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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음반)

최근 수정 시각:

1. 개요2. 팀의 위기, 2인조 활동3. 온갖 악재가 찾아온 신지4. 활동 현황

1. 개요[편집]

파일:attachment/koyote04.png

1. Profile
2. 비몽
3. 애련
4. 운명 [1]
5. Over
6. Y
7. 데미지
8. Happy Song
9. 아리랑 목동 [2]
10. 웃자
11. Loving You
12. 환희 [3]
13. 매듭
14. Over (Remix)



비몽의, 비몽에 의한, 비몽을 위한 앨범.

3집 앨범 작업에 참여했던 작곡가 주영훈이 본격적으로 프로듀싱을 맡은 앨범. 타이틀곡 비몽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과 함께 당시 대한민국 가요계 혼성 댄스그룹의 쌍두마차로 올라섰다. 그런데... 마땅한 후속곡이 없었다. 애련이긴 한데... 비몽의 활동이 끝나니 월드컵 기간으로 들어갔기도 하고...

사실 원래 4집의 타이틀은 애련이었다.

2. 팀의 위기, 2인조 활동[편집]

앨범 출시전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던 2002년 2월 즈음에 그룹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리더이자 랩퍼 김구가 마약 소지 및 복용 혐의로 처벌받고서[4] 그 이후에 김구는 소변검사에서는 음성판정이 나왔으나 모발 검사를 하니 마약성분이 검출되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지상파 방송사들이 일제히 코요태 모든 곡의 심의를 반려하면서 컴백에 차질이 빚어지게 되자[5] 원래 타이틀인 애련은 심의가 도통 나오지 않아 객원 래퍼로서 김영완이 영입되었고 원래 후속곡인 비몽이 타이틀곡으로 재녹음 되었다. 일단 재녹음 절차를 밟은 타이틀곡만 심의를 통과하면서 비몽이란 곡으로 컴백했고 이후 김영완은 후속곡에서 하차한다.

방송사에 심의를 통과하기 위해서 앨범을 재녹음을 하고서 Y[6] 내레이션의 부분은 김구의 목소리를 완전히 제거한 다음 김종민이 다시 재녹음했고[7] 해피송, 매듭, 데미지등은 김구의 구속으로 랩부분은 다른 이들로 급하게 메운 다음 타이틀곡으로 선정된 비몽은 케이블 첫방송 이후 전주부분이 리믹스 되었고 후속곡 애련, 환희, 아리랑 목동 은 김종민이, over는 신지가 랩을 맡았다.

어쨌든 이로 인하여 앨범 원곡과 방송용 AR과 MR이 너무 차이가 나게 되었고 원래 타이틀로 쓰려다가 심의가 걸려서 애련과 오버, 아리랑목동, 환희까지 수정된 버전은 원곡과는 전혀 다른 노래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5월 전주에서 MBC 게릴라콘서트에 도전했을 때 도전인원수 5천명을 넘긴 6271명으로 성공하여 공연을 하게 되었으며 김구가 콘서트 공연 중간에 무대에 올라와 사과를 한 부분은 방송에서는 편집되었다.

3. 온갖 악재가 찾아온 신지[편집]


데뷔 이래 무리한 고음을 계속해서 라이브로 부르면서 목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된 신지는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성대결절에 시달리게 되었다. 특히 3옥타브 파~솔 구간을 무리없이 라이브로 소화하던 신지는 3집 때부터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2002년 무렵에 이르러서는 제대로 라이브를 소화하지 못하고 삑사리를 낸다든지, 목소리가 갑자기 갈라진다던가 하는 실수를 많이 하게 되었다. 실제로 이 때는 평상시에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목 상태가 심하게 악화되어 약을 달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때부터 코요태 노래의 음역대가 급격히 낮아지기 시작했다.

이전 문서에서는 3집부터 급격히 낮아졌다고 서술되어 있었지만, 한 번만 들어봐도 음역대가 확 낮아진 구간이 어디인지는 음악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들도 쉽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3집과 4집의 간극이 매우 크다. 물론 3집도 1,2집에 비하면(...) 음역대가 낮은 편이긴 한데, 그래봤자 두~세키 정도로 3옥타브 파#~솔이 3옥타브 미~파 정도로 낮아진 수준에 불과했다. 일반 여성들의 음역 한계가 2옥타브 시~3옥타브 도# 정도이고, 현재의 기성 여자가수들도 웬만해선 3옥 레 이상으로는 거의 올리지 않고 기교와 음색으로 승부를 보는 추세에 있다. 그런데 신지는 낮아졌다고 하는 'Passion'에서 3옥 미~파를 네 마디를 연속해서 찍고(...), '파란'도 3옥 파#까지 올라가면서[8][9] 계속 노래를 불렀으니, 발성이 제대로 안 잡힌 신지의 목이 버틸 리가 만무했다.

반면에 비몽의 경우 최고음이 3옥 레에 불과하다. 이것도 일반 여성 입장에서는 꽤 높은 축에 속하나, 예전처럼 힘을 '빡' 주고 질러야 올라가는 수준의 중고음역대 구간은 없다. 실제로 일반인 기준 남성/여성파트를 각각 부른다고 했을 때, 무려 2옥 라#(!)까지 올라가는 김종민 파트의 남성들이 대체로 더 힘겨워 한다. 작곡가 주영훈이 4집 프로듀싱을 할 당시, 이미 신지의 목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점과 더불어 김종민이 생각보다 음역대가 넓다는 것을 캐치하면서, 비몽이라는 곡에서는 신지의 힘을 많이 빼주고 그 역할을 김종민에게 많이 부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지의 가창력에 묻혀서 그렇지, 김종민 파트는 어려운 중음역대 구간으로만 꽉꽉 채워져 있어 신지 파트보다 더 소화하기 쉽지 않다(각 파트를 맡는 동성인 경우로 비교했을 때). 이게 역이 되기도 한게 그 당시 여자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3집까지도 노래는 인기가 많았지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있었다. 하지만 음역대가 낮아지다보니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이 노래를 부르면 순식간에 분위기가 올라갔다. 정말 음반명대로 일어섰지만 그와 다르게 신지는 반대로 점점 힘들어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집 활동 당시 라이브를 들어보면, 본격적으로 데뷔 이래 첫 라이브를 맡은 김종민보다 신지의 힘이 딸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무대에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유독 이 당시 신지의 안색이 초췌하고, 노래가 불안정한 모습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성대결절이 심각하게 진행되어 목소리가 완전히 바뀐 5집 이후로는, 거의 10여년 가까이 3옥 레에 불과한 비몽조차도 소화를 못할 지경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어느 정도 목 상태가 회복이 되어 비몽을 무난하게 소화하기는 하지만, 성대결절이 진행되고 있던 당시만큼 안정적으로 뽑아올리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그 정도로 신지의 목에 입은 타격이 매우 심각했고, 이에 활동 당시에 얻었던 여러 가지 트라우마가 겹치는 바람에 예전 같으면 가볍게 씹어먹을 음역조차도, 심지어 일반인도 충분히 올릴 수 있는 음역조차도 올리지 못하고 버거워했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김구가 코요태를 돌연 탈퇴하고 그룹의 존폐가 흔들리는 위기를 거치면서 건강악화가 연달아 찾아오게 되었다. 김구의 탈퇴로 갑작스럽게 팀을 이끌게 되면서 찾아온 스트레스로 점점 잦은 폭음과 건강관리 실패로 신부전증이 찾아오면서 몸이 심하게 붓게 되었다. 이 때부터 신지는 마약 의혹에 갑작스레 부은 얼굴 논란까지 겹치면서 온갖 악플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상황이 겹치면서 실제 앨범 활동 또한 제대로 할 수 없었기에 방송활동은 거의 시망 수준이었다. 앨범 제목인 필립(必立)도 사실 앨범 발매를 앞두고 터진 악재들을 극복하기 위해 특별히 지은 것이다. 실제로 악재들을 극복하고 대중적으로 대히트를 친 앨범이기는 했지만, 신지 입장에서 본다면 극복하기는 커녕 겹겹이 찾아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방송활동을 접은 후 점점 더 심각해졌는데, 몸이 가장 심하게 부었던 때는 2002년 연말 시상식으로, 4집 활동을 접고 오랜만에 방송에 나와 보여준 모습이 역대 신지가 대중들에게 보여준 모습 중 가장 후덕했던 모습이었다. 당시 신지의 건강이 얼마나 안 좋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면 링크를 보면 신지가 거의 빅마마 수준으로 몸이 부었다. 활동당시에도 병원을 다니면서 방송활동을 했고, 거기에 스트레스가 더해지면서 몸이 부종으로 인하여 무지막지하게 부은 것을 단순히 살만 쪘다고 오해한 네티즌들에 의해 온갖 악플에 시달리게 되었다. 거기다 신장질환으로 인해서 낯빛마저 어둡다보니 '뜨니까 변했다' '마약해서 저렇다'라는 루머까지 시달려야 했다. 단순히 폭음 등으로 인한 살찜 현상이 아니라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부어올랐던 이유가 더 컸음에도, 대중들은 신지에게 자기관리 못하냐고 날선 비난을 가했다.

이 때문에 4집이 코요태 역대 앨범 중 가장 많이 팔리고 '비몽'이 코요태의 수많은 히트곡들 중에서도 가장 인지도 높고 우위에 있는 노래임에도, 신지는 이 당시 기억을 대체로 지우고 싶어하며 회상하려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가장 슬럼프를 겪었던 시기는 5집이지만, 4집 때 어마어마하게 받은 스트레스가 누적이 되어 그랬던 것임을 감안하면, 코요태의 최전성기라는 시기와는 별개로 참으로 다사다난한 부침을 많이 겪은 해라고 할 수 있다.

여담으로, 개그 콘서트의 코너 봉숭아 학당에서 신봉선이 "45억원의 가치 연예계의 별 봉써니" 기믹으로 나왔을 때, 비몽의 도입부인 "난나나나 쏴 난나나 나나나나"를 불렀었다.

4. 활동 현황[편집]


타이틀곡 비몽의 뮤직비디오는 소속사 사정상 찍지못했으나 이 대신, 신지의 솔로곡 Y 뮤직비디오로 홍보를 했다. 뮤직비디오 에는 여배우 조민수(배우)가 단독 주인공으로 나와 자신을 버린 남자를 끝내 못잊어하는 여자의 맹목적 사랑을 절절하게 연기한다.



반드시 일어선다는 뜻의 앨범 제목 덕분인지 몰라도 앨범 발매 후 가요 순위에서 꾸준히 상위권에 랭크되었고 2002년 전반기 음반 판매량 집계 결과 상반기에만 약 40만장, 최종 513,323장[10] [11] 의 음반 판매고를 올리며 하프 밀리언셀러를 기록했고, 코요태 역사상 최다 음반판매고를 찍었으며, 댄스그룹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Y'와 같은 발라드곡 들도 비중있게 수록하며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하였고 그 퀄리티가 높아서 코요태 정규 앨범들 중에 최고의 명반으로 꼽힌다.

이 앨범 부터 김종민이 그룹 정규멤버가 되었으며 탈퇴한 김구를 대신하여 그룹의 리더를 맡기 시작한건 급한대로 임시로 신지가 맡았다. 김구의 랩 파트를 대신할 객원 멤버로 베이비복스우연의 원곡가수인 Kola 출신이자 엄정화의 댄스팀 소속 김영완을 영입했다. 참 이래저래 엄정화랑 인연이 많다.


묻혀버린 비운의 후속곡 '애련'을 들어보자.그래도 4집에서 2번째로 인기가 높은 노래다. 4집 활동 당시 신지가 이 노래를 소개하면서, 월드컵 시즌 때문에 제대로 활동을 못했지만 듣기 좋은 노래라고 소개한바 있다.



여담으로, 1번 트랙에서 김종민이 랩을 한다...[12]

이 당시 후속곡 애련 활동당시 월드컵으로 애련보다 환희와 아리랑 목동을 더 많이 불렀다. 그리고 이때 비몽만 활동을 하고 5월말 김영완이 하차하면서 김종민이 위 두곡의 랩을 다 맡아서 활동했다.

월드컵이 끝나고 난 후에 Over의 리믹스버전으로 활동을 3달 정도하고 활동을 마무리했다. 이때 랩은 김구의 라임에 맞게 편집된 탓에 김종민 대신 신지가 겨우겨우 랩을 했고 후반부 김구의 랩은 잘린 채로 활동했으며, 이전의 애련은 1절의 랩을 삭제된 버전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4집 원곡버전은 결국 방송불가판정으로 노래를 틀지 못했다. 그리고 사속곡인 Loving You로 활동하려 했지만 여러가지 사정상 Over까지만 활동하며 앨범 활동을 마감했다.

[1] 2006년 SBS 개그 프로그램 웃찾사김형은, 심진화, 장경희 가 결성한 개그 트리오 미녀 삼총사가 코너를 넘어 가수활동을 시작했을 때 이 곡을 리메이크해 활동하다가 2006년 12월 교통사고로 김형은이 세상을 떠나고 나머지 두명의 멤버들이 심각한 부상을 겪게 되면서 해체의 길을 걷게 되었다.[2] 김치켓의 곡 리메이크[3] 정수라의 곡 리메이크[4] 정확히는 마약의 일종인 엑스터시 소지 및 복용 혐의다. 공교롭게도 이 날에 타이틀곡 '비몽'을 녹음했었는데, 이 때 김구가 잠시 화장실을 간다며 녹음실을 나간뒤로 소식이 없더니 다음날 뉴스를 보고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터지고서 신지는 김구와 함께한 원년멤버인데 같이 마약을 해보지 않았겠냐는 근거없는 악성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후 소변검사 결과 엑스터시 음성반응이 나와 구속영장이 기각됐으나 모발검사를 통해 마약복용 사실을 확인, 영장을 재청구해 구속한 바 서울지법 형사1단독 최종갑 판사는 13일 벌금 1,500만원 및 추징금 27만5,000원을 선고했다.[5] 김구의 엑스터시 마약 복용이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 였다.[6] Y의 녹음당시에 녹음실의 조명을 끄고 노래를 녹음했는데, 거의 울부짖듯이 녹음을 했다. 이때만하더라도 김구가 구속되기 전이며 이후 구속된 이후에 수정을 거친다. 자세히 보면 중간 간주에는 기타솔로부분은 랩이 있던 모양이다.[7] Y의 노래제목이 원래 Y Bobby였다가 바뀌었다고 적혀있었는데, 앨범 커버의 Y 옆에 Bobby는 작곡가 이름이다... Bobby Kim의 예명이다. 노래 제목은 처음부터 Y였다. 와이 바비가 웬말이냐. 헷갈리지 말자.[8] 무려 1집 순정의 최고 음역대와 같고, 실연과 반키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고음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찬휘의 Tears와도 반키밖에 차이가 안 날 정도다.[9] 더욱이 3집 PASSION의 경우에는 클라이막스 구간이 3옥타브 미-파를 넘나들었으며 후속곡으로 활동한 파란의 경우는 노래 말미에서 전조가 된다(반키-반음- 높아진다) 높은 음역대를 유지하는 것도 버거운데 거기다가 말미에서는 반음 올려 불러야 했으니 신지의 목이 버틸 수가 없었던 건 당연했다. 이는 파란이 코요태 곡들 중에서 난이도를 괴랄하다싶을정도로 높게 만드는 주 원인이 됬고, 히든 싱어 신지편에서도 E플랫 키에서 3키 낮춘 C 마이너 키로 노래를 불렀고, 현재는 목 상태가 많이 돌아와서 파란을 원키로 소화하지만, 여타 공연에서 보면 원키로 완창을 하지 않는다. 거의 PASSION을 앞에 부르고 뒤에 파란 1절을 부른다는 식으로..[10] 이전 편집자가 축소집계라고 했으나 근거 없는 소리다. 2002년 음반 순위에서 쿨, 브라운아이즈, 왁스, 보아에 이은 5위였으며, 이 해 대상을 휩쓴 장나라 2집이 45만장밖에 팔리지 않은 음반시장 불황기였다. 1위 쿨조차 65만장에 그쳤고, 아이돌가수 S.E.S.가 41만장, 핑클이 26만장, 신화가 36만장으로 이들보다 더 많이 팔았다. 3집 역시 뻥튀기를 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박지윤의 성인식이 41만장, 김현정의 멍이 33만장, 핑클의 Now가 44만장, 경쟁가수 샵이 15~20만장 수준, 같은 소속사의 엄정화 6집이 23만장의 음반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었다. 음반시장의 황금기였어도 100만장은 H.O.T., god, 조성모, 김건모 등등 극히 일부 가수만이 넘을 수 있는 벽이었고 50만장 이상도 연간 10~15장에 불과했다. 적어도 3집 이후로는 축소집계는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며, 실제 인기도 인기지만 음반판매량 또한 당시 기준으로도 엄청난 것이었다. 아마 한터차트를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한 듯 한데, 당시 한터차트는 쿨이 80만장, 보아가 70만장 나오던 곳으로 지금과는 반대로 과다 집계가 되던 곳이었다... 여담으로 5집도 연간 7위, 6집도 연간 4위를 기록했다.[11] 상반기 음반 판매량 1위에 올랐었고, 이때 2위는 BoA의 2집 No.1 이었다. 최종적으로 2002년 연간 음반판매량 5위를 기록.[12] 1번 트랙이 유일한 건 아닌 게 예전에 공개된 음원에는 없었지만, 후속곡 "애련"으로 활동할 때, 그리고 현재 공개되어 있는 음원에선 김구의 랩을 영어빼고 김종민이 한다. 이는 같은 앨범의 "아리랑 목동"도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