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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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보호하자!



1. 개요2. 선임과정3. 코칭스태프 명단4. 활동5. 재신임과 자진사퇴
5.1. 재신임 결정5.2. 자진사퇴
6. 그 이후
6.1. 해임의 여파6.2. 차기감독 선임
7. 논란과 평가8. 총평9. 경기 결과

1. 개요[편집]

한국축구 최악의 암흑기

One team, One spirit, One goal

하나의 팀, 하나의 정신, 하나의 목표

우리나라 A급 선수들은 유럽에 나가면 거의 B급인데, K리그에 있는 선수들은 그보다 밑에 있다. 잘 하지만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선수와, 수준은 떨어져도 경기에 나가고 있는 선수가 있을때 선수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 홍명보 감독의 사퇴 기자회견 현장에서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는 쓰지 않겠다'라는 본인이 세운 원칙을 어긴 것에 대한 변명.[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제69대 감독 홍명보의 대표팀에 대해 다룬 문서.

2. 선임과정[편집]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이후 허정무호의 뒤를 이어 출범한 조광래호는 결국 레바논 쇼크삿포로 참사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침몰한다. 그러나 조광래 감독의 전격 해임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일단 저지르고 보는 대한축구협회병맛 행정에 불과했다. 후임자 인선에 대해서는 전혀 대비가 없어 우왕좌왕하다 결국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 조중연은 개인 연줄로 전북 현대 모터스최강희 감독을 윽박질러 대표팀 감독 자리에 앉힌다. 조중연과 최강희는 사제지간으로 최강희 감독이 계속 거절하자 개인적으로 만나 같이 소주를 마시면서 간청(?)했다고 한다. 상하관계, 위계질서 빡세기로 유명한 대한민국 체육계에서 이런 무언의 협박(...)을 이겨낼 용자가 과연 있을까? 최강희 감독은 울며 겨자먹기로 국가대표 감독직을 수락했지만, "난 무조건 예선까지만 한다. 본선 감독은 따로 찾아야 할 것"이라고 폭탄선언을 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에는 성공했지만, 최강희 감독은 처음 공언한 것처럼 예선이 끝나자마자 스스로 물러났다. 당시 최강희호의 경기력이 팬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여 많은 비난을 받아 축협이 유임을 시키고 싶어도 불가능한 분위기였다.

축구협회는 홍명보, 김호곤, 셰놀 귀네슈마르셀로 비엘사로 추정되는 4인을 최종 후보 운운하며 언플을 시도했으나 물론 구체적인 접촉은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홍명보를 감독으로 앉히기 위한 언플이 아닌 최강희 감독을 그대로 연임시킬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3연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조1위로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면 아마 축협에선 언플, 회유, 협박(...)으로 온갖 구실을 붙여서 하기 싫다는 최강희 감독을 본선까지 끌고 가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시아예선 마지막 3연전을 개판으로 치른 게 오죽하면 최강희가 일부러 그랬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2] 실상 처음부터 홍명보 감독을 내정했다는 상황은 불을 보듯 뻔했고, 6월 24일 이를 공식 발표했다. 최초로 소식을 전한 스포츠 칼럼니스트인 이영미 기자의 단독 기사가 나간 뒤에 맞다 아니다 갑론을박이 오갔지만 그냥 연막작전에 불과했다.

홍명보 감독의 선임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고, 현실적으로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엉망진창이 된 대표팀을 다잡고 월드컵에서 성과를 내는 일은 홍명보가 아니라 누가 와도 불가능한 임무로 보이기에 이런저런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당장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사례를 떠올려 보자.[3] 결국 축구협회는 홍명보 감독을 선임했다.

다만 축구협회의 재정 문제로 외국인 감독 선임을 반대하는 시각이 존재하기는 했다. 협회의 주요 수입중 하나였던 토토 수익금이 정부 정책 변화로 반토막이 나면서[4] 안 그래도 예산이 빡빡해진 상황에서 명장 선임은 불가능한 일이다. 당장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만 해도 연봉이 250만 달러를 받는다. 사실 거스 히딩크 감독조차 커리어를 망치고 실업자 신세일 때 헐값에 낚아채온 것일 뿐, 대한축구협회 예산으로 지불 가능한 연봉은 100만 달러 정도가 한계다. 예산을 무시하고 영입했을 경우 다른 부분에서 당겨쓸 수 밖에 없는데, 그만한 자금을 뽑아낼 수 있는 건 유소년 축구 예산정도다. 당장 1년 후를 위해 미래를 버리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계약기간은 2년으로 계약기간만 따지면 2013년 6월부터 2015년 6월까지, 즉 2014년 브라질 월드컵과 2015년 호주 아시안컵 대회까지 맡게 될 예정이었다. 이 계약기간은 홍명보 자신이 요청한 것이라 밝혔다. 축구협회가 장기계약을 제안했지만 장기계약을 하면 자신이 나태해질 것 같아서 그랬다고. 그리고 축협은 브라질 월드컵 알제리전의 악몽을 보고도 바로 경질은커녕 왠지 평소답지 않게 홍명보의 계약기간을 지키고자 했다. 전설적인 축구선수였으며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무쌍난무를 보여줬던 차범근 감독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게 5대 0으로 대패하고 바로 경질되었던 것과는 매우 다른 행보. 다만 차붐은 현역은퇴 이후에는 한국축구계 기준으로 약간 아웃사이더끼가 있었던 레전드였지만, 홍명보는 한국에서 모든 엘리트코스를 다 거치고 올라온 축협과 한국축구의 적장자라서 감싸고 돌았던 것으로 보인다.

감독으로서 홍명보가 내건 모토는 'One Spirit, One Team, One Goal'.

역대 성적을 보면 히딩크 이후 역대 한국 국대 감독 중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이는 졸장이라 미친 듯이 까이던 조 본프레레, 경기장에서 야유가 터져나오던 핌 베어벡 등보다도 못하고, 허정무조광래, 최강희는 홍명보와 비교하면 희대의 명장으로 보일 정도이다. 허정무 이후의 국대 감독들이 팀의 장점을 살리기는 커녕 이해할 수 없는 선수 기용 및 포지션 파괴, 엉성한 전술[5] 등을 일삼으며 국대를 퇴보시킨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6]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나쁜 성적인 것은 사실이다. 기본적으로는 전술적인 시도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며, 경기 감각이 없다시피한 박주영을 강한 의지로 무리하게 기용했으며 이미 은퇴를 선언한 박지성을 복귀시키기 위한 언플을 여러차례 시도했다.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선수기용 및 전술에 대한 기사보다도 박주영, 박지성에 대한 기사가 훨씬 더 많았던 상황은 결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선수 시절의 업적이, 특히 월드컵 4강의 주역이라는 점으로 인한 호의적인 시선이 매우 많이 존재했었기 때문에, 홍명보에 대한 비판 자체를 일절 거부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이 존재했다. [7] 언론 또한 다른 사람이었다면 비난에 가까운 기사들이 쏟아져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매우 호의적이고 희망적인 관측만을 반복했다. 쉽게 말하면 2002년 월드컵 이후 역대 최악의 전력을 가진 잉여 국대와 국대 잉여화의 장본인을 상대로 과분한 옹호를 해 준 것.

그러나 아무리 정신승리하고 격려를 해도 월드컵이 코앞에 다가온 시점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결국 6월 24일 SBS 뉴스에서 아시아 국가의 무승 이유 중 사령탑의 고집 때문이라고까지 불리게 된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박주영도 까인 건 덤.

3. 코칭스태프 명단[편집]

직책

이름

국적

생년월일

감독

홍명보

대한민국

1969년 2월 12일

수석코치

김태영

대한민국

1970년 11월 8일

코치

박건하

대한민국

1971년 7월 25일

GK코치

김봉수

대한민국

1970년 12월 4일

피지컬트레이너

이케다 세이고

일본

1960년 12월 16일

4. 활동[편집]

4.1. 2013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명보호/201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2014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명보호/2014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명보호/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재신임과 자진사퇴[편집]

5.1. 재신임 결정[편집]

대한축구협회는 원칙론에 따라 홍명보 감독 유임으로 가닥을 잡고 있으며, 홍명보의 퇴진은 자진사퇴가 아닌 방법으로는 어려워 보인다. 아시안컵까지 6개월밖에 남지 않아 새로운 감독으로 대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이유. 같은 아시안컵에 출장하는 일본과 이란이 모두 감독을 교체한다는 사실과 4년 전 조광래가 월드컵 후 6개월 사이에 팀 컬러까지 대대적으로 바꾸면서도 아시안컵 4강까지 갔었다는 사실을 들어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 감독이 꾸준히 대표팀을 이끌어 틀이 잡혀 있던 그 당시 상황이랑 4년 간 3명의 감독이 거쳐갔고 이제 감독이 된지 1년을 갓 넘긴 홍명보호를 일본, 이란, 조광래호랑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애초에 당시 허정무 감독은 원정 사상 첫 16강 진출도 성공하고 대표팀 사기도 올라와 있던 반면 지금은...

물론 전방위적으로 맹비난을 받고 있는 홍명보를 계속 쓰더라도 문제가 있다. 2007년 9월 19일 일본과의 2007년 아시안컵 3위 결정전(승부차기 6-5승)에서 퇴장당한 홍명보 당시 코치에게 AFC가 8경기 출장정지라는 징계를 확정하였는데, 해당 징계는 AFC가 주관하는 아시안컵 예선·본선과 AFC를 대표하여 참가하는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적용되므로 홍명보는 아시안컵 본선 첫 2경기에서 감독석에 앉을 수 없다.

대한축구협회는 7월 3일 홍명보 감독의 거취를 결정하여 발표하기로 했다. 홍명보의 유임을 공식화하려는 요식행위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날 아침 뜬금없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리고 7월 3일 축구협회 허정무 부회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홍명보 감독의 유임이 확정되었다. 홍명보가 사임을 표명했으나 그 마저도 반려했다고 했다.#

98 프랑스 월드컵 때 성적부진으로 조별예선 중에 조건없이 바로 해임시켰던 차범근과는 정반대로 똑같이 외국에서 열렸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성적부진을 보였던 홍명보는 계속 남게 되었던 것. 이에 격분한 차두리트위터에 아버지 차범근을 대신하여 "98년에는 왜...?"라는 트윗을 남겼는데 여기 사실상 자기 아버지는 가차없이 자르고 똑같이 부진했던 홍명보에 대해서는 그대로 남으라는 것에 대한 축협을 향한 돌직구적인 성격이 짙었다. 즉 1무 2패라는 성적에 있어서 아버지나 홍 감독이나 똑같은데 내 아버지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모가지를 잘랐더니 오히려 홍명보에 대해서는 달래는 식으로 그대로 남아라는 식이었으니 98 프랑스 월드컵 때 자기 아버지에게 상처를 주었던 축협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추정된다.[8]

축협은 98년 당시 "차 감독의 전술은 이미 실패작 수준이었고 선수기용도 도저히 이해못할 고집스런 수준이었다." 라는 이유로 차범근을 중도경질했었다. 정작 저 당시에는 이번 홍명보호와 비교했을때 축구 강국과의 객관적인 전력차도 컸고, 조편성은 그야말로 죽음의 조 그 자체. 평가전 황선홍의 부상, 첫 경기 하석주의 백태클 퇴장과 같은 불운도 있었다. 반면 홍명보호는 조별리그부터가 역대급 꿀조였는데다가 러시아 골키퍼가 손에 기름을 묻히고(...) 벨기에가 주전 체력 안배하려다 퇴장까지 당했는데도 전술과 엔트리 구성, 용병술 때문에 이기거나 비길 가능성이 있던 경기를 싹 말아먹었다.[9] 월드컵 주장이자 선배였던 홍명보에 대한 감정과 별도로 차두리가 협회의 전근대적 행정과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다.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로 홍명보 감독에 대한 거취가 논란이 되었지만, 결국 축구협회는 애당초 계약한대로 아시안컵까지 홍명보 감독에게 대표팀 지휘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유임 직후에 알려지기로는 2007년 아시안컵때 코치로 받았던 8경기 징계가 남아있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대한축구협회의 답변에 따르면 징계가 대회 종료후 3경기로 경감되어 현재 출장에는 무리가 없다고 한다.

5.2. 자진사퇴[편집]

유임이 결정된 이후 홍명보가 최종 엔트리 발표 전후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신도시에 위치한 토지를 매입하러 돌아다녔다는 내용의 기사가 이투데이의 보도#를 통해 나왔고, 이후 SBS 뉴스토리가 보도를 이어나가자 홍명보의 입지가 위태롭게 되었다.

7월 10일 오전 10시에 거취 발표를 하겠다고 알렸는데, 7월 9일부터 MBN을 비롯한 일부 언론은 홍명보가 사퇴할 것이라는 보도를 내기 시작했다. 기사(MBN) 기사(스포츠서울) 결국 홍명보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진사퇴를 선언한다. 공식발표

YTN에서는 사퇴기자회견을 생중계하면서 덧붙여 벨기에전 종료후 현지 회식동영상일간스포츠로부터 받아서 방영하였는데 폭탄주를 말아먹고 여자를 끼고 노래를 하는 모습들이 모자이크 처리로 방송이 되었다. 1무 2패로 예선탈락했던 상황에서 그들은 쳐진 분위기를 띄운다고 브라질 현지에서 폭탄주를 말아먹고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10]

이 회식을 취재한 김환 기자의 말에 따르면, 사퇴 기자회견 전날에 축협에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기사를 올리겠다고.[11] 그런데 그날 오후 8시에 갑자기 축협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그 내용은 "내일 홍 감독의 사퇴 기자회견이 열릴 것이다."(...) 실제로 당일 오후 8, 9시경부터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 순위에 '홍명보', '축협 기자회견'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즉 홍명보와 축협은 계약 기간 끝까지 버텨서 아시안컵에서 분위기 반전의 기회를 찾으려 했으나 가뜩이나 좋지 않은 여론과 결정타로 폭탄주 회식 기사까지 더해질까봐 전날에야 부랴부랴 사퇴를 결정했다는 것이 된다.

기자회견에서 홍명보는 "비판을 받기 위해 일부러 사퇴하지 않았다", "충무공의 정신을 가지고 임했다"라는 다소 무책임해 보일 수 있는 발언을 날림으로써 그동안에 그나마 홍명보를 지지해준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기게 되었다. 다음 발언으로 논란과 연속이었던 행보를 역시 또다른 어그로로 마침표 찍게 된다. "국내선수들과 전지훈련을 했고,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과 비교를 했다. K리그에서 잘하는 선수들이 유럽에 진출한다. 결국에는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더 낫다는 판단을 했다. 분명 실력차는 존재하고 앞으로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한국 축구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마지막까지 실망스런 모습을 보였다.

이때 선수들에 대해서 등급별로 나누는 발언을 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단 참조.

엔트리 논란에 대해 "월드컵을 나가는 감독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데려가는 감독은 없다. 철저하게 검증을 했고 냉정하게 판단을 했다. 100% 자신 있게 '엔트으리'는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밖에서 좋지 않게 비춰졌던 것은 제 실수라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한편 논란이 된 토지 구입에 대해서도 "땅 문제는 개인적인 것, 비겁하게 살지는 않았다."라며 입을 털었는데 이에 대해 영국 축구 칼럼리스트인 존 듀어든은 "자신에 대한 비난이 사생활까지 퍼져 나가자 사퇴한 것"이라며 이를 일축했다.[12] 다른 언론들 또한 여론이 가라 앉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 언론이 사생활 문제를 끄집어내자 그제서야 사퇴를 한 것이라고 깠다. 부동산 구입 건에 대한 홍명보의 해명은 비유하자면 숙제도 안하고 어딜 놀러다니느냐는 꾸지람에 아들이 '어머니 저는 그렇게 비겁하게 살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격인데, 뭘 잘못 알아들은 건지 변명이 전혀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리고 허정무 부회장도 사퇴를 발표하였다. 언론에선 황보관도 사퇴했다고 발표했으나 곧 정정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홍감독 사퇴이후에 일명 2012 런던 올림픽 출신의 [13]이 SNS에서 하나같이 의미심장한 글을 올리면서 파벌놀이 관련 논란은 가속화. #

6. 그 이후[편집]

6.1. 해임의 여파[편집]

홍명보 감독은 사퇴했지만, 실력있는 외국인 감독이 온다고 한들 여러가지로 불확실한 변수들이 많아 아시안컵 역시 낙관하기 힘들다.

뭔가 변화를 꾀하려고 해도 새 선수들을 뽑고 새 전술을 실험하기엔 7개월 남은 기간은 너무 짧다. 아시안컵까지 많아봤자 두세 차례 평가전을 치루는 게 다라고 보면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홍명보 감독을 해임하고 새로운 감독을 찾아도 문제인 이유이기도 하다.

2010년 오카다 다케시가 월드컵 끝난 후 사임하여 맡은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이 1년만에 일본을 다시 AFC 아시안컵 우승팀으로 만든 사례도 있지만, 이는 오카다 아래에서 오랫동안 팀이 만들어진 것을 바탕으로 차케로니가 우승시킨 것이다. 2014년의 한국 대표팀과는 상황이 다르다.

그렇다고 브라질 월드컵 전술과 멤버들 그대로 가자니, 경기력을 담보할 수 없다는 고민이 있다. 브라질 월드컵은 전술의 실패 이전에 전술에 맞춰 뽑은 선수들이 전혀 전술에 맞게 움직이지 못해서 망한 것인데, 남은 7개월동안 월드컵에서 부진했던 선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극적인 반전을 이뤄내야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폼이 바닥까지 떨어진 박주영, 지동원 등이 2년전 런던 올림픽 때 몸상태로 돌아가서 주전경쟁을 이겨내야하고, 플레이 스타일 자체가 변해버린 구자철, 김보경 등이 예전 스타일로 회귀해야 한다. 이 또한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아시안컵을 버리자는 얘기도 들려오는데, 좀만 깊게 생각하면 이것도 무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2019년 아시안컵부터 대회 규정이 크게 바뀐다. 참가국이 현행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확대된다. 즉 대한민국의 오랜 숙원인 아시안컵 우승을 향한 여정이 더욱 험난해지는만큼 이번 대회를 멋대로 포기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또한 2019년 대회부터 아예 아시안컵 예선까지 월드컵 예선과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오랜 숙원 이런 문제가 아니라 이번 아시안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다음에 여러가지로 어려워질 수 있다.

이는 바꿔 말하자면 이번 대회까지는 아시안컵 예선 따로, 월드컵 예선 따로였단 얘기다. 지금 대한민국 대표팀이 아시안컵에 참가할 수 있는 이유는 순전히 전전임 조광래 감독이 2011년 AFC 아시안컵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자동 진출권을 획득한 덕분이다. 즉 이전 아시안컵에서 만약 성적을 못 올렸다면 월드컵 예선과 아시안컵 예선을 동시에 치루는 고난의 행군을 치루면서 참가해야 했던 대회이다. 이런 꿀밥상을 차려줬는데도 성적을 못낸다면 더욱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팬들로부터 요구되는 성적은 한국은 1988년 이후론 줄창 3위 이하의 성적을 기록했으므로[14] 최소한 결승진출.

일단 아시안컵 전에 확정된 A매치는 11월의 요르단 원정이지만 일본 언론에서 9월 한일전 추진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축구협회는 사전에 논의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만약 한일전이 성사되고 여기서 패하면 진정한 헬게이트가 열릴 것이다. 특히 국민정서상 결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한일전에서 패한다면 축협은 또 국민들에게 욕만 무진장 먹을 것이다.

헬게이트를 두려워했는지 축구협회는 9월 한일전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9월 A매치는 9월 5일 베네수엘라, 9월 9일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이 확정되었다.

6.2. 차기감독 선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슈틸리케호/선임과정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논란과 평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명보호/논란과 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총평[편집]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최초의 4강 신화, 최초의 원정 16강, 최초의 원정 1승 등 숱한 업적을 남긴 우리나라에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역대 최악의 시련이며 흑역사이다.

이 흑역사가 벌어지게 된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나는 막장 행정 능력을 보여준 축구협회, 의리의 엔트리라고 비아냥 거릴정도로 강경했던 잘못된 선수 기용, 지나치게 짧은 준비 기간 등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이유가 있다.

일부 옹호자들은 최강희호에서 이미 경기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최강희호의 잘못으로 먼저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나, 최강희호의 특수한 상황은 홍명보호에 전혀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홍명보호가 더 상황이 안 좋다. 최강희호는 조광래호부터 시작된 해외파-국내파의 파벌로 갈라진 한국국가대표팀을 경쟁체제로 돌리는 원칙을 세우고 봉합하려고 노력했다. 단순히 예선을 통과했다고 최강희를 옹호한다면, 그거야 말로 잘못된 말이다. 이에 조광래호로부터 해외파 우대에 젖어 불만을 가지고 팀이 흔들리고 선수들 장악에 실패했었다. 그리고 선수가 감독을 뒷담화해서 팀 분위기가 개판이기라도 했지, 홍명보호에 어디 그런 게 있었는가?[15]

사실 홍명보 감독도 2012년 런던 올림픽 4강 때는 나름 좋았던 상태였다. 물론 올림픽이랑 월드컵이랑 똑같은 수준으로 생각한 건 잘한 게 아니다. 이미 월드컵 전 A매치서부터 불안감을 노출하기 시작하더니,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들어서서는 위의 모든 문제점들이 합해진 모습으로 1998년 이전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게다가, 월드컵이 끝난 후 홍명보호는 끝까지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부지 매입 논란이야 월드컵 시작 이전에 약속이 잡혀있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곤 하지만, 대표팀의 음주 회식 논란, 이구아수 폭포 파벌[16] 등은 옹호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결국 홍명보 감독은 사퇴하게 되었고, 사퇴 기자회견에서마저도 좋지 못한 인터뷰 자세를 보이면서 홍명보호는 완전히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더군다나 홍명보 감독 사퇴 이후 감독선임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펼쳐진 베네수엘라와의 A매치에서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 때 선발하지 않았던 이명주, 이동국의 골에 힘입어 3:1로 승리를 거두면서 그 능력이 더 한심했음을 증명하는 꼴이 되었다.

여기에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에서 비록 0:1로 지기는 했지만 이게 브라질 월드컵때 처참하게 박살난 팀인가를 의심하게 할 정도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더더욱 홍명보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졌다.[17][18]

그리고 그가 그렇게 비하했던 B급 리그라고 불렸던 K리그, 그리고 그 2부인 K리그 챌린지에서 활동하는 임창우[19]와, 끝내 자신이 외면했던 포항 스틸러스의 김승대, 전남 드래곤즈의 이종호, 울산 현대의 김신욱같은 K리그 선수들의 활약으로 28년만에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따내면서 홍명보의 명예는 더더욱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가 외면했던 선수들이 스스로 한국 축구의 상처를 치유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 선수들의 상당수가 현재 해외 리그의 러브콜을 받고 있기까지 하니 더욱 그렇다.

또한 슈틸리케호는 2015년 1월 17일로 신태용 대행전을 제외하고도 6승을 달성함에 따라 홍명보호 1년의 승리 기록을 3개월여만에 그냥 뛰어넘었다.

그리고 1월 31일 기준으로 슈틸리케호는 A매치 11전 8승 3패에, 6연승에 아시안컵 결승진출에 치열한 명승부 끝에 준우승이라는 뛰어난 결과를 기록하고 있어, 전임감독인 홍명보는 자기가 가진 전력보다 더 약화된 데다 조직까지 완성되지 않은[20] 팀을 이끌어야 했던 슈틸리케와 비교당하며 커뮤니티에서 부관참시를 당하고 있다. 1년의 재임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패배를 당하고 겨우 5승을 거뒀던 홍명보호의 승수를 신태용 감독대행시기를 빼도 4개월만에, 그것도 연승으로 추월해 버렸다. 게다가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이라는 훌륭한 공격수 자원까지 발굴해내며 시간과 선수 부족을 핑계로 삼던 홍명보를 부관참시했다. 만일 홍명보가 감독직을 유지하여 2015년 아시안컵에 참가하였다면 결승 진출이라는 큰 성과는 없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거나, 만에 하나 결승에 진출했다고 쳐도 그 과정이 좋다고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홍명보호는 한국축구에 길이남을 흑역사와 커다란 똥덩어리를 잔뜩 만들어놓았다. 다행인 것은 오히려 이 덕분에 해이해졌던 한국축구계가 부활할 방향과 기회를 확실히 잡을 수 있을만큼 자각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 시기의 위대한 업적(?)들을 극복한다면 한국축구계는 다시한번 화려하게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슈틸리케호는 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새로운 자원을 발굴, 기용하고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성찰로 인하여 아시안컵에서 전승준을 달성하고 2진급으로 참여한 동아시안컵에서도 우승을 달성하였으며 월드컵 예선에서도 무실점 전승으로 순항하는 등, 총체적 난국에 빠졌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앞으로도 새로운 가능성과 지속적인 발전이 기대되는 수준이었으나......후임 감독 울리 슈틸리케의 행적에 대해서는 슈틸리케호 문서로.

9. 경기 결과[편집]

경기 수

승률

비고

19

5

4

10

26.3%

2013년 동아시안컵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날짜

상대 팀

경기 결과

득점

개최지

대회

득점 선수

비고

2013년 7월 20일

오스트레일리아

0 : 0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2013년 EAFF 동아시안컵

2013년 7월 24일

중국

0 : 0

대한민국, 화성시

2013년 EAFF 동아시안컵

2013년 7월 28일

일본

1 : 2

대한민국, 서울(잠실)

2013년 EAFF 동아시안컵

윤일록

2무1패 3위

2013년 8월 14일

페루

0 : 0

대한민국, 수원시

친선 경기

2013년 9월 6일

아이티

4 : 1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친선 경기

손흥민(2골) / 이근호 / 구자철

2013년 9월 10일

크로아티아

1 : 2

대한민국, 전주시

친선 경기

이근호

2013년 10월 12일

브라질

0 : 2

대한민국, 서울

친선 경기

2013년 10월 15일

말리

3 : 1

대한민국, 천안시

친선 경기

구자철 / 손흥민 / 김보경

2013년 11월 15일

스위스

2 : 1

대한민국, 서울

친선 경기

홍정호 / 이청용

2013년 11월 19일

러시아

1 : 2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친선 경기

김신욱

2014년 1월 25일

코스타리카

1 : 0

미국, 로스앤젤레스

친선 경기

김신욱

2014년 1월 29일

멕시코

0 : 4

미국, 샌안토니오

친선 경기

2014년 2월 1일

미국

0 : 2

미국, 카슨

친선 경기

2014년 3월 5일

그리스

2 : 0

그리스, 아테네

친선 경기

박주영 / 손흥민

2014년 5월 28일

튀니지

0 : 1

대한민국, 서울

친선 경기

2014년 6월 9일

가나 공화국

0 : 4

미국, 마이애미

친선 경기

2014년 6월 17일

러시아

1 : 1

브라질, 쿠이아바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이근호

2014년 6월 22일

알제리

2 : 4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손흥민 / 구자철

알제리 쇼크

2014년 6월 26일

벨기에

0 : 1

브라질, 상파울루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1무2패 H조 4위


19전 5승 4무 10패 승률 26.3% 역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통틀어 최악의 승률이다. 한국 축구 국대의 FIFA 랭킹이 2014년부터 하락하여 올라가기 어렵게 된 건 사실상 홍명보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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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소리다. 홍명보가 감독 자질이 없음을 자기 스스로 말한 셈이다. 유럽리그 벤치에 앉아있는 선수가 과연 케이리그 주전선수보다 클래스가 높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논리라면 해외파 선수들, 특히 유럽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엔트리 총 수보다 많아지면 K리그 선수를 하나도 뽑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자기가 한 말을 주워담지도 못할 만큼 무능력하고 한심하다는 것을 광고한 꼴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해외파 선수들이 처음부터 해외파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고 당연히 해외파 선수들도 대부분이 K리그 출신 선수들이다.[2] 결론을 말하자면, 일부러 그런 건 절대 아니며, 오히려 최강희 감독은 조광래 때문에 축구인 인생을 망칠 뻔 했다. 관련 기사 참고.[3] 그래도 아드보카트는 원정 첫승, 지네딘 지단이 있던 프랑스와 비기고 승점을 무려 4점이나 따냈다. 절대 실패라고 볼 수는 없다.[4] 그동안 축협에 주던 해외축구토토 수익금을 비인기 종목으로 돌려버렸다.[5] 인터넷 시대로 접어들면서 스포츠 관련 커뮤니티에서 무전술이라는 말을 쓰지만 엉성한 전술이라면 몰라도 무전술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6] 그나마 조광래호의 경우에는 월드컵이 3년 남은 만큼 여러 가지 전술적인 시도를 하다가 삿포로와 레바논에서의 대참사로 인한 여론 악화로 인해 경질된 사례고, 최강희호는 월드컵 본선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아시아예선 통과만을 목표로 삼아서 해외파의 항명 파동에도 불구하고 목표 달성 자체에는 성공했다. 반면 홍명보호는 단기간에 맞춰서 당장 뽑아 갈 수 있는 최정예 멤버를 뽑은 것도 아니고, 전술적 시도 자체도 박주영같이 소속팀에서 매우 부진한 해외파들을 기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퇴보 운운하는 것은 전임 감독 둘에게 실례에 가까운 행위라고까지 볼 수 있다.[7] 사실 무조건적으로 홍명보를 옹호하는 빠들도 많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정 축구팬이라기보다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에만 축구를 보는 "조건부 축구팬"이란 한국 축구판의 특성도 작용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평상시 대표팀이나 선수들에 관심이 없다가 월드컵 때만 관심을 갖는데, 홍명보가 듣보잡인 (어디까지나 이들 시점에서) 동아시아컵에서 부진한 것보다는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거둔 것, 그리고 과거 선수로서 2002 월드컵 때 팀을 잘 이끈 것에만 집중을 한 것. 게다가 이런 조건부 축구팬들은 올림픽과 월드컵 축구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큰 대회에서 잘하면 됐지"라는 심정으로 응원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2014년 월드컵때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부진을 하며 이들도 등을 돌렸지만.[8] 당시 10대였던 차두리는 자신의 영웅이었으며 전 국민의 영웅이었던 아버지 차범근이 월드컵의 결과로 인해 한 순간에 대역죄인 취급받고 중국으로 도망치듯 떠났던 것이 굉장히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고 다큐멘터리에서 회고한 적이 있다. 실제로 차두리는 언론인을 꿈꾸고 있었으나, 언론이 아버지에게 매장에 가까운 기사를 쓰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학을 떼고 축구선수로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9] 기술위의 분석력 여부에 대한 얘기가 있는데 진위는 어찌됐건 기술위 측에서는 홍감독이 조언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있긴 하다.[10] 근데 이건 원래 비밀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발표했던 스케줄에 있던 것이다. 국민들을 속였다는 식으로 기레기들이 뻥 튀긴 면도 무시할 수 없다.[11] 축협의 허락을 맡기 위한 것은 아니고 단순한 통보. "이러이러한 기사를 내일 내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계세요."와 같은 것.[12] 평소에 최강희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고, 박주영이나 홍명보에 대한 비판은 많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13] 홍정호는 런던 올림픽에서 십자인대 부상으로 출전하진 못했으나 그 전부터 올림픽 대표팀 주장을 역임했었다.[14] 1992년 예선탈락, 1996년 8강, 2000년 3위, 2004년 8강, 2007년 3위 2011년 3위.[15] 최강희가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시간적으로 볼 때 기성용의 sns 파벌 놀이는 이미 최강희호 최종예선 첫경기부터 시작했다. 기성용은 아주 내가 못하기만을 바라시겠네라며 희한한 피해의식을 표출했으나, 최강희는 기성용이 파벌을 짓고 뒷담화하는 것은 알고 있었으면서도 꾸준히 출장시켰다. 기성용은 시작부터 최강희에게 불만을 가지고 시작한 상태이며, 이미 일종의 파벌까지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러므로 이 불씨는 조광래가 만들어놓았고, 최강희가 수습을 하려고 노렸했으나 불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첫 경기 교체출전시켰다고 반감을 가지고 대드는 선수를 다스리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며, 대부분의 팀에서는 축출하는 것으로 정리한다.[16] 어디까지나 이구아수 폭포 구경은 문제로 삼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명소를 구경가는 것을 남들이 뭐라할 수는 없는 일이고 게다가 숙소에서 폭포와 상당히 거리가 가까웠다고 한다. 이게 문제가 된 것은 이구아수 폭포를 구경간 사람들이 대부분 비런던파였기 때문. 당시 울산 현대 소속인 김승규, 김신욱, 이근호(당시에는 군인이라 상주 임대 중) 등을 볼 수 있다.[17] 실제로 신태용 코치는 베네수엘라 전에서 승리 후 "내가 알제리전 지휘했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라며 홍명보를 간접적으로 디스했다. 또한 이 당시의 베네수엘라라던가 우루과이를 보면,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의 벨기에, 러시아, 알제리와 비교해서 결코 못하는 팀이 아니기 때문에 9월 평가전처럼 월드컵 조별리그를 치렀으면 훨씬 선전했을 것이다.[18] 그나마도 후반 종료 직전 심판이 선언한 PK도 우루과이 선수들이 하도 항의해서 그냥 넘어가 버린거였다.[19] 게다가 임창우는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대회 첫 골과 결승전 결승골을 넣어 아시안 게임 우승에 매우 큰 공을 세웠다![20] 이게 이청용 결장과 더불어 결승전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