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혼용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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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英混用體

1. 개요2. 한영혼용체 사용례 및 옹호3. 학술계의 문제점4. 일각의 반론: 학술용어 까지도 한국어를 보전하는것이 반드시 합리적인 것일까?

1. 개요[편집]

한글라틴 문자(로마자)를 섞어 쓰는 문체를 말한다. 영어병기와는 다르고 굳이 따지자면 국영문혼용체의 축소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일부러 한국어로 쓸 수 있는걸 외국어로 바꾸어 쓰는 보그체와도 다르다. 엄밀히는 영어 말고도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등 라틴 문자를 쓰는 모든 언어가 해당되니 한글-로마자 혼용체라고 하는게 맞겠으나 영어가 대표적이라 한영혼용체라고 한다.

보그체는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하는데 비해, 한영혼용체는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외국어(주로 고유명사, 학술 용어 등)나 약어, 인명 등을 라틴 문자로 표기한다. 한국어와 영어는 문자가 서로 달라서 어색해 보일 수 있으나 사실 이런 건 모든 언어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고급 어휘가 부족한 언어에서 자주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발전에 있어 좋은 현상은 아니기에 지양해야 하는 글쓰기이다. 복잡하고 구체적인 개념을 담을 수 있는 고급 어휘가 많은 언어일수록 지식의 축적과 발전, 외부 세계와의 소통이 수월해진다. 일본메이지유신 이후로 인재들을 해외로 유학보내고 번밀레를 돌려서 온갖 신조어를 양산한 것도 일본어의 고급 어휘를 늘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흔히 볼 수 있는 한영혼용체의 대표적인 예로는 UN이나 NATO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영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을 주 대상으로 하는 분야, 특히 과학기술 분야와 예술계 등의 서적에선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

2. 한영혼용체 사용례 및 옹호[편집]

유독 번역체와 관련이 깊은 문체이기도 하다. 대체로 한영혼용체를 쓰는 이유는 분명한 의미 전달을 위한 것이다[1].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아직 한국어번역된 말이 존재하지 않거나, 한국어로 번역된 말이 부적절하여[2] 잘못된 개념을 낳기 쉬운 경우에는 부득이하게 라틴 문자를 쓰기도 한다.

예) presumption이란 영어 낱말은 한국어로는 흔히 '가정'이라고 옮기지만 실제 영어에서의 뉘앙스를 정확히 반영하지는 않으므로 이하 본문에서는 원문을 그대로 기재한다.


다량의 논문 인용이 있는 경우에 인명을 표기할 때도 많이 쓰인다.

예) 이런 점에서 Milton Friedman의 서술은 상당히 흥미롭다.


이렇게 인명을 로마자로 그대로 적는 것은 인명의 발음을 몰라 한글로 적기 힘든 경우,[3] 또는 발음을 알아도 모든 인명을 하나하나 한글로 표기하기가 번거롭거나, 외래어 표기법이 실제의 발음과 차이가 크다고 생각해서 그런 경우가 많다. 이 중에서 외래어 표기법은 발음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통일된 표기를 정립하기 위해 만든 것이고, 애초에 외국어 발음을 한글로 정확히 옮긴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글쓴이가 외래어 표기법이 싫다고 하면 굳이 강요할 수는 없는 문제도 있다. 또한 이와 같이 외국어 고유 명사를 한글이 아니라 Latin Alphabet으로 적으면 이것이 외국어 고유 명사라는 시각적 효과를 분명하게 줌으로써 눈에 잘 띈다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에는 로마자를 못 알아보는 한국어 화자는 사실상 없기 때문에 로마자 단어를 한글로 굳이 표기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오히려 한글 표기시 혼란이 일어나거나 한글 표기를 놓고 논쟁이 생기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그냥 로마자 그대로 적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한국어에 익숙치 않은 외국인이나 재외동포, 유학생 등이 쓰기도 한다. 다만 이쪽은 한글 대신 로마자를 직접 쓰는 것을 제외하면 보그체에 더 가깝다.

예)Korea는 굉장히 traditional한 thinking에 사로잡힌 것 같아요.
(한국은 굉장히 전통적인 사고에 사로잡힌 것 같아요.)


단체 등을 나타내는 영문 약자의 경우 가독성 때문에 쓰인다고 볼 수도 있다. 한겨레의 경우 이러한 약자조차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가독성에 관해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고하자.

근데 저 약자는 모르는 사람이 많기때문에 그런 비판은 무효하다.

예 1) IAEA는 23일(현지시간)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을 대량 감축했다고 발표했다.


예 2) 국제원자력기구는 23일(현지시간)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을 대량 감축했다고 발표했다.


그밖에 몇몇 영문 약자들은 습관적으로 널리 쓰이기도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정원'(定員), '인원 배정'의 의미로 사용하는 TO[4]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자연과학, 공학 등의 이공계, 의학 분야는 영미권 학술지 위주로 이론이 전파되고 발전하는 특성상 개념을 나타내는 주요한 단어가 전부 영어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한영혼용체를 쓰게 된다. 이 분야에서 한영혼용체는 사실상 해당 전공자들이 사용하는 피진이며, 이들이 피진을 구사하는걸 들어보면 보그체가 서러워서 울고 갈 정도다.

예) organometallic compound라고 하면 좁은 의미에서는 metal-carbon bonding이 있는 화합물을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보면 nitrogen oxide, dinitrogen, phosphine 같은 것들이 metal과 covalent bond를 만든 것도 이것과 유사한 characteristic을 보이지. 유기화학 시간에 Grignard reagent를 배웠을텐데, 아주 대표적인 organometallic compound야. 여기 magnesium이랑 carbon 사이에 sigma bond가 있는 게 보이지?


해당 전공자들은 이런 말들을 입말로 구사한다. 이 예시의 내용은 학부 고학년 수준 수업에 해당한다. 공유 결합 같은 건 충분히 한국어 번역어로 대체해도 되지만, 애초에 이런 수업에서는 강의 자료 ppt도 영어고 강의 교재도 영어라 어쩔 수 없이 쓰는 경우도 많다. 눈으로는 covalent bond를 읽으면서 입으로는 '공유 결합'이라고 말하는 게 한두 번이면 모를까 수업 시간 내내 그 짓을 하기엔 교수도 학생도 힘든 일이다. 여기서 짚어봐야 할 문제는, 영문 학술지에서 수많은 개념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 단어는 한국어로 이렇게 번역하자.'라고 주도적으로 권위 있는 규범을 만들 수 있는 기관이나 사회적 합의체가 없다는 것이다. 대한화학회가 온갖 비난을 들어가면서까지 화학 술어(術語)를 영어 발음을 기준으로 개정하는 이유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5]

결정적으로 해당 전공 종사자나 학생, 교수 모두 기본적인 영어는 읽고 쓸 수 있다. 또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장 전공 교재들부터가 죄다 영어로 돼있다. 몇 가지 이유를 들어보자. 우선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개발, 출판되는 교재는 시장성 문제인지 기초 학부 수업용 교재 정도뿐인 반면에, 영어로 개발, 출판되는 교재는 차고 넘친다. 다음으로,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전문 번역자가 번역하는 교재가 없다시피하다보니,[6] 한국어로 번역한 교재는 읽기가 힘들 정도로 번역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그나마 이렇게라도 번역된 교재조차도 많지 않다. 결국 어지간해서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영어 원서를 그대로 쓰게 된다.

개중에 간혹 개념이 일본이나 중국에서 나온 것이라면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한글+영어+한자 혼용체'가 나올 수도 있다. 특히 일본의 생물학 수준은 세계구급이기 때문에, 생물학 관련 서적에서 종종 아래와 같은 '한한영(韓漢英) 혼용체'가 등장한다.

(예) HIV는 complex retrovirus로 여러가지 효소를 virion 내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cDNA를 transfaction해서는 감염이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逆相遺傳學的[7]으로 설계된 vector가 필요하다.


저걸 굳이 번역하면

(예) HIV는 복접한 레트로바이러스로 여러가지 효소를 비리온(바이라스의 최소 입자 단위) 내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cDNA를 수혈해서는 감염이되지 않는다. 역상유전역학으로 설계된 병독을 매개하는 곤충이 필요하다.


인문사회 계열에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영미권 학술지가 학문 발전을 주도하는 경영학과경제학과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3. 학술계의 문제점[편집]

중국이나 일본, 인도, 아랍권 등 수많은 문명의 저서들을 편찬한 찬란한 역사가 있는 영국의 경우 자기들이 번역하기 어렵다고, 또는 자신의 지적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번역되지 않은 외국어를 직접삽입하는 경우는 없다. 영국이 나름 세계사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문화강국이라고 했을 때, 영국인들의 그 문화의 저력은 바로 라틴어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이래 외국의 수많은 서적들을 자기언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고 그것들을 다양한 계층들의 일반대중들이 흡수하고 그것을 통해 뛰어난 학자들이 세대를 거듭하며 배출됐다는 것이다. 번역이 어렵다, 한글로 표기하기가 어렵다 핑계를 대면서 번역이 아니라 받아쓰기를 하는 짓은 능력이 떨어지는 번역자의 부끄러운 자질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지 결코 핑계가 될 수 없다. 음역하기가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중국이나 일본인들은 잘도 음역하고 의역하고 다 하는데, 우리만 못 한다는 것은 실력의 문제이다. 그리고 번역하기 어려운 개념은 괄호안에 원어를 표기하고 각주 등을 통해 부가설명으로 해결 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번역은 정답이 없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번역들이 탄생하면서 그 어려운 외국어의 본래개념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번역들이 축적될 때, 그 나라의 기초학문의 성과는 늘어난다. 한국 기독교, 천주교의 그 위대하고 방대한 성서한글번역이 없었다면 과연 인구의 3분의 1이 기독교인 현대한국이 가능할 수는 있었겠는가? 의학개념만 해도 한국은 한의학이고 현대의학이고 토씨 빼고는 전부 외국어다. 현대의학이 영어이고 한의학이 (고전)중국어라는 차이만 있을 뿐. 의학에서의 한중일 삼국의 번역률은 중국과 일본이 95%라면 한국은 10%도 안 된다. 이것은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다. 만약 중국과 일본은 가능한데 한국만 번역하기가 어렵다면, 그것은 한국어가 기본적으로 모자란 언어이거나, 또는 학자들의 번역실력이 중국과 일본인들에 비해 무능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일부 사람들은 굴절이 많은 한국어 구조상 중국어나 영어를 애초에 완벽하게 번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비슷한 굴절어인 핀란드어의 사례를 보면 그것도 사실상 말이 안되는 것이다.

한영혼용체의 또다른 근본적인 문제는 이것이 '국어파괴' 현상에 해당하는 문체라는 점이다. 한글, 한국어로 써도 딱히 이상이 없는 부분까지 '적당한 번역어가 없다'라고 하면서 쓸데없이 영문으로 쓰는 태도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이런 식의 글쓰기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어 사용 환경을 망가뜨리게 되는 것이고, 학술적 발전의 측면으로 보아도 이롭다고 할 수 없는 퇴행적인 현상이다.

외국어로 된 개념이나 고유명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 학술에서 필요한 것은, 적당한 번역어를 하루라도 빨리 찾아내서 한국어로 쓰도록 하거나 한글로 올바르게 표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외국어들을 원어 그대로 쓰는 것은 좁은 시야로만 바라보아 지식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학문의 진보적 의의를 저버리는 것이고, 단기적인 이익에만 급급하여 지식의 저변을 확대하고자 하는 학문의 교육적 의의를 저버리는 것으로서 매우 안이한 태도이다. 한국어라는 언어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에도, 이러한 글쓰기 태도는 결국 학술적 언어로서의 한국어의 발전이라는 근본적 측면을 명백히 훼손하는 것이다.

4. 일각의 반론: 학술용어 까지도 한국어를 보전하는것이 반드시 합리적인 것일까?[편집]

문화와 언어가 무작정 잠식당하게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은 타당하다. 다만, 전문 • 학술 분야에서는 예외적으로, 실리를 위해 자국 언어의 순수성을 어느 정도 희생하는 것이 더 실용적이고 합리적일 수도 있다. 전통과 실용 가운데에서 필요에 따라 융통성있게 선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과학 학문 대부분은 서양에서 동양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해석하기에 난감한 상황이 매우 많다. 거기다 대고 굳이 할 수 있는 건 영문 발음을 그대로 음차해 적는 정도이다. 예컨대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의 'release' 같은 경우, '배포판', '버전', '출시', '출하', '출하판', '판본' 등으로 난잡하게 번역되니 리눅스 계열에서는 그냥 '릴리즈'로 고정하여 사용한다. 또 그렇게 번역이 안 되면 음역하라는 것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이미 중국어와 일본어에서의 현지 언어 음역의 폐해로 잘 알려져 있다. 번역도 매한가지. 일본 학계는 화학이나 의학 용어 등을 자기 식대로 번역해 놓고 결국 국제 포럼같은 데선 다시 원래 용어를 불러오느라 머리를 싸매거나, 호환성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식대로 번역한 어휘를 사용하다가 이해가 안 된다는 외국 학자들의 불만 가득한 비판을 듣는다. 중국 학계의 음차 표기는 아예 원래 음가와는 뚜렷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서 음역의 메리트가 얼마 없다.

이 사례를 정 반대로 뒤집어서, 침술 같은 동아시아 학문이 서양에 도입된 경우를 생각해보자. 십중팔구 서양 국가에서도 번역은 무리라고 여겨 중국어 등을 로마자 등으로 음차해 표기하는데, 매번 일일히 괄호 쳐서 한자병기를 하는 것에 대해 불평[8]이 나온다. 그러니까 중국과 일본은 국제적인 호환성은 내버려[9] 실질적으로 원어를 알아채기 어렵다는 부작용이 나타났고, 무리하게 음역+병기를 시도하는 영어권은 글이 늘어지고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불만이 나온다.

영어권에서 그렇게 잘만 번역 음역 한다는 것들을 잘 살펴보면, 대부분 유사한 문자체계를 써서 호환이 잘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랑스어나 독일어, 끽해야 러시아어 음역한 수준이다. 한국어도 일본 또는 중국에서 들여온 어휘는 한자 그대로 읽기 때문에 번역이 쉽다. 반면에 서양의 언어와 동양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표기법 때문에 로마자 기반과 한자 기반으로 극명하게 갈리는,[10] 근본적으로 다른 언어이다. 그걸 호환성 부재와 갈라파고스화라는 치명적인 단점에도 전문 • 학술 분야에서마저 혼용을 엄격히 금기시해야 하냐는 점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혼용이 한국어의 보전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다만, 융통성있는 사용을 포기함으로써 터져나올 애로사항을 감수하면서까지 '순수한 한국어의 사용과 보전'을 고수하는 게 옳을지는 비판적으로 바라볼 문제다. 그 반대로, 과연 전체 한국어에서 전문용어나 학술용어의 비중을 볼 때 오히려 그것들이 한국어의 실질적인 보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예로서, 필리핀에는 타갈로그어가 있고,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지만, 실용적인 측면으로 영어를 쓰는 게 더 낫다 하여 학술 • 전문 분야는 과감하게 타갈로그어를 포기하고 영어를 쓴다. 이처럼 애초부터 서양식 과학 기술의 발전에 한국이 후발주자로 시작한 한계를 인정하고, 호환성과 더 나은 학문 환경을 위해 '한국어 사용'이라는 전통 대신에 '갈라파고스화 방지'라는 실용을 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데, 이미 서양 학문들은 서양에서 정립되어 로마자 기반의 서양 문자로 용어가 전세계적으로 표준화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학술용어를 영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하려면, 고유어로는 힘들고 어쩔수 없이 한자어휘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상당수는 직관적인 이해가 어려워지는 한자어 의역일 것이고, 심지어는 어거지로 어휘를 만들어야 할 수도 있다. 당장 국립국어원의 언어순화 운동이 왜 대차게 까이고 있는지 보자. 아니면 북한의 문화어를 보자. 스마트폰을 놓고 똑똑손전화라고 지어내질 않나(...) 그럼 태블릿 피시는 '똑똑판형콤퓨타'인건가.. 아니 애초에 컴퓨터가 외래어..

하지만 젊은 세대로 갈수록 한자 이해도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으며, 오히려 영어가 더 익숙하다. 문과계열이 아닌 이공계 대학(원)생이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컴퓨터공학 쪽은 아주 끝판왕을 달린다... 컴퓨터 계열은 애초에 전문용어가 아니라 일상용어와 중고등학교때 배우는수준의 어휘조차 영어 어휘를 발음대로 읽는 수준이다. 취미로 아주 간단한 코딩 정도만 해도 한글전용은 말도안 되는게 느껴질 것이다. 당장 여러분들이 컴퓨터를 키는 걸 뭐라고 말하는가? 부팅(Booting) 한다고 말한다.

이 내용에 적힌 영어를 전부 한국어로 읽어보자. 영어 스펠링 그대로 발음나는대로 한글로 옮겨적는 자신을 보게 될 수 있을 것이고, 왜 서양 학문에서의 한글전용이 어려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위 예시는 일상 회화이다. 여기서 더 전문적으로 들어가서 프로그래밍이나 알고리즘, 데이터베이스 따위를 배우고 논하기 시작하며 전문 용어를 배우기 시작하면 어떨까? 애초에 대부분의 컴파일러와 IDE[11]가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밍 언어와 그 문법 자체가 영어다. 아마도 컴퓨터관련 학과가 대학교 학부에 입학하자마자 한영혼용체를 듣고 말하고 쓰게 되는 유일무이한 학과일 것이고, 이 문서의 아주 극단적인 예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컴퓨터 계통 학문은 위 문단에서 부르짖던 순화운동을 하다가 이미 실패한 학문이다. 저 문서는 학문 자체 언어보다는 일상회화 언어의 순화에 비중을 더 크게 두긴 했지만. 프로그램 짜는데 주로 쓰이는 언어는 이미 정해져 있는데 그 '사실상의 표준'을 억지로 바꾸는 건 그 당시에도 불가능했을 것이니 일상 용어 위주로 순화했을 것이고, 또한 저 문서의 최하단 단락에 "포항공대의 모 교수가 번역한 일부 컴퓨터 책은 이것이 여러 의미로 폭넓게(...) 적용되어 있어서 전용 사전을 참고하면서 읽지 않으면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분명 나는 한글을 보고 있는데 이해를 못하겠어'란 좌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라고 적혀있는 것을 근거로 학술적인 용도에도 적용했다가 실패했음을 알아챌 수 있다.

하여간에 이 때문에 한자로 번역한 용어는 어감만 한국어 같고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또 하나의 외국어가 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수학에서 쓰이는 유계(有界)라는 용어보다 bounded가 훨씬 쉬운 어휘이며, 생물학에서 쓰이는 역치(閾値)라는 용어는 한자로는 거의 뜻을 알기 어렵다.

또 현실적으로 학술용어를 한국어로만 안다고 되는게 아니라 국제 학술지에 수록된 논문을 읽거나 학회에서 외국 학자와의 교류를 위해 영어로도 꼭 알아야 하기 때문에, 이중으로 용어를 암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영어로만 기억하고 있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이러한 용어의 번역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당장에 수학만 보아도 대한수학회에서 수많은 수학용어들을 일일히 번역어를 찾아 번역을 해 놓아도 실제 현장에서는 무시당하기 일쑤이다. 일례로 'compact' 와는 용어와 '옹골' 중 어느 용어가 더 많이 쓰이는지 비교해보자. 옹골이라는 번역은 해당 개념을 완전히는 아니지만 수학에서 다루는 가장 익숙한 대상 한정으로는 잘 들어맞는 번역이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옹골이라는 용어를 채택한 교재를 사용함에도 옹골이라 쓰고 compact라고 읽는게 현실이다.

이럴 거면 아예 100% 영어로만 하는 게 어떠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어와 영어의 언어 계통이 크게 차이나고 문법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빠르게 의사소통해야 하는 구어체(특히 국내 대학에서 진행되는 강의)에서는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명사와 일부 동사를 영어로 쓰는 피진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며, 국내 대학에서는 이러한 용어는 영어를 쓰되 수업은 한국어로 진행하는 한영혼용의 방식이 잘 정착되어 있다. 문어체로 가면 충분한 시간을 들여 수정, 작성할 수 있기때문에 100% 영어로 논문 등을 작성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의 일반 여론은 아직 민족주의 성향이 세서 학술용어나 전문용어에서 한국어를 포기하고 실용성을 살려서 전문 어휘들은 영어 통일로 가자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토록 예시로 내세우는 옆나라 일본처럼 갈라파고스가 되는 게 필리핀처럼, 아니, 대부분의 비로마자 문화권 국가들처럼 과감히 일부 특수한 분야(전문 어휘)에 한정해서 전통 언어를 포기하고 사용 언어를 실용성에 맞춰 바꾸는 것보다 그렇게 옳고 현명한 것인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일본이야 70~80년대 시절 워낙 잘나가던, 현재의 중국 급으로써 미국과 비교되던 나라이니만큼, 억지로 밀어붙이면 전세계적인 호환성을 엎을 수도 있었던 전세계적인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나라였던 것도 고려해야 한다. 과연 한글과 대한민국이 전세계 표준을 엎어버릴만큼 그렇게나 강대국이었던가?


[1] 사실 엄밀히 말해 번역의 능력이 결여되서 그런 것이다. 구미권만 해도 일개국어화자대상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며 인명, 지명 등의 고유명사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반드시 자국어로 번역하며, 특별한 경우에 조차 그 발음을 자기네 문자(알파벳)로 표기하지 절대 다른 나라 문자를 그대로 삽입하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는다. 번역이 어렵다면 최소 발음만이라도 한글로 적고 괄호안에 원어를 적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유토피아(Utopia)라든가.[2] 살짝 뉘앙스가 다른 뜻을 지닌 일상 용어로 번역된다거나 하는 경우.[3] 특히 폴란드 - 헝가리 - 체코 같은 동유럽 쪽 사람들 이름은 정말 알파벳을 봐도 뭐라고 읽어야 할지 몰라서 미치고 펄쩍 뛰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이나 태국 같은 동남아 쪽도 상황은 비슷.[4] table of organization : 인원 편성표[5] 대표적인 예로 축전기라는 한국어가 있는데도 capacitor,condenser 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6] 전공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번역이 미숙하고, 전문번역가는 전공지식이 풍부하지 못하다. 이런 사정이야 어느 나라를 가나 당연한 현상이지만, 문제는 이 둘 사이에 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점. 번역가들은 전공서적 번역을 거의 하지 않는 형편이고, 몇몇 교수들(과 불쌍한 핫산 대학원생들)이 자체적으로 전공서적 몇몇을 번역하고는 있지만 아쉽게도 그 사람들은 번역이 매우 미숙하다.[7] "역상유전학적"이라는 뜻. 이 부분은 일본에서 나온 거라 한자로 적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일본은 물리학이나 생물학과 같은 순수과학 분야에서 알아주는 동네다. 생물학 전공자들 중에 일본어를 익혀서 그쪽으로 유학가는 경우도 꽤 있다.[8] 어차피 영어로 읽기도 번역도 (제대로 된)음차 표기도 못 하는 한자어를 그렇게 원래 종주국과 뜻도 안 통하고 그렇게 억지로 음역한 대로 읽어도 호환 따윈 전혀 안 되는데 뭣하러 그 짓거리를 하냐는 식[9] 그러니까 그런 호환성이 필요한 분야에서 말이다. 생활회화가 아닌 학술/전문용어에서의 호환성은 상당히 중요하다.[10] 한국은 한글 전용이지만 한국어의 한자어 비중을 생각해 보자.[11] 애초에 처음 신입으로 들어가면 가장 놀라는 부분이 프로그래밍 실습시에 사용하는 IDE가 100% 영문 인터페이스를 가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