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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도(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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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형태
3.1. 칼날의 단면3.2. 칼날의 휘임각과 대체적인 형태3.3. 슴베3.4. 방패3.5. 잠금장치3.6. 칼자루
4. 환도의 휴대 방법5. 환도의 제작법6. 환도의 정체성에 대한 비교7. 환도의 사용법
7.1. 장점과 단점
7.1.1. 장점7.1.2. 단점
7.2. 환도를 이용한 검법
8. 현대의 환도

1. 개요[편집]

조선시대의 <외날을 가진 단병기>를 대체로 이르는 명칭.[1]

2. 상세[편집]

<조선왕조실록>에는 운검, 패도, 패검 등이 기록되어 있지만, 이름이 다를 뿐, 환도의 일종이다. 참고로 환도에서 '환'은 고리 환(環)자다. 휘어진 검이라서 환도가 아니다. 패용시 띠돈을 걸 수 있게 칼집에 고리가 있는 검이라 하여 고리 환자를 쓴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예도, 쌍수도, 쌍검, 왜검 등의 명칭이 나타나지만, 이들은 검법의 명칭일 뿐이며, 실제로는 대부분 환도를 사용하여 수련했다. 우리나라의 기록에서 환도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충렬왕 때이며, 중국에서는 원나라 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일본도와 유사해 보이지만, 실제 조선의 환도는 유목민족들에게 유행한 외날 곡도가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고려 말부터 유입된 것이 유래이다. 그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철제대도나 환두대도, 6세기 후반부터 등장하는 심부대도는 칼코등이를 갖추고 뒤에 환두가 작아지는 등, 환도와 유사한 디자인을 지니고 있지만 칼날은 직선형에 가까워서 찌르기를 중시하는 형태이다.[2] 참조링크 단, 삼국시대 유물 중에도 곡율이 큰 대형 검의 유물이 발견된다. 이들은 월도를 길쭉하게 만든 모양에 가깝거나, 직선대검에 곡률을 넣은 정도이므로 고려와 조선의 환도는 원제국의 영향임에 분명하다. 참고로, 이는 중동이나 서구권에서도 마찬가지라 사브르시미터 같은 곡률이 큰 한손 도검의 형식은 몽골의 침입 이후로 나타났다.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곡도보다는 오히려 직검(혹은 직도)에 가까웠을 듯한 묘사가 보인다. 고려사의 지(志)를 보면, 국가적 행사였던 연등회, 팔관회에 참가하는 군사들은 계급에 따라 은장장도나 금장장도[3]를 찼다고 하며, 고려도경에도 “문을 지키는 장교들은 검을 찼는데 그 모양이 길고 날이 예리하다. 칼자루는 백금과 검은 쇠뿔을 상감하고 물고기 가죽[4]으로 칼집을 만들었으며 등으로 장식하였다. 이는 옛날 제도의 유습이다.”라 하여 매우 호화로운 도검을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전투용보다는 주로 의식용의 칼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당시에 이미 옛날 제도의 유습이라고 평한 것을 보면 이전의 환두대도 디자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즉, 여말부터 조선까지 이어지는 환도의 디자인은 몽골 곡도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5]

환도는 종류가 많지만, 대개 방패를 병용하는 한손검이다. 따라서, 길이가 짧으며 찌르기에 유리한 형태를 띤다. 칼의 휘임은 일반적으로는 중국과 일본의 중간 정도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남아 있는 유물로 보면 그 정도가 제각각이다. <세종실록>과 <국조오례의>의 설명을 보면, 당시의 환도는 칼머리에 두석 장식을 둘렀고, 칼자루에는 구멍을 뚫어 홍조수아紅條穗兒를 드리웠으며, 칼자루감개나 칼자루싸개가 없는 경우가 많다. 칼집은 어피로 감싸고 검은색이나 주홍색으로 칠했다.

조선 전기의 환도 규격은 다음과 같다(영조척).

  • 보병용: 칼날 55.63cm / 자루 20cm / 합계 73.63cm

  • 기병용: 칼날 49.60cm / 자루 16cm / 합계 65.60cm

다만 해당 길이는 건물의 높이를 재던 영조척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당시 일반적인 길이를 재던 주척을 기준으로 한다면 칼날 길이가 여지없이 줄어든다. 보병용 칼날의 경우는 35.638cm, 기병용 칼날의 길이는 32.96cm로 자루의 길이를 합한다면 보병용은 55,638cm, 기병용은 48.96cm로 영조척으로 기준으로한 길이보다 더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길이는 딱히 이대로만 만들어야 한다고 정해진 한 게 아니라, 병사들이 훈련을 편하게 하려고 칼의 길이를 짧게 하던 것이 눈에 거슬렸던 영조가 보병의 환도 길이를 '이 길이 이상'으로 만들 것을 명한 수치이다. 때문에 이 길이보다 긴 환도도 얼마든지 있었다.

조선시대의 병사들은 일반적으로 활 1~2자루에 화살 20여 대, 갑옷과 환도를 착용한 중무장이었기 때문에, 이 상태로 300보를 달려갈 수만 있어도 갑사(직업군인)로 채용될 수 있었다. 게다가 백병전 보다는 궁시전을 중시 했기 때문에 휴대가 편하고 활을 다루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짧고 가벼운 검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동아시아의 갑옷을 뚫기 위하여 찌르기에 유리한 칼날을 사용하였다.

조선초기에는 찌르기에 편리한 직도와 원나라에서 수입한 곡도 스타일이 공존했다. 박도의 튼튼한 디자인을 조합한 유물도 존재한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일본도에 대항하기 위해서 길이를 90cm 이상으로 늘리고 양손으로 내려치는 환도까지 나왔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의장품화 되어서 예술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유물들이 발견된다. 후기에는 50cm 정도의 짧은 환도나 아예 대나무로 만든 것들도 제작되었다. 다만 이건 일본에서도 똑같으니 당대의 흐름이었다.

조선에서는 대체적으로 외날도면 다 환도라고 불렀다. 일본도를 그냥 환도나 왜환도라고 부르기도 했고 심지어 이양선이 찾아와서 문정을 했을 때 남긴 기록에서도 커틀러스 같은 서양검을 환도로 표기했다.[6] 물론, 일본도와 어느정도 구분이 있었다는 것도 확실하다. 대체적으로 환도는 방패를 패용하거나, 사격무기를 쓰는 병사들에게 호신용으로 지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일본도와는 달리 한손으로 방패와 갑옷에 최적화 하기 위한 디자인이 발전했다. 형태는 일정하지 않지만 밑에서 설명할 특징들이 있다는 정도로만 기억하면 된다.

참조 영상: 혼이 담긴 조선의 칼 / YTN 사이언스[7]

3. 형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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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칼날의 단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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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환도의 단면은 다양한 형태를 보이며, 일본도와 같은 육각도를 지닌 환도도 있으며 삼각도나 편삼각도로 이루어진 환도도 존재한다. 이 중 배형도의 경우 단면의 구조가 완만한 배 모양이다. 이것은 중국 대륙을 중심으로 당나라 이후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양식이다. <성호사설>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의 육각도(일본도)를 얻으면 칼등과 옆의 경사면(시노기)을 갈아내서 배형 구조로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8] 성호사설의 설명대로라면 배형도가 환도의 표준적인 단면 모양인 것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현존하는 유물의 대다수는 일본도의 시노기와 같이 명확히 각 진 칼배를 지녔다.

다만 칼배에서 칼등으로 갈수록 두께가 명확하게 좁아지는 경우가 많고, 칼등에 일본도와 같이 튀어 나온 각을 잡는 경우는 드물다. 간단하게 말해 단면이 오각형인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편삼각도와 배형도를 혼동하는 것 같은데, 배형도는 칼등이 둥근데 반해 편삼각도는 각이 져있고, 칼날 부분은 배형도는 날이 중간에, 편삼각도는 한쪽에 치우쳐있다. 그리고 삼각도와 편삼각도는 내구도 문제로 인해 창포검 등 개인 호신용, 암살용 검에나 쓰였고 실제로 널리 사용된 군용 제식 환도는 대다수가 배형도였다.

3.2. 칼날의 휘임각과 대체적인 형태[편집]

한중일 각 문화권의 도검의 휨을 각각 평균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심지어, 같은 나라일지라도 칼날의 휨은 개별적인 차이가 컸다. 조선 초기에는 직도가 사용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고려시대부터 원제국에서 유래한 곡도 양식의 한손검이 혼용되었다. 참고로 일본도 또한 5cm에 달하는 휨을 가진 물건에서 직도에 가까운 2,3mm 수준의 휨을 가진 물건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곡도의 평균적인 휨을 찾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조선의 칼은 칼끝이 모호하고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리며 위로 약간 솟아오른다. 일본도의 버선코형이라고 불리는 킷사키를 재현할 수 없어서 그렇게 만들었다는 소리도 있는데, 애초에 일본도의 킷사키는 그런 식으로 접어 올리지 않으면 그 부분에 신가네가 노출되어 버리는 재질/제법상의 한계 때문에 만들어진 물건이므로, 통짜 쇠를 쓰거나 접쇠를 쓰더라도 칼뿌리 부근에만 시우쇠를 덧대는 조선이나 대륙에서는 채용할 필요가 없는 기술이었다고 봐야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일본도와는 마무리 연마방식이 다른 조선환도에서는 요코테가 생기지 않으며, 그러한 특징에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만드는 경우가 적었다. 하지만 일본도를 환도로 개조한 이후 그대로 사용했다면 일본도의 양식이 남아있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실물 환도를 보면 칼날에 다양한 형태가 공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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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성 출토 환도 유물, 다양한 형태가 공존하고 있다.

환도의 모양은 자세하게 정리하기 힘들다. 일본도조차도 장인들의 솜씨에 따라서 평균치가 많이 달라지는 편이다. 위처럼 그냥 일본도를 손질해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전기에도 일본도는 자주 볼 수 있는 무역품이었기 때문에, 일본도의 칼날을 사용하는 환도도 일찍부터 나타났다. 참고로, 일본도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은 곡률이 아니라 칼의 크기인데, 일본도가 한창 유행했던 시기에는 보병용 환도의 길이가 제법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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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왕의 호위무사인 운검이 소지한 환도인 운검(雲劒).[9] 환도 특유의 곧고 안정적인 디자인이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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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에 실린 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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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관료인 병화 이형상의 유품들 중 일부. 중간에 곡도(曲刀, 장도長刀라고도 한다.)는 임란 이후 조선 도검양식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칼의 크기는 길이 67.8㎝, 폭 3㎝, 자루길이 12.3㎝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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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업 장군이 생전에 사용한 환도인 추련도.#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검을 곡도를 뒤섞은 고전적인 스타일이다. 대륙에도 똑같은 양식이 있어서, 원-명-조선-청에까지 무려 4개의 나라에서 곡도, 박도, 직도가 뒤섞인 유물들이 발견된다. 이후 중국에서는 전형적인 한족 스타일의 도검이 다시 나타나며, 조선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환도가 유행하면서 이렇게 과도기적인 도검은 사라진다.

가장 많이 발견되는 환도는 유목민족의 곡도를 보병용으로 어레인지한 스타일이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의 환도가 조선 사람들이 인식했을 평균적인 환도의 모습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대략적인 모습은 위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조선의 환도는 관청에서 지급하는 양산품의 성격도 강한 편이므로, 실제로 저런 종류를 병사들에게 지급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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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환도의 모습이다. 다만 위의 사진은 잠금장치가 없는 현대의 소장용이다. 대략적인 모습은 비슷하지만 전통적인 환도 중에는 다른 색깔이나 치장법이 더 많다. 상태가 좋은 환도 유물은 금속, 상어가죽, 그밖에도 다양한 장식으로 치장하여 예술성이 높다. 환도라고 하면 썰렁한 모양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깜짝 놀랄 정도로 예쁜 칼도 많다.

대체로 일본도와 환도의 차이점을 예로 들 때, 일본도는 예술성을 중시하고 환도는 공산품이므로 실용성을 중시한다는 구분법이 나오기도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일본도의 경우 무사들 사이에 부품을 바꿔가며 사용하는 문화가 발달한 점과, 환도의 경우 아예 분해가 불가능하게 제작된다는 점 때문에 나온 이야기인 듯 하지만, 환도의 경우에도 왕이나 왕실 관련 인물들이 사용한 물건은 뛰어난 예술성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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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수원화성 박물관에 소장된 대모보검의 경우 보통은 그냥 나무에 옻칠을 하거나 어피나 삼베 등을 감싸 옻칠하여 마감하는 칼집과 자루의 몸체를 통째로 바다거북의 껍질을 이용해 제작해서 칼집 속의 칼날이 비쳐보이며, 그 외에도 장식에 금,은과 옥과 같은 각종 귀중한 재료들이 들어간 물건으로써 예술적으로도 매우 높은 가치가 있는 물건이다.

3.3. 슴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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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방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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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이 방패를 코등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은데, 코등이는 죽도의 개념으로서 일본에서 쓰는 말이다. 우리나라 말로는 방패라고 해야 맞는 말이 된다. 물론 환도와 함께 쓰는 이 방패와는 다르다.

전통적인 조선 환도의 방패에는 구멍이 없든지, 아니면 비녀장을 끼우기 위한 원형의 구멍이 칼등과 칼날 방향으로 하나 혹은 2개가 존재한다. 일본도, 특히 우치가타나(打刀)의 경우 칼날 좌우에 나이프 정도에 해당하는 작은 칼을 끼우기 위한 소병궤혈이나 머리 손질 도구인 코가이를 끼우기 위한 궤계혈이 존재하는데, 이는 우리 환도에 본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종종 소병궤혈이나 궤계혈이 있는 환도가 있는 경우가 있으나, 이것은 일부 도검 장인들이 그 구멍의 용도를 모른채 형태만을 모방한 결과라고 판단된다.

칼코등이가 완전 장식용인 다른 나라 도검과는 달리 심플하면서도 튼튼한 구조 등 손의 방어, 즉 실용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것이 특징이다.[10]

특징적으로 방패의 재료로 옥을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이 경우에는 대개 어도(왕의 검)나 운검/별운검(국왕 호위무사의 도검)이라고 한다.

3.5. 잠금장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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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유행했던 환도의 대표적인 특징이며, 조선 초기에는 비녀장이라고 하는 잠금장치가 사용되었다.## 이는 칼집에서 칼이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방패 칼등 부분에 구멍이 뚫려있는 것은 비녀장으로 칼을 고정시키기 위함이다.[11]

이후 조선 중후기에 들어서면서 클립을 이용한 버튼식 잠금장치가 도입되었다.# 이러한 잠금장치는 클립을 호인의 내부에 장착하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는 클립 자체는 물론 잠금장치를 보호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12][13]

3.6. 칼자루[편집]

칼자루에는 어피나 가죽끈을 감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 습도가 낮은 편이기 때문에 일반 호신용 도검에는 칼자루감개나 칼자루싸개가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칼집처럼 옻칠이 되어 있다. 다만 조선 후기의 군용 도검에는 칼자루를 가죽끈으로 감는 것이 꽤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예도보통지>에서는 한쪽 방향으로 엇갈려 감기가, <융원필비>에서는 일본도와 유사하지만 끈이 교차하는 매듭의 횟수가 훨씬 적은 방법이 나와있다.

4. 환도의 휴대 방법[편집]

위 그림들을 그린 작가의 블로그

조선시대의 도검 패용 방식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띠돈을 이용하여 칼자루가 등 뒤로 향하도록 하고 칼집 끝이 전방 아래쪽으로 늘어지도록 허리에 차는 띠돈 매기 방식이다. 참고로 조선군이 환도와 함께 패용하는 동개 일습(활과 화살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들) 중, 활집을 착용할 때에도 띠돈이 사용되는데, 띠돈의 네모난 고리에 가죽이나 견고한 천으로 만든 허리띠를 통과시켜서 착용하는 것으로, 근현대 군인의 장구류 중 탄띠에 착용하는 홀스터와 탄입대 등을 생각하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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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패용 방식은 활동상의 편의성, 특히 활을 쏘는 데 있어서의 편의성을 크게 고려한 것이다.[14][15] 또한 칼을 쉬이 뽑을 수 없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쉽게 회전이 가능한 띠돈이 고안됨으로써, 필요할 경우 칼을 쉽게 돌려 찰 수 있게 되었다. 칼자루가 등 뒤로 향하도록 하는 방식은 기병을 중심으로 운용했던 일부 국가들의 특징인데 칼집이 뒤를 향하도록 패용하면 말을 타고 빠르게 달릴 시 칼집이 말을 때려 움직임을 방해한다고 한다. 중국 청나라와 근세 유럽, 일본 군도 패용 방식에도 나타는 보편적인 패검 방식이나, 미디어 등에서 나오는 칼 패용법에는 가타나 식 패용법이 많아 그에 익숙하다 보니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참고로 칼을 뽑는 방식은 왼손으로 칼집을 재빨리 앞으로 돌려 손잡이가 겨드랑이 사이를 거쳐 앞으로 나오게 잡고 오른손으로 뽑는다. 뽑은 후에 칼집은 다시 자연스럽게 뒤로 향하여 사용자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다.[16] 왼손으로 칼집을 등 뒤로 밀어올리며 오른손을 머리 뒤로 넘겨 뽑는 경우가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아무리 환도가 짧아도 띠돈으로 맨 환도를 뒤에서 뽑는 것은 신체 구조 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잠금장치가 있는 경우가 많아 칼집 부리를 잡지 않으면 뽑을 수 없다.[17] 그리고 허리띠에 띠돈으로 환도를 맨 상태에서 칼자루를 앞으로 가게 둔 것이 고증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므로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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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돈 매기 방식과 더불어 조총수와 창수가 사용한 패용 방식으로 등 뒤의 허리띠에 칼을 찔러넣는 뒤꽃이 방식이 있다. 칼집에 쿠리카타(栗形)가 있어 그냥 허리띠에 꽂아도 충분히 고정되는 가타나와 달리 환도는 뒤춤에 그냥 찔러넣어 휴대하게 되면 칼이 빠져버리기 때문에 칼집 중간의 끈목 안쪽으로 전대를 통과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참고로 사극에서 정말 무시당하는 고증 가운데 하나, 대부분 한 손에 들고 다니는 괴이한 파지법을 사용하고 있다. 추노뿌리깊은 나무 처럼 칼자루가 뒤로 향하도록 패용하는 방식이 고증된 사극도 있지만 이 작품들도 모든 장면에서 고증을 지키는게 아니라 장면 따라 손에 들었다가 허리에 패용했다가 제멋대로이고, 띠돈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끈으로 묶어서 뒤로 돌려맸다. 명량에서는 띠돈 비슷한 고정구로 허리띠에 칼을 매단 것은 고증했으나 칼 찬 사람 전원이 칼자루를 앞으로 향하게 패용하고 있는- 틀린것은 아니지만 뭔가 미묘한- 고증을 보여주었다.[18][19]

관련 영상은 이곳으로

5. 환도의 제작법[편집]

일부의 환도에 쓰이는 철은 뽕쇠(고탄소 공구강) 판을 ㄷ 자형의 구부러진 시우쇠(저탄소강)로 감싸 서로를 맞물려서 단접했던 것으로 보인다.[20] 이는 뽕쇠를 시우쇠로 완전히 감싸는 것이 아니라, 칼날 부분만을 남겨놓고 감싸서 뽕쇠의 칼날이 1/3정도 드러나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외유내강한 성질의 칼날을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런 복합구조는 일반적인 제작법은 아니다. 대부분은 단조를 통해 쇳덩이를 두드려 펴서 모양을 잡았다. 이렇게 단조작업을 통해서 칼날의 형태를 잡은 뒤, 까끌질과 거친 숫돌질로 칼날의 기본 형태를 잡은 후 다시 숫돌로 갈아 날을 세웠다.

위에서 보듯이 환도의 단조과정에서 일본도와 유사한 복합재질 구조는 간혹 발견되지만 접쇠 공정의 적용사례는 발견되지 않는다. 접쇠로 제작된 환도는 전부 일본도의 도신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흔히 일본의 접쇠 공정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비감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철 제품의 원료가 되는 철정 자체부터가 접쇠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그 이후 시기에 도검제작시 접쇠 공정이 사라진 것은 강철 생산 및 가공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접쇠의 필요성이 감소했기 때문이다.[21]

일반인에게 일본도의 단단함은 세계제일!!!인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많은데 환도의 구조적인 강도는 일본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절삭력과 길이에서 차이가 나타날 뿐이다. 오히려 대형 환도는 구조가 단순한 만큼 더욱 안정성이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칼집은 2개의 나뭇조각에 각각 칼날 모양을 파고, 이 두 조각을 찹쌀풀을 이용하여 붙여서 만든다. 우리 나라의 칼집은 일본에 비해 나무의 두께가 얇은 편인데, 이는 전통 칼집이 전통 한지나 삼베 등에 풀을 발라 단단히 감싸주는 구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옻칠을 하여 완성했다.

칼자루는 칼집과 동일한 목재로 만들고 그 위에 옻칠을 하며, 가끔은 사어피(沙魚皮, 상어가죽 혹은 가오리가죽)로 싸고 가죽끈으로 감기도 했다. 하지만 위에 언급했듯이, 세종실록에 나타난 환도를 보면 칼자루에 끈으로 감은 모습이 보이지 않으며, 현재 남아있는 환도 중에도 가죽끈으로 칼자루를 감은 것이 오히려 적은 편이다. 또한 칼자루에 홍조수아를 드리우는데, 홍조수아는 붉은색의 유소(流蘇)를 길게 드리워 칼을 장식한 것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장식만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병사들이 전투 도중에 칼을 놓치지 않도록 끈을 손목에 묶고 싸우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전통야철 기능장 이은철 장인의 환도제작 영상. 그러나 영상에서 나오는 접쇠를 하고 진흙을 발라 열처리를 해서 하몬이 남는 기법은 명백한 일본도 칼날을 만드는 기법이다. 국내에서 전통 도검 장인을 자처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칼날 제작에 사철과 접쇠, 차등열처리 등 일본도 제작 기법을 사용하는데, 일본의 기법을 전통으로 포장하는 것이 좋지 않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업계가 환도나 사인검 등을 위시한 전통 도검의 외형적인 복원에 치우쳐 있고, 칼날 재현 쪽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탓도 있을 듯. 상술했듯이 일본도의 재료가 사철을 모아서 만든 타마하가네인 것은 일본에서 구할 수 있는 철이 조악한 사철[22]이었기 때문이고, 예로부터 질 좋은 철광석을 얻을 수 있던 한반도에서 사철을 사용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문서에서 설명했듯이 환도는 두들겨 펴는 단조 기법으로 만든다. 단조로 환도를 만드는 김봉경 도검장 영상, 도검장 이상선

6. 환도의 정체성에 대한 비교[편집]

  • 환도의 길이
    환도의 길이는 시대에 따라 규격과 형식이 지속적으로 변화하여 차이가 크다. 조선 초기~임진왜란까지 평화시기에 길이가 일본도에 비해 짧아지고 임진왜란 후 일본도에 대항하여 길이가 길어졌으며 이후 무예도보통지 저작 시점인 조선 중후기 까지 그 길이가 유지, 권장되다가 구한말 혼란기에 다시 길이가 짧아졌다.

  • 곡률
    곡도는 고려 시대부터 이미 존재하였고 반대로 문종실록의 환도는 직단이라는 기록이 있어 매우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환도의 곡률은 매우 다양하여 시대에 따라 직도와 곡도가 혼용되었으며 곡률 유형과 편차가 다양하며 평균의 의미가 없다.

  • 칼날과 형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요코테가 존재하는 환도의 경우 노획하거나 수입한 일본도의 칼날을 환도로 개조한 물건이므로 요코테의 유무로 조선제 환도날인지 구분할 수 있다. 조선에서 만든 환도날의 경우 마무리 연마방식이 달라서 칼끝과 칼몸의 경계에 있는 선인 요코테가 존재하지 않는다.
    칼날의 단면도 다양한 모양을 띄고 있으나 배형도가 대다수를 차지하며, 삼각도는 창포검 등 가벼운 호신용 검에서나 볼 수 있다. 육각도(일본도)를 얻으면 칼등을 갈아내서 배형도로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혈조(Fuller)의 경우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환도 유물에는 혈조가 파여있지 않다. 문서 최상단의 도검(관제녹칠어피갑장환도)같이 혈조가 있는 환도는 소수 케이스. 애초에 혈조의 기능은 장식이나 무게 경감의 의미만 있을 뿐이었으므로[23] 실용성 면에서는 혈조가 없이 매끈한 경우가 더 튼튼하다. 일본도의 경우에도 혈도가 없는 물건은 많다.

  • 부분 열처리
    인문(하몬)의 존재 여부는 환도와 일본도의 차이점 중 하나이다. 환도도 부분 열처리 과정을 거치기에 일본도 양식의 연마과정을 거치면 인문이 드러나게 되지만 환도는 그러한 연마 과정은 생략하고 날 자체를 세우는 마광 과정만 거친다. 이는 하몬 자체가 칼의 성능과는 상관 없는 미학적인 면에서 중요시되기 때문에 팔리는 상품으로서의 일본도의 미학과 제식 군수품으로 실용성 위주의 환도의 차이라고 하겠다.

  • 패용장식
    칼집에 달린 패용 장식, 특히 칼을 차기위한 것에서 환도의 구분을 가능게 해준다. 조선 초기에는 칼을 차기위한 패용 장식에 고리가 달린 것이었고 조선 중후기로 넘어가면서 패용장식에 추가로 띠돈장식을 한 것이 주류가 된다. 이 띠돈 매기는 칼을 차는 실용성을 가지며 환도에서만 보이는 양식이다.

  • 칼자루에서 도신의 고정

대나무 핀인 '메쿠기' 양식으로 분해 재조립이 가능한 일본도와 달리 유소구멍에 금속제 유소관으로 고정하여(리벳 고정과 비슷하다.) 분해 재조립이 불가능하다. 경우에 따라 슴베 끝이 칼자루 윗마개로 뚫고 나온 뒤 두드려 마감하여 이중으로 고정한 경우도 보인다. 일본도의 양식처럼 '메쿠기' 위치에 금속 고정 못으로 고정하고 그 위에 유소 구멍으로 이중고정한 양식도 보인다. 이는 상품으로 팔려 주인 취향에 따라 맞춤 재조립 과정되는 일본도와 관제 군수품으로 실용성 위주의 관제 도검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각각의 문화 특성에 따른 것으로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실용성 측면에서 환도는 전투시 칼날이 부러질지언정 칼자루에서 칼날이 빠지는 경우는 없는 장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 방패
    본래 환도의 방패(코등이)에는 칼날 양쪽에 나 있는 구멍인 소병궤혈, 궤계혈 양식이 존재하지 않으며, 비녀장 구멍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한국 환도장들이 일본도의 코등이를 보고 장식적인 의미로 소병궈혈과 궈계혈을 환도 방패에 도입되기도 했다.

  • 칼자루
    환도의 칼자루는 본래 어피나 삼베 등을 감싸거나 그낭 나무 위에 옻칠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일본도의 양식인 교차매기식 줄 감기가 중후기 이후 환도에 도입되기도 했다. 이는 실용성 측면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 칼집마감
    칼집의 경우 갈대줄기, 어피, 옻칠을 한 복합소재의 칼집이 다수의 환도에서 확인된다. 그에 반해 일본, 중국의 경우 단일방식의 마감 이외에는 드믈다.

  • 환도의 정체성 혼란의 이유
    환도의 현존 유물은 300여점 뿐이다. 조선 당시에도 관제 도검 문화로 환도를 군용 소모품으로 보았고 일제 침략과 군대해산으로 각 군영에 있던 대부분의 환도가 유실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일본도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칼자루나 방패 등에서 일본도와 유사한 형태의 환도 또한 제작된데다 현대에 들어 각종 매체에서 보여준 일본의 일본도 이미지의 선점 효과로 환도와 일본도의 유사점을 한국인이 인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출처는 "칼, 실용과 상징" 고려대학교 박물관 특별전 도감에 실린 "우리칼의 정체성 인식을 위한 제언'" 참조함.

참조: 조선의 무기와 갑옷, 가람기획, 민승기 지음[24]

7. 환도의 사용법[편집]

7.1. 장점과 단점[편집]

7.1.1. 장점[편집]

  • 높은 경량성
    국궁, 핸드캐논, 천자총통 같은 사격무기를 애용했던 조선에서 환도는 호신용 무기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검을 제작하는 기술은 휴대하기에 편한 칼을 만드는데 집중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환도는 일본도랑 크기가 비슷하더라도 약간 더 가벼웠다. 행군할 때는 편하고 사격무기들을 쓸 때도 걸리적 거리는 것이 많이 줄어들었다.

  • 안정성을 강조하는 디자인
    환도는 편삼각, 배형처럼 안정성이 높은 디자인을 강조했다. 전반적으로 경량성을 강조한 만큼,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안정성을 추구했던 것이다. 여담으로, 환도는 경량화를 추구한 한손용 도검이면서도 칼몸이 두꺼운 초기 유물이 많은데, 이것은 방패의 사용률이 높았던 동아시아의 흔적이 남은 디자인으로 보기도 한다.단, 초기형 환도는 튼튼하기로 유명했던 월도박도의 단면도를 유지한 상태에서, 이를 작고 가볍게 만든 도검이고 보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중국의 3대 왕조(원,명,청)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생긴 도검들이 발견되는데, 후기에는 다시 국가별로 특징이 갈라지게 된다.

  • 속력을 중시한 한손도검
    익히 알려진대로, 환도는 한손으로 사용하기 편리한 칼이었다. 대표적인 일본도우치가타나가 양손으로 체중을 싣어 베는 전법에 유리했다면, 환도는 한손만으로도 에너지의 손실없이 휘두르거나, 방패를 함께 활용하는 검법을 위해서 설계한 칼이었다. 좌우로 스텝을 밟으면서 후려치거나, 빠르게 이동해서 베는 식으로 기동력을 살리는 전법에도 유리했다. 단, 일부의 무관에게 부여되는 '운검' 같은 대형 환도는 육중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대형 환도는 일본도나 월도, 곡도처럼 묵직하게 내려치는 용도로 사용했을 것이다.

7.1.2. 단점[편집]

  • 짧은 날길이
    환도의 대표적인 단점. 환도는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거리가 짧았다. 사실 중국의 검이나 서양의 검, 일본의 검들을 보면 레기온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실전에서 일선무기로 제대로 써먹을려면 일정 날길이(70cm대~90cm대)이상은 되어야 써먹을 수 있는데 에도시대 와키자시보다 짧은 환도들은 실전에서 활약하기에는 스펙이 낮을 수밖엔 없다. 그 레기온도 밀집하여 싸우는 전법 때문에 글라디우스를 선택한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높아지는 기술수준과 개개인의 역량이 중시 됨으로써 스파타같은 날길이가 길어진 검들을 사용한다. 그 덕에 임란 이후에는 일본도의 영향을 받아 칼의 길이가 늘어났다.

  • 약한 살상력
    환도의 한계. 짧은 날 길이에 더불어 무게까지 가벼웠던 탓에 당연하게도 강한 공격을 가하기엔 힘들었으며 빠르게 적을 처치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는 검으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근접한 적을 효율적으로 살상 해야 하는 무기가 정작 살상력이 약하다는 모순적인 단점을 안고 있었다. 이런 환도를 어떻게든 써먹기 위해서 였는지 무예도보통지를 중심으로 몸을 크게 회전하면서 체중을 싣는 검술이 발견되었는데, 임진왜란 당시에는 일격만으로도 충분히 살상력이 나오는 일본도의 위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고 나오기에, 당시 양국에서 사용했던 검법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다만 환도는 어디까지나 보조용 무기이기에 이러한 비교는 환도 처지에서 굉장히 억울할 수는 있다. 현대로 비유하자면, 권총을 보고 M16보다 살상력 약하다고 비판하면 이상하지 않은가(…)[25]

7.2. 환도를 이용한 검법[편집]

위와 같은 차이점 때문에, 환도의 사용법은 일본도와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예도보통지의 검법을 보더라도, 칼의 경량성을 이용해서 좌우로 빠르게 스텝을 밟는 독특한 사용법이 많이 나온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환도는 빠른 칼질로 상대의 전투력을 훼손하거나, 방패를 같이 사용해서 상대를 밀어내거나, 기동력을 이용한 전술이 강조되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조선초기부터 환도를 쓰는 검법에 대한 기록이 존재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정리된 것은 무예도보통지의 관제검법으로만 한정된다. 순수한 조선환도의 기법으로는 예도,본국검법 등이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현대에 이것을 재현했다고 하는 단체들은 일본검도를 그대로 베껴놓는 행각을 벌이고 있다(…). 애초에 환도에 대한 연구 자체가 없는 상태에서, 마케팅을 우선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아무튼 조선시대부터 국궁핸드캐논이 주력무기로서 자리를 잡은 시점에서, 환도를 이용한 검술은 실전적인 의미가 떨어지는 편이었다. 단순히 호신용이거나 무인들의 정신을 단련하는 의미가 강했기에, 환도검법은 대중들에게 '강력한 검술'이라고 어필할만한 의미가 부족하다는 단점도 있다. 무술에서 자존심과 실전성 문제는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환도검술을 복원에 성공한다면,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있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환도의 특성을 보여주는 검법의 연구는 관제무술을 재현하는 단체와 사극에서 발전하기 어렵다. 그런데 어찌보면 사극에서 무협지처럼 휘두르는 방법도 개념적으로는 맞는 부분이 있다. 환도 자체가 경량도검이고, 무술교본에서도 회전하면서 회피와 공격을 동시에 수행하는 자세가 많기 때문이다. 문화의 가치를 깎아먹는 사극의 병맛 무술들은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실제로 무예도보통지의 품새에서도, 칼이 가벼운 만큼 몸을 같이 이동하면서 체중을 싣거나, 후방으로 보법을 밟는 수비적인 동작들이 자주 나타난다.

8. 현대의 환도[편집]

국내 검술계에서는 주구장창 우치가타나 형태인 진검만 써 오다가 조선 전통도검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면서 환도의 수요도 약간 생겼다. 주로 무예도보통지 관련단체들에서 많이 사용하지만 그 외에는 거의 찬밥 신세이다.[26] 아무래도 해동검도 쪽에서는 그냥 카타나를 쓰기도 하고…

전통적인 환도는 중국도와 일본도가 융합된 듯한 형태를 보여주는 것도 있고, 자루와 칼집을 어피로 싼 것도 있고, 일본도와 구분이 안 가는 것도 있는 등 디자인이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현대의 도검 제작사에는 천편일률적으로 황동 도장구에 붉은색 목제 손잡이가 있는 환도만 다루고 있다. 거기에 띠돈을 제대로 고증에 맞춰 포함시킨 곳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 띠돈은 없고 어깨에 매는 끈을 따로 팔거나, 혹은 이상한 끈 장식을 포함한다. 환도의 특징 중 하나인 비녀 잠금장치를 구현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오히려 중국 메이커인 폴첸이 환도의 특징을 잘 살려서 판매[27]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쉽다.

실질적인 의미가 적다는 단점도 있다. 현대에 유통되는 환도 유물은 베는 성능을 올려주는 휜 손잡이, 유엽도 양식의 유물은 전혀 다루어지지 않는다. 국내 양산형 도검사의 수준은 베기장에서 사용하는 삼각도(…)수준에만 머무르는 정도이기 때문에, 메이저라고 할만한 튼튼하고 큰 검을 원하는 국제도검인들에게도 잘 먹히지 않는다. 환도의 사용처는 대부분 사극이나 국내의 무술교본 시범단체에만 그치는 수준이다. 시장이 좁으니 연구와 재료도 정체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극에서는 주구장창 카타나만 써대다가[28] 뿌리깊은 나무, 추노, 해를 품은 달 등 무기 고증에 어느 정도 신경을 쓴 작품이 나오며 고증된 형태의 환도를 볼 수 있는 비율이 높아졌다. 다만 제대로 패용하는 경우는 드물다.[29] 만화/웹툰 쪽에서는 네이버 웹툰 <칼부림>이 조선 시대 환도 패용 방식 및 검법을 아주 제대로 고증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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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양날검이나 왜검도 대충 환도로 뭉퉁그려 칭하기도 했다.[2] 일본도 역시 초기에는 한손으로 사용하는 직도였다가 동북부 원주민인 에미시의 영향으로 휘어진 디자인을 하게 되었던 걸 생각하면 일종의 수렴 진화라고 볼 수 있다.[3] 은장도처럼 장식한 긴 칼[4] 아마 가오리 혹은 상어.[5] #[6] 지금으로 보면, M-4든 AK-47이든 K-2든 그냥 소총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7] 영상은 일본도 제작 재현 영상이니 걸러서 보길 추천한다. 접쇠공법과 진흙 부분열처리, 그로 인해 생성되는 하몬 등 전형적일 일본도 제작 방식인데 전통 조선 칼 제작법이라고 소개되는 뉴스영상이다. 심지어 도검장인이 입고 있는 옷 조차도 일본의 도검 장인들의 복장과 똑같다.[8] 다만 이렇게 마개조된 도검은 도신(刀身)의 내구력이 상당히 떨어졌을 것이다. 단조법으로 만들어진 환도에 비해 일본도 자체가 유연한 철과 고탄소강을 겹처 고온의 온도를 이용해 접으면서 만들어진 접쇠법으로 만들어져 외부가 고탄소강인 하가네를 갈게 된다면 심하면 중앙인 신가네가 노출이 될 확률이 높아 검이 부러질 확률이 높았다. 단, 일본도 항목의 단면 구조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들 역시 많다.[9] 운검이라는 명칭은 검의 이름이자 동시에 검을 소지한 호위무사의 직책이기도 하다. 다른 명칭은 별운검(別雲劒). 별순검이 아니다.[10] 링크, @[11] 일본의 경우, 일본군 부사관용 군도인 '95식 부사관도'에 도입되었다. 다만, 환도처럼 칼집에 달려있지 않고, 손잡이에 달려있다는 점이 다르다.[12] 일본의 경우, 일본군 장교용 군도인 '98식 전도'에 사용되었다.[13] 조선식 잠금장치는 보통 칼집에, 일본식은 보통 칼 손잡이에 붙는데, 각각 장단점이 있다. 조선식은 칼을 뽑아들었을 때 손에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없지만 칼을 뽑을 때 양손을 써야 하고, 일본식은 칼을 뽑아들었을 때 엄지 뿌리에 단추가 걸리지만 한손만으로도 잠금을 해제하고 뽑아들 수 있다. 어째 전투에서 선호하는 전술을 보자면 서로 거꾸로 된 것 같지만…[14] 그래서 역시 활이 중시되던 몽골이나 청나라 역시 같은 방식으로 패용하는 경우를 (항상은 아니지만)볼 수 있다. 확실히 할 것은 이러한 패용 방식이 조선에서만 쓰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15] 파일:청무사.jpg[16] 재미난 것은 국군의 제식 K-2 소총도 접어서 총구가 아래로 가게 등에 차는 것이 움직이기 가장 편하고, 겨드랑이 사이로 끌어내려 쏘기도 좋다.[17] 일본군도 등 후기 일본도는 이 한손으로 뽑을 수 없는 문제를 잠금 단추를 칼 손잡이 쪽에 장착하는 것으로 해결했지만, 이게 손에 걸리적거리는 문제가 있다.[18] 사실 고증이 미묘하다고 하긴 뭐한게 환도는 패용 방식이 한가지로 정해져 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쓰는 사람이 편하게 차면 아무런 문제가 될게 없다. 실제로도 팽배수나 살수처럼 활을 사용하지 않던 병과는 칼자루가 앞으로 가도록 패용하기도 했고, 일반 하급 병졸들은 띠돈도 없이 허리띠를 이용하여 허리 뒷춤에 대충 꼽고 다니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말타기 같으 건 안 하는 수군이니까…[19] 전통무예연구가 최형국 박사님의 말에 따르면, 칼자루를 뒤로 가게 하는 편이 일상 생활을 하는데 훨씬 편하기에 활이나 창같은 무기없이 환도만 단독으로 찬다고 해도 보통은 칼자루를 뒤로가게하여 찼다고 한다. 조선시대 환도 패용의 기본 제식 형태로 볼수 있다고한다.[20] 사실 이 방법은 환도가 아니라 조선시대 호신용 소형칼인 장도 만드는 법 중 하나인데, '조선의 무기와 갑옷'의 저자 민승기씨가 저서에서 환도 제작에 비슷한 방법이 쓰였을지도 모른다는 개인 견해를 밝혔다.[21] 사실 일본의 도검 제작에서 접쇠공정이 발달하였던 것은 일본에서 사출되는 대부분의 철광석이 사철인 타마하가네(玉剛, 옥강)의 형태여서 그 순도가 낮았기 때문이었던 점도 있다.[22] 물론 사철이라도 뉴질랜드 등에서 나오는 고품위 사철 같은 경우 철강 용도로도 사용하지만 일본이나 한국에서 나오는 사철은 질이 좋지 않다.[23] 흔히 퍼져 있는 낭설로 혈조가 적을 찔렀을 때 피가 흐르는 길이라거나 공기가 들어가서 뽑기 쉽도록 한다는 것은 별다른 근거가 없다.[24] 저서 자체가 이곳 저곳의 정보를 편집한 것이고, 편집에 정확한 사료나 근거가 아닌 작자의 개인적인 추측이 상당량 섞여 자료가 왜곡된 부분이 크기 때문에 해당 도서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위험하며, 결정적으로 작자 역시 학술적으로 미진한 부분을 인정했기도 했다. 또한 해동검도 출신이라 그쪽 편견도 들어갔을 공산이 크다. 그냥 참고서적 수준으로 만족하자. 이 항목도 이 책에서 따오다시피하다가 많은 사람들의 수정을 거쳐 지금의 참조 수준이 된 것이다.[25] 다만 사격무기에 지나치게 치중한 전법은 분명 한계가 있다. 총기가 전장의 주류가 되었던 18세기 이후 유럽에서조차 총검을 이용한 백병전의 비중은 결코 적지 않았는데, 갑옷 등으로 방어할 수 있는 활을 사용하는 시대의 경우 결국 전장에서의 결말은 백병전으로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전까지는 소규모 여진족을 상대하는데 최적화되었던 조선군이 임란으로 대규모의 적군과 부딫히면서 이러한 방식의 전법에서 한계를 노출한 셈이다.[26] 당장 나무위키의 환도문서와 일본도 문서를 비교해보자.[27] 다만, 띠돈은 고리가 막힌 채 모양만 재현된 더미(…)이며, 절판됐기 때문에 현재는 구할 수 없다.[28] 심지어는 조선시대 이전을 그린 천년지애에서도… 백제 파트에서 성유리가 연기한 부여주가 일본도를 사용한다(…).[29] 칼집을 손에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은 것은 허리에 칼집이 걸려있는 것이기에 몸을 움직일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리고 액션신에서는 자기나 상대의 다리에 칼집이 부딪히는 등 불편함이 많기 때문이다. 심할 경우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 물론 제대로 고증을 살려서 전대와 띠돈을 몸에 맞게 착용하면 이럴 일이 없다. 엄연한 실전용 장구류인데… 길이를 제대로 조절하지 않거나 대충 끈으로 묶어 늘어뜨리는 방식으로 패용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칼집을 허리에 묶는 방식은 의외로 복잡하며, 보병전용과 기마전용 패용방법도 다 세세하게 다르다. 이런 고증을 제대로 안 하기 때문에 상술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 그 돈 들여서 역덕, 밀덕들 만족시키느니 그냥 손에 들고 뛰게 하는게 안전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