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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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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 ~ 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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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

75년

일본

쇼와 61년

히브리력

5747년 ~ 5748년

에티오피아

1978년 ~ 1979년

가상의 표기

UED

GD 356년

월야의 프로마쥬

AL 595년


1. 개요2. 개헌정국과 한파정국, 1986년3. 신라면 탄생, 매운맛 라면의 시대4. 사건
4.1. 실제
4.1.1. 1월4.1.2. 2월4.1.3. 3월4.1.4. 4월4.1.5. 5월4.1.6. 6월4.1.7. 7월4.1.8. 8월4.1.9. 9월4.1.10. 10월4.1.11. 11월4.1.12. 12월
4.2. 가상
5. 탄생
5.1. 실존인물5.2. 가상인물
6. 사망
6.1. 실존인물
6.1.1. 1월6.1.2. 2월6.1.3. 3월6.1.4. 4월6.1.5. 5월6.1.6. 6월6.1.7. 7월6.1.8. 8월6.1.9. 9월6.1.10. 10월6.1.11. 11월6.1.12. 12월
6.2. 가상인물
7. 데뷔
7.1. 가수7.2. 예능인7.3. 만화계7.4. 스포츠
7.4.1. 야구7.4.2. 축구7.4.3. 농구7.4.4. 배구7.4.5. 씨름
8. 은퇴
8.1. 스포츠
9. 히트작
9.1. 영화9.2. 가요9.3. 베스트셀러

1. 개요[편집]

경향신문 선정 1986년 국내 10대 뉴스

이 해에는 비극적인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 해 3~12월에 태어난 사람들은 국민학교초등학교를 각각 3년씩 다녔으며[1] 동시에 고등학교 7차 교육과정의 첫 세대이자 7차 교육과정이 적용된 첫 수능인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2] 대학 시절에는 운동권 경력자에 한해 한총련한대련을 거쳐갔다.

일본에서는 아케이드 게임 잡지인 <게메스트>가 창간된 해이며, 아케이드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하이스코어 집계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이 해에 방영된 슈퍼전대 시리즈의 10번째 작품인 초신성 플래시맨은 3년 후, 대한민국에서 1차 전대물 열풍을 불러오게 된다.

대한민국은 이 해에 서울에서 아시아경기대회를 개최하였다.[3] 특히 2년 후인 1988년 같은 도시에서 하계올림픽이 열리기 때문에 그 당시 세간에서는 1988년 하계올림픽의 개최성공에 향방을 가릴 시험대의 대회라는 일설도 있다. 그 당시 참가했던 아시아 국가들은 2년 후 같은 도시에서 열렸던 하계올림픽에도 연이어 참가했다.[4] 다른 한편으로는 전두환 정권의 초강경 민주세력 탄압이 벌어진 해이며 한 해동안 무려 2,500여명이나 되는 학생, 재야인사, 농민, 노동자가 구속되었다.

광주시전라남도에서 분리독립하여 직할시로 승격하였고, 경기도에서는 화성군 반월면 일부 지역 및 시흥군 수암-군자 2면이 통합되어 '안산시'가 되었고, 과천면 역시 시흥군에서 분리되어 시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충청남도에선 대천읍이 보령군에서 분리되어 시로 승격되었고, 전라남도에선 송정읍이 광산군에서 분리되어 시로 승격되었고, 금성시가 '나주시'로 변경되었다.

또한 한강종합개발사업이 완료된 해이기도 하며, 그래서 이 해 공익광고협의회에서는 '한강 시리즈'를 제작했다. 또 농심그룹 신라면이 처음으로 시판되었던 해이기도 하다.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세계 평화의 해'로 지정했다.

2. 개헌정국과 한파정국, 1986년[편집]

1985년 2.12 총선으로 돌풍을 일으킨 선명 야당 신한민주당은 직선개헌을 위해 1천만 개헌 서명운동을 개시했다. 그러나 집권당인 민정당은 현행 헌법이 평화적 정권 교체를 위한 최선의 것이라 주장하여 아예 국회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민당 측은 국회 밖으로 뛰쳐나와서라도 직선제 개헌을 추진하겠노라고 밝혔다.

신민당은 3월 11일 '개헌추진위원회 서울지부 결성대회'를 시작으로 전국 주요 대도시의 개헌 현판식을 추진하기 시작하자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었다. 모처럼의 합법적 공간이 마련되자 그 동안 억눌려 온 국민들의 정치 열기가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대회를 시작으로 3월 23일 부산, 4월 5일 대구, 4월 19일 대전, 5월 3일 인천, 5월 10일 마산, 5월 31일 전주 등의 순서로 계획이 진행되어 갔다.

이후 3월 17일에 이민우 신민당 총재와 김영삼-김대중 양김, 문익환 민통련 의장, 박형규 목사, 이돈명 등이 회동해 신민당과 재야가 '민주화를 위한 국민연락기구(이하 민국련)'을 만들어 개헌 투쟁에서 공동보조를 맞추기로 했다. 이렇게 개헌 현판식의 대성황과 야당과 재야의 보조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그 열기를 더해가자 전두환 대통령은 4월 30알 여-야 영수회담에서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건의하면 임기 중에 개헌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정치적 발언으로서 야당을 국회 안으로 끌어들여 국민과의 연대를 차단하려는 속셈이 있었다. 게다가 그 개헌안도 내각제 개헌이었다!

그러나 5월 3일 인천대회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날 인천시민회관 일대에 학생, 노동자, 재야인사 등의 운동권 인사들이 모여들어 경찰과 투석전을 다섯 시간이나 벌여 인천에서의 개헌대회는 무산되었다(인천 5.3 운동).

이 사건 이후 야당은 제도권 안에서 집권세력과 타협하는 쪽으로 돌아섰고, 운동권 세력에겐 혹독한 탄압이 가해졌다. 대표적으로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10.28 건대항쟁, 서노련 사건, ML당 사건, 반제동맹당 사건, 민통련 사무실 폐쇄, 서울개헌대회 봉쇄 등이 있었으며 금강산댐 수공설, 김일성 사망 오보 사건 등의 대중조작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렇게 정국이 얼어붙는 와중에 신민당은 7개의 민주화조치를 선행하면 내각제를 받아들이자는 식의 이른바 '이민우 구상'이 나오면서 정국이 더 꼬일 대로 꼬여갔다.

3. 신라면 탄생, 매운맛 라면의 시대[편집]

이 해는 그 유명한 농심 신라면이 탄생하여 출시하였던 해였다. 그 동안 라면은 삼양라면을 시작으로 라면시장이 번성했지만 신라면 이전에 매운맛을 내는 라면은 딱히 없었던 편이었는데 이 해 신라면이 출시되면서 라면시장에 변혁을 일으켰다.

초창기에서부터 매운맛을 상징하는 빨간색 바탕과 매울 신(辛)의 서체는 30년이 된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으며 포장 디자인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빨강색 바탕과 매울 신자 서체는 유지되고 있다. 이후 신라면과 유사한 매운라면들이 잇따라 등장하기도 하였지만 신라면의 명맥은 30년이 지나도 이어지는 중이다.

4. 사건[편집]

4.1. 실제[편집]

4.1.1. 1월[편집]

  • 1월 1일

    • 전두환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거국일치의 확고한 결의로 통일과 선진의 길에 함께 나서자고 강조하였다.

    • 북한의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남한측에 군사훈련 중지와 3자회담 수락을 촉구하였다.

    • 스페인포르투갈이 공동으로 EC에 가입했다.

  • 1월 3일: 국방부는 북한군 하사 임종철이 귀순했다고 발표하였다.

  • 1월 5일: 신인가수 김완선이 KBS2 연예가중계 신인소개 코너에서 <오늘밤>으로 데뷔하였다.

  • 1월 7일

    • 전두환 대통령은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을 단행하였다.

    • 정부는 1985년 말 외채 총액을 465억 달러로 잠정 집계했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대 리비아 경제 제재조치'를 발표하였다.

  • 1월 8일

    • 출판문화협회 등 9개 단체 회원 50여 명은 미국의 저작권보호 요구 반대 결의대회 후 성명서를 채택하였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자국 내 리비아 자산동결 명령을 내렸다

  • 1월 12일: 삼육재활원 소속 지체장애인 5명이 장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라산을 정복하였다.

  • 1월 13일: 재야 지도자 22명이 <조국의 위기 타개를 위한 우리의 견해>라는 제하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1월 15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를 2000년까지 완전 폐기토록 하자는 전면 군축안을 제의했다.

  • 1월 16일: 전두환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개헌논의는 올림픽 뒤인 1989년에 하는 게 순리라며 이른바 '큰 정치'를 천명했다.

  • 1월 18일: 구치소폭력인권유린조사위는 서울구치소 양심수 25명 폭행사건 해명과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였다.

  • 1월 20일

    • 서울형사지법은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관련자 양동화 등 2명에 사형 선고를 내렸다.

    • 북한측은 팀 스피릿 '86 훈련을 계기로 남북회담 전반을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 영-불 양국은 1993년 완공을 목표로 도버해협 터널을 건설키로 합의했다고 발표하였다.

    • 현대차포니엑셀 및 프레스토 1천대를 미국에 처음 수출했다.

  • 1월 21일: '박종만 추모사업회'가 발족되었다.

  • 1월 24일: 보이저 2호가 최초로 천왕성의 사진을 촬영하여 지구로 전송했다.

  • 1월 25일: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연두 기자회견에서 여당의 개헌논의 유보제를 거부했다.

  • 1월 27일: 경제기획원은 사회지표 조사 결과 1984년 중 제조업 근로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54.3시간으로 가장 길다고 발표했다.

  • 1월 28일

    • 노동부는 1988년부터 최저임금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 (현지시간 기준)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 기지에서 NASA 우주왕복선 챌린저가 STS-51-L 미션을 시작했으나, 발사 수십 초만에 고체 로켓 부스터의 이상으로 폭발해 탑승한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했다.

  • 1월 31일: 레바논 주재 도재승 서기관이 이슬람 무장단체에 의해 피랍당했다.

4.1.2. 2월[편집]

  • 2월 1일

    • 재무부는 '중소기업 고충애로타개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문교부는 대/고입 입시내신을 위한 체력검사제도 폐지를 결의하였다.

  • 2월 2일: '광주지역노동자 생활임금투쟁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2월 4일: 경인지역 15개 대학 소속 1천여명의 학생들이 서울대 관악캠에 모여 '86 전학련 신년투쟁 및 개헌서명운동 추진본부 결성식'을 개최하고 시위를 벌였다.

  • 2월 7일

    • 인천지역노동자연맹(이하 인노련)이 결성되었다.

    •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대선에서 코라손 아키노를 꺾어 또다시 당선되었다.

    • 장 클로드 뒤발리에 아이티 대통령이 집권 15년만에 민중의 저항에 못 이겨 해외로 망명했다.

  • 2월 8일: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개헌 서명운동자는 무조건 연행해 의법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 2월 9일: 핼리 혜성태양 근일점을 통과했다. 핼리 혜성의 다음 근일점 통과 시기는 2061년 7월 28일로 예상된다.

  • 2월 11일

    • KNCC 등 기독교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KBS 시청료 거부 운동본부'가 발족되었다.

    • 경찰은 '기독교민주헌법서명추진본부' 발대식을 막기 위해 민주인사들을 가택 연금했다.

    • 경찰은 수배학생 검거 신고체제확립을 위해 특별호구조사를 실시했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필립 하비브를 특사로 필리핀에 파견해 여야 대표 및 종교지도자를 만나 화합 방안을 모색토록 지시했다.

    • 동-서독 양국이 베를린에서 스파이 교환에 합의하였다.

  • 2월 12일

    • 신민당과 민추협이 '1천만 개헌 서명운동'에 돌입하였다.

    • 검찰은 시위학생 즉심/기소유예 축소 및 엄단방침을 천명했다.

  • 2월 13일: 검경은 개헌서명 연명부 압수를 위해 신민당 중앙당사 및 민추협 사무실을 야간수색했으나, 연명부 확보에는 실패했다.

  • 2월 15일: 문화재관리국은 전북 익산군 백제고분 1호분에서 금동관식 등 유물 10여점을 발굴하였다.

  • 2월 16일: 포르투갈 대선에서 사회당 당수 마리오 소아레스가 당선되어 60년만에 첫 민선대통령이 배출되었다.

  • 2월 18일: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전두환 대통령이 임기 중 민주화 일정을 밝히면 개헌 서명운동을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 2월 19일

    • 경찰은 신민당 중앙당사를 봉쇄해 김영삼 고문 등 당직자들을 가택 연금했다.

    • 원화 대 엔화 환율이 100엔에 502원이 되면서 처음으로 5백원대를 돌파했다.

    • 우주정거장 미르 코어 모듈이 소련 바이코누르 기지에서 발사되었다.

  • 2월 20일: 국제 원유가 하락으로 국내 석유값이 11.2%로 내렸다.

  • 2월 21일

    •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조종사 진보충(陳寶忠)이 MiG-19기를 타고 서해 영공으로 넘어와 제3국으로 망명을 요청했다.

    • 역사문제연구소가 설립되었다.

    • 닌텐도는 세계 최초의 플로피디스크 게임기 '패미콤 디스크 시스템'과 <젤다의 전설>을 일본에 발매하였다.

  • 2월 24일

    • 전두환 대통령은 3당회담을 열어 "1989년에 국민의 의사에 따라 개헌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 미국 정부는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였다.

  • 2월 25일

    • 한국오토캠핑연맹이 설립되었다.

    • 마르코스 대통령 부부가 민중 봉기로 권좌에서 축출되어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다.

  • 2월 26일: 신의주학생의거기념회가 설립되었다.

  • 2월 27일

    • KNCC는 제35차 총회에서 <기독교방송의 보도/광고기능의 정상화 촉구 결의문>을 채택했다.

    • 소가야문화보존회가 설립되었다.

  • 2월 28일: 팔메 스웨덴 총리가 스톡홀름 거리에서 괴한의 총격으로 암살당했다.(올로프 팔메 총리 암살사건)

4.1.3. 3월[편집]

  • 3월 1일

    • 전두환 대통령은 삼일절 신년사에서 남북한최고책임자회담 연내 실현 기대를 밝혔다.

    • 내무부는 '주민전산화 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

    •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125개 성당에서 시국기도회를 개최되었다.

    • 일본 TV아사히에서 <초신성 플래시맨>이 첫 전파를 탔다.

    • 일본 닛테레에서 <기동전사 건담 ZZ>가 첫 전파를 탔다.

  • 3월 3일

    • 강성산 북한 총리가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을 면담했다.

    • 유명 록밴드 메탈리카가 세 번째 정규 앨범 Master of Puppets를 미국 전역에 발매했다.

  • 3월 4일

    •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인구 및 주택 센서스> 잠정 집계에서 1985년 11월 1일 기준 대한민국 인구가 40,466,577명이라고 기록되었다.

    • 서울고등법원은 항소심에서 이경숙 씨에게 '여성 직장인의 정년은 55세'라는 판결을 내렸다.

  • 3월 5일: 문익환 민통련 의장은 재야/종교계 개헌서명자 303명의 명단을 공개하였다.

  • 3월 6일: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이 국보법 및 집시법 위반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 3월 7일: 이민우, 김영삼, 김대중 3자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1986년 가을에 직선제 개헌, 1987년에 대통령 선거 등 난국타개 6개항을 제시하였다.

  • 3월 8일

    • '신민당 헌법개정추진위원회 서울지부 현판식'이 열렸다.

    • 신민당은 KBS-TV 뉴스 안보기 및 시청료거부운동을 당론으로 확정하였다.

    • KBO 제7구단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되었다.

    • 여성생존권대책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장이 북한을 방문했다.

  • 3월 9일: 김수환 추기경은 9일간의 시국기도회를 끝내며 "민주화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이며 개헌은 빠를수록 좋다"고 언급했다.

  • 3월 11일

    • 제주~중문 간 고속화도로가 개통되었다.

    • 서울 동숭동 흥사당 강당에서 '신민당 헌법개정추진위원회 서울지부 결성대회'가 열렸다.

  • 3월 13일

    • 전두환 대통령은 사정협의회 전체회의에서 반사회적 집단행동에 대처하도록 지시했다.

    • 노태우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은 박세직을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위촉하였다.

    • 납북 영화배우 최은희와 영화감독 신상옥 부부가 오스트리아 빈 주재 미국대사관에 신변보호를 요청하였다.

  • 3월 14일

    • KNCC는 <개헌서명운동과 민주화를 위한 범국민적 활동 지지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하원에 보낸 성명에서 어떤 형태의 독재정권도 반대한다고 언급했다.

  • 3월 17일

    • 신흥정밀 노동자 박영진이 임금인상 및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 도중 경찰과 대치한 끝에 분신했다. 이후 그는 다음날 사망했다.

    • 신민당과 민통련은 '민주화를 위한 국민연락기구(이하 민국련)'를 구성하였다.

  • 3월 18일: '서울대 반전반핵 평화옹호 투쟁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3월 19일: 서노련은 구로공단 가리봉 5거리 모세미용실을 점거해 생활임금 쟁취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3월 20일: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우익정치가 자크 시라크 RPR 총재를 총리직에 임명하였다.

  • 3월 21일

    • 국회 국방위 의원들과 육군 수뇌부들이 요정 '회림'에서 회식 도중 집단 난투극을 벌였다.(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난투극 사건)

    • '반제반파쇼 민족민주 투쟁위원회(이하 민민투)'가 결성되었다.

  • 3월 23일

    • 납북 영화인인 최은희-신상옥이 오스트리아의 빈의 미국 대사관에 신변 보호를 요청하며 서방 세계로 탈출하기에 이르렀다.

    • 부산 대한극장에서 '신민당 헌법개정추진위원회 부산지부 결성대회'가 열렸다.

  • 3월 24일

    • 서울시내 4개 대학생 1,400여 명이 호헌철폐와 전방입소 거부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 '부산지구 노동자 생존권확보투쟁 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3월 28일: 고려대 교수 28명이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3월 29일: '구국학생연맹(이하 구학련)'이 결성되었다.

  • 3월 30일

    • 국내 석유값이 2차로 인하되었다(10% 인하).

    • 광주 YMCA에서 '신민당 헌법개정추진위원회 전남지부 결성대회'가 열렸다.

4.1.4. 4월[편집]

  • 4월 2일: 한신대 교수 42명이 시국성명서를 발표했다.

  • 4월 3일: '민주헌법 쟁취운동 범여성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4월 4일

    • 서재필 의사 유품 5,600여 점이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독립기념관에 도착하였다.

    • 성공회 정의실천사제단 신부 24명은 국민의 개헌 요구가 정당하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5일: 전두환 대통령이 영국, 서독, 벨기에, 프랑스 등 서유럽 4개국 순방차 출국하였다.

  • 4월 7일: 대한변협은 헌법개정연구위원회를 구성하며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4월 8일

    • 신민당은 국회에 'KBS 시청료 폐지 법안'을 제출했다.

    • 일본 유명 아이돌 가수 오카다 유키코가 도쿄 선뮤직 빌딩에서 투신자살했다.

  • 4월 10일: '반미자주화 반파쇼 민주화투쟁위원회(이하 자민투)'가 결성되었다.

  • 4월 11일

    • 성균관대 교수 35명과 서울대 교수 48명은 개헌과 관련한 내용의 시국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민가협 회원 등 100여 명은 서울구치소 앞에서 구속 학생에 대한 가혹행위 중단과 폭력교도관 처벌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을 벌였다.

    • 미국 마이애미에서 FBI 총격전이 일어났다.

  • 4월 13일: 서울 명동성당이 일반 신도들을 대상으로 개헌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 4월 15일

    • 감신대 교수 10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미군이 리비아 공습을 단행했다.

  • 4월 16일: 전남대 교수 43명이 "광주의 비극을 경험한 우리는 조국의 현실에 우려를 표명한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17일

    • 외대 교수 27명과 계명대 교수 49명이 각각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희대의 병맛 전쟁인 335년 전쟁이 막을 내렸다.

  • 4월 18일

    • 연세대 교수 32명과 이화여대 교수 10명이 각각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전국 32개 대학 1만 1천여 명이 4.19 기념식 개최 후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 4월 19일: 일본 신성사가 아케이드 게임잡지 <게메스트>가 창간되었다.

  • 4월 20일: 비동맹회의 101개국이 미군의 리비아 폭격을 비난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 4월 21일

    • 성균관대 학생들이 전방입소 훈련을 거부하고 시위를 벌였다.

    • 경기대 교수 14명과 전북대 교수 47명, 경남대 교수 30명이 각각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제5회 세계올림픽연합회(ANOC) 서울총회가 개막되었다.

  • 4월 23일: 인하대 교수 20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24일: 서강대 교수 28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25일

    • 출판계 인사 80여 명이 <출판인의 자유와 권리 쟁취를 위한 선언>을 채택하였다.

    • 'KBS-TV 시청료 폐지운동 여성단체연합'이 'KBS-TV 시청료 폐지 촉진대회'를 개최하였다.

    • 숭전대 교수 14명과 장신대 교수 26명, 충북대 교수 32명, 덕성여대 교수 12명이 각각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26일: 소련령 벨라루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실험 중 원자로 화재로 폭발했다.(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

  • 4월 28일: 서울대생 김세진과 이재호가 신림동 4거리에서 전방입소를 거부하는 가두시위 도중에 "반전반핵"을 외치며 온 몸을 불살랐다. 이후 김세진은 5월 3일, 이재호는 5월 26일에 각각 짧은 생을 마쳤다.

  • 4월 29일

    • 전국 30개대생 3천여 명이 연세대 신촌캠에서 '전국 반파쇼민중민주투쟁 학생연합(이하 민민학련) 발대식'을 개최한 후 시위를 벌였다.

    • 경희대 교수 19명과 충남대 교수 21명, 원광대 교수 24명, 경상대 교수 24명이 각각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4월 30일

    • 전두환 대통령은 3당 대표 회담에서 여야가 합의하면 임기 내에 개헌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문교부는 개헌/민주화 등 시국선언 서명 교수를 28개대 763명으로 집계했다고 밝혔다.

4.1.5. 5월[편집]

  • 5월 중: 전국노동자연맹 추진위원회(이하 전노추)가 결성되었다.

  • 5월 1일

    • 서울지역 대학생 2백여 명이 독산동에서 가두시위를 하며 <5·1절 노동자해방투쟁의 날부터 광주민중항쟁까지>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배포하였다.

    • 전국 천주교 수녀대표모임 한국여자수도자 장상연합회는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한 9일 기도'에 돌입하였다.

    • 광명 철산동에서 서노련 주도로 '노동자해방투쟁의 날' 가두시위가 벌어졌다.

    • 고문공대위는 ‘최근 고문 및 인권탄압 사례 보고대회’를 개최하였다.

    • 민통련은 민국련에서 탈퇴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이란-이라크 양국이 6년여 간의 전쟁 종식을 위한 8개항 계획에 합의하였다.

  • 5월 2일

    • 대처 영국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 서울 올림픽대로가 개통되었다.

    • 서울대 대학원생 630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대한변협은 <1985년 인권보고서>를 발표해 고문과 수감자 폭행 등 인권침해 실태를 처음 폭로했다.

  • 5월 3일: 학생, 노동자, 시민 등 5천여 명이 '신민당 개헌추진위원회 경기/인천지부 결성대회' 시작 전에 경찰과 격렬한 충돌을 벌이며 시위를 벌였다.(인천 5.3 운동).

  • 5월 5일

    • 경찰은 자민투와 민민투를 용공 좌익조직으로 규정해 주동자 27명을 전국에 수배했다.

    • 서울대 시위진압 작전 도중 가스차 1대가 폭발해 탑승자인 이강호 경사가 순직했다.

  • 5월 6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민주화/인간화의 복음을 선포한다>라는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김문수 등 서노련 중심인물 6명이 보안사에 의해 강제 연행되었다.(서노련 사건)

  • 5월 7일: 조지 슐츠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 5월 8일

    • 민통련은 기자회견에서 인천 5.3 항쟁 관련 입장을 밝혔다.

    •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는 <전국 목회자의 민주쟁취선언>을 발표하였다.

    • 전국 20개 대학생 6천여 명이 "전방입소 반대", "독재타도"를 외치며 교내시위를 벌였다.

  • 5월 9일

    • 조계종 승려 152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정의실현 법조인회(이하 정법회)'가 발족되었다.

  • 5월 10일

    • 한국YMCA 중등교육자협의회 소속 교사 546명이 <교육민주화선언>을 발표했다.

    • 흥사단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5월 12일

    • 이민우 신민당 총재가 일본을 방문했다.

    • '서노련 노동자가족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리비아 정부는 자국 주재 서유럽 7개국 외교관/대사관직원 36명에 출국명령을 내렸다.

  • 5월 13일

    • 미국 SDI 계획에 참여 중이던 101개 대학교 소속 과학자 6천여 명이 해당 계획의 연구를 거부키로 했다.

    • 일본 엔화 강세로 인해 국내 엔화 환율이 1백엔당 505원을 돌파했다.

    • 자유중국 정부는 중공에 넘어간 점보화물기와 승무원 송환문제에 대해 중공과 직접 협상키로 결정하였다.

  • 5월 14일: '반제반파쇼투쟁 호남지역 대학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15일

    • '반외세 반독재 민족민주헌법제정민중회의 쟁취 투쟁본부'가 결성되었다.

    • 문교부는 <교육민주화선언> 참여교사 10명에 대해 사표를 종용했다.

    • 신일고 학생들이 <교육민주화선언> 관련 교사들에 대한 학교측의 징계 조치에 항의하며 연좌농성을 벌였다.

    • 김수환 추기경은 CBS 라디오 <오늘을 생각하며>에서 언론민주화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요구하였다.

    • 검찰은 서노련을 용공이적단체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에 대해 국보법 및 집시법 위반, 소요죄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 고려대생 1천여 명이 비상 학생총회를 열어 전방입소 거부를 결의하였다.

    • 'KBS-TV 시청료 거부 범시민운동 여성연합'이 발족되었다.

    • 방송대 교수 16명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민주교육실천협의회(이하 민교협)가 발족되었다.

  • 5월 16일: 인천교도소 수감 양심수들이 소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돌입하였다.

  • 5월 17일

    • '반외세 반독재 민족민주헌법제정민중회의 쟁취 투쟁본부’측은 이날 개최되려던 ‘광주학살 원흉처단과 민족민주헌법제정민중회의 쟁취를 위한 민중대회’를 경찰이 원천봉쇄하자 기습 가두시위를 벌였다.

    • 전국 주요 대학생들이 광주항쟁 6주년을 맞아 교내외 집회 및 시위를 벌였다.

  • 5월 18일

    • 5.18 희생자 유족과 대학생 6천여 명이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광주항쟁 6주기 추모식을 벌인 뒤 시위를 벌였다.

    • 명동성당 청년신도 1천여 명이 광주학살 진상규명대회와 추모미사 뒤 가두시위를 벌였다.

    • 수원교도소 수감 양심수들이 금치조치 철회 및 운동시간 허용 등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 5월 20일: 서울대 원예과 1년생 이동수가 학생회관 4층 옥상 난간에서 “파쇼의 선봉 전두환을 처단하자” 및 “미제국주의 물러가라”를 외치며 분신자살했다.

  • 5월 21일: 박종진 서울대 민민투위원장 등 학생 21명이 부산 미국문화원을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제2차 부미방 사건)

  • 5월 22일: 북한측은 '고구려문화전'을 일본 도쿄에서 개막했다.

  • 5월 23일: 문익환 민통련 의장이 서울대 강연과 관련해 구속되었다.

  • 5월 26일: KBS-TV 시청료거부운동본부는 서울 시내에서 기습 가두캠페인을 벌였다.

  • 5월 27일: 한신대는 대학 중에서 처음으로 광주항쟁 희생자 추모비를 세웠다.

  • 5월 29일: 주한미군노조는 미군 측의 한국인 노동자 감축에 항의하며 전국적 파업에 돌입했다.

  • 5월 30일

    • 서노련 및 인노련 소속 해고 노동자 16명이 한미은행 영등포지점을 점거해 성조기를 불태우며 "독재타도", "미제축출", "8시간 노동제 쟁취" 등을 외쳤다.

    • 노태우-이민우 여야 대표가 회담에서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구성에 합의했다.

    • 전국 25개 출판사 대표 및 출판 관계자 70여 명이 외국인 저작권보호법 반대 궐기대회를 열었다.

  • 5월 31일

    • 서울 YMCA 중등교육자회 등 4개 교육단체 소속 교사 350명이 명동성당에서 교육자율화를 결의하였다.

    • 정부가 컬러TV 등 301개 품목에 대해 수입자유화 조치를 내리면서 자유화율이 91%로 올랐다.

    •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개막식이 에스타디오 아즈테카에서 개최되었다.

4.1.6. 6월[편집]

  • 6월 2일

    • (현지시간 기준)한국 대표팀이 멕시코 월드컵 A조 본선 1차전에서 강호 아르헨티나에 1-3으로 패했다.

    • 고리 원자력 발전소 5, 6호기가 준공되었다.

    • 서울대 등 23개 대학교수 265명이 한신대 수유캠퍼스 회의실에서 <교수연합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북한 평양학생소년교예단이 일본 도쿄에서 첫 공연을 열었다.

  • 6월 4일

    • 한신대 평교수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서울대 의류학과 제적생 권인숙이 노동현장에서 공활 도중 경찰에 연행되었다.

  • 6월 5일

    • (현지시간 기준)한국 대표팀이 멕시코 월드컵 A조 본선 2차전에서 불가리아와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 권인숙 양이 부천경찰서에서 조사받던 도중 문귀동 경장에게 성고문을 당했다.(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 공문연이 <'86 반공해선언>을 발표하였다.

  • 6월 8일

    • 고려대생 9명이 주한 미국대사관 점거를 시도하다 전원 검거되었다.

    • 발트하임 전 유엔 사무총장이 오스트리아 대선 2차 결선투표에서 당선되었다.

    • 후야오방 중공 총서기가 당 지도자로서 처음으로 서유럽 4개국을 순방하였다.

  • 6월 9일: 반공협은 <한반도의 핵 볼모화 저지를 위한 반핵/반공해운동을 촉구한다>는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6월 10일(현지시간 기준): 한국 대표팀이 멕시코 월드컵 A조 본선 3차전에서 강호 이태리에 2-3으로 패해 16강행이 좌절되었다.

  • 6월 11일: IOC는 1988 서울올림픽의 남북 분산개최를 제의했다.

  • 6월 12일

    • 사법연수원생이나 판검사로 가장해 여성 50여 명을 농락한 백종각이 구속되었다.

    • 남아공 정부는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해 종교인과 학생 등 반인종차별주의자 검거를 자행했다.

  • 6월 14일: 건축가 김수근이 세상을 떴다.

  • 6월 16일: 권인숙은 인천소년교도소 송치 후 수감자들과 함께 성고문 가해자인 문귀동 구속 등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 6월 17일

    • 서울구치소 수감 양심수들이 '이원집정부제 개헌음모 저지와 국가보안법-집시법 철폐를 위한 옥중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단식투쟁에 돌입하였다.

    • 일본 정부는 외국인등록의 지문채취를 거부한 한국 유학생 김명식 씨에 대해 체류기간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 영남대 민민투위원장 최우식 등 학생 5명이 한미은행 대구지점에서 반미 점거농성을 벌였다.

    • 북한측은 남-북-미 3자 군사당국자회담을 제의했다.

  • 6월 19일

    • 전남 여천군 대미산 동굴에서 신호수 노동자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신호수 의문사 사건)

    • (현지시간 기준)NBA팀 보스턴 셀틱스 입단예정 선수 렌 바이어스가 자택에서 약물중독으로 숨졌다.

  • 6월 21일

    • 여야 대표는 '헌법개정 특별위원회' 구성에 합의하였다.

    • 호남 YMCA 중등교사협의회 교사 229명은 가톨릭센터에서 '교육민주화 실천대회'를 열고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 재야 사회과학출판사 연합체인 '한국출판문화운동협의회(이하 한출협)'가 발족되었다.

    • 부산 송도매립지 앞바다에서 서울대생 김성수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김성수 의문사 사건)

  • 6월 23일: 단국대생 2백여 명이 ‘전방입소 거부 및 군사교육 전면철폐 투쟁선언대회’를 개최하였다.

  • 6월 24일

    • 국회 본회의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 미국 하원은 출석 의원 413명 전원 찬성으로 한국의 민주화 결의안 및 북한의 인권개선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 북한 남포 서해갑문이 준공되었다.

  • 6월 25일

    • 연세대생 오연호 등 총학 집행부가 <전국 애국 중/고 청년에게 보내는 글>이란 제하의 편지를 2천여 통이나 발송하였다.

    • 미국 하원은 대 니카라과 반군 원조안을 승인했다.

  • 6월 26일: 정부는 '행정전산망 종합계획'을 확정/발표하였다.

  • 6월 30일

    • 경찰은 자민투/민민투 관련자 6명을 검거하고 39명에 긴급수배 조치를 내렸다.

    • 중공-포르투갈 양국은 마카오의 장래를 위한 회담을 열었다.

4.1.7. 7월[편집]

  • 7월 1일: 한국생산성본부가 특별법인으로 재발족되었다.

  • 7월 2일: 인천지역 구속자 가족 30여명이 문귀동 경장의 성고문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 7월 3일

    • 권인숙은 성고문 가해자인 문귀동 경장을 강제추행 혐의로 인천지검에 고소하여 진상 규명을 요구하였다.

    • 민통련은 "변태적 성고문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칠레 전역에서 민정 복귀를 촉구하는 총파업이 벌어졌다. 이에 군대가 시위대에 발포해 7명이 사망했다.

  • 7월 5일

    • 권인숙의 변호인단 9명은 문귀동 경장과 옥봉환 부천경찰서장 등 성고문 관련 경찰 6명을 독직폭행 및 가혹행위로 고발하였다.

    • 영등포구치소 여성 재소자 12명이 재소자 인권탄압과 소내 폭력에 항의하며 닷새째 단식농성을 벌였다.

    • 경남 하동군 어민 150여 명이 포철 광양제철소 건설로 인한 양식장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파키스탄 인민당 등 반정세력이 70여개 도시에서 대통령 하야와 민주선거 실시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7월 8일: 일본 문부성은 1982년 역사왜곡 당시 핵심부분을 그대로 둔 채 지엽적으로 수정한 <고교 일본사> 교과서를 인가했다.

  • 7월 9일

    • 신/구교단체 대표 10여 명이 '부천서 성고문 대책회의 및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양심수 강제징집 저지 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7월 10일: 민문협 및 '전국 인문과학 서적상연합회'는 민중가요 테이프 압수 조치와 관련해 성명을 발표하였다.

  • 7월 11일

    • 'KBS-TV 시청료 거부 범국민투쟁본부' 임원단은 시내에서 시청료 거부 가두캠페인을 전개하였다.

    • 국내 여성단체 및 종교단체들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피노체트 칠레 대통령은 1997년까지 정권을 이양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면서 반정부 인사 3천여 명을 검거했다.

  • 7월 14일: 독립기념관은 자유중국 측으로부터 인수한 상하이 임정의 대일선전 성명서 등 26점과 윤봉길 의사의 친필이력서 등 29점을 공개하였다.

  • 7월 15일: 교육개혁심의회는 대입본고사 5년후 부활, 고입 선 지원/후 시험 등 최종안을 확정하였다.

  • 7월 16일

    • 인천지검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 대해 성적 모욕이 없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 부천경찰서는 문귀동 경장에게 파면, 옥봉환 서장에게는 직위해제 조치를 내렸다.

    • 서울 상계동과 하왕십리 철거민 130여 명이 명동성당 입구에서 재개발 중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7월 18일: 부천서 성고문 사건 피해자인 권인숙의 변호인단은 기자 회견에서 "검찰이 진실을 찾아냈으나 발표 과정에서 왜곡/은폐했다"고 주장했다.

  • 7월 19일: 경찰은 신민당 등 33개 단체가 주최한 '고문/성고문/용공조작 범국민 폭로대회' 장소인 명동성당을 저지해 김대중 민추협공동의장 등 재야인사 12명을 가택 연금했다.

  • 7월 21일: 한미 양국은 통상협정을 일괄 타결하면서 그해 9월부터 양담배 판매를 공식 허용하고, 1987년 7월부터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로 했다.

  • 7월 25일

    • 문공부는 도굴범으로부터 되찾은 건봉사 사리탑 석가모니 진신 치아사리 8과를 공개하였다.

    • 경주고분발굴조사단이 용강동 고분에서 신라시대 토용이 국내 최초로 발굴되었다.

  • 7월 26일: 인천 뉴송도호텔 사장 피습사건이 발생하였다.

  • 7월 27일: 이날 개신교 측이 주최하려던 '성고문 규탄 기도회'가 경찰에 의해 저지되었다. 결국 이들은 성공회 주변 및 새문안교회에서 산발적인 비상 기도회를 열었다.

  • 7월 28일

    •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청소년대책전문위원인 김형배가 부천서 성고문과 관련해 양심선언을 발표하였다.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블라디보스토크 선언'을 발표하며 당해 안에 아프간 주둔 소련군을 철수시키는 한편, 태평양 국가와의 경제관계를 증진하기로 했다.

  • 7월 30일: 국회 헌법개정특위가 1차 전체회의를 열었다.

4.1.8. 8월[편집]

  • 8월 1일

    • 서울대 등 9개 대학생들은 고려대에서 '민중 기만하는 헌법특위 분쇄 및 미제의 경제침탈 저지를 위한 애국 청년학도 총궐기대회'를 열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KBS 88예술단이 창설되었다.

  • 8월 2일: 북한측은 금강산발전소 건설준비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 8월 4일

    • 신민당은 대통령 중심제 및 직선제를 골간으로 한 개헌안을 확정지었다.

    • 충남 천원군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지붕이 크게 손상되었다.

  • 8월 5일: 등록취소 출판사 창비가 '창작사'란 사명으로 출판업을 재개하였다.

  • 8월 7일: 안춘생 독립기념관장은 기념관 복구에 6개월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 8월 8일

    • 국토통일원은 남북한 국세비교에서 GNP는 811억 대 147억 불, 1인당 GNP는 1,999 대 762불로 집계하였다.

    • MBC는 미아찾기 프로그램 <엄마 아빠 저 여기 있어요> 생방송을 개시하였다.

  • 8월 9일

    • 인문사회과학서적상협의회는 연행된 서점 주인의 석방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제헌의회그룹(CA)이 결성되었다.

  • 8월 10일: 북한 황북 사리원 정방산 성불사가 복원되었다.

  • 8월 11일: 미-소 핵군축회담이 모스크바에서 개최되었다.

  • 8월 12일: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협)'가 발족되었다.

  • 8월 13일: '출판문화탄압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8월 14일

    • 신민당과 민추협이 '고문/성고문/용공조작 범시민 폭로대회'를 개최하였다.

    • '8·15 민족해방절 기념식 및 기만적 헌법특위 분쇄와 망국 아주경기(아시안게임) 결사저지를 위한 백만학도 실천대회'가 개최되었다.

    • 서울 강남 서진회관에서 서울목포파가 난투극 끝에 맘보파 조직원 4명을 살해했다.(서진 룸살롱 집단 살인 사건)

    • 파키스탄 야당지도자 부토 여사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 8월 15일

    • 전두환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측에 남북대화 수락을 촉구하였다.

    • 경찰은 1986년 막사이사이상 수상자 제정구를 연행했다.

  • 8월 16일

    • 유한열 등 신보수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민중민주당'이 창당되었다.

    • 중공올림픽위원회는 서울아시안게임에 선수단 515명을 파견키로 공식 발표하였다.

  • 8월 18일: 소련-이스라엘 양국이 단교 19년만에 회담을 열었다.

  • 8월 20일: 영광원전 7호기가 상업운행을 개시하였다.

  • 8월 21일

    • 인천지검은 성고문 가해자인 문귀동 경장을 기소유예시켰다.

    • 국립중앙박물관이 구 중앙청 건물에서 문을 열었다.

  • 8월 22일: 전경환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이 사표를 제출한 뒤 미국으로 도피했다.

  • 8월 23일: 민정당은 당직을 개편해 사무총장에 이춘구, 원내총무에 이한동, 중앙위의장에 임방현, 정책조정실장에 강경식을 각각 내정했다.

  • 8월 25일

    • 국립현대미술관이 경기도 과천으로 이전/개관했다.

    • 의현 스님이 새 조계종 총무원장직에 선출되었다.

  • 8월 26일: 전두환 대통령은 외무부 등 10개 부처에 대해 개각을 단행하였다.

  • 8월 28일

    • 전두환 대통령은 차관급 등 8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였다.

    • '제3세대당 창당발기인대회'가 개최되었다.

  • 8월 29일

    • 민교협 소속 초/중등 교사 3백여 명이 민중교육 사건 1주년을 맞이해 '민주교육 실천대회'를 열었다.

    • 가농은 '미국농축산물수입저지본부' 및 지부들을 결성하였다.

  • 8월 30일: 대검은 민민투-자민투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관련자 180명을 검거하고 169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4.1.9. 9월[편집]

  • 9월 1일

    • 한미 통상협상 타결에 따라 수입 양담배 판매가 비로소 허용되었다.

    • 성고문 피해자인 권인숙과 변호인 166명이 문귀동 경장에 대한 재정신청을 제출하였다.

  • 9월 3일: '총액출자 한도제'를 도입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마련되었다.

  • 9월 4일: 안기부는 이병설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등 7명을 간첩 혐의로 검거했다고 밝혔다.(진달래 사건)

  • 9월 6일

    • 후지오 마사유키 일본 문부상이 "한일합방은 양국이 합의한 것이며 한국에도 책임이 있다"고 망언을 했다.

    • 민언련과 정의구현사제단은 <>지 특집호 기사 '권력과 언론의 음모―권력이 언론에 보내는 비밀통신문'을 통해 5공 정권에 의한 보도지침 사례를 폭로하였다.(보도지침 폭로 사건)

  • 9월 7일

    •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2천여 명은 합천 해인사에서 '불교 관계법 철폐 및 전면 개정을 위한 전국 승려대회’를 개최하였다.

    • 뉴송도호텔 습격사건의 주범인 서방파 두목 김태촌이 검거되었다.

  • 9월 8일: '고려대 애국학생회'가 발족되었다.

  • 9월 10일: 한강종합개발사업이 4년만에 완료되었다.

  • 9월 11일

    • 호남고속도로 4차선 확장공사가 완료되었다.

    • 서울대 등 전국 28개 대학생 6천여 명이 '아시안게임 저지'와 '헌법특위 분쇄'를 요구하며 교내에서 시위를 벌였다.

    • 연세대 등 5개 대학생 70여 명이 민정당 윤길중, 이세기 의원 사무실에 돌과 화염병을 투척하였다.

  • 9월 12일: 북한-아일랜드 양국 노동당 대표단이 평양에서 회담을 열었다.

  • 9월 13일: '공해반대시민운동협의회(이하 공민협)'가 발족되었다.

  • 9월 14일: 서울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 쓰레기통에서 폭탄이 터져 5명이 죽고 33명이 다쳤다.(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

  • 9월 16일

    • 정부는 제6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 서울지역 15개대 1,500여 명이 고려대 안암캠에서 '전학련 결성촉구 및 아시아경기 결사저지를 위한 애국청년학도 서울지역 실천대회'를 개최하였다.

    • 김영삼 신민당 상임고문은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학생들의 시위 자제를 요청했다.

    • 각계 민주인사 207명이 나카소네 방한 반대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종교, 여성, 사회단체들은 서울아시안게임 반대 성명을 발표하였다.

    • 불교 승려 5백여 명이 개운사에서 '불교관계악법철폐운동대책위원회 및 100만서명운동추진위원회 발대식'을 개최하였다.

  • 9월 17일: 외대-고려대생 등 5명이 나카소네 방한을 반대하며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관을 점거 농성하였다.

  • 9월 18일: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북한측에 1988 서울올림픽 2개 종목 수용을 촉구하였다.

  • 9월 20일

    •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개막식이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 민주인사 17명이 나카소네 방한반대 성명을 냈다.

    • 나카소네 일본 총리가 개막식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였다.

    • GATT 가맹국 각료들이 우루과이의 푼타 델 에스테에서 새로운 다자간 무역 협상을 개시하기로 합의하였다.(우루과이 라운드)

  • 9월 21일: 전두환-나카소네 한일 양국 정상이 청와대 회담에서 무역 역조 시정방안을 협의하였다.

  • 9월 22일

    • 사격선수 박정아 등 3명이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석권하였다.

    • 산업정책심의회는 구 국제그룹 계열 7개사와 경남기업, 남광토건 등 28개 부실기업을 정리했다.

  • 9월 23일: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상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를 심각한 분쟁지역으로 언급하였다.

  • 9월 24일: 한국 남자탁구 대표팀이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 9월 25일

    • 노점상대책위는 아시안게임을 앞둔 무대책 철거에 항의하는 성명을 냈다.

    • 민추협은 '대전교도소 집단폭행사건 조사단'을 구성하였다.

  • 9월 26일: IAEA 특별회의 52개 참가국이 <핵사고에 관한 국제협력증진협정>에 서명하였다.

  • 9월 29일: 신민당은 직선제 재개 합의를 촉구하며 헌법특위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 9월 30일

    • 한국 남녀 하키팀이 서울아시안게임에서 동반으로 금메달을 땄다.

    • 서울고검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 대한 재정신청을 기각했다.

4.1.10. 10월[편집]

  • 10월 2일

    • 서울 아시안게임 도중 이란 역도대표팀 선수 4명이 출국 직전에 이탈하여 주한 이라크 총영사관으로 도피하였다.

    • '민주교육탄압저지 공동대책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10월 3일: 언더그라운드 락밴드 '부활'이 1<Rock Will Never Die>를 발표하며 메이저 무대에 발을 들여놓았다.

  • 10월 5일: 1986 서울 아시안게임 폐막식이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종합 2위를 차지하였다.

  • 10월 6일

    • 삼성전자가 TV카메라 일체형 4mm VTR을 개발하였다.

    • 제6차 중-소관계 정상화회담이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

  • 10월 9일: 신민당은 전북 군산에서 개헌대회를 개최했다.

  • 10월 11일: 치안본부는 북한 기관지 <민주조선>의 보도내용을 그대로 베낀 벽보가 서울대 관악캠에서 발견되었다고 밝혔다.(서울대 대자보 사건)

  • 10월 14일

    • 유성환 신민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우리의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라 발언해 파문이 일었다.(유성환 국시론 파동)

    • 서울대 의대 부설 '간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 북한 조선올림픽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1988 서울올림픽 8개 종목 배정을 요구했다.

  • 10월 15일: 도서출판 풀빛이 <한국민중사> 1권(전근대편)을 출간하였다. 근현대를 다룬 2권은 다음달 25일에 나왔다.

  • 10월 16일: 민정당은 유성환 신민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기습적으로 단독 통과시켰다.

  • 10월 17일

    • 김운용 세계태권도연맹 총재가 국제올림픽위원회 한국 위원으로 피선되었다.

    • 경찰은 구학련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여 관련자 3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구국학생연맹 사건)

  • 10월 18일

    • 신민당은 유성환 사건 해결을 위해 무조건 등원하기로 결정했다.

    • 민중 영화집단 연합체인 '서울영상집단'이 결성되었다.

    • 치안본부는 '전국노동자연맹추진위원회(이하 전노추)'를 전국적 농민운동의 지하비밀조직으로 규정해 발표했다.(전국노동자연맹추진위 사건)

  • 10월 19일: '박영진 열사 추모사업회'가 결성되었다.

  • 10월 20일

    • 김수환 추기경은 로마 기자회견에서 전두환 대통령 측근과 김영삼-김대중 양김에게 정치야심을 버릴 것을 촉구하였다.(로마 기자회견 파문)

    • 치안본부는 구학련 상부조직인 '노동해방전선'을 적발해 김영환 등을 수배했다고 발표했다.

  • 10월 21일

    • 내외통신은 북측이 금강산수력발전소 댐 건설에 착공했다고 평양방송을 인용해 보도했다.(금강산댐 수공설)

    •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전두환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을 제의했다.

    • 민통련 등 40여개 사회/종교단체를 주축으로 한 '미·일 경제침략 저지 국민운동연합'이 결성되었다.

  • 10월 22일: 북한의 김일성은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과 회담을 열었다.

  • 10월 24일: 서울지검 공안부는 '마르크스-레닌주의당(ML당) 결성기도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노동자와 대학생 89명 등 101명을 검거했다고 했다.

  • 10월 25일

    • 해태 타이거즈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꺾어 3년만에 통산 2회 우승을 달성하였다.

    • 한강 유람선이 첫 운항을 개시하였다.

    • KNCC 농어촌선교위는 "전노추는 용공조작 사건"이란 요지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10월 27일

    • 검찰은 인천 5.3 항쟁의 배후로 지목된 이부영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 민불련 소속 승려 150여 명이 '10.27 법난 규탄 및 불교자유 쟁취대회'를 열어 시위에 돌입하였다.

  • 10월 28일

    • 경인지역 26개대생 2천여 명이 건국대 서울캠에서 '전국 반외세 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이하 애학투련) 결성식' 개최 후 철야 농성에 돌입하였다.(10.28 건대항쟁)

    • '민주헌법쟁취노동자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0월 29일: 강릉교도소 수감 양심수들이 '옥중투쟁위원회' 결성 후 농성에 돌입하였다.

  • 10월 31일

    • 경찰은 건국대 서울캠에서 '황소 31' 입체작전을 감행해 농성중이던 학생 1,500여명을 강제 연행했다.

    • 연세대 의대 이원영 교수는 이날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대한미생물학회 보고에서 에이즈 병원체가 내국인에게서 처음 검출되었다고 발표하였다.

4.1.11. 11월[편집]

  • 11월 1일

    • 광주시가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직할시로 승격되었다.

    • 1988 서울올림픽 기자촌/선수촌이 착공되었다.

    • 한경이 비디오텍스 'KETEL'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 11월 3일: 검찰은 건대 점거농성사건 관련학생 중 1차로 1,265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는 근대적 사법체계 형성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 구속된 단일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 11월 4일: 김종철 국민당 고문이 향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 11월 5일

    • 김대중 신민당 상임고문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전제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부산산업대생 진성일이 건대항쟁 진압에 항의하며 분신자살했다.

    • 미국 드라마 <맥가이버>가 MBC에서 더빙 방영되었다.

  • 11월 7일: 노동부는 인노련과 서노련에 해산 명령을 내렸다.

  • 11월 8일: 이날 발표된 내무부 자료에 의하면, 당해 들어 9월 말까지 사용한 최루탄이 31만 발, 구입비가 59억원으로 전년도보다 49% 증가했다고 보고되었다.

  • 11월 9일: MBC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이 첫 전파를 탔다.

  • 11월 12일

    • 치안본부는 지하혁명조직 '반제구국노동자동맹당' 결성 시도를 한 조정식 등 관련자 15명을 검거하며 20여 명을 수배했다고 밝혔다.(반제동맹당 사건)

    • 경찰은 민통련 사무실을 강제 폐쇄시켰다.

  • 11월 13일: 민민투 경인지역학생평의회 소속 대학생 및 노동자 5백여 명이 영등포에서 기습 시위를 벌여 경찰차 3대가 전소되었다.

  • 11월 15일: 재무부는 미국 생명보험회사의 한국 진출을 허용시켰다.

  • 11월 16일: 조선일보가 김일성이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특종을 대대적으로 터뜨렸다.(김일성 사망 오보 사건)

  • 11월 17일: 국방부는 북측 대남방송에서 김일성 피격사망 사실을 보도했다고 밝혔다.

  • 11월 18일

    • 국방부는 김일성 사망설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 바흐문트 몽골 공산당 서기장이 방북하자마자 김일성을 만났다. 이렇게 해서 김일성 사망은 오보가 되었다.

    • KNCC 가맹 6개 교단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성회'를 개최하고 민정당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 11월 20일: 안기부는 '제헌의회그룹 사건'을 발표하였다.

  • 11월 24일: 문공부는 고려 사경 <감지은니묘법연화경> 및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을 각각 국보 234, 235호로 지정하였다.

  • 11월 25일: 문교부는 1988년부터 대입제도를 논술고사로 바꾸고 졸업정원제를 폐지하도록 한 '대입제도 개혁안'을 내놓았다.

  • 11월 26일: 국방-문공-통일-건설 4부 장관들은 합동담화에서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평화의 댐'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 11월 29일: 경찰은 신민당 주최 '대통령직선제 개헌쟁취 및 영구집권음모 분쇄 범국민대회'를 원천 봉쇄시켰다.

  • 11월 30일: WBA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 유명우가 아르헨티나의 마리오 데마르코를 상대로 3차 방어에 성공하였다.

4.1.12. 12월[편집]

  • 12월 2일

    • 구속된 정의평화위원회 소속 이돈명 변호사에 대한 변호인단에 사상 최대 규모인 283명이 등록되었다.

    • 민정당이 1987년도 예산안 및 조세감면규제법 개정앗을 단독 처리했다.

    • 신민당은 의원 90명 중 87명의 사퇴서를 이민우 총재에게 제출했다.

    •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휴게소에서 군인 2명이 탑승객 20명을 인질로 잡아 해병대와 18시간이나 대치했으나, 특수부대가 인질범을 사살하고 20명의 탑승객들을 구출했다.(추풍령휴게소 인질극 사건)

    • 무명작가 아라키 히로히코가 지은 <죠죠의 기묘한 모험>이 <주간소년점프> 1987년 1/2 합병호에 처음 게재되었다.

  • 12월 3일

    • 외무부는 한국이 남극조약 및 UN ENMOD 협약에 가입했다고 발표하였다.

    • 신민당 측은 전면 장외 투쟁을 선언하며 무산된 개헌대회를 다시 개최키로 선언하였다.

    • 포항공과대학교가 개교되었다.

  • 12월 5일

    • 신민당 홍사덕 대변인의 '12대 국회 해산 및 총선 제의' 발표에 양김이 제동을 걸어 홍 대변인이 사퇴했다.

    • 김태홍 민언련 사무국장과 신홍범 실행위원이 <말>지 보도지침 폭로 기사와 관련되어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되었다.

  • 12월 6일: 전북 김제군 금산사 본당인 대적광전이 화재로 전소되었다.

  • 12월 8일: 김수환 추기경은 인권회복미사 강론에서 "민주화와 인권이 존중받는 참다운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12월 9일

    • 북한이 국제농업개발기금에 가입하였다.

    • 중공 안후이성 허베이시 대학생 3천여 명이 민주화 요구 시위를 벌였다.

  • 12월 10일

    • 국회 보사위는 신민당 불참 속에 노동관계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했다.

    • 백기완 민통련 부의장이 집시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

  • 12월 11일

    • '평화의댐 건설지원 범국민추진위원회 발기인대회'가 개최되었다.

    • 신민당은 민정당의 단독 상임위원회 강행에 항의하며 국회 불참을 결정했다.

  • 12월 12일

    • 특허법 및 저작권법 개정안이 국회 심의를 통과했다.

    • 미국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 12월 13일: 한국에스페란토협회가 설립되었다.

  • 12월 15일

    • '평화의댐 건설지원 범국민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가 보도지침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 베트남 공산당은 제6차 전당대회에서 '도이모이 개방 정책'을 발표/승인함으로써 사회주의를 사실상 포기하고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 12월 16일: 경기 연천군 전곡리에서 12~30만년 전 구석기 주먹도끼가 온전한 형태로 출토되었다.

  • 12월 18일: 국회 본회의는 공정거래법 중 개정법률안을 의결하였다.

  • 12월 19일: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제8기 제1차 회의에서 국가주석에 김일성, 총리에 리근모를 선출했다.

  • 12월 24일

    • 이민우 신민당 총재가 내각제 개헌협상 긍정적 검토 가능성을 밝혔다.(이민우 구상)

    • 현대 엑셀/프레스토가 미 환경보호청 미국차 베스트10에 선정되었다.

  • 12월 25일: 북한측은 <금강산발전소 건설에 관한 백서>를 발표했다.

  • 12월 26일: '도시노점상복지회'가 결성되었다.

  • 12월 27일: 민정당, 신민당, 국민당 3당 대표가 회동을 열었다.

  • 12월 28일: 북한 평양 ~ 소련 모스크바 간 철도가 개통되었다.

  • 12월 29일: 건설업체 정우개발이 상은 법정관리에 들어가 부채 2천억 원의 지급이 동결되었다.

  • 12월 30일: 북한의 김일성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북 고위 정치/군사회담'을 제의했다.

  • 12월 31일: 개정 소비자보호법 및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이 제정되었다.

4.2. 가상[편집]

5. 탄생[편집]

5.1. 실존인물[편집]

5.2. 가상인물[편집]

6. 사망[편집]

6.1. 실존인물[편집]

6.1.1. 1월[편집]

6.1.2. 2월[편집]

6.1.3. 3월[편집]

6.1.4. 4월[편집]

6.1.5. 5월[편집]

6.1.6. 6월[편집]

6.1.7. 7월[편집]

6.1.8. 8월[편집]

6.1.9. 9월[편집]

6.1.10. 10월[편집]

6.1.11. 11월[편집]

6.1.12. 12월[편집]

6.2. 가상인물[편집]

7. 데뷔[편집]

7.1. 가수[편집]

7.2. 예능인[편집]

  • 곽재문

  • 김영선

  • 김정빈

  • 김지은

  • 김혜란

  • 김호남

  • 김황우

  • 노유정

  • 박승대

  • 박현웅

  • 서원섭

  • 이숙녀

  • 이현순

  • 임인하

  • 전형진

  • 정우진

  • 조문식

  • 하상훈

  • 한정호

7.3. 만화계[편집]

7.4. 스포츠[편집]

7.4.1. 야구[편집]

7.4.2. 축구[편집]

7.4.3. 농구[편집]

7.4.4. 배구[편집]

7.4.5. 씨름[편집]

  • 장지영

8. 은퇴[편집]

8.1. 스포츠[편집]

9. 히트작[편집]

9.1. 영화[편집]

  • 씨받이

  • 이장호의 외인구단

  • 접시꽃 당신

9.2. 가요[편집]

  • 허공- 조용필

  • 사랑의 미로 - 최진희

9.3. 베스트셀러[편집]

  • 숲속의 방 - 강석경 저.

  • 야훼의 밤 - 조성기 저.

[1]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뀐게 1996년 3월 1일부터인데, 1986년 3~12월생들은 1993년 3월 2일에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1996년 2월 29일까지 국민학교, 1996년 3월 2일부터 1999년 2월 졸업 때까지 초등학교를 다닌 것. 즉 빠른년생을 제외한 86년 3~12월생들은 1,2,3학년은 국민학교, 4,5,6학년은 초등학교를 다닌 셈.[2] 여담이지만, 그들이 수능을 본 이 해에는 처음으로 수능 부정행위에 적발된 첫 해이기도 한다.[3] 사실은 1970년에 처음 유치권을 획득하였지만 당시 북한의 위협 때문에 개최권을 반납하면서 이 때 가서야 치뤄졌다. 1970년 아시아경기대회는 태국 방콕에서 대신 개최.[4] 북한은 두 대회 모두 불참했으며 당시 사회주의 국가였던 몽골, 라오스, 남예멘 등은 아시안경기대회에 불참했다. 캄보디아는 당시 국제 올림픽 위원회와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에 가입하지 않았다. 중국은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차기 개최국이었기 때문에 참가했으며 서울올림픽에도 연이어 참가했다.[5] 대표작으로 소년 점프에 연재된 니세코이가 있다.[6] 애니메이션에서는 1989년.[7] 다카포의 배경은 2002년 봄. 그리고 주인공들은 대부분 중3이다. 일본은 4월에 새 학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캐릭터들 대부분은 86년생이라 할수 있다.[8] DCSS 애니메이션을 보면 알겠지만 아이시아는 준이치의 반친구였다.[9] 15학번으로 대학을 10년 늦게 진학했을 때 개불대학교 입학 시점으로 30살 정도 추측[10] 이 날은 아들인 료의 18번째 생일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