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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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02 FIFAワールドカップ 韓国/日本
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

파일:attachment/Korea_Japan_2002_World_Cup.jpg

파일:external/image-load-balancer.worldsportshops.com/67561.jpg

대회기간

2002년 5월 31일 ~ 2002년 6월 30일

개최국

대한민국 / 일본

슬로건

새 천년, 새 만남, 새 출발
新しい千年、新しい出会い、新しい出発

New millennium, New encounter, New start

마스코트

아토(Ato), 캐즈(Kaz), 니크(nik)

주제가

Boom

공인구

피버노바(Fevernova)

참가팀

32개팀

대회 결과

우승

브라질

준우승

독일

3위

터키

4위

대한민국

이전·이후 대회

1998년
프랑스

2002년
한국/일본

2006년
독일


1. 개요2. 대회 정보
2.1. 공식 명칭2.2. 주제가
2.2.1. 응원가
2.3. 엠블럼2.4. 마스코트2.5. 공인구2.6. 경기장
2.6.1. 개최도시 선정 및 주 경기장 문제2.6.2. 입지 및 교통2.6.3. 사후 활용
3. 유치 과정4. 역대 조직위원장
4.1. 한국측4.2. 일본측
5. 참가팀
5.1. 지역예선5.2. 조 추첨
6. 대회 진행
6.1. 개막식6.2. 조별 리그6.3. 결선 토너먼트
7. 한국측 중계진
7.1. KBS7.2. MBC7.3. SBS
8. 기록9. 올스타팀10. 최종순위11. 화제의 팀12. 대회 이후13. 대회 공식 스폰서십
13.1. FIFA 월드컵 스폰서13.2. 한국측 스폰서13.3. 일본측 스폰서
14. 이야깃거리


21세기에 열린 첫 번째 월드컵이자,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열리고, 공동 개최된 첫 FIFA 월드컵[1]
2002년 대한민국을 뒤덮었던 이제는 전설이 된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전성기[2]
최초로 HD 화면으로 중계가 된 월드컵
최초로 개최국 국가 대표팀 경기에 개최국 국방부가 행사를 지원한 유일한 월드컵[3]

1. 개요[편집]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 공식 TV 오프닝 영상

2002년에 열린 17회 FIFA 월드컵으로 역대 월드컵 중 처음으로 공동개최된 대회다. 국내 최초로 HD로 생중계된 월드컵이기도 하다.[4]

2002년 5월 31일부터 2002년 6월 30일까지 32개국이 대한민국일본에 각 10개씩 위치한 무려 총 20개 경기장에서 64경기를 치렀다. 이는 양국이 모두 대회 단독 개최를 상정하고 경기장 건설/보수 계획을 세웠는데, 대회가 공동 개최로 결정된 뒤에도 이 계획을 그대로 진행하는 바람에 결국 역대 가장 많은 경기장에서 치러진 월드컵이 된 것. 이 때문에 일본 측에서 32개국 출전, 64경기 → 40개국 출전, 96경기로 늘려달라고 FIFA에 강력히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경기장 하나당 고작 서너 경기만 열렸다.[5]

보통 월드컵은 유럽의 프로축구리그 일정에 맞춰서 6월 중순 ~ 7월 중순에 열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대회가 열리는 한국과 일본은 이 시기가 장마철이기 때문에 대회 16강 토너먼트 이후의 경기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해서 시기를 조금 앞당겼고, 결국 5월 31일에 개막하여 6월 30일에 폐막하는 것으로 것으로 결정되었다.

2. 대회 정보[편집]

2.1. 공식 명칭[편집]

본래는 2002 FIFA World Cup Japan/Korea™ 될 예정이었다. 이에 정몽준왜 일본이 대한민국 앞에 오냐며 항의했고 제프 블라터 당시 FIFA 사무총장은 영어 알파벳 순서상 J가 K보다 먼저와서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정몽준은 FIFA(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는 프랑스어를 쓴 단체이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이게 먹혀서 프랑스어로는 Corée라고 표기하는 한국이 앞선 Korea/Japan으로 정정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결국 어느 나라에서 어떤 언어를 쓰더라도 개최국이 포함된 대회명을 언급한다면 한일로 표기하도록 결정되었다. 영국 가디언지 기사아카이브[6]

그런데 공식 명칭이 결정된 후에도 일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한 월드컵이라고 표기하기 시작한다(…). 사실 결승전을 일본에 넘기는 대신 대회 명칭을 Korea/Japan으로 표기하는 것으로 사전에 일본과 협의했다. 그러나 대회를 앞두고 일본이 임의로 협약된 명칭을 어기고 Japan을 앞에 두기 시작하자 사전 협의를 이행할 것을 한국 측이 촉구. 그 과정에서 정몽준이 협의사항을 언론에 공개했다. 당시 정몽준은 정 Japan을 앞에 두려면 결승전을 포기하라는 식으로 강하게 항의했고당시 MBC 기사아카이브 이에 한 발 물러선 일본은 대회 기간 동안은 되도록 공식 표기인 Korea/Japan을 사용했다. 조직위 외의 일본 매체에서는 대개 대회 공식 브랜드인 'FIFA 월드컵'으로만 표기하면서 '일한 공동개최'로 수식하는 식으로 에둘러 표기하였다. 딱히 일본 정부 방침은 아니었으나 아쉬운 부분.

한국은 명분을, 일본은 실리를 택하였으나 2010년 즈음까지도 외국에서는 Japan/Korea 월드컵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당시 몇몇 이들은 한국은 헛된 명분을 얻었고, 일본만 이익을 취했다며 한국의 선택이 어리석었다고 비판하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물론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결승전이 어디서 열렸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사그라들고 공식 표기는 계속 남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잘 선택했다는 의견도 많다. 다만 실제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

2.2. 주제가[편집]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 공식 음악
아나스타샤 - Boom

  • 원래 FIFA에서 지정한 대회 공식 음악은 미국 가수 아나스탸샤(Anastasia)의 'Boom'이었으나, 대회 조직위원회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은 채 제멋대로 정한 터라 정작 개최국인 대한민국일본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 오히려 유럽대만에서 그럭저럭 좋은 성과를 보인 편. 이 공식 앨범에는 한국 대표로 god가 부른 <TRUE EAST SIDE>도 수록되어 있었지만, 그놈의 제왑삐를 포함해그다지 좋은 평을 남기지도 못했고 월드컵 특수를 누리지도 못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 공식 로컬 음악
박정현 & 나얼 & 케미스트리 & 소웰루 - Let's Get Together Now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 공식 입장 음악
반젤리스 - Anthem

  • 그리스 작곡가 반젤리스(Vangelis)가 한국의 아리랑과 사물놀이, 일본의 전통 북 소리를 조합해서 만들어냈다는 공식 입장가(入場歌) 'Anthem'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곡을 편곡한 JS Radio Edit 버전도 널리 활용되었다.

2.2.1. 응원가[편집]

대회 공식 주제가보다 월드컵 특수와 맞물려 나온 여러 노래들이 인기를 얻었는데, 특히 클론의 '월드컵 송'과 '발로 차', 윤도현 밴드의 '오 필승 코리아'만 울려퍼졌던 2002년 여름이었다.[7] 거기에 추가로 크라잉 넛의 '필살 오프사이드'나 레이지 본의 'Go West'(펫 샵 보이즈 버전의 리메이크) 정도가 인기있었다.

조수미의 Champions(챔피언)도 대호평을 받았다. 이 때문에 반젤리스의 입장가와 함께 2002년 월드컵 관련 영상의 단골 BGM으로 사용되고 있다.[8] 영상

2.3. 엠블럼[편집]

파일:external/www.cre8ivecommando.com/world-cup-brands-korea-japan-2002.jpg
대표팀 색에 맞추면 한국이 빨강, 일본이 파랑이 맞다.
위 사진 왼쪽의 엠블럼이 대회 엠블럼으로, 이 엠블럼의 도안은 한일 월드컵 이후부터 월드컵을 상징하는 공식 도안으로 몇 번 사용되었다. 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엠블럼에도 같이 포함되어 나왔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부터 사라졌다. 아마 FIFA가 IOC의 오륜기처럼 월드컵 로고에 일종의 관습적인 상징을 만들려고 하던 시도했으나 반응이 좋지 않아 흐지부지 된 듯하다. 2014년부터 월드컵 로고는 월드컵 트로피를 바탕으로 디자인하고 있다. 참고로 엠블럼이나 로고는 개최국이 아니라, 개최국의 요청 사항을 참고로해서 FIFA의 마케팅 대행사에서 제작한다.

한국의 경우 유치전부터 현재의 엠블럼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2002 World Cup Korea 로고를 많이 사용하였다.[9] 일본도 마찬가지로 이 무렵에 2002 World Cup Japan 로고를 사용하였다.

2.4. 마스코트[편집]

대한민국에서 완벽히 참패했다. 결론만 요약하자면, 중립스러운 이미지로 인해 오히려 실패한 최악의 케이스.

'엠블럼' 문단에 첨부된 사진을 참조. 대회 마스코트는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단일 마스코트가 아닌 3가지 유형의 마스코트로 만들어졌으며 3D로 제작되었다. 정식 명칭은 아트모(Atmo). 스페릭스(Spheriks)라고 불리는 외계인(…) 종족인 이 마스코트는 코치를 상징하는 아토(Ato)와 두명의 선수를 상징하는 니크(Nik), 캐즈(Kaz)로 이루어져 있다. 공동개최라는 대회 특성상 마스코트도 특정국가의 상징물에서 벗어나 외계인을 모티브로 삼았으며 디자인도 영국의 인터브랜드(Interbrand)에서 맡았다. 그 때문인지 친근감이 떨어져 인기는 별로였다. 또한 이름이 일본쪽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인상이어서 국내에서 인기나 존재감은 거의 없었다.[10]

마스코트를 이용한 만화와 애니메이션도 제작되었다. 제목은 스페릭스 애니메이션은 TV판과 극장판을 모두 만들었다. 아동용으로 그냥 저냥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는 듯하지만 대중적으로 그리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고 이런 마스코트가 그러듯 대회가 끝나면서 자취도 사라졌다. 한창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에 국내에서도 재능TVKBS 2TV를 통하여 방영되었다.

여담인데 한국에선 진돗개삽살개를 한국 측 마스코트로 정해야 한다고 논쟁을 벌인 바 있다. 진도군에선 '진돗개를 2002년 월드컵 마스코트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자체로 마스코트 도안까지 만들어 크게 홍보전을 펼쳤으며. 한국삽살개보존회에서는 '독도 지킴이 삽살개'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한 후 월드컵 마스코트 지정 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보다시피 결론은 둘 다 김치국 마시는 소리로 끝났다. 애초에 독도 이야기가 나온 시점에서 일본이 동의할 수가 없는 문제다.

1988 서울 올림픽호돌이2018 평창 동계올림픽수호랑과 반다비는 캐릭터 인형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꽤 성공적이었는데, 2002 월드컵의 마스코트는 과연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할 정도로 인기가 없었고 캐릭터 인형이 있더라도 거의 땡처리 판매 신세였다.

2.5. 공인구[편집]

파일:external/sportlockerdotcom.files.wordpress.com/2002-fevernova-japan.jpg
월드컵 공인구로는 피버노바가 사용되었다. 열정(Fever)과 신성(Nova 新星)의 합성어로 기존의 축구공과는 다른 화려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이후로 오랜만에 새 디자인을 적용한 사례. 흰색 바탕에 돌개무늬가 양쪽으로 두 개 그려진 디자인이었다. 그 때문인지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에도 상당한 화젯거리였다. 요즘 나오는 여러 공인구들과 비교해도 피버노바만큼 튀는 디자인은 좀처럼 없을 정도. 그래서 골키퍼들이 뜬 공을 처리할 때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병림픽, 아니 병든컵 방지를 위해한국어일본어가 아닌 제3의 언어를 사용했다. 그래도 처참하게 흑역사가 되어버린 마스코트에 비하면 축구공 자체의 인기는 디자인 자체가 특이해서 꽤 좋았다. 당시 학생들이 갖고 놀던 축구공 대부분이 피버노바였을 정도로 인기였으며, 비슷하게 생긴 짝퉁도 많았다.

참고로 공이 꽤 가벼운 편이다. 특수 기포강화 플라스틱을 사용해서라고 하는데...

2.6. 경기장[편집]

2.6.1. 개최도시 선정 및 주 경기장 문제[편집]

본 대회를 전후로 열린 1998년, 2006년 월드컵은 동네동네이니만큼 거의 모든 경기장이 재활용, 리모델링이었다. 하지만 2002년의 경우, 축구 인프라가 열악한 한국에선 아쉬운 대로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을 재활용하려고 밑밥을 깔다가, 대회 준비 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부터 지리한 말싸움의 장을 열고 말았다.

"잠실 주경기장 재활용" 떡밥을 덥썩 문 서울시청에서는 "설마 서울을 개최지에서 제외하겠어?"라는 안이한 판단 하에 개최 당시 내걸었던 경기장 신축 약속을 뒤집는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 그래도 IMF 외환위기 여파에 허덕이고 있는데 자금은 어디서 조달할 것인가?" 운운하면서 경기장 신축에 부정적인 여론이 차츰 표면화되었고, 이는 곧 서울에 축구전용구장을 굳이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이윽고 서울 전용구장의 대안으로 잠실종합운동장 리모델링, 인천문학경기장 증축, 수원월드컵경기장 주경기장 선정, 신축 돔구장과 겸용 등등 별의별 안이 나왔지만 결국에는 1998년 5월 6일 김종필 총리 서리의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상암동 주경기장 신축안을 확정하였다.

잠실 리모델링 안은 상암신축 비용을 능가하는 초월적인 금액이 나온데다가 FIFA 실사단 평가에서 최악의 평가를 받아 폐기되었고, 문학경기장의 경우는 "주 경기장이 수도에 없는 게 말이 되느냐?"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던데다가 축구전용 구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은 관중석 수 미달로 주 경기장 후보군에서 제외, 돔 구장 신축 안은 뚝섬 돔 경기장 건으로 안 좋은 야구계의 여론, 그리고 신축 약속을 안 지킨 서울시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인해 실현될 가능성이 적었다. 다만 인천, 부산, 대구는 각각 전국체전,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로 건설이 이미 확정된 경기장이었다. 그러나 인천 문학 경기장은 착공이 늦어져서 역설적으로 전국체전에 활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 문제가 단순히 한국의 인프라가 열악해서 생긴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일본도 축구인프라는 한국 못지않게(어쩌면 더 심하게) 열악해서 아예 축구인프라를 싹 갈아엎을 심산으로 월드컵을 유치한 것이었다. 다만 일본에서 한국처럼 인프라 신축 - 특히 수도권 주경기장 - 을 두고 서울처럼 큰 잡음이 없었던 것은 도쿄가 초장부터 월드컵 유치를 포기한 탓이었다. 1960년대에 지은 도쿄국립경기장은 개조로도 FIFA 기준을 맞출 수 없고, 도쿄도내에 월드컵경기장을 지을 방도도 없었기 때문에 도쿄는 일찌감치 월드컵 대열에서 이탈하고 자연스럽게 사이타마가 월드컵 주경기장 지위를 가져갈 수 있었다. 만약 도쿄국립이 잠실처럼 FIFA 기준을 맞출 방도가 있었다면 이쪽이야말로 막 버블이 꺼지고 있던 시기라 엄청난 논쟁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리고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이슈가 되었던 곳이 전주였다. 이 곳은 종합운동장이 수용인원이 3만 명도 안되는 데다 당시에는 조명시설조차 없었음에도 개조해서 월드컵을 개최하겠다는 만용을 보여주었다. 다행히 그 제안이 원체 턱도 없다 보니 결국 전주 월드컵 경기장을 신축하게 된다.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은 실사단 점수에서 최하위 점수를 받았으나 지역 안배 문제로 포항이 탈락[11]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져가게 되었다.

일본도 그리 좋은 사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국보다는 기존 구장을 많이 활용한 편. 다만 일본 역시 월드컵 유치 시점에 운영되고 있던 경기장은 오사카 나가이 및 가시마 스타디움 2개 뿐이었다. 양국에 10개씩 모두 20개의 구장에서 경기를 진행했다.[12]

2.6.2. 입지 및 교통[편집]

기존에 월드컵을 개최한 유럽과 남미의 경우 시가지 한가운데에 위치한 유서깊은 대형 축구전용구장들을 개수하여 개최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 한국, 일본 모두 뒤늦게 대도시에 경기장을 신축한 경우가 많은데다 양국 모두 토지 매입 비용이 높은 국가들에 속해 상당수의 경기장들이 도시 외곽에 위치하게 되어 접근성이 불편한 경우가 많았다.

  • 한국 : 서울부산, 인천의 경우 도시 중심부에 위치하거나(부산) 적어도 시가지 경계 지역의 교통 요지[13]라는 우수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 수원, 광주는 당시로서는 시가지 외곽이긴 하였으나 그래도 기존 시가지와 무리없이 교통 연계가 가능했던 정도. 물론 지금은 도시 개발이 진행되어 두 경기장 모두 시가지 한복판에 있는 경기장이 되어버렸다. 문제가 제대로 터진건 서귀포, 전주, 대전, 대구, 울산의 5개 도시였는데, 이중 대전과 대구의 경우 지하철 연계계획충분히 갖춰져 있긴 했으나 중간에 터진 그놈의 IMF 사태 때문에 개통이 월드컵 이후로 미뤄지면서 망했어요... 울산, 전주의 경우 고속도로와 가까이 위치해 선수단이 이동하는데엔 문제가 없긴 했으나 기존 시가지와 너무 동떨어진 위치였고, 서귀포는...[14]

  • 일본 : 아무래도 철도교통이 활성화 된 나라고, 당시 기준으로 한국과 인프라 격차가 어마어마한 나라여서 사정이 낫긴 했지만 막상 아주 좋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일본의 경기장 대부분은 비싼 지가로 인해 한국보다도 더한 외곽지역 에 있는 점이 컸다. 요코하마같이 신칸센 역과 인접한 극강의 접근성을 갖춘 곳도 있고, 사이타마삿포로, 이바라키, 오사카 등은 철도역 하나씩은 다 달고 있긴 했으나 그 와중에 오이타, 미야기, 시즈오카 경기장은 그저 눈물...

2.6.3. 사후 활용[편집]

  • 일본 : 대부분의 연고 J리그 구단이 월드컵 경기장과 기존 경기장을 공용하는 형태이다. J리그가 복수 홈경기장을 유지하는 이유 중에는 기존 경기장이 시립 또는 모기업 소유이고 월드컵 경기장이 현립이어서 양측의 이해가 엇갈리는 탓이 크다. 이 때문에 매경기 3만명 이상을 가볍게 동원하는 우라와조차 2009년까지는 매년 한두 경기 쯤은 기존 고마바 스타디움(21,500명 수용)을 사용했다. 반면 미야기나 시즈오카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에 뜬금없이 박혀있는 입지 탓에 거꾸로 기존 경기장을 기본으로 연간 1~3경기 정도를 소화하고 있다. 시즈오카는 주빌로 이와타시미즈 에스펄스의 중간지점에 있다 보니 이들이 붙는 시즈오카 더비를 유치하다가, 지금은 그조차 없이 원정팬 많이 오는 우라와 경기만 치르고 있다. 미야기는 2011년부터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 경기장 명칭은 월드컵 당시 사용된 명칭.

  • 한국의 경우 실질적으로 모든 경기장이 'XX 월드컵 경기장'으로 통칭되었으나 모두 정식 명칭이었던 건 아니다.

  • 일본 경기장들의 법적 정식 명칭은 '또 따로 있다'. 매우 복잡하므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정규 애칭'을 기재.



일본의 수도 도쿄가 없는데, 도쿄는 당시 국립경기장의 노후화 및 시설 부족(예를 들어 관중석 중 지붕이 덮이는 면적이 20%도 되지 않으며, 관중석도 4강전 등 주요 경기 용도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으로 신규 경기장이 필요했기에 재정 및 혼잡 등을 사유로 입후보하지 않았을뿐더러 애초에 일본 내 단독 개최지 후보로도 꼽히지 않았다. 그래도 도쿄에 월드컵 경기장은 없었지만 사이타마, 이바라키, 요코하마 경기장은 도쿄 근교 도시들로 도쿄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긴 했다.

보다시피 모두 신축 경기장임에도 종합운동장의 숫자가 상당히 많은 편인데, 이것은 국제대회 행사 유치와 경기장 활용 등의 이유로 지방자치단체들이 종합운동장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가대표 감독인 거스 히딩크는 한국 대표팀이 종합운동장에서 경기해야 하는 것에 대해 '홈 어드밴티지를 약화시킨다'며 대회 조직위원회가 경기장 배정을 생각없이(…) 했다고 자서전을 통해 비판하기도 했다.[33] 종합운동장은 그라운드와 관중석의 거리가 멀어, 심리적으로 홈이점을 충분히 누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 테이블에서 보듯 종합운동장들이 축구전용구장에 비해 수용인원이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한국 관중들이 들어와 압도적인 응원을 선사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지자체 입장에서도 수백 억, 수천 억을 지원해 주는데 기왕이면 축구전용구장보다는 다목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종합운동장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한국보다 일본은 사정이 더하다. 축구경기용으로 전환 중인 상태의 삿포로 돔을 축구전용구장으로 계산한다고 해도 한국보다 2개 더 적은 4개뿐이다. 그나마도 가시마는 기존 전용구장을 마개조 증축한 것, 고베는 기존 구기장을 재건축한 것으로 완전 신축은 사이타마 1개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관중 수는 K리그보다 더 많아서 "종합운동장이 많아 시야가 좋지 않고 그래서 관중이 적다."는 일각의 주장은 완벽히 완파된다(...)[34]

3. 유치 과정[편집]

월드컵은 그동안 유럽과/아메리카 대륙(남미+북미)이 번갈아 가면서 개최했다. 하지만 다른 대륙에도 개최권을 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벗어난 곳에서 월드컵을 개최할만한 국력을 지닌 국가는 아시아밖에 없었다[35] 따라서 2002년 월드컵은 사실상 아시아쪽에서 개최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에 따라 아시아의 자존심이 되고 싶었던 한국과, 탈아입구를 외쳤던 일본의 역대급 개최 경쟁이 벌어졌다.

개최 경쟁에서는 한국 + 스웨덴 레나르트 요한손 UEFA 회장 + 마라도나 ↔ 일본 + 브라질 주앙 아벨란제 FIFA 회장 + 펠레 구도가 형성되었다.

1989년 일본이 첫 월드컵 아시아 개최를 목표로 월드컵 조직위를 결성했고 일본에 자극을 받은 대한민국1994년에야 월드컵 조직위를 결성하고 1995년에 일본과 함께 FIFA 월드컵 개최 제안서를 제출한다. 제안서를 제출한 국가가 두 나라밖에 없었으므로 유치 경쟁은 굉장히 치열해졌다. 펠레는 브라질의 우방인 일본이 개최하기를 강력히 희망했는데 마라도나는 그저 펠레가 일본 편을 들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편을 들었다.[36] 마라도나는 2002년 월드컵 유치 홍보 계획의 일환으로 1995년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보카 후니오르스 초청 '마라도나 공식 재기전'에 출전했다. 그 경기는 마라도나가 1994년 미국 월드컵, 약물 복용으로 출장정지 처분을 받은 후 첫 번째 공식 경기였기 때문에 세계의 관심을 모은 경기였다. 여담으로 그때 김영삼 대통령이 시축을 하고, 마라도나와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기념촬영을 하였다.

펠레와 마찬가지로 브라질 출신인 주앙 아벨란제 FIFA 회장 역시 일본의 단독개최를 희망.[37]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우세가 기정사실이었지만, 월드컵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한 나라는 월드컵을 개최할 자격이 부족하다[38][39]는 한국의 주장이 대두되면서 상황이 미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실제로 한국은 2년 전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스페인과 독일 등의 유럽 강호들에게 상당한 선전을 펼친 경력도 있었던 덕분에, '월드컵에 한 번도 못 나가본 나라가 진정 월드컵을 개최할 자격이 충분한가?'는 한국의 주장이 다른 나라들 사이에서도 차츰 먹히게 되었다. 이렇게 일본 대세론에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하는 와중에, FIFA 고위 관계자들이 관전한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축구 아시아 챔피언쉽 결승전에서 한국이 시종일관 일본을 몰아붙인 끝에 2-1로 또다시 승리를 거두어 우승컵을 따내 버렸고, 분위기는 급격히 반전되기 시작한다.

일이 이렇게 되자 남미는 그야말로 개판이 되었다. 브라질이 일본에 붙자 이런 브라질이 싫어서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한국에 붙었고 거기에 아르헨티나를 싫어하는 칠레가 일본에 붙자 이번에는 또 칠레를 싫어하는 페루와 볼리비아가 한국에 붙었다. 그러자 또 볼리비아를 싫어하는 파라과이가 일본에 붙었다. 뭐야 이게 이거 같다 이렇게 남미에서는 한바탕 병림픽이 벌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FIFA의 개혁을 주장하던 레나르트 요한손 UEFA 회장을 필두로 유럽 측 FIFA 집행위원들이 아벨란제 회장을 견제하기 위해[40] 한일 공동개최를 강력히 주장하고 여기에 그동안 부동표였던 아프리카 측 FIFA 집행위원들까지 유럽 측 FIFA 집행위원들에 동조하기 시작했으며, 열렬히 한국의 개최를 주장했던 정몽준 또한 FIFA 집행위원들이 만장일치로 합의한다면 공동개최에 찬성한다고 말하면서 분위기가 또 한 번 급격히 반전되었다.[41]

때문에 아벨란제 회장으로서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개최지 결정 이틀 전에 일본 월드컵 조직위원회에 공동개최 의향을 타진했는데, 사실 당시 분위기는 표 대결로 가면 일본이 불리한 상황이었다[42]. 질 바에야 공동개최를 수용하는 게 훨씬 나은 결정. 때문에 일본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어쩔 수 없이 공동개최를 수용했다. 물론 한국은 이미 공동개최를 사실상 승인한 상태였다.

결국 FIFA는 양국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 한 쪽이 월드컵을 개최하면 다른 한 쪽은 엄청난 좌절감에 빠질 것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집행위원 만장일치로 공동개최를 선언하게 된다.[43]

일본 처지에서 단독개최 실패는 유치단의 전략 판단 실수가 부른 참극이었다. 펠레의 저주 때문인가 같은 대륙에 두 후보지가 나오는 실수를 범한 피파와, 일본을 지지한 아벨란제의 삽질, 그리고 그런 아벨란제만을 믿고 유치 전략을 편 일본의 삽질 때문에 가장 개최 준비에 앞섰으면서도 결국 공동개최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공동 개최안을 수용한 후, 일본은 단독 개최는 놓쳤지만 결승전이라도 자신들이 치르겠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한민국 측은 추첨으로 정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실무 협의 결과, 개막전과 본선 조 추첨식, 대회 공식 명칭 우선권을 대한민국이 가져가고, 지역 예선 조 추첨식, 결승전을 일본이 가져가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결승전을 가져왔으면 대표팀이 마지막 경기를 일본에서 치를 뻔했다[44] 대한민국 역시 국민 정서상 대회 공식 명칭이 일한 월드컵이 된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일 월드컵이라 불리는 대신, 실리라 할 수 있는 결승전은 일본에 넘겨줬다. 덧붙여 본선 조 추첨식과 3,4위전은 한국에서 치르고, 지역예선 추첨식과 IBC(국제방송센터) 기술조정센터는 일본 쪽에서 하는 것으로 협의되었다. 그런데 일본은 약속 안 지켰다! 뭐 예상한 결과지만

정몽준 부회장에 말한 바에 따르면 아버지(정주영 회장)에게 공동개최 사실을 말하자 "몽준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라고 했다고(...). 일본을 제치고 서울 올림픽을 따낸 정주영으로서는 성에 차지 않았을 수 있긴 하지만… 흠좀무.[45]

스페인 스포츠 지 '아스'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축구협회가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에 성공하고 나서 거액을 돌렸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출처 아카이브 아스에 따르면 나가누마 겐 전 일본축구협회장은 한일 월드컵 개최가 확정된 2000년 남미축구연맹에 150만 달러를 보냈다. 아스는 남미연맹에서 15년 동안 근무한 직원에게서 이런 정보를 입수했다고 전했으며, 150만 달러 가운데 120만 달러가 당시 FIFA 집행위원이며 남미연맹 회장이던 니콜라스 레오스의 개인계좌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30만 달러는 에두아르도 데 루카 남미연맹 사무총장과 소라나 다니스 남미연맹 임원이 나눠 가졌다고 아스는 덧붙였다.[46]

4. 역대 조직위원장[편집]

4.1. 한국측[편집]

4.2. 일본측[편집]

  • 나스 쇼 (1997~2003)

5. 참가팀[편집]

5.1. 지역예선[편집]

각 지역 별로 예선을 통과한 팀(본선 진출/플레이오프)들은 다음과 같다.

범례

개최국 자격 자동 진출팀(●)

전 대회 우승 팀 자격 자동 진출팀(★)

대륙간(유럽 vs 아시아, 남미 vs 오세아니아) 플레이오프를 거친 팀()

탈락팀(취소선)

  • 남미(4.5장):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 북중미(3장): 코스타리카, 멕시코, 미국

  • 아시아(4.5장): 대한민국●, 일본●,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개최국 (공동개최국 대한민국.일본)

  • 아프리카(5장): 카메룬, 나이지리아, 세네갈, 튀니지, 남아프리카 공화국

  • 오세아니아(0.5장): (호주)

  • 유럽(14.5장): 프랑스★, 러시아, 포르투갈,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크로아티아, 스페인, 이탈리아, 잉글랜드, 슬로베니아, 터키, 벨기에, 독일, (아일랜드)


호주와 이란은 각각 우루과이와 아일랜드에 1승 1패를 기록했으나 골 득실에 밀려 탈락.[47] 결과적으로 오세아니아는 단 한 팀도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고 아시아와 유럽의 대결 역시 예상대로 끝났다. 실력 차를 감안한다면 아시아-오세아니아, 유럽-남미를 묶어서 플레이오프를 치렀어야 했을 듯.....

유럽 지역예선에서는 충공깽스러운 결과가 2개국에서 발생했다. 그 네덜란드포르투갈아일랜드에 밀려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고, 독일은 잉글랜드에 1-5로 학살당해서 플레이오프로 떨어졌지만 다행히도 우크라이나를 제치고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다만 잉글랜드는 1994 FIFA 월드컵 미국 지역예선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UEFA 계수를 엄청나게 갉아먹어 톱시드에서 잘려 아르헨티나가 톱시드인 조로 들어갔다.

남미 지역예선의 경우 아르헨티나가 압도적인 1위를 한 반면, 브라질은 홈에서 7승 2무, 원정에서 2승 1무 6패를 기록해 안방 챔피언 신세로 전락했다. 특히 꼴찌를 기록한 칠레에 0-3으로 패하기까지 했다. 결국 첫 출전국 에콰도르에 밀려 조 3위를 유지한 끝에 본선에 간신히 직행할 수 있었다. 우루과이는 이 월드컵도 마찬가지로 대륙간 플레이오프로 갔다.

참고로 월드컵 역사상 최다 점수 차 경기 및 월드컵 역사상 한 경기 당 최다 득점자가 이 대회 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에서 나왔다. 호주 대 미국령 사모아의 경기로 31-0이라는 기록적인 점수가 나왔으며 호주의 아치 톰슨은 이 경기에서 혼자 13골을 퍼부었다. 절대 오타가 아니다. 3-0이 아니다. 삼십일 대 영 저 점수가 맞다.

5.2. 조 추첨[편집]

파일:external/dimg.donga.com/6840921.1.jpg
2001년 12월 1일 부산 벡스코에서 월드컵 조 추첨행사가 열렸다. 총 13명의 조 추첨자가 선정되었으며, 한국 측 인사로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월드컵 국가대표 홍명보 선수, 바둑기사 조훈현 9단, 산악인 박영석, 배우 송혜교, 국제심판 임은주 등 6명이 선정되었고, 일본에서는 오카노 순이치로 일본축구협회장과 프랑스 월드컵 때 일본 주장으로 활약했던 이하라 마사미 등 2명으로 결정되었다. 나머지 5명의 인원들은 대륙별 안배원칙에 따라 브라질 축구황제 펠레, 네덜란드요한 크루이프, 카메룬로저 밀러, 중국의 여자 축구스타 쑨웬, 프랑스 월드컵 공동위원장을 역임한 미셸 플라티니가 선정되었다.


A조 ~ D조는 대한민국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었고 E조 ~ H조는 일본에서 경기를 치르게 됨에 따라 대한민국은 자동으로 D조 1번째에 배정되었고 일본H조 1번째에 배정되었다. 지난 월드컵 개최국이자 우승국인 프랑스는 우승국 자격에 따라 A조 1번째에 배정되었다. 한편 A조와 C조의 2라운드 진출 팀은 일본에서 F조와 H조의 2라운드 진출 팀과 토너먼트를 치르게 되고, E조와 G조의 2라운드 진출 팀은 한국에서 B조와 D조의 2라운드 진출 팀과 토너먼트를 치르게 된다.

대진표 결과를 보면 조별리그의 아르헨티나-잉글랜드, 이탈리아-크로아티아[49], 잉글랜드-스웨덴 전과 8강전의 잉글랜드-브라질, 그리고 결승전 등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빅매치는 대부분 일본에서 열리게 되었다. 그 팀들이 죄다 조기 광탈한건 신경쓰지 말자

한편, 중국은 조 추첨 전에 예선전을 한국에서 치를 수 있도록 FIFA 측에 요청했다. 중국 본토에서 가까워 흥행에 유리한 점과, 중일관계 등을 고려해 중국은 C조에 배치되는 것으로 미리 결정을 하고, 조추첨을 시행했다.

조 추첨 결과 F조가 이번 대회 최악의 죽음의 조로 꼽히게 되었다. 그러나 A조가 다른 의미로 죽음의 조가 되어버렸다.

파일:external/upload.inven.co.kr/i0392447102.jpg
한편 한국 추첨자 선정에서 한국 축구의 전설로 불리는 차범근이 제외[50]되고, 축구와 관련이 없는 비축구 스포츠계 인사들이 채워지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많았으며, 특히 스포츠 분야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배우 송혜교가 선정된 것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상당했다.[51] 아마도 차범근프랑스 월드컵의 경기 진행 도중 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되는 등 오랫동안 대한축구협회와 마찰을 빚은 전력 때문에 추첨자 선정에서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52] 행사에는 재미교포 출신 가수 스티브 유그 당시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소개되어 축하공연을 했다. 행사의 남자 MC도 재미교포릭 윤이 맡았다. 유승준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립싱크 공연을 해서 작은 논란도 있었다. 그런데 이 작은 논란이 불과 몇 개월 후 훨씬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줄은 아무도 상상 못 했을 것이다.

6. 대회 진행[편집]

6.1. 개막식[편집]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식에서는 초박형 LCD모니터로 에밀레종을 재현하거나[53] 차세대 통신기기 IMT-2000을 든 도우미들이 경기장 지붕에서 레펠을 타고 내려오는 등 각종 이벤트로 당시 일본에 가려있던 한국의 디스플레이, IT 기술을 잘 홍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6.2. 조별 리그[편집]

조별 리그 결과에 따른 순위는 아래 표와 같다.

조별 예선

1위
(토너먼트 진출)

2위
(토너먼트 진출)

3위
(탈락)

4위
(탈락)

A조

덴마크
(2승 1무 / 7포인트)

세네갈
(1승 2무 / 5포인트)

우루과이
(2무 1패 / 2포인트)

프랑스
(1무 2패 / 1포인트)

B조

스페인
(3승 / 9포인트)

파라과이
(1승 1무 1패 / 4포인트)

남아프리카공화국
(1승 1무 1패 / 4포인트)

슬로베니아
(3패 / 0포인트)

C조

브라질
(3승 / 9포인트)

터키
(1승 1무 1패 / 4포인트)

코스타리카
(1승 1무 1패 / 4포인트)

중국
(3패 / 0포인트)

D조

대한민국
(2승 1무 / 7포인트)

미국
(1승 1무 1패 / 4포인트)

포르투갈
(1승 2패 / 3포인트)

폴란드
(1승 2패 / 3포인트)

E조

독일
(2승 1무 / 7포인트)

아일랜드
(1승 2무 / 5포인트)

카메룬
(1승 1무 1패 / 4포인트)

사우디아라비아
(3패 / 0포인트)

F조

스웨덴
(1승 2무 / 5포인트)

잉글랜드
(1승 2무 / 5포인트)

아르헨티나
(1승 1무 1패 / 4포인트)

나이지리아
(1무 2패 / 1포인트)

G조

멕시코
(2승 1무 / 7포인트)

이탈리아
(1승 1무 1패 / 4포인트)

크로아티아
(1승 2패 / 3포인트)

에콰도르
(1승 2패 / 3포인트)

H조

일본
(2승 1무 / 7포인트)

벨기에
(1승 2무 / 5포인트)

러시아
(1승 2패 / 3포인트)

튀니지
(1무 2패 / 1포인트)


특이하게도 2개 조(D, G)에서 모든 팀이 1승씩 거두었으며, 2승 1패를 거둔 팀은 없다.

6.3. 결선 토너먼트[편집]

경기

대진표

경기

대진표

경기

대진표

경기

대진표

A

16강 1경기
독일 1:0 파라과이

I

8강 1경기
독일 1:0 미국

M

4강 1경기
독일 1:0 대한민국

P

결승
독일 0:2 브라질

B

16강 2경기
멕시코 0:2 미국

C

16강 3경기
스페인 1:1(3:2) 아일랜드

J

8강 2경기
스페인 0:0(3:5) 대한민국

D

16강 4경기
대한민국 2:1 이탈리아

-

E

16강 5경기
덴마크 0:3 잉글랜드

K

8강 3경기
잉글랜드 1:2 브라질

N

4강 2경기
브라질 1:0 터키

F

16강 6경기
브라질 2:0 벨기에

G

16강 7경기
스웨덴 1:2 세네갈

L

8강 4경기
세네갈 0:1 터키

H

16강 8경기
일본 0:1 터키

O

3/4위전
대한민국 2:3 터키

2002 FIFA 월드컵 우승

파일:브라질 국기.png
브라질

다섯번째 우승
★★★★★

7. 한국측 중계진[편집]

7.1. KBS[편집]

7.2. MBC[편집]

7.3. SBS[편집]

8. 기록[편집]

  • 가린샤 클럽 신규 가입

    • 살리프 디야오(SEN): 덴마크전때 동점골을 뽑은 이후 상대 선수를 걷어차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함.

    • 호나우지뉴(BRA): 잉글랜드전때 경고처분에 항의하다가 퇴장당함

9. 올스타팀[편집]

10. 최종순위[편집]

순위

국가

경기

득실

승점

비고

1

파일:브라질 국기.png 브라질

7

7

0

0

18

4

+14

21

우승

2

파일:독일 국기.png 독일

7

5

1

1

14

3

+11

16

준우승

3

파일:터키 국기.png 터키

7

4

1

2

10

6

+4

13

3위

4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7

3

2

2

8

6

+2

11

4위

5

파일:스페인 국기.png 스페인

5

3

2

0

10

5

+5

11

8강

6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잉글랜드

5

2

2

1

6

3

+3

8

8강

7

파일:세네갈 국기.png 세네갈

5

2

2

1

7

6

+1

8

8강

8

파일:미국 국기.png 미국

5

2

1

2

7

7

0

7

8강

9

파일:일본 국기.png 일본

4

2

1

1

5

3

+2

7

16강

10

파일:덴마크 국기.png 덴마크

4

2

1

1

5

5

0

7

16강

11

파일:멕시코 국기.png 멕시코

4

2

1

1

4

4

0

7

16강

12

파일:아일랜드 국기.png 아일랜드

4

1

3

0

6

3

+3

6

16강

13

파일:스웨덴 국기.png 스웨덴

4

1

2

1

5

5

0

5

16강

14

파일:벨기에 국기.png 벨기에

4

1

2

1

6

7

-1

5

16강

15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이탈리아

4

1

1

2

5

5

0

4

16강

16

파일:파라과이 국기.png 파라과이

4

1

1

2

6

7

-1

4

16강

17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png 남아프리카 공화국

3

1

1

1

5

5

0

4

1라운드

18

파일:아르헨티나 국기.png 아르헨티나

3

1

1

1

2

2

0

4

1라운드

19

파일:코스타리카 국기.png 코스타리카

3

1

1

1

5

6

-1

4

1라운드

20

파일:카메룬 국기.png 카메룬

3

1

1

1

2

3

-1

4

1라운드

21

파일:포르투갈 국기.png 포르투갈

3

1

0

2

6

4

+2

3

1라운드

22

파일:러시아 국기.png 러시아

3

1

0

2

4

4

0

3

1라운드

23

파일:크로아티아 국기.png 크로아티아

3

1

0

2

2

3

-1

3

1라운드

24

파일:에콰도르 국기.png 에콰도르

3

1

0

2

2

4

-2

3

1라운드

25

파일:폴란드 국기.png 폴란드

3

1

0

2

3

7

-4

3

1라운드

26

파일:우루과이 국기.png 우루과이

3

0

2

1

4

5

-1

2

1라운드

27

파일:나이지리아 국기.png 나이지리아

3

0

1

2

1

3

-2

1

1라운드

28

파일:프랑스 국기.png 프랑스

3

0

1

2

0

3

-3

1

1라운드

29

파일:튀니지 국기.png 튀니지

3

0

1

2

1

5

-4

1

1라운드

30

파일:슬로베니아 국기.png 슬로베니아

3

0

0

3

2

7

-5

0

1라운드

31

파일:중국 국기.png 중국

3

0

0

3

0

9

-9

0

1라운드

32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png 사우디아라비아

3

0

0

3

0

12

-12

0

1라운드

11. 화제의 팀[편집]

화제의 팀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에 링크된 문서를 참조 바람.


당시 대회 기준으로 우승 후보들[57]이 전부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고 대회 전에는 우승후보가 아닌 팀들끼리 4강전과 결승전에 올라가는 등 이변이 속출하였다. 터키와 대한민국은 그렇다 쳐도 독일과 브라질이라는 이름값을 보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당시 두 팀은 대회전까지만 하더라도 누구도 우승후보로 꼽지 않았다. 우승국 브라질은 아르헨티나는 커녕 에콰도르에게도 밀리며 남미예선 탈락까지 몰렸다가 겨우 3위를 했고, 독일은 지역예선에서 잉글랜드에게 1-5로 탈탈 털리는 치욕을 당하며 두 팀 모두 한물갔다는 평을 들었고, 특히 독일은 '녹슨 전차 군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불리며 우승후보에는 들지도 못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두 팀은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당시 독일은 '녹슨 전차 군단' 이라는 오명을 어느 정도 벗어나며 준우승을 했고, 당시 브라질은 호나우두 완성형 팀인 데다가 공격팀으로 명성을 떨치면서 7전 전승 우승을 거두었다.[58][59][60][61] 4강에 오른 나머지 두 팀은 이전까지 본선 무대에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던 대한민국과 이 대회와 1954년 대회를 제외하고는 현재까지 지역예선도 뚫지 못한 터키였다. 반면 디펜딩 챔피언이자 피파랭킹 1위인 프랑스, 피파랭킹 2위인 아르헨티나와 자국 축구 역사상 최강팀을 구축한 포르투갈이 조별리그에서 떨어졌다.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는 2002 월드컵 우승 후보 0순위였다. 프랑스는 1998 월드컵, 유로 2000,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을 잇달아 재패하여 그랜드 슬렘을 달성했을 뿐더러, 특히 컨페더레이션스컵 개막전에서 한국을 5:0으로 작살내어 세계 최강의 위용을 선보였던지라, 당시만 해도 프랑스의 월드컵 2연패 가능성을 높게 평가 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결과는... 16강 진출은 커녕 단 한 골도 못 넣고 초라하게 짐을 싸서 돌아가고 말았다.

아르헨티나는 프랑스의 2연패를 견제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팀으로 거론되었고, 지역예선에서 3위부터 7위까지 혼전 양상인 와중에 독보적 1위를 거머쥔 데다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남자 축구 종목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에르난 크레스포1998 FIFA 월드컵에서 무서운 활약을 보인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쌍포가 있는 팀이라 엔트리에서 행복한 고민을 한다고 볼 정도의 팀이었다. 또한, 1991년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 우승의 주역인 소위 황금 세대들이 포진해 있는 포르투갈 역시 이 대회의 최대 복병이었다. 이에 비해 남미 예선 3위[62]로 간신히 본선에 진출한 브라질과 잉글랜드에 밀려 플레이오프로 밀려나고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간신히 본선 진출권을 따낸 독일은 8강 이상 진출하기 어렵다는 혹평을 들을 정도로 팀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일본으로 배정받은 것은 큰 독이 되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한국과 월드컵 유치를 경쟁하던 시점에 아르헨티나가 한국을 지지해줬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안 그래도 일본에선 잉글랜드 대표팀의 스타인 데이비드 베컴 광풍까지 불고 있던 상황이라 잉글랜드의 조별 예선 상대이기도 한 아르헨티나를 노골적으로 증오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일본은 거의 인기팀, 상위팀만을 응원했는데 아르헨티나 대 나이지리아전과 아르헨티나 대 스웨덴 전만큼은 정 반대였으니 그 정도로 일본이 아르헨티나 팀을 싫어했다. 특히 아르헨티나 대 스웨덴 전은 일본이 유일하게 아르헨티나보다 인기없는 팀인 스웨덴을 응원했는데 스웨덴이 공을 잡으면 환호성을 질렀고 아르헨티나가 공을 잡으면 야유를 퍼부었다. 만약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한국으로 배정되었더라면, 한국은 일본과는 달리 특정 팀을 증오하지 않았을 뿐더러,[63][64] 월드컵 개최 경쟁에서 지지를 보내기도 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 이 정도 원정 텃세를 견딜 일은 없었을 테니 아르헨티나 입장에선 땅을 칠 노릇.

6월이면 한/일 양국이 장마철에 접어들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개막을 예전 대회에 비해 열흘 정도 앞당겨 5월 31일에 개최했는데, 그래서 유럽리그에서 뛰던 선수들, 특히 월드컵 직전에 챔스 결승을 치뤄야 했던 레알 마드리드레버쿠젠의 선수들이 피로누적 때문에 대회 초반 제대로 뛰지 못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런데 조별리그 일본-토너먼트 한국을 비행기로 오가면서도 준우승을 한 독일이 보면, 결국 힘들었다고 해도 이겨냈어야 할 일이었다. 더 나아가서 2002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평소에 열리는 시기보다 약 열흘정도 앞당긴 5월 15일에 열렸고, 피로누적 정점을 찍었을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레알 마드리드 출신 선수진이 과반수를 차지했던 2002년의 스페인 대표팀은 8강에서 대한민국에 잡히기 전까지 순항했다.[65] 게다가 챔피언스리그 준우승팀 레버쿠젠 선수들을 주축으로 한 브라질과 독일은 나란히 결승전에서 맞대결을 벌였다.[66] 결국 다 유럽팀들의 변명인 셈이다.

일례로 포르투갈은 한국에 적응하겠답시고 옛 식민지였던 마카오에 베이스 캠프를 차렸는데 그나마도 우기라 훈련도 제대로 못했다. 그럼에도 이때 중국과 평가전을 치러서 2:0으로 이겼는데, 다행히 소림축구에 피구나 파울레타 발목이 아작나는 일은 없었지만 '중국을 이겼으니 비슷한 한국도 간단하겠지'(...)라고 단단한 착각을 하고 만다.[67] 거기에 한국에 입국한 뒤에도 한국 대표팀의 전력을 분석했다면서 내놓은 것이 1998년도 데이터였고,(...) 급기야 이번 대표팀에 선발되지도 않은 김도훈을 조심하라고 했다. "차두리를 막아~!"(...).[68] 거기에 첫 경기에서 미국을 상대로는 너무 깔보다가 패하는 바람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2차전에서 폴란드를 4:0으로 바른 다음에 다시 기강이 해이해져서 하라는 훈련은 안하고 쇼핑을 하러 다니는 등 완벽하게 막장 그 자체였다. 그리고 2009년 강심장에서 밝혀진 바로는 홍석천이 경기를 앞둔 포르투갈 대표팀과 술자리를 함께 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올 정도.[69]

그나마 오심으로 승리를 도둑맞은 러시아와, 비엘사 감독의 삽질로 에르난 크레스포를 제대로 써먹어보지도 못한데다가 국가 경제 부도로 제대로 지원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대회에 참가했을뿐더러 결정적으로 판정까지 따라주지 않았던 아르헨티나, 에이스 지네딘 지단이 대회 개막을 불과 며칠 앞두고 심하게 부상을 입고 주전 선수들 대다수가 심하게 컨디션 난조를 겪은 점 때문에 무득점에 그친 프랑스 정도만 그런대로 변명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는 정도고, 다른 팀들은 그냥 변명의 여지가 없이 그냥 준비 부족이었던 거다. 상대가 개최국이라고는 해도 승점 자판기 신세였던 아시아 팀들이니 요태까지 구래와틋 그냥 바를 거라고 생각하고 안일하게 나왔다가 참변을 당해버린 것.

다만 모든 유럽팀들이 이런 막장인 것은 아니었다. 가령 위에서도 언급한 독일 대표팀의 경우 제주도에서 현지 적응 훈련을 한 뒤 16강전을 서귀포 경기장에서 치르는 등 제대로 대비했고, 결과적으로 좋은 성적을 냈다.

12. 대회 이후[편집]

2000년대 초반 들어 J리그에 스타 선수들을 빼앗기며 침체기에 들어섰던 K리그는 월드컵 이후 축구 붐에 힘입어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게 된다. 물론 월드컵을 위해서 지었던 10개의 최신식 구장도 인기에 한 몫했다. 또한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된 알파이 외잘란이 2004년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기도 했다.[70] 게다가 축구 저변이 꾸준히 성장하여 대회 전에 승강제도 없이 10개 팀이 고작이던 K리그는 14년이 지난 2017년 현재 1부, 2부 합쳐 22개 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유소년 축구도 상당히 활성화되었다. 게다가 당시 대표팀에서 맹활약한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 등이 유럽 무대에 진출하게 되었고, 이는 현재도 많은 한국 선수들이 유럽 주요 리그에서 활약하게 되는 밑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4강이라는 성적은 한국 축구에 너무 큰 기대를 갖게 만들었고 이후 여러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 등으로 유럽 축구의 인기가 많아지고 한국 축구가 연달아 병크를 내자 한국 축구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하는데 일조한다. 특히 2002년 월드컵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감독과 선수들을 향한 무차별적인 비난이 쏟아지는 경우가 많아지는데, 이는 곧 잦은 감독 교체로 이어졌다. 일례로 2006 FIFA 월드컵 독일까지 국가대표팀 감독을 세 번이나 바꿨고 결국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선임해서 대회를 치렀으나 안타깝게 16강 진출에 실패했는데, 아드보카트 감독은 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한 것을 자신의 준비 부족이라고 인정했지만 시간의 부족함도 토로하며 1년도 안 되는 그 짧은 기간 동안 팀워크를 다지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을 원정에서 사상 최초로 16강 토너먼트에 진출시킨 허정무 감독은 축구 팬들에게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며,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1무 2패로 팀을 광탈시켰다고 전국민적인 비난을 받은 홍명보 감독도 사실 대회를 불과 1년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팀을 맡아서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던 상황임에도 맹비난을 일삼았다.

이 당시 한국 대표팀은 미래를 위해 유망한 청소년 선수 4명을 훈련 파트너로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정조국, 여효진, 최성국, 염동균이었는데, 이들 중 여효진은 이렇다할 성장을 보이지 못했고 최성국과 염동균은 승부조작질로 한국 축구계에 먹칠을 가했다.(...) 그나마 정조국만이 꾸준히 프로 생활을 이어가다가 30대를 넘어선 2016시즌에 비로소 K리그 득점왕에 등극하며 부활의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월드컵 수익금은 18억달러(약 2조1600억원)로 TV 중계권료가 10억8000만달러(약 1조2960억원)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후원업체로부터 들어오는 돈도 3억달러(약 3600억원)나 된다.

그러나 FIFA가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과 달리 공동개최국인 한·일 양국의 흥행은 기대에 못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원인은 공동개최를 하다보니 경기장 건설에 막대한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10개 경기장을 신축하는데 2조원에 육박하는 돈을 쏟아부었다.#[71] 다만 대회 운영과 준비를 한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KOWOC)는 200년 1662억원 흑자를 보았다. 또한 축구 열기가 높은 유럽과 남미에서 오기에는 너무 멀어서 관광객도 예상에 못 미쳤다. 특히 한국 쪽에서 열린 경기는 비인기팀 경기의 경우, 경기장 관중석이 많이 비어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일본도 경기장 신축과 보수에 3조원이 넘는 재정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재주는 개최국이 부리고 돈은 FIFA가 챙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게 탈 아시아를 외쳤지만, 대한민국의 기대 이상의 선전과 아시아 팀들의 상향평준화 속에 묻혀서 물 건너갔고 J리그의 파이를 키우는데 몰두하게 되었다.

이 대회 16강 한국 대 이탈리아전 경기 때문인지 이탈리아 축구협회가 노발대발해서 이 대회를 끝으로 연장전 골든골 제도가 폐지되었다. 골든골 제도는 연장 중에 한 팀이에 골을 넣으면 바로 그 팀을 승자로 처리하여 바로 경기가 종료되는 방식이다. 이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이후의 대회에서는 연장에 돌입할 경우 무조건 연장 후반까지 경기를 끝마쳐야 한다.

2009년 열린 FIFA 총회에서 FIFA는 더 이상의 공동개최는 없다는 선언을 냈고, 이는 이 월드컵을 최초이자 최후의 공동개최 대회로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이 원칙은 2018년 월드컵 개최에서 폐기되어 벨기에-네덜란드[72], 포르투갈-스페인이 공동개최를 추진하였다. 투표 결과 둘 다 러시아에 밀려 떨어지기는 했지만. 이후 2026년 월드컵캐나다, 미국, 멕시코 3국 공동개최로 결정되어 "최초"이기는 하지만 "최후"의 공동개최 타이틀은 공식적으로 없어졌다. 2030년 월드컵에서도 우루과이-아르헨티나가 공동개최를 추진한다고 하니 공동개최는 앞으로도 명맥을 이을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월드컵은 피파에서 "개별개최로 신청된 나라를 임의로 묶어서 공동개최로 만들어버린" 것이므로 처음부터 공동개최로 신청하는 것과는 이야기가 다르기는 하다. 한마디로 월드컵 개최 유치전에서 무승부가 난 유일한 월드컵인 것이다.

풋볼매니저에서는 2002 FIFA 월드컵은 대한민국에서만 개최되었다고 나와있다. FM의 전신이자, 2002년 당시 발매된 'CM(챔피언쉽 매니져)01/02 or 2002 K리그'에서는 공동개최라고 되어 있지만 대다수 중요한 경기들이 실제와는 달리 일본 경기장에서만 진행되었다.(개막전과 심지어 3-4위전과 4강 전 경기가 일본 개최) 처음 있었던 공동개최였기에 시스템상 지원이 어려웠던 것이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201x년 월드컵은 북유럽 몇개 국가가 공동개최한다고 뜬다.

이탈리아 세리에 AAC 페루자 소속으로 활약했던 안정환은, 어이없게도 대회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든골을 넣었단 이유로 AC 페루자에서 방출당해 커리어가 밑바닥을 치기 시작했다.(…)[73] 그리고 이탈리아 의회에선 대한민국과 국교를 끊어야되는거 아니냐(…)는 잉여스런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는 루머가 있다.[74][75] 남아공 월드컵 조추첨 직전에도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한국과 재대결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76]을 보면 아직까지도 앙금이 남아 있는 듯.[77] 그리고 FM2014에는 이탈리아 국대의 라이벌로 대한민국이 설정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4강 진출의 분위기를 타고 정몽준 축협 회장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했다. 그리고 돌연 노무현 후보 지지를 일방적으로 철회[78]해서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애초에 월드컵 성적에 따라 대통령 후보의 자질이 평가 된다는것이 코메디.

서양 축구팬들한테는 안 좋은 의미로 유명하다. 이유는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지금까지도 떠도는 오심 모음 동영상 때문이다.

10년 후인 2012년 한국에서는 2002년 월드컵 10주년을 맞이하여 K리그 올스타전을 2002년 당시의 대표팀과 2012년 현재의 K리그 올스타와의 경기로 꾸몄다. 흥행도 성공했고, 그에 걸맞는 다양한 이벤트들이 많았던 알찬 올스타전이었다. 10년전 현역 선수들이었던 멤버들이 감독이나 코치, 혹은 베테랑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어딘가 감회가 새롭다. 대작 애니메이션이 종료된 뒤 후일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79] 그리고 그런 와중에 월드컵 엔트리에 끼지 못해 2002 멤버들과 최소 동기, 내지는 그들보다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2012 팀에서 뛰게 된 이동국을 보고 있으면 눈에 습기가 절로 찬다(...). 이후 6년 후인 2018년에도 개막한 지 16년째가 되던 날 2002년 당시 멤버들과 고등학교에 입학한 '월드컵둥이'들과 개막식이 열렸던 서울월드컵경기장 인근에서 풋살 경기를 벌였다. #

이 대회에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지만 실제로는 그라운드에 얼마 서있지도 못한 카카는 브라질이 이 월드컵에서 우승한 덕에 FIFA 월드컵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 중 최대의 행운아가 되었다. 겨우 20분 정도만 뛰고 월드컵 우승 멤버가 되었으니...

이경규가 간다가 2002 월드컵 특집방송으로 부활하여 좋은 반응을 얻자 이후 한국 지상파 방송 3사는 다음 대회인 독일 월드컵부터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의 월드컵 특집은 물론이오 아예 월드컵 특집예능을 런칭하는 등 월드컵 시즌에 맞춰서 특집방송을 경쟁적으로 편성하게 되었다.

재미있는게 이 대회 본선 16강전~4강전에서 대한민국과 대결한 나라들이 훗날 개최된 2006년부터 2014년까지의 월드컵에서 공교롭게도 대결한 순서대로 모두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16강전 상대 이탈리아는 다음번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8강전에서 대한민국과 대결한 스페인은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상 첫 우승을 달성했으며, 4강전에서 대한민국과 대결한 독일 또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80] 그만큼 당시 대한민국이 우승후보들을 줄줄이 꺾으며 올라갔었단 얘기. 하지만 3,4위전 당시 만났던 터키는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면서 이 법칙은 깨지고 말았다.[81] 그렇다면 2018년 월드컵은 터키 대신 우루과이나 브라질이 우승? 두 팀 다 8강에서 탈락했다

2015년 6월 FIFA에 대한 비리가 대대적으로 적발되어 수사되는 과정에서 스페인 언론이 2000년 당시 일본 축구 협회장인 나가누마 겐 회장이 남미축구연맹에 대회 유치 사례로 150만 달러를 지불했다고 폭로했다. 일본 조와 토너먼트 대진이 널널했던 이유 대회 유치는 그 전에 결정이 났지만, 이 시점에는 일본이 2022년의 카타르처럼 월드컵에 출전한 사례가 없었기에[82] 명분적으로 한국에 밀리는 상황이었다.[83] 일본 측에서는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지만, 돈이 오간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도 있으며 그 서류에는 돈을 받은 당사자인 레오스 전 남미축구연맹 회장과 아내의 서명이 기재되어 있다고 알려져 앞으로도 두고 봐야 할 일이다.

13. 대회 공식 스폰서십[편집]

13.1. FIFA 월드컵 스폰서[편집]

13.2. 한국측 스폰서[편집]

13.3. 일본측 스폰서[편집]

14. 이야깃거리[편집]

  • 대한민국의 경우는 사람들끼리 모아다가 반을 갈라서 한쪽은 미국을, 다른 한쪽은 포르투갈을 응원하도록 약속하고 응원했으며, 3/4위전에서는 터키와 맞붙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인터넷을 통해 널리 퍼진 형제의 나라 이야기에 힘입어 관중석에서 대형 터키 국기를 내걸어 주기도 했다. 실제로 터키 현지에서는 한국 응원단의 이런 호의에 감동한 터키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터키에서도 이때를 터키 축구의 황금기라고 추억하다 보니 현재까지도 이런 호의를 기억하는 터키인들이 꽤나 많은 편이다.

  • 일본의 경우는 인기 있는 팀들만 노골적으로 응원하고 심지어는 자기가 응원하지 않는 팀에게는 노골적으로 야유를 보냈다. 주로 잉글랜드, 브라질, 이탈리아, 독일 등의 강호들만 좋아했으며, 나머지는 무시했다.

    • 조별리그 이탈리아 대 에콰도르 전에서는 에콰도르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냈다.

    • 조별리그 아르헨티나 대 잉글랜드 전에서도 아르헨티나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냈다.[86]

    • 16강 세네갈 대 스웨덴 전에서도 세네갈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냈다.

  • 또한 제3국 간의 경기에서도 한국 관중들과 일본 관중들의 태도가 대조적이었는데, 한국 관중들은 주로 강팀보다는 약팀을 응원, 그것도 일방적이 아니라 서로 공정하게 응원하거나 아예 응원단을 둘로 쪼개서 양쪽을 서로 응원한 반면, 일본은 인기팀 위주로 응원을 했다. 특히 일본에서 열린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브라질 경기를 보면 일본인지 유럽이나 남미인지 헷갈릴 정도인데 세네갈은 16강전을 일본에서 치렀는데, 한국에서 조예선을 할 당시 한국인들이 세네갈 국기를 흔들고 세네갈 극소수 관중들과 어울려 세네갈을 응원해줘서 일본도 그러겠지 여겼더니만 그런 거 없고 죄다 스웨덴만 응원해서 실망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한국 측에 부탁하여 응원도구와 몇몇 물품을 일본에서 공수 받기도 했다.[87] 이렇게 보면 아르헨티나는 한국에서 경기를 했어야 했다. 일본에서 경기하는 바람에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 월드컵 본선에 오지 못한 나라들의 대형 국기가 경기장에 종종 걸리기도 했다. 웨일즈 국기나 이스라엘 국기 등등. 이쪽 나라 축구팬들이 구경와서 자국팀도 언젠가 월드컵에 진출하기를 바라며 걸어놓은 것도 있지만, 지역적 혹은 정치적인 앙숙인 국가를 도발하기 위해 내걸기도 했다[88]. 한국 대표팀 경기에는 항상 네덜란드 국기가 걸려 있었는데, 이는 히딩크 감독의 고국이 네덜란드였기 때문. 그래서 2002 월드컵 진출에 탈락해서 기가 죽었던 네덜란드 사람들도 나름 위로를 얻었다고. 거기다 히딩크호가 승승장구 하니 "아이 신나~" 분위기(...).

  • 지역예선에서 못했던 팀들이 본선에서는 엄청 선전하고 되려 지역예선이 잘했던 팀들이 부진했다. 지역예선에서 칠레[89][90]나 베네수엘라 상대로조차 고전하며 지역예선 탈락을 걱정한 끝에, 그나마도 에콰도르한테 밀려 3위로 올라온 브라질이 우승했다. 지역예선에서 잉글랜드에 1-5라는 전설적인 점수로 대패를 당하고 플레이오프로 떨어져 우크라이나를 힘겹게 이긴 끝에 올라온 독일이 준우승을 차지했다. 스웨덴에 밀려 플레이오프까지 간 끝에 오스트리아를 이긴 터키도 3위를 하는 대이변을 만들었다. 반면 네덜란드를 떨어뜨리고 조 1위 본선 직행의 위업을 달성했던 포르투갈은 미국과 대한민국에게 연달아 깨지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브라질을 제치고 2위로 본선에 오른 에콰도르 역시 멕시코와 이탈리아의 맛집으로 전락해버리고 탈락했다. 이탈리아 역시 조별리그에서 부진한 끝에 겨우 16강에 올랐지만 한국에 1:2로 패했다. 남미 1위의 압도적 화력을 보여준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의 오웬이 픽 쓰러지며 얻어낸 패널티킥으로 실점해서 얻게 된 1패가 원인이 되어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유럽 예선을 1위로 통과한 나라들 중 스페인과 잉글랜드만 살아남아 8강에 진출했지만, 각각 한국과 브라질에 패했다.

  • 유난히 본선 무승, 본선 전패 팀이 3팀씩이나 나왔다. 그 중에서도 본선 무승 전패 팀이 2개국(중국, 사우디아라비아)이나 나오는 진기록이 펼쳐졌다.

  • 스웨덴 대 세네갈의 16강전, 한국 대 이탈리아의 16강전, 터키 대 세네갈의 8강전은 골든골로 승부가 갈렸다. 세네갈은 스웨덴에 선제골을 내주었으나 막판에 동점골을 성공시킨 데 이어 연장전에서 골든골을 성공시킴으로써 8강에 올랐으나, 8강전에서는 터키에 골든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결승전을 제외하고 2라운드 최대의 빅 매치[91]였던 브라질 대 잉글랜드 전에서 브라질은 잉글랜드의 오언에게 선제골을 내주었지만[92], 히바우두와 호나우지뉴가 잇달아 골을 성공시키면서 2:1로 역전승을 거두었는데 특히 호나우지뉴가 직접 프리킥으로 작렬시킨 역전골은 이 대회 베스트 골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 이 시절 카메룬 대표팀은 민소매 유니폼을 도입했는데, 제프 블라터가 보기 안 좋다고 깠다. 근데 블라터는 여자 축구 선수 핫팬티 착용을 주장한 적이 있어서 까였다.(...) 결국 카메룬 대표팀은 민소매 유니폼 안에 반팔 언더웨어를 받쳐 입고두 겹으로 입은 것을 볼 수 있다 뛰었는데, 이렇게 하니 기능성 유니폼의 의미가 없어졌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1승 1무 1패로 탈락했다. 마지막 3차전에서 강호 독일을 넘지 못하고 패해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둘 다 단두대 매치 상황이라 경기 분위기가 무시무시했던건 덤

  • 이때를 기점으로 서포터즈 클럽인 붉은 악마가 유명해졌다. 2002년 당시에는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 특히 매 경기마다 펼친 카드 섹션 퍼포먼스가 매우 화제가 되었다.
    각 경기별 카드 섹션 문구는 다음과 같다.

    • 폴란드전: WIN 3:0

    • 미국전: GO! KOR 16!

    • 포르투갈전: 대한민국

    • 이탈리아전: AGAIN 1966[93]

    • 스페인전: PRIDE OF ASIA

    • 독일전: 꿈★은 이루어진다[94]

    • 터키전: CU@K-리그[95]

  • 길거리 응원은 대단한 장관이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응원하는 모습은 모두의 찬사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96][97] 월드컵의 단골손님인 훌리건도 찾아볼 수 없었고, 응원 이후 스스로 쓰레기를 치우는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초상집도 월드컵 앞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98] 그러나 몇몇 시민들[99]이 시내버스 천장 위에 올라가는 등의 지나친 행동을 보인다거나 수많은 인파 속에서 소매치기, 성추행 등의 범죄도 벌어졌었다.

  • 이 해인 2002년에 태어난 아이들을 '월드컵둥이' 라고 부른다.[100] 게다가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신화를 기념해서 아이 이름을 '사강' 이라고 지어준 경우도 있다고.[101]또한 이 시기 월드컵 응원에 도취한 남녀들이 눈에 맞아 임신을 하여 2003년 3월~ 4월 출생률이 잠깐 급증하기도 하였다.

  • 산모들에게는 힘들었던 시기 중 하나. 특히 7월에 아이를 낳은 산모들은 고통을 겪어야 했는데, 이 때는 거의 만삭이라 아직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태아들이 신생아의 시력, 청력, 신체 구조가 거의 같아서 바깥 소리를 거의 대부분 들을 수 있었다. 골이 들어가면 엄마 배속에서 발로 엄마를 차던 아기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산모들은 제대로 응원하지도 못했다.

  • 이 길거리 응원에 숨겨진 뒷이야기로, 실제 FIFA에서는 대형 전광판을 이용한 야외 방영조차도 중계비를 걷어갔다. 당시 금액으로 약 2000만원 정도였다는데, 한국 쪽은 돈독 오른 놈들이라 욕을 하면서도 돈 내고 야외 방영을 했고, 일본 쪽은 안 내고 안 했다.(...)

  • 대회 전 우려가 되었던 훌리건 문제는 그리 나타나지 않았는데, 일단 한국과 일본이 공권력에 있어서 남다른 국가였던 것이 한몫했다. 거기다 한국에서 조 예선 경기를하는 나라들은 극성 훌리건이 드문 국가들[102]이었고, 일본 쪽은 잉글랜드나 아르헨티나 등 전투력이 남다른(...) 국가들이 있었으나 역시 별다른 소란을 벌이지 못했다. 당시 일본 경찰은 훌리건 제압용 무기만 따로 고안했고, 진압 훈련도 상당히 많이 했다. 한국이야 전경들의 숙련도가 남다르니 필요 없었을 듯.

  • 사회뿐만 아니라 군대 내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육해공군 가리지 않고 부대 내에 큰 스크린을 설치해서 장병들에게 경기를 보여준다든지, 다른 경기는 알아서 요령껏 보되 한국전만은 꼭 시청하게 하라는 공문이 내려온다든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물론 훈련이나 경계 인원은 제외. 지못미. 다만 이 때는 저녁 경기인 경우에는 애국가 연주시 국기강하식을 동시에 하면서 대한민국의 군인인 만큼 애국가 연주시에 거수경례 만큼은 꼭 하도록 했다고 한다.

  • 또한 사회와 격리된 공간인 교도소구치소에서도 이 기간만큼은 밤 늦게까지 TV를 보면서 월드컵 응원을 허용하였다. 또한 종교와 불문하고 정숙을 지키는 신성한 공간인 교회, 성당, 사찰 등지에서도 이 기간 동안에는 떠들썩하게 응원을 하였으며, 심지어는 장례식장에서도 응원전이 펼쳐졌다. 이외에도 평소에는 조용한 공간에서도 월드컵 기간 동안만큼은 많이 떠들썩하게 응원하였다.

  • 아일랜드 축구팬들은 조예선을 일본에서, 토너먼트를 한국에서 하는 바람에 두 나라를 오가야 했다.[103] 체류 비용을 걱정했지만, 한국이 일본보다 물가가 당시에는 싸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하기도. 거기다 지자체에서 여행객을 위해 둔치에 텐트촌까지 마련해 줘서 체류비가 많지 않은 이들이 무척 좋아했다. 아무튼 그렇게 체류비가 남아서 '기왕 온 김에 관광 더 하고 가자'고 남은 아일랜드 팬들이 꽤 많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예 영어 원어민 강사로 채용되어서 말뚝 박은 사람들도 있었다. 덕분에 2002년 기점으로 국내에 아일랜드 사람들이 많아졌다고.그리고 아일랜드 신화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 탄생했다.

  • 체류비 이야기를 하자면 터키 기자들을 뺄 수가 없다. 원래 자국 성적은 잘해야 16강이라 여기고 있었기에 터키가 계속 토너먼트에서 승리하자 터키 기자들은 자국의 선전에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체류비 문제로 난감함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일본 물가가 한국보다 비싼 것을 알고 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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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 대표팀은 월드컵 기간 중에 한국 똥개 토종개를 길렀다. 시장에서 멍멍탕(...)이 될 운명에 처한 강아지를 보고 가엾게 여긴 스페인 기자가 1만 원을 주고 구해왔다고. 이 누렁이는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감독의 이름을 따서 '카마친(작은 카마초)'이라고 불렸다. 카마친은 스페인 선수들에게 몹시 사랑받았지만, 비행기 검역에 걸려서 선수들이 스페인으로 돌아갈 때 못 데려갔다고 한다(...) 카마친에게 정이 들었던 카시야스는 공항에서 헤어질 때 눈물을 글썽였고, 라울은 잘 돌봐주라며 거금을 주고 갔다. 이후 카마친은 스페인 선수단이 머물던 숙소 관리자에게 맡겨졌다고 하는데, 몇 개월 후에 녀석을 그리워한 페르난도 모리엔테스가 사람을 보내서 정식으로 데려갔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냥 한국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정확한 근황은 알려진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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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강 한국전 승부차기에서 실축을 한 호아킨은 흑화한 모습이 찍히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 올리버 칸은 한국에서 마셔본 두유, 베지밀의 맛에 반해서 한국에 있는 내내 베지밀을 달고 살았다. 이를 신의 음료라 극찬했으며(...) 대회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 갈 때도 한 박스 부쳐갔다고. 그리고 이후에 독일의 한인촌을 배회했다 카더라 지단의 경우는 음료수인 2% 부족할 때를 매우 좋아해서 훈련내내 물 대신 2%만 마실 정도였다고 한다.[104]

  • 브라질 대표팀 또한 여러가지 일화를 갖고 있다. 목욕탕에 때를 밀러간 호나우두는 때밀이 아저씨가 팬이라고 하자 자신의 팬티(...)와 모자, 슬리퍼를 선물로 줬다. 호베르투 카를로스는 호텔 직원과 탁구를 했는데, 번번이 지는 바람에 오기가 생겨서 계속 도전했다고. 그리고 브라질 대표팀은 노래방을 무척 좋아했으며, 카를로스호나우딩요는 당시 오락실에서 유행한 펌프 잇 업을 즐겨 했다고 한다.

  • 지네딘 지단은 대회 직전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했고 이후 부산의 한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병원 관계자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 근데 그 병원에서는 이 사진을 멋대로 광고용으로 써버렸고, 지단은 나중에 이 소식을 전해듣고 어이없어했었다. 지단의 몸값이나 초상권을 생각해 본다면 병원 측은 무지막지한 용자짓을 한 셈이다.#

  • 세네갈 대표팀 선수 파디가는 대구에 왔을 때 모 귀금속 가게에서 가족들에게 사 줄 목걸이를 고르고 있었다. 근데 파디가를 금은방 절도를 하러 온 아프리카 노동자로 오해(...)한 금은방 주인이 경찰에 신고를 하는 해프닝이 있었고, 나중에 혐의가 풀리자 무안해진 금은방 가게 주인은 파디가에게 그 금목걸이를 선물로 주었다.

  • 포르투갈의 세르지우 콘세이상은 호텔 미용사 아가씨에게 반해서 날마다 머리를 손질하러 갔다. 콘세이상은 엄청 끈질기게 구애를 했지만, 결국 차이고 말았다. 미용사 아가씨는 콘세이상이 유명 축구 선수인 줄 모르고 그냥 외국인 노동자(...)인 줄 알았다고 한다.

  • 우루과이 대표팀은 천안연수원에 베이스 캠프를 차린 후 몸도 풀겸 삼성SDI 천안공장 축구동호회와 경기를 가졌다.[105] 비록 친선경기이긴 하나 컨디션 점검 차 레코바, 몬테로, 실바 등 정예 멤버가 출격했는데, 예상외로 2골이나 내주면서 5-2로 승리했다. 우루과이 스포츠기자들은 골을 넣은 직원의 이름과 나이를 묻기도 했다.# 참고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도 우루과이 상대로 2골을 넣어본 적이 2번밖에 없다.[106] 그리고 우루과이 대표팀은 연수원의 미니 냉장고를 매우 탐냈기에(...) 삼성에서 그들의 고국길에 선수 전원에 미니 냉장고를 선물해 주었다. 소원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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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비드 베컴을 위시한 스타 플레이어들의 헤어 스타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베컴의 모히칸풍 헤어스타일(일명 닭벼슬)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며 누구나 따라하는 간지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호나우두의 뭐라 설명하기 힘든 머리(일명 다리미)는 만인에게 큰 웃음을 주며(...) 월드컵이 지구촌 축제가 되는데 이바지하기도 했다.

  • 이 즐거운 축제의 막바지에 북한에 의해 큰 비극이 일어났으니, 6월 29일 제2연평해전이 발발하였다.

  • 포르투갈전을 하루 앞두고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이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안톤 오노에게 뺏긴 금메달과 미국전 무승부 때문에 반미감정 고조되고 있었는데, 이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하지만 월드컵 기간 중에는 4강 신화의 열기에 묻혔다.

  • 대회에 참가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 중 군 복무를 마치지 않은 선수들은 대회 종료 후 모두 병역 혜택을 받았다. 이미 1990년대에도 월드컵 16강 가면 병역혜택 줄것이라는 소문이 돌 만큼 그 가치를 높게 평가 했었고, 아예 법으로 이미 그렇게 정해진것이라고 믿고 있던 사람들도 많았다.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인 2002년 5월 10일 뉴스를 보면 16강 진출시 병역특례에 관해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곧 열겠다고 할 정도로 법개정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또 5월에 국회의원 147명이 16강 진출시 병역혜택을 줄 수 있는 병역법 시행령을 개정하도록 이한동 국무총리에게 건의문을 전달하기도 했으니 마냥 즉흥적으로 이뤄진 일은 아니다. 6월 14일 인천 문학 경기장에서 포르투갈을 이기고 16강 진출이 확정되었을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라커룸으로 들어와 선수들을 축하해주는 일이 있었고, 이 자리에서 대표팀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성과와 보상에 대한 얘기가 오고갔는데, 당시 대표팀 주장이었던 홍명보가 "젊은 선수들이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들에게 병역에 관한 혜택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건의했고,[108] 이에 김 대통령은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일사천리로 절차가 진행되었는데 여당 야당뿐 아니라 설문조사를 해도 국민의 과반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와서 반대 의견은 힘을 잃었다. 원래 국방부와 병무청은 반대 입장이었다. 이렇게 병역 혜택을 받은 선수는 현영민, 김남일, 최태욱, 설기현, 이영표, 이천수, 차두리, 안정환, 박지성, 송종국 등이다. 참고로 많은 사람들이 4강 진출로 병역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16강 진출 기념으로 16강전이었던 이탈리아 전과의 결과와 상관없이 병역 혜택이 주어진 것이다.[109] 사실 축구든 야구든 특정 종목에만 따로 특혜를 주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특히 어떤 대회를 통해서 즉흑적으로 여론에 따라 법을 바꾸는것은 냉정하게 봐서 잘못된 것이다.

  • 당시 많은 남자 중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 월드컵에 빠졌던 나머지 그해 1학기 기말고사 전교생(특히 남학생) 평균 점수가 수직 하락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실제로 월드컵 때문에 학교 기말고사가 연기된 사례도 많았고. 심지어 그해 말에 있었던 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평균이 낮게 나왔던 것도 이것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 이 당시 한국 대표팀 멤버들 중 가장 오랫동안 현역 선수로 뛴 선수는 아이러니하게도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던 현영민이다. 현영민은 2017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학들은 월드컵 기간 중에 수업이 있으면 월드컵 관람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여름방학을 예년에 비해서 일찍 했다고 한다. --학업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가 아니야??-


[1] 2026 FIFA 월드컵이 미국/캐나다/멕시코(북미) 공동 개최로 확정되어 더 이상 유일하진 않게 되었다.[2] 6월 한 달간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붉은색 물결로 완전히 뒤덮였고, 언론 역시 '스포츠뉴스' 코너가 아님에도 일제히 월드컵 소식들만 보도할 정도였다. 월드컵이 끝난 7월에도 열기가 남아서 월드컵 관련 뉴스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거나 예능에서도 월드컵을 소재로 방송을 했었다.[3] 한국팀의 경기에서는 국방부에서 행사지원을 해 주었다. 한국팀이 출전하는 경기에서 국방부 취타대가 참여 한 것은 물론이고 국방부 군악대가 국가 연주에 참여하였다. 방송으로 관현악 판으로 애국가가 연주 된 스페인전을 제외하고 경기 전에 양 국 국가 연주시에 상대국 국가와 대한민국 애국가가 국방부 군악대의 취주악 판으로 연주되었다. 참고로 대한민국 국방부 군악대가 연주한 해외 국가는 폴란드.미국.포르투갈.이탈리아.독일.터키국가. 참고로 다른 경기에서는 국방부 군악대가 와서 상대국 국가와 애국가를 연주했지만 스페인전에서 국방부 군악대가 오지 않은 이유는 스페인 국가가 가사가 없기 때문에 가수가 와봐야 별 의미가 없어가지고 한국 국가에서 가수가 와서 애국가 부르고 한다는 것은 형평성이 맞지 않기 때문에 스페인전 에서는 유일하게 국방부 군악대가 안오고 애국가도 스페인과의 형평성에 맞춰서 관현악 판으로 방송을 통해서 틀어 줬었다고 한다. 그리고 2030 월드컵을 한국이 또 개최에 성공할 경우 한국팀 경기는 대한민국 국방부 취타대와 대한민국 국방부 군악대가 행사 지원을 할 가능성이 높다.[4] 세계최초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이다. 이탈리아 방송사 RAI와 일본의 NHK가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일부지역에서 진행했다. 2002 월드컵까지는 일부 지역 한정으로 일부 경기만 HD중계였지만 이후 열린 2006 독일 월드컵부터는 전경기가 전세계에 HD로 중계되었다. 올림픽의 경우 세계최초 HD는 1988 서울올림픽이다. 아날로그 방식의 HD이지만 당시 일본에서 실험방송 개념으로 제작되었었다. UHD의 경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최초.올림픽은 죄다 한국이 최초다[5] 실제로 무려 2000억을 들여 지은 서울월드컵경기장도 개막식과 개막전을 포함해 고작 세 경기만 열렸다. 그나마 그 세 경기도 입장권 시스템 오류와 비인기 경기만 개최되어 만석을 못 채웠다.[6] FIFA에서 어떤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동일해야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즉 일본에서 일본어를 사용해 대회명을 언급하더라도 일한 월드컵이 아니라 한일 월드컵으로 불러야 한다.[7] 하지만 이후 2006년 월드컵 때는 따로 응원가를 만들지 않아 축구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월드컵의 인기를 이용해먹었다는 식으로 보였기 때문. 사실 2006년 초 애국가를 리메이크한 응원가를 만들었지만 신성한 애국가를 응원가로 만들었다며 비판만 받았다. 이후 2006년에 응원가를 만들지 않은 이유에 대해 YB에서 밝히기로는 밴드 이미지가 월드컵이나 축구 관련으로 굳혀질까 그랬다고. 사실 YB가 월드컵으로 만들어진 밴드도 아니고 매 월드컵마다 뭘 해야할 이유는 없다.[8] 그런데 MBC에서는 한때 이 노래를 국가대표팀 경기 중계에서 득점이 나올 때마다 삽입하여 빈축을 샀다. 과유불급[9] 당연히 한국의 양대 항공사에서도 기체에 이 로고가 붙어져 있었다.[10] 특히 카즈는 일본 축구의 영웅 카즈 미우라와 유사했다. 니크도 니폰과 발음이 유사하다. 사실 이름이 확정되기 전 후보 중엔 차아(Char)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이름들은 사실 인터넷 투표에 의해 확정된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이름에 반감을 가졌다기보다는 무관심한게 더 컸던 듯하다.# 사실 캐즈는 Korea의 K를 따온거라 카더라...[11] 영남권에만 대구,울산,부산 세 곳이 있어서 포항까지 주게 되면 지역 편중 논란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12] 당초 한국에서는 특별시+광역시에 7개 경기장을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했지만 일본과 비율을 맞추고자 10개로 늘렸고 이때 추가된 수원, 전주, 서귀포는 국고지원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경기장을 유치했다.[13] 상암(수색)과 인천 문학동 지역은 미개발지이긴 하였으나 당시에도 강변북로, 제2경인고속도로 등과 연계된 시내외 교통의 중심에 해당했으며 2002년 당시 이미 도시철도 연계가 완비되어 있었다.[14] 울산, 전주, 서귀포 셋은 현재도 접근성이 영 아니다. 그나마 시가지가 많이 확장되어 예전처럼 논밭위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정도야 아니긴 하지만...[15] 이 이유가 얼마나 황당한 거냐면, 수천억을 들여 공항을 지었는데 "생각해보니 수요가 너무 적어서, 관제탑이 이상해서, 작은 공항을 하나 더 지어야 겠네요."라고 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시야 문제도 마찬가지로, 정작 상당수의 종합운동장 사용 구단에서는 가변석을 설치해 전용구장 못지 않은 시야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이 가변석조차 제대로 못 채우고 있다. 스타드 드 프랑스 같은 경우는 원래 종합경기장으로 지어놨다가 축구 수입이 상당하자 그냥 트랙을 모조리 가변석으로 덮어버렸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앞뒤가 안 맞는 행보다.[16] SK 와이번스가 운영.[17] 2008년 3월 5일부로 '대구스타디움'으로 정식 명명되었다.[18] 월드컵 기간 중에는 본 관중석과 그라운드 사이에 가변좌석을 설치하여 축구전용구장으로 운영했지만, 월드컵이 끝난 후 가변석을 철거하고 육상트랙을 설치해서 종합운동장으로 변했다. 당초 설계를 종합운동장으로 했다고.[19] 가변석 철거 후 현재는 40,245석.[20] 당초 전국체전용으로 기존 구장을 신축 또는 리모델링하려고 했는데, 월드컵 유치로 계획을 수정하여 경기장 규모를 키웠다. IMF 사태로 서울 축구전용구장 신축 반대 여론이 제기되면서 한때 월드컵 개막전 장소로 거론되기도 했다.[21] 문학과 마찬가지로 한때 월드컵 개막전 장소로 거론되기도 했다.[22] 위치가 서귀포여서 '서귀포 경기장'으로 통칭되기 쉽지만 정식으로는 제주를 달고 있다.[23] 이후 가변석 철거, 보수 공사로 인해 2013년 현재는 29,971석이다.[24] 명명권 채택으로 2005년부터 닛산 스타디움으로 명명되었다.[25] 광주와 유사하게 월드컵 기간중 가변좌석을 활용하여 5천석 정도를 늘렸다. 현재도 축구 경기에는 사용중이나, 광주와 달리 처음부터 육상경기장 명목이었다.[26] 명명권 적용으로 2014년 이후 '얀마 스타디움 나가이'. 한일 월드컵에 사용된 경기장 중 가장 먼저 완공되었다.[27] 명명권 적용으로 2014년부터 '히토메보레 스타디움 미야기'.[28] 명명권 적용으로 2007년 이후 '도호쿠전력 빅 스완 스타디움'.[29] 야구장-축구전용구장 간 전환이 가능한 구조이다.[30] 명명권 적용으로 2010년 이후 '오이타은행 돔'.[31] 명명권 적용으로 2013년 이후 '노에비어 스타디움 고베'. 덧붙여 이유는 불명이지만 FIFA의 경기 기록에는 2007~2012년 사용된 스폰서 명칭 '홈즈 스타디움 고베'로 기재되어 있다. FIFA는 원래 경기장의 스폰서 명칭을 인정하지 않는다.[32] 양쪽 골대 뒤 임시 스탠드를 설치한 상태에서의 수용 인원으로, 대회 종료 후에는 임시 스탠드를 철거하여 34,000석으로 조정되었다. 단 홈팀인 비셀 고베가 상단 스탠드를 열지 않아 J리그에서의 정원은 30,132석으로 되어 있다. 이전 버전에 서술된 6만석짜리 경기장은 이전 홈으로 사용하던 고베종합운동공원 육상경기장 (애칭 유니버시아드 기념 경기장) 으로 이 경기장과는 무관하다.[33] 그럴 만도 한것이 대표팀 조별리그 3경기가 열린 곳은 부산, 대구, 인천으로 모두 종합운동장이었다…[34] 요새는 트랙 핑계가 논파되자 관중석 각도를 핑계삼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관중석 각도가 문제가 될 정도로 관중이 몰리지도 않는다.[35] 일본은 당시 경제 대국으로서 경제 규모 2위의 국가였다.[36] 마라도나와 펠레는 서로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하다. 20세기 최고 축구선수 선정을 두고 둘이 자존심 대결을 벌이면서 끝내 피파는 펠레, 마라도나 둘 다 최고 선수로 선정하면서 둘이 엄청 기분 나빠 했다. 허정무에게 맞은 건 잊었나? 마라도나 막겠답시고 거친 반칙한 선수가 한둘이 아닌지라 크게 신경쓰지는 않은 듯 하다. 결장해야할 정도로 심한 부상을 당한 거도 아니고....[37] 이 당시 아벨란제 회장은 아예 한국은 전쟁 위기가 있으니 일본이 개최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자신은 매해 휴가를 일본으로 간다고 자랑하는 등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일본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38] 실제로 일본은 1994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첫 본선 진출을 거의 다 이룬 상황에서 이라크에 발목을 잡히고 본선 티켓을 한국으로 내주면서 떨어졌다. 그리고 다음 대회인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야 첫 출전을 한다. 그런데 사실 이때도 지역 예선에서 홈에서 한국에 역전패당하는 등 고전한 끝에 조 2위로 떨어져서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고 각 조 2위끼리 치르는 플레이오프에서 이란과 연장 접전을 벌인 끝에 가까스로 본선 진출 티켓을 얻었다.[39] 그리고 결국 2022년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된 중동의 카타르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1934년 이탈리아 이후로 무려 88년 만에 월드컵 출전 경험이 없는 나라가 월드컵을 개최하는 최초의 사례가 되어버렸다. 때문에 카타르는 '돈으로 월드컵 출전권을 샀다'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카타르 월드컵은 이미 개최 과정에 많은 비리가 있었다는 것과 개최 준비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40] 당시 유럽 측 집행위원들은 조앙 아벨란제 회장의 장기집권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41] 아프리카가 한국 찬성 분위기로 돈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데, 직전에 열린 미국 월드컵이 아프리카 국가인 모로코를 꺾고 개최지로 선정된데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탓에 상업성 문제에도 이점을 강조하며 일본의 개최를 지지하고 있는 아벨란제를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상업성 면에서 불리한 아프리카 입장에서 이를 두고 보면 유럽, 남미는 물론 상업성에 이점이 있는 아시아나 북미에도 밀려 들러리 신세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력으로는 그나마 아시아에 확실히 앞서고, 북미도 멕시코 빼면 별 볼일 없었으니.....그리고 정몽준은 2006 월드컵의 아프리카 개최를 지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유럽 상대로도 이중으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후일 아프리카의 뒷통수를 칠 수 밖에 없었고, 이런 행보는 추후 그의 FIFA에서의 행보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다.[42] 아벨란제 회장의 장기집권에 염증이 난 유럽세가 반대세력으로 한국을 밀고있는 형태였고 여기에 아프리카세도 가세했으니 일본지지쪽은 아벨란제 회장과 남미세뿐이었는데 그 남미세까지도 한국파와 일본파로 나뉘어 있었으니.[43] 후에 정몽준 부회장은 한국이 공동 개최라도 이룬 것은 FIFA 내부의 정치 싸움을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즉 아벨란제로 상징되는 남미파들에 대한 반감을 갖고있던 세계축구 최강 집단인 유럽세를 활용했던 것.[44] 나중에 결승전을 자기네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개막전을 대한민국에게 양보한 일본은 전 대회 우승국 프랑스가 개막전 1라운드부터 탈락하며 피똥을 쌌다(...)[45] 88올림픽 유치 당시는 경쟁 상대가 상당히 만만한 나고야였고 일본 국내 여론도 '도쿄에서 했는데 또?' 식으로 다소 시큰둥해서 그닥 일본 측의 개최 열기가 높지 않았었다. 반면 월드컵 유치는 한국은 물론 일본도 갖은 힘을 다 쏟아부었다는 차이가 있다. 다만 올림픽 유치 때와 비교하면 한국의 위상이 훨씬 높아진 상태였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낸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1998년 프랑스 대회에 처녀 출전한 것이 고작이라 명분에서도 밀렸다. 하지만 1989년에 월드컵 유치위가 출범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1994년에서야 늦깎이로 부랴부랴 참가했다는 점 역시 88 올림픽과의 큰 차이점. 88 유치전에서도 한국이 후발주자이긴 했지만 나고야가 77년, 한국이 79년에 유치전을 시작해 크게 차이가 나는 편은 아니었다.[46] 참고로 니콜라스 레오스는 미국 사법당국이 수사하고 있는 FIFA 비리 혐의에 연루돼 현재 인터폴의 수배를 받는 여섯 명 가운데 한 명이며, 현재 가택연금 상태로 모국인 파라과이에 머물고 있으며 미국이 압송 절차를 밟고 있다.[47] 호주는 원정 0-3 패, 홈 1-0 승. 이란은 원정 0-2 패, 홈 1-0 승.[48] 조 추첨 중 남은 3개 팀은 포트 C로 추첨이 이뤄졌음.[49] 전대회 4강 진출국[50] 때문에 국내보다 차범근에 대한 인지도가 높던 유럽에서는 "혹시 차범근이 죽은 것 아닌가?"라는 이야기도 나왔다고.[51] 추첨자 선정 통보를 받았을 때 기자들이 소감을 묻자 "처음에는 이렇게 큰 행사인 줄 몰랐다. 국제적인 행사인 것을 알게 된 뒤 깜짝 놀랐다."는 송혜교의 인터뷰 내용 때문에 이런 논란은 더욱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52] 대신 차범근은 2003년 12월에 열린 2006 독일 월드컵 대륙별 조추첨 행사에서 아시아 대표 조 추첨자로 참석하여 약간의 한풀이는 했다.#[53] 백남준작 '동방으로 부터'[54] 5골을 기록한 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브라질의 히바우두는 공동 2위를 기록했다.[55] 마의 6골 벽을 깨뜨린 호나우두도 MVP감으로 손색이 없었지만 기자단 투표가 호나우두가 두 골을 넣기 전인 결승전 하프타임에 열렸기 때문에 칸이 수상자가 되었다. 이 대회 이후로 MVP 투표가 결승전 종료 이후에 행해지게 되었다.[56] 골든 볼, 실버 볼, 브론즈 볼을 통틀어서 최초이자 지금까지 유일한 비유럽, 비남미권 선수의 수상이다.[57] 프랑스, 아르헨티나, 포르투갈[58] 가끔 본선 당시 브라질 대진을 신급 꿀대진빨이라고 낮추고 심지어는 역대 최약체 우승팀이라고 평가하는 일부 팬들이 있다. 그러나 알아 두어야 할 점이 있다. 월드컵 본선 우승은 누구나 하는 게 아니다. 물론 1934년 우승국 이탈리아, 1966년 우승국 잉글랜드, 1978년 우승국 아르헨티나, 1954년 우승국 서독처럼 부정한 방법으로 우승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우승국들 대개는 우승할 실력을 갖췄기 때문에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지역 예선과 본선은 다르다. 즉 지역 예선에서 빌빌거렸지만 본선에서는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팀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지역 예선에서는 잘했지만 본선에서는 이보다 못한 경기력을 보이는 팀은 큰 무대인 본선에선 좋은 성적을 거두기 힘들다.[59] 게다가 이때 브라질의 대진을 신급 꿀대진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네임밸류에 기댄 평가이다. 비록 브라질이 조별리그에서 해 볼 만한 대진표를 받았을지라도 터키, 코스타리카, 벨기에, 잉글랜드, 독일을 모조리 신의 선물로 보는 것은 2002년 당시 전력과는 동떨어진 분석일 뿐이다. 당시 코스타리카는 지역예선에서 이번 대회 16강팀이었던 멕시코와 이번 대회 8강팀이자 세네갈과 함께 광풍의 핵이었던 미국을 제치고 조 1위로 통과할 정도로 결코 우습던 팀이 아니었다. 그리고 당시 벨기에는 유로 2000에서 1승 1무 1패 조 3위로 탈락한 데다 지역예선에서는 크로아티아에 밀려 조 2위로 플레이오프 진출해서 겨우 본선에 올라왔다고는 해도 본선 당시에는 대회 전때보다 전력이 상향된 모습을 보였다. 또한 당시 우승급 전력으로 탈바꿈한 브라질을 궁지에 몰아넣을 정도로 만만치 않은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60] 그리고 당시 터키는 명실상부한 월드컵 3위팀에 1970년대~80년대 초반 출생인 이 당시 선수층이 대다수 터키 올타임 올스타에 오르게 되며 유로 2008 4강까지 이르는 황금기를 구가하게 된다. 거기다 독일은 준우승팀이다. 독일이 클로제 원맨팀이면 발락, 올리버 칸, 슈나이더 등은 무슨 후보 선수라도 된단 말인가? 이런 논리는 독일을 녹슨 전차 군단으로 일컬으며 약체로 보았던 구시대의 축구관에 가깝다.[61] 또한 잉글랜드가 나이지리아와 비기고 독일이 그런 잉글랜드에 한 경기쯤 크게 졌다고 해서 꿀대진이었다고 깎아내리는 것은 무리한 일반화라고밖에 볼 수 없다. 잉글랜드 자체도 비록 2006년부터는 웃음후보에 거품소리까지 듣기는 하지만 2002 월드컵 본선 당시에는 히딩크호처럼 탄탄한 수비진과 안정적인 골키퍼를 바탕으로 8강에 오른 나라인 데다 당시 브라질과 스페인과 더불어 우승급 전력으로 탈바꿈한 팀으로 역대 잉글랜드 대표팀과 견주어 봐도 2002년이 훨씬 수준이 높았다. 그리고 그런 잉글랜드와 비긴 나이지리아는 잉글랜드가 당연히 이겨야 할 수준으로 낮출 수 있는 약체가 결코 아니다. 1994, 1998년 월드컵 연속 16강 진출 국가이며 1996년 올림픽 금메달을 딴 나라다. 게다가 조별리그에서 아르헨티나와 스웨덴이 이겼다고 해도 이들 또한 고전 끝에 가까스로 이길 정도였다. 즉 본선 당시 브라질이 상대한 팀들 수준이 위와 같았는데도 신급 꿀대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브라질을 낮추는 서술이며 네임밸류에 기댄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축구는 당시 보유한 전력이 중요한 것이지 과거의 이름빨, 명성으로 이기는 스포츠가 아니다.[62] 2위 에콰도르와 6위 콜롬비아의 승점 차이가 겨우 4점이었다. 3위 브라질과 6위 콜롬비아의 차이는 겨우 3점. 한 경기만 더 졌어도 월드컵에 못 올라올 수도 있었다![63] 실제로 폴란드와 포르투갈이 경기할때 붉은 악마들은 둘로 나눠서 폴란드 응원할 응원단과 포르투갈 응원할 응원단으로 나눠 각자 응원하고 경기 끝나면 다시 응원단을 합쳤다.[64] 물론 예외도 있었으니 바로 미국 대표팀. 조별 예선 상대이기도 했지만 월드컵 몇 달 전에 열린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한국의 김동성이 미국의 안톤 오노에게 억울하게 금메달을 뺏기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대회 조별예선에서 미국은 최종전 상대인 폴란드에 완패해서 탈락 위기에 몰렸다가, 2위 경쟁을 하던 포르투갈을 한국이 최종전에서 잡아준 덕에 어부지리로 16강에 오를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오히려 미국이 한국의 덕을 톡톡히 본 셈.[65] 알다시피 스페인은 한국과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로 패했고, 승부차기 패배는 공식적으로는 무승부로 기록되기 때문에 스페인은 대회를 무패로 마감한 셈이다. 여담으로, 다음 대회인 2006 FIFA 월드컵의 스위스도 이와 유사하게 패배 없이 8강에서 탈락했다.[66] 레버쿠젠은 당시 다수의 브라질 국가대표 선수들을 기용했는데, 레버쿠젠의 브라질 선수들 중 제 호베르투만 스콜라리호에 승선하지 못했다. 푈러 또한 레버쿠젠 선수들을 독일의 2002년 대회 최종 엔트리에 다수 승선시켰다. 그리고 이 대회를 통해 주가가 오른 레버쿠젠 선수들이 몽땅 다 나가버려서 2002-03 시즌에는 강등권에 허덕였다.[67] 한중간 역대전적도 안 봤던 모양이다. 공한증 항목 참조. 게다가 이런 의식은 이후에도 비슷했는지 2006년의 프랑스와 스위스도 한국전을 대비해 중국과 평가전을 치렀고, 기어코 프랑스는 이 때 지브릴 시세를 소림축구로 잃었다 심지어 2010년의 그리스와 나이지리아는 중국보다도 더 전력이 떨어지는 북한(...)과 평가전을 치른 바 있는데, 중국이나 북한이나 피파랭킹을 보든 A매치 역대전적을 보든 기본적으로 한국보다는 한 수 아래의 상대들이다.[68] 이 말도 안되는 짓은 포르투갈 전력 탐색관의 불성실 때문이다. 단순히 유럽 내의 자료만 봤기에 이런 병크를 터트린 것. 프랑스만 해도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한국을 5-0으로 처발랐으나 월드컵 개막 직전에 가진 한국과의 평가전에서는 2-3으로 진땀승을 거두자 '이놈들 1년 사이에 엄청 강해졌다.'고 놀랐는데, 정작 한국과 조예선을 치르는 포르투갈은 이러고 있었으니... 게다가 한국의 첫 상대였던 폴란드는 감독과 선수들이 한국과 프랑스의 평가전을 현장에서 지켜보며 매우 진지했는데 이것과 비교하자면 포르투갈은 그냥 생각이 없었던 셈이다. 거기다 감독은 안 그래도 부실한 데이터가 담긴 노트북이 고장이 났지만 고쳐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69] 신빙성이 있냐 없냐 시끄러웠는데, 후에 홍석천이 방송에서 당시 포르투갈 선수들에게 사인받은 티셔츠를 공개하며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폴란드만 해도 호텔 앞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마시며 노가리 까더라는 축구팬들의 증언이 있었을 정도니...[70] 다만 인천 유나이티드 입장에선 이 영입은 흑역사가 되었다. 항목 참조.[71] 하필 한국/일본이 공동개최하여 양국 간의 경쟁의식이 과열된 영향이 컸다. 통상적으로 월드컵을 위해 10개 안팎의 경기장이 사용되는 데 반해 2002 월드컵 때는 양국이 5개정도가 아닌 각각 10개의 경기장을 개축/신축하였으니...[72] 원래 룩셈부르크도 같이 묶어서 베네룩스 3국으로 하려 했다고 한다.[73] 1994년 미국 월드컵 때는 브라질의 골키퍼 타파렐이 비슷하게 이탈리아에서 쫓겨났다. 안정환은 골든골이나 넣었지만, 타파렐은 승부차기에서 선방하지도 않았다. 로베르토 바조가 홈런 지른거다.(...)[74]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축구와 관련해서 우민정치를 행하고 있기에 이탈리아의 반응이 더 격앙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75] 실제로 당시 월드컵이나 축구에 관심이 없이 그냥 이탈리아 여행을 하던 한국인 관광객들은 한국인이라고 하면 대번에 이탈리아인들의 표정이 변했다고 한다. 그정도로 이탈리아인들에게 앙금이 남았다.[76] 실제 말디니는 자신의 국가대표 은퇴경기때 상대할 팀을 한국으로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천수에게 대갈통이 차인 것이 엄청 분했던 모양(...)[77] 2006 독일 월드컵 스위스전에 패배한 우리나라의 느낌이 이탈리아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그 이상일지도. 이들에게는 축구는 전쟁이다. 게다가 당시 이탈리아 인식으론 우리나라는 2002년 전까지 월드컵에서 아직 1승도 못 올린 승점자판기에 불과했는데 그런 나라에게 져서 떨어진 거니 자존심이 더욱 상할수 밖에 없다. 물론 대한민국이 이긴 건 엄연히 실력이지만 이탈리아 입장에선...[78] 월드컵에 편승해서 새치기 하듯이 여당의 대선후보 자리를 꿀꺽하려 했으나 온갖 소동 끝에 이루어진 여론조사 방식의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 패배하여 대권도전의 꿈이 물건너 갔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날의 유세에서 노후보가 지나가는 말로 자신이 아닌 정동영, 추미애 당시 국회의원을 차기 지도자로 언급하자 마음이 상했는지 곧바로 유세 도중 자택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잠그고 그날 저녁 지지철회를 언론에 공표한다. 이에 노후보의 지지층은 결집하게 되고 부동층의 표심동정표도 상당수 노후보에게 향했다.[79] 이 시합에서 '젊은 것들이 어르신들 골 좀 넣겠다는데 필사적으로 막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광훈은 소속팀 감독인 황선홍을 악착같이 막아서 경기 중에 황선홍 감독이 째려보기도. 그리고 소속팀으로 돌아간 후 뒤끝이 작렬했었다(...). #[80] 덤으로 이때 상대 팀 골키퍼였던 부폰, 카시야스, 칸은 모두 야신상을 수상했다.[81] 실제로 월드컵이 끝난지 2년 후인 2004년에 웃긴대학에서 이를 예언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결과는 상술한 것처럼 2006년부터 2014년까지는 적중하였고, 2018년은 빗나갔다.[82] 대회 개최국은 1996년에 결정되었고, 일본은 1997년 말에 플레이오프까지 가서야 1998년 월드컵 진출권을 따냈다.[83] 실제 대회 유치 직전의 기사를 보면 나가누마 축구협회장과 유치위 오구라사무총장의 마지막 해외활동 일정은 극비로 진행되고 있었기에 의문이 큰 상황이다.[84] 일본에만 이 광고판이 있다.[85] 세네갈 쇼크 때문이 아니다.[86] 아르헨티나가 약하거나 네임밸류가 낮은 팀은 절대 아니지만 이 월드컵 개최 유치전에서 대한민국 단독 개최를 지지했기 때문에 야유 폭탄을 맞았다.[87] 월드컵을 앞두고 국내에선 성숙된 시민의식을 보여주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애국주의가 통용되던 시대의 끄트머리여서인지 관민이 하나되어 이에 동참했고 본 문단의 내용 역시 이러한 경향의 일례다.[88] 이와 비슷하게 유로 대회에서도 이탈리아를 도발하려고 상대국 팬들이 태극기를 올렸다.[89] 2010년대 이후에 이르러서야 칠레가 강호가 된 거고 이 당시 칠레는 베네수엘라와 둘이 남미의 바닥을 책임진 약골 형제들이었다.[90] 다만 칠레가 바닥이란 말이 억울할 수 있는게 지난 월드컵에선 16강까지 올라갔고, 2년전에 열린 올림픽에선 동메달까지 탄 팀이다. 2010년대 들기 전 까지 이리고 치이고 하는 베네수엘라하고 똑같이 비교할 수가 없다.[91] 당시 8강에 브라질, 잉글랜드, 스페인, 한국, 세네갈, 독일, 터키, 미국이 올라왔는데, 이때 당시 우승급 전력이었던 잉글랜드와 브라질이 서로 8강에서 맞붙었다. 그리고 남은 우승급 전력인 스페인은 당시 다크호스였던 한국과 맞붙었다.[92] 오언에게 선제골을 내준 과정에서 브라질의 센터백 루시우 선수의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다.[93]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을 의식한 문구. 붉은 악마 측에서는 깊은 생각 없이 적은 건데, 문구를 미리 발견한 이탈리아 측에서는 항의까지 할 정도로 격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독일: 우리도 저 때 생각하기 싫다 반대로 잉글랜드는 이거 보고 싱글벙글했다. 다름 아닌 자기네가 유일하게 우승한 월드컵이다. <- 독일 부분 첨언하자면 66년 결승에서 잉글랜드에 패한 나라가 서독이다. 연장전까지 해서 2:4 잉글랜드 승[94]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해 유니폼에 별을 새기자는 의미.[95] See you at K-리그. 월드컵 끝났으니 K리그에서 보자는 뜻이다.[96] 이에 대한 일화로 90대 할머니가 3.1 운동 이후 모든 국민이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고 한다.[97] 참고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자주 쓰기 시작한 것도 이 월드컵부터이다. 그 이전까지는 국제스포츠 중계 시 자막에 보통 '한국'이라고 썼고 신문이나 TV 등 언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즉, 보통 대한민국이라고 정식 명칭을 전부 말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는데 한일 월드컵 이후 언론에서도 꼬박꼬박 대한민국이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98] 원본은 2002년 6월 15일자 MBC 뉴스데스크 일부. 장소는 경기도 광주시의 한 장례식장이며, 포르투갈전 다음 날 뉴스 영상이다. 다행히 호상이었나보다.[99] 8강전 승리 때에는 수유동의 어느 경찰마저 순찰차 위에 올라갔다. 물론 외친 건 대한민국이 아니라 몰려나온 시민들에게 차도에 나오지 마세요 위험합니다였다.[100] 참고로 이 해에 태어난 아이들부터 출생아 수가 40만대로 줄어들었다.[101] 참고로 이때 태어난 아이들은 2018년 기준 17세 즉, 고1이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있는 부분.[102] 터키도 유명하지만, 정작 이쪽은 원정 응원을 많이 오지 못했다.[103] 조예선을 치른 일본에는 약 3만, 그리고 한국에서 열리는 16강 전에는 8천 명이 방문했다. 아일랜드뿐 아니라 독일과 이탈리아, 멕시코도 조별 예선은 일본에서, 결승을 제외한 토너먼트는 한국에서 치렀기 때문에 두 나라를 오가야 했다. 반대로 덴마크와 세네갈, 브라질, 터키는 조별 예선은 한국에서, 3/4위전을 제외한 토너먼트는 모두 일본에서 치렀다.[104] 여담이지만, 축구 선수마다 수분 보충을 위해 물/이온음료를 선택한다. 2002 월드컵 당시 국가대표 팀닥터였던 김주영에 따르면 안정환게토레이와 물을 반반 섞어서 마셨다고.[105] 이전 버전에서는 천안연수원 조기축구회라 되어있는데, 기사를 보면 삼성SDI 천안공장 축구동호회가 맞다.[106] 1982년 친선전에서 2:2 무승부 기록, 2018년 친선전 2:1 승리 기록[107] 주의깊게 보면 윤영하 소령뒤로 참수리 357호정이 찍힌 구명조끼를 입은 승무원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108] 참고로 홍명보 본인은 이미 상무에서 병역 의무를 마친 뒤였다.[109] 그리고 이렇게 특정 종목에만 병역 혜택을 준 사례가 있었기에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4강 진출 기념으로 야구 선수들에게 법을 바꿔서 병역특혜를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다른 종목들의 심한 반발에 부딪혔다. 올림픽 동메달 이상,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원칙은 모든 종목에게 같은데 축구와 야구에만 특혜를 준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월드컵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병역 혜택은 사라졌다.[110] 의미는 남한의 '남'+ 니코동의 혐한태그인 똥술 + 영어권의 땅을 나타내는 접미사 'land'[111] 한국사람을 다 싸잡아서 욕하는 건 아니고, 니코동에서 '성형을 자주 하는 한국의 여성을 인간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뭐래?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다만 이 영상에서처럼 그냥 한국을 까고 싶을 때도 빈번히 사용한다.[112] 2002 월드컵부터는 HBS라는 전용 방송사에서 국제신호 제작을 전담했다[113] HBS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원문-A separate High Definition 1080i clean feed was also provided alongside the Standard Definition 4/3 feeds for live coverage of 48 matches of the 64 played at the event, highlights covered all other matches. Eight special HD cameras were employed to achieve the HD production.-대략적인 내용은 8대의 카메라를 사용했으며 1080i로 제작되었고 64경기중 48경기를 생중계했으며 하이라이트는 전 경기를 제작했다는 내용이다.[114] 여기는 SBS 단독 HD중계 19경기와 KBS 단독 HD중계 3경기를 포함해 총 52경기가 HD로 중계된 것으로 나와있다.[115] 그리고 한국의 8강전이 있던 날, 두 주인공이 검열삭제를 해서 여자주인공이 임신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