗아왔음을 알게 된 다른 사무라이들이 분노를 표출하자 그가 당시 하층민인 농민들의 대표자로서 다른 사무라이들에게 일갈하는 장면. 당시의 대사를 대충 요약하자면, '농민은 더럽고 비겁하다. 근데 농민이 그렇게 된 건 누구때문인가. 당신들 사무라이가 쓸데없이 전쟁을 벌이니 살기 어려워진 농민들이 그리된 것이다.'라고 했다. 참고로 키쿠치요 역할을 맡은 미후네 토시로는 저 대사를 수십년 지나서까지 정확히 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작중의 대화를 보면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도적떼에 의해 죽고 혼자서 성장한 듯 하다. 그리고 감독인 쿠로사와 아키라가 본래 일본 화족출신이라는 것도 아이러니. 여담으로 감독은 키쿠치요가 농민/ 사무라이/ 도적떼 모두에 해당하는 다면성을 가진 캐릭터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대부분의 쿠로사와 영화에서 '고귀한 이상을 위해 일어서는 개인과 그를 이해 못 하는 대중'이라는 대립구도를 즐겨 쓴 것과 상통하는 데가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순 캐릭터적으로도 작중 커다란 노다치를 들고 이리저리 분전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모습등이 자칫 무겁게만 흐를 수 있는 작내외적 분위기를 풀어주는 청량제 같은 캐릭터. 단지 본래는 큐죠와 비슷한 어두운 캐릭터가 될 예정이었으나 캐릭터성 중복 등을 우려하여 방향을 변경한 쿠로사와 감독이 실제 미후네의 성격을 바탕으로 재창조한 것인데 이 때문인지 미후네는 배역도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대본을 그저 훑어만 보고도 "키쿠치요가 제 역할이군요."라며 명확히 지목하기도 했다.

3. 줄거리[편집]

시대 배경은 일본 전국시대 1586년. 어느 찢어지게 가난한 마을 주민들이 매년 이어지는 도적떼(노부시=로닌)의 습격을 견디다 못해, 지나가던 늙은 사무라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는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결국 간절한 청에 못 이겨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규합하고 이렇게 모인 일곱 명의 사무라이들은 도적떼로부터 마을을 지키고자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전투를 준비하는데...

파일:external/www.geocities.jp/c1586.jpg
1586년의 일본 세력 지도

4. 일화[편집]

이 영화는 그 작품적 완성도 외에도 엄청난 제작비와 가혹했던 촬영 일정으로 유명하다. 특히 제작비면에서 총 2억 1천만 엔이 들어갔는데, 당시 대졸 초봉이 대충 1만 엔이었음을 감안하면 요즘 화폐 가치로 거의 50~60억엔을 쏟아부은 셈. 당시의 평균 영화 제작비가 4천만 엔이던 시절이라 다섯 배의 제작비가 들어갔다. 제작일수는 271일. 이렇게 비용이 눈덩이처럼 들어간 것은 제작사 토호 촬영소 근처에 거대한 마을 오픈 셋트를 만들거나 타지역 로케이션 촬영 시에도 일일이 오픈 셋트를 만들어대면서 들어간 건설비가 주범으로 꼽힌다. 이외에도 작중 도적떼 습격씬에서는 8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동원하여 찍는 등 구로사와 감독 특유의 작품에 대한 고집이 유감없이 발휘되며 제작비는 예산을 아득히 초월.

덕분에 제작자들은 뒷목을 잡아야 했고 이로 인한 쿠로사와와 제작자들의 말다툼은 촬영 내내 끝날줄 몰랐다. 그리고 그나마도 쿠로사와는 제작비를 더 들이길 원했는데 제작자들이 분노하며 아예 영화계에서 매장한다고 을러대어 멈춘 게 저 정도였다고. 흥행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벌어들인 흥행성적은 2억 6,823만엔. 극장 측과 수익을 나누자면 적어도 2배인 4억엔 이상을 벌어들여야 하니 흥행 실패. 하지만 해외 수출 및 리메이크 판권비 및 나중에 2차 시장에서 꽤 수익을 벌어들였다.

본래 쿠로사와 감독이 이 영화를 처음 구상할 당시에는 어떤 하급 무사의 평범한 하루를 그린, 시쳇말로 일상물 같은 영화였는데 자료를 조사해도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어서 곤란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문서에 마을의 농부들이 사무라이들을 고용해서 외적으로부터 마을을 지켰다는 기록이 발견했고, 이 기록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다.

후일담으로, 이 영화가 공개된 뒤, 자위대에서 찾아와서 영화에 나오는 작전은 어디서 배운 것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쿠로사와 아키라가 어디서 참고한 것이 아니라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자, 그 자위대 대원은 미군의 군사 작전 프로그램과 똑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후반의 비 내리는 장면은 쿠로사와 감독이 '서부극은 늘 날씨가 맑기만 하다. 이 영화는 그와 다른 특유의 맛을 가지고자 한다.'는 기획 아래 실제로 비오는 날 찍는 강행군을 감행한 장면인데 촬영 스탭과 배우들중 누구도 감기에 걸리거나 하지 않는 활기에 가득찬 촬영이었다고 전해진다.토호 수뇌부가 투덜댄 건 별개로 치고 덧붙이면 여기에서 감독은 비에 묵즙을 뿌려 날리는 방식으로 보다 격한 호우를 표현하는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에 옮겼다.

이 작품의 정확한 작중 배경년도는 1586년이다. 이는 극중 키쿠치요가 훔친 가계도에 적힌 출생연도와 작중 시점의 연도를 토대로 나이를 계산하여 놀리는 장면이 있어 확인 가능하며, 참고로 영어 웹이나 자막에는 종종 1587년으로 나오는데 이는 당시 일본의 나이 계산법을 서양인들이 모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나이 계산법으로 생일이 지났느냐에 따라 1586년이 될 수도 있고 1587년이 될 수도 있지만, 어디서 훔쳐왔는지 모를 무사의 가계부 상의 키쿠치요의 생일이 텐쇼 2년 (음력) 2월 17일. 영화에서 계절은 보리가 익을 무렵인 가을이므로 생일이 지났다고 보면, 1586년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당하다.


5. 평가[편집]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에 빛나는 《라쇼몽》(羅生門, 1950)과 함께 구로사와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특히 서구권에는 라쇼몽보다 더 많이, 널리 알려졌으며 고금에 걸쳐 인정할만한 생동감있는 액션씬/ 단순한 이야기를 촘촘한 짜임새로 빚어낸 각본/ 명확한 캐릭터성과 그 표출이라는 강점부터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는 사상적 발상, 동양적인 미학을 잘 보여주는 영상미까지 말그대로 '영화라는 종합 예술'의 한 경지를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소위 '전문가들이 모여 일을 벌이는' 영화의 원조격으로 자리잡아 이후 이 영화를 감명깊게 본 헐리우드 감독들에 의해 하나의 장르적 특성으로까지 확립되었다. 즉 오션스 시리즈나 어벤져스 등 요즘 팀업 무비의 대부님이시다!

또한 이 작품이 가진 특성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주역들의 행위와 사상에 대한 묘사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농민들의 요청으로 도적떼를 물리치기 위해 깊은 산골 마을로 들어온 사무라이들이며, 물질적인 보상이나 인간적 유대를 창조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존의 사무라이들과 차별화된다. 이에 이 영화의 주역 사무라이들은 기존 사무라이의 고정 이미지나 귀족적인 품위를 지닌 고급 계층으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겉으로는 떠돌이 낭인들이지만 직접적인 곤란에 처해 있는 마을 사람들 이상으로 산적들에 대한 저항 의식, 말하자면 진정한 사무라이 정신을 가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후 도적떼를 물리쳐 마을 사람들에게 안도를 주고 자신들도 승리를 쟁취하지만 그 댓가로 그들 역시 동지를 잃는 희생을 치렀으며 더불어 이상을 가지고 임한 전투 중 겪은 부조리나 회의감 등으로 인해 최종적으로는 만족감보다는 쓸쓸함을 맛보는 것이 자세히 그려진다.

특히 이와 관련되어 마지막 씬인 농사짓는 농부들의 모습과 그 모습을 돌아보는 살아남은 사무라이들 강렬한 대비는 많은 해석을 낳았다. 천민이란 자기 안위만 무사하면 영웅의 희생 따위는 괘념치 않는다고 비분강개하는 해석부터 군인이란 본분인 외적의 방어에만 충실해야지 공을 세웠다고 권력을 잡으려 들면 안 된다는 일종의 훈계를 캐릭터들의 행위를 통해 웅변한다는 해석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전국시대가 끝나면서 전쟁을 업으로 삼는 무장들이 몰락하고 이어지는 에도 시대, 농부들과 상인들의 시대가 찾아왔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7인의 사무라이》는 《황야의 7인》으로 리바이벌되었지만,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에 서부극과는 분명한 변별점을 지닌다. 구체적으로는 마을 사람들과 그들의 보호를 위해 고용된 사무라이들 사이의 절대적인 이질감을 강조함으로 서구 영화의 원형에서 탈피하였다는 것으로, 일시적으로나마 함께 동맹해서 싸우지만 가정과 생존을 위해 투쟁한 마을 사람들과 직업적인 영광을 구하기 위한 사무라이들 사이의 분리는 이 영화의 주된 요소이다. 조화를 이룬 듯 하면서도 결코 섞일 수 없는 개인간의 관계 내지는 집단간의 문제를 자주 다루는 구로사와 특유의 연출력이 잘 살아나는 점이 백미로 꼽힌다.

6. 미디어 발매[편집]

워낙 명작으로 추앙받는 작품이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올 수 있는 거의 모든 매체로 발매되었다. 그동안은 원본 필름이 많이 훼손된 영상으로 봐야 했으나 [4], 미디어 매체의 명가 크라이테리온이 특유의 화면 복원 능력을 발휘해 발매한 DVDBD의 퀄리티가 우수하다. 특히 우수한 수준으로 발매된 BD판의 관련 스크린 샷과 리뷰는 참조(영문). 옛날 DVD의 화질과 비교하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일본에서는 당 영화의 제작사이자 판권사인 토호가 미디어 매체 발매를 전담. BD 버전에서 소리를 5.1채널로 가상 분할해서 넣은 점이 특이하다.(마스터에 수록된 원 사운드는 1채널 모노럴) 다만 화질면에서는 크라이테리온의 BD에 다소 밀린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

한국의 경우 BD는 발매되지 않았고 DVD는 엄청나게 조악한 화질과 음질에 자막 번역까지 엉터리이다. 때문에 한국내 팬들은 일본이나 미국판 BD를 구매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일본 애니메이션?? 일단 일본제는 맞잖아
다일리 컴퍼니에서 블루레이 정발 예정이다.

2016년 베니스 영화제 회고전 부분에서 4K 디지털 복원판이 상영되었다. 매그니피센트 7[5] 상영 기념으로 겸사겸사 상영하는듯 하다.

7. 영향력[편집]

감독에게 전세계적으로 불멸의 명성을 안겨준 영화이며 그만큼 전세계 영화계에 영향을 주었기에 이를 오마주한 영화도 상당수 제작되었다. 대표적인 것만 따져도 상당히 많은데 그중 일부를 꼽자면 아래와 같다.

  • 우주의 7인
    B급 영화계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우주의 7인 역시 이 영화를 모티브로 하였다. 영화에 나오는 아키르 행성은 이 영화의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에 대한 오마주. 참고로 각본을 쓴 사람이 무려 존 세일즈.

  • 6현의 사무라이
    음악을 소재로 한 B급 영화이며 제목이 완벽한 패러디. 다만 내용은 별 관계 없다.

  • 벅스 라이프
    이쪽은 대놓고 원작을 7인의 사무라이에서 따왔다고 밝혔다. 다만 픽사 애니답게 내용 곳곳에 장난기가 가득하며 최종적으로는 오마주라기보다 패러디안티테제에 가깝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 우선 7인의 사무라이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무라이가 농민을 이끌고 산적을 격퇴하지만 벅스 라이프에서는 용병으로 데려온 벌레들이 3류 서커스단이어서 푸대접을 받는다. 또한 벅스 라이프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일개미 플릭이며 앞서의 떠돌이 서커스단이 힘을 합쳐 적을 무찌르는 이야기로 원작에 비해 지극히 민중지향적인 내용을 담아, 오죽하면 과격좌파적인 정치적 시각과 독설로 유명한 평론가 겸 출판인 B급 좌파 김규항이 칭찬하였을 정도이다.

  • 레이더스
    인다아나 존스의 뒷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첫 장면이 7인의 사무라이를 오마주한 것이라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밝힌 바 있다.

  • 워킹맨
    안노 모요코 작. 주인공 마츠카타 히로코가 차용해 주간지의 한 항목을 장식했던 적도 있다. 후에는 10주년 기념호에 50인의 사무라이라고 해서 증간까지 내버렸다.

  • 스타워즈 시리즈
    요다가 자주 자기 머리를 쓰다듬는 행동을 하는데 이는 스님 행세를 하기 위해 머리를 짧게 깎은 시마다 칸베에의 행동을 오마주한 것이다.

  • 스타워즈 클론전쟁 2시즌
    에피소드 중 하나가 이 영화에서 따왔다. '구로사와 아키라를 추모하며'라는 자막으로 시작.

  • 팔도사나이
    여러 명의 전문가들을 모여서 일을 한다는 점에서 장르적 오마주. 김효천 감독도 7인의 사무라이를 감명깊게 보았다고 한다.

  • 아이온크래드
    조너선 잉글리시 감독의 세번째 장편 영화. 마그나카르타를 어긴 존 왕과, 그에 반발한 귀족간에 일어난 제1차 봉신 전쟁을 바탕으로 한 픽션. 주인공이 십자군 원정대 출신이라는 점, 그의 전우들과 그 외의 인물들이 힘을 합쳐 로체스터 성을 수비한다는 점에서 7인의 사무라이의 구도를 어느정도 오마주했음을 알 수 있다.

  • Wake Up, Girls!
    극장판의 부제가 '7인의 아이돌'인 것 이외에 주역 7인의 성씨의 유래가 당 작품 주역 7인의 성명이다. 다만 내용적 유사점은 거의 없다. 굳이 따지면 연예 사무소 사장이 이 작품의 농민과 같은 입장이라 사무소 존폐의 위기를 타개하고자 아이돌 그룹을 결성하려고 일곱명의 소녀를 불러모았다...정도가 연관짓자면 지을 수 있는 점인데 이런 모양새는 흔한 편이라. 다만 일부 캐릭터 메이킹에서 참고한 듯한 흔적은 있다.

  • 블랙 앤 화이트 2
    특수 군단으로 출현! 캐사기급 스펙을 자랑하지만 세 번째와 마지막 월드에서 밖에 못쓰는데다가 부대원이 7명이라 멍하게 굴리면 순살당하기도 하니 주의.


이외에 기본 플롯적으로 복수의 주인공들이 팀을 이뤄 활약한다는 스토리의 원조라, 나바론 요새(The Guns of Navarone), 특공 대작전(The Dirty Dozen),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저스티스 리그(Justice league), 어벤져스(Avengers) 등의 영화들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1] 다만 4개 영화가 동시 수상했다. 페데리코 펠리니, 엘리아 카잔의 워터프런트, 미조구치 겐지의 산쇼다유[2] 현재 제대로 된 자막이 블루레이용으로 돌고 있다.[3] 일단,'키쿠치요'라는 이름부터가 아직 성년식을 치루지 않은 어린이 이름(幼名)이고(참고로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명이 타케치요), 가계도 대로라면 텐쇼 2년(1574년)에 태어난 키쿠치요는 13살이어야 했다. 이 설정으로 따지면 이 영화의 시대배경은 1586년이다.[4] 이 시절 일본 영화들은 복원 과정의 알파이자 오메가라 할 수 있는 오리지널 네거티브가 모조리 손실된 상태다. 심지어 인지도로는 7인의 사무라이에 꿀리지 않는 동경이야기도 비슷한 상황.[5] 같은 해 영화제 폐막작으로 초청되었다.[6] 원제는 1960년판과 2016년판 둘다 The Magnificent Seven이지만 국내에서는 2016년판에 원제를 그대로 갖다 붙였다.[7] 기본 플롯은 7인의 사무라이의 판박이. 그런데 마을을 도와줄 사람을 찾는 게 젊은 청년(주인공)이라든지, 겨우 구한 요짐보들이 전부 여성이라든지, 다들 여자에 외지인이라고 못 믿겠다는 걸 주인공이 "이 사람들은 다 내 여동생입니다!"라고 한다든지 하는 게 개그 요소. 참고로 제목이 7인의 여동생인 것도 이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