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조합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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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KTU.jpg[1]

한국노동조합총연맹
Federation of Korean Trade Unions
韓國勞動組合總聯盟

약칭

한국노총(한), FKTU(영)

창립일

1961년 8월 30일

위치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제금융로6길 26

임원진
26대

위원장

김주영

부위원장

박대수, 김명환, 최미영, 문현군

사무총장

이성경

가맹 단체 수

25개 (2018년)

조합원 수

954,546명 (2016년)

공식 사이트

http://www.inochong.org/

1. 개요2. 역사3. 사건사고/논란
3.1. 2015~2016년의 반정부 투쟁 논란
4. 역대 위원장
4.1. 통합 전
4.1.1. 대한노총4.1.2. 전국노협
4.2. 통합 뒤
4.2.1. 한국노련4.2.2. 한국노총
5. 한국노총가
5.1. 구 버전5.2. 신 버전
6. 가맹 노동조합연맹
6.1. 현재 가맹 단체6.2. 과거 가맹 단체
7. 공익재단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노동조합 연맹이다. 줄여서 한국노총이라고 부르며, 전국 14개 지역본부와 19개 권역별 지역지부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웬만한 대기업 노조 상당수는 여기에 소속되어 있으며, 산하 언론으로 미디어노총이 있다.

이 연맹의 본부격인 노총회관은 1948년 대한노총 시절부터 서울 소공동에 있었으나 1974년에 잠시 사직동 체신노조회관을 잠시 쓰다가 1976년, 여의도에 새 회관 건물이 세워지자 여의도로 둥지를 틀어 28년간을 쓰다가 2002년에 새 노총회관 건설로 인해 마포로 옮겼다가 2005년 완공 이후 여의도로 복귀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국노총 가맹노조 명칭은 은행노조를 제외하고 대체로 '@@(업종별)노동조합연맹 ##(기업명)노동조합'으로 칭한다.

2. 역사[편집]

한국노총의 역사는 아래와 같이 참으로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민주노총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며 정부와 관계가 상당히 험악한 민주노총과 달리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정부에 다소 협조적이며, 규모에 비해 정치적 투쟁력은 적다. 다만 민주노총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것일뿐, 노동조합이다보니 노동자 중심 정책을 많이 펼친다. 이러한 온건한 노선은 현실주의 노선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어용노조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한국노총이 온건한 정치 노선을 띄게 된 것은 탄생 배경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해방 직후 한국의 노동운동은 대부분 좌익 계열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지배적이었고, 이에 위기를 느낀 김구와 우익 계열의 인사들이 대한독립촉성협의회의 산하 단체로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을 조직하게 된다. 이때 깊이 관여한 인물들이 바로 초대 사회부 장관이었던 전진한이다. 대한독촉노동총연맹은 1948년 8월 임시대의원의회 때부터 대한노동총연맹(이하 대한노총)으로 바꾸었으며 초대 위원장이 전진한이었다. 대한노총은 초기에는 한독당계, 이승만계, 한민당계 등이 공존한 탓에 전평에 대항하는 우익 노동조합이었지만, 얼마 안 가 한민당과 이승만계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이승만의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는 관변 단체가 되었다. 대한노총 간부로 그 유명한 김두한이 있었으니 말 다했다.

1953년에는 노동조합법 시행으로 여러 노동조합이 결성/해체되자 대한노총에도 재편성의 필요성이 시급해졌다. 이로써 1954년 경전노조 위원장인 정대천과 철도노조 위원장 김주홍을 중심으로 '대한노동조합연합회'를 만드려다 대한노총 최고위원 이진수와 갈등이 벌어지는 등 파벌 싸움이 일어나 1959년에는 김말룡 등 김기옥 위원장 반대파가 분할되어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국노련)'이 만들어졌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인한 민주화 바람과 더불어 5월 9일에는 어용파 간부들이 총사퇴하였고, 11월 25일부터 대한노총과 전국노협이 통합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련)으로 새로 출범하였으나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강제 해체된 뒤 박정희 군정의 산별노조 정책[2]에 따라 현재의 명칭으로 결성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민주화되기 전까지 한국노총은 어용노조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1997년까지 노동조합법상 복수노조 설립 금지에 관한 조항이 있어서, 복수 노조는 물론 복수 전국단위 노동조합 연맹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는 국가적 효율을 위해 노동조합을 통합해서 하나의 기구만을 두도록 한다는 취지때문이었다.[3] 정부 통제 하에서 노동 운동을 하다 보니, 노조 내부의 민주화 요구에도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노동운동 자체에도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4] 그래서 일부 노동운동가들은 어떻게든 중앙위원에 들어가서 노조를 바꿔보려는 전술을 쓰기도 했고, 아예 대기업 노조 하나가 통째로 탈퇴하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사건들로 생겨난게 민주노조 건설운동이다. 1970~80년대에는 각 사업장별 민주노조 건설운동이 일어났고, 80년대에는 기업별 노조운동이 일어났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1980년 사북사태 등으로 노동운동은 다시 활발하였으나, 5.18 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짓밟은 전두환 정권은 8월 21일에 '노동계 정화조치'를 만들어 민주노조 인사들을 대거 숙청하였고, 12월 31일부터는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이 개정되어 산별노조를 기업별 노조로 바꾸고 노동쟁의의 제3자 개입을 금지시켜 5공 초기에는 청계피복, 원풍모방, 콘트롤데이타, 남화전자, 서통 등의 민주노조들을 강제 해산시켰다. 1983년 12월 유화조치 이후 1984년을 기점으로 대우어패럴, 효성물산, 가리봉전자, 로옴코리아 등지에서 민주노조가 다시 생기면서 1985년 4월에는 대우자동차 파업이, 6월에는 구로동맹파업이라는 전대미문의 연대파업이 일어났다.

물론, 이는 한국노총과는 무관하게 개별 작업장에서 조직된 노조들에 의해 일어난 일이다. 이로 인해 서울노동운동연합(약칭 서노련)과 인천지역노동자연맹(인노련)이 생겨났으며,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민주노조 설립이 급격히 늘어나 1987~1988년 마창노련과 서노협 등 각 지역노조 협의회와 업종별 노조연합들, 1990년 전노협 및 업종회의, 대기업 노조연합, 1995년 민주노총까지 이어진다.[5] 하지만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총 내부에서 개혁 요구가 높아지면서, 어용 노조 성향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타협주의와 협동주의적 성격이 만연해 있다.

민주노총이 주로 진보정당과 연대한다면, 한국노총은 양대 정당과 연대하였다. 김대중새천년민주당과 연합하여 비례대표 후보를 내고 당선자를 얻었다.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과 대립, 2002년 지방선거에서 한국사회민주당을 만들었으나 망했고(...) 2004년 총선 당시에는 녹색사민당으로 고쳐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를 시도했으나 소수점대 득표율(...)로 참담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근데 이명박 정부에서 내세웠던 경제 기조가 신자유주의였고 거기에 비정규직 고용기간연장(실패로 돌아갔지만)을 추진했었기때문에 진보 세력으로부터는 어용노조이니 귀족노조라는 온갖 비난을 받았다. 뭐, 나중에 와서 이문제때문에 관계가 끊어지긴 했지만. 하지만 한국노총은 이명박 정부 초창기부터 노동과 복지 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로 정부와 마찰을 빚어왔으며, 결국 지지를 철회하고 민주통합당과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지역 본부별로 지지한 후보가 달랐다.

2013년 12월 23일 경찰의 민주노총 본부 압수수색에 항의하는 뜻에서 정부의 사죄가 있을 때까지 노사정 위원회에 출석하지 않기로 결의한 것을 시작으로, 기사

2014년 12월 3일, 국내 제3노총인 국민노총[6]과 조직 통합을 선언했으며, 민주노총과 규모 격차가 더 커졌다. 기사

2015년 9월 노동개혁과 관련된 내용으로 노사정위원회가 파행을 겪었다. 이를 잘 수습하여 통과 되는 듯 하였으나.... 한국노총 중집위에서는 분신을 시도하는 등 파행이 있었다. 한국노총 전체로 볼 때, 의견이 통합되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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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노사정 대타위 파탄을 선언, 박근혜정부의 노동개혁은 노동자들을 죽이는 짓이라면서 올해 총선 새누리당 낙선운동을 하겠다고 한다! # 이에 극우단체에서는 한국노총민주노총 2중대이뭐병 반응을 보였다. 그런다고 한국노총 니네가 어용으로 2중대 소리 안 듣는거 아니다 사실 제20대 총선에서 말과는 다르게 새누리당에 비례대표로 한국노총 인사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용확정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전태일의 여동생 더불어민주당 전순옥 비례대표 의원은 한국노총이 1960~70년대의 흑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도 꺼냈다. 과거 한국노총이 중앙정보부의 통제 하에 있었던 이야기, 한국노총이 정부의 어용 노동단체이자 노동자들의 저항을 분쇄하는 관리 단체, 지도부의 부패에 대한 관용, 그리고 그러한 것을 통제하던 중앙정보부의 행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당시 한국노총은 올라오는 이야기는 막고, 위에서 내려오는 정부 정책을 지부 노조들에게 전달하는 역할만 했다고 깠다. 또한, 박정희 정권 시절 노동조합 대표의 선택권도 제한되었고, 그렇게 뽑힌 노동조합 대표는 안기부에 가서 사상교육을 받은 후 보상을 받았음도 밝히고 있다.

2017년 5월 조기대선에서 지지후보를 결정하는 선거를 통해 46%의 득표율을 얻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는데, 정작 20대 총선에서는 지도부 출신 인물들이 새누리당에 비례대표 신청을 하여 앞 순번을 배정받아 무난히 당선되고 현재까지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으로 있는 모습을 보면 상당히 괴리감이 크다(...) 이는 지도부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조합원들의 투표를 통해 결정한 결과라서 그런 것인데, 민주노총이 산하 기관들과 조합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민중연합당 김선동 후보에 대한 공동 지지 의사를 밝힌 것과 대비된다. 민주노총 중집, 심상정 김선동 지지후보로 결정

앞서 언급했던것처럼 과거 한국사회민주당을 창당하여 독자노선을 택했을때에도 시민통합당을 통해 민주통합당을 거쳐 지지정당을 현 더불어민주당으로 정하는 과정에서도 사회주의민주사회주의공산주의생디칼리즘등 온갖 다양한 노선을 택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민주노총과는 달리 형식적으로라도 꾸준히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 담론을 주요 지향점으로 삼았다는 점이 특이하다.[7]

3. 사건사고/논란[편집]

3.1. 2015~2016년의 반정부 투쟁 논란[편집]

당초 정부에 협조적이었던 한국노총의 성향은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더니, 2015~2016년에 이르러서는 새누리당 심판, 노동개악 반대 등의 구호를 내세우며 정부의 노동개혁 정책에 극렬히 반발하고 민주노총과 공동대응하는 등 투쟁적 성격을 보였다. 특히 2015년 한국노총이 총파업을 결의한 것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데,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전·현직 간부 7명이 무더기로 정부 여당인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4. 역대 위원장[편집]

4.1. 통합 전[편집]

4.1.1. 대한노총[편집]

1952 ~ 1958년 10월 이전까지는 집단지도체제였다.

  • 홍윤옥 (1946. 3 ~ 5/9 ~ 10)

  • 조시원 (1946. 5 ~ 9)

  • 전진한(조선방직대책위원회파(이갑성계)) (1946.10 ~ 1952.11)

  • 이진수(정화위원회파) (1952.5 ~ 1954)

  • 조광섭, 주종필, 조용기, 박중정(정화위원회파) (1952.5 ~ 11)

  • 송원도, 조경규 (1952.11 ~ 1954)

  • 정대천 (1954~1957)

  • 김주홍 (1954~1958)

  • 김두한 (1954~1955)

  • 이준수 (1955~1957.10)

  • 하광춘 (1957.10 ~ 1958)

  • 성주갑 (1957.10 ~ 12/1960.5 ~ 11)

  • 김기옥 (1957.12 ~ 1960.5)

  • 이주기, 김용학 (1957.12 ~ 1958)

4.1.2. 전국노협[편집]

  • 김말룡 (1959~1960.11)

4.2. 통합 뒤[편집]

4.2.1. 한국노련[편집]

4.2.2. 한국노총[편집]

  • 이규철 (1961~1964)

  • 김광수 (1964~1965)

  • 이춘희 (1965~1967)

  • 이찬혁 (1967~1970)

  • 최용수 (1970~1971)

  • 배상호 (1971~1976)

  • 정동호 (1976~1979)

  • 김영태 (1979~1980[8])

  • 정한주 (1980~1982)

  • 김규벽 (1982~1984)

  • 김동인 (1984~1988)

  • 이시우 위원장대행 (1988)

  • 박종근 (1988~1995)

  • 송수일 (1995~1996)

  • 박인상 (1996~2000)

  • 이남순 (2000~2004)

  • 이용득 (2004~2008/2011~2012)

  • 장석춘 (2008~2011)

  • 문진국 (2012~2014)

  • 김동만 (2014~2017)

  • 김주영 (2017~ )

5. 한국노총가[편집]


5.1. 구 버전[편집]

(1절)아침에 솟는 해는 우리의 동맥
여명의 종 울려서 지축을 울린다

쉬지 않고 생산하는 영원한 건설자
조국은 부른다 아~ 우리들은 노동자

(2절)재건과 총력으로 서는 새나라
노동은 광명이다 만백성 앞에서

착취를 분쇄하고 가난을 몰아내
복지사회 이룬다 아~ 우리들은 노동자

(3절)바다와 하늘까지 우리의 광장
세계의 동지들과 대열을 지어

노동의 투쟁 속에 앞서 나가서
민주통일 외친다 아~ 우리들은 노동자

(후렴)노총의 깃발 아래 강철 같이 뭉쳐서
민족의 사는 길로 노총은 간다

5.2. 신 버전[편집]

작사/작곡은 김호철이 맡았으며 노래는 노동가요의 대부 박준이 불렀다. 2006년 로고 변경과 동시에 개정.

말하라 이땅의 노동자여 역사의 새주인이여
단결과 연대의 한가슴으로 내일를 노래하여라

보아라 자유 평등 평화의 춤추는 통일의 나라
노동과 희망이 넘치는 나라 우리가 건설하리라

한국노총이여 노동세상의 불꽃이여
어둠이 깊어갈수록 더욱 당당히 타올라

역사를 돌리는 생산의 뚝심으로
진군하라 한국노총이여(*2)

진군하라 한국노총이여

6. 가맹 노동조합연맹[편집]

6.1. 현재 가맹 단체[편집]

6.2. 과거 가맹 단체[편집]

  • 전국철도노동조합: 2002년부터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 변경.

  • 한국가스공사 노동조합: 2002년부터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 변경.

7. 공익재단[편집]

  • 한국노총장학문화재단

8. 둘러보기[편집]

문서가 개설된 대한민국노동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1] 현재의 로고는 2006년부터 바뀐 것으로, 그 이전에는 톱니바퀴 가운데에 태극무늬가 그려지고 횃불과 화살이 X자로 배치된 로고를 썼다.[2] 이 산별노조 방식은 미국노동총연맹(AFL)도 채택하고 있다.[3] 이러한 점 때문에 과거 군사정권의 노동조합 정책을 파시즘협동주의적 방식이라 해석하기도 한다.[4] 물론 1960년대와 70년대의 임금인상 투쟁에 어느정도 조직력있는 움직임을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한국노총 소속의 개별 사업장 노조의 투쟁에 그칠 뿐이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상급 단체가 없는 노조가 많았고, 무엇보다 노조 자체를 구경하기 힘든 시대였다.[5] 1980년대 민주노조 운동의 중심인물로는 전 경기도지사 김문수정의당 대표 심상정, 그리고 훗날 뉴라이트로 전향한 고 권용목이 있다.[6] 2011년 11월 출범했으며, 통합 전 노동조합원 비율이 전체에서 1%를 간신히 넘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7] 물론 이마저도 비정규직 문제에 침묵하고 노동유연화에 있어서 타협하는등 제3의 길스러운 경향이 없지않아 있다.[8] 당시 섬유노조 위원장도 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