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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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측

한미관계

미국 측

United States-Republic of Korea relations[1]


1. 개요2. 역사
2.1. 한미(韓美)의 외교적 첫 만남2.2. 가쓰라 태프트 밀약과 외교단절2.3. 한국의 독립 운동 이후2.4. 한국의 광복 이후2.5. 현재
3. 문화4. 과거사 갈등5. 경제적 통상압력6. 향후의 관계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미국 건국 초반에는 그냥 평범한 외교국가 취급을 받았다. 당시 중국의 공산정부 수립 이전까지는 미국과 가장 가까운 태평양 국가는 중국이었으니 미국에게 조선이란 별 가치가 없는 나라로 취급을 받기도 하였으며,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이의 반증이다. 그러나 1953년 한국전쟁 직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한미동맹 관계를 구축했다.

2. 역사[편집]

2.1. 한미(韓美)의 외교적 첫 만남[편집]

미국이 한국과 외교적으로 첫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조선왕조 23대 임금 순조 재위 시절인 1834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 아시아 지역에 특파된 로비츠 미국 특사가 미국 정부로 보고한 내용에서 동부 아시아 대륙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반도(半島) 국가가 있는데 청나라일본이라는 대륙 국가와 섬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고 본국 정부가 조선과 경제 교역을 가지게 되었으면 싶다는 의사를 밝히게 되면서부터였다. 1845년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 때에 들어서 미국 국회의원 Z. 프래트가 조선 왕조에 조선 통상사절 파견안을 제안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현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1863년 26대 임금인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 대원군이 섭정을 하면서 서양 오랑캐들과는 모든 교역 및 통상을 거부하며 개방도 불허한다는 강경책을 내세우면서 외교적으로 미묘해져 있었다가 1866년 평양에서 미국 상선 제네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통해서 평양에 입성, 갖은 난동을 부리자 조선 관군과 분노한 평양 양민들에 의해서 화재로 전소되자 미국은 1871년 조선의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 대해 항의+개항을 하고자 미군을 이끌고 신미양요를 일으킨다. 그러나 전술적으론 압도적으로 이겼으나 조선은 끝내 통상하지 않았고 결국 미군은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하고 철수함으로써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1882년 흥선 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어 정치 일선에서 실각되고 명성황후가 돌아오고 실권을 잡으면서 그 해 조선과 미국 사이에 조미(朝美) 수호통상조약[2]이 체결됨에 따라 이 때부터 한미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2.2. 가쓰라 태프트 밀약과 외교단절[편집]

그러나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고 20세기의 격동기에 접어들게 되면서 한미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그 당시 미국은 1898년 스페인식민지 필리핀 문제로 전쟁을 하였던데다가 전쟁(미서전쟁)을 통해서 필리핀을 차지하게 되자 1905년 미국 육군장관이자 후에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는 윌리엄 태프트와 일본의 총리이자 이토 히로부미의 오른팔로 불리우는 가쓰라 다로 사이에 일본은 대한제국의 지배에 대해 우월권을 인정하며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한다는 명목으로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맺으며 사실상 대한제국을 외면하고 일본 편에 들게 된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고종의 대한제국을 구원해 달라는 요청에도 이를 무시하며 사실상 친일 성향을 드러냈고 미국은 일본을 지지하며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승인하였다는 입장을 밝혀서 결국 대한제국의 을사조약 체결을 방조하게 되었다.

1905년 결국 루스벨트의 중재에 따라 포츠머스 조약으로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전하고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미국은 대한제국의 수교 국가 중 가장 먼저 조선의 한양에 주재해있던 외교 공관을 철수하며 대한제국의 국가 승인도 취소한다는 입장을 밝히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미 관계는 잠시 단교 관계에 이르렀으며 경제적 통상면에서도 일본에 비해서 대거 축소되는 영향도 받았다. 후에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후임 대통령이자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장본인이었던 윌리엄 태프트 역시 전임자 못지않게 일본을 두둔하고 지지하며 대한제국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1910년 한일병합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은 멸망하고 일본의 속령 및 식민지가 되었다.

2.3. 한국의 독립 운동 이후[편집]

1914년 윌리엄 태프트의 후임으로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우드로 윌슨은 민족 자결주의를 통해서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고있던 한국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으며 그것이 바로 3.1 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전임자였던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윌리엄 태프트 행정부의 친일 성향 및 정책 등으로 인해서 조선과 사이가 멀어졌던 미국 일각에서는 3.1 운동을 계기로 일본이 명백한 침략자이자 의회에까지 일본의 속령으로 있는 한국과 한국 국민들이 원하는 자치정부 수립을 하려는데 대해 공감을 나타낸다는 의견을 냈는데 이 한국의 독립 문제는 미국 의회에서도 3년간 논란거리에 오르기도 하였다. 의회 일부에서는 1905년 을사조약과 1910년 한일병합으로 멸망한 대한제국의 입장에 대해서 깊이 사과해야하고 반성을 해야하며 과거 양대 행정부의 친일 문제 등에도 반성하고 사과할 기회를 가지자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과의 관계는 물론 필리핀을 속령지로 잡고있는 미국 행정부는 여전히 한국의 독립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으며 공식 태도에 있어서도 미국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 등을 고려하여 한국의 독립에 대한 명백한 입장이나 과거사 행위에 대한 반성은 없다. 일본은 미국의 협력자이자 우호국으로서 현재까지는 일본과 관계 악화를 원하지 않는다. 의회나 언론사 등에게는 그에 대한 자제를 당부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한국의 독립 운동가와 재미교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미국의 신문들은 한국의 독립 운동을 자세히 소개하며 한국의 독립 운동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미국은 독립 자금 조달의 거점이자 독립 운동을 위한 선전 외교의 거점지이기도 하였으며 안창호, 서재필, 이승만 등이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 운동을 하거나 지원하였다. 민간에서는 한국과 미국은 친구이자 일본이라는 적성국을 물리쳐야 하는 관계에 있다는 명목하에 일제의 만행과 악행을 폭로하고 나가서는 국제사회에서도 일본의 야만적이고 인륜을 저버린 만행을 폭로하는 역할도 하였으며 양심적인 미국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한국친구회라는 단체를 세우며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지하기도 하였다.

1941년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하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자 그 동안 친일 성향이 짙었던 미국의 외교 노선을 바꿔놓게 되었으며 당시 대통령으로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43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연합국 수뇌들과 회담을 갖고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고[3]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는 문제를 논하였던 카이로 회담을 채택하기도 하였지만 1945년 2월에 열렸던 얄타 회담에서는 한국의 신탁통치에 대한 건의를 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노환으로 사망함에 따라 한국 문제는 후임 대통령인 트루먼에게 넘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트루먼 행정부는 종전을 위한 수단으로 1945년 8월 일본의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 명령을 하달시키고 결국에는 미국을 승전으로 이끌어내 일본을 패망시켰다.

1945년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게 되면서 전임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포츠담 선언에 따라 미군 병력이 한반도 이남에 진주하게 되었고 이북에 소련군이 진주하게 되면서 해방과 동시에 남북 분단이 시작되기도 하였다.

2.4. 한국의 광복 이후[편집]

1945년 9월 미국은 조선총독부의 뒤를 이어 38선 이남의 과도정부 역할을 하게 될 미군정청을 세우며 남한 통치 및 질서유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미군정은 이때 악수를 두게 되는데 친일파와 조선 총독부의 친일 관료들을 효율성을 이유로 그대로 기용한 것이었다. 미군정청의 입장에서는 한국민족의 친일 청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장 안정된 행정이 최우선 과제였고 결국 이러한 입장이 친일파와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하게 되었다. 역할이 축소되긴 했지만 일경에서 바로 국립 경찰이 된 경찰 인력은 대국민 정책이나 태도에서 일제 시대에서 달라진게 별로 없었다. 이는 대구 10.1사건, 여순 반란 사건과 같은 악재들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고, 대한민국 체제에서조차 한동안 경찰이 나이든 어르신들 사이에서 순사로 불리는 원인이 되었다. 일본 행정에 익숙했던 총독부 산하 관료들의 영향으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 구성에 일본의 행정 요소가 섞이기도 했다.

또한 민족주의 우익계와 불협화음이 끊일 줄 몰랐고, 좌파에 대한 탄압에 따라 남한 영내에서 빨치산이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민족주의 우파와 미군 중장 J.R 하지 사이에도 견해차 때문에 반목이 심해지면서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넘기고 UN 한국 위원단을 통해서 한반도에 수립할 정부형태 등을 논의하였는데 이승만남한 단독 정부 수립 제안에 따라서 정계는 급속도로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고 UN 총회와 소총회 등의 결정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첫 선거를 열게 되었고 제헌국회가 마련되고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미군정청은 해산되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미국은 대한민국의 첫 외교 관계 국가가 되어서 가장 먼저 대한민국을 승인하였고 대한제국 시절에 맺었던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도 그대로 유효함을 인정하여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인해 단교되었던 한미 외교 관계가 43년 만에 복원되었다. 이와 동시에 서울에 주한 미국 대사관이 설치되어 초대 주한대사로 무초가 파견되었고 한국도 워싱턴 D.C.에 주미 한국대사관을 설치하여 초대 주미대사로 장면을 파견하였다. 이후 한미 양국은 북한소련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양국간의 군사적 협력, 경제 원조 등에 총력을 기울이며 순조로운 상태로 가는듯 하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때 참전한 영향 때문에 군사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미국 정부의 승인하에 해외 파견 미군의 감축안이 발효됨에 따라 주한미군도 여기에 포함되면서 1949년 6월 일부 미군 군사 전문가나 보조 병력만을 남기고 전투 병력을 한국에서 대거 철군시켰다. 또 미국 트루먼 행정부는 한국에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장담하면서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거나 파병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도 밝히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김일성에게는 남한을 잡아먹을 수 있는 좋은 먹이감을 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결국 1년 후...

1950년 6월 북한이 6.25 전쟁을 일으키게 되면서 결국에는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고 1년 전 주한미군을 철군시켰던 미국 정부는 한국에 미군 전투병력을 대거 파병하며 대한민국을 지원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경제원조를 통해서 대한민국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명실상부한 한미동맹 관계를 구축하였다.

이후에는 박동선사건, 부산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금메달 강탈사건, 미선,효순양의 미군 장갑차 사건, 광우병 쇠고기 수입 논란 등 여러가지 문제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으나 현재까지도 관계를 지속하고 있으며 현재는 대한민국 정부가 가장 최우선 우호국으로 손꼽고 있다.굵직 굵직한 사고 이후에 이뤄진 대민 외교에 성공하여 정부가 미국빠임에도 실각하지 않을수 있는 원인 오해가 있는 부분인데 의외로 한국 정부는 미국에 끌려다니기만 한게 아니라는 점을 모르는 이들은 한국 정부가 미국에 퍼주기만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도 한다. 정확히는 서로 주고받는 것인데다가 정 안되는건 한국도 거절하는 편.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시작으로 2011년 한미 FTA가 체결되어 2012년 3월을 기준으로 공식 발효가 됨에 따라 양국간 수출입 무역장벽 철폐는 물론 일부 상품에 대한 관세 부과 등도 철회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한국은 정치나 사회는 물론 문화에까지 대부분 미국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많이 있었는데 양국 국민들 간의 현지 여행도 자유로운 편이며 미국의 기업 등도 한국에 대거 진출하여 한국 본부 및 지사를 두고 있다. 또 헐리우드 영화와 팝송, 그리고 영어 문화 및 교육을 통해서도 커다란 영향을 받게 하였으며 동시에 한국 영화 및 K-POP의 맞수 상대이면서 미국 진출을 꿈꾸게 하였던 영향도 있었다.

사회적인 면에서 한국의 일부 진보 계열 인사[4] [5]들은 대체적으로 반미 성향이 있으며 이들은 주한미군의 완전 철군 등을 주장하며 반대로 친미 성향이 짙은 보수 단체들과 대립하고 있는 편이다.

2.5. 현재[편집]

현 시점에서 미국 정치권은 중국의 승전 기념 행사 및 열병식 참석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으며, 일본은 그 틈을 타 동맹 내에서의 지분을 넓히고 한국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상황.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9월 베이징에서 개최하는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에 참석, 열병식까지 참석하였기 때문에 더욱 냉랭해질 것이 확실시 된다. 비록 미국이 이 문제에 대해 "한국의 주권문제이고 존중한다"라는 입장을 발표 했지만 이미 해리티지 재단은 박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은 실수 (현지에서 'Poor idea'라고 썼다고 한다.)라고 한 것은 미국 보수층 "박대통령 열병식 참석은 실수" 미국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을 그다지 좋게 보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물론 미국도 한중 우호를 전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국이 미국과 좋은 관계를 갖는다고 해서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라는 말과 동시에, “가끔 박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만나면 그것이 미국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나 한국이 중국과 좋은 관계를 갖기를 미국은 원한다”라며 한중 우호를 지지 했다.[6] 그러나,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에게 유일하게 요청한 것은 중국이 국제 규범과 법을 준수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라며 “중국이 그런 면에서 실패한다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관련기사 라고 말하며, 한국을 압박하였다.

최근에는 4차 핵실험 이후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 논란에서 배치 논의를 공식화 하였다.

4차 핵실험과 그에 대한 안보 정책의 일환으로 요격용 사드 배치 협의를 공식화 한 것을 계기로 박근혜 정부는 과거 3년 간의 친중 편향적 외교 정책이 실패하였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한중 우호에서 탈피 하여 전통적인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미국과의 동조를 선택하면서 다시 한목소리를 내며 공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7] 물론 박근혜 정부는 실패를 경험한 이후 3년 간의 친중 편향적 외교 정책에서 탈피하였으나 현재도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지만, 과거부터 한국의 외교 우선순위는 대북 압박, 북한에 대한 중국 측의 일방적인 옹호 비판, 그리고 미국과의 공조이기 때문에 사드 배치 협의를 초고속으로 진전시키고 있다, 그에 대해 미국 역시 한국의 친중 편향 외교정책 여파로 인해 냉랭했던 관계를 회복하고 F-22, B-2 폭격기. 그리고 핵항모까지 한반도에 동시 다발적으로 파견함으로서 미국이야 말로 한국의 가장 완벽하고도 진정한 동맹임을 보여주기 위해 적극적인 제스쳐를 취했다.[8][9]

2017년 3월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일본은 가장 중요한 동맹국,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라고 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후 틸러슨 장관은 일본과 중국에선 만찬을 하였지만 한국에서는 만찬을 가지지 않아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이 것은 기자가 악의적으로 내용을 오역하고 편집한 것.

다만, 틸러슨의 립서비스일 경우도 충분하다. 원래 외교적 언사를 직접적으로 하는 경우가 드물다는걸 생각해보자. 원래 미일간의 행보는 한미관계보다 더 밀착해왔던게 사실이고, 박근혜 정권 시절 친중외교의 여파로 미일관계가 한미관계보다 한층 더 돈독해진 것도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다. 그 일례로 2016년 5월 오바마는 일본 히로시마 원폭지를 방문하고 원폭 피해자를 만나 위로를 했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원폭지 방문 및 피폭자들 위로,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 헌화는 하지 않음, 일본 아베 총리를 박근혜 대통령보다 우선시, 2016년 12월엔 아베 신조가 전후 일본 총리 최초로 진주만 방문과 더불어 미국의 답례로 오바마의 미일 동맹 칭송, 아베 총리가 12월 말, 진주만을 방문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미·일 관계는 세계 평화의 주춧돌이며 두 나라의 동맹은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고 선언. 일본과 미국은 과거사까지 완전히 해결하며 미일동맹은 한단계 격상되었다. 2015년까지 꿈쩍도 안하던 한국이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일 위안부 협상이나, 한일군사정보호협정을 급속도로 체결했는데 이러한 조약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드러났다. 한일 군사정보협정은 딱히 문제 될 소지가 없지만 위안부 합의는 다들 알다시피... '아베-바이든 통화, 위안부 합의 美 압력 확인', '속전속결' 한·일 군사협정…미국 '입김'

2017년 3월부터 북한 문제가 국제적인 이슈로 급부상하면서 한국을 완전히 배제하고 다른 아시아 국가간의 공조가 긴밀하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부각시켰다.트럼프, 아베와 35분 통화…"北 도발 대응 모든 선택지 검토" 심지어 (아무리 탄핵정국인점을 감안해도) 한국은 한반도 문제 당사자임에도 전화통화에서조차 배제되는 모습이다.트럼프, 日아베와만 통화…한국은 왜 뺐을까? 다만 당시 대통령 궐위기간임을 고려해야한다.

2017년 6월 29일, 워싱턴D.C에서 개최된 2017 한미정상회담을 가졌다.

3. 문화[편집]

한국 내 입장에서는 1998년 일본 문화가 개방되기 이전까지는 주로 미국 문화가 대세를 이루었기 때문에 일본 문화를 압도하였기까지 하였다. 그 당시의 정서상 일본 문화에 심취한 마니아도 많이 없었고 일본 문화에 대해서는 엄격히 제한을 두었던 시기였으며 미국과의 외교 관계가 근친성에 이르렀다는 점을 보면 정말로 미국 문화가 대세와 주류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방영되던 일본 애니메이션들도 아동 애니메이션 중심이었던 데다가, 당시 방송사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왜색 분위기 등을 대거 삭제/수정하고 한국 성우의 녹음을 통한 더빙판으로 방영했기 때문에 미국 대중 매체가 대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미국의 영화는 한국 정부에 스크린쿼터 축소를 주장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졌으며 이 때문에 한국 영화계와 첨예한 대립까지도 갔었다. 또한 의류 브랜드나 기타 생활용품 등도 미국산 상품이 많이 수입되기도 한 편. 게다가 영어의 영향도 커서 영어 교육이 활발할 뿐 아니라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정규 과목에도 편성되기도 하였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중학교부터 영어 과목이 적용되었으나 이 당시에도 사교육상으로는 초등학생 때부터 배웠던 편이 많았다. 현재는 초중고등학교 모두 영어를 정규 과목으로 편성하여 교육하고 있다. [10]

4. 과거사 갈등[편집]

그러나 아무리 우호적인 한미 양국이었지만 특히 독도와 동해 표기 문제에 대해서는 양국의 시선이 매우 다른 편으로 나타나 있었다. 특히 미국은 같은 동맹국인 일본이 주장하는 다케시마일본해 표기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의 주장과는 달리 거의 중립적인 편이라고 하나 사실은 일본 편을 들어가면서 독도에 관해서는 중립성향을 밝혔지만 동해에 대해서는 일본의 주장대로 일본해(Sea of Japan) 단독 표기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서 한미간의 갈등거리로 작용하였다.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기는 하다. 정책 수립이나 정부, 군사에서 사용하는 수천 수만개의 지도에서 동북아시아의 일본해를 전부 동해로 바꿔야 하는데, 그로 인한 이익은 거의 미미하다. 동해/일본해 싸움은 실질적 이득 없는 한국과 일본의 자존심 싸움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하면서 일본에게는 센카쿠 열도의 미군 방어 의무를 천명했으나 한국 외교부에서 독도 역시 미군의 방어 의무가 있다고 성명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순방이 끝날 때까지 독도에 대한 지지 성명이 없어 비난을 받았다. 다만 원래 미국이 우방간의 분쟁은 관여하지 않음을 원칙으로 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11]

특히나 미국은 과거 일제강점기 때도 일본 편을 들었던 전적이 있었다고 하지만 한국 내에서 연이어 일어난 반미 감정 및 성향 때문에 한국보다는 일본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참고로 일본의 자민당 정권은 미국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시각을 보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일본을 두둔하는게 아니냐는 의문도 있었다.

하지만 한편에서 미국 본토에 위안부 기림비를 세우는 것에는 긍정적이었으며 이를 통해서 미국인들에게 일본의 침략 행위와 만행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동의하였다.

2015년 3.1절이 끝나기 무섭게 미 국무부 셔먼 차관이 한•중이 과거사를 이용해 일본을 공격하여 값싼 박수를 받아내고 있으며 이는 일본에 대한 도발에 해당한다는 등의 아시아 과거사 문제에 대한 양비론을 꺼내고 나와 한국에서 셔먼 차관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미 국무부와 한국 외교부는 이에 대해 미국의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태도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미국이 최근 중국 쪽으로 기우는 한국 탓에 약해진 한미일 삼각 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해 셔먼 차관을 이용해 넌지시 한국에 압박을 넣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완전한 과거사 해결 없이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태도를 원하며 그로 인해 중러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태도에 국민들의 반감 역시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일본 좋은 일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어떤 극단주의자에 의해 피습당하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 한미동맹 강조 열풍이 불어 모든 반미 감정을 덮어버렸으며, 셔먼 차관의 발언에 대한 대한민국의 질책은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2015년 4월 8일에 미국 국방장관이 일본 방문 당시 한중일이 과거보단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며 일본을 감싸는 듯한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되었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일단 일본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해결을 차후로 미루던가, 아니면 끝까지 밀어붙이던가의 기로에 서 있다. [12] 하지만 한일관계 항목에서 보듯이 국민 여론은 일제강점기전쟁 범죄 행각 때문에 일본을 거의 원수 보듯이 하는 상황이고 일본 역시 과거처럼 무관심이 아니라 더 노골적인 적대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물러날 경우 정권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의 대일 외교에 상당한 문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

한 가지 변수로 북한에서 혁명이 일어나 김씨 왕조 체제가 붕괴되고 통일 한국이 탄생하는 상황이 있기는 한데, 김정은의 막장 통치가 해를 거듭할 수록 심화되고 있어서 혁명이 일어날 명분은 충분하지만 북한에 혁명을 주도할 세력이 있을지가 문제라 가능성이 높은지 낮은지 알 수가 없다.

5. 경제적 통상압력[편집]

정치적, 국제적으로는 우방 및 우호국인 한미 사이에도 경제 분야, 특히 경제적 통상 압력이라는 갈등의 불씨에서는 피해갈 수 없는 관계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노골적으로 한국 내수 시장 진출을 위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고, 미국 시장에서의 무역 흑자가 없으면 경제에 치명타였던[13] 한국은 결국 어느 정도 양보를 택함으로써 어느 정도 성공했다.

특히 1996년에는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이 한국 진출을 위한 발판과 한국 자동차 시장의 개방 목표를 바탕으로 미국 정부에서 한국 정부에게 자동차 시장의 조속한 개방을 통해서 통상 압력을 가한 적도 있었다. 자동차 외에 나머지 유통 개방 문제에 대해서도 통상적인 압력이 가해지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도 있었던 편이었다.

또한 영화계의 경우는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로 한국 영화인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였는데 미국 영화계는 미국산 영화의 한국 진출 활로 개척과 시장 개선을 위해서는 한국 영화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스크린쿼터제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이에 대부분의 한국 영화계와 영화인들이 반발하였으며 이들은 스크린 쿼터가 축소되면 한국 극장가에는 한국 영화 상영은 줄어들고 미국 영화들이 대거 상영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며 주한 미국 대사관에 항의서한을 보내거나 삭발 및 단식투쟁을 하며 스크린쿼터 사수에 나서기도 하였을 정도였다.

2015년에는 한국이 미국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 주도의 AIIB에 가입하면서 경제적인 관점 만큼은 반드시 친미는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다만 유럽 국가들도 가입하는 상황이라 미국 입장에서 직접 가입하지 않더라도 중국을 어느 정도는 제어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묵인한 측면도 있다. 아울러 영국과 같은 유럽 국가들까지 가입하기로 결정한 이후에 나온 점이라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미국은 한국이 AIIB 외에 TPP도 어차피 가입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신경을 덜 쓰는 측면도 있다.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TPP가 엎어졌다는게 함정

6. 향후의 관계[편집]

어쨌든 한미 양국은 현재와 같은 남북분단 시절에는 물론 남북이 통일되는 때와 그 이후에도 함께 하게 될 군사적, 외교적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입장이다. 통일이 된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될 가능성은 많지 않다. 지정학적 위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의 입장에 있어서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요충지 격이 될 비율이 커진다.

중국은 물론이고 서해 지역, 그리고 러시아, 극단적으로는 중앙아시아까지 커버 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 되기 때문에 미국이 쉽게 손을 뗄 곳이 못된다. 북한이 사라지면 주한미군의 중요성이 약화되니 철수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많으나, 사실 주한미군은 북한을 막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 훨씬 크며, 통일 이후 한국은 중국 러시아 영토 분쟁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특히 중국은 주변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군사적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통일 이전보다 훨씬 더 높아진다. 아예 친러나 친중 국가로 전향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되고, 무엇보다 미국은 한반도 주변 4강 중 유일하게 한국과 영토 문제가 없는 나라다.

간혹 주변 4강의 합의 하에 통일 한국이 완충 지역을 담당하는 중립국이 된다면 주한미군의 필요성이 없어지므로 통일 한국에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가능성이 100%까지는 아니라는 주장이 있는데, 한반도는 대륙으로 진출하는 관문이자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출구라는, 지정학적으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중립 지대가 될 가능성은 절대 없다. 누구 좋으라고 그 어느 누가 이런 좋은 지역을 중립화 시켜주겠는가? 더구나 중립도 엄연히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중립국인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를 공격하여 점령한 나치 독일이 중립국인 스위스를 공격하지 못한 이유가 경제적, 지정학적 어려움, 나치 독일에 대한 스위스의 협조 등이 있지만 스위스를 공격하더라도 나치 독일 역시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 만큼 군사력과 국력이 강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네덜란드가 스위스보다 몇배는 힘이 쌘 나라인게 함정 힘도 없이 중립만 외치면 스위스가 아니라 중국 위성국 취급받는 라오스꼴이 날수가 있다.

가끔 핵 무장을 하면 중립화가 가능하다는 어이 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정도로 한국이 중립국의 지위를 얻기는 어렵다. 확고한 중립국의 지위를 얻기 위해선 주변국과 상호확증파괴가 가능하거나 상당한 피해를 강요하는 수준의 무장이 필요한데[14] 전자는 한국의 주변국들이 초월적인 군사력과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어서 대륙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수준의 무기가 요구되기 때문에 현실성이 너무 없고 후자도 현실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ABC무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면 어찌어찌 가능하다. 그런데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 한국에서 자국에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도 있는 무기를 만든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과연 가만히 있을까?[15][16]하지만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본질은 핵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주변국의 동의이다. 즉, 한국이 뭔짓을 한다고 해도 자국에 위협이 되지 않을거라는 확신과 완충지대, 즉 신뢰를 바탕으로한 동의다. 사실상 스위스나 제국주의 시대의 태국과 비슷하게 된다.

한국 입장에서 미국의 중요성이야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은 매우 중요하다. 당장 미국의 무역 상대국 순위 6위가 한국(2014년 기준)으로 영국, 프랑스보다도 크다. 게다가 한미간의 무역은 계속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로, 2012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7위였지만 바뀐 것이다. 따라서 만약 한국에 혁명이라도 일어난다면 미국의 경제도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게 분명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미국이 동아시아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이상에야 한국을 포기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17].

더구나 한국이 통일이 될 경우, 지정학적 위치에 있어서 한국의 중요성은 통일 이전 보다 훨씬 더 커진다. 당장 중국과 러시아를 확실하게 견제하는 교두보가 마련될 뿐 아니라 양안관계에 있어서나 중국의 서진정책에도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렇기에 중국이 비난을 무릅쓰고 북한을 유지시키고 있으며 러시아도 통일 한국이 친미에서 벗어나 중립국이 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러시아는 통일이 될 경우 중국과 더불어 북한 지역 재건 사업에 참여할 가능성이 큰 후보 0순위다.

다만 지정학적 위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도 있다. 앞서 말한 대륙으로 진출하는 관문이자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출구는 19세기~20세기초 일본의 입장이다. 대륙으로 진출하는 관문이니 바다로 나가는 출구니 하는것은 중국이 대양로 나갈 항구가 없어야 성립하며, 대규모 지상군을 동원해 무슨 전쟁이라도 하겠다는게 아니면 온당치 않은 주장이다. 미군의 가장 큰 적은 러시아군이나 중국군이 아닌 미국 내 반전여론이다, 기술군인 해,공군으로 전쟁을 하면 기술적으로 압도적 우위가 있는 미군이 중국군에 비해 적은 피해(전사자)로 이기겠지만, 지상전은 기술적 우위가 있더라도 중국군의 규모를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게 되므로 반전여론이 치솟게 만든다. 대한민국을 제외하면 미국의 동맹국이 모두 섬나라라는 것이 오히려 장점으로, 한반도에서 지상전을 하지 않고 대만과 오키나와, 괌에서 출진하는 미해군과 공군이 중국 해,공군을 전멸시킨 다음 인프라와 산업시설이 집중된 동부해안가를 폭격하고 해상봉쇄를 통해 중국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게 미국에게 훨씬 낫다는 주장이다. 중국 정도 되는 큰 영토를 가진 국가를 상대로 21세기에 대규모 지상전을 하기는 어렵고 지정학적 어쩌고 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너무 낡고 오래된 주장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아무리 1970년대 중국이 지금보다 훨씬 약했고 소련이 극동에는 동유럽보다 관심이 적었다지만 왜 지미 카터가 미군 철수를 언급했겠는가? 그리고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미국에 중요하다 해도, 어차피 한국은 미국에 꼭 필요한 나라라 우리가 뭘 해도 못버리니 미국에 막나가자는 역갑질 주장이 가끔 있는데, 이는 동맹국간 신뢰를 저버리는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이다.

경제적인 이유 외에도 군사적으로도 한반도는 미국에게 매우 중요하다. 한국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의 견제를 미국은 노리고 있다.[18][19]

다만 경우에 따라 일본의 존재가 문제가 될 수 있다. 물론 미국 입장에서 한국의 동맹 이탈은 결코 바랄 리 없다. 다만 일본 역시 한국이 진짜로 떨어져 나간다면 오히려 미국보다도 사정이 더 나빠지기 때문에 과연 아베 신조가 단순히 한일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는 걸 넘어 그것까지 원하는 지는 의문이다.[20][21]

농담이 아닌게, 어그로와 이간질에 결국 한국이 러시아 쪽으로 기울거나 그게 아니라도 러시아와 손잡거나 핵무장을 제외한 각종 재무장 작업[22]에 착수하는 순간부터 국가의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할 만큼 거대한 혼란이 오게 될 것이다. 그전에 한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와서 먼저 망할거 같지만 특히 중국의 군사적 공세에 대비한 북방에서의 전선군 역할[23]까지 맡게 된다는 거 말이 쉽지 일본 입장에서 절대로 피해야 할 상황 그 자체다. 미 7함대와 해상 자위대 전력이면 그래도 차단이 가능하지 않느냐란 반론이 나올 수 있겠지만, 일단 동아시아 정치 상황상 쉽게 전쟁이 나긴 힘들지라도 일단 터졌다 하면 국지전 수준에서 마무리되지 않을 확률이 다른 지역보다도 대단히 높다. 핵전쟁은 벌어지지 않더라도, 그 아래의 무기들의 위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한국이 보유한 탄도 미사일 수를 생각해보자, 중동에서 찔끔찔끔 쏴대던 스커드 정도와는 비교도 안된다. 또 개발이 완료되어 실전배치되고 있는 순항미사일들의 대부분이 일본 서부의 주요지역 대부분을 타격할 수 있으며, 심지어 사정거리가 가장 긴 현무 3C의 경우에는 사정거리가 1500킬로미터로 매우 길어 일본에서 가까운 부산이 아니라 서울에서 발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홋카이도 일부를 제외한 일본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 거기에다가 사정거리가 최장 3000킬로미터인 현무-3D(또는 현무-4) 가 개발중이므로, 만약 성공하여 실전배치된다면 현무-3C로 타격을 못하는 일본 영토까지 타격권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일본 입장에서 자신을 막아주던 방패가 자신을 겨누는 창으로 바뀌는 격이다.

7. 관련 문서[편집]


[1] 나 먼저 원칙에 의해 미국에서의 표기는 미국이 앞서지만 종종 협정문 등에서는 약자로 KOR-US로 나타내기도 한다. 코러스 즉 화음이라는 뜻의 영단어와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이라고.[2] 조선이 서구 열강세력과 수립한 최초의 외교관계이다. 청나라가 러시아 견제 및 조선에서의 영향력 강화 차원에서 이를 중개했다.[3]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자고 제일 먼저 안건을 낸 사람은 장제스였다.[4] 주로 옛날 통합진보당[5]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이다. 진보 = 반미라고 단정지어서는 안된다.[6] 그러나 미국이 동맹국의 정상에게 대놓고 내정 간섭을 하는 나라가 아닌만큼 미국이 진심으로 한중우호를 지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설사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외교적 수사로 가능한 정중하게 입장을 밝히면 밝혔지 어디처럼 수교국에게 독립을 잃게 될 것이다는 헛소리를 하는 나라가 아니다. 트럼프 당선 이후에는 그 정중함도 잃었지만[7] 대상은 북한 + 중국, 다만 한국은 중국에 대해 여전히 소극적인 반응을 견지하는 중이다.[8] 한미동맹의 굳건함 과시 + 북한과 중국에 대한 경고이다.[9] 실제로 환구시보는 '중국도 북한의 행동에 화가 나지만, 중국과 북한 사이의 국경선을 제2의 38선으로 만들 수는 없다.' 없다고 했는데 이 소리는 우리도 북한이 하는 꼬라지는 빡쳐도 북한은 우리의 영원한 친구라는 소리이다. 그냥 대놓고 북한은 우리의 동맹이며 땔 수 없다는 의사표현만 분명히 한 셈이다. 근데 이제는 북한온갖 막장스러운 짓거리를 일삼는 경우가 많아서, 차라리 북한을 포기하고 대미전선을 압록강-두만강 유역으로 후퇴시키자는 소리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아무리 그 개새끼는 우리 개새끼한다고 해도 동맹국이 너무 막장이면, 국제사회의 여론만 자기들에게 불리해지기 때문이다.[10] 여담으로 한국에서 외래어로 쓰는 영어는 거의 항상 미국 영어인데, (apartment->아파트 ,영국 영어로는 flat이라고 한다.) 다른 비영어권 국가까지 포함해도 미국식 영어가 주로 쓰이는 나라는 한국과 필리핀 정도뿐(...) 그것도 필리핀이 미국 식민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물론 외국 가서 미국식 영어를 써도 왠만하면 알아듣는다 또한 날짜를 미국식으로 월/일 순서대로 쓰는 나라도 한국과 미국을 제외하면 거의 없으므로 (대부분 영국식으로 일/월 순서대로 표기한다.) 외국에서 날짜를 쓸때는 되도록이면 January 6th 등 문자로 표기하자.[11] 애초에 독도 문제가 분쟁화된 것에는 미국 역시 큰 책임이 있다. 러스크 서한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참조.[12] 중국과 현재의 단순 제휴관계를 넘어 동맹 수준으로 손잡는 건 지정학적 특성상 선택지가 될 수 없고, 러시아는 러시아와 더 친하게 지내면서도 북한처럼 서방국가들과 적대하는 수준으로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닌 인도 공화국, 남아공, 브라질 등과 같은 사례를 봤을 때 가능하긴 한데 2010년대의 러시아가 서방의 공공의 적이라 손잡는 순간 한미일 동맹 이탈이나 친중은 양반으로 보일 정도의 막장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을 낮을지언정 무시할 수 없다. 그 중국조차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는 두는 판이다.[13] 중국 무역 흑자와 급이 다르다. 물론 대중 무역도 없으면 위험한 건 마찬가지지만 미국과의 무역에 비교할 바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대일 무역과 비교하는 것이 정확하다.[14] 이건 약간 어폐가 있는 말이다. 스위스가 프랑스나 독일을 날려버릴 정도의 무장을 하고 있던가? 물론 스위스는 독일과 프랑스와의 외교 마찰은 없지만, 그 점을 제외하고 바라본다 해도 중립국으로서 반드시 상호확증파괴를 시킬 무장을 할 필요는 없다. 주변국을 부담되게 할 만한 무장이면 충분하다[15] 당연하지만 중립국이라고 해서 인접국에 유의미한 피해를 입히는 도중에도 다른 인접국이 가만히 보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실제로는 가장 먼저 움직임을 보인 국가와 전면전에 돌입하는 것과 동시에 다른 인접국 역시 견제할 수 있는 만큼의 전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주위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이 산재해있는 한국으로서는 이러한 것이 불가능하다. 어디까지나 '해당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남아있는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혹시나 SF에서 나오는 플래닛 킬러를 만들어 낸다면 모르겠지만 현실성이 거의 없다.[16] 게다가 한국은 3개월 내에 수소폭탄을 대량무장할 수 있는 중 하나다.[17] 이것도 동아시아를 진짜로 포기했다간 중국이나 러시아가 현재 미국이 독점중인 태평양으로 진출해서 미국의 코 앞을 압박하는 충공깽스러운 상황을 부르기 때문에, 미국이 당장 발에 불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이럴 일은 절대로 없다.[18] 사실 중국 입장에서는 우려할 만도 한 것이 다른 건 둘째치고 북한이 한국의 통제 하에 놓이는 것 만으로도 산둥 반도에서 베이징까지 가는 고속 진격 루트가 열리게 된다. 그걸 막기 위해서 중국은 무슨 짓이건 해야 하는 입장이며 그래서 북한 정권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물론 전쟁이 나면 북한군은 순식간에 붕괴되겠지만 적어도 1~2주의 시간을 벌 수 있고, 그 동안 북한 지역의 북위 39~40도선 사이에서 한국군의 진격을 막을 기회를 가질 수 있다.[19] 다만 이것도 한국군의 전력 특히 미사일 전력 같은 타격수단이 계속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버텨줄 기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현재 가지고 있는 현무 미사일의 성능강화와 생산량을 봐도 기존에 약 1주일 이내에 북한군의 70% 궤멸에서 하루안에 70% 궤멸로 작전목표가 변경되고 있다. 이 정도면 1주일 정도만에 북한 전역을 점령하는 것도 가능하다.[20] 사실 한국을 포기하고 일본을 택한다는 선택지는 미국에게 있어서도 최악의 선택이다. 원교근공이란 외교의 진리를 생각하면 지금의 일본의 작태를 보아서는 언젠가 일본이 과거에 그랬듯이 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막나가는 모습을 보일지도 모르는지라, 한국이 미국의 동맹으로 남는 것이 더더욱 중요한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을 버리면, 일본이 대중국, 대러시아 전선의 최전방 역할을 얼마 하지도 못하고 전선이 붕괴될 공산이 매우 크기 때문에, 차라리 둘 다 데려가려고 하거나, 한국을 버린다는 선택지는 미국 입장에서는 최악의 선택지. 이걸 아베 신조가 모를 리 없기 때문에, 지금껏 쓸데없이 한국을 자극하는 건 있어도, 본격적으로 혐한을 자처하는 것들에게 부끄럽다는 말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21] 그리고 미국의 한국 포기는 미국에게만 좋지 않게 작용하는게 아닌, 일본에게도 영 좋지 않게 작용될 확률이 높은데, 티격태격거리기는 해도 그나마 오월동주로 함께하고 있는 한국이 중국과 궤를 같이 한다면 일본은 그야말로 코앞에 적을 두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일본으로써도 결코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22] 미국이 핵이나 생화학무기 외에 미사일 체계 등까지 간섭하는 건 한미동맹 유지를 조건으로 한 것이어서, 미군이 철수하고 나면 ABC무기를 제외한 나머지 무기 개발은 막을 명분이 없다[23] 이게 한국이 미국의 태평양 전략에서 맡는 역할로, 전시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공세나 방어는 한국이 북부, 미국이 남부 전선을 담당하게 된다. (미군의 증원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