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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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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호세 루이스 펠릭스 칠라베르트 곤살레스
(José Luis Félix Chilavert González)

생년월일

1965년 7월 27일

국적

파라과이 (Paraguay)

출신지

센트랄 주 루케

신체 조건

188cm

포지션

골키퍼

소속 클럽

스포르티보 루케뇨 (1982~1984)
과라니 (1984)
CA 산 로렌소 (1984~1988)
레알 사라고사 (1988~1991)
벨레스 사스필드 (1991~2000)
RC 스트라스부르 (2000~2002)
페냐롤 (2002~2003)
벨레스 사스필드 (2003~2004)

국가 대표
(1989 ~ 2003)

74경기 8[1]


1. 소개2. 클럽3. 국가대표4. 플레이 스타일5. 여담

1. 소개[편집]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골 넣는 골키퍼의 원조격. 뛰어난 왼발 킥 능력을 바탕으로 골키퍼 역사상 최초로 해트트릭을 달성한 선수

뛰어난 축구 실력에 걸맞는 좋은 인성과 열린 마음씨를 가진 선수

파라과이판 마동석

2. 클럽[편집]

스포르티보 루게뇨에서 데뷔한 칠라베르트는 과라니와 산 로렌조 등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뒤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한다. 하지만 칠라베르트는 사라고사에서 주전을 차지하지 못하고 벨레즈 사스필드로 이적한다. 벨레즈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칠라베르트는 아르헨티나 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자리잡았고,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특히 1999년 페로 카릴 오에스테를 상대로 3번의 PK를 모두 성공시키며 골키퍼 역사상 최초로 해트트릭을 성공한다.

2000년 칠라베르트는 RC 스트라스부르로 이적하며 유럽무대로 진출하여 2001년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끈다. 2003년 칠라베르트는 페냐롤로 이적한 뒤 벨레스로 돌아와 은퇴를 선언한다.

3. 국가대표[편집]

1991 코파 아메리카와 1993 코파 아메리카, 1997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하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칠라베르트는 팀의 16강 진출을 이끌었으며 16강에서 만난 프랑스를 상대로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프랑스의 공세를 막아냈다. 허나 아쉽게도 연장혈투 끝에 로랑 블랑이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골든골을 터트리면서 패해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1999년에는 자국에서 코파 아메리카 대회가 열렸지만 후술할 내용으로 불참을 선언한다.

2002년에는 한일 월드컵에 출전해 팀의 16강 진출을 이끌지만 독일에 패해 탈락의 고배를 마셨으며 2003년에 은퇴를 선언한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파라과이프랑스의 16강전 경기에서 칠라베르트가 보여준 선방 장면이다.

뛰어난 반사신경과 세이빙능력, 좋은 판단력을 지닌 골키퍼이면서 1대 1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뛰쳐나와 공격수를 제지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골키퍼다. 그리고 상술했듯이 킥이 좋아 프리키커와 PK 전담키커를 맡아 골을 자주 터트렸다. 어?

5. 여담[편집]

칠라베르트는 사회활동에 적극적이며 경제적으로 취약한 아동이나, 몸이 불편한 아동을 위해서 모금활동과 자선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협력하고 있다.

1999년 자신의 모국인 파라과이에서 코파 아메리카가 열렸는데 파라과이의 대표적인 유명선수였던 칠라베르트는 출전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경제적으로 혼란스럽고 어려운 파라과이에 지금 필요한 것은 코파 아메리카 같은 국제 대회가 아니라 학교와 병원이다."[2]


또한,

"파라과이에는 미국거지보다 못사는 1,800만 인구가 살고, 미국 부자보다 잘사는 20만명 부자가 산다.[3] 그런 부자들 이득을 대변하는 오비에도[4] 정권을 찬양할 결과를 만들고 싶지 않다."

라는 말을 남겼다. 오비에도는 무척 불쾌해했지만 당시 파라과이 대학생들이 칠라베르트를 대통령으로 추천하자고 무척 칭송했었다. 하지만 칠라베르트는 내가 정치에 나서면 상대방을 의회에서 패줄테니 말은 고맙지만 사양한다는 뜻을 밝혔다.

파라과이는 스페인어와 함께 공용어로 과라니어를 함께 쓰고 있는데, 칠라베르트는 이 과라니어 교사 면허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2002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브라질과의 경기를 마치고 나서 호베르투 카를로스가 자신을 놀린다며[5] 카메라를 통해 TV 생방송이 나오는데도 침을 뱉어 출장정지를 받았고 이 때문에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 1차전 남아공과의 경기에서는 관중석에서 경기를 봐야 했다.

2002 월드컵을 앞두고 마이클 오언, 에밀 헤스키, 제이미 레드냅, 에마뉘엘 프티 등 유럽 축구 선수들이 월드컵 공동개최국인 대한민국개고기 식용에 대해 반대하고 압력을 넣는 서명을 했는데,[6] 반면에 그는 한국의 개고기 식용은 한국의 전통문화라며 100% 지지한다는 말과 개고기를 반대하는 선수들이 있는 영국은 왜 개에게 각성제 먹여가며 벌이는 여우사냥을 그만두지 않냐고 했다. 링크 갈비찜을 두 그릇이나 먹고 아욱국 또한 잘 먹었다고. 링크 16강전에서 독일에게 종료 직전 아쉽게 골을 허용하여 지고 난 다음 인터뷰에서 파라과이 대표팀을 응원해준 한국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한국에 대해서 좋은 추억을 가지고 돌아간 듯.

[1] 이정도만해도 웬만한 수비수나 미드필더 뺨치는 수준인데 클럽에서 기록한 골까지 합하면 70여골이다.[2] 이는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개최 반대 시위 때 펠레호나우두가 보여준 태도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물론 히바우두와 같이 월드컵 개최를 반대하며 비슷한 의견을 보인 바 있다.[3] 이 말은 고증이 필요한 게, 2018년 현재 파라과이의 인구는 약 700만명 전후이다. 주민등록이 되지 않은 빈민층들이 정부에서 파악하는 인구의 2~3배나 될 수 있는가?[4] 당시 파라과이 대통령[5] 안그래도 경기 전부터 브라질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과 카를로스가 파라과이를 깔보며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했고 경기에 진 것도 화가 나는데 특히 자신이 실점당할 때 놀리기도 했고 끝나고 나서는 일어나! 인디오~(칠라베르트가 자신이 원주민 취급이 받는 것이 불쾌했다기보다는 카를로스가 파라과이에 많이 사는 과라니족을 비하하는 다분히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분노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정작 카를로스도 유럽에서 바나나 투척 등 인종차별을 당했다)라고 놀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면 참은게 더 대단한 거다.[6] 당시 FIFA 회장인 제프 블라터가 반대파인 정몽준을 깎아내리기 위해 월드컵 개최국인 한국에 개고기를 가지고 트집을 잡은 상황에서 생긴 일이라서 이들이 정말로 순수하게 동물보호의 뜻에서 동참했을지는 각자 판단하자. 그런데 웃기는 건 1996년 당시 월드컵 개최 경쟁을 할 당시, "한국이 개고기 안 먹으면 더 유리할 것이라능~"이란 망언이나 징징거리던 브리지트 바르도에게 당시 피파가 "그런 건 상관도 없다. 그리고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냐?" 라며 비아냥거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