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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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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기타3. 관련 문서

1. 소개[편집]

漢奸(Hànjiān)

본래 의미로는 한족을 배신한 자들을 이른다. 혼돈과 치욕의 근대사를 겪은 중국에서는 그 의미가 확대되어 외국 침략자와 내통하거나 부역, 협력해 한족 혹은 중화민족에 해를 끼친 사람을 말한다. 말하자면 매국노인데, 대부분은 근대사에서 친일부역 행위를 했던 자들이다. 표준중국어로는 한젠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의 친일파라는 말처럼 중국에서도 '한간'이라는 말은 그냥 매국노를 이르는 보통명사처럼 쓰인다.

'한간'이라는 단어의 유래는 청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나라 때 지배민족인 만주족과 내통한 한족을 일컬은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다가 청 말기 아편전쟁 전후로 외세 열강에 빌붙어 앞잡이가 되어 솔선하여 민족의 이익을 팔아넘기는 스파이, 매국 행위를 일삼는 이들을 '한간'이라 부르게 되었다.

청나라가 멸망한 이후, 한족이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중화민족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고, 중화민족에 만주족을 포함시킴으로써 한간의 대상은 더이상 '한족' 뿐이 아니게 된다. 즉 만주족이라도 한간으로 낙인찍을 수 있었고, 카와시마 요시코가 여기에 포함된다.

한간 문제가 더욱 심화된 것은 1931년 만주사변으로 시작해 1945년까지 이어진 중일전쟁 시기였다. 이 시기 일본에 협력하는 자들이 급격히 늘어나 이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아졌다. 사실, 한간 문제는 중화민국 초창기의 21개조 요구(1915년)와 1919년의 5.4 운동 시기부터 거슬러올라간다. 대표적으로 위안스카이. 중일전쟁이 터진 후 왕징웨이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일본에 부역하게 되는데 당연히 일본을 등에 업고 부귀영화를 얻으려는 자들도 있었고 일본을 이길 수 없으니 대화로 평화를 얻자는 순수한 의도로 시작한 인물들도 있었으나 결국 협잡배나 이상주의자들이나 사이좋게 일본의 괴뢰로 전락했다. 일부는 자신들이 속은 걸 알고 탈출했지만 왕징웨이 등은 결국 그냥 일본의 주구로 남았다.

중일전쟁에서 중국이 승리한 이후 장제스는 처음에는 일본 점령지의 치안과 행정을 회복하기 위해 한간들을 등용했지만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가차없이 한간들을 처벌했다. 한간들을 처벌하면 한간들의 재산을 뺏을 수도 있고 민심도 얻을 수 있으니 국민당은 한간 처벌에 매우 열심이었다.[1] 국공내전으로 국민당이 대만으로 피난하면서 대부분은 공산당에 의해 형식적인 처벌과 전향을 통해 풀려났지만 국민당은 천공보를 비롯해서 핵심 한간들은 모조리 목을 따고 달아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미국의 역사가 페어뱅크는 국민당이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이유 중 하나가 한간 처벌이 너무 가혹한 탓에 부와 권력을 가졌던 한간들이 공산당에 붙어버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 공산당도 국공내전 후 필요가 없어진 한간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수용소에 처박았으며, 국민당 시절 처벌받지 않은 한간들도 예외는 없었다.

중국에서 '한간'으로 대표되는 인물로는 요나라에 연운 16주를 통째로 넘겨준 석경당, 남송시대 재상을 지냈던 진회, 명나라 말 때 청군을 산해관으로 통과시킨 오삼계[2]가 있으며, 청 말기의 군벌로 황제가 되려고 한 위안스카이, 중일전쟁 때 일본 제국에 크게 협력한 왕징웨이, 청나라 황족 출신인 가와시마 요시코 등이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힌다.[3]

일본 위키에서는 장쩌민도 포함되어있다. 파룬궁의 선전과 달리 장쩌민의 반일은 천안문 사태를 무마하려는 술책이라고 서술한다.

2. 기타[편집]

한국에서의 친일파라는 말이 그렇듯 중국에서도 제국주의 일본의 만행을 옹호하는 수준이 아닌, 단순히 일본을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한간으로 매도하는 경우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합한족(한국을 열렬히 좋아하는 중국인)들도 한간으로 매도당한다. 그 외에도 오늘날 중국에서는 홍콩, 대만 독립운동 지지자나 중국이 거부하는 (서구식)민주주의 등에 호의적인 인민들도 한간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다.

대만에서는 이와 비슷한 대간(台奸, taijian)이라는 용어가 있다. 대만 독립운동 진영에서 중국 국민당 등 중국과의 양안통일에 호의적인 인사들을 공격하는 용어이다.

3. 관련 문서[편집]


[1] 국민당은 한간 외에도 일제와 협력했다고 간주된 집단을 매우 가혹하게 탄압했다. 대표적으로 만주족(이전에 열강에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라는 악평+만주국으로 확인사살)과 대만 본성인(종전 후 외성인에게 저항할 당시 본성인/외성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기미가요였을 정도로 일본에 우호적이었다. 이에 국민당은 북경어로 말을 걸고 대답을 못하는 자들을 친일파 취급해서 쏴 죽이고 수장하는 것으로 답했다.)[2] 사실 오삼계가 당시 청군을 산해관으로 진입하게 한 것은 청군을 이용해 이자성의 반란군을 진압한다는 계획이었다는데, 이것이 오히려 명의 멸망을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른 이야기로는 오삼계가 이자성의 난으로 명을 멸망시키 이자성을 받들려고 했으나 이자성이 오삼계의 애첩을 노리개 삼고 오삼계의 가족을 몰살했다는 사실에 분개하여 돌아섰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하간 오삼계는 청나라에 왕 작위까지 받으며 성공했으나 후에 다시 삼번의 난을 일으키고 진압당했다.[3] 영어판 위키에서는 타이완의 대부호인 구셴룽(辜顯榮)도 '한간'으로 보고 있다. 그는 청일전쟁 때인 1895년에 타이완 민주국을 배신하고 일본군타이베이를 점령하도록 도왔다. 그 공으로 구셴룽 일가는 일본의 비호 아래 호의호식하며 지금까지도 타이완의 정, 재계에 큰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