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렛팩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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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PC 제조/판매 기업

Dell

HP

Len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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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렛팩커드

레노버


이 문서는 1939년부터 2015년까지의 HP에 대한 문서입니다. 이후 HP Inc. (HPI)Hewlett Packard Enterprise (HPE)으로 분사되었습니다.

Hewlett Pack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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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미국 (다국적 기업)

설립년도

1939년

설립자

윌리엄 레딩텅 휴렛, 데이비드 팩커드

본사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사업분야

컴퓨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프틴터, IT 서비스, IT 컨설팅

2015년 이후

HPI

PC/프린터

HPE

서버/스토리지



1. 개요2. 상세3. 역사
3.1. 창업 이후 1990년대까지3.2. 2000년대3.3. 2010년대
3.3.1. 분사에 대한 논의
3.4. 역대 최대 규모의 분사
4. 한국에서5. 얽힌 일화들
5.1. 애플 창업주들과의 관계5.2. 기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문구점이나 프린터 가게에 가면 볼 수 있는 상표

HP / Hewlett-Packard

1939년 윌리엄 휴렛(William Redington Hewlett)데이비드 팩커드(David Packard)가 공동으로 설립한 프린터, 컴퓨터, 서버 등의 전자제품 제조로 유명한 미국IT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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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휼릿과 데이비드 패커드 모두 1934년에 스탠퍼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1939년 미국 대공황기에 캘리포니아의 팰러앨토의 한 차고에서 사업이 시작되었다.

회사명은 휴렛팩커드지만, 그냥 HP(에이치피)로 자주 불린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는다면 Hewlett을 휼릿으로 써야 하고, Packard를 패커드라고 써야 한다.
하지만 한국HP 측이 휴렛팩커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매체들도 이 표기를 따른다.

HP는 지난 2015년 서버/스토리지 중심의 Hewlett Packard Enterprise (HPE)와 PC·프린터사업 중심의 HP Inc. (HPI)로 분사했다. 역사상 매출 기준 최대 규모의 기업 분할이었다. 이후 자세한 내용은 각 문서로.

2. 상세[편집]

과 함께 컴퓨터와 관련된 제품이다 싶은건 뭐든 제조하는 업체이다. 또한 PDA를 아직까지 꾸준히 직접 생산하는 얼마 안되는 업체 중 하나다.

계산기도 생산하는데 회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쓴다. 공학용 계산기 중에서, 최근 'HP Prime' 이란 제품이 나왔는데, 이 제품이 'Ti nSpire' 보다 좋다.(...) [1] 하지만 여전히 끝판왕은 Texas Instrument. 그래도 카시오보단 명성이 높은 편이다.

프린터 시장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존재이다. 잉크젯 프린터가 지금이야 캐논엡손이 좀 활개를 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가정용 시장 이야기이다. [2] 삼성 초기의 가정용 프린터 제품들은 HP프린터를 그대로 수입해와 삼성 로고만 붙인 것이라고...[3]

많이 찍고 빨리 찍어야 하는 업무용 기기에서는 정말 독보적이다. 게다가 레이저 프린터로 넘어가면 전지구급. 업무용 플로터는 HP 말고는 전부 듣보잡이다. 다만 현재에 와서는 삼성이 국내 프린터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고,[4] 레이저 프린터 쪽에서도 60% 가 넘는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세계시장에서는 여전히 HP가 끝판왕이지만. HP가 2017년 삼성전자 프린터사업부를 인수하게 됨에 따라 그냥 끝판왕이 되었다.

데스크탑 컴퓨터의 경우 2018년 현재 전세계 기준, PC 시장 1위이다. 오히려 삼성, LG의 데스크탑은 전 세계적으로 보면 듣보잡에 가깝다.

애프터 서비스가 불친절하기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다나와의 HP 상품 댓글에는 AS를 성토하는 댓글을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빅뱅 이론셸든 리 쿠퍼는 "난 HP에게 보상을 받아내려고 고객 센터에서 2시간 반을 기다린 적이 있다." 며 자랑할 정도. 이는 HP가 미국 회사 특유의 기업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많은 미국의 회사들은 드넓은 국토 탓에 개인 사용자용 제품은 우리나라처럼 밀착 A/S를 하는 개념을 갖고 있는 회사가 별로 없다. 따라서 서비스 수준을 낮추고 하드웨어를 저렴하게 파는 방식을 택하고, 대신 추가적인 밀착 A/S를 원하는 고객은 워런티를 추가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HP 제품 목록을 보고 싶다면 이곳에서 찾아보자. f3키 사용을 권한다.

3. 역사[편집]

3.1. 창업 이후 1990년대까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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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 대학교 동기인 윌리엄 휴렛(William Hewlett)과 데이비드 팩커드(David Packard)가 캘리포니아 주 팔로알토의 한 차고에서 '휴렛팩커드(HP)'를 설립하고 음향 발진기(Audio Oscillator)를 내놓으면서 실리콘밸리 1세대 벤처 기업인 HP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던 두 사람은 1938년 지도교수의 권유로 벤처를 창업하게 되었는데, 당시 자본금은 겨우 538달러였다. 사실 이것조차 지도교수에게 빌린 돈이었다 1989년 캘리포니아 주는 HP가 탄생한 에디슨가 367번지의 허름한 차고를 '실리콘밸리의 발상지'로 명명하고 사적으로 등록했다.

회사 이름을 정할 때의 에피소드가 꽤 재미있다. 우선 이 둘은 그들의 이름을 회사 이름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는데, 문제는 누구 이름이 앞에 올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결국 동전 던지기로 결정하기로 하였는데, 이 때 팩커드가 이겼지만 의외로 패커드는 '팩커드-휴렛'보다는 '휴렛-팩커드'가 더 마음에 든다며 휴렛-팩커드로 결정하였다.[5][6]

HP 가 생산한 첫번째 제품은 '200A'라는 이름의 오디오 발진기[7]였으며, 당시 이 기기의 가격은 500달러 내외였다. 당시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HP 에서 이 기기에 관심을 보였고, 1940년 제작한 영화 환타지아의 사운드 모니터링에 HP 장비를 사용했다.

휴렛이 1940년대에 미 육군에 자원해 들어가 있는 동안 hp 는 팩커드가 이끌었다. 이 기간동안 hp 는 무전기, 소나, 레이더 등 선박 및 항공용 군수 장비를 주로 생산했다.

휴렛이 다시 hp로 돌아온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hp 는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뉴욕거래소 상장을 했고, 60년대 일본의 요코가와 전기 사 그리고 80년대 삼성전자와 합작 방식으로 아시아 시장에도 진출하게 된다.

HP는 당시 기업으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기업 문화를 갖추고 있었다. 1942년 모든 직원에게 건강 보험 비용을 지원했고, 사무실에도 벽이 없는 '오픈 플로어(Open Floor)' 디자인을 적용해 직원들이 쉽게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게 했다. 이 때의 HP 문화를 HP Way 라 한다.

이러한 HP의 기업 문화와 팩커드의 경영철학은 HP 출신 직원들을 통해 실리콘밸리에 그대로 이식되었다. 지금도 실리콘밸리의 모든 IT 기업은 협업과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1993년 데이비드 팩커드가 HP 의장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면서, 휴렛과 팩커드는 모두 경영에서 은퇴했다. 70대 후반의 나이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팩커드와 휴렛은 1996년과 2001년, 83세와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3.2. 2000년대[편집]

2000년대의 삽질은 CEO였던 칼리 피오리나로부터 시작되었다.

2002년, 당시 IBM, 컴팩, HP 가 PC 삼 강인 상태에서 HP가 컴팩을 인수/합병하였다. 당시에는 그야말로 대형 M&A. 당시 창업주의 후손들은 모두 이 합병을 반대했다. 당시 PC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인답시고 컴팩(Compaq)을 무리하게 많은 돈을 주고 산 것인데...

소송에서 이들이 패하면서 합병이 이루어졌고, 결국 실패한 M&A로 평가받는다. 자세한 내용은 칼리 피오리나 문서에서 확인 바람.아직도 HP에는 그녀의 이름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다고...

이후 애플이 아이패드, 아이폰등의 모바일 기기로 대박을 내자 이를 따라하려다가 큰 삽질을 했다. 대표적으로 HP 터치패드의 조기철수. 사실 HP는 1990년대 후반부터 죽 PDA를 내놓는 회사였는데, 뜬금없이 후발주자인 애플이 이를 석권하자 억울할 수도 있었다.

아무튼, 이 모든 것은 칼리 피오리나로 시작하여 그녀로 끝나는 긴 여정이었다. HP way 로 일컬어지는 창업주들의 정신이 엄청나게 훼손된 것도 이 때. 이 암흑기의 영향으로 HP는 이후 꽤 오랜시간 방황했다.

3.3. 2010년대[편집]

2010년 4월, 한때 PDA도 잘팔아먹던 회사였으나[8], 휴대폰으로 진화하는 것을 생각못해서 망한 Palm OS을 인수해서 모바일 컴퓨터 사업에 진출하였다. 팜의 운영체제 'webOS'를 이용해서 야심차게 애플을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webOS 2.2를 탑재한 HP Pre 스마트폰 시리즈와 webOS 3.0을 탑재한[9] HP 터치패드를 내놓았으나... 애플은 커녕 삼성전자모토로라에게도 밀리는 바람에 스타일 구기고, 2011년 8월, 1년 조금 넘겨 GG. 그래서 스마트폰태블릿 PC사업을 관둔다고 발표했다. 태블릿PC 제품인 'HP 터치패드가 발매된지 49일만의 일이다.[10] 여담으로 휴렛패커드의 PDA중에는 2000년대 직전까지 출시되던 조나다 시리즈와 컴팩으로부터 인수한 브랜드인 'iPAQ'씨리즈가 유명한데, 그냥 그 당시에는 IT기기에 'i'를 붙이는게 유행이었다고.

스마트형 제품 사업 중단을 기점으로 스마트형 제품의 판매가격 인하를 단행했으며 파격적인 가격인하로 인하여 잘 팔리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HP 터치패드(상표명) 16GB 제품은 애플의 아이패드와 같은 499 달러였으나, 초기 배포 27만대중 2만여대만 팔리는등, 워낙 안팔리자 8월에 접어들어 100달러를 내려 399 달러로 팔기 시작했다. 그런데 8월 11일 사업중단 발표후 아예 떨이로 299달러를 내린 100달러에 판다니, 아무리 떨이라지만 다른 제품의 가격을 생각하면 거의 공짜로 주는 수준. 처음에 499달러 주고 산 사람들은 가격차이를 HP에서 직접 받을수 있었다.[11]

뿐만 아니라 개인용 컴퓨터(랩탑, 데스크탑 모두 포함) 사업부를 분사해서 매각한다고 하며, 한마디로 프린터를 제외한 모든 컴퓨터 사업은 그만두거나 매각한다고 발표.

3.3.1. 분사에 대한 논의[편집]

IBM이 제조부문 비중을 줄이고, 솔루션 및 컨설팅 비중을 높인 것을 따라하는 것이 결단의 주 내용이나,[12] 이 소식이 들리자마자 뉴욕 주식시장에 찬물을 제대로 부어버렸다.(...) 시장의 반응은 변신하는 건 좋은데 왜 지금 같은 위험한 시기에 하냐라는 것.

이 발표를 한후 얼마 안가(한달) 2011년 9월 CEO 레오 아포테커는 이사회에서 전격 해임되었다. 태블릿 컴퓨터 사업의 실패의 책임을 물은 것. 그러나 컴퓨터 사업을 매각한다는 전임 회장의 방향은 후임인 멕 휘트먼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는 즉답을 피하면서도 연말까지는 이에 대한 결말을 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1년 10월 26일, 경영진은 장고 끝에 PC 사업부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시장은 이를 환영했고 주가는 4%가 올랐었다.[13]

2011년 오토노미라는 회사를 인수했는데 오토노미의 분식회계로 88억 달러를 감가상각했다.(!) 주식이 12% 빠져서 10년만의 최저치를 기록.

2012년 9월, CEO인 멕 휘트먼은 스마트폰 사업에 다시 뛰어들 것을 고려중이라고 발표했다. 결국 스마트폰은 뛰어들지 않았지만, 노트북-태블릿 컨버터블PC는 꾸준히 내놓고 있다.

2014년 10월 서버 사업부와 PC+프린터 사업부를 분리하는 것을 고려중이라는 뉴스가 떴다. 2011년에 PC사업부를 왜 매각하지 않았냐는 의문이 있지만, 그때 팔았으면 제 값을 못받았을거라는 의견이 있다.

3.4. 역대 최대 규모의 분사[편집]

2014년 11월자로 분사를 확정지었다. 기존의 프린터와 PC사업부는 HP Inc.로, 주주 가치를 제고하는 한편, 3D 프린팅 등 신시장 사업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며, 기업용 컴퓨팅 관련 사업은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로 분리되어 급변하는 클라우드 시장에 대한 독자적인 전략과 사업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결국 HP는 2015년 11월 1일 프린터·PC 사업부가 포함되는 지주회사 격인 HP 주식회사와 기업 하드웨어·서비스를 담당하는 휴렛패커드 엔터프라이즈로 분사하였다. 2015년 당시 포츈500 기업 중 19위 기업의 유래없는 대형 분사 프로젝트였다.

2011년 취임한 당시 최고경영자(CEO) 멕 휘트먼이 HPE CEO를 맡고, 현재 PC·프린터 사업을 총괄하는 디온 와이즐러가 HPI를 이끌게 된다.

HP Inc.는 5만명의 직원규모로 이전부터 그래왔듯, 가정용, 업무용 컴퓨터와 프린터 사업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문서

HP엔터프라이즈는 25만명의 직원 규모로, 기업용 컴퓨팅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버,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에 참고.

4. 한국에서[편집]

한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 까지 삼성전자와 합작 형식[14]으로 '삼성휴렛패커드'를 설립하여 최초 진출했으나, 1995년 삼성전자가 HP의 주력사업인 프린터 사업에 진출하게 되는 바람에 파트너쉽을 종료하여 HP 직영의 한국지사인 '한국휴렛패커드'로 탈바꿈하였으며, 3년 뒤인 1998년에 삼성전자의 지분을 모두 인수함으로써 100% 지분을 HP가 소유하는 구조로 바뀌게 되었다.

이 때 HP는 현금이 말라붙었던 삼성전자에게 프리미엄까지 얹어 달러로 지분 인수 대금을 결제했다. HP는 SK그룹에도 1억 5,000만 달러를 융자해 줬다. 당시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한국HP는 2년간 1,200대 1로 환율을 고정해 영업했다.

5. 얽힌 일화들[편집]

5.1. 애플 창업주들과의 관계[편집]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어릴적에 주파수 측정기를 만들다가 부품이 없어서 HP (이미 초 거대기업이었다) 의 CEO인 빌 휴렛의 집에 전화하여 당돌하게 부품을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빌 휴렛은 이 당돌한 꼬마와 20분가까이 통화한 후, 부품을 주었을 뿐 아니라 여름방학동안 휴렛패커드 주파수 측정기 조립라인에서 일하게 해주었다고. 과연 대인배. 그리고 인터넷 수능 영어지문에 나왔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을 창립하기 전에 몇년간 잠시 다니던 회사이기도 하다. 스티브 워즈니악의 자서전에 따르면 HP에 다닐 무렵, 그는 이미 회사 창고에서 남는 부품과 공구를 집에 가져다가 재미삼아서 애플 컴퓨터를 설계하고 있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개인용 컴퓨터를 설계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던 워즈니악은 HP의 높으신 분들께 개인용 컴퓨터 프로젝트를 제안했지만 HP는 개인용 컴퓨터에 관심이 없었고 이에 실망한 워즈니악은 '다른 걱정없이 평생 연구에만 몰두하게 해주겠다'는 스티브 잡스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HP를 퇴사하고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애플에 몸을 담게 된다. 이후 애플 컴퓨터의 설계를 완성한 워즈니악은 HP가 개인용 컴퓨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HP에 지원했으나, 무슨 이유인지 채용에 불합격하였고 워즈니악을 빼고 구성된 HP의 PC개발팀은 엄청난 인력과 예산을 사용해서 엉성한 애플 모방품을 내놓았다고 한다.

결국 HP가 개인용 컴퓨터에 진출한 것은 코모도어 64[15]가 엄청나게 팔려 나가고, 애플 컴퓨터나 기타 개인용 컴퓨터가 미국 내에 서서히 보급되기 시작한 이후다.

이 인연이 영향이 있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2005년에 HP가 애플의 아이팟을 자사 마크를 뒤에 박아서 판매하기도 했다(...) 예상되는 결과였지만 소비자들이 HP마크가 각인된 아이팟을 좋아할리 만무했고, 결국 1년만에 판매를 접었다.
파일:external/kmug.co.kr/hp-ipod2.png

5.2. 기타[편집]

  • 최고 경영자 멕 휘트먼이 2010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출마했을 당시 대변인이 트위터에 올린 홍보 동영상이 140자 제한 때문에 마지막 한글자가 빠졌고, 링크는 하필이면 베이시스트 김현모(H.J.Freaks)가 여장한 채 베이스 기타로 푹신푹신 타임을 연주하는 동영상(후방주의) 라기보단 OME(...)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결국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낙선하고 2011년부터 HP의 CEO를 맡고 있다.2016년 클린턴 라인에 서서 트럼프를 맹비난하더니 대선에서 또 졌다. 2018년 초 HPE를 떠났다.

  • 한국표준시의 신호계측장치로 HP장비를 사용한다. 표준연구원의 한국표준시계 관련 보도자료에서 이를 확인할수있다.

  • 1995/96 시즌부터 1998/99 시즌까지 잉글랜드 프로축구팀 토트넘 핫스퍼 FC의 메인스폰서였다.

6. 관련 문서[편집]

[1] 물론 기능은 Ti nSpire이 더 많다[2] 가정용 잉크젯 프린터는 삼성전자LG전자OEM으로 납품하고 있다. 추가로 HP와 삼성 프린터 간에 호환되는 잉크카트리지가 있다. HP 74/75계열과 삼성 M95/C95계열이 대표적. 실제 장착하여 확인하였다. 그래서 HP 내 OEM사업 담당자는 한동안 실적이 잘나올때마다(=삼성, LG등이 HP OEM제품을 잘 팔았을때마다) 자랑도 못하고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고....[3] 실제로 1990년대 초반에 '삼성휴렛팩커드'라는 브랜드로 shp 로고가 붙은 채 판매된 바 있다. 근데 이건 삼성이 판게 아니라 삼성과 HP의 합작투자회사가 판매한것이기 때문에 삼성에서 팔았다고 보긴 어렵다[4] 위에서도 얘기했듯, 삼성 잉크젯 프린터는 실제로는 HP OEM 제품이다.[5] 링크[6] The HP Way 휴렛팩커드 이야기(저자:데이비드 팩커드) ISBN:9788946102248 에서는 동전을 던져서 빌이 이겼다고 나와있다. P65 참조 (우리는 회사 이름에 누구 이름을 먼저 쓸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동전을 던졌다. 말할 필요도 없이 빌이 이겼다. We flipped a coin to see whose name would come first in the company name. Needless to say, Bill won.)[7] 특정 음역의 주파수를 생성하는 테스트 장비[8] 1993년 애플이 터치스크린, 휴대용 컴퓨터인 뉴턴(상표명은 메시지패드)을 발표하여 먼저 '상용화'하였다. 다만 뉴턴은 애플의 예전 몇몇 제품들처럼 시대만 앞서가고 성능이나 가격면에서 상품으로서의 매력은 별로라 사업적인 재미를 못보고 1998년 포기했고, 본격적으로 PDA를 성공시킨 것은 1996년에 이분야에 진출한 팜이 먼저이며 HP는 시장에서 팜과 자웅을 겨루었다.[9] 버전 네이밍이 기막히게 안드로이드와 일치한다(핸드폰용 OS = 안드로이드 2.1 / 2.2 / 2.3 | 태블릿용 OS = 안드로이드 3.0).[10] 이로써 'webOS'를 탑재한 제품을 내놓는 회사는 없었으며, LG전자가 인수해서 스마트TV웨어러블 기기에 사용중이다.[11] 아마존 등의 쇼핑몰에서는 올라온지 얼마 안돼서 품절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그걸 본 HP는 OS 지원은 계속 하겠다고 발표했다.[12] IBM이 PC 사업부를 매각하고, 통계 분석을 통한 경영 컨설팅이라는 분야를 개척하여 블루오션에서 거의 혼자서 떼돈을 많이 벌어들이고 있기 때문에 HP는 이를 부러워한듯 하다.[13] PC 사업부를 매각한다고 발표했을때 주가가 20%나 빠졌었다.[14] 지분 규모는 HP 55%, 삼성전자 45%였다.[15] 단일 기종으로 1700만대나 팔린 유일무이한 기록을 가진 컴퓨터로 실질적으로 컴퓨터라는 물건을 가정에 보급한건 IBM이나 애플이 아닌 코모도어 인터네셔널의 코모도어 64였다.[16] 신도림 테크노마트 번호를 가르쳐 달라는데 직원 자신의 번호를 가르쳐달라는 걸로 착각해서 일어난 일이다.[17] 휴렛팩커드의 지원을 받고 설립된 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