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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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로고
(1961년 10월 15일 ~ 1973년 3월 1일)[1][2]

파일:KBS_1973_-_19840815[1].png

2세대 로고
(1973년 3월 2일 ~ 1985년 8월 15일)[3]

파일:KBS_로고.png
파일:KBSs[1].jpg

3세대 로고
(1984년 10월 2일 ~ 현재)[4][5][6][7]

파일:/20160713_219/kbsprsns_1468368431008qy2HX_JPEG/kbsprsns_6920900802123999233.jpg

KBS의 통합 마스코트 kebit(케빗) 출처[8]

파일:attachment/kbsorangeball.jpg

KBS2의 옛 마스코트 K2(동글이)[9]

공식명칭

한국방송공사

한자표기

韓國放送公社

영문표기

Korean Broadcasting System

형태

국영방송 (민주화 이전)
공영방송 (민주화 이후)

개국일

1947년 라디오 개국
1961년 텔레비전 개국
1973년 출범

대표자

양승동(제23대 사장)

슬로건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10]
좋은 방송 밝은 내일[11]
좋은 방송 밝은 세상[12]
사랑하기 때문에[13]
Beyond the TV Rock the World[14]
슬기로운 생활의 벗[15]
오늘을 보람있게 내일을 희망차게[16]
TV는 2TV가 재미있다[17]

소재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13 (舊 여의도동 18)

링크

공식 홈페이지
구노조 홈페이지
새노조 홈페이지

1. 개요2. 마케팅
2.1. 로고송2.2. 방송지표
3. 역사4. 사옥5. 특징
5.1. 법인현황5.2. 편성정책
6. 임직원
6.1. 임원
6.1.1. 공사화 이전 (1927~1973)6.1.2. 한국방송공사 (1973~현재)
6.2. 직원
6.2.1. 아나운서6.2.2. 프로듀서
6.3. 기타
7. 채널
7.1.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7.2. 지상파 라디오 방송7.3. PP(KBS N)7.4. 인터넷 방송7.5. 실시간 스트리밍 및 VOD, AOD7.6. 팟캐스트
8. 방송현황
8.1. 프로그램8.2. 방송망8.3. 네트워크8.4. 자회사8.5. 해외 지사
9. 평가10. 논란11. 노동조합12. 교통편
12.1. 본관ㆍ신관12.2. 별관
13. 관련 문서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최대 방송사로 공영방송. 지상파 방송을 운영하며, 자회사를 통해 케이블/위성/IPTV 채널을 운영한다. 본사 주소는 ()07235,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13[18]. 사훈은 '품위있는 방송, 능률적인 경영, 협조속의 단결'.

2001년 이후 한국방송으로 부르고 있다. 정식 명칭은 한국방송공사.[19]

영국BBC, 독일ARD, 도이칠란트 라디오와 ZDF, 프랑스의 프랑스 텔레비시옹과 라디오 프랑스, 미국PBSNPR 등 해외 공영방송들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으나, 사회적 역할이나 개념상으로 일본의 NHK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고, 실제로도 많은 제작 협력 및 교류를 하고 있다. [20] 이처럼 일본 NHK와 닮은 방송성격 때문에 아직도 기성세대에서는 흔히 '국영방송'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확한 법인격적 성질은 국영이 아닌 영조물법인체로서의 공사(공기업)이다. 그러나 제2공영 위치에서 KBS와 방송문화진흥회의 콘트롤을 받는 MBC와 달리, 재정은 기획재정부, 인사 T/O는 행정안전부방송통신위원회의 통제를 받는다던가, 비상시 및 재난방송을 주관하는 방송사인 점 등은 과거 내무부 산하 국영방송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긴 행정안전부가 옛날에는 내무부였지 케이블의 지상파 관련 논쟁에서 KBS1이 EBS와 더불어 지상파 채널 중 의무재송신 대상 채널이라는 점이 알려진 것도 이의 흔적 중 하나이다. 하지만 실제 사건이 일어나자 이것조차 씹혔다.

참고로 KBS 직원들보고 '국영방송'이라고 말하면 엄청 싫어하는 수준을 넘어서 소송까지 맞는다. 노무현 탄핵 시절 새천년민주당 조순형 대표와 장전영 대변인이 KBS보고 "국영방송이 어쩌구" 했다가 소송맞고 사과한 후에 취하한 적이 있다. 분명히 공영방송이라고 불러주지 않으면 매우 싫어한다. KBS에서 떨어져나온 EBS 역시 공영방송으로, '국영방송'이라는 단어를 매우 싫어하니까 주의. 문화방송은 KBS나 EBS처럼 칼같이 '공영방송'이라는 표현을 지키지는 않는다. 사실 MBC를 국영방송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민영방송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있지만.

방송통신위원회가 2013년 11월 15일 발표한 <2012년도 방송에 대한 평가>에서 KBS1은 85.17점, KBS2는 82.55점을 받았다. KBS1TV는 전년과 유사했으며 KBS 2TV는 전체 점수가 전년 대비 3.24% 증가했다. 기사

공식적으로 규정된 업무는 아니지만 난시청과 공시청, 공시청 장비에 관한 업무도 본다. 케이블방송이 아파트나 연립주택의 공시청 장비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들을 복구하는 일이 많다. 이따금씩 광고도 하고. KBS 수신기술서비스[21]

여담이지만 일베 논란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지상파 방송이다. 물론 아예 없었던 건 아니고, 개그 콘서트부엉이 코너 관련 논란이나[22] 렛잇비 베충이 사건[23] 등 일부 있기는 하다.그런데 그나마도 다 2TV이다. 1TV는 아예 없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터뜨렸던 당시 SBS에 비하면 확실히 적은 편이다.

2. 마케팅[편집]

2.1. 로고송[편집]

KBS 노래 ( ~ 1990년대 초반)


90년대 이전 라디오 시그널로 쓰기 위해 노래보다는 가벼운 느낌의 곡으로 만들어 쓴 곡이다. 일종의 로고송이다. 80년대-90년대 초반 KBS 9시뉴스 시작전 ID로고송으로 멜로디 일부가 나온적이 있었고, 90년대 초반때만 해도 방송시작고지에서 이 음악이 나왔으며 2TV ID로고송으로 쓰이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KBS 사회교육 제1방송(972kHz. 현재 KBS 한민족방송)의 오후 1시 오프닝때도 이 음악이 나왔다. 그리고 1980년대에 KBS로 전화를 걸면 이 노래가 통화대기음으로 나왔다

1990년대에는 실로폰음이 나왔다. 꽤 중독성이 있기는 하다(...).

로고송 가사는 다음과 같다.

KBS 노래 공동위원회 작사 / 이희목 작곡

동이 튼다 랄라라
새 날이다 랄라라
맑은소리 곱게 곱게 KBS
빠르고 올바르게 KBS
즐거운 우리들의 KBS
라디오도 랄라라
텔레비젼도 랄라라
밝은소리 굽이굽이 KBS
힘차고 슬기롭게 KBS
영원한 우리들의 KBS


KBS 로고송 (1980년대 ~ )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로고송.

로고송은 다음과 같다. KBS 1TV와 2TV가 구분되어 있지 않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 즐겁고 유익한 TV 제2텔레비전 (198?년 ~ 1987년)[24]

  • 서울올림픽을 세계에 보여주는 우리의 KBS (1988년)

  • 사랑과 기쁨이 솟는 KBS 제2텔레비전 (1980년대 후반 ~ 1993년)[25]

  • KBS KBS 제2텔레비전 (일자 미상 ~ 1994년 9월말)

  • 좋은방송 밝은세상 KBS (1994년 11월 일자 미상 ~ 2001년 3월 2일)

  • 좋은방송 밝은세상 KBS 한국방송 (2001년 3월 3일 ~ 2003년 6월 27일)[26]

  • KBS KBS KBS 한국방송 (사랑해) (2003년 6월 28일 ~ 2009년 일자 미상)[27][28]

  •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1990년대 ~ 2001년 3월 2일)[29]

  •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한국방송 (2001년 3월 3일 ~)[30]

  • 정성을 다하는 KBS 국민의 방송 (2001년 3월 3일 ~ 2003)

  • 사랑하기 때문에 KBS(2000년대 중반 ~)[31]

2.2. 방송지표[편집]

  • 1986년: 하나로 세계로 미래로

  • 1990년: 인간화, 민주화, 세계화 - 21세기를 준비한다

  • 1993년: 새로운 출발, 국민의 힘을 모읍시다

  • 1994년: 국민과 함께 세계로

  • 1995년: 광복 50주년-새 반세기의 출발

  • 1996년: 21세기 앞으로 5년, 국민과 함께 KBS가 앞장섭니다

  • 1997년: KBS 50년, 새로운 반세기 국민과 함께

  • 1998년: 경제위기 극복, 국민과 함께 KBS가 앞장섭니다

  • 1999년: 21세기가 눈앞에 다시 일어서는 한국

  • 2000년: 벽을 넘어서 화합의 시대로

  • 2001년: 디지털 KBS, 희망을 함께 나눔을 함께

  • 2002년: 2002 코리아 하나되어 세계로 미래로

  • 2003년: 새출발 대한민국 화합의 시대로

  • 2004년: 함께 가자, 대한민국!

  • 2005년: 국민감동 KBS

  • 2006년: 아시아의 창 KBS

  • 2007년: 한국인의 희망 KBS

  • 2008년: 하나되는 대한민국 함께하는 KBS

  • 2009년: 공정 공익 KBS

  • 2010년: 희망 2010 대한민국의 힘 KBS

  • 2011년: 시청자와 함께 디지털 KBS

  • 2012년: 하나되는 대한민국 글로벌 KBS

  • 2013년: 글로벌 KBS 행복한 대한민국

  • 2014년: 창의와 신뢰로 미래를 여는 KBS

  • 2015년: 광복 70년, 미래 30년, 대한민국 100년의 드라마 KBS

  • 2016년: 청년 대한민국

  • 2017년: 희망 2017, KBS가 함께 합니다

  • 2018년: 희망과 감동, KBS가 함께 합니다

3. 역사[편집]

1927년 경성방송국(호출부호 JODK[32])으로 라디오 방송을 송출하기 시작해 해방 후 1947년 국영 서울중앙방송으로 재출범하였고, 1961년 12월 31일 TV 방송을 시작했으며 1973년 정부조직에서 독립하여 한국방송공사가 되면서 공영방송 체제를 갖춰 오늘에 이르고 있다.[33]

자세한 내용은 한국방송공사/역사 문서 참조.

4. 사옥[편집]

파일:사본%20-%20KBS전%203[1].jpg

KBS 본관과 신관 전경.
신관 건물은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국제방송센터(IBC)용도로 지어졌으며, 현재 보도국 및 뉴스 스튜디오 등이 위치하고 있다.[34]

파일:/100/400/96/100796.jpg

KBS 공개홀.
본관 왼쪽에 있다. 왼쪽 전경에서는 본관과 신관 중간에 있는 동그란 건물

파일:20160530_140705_HDR[1].jpg

KBS 연구동. 공개홀 뒤쪽에 있다.
2018년 미래방송센터 착공 전에 상반기부터 연구동을 철거할 예정이다.[35]

파일:m_pop_img1[1].jpg

파일:128403_165187_0338[1].jpg

KBS 미래방송센터 조감도.

사옥 개방은 다른 지상파 3사에 비해 개방이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오전6시 부터 ~ 저녁 12:00 까지 건물은 개방이 된다. 출입가능 범위는 신관, 본관 1층 의 로비등은 자유로이 이용이 가능하다. 특히나 라디오 스튜디오가 오픈스튜디오 방식이라서 매일밤 DJ 진행자의 팬들이 모여서 팬미팅를 하기도 한다. 주말에도 크게 문제없이 이용이 가능하긴 하나, 일부 위치는 시간이 지나면 문이 잠긴다.

5. 특징[편집]

5.1. 법인현황[편집]

  • 설립근거: 방송법 제43조 1항 외 관련 법령

  • 임무 및 기능: 동법 §43~§68 참조[36]

  • 조직현황: #KBS 홈페이지 조직도 참조. 개편 이후 너무 많아져서 셀 수가 없다[37]

  • 인력현황: 사장 포함 상임임원 13인, 비상임임원(이사) 11인, 정규직 총원(T/O) 5,548인 중 현원 4,656인.(2013년말 기준)[38]

  • 직원평균보수: 기본급 4,746만원 + 수당 등 4,802만원 = 합계 9,548만원[39]

  • 2013년 재무현황: 수입 1,557,151백만원(정부출연 및 보조 등 606,464백만원) / 지출 1,552,823백만원

  • 그외 파업하면서 꼬박꼬박 걷는 불로 소득이나 강제 공출제도나 다름없는 수신료 징수.


기타 정보는 KBS 홈페이지의 경영공시 항목 참조.(http://www.kbs.co.kr/openkbs/)[40]

5.2. 편성정책[편집]

6. 임직원[편집]

출처는 여기이다.

6.1. 임원[편집]

6.1.1. 공사화 이전 (1927~1973)[편집]

경성방송국 제2방송과장


  • 윤백남 (1932~1933)

  • 김정진 (1933~1936)

  • 심우섭[41] (1936~1939)

경성방송국 제2방송부장


  • 이혜구 직무대행 (1942)

  • 노창성 (1942~1943)


조선방송협회장


  • 이정섭 (1945~1948)


서울중앙방송국장 [42]


  • 이혜구 (1945~1947/1949)

  • 홍양명 (1947~1948)

  • 이관희 (1948~1949)

  • 노창성 (1949~1953)

  • 이운용 (1953~1960)

  • 조흔파 (1960~1961)

  • 윤길구 (1961~1963/1966)

  • 김재연 (1963/1966~1968/1969~1970)

  • 이홍수 (1963~1966)

  • 김임용 (1968~1969/1970~1971)

  • 민유동 국장대행 (1969)

  • 홍경모 (1969)

  • 최창봉[43] (1971~1973)


서울국제방송국장 [44]


  • 황기오 (1961~1962)

  • 이용상 (1962)

  • 심득성 (1962)

  • 이재현 (1962~1963)

  • 노정팔 (1963~1966)

  • 이용상 (1966~1968)


서울텔레비전방송국장 [45]


  • 황기오 (1962)

  • 이홍수 (1962~1963)

  • 김재연 (1963~1965)

  • 김진영 (1966~1968)

6.1.2. 한국방송공사 (1973~현재)[편집]

이사장


1984년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 제정에 따라 이사장제가 신설됨.

  • 송지영 (1984~1988)

  • 노정팔 (1988~1993)

  • 김태길 (1993~1996)

  • 김채윤 (1996~1998)

  • 이세중 (1998~2000)

  • 지명관 (2000~2003)

  • 이종수 (2003~2006)

  • 김금수 (2006~2008)

  • 유재천 (2008~2009)

  • 손병두 (2009~2012)

  • 이길영 (2012~2014)

  • 이인호 (2014~2018)

  • 변석찬 이사장대행 (2018)

  • 전영일 이사장대행 (2018)

  • 김상근 (2018~)


사장


순서

이름

시기

비고

초대~2대

홍경모[46]

1973~1979

3대

최세경

1979~1980

4~5대

이원홍

1980~1985

6대

박현태

1985~1986

7대

정구호

1986~1988

8대

서영훈

1988~1990

9대

서기원

1990~1993

10~11대

홍두표

1993~1998

최초의 방송인 출신 사장

12~13대

박권상

1998~2003

14대

서동구

2003

사퇴[47]

15~17대

정연주

2003~2008

해임

사장대행

이원군

2008

제명

18대

이병순

2008~2009

19대

김인규

2009~2012

20대

길환영

2012~2014

해임

21대

조대현

2014~2015

22대

고대영

2015~2018

해임

사장대행

조인석

2018

제명

23대

양승동

2018~


1973년 이후 역대 사장 중 암묵적인 외압이나 내부 반발에 의한 사임 등은 제치고 공식적으로 사장에서 해임당한 사례는 정연주길환영, 고대영 사장 세명이다. 정연주 사장은 업무상 배임으로 기소, 길환영 사장과 고대영 사장은 각각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보도 통제 논란 등과 보도국장으로 재직시 금품수수 및 보도 누락 의혹, 민주당 도청 의혹사건 등 여러 논란로 인한 공영성 훼손으로 이사회에서 강제 퇴출당했다. 다만 정연주 사장의 배임은 훗날 무죄로 판명났고(해임 무효 소송에서도 승소), 실제 의도는 윗선에서의 언론통제라는 평가가 대다수.

그리고 이들 중 이원홍과 정연주 두 사장은 역대 KBS 사장들 중 왕PD 칭호가 붙어있다. 그 이유는 프로그램 제작 등에 있어 시시콜콜 개입했기 때문(...)[48] 그리고 사장들 대부분은 기자 출신이다.[49]

부사장


  • 최창봉 (1973~1976)

  • 김재중 (1976~1980)

  • 윤혁기[50] (1989~1990)

  • 손영호[51] (1990~1994)

  • 최동호 (1994~1998)

  • 이형모 (1998~2000)

  • 강대영 / 김형준[52] (2000~2003)

  • 안동수[53] (2003~2005)

  • 김홍[54] (2005~2008)

  • 이원군[55] (2007~2008)

  • 김성묵[56] / 유광호 (2008~2009)

  • 조대현 / 김영해[57] (2009~2011)

  • 길환영 (2011~2012)

  • 전홍구 / 류현순[58] (2013~2014)

  • 금동수[59] (2014~2015)

  • 전진국 / 조문재[60] (2015~2017)

  • 조인석[61] (2017~2018)

  • 정필모 (2018~)

6.2. 직원[편집]

6.2.1. 아나운서[편집]

  • 재직 중인 아나운서를 기수 및 성별(동일 기수 및 동일 성별일 경우 가나다 순, 지역권은 지역권 순 우선)로 나열합니다.

  • 단, 지역권 아나운서의 경우 계속 지역방송총국/지역방송국에서 머물게 됩니다.

  • 취소선은 퇴사(프리랜서, 정년퇴임)하거나 재직 중 사망하거나 다른 방송국으로 이적하거나 서울로 복귀한 아나운서입니다.

  • 언론통폐합 당시 타 방송사에서 이적한 아나운서는 포함하지 않습니다.


기수

입사연도

남성

여성

지역권

2

1974년

이명용

3

1975년

김상준

4

1977년

박경희

5

1978년

안희재

6

1979년

표영준

최명순(순천)

7

1980년

이미선, 지영서

강은이(광주)

8

1981년

김성수, 이천규

유애리

김충진(대구), 김영숙(대구)

9

1982년

김희성, 송경희, 윤영미[62], 임화숙, 정미홍

박서정(춘천), 진두연(충주), 박대식(광주), 위영미(광주),
조원숙(울산), 노병무(창원), 신석진(창원), 조동건(제주)

10

1983년

김경희(충주), 정용조(울산)

11

1985년

강성곤[63],

장현순(부산), 문의순(제주)

12

김흥수

박영주[64]

윤만오(춘천), 유연배(원주), 김혜정(원주), 박재효(광주),
임진숙(광주), 정윤심(목포), 송현주(대구), 김미균(진주)

13

1986년

(故) 박태남[65], 조건진

서상기(광주)

14

1987년

김관동 [66], 김동우, 전인석

이규원

이경수(광주)

15

서기철

오영실

김호성(청주), 김동환(부산), 한국현(울산)

16

1989년

이금희, 정미정[67].

김석훈(목포)

17

1990년

김병찬, 손범수[68]

정은아[69]

김경미(강릉)

18

1991년

류재복, 박현우

성기영, 임수민, 정용실, 태의경, 홍영숙

19

1993년

김현태, 장두희

공정민, 김성은, 성세정, 진양혜[70], 황정민, 황수경, 황현정

20

1994년

이형걸[71], 최승돈

변우영, 오유경, 임성민, 장은영[72]

김윤혜(청주), 김수진(전주), 김태은(전주), 백명지(대구), 이지향(울산)

21

1995년

김재원, 김홍성, 이성민, 한상권

최은경

김연선(대전), 김평래(부산)

22

김태규 [73] , 원석현, 유지철 [74]

백정원, 신윤주 [75]

양민오(대전)[76], 한태호(원주), 윤석황(강릉), 박경추(제주)[77]

23

1996년

이창진, 최시중

이영재(제주)

24

1997년

김은성, 신영일, 오태훈, 윤인구, 이재후

국혜정, 손미나, 신성원, 윤소희, 윤지영, 정세진 [78], 홍소연

25

1998년

이재홍

황유선

26

2000년

김현욱, 배창복, 이규봉, 장웅

박주아, 이지연[79], 장혜원, 지승현, 최원정, 최윤경, 허은정

27

2001년

김기만, 박노원

김경란, 정은승

박하늬(춘천), 김숙경(대전), 현송희(제주)

28

2002년

김희수, 이상협, 이영호

강수정, 김지윤

29

2003년

이광용, 이상호, 한석준

김보민, 김윤지, 노현정, 박사임, 박현선, 백승주, 위서현, 이승연

30

2004년

박태원[80], 최동석[81]

고민정 [82] , 김진희, 박지윤[83]

이의선(춘천), 정은숙(춘천), 최연수(대전), 임정섭(광주), 정은아[84] (순천)

31

2005년

김재홍, 심인보, 조우종

윤수영, 이선영, 이정민, 조수빈

원순식(청주), 전유미(대전), 함윤호(전주), 배성재(광주), 고은령(부산), 한효연(대구), 박소영(창원)

32

2006년

전현무

오정연, 이지애, 최송현

33

2007년

오언종

박은영, 박지현, 엄지인, 장수연[85]

최인희(청주)[86], 박명원(대전)

34

2008년

김승휘[87]

가애란, 유지원, 정다은

손지화(대전), 채윤아(광주), 강령아(울산), 이아롬(창원)

35

2009년

도경완

김솔희, 이현주, 차다혜

조승학, 조인철(안동)

36

2010년

김서련(춘천), 이해수(청주), 김지연(대전), 정현정(전주), 김한별(광주),
양문석(청주)[88], 손지민(대구), 차재환(부산)[89], 한승훈(제주)

37

2011년

오승원[90]

이지연[91], 전주리

38

2012년

조충현, 한상헌

김민정, 이슬기, 정지원 [92]

39

2013년

강승화, 조항리

김지원 [93] , 이각경 [94], 이승현

양수진(강릉)

40

윤상아(강릉),-- 정다운(안동), 서명균(울산)

41

2014년

김선근

강서은

안주연(원주), 백선일(청주), 김형철(전주), 봉효정(전주), 김지현(목포), 진유현(대구), 최현호(부산), 이지현(부산), 오보람(울산), 신유진(창원), 고혜윤(진주), 고새롬(제주)

42

2015년

이재성 [95]

박소현 [96]

김소은(강릉), 정은지(강릉), 김지원(충주), 이현정(안동)

43

2016년

김종현 [97], 강성규[98]

이혜성[99]

김현지(진주), 이은주(강릉), 임지수(청주), 정지성(충주), 변정연(순천), 김애진(포항), 편소정(울산), 이지인(창원)

44

2017년

강지연 (춘천), 봉주선 (순천), 윤소희 (강릉), 이주희 (순천), 정혜경 (울산), 조민경 (충주)

45

2018년

남현종

김도연, 박지원

6.2.2. 프로듀서[편집]

보도, 예능, 드라마



애니메이션 및 외화 더빙 제작


6.3. 기타[편집]

  • 이일구: <용의 눈물>, <개그콘서트>, <인간극장>, <아침마당> 등 자사 프로그램 타이틀로고 디자인 담당. KBS아트비전 상임이사 역임. (블로그)

7. 채널[편집]

참조 사항: 2002년 5월전까지는 뉴스 프로그램을 제외한 나머지 프로그램에는 KBS 로고(워터마크) 표시가 없다가 이후 처음으로 도입할 당시 오른쪽이었다가,[141]2003년 11월 30일 부터 2010년 12월 31일까지 KBS 로고(워터마크) 위치가 왼쪽이었지만 2011년 1월 1일부터 다시 오른쪽으로 바뀌었다.

방송국명

주파수ㆍ채널

KBS 1TV

U-KBS STAR

Ch.15(관악산), 22(남산)

KBS 2TV

U-KBS HEART

Ch.17(관악산), 45(남산)

KBS 제1라디오

AM 711㎑/FM 97.3㎒

KBS 제2라디오

Happy FM

AM 603㎑/FM 106.1㎒

KBS 제3라디오

사랑의 소리 방송

AM 1134㎑/FM 104.9㎒

KBS 1FM

Classic FM

FM 93.1㎒

KBS 2FM

Cool FM[DMB]

FM 89.1㎒

KBS 한민족방송

제1방송 AM 972㎑, 단파(SW) 6015㎑, 제2방송 AM 1170㎑

7.1.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편집]

1961년 12월 31일 저녁 7시 30분 남산연주소에서 첫 전파를 쏘아올렸다. 당시 화재로 문을 닫고 방치되어 있던 DBC 대한방송의 TV 장비와 인력을 인수하였고, DBC가 원래는 KORCAD-TV HLKZ라는 RCA 제휴 민간방송이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아시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후덜덜한 방송장비를 갖고 있었다.[143] 하지만 엔지니어의 역량 부족으로 인해 고장이 참 잘 났다고 한다(...). DBC는 미국인 엔지니어가 있었음

현재 지상파 TV채널로서는 KBS 1TVKBS 2TV를 운영하고 있으며, 1980년대 당시에는 교육방송으로서 KBS 3TV도 있었지만[144] 1990년에 독립해서 한국교육방송공사가 되었다.[145]

참고로 KBS1에는 한국의 지상파 TV채널 중 유일하게 상업광고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1994년 10월 1일 이전에는 상업광고를 했었다. #(KBS1에서 대놓고 9시뉴스가 시작하기 전에 XX약품 광고가...)[146][147]

2012년 10월 8일 05:00부터 KBS 1TV의 24시간 방송을 개시했다. 지상파로서는 최초.[148]

KBS2의 경우 1980년에 내려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에 명시된 신문-방송 겸영 금지로 과거 민영방송이었던 동양방송이 한국방송공사로 이관되며 추가된 채널이다. 보도와 교양프로그램은 기존의 KBS 채널이었던 KBS1에서 담당하고 있었기에, 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KBS2에서 뉴스 프로그램의 비중이 적었으며, 심지어 각종 대형사건 및 중요 행사와 관련하여 다른 지상파 방송국들은 뉴스속보나 생중계를 내보내는데 혈안이 되는 시점에서도 정규방송을 당당하게 방송해 주던 단 둘 뿐이였던(EBS 포함) 지상파 채널이었다. 그래서 이 당시에 KBS2는 전쟁이 나도 드라마나 쇼프로를 방송해 줄 거라는 우스갯 소리가 돌기도 했다. TV 도쿄?

지상파 채널 외의 계열 방송사로는 KBS N이 있으며, 케이블 채널로 KBS drama, KBS joy, KBS N SPORTS, KBS W, KBS Kids, KBS N LIFE를 운영하고 있다.

한편 해외에서 시청할 수 있는 KBS 월드라는 채널도 운영하고 있는데, 자체제작이 아니라 그냥 방송콘텐츠에다가 외주 업체에서 만들어온 영문 자막을 그대로 덧씌워서 내보내는 형식이다.[149] 시청 국가 및 지역에 따라 편성표는 각각 운영된다. 그래도 해외에서 한국 문화에 목마른 사람들에겐 꽤 인기있는 모양.[150]

KBS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효과음을 돌려쓴다.

7.2. 지상파 라디오 방송[편집]

라디오 채널로는


과거에는 '사회교육방송' 이란 것도 존재했으며 (2007년에 KBS 한민족방송으로 바뀌었다.), 섬마을 사람들은 매일 오전 9시 45분부터 방송되는 일기예보를 듣고 실제로 일기도를 그렸다. 물론 대략 80년대 얘기이며, 이제는 매시 58분마다 KBS 제1라디오에서 날씨를 전하고 있다.[153] 어차피 낙도에서도 인터넷을 써서 기상청에 접속할 수 있는 세상.[154]

하지만 국가기반 공영방송국 주제에 KBS 2FM은 광고방송을 이유로 수도권에서만 방송한다. 그래서 지방에서는 U-KBS MUSIC이라는 T-DMB V-Radio방송을 들어야하는데 한 프로그램만 릴레이를 하지 않고 자체방송을 한다.정작 그 자체방송에선 KBS MUSIC이라고 하지않고 Cool FM이라고 한다. 뭐지? 새벽 재방송 때문인가?

7.3. PP(KBS N)[편집]

  • KBS drama

  • KBS joy

  • KBS N SPORTS

  • KBS W: '삶을 리드하는 여성'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2013년 1월 1일 개국. 케이블TV 각 SO에서 기존 KBS Prime을 송출하던 번호를 배정받았다.

  • KBS Kids

  • KBS N LIFE: 2015년 3월 8일자로 KBS Prime에서 변경. 스카이라이프와 olleh tv에만 송출된다.

7.4. 인터넷 방송[편집]

KBS의 인터넷 전용 뉴스채널로 인터넷 방송 페이지/어플 KBS my K를 통해 로그인 없이 시청가능, KBS 1,2TV에서 하는 모든 TV뉴스를 동시에 중계해주며 자체뉴스도 한다. 24시간 뉴스 채널을 표방하고 있지만 현실은 시궁창... 주요 뉴스 시간 외에는 VTR을 몇번이고 재탕만 한다. 그걸로도 부족해 뉴스만으로는 방송 시간을 메우기 어려웠는지 다큐멘터리나 교양프로그램도 섞어 방송한다. 심지어 새벽에는 전날 방송한 9시뉴스의 재방송도 한다. YTN이나 BBC뉴스채널 수준의 방송을 기대한다면 큰 오산...

KBS N 전 채널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편성하는 OTT 전용 채널, 2017년 6월 개국해 에브리온TV와 LG U+ 비디오 포털에서 볼 수 있다.

7.5. 실시간 스트리밍 및 VOD, AOD[편집]

1994년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1997년 뉴스클립 다시보기 서비스, 1998년 본격적인 VOD 서비스 시작때부터 2001년 초반까지는 주로 리얼 플레이어를 통해 회원가입/로그인 없이 무료로 실시간 스트리밍 및 VOD, AOD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후 회원제로 전환되었고, 2000년대 중후반에 라디오 전용 프로그램인 Kong 플레이어가 출시되었다. 2012년경에 마이 K가 출시되어 이제는 회원가입/로그인 없이도 실시간 스트리밍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모바일 방송 서비스를 막아놓은 MBC3분마다 광고를 봐야 하는(...) SBS와도 차별화되는 부분. 한국교육방송공사도 EBS Play를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다. 하지만 BBC의 iPlayer(플래시 기반)와 다르게 K플레이어는 그놈의 ActiveX 설치를 요구하기에 인터넷 익스플로러 웹브라우저에서만 사용가능(...). 다만 일반적인 AOD, VOD는 2012년경 방영분부터는 WMA/WMV기반이 아닌 AAC/MP4 기반이기에 크롬 등 다른 웹브라우저에서도 이용 가능.

KBS의 VOD 서비스가 다른 방송사와 차별화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저화질에 한해 무료라는 점. 한국교육방송공사마저도 VOD[155]가 유료화되어 많은 네티즌들이 어둠의 루트를 통해 복돌이가 되어가게 만들었지만 KBS만큼은 무료 VOD 서비스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고화질 다시보기의 경우 일정 기간 동안 무료로 제공해주거나 콘피아 라는 별도 사이트로 연결되며 타 방송사처럼 유료이다. 수신료를 받는 마당에 이거라도 무료로 해주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다만 타 방송사도 무료 VOD/AOD 서비스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문화방송과 SBS는 라디오 AOD 서비스를 팟캐스트를 통해 무료로 시행중이고, 지역방송지역민방의 자체 제작 TV 프로그램일 경우 무료로 제공된다. 하지만 재미가 없다. 재미있는 방송도 있는데요? 케이블방송에서도 온게임넷 등은 무료로 제공되기는 하지만 온게임넷의 모회사가 온미디어였던 시절의 VOD는 원본을 전부 삭제해서 환상의 에피소드가 되버려 현재 볼 수 없다. 자기들에게 있어서도 흑역사가 아니었을까 그 밖에도 TVING에서도 무료 VOD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 독도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스트리밍 중계해준다. 청와대, 정부서울청사, 서울특별시청 등지의 구내 TV에 나오는 것과 같은 영상이다.[156] 그리고 평창 동계 올림픽 D-50 특별 생방송도 방송 이후 다음날에 VOD 서비스를 시작했다.

7.6. 팟캐스트[편집]

2013년까지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웹브라우저를 통해 접속한 후 별도의 프로그램(ActiveX)을 설치하여 로그인후 다운로드해야 하는 등 BBC, MBC와 비교해도 폐쇄적으로 운영해왔으나 2014년부터는 아이튠즈 체제로 전환하여 회원가입/로그인 없이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8. 방송현황[편집]

8.1. 프로그램[편집]

8.2. 방송망[편집]

8.3. 네트워크[편집]

서울 외에도 지방에 9개 방송총국, 9개 방송국, 1개 센터를 두고 있으며, 13개 해외지국을 개설하여 운영 중이다. 또한 각 지역방송국은 MBC, SBS-지역민방처럼 네트워크 협력관계가 아닌, KBS라는 단일조직 내에 있다. 따라서 KBS 본사에 입사하는 신입사원들은 지역 순환근무를 반드시 거친 다음 본사로 오게 된다. (단, 각 지역방송국마다 따로 채용하는 인원들도 있는데 이들은 순환근무를 하지 않는다.)

현재 네트워크 현황 :
*KBS만 있는 지역국
경기권: 본사(서울), 경인센터(수원/인천)
강원권: 춘천(총국), 원주, 강릉
충북권: 청주(총국), 충주
충남권: 대전(총국)
전북권: 전주(총국)
전남권: 광주(총국), 목포, *순천
경북권: 대구(총국)[157], 안동, 포항
경남권: 부산(총국), 창원(총국), 울산, 진주
제주권: 제주(총국)

2004년 지방 방송국 통폐합으로 군산시, 남원시 (이상 전주), 속초시,태백시 (이상 강릉), 영월군(원주)[158], 공주시(대전), 여수시(순천) 7개 방송국이 인근 방송(총)국으로 합쳐졌다. 그런데 KBS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라디오 주파수 목록에는 10년이 넘도록 아직도 이 7개 방송국이 독립된 방송국으로 적혀있다(...).[159]

라디오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2015년까지 본사에서 지역국으로 시보나 방송시작멘트를 넘길 때 나는 효과음(띠리리리~ 띠리리리~)이 난 적이 있었다. 2016년부터 사용하지 않고 있다.

8.4. 자회사[편집]

8.5. 해외 지사[편집]

9. 평가[편집]

10. 논란[편집]

방송에 대한 만족도에서 계속해서 1위를 차지하는 KBS지만, 논란거리가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친정부 성향, 수신료 인상, 공영성 등이 KBS의 큰 문제로 꼽히고 있다. 아래에 있는 비판은 그 중 일부이며, 더 아는 비판은 추가바람.

  • KBS2의 광고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줄곧 논란이 되어오고 있다.

  • 드라마 제작 현장의 근무여건 우라가 보는 70분 분량의 드라마의 경우에도 말도 못 하게 일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을 보면 17시간(...)이라는 노동시간도 있다.

  • 2008~9년 KBS에서 타종행사 때 촛불시위를 고의적으로 은폐 시도해서 논란이 있었다. 해당 시위영상은 아프리카TV로 생중계되었고 이후 "라쿤"이라는 네티즌은 두 영상을 좌우로 합성한 비교영상을 블로그에 게시하였다.(영상보기) 지금은 정신을 차렸는지 2016~7년 타종행사 때는 방송에 내보냈다. (영상보기)

  • 국내 최대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미디어리서치’가 매년 시사저널의 의뢰를 받아 각계 전문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설문조사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에서 2014년 신뢰도는 25.8%로 2013년 38.7%에서 급락하여 한겨레신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역대 조사에서 강자로 군림해온 KBS는 낙하산 인사 논란, 공정 보도 논란 등으로 인해 중립성·공정성을 의심받으며 공영방송으로서 그 위상은 현저히 실추됐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발생한 KBS 사태로 드러난 정권의 KBS 통제를 KBS 신뢰 실추의 이유로 지적했다.

  • 방송을 일찍하는 꼼수편성을 쓰고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정말 심할 정도. 4시 55분에 하는 것을 4시 20분으로 앞당겨서 시작하고 있다. 이때문에 아빠! 어디가?K팝스타도 앞당겨서 시작했다. 사실상 KBS 때문에 MBC와 SBS가 피해보는 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룸메이트를 4시 5분으로 앞당겨 편성하면서 SBS도 꼼수편성 대열에 합류했다. 또한 불후의 명곡무한도전보다 20분 앞당겨서 방송하고 있다.

  • 2014년 들어서 또다시 KBS 수신료를 인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수신료 현실화 건강한 공영방송의 시작입니다"라는 문구를 KBS 1TV와 2TV에 수시로 집어넣고 있다. 그 와중에 EBS로 들어가는 수신료의 비중이 3%밖에 안된다는 경악할 만한 사실도 밝혀졌다. #[160]

  • 2014년 10월 KBS 이사장인 이인호김구는 독립운동가가 아니며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친일파적인 발언을 해 큰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 2014년 12월 KBS 1TV 채널의 장수 프로그램 명화극장이 시청률이 안 나온다는 이유로 폐지되어 성우, 시각장애인 협회, 더빙, 외화 팬, 일반인들에게까지 큰 비난을 받았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 명화극장과는 별개로 다큐멘터리 쪽도 대거 폐지되었다. 과학스페셜, 역사스페셜, 환경스페셜을 폐지하고 KBS 파노라마로 통합했는데, 2014년 12월 19일 폐지되었다. 명화극장과는 다르게 이쪽은 팬층도 마이너해서 소리 없이 묻혔다. 특히 환경스페셜은 4대강 사업을 대차게 깐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정부의 타겟이 되어 폐지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견도 있다.

  • 예능 프로그램 편성에 있어서 엄숙주의와 보수성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방송사다. 이는 공영방송이라는 점이 악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친정부 성향에 따라 정부 성향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을 배척하기도 한다. 이러한 영향에 따라 타사에서 검증되어 비판을 받을 여지를 최소화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로 인해 다른 방송국[161]의 예능 프로그램을 무단 벤치마킹하는 모습도 자주 드러난다. 게다가 엄숙주의 성향이 매우 강해서 창의적인 프로그램이 등장해도 도덕성이나 공영성 관련 비판을 받으면서 폐지되거나 재미가 없어지는 경향이 있다.

  • 2015년 6월 24일 뉴스9는 “이승만 정부가 6.25 전쟁 발발 이틀 뒤인 1950년 6월 27일, 일본 야마구치현에 한국민 6만명의 망명 의사를 타진했고, 일본이 한국인 피난 캠프 계획을 세웠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을 단독 보도했다. 이날 KBS가 공개한 문건은 일본 야마구치현의 공식 역사 기록이라고 보도하였으나, 일본 야마구치현 역사기록을 확인한 결과 6월 27일이라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고, 관련 자료와 전후 사정으로 비추어 볼때 KBS가 미 국무성 자료와 야마구치현 현사의 자료를 끼워맞춰 추측성 보도를 특종으로 낸 것으로 확인되어 큰 논란이 발생했다. 이로인해 KBS는“전쟁 발발 이틀만이라고 할 근거인 6월 27일이라는 날짜는 문서 내용에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라고 정정 보도를 냈다.

  • 계열사인 KBS N에서 1억원 등의 호화 상품을 걸어놓고 진행했던 대국민 프로그램 기획안 공모전에서 사람들의 접수를 다 받아놓고 심사결과 수상작이 없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접수된 기획안만 2000건이 넘어간다고 한다. 방송국 측에선 접수받은 기획안을 다 폐기처분 하겠다고 밝혔지만, 내부 일인데 제대로 폐기될지 누가 알겠으며, 설사 그렇다고 해도 심사위원이였던 직원들 (PD, 작가 등)이 한번씩 기획안을 봤을텐데 그걸 안쓰리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 물론 아이디어를 빼먹는것에 대한 문제는 여러 공모전에서 불거졌던 논란이지만 유독 욕을 먹는 건 공영방송이 이랬다는 것과 아예 수상작도 없이 공모전을 끝내버려, 결론적으로 정말이지 돈 한푼 안들인 먹튀가 되버린 것이 가장 큰 문제.

  • 자꾸 출연금지 연예인들의 출연금지를 해제시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KBS2는 과거 동양방송에서 한국방송공사로흡수되었기때문에 논란이3분의1 일건아니다. MBCSBS도 역시 같은 상황이지만, 최소한 공영방송이라면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 특히 출연금지 연예인을 출연시키는 것을 최대한 자제해야 하는데, 2014년에 마약(대마초)에 걸린 오광록, 2015년에는 음주운전해서 출연금지를 받은 SG 워너비김용준의 출연금지를 해제시켰고 특히 2016년 도박으로 출연금지를 받은 이수근(3월), 이상민(4월), 토니안(5월), 김용만(8월)을 연달아 출연시킨 것도 모자라서 무려 전과 3범[162]을 일으킨 이승연까지 출연시키자 더욱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이승연 출연금지 해체 대한 반응. 게다가 2017년에는 마약 논란을 저지른 박시연(2월), 도박을 한 이성진(10월) 그리고 2018년 4월에 결국 출연금지 해제 시킨 탁재훈도 해제 시키기 전에 해피투게더에서 이상민이 출연했던 회차(2016년 6월 23일자)에서 이름 뿐이지만 언급하였고 같은 해피투게더의 이수민이 출연한 회차와 안녕하세요(2016년 7월 28일자)의 김소희가 출연한 회차(2016년 8월 1일자)에서는 아예 사진까지도 같이 나왔다. 그것도 수신료로 운영하는 공영방송이 범죄자들의 출연 금지를 해제하는 것조차 시청자에게 수신료를 환불을 해야 할 만큼 막장인데, 이것도 모자라 계속 수신료 인상과 중간광고 수용을 요구하는 짓거리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국민들이 예능보단 정치에 관심을 두는 상황 속에서 정부에 휘둘리지 않고 방송하는 JTBC가 큰 인기를 얻는 바람에 지상파 방송사들의 자리들이 위태롭게 됐다. 그래서 일각에선 KBS가 살기 위해 범죄자들를 출연시키는 극단적인 수를 쓰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출연 금지까지는 아니지만 장애 아들 폭행 논란과 더불어 여러 물의을 일으킨 신은경[163]을 출연시켰고, 출연금지인데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이경영송영창[164], 정재진[165]의 영화를 방영하는 등 공영방송이 지금 완전 범죄자 소굴로 만들고 있다.

  • 2008년에는 일부 PD가 금품수수 혐의로 연루되어 대부분 실형 선고를 받아 제명되었고# 심지어 이원군 전 부사장도 2년에 걸친 법정소송 끝에 결국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제명되었다.#

  • 2016년 8월에, 수신료로 운영하고 있는 공영방송이 자회사 몬스터 유니온을 설립해 논란이 되고 있다. 실제로 외주제작사 세 단체는 KBS가 스스로 상업화라는 괴물이 되겠다고 선언했다라며 민영방송과 다를 바 없는 길을 걷는 KBS는 수신료 역시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해당 기사 현재 이 자회사 대표에는 싸이더스 HQ 출신이자 화랑:더 비기닝을 제작한 박성혜 PD#과 이외에 개콘 노잼화의 주범서수민, 문보현 PD[166], 이정섭 PD[167], 유호진, 유현기 PD[168]등이 있다.

  • KBS가 공영방송이라고는 하지만, 공영성을 내세우면서 하는 정책이 더 문제가 되거나, 아예 다른 곳에선 공영성을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표적으로 2017년 12월 21일에 평창동계올림픽 특별생방송에서 8명이나 된 사람들이 밖에서 3시간이나 머물렀다. 급나추운스키장에서 2003년 11월에 예능의 공영성을 강조하며 MC대격돌[169]을 폐지시키고 새 프로를 만들었지만, 오히려 장정진 성우를 떠나 보내며 폐지되었고 관련자들도 제명되었다. 또한 KBS는 예전에는 유튜브에서 다시보기를 올렸으나, 유튜브와의 수익배분 문제로 네이버 TV캐스트에서 영상을 올린다. 하지만, 유튜브와는 다르게 다른 방송사처럼 영상을 짧게 짧게 올리며[170] 수익을 추구하고 있다. 공영방송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공영성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거나 자체적으로 공영성을 버리는 것은 인식이 크게 나빠지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심지어 공영방송이 영화 투자까지 했는데 CJ E&M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제작비 일부(총 170억원 중 KBS가 30억원을 투자)를 투자한 것도 모자라 인천상륙작전 보도 지시 거부한 기자를 징계까지 했다.관련 기사 박근혜 게이트 터진 이후 박근혜 정권 코드식 작품이라고 낙인 찍히고 있다. 이걸로도 모자라서 결국 추석연휴에 TV 방영까지 강행했다.

  • 공영방송 특성상 심의기준이 가장 빡센 편인데, 그 증거로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땅> 원판이 2001년에 '행정구역명 변경'을 이유로 방송금지된 바 있었고, 가수들의 노래중 발음상의 문제등으로 욕처럼 들리는 경우가 있거나 은어등이 사용되었다거나 하는 이유로 방송 부적격을 내리는데 그 기준이 매우 모호하거나 툭하면 부적격 판정을 내려서 욕을 먹고 있다. 싸이의 8집 수록곡 오토리버스는 마이마이와 워크맨이 반복 언급되어 특정 브렌드 홍보라는 이유로, 트와이스의 정규 1집 타이틀곡은 미나의 파트가 욕처럼 들린다는 이유로, 프라이마리의 엘범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솔지의 다이어트도 특정 파트가 욕처럼 들린다는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내렸는데 욕처럼 들리는 파트는 몬더그린 현상인데도 그것으로 트집을 잡는다고 KBS 심의진을 욕하는 여론이 많다.

11. 노동조합[편집]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2노조): 민주노총 소속. KBS 1노조의 우경화에 반발한 젊은 조합원들이 1노조를 탈퇴한 뒤 만들었으며, 2018년부터 1노조를 제치고 교섭대표로 승격되었다.

  • KBS 노동조합(1노조)[172], KBS 공영노동조합(3노조)[173]: 미가맹

12. 교통편[편집]

12.1. 본관ㆍ신관[편집]

12.2. 별관[편집]

13. 관련 문서[편집]

[1] 묘하게 조선중앙방송 로고를 닮았다. 문서 참조. 우연찮게도 이 로고를 쓰던 시기엔 KBS가 국영방송이였던 시절이다.[2] 파일:KBS_1961년_제작[1].png 한편 몇몇 사이트에서는 한동안 신문사 등지에서 임의로 쓰였던 오른쪽 로고가 정식 로고로 오인받기도 했다.[3] 1984년에 아래의 CI가 공개되었지만 1985년 8월 15일까지는 혼용된 것으로 추정된다.[4] 1960년에 나온 글꼴인 Handel Gothic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1999년 9월까지는 오른쪽 하단에 회색의 심볼이 있는 워터마크를 사용하였다가 1999년 10월부터 2003년 11월 30일까지는 심볼마크가 황토색으로 주로 사용되었고, 2003년 12월 1일 이후로는 모든 방송에 심볼마크는 뗀 채로 글씨로고만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고 심볼마크가 공식적으로 폐기된 건 아니고, 홈페이지와 사옥 건물, 촬영용 차랑 등에는 여전히 파란색과 황토색으로 당당히 붙어있다. TV에서는 간간히 파란색으로 간접적으로라도 나오지만 2000년대 초까지에 비해서는 등장빈도가 굉장히 적다. 이처럼 몇가지 색이 존재하지만 공식적인 색깔은 파란색.[5] 문화방송체처럼 한글 글씨체도 있는데 (KBS TV에서 크레딧으로 나오는 '한국방송'이라는 글씨체) 이 글씨체는 80년대부터 2010년대 까지 로고 표기로만 사용하였으나 (KBS 전용 차량과 신문광고에서 활용되었다.) 2001년 KBS 한국방송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크레딧의 '제작'에 로고표기로 TV에 등장하였으며 이후 2012년부터 TV에서 NEXT 영상, ID영상, 홈페이지 등에서 여러가지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6]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방송국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쓰이고 있는 CI다.(SBS2000년, MBC2005년, EBS2001년 ~ 2004년)[7] 여담이지만 저 로고, 원래는 서울 올림픽 로고 경쟁작 중 하나였고, 낙선된 이후 한국방송공사가 써먹고 있다고 한다. 근거 1, 근거 2[8] 2016년 8월 현재까지는 디자인의 호불호가 있는데 호보다는 불호가 더 많은 편. 댓글창을 보면 알겠지만 난장판이다.[9] 다들 정확한 이름을 몰라서 방송 마니아들 사이에서 '원탱이'라고도 불리었는데 KBS 본사에서 확인된 바로는 정식 이름은 K2다. 그런데 9년 전에 나온 KBS 스테이션 ID에 대한 홍보지에는 공이라고 쓰여있다. 뭔가 묘하게 2랑 엮이는데, KBS 2에서만 사용하던 마스코트였기 때문. KBS1은 반짝반짝한 푸른색(한색) 계열 '큐브' 디자인을 CI로 하여 10년 넘게 밀고 있고, KBS2에서는 비슷한 시기부터 노란색(난색) 계열 '서클' 다자인을 밀고 있다. (KBS 9시 뉴스의 2015년 새 오프닝이나 뉴스7 방송 전의 이덴트 영상, KBS2 아침뉴스타임(2006~2011) 오프닝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캐릭터도 이와 관련해서 KBS2에서 2003년 즈음부터 사용되었는데 비슷한 마스코트가 아르헨티나 방송 telefe에서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쓰였었다! 게다가 이쪽은 로고 특성상 한명이 아니라 3명이었다. 2015년부터는 방송 안내나 SNS 페이지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다만 이 마스코트에서 팔다리를 없엔 모습의 노란 공 디자인은 간간히 쓰이고 있었다. 그리고 2016년 7월 15일 마스코트가 교체되어, 새 마스코트인 케빗에게 대를 이어달라는 말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루리웹에도 이 사실이 올라왔는데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이 '동글이 다시 데려와'[10] KBS 1TV에서 사용하는 슬로건. KBS 뉴스 9 시작 전에 이 로고송이 나온 다음 시보음이 울리고 뉴스를 시작한다.[11] 1993년 가을개편부터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2001년 광고방송 시작 전까지 KBS 2FM, 2008년까지 KBS 제1라디오에서 시보멘트로 쓰였다. 그 후 2014년까지 KBS 1FM에서 시보할 때 나왔지만 2015년 개편으로 시보멘트가 개정되었고 현재는 KBS 지역국 FM방송에서만 나온다. 단, 춘천FM은 2015년 본사처럼 '클래식을 더 가까이'라는 멘트를 하고 있다. 다만 어느 KBS 라디오 채널이든 오전 5시 시보에 아직도 나오긴 한다.[12] 94년 하반기부터 2003년 상반기 KBS 2TV 한정. 현재는 쓰이지 않는다.[13] 2007~2008년에 TV 자체 SPOT에 나왔던 슬로건으로 현재에는 쓰이지 않지만 KBS 2FM 무광고 시보와 1FM 자체 광고뒤 멜로디로만 나온다.[14] KBS의 인터넷 전용 슬로건. 유튜브 등에 올라온 각종 K-pop 영상 등에서 KBS 공식계정으로 올린 클립 뒤쪽에 삽입되어 있다.[15]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사용한 슬로건. 라디오 시보와 방송 시작, 종료 멘트에 쓰였던 슬로건이었다.[16] 70년대 ~ 80년대에 사용했던 슬로건. 이쪽도 라디오 시보멘트에서 나왔다.[17] 2TV에서만 사용중.1TV 팀킬?[18] 지번주소로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8 (우)150-970[19] 지금 KBS 한국방송이라 호칭하는 부분을 2001년 이전에는 전부 한국방송공사 KBS라고 했다.[20] 일례로 NHK가 1994년 제작한 'NHK스페셜 - 생명~40억년에의 여행~'은 KBS가 제작비를 대고 디스커버리와 이탈리아 방송과 협력해서 만들어졌다. 국내 방영제목은 '생명, 그 영원한 신비.' 또한 2011년 도호쿠 대지진 보도에서도 KBS는 국내 타 방송국과 달리 대지진 당일 9시뉴스에 NHK가 송출한 HD 소스를 사용했다.[21] 진짜 훼손했다면 공시청 장비 문서에서 작성된 수신민원 전화번호로 연락하자.[22]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부분이 상당히 보인다며 고인드립 논란이 일었다. 일단 사측에서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코너 자체가 노잼이라고(...) 혹평을 받아서 금방 종영됐다.[23] 베충이는 일베의 비공식 마스코트 캐릭터인데, 이게 방송에 등장한 것이다. 실수인지 고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개콘의 흑역사 중 하나.[24] 자세히 들어보면 텔'리'비전이라고 발음한다.[25] MBC, TBC가 1970년대부터 로고송을 쓰던 것과는 비교적 사용 연도가 늦었던 셈.[26] 자세히 들어보면 현재 KBS1 로고송을 부른 같은 합창단이 불렀다는 걸 알 수 있다.[27] 가 불렀다. 윤도현장나라가 부른 버전도 잠깐 나온 적이 있다. 2013~4년 즈음부터 KBS 2TV 한정으로 보컬이 빠진 피아노 버전으로 나오고있다.[28] 지역 방송국(특히 KBS울산방송국)에서는 아직도 가끔 항상 쓰인다.[29] 95년에서 2001년까지 쓰인 KBS2 로고송이랑 같은 혼성 합창단이 불렀고 비슷했다.[30] 현재는 KBS 1TV 한정. '국민의 방송' 부분을 생략한 짧은 버전도 있었다.[31] 현재 KBS 2FM에서 시보할 때 나온다. 2015년 개편으로 시보멘트는 개정됐지만 로고송은 그대로 쓰이고 있다.[32] 일제 강점기 때라 현재 우리의 'HL00'이 아닌 일본 호출부호 'JO00'로 쓴다.[33] 출처: KBS 홈페이지 기관경영공시 항목.[34] 이 신관 건물의 설계자는 바로 김중업이다.[35] 원래는 아파트로 설계됐다. 참고[36] 죄다 한국방송공사의 임무 및 기능을 정의해놓은 항목이다. 국영방송 시절의 흔적 ㅎㄷㄷ[37]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정기보고하는 업무보고에는 기존 직제로 몇본부 몇센터 몇실이라고 표기된 것이 존재하는데 기밀사항은 아니지만 공시되지는 않는 자료라 외부에서 구하기가 힘들다...[38] 총원 대비 현원 정규직 수가 항상 미달하여 소위 언더티오 상태인데, 이 때문에 노조측에서는 아웃소싱을 하지 말고 정규직 채용을 늘려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39] 2011년 대졸초임 삭감사태 이후 인상분이 반영되어 기존 8,373만원보다는 올랐다. 다만 이는 전체 평균이라 이렇게 나오는 것이고 실제 대졸초임은 약 4,000만원선으로 알려져 있다. 메이저 방송국 중 가장 짜다! 역시 공공기관 방송국 특유의 살인적인 업무강도 + 방송의 정시성을 생각하면... 그래도 언밀레를 연발하는 케이블업계보단 훨씬 나은 편. 아참, 지상파 직원들을 돈지랄로 스카웃해온 종편은 빼자. 반면에 공사답게 직업안정성(즉 구조조정으로 짤릴 위험성)은 M본부나 S본부보다 낫다. 거의 공무원 수준.물론 국장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치권력에 따라 사장 바뀌면 라인도 같이 바뀌는 듯. 물론 방송국 중에서 짜다는 것이다. 대졸 초임 3,700만원 하는 직장은 우리나라에서 아주 드물다.[40] 홈페이지 하단 왼쪽의 'KBS소개' 메뉴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다.[41] 시인 심훈의 큰형.[42] 1945년부터 조선방송협회 산하였다가 1946년부터 미군정청 공보처에 소속됨. 그리고 그해 3~10월에는 잠시 중앙방송과장임.[43] 공사화 이후 본사 부사장,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 본사 사우회장, MBC 사장,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이사장 등을 역임함. 2016년 작고.[44] 1968년부터 서울중앙방송국에 통합.[45] 1968년부터 서울중앙방송국에 통합.[46] 제7대 문화공보부 차관 역임. 이후 (주)현대경제일보-일요신문(현 한국경제신문) 사장으로 영전됨. 1985년 작고.[47] 선임 당시 낙하산 논란이 일면서 반발이 심해지자 자진사퇴하였다. 해당 문서 참고.[48] 다만 정연주를 이원홍에 빗댄 것이 정연주 자신의 입장에서는 크게 억울한 것이 정연주는 KBS 뉴스9 아이템 선정에 개입을 하지 않은 현재까지의 KBS 사장 가운데서 거의 유일무이하다싶은 유일한 인물이었고 현장 PD나 기자들의 아이템 선정제안에 대해서는 잘 받아들었던 인물이었기 때문.. 하지만 영월이나 군산 KBS를 폐지시키는 등 구조조정 드립을 쳤기에 PD나 기자는 몰라도 지방방송사 직원이나 간부들 사이에서 왕PD라고 욕먹는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2010년대 와서는 구관이 명관이지 하며 재평가된다지만[49] 가장 대표적으로 홍두표(동양방송 도쿄특파원),정연주(동아일보),이병순(4기 기자),김인규(1기 기자),고대영(11기 기자)가 있다.[50] 해임 뒤 한국방송개발원장, SBS 2대 사장 역임. 2016년 3월 10일 작고.[51] 1977년 부터 1979년까지 KBS대구방송총국장.[52] 본사 최초 부사장 2인 체제 운영.[53] 1990년 본사 파업때 노조위원장.[54]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본사 보도본부장.[55] 1996년 부터 1998년까지 KBS대구방송총국장. 부사장 선임 동시에 4년만에 KBS의 부사장 2인 체체 부활. 2010년에 금품수수 혐의로 유죄 선고 받아 제명. [56] 2003년부터 2005년까지 KBS춘천방송총국장.[57] 2006년부터 2008년까지 KBS춘천방송총국장.[58] 본사 최초 여성 부사장.[59] 2008년 부터 2010년까지 KBS 미디어 사장, 2012년 부터 2014년까지 KBS창원방송총국장.[60] 역대 부사장 중 유일하게 임기 1년만에 사망.[61] 본사 PD협회에서 영구제명.[62] 1959년생 KBS 아나운서[63] 2018년 부터 KBS부산총국 소속으로 지역근무[64] 2018년부터 KBS순천국장 재임[65] 1959년 5월 19일생으로 ~ 2017년 2월 22일 지병인 위암으로 별세.[66] 2017년 부터 KBS전주총국 소속으로 지역근무[67] 2002년 퇴사로 前 이롬라이프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하였다.[68] 전직 아나운서로 진양혜의 남편.[69] 1965년 9월 25일생 前 KBS 아나운서/방송인[70] 전직 아나운서로 손범수의 부인.[71] 2017년 부터 2018년 까지의 KBS춘천총국 소속으로 지역근무[72] 미스코리아 출신의 KBS 前 아나운서였다.[73] 1995년 12월 1일자로 입사[74] 1995년 10월 1일자로 입사[75] 1995년 10월 1일자로 입사[76] 1995년 부터 이후 대전총국 소속이었으나 현재 대전총국 기자로 전환하여 기자이다.[77] 1995년부터 1997년까지는 제주총국 소속이었으나 현재 MBC 아나운서 소속이다.[78] 본래 본사 소속이었으나 2017년 대구총국 소속으로 근무하였다.[79] 이지연 아나운서의 동명이인으로 1975년 11월 30일생 前 아나운서[80] 호남제주권 아나운서로 입사해 제주총국에서 근무하다가 2010년부터 서울본국에서 근무하고 있다.[81] 전주총국에서 지역근무하다가 2005년 본사로 복귀하여 이후 2009년 결혼하여 前 박지윤 아나운서의 남편이다.[82] 2017년 1월 17일 사직으로 퇴사하여 문재인(現 대통령) 캠프에 합류하여 청와대 부대변인으로 역임하여 활동함.[83] 부산총국에서 지역근무하다가 2005년 본사로 복귀하여 이후 2009년 결혼하여 최동석 아나운서의 부인이다.[84] 1979년생 KBS광주방송총국 아나운서[85] 영남권 아나운서로 입사해 부산총국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부터 서울본국에서 근무하고 있다.[86] 원래는 본사 소속 아나운서였다가 청주방송총국으로 내려왔다.[87] 대구총국에서 지역근무하다가 1년 후 2009년 본사로 복귀하여 <도전 골든벨>의 2011년 2월 20일 21번 부터 남성 MC로 교체하였다.[88] 2010년부터 2016년까지는 대구총국 소속으로 근무하여 2016년부터 청주에서 이직하였다.[89] 2010년부터 2014년 6월까지는 창원방송총국에서 근무하여 2014년 7월부터 KBS부산방송총국에서 발령하여 이직하였다.[90] 부산총국에서 지역근뭏마다가 1년 후 2012년 이후 2016년 1월 10일 부터 <도전 골든벨>의 남자 MC이다.[91] 이지연 아나운서는 1986년 3월 16일생 KBS 아나운서[92] 멘사 출신의 KBS 아나운서[93] 충청강원권으로 원주방송국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부터 서울본국 소속이었다.[94] 과거 취업준비생인 다큐멘터리 3일에 출연한 적도 있다.[95] 2015년 부터 2017년 까지 KBS창원총국 소속으로 지역근무[96] 2015년(10월) 부터 2017년(2월) 까지 KBS춘천총국 소속으로 1년 5개월 넘게 지역근무하다가 2017년 6월 4일 현재 <도전 골든벨>의 여자 MC이다.[97] 2016년 부터 2018년 까지 KBS대구총국 소속으로 지역근무[98] 2016년 부터 2018년 까지 KBS제주총국 소속으로 지역근무[99] 2016년 부터 2018년 까지 KBS광주총국 소속으로 지역근무[100] 2003년 편성본부장#,2005년 TV제작본부장#,2007년 부사장#,2008년에 정연주 사장이 해임 되면서 직무대행#을 맡았으며 이후 부사장 사임후 금품수수 혐의로 걸렸고 2년 법정소송 끝에 결국 집행유예 선고 받고 제명 되었다.#[101] 2000년 초반에는 예능국장#, 2000년 중반 편성팀장#로 일하다가 이후 제작본부장로 근무했으나 2008년에 금품수수 혐의로 기소 되었으며 # 이후로는 처벌 받는것과 KBS 내 활동 내용도 안 나오는 것으로 보아 KBS에서 제명된 것으로 보인다.[102] 태조 왕건 연출 PD.[103] 2005년에 퇴사한 이후 꽃보다 남자,아름다운 그대에게의 연출를 맡았으며 2018년 1월 17일에 교통사고로 작고했다.[104] 전 KBS 부사장, 현 경기대 특임교수.[105] 서세원쇼일요일은 101% 같은 문제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PD이며 금품수수 혐의로 기소 되어 실형선고 받으면서 제명되었다.#[106] 2002년에 퇴사한 이후 풀하우스,아이리스 2,프로듀사의 연출를 맡았다.[107] 2005년에 퇴사한 이후 눈의 여왕,나쁜남자,욱씨남정기의 연출를 맡았다.[108] 2007년에 퇴사한 이후 아이리스를 연출했고 이외에 그 겨울, 바람이 분다,괜찮아, 사랑이야,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등의 SBS 드라마 연출를 맡았다.[109] 현재 몬스터 유니온으로 이적했다.[110] 현재 CJ E&M으로 이적했다.[111] 가족끼리 왜 이래의 연출 PD로 현재 JTBC로 이적했다.[112] 드라마 작가 정현민 작가와 함께 정도전어셈블리를 제작한 PD. 동명이인의 라디오PD도 있다.[113]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의 현 CP.[114] 오작교 형제들굿 닥터 연출 PD.[115] 현재 CJ E&M으로 이적했다.[116] 해피투게더 시즌 3의 PD.[117] 해피투게더 시즌 1~2의 PD이며 현재 JTBC로 이적했다.[118] 현재 JTBC로 이적했다.[119]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의 전 CP이자 트릭&트루의 PD.[120] 현재 JTBC로 이적했다.[121] 구르미 그린 달빛의 연출 PD이며 3월 15일에 퇴사했다.#[122] 현재 CJ E&M으로 이적했다.[123] 현재 CJ E&M으로 이적했다.[124] 추리의 여왕의 PD. 2017년 8월에 퇴사했다.[125] 우리동네 예체능의 PD. 2015년에 퇴사하여 SM C&C로 이적했다.[126]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PD.[127]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쌈, 마이웨이의 PD. 현재 CJ E&M으로 이적했다.[128] 현재 몬스터 유니온으로 이적했다.[129] 윤도현의 러브레터의 PD이며 2008년에 금품수수 혐의로 기소 되었으나 # 처벌를 안 받았는지 2011년까지 KBS에서 근무했으며 이후 JTBC로 이적했다.[130] 인간의 조건 1~2기우리동네 예체능의 CP이며 2008년 같은 동료 PD들과 함께 기소되었으나# 김시규 PD 처럼 처벌를 안 받았는지 이후에도 KBS 예능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으며 지금 현재 한류기획단장로 근무하고 있다.[131] 1박 2일 자유여행 1탄(소설가 이외수 자택 편(2007년 12월 23일 방영)에 잠깐 나온 예능 CP였고 개막장 가학성 프로그램 일요일은 101%가 방영하던 당시 예능팀장으로 근무하였고 2008년에 이용우 PD와 함께 금품수수 혐의로 기소 되어 실형 받고 제명되었으며 # 이후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의 교수로 임용 되어 1년동안 일했으며 # 현재 박스미디어를 설립하여 대표로 있다.[132] PD협회에서 탈퇴.출처.[133] PD협회에서 탈퇴.출처.[134] PD협회에서 제명.출처.[135] PD협회에서 제명.출처.[136] 용의 눈물의 PD. 1996년에 정년퇴임했고, 이후 1999년에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되면서 KBS에서 불명예스럽게 떠나게 되었고 이후 작고하기 전까지 SBS 드라마 여인천하,왕의 여자,왕과 나를 연출했다.[137] 오펀 블랙 시즌 1과 플루팔루 대모험의 연출 PD다.[138] 영심이, 아기공룡 둘리, 날아라 슈퍼보드, 달려라 하니, 검정고무신등 국내 에니메이션을 제작했으며 2010년에 별세했다.#[139] 외화시리즈 투명인간,탐정 몽크,일본 애니메이션 리리카 SOS,영화 신과 함께 가라의 PD.[140] 셜록 시즌 1, 콜드케이스, 007 네버다이의 연출 PD다. 초창기(90년대초)에는 '비밀의 화원'(애니판)의 더빙연출을 맡기도.[141] 매우 흐릿하게 보였다.[DMB] U-KBS MUSIC[143] 다만 그 와는 별개로 당시 방송자료는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이유는 생방송 프로그램이 많았던데다가 그나마 녹화된 프로그램도 테이프와 필름 가격(...) 때문에 보관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144] 그래서 'KBS 가정중학', 'KBS 가정고교'라는 월간 학습지도 있었다. 대략 1994년까지 존속.[145] EBS든 KBS3이든 그 시초는 '정부 제공 과외방송'이었다. 전두환 정권의 과외금지 시책과 맞물려있는 것이다. 그래서 EBS도 초기에는 한국교육개발원 산하에 있었던 것. 지금은 한국교육방송공사로 독립했고 미국 PBS처럼 공영 서비스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KBS에서 일부 인적 물적 자원이 푸시되는 중 1998년 비슷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자 이제는 무궁화 위성채널을 이용해 EBS위성1, 2채널을 런칭하고 과외방송을 했다. 이것이 현재의 EBS플러스1, 2채널의 전신. 참고로 이 때 EBS위성1 강의멤버로는 이만기 현 유웨이에듀 대표, 이원희 전 서울특별시교육감 후보 등 별들이 은하수처럼 떴네효 쟁쟁한 강사들이 많았다.[146] 정확하게는 1963년 1월 1일부터 1969년 4월 30일(특집 프로그램이나 스포츠 중계방송은 1971년 12월 31일까지), 1981년 3월 7일부터 1994년 9월 30일까지 광고방송을 했었다.(HLKZ(DBC)-TV 시절은 제외)[147] EBS-TV(구 KBS 3TV)도 상업광고을 안했으나, 재정문제로 인해 1997년 9월 1일부터 광고방송을 하게 되었다.[148] 케이블의 경우 개국 당시부터 24시간 방송을 했지만, 지상파는 전파낭비 등을 이유로 정부에서 종일방송을 허가해 주지 않고 있었다. 물론 낮 방송이 허가된 2005년 12월 이후로는 사실상 사장된 정책이었고 최종적으로 2012년에 해금된 것.[149] 그러나 영문 자막에 병맛이 가득하다. 사극 드라마 대조영 방영 시 거란군이 고구려군을 기습하는 장면에서 고구려군 병사가 '기습이다!' 라고 외친 것을 "Sudden Attack!" 이라고 자막을 띄우는 얼빠진 상황을 연출해 내었으며, 모 드라마의 등장인물 '장미'의 이름을 'Rose' 라고 내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래도 로즈는 외국에서도 쓰이는 이름이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안녕하세요 하느님' 방영 당시에는 주인공 하루(유건 분)의 이름을 'Day' 로 출력하는 이뭐병 스러운 짓을 행하기도 했다. 하루야, 오늘 기분 어때? / Day, How are you today? 무료 번역기와 동급, 혹은 그 이하의 퀄리티를 보여준 자막은 고국 청취를 느껴보고자 한 해외 동포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하였다는 후문. 본격 역 왈도체라고 볼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이도 한인들이 많이 모인지역들에는 한인 방송시스템이 따로 있기 때문에, KBS에서 프로그램을 구매해서 자막을 다시 만들어 방송하고 있어서 그나마 안심...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150] http://www.youtube.com/watch?v=VWz1YOp4s70 이런 클립까지 올라왔다.[151] 언론통폐합 당시 동아방송을 흡수한 것으로, SBS 개국 후 그 주파수는 SBS 러브FM으로 사용됨.[152] 독립하여 EBS FM이 됨.[153] 마림바-실로폰 듀엣 연주곡 시그널은 들어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154] 그래도 일기도를 실제로 그려보면 의외로 꽤 재밌다. 물론 일기도에 대한 기본지식은 알아야 한다.[155] 일부프로그램제외 (예:지식채널e)[156] 다만, 카메라에 조명이 달려있지 않아서 밤에는 영상을 볼 수 없다.신기하게도 소리도 들린다(...).[157]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신천역 인근 대구상공회의소 뒷편에 있다가 2002년 대구 도시철도 2호선 수성구청역 인근 대구여고 옆으로 이전했다. 이전 후에 후적지는 솔렌스힐 아파트가 들어섰다.[158] 이 때 영월방송국 관할이던 정선중계소와 사북중계소 등 정선군의 방송권역은 강릉방송국으로 통합되었다.[159] 방송국 자체는 동일하나, 지형적인 이유로 라디오 주파수를 지역마다 달리하는 것이다. 예컨대 태백권의 경우 태백산맥으로 강원 영동지방과 가로막혀 있으니 강릉 인근에서 송출하면 들릴 리 없다.[160] 방송법 64조를 보면 'TV 방송을 수신하기 위해 TV 수상기를 소지한 자는 그 수상기를 등록하고 수신료를 납부해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TV 수상기란 '지상파를 직접 수신할 수 있는 튜너를 내장한 기기'며, 일반적인 PC 모니터(TV 일체형 제외)는 튜너가 없기 때문에 TV 수상기가 아니며, PC에 장착하는 TV수신카드는 PC의 일부로 보기 때문에 이 역시 TV 수상기가 아니다.[161] 특히 MBCtvN. 대표적으로 마이 리틀 텔레비전 아류라 불리는 어서옵SHOW나 대놓고 꽃보다 할배를 베꼈다는 소리를 듣는 마마도가 그 예시. 혹은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면서 아빠! 어디가?가 생각난다던지, 나는 가수다를 보고 급조한 티가 난다던지.[162] 불법 운전면허 취득, 위안부 물의, 마약(프로포폴).[163] 2017년 KBS 드라마 스페셜 출연.[164] 둘다 미성년자 성범죄[165] 2009년 대마초 혐의로 출연금지 되었고 2017년에 또 피워 구속.[166] 전 드라마국 국장.[167] 제빵왕 김탁구힐러 그리고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PD이다.[168] 공부의 신브레인의 PD.[169] 공포의 쿵쿵따위험한 초대가 있었던 프로그램[170] 2016년 올림픽 영상에서 제목은 결승전인데, 선수소개만 하는 영상이 있다영상 (영상을 볼 순 없지만 댓글을 보면 경기 영상이 없는것을 알 수 있다)[171] 그나마 닥터후와 셜록도 각각 2010 크리스마스 스폐셜/2016 크리스마스 스페셜과 같은 크리스마스 스폐셜 유령신부를 방영하지 않고 있다.[172] 원래 메인노조이자 언노련의 핵심이었으나, IMF 시대에 지역방송국 통폐합 과정에서 기술직들이 대거 갈려나가면서 기술직 출신 조합원들과 아나운서, PD 출신 조합원들 간의 내분이 일어났고, 결국 기술직들의 지지를 받아 2006년 당선된 박승규 노조위원장(현재 스포츠국장)이 이명박 정부정연주 사장 축출 시도에 암묵적 지지를 보내면서 언론노조에서 제명되었다.[173] 이명박 정부 시절 사측에서 만든 유령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