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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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아들 부부가 낳은 손자들과 함께.

이름

홍금보(洪金寶, 훙진바오), Hung Kam Po, Sammo Hung

국적

중화인민공화국

출생

1952년 1월 7일(현재 66세), 영국홍콩

신체

170~2cm, 100kg

학력

북경 중앙연극학원

데뷔

1961년 영화 '애적교육'

가족

배우자 고려홍, 딸 홍후유, 아들 홍천명, 홍천상, 홍천조


1. 개요2. 약력3. 기타4. 홍금보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

1. 개요[편집]

홍콩 액션영화의 대부

홍콩의 액션 배우, 감독, 프로듀서.

2. 약력[편집]

유년 시절의 이름은 삼모(三毛)로[1], 중국의 유명한 만화 캐릭터 이름에서 따왔다. 부모가 맞벌이였기 때문에 유년기를 조부모 밑에서 보냈는데, 할머니 전사앵(錢似鶯)은 여성 액션 배우였고, 부모도 모두 영화계 일을 했다. 여담으로 현재 부인은 영화배우 고려홍(高麗虹), 큰아들 홍천명(洪天明)은 홍콩 TVB MC 겸 배우, 둘째 홍천상(洪天祥)은 가수, 셋째 홍천조(洪天照)는 배우다. 장녀 홍후유(洪煦愉)도 연예계 진출설이 돈다. 한마디로 예능 패밀리. 원래 부인은 한국인 조은옥이었지만 이혼했고, 1987년작《동방독응(東方禿鷹)》에서 만난 고려홍과 1995년에 재혼했다. 3남 1녀가 모두 전처 소생으로 한중혼혈.

10살 때 할머니가 우점원(于占元) 중국희극연구학교(경극학교)에 입학시켰고, 8년 동안 훈련을 받았다. 이때 받은 예명이 원룡(元龍)이다. 칠소복(七小福)[2]의 첫째로 활약하며 무대에 섰고, 영화에도 출연했다. 당시 동기 가운데 원루(元樓 성룡), 원표(元彪)는 훗날 홍금보와 함께 그 유명한 가화삼보(嘉禾三寶)로 명성을 떨친다. 그 밖에 국내 팬에게 친숙한 인물로는 영화 《쿵푸허슬》에서 돼지촌 주인 부부를 연기한 원화, 원추가 있다. 영화 《트랜스포터》를 공동 감독한 원규도 멤버였다고.

9살 때, 애적교육(愛的教育)(1961)으로 영화 데뷔했다.[3] 이후 아역으로 몇 작품 더 출연했다.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든 때는 희극 학교를 졸업한 뒤였으며, 처음에는 배우가 아닌 스턴트맨으로 활동하며 무술 지도를 연구했다. 1970년, 무술 감독으로 신생 골든하베스트(嘉禾電影有限公司)와 계약했고, 1971년, 《탈명금검(奪命金劍)》으로 금마장 무술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후 이소룡의 《정무문》(1972)과 《용쟁호투》(1973)에 참여하였으며, 호금전 감독의 《영춘각지풍파(迎春閣之風波)》(1973)와 《충열도(忠烈圖)》(1975) 무술 감독을 맡았다. 또한 이 무렵 허씨 3형제의 《미스터 부》 1, 2탄(1976)에도 참여했다. 한마디로 홍콩 영화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굵직굵직한 작품들의 무술 감독을 모두 맡은 것.

1977년, 《삼덕화상과 용미육(三德和尚與舂米六)》의 주연 및 감독을 맡으며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시작한 홍금보는 1978년부터 가보영화사, 보상영화사, 보화영화사 등을 차례로 설립하며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홍금보는 기존의 쿵푸 영화 스타일을 탈피하고자 다양한 시도 끝에 영춘권에 주목, 영춘권을 소재로 《찬선생과 조전화(先生與找錢華)》(1978), 《패가자(敗家仔)》(1981)[4] 등을 감독했다. 영춘권에 대한 사랑은 먼 훗날 드라마 《영춘(詠春)》(2006)과 영화 《엽문(葉問)》(2008)으로 이어진다.

1980년대는 홍금보의 전성시대로, 1980년에 《귀타귀(鬼打鬼)》의 주연과 감독을 맡아 홍콩식 코믹 호러물의 전형을 제시하면서, 《강시선생(殭屍先生)》(1985)[5], 《강시가족》(1986)[6] 등도 연이어 흥행시키면서 강시 붐을 일으켰으며, 《프로젝트A(A計劃)》(1983), 《쾌찬차(快餐車)》(1984), 《용적심(龍的心)》(1985), 《비룡맹장(飛龍猛將)》(1988) 등의 영화를 제작, 감독하여 명실상부한 가화삼보의 시대를 열었다. 제작에 감독, 주연까지 도맡아 했던 《오복성(奇謀妙計五福星)》(1983)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복성 시리즈로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을 풍미한 이른바 '마담물'의 원조인 《예스 마담(皇家師姐)》(1985)도 홍금보가 제작했다. 이러한 홍금보의 활약으로 쿵푸 영화는 시대극에서 현대물로 변화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중후반에 대두한 홍콩 뉴웨이브 물결이 시간이 흐를수록 뻗어 나아가기 시작한 끝에 1990년대 홍콩 영화계가 뚜렷한 세대 교체를 이루자, 홍금보는 골든 하베스트와 결별하고 한 발 뒤로 물러나 후진을 양성하고 새로운 조류를 시험했다.

1997년, 영화 《나이스 가이》를 감독하면서 미국 시장에 데뷔했으며, 1998년 미국 드라마동양특급 로형사(Martial Law)》에 출연했다. 이 작품은 꽤 높은 인기를 끌었으나 무슨 이유인지 2시즌 44화로 종결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메달리온》(2003), 《삼국지 용의 부활》(2007)의 제작 및 《엽문》을 감독했다. 《살파랑(殺破狼)》(2005)에선 주연 악역으로 등장해서 견자단을 상대로 기존의 쿵푸 액션이 아닌 이종격투기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액션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엽문2》에서는 홍가권을 선보이기도 했다. 2016년에는 《홍금보의 보디가드(特工爷爷)》에서 주연을 맡아 살벌한 조직 범죄자들을 상대로 결코 녹슬지 않은 살상 액션을 보여준다.[7]

3. 기타[편집]

  • 영화상에서 홍금보의 수(手) 기술은 합기도의 동작을 바탕으로 하는데, 칠소복 멤버들 중 단연 최고. 이는 한국의 합기도를 익혔기 때문인데, 한국 합기도 계의 원로이자 왼발의 달인 황인식[8] 선생과의 인연 덕분이었다고 한다. 족(足) 기술은 원표, 공중제비 및 아크로바틱 모션은 원화가 으뜸이라고.

  • 홍금보의 스턴트 팀인 '홍가반(洪家班)'은 성룡의 '성가반(成家班)'과 함께 홍콩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고난도 스턴트를 소화한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각각의 특징이 있는데, 홍가반은 다이나믹하고 현실적인 액션과 개개인의 특성을 살린 아크로바틱한 모션을 중시한 반면, 성가반은 구성원이 똘똘 뭉쳐 치밀하게 합을 짜서,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는 데 중점을 둔다. 여담으로, 《비룡맹장》 후반부 공장 격투 장면을 보면 홍금보는 홍가반 멤버들과, 성룡은 성가반 멤버들과만 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 홍금보의 대표작들을 많이 제작한 보화(寶華) 영화사는 홍금보의 개인 영화 제작사였는데, 골든 하베스트의 추문희 회장이, 홍금보 주연의 영화가 지역 극장에서 2주일 넘게 상영되는 것을 보고 설립을 허락했다고 한다.

  • 10대 후반에 건강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엄청나게 살이 쪘고, 그 이후로는 100kg 이하로 떨어져본 적이 없다고. 하지만 보기와는 달리 매우 날렵하며, 육중한 몸을 이용하여 타격감이 확실하게 전달되는 액션을 선보이고 있다. 1987년, 《동방독응(東方禿鷹)》을 촬영할 때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 무려 20kg의 체중을 감량했다. 여느 때보다 홀쭉하고 날렵한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 가화삼보 중에서 원표는 꽤 오랫동안 홍가반 소속의 스턴트맨으로 활동하면서 홍금보와의 협력 관계를 계속 유지했으나, 성룡이 할리우드 진출을 시도한 후부터는 성룡과는 비즈니스상으로만 친한 관계였다고 한다. 홍금보와 성룡 두 사람이 워낙 거물급이라 앞으로도 재결합은 어려우리란 전망이 많다. 홍금보와 성룡은 둘 사이의 불화로 1988년 《비룡맹장》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같이 작업하지는 않았는데, 나중에는 개인적으로 풀었다고 한다. 성룡이 2004년에 주연한 《80일간의 세계일주》에 홍금보가 단역으로 나오기도 했다. 일단 알려진 사실로는 성룡이 서부극과 쿵푸를 혼합한 영화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서 홍금보에게 같이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는데, 홍금보가 그런 영화는 홍콩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성룡이 1986년, 《용형호제》의 촬영 중 부상으로 활동을 중지하고 있는 사이, 생각이 바뀐 홍금보가 원표를 데리고 《부귀열차》라는 서부극과 쿵푸를 섞은 영화를 찍어 개봉해버렸다. 그러자 화가 난 성룡이 《동방독응》의 출연제의를 거절했고[9] 가화삼보의 《프로젝트A2》를 단독 주연으로 찍기 시작했다. 이후 둘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지게 된다.[10][11] 하일복성의 촬영 도중에는 더욱 갈등이 심해져서 후반부에서는 아예 성룡이 나오지 않고[12], 《비룡맹장》을 촬영할 즈음에는 매 장면을 촬영할 때마다 서로 싸워대는 바람에 주변 스테프들이 굉장히 난감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홍금보는 미리 합을 짜두었던 쪽으로 하자고 주장할 때, 성룡은 거기서 좀 더 변형을 주자며 반박하는 식. 어떤 스턴트를 해야 할지 난감해진 성가반 소속 스턴트맨에게 성룡은 "너 어디 소속이야?"라고 묻고, 홍금보는 "너 둘 중에 누가 더 무서워?"라며 몰아붙였다고.

  • 홍금보와 성룡의 관계는 일종의 애증 관계로 보인다. 칠소복이던 시절부터 첫째 역할을 하던 홍금보에게 가장 반항했던 게 성룡이였고, 당시 홍금보가 원표에게 돈을 빌린(?) 다음 갚지 않자 대신 나서서 싸우기도 했다고 한다. 홍금보가 칠소복을 영화로 만들자 "홍금보는 어린 시절을 너무 미화했다. 그에게는 즐거운 추억이었겠지만, 우리는 끔찍했다"는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홍금보는 후에 인터뷰에서 불화설을 부인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성룡, 원표와 광동어로 말했다가 보통화로 말했다가 왔다 갔다 하니까 그게 오해를 부른 것 같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가화삼보의 재결합을 원하기는 하나, 성룡의 스케줄이 워낙 바빠서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성룡 역시 《런닝맨》에 게스트 출연했을 당시, 홍금보와의 사이에 대해 질문을 받자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고 답변했다.

  • 2007년 12월, 갑자기 사망 보도가 나와 전 세계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으나 곧 루머로 밝혀졌다. 사망 기사가 터지고서 하루에 생존 확인 전화를 1,000통 가까이 받았다고 한다. 이때 성룡도 전화를 걸어 "어이, 홍 형, 정말 죽었어?" 라고 장난스럽게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 입가에 큰 흉터가 있는데, 홍금보 본인은 구순열(언청이) 수술을 받은 흔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언청이 수술을 받았다고 하기에는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아역 출연한 《애적교육》의 장면 등을 보면 언청이의 흔적도, 수술 흔적도 아예 안 보이기 때문. 홍금보가 거리에서 싸움을 벌이다 깨진 병에 찔려 생긴 흉터라는 설이 있다.

  • 희극학교 시절, 성룡은 첫째 홍금보에게 혼난 적이 많았지만, 영화배우로 대성한 뒤 삼합회의 협박에 시달릴 때 홍금보가 나서서 막아준 것을 고마워한다고 한다. 실제로 홍금보는 삼합회가 홍콩 영화계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며, 삼합회가 배우들을 협박할 때마다 직접 나서서 막았을 정도로 거세게 항의한 사람이다. 이에 홍콩 영화계에서는 홍금보를 큰형님(大哥大)으로 부르며 존경한다고 한다. 모두들 벌벌 떨던 삼합회에 홍금보는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대들었기에, 한때는 홍금보가 삼합회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간부급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물론 이는 헛소문으로 밝혀졌다.

  • 성룡과 마찬가지로 젊은 시절에 충무로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이때 한국인 아내 조은옥을 만났다. 1970년대 초에 한국에 왔을 때 아내가 변경된 호텔 수속을 대신 해주고 호텔 방까지 안내해주려는데, 당시 사회 분위기가 보수적이었던 터라 프론트에서 신분증을 요구하며 막았다고 한다. 그러자 홍금보가 발끈하여, "이 여자는 내 아내요!" 하고 말하고 다음날 둘이 영사관으로 가서 결혼 수속까지 쿨하게 밟았다고 한다. 그러나 홍금보가 인기를 얻으면서 잦은 외박과 음주, 여자 문제로 시끄러워지자 결혼 생활 내내 다투다가 14년 만에 이혼했다. 2012년 장남 홍천명의 결혼식 때는 조은옥 씨도 가족으로 참석했다.

  • 한국인 아내와 결혼 생활을 하던 시절 한국 방송에 출연한 일이 있었는데, 그 당시 홍금보가 한국어를 좀 할 줄 알았고, 이는 세간에도 알려진 사실이었다. 다만 홍금보가 한국어를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들어보니 "아내랑 생활하다 보니까 반말만 할 줄 알게 돼서" 그렇다고...[13]

  • 원표 주연의 《집법선봉(執法先鋒)》 촬영장에 놀러갔다가 즉석에서 무술 지도를 맡았다. 후반부 격납고에서의 치밀하고 살벌한 격투 장면은 홍금보가 연출한 것.

  • 2000년대 이후부터는 중노년의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고 있다. 비슷한 연배의 성룡이 여전히 청장년 연기를 주로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

  • 의외로 얼굴이 전체적으로 작다. 보통 뚱뚱한 사람이 몸집도 크고 머리도 큰데[14] 홍금보의 경우는 웬만한 여자 연예인이나 꼬마하고 얼굴 크기가 비슷했다.

4. 홍금보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편집]

[1] 위에 써있는 영어 이름을 보면 알 테지만, 바로 유년 시절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2] 역대 멤버는 총 14인이라 한다. 때문에 말하는 팬마다 조금씩 멤버가 다르다. 가화삼보 외에 원규, 원화, 원덕, 원무, 원태, 원추, 원빈 등이 유명하다.[3] 사족으로,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여배우 임취(林翠)는 외팔이 무사로 유명했던 왕우(王羽)의 첫 번째 부인이다.[4] 홍콩 액션 영화 걸작선에 빠짐없이 꼽히는 작품. 홍금보는 한 인터뷰에서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으로 꼽았다.[5] 일본 개봉 제목은 《영환도사》, 국내엔 《생과 사》라는 제목으로 비디오로 먼저 나오기도 했으나, 이후 개봉할 때는 《강시선생》으로 개봉했다.[6] 일본의 개봉 제목 《영환도사2》를 국내 개봉에 활용, 《영환도사》로 개봉하여 한국에서도 주연, 임정영은 영환도사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7] 그러나 역시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예전처럼 치고 박고 싸우는 모습을 롱테이크로 촬영할 수가 없어서 그랬는지 짤막한 컷을 이어 붙이는 기법을 사용했다. 아무래도 '날으는 돼지'의 모습은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질 듯 하다.[8] 맹룡과강에도 출연했으며, 사망유희에도 출연 예정이었으나 이소룡의 사망으로 백지화되었다고 한다. 굉장한 속도와 위력을 가진 발차기와 꺾기 기술로 무술가들 사이에서도 명성이 높았고, 성룡은 황인식 선생의 무술에 반해 《사제출마》에 주연 악역으로 초빙했다고 한다.[9] 《동방독응》에서 원표가 맡았던 역할은 원래 성룡이 맡기로 했었다고.[10] 이 부분은 확신하기 어려운 것이, 프로젝트A2는 87년작인데 성룡은 자신이 주연한 1995년작 썬더볼트의 무술 감독을 홍금보에게 맡기기도 했다. 게다가 정말 사이가 나쁘면 아예 언급을 피하겠지만, 실제로 한국의 예능 프로에 출연했을 때도 농담 반 식으로 홍금보를 언급한 적도 있으니 둘이 완전히 소원한 사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정황들이 있다.[11] 다만 성룡이나 홍금보 모두 일에 있어서는 굉장히 욕심이 많아서, 각본 개입은 물론 한 번 결정내린 것에 대해서는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는 타입이라 함께 작품을 할 때도 의견충돌이 많았다는 증언은 많다.[12] 결국 이 영화는 가화삼보가 함께 찍은 마지막 복성 시리즈가 되었다.[13] 성룡 역시 배운 한국어가 죄다 반말이라, 당시 장난 삼아 가끔씩 던지는 한국어가 다소 무례해 보인다는 평도 있었다. 나이 든 이후에는 한국 방송에 나오더라도 인사말 정도만 한국어로 하고 영어중국어로 인터뷰를 진행한다.[14] 그래서 머리 큰 게 안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