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귤유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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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고사성어

품을 회

귤 귤

남길 유

친할 친


1. 뜻2. 유래

1.[편집]

을 품어훔쳐 어버이께 남겨드린다. 줄여서 '회귤(懷橘)'이나 고사의 주인공인 육적의 이름을 붙여 '육적회귤(陸績懷橘)'이라고도 부른다.

2. 유래[편집]

정사 삼국지의 오서 육적전과 원나라 때 곽거경이 저술한 이십사효(二十四孝)가 출전이다.

後漢陸績。字公紀。年六歲。至九江見袁術。術出橘待之。績懷橘二枚。及跪拜辭墮地。術曰。陸郎作賓客而懷橘乎。績跪答曰。吾母性之所愛。欲歸以遺母。術大奇之。有詩為頌。 
  詩曰:孝悌皆天性。人間六歲兒。袖中懷橘實。遺母報深慈。
육적은 삼국시대 오군 호현 화정 사람이다. 여섯살 때 아버지 육강을 따라 구강에 있는 원술을 뵈러 갔는데, 원술은 손님인 육씨 부자에게 귤을 대접했다. 이 때 육적은 품 안에 두 개를 숨겼는데, 떠날 때 원술에게 인사를 드리려다 귤이 품에서 흘러나와 땅으로 떨어졌다. 원술이 웃으며 말하기를 "육랑은 내 집에 손님으로 와 놓고 떠날 때에 어찌하여 주인의 귤을 감춰 가지고 가느냐?" 하였다.

육적이 대답하기를 "저희 어머님이 귤을 좋아하시는지라, 돌아가서 어머니께 맛보게 하려 그랬습니다." 하였다. 원술이 보건대 어린 나이에 모친을 생각하는 효성이 갸륵함에 놀라고 기이하게 여겼는지 귤을 더 주었다고 한다. 육적은 자란 후 박학다식하여 천문과 역법에 통달하여 혼천도를 저술하고 역경에 주역을 달았다.

시를 지어 가로되, "효와 제는 모두 천성이니 인간세상의 6살짜리 아이도 소매 속에 귤을 품어 어머니에게 남겨 깊으신 사랑에 보답하였네"


한음의 친구 박인로가 지은 시조[1]에도 등장할 만큼 효도에 대한 고사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편이다. 널리 알려진 판본에서는 귤이 아니라 유자라고 나오는 게 미묘하게 차이점.

쟁반 가운데에 놓인 일찍 익은 홍시가 곱게도 보이는구나.
유자가 아니라 해도 품어 가지고 갈 마음이 있지만
감을 품어가도 반가워해 주실 부모님이 안 계시니 그것이 서럽구나.


그리고 판본에 따라서 내용이 미묘하게 다른 것이 특징이다. 단적으로 고사본에서는 내용이 미묘하게 다르고 귤이 나온다.

그리고 조홍시가의 경우는 4수의 연시조인데, 유명한 부분은 1연. 아래는 원문에 가까운 전문이다.

盤中 早紅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柚子 안이라도 품엄 즉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기리 업슬새 글노 설워하나이다.

王祥의 鯉魚잡고 孟宗의 竹筍꺽거
검던멀리 희도록 老萊子의 오슬입고
一生애 養志誠孝를 曾子갓치 하리이다

萬勻을 늘려내야 길게길게 노흘꼬아
九萬里長天에 가는 해를 자바매야
北堂의 鶴髮雙親을 더듸늘게 하리이다

群鳳모 다신듸 외가마기 드러오니
白玉 사힌곳애 돌한아 갓다마는
두어라 鳳凰도 飛鳥와 類시니 뫼셔논들 엇더하리


고사는 훈훈했지만 후일담은 훈훈하지 않은데, 나중에 원술손책을 시켜 육강을 공격하기 때문이다.[2] 육강은 손책에게 패하고 한 달 뒤 사망한다. 귤값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이 육적과 설전할때 이것을 도둑질이라는 뉘앙스로 깐다.(...)

[1] 이 시조는 좌절감이 사나이을 키운조홍시가 라는 별도의 제목이 붙었다. 고전시가에 제목이 붙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시도 어지간한 네임드인 셈.[2] 물론 귤 때문은 아니고, 육강에게 군량을 빌려달라고 하였으나, 빌려주지 않자 화가 나서 공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