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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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 지역의 표기

서기

1979년

대한민국

61년

단기

4312년

불기

2523년

이슬람력

1399년 ~ 1400년

간지

무오년 ~ 기미

주체

68년

민국

68년

일본

쇼와 54년

히브리력

5739년 ~ 5740년

1. 개요2. 사건
2.1. 실제
2.1.1. 1월2.1.2. 2월2.1.3. 3월2.1.4. 4월2.1.5. 5월2.1.6. 6월2.1.7. 7월2.1.8. 8월2.1.9. 9월2.1.10. 10월2.1.11. 11월2.1.12. 12월
2.2. 가상
3. 탄생
3.1. 실존인물3.2. 가상인물
4. 사망
4.1. 실존 인물4.2. 가상 인물
5. 데뷔
5.1. 가수5.2. 예능인5.3. 만화계5.4. 스포츠
6. 히트작
6.1. 영화6.2. 가요6.3. 베스트셀러
7. 달력

1. 개요[편집]

경향신문 선정 1979년 국내외 10대 뉴스

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한국에선 이 해 2차 오일파동, YH 사건, 부마항쟁으로 매우 뜨거웠다. 10월 26일에 김재규 중정부장이 유신의 심장을 쏘아 쓰러뜨렸다. 그 다음날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11월에 한국 대통령 중 최초로 국장(國葬)이 거행되었다. 그리하여 유신정권과 긴급조치가 종식되었으나 여전히 계엄 하였고, 여당이던 공화당은 구심점을 잃은 채 혼란에 빠졌고, 민주세력들도 갈피를 못 잡았다. 그 상태로 곧바로 12.12가 발생해 하나회가 정권을 잡을 채비를 마련했다.

영화계에서는 2세대 트로이카 여배우유지인, 정윤희가 절정기를 맞던 시절이었다. 각각 내가 버린 남자, 꽃순이를 아시나요를 비롯하여 수 편의 영화를 한 해에 성공시켰다.

이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20년 후인 1999년년에 성인식을 치르게 되는 세대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60년 뒤인 2039년은 황금 양띠의 해가 될듯 하다. 운동권 경력자에 한해 시위현장에서 최루탄 냄새를 마지막으로 맡아본 세대이기도 하다.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세계 아동의 해'로 지정했다.


2. 사건[편집]

2.1. 실제[편집]

연초부터 연말까지 격동의 한 해

2.1.1. 1월[편집]

  • 1월 1일

    • 박정희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의지와 땀으로 보람찬 미래를 창조하자고 강조했다.

    • 미-중 양국이 30년 만에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미국 정부가 자유중국과 단교했다.

  • 1월 4일: 대구교도소 양심범들이 단식농성을 벌였다.

  • 1월 7일

    • 캄보디아 반군을 앞세운 베트남군민주 캄푸치아 수도 프놈펜을 함락했다.

    • 폴 포트 휘하 크메르 루주군이 베트남군 추격을 피해 서부 태국 국경지대로 도망갔다.

  • 1월 7일: 보사부가 어린이 천연두 접종을 폐지했다.

  • 1월 8일

    • 서울 다동 뉴타운호텔 나이트클럽에 큰불이 나 3명이 숨졌다.

    • 서울시는 시내 나이트클럽 41개 및 캬바레 51개소에서 미성년자 출입 등 불법영업을 집중 단속했다.

  • 1월 9일: 법무부는 일본 마이니치신문 서울특파원에 정치정세 왜곡보도를 이유로 출국명령을 내렸다.

  • 1월 10일

    • 전주우석여자대학이 설립되었다.

    • 충북 단양에서 신라 진흥왕대 석비 및 480cm짜리 입석불상이 발견되었다.

  • 1월 11일

    • 한화갑 비서가 김대중 석방조치 요구 성명서 배포혐의로 구속되었다.

    • 민주캄푸치아가 '캄푸치아인민공화국'으로 국명을 바꾸었다.

  • 1월 16일: 팔레비 2세 이란 샤가 이집트로 탈출해 사실상 망명했다.

  • 1월 19일: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무조건 대화를 촉구하였다.

  • 1월 22일: 브라운 미 국방장관은 의회 브리핑에서 주한미군 철수계획에 변동 없다고 밝혔다.

  • 1월 26일: 정부는 북측의 전민족대회 등 주장에 대해 책임있는 책임있는 당국 간 대화촉구 및 예비회담 개최를 제의하였다.

  • 1월 27일

    • 정부는 1.19 제의 관련 남북대화를 실현키 위해 미국을 통한 중공 설득 등 다각외교를 전개키로 결정하였다.

    • 정부는 공무원 재산공개 등을 담은 '공무원 부정방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 북한 조국전선이 남북실무급 대표자회담을 4월에 개최하자고 제의하였다.

  • 1월 31일

    • 민관식 남북조절위 서울위원장이 조절위 재개 및 직통전화 개통을 촉구하였다.

    • 동해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월 1일 0시를 기해 대남비방선전 및 행사 중지를 선언했다.

2.1.2. 2월[편집]

  • 2월 1일: 이란 시아파 혁명운동 최고지도자 호메이니가 1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 2월 2일: <1977년판 세계인구연감>에서 서울이 세계 6위, 한국 인구가 3,644만 명으로 세계 22위로 보고되었다.

  • 2월 3일: 호메이니는 '이란 이슬람공화국'을 정식 출범시켰다.

  • 2월 5일: 북한 조국전선이 남북조절위 대신 '민족통일준비위원회'를 제의했다.

  • 2월 10일: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영하가 오슬로 세계빙상선수권대회 500m 결승에서 동메달을 땄다.

  • 2월 16일: 대한탁구협회가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참가 한국선수단 비자신청서를 ITTF에 발송하였다.

  • 2월 17일

    • 남북조절위 양측이 기구확대 및 통일준비위원회안으로 의견대립했다.

    • 중공군이 베트남 북부를 전면 침공했다.(중국-베트남 전쟁)

  • 2월 18일: 사하라 사막 일대에 이 내려 적설량 30cm를 기록했다.

  • 2월 21일

    • 전경련 등 60개 사회단체가 '(가칭)국민생활안정 대책협의회'를 설립했다.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결성되었다.

  • 2월 22일: 세인트 루시아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 2월 26일: 고리원전 1호기가 냉각수 방사능오염으로 가동이 중단되었다.

  • 2월 27일: 남북한 양국 탁구협회 대표들이 평양세계탁구대회 단일팀 구성 협의차 판문점에서 만났다.

  • 2월 28일: 유정회는 신임 의장에 태완선을 선출했다.

2.1.3. 3월[편집]

  • 3월 1일

    • 민주주의국민연합이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으로 재발족되었다.

    • 팀 스피릿 '79 한미합동군사훈련이 개시되었다.

  • 3월 9일: 크리스찬아카데미 여성사회간사 한명숙이 연행되었다.

  • 3월 13일: EC정상회의는 '유럽신통화제도(EMS)'를 발표하였다.

  • 3월 15일: 국립 안동대학이 개교되었다.

  • 3월 16일

    • 정보산업협의회가 설립되었다.

    • 프랑스 연안에서 VLCC 아모코 카디즈 호가 침몰하여 원유 약 22만톤이 유출되었다.

  • 3월 17일: 국회는 새 의장직에 백두진 유정회 의원, 부의장에 민관식-고흥문을 각각 선출하였다.

  • 3월 18일: 프로권투선수 박찬희가 WBC 플라이급 타이틀 쟁탈전에서 멕시코의 미겔 칸토를 꺾어 승리를 거머쥐었다.

  • 3월 19일: 제10대 국회가 정식 출범되었다.

  • 3월 20일: 충북 청원군 북일면서 4백년 전 여성 미라 및 수의 등 18점이 원형대로 출토되었다.

  • 3월 21일

    • 국회 본회의는 박정희 대통령이 낸 이영섭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다.

    • 북한 함북 삼지연군에 '삼지연혁명사적관'이 문을 열었다.

  • 3월 23일

    • 국회는 첫 대정부질문에서 정치활성화, 안보협의회 설치, 미군 철수문제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 제주도는 5.16 제1횡단도로 확장공사로 한라산 천연림 1만여 그루를 훼손했다.

    • 대한항공이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 뉴욕을 취항하였다.

  • 3월 24일

    • 북한 체육지도위 및 탁구협회가 27일부터 남북탁구협 5차 회담을 판문점 중립국감독위 회의실에서 개최하자고 제의하였다.

    • 서울시교육위가 국민학교 운동회를 의무화한다고 밝혔다.

    • 이융조 충북대 교수가 <대청댐 수몰지역 유적발굴보고서>에서 고인돌 유적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 3월 25일: 방사언 일산역장이 선로횡단 승객 구출 후 순직했다.

  • 3월 26일

    • 박정희 대통령이 이호 헌법위원장 등 위원들을 임명하였다.

    • 이스라엘-이집트 양국이 미국 백악관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다.

  • 3월 27일

    • 북한 조선탁구협회가 대한탁구협회에 실무협의를 제의하였다.

    • 북한측은 정당-사회단체-당국 대표로 구성된 연락대표단 회담을 주장하며 실무협의를 제의하였다.

    • 토지금고가 '한국토지개발공사'로 새로 발족되었다.

  • 3월 28일

  • 3월 29일

    • 신민당이 긴급조치 9호 및 반공법 위반 수감자 2백여 명의 조속 사면/석방 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 YH무역이 공장 폐쇄 및 종업원 5백여 명 해고를 예고했다.

  • 3월 30일

    • 국회 본회의는 '남북대화 촉진에 대한 결의안' 등을 통과시키고 101회 임시국회를 끝냈다.

    • 박준규 공화당 의장서리가 소련 및 중공에 호혜평등 교류를 제의하였다.

2.1.4. 4월[편집]

  • 4월 1일

    • 율산그룹이 도산되었다.

    • 이란 국민투표에서 이슬람 공화국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로 이란이 이슬람 국가로 재탄생했다.

  • 4월 2일

    • 대검은 검찰범죄자료 전산화 5개년 계획에 따라 컴퓨터 터미널 및 팩시밀리 1대씩 청사에 설치하였다.

    •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이 전북 이리 주현교회 교주 이교부 등의 음란집회 등을 공개했다.

    • 일본 신에이동화 제작 <도라에몽> 애니판이 TV아사히에서 첫 전파를 탔다.

  • 4월 3일: 서울지검은 율산그룹 전 대표 신선호를 업무상 횡령 및 외환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율산사건)

  • 4월 5일

    • 유럽탁구연맹이 평양세계탁구대회에 한국 및 이스라엘을 출전하자고 결의하였다.

    • 전 반민특위 위원장 애산 이인이 세상을 떠났다.

  • 4월 6일

    • 경주보문관광단지 190만 평이 개장되었다.

    • 북한 중앙인민위는 화폐개혁과 관련해 '새 돈 발행에 관한 정령'을 발표했다.

  • 4월 7일

    • IOC는 중공 정부의 가입신청을 승인하였다.

    • 일본 선라이즈 작품 <기동전사 건담>이 나고야TV에서 첫 전파를 탔다.

  • 4월 8일: 단국대 고적조사단이 충북 중원군 가금면 입석마을에서 고구려 척경비를 발굴해냈다.

  • 4월 11일

    • 탄자니아 반군-정부군 연합군이 수도 캄팔라를 점령해 아민 독재정권을 붕괴시켰다.

    • 이디 아민 탄자니아 대통령이 리비아로 망명했다.

  • 4월 12일: 미-일-EC 3자가 '도쿄라운드 합의의사록'에 가조인하였다.

  • 4월 13일: YH무역 종업원 5백여 명이 사측의 폐업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였다.

  • 4월 14일

    • 황낙주 신민당 의원이 목포/무안/신안지구당 개편대회 축사 도중 깁단폭행으로 부상당했다.

    • 서울지검 특수부는 율산그룹 주거래은행 탁은 행장 홍윤섭 등을 외환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 강원 정선군 함백광업소에서 폭약이 터져 광부 26명이 숨지고 38명이 부상당했다.

  • 4월 15일: 민주구국학생연맹 관련자 5명이 구속되었다.

  • 4월 16일: 중정은 크리스찬아카데미 간사 등 7명을 용공활동 혐의로 구속했다.

  • 4월 18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이 준공되었다.

  • 4월 19일: 앰네스티 인천지부가 결성되었다.

  • 4월 20일

    • 서울구치소 교도관들이 독서량 제한에 항의하던 긴급조치 위반 수감학생들을 무차별 집단폭행했다.(서울구치소 양심수 집단구타 사건)

    • 치안본부는 통혁당 재건관련자 임동규 등 7명을 간첩 및 국보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 4월 22일: 상고르 세네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4월 25일: 한-소 간 국제전화가 개통되었다.

  • 4월 29일: 제8회 세계여자농구대회가 서울에서 개막되었다.

2.1.5. 5월[편집]

  • 5월 2일

    • '한국미술 5000년전'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양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 발트하임 유엔 사무총장이 북한을 방문했다.

  • 5월 4일

    • 방북 마친 발트하임 유엔 사무총장이 일본을 거쳐 한국을 방문하였다.

    • 서울 후암동 판자촌에 큰불이 나 150여 동 전소, 이재민 2백여 가구 850여 명이 발생했다.

    • 조태일 시인이 취중에 반정부 발언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 마거릿 대처 총재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

    • 대처 보수당 총재가 영국 첫 여성 총리로 취임하였다.

  • 5월 5일

    • 박정희-발트하임 간 회담이 청와대에서 3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 감자 피해보상 운동 주도자 오원춘 안동교구 가농 청기분회장이 실종되었다.(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사건)

  • 5월 9일: 북한-그라나다 간 외교관계가 설정되었다.

  • 5월 12일: 검찰은 긴급조치 9호 위반학생의 형집행정지를 결정했다.

  • 5월 13일: 한국 대표팀이 서울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했다.

  • 5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환경청을 조속히 설치토록 지시했다.

  • 5월 26일: 판소리 명창 박녹주가 세상을 떠났다.

  • 5월 29일: 고상돈 휘하 한국등반대가 미국 매킨리봉 하산 도중 조난당해 고 대장 등 2명이 숨졌다.

  • 5월 30일: 신민당 전당대회는 총재직에 김영삼 의원을 선출하였다.

2.1.6. 6월[편집]

  • 6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고향 폴란드를 방문했다. 이는 교황으로선 역대 최초로 공산권 국가를 방문한 사례이다.

  • 6월 11일

    • 한국 정부는 쿠웨이트와 108번째로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키로 결정하였다.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야당총재 자격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북측 최고책임자와 만날 뜻이 있다고 밝혔다.

    • 양심수 가족들과 청년 11명이 주한미대사관 앞에서 카터 방한 반대 시위를 벌였다.

  • 6월 12일: 월북 경제학자 백남운이 세상을 떠났다.

  • 6월 18일: 미국의 카터 대통령과 소련의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제2차 전략무기 제한 협상(SALT-II)에 조인하였다.

  • 6월 21일: 문교-문공부는 1980년부터 TV교육방송을 실시키로 결정하였다.

  • 6월 28일: 이란 혁명을 계기로 석유수출국기구에서 석유값을 66%로 인상했다.(제2차 오일 쇼크)

  • 6월 29일: 카터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6월 30일: 박정희-카터 간 1차 한미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2.1.7. 7월[편집]

  • 7월 1일

    • 박정희-카터 한미양국 정상이 2차 회담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 밴스 미국 국무장관이 서울 기자회견에서 한미 양국이 북한에 3당국 회담을 제의했다고 발표하였다.

    • 스웨덴 정부는 아동 체벌을 전면 금지시켰다.

  • 7월 2일

    • 여의도 증권거래소가 문을 열었다.

    • 제4차 세계시인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7월 3일: 서울 강남 삼성동에 '한국종합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 7월 4일: 민관식 남북조절위 서울측 위원장대리는 북한에 3당국회의 제의 호응을 촉구하였다.

  • 7월 5일: 오원춘 농민이 두달 전 중정에 납치되어 울릉도에 격리당한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 7월 10일: 북한 외교부 대변인은 한-미 당국이 제의한 3당국회의 거부 성명을 냈다.

  • 7월 12일: 키리바시영국으로부터 정식 독립했다.

  • 7월 16일

    • 축구선수 차범근이 한국인 최초로 서독 분데스리가 구단 '아인트하르트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하였다.

    • 이라크 부통령 사담 후세인이 바크르 대통령을 권좌에서 몰아낸 후 대통령에 취임했다.

  • 7월 17일: 소모사 니카라과 대통령이 민족해방전선세력에 밀려 미국으로 망명했다.

  • 7월 19일

    • 박정희 대통령은 헌정질서 부정 용납 못한다고 야당을 비판했다.

    • YH무역이 정상화 약속을 번복하고 폐업을 선언했다.

  • 7월 20일: 한국 대표팀이 제30회 세계궁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종합우승을 달성하였다.

  • 7월 25일: 가톨릭 안동교구는 오원춘이 중정 조사 후 행방불명되었다고 밝혔다.

  • 7월 26일: 전주교구 문정현 신부가 <시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 발표 후 구속되었다.

  • 7월 27일: 고려대 등반대가 매킨리봉을 등정하였다.

  • 7월 30일: 오원춘 농민이 두 번째 양심선언을 발표하였다.

  • 7월 31일: 경북도경은 오원춘 농민 등 3명을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2.1.8. 8월[편집]

  • 8월 6일

    • 제26차 교사/교육자 세계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 관련자들이 공판정에서 중정의 고문사실을 폭로했다.

  • 8월 7일: YH무역 여종업원들이 기숙사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 8월 9일

    • YH무역 여종업원 170여 명이 폐업에 반발하며 신민당사 강당에서 농성을 벌였다.

    • 이재오 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이 반정부 연설로 구속되었다.

  • 8월 10일

    • 신민당은 YH무역 농성으로 국회에 보사위 소집을 요구하였다.

    • YH무역 노동자들이 긴급결사총회에서 은행관리기업 인수 촉구 등을 결의 후 농성을 지속했다.

  • 8월 11일

    • 경찰은 YH무역 여종업원들이 농성 중이던 신민당사에 기동대를 투입해 172명을 강제 해산시켰다. 농성 진압 과정에서 김경숙 노동자가 숨지고 의원/기자 등 다수가 부상당했다.(YH 사건)

    • 경북도경은 오원춘 농민 중정 납치설이 허위조작이었다고 밝혔다.

  • 8월 12일: 신민당 비대위는 YH사건과 관련해 무기한 농성을 결의하였다.

  • 8월 13일

    • 중정은 북한 지령으로 이란에서 귀국한 무역회사 간부를 검거했다.

    • 오원춘 농민은 대구지검 기자회견에서 중정 납치설이 허위조작이었다고 밝혔다.

  • 8월 21일: 제1회 세계공기총선수권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8월 25일

    • 제11호 태풍 '주디'가 한반도 남부지역에 상륙했다.

    • 도서출판 돌베개가 창립되었다.

  • 8월 27일: 영국 왕실 원로 루이 마운트배튼 백작 일가 등 7명이 아일랜드 북서부에서 요트여행 중 IRA의 폭탄테러로 숨졌다.

2.1.9. 9월[편집]

  • 9월 1일: 안중근 의사 유고록 <동양평화론>이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발견되었다.

  • 9월 4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현 정권의 경제적 실패 및 부정부패 등으로 민심이 당을 떠났다고 주장했다.

    • 김성진 문공장관은 선교 빙자한 근로자 선동이 불법이라며 기독교 지도자에게 밝혔다.

    • 계명대 등 경북지역 3개 대생들이 <이 어둔 역사의 조타수가 되지 못한다면> 낭독 후 연합시위를 벌였다.

  • 9월 7일: 검찰은 김덕룡 신민당 총재비서실장을 YH백서 관련 간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했다.

  • 9월 8일

    • 서울민사지법 합의 16부는 김영삼 등 신민당 총재단에 대해 직무정지 가처분 및 정운갑 총재대행 등록을 결정했다.

    • 신민당은 김영삼 총재 주재 확대간부회의에서 법원 결정 전면부인 및 민주투쟁 방침을 결정하였다.

  • 9월 9일

    • 신민단 총재단 직무정지 가처분신청 제출자 조일환은 김영삼 당선무효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 장용호 YH무역 회장이 미국 뉴욕에서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 9월 18일: 제34차 유엔총회는 세인트루시아의 유엔 가입을 승인하였다.

  • 9월 16일: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미국 <뉴욕 타임스>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한국에서 이란 팔레비 정권 붕괴 때와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고 밝혔다.

  • 9월 17일: 서울 청량리 대왕코너 터에 '맘모스 쇼핑센터'가 문을 열었다.

  • 9월 20일: 프랑스군중앙아프리카 제국 황제 보카사를 체포했다.

  • 9월 22일

    • 여당측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뉴욕타임스> 발언을 문제삼아 김 총재를 징계키로 결정했다.

    • 미국 인공위성 벨라가 남인도양 해상에서 핵실험 또는 운석 충돌로 추정되는 섬광을 관측했다.(벨라 사건)

  • 9월 25일

    • 신민당 전국당원대회는 김영삼 총재 지지를 선언하였다.

    • 여당권은 정운갑 신민당 총재대행을 여야 접촉창구로 삼는다고 밝혔다.

    • 정부와 여당은 제3자 개입 규제하는 노동대책을 검토했다.

    • 선관위는 정운갑 신민당 총재대행 등록신청을 심의/등재키로 결정했다.

  • 9월 26일: 서울대는 종전의 희망휴학제에서 총장 직권으로 문제학생을 휴교시키는 '지도휴학제'를 실시했다.

  • 9월 27일

    • 서울 인사동 금당골동품상 주인 부부 등 시신 3구가 실종 100일만에 발견되었다.

    • 서울시경은 금당골동품상 살인사건 범인 박철웅 형제를 검거했다.

  • 9월 29일: 정운갑 신민당 총재대행이 수습기구 명단을 발표했다.

  • 9월 30일

    • 신민당은 여당이 김영삼 총재 강경 징계방침을 수립하자 다각적 대응책을 수립했다.

    • 이대생 3천여 명이 <이화 민주선언> 발표 후 반유신 집회를 벌였다.

2.1.10. 10월[편집]

  • 10월 1일

    • 박정희 대통령은 비생산적 공론으로 민심을 선동한다고 개탄했다.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여당측이 제명이 아닌 구속을 한다 해도 정정당당히 대도를 걷겠다고 다짐하였다.

    • 니카라과 사회주의 반군이 전 국토를 장악하고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했다.

  • 10월 3일

    • 박정희 대통령은 개천절 경축사에서 국론분열 및 사회혼란 조장은 국민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 여당측은 김영삼 총재 징계사유서를 발표했다.

    • 정운갑 신민당 총재대행은 박병효 의원을 대행체제 대변인으로 지명했다.

    • 정부는 북한측이 최근 DMZ 내에 3,300V짜리 고압전류 철조망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이 '민족주의연합(FUNCINPEC)'을 결성하였다.

  • 10월 4일

    • 국회는 여당 의원 159명만으로 김영삼 신민당 총재 징계안을 10여분 만에 기습처리했다.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제명결정 후 기자회견에서 성명을 발표했다.

    • 호딩 카터 미 국무부 대변인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이 민주정부 원칙에 위배된다고 성명을 냈다.

  • 10월 5일

    • 에드워드 케네디 미 상원의원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에 대해 민주원칙에 위배되는 처사라고 논평하였다.

    • 리처드 홀브룩 미 국무부 아태차관보가 김용식 주미대사와 약 25분간 요담했다.

    • 호딩 카터 미 국무부 대변인이 2차 성명을 냈다.

  • 10월 6일

    • 백두진 국회의장은 김영삼 신민당총재 제명 관련 성명을 냈다.

    • 신민당은 김영삼 총재 주재 확대간부회의에서 등원거부 결정을 재확인하였다.

    • 여당측은 간부회의에서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관련 미국반응에 대해 협의했다.

    • 외무부 고위당국자는 미 국무부의 김영삼 총재 제명관련 유감 표명이 이해 부족이라고 밝혔다.

  • 10월 7일: 김형욱 전 중정부장이 프랑스 파리에서 돌연 실종되었다.

  • 10월 8일

    • 신민당은 국회의사당 의원총회에서 김영삼 총재 제명에 대한 일괄사퇴문제를 논의했다.

    • 정상천 서울시장은 기자회견에서 1988년 제24회 하계올림픽을 서울에서 유치키로 했다고 밝혔다.

    • 전남 신안 23개 섬에 해저케이블 전화사업이 준공되었다.

  • 10월 9일

    • 정부는 경기 시흥군 과천면 문원리 및 관문리 일대 69만 6천 평에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 내무부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관련자 20명을 검거하고 54명을 수배중이라고 밝혔다.(남민전 사건)

    • 맨스필드 주일미대사는 미국 아-태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 10월 10일

    • 신민당은 '사퇴협의 17인 위원회'를 구성했다.

    • 호딩 카터 미 국무부 대변인은 한국 등 동북아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의 방어의지가 확고하다고 밝혔다.

  • 10월 11일

    • 박정희 대통령은 주한 외교사절 전원을 경주 보문관광단지 만찬에 초청했다.

    • '새생활국민운동협회'가 설립되었다.

  • 10월 13일

    • 신민-통일당 의원 79명은 김영삼 변칙제명에 항의하며 의원직사퇴서를 국회에 냈다.

    • 노재현 국방장관은 최근 북한 군사력 규모가 56만에서 72만 명으로 증강되었다고 밝혔다.

    • 대간첩대책본부는 동부전선에서 무장간첩 1명을 사살하고 잔당 2명을 추적중이라고 밝혔다.

  • 10월 14일: 미국 각 신문들이 신민당 의원직 사퇴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 10월 15일

    • 부산대 구내에 <민주선언문>이 살포되었다.

    • 청암 송건호 등 학자 12명이 쓴 <해방 전후사의 인식> 1권이 출간되었다.

  • 10월 16일

    • 구자춘 내무장관은 남민전 사건 관련자 46명 검거사실을 밝혔다.

    • 부산대생 5천여 명이 유신철폐·독재타도·학원탄압 중지 등을 요구하며 교내 시위를 벌였다. 이는 부마민주항쟁의 시발점이었다.

    • 서울 성수대교가 개통되었다.

  • 10월 17일: 부산시내 학생/시민들이 유신철폐 등을 요구하며 파출소 등 공공건물을 파괴했다.

  • 10월 18일

    • 박정희 대통령은 0시를 기해 부산 일대에 비상계엄령을 내렸다.

    • 신민당은 부산사태 진상조사단 파견 결정 후 정부에 부산사태에 대해 반성 및 책임지라고 추궁했다.

    • 최석원 부산시장은 학생 및 시민 소요사태로 학생 2명, 민간인 4명, 경찰 73명이 각각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 부산시민 2천여 명이 남포동 일대에서 가두시위를 전개하였다

    • 경남대는 시위확산 방지를 위해 무기 휴교령을 내렸다.

  • 10월 19일

    • 서울대생 3백여 명은 강제휴학명령권을 부여한 학칙 개정에 반발하며 시위를 벌였다.

    • 내무부는 마산, 창원, 진해에 통급시간을 2시간 더 연장토록 했다.

    • 마산 시민과 학생 수천 명은 통금 연장에 아랑곳하지 않고 "독재타도"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때 수출자유지역 노동자와 고교생들도 이에 가담하였다.

    • 제12차 한미안보협의회의는 F5E 및 F5F 전투기를 한국에서 공동생산키로 합의하였다.

    • 브라운 미 국방장관이 카터 대통령의 친서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냈다.

    • 미국 <워싱턴포스트> 지는 미 정부측이 한국 정치와 관련해 대한차관 자동승인을 보류했다고 보도했다.

    • 제20호 태풍 '팁'이 일본 혼슈 지방을 강타했다.

  • 10월 20일

    • 정부는 경남 마산과 창원에 위수령을 선포했다.

    • 정부와 여당은 안보협의회를 열어 부산사태 및 한미안보협의회 결과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 10월 22일

    • 신민당 확대간부회의는 시국분석 및 당 정책, 행동방향 등을 논의하였다.

    • 경북대는 부마사태로 인한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임시 휴교령을 내렸다.

  • 10월 23일

    • 공화-유정 합동조정회의는 신민당 의원직 총사퇴서 자진철회를 요구했다.

    • 영남대는 위와 같은 이유로 휴교령을 내렸다.

    • 부산-마산지역 통금시간이 원상복구되었다.

  • 10월 24일

    • 문교부는 1980년부터 연 1회 이상 운동회를 의무 개최토록 하였다.

    • 한국외대생 김남일 등이 <진리와 자유를 위한 선언서>를 배포하였다.

  • 10월 25일

    • 국회는 공화-유정 의원들만 참석한 채 본회의를 열어 31일까지 휴회키로 결의 후 2분만에 폐회시켰다.

    • 신민당 정무회의는 평화적 정권교체 등 결의문 8개항을 채택하였다.

    • 대구 계명대생 2천여 명이 유신철폐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롯데리아가 서울 소공동 지하에 1호점을 냈다.

  • 10월 26일

    • 충남 삽교호 방조제가 완공되었다.

    • 호텔롯데가 소공동 본사에 '롯데일번가'를 개점하였다.

    • 글라이스틴 주한미대사가 김영삼 신민당 총재와 현 국내시국 등에 대해 요담했다.

    • 김재규 중정부장이 서울 궁정동 안가 술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경호실장 차지철을 암살했다.(10.26 사건)

  • 10월 27일

    • 최규하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했다.

    •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가 비상시국에 대한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옥외집회 금지, 보도검열 등을 담은 포고령 1호를 내렸다.(제주도 제외)

    • 김성진 문공장관이 오전 7시 45분 박정희 대통령 서거에 관해 공식 발표했다.

    • 미 국방부는 박정희 대통령 피살로 주한미군에 3급 경계령을 하달했다.

    •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영국으로부터 정식 독립했다.

  • 10월 28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의원 30여 명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 빈소에 분향했다.

    • 국무회의는 박정희 대통령 국장을 10.26 ~ 11.3일까지 국장으로 치루기로 결정했다.

    • 계엄사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 미 국방부는 신예 조기경보통제기 및 키티호크 항모 등 기동타격대를 한국으로 급파했다.

  • 10월 29일

    •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시국대책회의를 주재했다.

    • 정부는 경제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특별경제대책회의'를 구성했다.

    • 내무부는 박정희 대통령 추모와 관련해 분향소 1,695개 설치 및 28일 기준 국민분향 수가 65만 명이었다고 밝혔다.

    • 미국 정부는 박정희 대통령 피살소식을 신속 보고받은 후 사태 발전을 조심스레 관망했다.

  • 10월 30일

    •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틀째 시국대책회의를 주재했다.

    •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중정부장 서리에 이희성 육참차장을 임명했다.

    • 계엄사 합수부는 김재규 사건 및 김계원 비서실장 관련 여부를 집중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 10월 31일

    •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3일째 시국대책회의를 주재했다.

    • 박대통령장의위는 11월 3일부로 국장을 거행한다고 공고했다.

    • 밴스 미 국무장관이 현 한국 정세가 안정유지되는 걸 환영한다고 밝혔다.

2.1.11. 11월[편집]

  • 11월 1일

    • 국회 본회의가 의원들 불참으로 유회되었다.

    • 여당권은 국장기간 동안 정치활동 않겠다고 밝혔다.

    • 문교부는 1980학년도부터 체고 특기자 종목에서 구기종목을 제외키로 결정했다.

  • 11월 2일

    • 미 항모 키티호크 등 군함 총 11척이 제주남방 10km 해상에 도착했다.

    • 미국에서 급파된 조기경보통제기 E3A기 2대가 한반도 24시간 감시탐지업무를 개시했다.

  • 11월 3일

    • 박정희 대통령 영결식이 서울 중앙청에서 국장으로 거행되었다.

    • 밴스 미 국무장관이 카터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박정희 대통령 국장 참석차 방한했다.

    • 밴스 미 국무장관은 한국 군부가 민간정부를 지지하며 합헌적 방법으로 전진 실현한다고 이한성명을 냈다.

    • 대구교도소 긴급조치 위반 재소자들이 박정희 대통령 국장 때 묵념거부로 교도관들에게 집단폭행당했다.

  • 11월 4일

    • 정부는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최규하 주재로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 중앙 각 부처 차관들과 지방장관들이 민생안정과 보호에 대한 각종 의견들을 교환하였다.

    • 대한체육회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일시중단한 각종 경기들을 재개토록 지시하였다.

    • 이란 미국대사관이 이란 시아파 청년들에게 점거되어 미국인 90명이 인질로 잡혔다.(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 11월 5일

    • 국회 본회의는 야당 의원들이 낸 사퇴서를 원의로 반려했다.

    • 문공부는 최근 북한측에 특별한 군사적 동향이 없다고 밝혔다.

    • 여천석유화학공단 2단지가 준공되었다.

  • 11월 6일

    • 전두환 계엄합수부장이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의 전모를 발표했다.

    • 문교부는 산업체부설학교 설립계획을 승인하였다.

    • 1980학년도 대학입학예비고사가 실시되었다.

  • 11월 7일: 계엄합수부는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관련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 11월 8일

    •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무분별한 정치선동, 불법시위, 난동 등을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 계엄사는 서울 등 일부지역 통금시간을 밤 11시로 단축시키고 나머지는 종전대로 환원한다고 밝혔다.

  • 11월 9일

    • 신민당은 국회 등원을 결정하였다.

    • 계엄사는 12일부터 대학원/교대/전문대 휴교령을 해제키로 결정하였다.

    • 동자부는 가정용 전압을 100V, 220V 겸용으로 전면 수정했다.

  • 11월 10일

    •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현행 유신헌법대로 늦어도 1980년 1월 25일까지 대통령을 선출하겠다고 밝혔다.

    • 김성진 문공장관은 긴급조치 9호를 엄존한다고 밝혔다.

  • 11월 11일

    • 전경련이 서울 삼일로에서 여의도 전경련회관으로 이전하였다.

    • 제4차 퇴계학 국제학술회의가 자유중국 타이페이 타이완사범대에서 개최되었다.

  • 11월 12일

    • 공화당은 신임 총재직에 김종필 총재상임고문을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 계엄사는 사회혼란 조성 선동행위 및 불법 집단활동을 엄단키로 한다고 밝혔다.

  • 11월 13일

    •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이 김종필 공화당총재와 시국 관련 요담했다.

    • 계엄합수부는 김재규 등 박정희 시해사건 관련자 8명을 육군보통군법에 송치했다.

    • 경찰은 남민전 사건 3차 수사진행상황을 발표했다.

    • 국민회의는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의 특별담화를 비판하였다.

    • 해교협, 자실 등 5개 단체가 <나라의 민주화를 위하여>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11월 14일

    • 김종필 공화당총재는 박준규 의장서리 등 3명의 사표를 수리했다.

    • 여야 3당이 12월 이전까지 '헌법개정심의 특별위원회'를 설치키로 합의하였다.

    • 문교부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전국대학총학장회의'를 소집했다.

    • 이란 정부는 미국 내 자산을 동결했다.

  • 11월 15일

    •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은 긴급조치 9호 관련 구속자 석방 및 제적학생 복교를 조속히 검토토록 지시하였다.

    • 김종필 공화당총재는 취임사에서 대통령보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언명했다.

    • 유정회 의원총회는 태완선 대신 최영희 원내총무를 새 의장직에 선출하였다.

    • EYC가 유신체제 조속 청산 및 민주정부 수립 등을 담은<민주화 선언>을 발표하였다.

    • '민주주의와 학원자유화를 위한 전국대학생협의회 부활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현기영 소설 <순이 삼촌>이 출간되었다.

    • 호텔롯데 쇼핑센터사업부가 '롯데쇼핑(주)'로 출범되었다.

  • 11월 16일: 이민우 신민당 부총재는 평화적 정권교체 전통 확립코자 '보복 없는 정치'를 강조하였다.

  • 11월 17일

    • JP-YS 양측은 회담을 열어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자고 의견을 발표하였다.

    • 대구지검은 최병욱 가농 회장에 법정소란죄 등을 적용해 벌금 10만원을 선고했다.

  • 11월 19일: 이스라엘 정부는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했다.

  • 11월 20일

    • 정부는 1983년부터 핵연료 점진적 국산화 계획으로 개발시설비 118억 원을 투입키로 결정했다.

    • 이용희 국토통일장관은 남북관계가 주변정세 국면 및 내부 동향으로 새로운 국면이라고 밝혔다.

    • 홍성철 보사장관은 YH사태 발생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 11월 21일

    • 노재현 국방장관은 통금시간을 빠른 시간내에 환원한다고 답변했다.

    • 구자춘 내무장관이 국회 답변 통해 석달 전 신민당사 경찰난입과 현역 의원 및 기자 구타에 대해 사과하였다.

  • 11월 22일

    •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과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3시간 5분 간 정치발전과 시국현안 문제에 대해 요담했다.

    • 법무부는 국회제출자료에서 당년도 9월 말 기준 국내거주 외국인이 68개국 47,146명으로 집계되었다고 밝혔다.

    • 국제인력소개업자 석희찬이 이란 미대사관 억류 18일만에 석방되었다.

  • 11월 23일: 정부는 현행 버스료 80원 및 택시 기본료 500원 등 교통요금 조정안을 확정하였다.

  • 11월 24일

    •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은 김수환 추기경 등 천주교 지도자들과 면담에서 구속인사 조기 석방건의를 수용하였다.

    • 동자부는 등유값을 5.4%로 인상하고 경유값을 1.7%로 내린다고 밝혔다.

    •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국가안보 최우선 및 법질서 확립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 윤보선 등 재야인사들이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대통령 선거 저지와 민주화 촉구대회’를 서울YWCA 강당에서 열었다.(YWCA 위장결혼식 사건)

  • 11월 25일: 조선왕조 궁중무용 7편이 수록된 고전 기록영화가 일본 간토지방 모 가정에서 발견되었다.

  • 11월 26일

    • 국회 본회의는 '헌법개정심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계엄사는 함석헌 등 96명을 YWCA 결혼식 위장 시국집회 및 관련 포고령 위반으로 검거/조사중이라고 밝혔다.

  • 11월 27일

    • 육군 보통군법 검찰부는 김재규, 김계원 등 8명을 박정희 시해사건과 관련해 기소시켰다.

    • 병역문제대책위는 거국민주내각 구성 및 조속 개헌/총선실시 등을 담은 선언문 <진정한 민주주의 정착을 위하여>를 발표하였다.

  • 11월 28일

    • 계엄사는 서울대생 4명을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하고 6명을 수배했다고 밝혔다.

    • 문교부는 제적학생 복교문제 및 국교 육성회비 폐지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 전남지역 6개 재야단체들이 광주YWCA 연합기도회에서 통대선거 반대 성명서 <민주주의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자!>를 발표하였다.

    • 에어 뉴질랜드 901편 DC-10기가 악천후로 남극 에레보스 산에 추락해 탑승자 257명 전원이 숨졌다.

  • 11월 29일: 계엄보통군법은 부마사태 관련 대학생 6명 등 20명에 실형을 선고했다.

  • 11월 30일

    •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국민적 합의 존중하며 공청회를 열기로 결정하였다.

    • 전남대생 2천여 명이 군 중립화, 조기 개헌, 어용교수 퇴진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2.1.12. 12월[편집]

2.2. 가상[편집]

3. 탄생[편집]

3.1. 실존인물[편집]

3.2. 가상인물[편집]

4. 사망[편집]

4.1. 실존 인물[편집]

4.2. 가상 인물[편집]

5. 데뷔[편집]

5.1. 가수[편집]

5.2. 예능인[편집]

5.3. 만화계[편집]

5.4. 스포츠[편집]

6. 히트작[편집]

6.1. 영화[편집]

6.2. 가요[편집]

  • 김만준 - 모모

  • 나미 - 미운 정 고운 정

  • 배인숙 -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 심수봉 - 그때 그 사람

  • 이은하 - 봄비

  • 조경수 - YMCA

  • 혜은이 - 제3한강교, 새벽비

6.3. 베스트셀러[편집]

  • 토지 - 박경리 저.

  • 사람의 아들 - 이문열 저.

7. 달력[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