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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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1.1. 생애1.2. 사상
1.2.1. 이데아론1.2.2. 정치철학
1.2.2.1. 배경1.2.2.2. 사상
1.2.2.2.1. 이상국가의 모습
1.2.2.3. 기타1.2.2.4. 철인 정치
1.2.3. 기타
1.3. 소년애와 플라토닉 러브에 대한 오해1.4. 대화편
1.4.1. 진위 논란1.4.2. 한국어 번역본
1.5. 평가
2. 텔레비전

1.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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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플라톤 (Plato, Πλάτων)

출생

기원전 428/427년 또는 424/423년, 고대 그리스 아테네

사망

기원전 348/347년 (80세), 고대 그리스 아테네

직업

철학자

유럽의 철학적 전통을 가장 안전하게 일반화시킨 정의는, 그것이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1]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어쩌면 '철학'은 플라톤의 방법으로 추구하는 탐구 활동의 총합으로 정의될지도 모른다.


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2]


서양의 철학자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

그리스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제자[3]이다.

1.1. 생애[편집]

고대 그리스 아테네 출신이다. 출생연도는 정확하지 않으나, 기원전 430~429년으로 잡거나 기원전 428~427년으로 잡는다. 사망연도는 기원전 348~347년으로 추정된다.[4]

플라톤의 부모는 모두 아테네 명문 귀족 집안이다. 그의 가족들은 그의 저서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다. <국가>에서는 아버지의 가계와 형제 아데이만토스, 글라우콘을 언급한다. 어머니 가계는 <카르미데스>, 어머니가 재혼해서 낳은 안티폰은 <파르메데니스>에 대화의 전달자로 나온다. 그러나 플라톤 자기 자신은 전체 대화편에서 단 세 차례만 언급한다.[5] 플라톤의 개인사는 대화편보다는 주로 플라톤의 서한집에서 취한다. 플라톤의 서한집은 위작 논란이 많지만, 플라톤의 개인사에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 7서한은 거의 진품에 가깝다고 인정된다. 말하자면 아마 플라톤이 직접 쓰지는 않았더라도 최측근이 쓰지 않았겠냐는 정도.

플라톤은 '넓다'라는 뜻인데, 이마 또는 어깨가 넓어서 붙여진 별명이고 본명은 '아리스토클레스(Ἀριστοκλῆς)'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법정 연설문인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아리스토클레스'가 아닌 '플라톤'이라고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본명이 '아리스토클레스'라는 이야기는 낭설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법정에서 별명을 쓴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잖아 아니면 풀네임(가문명+이름)이 아리스토클레스 플라톤 이라던지 실제로 동시대에 '플라톤'이라는 이름이 그리 드문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어쨌든 장대한 키에 대단한 거한이었다고 전해지며 어머 짐승남♡ 레슬링 대회[6]에 출전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는 (知), (悳), (體)[7]를 현대만큼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았기에, 학자들 역시 운동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을 학자로서의 큰 영예로 여겨 출전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소크라테스 역시 레슬링에 도전한 적이 있다고. 또한 그가 살았던 시기를 추정해 볼 때 한 두 번 정도는 아테네인으로서 참전했을 것으로 여겨지며, 집이 잘 살았으므로 아마 기병이었을 것이다.

플라톤은 어려서부터 호메로스를 좋아했다고 <국가>에서 밝힌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8]에 의하면 그는 디오니시오스에게 문법 수업을 받았고, 그는 그림을 그리고 를 짓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노랫말과 비극을 지었다고 한다. 아테네 비극 경연대회에 참여하려고 했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만류하자 디오니소스 극장 앞에서 자신의 시를 불살랐다고 한다. 시가 엉망이었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결정적인 사제관계는 플라톤이 스무살, 소크라테스가 죽기 8년 전인 기원전 407년이라는 견해가 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사제관계는 몇 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만나기 전까지 플라톤은 원래 친가, 외가 모두 엄청난 명문가로, 그의 외삼촌인 카르미데스와 외가족 5촌 당숙인 크리티아스는 30인 정권의 핵심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플라톤도 젊은 시절에는 정치에 뛰어들고자 하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고, 친척들 덕분에 정치권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정치판에 환멸을 느끼게 되며,[9] 정권 싸움 과정에 카르미데스와 크리티아스가 살해당하자 이런 생각은 굳어진다.[10] 아테네에 민주정이 들어서자 다시 한 번 정치에 욕심을 내지만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어이없는 이유로 고발당했고, 재판에서 배심원들 투표에 의해 사형당하자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스승이 억울하게 죽어나가는 걸 보고 민주정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에 혹자는 플라톤이 철인정치를 주장하게 된 계기가 스승의 죽음으로 인한 흑화가 아닐까 하고 추정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가 처형된 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다른 제자들과 함께 메가라, 키레네의 다른 철학자와 수학자를 찾아갔다. 그리고 피타고라스 학파를 찾아갔고, 거기서 다시 이집트의 성직자를 찾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에 이어서 플라톤은 당시 시칠리아 섬의 중심 도시국가였던 시라쿠사이를 세 차례나 방문했다고 한다.[11] 첫 번째 방문은 플라톤이 마흔두 살이었을 때였다. 시라쿠사이에서 최고 권력자인 디오니시오스 1세가 플라톤을 환영했다. 그러나 플라톤은 디오니시오스를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12] 젊은 디온과의 만남을 통해 그를 제자로 생각했고, 그와 친밀하게 지냈다.

플라톤은 학당 '아카데미아'를 세웠다. 아카데미아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서 서기 529년에 폐쇄될 때까지 천 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아카데미아는 오늘날의 고등교육 기관인 대학교와 비슷하다. 아카데미아의 입구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 문을 들어서지 말라!' 쓰여 있었다고 한다. 수학을 못하면 대학 못가는 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플라톤은 여러 제자를 두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제자는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세운 학당 '아카데미아'에서 공부했다.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아카데미아의 정신'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플라톤이 죽고 나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자신의 학당, '리케이온'을 세운다.[13]

당시의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등으로 인해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플라톤은 이러한 사회상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철학을 택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의 철학은 현실 극복과 바람직한 사회 구현에 목적을 뒀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정치권에 진출해서 몰락해가는 아테네를 다시 일으키고자 힘썼다.

말년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리스, 아테네, 시칠리아의 정치적 상황은 불투명했다. 디온은 살해당했으며, 플라톤의 친구들도 대부분 죽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이 때 데미우르고스 등 또 하나의 세계관을 만든다. 플라톤은 81세의 나이에 사망했고, 아카데미아에 묻혔다.

1.2. 사상[편집]

플라톤의 대표적인 저작은 <향연>, <국가론>, <법률> 등이 유명하다.

플라톤의 사상은 흔히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소크라테스를 이어받았다고 평가받는다.

플라톤이 쓴 저서의 대부분은 주로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과 주고받는 대화 형식의 문집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일화에 대해서 알려진것들의 절대다수는 다 이 플라톤의 문집으로 알려졌기에, 살아있던 당시 많은 시민의 분노를 샀고 사형되었던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미화되어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14]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제자인 크세노폰이나 그의 사상에 비판적이었던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그린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묘사되어있는 이상적이고 비극적인 소크라테스와는 매우 다르다. 플라톤의 후기 저작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사상등이 플라톤에 의해서 왜곡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15]

1.2.1. 이데아론[편집]

이데아론은 플라톤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이데아는 한국어로는 흔히 형상으로 번역되곤 하는데, 이는 소크라테스와 파르메니데스에게 물려받은 것다.

소크라테스는 많은 소피스트들과 논쟁했다. 소피스트들이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고 하는 행위는 소크라테스가 볼 때 그리스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법정에 서서도 말빨만 세우면 똑같은 행위가 불법도 되고 합법도 되기 때문.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개념정의가 확실히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는 개념정의가 확실하게 되었다면 행동으로 옮기라는 지점에서 멈추고 더 나아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이런 개념정의를 좀 더 고급화하고 체계화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주로 건드리고 싶었던 개념 정의는 용기나 절제, 정의와 같은 것들이며 이런 것들을 위해 구두를 만드는 사람, 의자를 만드는 사람 등의 기술에 대한 비유를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플라톤이 본격 철학의 길로 뛰어들어서 이런 개념들을 논의하려고 하고, 똑똑한 애들 모아서 가르치고 토론하려고 하니 막상 어려움도 많고 말이 안 되는 부분도 많았다. 그의 이데아론은 이런 부분을 다듬은 것으로, 개념에 대한 개념정리라고 대강 생각할 수 있다.

파르메니데스와 관련된 부분에서 얘기하자면, 의견, 감각, 언어 등과 관련해서 얘기해 볼 수 있다. 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being은 오직 하나뿐이며, 유일한 진리이고 불변하고 운동하지 않는다. 이런 being은 머리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지, 감각적인 것이 아니다. 감각은 항상 우리를 속인다. 소피스트들도 이 교설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였다. 소피스트들은 이런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에 대해서, 아예 감각은 그냥 그 사람 개개인의 고유한 것이므로 사람이 느끼는, 생각하는 모든 것이 참에 속하며, 거짓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플라톤은, 감각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형상이란 것을 도입했다.

플라톤이 그의 대화편에서 예시로 드는 것 중에 하나는 크다는 것에 대한 개념이다. 크다는 형용사를 명사로 바꿔서 큼이라고 하고, 순수한 큼 그 자체라는 개념이 있다고 해 보자. 이 순수한 큼 그 자체가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이다. 플라톤은 대화편에서 이 순수한 큼 그 자체는 정확히 어떤 것인가 등등, 이 순수한 무언가 그 자체가 세상에 있다고 하면 생기는 여러 가지 의문점들을 자기 나름대로 풀어낸다.

이 형상에 대해 플라톤이 새로이 지적하는 것, 플라톤을 서구 철학의 거인으로 만들어준 바로 그것은 우리 인간의 인식 혹은 앎과 개념의 근저를 이루는 그 무엇이다. 바로 위에는 큼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데아를 예시로 들었는데 이데아에 대한 다른 측면을 조망하기에는 약간 적합하지 않아서 새로운 예시가 필요하다. 플라톤뿐만 아니라 하이데거 같은 현대철학자마저도 이데아에 대해 흔히 예시로 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나무이다. 우리 인간은 나무를 보면 나무라는 것을 안다.[16] 그게 소나무이건 전나무이건 참나무이건, 소나무나 전나무나 참나무의 개체가 멋있게 자랐있던, 병이 들어 시들었건, 죽어서 썩어 있는 상태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 여러 나무들을 나무로 만들어 주고, 우리가 그것으로 나무라고 인식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무의 이데아인 것이다. 기왕 나무위키식으로 말해 보자면 캡챠에서는 여러 그럴싸한 이미지를 늘어놓고 개 중에 산이나 강 등의 이미지가 있다면 복수여도 상관 없으니 선택하라고 질문한다. 2010년대 중반 기준으로 기계는 이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워 하지만 인간은 이와 같은 종류의 개념을 손쉽게 인식하는데, 이것이 형상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데아와 같은 것이 있어서 진실된 앎을 가리키고 있으면 소피스트들이 이랬다 저랬다 하기가 어려워지니 말이다.

이런 형상의 체득에 관해 플라톤은 일종의 생득적인 개념을 제시한다. 말이 생득적이지, 혼(魂)득적이라고 나무위키에서 대강 불러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나무라던가 바위라던가 하는 이런 수많은 이데아는 우리 인간들이 이미 혼의 수준에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혼의 개념은 윤회설과 이어진다. 우리 인간의 혼은 불멸하며 육체와 육체를 떠도는데 새로운 육체에 깃들 때 기억을 잃게 된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우리는 형상과 마주할 경우, 혹은 형상과 마주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미 알고 있던 형상을 상기해서 알게 된다. 마치 우리가 잊고 있었던 기억을 상기할 때 관련된 것과 마주했을 때 쉽게 상기하게 되는 것처럼 또 때때로는 전혀 상관없는 대목에서 상관없는 기억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를 한국어로 흔히 상기설이라 부른다.

플라톤은 이 상기설을 바탕으로 착한 이성과 철학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왜냐면 못된 욕심과 감정과 욕구의 삶을 살게 된다면 죽어서 사람이 되기 힘들고 동물이나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혼이 새 육체로 들어갈 때 깨끗한 이성과 철학의 삶이 아니라 찌들은 삶을 살면 혼이 오염되어 버리는데, 이성을 사용하지 않고 감정과 욕구에 휘둘리는 동물의 육체에 들어가기 적합하게 되어 버린 바람에 동물에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철학을 하지 않지만 절제하는 삶을 살 경우는, 꿀벌과 개미나 인간에 들어가기 쉬운 상태가 된다. 이성과 철학 없는 절제는 곧 무절제한 감정과 욕구가 초래할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감정과 욕구에 치우친 삶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플라톤의 설명이다. 반면 이성과 철학으로서 절제를 하더라도 선선하고 즐거운 삶을 살며 영혼을 정화한 사람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거나, 신이 사는 세계에 신은 아니지만 합류하게 된다.[17]

이데아는 하나의 개념이 될 수도 있고 대상의 본질, 인간의 인식 구조를 이루는 원자적 요소가 될 수도 있다. 해석에 따라 물자체, 실용적 정의 등으로 계승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윤리학에선 "정의(justice)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좀 고급화해서 정의의 이데아라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달리 질문해봐도 나름 그럴듯하다.[18]

플라톤은 이런 개념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이데아에 대한 정의로부터 선의 이데아 등등이 나오고 세상을 만드는 데미우르고스 등이 나오고 우주나 세계 같은 이야기도 나온다.[19]

읽다 보면 그런가 보다 싶은 수준으로 읽을 만하게 서술이 되어 있는데 이 형상이론이야말로 서구 철학의 핵심을 이루는 주제이며, 영미철학이건 대륙철학이건 간에 오늘날까지 지겹게 물고 늘어지는 중후한 테마라고 할 수 있다. 형상이론에 대해 신선하고 끗발 날리는 논문을 하나라도 써낼 수 있다면 당신은 당당히 철학과 교수로 취임할 수 있다.

이데아 문서도 참조.

1.2.2. 정치철학[편집]

본래 대화편 국가에 관한 단락이었으나 살이 붙으며 정치철학으로 얘기해야 할 정도까지 되었다.

1.2.2.1. 배경[편집]


플라톤의 대화편들 가운데 정치철학이 주요 테마인 대화편은 국가, 정치가, 법률 셋이다. 또한 서한들에서도 어느 정도 정치철학적 이슈가 언급되곤 한다. 개중에서 국가가 가장 유명하다.[20] 플라톤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정치철학뿐만이 아니라 예술비평, 영혼론 등 수많은 테마가 얽힌 방대한 저작이다. 또한 시기적으로는 국가, 정치가, 법률 가운데 국가가 가장 먼저 쓰여졌으며 대화편들 가운데에서 분량이 두 번째로 많은 대화편인데, 그런 것치고는 상당히 젊은 시기에 썼다고 할 수 있다.

비단 국가뿐만이 아니라, 플라톤의 정치철학은 그가 놓여 있는 시대상황과 동시에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인터넷에 나도는 플라톤의 정치철학이란 대개 정치에 관심이 없으면 저열한 자들에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플라톤의 경구와 더불어, 'ㅋ 근데 이 사람 민주주의자 아니었음 ㅋ' 따위의 발언이 부록처럼 붙어나오기 일쑤다. 즉 플라톤으로 하여금 국가를 쓰게 만든 당시 아테네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부족하며 단순히 위대한 철학자였지만 민주주의자는 아니었다는 식이다.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혐오하게 된 것은, 아마도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더불어 소크라테스의 사형선고 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들 생각되고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전의 아테네는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페르시아를 무찔렀을 뿐 아니라, 영걸 페리클레스의 통솔하에 아테네는 일개 도시국가가 아니라 거의 제국을 방불케 하는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아테네 주변의 영토들을 작게나마 계속 흡수하고 있었으며, 해운국가답게 바다를 장악해 무역에서 위세를 떨치며 수많은 도시국가들을 아테네 산하에 편입시키며 세금을 받아먹었고, 각 도시국가들 사이의 견제로 인해 쉽게 축조하는 것이 불가능한 긴 성벽도 기습적으로 축조해 수비적으로 엄청난 우세를 차지하게 되어 위세가 등등해졌다.[21]

아테네는 패권국가를 꿈꿨으며, 이 목표를 달성하고 싶은 욕망, 더불어 현재의 위치를 상실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합쳐지면서 인해 패악질이 심해졌다. 스파르타와 테베 등의 강한 도시국가는 이를 좌시하다간 아테네가 장래에 정말로 제국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전쟁이 벌어졌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페리클레스의 전몰자 추도연설은 서양에서 가장 유명한 연설 중 하나다. 페리클레스는 이 연설에서 아테네인들의 용기와 자율성, 임기응변과 자발적인 애국심과 협동심을 찬양했다. 그러나 페리클레스가 병사하고 난 이후 아테네는 더 많이 뜯어내려다 좋은 협상시기를 놓치거나, 반대파를 누르려고 선동하던 사람들이 제 논리에 제가 빠져서 불리한 원정을 강요받거나,[22] 어쨌든 인물은 인물인 알키비아데스도 정치 싸움으로 그 능력을 소진시키고 적국에 좋은 일만 시키는 등 썩 좋은 모습은 못됐다. 거기에 멜로스의 대화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인의 패권주의와 야욕은 결론적으로 멜로스 인들의 경고처럼 반 그리스 세력을 결집시키는 결과를 낳았거니와 플라톤 입장에서 볼 때 올바르지 못한데다가 경멸스럽기까지 할 내용이었다.

아테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시 그리스의 민주정 폴리스들은 많은 수가 엉망이었다. 아테네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중우정치, 선동, 야합, 분열과 반목으로 인해 정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외세 결탁, 전쟁 사주, 이적 행위, 부정부패, 쓴소리 하는 엘리트가 미워서 잘난 체한다고 도편추방하기, 누명 씌우면서 공격하기, 그러다가 망하면 책임전가, 능력이 아니라 연설과 선동으로 표를 얻어내서 요직 차지하기 등의 일이 폴리스들에게 일어났다.

이와 같은 민주정치의 혼란은 소피스트들의 정치철학에서 그 원인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 멜로스의 대화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피시스와 노모스의 대립관계를 둘러싼 설전이다.[23] 공격을 당하는 약소국 멜로스인들은 퓌시스, 신이 만든 불변의 정의 및 약자를 함부로 괴롭히면 받게될 응보나 재액 등등을 언급했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의 경우는 노모스, 그러니까 '흥 신이 만든, 불변하고 만인에게 공유되는 정의라니 웃기고 있네. 온세상 풍속이나 법률이 다 천차만별인 거 보면 모르냐? 그런 건 다 약한 놈들이 무서워서 만든 헛소리고 어차피 세상 일은 힘의 논리에 따라 흘러가게 되어 있어 정의가 어쩌고 착한 거 어쩌고 하려다가 먹을 거 못 먹으면 못 먹은 놈 손해지 지금 우리가 세니까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라는 식의 얘기를 했다.[24] 이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발발 전부터 그리스 세계에 널리 퍼진 소피스트들의 유명한 논쟁이다. 이를 통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퓌시스를 공격하고 노모스를 숭앙하는 풍조 및 무리들이 아테네 민주정에 널리 분포되어 있었음을, 소피스트들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결국 아테네의 폭망으로 끝나자, 아테네인들은 지독한 멘붕에 빠졌다. 많은 아테네인들이 이 당시,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그냥 빚 좋은 개살구고 사실 스파르타 식의 엄격한 규율과 훈련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역시 킹왕짱인 거 아니냐?' 하는 식의 생각에 깊이 경도되거나 영향을 받았고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가운데에는 크세노폰과 플라톤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이런 배경 아래 플라톤은 소피스트들과 당시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민주정 폴리스들을 비판하려는 목적 또한 품고 있었다.

1.2.2.2. 사상[편집]

국가는 주제 면에서 대단히 복잡한 면을 가지고 있으며, 플라톤의 모든 대화편이 그렇지만 대화편 형식인 까닭에 소크라테스가 하는 말이 어디까지나 플라톤의 본심인지 아니면 역설이나 풍자를 담고 있는 문학적 형식인지도 불분명한, 후세인들이 풀이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을 가지고 있다. 사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정치체제를 몇 개로 나누고 다시 그 정치체제들의 등급을 나누고 하는 건 그렇게까지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차라리 그건 현실정치에 더 초점을 맞춘 훗날의 대화편인 법률이나 정치가에서 더 중요하게 논의되는 바다. 국가가 이렇게 당대 인간생활의 수많은 부분을 다루고 있지만, 어쨌든 국가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정의(justice)라고 할 수 있다. 대화편 국가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노신사 케팔로스와 대화를 하는 와중에 이야기의 소재가 정의로 튄 것으로 불이 붙는다. 케팔로스가 종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뜨고 난 이후, 불붙은 이야기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 케팔로스의 아들 폴레마르코스, 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를 통해 더욱 격화된다.

케팔로스와 그의 아들 폴레마르코스는 비교적 소박한 정의관, 정직하고 공평하고 잘 대해주는 것이 바로 정의라는 주장을 펼친다. 허나 소크라테스는 자주 그러하듯이 잘 알고 나서 행하는 게 아니면 정직하고 공평하게 행한다고 해도 불의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반박한다. 폴레마르코스는 셍각을 가다듬고는 정의는 친구에게는 유익함을 가져다 주고 적에게는 불리함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 주장을 바꿨다. 왜냐면 소크라테스의 지적을 받고 나서 보니 정직함, 공평함과 잘 대해주는 것은 서로 상충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인물들이 비교적 온건하게 정의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트라시마코스가 개소리 집어치우라며 토론에 난입한다. 그는 특히 소크라테스가 나쁜 일 하지 마세요... ㅎㅎ 이유가 어찌 됐건 남한테 해를 끼치는 건 정의가 아닙니다요하는 견해와 더불어 자기가 먼저 말하면서 주장을 만들기보다 남이 말한 것을 이러쿵저러쿵 논하는 태도에 빡이 쳤던 것 같다.[25] 트라시마코스는 마치 나무위키의 오타쿠 관련 문서에서 수정전쟁을 일으키는 이용자처럼 벌컥 화를 내고 기세를 돋우면서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왜냐면 보통 법률이나 규칙에 복종하는 것을 정의라고 부른다. 그런데 도시국가의 법률을 살펴보면 그 기원은 어떤 신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법률을 만드는 사람(입법자)에게서 비롯된다. 그런데 그 법률을 만드는 사람이란 힘이 있는 강한 사람들이며, 그 강한 사람들이 법률을 만들 때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의로움이란 개념은 허위이며, 정의의 실체는 법률에 복종하는 것인데 법률의 실체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주장을 편다.[26] 도시국가는 나쁜 일을 한 사람들이 생겨나면 그들이 나쁜 일을 했다고 처벌하지만 실은 강자의 이익을 위해 만든 법률을 어겼을 뿐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반박함에 있어서, '사람들이 법률을 따르는데 그게 지배자의 이익이 아니고 시민의 이익이 되는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지배자가 실수하는 바람에 그런 경우가 생긴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정의가 항상 강자의 이익인가?' 하면서 묻자 트라시마코스는 '견습공은 실수를 하지만 장인은 실수하지 않는다. 그런 것처럼 진정한 지배자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실수하는 지배자는 미숙한 놈이다.'라고 대답한다. 이 논의는 소크라테스가 '그럼 진정한 지배자는 지배의 기술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인데, 다른 모든 기술들이 그렇듯이 기술이란 것은 의술(醫術)처럼 타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냐, 그러니 강자만의 이익이란 것은 말이 이상하지 않냐' 하고 논의를 펼치자 트라시마코스가 '양과 양치기와 주인을 생각해 봐라. 양치기가 아무리 양을 잘 돌봐줘도 결국 주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냐'하고 받아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트라시마코스는 어느 정도 기가 죽은 데다가, 가만 생각해 보니 양치기의 비유 역시 단점이 많아서[27] 정신승리를 펼친 다음 퇴갤한다.

트라시마코스의 퇴갤 이후 논의는 소크라테스의 제자들과 폴레마르코스, 소크라테스에 의해 진행되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주제가 너무나도 흥미로웠던 나머지 그 주제에서 끝장을 보길 원하며, 자신들이 소크라테스에 반론하거나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을 답습하는 것이 본의는 아니지만 그와 같은 반박의 논리를 펼침으로 인해 소크라테스의 주장이 더욱 분명해지길 원하고, 더욱 선명해진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통해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한다. 극중에서 트라시마코스가 소크라테스를 상대하기 버거워해 퇴장하긴 했지만 그의 주장은 결코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당시 그리스 세계에 널리 퍼져 많은 의문과 토론을 불러일으킨 논설이었다.

소크라테스 제자들이 제기한 의문들은 대강 이렇다.

올바르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왜 정의는 어렵고 불의는 쉬운가? 왜 정의를 행한 사람이 손해를 보고 불의를 행한 사람이 이득을 보는가? 트라시마코스의 이야기처럼 사람들이 정의를 행하는 것은 그것이 좋고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힘을 가진 사람이 소위 정의라는 것을 행하도록 강제하고, 어기면 처벌 등의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억지로 따르는 것인가?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제약이 없고 자유롭게 욕망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게 한다면 이 세상에 불의가 판칠 것인가? 본심이 아니라 억지로 정의를 따르는 것은 좋은가 나쁜가? 사람들은 그저 수치스러운 평판을 피하기 위해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천성적으로 정의로운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가? 선생님, 부디 저희에게 아무리 괴롭고 힘들더라도 정의란 것은 단지 그것이 정의란 이유만으로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이와 같은 질문을 함께 토의하기 위해, 그 어려운 문제들을 보다 더 쉽게 살펴보기 위해 개인이 아니라 사회나 공동체라는 큰 그림에서 정의가 어떤 것일지 알아보자고 제안한다. 올바른 행동과 법률의 연관성을 밝히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논의는 개인 차원의 정의, 법률, 이익, 욕망 등이 얽힌 문제에서 국가, 사회구조와 같은 차원으로 확대된다.

트라시마코스의 퇴갤은 1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총 10권으로 이루어진 국가에서 소크라테스의 제자들과 케팔로스의 아들이 정의에 대해 가르침을 구하는 장면은 2권에 속한다. 이 나머지 9권의 분량 동안 정의를 탐구하는 소크라테스는 교육, 사회, 국가, 예술, 정치, 영혼, 윤리 등 많은 분야를 건드리게 된다. 국가는 그 과정에서 3가지의 주요한 입장을 등장시키는데, 첫째 입장은 노신사 케팔로스가 제시하는 헬라스 세계 종래의 소박한 도덕관이다. 그리고 피시스와 노모스를 구분하는 소피스트를 대표하여 트라시마코스가 있고, 마지막으로 플라톤 본인의 주장을 대변하는 소크라테스가 있다. 플라톤은 앞선 두 주장을 반박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간다.

개인의 행복과 정의는 도시의 행복과 정의와 큰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왜냐면 법과 정의, 행복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법이 정의롭지 못할 경우 개인은 법을 지켜도 정의롭지 않고, 그렇다고 법을 어기면 불이익을 받아 행복하기 어려운 상태에 빠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기에 도시의 법이 정의로워야만 도시에 속한 개인 역시 정의로운 법을 문제 없이 준수하면서 괜찮은 생활을 꾸릴 수 있다. 그런 까닭으로 인해 정의롭고 행복한 도시가 건설되어야 한다.

정의롭고 행복한 도시를 그리기 위해 플라톤의 상당히 역사적으로 중요한 얘기를 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본래 인간은 혼자서 살기는 어렵고 사회에 의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여러 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28] 또, 인간은 각기 타고난 적성이나 재능이 다르기 때문에 이 재능이나 적성에 따라 직업이 알맞게 분배되어야 한다. 이런 여러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좋은 기술을 바탕으로 많은 재화를 창조해내서, 여러 가지를 필요로 하는 인간의 특성을 충족할 수 있도록 서로서로가 다른 사람들의 수요를 채워준다.[29] 즉 인간이 공동으로 모여사는 이유는 인간이 서로에게 부족하지만 필요한 부분을 협력해서 채워줘야 하기 때문이며, 인간에게 각자 타고난 재능이 있으며 그 재능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정의로운 도시를 만들기 위한 단계로 1단계로 건강한 도시 즉 말하자면 돼지들의 도시, 2단계로 정화된 도시 즉 말하자면 군인들의 도시, 마지막 3단계로 아름다운 도시 즉 말하자면 철학자가 통치하는 도시의 3단계가 제시된다. 건강한 도시는 각자가 각자에게 필요한 적성에 맞춰 생활하는 곳이다. 그곳에는 알맞은 인원이 알맞게 모여서 알맞은 일을 하며 정부가 없이도 잘 돌아간다.[30] 그러나 이 도시는 말이 되지 않는데, 사람들이 언제까지고 순진무구하게 사익을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덕(arte), 즉 스스로를 단련하고 자제해서 얻는 기술적 능력이 필요하다.

아무튼 이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도시는 사람들이 사익을 추구하고, 돈과 부를 추구하며, 그렇기에 자신의 재능과 상관없이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을 몇 개씩이나 겸직하면서 무너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빈부격차가 나타나며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고, 자연히 정부의 필요성이 나타나며, 영토확장의 욕구 또한 나타나게 된다. 영토확장의 욕구와 함께 전투의 기술에만 집중하는 전사계급이 나타난다. 돈 버는 기술이 최고인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이렇게 전투의 기술 아래 귀속되는 것처럼, 전투의 기술도 최상위의 기술 아래 포섭되게 되는데 바로 철학이다. 어쨌거나 전사가 아무리 용맹스럽게 잘 싸운다 해도 올바른 적을 상대로 올바른 타이밍에 용맹하게 싸우는 게 중요하지, 잘못된 적을 상대로 쓰면 소용이 없으니까.

이런 전투의 기술을 가진 자들이 그들의 능력을 적절하게 발휘할 수 있도록, 군인들의 강한 성정을 부드럽게 만들고 절제하게 만들 수 있도록 음악과 시의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이 때 제공되는 예술은 적절한 것만이 필요할 뿐, 도시가 추구하는 정의에 걸맞지 않고 사람들의 심성을 어지럽히는 나쁜 시와 음악은 제거되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 호메로스 등과 같은 시인들은 그들이 묘사하는 신들이 전혀 정의롭지 않고 이상한 놈팽이들로 묘사하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제거되어야 한다. 도시는 건전한 시와 음악만을 필요로 한다.

체육과 음악 교육을 받은 군인 계급만으로는 이상적인 도시에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더 우월한 지도자들을 위해서는 철학 교육까지 제공되어야 한다. 그 결과 도시는 절제[31]의 미덕을 갖춘 도시가 될 수 있다. 트라시마코스와 같은 부류가 주장하는 바에서 알 수 있듯이 도시는 무력과 욕망을 갖추고 있으며, 도시국가의 이익을 위해 무력과 욕망을 함부로 남용하는 행위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며, 어쩌면 현실정치에서는 그처럼 이익을 위해 함부로 폭력을 휘두르는 일은 결코 피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아테네인들이 멜로스를 멋대로 침공했던 것처럼. 강한 힘을 가진 도시는 무력을 남용할 수 있으며 실제로 마음대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현실을 우리는 부정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것처럼, 그와 같은 폭력 위에 우리의 현실이 기반해 있으며 우리가 그런 사실을 무시하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플라톤은 그와는 상관없이 이득에 눈이 멀은 도시가 폭력을 남용하는 것은 불의한 일이라고 단호히 선언한다. 현실적 사항을 도외시하고 오직 이상과 정의만을 생각해 볼 때 폭력의 남용은 정의가 아님이 자명하다. 이상적으로 생각해 볼 때, 만약 도시 전체가 절제의 미덕 아래 자신이 타고난 재능에만 집중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면 정의로운 개인과 정의로운 도시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사유재산이라던가 가족제도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게 플라톤의 주장이다. 물론 말도 안 되게 비현실적인 주장이지만, 플라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절대적인 공유제야말로 정의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절제로 가득찬 도시, 사유재산의 폐지와 절대적인 공유제를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철학자뿐이다. 전사계급에게 시행되는 통제된 예술교육만으로는 사적인 욕망을 억누르고 절대적인 공유제를 실현하기는 역부족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흐름 아래에서, 도시의 세 계급이 서로 다른 일을 해도 정의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균형이 잘 맞는, 플라톤 식으로 말하자면 절제라는 기치 아래에서 잘 짜여진 공동체 도시에서는 세 계급이 각자의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 정의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은 이제까지 도시와 개인을 쭉 유비관계로 다뤄 왔는데, 그에 따라서 도시가 세 가지 계급이 있는 것처럼 유비관계를 통해 개인의 영혼에도 세 가지 부분이 있다고 플라톤은 주장한다. 욕망, 혈기, 이성이 그것이다. 가장 뛰어난 이성에 의해 개인의 영혼이 금전욕에 빠지지도 않고 무절제한 분노에 빠지지도 않는다면, 그는 정의로울 것이다.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또 플라톤이 다른 대화편에서도 종종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개인이 정의로워 보이는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이성을 통해 통제된 상태가 아니라면 완전히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왜냐면 그는 정말로 알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우연적 요소에 의해 행하는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32]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기원전 5, 600년경에 이미 가족제도의 폐지까지[33] 주장하는 극렬 공산주의 색채를 띄고 있지만, 5권에서는 현대 시점에서 플라톤의 평가를 한층 더 격상시키고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구절이 등장하게 된다. 플라톤은 가족제도를 부숴버린 다음, 그러면 아기와 여자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질문에 대해 남녀 평등을 주장한다. 도시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람들을 놀릴 이유가 전혀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품고 있는 재능이나 소질은 퓌시스적으로 볼 때 차이가 없다. 기술을 익히고 그것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남자와 여자는 차이가 없으며, 남자와 여자에 구분이나 재능에 차등을 두는 것은 노모스, 인습적인 것이며 자연 즉 퓌시스에 반하는 것으로, 이상국가에서 그러한 노모스는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이와 같은 가상실험에 파묻히던 소크라테스 일행은, 그건 그런 거 같은데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정의입니까?하는 글라우콘의 질문에 부딪치게 된다. 여기서 나오게 되는 것이 지긋지긋한 이데아론이다. 정치철학 바로 위의 항목이 이데아론이긴 한데 여기서 연결되는 내용은 쓰여져 있지 않은데.... 이 문서에서 대강 개념에 대한 개념정리라고 설명하기도 했고, 참나무건 전나무건 소나무건 죽은 나무건 병 걸린 나무건 딱 보면 나무를 나무라고 알 수 있게 하는 나무다운 그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플라톤은 이 애매한 개념을 수학적으로 표현하기 좋아했는데 아무래도 이데아는 수학으로 표현가기가 대단히 편리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완벽한 원이나 삼각형은 없지만 우리는 삼각형이나 원의 정의를 알 수가 있고 그를 통해 삼각형이나 원의 이데아에 도달할 수 있다. 직각사각형의 정의 = 이데아라고 친다면 사각형 중에서 직각사각형의 이데아, 즉 정의(定義)에 들어맞는 건 직각사각형일 터이다.

국가에서 나온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데아를 이렇게 대충 설명했다고 치자. 그런데 이 이데아의 문제가 뭐냐면 이데아의 이데아이다. 약간 국가를 벗어나서 생각해 볼 때 소크라테스는 시장바닥 돌아다니면서 썰을 풀 때 개념정의에 대해 얘기만 해도 충분할 정도로 얘기했던 모양이지만, 플라톤의 경우는 본인이 생각을 깊게 하다 보니 아님 학교를 차리고 강의를 하다 보니 애들이 곤란한 질문을 했다던가 한 모양이다. 어쨌든 이데아가 있다고 한다면, 빅 빅 프라블럼이 생겨버리는데 이데아의 이데아가 생겨버린다는 것이다. 귀납적 방법을 즐겨 사용했던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이,뭐 혹은 소크라테스의 다른 제자들이 용기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많은 사례들을 모아서 필요하고 충분한 요소들만 쏙쏙 모아 버리면 그것이 진정한 용기, 용기의 이데아인 것이다! 이데아야말로 진짜다! 다른 것들은 다 허깨비, 가상, 2차적인 찌끄레기이고 오직 이데아만이 진정한 참이자 세상의 진리이자 불변하는 실체인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고 할 때,

아니 플라톤 선생님, 그럼 이데아라는 애매한 개념을 우리가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데아들의 이데아라는 것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 이데아들의 이데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또 이데아들의 이데아들의 이데아라는 것이 필요할 거고요, 또 그 이데아들의 이데아들의 이데아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데아들의 이데아들의 이데아들의 이데아..... 소위 철학적 전문용어로 무한퇴행이라 불리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또, 그렇다면 그 이데아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인식할 수 있습니까? 이데아와 우리 마음이나 지성 이런 것과의 관계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죠? 하는 아주 골아프고 쓰레기 같은 형이상학이라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뭐 이런 형이상학적인 문제는 사실 이 문서의 이데아론 항목에서도 얘기했듯이 현대까지도 해결이 된 건지 안 된건지 전문 철학자들, 철학 역사에 남았으며 현대에도 천재로 이름 높은 난다긴다 하는 영미, 대륙의 철학자들끼리도 절찬리에 치고박고 있는 노답문제라 꺼무위키는 꺼무위키다운 주제를 파악하고 대강 넘어가 버리고...이데아 단락에서는 어려워서 안 쓰고 넘어간 건데 여기서 쓸 수밖에 없게 되네... 국가를 얘기하고 있는 맥락에서 중요한 것은, 플라톤은 결국 정의를 얘기함에 있어서 정의의 이데아라는 소재를 들고 나왔다. 앞서서 나온 퓌시스와 노모스 문제, 결국 정의롭게 잘 살기 위해서 개인과 사회와 국가와 법의 관계에 대한 통찰,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정의로운 사회와 국가와 법 속에서 개인이 살아갈 수 있도록 철학자가 다스리는 국가 및 철학에 준거된 국가의 이상적 형태 및 나라에서 꾸준히 나라를 다스릴 철학자를 양성할 수 있는 형태 등등을 만드는 것에는 정의(正義, justice)의 이데아와 그것을 알고 있는 철학자가 필요하다. 또, 이 정의의 이데아는 궁극적으로 좋음(the good)의 이데아와 연결되어 있다, 는 것이 플라톤의 결론이다.

모든 이데아는 이 좋음의 이데아에서 비롯된다. 이를 통해 플라톤은 이데아 무한퇴행의 문제에 결론을 낸다. 이데아 무한퇴행을 막는 이 이데아가 왜 좋음이냐면, 플라톤은 그에 대해 아름다움이나 호의와 같은 얘기를 한다. 약간 종교적이 되기도 하는데, 뭐 예를 들어서 말해 보자면 이 세상을 이루는 수학적 원리나 그에 따라 운행되는 천체들, 음악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과 같은 것을 볼 때 이 세상은 수학적이고 아름다운 원리 아래 만들어졌으며, 그것은 바로 절대자의 선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플라톤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서 고대인들의 시각에서 볼 때 거의 신적인 조화에 가까운 세상의 여러 초월적인 현상이나 신비를 볼 때 신적인 존재나 힘을 부정하기는 어렵고, 그런 존재가 있다면 왜 호의가 아니라 악의를 내뿜겠으며, 수학이나 그에 기준을 두는 음악적인 아름다움이 바로 그 증거가 된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이데아 무한퇴행의 문제를 해결하는 최초의, 근원적인 이데아는 좋음의 이데아이다. 왜 이성 좋은 거잖아 좋은 거.

뭐 글라우콘 패거리들은 소크라테스의 이런 설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데, 아무래도 그들은 소크라테스 밑에서 수련이나 공부를 하고 있었으며 논의를 하는 모양새를 볼 때 머리가 좋은 패거리들에 속하니 이런 이데아론을 원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34] 이들이 이렇게 이데아에 의한 정의의 설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면서, 현상 세계를 초월해 있는 그 어딘가에 실존해 있는 이데아만이 정의이므로 실재 세계에서 완전히 정의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와 더불어 사회, 체제, 국가 등과 정의의 결합은 철학에 더욱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데아를 아는 자는 철학자일 수밖에 없으니까.[35] 플라톤은 철학이 정치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일반 시민들을[36] 설득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트라시마코스와 같은 소피스트들의 수사학 기술이 필요하다. 철학은 옳기 때문에 수사학을 동원하면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 그러나 플라톤은 크세노폰이랑은 달라서 초지일관 철학이 제일 행복한 것이기 때문에 그걸 아는 철학자는 오직 철학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플라톤의 그 입장을 따를 때 철학자들은 어느 정도 공동체를 위해서 강제 동원되어야 한다. 철학자들은 도시를 위해 그런 귀찮은 짓을 하기 싫어할 텐데, 보통 도시민들은 마치 동굴에 갇힌 원시인 패거리들이 불빛에 비친 그림자들이나 보고 우끼우끼 우끼기하면서 그것만이 진실이자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고, 진짜 사물을 알고 있는 철학자들을 자신들의 안온함을 깨려고 헛소리하는 불한당같은 패거리라고 여기는 까닭에 철학자들이 그들을 설득하려 들면 들수록 극도로 혐오하게 된다고 플라톤은 주장한다. 이렇기 때문에 플라톤은 가족제도를 깨부숴서 멍청하고 되먹잖은 부모라는 인간들에게 아이들의 교육을 맡기지 말고 10살 정도 되면 무조건 국가에서 길러서 올바른 시민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37]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 제시한 정의에 관한 어려운 물음들은 여전히 대단히 애매한 상태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약간이나마 명확해진 상태이긴 하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억지로, 혹은 자연스럽게 정의로운 것을 따라야 하는가에 관해서 알아보려면 불의에 관해서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치체제를 5개로 구분하면서 하나씩 알아보게 된다. 좋은 순서순으로, 최선자정체(aristokratia),[38] 명예지상정체(timokratia),[39] 과두정체(oligarchia), 민주정체(dēmokratia), 참주정체(tyrannis)로 구분된다.[40] 최선자정체는 지성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명예지상정체는 명예, 과두정체는 돈, 민주정체는 모든 충동, 그리고 마지막 참주정체는 사악한 탐욕만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처럼 플라톤은 국가에서 국가(정체)와 시민과 정의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과연 그것이 정치철학적으로 타당한 얘기인지는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마키아벨리가 훗날 군주론에서 제시한 것처럼 군주의 도덕성과 정치환경은 사실상 분리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 당시에는 학문도 그렇고 인간들의 생활상 자체가 공동생활과 분리되기 어려웠다. 주요한 소재 중 하나로 선택되었던 예술, 종교, 정치 모두 도시국가의 시민적인 공동생활 속에 한 부분으로 존재했던 것이며, 현대처럼 개인의 예술이나 종교 등의 개념은 상정하기 어려웠다. 이와 더불어 소크라테스가 추구했으며 플라톤이 그 유산을 이어받은, 시민의 도덕성 함양이라는 테마 역시 버리기 어려웠을 것이며 사실 버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 국가의 정치적 올바름이야말로 곧 한 국가의 도덕적 올바름이면서 동시에 한 개인의 정치적 올바름이자 도덕적 올바름이 될 수 있었다.[41]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이를 제시한 다음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 자신 또한 이것이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함을 알고있다.' 플라톤은 이상적인 하나의 본으로써 이를 제시한 것이다. 타락하고 부패한 정치인들에게 마음속에 이성 속에 이런 본을 지니고 정치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42] 대화편 국가에서 논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상사회이며, 대화편 법률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이하게도 법률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주역이 아니다.

대화편 정치가는 테아이테토스 - 소피스트 - 정치가 순으로 지어진 저작이다. 테아이테토스에서는 수학자가 나오고, 소피스트에서는 당연히 소피스트가 나오고, 정치가에서는 당연하겠지만 정치가가 주요 주제이다. 또한 작중 내용도 등장인물이나 시기가 이어지기도 하는 등 어느 정도 연관을 갖고 있다. 즉 플라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앎에 관련된 것을 논의해보고 정치와 다시 한 번 연결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국가에서 철인왕은 여러 가지의 지식을 필요로 하지만, 일단 철학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철학 즉 진리를 모르고 그저 동굴 속에서 우끼끼끼 우끼끼 우효우효 우끼이~ 하는 무리들을 위해 '이 바보들아! 저건 그림자잖아! 저건 버드나무의 잔가지가 바람에 일렁거리는 그림자고, 저건 여우가 도약하는 그림자 아냐!'하고 분별해서 가르칠 수 있는 그림자에 관한 지식, 즉 현실 정치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에서는 이상국가를 그리는 일에 집중했기 때문에 실제 현실 정치적 능력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응 그건 철학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하면서 넘어간 바 있다.

엘레아 사람은 정치가에서 그럼 과연 실제 정치가가 무엇인지에 관해 주자을 펼친다. 아마 당연히 엘레아 학파일 이 엘레아 사람은, 여러 가지 근본 원리나 기술로부터 정치의 기술까지 천천히 논의를 옮긴다. 그 결과 무릇 정치가니 왕이니 하는 것의 본질은 기술이나 앎으로서,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이 어떠한 지위이건 간에 상관없다. 왜냐면 그것은 그냥 기술이니까. 또한, 도시와 가정에는 차이가 없으며 정치가와 가장 사이에도 차이는 없다.

이와 같은 점에서 미루어 볼 때 정치의 기술은, 실제 정치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인 힘, 무력 등과는 무관계하다. 힘이나 무력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정치를 하게 만들 수 있는 조건일지는 몰라도 실제 정치의 기술과는 무관계하다. 정치는 기술이되, 일종의 지식이나 앎에 속하는 기술로서, 그런 종류에 속하는 기술이 그러하듯이 명령을 내리는 기술이다. 다른 모든 명령을 내리는 기술처럼 정치 역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기술인데, 정치란 곧 인간을 출생시키고, 양육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43] 그런데 의술이나 성생활에 관련된 기술도 인간을 보살피는 기술이다. 정치술이 이들 기술과 차별화되는 점은, 인간과 동물의 특별한 차이에서 비롯된다.

플라톤은 여기서 또 시시껄렁하게 보이는 신화를 끌어들인다. 옛날에는 크로노스 시대였는데, 그 때는 신들이 각기 동물들을 이끌고 이래라 저래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제우스 시대는 신이 그냥 인간들을 포함한 동물더러 알아서 하라고 놔둔 시대라는 것이다. 옛날 크로노스 시대는 절대적인 공유제가 시행되던 시대였으나[44] 현재 제우스 시대는 절대적인 공유제도 불가능하고 불의와 무질서가 판치는 시대이므로 인간들끼리 알아서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즉, 국가에서 얘기했던 거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절대적 공유제 그런 거 신이나 할 수 있는 거야 알아들었냐. 이렇게 선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정치는 이렇게 정치가나 왕이 신일 경우와 신이 아닐 경우로 구분된다. 그리고 그 정치가나 왕의 지배가 합법적인가, 올바른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기준은 과연 피지배자들이 동의했는가, 동의하지 않았는가로 구본된다. 엘레아인은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정치가의 기술에 대해서 검토한다. 그 결과 현실에서 진정한 정치가들의 기술과 자웅을 겨루고 있는 기술은 바로 소피스트 모리배들의 기술로 과거에도 현재에도 절찬 활용되고 있으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이러한 지배는 세 가지고 나뉘는데 일인지배, 소수지배, 다수지배로 나뉜다. 이 세 가지 지배는 앞서 얘기했듯 피지배자들의 동의했는가, 아닌가 두 가지로 인해 6가지로 나뉘어진다.[45] 즉 왕정과 참주정, 귀족정과 금권정, 민주정으로 나뉜다. 그러나 플라톤 사상하의 민주정에서 자유와 법의 구분에 있어서 주요 쟁점은 소수의 유산계층이 다수의 빈민계급에 의한 지배에 대해 동의하느냐 마느냐인데, 플라톤은 유산계층이 동의하나 마나 별 차이 없다고 여긴다.

이 6가지 정체는 올바른 통치의 기술인 철학과 무관계하다. 그리고 피지배자들의 동의 여부에 대해서도 큰 신빙성이나 공증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큰둥하다. 플라톤은 이를 자신이 주구장창 사용하는 의술의 예시를 들면서 정당화한다. 의사가 진정한 의술의 기술을 활용하는 한 환자가 동의하건 말건 환자의 신체를 지지고 볶건 간에 의사는 옳은 일을 하게 되어 있다.[46] 마찬가지로 지배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자는 어쨌건 공동체에 최선의 선택을 통해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므로 피지배자들이 동의를 해주건 말건, 불법을 자행하건 말건, 사람들을 조지건 말건 외국인을 어떻게 쓰건 상관이 없다.

소크라테스의 키보드 워리어 영혼은 법 없는 지배를 하건 말건 상관없다는 엘레아인의 주장에 불타오른다. 그러나 엘레아인은 침착하게 소크라테스를 상대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현대 한국에서 그런 것처럼 현대사회에서조차 법 조항의 미비로 인해 뻔히 보이는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거나 불의에 속 끓는 일이 제법 많다. 그런데 이런 고대 희랍 사회에서 돌때기에 글자 좀 새겨넣고 '에헴! 이것이야말로 우리 도시국가가 앞으로 준수해야 할 신성한 법률이라니까!'하고 뻐기는 것이 과연 이치에 닿는 일일까? 각 사건이나 상황은 항상 건 바이 건이 될 수밖에 없으며 시대와 상황은 항상 변화하는데 돌에 법률을 새겨놓고 뻐기는 일이란 과연? 현행 법륟들이 사회나 국가를 운영함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성문이건 불문이건 간에 현행 법률이란 물건들을 살펴 보면 모두가 다 조잡하기 그지없는데다가, 신성을 지닌 사람을 마치 짐승 무데기인 것마냥 취급한다.

이런 것들은 다 부차적인 이유이고, 법이란 것은 진정한 정치의 기술을 가진 자마저 제약하기 때문에 나쁘다. 실제로 진정한 정치의 기술을 가진 자가 있다면 그는 항상 유연하고 정확하게 각 상황과 사건에 맞춰 일을 처리할 것이다. 그러나 법률이 있다면, 동굴 속에서 우끼끼끽~ 우끼이후~ 하는 무리들이 법률에 비춰 진정한 지배에 계속 토를 달면서 방해할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동굴 속의 무지한 무리들은 눈깔이 없기에 현를 제대로 알아볼 수도 없고, 고맙게도 현자가 그들을 다스려준다 할지라도 무언가를 계속 의심할 것이다.

국가에서도 얘기되는 바지만 무지몽매한 무리들은 현행법을 떠받들면서 현자에게도 현행법의 절대성을 인정하길 바라고, 현자가 그를 무시하면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고스승이라고 빨아주는 거 보소... 재판정에 보내서 요단강 저 너머로 현자를 보내버릴 것이다. 현행법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도 백치 아다다들은 어떤 변화나 개정, 토론을 원하지 않으므로, 현자는 스스로 잘 살기를 바라지 굳이 대가리 터진 원숭이들을 다스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법의 지배는 인정되어야 하는데 왜냐면 법도 현자도 지배하지 않을 경우 욕심 많고 사악한 야심가가 국가를 다스리며 민중들을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자도 현행법이 아무리 병신 같을지라도 존경을 표해야 한다. 아니면 모가지가 뽑힐 테니까. 법의 지배는 아무리 쓰레기같은 법이라도 일단은 이성적 고찰이 조금이나마 섞여 있을 것이기에 무법천지보다는 낫다. 또한 실제로 법이 있다 하더라도, 참주 같은 놈들이 그 법을 지 맘대로 바꾸면 그것은 법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근거해서 각 정체들의 순위가 매겨진다. 당연히 법이 없는 정부보다 법을 따르는 정부가 나으며, 개중에서도 법을 따르는 민주정이 짱이다. 물론 제대로 된 통치의 기술을 가진 정치가나 왕은 법을 맘대로 바꿔도 상관없지만. 엘레아인은 현실적으로 자기자신은 현자가 만든 법이 존재한다면 똥멍청이들이 나라를 지배해도 참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엘레아인은 통치의 특별한 기술을 하나 더 소개한다. 작중에 뜨개질 기술을 예시로 들기도 했고, 인간을 출생시키고 보육시키는 기능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다. 통치자는 균형 잡힌 뜨개질을 하는 것처럼, 각 집안과 집안을 이어줘야 한다. 어떤 한 기운이 지나친 집은 반대편 기운이 지나친 집과 맺어줘서 도시 전체의 균형을 잡고 각 시민 개인의 기질을 균형잡히게 만들어줘야 한다. 이와 같은 마담뚜의 기술이 바로 왕의 특성이다. 즉 왕은 인간 무리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물론 철학자는 이런 똥대가리 대중들이랑은 상관 없고.

1.2.2.2.1. 이상국가의 모습[편집]

플라톤이 생각하던 이상국가는 기본적으로 세가지 계급으로 구성된다.

  • 통치자: '수호자 중의 수호자'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국가의 '왕'에 대응되는 존재이지만 1명은 아니다.[47] 구체적으로 몇명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상국가에서 가장 극소수를 차지하는 계층이다.

  • 수호자: 일반적인 국가의 귀족, 혹은 전사 계급에 해당한다. 당시 폴리스들의 가장 일반적인 군대 모습은 '시민군'이였는데, 플라톤은 소수의 전문적인 군인들이 군대를 구성해야 한다고 봤다.

  • 생산자: 일반적인 국가의 평민 계급에 해당한다.


이 나라의 국민들은 인구가 너무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도록 성생활이 통제되는데, 제비뽑기를 통하여 누가 누구랑 성교를 할 지 결정된다. 다만 제비뽑기는 통치자가 교묘하게 조작하여, 실제로는 (아마 플라톤의 사상에서 가장 비판 받는 부분이겠지만) 우수한 남성과 우수한 여성이, 열등한 남성과 열등한 여성이 성교하도록 유도된다. 그리고 성교의 횟수 역시도 '우수집단'이 되도록 많이, '열등집단'이 되도록 적게 하도록 유도되며, 열등집단의 아이나 장애아는 유기되어서 죽도록 방치된다. 한편 모친에게는 '정상적으로' 탁아소에 맡겨진 것이라고 속인다. 플라톤은 이러한 우생학적 개량으로 국가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 살아남은 아이들은 탁아소에서 공동으로 양육되며, 기본적으로 '수호자 양성'을 전제로 한 교육을 받는다. 이들의 영혼은 시가(詩歌)로 단련되고 육체는 체육으로 단련되는데, 혹시나 타락하지 않도록 시가는 엄선한다(나쁘게 말하자면 검열한다). 그리고 양성의 마지막 과정에서는 일부러 쾌락에 노출시키는 시험을 치른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적성이 맞지 않는자는 떨어져나가고, 다시 말해 생산자 계급이 되고 마침내 엄선된 수호자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물론 양성된 자들 중 가장 뛰어난 자들은 통치자가 된다.

플라톤의 이러한 이상국가는 철저한 능력제 사회로, 구조상 누가 누구의 아들, 딸인지 구분할 수가 없어서[48] 혈통적인 신분세습은 불가능해진다. 또한 수호자, 통치자는 사유재산이 없는 등 철저하게 사욕을 배제시켜야 하는 '국가의 봉사자'가 될 것을 요구받는다. 따라서 이들의 삶은 현대인의 기준에서 보자면 굉장히 금욕적이고 재미없는 삶일 것이다. 다만 플라톤은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국가의 중대사를 맡길 수 있다고 봤던 것이다.

또한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이 가지는 특징 중 하나는, 여성 역시도 남성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다. 플라톤은 국가의 절반이나 차지하는 여성을 집안에 묵혀두는건 인력낭비라고 봤는데,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수컷 경비견이든 암컷 경비견이든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고 비유한다.

결국 위에서도 강조했지만, 플라톤이 보는 이상국가란 "가장 적합한 사람이 그 일을 한다"라고 요약될 수 있다. 농사를 잘 짓는 사람이 농사를 짓고, 군대에 적합한 사람이 군인이 되며, 정치에 적합한 사람이 정치를 한다. 이는 당시 폴리스들의 인간관과는 반대인데, 특히 아테네인들은 모든 인간이 각각 비슷한 재능을 신들로부터 받았다고 봤다. 때문에 아테네에서 정치라는건 '전문적' 프로 정치인이 아니라 '전인적'인 아마추어[49] 정치인들이 했던 것이며, 능력의 차이가 부정되므로 '추첨을 통해' 국가 중대사를 맡긴 것이며, 조국을 지키는 것은 전문적 직업군인들이 아니라 전인적 시민군들이 수행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이란 순수한 인간들이 아니라 반신(半神)들이라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1.2.2.3. 기타[편집]

2010년대에 들어 많이 쓰이는 인용구로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플라톤의 《국가》 1권 347c에서, 소크라테스는 "돈이나 명예는 훌륭한 사람들이 지배자가 되기를 승낙하지 않게 할 것일세. ... 따라서 그들이 지배하길 승낙해야 한다면, 그들에게 처벌이라는 것으로 강제하지 않으면 안되네—이것이 아마 강제당함이 없이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게 된 까닭인 듯하네—그러나 가장 큰 벌은, 만약 자기 자신을 지배할 생각이 없다면, 자기만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일세."라고 한다. 이 문장은 민주국가에서 투표 독려의 격언으로 쓰인다. 물론 분명히 하자면 플라톤은 민주정을 싫어했다. 플라톤의 이상적인 국가는 철저히 검증된 소수의 엘리트들, 곧 '수호자(guardian)'를 상정하고 이들만이 정치 권력을 잡아 다른 모든 (열등한) 이들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즉 민주정이라기보다는 철저한 능력제에 가깝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발언이 현대 민주국가에서 쓰일 수 있는 것은, 아테네 민주정과 현대 민주정이 지닌 차이점 때문이다. 아테네 민주정은 모든 사람이 통치에 적합한 능력을 완전히 똑같이 가지고 태어났다는 대전제를 가지고 있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능력의 차이라는 개념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는 추첨 민주정 체제있다. 즉 정치에 특화된 전문적인 프로 정치인이 아닌, 여러분야에 두루두루 걸쳐있는 전인적인 아마추어[50] 시민들이 이끌어야 한다는게 아테네 민주정의 대전제였다. 이는 현대 민주정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당장 대한민국만 하더라도 통치에 특화된 전문적 '프로 정치인'을 가려내기 위해 선거를 치른다. 이는 아테네와 분명히 다른 상황이다.[51]

플라톤 철학에서 언급되는 민주정체는 오늘날의 대의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아테네의 직접민주정체이다. 상술된 바 있지만 플라톤의 전성기 시절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인해 겪은 고통, 그리고 패배가 끼친 후유증 등으로 인해 개판이었다. 이 와중에 소크라테스도 시민의 투표로 죽는 등, 플라톤 입장에서 민주정은 지배자들(참정권을 지닌 시민)의 이해관계만을 따지는 주제에 중우 정치로 흘러가는 정치 체제였다.[52]

민주주의와 귀족정을 구분짓는 것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가 아니면 일반대중에게 있는가하는 차이이다. 민주주의자란 대중이 어리석고 비열하며 천박하다 할지라도 권력을 나누어 주어야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현대의 '민주주의' 개념과 고대 플라톤의 직접 민주정체와 과두, 참주정체는 의미가 다르다. 플라톤은 '혈통에 의해서 계승되는 귀족정'은 부정했으며, 모든 인민은 평등하게 교육받아야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플라톤 이론에서의 '철인'은 귀족이라기보다는 능력에 의해서 그 자리를 쟁취한 인간에 가깝다. 플라톤의 주장은 "통치에 적합한 소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능력주의(meritocracy)적이고 수호자주의(guardianship)적이다. 플라톤의 정치적 이상은 현대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아니라 당 내부 경쟁으로 권력의 향방이 결정되는 중국의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이 전체주의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의견은 있다. 칼 포퍼(『열린 사회와 그 적들』)나 로버트 달(『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 등의 관점에 따르면, 플라톤은 열린 사회의 적, 수호자주의자이다.[53]

로버트 달에 따르면, 현대 민주주의의 근본 전제는 "모든 인간은 스스로를 통치하는 능력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며,[54] 여기에서 "모든 이들이 스스로에 대한 통치에 있어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뻗어나온다. 로버트 달은 현대 민주주의가 전문가의 필요성 등에서 능력제적 요소를 받아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전문가의 영역은 어디까지나 민주주의의 핵심 조건 가운데 하나인 "최종적 주권자인 평등한 시민들이 중요한 사안에 관해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는 것"을 돕는 데 한정되며, 최종적 결정권은 평등한 시민들이 갖는 것이라고 논한다. 즉, 대의제와 선거를 플라톤적 개량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어렵다. 현대 민주주의가 대리인 선출이라는 대의제적 요소를 갖게 된 것은 근대국가의 큰 규모를 아테네식의 직접민주주의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모든 시민들이 단 30초만 직접 발언한다고 해도 1억 5천만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공간적인 제약을 결코 극복할 수가 없으므로 분업의 차원에서 유일한 대안인 대의제가 등장한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플라톤적인 "통치에 적합한 소수"를 결코 상정하지 않는다. (정신질환이나 연령에 따른 선거권 및 피선거권 제한을 예외로 하면) 누구도 평등한 성인 시민 가운데 일부는 통치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점만 보아도 그러하다. 이는 의원내각제-비례대표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사람들은 특정 인물이 "통치에 적합한 소수"라고 믿기 때문에 표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정당의 정책을 선호하기 때문에 그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것이다.

다만 고전적 민주정이 현대의 민주정으로 발전한 것이 플라톤적 개량의 의도인가를 논외로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현대 민주정에서도 플라톤적 호소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여지는 분명히 있다. 위에서 인용하듯, 로버트 달 역시도 현대 민주정이 능력제적 요소를 어느정도는 받아들였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 민주정은 '자기통치능력'이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지언정, '통치능력'에서의 차이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정말로 '통치능력'의 차이를 부정한다면, 대의민주정의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제비뽑기를 통한 대표 선출이다. 인구수의 문제로 순수한 직접민주주의가 힘들었던건 아테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똑같으며, 그렇기에 아테네는 '제비뽑기'라는 방법으로 관료를 선발했다. 왜냐하면 통치능력의 차이를 극단적으로 부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테네의 방법을 21세기 민주국가들이 과연 따라하고 있을까? 아니다. 비록 대의민주정이 직접민주정의 현실적 한계(시간, 비용 등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행해진 것일지언정, 선거라는 제도는 명백히 '더 알맞은' 사람을 가려내는 제도이다. 심지어 총선에서의 비례대표에서도 이는 드러난다. 비례대표제 항목에서 보듯이, 부적합 인물의 출마 가능성이 있는 것 자체는 비례대표제가 가진 문제점으로 여전히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사람들은 비례대표에서조차 적합한 인물이 좋은 순번을 받았는지, 혹시나 부적합한 인물이 비례대표로 당선되지를 않았는지를 '너무나 당연하게' 검토한다. 이는 '통치에 적합한 누군가'라는 관념이 민주사회에서도 호소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현대 민주정이든 아테네 민주정이든 "평범한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자"라는 것에는 동의를 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는 플라톤의 비판이 현대 민주정도 공격하는 것이기는 하다. 평범한 사람의 목소리를 막으려 한 플라톤의 생각은 21세기 관점으로도 가혹하다. 그러나 21세기의 평범한 사람들은 비록 목소리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닐지언정, 다시 말해서 선거가 참정권의 유일한 발현은 절대로 아닐지언정, '적합한' 대표를 선별해야 할 상황은 인생에서 끊임없이 닥쳐온다. 바로 그 상황에서,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라는 플라톤적 호소는 절대로 무의미하지 않다.[55]

이런 플라톤의 정치철학에 대해 고대에서부터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동시대에 이미 플라톤은 내 사상을 표절했다던가, 혹은 내가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사상을 표절했다던가 하는 얘기도 많았으며, 아리스토파네스나 에우리피데스의 희곡 등에서도 어느 정도 플라톤 사상의 혁신적인 부분과 비슷한 내용이 있다고 보는 학자들도 많다.

1.2.2.4. 철인 정치[편집]

플라톤은 '철인(哲人) 정치'를 주창한 것으로 유명한데, '국가론'에 잘 나와 있다. 문제는 이 '철인'은 단순히 '아이언맨' '로봇''지혜로운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초월하는 이데아를 인지할 수 있는 자'를 뜻한다.'이데아'를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은 해당 영역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느냐의 문제로 이어진다. 물론 '지식의 소유'에 대한 개념도 우리의 일반적인 이해와 상이한 지점들이 많다.(여기에 대해서는 좀 더 상세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생략하도록 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다수의 저작에서(국가와 법률 등) '의사와 환자의 비유'를 종종 사용하는데, 이러한 비유를 통해 플라톤은 병에 걸려 있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병과 치료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의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力說)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 역시 '정치'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똑똑한 사람이 지배자가 되는 게 철인 정치가 아니다.

플라톤의 '철학자왕'에 대한 생각은 플라톤의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조금 달라지긴 한다. '국가(혹은 정체)'로 대표되는 플라톤의 중기 사상에서는 철인왕에 의한 일방향적인 통치 외의 다른 방식은 거의 비중이 없지만, 후기 대화편인 "정치가"에서 "법률"로 넘어가면 피통치자에 대한 설득과 소통이나 법률 등을 제법 고찰을 하는 편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사실 일관적으로 "철학자왕(즉 지식을 소유하고 있으며 영혼이 조화된 상태의 사람)"에 의한 통치를 기본바탕으로 깔고 있다. 다만 플라톤의 비유를 그대로 따르자면 환자를 치료하는데 환자의 설득은 본래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설득의 과정이 없었다간 의사가 맞아 죽거나 환자가 찾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는 정도가 될 수 있지 않나 싶다.

그가 주장한 철인 정치를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시대를 앞서간 면모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철인 지배자는 신분이나 인맥, 지연에 따라서 결정되지 않는다. 플라톤에 따르면 그들은 다음의 절차에 따라서 선발된다.

1. 모든 사람은 평등한 교육의 권리를 가진다.
2. 공정한 시험으로 뛰어난 인재를 선발한다. 그렇지 않은 자들은 도태시킨다. 이때가 20세 무렵이다.
3. 그 뛰어난 인재는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거친다.
4. 수학, 과학, 음악 등의 집중교육을 받는다. 다시금 10년간 교육을 받는다. 이 교육이 끝날 무렵이 30세.
5. 다시 공정한 방법으로 인재를 거른다.
6. 5년간 철학 교육을 받는다.
7. 5년간의 교육이 마무리 된 후 15년 동안 현실세상에서 실무적인 경험을 쌓는다.
8. 그 중 살아남고[56]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에게 국가의 중대사를 맡긴다.(이 때가 대략 50세 즈음) 이 때는 따로 시험이 필요가 없는데 15년의 실무경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주변 동료들과 대중들에게 자신을 노출시키고 평가를 받아 자신의 우수성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이는 철저하게 능력주의적이면서도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보장한다는 면에서 민주주의적이기도 하다. 또한 놀라울 정도로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치지도자들이 성장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20세에 대학 입시, 석박사 등을 통한 추가적인 전무교육, 그리고 젊어서 실무경험을 쌓은 뒤 장년이 되어서 국가 요직을 맡게되는 과정 등.[57]

플라톤의 철학자 왕(Philosopher king)의 개념은 동양에서는 공자유교 사상에서 성인 지배자(Sage Emperor / ruler of Saint)라는 개념과 흔히 유사성이 지적받는다. 유럽 문명이 중국 문명과 본격적으로 접촉을 시작했을 때, 유럽의 사상가들은 중국의 통치 체계에서 이러한 점에 주목하기도 했다.

호메이니가 플라톤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있다. 즉,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아야툴라라는 직책이 이러한 '철학자 왕'에 해당한다는 것이다.기사

1.2.3. 기타[편집]

신화적 설화로 표현되는 들을 비판했는데, 이것은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일어나던 보편적 현상이므로 플라톤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 지식인들은 신화는 신화로 여기고, 그보다는 원리적으로 신들을 생각했다. 당연히 당시 사회에서는 현대와 같은 무신론자는 나타날 수 없었다.

늙어서 그런지, 말년에는 천체가 바로 신이며 올림포스는 이들과 신을 중개한다고 주장하고 이 모든 것을 데미우르고스가 창조했다고 주장했는데,[58] 설명력은 많이 떨어진다. 그렇지만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세계관 설명이란 걸 들어보면 평균적인 수준이다. 데미우르고스란 것도 말하자면 신적인 힘이고, 플라톤은 세상의 여러 놀라운 신적인 조화를 예로 들어 신적인 힘이 없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따라서 신적인 힘이란 것이 있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그 신적인 힘이란 것은 다름아닌 이성적인 힘이라는 주장을 펼치는데 그게 데미우르고스이다. 재언하자면 이성론자인 플라톤이 세계관을 완결내기 위해 등장한 인격 혹은 존재가 데미우르고스이지, 현대인이 창조자, 종교라는 말을 들었을 대 언뜻 생각나는 인격신 같은 개념은 아닌 것이다.[59]

arete라는 그리스어가 흔히 덕으로 번역되는 것도 철학과에서 플라톤 설명에 있어서 시간을 빼먹는 요소 중 하나이다. 한국말로 덕이라 하면 인덕이나 덕이 깊다 등 사람의 뛰어난 성품과 관련된 뉘앙스가 강하다. 그러나 arete는 덕이라는 요소도 있지만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요소가 강하다. 즉 페이커는 lol의 arete가 있고 임요환은 스타크래프트의 arete가 있다고 고대 그리스 철학책에 써 있다면 한국어로 번역되었을 때 페이커는 lol의 덕이 있고 임요환은 스타크래프트의 덕이 있다는 식으로 번역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德이라는 단어도 고대 중국에서는 기능적인 요소가 강해서 페이커가 lol의 덕이 있다는 식으로 쓰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본 문서는 정치철학 부분만 이상하게 비대한데, 그건 아마도 플라톤의 정치철학 부분이 지나치게 단락적으로 쓰여져서 플라톤에 대한 희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좋은 구석이 있었던 데다가,아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어쨌든 전보단 아마 낫다 플라톤의 정치적 면모가 2010년대 중반 들어서 어느 정도 인터넷에 꽤 많이 인용되었기 때문이다.

1.3. 소년애와 플라토닉 러브에 대한 오해[편집]

플라톤 역시 당대의 트렌드를 따라 여자보다는 남성과의 사랑을 좋아했다.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운동경기, 전투, 정치, 철학, 수사술과 같은 높은 신분의 활동들은 자유인 신분의 남성들에게 국한되어 있었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성인 남성[60]이 18세 이하의 소년을 애인으로 삼는 문화가 자연스러웠다. 당시에는 잘생긴 소년은 강한 성적 매력을 풍기는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아무리 잘생겼더라도 성인 남성은 성적 매력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61]

성인 남성들은 성적 욕망에 이끌려 소년들을 따라다녔다. 성적 욕망의 대상인 소년들은 그 욕망을 공유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그래야만 하는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에 비해 소년 애인은 성인 남성과의 관계에서 물질적 이득, 사회적 성공, 애호, 존경등의 다양한 연애 동기를 가질 수 있었지만, 성적 욕망이나 쾌락은 앞서 말했듯이 동기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물론 그 중에는 성인 남성이 소년의 성적인 욕망을 자극시킬 가능성도 있다. 통상 능동적인 역할의 성인 남성은erastēs(사랑하는 자)로, 수동적인 역할인 소년은 eromenos(사랑받는 자) 또는 padika(소년 애인)으로 지칭하는 것이 당시의 관행이라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소년애 관계는 대등하지 않았다.

이러한 소년애 관계는 시민권을 따기 전인 소년에 대한 사회적, 교육적인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연애와 교육적인 기능, 그리고 사회적 지위가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동성애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소년애는 그리스 사회에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62][63]

오늘날 육체적 사랑과 대비되는 정신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플라토닉 러브'[64]는 플라톤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를 처음 쓴 사람은 이탈리아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Wikipedia:"마르실리오 피치노"(1433-1499)다. 그는 플라톤 전집을 라틴어로 처음 번역하면서 유럽 전역에 플라톤의 사상을 소개했다.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플라톤의 에로스 개념과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단테의 개념 등을 결합하면서 '플라토닉 러브'라는 개념을 재해석하여 만들어낸다. 그에 따르면 '플라토닉 러브'는 플라톤이 묘사한 사랑이고, 그것은 즉 신의 사랑이었다. '플라토닉 러브'는 마르실리오 피치노의 편지와 그가 주석을 단 <향연>과 에서 처음 쓰였다. 피치노의 '플라토닉 러브' 개념은 15,16세기 전반 유럽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문학작품에서 '플라토닉 러브'는 피치노의 철학적인 배경과 분리되고 희석되었다. 또한 플라토닉 러브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시민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이루어졌던 소년애와 맞물리면서 그 의미가 변질되기 시작한다. '플라토닉 러브'는 남자 어른과 소년과의 동성애, '에로스'는 이성애로 오해되었다.

영어 '플라토닉 러브'라는 말이 처음 쓰이게 된 것은 영국의 작가 윌리엄 데버넌트(William Davenant)의 책, 희극 <The Platonick Lovers>(1635)이다. 윌리엄은 작품에서 <향연> 내용을 토대로 덕과 진리 사이에 있는 선(善)에 대한 사랑을 플라토닉 러브라고 주장했다. 이후 플라토닉 러브는 영국 왕실과 상류사회의 중요한 패션힙스터으로 자리 잡는다. 사랑을 육체적인 대상물로 표현하는 것은 저급한 계층에서나 하는 이야기며,사랑은 품위가 있어야 하며 고매해야 진정한 사랑이라는 분위기가 퍼진 것이다.

이렇듯 오늘날 육체적 사랑과 대비되어 쓰이는 '플라토닉 러브'라는 말은 원래의 에로스[65] 어원에서 많이 멀어진 채로 쓰인다고 할 수 있다.

1.4. 대화편[편집]

플라톤은 주로 저서를 희곡처럼 대화형식으로 남겼는데, 당시는 지금처럼 철학 논문을 쓰는 법이 정립된 시기도 아니었으며,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영향도 큰지라, 플라톤의 모든 저술은 등장인물이 나와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논의가 전개되는 형식을 따르고 있다.

제목은 주로 중심이 되는 등장인물의 이름인 경우가 많고 가끔 주제를 담고 있는 것도 있다. 간혹 'XX에 대하여'라는 식으로 부제가 붙어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후세 사람들이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기록에 플라톤의 저서로 언급되었던 것 중에 현대까지 전해지지 않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즉, 플라톤의 저서 전부가 현대까지 온전히 전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몇몇 저서들은 플라톤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위서로 판명되기도 했고, 아직도 위서인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는 대화편들도 있다.

현대에는 각 대화편들의 문체와 내용을 분석해 저술 시기를 초, 중, 후기 세 가지로 나눈다. 어떤 대화편들이 어떤 시기에 속하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약간의 이견은 있지만 대체로 합의가 이루어져 있고, 이 항목에서의 구분도 그에 따랐다.

1. 초기 대화편

- 소크라테스의 변론 : 아테네 시민들에게 신성모독으로 고발당한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스스로를 변호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 크리톤 : 사회계약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짧은 대화편이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동갑내기 친구였다.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이 대화편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말로 추정된다. 이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테네의 법에 동의했기 때문에 법에 따른 처벌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하지만, 그 법이 악법이라는 말은 전혀 하지 않는다.
- 라케스 : '용기란 무엇인가'에 관한 대화편이다.
- 뤼시스 : '우정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대화편이다. 플라톤의 초기 저작이라서 후기의 저작과는 상당히 상이한 분위기의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 탓에 플라톤의 작품들 중 가장 난해하다고 평하는 학자들도 있다.
- 카르미데스 : 카르미데스는 플라톤의 외삼촌이다.
- 에우티프론
- 소 히피아스
- 대 히피아스 : 현대에는 위서로 간주된다.
- 프로타고라스 :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주장이 나오는 대화편이다. 플라톤은 이를 도덕 상대주의로 여겨 비판한다.
- 고르기아스 : 법률, 국가 다음으로 분량이 많은 대화편이다. 지금은 소실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 어떤 농부가 이 대화편을 읽고 감명을 받아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플라톤에게 배움을 얻고자 아테네에 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은 그 죄가 자기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흔히 '지덕합일'이라고 표현되는 사상이 드러나있는 대화편이다.
- 이온 : 화학에 대한 대화편이다


2. 중기 대화편 : 그 유명한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등장하면서 플라톤의 사상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기의 저작들이다.

- 메논 : 초기와 중기 사이의 과도기적 대화편으로 간주된다. 플라톤 인식론의 중심을 이루는 '상기설'이 등장한다.
- 파이돈 : 소크라테스의 사형 집행 날을 배경으로 한다.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인상적이며, 소크라테스가 세계 4대 성인 중 하나로 추앙받는 데에 기여한 대화편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적으로는 소크라테스의 영향에서 벗어난 플라톤의 독자적인 철학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대화편이다. 또한 저승의 존재를 증명할 때,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방법을 차용한 것이 보인다.
- 국가 : 가장 유명한 대화편. '법률' 다음으로 분량이 많으며, 10권으로 되어 있다. 다른 대화편들의 10배 분량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래 제목은 'politeia'로, '국가'보다는 '정치 체제'가 맞는 번역이다. 이 대화편에서 묘사되는 이상 국가의 모습은 현대의 관점으로는 전체주의 국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 한편으로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가 나오기도 하고, 남녀평등사상을 보여주기도 한다.[66]
- 향연 : '국가'와 함께 가장 널리 알려진 대화편에 속한다. 향연에 참석한 사람들이 술을 퍼마시면서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 알키비아데스 I : 현대 학계에서 위서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는 대화편이다. 대체로 진서로 간주하는 편이지만 그런 논쟁을 떠나서 다른 어떤 대화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대화편으로 뽑힌다. '인간 본성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 알키비아데스 II : 대체로 위서로 간주된다.
- 파이드로스 : 전반부는 '사랑'을, 후반부는 '문자 비판'을 주제로 한다. '문자 비판'의 내용은 꽤 흥미로운데, 사람들이 지식을 익히기보다는 문자로 적어놓기 때문에 머리를 쓸 일이 적어져 기억력이 후퇴한다고 주장한다. 왠지 인터넷에 대한 비판으로도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이 야기가 신문물에 비판적인 구세대의 꼰대질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의외로 맞는 말일 수도 있는게, 엄청난 길이를 자랑하는 고대의 '구전' 문학들은 전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왔으며, 당시의 시인들에 의해 몇날 며칠에 걸쳐 사람들 앞에서 공연되기도 했던 것들이다. 일리아드, 오뒷세이아같은 것들을 전부 외우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다.[67] 따라서 글의 사용으로 옛날만큼 기억력을 사용해야 할 일이 없어지면서 기억력 후퇴를 우려하는 것이 비합리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 에우튀데모스 : 소피스트들의 궤변이 나오는데, 대화가 후반부에 가면 너는 개와 돼지의 형제고 아버지는 수퇘지고 하는 식으로 엉망진창이 된다. 소피스트들을 풍자 혹은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대화편이다.
- 메네크세노스
- 크라튈로스 : 크라튈로스는 소크라테스를 만나기 전까지 플라톤이 따르던 사람으로 보인다. 동명이인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으나 뭐.. 대체로 중기 대화편으로 간주되지만 후기 대화편으로 볼 수 있는 내용도 담겨 있어서 플라톤이 노년에 일부 내용을 수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언어철학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들을 담고 있는 대화편이다. 중기 중에서도 초기 대화편으로 추정되는 주요한 이유로 형상 이론이 다른 대화편에 비해 상당히 미비한 점, 책의 절반이 넘도록 소크라테스가 신들이나 여러 단어의 그리스어 어원을 추측하는 점 등 20세기 이전에는 그다지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으나 현재는 언어에 대한 플라톤의 통찰이 빛나는 대화편으로 여겨진다.


3. 후기 대화편

- 파르메니데스 : 플라톤이 본인의 이데아론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는 대화편이다.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대화편으로 간주된다.
- 테아이테토스 : 인식론에 큰 영향을 끼친 대화편이며, 특히 여기서 제시되는 '앎' 개념은 현대 인식론에서도 약간의 수정만 거쳐서 인정되고 있다. 후기 대화편이지만 초기 대화편의 형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 소피스테스 : 줄거리 상으로 테아이테토스의 바로 다음날이 배경이다. 후반부는 존재론에 관한 내용인데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현대 존재론의 거장인 하이데거가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인용하는 바로 그 대화편이다.
- 정치가 : 줄거리 상으로 소피스테스의 다음날이 배경이다. 소피스테스에서 등장한 손님과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와 동명이인인 소크라테스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 티마이오스 : 우주론을 다루는 대화편. 일종의 목적론적 우주관을 담고 있는데 고대에서 중세까지 서양인들의 세계관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며, 라파엘로 산치오의 유명한 그림 아테네 학당에서 플라톤이 들고 있는 책이 바로 이것이다. 한편 버트런드 러셀은 그의 저작 '서양철학사'에서 이 티마이오스를 별 씨잘데기 없는 책이라고 씹어댄 바 있다(...)
- 크리티아스 : 극 상으로는 티마이오스와 이어진다. 아틀란티스에 대해 언급하는 최초의 문헌인데, 플라톤은 이상 사회의 모습을 아틀란티스라는 가상의 대륙을 통해 보여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대화편은 완성되지 못했고, 내용이 중간에 뜬금없이 뚝 끊겨버린다. 노년의 플라톤이 '법률'편의 저술에 집중하기 위해서 이 대화편의 저술을 포기했다고 보기도 한다.
- 필레보스 : '즐거움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 법률 : 플라톤 최후의 저서이며 대화편들 중 분량이 가장 많다.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대화편이며, 대신 플라톤 자신이라고 볼 수 있는 익명의 아테네인이 등장한다. 플라톤은 이 대화편을 퇴고하지 못하고 죽었고 플라톤 사후에 한 제자가 출판했다. 즉, 다듬지 않은 초고 상태로 출간된 것이다.[68] 그래서인지 문장이 깔끔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또한, 플라톤의 작품들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감동이나 잔재미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려워서 플라톤이 힘을 잃고 골골대던 시절의 증거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다. 이런저런 이유들 때문에 한때는 위서로 간주되기도 하였지만, 현대 학계에서는 통상적으로 플라톤의 진본으로 여긴다. 다만 국가와는 내용상 다른 점들이 더러 있는데다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해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학자들 간에 논란이 진행중이다. 여담으로 이전의 대화편들에서 동성애 묘사가 상당히 많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동성애를 금지해야 한다는 대목도 나온다. 그런데 이건 동성애 혐오라기보다는 임신 목적이 아닌 성행위를 반대한 것에 가깝다. 동성애뿐만 아나라 부부간의 성행위라도 임신 목적이 아닌 성행위는 금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 여자들로 구성된 성행위 감시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금 보면 영 황당한 주장인데, 이 문서의 정치철학 단락을 쭉 읽어보면 이 양반이 어떤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대강이나마 알 수 있다.이성 최고!




참고로 현대까지 전해지는 플라톤의 저술 중에는 대화편뿐만 아니라 열세 통의 편지들도 있다. 이 편지들은 플라톤의 생애에 대한 중요한 자료이고, 일부 편지들에는 플라톤이 자신의 철학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내용을 담겨 있기도 하다.

1.4.1. 진위 논란[편집]

플라톤의 대화편하면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진위 논란이다. 이는 플라톤의 대화편뿐만 아니라 고대 서양에서 저작된 작품들은 항상 이러한 논란을 거치는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진위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 배경에는 고대의 문화적 상황이 있다. 우선 고대 그리스 당시에 상당한 정도로 위작 유통 시장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다수 있다. 갈레노스에 의하면 저명인사가 저술한 서적뿐만 아니라 편지까지도 도서관들이 비싼 가격에 사들였다고 한다. 저명인사들의 저작들을 입수하려는 알렉산드리아나 페르가몬 등의 도서관이 위작 저술과 유통을 통해 돈을 벌어보겠다는 비양심적 지식인들의 주요 표적이 되었던 것이다.

반면, 그러한 비양심적 행위와 달리 당대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졌던 관행도 위작 논란의 한 배경이 될 수 있다. 당시 학교에서 수사학을 배우는 학생들은 어떤 잘 알려진 인물이 쓸만한 내용의 글을 연습 삼아 써 보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그 중에는 교사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어떤 위대한 인물의 이름에 실어 큰 고민없이 개진했고 공표하던 관행이 있었다. 이런 식의 악의 없는 위작들이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우연히 남겨져 후대인들을 오해시킬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진위 논란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또 다른 논란이 될 수 있다. 진위 논란의 대상인 한 대화편을 플라톤의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그 함축과 파장이 매우 크다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진위 문제에 지나치게 매달리다가 플라톤의 대화편들이 담고 있는 가치 있는 내용들이 제대로 음미될 기회가 줄어든다면 그것 역시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1.4.2. 한국어 번역본[편집]

2016년 4월 현재 플라톤의 대화편 전편은 한국어로 번역 발간되지 않은 상태이다. 일본은 이미 20세기 초에 중역한 전집을 내었고, 70년대에는 고대 그리스 원전 번역 전집을 내었으며, 현재는 원전 번역 전집이 복수로 있는 정도이다.

현재 시중 서점에 나와 있는 번역본 대부분은 영어판, 일어판을 중역(重譯)한 것이다. 특히, 이러한 중역본 중에서 국가가 큰 비중을 차지해, 각 중역본 마다 전달하고 있는 의미가 다름을 느낄 수 있다. 고대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한 것으로는 서광사에서 나온 박종현의 역주본과 숲에서 나온 천병희 번역본 그리고 고중세 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술 단체인 정암학당에서 발간한 것이 있고 이 외에 신뢰할 만한 국역본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 박종현(朴琮炫)[69]
    후술할 천병희는 박종현 번역본에 대해 "박 교수의 번역은 아주 정확할 뿐 아니라, 그 속에 텍스트에 대한 외경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라고[70] 말한 바 있다.# 더불어 박종현은 플라톤 원전을 꾸준히 번역해 온 것을 인정받아 2003년 인촌상 학술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만, 번역자가 한국 철학계의 초석을 닦은 인물인만큼 번역본이 현대의 어문 체계와는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다.[71] 또한, 주해의 질적 차원은 탁월한 수준이지만 양이 너무 많아, 철학 입문자에게 번역자가 의도치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한국 철학계 내에서 오랜 기간 동안 교재로 사용되어 온 번역본이기도 하다.

  • 천병희[72]
    번역본의 경우 주로 영어 및 독일어판을 많이 참고했으며, 자신의 40년 번역경력이 말해주듯, 독자들의 입장에서 읽기 쉽게 번역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주석도 장황하기 보다는 오히려 단문으로 이루어지거나 그리스어 원어를 로마자로 적어놓은 부분이 많다. 현재도 꾸준히 플라톤 대화편을 번역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향연>, <국가> 등 다수의 원전 번역서를 냈다.

  • 정암학당[73]
    번역본의 경우에는 애초 컨셉 자체가 전집 완역이기 때문에 출간이 처음 시작된 2007년 이래 꾸준히 원전 번역서가 이제이북스에서 출판되고 있다. 정암학당의 번역 기조가 기존의 번역서들을 존중하는 가운데 현재의 동향에 최대한 맞추는 것이라, 번역 문체가 원전의 의미를 살리면서도 매우 쉽게 다가오는 것이 특징이다. 철학 비전공자들도 읽기 쉽게 하기 위해 한자어나 철학 전문용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전집 중 알키비아데스, 메논, 향연초월번역 수준에 해당하는 번역서들이 상당수 있으며,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는 대화편들이 많은 만큼 학계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전집에는 위서까지 전부 포함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2014, 15년쯤 2017년 상반기까지 플라톤 전집 번역을 완성시키겠다고 큰소리를 떵떵 쳤으나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베이퍼웨어에 불과했다.;;원고를 빨리 넘길 생각이 없는 철학자놈들...

1.5. 평가[편집]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보다 피타고라스파르메니데스에게서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74] 변화하는 것은 가짜고, 불변하는 초월적 존재만이 진짜 존재(실재)하는 것이라는 존재론을 플라톤이 계승했고, 이것이 향후 서양철학과 중세신학의 기본 틀이 되었다. 중세 초기 기독교 신학은 플라톤의 철학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75] 때문에 플라톤적 형이상학과 유대교적 유일신 사상의 융합이 신학의 시초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화이트헤드"지난 2000년 동안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말한 것. 물론 스피노자쇼펜하우어, 니체 등의 예외는 있지만, 스피노자도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출발한 인물이고,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기존 서양철학에 대한 반동과도 같기 때문에[76] 모두 플라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항상 첫 손에 꼽히는 사람이 바로 플라톤이다.플라톤의 이데아[77]론을 통해 서양철학사를 상징하다시피 하는 세부철학인 관념론이 탄생하게 되었고, 이러한 관념론을 신神의 입장에서 연구한 것이 중세철학이고, 인간의 입장에서 연구한 것이 근대철학이며, 부정하려 하는 것이 현대철학이다. 때문에 그의 철학적 업적과 영향력은 이뤄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2. 텔레비전[편집]

LG전자에서 만든 평면 브라운관 TV 브랜드. 자매품으로는 플래트론(Platron)이 있는데, LG에서 개발한 내외면 완전 평면 브라운관의 이름이자, 모니터의 브랜드 명이다. LCD 모니터 제품도 플래트론 브랜드를 계속 사용중이다.



[1] 원문 : The safest general characterization of the European philosophical tradition is that it consists of a series of footnotes to Plato. <Process and Reality: An Essay in Cosmology>[2]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러셀은 극렬 플라톤까인데도 이런 평을 내렸다.[3] 소크라테스가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그는 백조 새끼를 무릎 위에 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 백조 새끼에게 날개가 돋더니 기쁜 듯 소리를 질러대며 날아가 버리더라는 것이다. 그 다음날 플라톤을 소개받자, 그는 '이 친구가 바로 그 백조로군'하고 말했다고 한다.[4] 그리스의 역법에서는 한 해의 시작이 하지 근처였는데 플라톤이 태어나고 죽은 달을 모르기 때문에 현재 달력으로 몇 년도인지 알 수 없다.[5]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두 차례, <파이돈>에서 언급된다. 모두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사형 재판과 죽는 날에 관련있다.[6] 레슬링 선수 아리스톤에게 체육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7] 덧붙이자면 미(美)까지.[8] 고대 그리스 전기 작가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의 저자이다.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은 동서문화사에서 중역본으로 나왔다.[9] 제 7서한에 플라톤은 정치 문제들이 천변만화하는 양상을 보고는 현기증을 느끼게 되었다고 나온다. 그와 더불어 현존하는 대부분의 법률이 폐기물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엄청난 운빨이 아니고서는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고 보아서 그를 제대로 개선할 수 있는 길을 몸소 보여주고자 철학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10] 역시 제 7서한에서 플라톤은 당시 자신이 정치하면 죽음을 당할 수 있는 위기도 있었기 때문에 철학자가 되었다고 한다.[11] 그러나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많은 견해차가 있다.[12] 확실하진 않지만 디오니시오스 1세가 시라쿠사이에서 아테네로 돌아가는 배를 바꿔치기해서 플라톤을 노예로 팔아버리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플라톤은 시장에 끌려나왔으나, 그를 알아본 친구가 대금을 지불해준 덕분에, 플라톤은 풀려났다고 한다.[13] 플라톤이 죽고나서 스페우시포스라는 사람이 아카데미아를 이끌어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점에 불만을 품었다는 주장도 있다.[14] 보통 변론에 나오는 소크라테스가 역사적 소크라테스에 가깝지 않을까 추측하지만 이것마저도 불확실하다.[15] 플라톤의 전기저작등과 소크라테스의 말이나 사상이 너무 차이가 났다.[16]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래는 어류가 아님 ㅉㅉ 이랬듯이, 고래를 어류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의 직관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으나 일단 플라톤 입장에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한다.[17] 상기설과 혼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는 소피스트들, 특히 고르기아스 저격이 들어가 있다. 고르기아스는 1. 존재란 게(진짜 있다는 게, 있음이, ~이다 혹은 ~임에서 ~에 속하는 부분이) 뭐냐? 2. 그딴 게 있은들 우리 인간이 알 수 있으리? 3. 응 많이 봐줘서 우리 인간이 그딴 걸 알 수 있다고 쳐 줘도 그걸 남한테 전한다는 건 불가능하거든? 하고 주장하는데 이 논리를 저격하는 부분이다. 응 영혼의 수준에서 앎이라는 것이 새겨져 있으니까 인간들끼리 올바른 지식의 인식 및 전달 및 교습이 가능하거든? 하는 플라톤의 주장이다.[18] 아래에서도 나오겠지만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는 국가론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19] 이는 나중에 히브리 신앙과 결합하여 기독교 신학의 근간이 된다.[20] '정치체제(polity)'에 가까운 제목이다. 라틴어로 Respublica라 번역되어서 여기에서 영문 번역명 Republic과 국문 번역명 '국가'가 튀어나왔다.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한 박종현 역은 이를 반영해 <국가·정체(政體)>로 제목을 붙였다.[21] 좀 더 설명하자면, 도시국가는 규모의 한계상 아테네처럼 쌈빡한 성벽을 두른 국가를 상대로 공성전을 벌인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도시국가들이기 때문에 성인 장정 한 명 한 명은 훌륭한 직업인이자 전투원이자 정치 구성원들이었는데, 문화적인 동질감이나 충성심 등의 이유로 결원을 쉽게 보충하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아다시피 공성전은 공격자에게 엄청난 피해를 강요하게 된다. 따라서 당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서로서로 성벽 같은 걸 못 세우게 하려고 빡세게 견제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테네가 자신들의 물량과 경제력 + 페르시아를 상대할 필요가 있다는 핑계 + 정치적 술수로 시간벌기 3콤보를 통해 기습적으로 성벽을 완성했다. 이제 다른 도시국가들이 1:1로 아테네를 상대하려고 하면 기습도 거의 안 통하고, 항구도시이자 해운국가인 아테네의 해운력과 경제력, 물량을 제대로 상대해야 된다는 얘기. 오죽하면 후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측이 아테네측에 승리하면서 내건 휴전조건 중 하나가 아테네의 성벽 완전제거였을 정도였다.[22] 마치 이순신은 겁쟁이라서 못하지만 나는 밀어버릴 수 있다고 프로파간다를 펼치다 정작 부임하고 나서는 비현실적인 규모의 육군 지원이 없으면 못 싸운다고 핑계대다가 곤장 맞고 억지 진군을 하게 된 원균처럼.[23] 소피스트 항목도 조금 참조. 피시스와 노모스 대립에서는 안티폰이 유명하다.[24] 나무위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멜로스 대화와 소피스트들의 주장을 적당히 섞어놨다. 멜로스 대화에서 아테네인들의 주장과 완전히 합치되지는 않고 꽤 다른 부분도 있으나 배경 설명으로서는 상관 없을 것이다.[25] 왜냐면 현실적으로 아무리 정의로운 도시국가라도 전쟁도 막 일으키고 그러면서 남한테 해를 끼친다. 또, 전설이나 역사 속의 영웅들도 어떻게 보면 남한테 해를 많이 끼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이런 부분에서 트라시마코스가 빡친 것처럼 보이게 대화편을 썼던 것 같다.[26] 법 말고는 뭐 없다는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은 현대의 법실증주의와 닿아있다.[27] 결국 양치기 역시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면 주인도 이득을 주고 자기도 이득을 얻는다. 물론 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라는 구절은 어느 정도 독자연구지만 희곡 형식인 대화편의 맥락을 볼 때 그렇게 보이는 점이 있다. 또 이런 부분이 플라톤 대화편의 문학적 묘미이기도 하다.[28] 아마 플라톤은 사람들이 서로 의존적이며 사람 한 명의 힘으로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진정한 기술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말하는 것 같다.[29] 1권에서 제화공 같은 사람들이 진정한 기술을 발휘해 좋은 구두를 왕창 만들어서 남을 이롭게 해준다는 얘기를 했다.[30] 현대인인 우리는 사람의 적성이나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관해 자연스러운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 그에 관해 옛날 사람들다운 순진한 개념을 통해서, 자연이 그렇게 자연스러운 균형을 맞춰놓는다고 대답한다. 옛날에는 플라톤 말고도 자연이 알아서 균형을 맞춰놓는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31] 고대 희랍인들은 절제라는 덕목을 대단히 좋아했다. 기본적으로 이게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간 것 같다. 포도주 같은 것을 예시로 들기 좋아했다. 포도주에 물을 타서 먹었는데 너무 타면 맛이 없고, 생으로 포도주를 먹으면 야만인들이나 그렇게 먹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균형, 절제, 중용을 중요시했다.[32] 다만 유비관계는 도시에서와 달리 인간의 욕망과 혈기가 상하나 우열관계를 갖느냐고 반문했을 경우 뾰족한 대답이 나오기 어렵다는 결점을 가지고 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이 우열관계가 비교적 확실한 도시를 먼저 예시로 제시한 다음 인간의 영혼으로 넘어가면서 그런가보다 하고 느끼도록 대충 뭉개고 넘어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33] 물론 가족을 폐지해 버리면 2세대의 생산이 멈춰버리기 때문에 이를 대충 뭉개고 넘어가는 플라톤이 희한하긴 하다. 성생활과 출산은 몸의 욕구, 즐거움이 아니라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주장일 것임은, 이 문서를 잘 읽었다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면 플라톤은 머리를 굴려서 나오는 결론에 따르는 것을 좋아하지, 감각적인 쾌락은 쳐주지 않으니까. 어쨌든 플라톤의 이 주장은 그 비현실성뿐만 아니라, 가족의 폐지가 과연 철학자들까지인지, 전사계급까지인지, 아니면 도시 구성원 전체에 이르는지 그것도 명확하지 않고, 전계급을 대상으로 하는 얘기라면 아기를 도대체 몇 살부터 부모와 분리해야 하는가 등 구멍투성이지만 그러려니 하자.[34] 그러나 국가를 1빠따로 착 집어든 독자들은, 아무래도 국가만으로는 이데아에 대한 설명이 극도로 부족하기 때문에 이게 뭔 개소리야! 싶은 생각에 빠져들게 되며 납득하기 어렵다. [35]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플라톤의 주장을 무시한다. 철학이 도시의 자연스러운 구성요소가 아니라 강제적인 계도의 법칙이어야만 한다는 것은 웃기다는 것이다.[36]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민주정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37] 당연한 얘기지만 철학자들이 관우장비로 이뤄진 것도 아니고 판타지다.[38] 말하자면 왕정이다.[39] 명예지상정체는 스파르타적인 정치체제를 가리킨다. 상술했듯이 아테네가 패하며 플라톤이 스파르타 체제에 상당히 경도되었음을 뜻하며, 만년에 쓴 법률이나 정치가에서는 스파르타의 병크를 잘 목격했기 때문에 스파르타 욕도 많이 한다.[40] 헤시오도스의 다섯 시대 구분, 즉 금의 시대, 은의 시대, 동의 시대, 영웅시대, 철의 시대에 영향을 받았다. 처음에 왕정(monarchy)혹은 최선자정(aristocracy)이었던 국가는 곧 명예지상정(timocracy) 이 되었다가, 과두정(oligarchy)을 거쳐 민주정(democracy)을 겪은 후 참주정(tyranny)에 다다르게 되며, 이후에는 참주정이 무너지고 다시 왕정으로 복귀하게 된다고 보았다.[41]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부인하지만.[42] 공자 역시도 그와 비슷한 면이 있다. 흔히 공자는 '주나라'라는 '좋았던 과거'를 단순히 그리워하는 사람으로 오해되곤 하는데, 사실 공자 사상에서 '주나라'는 실제로 있었던 역사상의 주나라라기보다는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는 가공의 사회이지만, 인간이 마땅히 추구해야할 이상적인 사회'에 가깝다. 공자 역시도 주나라에 대한 정보는 당대에 이미 상당수 유실되어서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43] 이를 위해서는 동물과 인간을 보살피는 기술이 구별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그리스인과 야만인들이 구별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시다.[44] 그렇다고 크로노스 시대가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데, 왜냐면 절대적 공유제와 신의 인도로는 충분치 않고 철학을 해야 행복하다는 것이다. 진짜 지독한 인간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45] 실제 이 문서에서도 그랬었고 인터넷에서도 그렇고 왕정, 명예정, 과두정, 민주정, 참주정 순으로 좋고 나쁨을 가리는 5가지 구분과 노동자, 전사, 철학자 3계층으로 나눈 계층분류를 플라톤 정치 철학의 전모로 생각하곤 하나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플라톤 정치철학은 실제로 이 6가지 분류가 적절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거의 변형 없이 꿀꺽 받아먹기도 했고.[46] 아리스토텔레스와의 차이점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사의 비유를 웃기고 있다고 생각한다.[47] 플라톤이 고평가한 것으로 여겨지는 스파르타는 왕이 2명이다.[48] 다만 부모자식간의 근친상간을 막기 위해, 아이가 잉태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성교를 한 남녀들은 모두 그 아이의 부모로 간주된다.[49] 비하의 의미가 아니다.[50] 위에서와 같은 원리로, 여기서의 '아마추어'는 폄하하는 의미가 아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현대 자본주의적 인간과는 달리 전문적 삶이 아닌 전인적 삶을 살았다.[51] 아테네 민주정에 대한 비판자가 가장 많이 저지르는 오류 중 하나는, 아테네 민주정을 현대 민주정과 비교하면서 폄하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옹호자가 가장 많이 저지르는 오류 중 하나는, 아테네 민주정을 현대 민주정과 동일시하면서 무작정 옹호해버리는 것이다. 당연히 둘 다 지양되어야 한다.[52] 소크라테스의 죽음도 알키비아데스와 크리티아스의 사상적 스승인 것에 대한 죄값을 물은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직접적으로 알키비아데스나 크리티아스를 사주했거나 반아테네적 사상을 주입하지 않은 이상 그걸 이유로 사람에게 사형을 때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항목에서도 서술되어 있듯이 소크라테스의 사형은 많은 부분 그가 어그로를 끌었던 탓이 있지만, 원래도 밉상인 놈이 어그로까지 끌어서 더 미워져서 사형을 때린 것, 즉 너 미우니까 죽여버린다는 것이 바로 당시 민주정의 실태 중 하나였다.[53] 플라톤의 저작이 희곡 형식의 문학 작품이이서,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의 정치사상에 대해서는 해석이 굉장히 다양하다.[54] 플라톤도 정치가에서 철인정치가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로 누구든지 복종할 만한 우위를 가진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얘기했다. 신체적으로건, 정신적으로건.[55] 비슷한 예시를 들자면, 키케로는 민중파를 물어뜯었을지언정 독재를 막으려는 민주주의자들에게 즐겨 인용되며, 존 로크가 자유를 "지배의 부재"로 해석한 것은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신로마 공화주의자들에게 즐겨 인용된다.[56] 굳이 전쟁 등이 아니더라도 당시엔 50세면 자연사할수도 있는 나이였기에 이런 조건이 붙은 것[57] 현대인들은 플라톤과 현대사상이나 체제와 유비관계를 발견하고 놀라워하고 좋아라하며 자기자신들의 이상을 어느 정도 투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플라톤의 영향력은 대단히 강하기 때문에, 온갖 곳에서 플라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므로 플라톤과 현대 민주주의의 유사관계를 발견한 후 역시 플라톤은 아테네 민주주의의 아들이라는 평가는 좀 지나친 경향이 있다. 현대 민주주의나 플라톤은, 능력주의가 위치하고 있는 곳에, 아테네 민주정보다 훨씬 더 가깝게 서 있는 것이 아닐까?[58] Francois-bernard huyghe,'갈릴레오 이전 사람들은 세상을 어떻게 보았는가',문신원 역,이끌리오,2000[59] 그리스 학자들 중에서는 이런 인격신 개념과 대비되는 다원론자들의 설명을 들어 보면 현대 기준으로도 제법 날카로운 바 있지만 그건 지금 와서 돌아보니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고, 실험과 측정 데이터 수집으로 검증한 것도 아니라 가설 수준이니 당시에 다른 가설들과 비교해 봤을 때 딱히 엄청난 설득력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60] 기혼자일 수 있다.[61] 동성이지만 성적인 욕구가 없기에 이런 점에서 소년애는 동성애와 구분된다.[62] 여성과의 사랑과 성관계는 종족번식의 본능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순수하지 못하고, 번식이 불가능한 동성과의 사랑이 본능 따위 포함되지 않은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이라고 했다. 그 시대의 여성은 남성들과 엄격하게 분리된 생활을 했다. 어린 나이에(14세 정도에) 결혼을 했다. 결혼 생활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역할 분리는 엄격하게 유지되었고, 활동 공간 역시 나누어져 있었다. 가사를 돌보고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것이 여성들의 일이었고 집 밖으로 나갈 일은 거의 없었다. 스파르타를 제외한다면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은 반쪽짜리 2급 시민이자 아이를 낳는 태반 역할로 취급 당했다.
이런 연유로 낭만적인 사랑은 자유인 남성 정부와 흔하진 않지만, 성인 남성과 소년 애인과의 사이에서만 가능했다. 여성과 결혼하지 않고 평생 지속되는 배타적인 소년애 커플은 흔하지 않다고 한다. <향연>에 나오는 아가톤과 파우사니아스가 그렇다.
[63] 다만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에 들어서는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도 이성애를 중시하는 풍조가 도래하게 되었다. 루키아노스에 따르자면 심지어 이성애vs동성애를 놓고 어느쪽이 좋은지 철학자 사이에 논쟁이 있었을 정도.[64]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플라토닉 러브를 가장 변태적인 사랑이라고 평한 바가 있다(…).[65] 플라톤의 저서 <향연>은 여러가지 에로스에 대해 쓰였다. <향연>에서 플라톤은 육체적 욕망으로부터 출발해 정신적인 것의 추구, 교류를 통해 영혼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로 인해 지식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지식의 아름다움은 다양한 이야기와 사유를 산출하게 된다. 이를 포괄하는 것이 아름다움 자체(= 좋음)이다. 에로스를 추구하는 최종단계에서는 아름다움 자체(= 좋음)를 갑자기 알려지는 것이 가능해진다. 몸에만 해당하는 아름다움이 아닌, 아름다움, 좋음 자체를 연습하는 일이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준다고 한다.[66] 참고로 고대 그리스인 남자들은 여자를 그냥 집에 틀어박혀서 애 낳는 기계로 취급했고, 부부간의 사랑 같은 개념보다는 남자끼리의 동성애 관계나 남자와 창녀(단, 당시의 창녀는 일반적인 창녀 개념과 조금 다르다)간의 관계를 더 고귀하게 여겼다.[67] 참작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저 둘을 포함한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등등이 길긴 하지만 포인트가 의도적으로 삽입되어 있다. 잘라서 낭송하기 쉽고 외우기 좋도록 의도적으로 중간중간에 반복되는 구절이 들어가 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대단한 일이다.[68] 이 얘기에 대해서는 진위 논란이 있으나 어쨌든 대강 다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69] 한국 철학 1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학계에서 비중이 큰 학자이다. 한국 철학계의 초석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그것이 전부라고 평하기도 한다. 다만, 현재 철학계 원로들의 지도 교수 뻘 되는 인물이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70]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장난 아닌 플라톤 빠돌이가 되시며 수업하다가 이따금 스승을 배반했다며 스승의 마음을 모르는 의리 없는 놈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를 까곤 했다고 한다.[71] 실제로 현재 《플라톤의 네 대화편》이라는 번역본의 초판(《플라톤 대화편 선집》, 1967)을 보면, 오늘날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한자어가 너무 많이 나와서 한국어 번역본임에도 읽기가 어렵다(이전에 박종현 번역판이 일본어 중역판이라는 오술이 있었는데, 이 초판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유학 경전도 즐겨 읽었다 하니 최대한 정확하게 옮기려는 의식과 함께 한자 성향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21세기 들어 철학계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젊은 연령층의 학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이러한 텍스트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당시 난해한 한국어 번역본으로 인해 '고대 그리서 철학=난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한 한국어 번역본은 일상적인 대화 속에 진리를 넣고자 했던 플라톤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과 일반인들을 유리시킨 측면은 다분하다. 다행히 1990년대 말부터 기존의 박종현 번역본들이 서광사에서 대대적으로 개정되면서 난해한 문투는 많이 개선되었고, 번역자 스스로도 시대적 흐름에 부응해 최대한 간결하게 쓰려고 노력은 하는 듯 싶다. 사실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본래 말이 많고 정열적인 성격이라 하며, 번역서 말고 본인의 다른 저작들도 철학 연구서를 표방하는 것치고는 상당히 쓸데없는 말이 많으며 좀 논리적인 맛이 부족하다;;;[72] 독문학자이자 고전어학자. 본래 학부에서 독어독문학과를 전공하고 독일에 독일어를 전공하기 위해 유학을 갔으나, 현지에서 고전문학을 접하였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어뿐만 아니라 라틴어에도 정통하다. 교양 수준에서부터 학술 수준까지의 수요를 두루 충족시키는 번역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다. 참고로, 동백림 사건의 피해자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를 번역하는 것에 대한 원성이 높은데 예를 들자면 번역은 했으되 완역은 아닌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완역이나,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는 번역되었지만 연대기도 읽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철학은 정암학당에서 해 주고 있으니 다른 쪽을 맡아주었으면 하는 것. 하지만 본인의 입장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번역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듯.[73] 30~40대의 비교적 젊은 신진 학자들로 구성된2000년대 중반 처음 시작할 때는 말이지 학술 단체이다. 국내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그리스나 영국에서 고대 철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많다. 여러 명의 인물들로 이루어진 구성체인 만큼 번역본 마다 문체가 다양하다. 고대 철학의 본 고장에서 익힌 감각과 최신 연구 성과가 반영된 번역서들이 많다.[74] 철학의 내용적인 면은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등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단언하기는 또 나무위키 치고는 지나치게 과감한 시도이다. 기본적으로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이 플라톤 탐구 방법의 기본을 이루는 만큼 소크라테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뿐만 아니라 아테네 사회에서 문답법을 통해 정확한 덕과 정의를 찾고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려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소크라테스 철학의 동기 면에서는 정말 크게 영향을 받았다. 뻑하면 체육선생, 제화공, 의사, 목수 등을 예시로 들면서 일반 기술과 철학 기술을 동치로 놓으려는 시각 역시 소크라테스에게 크게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하고 보는 편이기도 하다.[75] 니체는 기독교는 대중을 위한 플라톤주의라고 말하기도 했다[76] 예를 들어 니체의 주저 중 하나인 도덕의 계보에서 니체가 취하는 주의주장은, 플라톤이 대화편에서 까버린 다른 소피스트와 같은 견지에서 플라톤 철학의 폐해를 지적하는 식이다.[77] 생각, 관념을 지칭하는 idea, 이상을 지칭하는 ideal등의 단어들 모두가 이데아를 어원으로 두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