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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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주식회사 한겨레미디어[1]

영문/한자명칭

The Hankyoreh Media Group

설립일

1987년 12월 15일

대표자

양상우

업종명

신문 및 도서잡지의 발행과 판매, 외부간행물의 인쇄업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중견기업

본사 소재지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홈페이지


1. 개요2. 사옥3. 역사
3.1. 설립 배경3.2. 탄생 이후
4. 역대 사주
4.1. 회장4.2. 사장
5. 보도6. 한겨레에서 발행하는 인쇄 매체7. 특징
7.1. 한자/로마자 혼용 배제
8. 비판9. 한겨레미디어 계열사10. 기타

1. 개요[편집]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 2015년 이후 한겨레미디어의 사시(社是)


한겨레신문 주식회사에서 발행하는 조간 일간신문의 이름. 본사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舊 공덕동 116-25번지)에 위치해 있다. 기본 사시는 민주, 민족, 통일.

조선일보의 보수주의와 중앙일보의 탈이념화와는 달리 한겨레는 진보주의를 고수하면서도 노동자, 농민, 도시영세민을 포함한 민중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창간되었고, 체제면에서도 한글전용과 가로쓰기를 단행함으로써 기존 신문들과 차별성을 보였다. 경향신문, 오마이뉴스와 함께 진보 성향의 언론으로 분류되고 있다.

발행부수는 일일 20만 부 이상으로, 중앙일간지 순위로만 놓고 보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이어 4위이다. 다만 3위인 동아일보와의 격차가 3배 정도 난다(...).[2] 비교하면 농민신문 발행부수보다 더 적은 수준이다.

노조는 민주노총 언론노조 소속이다.

2. 사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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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에 위치해 있다. 공덕역에서 만리재로를 따라 조금 올라오면 보이는 아파트 바로 옆에 있다.

1991년 건립된 사옥으로, 건축가 조건영 씨가 디자인했다고 한다.[3] 준공 당시 여러 건축상을 받기도 했다고. 사진에서 보이는 초록색 기둥은 종종 도색이 바뀌기도 한다. 현재는 붉은 계열 색상으로 도색되어 있다.

편의시설로는 KEB하나은행이 있으며, 건물 일부는 공공 쉼터로 개방해 놓았다. 사옥 옥상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간혹 디너파티 같은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이곳으로 이전하기 전에는 만리동 고개에 작은 사옥이 있었다. 여담이지만 현재 있는 위치는 과거 신발 공장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3. 역사 [편집]

3.1. 설립 배경[편집]

1974년 유신 반대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에도 정권의 통제로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당시 동아일보의 기자들[4] 중 일부는 이에 반발하며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한다. 이 선언 이후 기업들이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동아일보에 광고를 취소, 그래서 백지로 신문을 찍었다. 이를 본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조그맣게 동아일보에 응원광고를 내었고, 동아일보 내의 일부 기자들은 이에 큰 감격을 받아 적극적으로 자유 언론 투쟁을 벌이다가 해고되었다.

해고당한 기자 130여명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대부분 다른 언론사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시장에서 물건을 팔거나 육체노동을 하고, 주기적으로 신문사 앞에서 침묵시위를 하는 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이 때 생활고가 아주 심했다고 한다. 결국 긴급조치 위반으로 상당수가 투옥되었으며, 1980년 여름 언론계 정화조치 때도 또 한번의 대규모 강제해직 사태가 일어나 또다시 해직 언론인들이 늘어났다. 이들이 훗날 한겨레의 창간 멤버가 되었다는 점에서, 한겨레가 운동권과 노조에 우호적 성향을 띄는 한 이유로 해석되기도 한다.

세월이 지나 1987년 6월 항쟁으로 전두환 정권이 물러나고 본격적인 민주주의의 시대가 열려 독재정권 당시 해직된 언론인들이 서서히 복직되었으나, 이미 독재정권에 길들여진 기성 언론인들의 정신적 타락이 심각했다. 이 현상은 민주화 시기 일부 해직 기자들의 복직 때 나타났는데, 1980년 당시 언론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언론인들이 어느새 기득권자가 되어 기득권 사수에 골몰하며 왕따를 시키는 추태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로써 해직기자들은 민주화 뒤에도 '소수파'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해직 기자였던 김종배 씨는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언론사로 되돌아 왔을 때 우리는 여러모로 덧칠돼 있었다. 부패 언론인으로, 무능 언론인으로, 또는 특정 정치인에 줄선 정치 언론인으로 포장돼 있었다. 80년의 살육은 어느새 신군부의 강변대로 언론계 정화로 분장되어 있었다.
- 원 출처: 미디어오늘 1997년 5월 26일자 기사 <언론인 해직 안과 밖>


그러나 모든 언론인들이 썩은 건 아니었다. 1988년 6~7월 부산일보 노조의 '편집국장 3인 추천제 관철 투쟁'과 같은 언론사 내부 민주화 투쟁이 있었지만 높은 임금으로 돈독이 오른 유력 언론사 기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찻잔 속의 폭풍'이었을 뿐이었다. 그 증거로 강명구 교수는 유력 언론사 기자들이 고임금으로 인해 지배집단의 구성원으로 흡수되었다면서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1988년 6월 중앙 6대 일간지의 기자 초임이 월 급여 50만 원에 70만 원 선이고 연봉은 9백만 원에서 1천 2백만 원에 이른다. 이는 우리나라 대졸 이상 사무직, 전문 기술직 종사자들의 평균 임금의 2배에 이르는 수준이며 대학교수와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대학교수가 대학 졸업 후 대개 10년 내외가 걸려야만 그러한 임금 수준에 도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기자들의 임금 수준이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원 출처: <한국 언론전문직의 사회학> - 강명구 저. 나남. 1993. p190.

3.2. 탄생 이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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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동아일보에 실린 <한겨레> 창간 광고

대선 전 한 달 동안 10억 정도를 모았었죠? 그러던 것이 오히려 대선이 끝난 이후 두 달 만에 40억 가까이 쏟아져 들어왔으니까. 참 그때의 감격이란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심지어 어떤 날은 하루에 2억씩 들어왔다니까요? 이건 뭐 농담이지만 그때 우리까지 그런 얘기도 했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한 2백억 모으겠다고 할 걸... (웃음) 실제로 그 때의 열기로 봐서 50억에서 마감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2백억까지도 단숨에 달려갔을 거예요! 그때 우리 국민들, 참 대단했습니다.
- 당시 창간기금 모금 총 책임자였던 이병주 씨의 증언. 원 출처: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 한겨레신문 10년의 이야기> - 이민우, 심산 저. 한겨레신문사. 1998. p65~66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어리석은 꿈'에 합류한 사람들이 있었다. 월급은 반으로 줄고 일은 두 배로 늘어나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제 발로 찾아온 정신 나간 사람들이었다. 촌지와 맞바꾼 자존심을 안주 삼아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현실을 개탄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언론과 세상이 본래 그럴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에 대하여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제대로 된 신문만 만들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 원 출처: 위의 책 p8~9 프롤로그 중에서.


위와 같은 정치/사회적 변화 속에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리영희 교수와 임채경 창작과비평사 편집고문, 이병주 동아투위 위원장, 정태기 조선투위 위원장 등 네 분이 1987년 여름부터 구상을 하여 과거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을 중심으로 기자들이 다시 뭉치고, 모자란 자본은 6만 7300여 국민들의 자발적 후원 형식인 국민주주제로 채워졌다. 창간의 움직임은 그해 10월부터 낸 창간준비 소식 및 모금운동 광고의 형태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당시 광고에 실린 카피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닙니다"는 1987년 대선에 야권이 패배한 뒤 실의에 젖어 있던 국민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모인 50억원의 자본금[5]으로 1987년 12월 15일에 신문사를 차렸고, 1988년 5월 15일 1호가 나왔으며 기존의 활판인쇄 대신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신문편집 시스템이었던 '2세대 CTS'를 도입하였으며 한 사람의 주식을 1% 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하여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신문을 지향하였다.

초대 사장은 동아일보에서 퇴사한 당시 편집장이었던 청암 송건호[6]. 이후 조선일보동아일보의 친일 행각을 공개하면서 인기가 상승한다.[7] 그러나 한겨레의 출발은 순탄치 못하였는데, 창간 이후부터 노태우 정권에게 눈총을 받아 청와대 기자실이 비좁다는 이유 아닌 이유로 청와대 출입을 거부당했는데, 이는 1991년 춘추관 완공 때까지 이어졌다.

한겨레 역사상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은 것은 1989년 4월 14일 리영희 논설고문이 방북취재 혐의로 안기부에 구속된 사건부터였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공안정국 하에서 방북취재 계획을 빌미로 한겨레를 굴복시켜 권력에 굴복시키려 했으나, 이는 전화위복이 되었다. 또 7월 12일에는 서경원 방북 사건 당시 윤재걸 기자가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기부 요원들과 전투경찰에 의해 한겨레 편집국이 압수수색되었다는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자 국민 성금이 1백억 원 이상이나 몰려들어 한겨레는 그 모금을 바탕으로 일약 중앙지로서의 지위로 올라섰다.

동영상으로는 지식채널e 동아일보 해직기자 편에서 창간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2001년 '심층해부 언론권력'시리즈로 조선, 동아일보 등 족벌언론의 '무한권력'과 '추악한 과거'를 고발했다. 이로 인해 조선, 동아일보에게 각각 70억원, 1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했으나 2008년 2월 14일 대법원에서 조선, 동아일보의 청구를 기각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한겨레의 보도·만평은 국내 중요 언론사의 과거를 재조명함으로써 비대화되는 언론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권-언 유착과 친일 행적을 다루고 있어 보도의 공익성이 인정된다"고 할 정도였다.

4. 역대 사주[편집]

4.1. 회장[편집]

  • 권근술 (1995~1997)

4.2. 사장[편집]

  • 송건호 (1988~1991)

  • 김명걸 (1991~1993)

  • 김중배 (1993~1994)

  • 김두식 (1994~1997)

  • 권근술 (1997~1999)

  • 최학래 (1999~2003)

  • 고희범 (2003~2005)

  • 정태기 (2005~2007)

  • 서형수 (2007~2008)

  • 고광헌 (2008~2011)

  • 양상우 (2011~2014/2017~ )

  • 정영무 (2014~2017)

5. 보도[편집]

신문 삽화는 주로 김영훈 교수가 1988년부터 맡아왔다. 만평은 장봉군 화백이 연재하며, 초대 만평가 박재동 화백은 매주 토요일 '여론' 면에 그림을 싣고 있다. 만화 조선왕조실록으로 유명해진 박시백씨도 이쪽 만평 출신. 매주 수요일에는 생활 관련 섹션인 esc,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독자투고란 '왜냐면'을 운영하고 있으며, 참고로 한겨레가 과거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같은 병맛 광고를 실자 한겨레가 그런 광고 실으면 안되지 않나 라고 비판이 일어난 것도 이 왜냐면 투고란이었다.
한달에 한 번씩 그 동안의 한겨레의 보도에 대한 시민편집인의 평가를 싣는다. 과거 시민편집인은 이봉수 교수 - 고영재 전 경향신문 사장 - 김예란 교수 - 최영재 교수(2017.06.29 기준)

현재 간행중인 잡지는 한겨레21이 있다. 씨네21도 과거에 한겨레가 운영했으나 현재는 분사해서 독립된 길을 가고 있다. 사실 한겨레 신문사는 본점인 신문사보다는 분점격인 자매지들이 더 잘나가는 기이한 형태를 띄고 있다. 과거 운영했던 씨네21은 영화지 시장의 조선일보라는 수식어까지 붙을 정도로 상당한 위치 겸 점유율을 차지했다. 사실 영화지 시장이란 것 자체가 좀 마이너하다만. 한국 신문 시장이 과도한 판촉 경쟁으로 팔릴때마다 적자나는 점을 감안하면# 그나마 선전한다고 할 수 있는 편. 다만 만화지 팝툰은 적자경영 끝에 결국 망해서 접었다.

자매지 한겨레21이 노동OTL 기획으로 돋보이는 것에 비하면, 정작 본지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의제 설정은 못하고 정권의 삽질을 따라다니면서 비판하는 것과 가끔 북한의 동인설정을 기재하는것 이외에 두드러지는 면이 별로 없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비정규직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독자적인 심층취재를 시도하는 등 독자적인 기획보도를 꽤 하는 편이다.

경쟁지들보다 과학 섹션이 허약한 것을 보충하려는 듯 사이언스온이라는 새 온라인 지면을 만들었는데, 독자들이 어째 별 관심 없는 듯하다. 참고로 링크는 여기.

전체적으로 정치-사회 관련에서 다른 신문들보다 과도한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8]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신문이 주류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시각이 있다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약자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은 신문이다. 그래서 보수진영 등에서는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현실과 유리된 비판적인 관점에서 비타협적인 논조로 접근하는 방식을 싫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노동자 파업 이슈를 예로 들면 조중동이 사회적 손실을 중심으로 이야기할 때, 한겨레는 그 노동자들이 왜 파업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색다른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도록 조명하는 측면도 있다.

인터넷 실명제, 액티브X[9]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며, 웹표준 준수와 관련된 기사들이 많이 실린다. 인터넷 실명제로 인해 한국인의 유튜브 업로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청와대는 우회방법을 사용하여 유튜브에 동영상을 업로드한 것과 관련하여 신랄한 비판 기사를 썼다.#

삼성그룹 비리 보도 이후 삼성이 광고를 1년간 중단하자 한겨레 측이 삼성 광고 게재를 완전히 거부하였다. # 그러나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부터는 삼성 광고도 실리기 시작했다. 삼성과의 관계는 논란이 많은데 르몽드 한국판 삼성 보도 참고.

또한 미국산 쇠고기 파동때 미국육류수출협회로부터 10억 광고료로 미국산 쇠고기 광고를 제안받았으나, "독자들과의 신의"를 들어 거절하려고 광고주 예우차원에서 직접 거부하지 않고 광고주가 감당하기 힘든 조건으로 거절하려 했으나, 미국육류수출협회측에선 무조건으로 승인해 버리자 결국 임시 임원회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광고를 싣지 않기로 결정했었다. 참고.

http://i3.ruliweb.com/img/17/05/15/15c0c8165e6494602.jpg
그러나 농림부에서 만든 광우병 소고기 광고는 실었다고 한다....

과거 한겨레에 실린 광고를 가만히 살펴보면 진짜 돈 안 되는 광고들 뿐이었다.(...) 보는 사람이 안습해질 지경. 돈 되는 광고는 1면광고와 전면광고인데 이마저도 정부(혹은 공기업)광고나 대기업광고인 경우가 드물다. 유독 책 광고가 많은데, 사실 책 광고는 진짜 푼돈(...)인지라. 그런데도 한겨레는 2005년부터 '흑자'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대기업 광고가 꽤 많이 실려 논란이 있다.

자금 사정 탓인지는 몰라도 종종 타 신문에 비해 신속성에서 뒤진 적도 있었다. 가장 유명한 건 단연 김선일 피살 사건 때의 뒷북형 오보. 참수영상이 뜬 다음날 다른 신문들은 김선일 사망 소식을 전하는데 한겨레는 소식이 늦어 버려서 김선일이 아직 살아있다는 보도를 해 버린 것. 결국 그 다음날 한겨레는 김선일 사망 소식을 크게 실으면서 1면에 사과문을 기재했다. 자금의 부족으로 통신사 기사를 주로 사용할 수 밖에 없고, 이는 다시 기사의 질을 떨어뜨리는 식의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김선일 사건에 크게 데인 모양인지 노무현 대통령 투신때에는 발빠르게 대처했다. 투신한 날이 토요일이어서 대부분의 시사주간지들이 손을 쓰지 못했는데, 한겨레21만 이미 인쇄한 표지를 다 갈아엎었고, 새 표지를 단 다음 새로 급하게 쓴 기사 한 꼭지를 덧붙여서 특집호를 냈다. 덕분에 그 주 판매부수가 4배인가 5배인가로 뛰었다고.

몇몇 팬클럽들이 한겨레 신문에 광고를 싣는 일도 있었다(동방신기, 박재범, G-dragon, 혜림, 원더걸스). 이유는 저렴한 광고료.

2014년 기준으로 야권 및 진보 진영에 대한 비판 기사, 여권 인물에 대한 인터뷰가 늘어나는 등 논조가 전보다 많이 완화되었다. 적과의 동침을 시도하기도 하고.

2016년 9월경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최순실에 관한 첫 기사를 낸 적이 있다. 이후 엄청난 검증의 쓰나미후폭풍을 가져오게 되는데.. 보통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말하면 JTBC를 먼저 떠올리지만 최순실을 가장 먼저 언급한건 한겨레였다. 취재는 tv조선이 가장 먼저 한 것 같다. 기사 본문 참조 다만 한겨레는 자신들의 역량의 한계로 인하여 특종거리를 살리지 못한 것. 한겨레의 김의겸 선임기자가 쓴 칼럼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님께를 읽어보면 한겨레의 역량 한계에 대한 해당 기자의 안타까움과 조선일보의 능력에 대한 기대감을 느낄 수 있다. 이후 별다른 특종들과 세밀한 분석들을 내놓지 못하고, JTBC가 태블릿 PC를 터뜨리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도권을 가져가 버렸다.

6. 한겨레에서 발행하는 인쇄 매체[편집]

  • 한겨레21: 종합 시사주간지이다. 시사주간지 업계에서는 본지보다 영향력이 높다.

  • 씨네21: 영화 및 영상물 주간지이다. 우리나라 영화잡지 중에서 가장 큰 잡지[10]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경제 월간지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비판하고 미국이 아닌 유럽, 아시아의 시각에서 경제를 보려고 한다.

  • 서울&: 2016년 3월 창간한 서울 지역 라이프스타일 주간지. 초기 반응은 나름 좋은 편이었으며, 이후 부산, 경기도 등으로 확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매주 목요일 발행이었으나, 2016년 4월 22일부터는 금요일 발행으로 변경되었다.

  • 나·들: 월간 사람매거진을 표방한다. 주로 인물 인터뷰를 다룬다. 2014년 7월 이후로 폐간되었다. 이유는 심하게 누적된 적자 때문이라고..

7. 특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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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창간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보기

한겨레는 1988년 가로쓰기와 순한글표기를 시작함으로써 1947년 호남신문, 1985년 스포츠서울에 이어 대한민국 일간지로는 3번째, 종합일간지로는 두 번째로 가로쓰기 지면을 선보였다.[11] 종합일간지가 대대적으로 가로쓰기를 시작한 것은 한참 후인 1995년 중앙일보의 가로쓰기 도입 이후로 평가되나[12] 큰 영향력을 끼친건 아니더라도 가로쓰기 전용을 시도한 초창기 신문임은 사실이다.[13] 이때 제호 표기도 한글로 했다는 점을 특기할 만하다. 또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신문편집 시스템이었던 '2세대 CTS'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이 시스템은 원고를 컴퓨터로 입력한 뒤 손으로 기사를 이어 붙이는 원시적인 1세대와는 달리 교정, 면 배치, 출력까지 컴퓨터로 처리하는 형태였다.

세계 언론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주를 통해 자본을 마련한 언론이기도 하다. 2만 7천여명 주주가 모아준 50억원의 성금으로 설립되었으며 모금에 참여한 국민들에게 한겨레신문사의 주식을 배정해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게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때문에 회장이나 이사회가 없고 늘 1인 1주로 처리된다.

다른 신문들이 한자병용을 하는 것과는 달리 한겨레신문은 순 100% 한글로만 사용하며 한자로 표기하는 일이 없다. 그래서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도 신문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신문에 쓰는 글꼴인 한겨레 결체를 공동으로 개발하여 2005년 5월 16일 신문부터 이 글꼴을 적용하고, 사람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참고로 한겨레 결체는 일간지 최초의 '탈네모글꼴'이다. [14] 한겨레 읽다 조선일보 읽으면 조선일보 글꼴이 굉장히 넓적해보인다.

대판 신문에 본문을 좌우 2cm가량의 여백을 두고(보통 다른 신문은 좌우 1cm) 배치하며 페이지 표시가 크고 아름답다. 특히 1면이 아니더라도 사진을 잡지처럼 과감하고 크게 배치하는 경우가 많아 국내 일간지 중 가장 여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공간을 넓게 구획한다. 일반 일간지는 대개 가로 7단이며 타블로이드판 황색지나 무가지들까지 가로7단을 고수하는데 비해 한겨레는 파격적으로 가로 5단이다. 좌우 여백이 더 넓다 해도 기본 문단 너비가 일반 일간지에 비해 길다.[15] 국내 일간지 중 가장 스타일리시한 신문을 고르라면 단연 한겨레다.[16] 한겨레의 자매지인 한겨레21 역시 국내 시사주간지 중 독보적으로 스타일리시한 편집디자인을 선보인다.[17]

7.1. 한자/로마자 혼용 배제[편집]

초창기부터 한자를 쓰지 않아 당시 한자 혼용이 대세였던 분위기에서 상당히 눈길을 끌었다. 현재는 대다수의 신문들이 순한글을 쓰면서도, 동음이의어 때문에 혼동을 줄 수 있는 단어나 중국 및 일본의 인명 같은 것에는 한자를 괄호 병기하는 경우가 많으나[18] 한겨레신문은 이러한 경우에도 한자를 쓰지 않는다.

자회사들은 영어 범벅이다.
로마자를 꼭 써야 하는 경우에는 그 로마자를 한글로 먼저 표기하고 로마자를 괄호병기하고 기사에 계속 그 로마자 단어는 한글로 표기한다. 대한민국 내에서도 KTX, LG, SK 같은 것은 공식 표기가 로마자로 되어 있으나, 한겨레는 '케이티엑스(KTX), 엘지(LG), 에스케이(SK)' 와 같은 식으로 표기하고 기사에 계속 이를 언급해야 할 경우에는 한글로 풀어서 쓴다. 기아(KIA), 다음(Daum)처럼 한글에서 유래되었으나 공식 표기가 로마자인 경우는 '케이아이에이'나 '디에이유엠' 식으로 쓰지 않고 기아, 다음 등 원래 한글명을 쓴다.

스포츠 팀의 경우에는 기업명을 빼고 언급을 하는데, 가령 SK 와이번스, LG 트윈스, NC 다이노스, KIA 타이거즈의 경우 앞의 알파벳은 쏙 빼버리고 뒤의 와이번스, 트윈스, 다이노스, 타이거즈만 언급하는 식이다. 삼성 라이온즈도 라이온즈로 줄여서 부르고 있다.

외국의 로마자를 표기할 경우 그 언어에 맞게 표기하려는 경향이 있다. 영어권의 경우 비비시(BBC), 엠에스엔비시(MSNBC), 시엔엔(CNN)과 같이 표기하고, 프랑스어권의 경우 테제베(TGV), 아에프페(AFP), 독일어권의 경우 베엠베(BMW), 체트데에프(ZDF)와 같이 표기한다. 종종 대한민국에서 생소한 언어권의 로마자 표기도 해당 언어의 발음 표기에 맞게 표기하려는 시도를 하는데, 핀란드의 위엘에(YLE)#, 노르웨이의 엔에르코(NRK)#와 같은 표기도 볼 수 있다. 일본의 것은 영어식으로 표기하여, 엔에이치케이(NHK), 제이아르(JR)와 같이 한다. 알라의 요술봉을 에르뻬게-쎔이라 쓰지는 않더라

그런데 현재 한국인의 식자층은 대부분 로마자를 영어식으로 읽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더군다나 한겨레신문을 읽는 독자라면 더욱 그러한 성향이 강할 텐데 이마저도 모두 한글화하여 오히려 가독성을 해친다는 비판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표기가 그 회사의 한국 지사의 표기와 어긋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BMW의 경우 한국 지사는 공식적으로 '비엠더블유'라고 읽고 씀에도 불구하고 한겨레는 '베엠베'라고 쓰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

상술된 지극히 독자적이고 외고집스러운 내적 편집 규정 때문에 사설이나 종합 정치면 등 기사 논조를 제외한 신문 제작 자체 사항에 관한 부분에서 한겨레만 타사와 풀(공유)하지 않고 따로 논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편집(레이아웃)도 기자협회가 따로 있고 교열도 초매체적 기협이 있어 대체적인 사항들은 전파 및 공유가 되지만 한겨레만 그를 벗어나 독자 노선을 걷는 것. 고로 업계 내부를 돌고돌며 일하게 될 때 타회사 간 이동 시 큰 적응 시간이 필요하지 않지만 한겨레는 '한겨레식'을 배우는 데 꽤나 시간이 걸린다. 한겨레에서 나와서 타사를 가도 마찬가지. 독특한 점이다.

그나마 영어를 한글로 제대로나 옮기면 또 모르겠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베스트셀러 1Q84아이큐84로 소개하면서 소양 부족을 드러냈다[19]. 해당 기사 한겨레 사이트에는 기사를 수정했지만, 포털사이트에는 수정되지 않은 채로 아직도 걸려 있다. 물론 최근에는 잘 옮기는 편.

한겨레의 잘못은 아니지만, R도 한글 '아르'로 쓰기 때문에 IT기사를 읽는 독자들이 '아르에스에스(RSS)'란 표현을 보고 충공깽하기도 한다. 이는 외래어 표기법에서 R을 '아르'로 표기하기 때문인데 정작 일반인들은 '알'이라 읽으니 생기는 현상.

그 밖에, 익명의 경우 이니셜 대신에 한글 초성을 쓰고 '○모씨' 대신에 '○아무개'라는 표현을 쓰며, 부고란 이름은 '궂긴소식(…)'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매주 수요일 연재중인 생활섹션의 명칭은 '이에스시'가 아니라 'esc'다(…). 하위 여행 컨설팅 칼럼도 '플랜비'가 아닌 '플랜B'.#

8. 비판[편집]

한겨레/비판 문서 참조

9. 한겨레미디어 계열사[편집]

한겨레미디어 계열 기업은 아래와 같다.

10. 기타[편집]

전술했듯이 한겨레는 세계 최초의 국민주 신문이라고 한다.[26] 신문이 창간되었을 당시 많은 외신 기자들이 한겨레를 취재하러 오기도 했다고. 이런 이유로 주주총회 역시 소수의 대주주들이 일방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일반 기업과는 다르게 많은 소액주주들과 사원주주들이 참석하여 토론을 통해 회사의 방향을 결정한다. 한겨레 주주센터

1995년 중앙일보에 이어 국내 신문사로는 두 번째로 주간지 한겨레21로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듬해 1월 1일에 씨네21, 7월 11일 일간지 한겨레의 인터넷서비스를 시작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 전반기 평가 그래프를 가지고 '어설프게 조작'을 한 적이 있다. 보다시피, 잘했다는 쪽이 비율이 더 적은데 크기를 크게 만들고 못했다는 쪽이 비율이 더 큰데도 불구하고 크기를 더 작게 만들었다. 기사에서 왼쪽이 한겨레에서 조작한 것이고, 오른쪽이 제대로 된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2005년부터 흑자를 보고 있는 신문인데 매년 약 30억 가량의 흑자를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7] 다만 2014년에는 11억, 2008년에는 25억 정도의 손실이 발생하였다. 실제로 DART에 가서 확인해보면 2005년 결산부터 2014년 결산, 즉 9년간 자본총계는 19억 259백만원에서 30억 722만으로, 연평균 약 5.3% 성장하였다.[28]

한겨레는 2007년 1월 29일, 취재 보도 준칙을 제정, 공표했다. 한겨레 기자는 이 준칙에 따라 취재 보도를 하고 있다.

2013년 5월 21일부터 일주일에 한 번 자회사인 (주)한겨레교육을 통해 운영하는 '함께하는 교육'지면에 주요 쟁점에 대한 사설을 자사와 반대편 논조 신문인 중앙일보와 비교, 분석하는 지면을 기획했다. 다른 논조의 사설을 비교해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함께하는 교육'과 NIE교육용 '아하!한겨레'는 (주)한겨레교육을 통해 제작하는 콘텐츠라고.

2014년 2월 28일부터 미국의 허핑턴 포스트와 제휴를 맺어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를 출범했다.

여담으로 정치인 중에서 한겨레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 중에는 정몽준의원도 있다고.

한겨레 사옥에는 구내 식당이 없다. 회사 앞 중국집이 매우 맛있다. 특히 탕수육...

종합편성채널 도입 논의가 한창이던 2008년에 제도권 언론 진출을 목표로 인터넷 TV 방송국인 한겨레TV를 신설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김어준의 Papa is가 있다.[29]

2015년 영국 가디언이나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을 벤치마킹하여 마포구 동교동에 미디어카페 후(HU:)를 오픈했다.

2015년부터 뉴스 SNS 플랫폼인 뉴스뱅, 웹툰작가조합인 투니온과 합작하여 설립한 웹툰기업인 롤링스토리 등 여러 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고, 2016년 주주총회에서는 방송산업 진출을 적극 검토하기도 했다.

2005년 정태기 대표이사 재임 당시부터 퀄리티 페이퍼를 공식적으로 지향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재무 상태가 호전되는 대로 증시에 상장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30]

한겨레신문 대표 출신인 서형수더불어민주당의 인재영입을 통해 공천을 받아 20대 총선에서 경남 양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6년부터 시작된 한국기자협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기자들이 신뢰하는 언론 항목 9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2017년 한국대학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7년 연속 대학생 신뢰도 1위를 차지했다.

한국기자협회 주관 2014년 이달의 기자상 최다 수상 언론사에 한겨레가 선정되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1988년 한겨레 창간호에 실린 그의 저서 '거래의 기술' 광고 문구가 그를 미국의 차기 대통령감으로 지목했다는 사실이 주목받았다. 도널드 트럼프/트리비아 항목 참조.

[1] 간혹 한겨로 오기되는 경우가 있다. 저렇게 타이핑하는 게 더 귀찮을 것 같은데...[2] 창간 초기에는 60만 부 이상을 발행한 적도 있었다. 2012년 당시 한겨레미디어 전략사업본부장의 말에 따르면 일일 40만 부를 발행한다고 했다.[3] 바스티유 감옥에서 영감을 얻어 건설된 것으로 유명하다.[4] 이미 40년이나 지났으므로 당시 기자들은 2013년 현재 이미 은퇴한 7~90대 호호백발 노년들이다.[5] 이 중 2억원을 당시 변호사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기부했다. 창간 발기인이기도 하다.[6] 동아일보를 친일지로 규정하는 사람은 동아일보의 정통성이 한겨레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7] 사실 80년대에 조선일보동아일보 상호 간에 친일신문이라고 비방한 전력이 있다. 나중에 한겨레가 이를 토대로 두 신문 모두 친일신문으로 규정하면서 자승자박이라고 평하는 이도 있다.[8] 기사의 양으로 보면 조중동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신문 전체 발행면수는 1.5배 정도 차이가 나다보니 상대적 비중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9] 다만 한겨레 PDF페이지는 액티브X를 사용했다가 버렸다.#[10] 영화잡지계의 조선일보라는 별칭도 있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의미다.[11] 호남신문이 지방지인 관계로, 중앙 종합일간지로 한정하면 첫번째가 된다.[12] 경향신문도 중앙일보보다 더 늦게서야 가로쓰기로 전환했고, 한겨레와 비슷한 시기에 가로쓰기 전용을 선보인 국민일보도 얼마 후 별로 좋은 방식이 아니라 판단하여 회귀한 바 있다.[13] 단, 원래 우리 문화에서는 예부터 전통적으로 세로쓰기를 사용했었고, 가로쓰기는 서양의 영향이 적지 않으므로 가로쓰기가 우월하냐 세로쓰기가 우월하냐 하는 병림픽은 벌이지 말자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핵심과 다소 동떨어진 견해이다. 현대 한국에서 서구화된 교육이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이미 1950년대 말, 1960년대부터 초중등학교의 교과서는 가로쓰기를 사용하였고, 1970년대부터는 대부분의 대학 교재들 역시 가로쓰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즉, 우수성과 관계 없이 신문을 읽을만한 지식 계층의 상당수가 가로쓰기에 익숙해져 있는 상황에서는 가로쓰기의 가독 효율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14] 탈네모글꼴은 문자 그대로 '네모'(정사각형)에서 벗어난 형태라는 뜻의 한글 타이포그라피 용어다. 사실 기존의 명조체는 한문 해서체의 특징을 그대로 가져온 형태로 한글의 초성+중성+종성으로 구성된 조형원리와는 동떨어진 글꼴이다. 이 '초성+중성+종성'의 조합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안상수의 '안상수체'인데, 한글 타이포그라피에서 '탈네모'란 대단히 중요한 발전이다. 안상수는 '안상수체'의 개발로 '구텐베르크상'을 수상했을 정도다.[15] 시각적으로 읽기 편한 너비는 한겨레 쪽이다. 인간의 눈에 가장 적절한 너비가 6.8cm인가 되고 8cm가 적정길이 한계선이며 5cm 이하거나 10cm가 넘어가면 불편을 느낀다. 일반 대판 일간지의 가로 7단 편집은 읽기 편한 너비의 '최소길이'에 가깝다.[16] 참고로 '스타일리시한 신문'이 뭔지 궁금하면 포르투갈의 i라는 신문을 찾아보라. 압도적인 디자인과 인포그래픽에 기가 질릴 정도다. 여기는 아예 '데일리 뉴스매거진'을 표방한다.[17] 참고로 조선일보는 매우 보수적인 편집디자인을 고수한다. 굳이 조선일보에서 비슷한 감각을 느껴보고 싶으면 까르띠에 광고를 찾으면 된다. 어느 정도인고 하면 제목조차 진중함을 생각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서 '맞짱' '깽값' 등 거친 단어를 써도 되나 안 되나가 중요 의제가 될 정도, 젊은 기자가 많아지고 조선일보도 페이스북운영 등으로 젊고 쿨한 이미지에 신경 쓰면서 많이 유해졌지만 그 때문에 나이 든 장기 애독자들이 항의하기도 한다.[18] 특히 조선일보의 경우 그 경향이 매우 심한 편이다. 사실 한자 병용에 제일 적극적인 신문이 조선이기도 하고. 지금도 조선일보 사설란에서 한자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19] 혹시 이게 왜 문제인지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은 해당 항목을 참조.[20] 이 기업의 자회사로 모두 미디어가 있다.[21] 뉴미디어 뉴스 플랫폼이다. 페이스북을 포함하여 200만 명 이상의 유저를 보유하고 있다.[22] 구미권에서 웹툰 플랫폼인 '스팟툰'을 운영한다.[23] 예술영화 배급사다.[24] 온라인 언론인 학원인 '한터'를 운영하고 있다.[25] 여기서 HERI 리뷰라는 월간지를 발행한다.[26] 주주가 일반 기업이나 단체가 아닌 국민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다.[27] 이게 대단한 이유가 한겨레 외에 흑자를 보는 주요 일간지는 조선일보뿐이기 때문이다.[28] 참고로 코스피 지수의 동기간 수익률은 연평균 약 3.7%이다. 다만 한겨레의 100%가 넘어가는 부채비율을 감안하면 조금 애매할지도?[29] 참고로 오마이뉴스는 2008년 '오마이경제TV'라는 이름으로 케이블PP에 진출하려 한 적이 있다. 이를 봤을 때, 한겨레미디어도 외부 펀딩 등을 통해 제도권 방송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30] 실제로 한겨레신문의 창간 당시 공약 중 하나가 빠른 시일 내로의 증시 상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