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교황)

최근 수정 시각:

2013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Time Person of the yea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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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락 오바마
2012

프란치스코 교황
2013

에볼라 전사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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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명

프란치스코 (Franciscus)

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시보리 (Jorge Mario Bergoglio Sívori)[2]

생년월일

1936년 12월 17일 (만 80세)

국적

아르헨티나

출생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재위기간

2013년 3월 13일 ~

즉위미사

2013년 3월 19일 ~

라틴어

Franciscus PP.

이탈리아어

Papa Francesco

그리스어

Πάπας Φραγκίσκος

스페인어

Papa Francisco

포르투갈어

Papa Francisco

프랑스어

Pape François

영어

Pope Francis

독일어

Papst Franziskus

중국어

教宗方濟各

아랍어

البابا فرنسيس

역대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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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대

266대

(현직)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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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의 문장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교황관 대신 3개의 줄이 있는 주교관이 위에 있고, 예수회 문장과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별, 남편인 나자렛의 성 요셉을 상징하는 나르드(Spikenard) 꽃이 새겨져 있다. 추기경 때 문장과 다른 건 하얀 별과 나르드가 금색으로 바뀐 것 뿐. 사목표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그리고 중앙에는 자신의 소속이었던 예수회의 문장이 있다.

1. 개요2. 프란치스코란?3. 교황이 되기 전의 생애
3.1. 출생과 성장3.2. 흑역사?3.3. 추기경 시절3.4. 교황 선출과 즉위
4. 성품
4.1. 개인적인 면4.2. 공적인 성향
4.2.1. 사생아, 동성애, 동성결혼에 대해4.2.2. 무신론자들에 대한 관용
5. 재위기간6. 바티칸 개혁행보7. 2014년 방한8. 기타

1. 개요[편집]

교황 선출 직후 이탈리아어로 첫 강복을 하는 프란치스코.
다른 교황들과는 달리 교황의 권위를 뜻하는 붉은 모제타를 입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는다면, 세속적으로 우리는 주교요, 사제요, 추기경이요, 교황일 수 있지만, 주님의 진정한 제자는 될 수 없다. 진정한 권위는 봉사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자. 아주 가난하고, 약하고,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 교황 프란치스코


세계구급으로 유례없이 큰 지지를 받고 있는 현재 가톨릭의 수장.[3]

가톨릭의 제266대 교황으로 역사상 최초의 남아메리카·남반구·예수회 출신 교황이자, 시리아 출신인 제90대 교황 성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만의 비유럽권 국가 출신 교황이다. 또한 요한 바오로 1세 이후 35년 만의 이탈리아인 교황이다.[4] 타이틀이 몇개야

사목표어는 성 베다의 설교의 한 구절을 인용한 'Miserando atque eligendo(자비로이 부르시니)'. 교황 즉위 후에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2. 프란치스코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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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9일, 즉위미사 때 등장한 현수막 : "아시시가 당신을 기다립니다!(Assisi ti aspetta!)"


일찍이 교황 바오로 6세"앞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가진 교황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거룩한 성인이신 프란치스코는 인간의 규칙을 깨고 오직 교리에만 순종했기 때문입니다."라며 탄식했었다. 하지만 베르골료 추기경은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역사상 최초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했는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따른 것이다.

전임 교황의 이름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교황명을 정한 것은 요한 바오로 1세 이후로 35년 만인데, 요한 바오로 1세도 사실 요한(23번)과 바오로(6번)로 각각 생각해 보면 이미 흔히 사용된 이름이긴 하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에 한번도 쓴 적이 없는 이름으로는 913년에 즉위한 제123대 교황 란도 이후로 딱 1100년만이다. 교황은 교황명을 이렇게 정한 이유를 기자들 앞에서 직접 밝혔는데, 콘클라베에서 3분의 2 득표를 했을 무렵 옆자리에 앉아있던 브라질 상파울루 명예주교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이 그를 안고 입맞춤하며 "가난한 사람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말한 순간 프란치스코 성인이 떠올랐다고 하였다.

선출 당일 한글 표기가 정립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국 언론은 프란치스코 1세, 프란시스코 1세, 프란체스코 1세 등 중구난방으로 표기했으나, 바티칸과 한국 교회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올바른 한글 표기는 프란치스코, 정식 교황명은 프란치스코 '1세'가 아니라 그냥 '프란치스코' 이며, 훗날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쓰는 다른 교황이 나온다면 그 때 가서야 프란치스코 1세로 불릴 것이라고 한다(관련기사). 사실 원래 이게 맞는 건데 요한 바오로 1세 때가 이례적이었다 볼 수도 있는데[5], 이는 '요한'과 '바오로'가 모두 사용되었던 명칭인 만큼 구분을 위해 붙였던 것이고, 프란치스코는 이번이 처음이기에 1세를 붙이지 않는게 옳다.

3. 교황이 되기 전의 생애[편집]

3.1. 출생과 성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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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이탈리아 출신 철도노동자 마리오 주세페 베르골료(Mario Giuseppe Bergoglio)와 레히나 마리아 시보리(Regina María Sivori) 사이에서 1936년 12월 17일에 태어났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 졸업하고 예수회에 입회해 32세에 수사신부가 되었다. 젊은 시절 경위가 불분명한 폐렴 합병증으로 한쪽 를 절제해 50년 넘게 한쪽 폐로 살고 있다. 한때 바운서로 일한 적도 있다 한다. 바운서를 할 정도라면 왕년에 한 주먹했다는 얘기인데…

사제가 되기로 한 계기가 조금 독특한데, 12살의 어린 나이에(!) 아말리아라는 여자아이에게 러브레터를 건네며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받아주지 않으면 신부가 되겠다"고 청혼했다가 단칼에 거절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관련기사).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까짓거 신부된 김에 교황까지 아니 그럼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바운서가 된거야?

그래서, 아말리아 할머니는 60여 년이 흐른 2013년 그가 교황이 되자 말 그대로 기절초풍했다고 한다. 그녀가 자랑스레 공개한 이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실 다른 여자친구가 없었는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다만, 청소년탱고를 같이 춘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단순히 꼬마 시절에 실패한 사랑 고백 때문에 사제의 길을 걷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 신학에 좀 더 열중하기는 했던듯...

3.2. 흑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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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에 대해 침묵했던 전적이 있다는 비난을 받았고 관련 건으로 인권단체에서 2010년도에 고발된 적이 있다. 예수회 소속의 사제 2명이 독재정권에 납치되어 고문당한 사건에 침묵했다는 의혹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황이 아르헨티나 군부 유력자의 가족신부 등의 개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독재자들에게 사적으로 선처를 호소하였고, 두 사제는 결국 풀려났다고 밝혀졌다[6].

비겁해 보일지는 몰라도, 이는 쿠바가톨릭 사제들도 택하고 있는 나름의 실용적 전략이다. 당장 정권을 전복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직접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타협과 조정을 통해 어떻게든 사람들을 돕는 것도 현명한 전략이다. 게다가 교황이 군사독재에 찬성한 것은 결코 아니며, 군부의 살인부대에 쫓기는 사람들을 숨겨주고 자신의 여권을 주어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의 개인적인 저항을 적극적으로 했다.

아르헨티나 가톨릭 교회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당시 성직자들이 '애국주의' 선언을 통해 군사독재와 결탁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지만, 이건 상황에 따른 것이다. 독재와 인권탄압 수준에서 당시 아르헨티나는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정부를 비판하면 코렁탕 정도가 아니라 쥐도 새도 모르게 자루에 넣어져 대서양에 수장되거나 생매장으로 끔살당한다.[7] 즉, 적극적으로 전면저항에 나설 경우 프란치스코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례로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당시에는 월드컵 결승전이 치러지던 당일 그 시각에, 그 경기가 치러진 경기장 바로 옆 건물에서 호르헤 비델라 정권 반대인사를 고문하고 있었다. 물론 이보다 더한 건 역사적으로 따지면 히틀러스탈린이나 옛 조상 나라의 선배뻘인 스페인프랑코 정도이고, 동시대로 따져봐도 칠레의 독재정권이 아르헨티나의 독재정권을 압도하긴 했지만, 당시의 아르헨티나가 살인적인 군부독재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톨릭 신자가 대다수인 국가에서 추기경이 공개적으로 정권에 대한 반대를 조직한다면 교황청과 타 가톨릭 국가들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생명에 위협을 미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전에 언급된 자신의 여권으로 독재에 탄압받는 정치범을 국외로 탈출시켜주는 행위도, 들켰으면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한 정치범 생존자는 당시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너무나 침착하게 선뜻 도와서 "자기가 어떤 곤경에 뛰어들고 있는지를 정말 알고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특히나 호르헤 비델라의 습관 중 하나가 다름아닌 반대 인사를 쥐도새도 모르게 납치한 뒤 자루에 담아서 그걸 헬기에 실은 뒤 대서양 한복판에 갖다 버리는 짓이었다. 만에 하나,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전면에 노골적으로 나섰더라면 이런 꼴이 났을 것이다. 훗날 순서대로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 되는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변호사 부부가 호르헤 비델라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괜히 시골로 낙향한 게 아니다. 도시는 위험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로 이웃나라 엘살바도르에서는 1970년대에 독재에 저항하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미사 중에 대중의 눈 앞에서 사살당했는데도 범인들은 밝혀지지 않았고, 오히려 엉뚱한 사람들이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했다.[8] 요한 바오로 2세가 맞서 싸웠던 스탈린주의 이후의 공산당이나 김수환 추기경과 대립했던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그래도 최소한의 눈치를 보느라 말이 통하기라도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9] 당시 베르고글리오 신부였던 교황은 "(군부에게) 믿음을 심어줘서 누가 숨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하게 하는 전략을 썼"던 것이다.

2014년 즉위 1주년을 앞두고 앞에서는 침묵했지만 뒤에서는 은신처를 제공하고 해외도피를 도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최소 20~30명, 최대 100명까지 반정부 인사들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3만 명이나 희생된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의 참상에서 수십 명 구했다는 것이 침묵을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분명히 나은 행동이며, 위쪽 문단에서도 설명했듯이 은신처는 물론 해외도피까지 실제로 도왔다는 점에서 자신의 위험도 기꺼이 무릅썼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특히나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벌일 수 있는 일에 대한 한계를 생각할 때 이 정도면 꽤 선방한 것이다. 즉 당시에 교황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이 모든 일에 대해서 교황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비판은 비판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도… 이 부분은 2015년 12월 13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다.

다만 시골 하급 성직자 운운하기는 좀 그런게, 그는 1973년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이 되었다. 이 때문에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있었던 호르헤 비델라 군사독재 기간 동안 가톨릭 국가 아르헨티나에서 그보다 높은 직위의 성직자는 없었다. 또한 구한 사람은 구한 것이지만, 정작 자신이 체포 등에도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최상단 납치 피해자였던 신부 2명중 한명인 올란도 요리오 신부[10]는 1985년 재판에서 주교가 명단을 넘겼다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2000년대에 벌어진 재판에서 베르고골리오 추기경은 수차례 재판 출석 자체를 거부했으며, 단 한번 출석한 재판에서도 모든 증언을 얼버무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교황으로 즉위하는 그 시점에도 그는 재판장에 피의자로 불려다니고 있었다. 교황이 되면서 이 문제가 흐지부지 되었지만, 만일 교황이 되지 못했다면 본격적으로 말이 나올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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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실바 추기경

칠레 500페소 주화

칠레의 라울 실바 엔리케즈 추기경과도 대비된다는 견해도 있다. 추기경이자 산티아고 대교구장의 직위에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맞이했다. 엔리케즈 추기경은 해당 쿠데타를 즉각 비난했으며, 그 과정에서 벌어진 살육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쿠데타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서 정교회, 유대교, 개신교 등과도 연합해서 대립했다. 그래서 군사 쿠데타가 붕괴된 이후 칠레에서 성인이나 마찬가지 대우를 받았으며, 칠레 500페소 주화에 그 얼굴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정치적 문제로 대립했다라는 이유로 1983년 산티아고 대교구장 직위에서 은퇴해야 했다.[11]

아무튼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할 일.

3.3. 추기경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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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바오로 2세와 베르골료 추기경, 2001년 2월 21일

베네딕토 16세와 베르골료 추기경, 2007년 1월 13일


199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주교에 임명되었고, 2001년 2월 21일 같은 교황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추기경 재임 시 아르헨티나 동성결혼 법안 반대운동을 주도하며 국제사면위원회 등의 인권단체의 비판이 많았다. 반대운동 때 동성결혼과 피임을 확대하는 정책을 펼치는 아르헨티나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에게 "중세적 마인드를 가진데다가 이단심문관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때문에 서로의 사이는 매우 좋지 않아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추기경 시절인 2012년 성명을 통해 대통령을 "독재를 노리는 선동꾼"이라고 비판하였다. 페르난데스는 페론당(정의당) 출신 정치인으로[12] 실제로 후안 페론&이사벨 페론 부부에 이어 아르헨티나 2번째의 부부 대통령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의 동성결혼 합법화 및 입양조건 동등화는 상하원 모두에서 통과되었다.

교황이 수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당시 교황이 비난했던 것은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통치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는 어휘가 강했을지는 몰라도 타당한 비판이다. 정치학이나 행정법을 공부하면 약간이나마 언급되는 부분인데, 원래 행정명령은 제왕적 대통령이 입법부와 사법부를 우회하여 삼권분립을 무너뜨리는 단골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위임민주주의의 일종으로 "포고령주의"로 불리는 행정명령의 남용은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방해하고 법을 통한 법치주의를 훼손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장 조지 W. 부시가 행정명령을 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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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2일 루한(Luján)에서.
추기경 주제에 VS 5년 뒤에 두고 보자

2013년 3월 19일 바티칸에서.
좀 도와줘요 VS ㄲㄲㄲ[13][14]

그런데 베르골료 추기경이 교황이 되자,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그에게 포클랜드 섬에 대해 영국의 군사적 증강을 막고 자신과 대화 창구를 놓아달라는 개입 요청을 하였다. 교황의 공식 반응은 아직 없지만, 영국은 교황은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주권 국가 사이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매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 탓에 가만 있다가 불똥이 튄 격인데, 이래저래 악연인 듯.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이번 기회를 통해 가톨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2015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그리고 이렇게 노력했지만 정권교체 당했다

3.4. 교황 선출과 즉위[편집]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건강상의 문제로 퇴위한 후에 치러진 콘클라베 이틀째인 2013년 3월 13일 오후 7시 기준으로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청이 부패 스캔들섹스 스캔들로 홍역을 치른만큼 개인적으로 청렴하고 교리적으로는 보수적이며 사회적으로는 개혁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차기 교황으로 선출된 듯. 그동안 거론되던 주요 교황 후보는 아니지만 인지도가 아예 없던 상황은 아니었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비유럽파 추기경들은 개혁적인 교황을 원했으나 적절한 후보를 내지못한 상태에서 콘클라베에 돌입했다고 한다. 투표 전에 모든 추기경들이 소신을 피력하는 개인발표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 베르골료 추기경이 교회가 본연의 영적인 임무에 돌아가야 한다고 피력한 것이 결정적이 되었다. 그의 이런 피력을 계기로 개혁파 추기경들이 그에게 주목했고 뒤이은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투표가 진행돼서 개혁파 추기경을 중심으로 의견이 정리되고 미국의 추기경인 우얼 대주교가 미국 표를 끌어모으고 일부 유럽표가 그에 가담하면서 베르골료 추기경은 수월하게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가디언의 추측으로는 전 교황 선출 때도 이미 득표 수가 2위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15]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례적으로 빠른 콘클라베의 결과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고령으로 인한 건강 문제 때문에 퇴위했음에도 고령인 프란치스코가 선출된 것을 놓고 추기경단이 '몇 년 간의 시간벌기'를 선택했다는 관측이 있다. 한편 그의 선출에 베네딕토 16세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다는 음모론도 나왔다.

그의 교황 취임을 두고 흑인 교황을 기대했던 아프리카에선 섭섭해하는 분위기이다. 이탈리아인 교황을 바랐던 이탈리아에선 아쉬워하면서도 이탈리아계 이민자 교황이라서 좀 낫다는 분위기. 물론 남미에선 역사상 첫 남미인 교황이라고 기뻐하는 분위기이다.

4. 성품[편집]

4.1. 개인적인 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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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지하철에 탑승한, 추기경 시절의 교황.

교황의 산 로렌소 회원카드


개인적인 성품은 매우 겸손하고 온화한 편이라고 한다. 추기경 시절 화려한 관저가 아니라 작은 아파트에 거주하였으며, 바티칸에서 대주는 비행기 값을 빈민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을 정도. 운전기사를 따로 두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동은 거의 항상 사복 차림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며 식사는 직접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다가 손수 요리해서 먹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에 선출되자 소감을 묻는 질문에 "저처럼 모자란 놈을 교황이라고 뽑아 놓아준 분들을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고 말해 온통 폭소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취미는 별로 없지만 좋아하는 작가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특히 축구의 경우는 자국 리그의 팀인 CA 산 로렌소의 열성적인 팬이며 회원이기도 하다.

축구를 좋아하는 교황을 위해 오직 교황 한 사람만을 위한 A매치를 치르기로 했다. 2013년 8월 14일에 교황을 위해 로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조국인 아르헨티나와 가톨릭의 종주국인 이탈리아의 평가전을 치르기로 양 국가의 축구협회에서 합의를 봤다. 이 경기는 교황 프란치스코 본인은 물론 바티칸 시국 교황청에 소속된 모든 이들이 직접 관전했다.

그런데 경기 당일 양팀의 주포인 리오넬 메시마리오 발로텔리 둘 다 부상으로 결장했고, 메시 대신 에릭 라멜라가 들어갔다. 경기 결과는 아르헨티나의 2-1 승리. 전반전에 일찌감치 곤살로 이과인이 선제골을 넣은 뒤 후반에 에베르 바네가가 추가골을 넣었다. 이탈리아에서는 2골을 먹은 이후 로렌초 인시녜가 만회골을 넣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2017년 11월 15일 람보르기니 사에서 교황에게 흰색 람보르기니 우라칸에 금줄로 장식한 교황 에디션을 기증했다. 이 차를 받은 교황은 이것을 자선단체 후원 모금을 위해 경매에 내놓았다고. 경매에 내놓기 전 이 차에 손수 축복을 내리고 보닛에 서명까지 해서 기존 람보르기니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릴 예정이다.

4.2. 공적인 성향[편집]

우리는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싸워야지, 가난한 사람들과 싸워서는 안 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눈물을 흘릴 필요가 있어요.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직 충분히 슬퍼하지 않았어요.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일을 하고, 직장을 찾아 나서고, 장사를 하고, 여행과 관광에 대해 걱정을 하지만 정작 이 충격적인 참사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어요. 이 도시에서 일어난 참사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고 있지 않아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남긴 것을 마음에 간직합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이 투쟁을 멈추지 맙시다.
- 2005년, 크로마뇽 참사[16] 1주기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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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나 문화적으로는 보수적 성향을 보이지만 가톨릭 교회 전반적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심히 보수적인 것도 아니다. 이는 해방신학에 부정적이라는 등 지나치게 개별 이슈로 보수성을 몰아가는 측면도 크다. 되려 아래에 제시된 사례처럼 미혼모가 낳은 자녀에게 세례성사 주는 것을 거부하는 사제들을 비판했으며, 콘돔 사용을 반대해서 홍역을 치른 베네딕토 16세와는 달리 에이즈 예방을 위해서 사용해도 된다는 생각을 밝힌 적도 있다고 하여 아주 꽉 막힌 사고의 소유자는 아닌 듯하다. 더구나 재임 중 해방신학의 창시자를 초청하여[17], 교황청 기관지 <옵서바토르 로마노>에서 해방신학이 그늘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콘클라베 시기 <가디언>에서 정한 기준에서도 "Moderate"(온건한)에 속하는데, 진보-온건-보수에서 중간 정도라는 의미가 아니라 Moderate(온건)-Conservative(보수)-Ultra Conservative(강경보수) 가운데(…) 가장 온건하고 진보적인 것이다. 참고로 'Papabile'라고 표기된 교황 가능성이 있는 인물 가운데 필리핀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을 제외하고 moderate는 거의 없다. 교황청 개혁에 적극적이면서 스캔들에도 해당 안 되는 인사라는 점에서도 베르골료 추기경은 두드러진다.

또한 사회경제적인 면에서는 진보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기작가는 "그는 해방신학자는 아니지만, IMF에 반대하며, 신자유주의에도 반대한다"고 언급하였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직후에도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여 아르헨티나의 빈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외국의 반응들도 전반적으로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지도자로서는 대중적인' 교황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외신마다 평가가 갈리는 편인데, 이에 대해 미국과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진보의 기준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생각하는 진보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이라는 지적이 있다. 꼬리표를 뭐라고 붙이든 간에, 사회적 약자에 대해 온정적이며 공동체의 가치와 평화를 중시하는 성향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11월 27일 펴낸 교황 권고에서는 자본가들의 천문학적인 연봉을 비난하면서 규제 없는 자본주의를 '새로운 독재'로 규정하고, 가난을 만드는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교황명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으로 삼은 것만 보더라도 사회경제적인 면에서는 청빈을 강조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관심이 많아 보인다.

4.2.1. 사생아, 동성애, 동성결혼에 대해[편집]

" If someone is gay and he searches for the Lord and his good will, who am I to judge?
"만약 게이라도 주님의 말과 바른 뜻을 찾아 간다면, 내가 누구라고 그들을 판단하겠습니까?"

그는 가톨릭 교리에 따라 동성결혼반대하지만[18] 사생아에게조차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례성사를 줬다. 가톨릭에서 사생아를 사람 대우하지 않는 것이 중세부터 시작된 오랜 전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파격. 또한 사생아에게 세례를 주길 거부하는 사제들을 비판했다. 사실 교회법상 사생아를 외면할 근거는 부족하므로 교황이 이상한 태도를 취한 것은 딱히 아니다.

결혼의 신성함 속에서 잉태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미혼모의 자녀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 성직자들이 우리 교구에 있습니다.
이런 성직자들은 현대의 위선자들입니다. 이들은 권력으로 교회를 오염시키는 자들이며, 주님의 백성들을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자들입니다.
사생아들을 아이를 주신 분돌려보내지 않고 이 세계에 낳을 용기를 가진 불쌍한 소녀들은 이런 성직자들 때문에 세례를 받으려고 여러 교구들을 떠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동성결혼과 동성애자 부부의 입양에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자 개개인들을 탄압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또한 아르헨티나에서 동성결혼 법안에 반대운동을 주도할 당시 동성결혼에는 반대하지만,동성커플은 인정하는 시민결합(Civil Union)이라는 타협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2013년,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 추기경을 교황청 '주교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에서 해임, 다른 추기경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교회가 교리에 얽매여 신자들을 정죄하는 것보다는 교리와 실제 소외당하는 소수자들의 처지에 대한 배려를 조화시키는 것을 추구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앞으로 가톨릭 교회의 동성애 문제에 대한 태도가 주목된다. 그리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2014년 시노드에서 동성애자와 이혼, 피임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방향으로 결정문 초안을 발표했다.[19][20] 하지만 교황 본인은 시노드 의장으로서 중립을 견지하며 중재할 뿐이었고, 이 중간 선언문은 소수의 교부들에 의해 독단적으로 작성되었다고 대다수 대의원 교부들이 반발했다. 결국 최종 결정문은 일체 변화가 없다는 내용으로 발표되었다.

그런데 2014년 11월 17일 그리스도교 교파 대표들이 모인 콜로퀴움에서 결혼은 남성과 여성간의 결합이라고 천명하기도 했다. 또한 2015년 9월 24일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 동성커플의 결혼증서 발급을 거부하여 논란이 되었던 개신교 신자이자 미국 켄터키주 로완 카운티의 법원 서기인 킴 데이비스를 비밀리에 초청하여 격려해준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22]

위의 행보들과 모순되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가톨릭은 '동성애 성향'과 '동성결혼'은 엄격히 구분한다. 동성결혼(나아가서 동성 간의 성교)은 가톨릭 윤리학에 대격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허용되는 것은 어렵다. 문제는 '그러면 동성애 성향은 죄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부분의 경우에 교황은 '동성애 성향 자체가 죄는 아니다'라는 입장이며,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성향 자체는 죄가 아니다'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동성애 성향'과 '동성결혼'은 가톨릭 입장에서 보면 페도필리아아동 성범죄 만큼이나 격차가 크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매우 폭력적인 성격으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성질을 잘 다스려 실제로 사람을 때리지 않고 온순하게 산다면 그 사람은 죄인이 아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가톨릭 내부의 윤리관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가톨릭(더 넓게 보면 그리스도교)의 윤리관을 비판한다면 몰라도, 교황 한 사람을 공격한다면 교황 입장에선 굉장히 억울한 일이다. 교황은 전제군주가 아니다.[23] 또한 교황은 다수결이 아닌 가톨릭 사제들 간의 만장일치로 선출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톨릭 윤리관에 가장 모범을 보이면서도 이를 고수하는 면모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원래 교황 개인의 인간적 면모가 어떤 가에 떠나서 가톨릭 자체가 굉장히 보수적이기 때문에 그의 이러한 주장은 어쩌고 보면 그리스도교의 관점으로 볼 때 상당히 진전된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2015년 10월에 교황청이 전 엘리제궁 의전수석이었던 로랑 스테파니니의 바티칸 주재 프랑스 대사 임명을 거부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로랑 스테파니니가 동성애자라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가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이후 교황청과 프랑스의 사이가 악화된 상황의 연장선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가톨릭의 신학적 입장은 둘째치고 외국에서 임명한 대사를 정당한 사유없이 거부한 것은 확실히 문제의 소지가 있는 행보라는 입장과 동시에, 바티칸에게는 가톨릭의 기본 교리 입장상 당연히 거리감이 있는 인사의 접수를 거부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를 무시한 채 강행한 올랑드 정부도 욕 먹고 있는 중.

4.2.2. 무신론자들에 대한 관용[편집]

무신론자로 밝힌 라 레푸블리카의 공동 설립자 에우제니오 스칼파리가 교황에게 '하느님을 믿지 않거나 믿음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하느님이 용서할지'를 물었고, 교황은 하느님의 자비는 한계가 없으며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내서 답변했다고 한다.

그리고 스칼파리 본인이 먼저 전화해온 교황과 약속을 잡아 직접 산타 마르타 관館에서 인터뷰하고 주로 이탈리아 지성인들의 의견을 포함해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24]로 편집, 출간되었다. 한국에서는 바다출판사 발행, 번역은 최수철과 윤병언.

일찍이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도 2001년 'KBS 도올논어이야기'에 출연하여 정하상 바오로 성인[25]의 예를 들며 이러한 견해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런 논조는 종교가 아예 필요 없다거나, 가톨릭을 믿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야 천상으로 향할 수 있다'는 가톨릭의 정체성이자 핵심 교리이기 때문.

그런데 위에서 말한 스칼파리 씨가, 교황의 발언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인정했다. 실제로 대화 당시 스칼파리 본인은 별 다른 기록을 하지 않고 자신의 기억력만으로 이 내용을 전했는데, 그의 기억력이 고령으로 인해 부정확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인한 것이다. 근데 언론에서 하도 퍼트려대가지고 사람들은 진짠 줄 안다.

하지만 교황이 비신자나 무신론자에 대해서 관용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건 사실이다. 교황 선출 후 진행된 첫 일반 알현에서 알현 마지막에 참석자들을 향해 축복기도의 성호를 긋지 않은 대신 다음과 같이 스페인어로 말한 적도 있었다.

이곳에 모인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고 어떤 분들은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저는 진심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가지고 계신 양심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여러분 각자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알고 있기에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십니다.[26]


여담으로 범죄자, 폭력 조직, 가톨릭 교회 내의 부패한 성직자들을 격하게 비판하면서 그따위로 행동하느니 차라리 무신론자가 되는 것이 낫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아브라함 계통 종교에서 무신론자가 갖는 위치를 생각하면[27] 파격적인 언행이다.

5. 재위기간[편집]

  • 재위 1년차(2013)의 행보는 /2013 항목 참고.

  • 재위 2년차(2014)의 행보는 /2014 항목 참고.

  • 재위 3년차(2015)의 행보는 /2015 항목 참고.

  • 재위 4년차(2016)의 행보는 /2016 항목 참고

  • 재위 5년차(2017)의 행보는 /2017 항목 참고

6. 바티칸 개혁행보[편집]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에 의해,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한 직접적 원인이 바티리크스 사건이었다면 더욱 근본적 원인으로는 바티칸 내 최고행정기구인 교황청의 관료제적 폐해와 부패라는 분석이 있었다. 국무원장과 궁무처장을 겸임한 반개혁파 타르치시오 베르토네가 이탈리아 출신들을 대거 요직에 앉혀 사실상 최고 실력자로 군림했으며, 그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 출신-교황청 관료-반개혁 세력이 온갖 부패와 전횡을 저지름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사실상 고립되어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탈리아 출신들로 관료들을 가득 채워 놓은 교황청에서, 독일 출신의 베네딕토 16세는 파벌이 전혀 형성될 수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어디든 고관대작이 존재하는 곳은 파벌이 존재하며 파벌이탈죄는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중범죄로 간주한다.

대표적으로 베네딕토 16세는 바티칸 은행을 개혁하려고 했으나, 바티칸 은행을 관할하는 베르토네 국무원장의 음해와 방해로 실패했다고 한다. 교황청의 2인자 비가노 대주교 역시 교황을 보필하여 교황청 개혁 작업에 나섰으나, 이후 베르토네 국무원장에 의해 상대적으로 한직인 미국 주재 교황 대사로 유배발령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교황과 비밀편지를 주고받던 비가노 대주교와 교황의 집사 파올로 가브리엘레가 조직적으로 비밀편지를 유출한 것이 바티리크스라는 분석이다. 이는 바티리크스의 배후로 알려진 가브리엘레 집사가 큰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8년의 징역형까지 가능했으나 18개월의 징역형만을 선고 받았고 그나마 2개월 후 교황에 의해 사면됐다는 정황으로도 방증됐다. 요컨대 부패척결을 위해 신임했던 개혁파 비가노 대주교와 가브리엘레 집사가 교황청에 의해 무력화되자 자진사임했다는 것.[28] 이후에도 바티리크스의 처리과정에서도 베르토네가 도청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따라서 차기 교황은 바티칸을 개혁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교황 유력후보였던 밀라노의 안젤로 스콜라 추기경은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과 안젤로 소다노 수석추기경으로 대표되는 교황청의 반발에 의해 이탈리아 추기경 표가 갈려 밀려났다고 한다. 이상의 연합뉴스 링크에 의하면 바티칸 내부관계자들은 이와 같은 이전투구가 쿠리아 세력의 '질투와 경쟁심' 때문이었다고 하니 내부분열은 상당했던 모양. 결국 비유럽파와 개혁파의 응집에 의해 프란치스코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는 정황이 제기되었고, 따라서 이들의 지지를 업은 프란치스코에게 교황청의 개혁과 부패 말소는 숙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외신을 비롯한 대다수 언론에서도 부패척결과 관료주의 타파를 새 교황의 대표적인 직면과제로 꼽았다.

이와 관련한 프란치스코의 개혁 행보에 관해서는 /개혁 항목 참고.

※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지자들과 함께 부패한 바티칸 추기경들과 관료들과 싸우는 내용이 들어있는 책이 번역되어나왔다. 잔루이지 누치(Gianluigi Nuzzi)의 "성전의 상인들(원제: Via Crucis. Da registrazioni e documenti inediti la difficile lotta di Papa Francesco per cambiare la Chiesa, 영역 제목: Merchants in the Temple: Inside Pope Francis's Secret Battle Against Corruption in the Vatican)". 전작인 "교황 성하(Sua Santità. Le carte segrete di Benedetto XVI)"도 번역되길 빌어본다.

7. 2014년 방한[편집]

동북아시아, 특히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이 깃들기를 빕니다.


자세한 항목은 프란치스코(교황)/한국 방문을 참조하자.

8. 기타[편집]

성 말라키의 예언에 따르면 예언에 명시된 마지막 교황. 그런데 예언 내용인 '로마인 베드로'가 어떻게 꿰어맞춰도 맞는 내용이 나오지 않아서 다들 잊은 듯. 교황청이 말라카이의 예언이 가톨릭 교회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기는 했지만, 예언 내용 자체가 찝찝해서 일부러 입에 담지 않는 느낌도 든다. 마지막 교황은 흑인 교황이라던 출처 미상의 떡밥[29]도 분쇄되었고 결국 '교황이 그래도 이탈리아인이지 않냐는!'이란 식의 우기기만 남았다고 한다. 말라키의 예언이라는 것이 16세기까지 존재 자체가 언급된 적도 없거니와 끼워맞추기에 불과한 쉰 떡밥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인 마당에 거론하는 자체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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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8일, 바티칸 옆 골목에 등장한 '슈퍼 교황' 그래피티.
슈퍼히어로의 자세를 취한 교황이 든 가방에 적힌 단어는 '용기(VALORES)'이다.


국내 잡지 시사in에서는 지도자의 격은 집단 전체를 달리 보게 한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시사in의 진보적인 성향과 교황의 행보를 연결시키면 저런 평가가 나올 만하다는 중론. 종교를 초월한 교황의 인기에 대해 뉴욕타임스진정한 리더를 원하는 현대인의 갈망이 교황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어렸을 적엔 독실한 가톨릭 신자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지만 무신론자로 유명한, 미국 HBO의 유명한 토크쇼 호스트 빌 마허는 프란치스코가 교황에 취임된 이후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행보를 할 때마다 "내가 장담하는데, 이번 교황은 무신론자일 거야 ㅋㅋ"나 "지금 바티칸에선 독약을 준비하고 있을 거야"[30]같은 농담을 하면서 그의 행보를 칭찬해주었다. 다른 가톨릭계 토크쇼 호스트인 스티븐 콜베어[31] 역시 마와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반응을 매번 보여주었다.

교황이 일반 사제 복장을 갖추고 몰래 바티칸을 빠져나와 노숙인들을 만나는 등 잠행을 한다는 설이 돌았다. 이런 추측이 나오는 이유는 교황이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고, 추기경 시절 실제로 밤에 몰래 나와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주고 함께 나눠먹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베네치오 리바라는 장애인을 감싸안은 모습 또한 많은 이들의 감명을 불러일으켜 만화로 그려지기도 했다. 번역된 곳

2013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로 뽑혔다. 하지만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면 으레 하게 되어있는 인터뷰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미국의 남성잡지 에스콰이어가 교황을 올해의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했다. 지마라가 아닌 소박하고 검소한 백색 수단에 수수한 검은 구두를 신은 차림새가 교회 개혁을 위한 행보에 부합하며 교황의 가치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며 호평했다. 2015년에는 미국 방문을 앞두고 스포츠 스타들의 피규어를 전문 생산하는 블리처 크리처가 제작한 피규어가 등장했다. 스포츠 스타는 아니지만 블리처 크리처가 피규어의 대상으로 삼을 만한 인물이라는 게 블리처 크리처의 창업주 매슈 호프먼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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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이전까지 쓰이던 포프모빌[32]. 대부분 메르세데스-벤츠의 값비싼 특수 방탄 개조 SUV 차종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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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용하게 될 포프모빌. 상대적으로 훨씬 저렴한 현대 싼타페 2.2 디젤 모델인데, 심지어 방탄 개조같은 것조차 하지 않은 무개차다! 해외 기사 한국 기사 [33] 이 포프모빌은 2014년 교황의 한국 방문 당시 현대차가 지원했던 모델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전 교황들이 주로 값비싼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를 이용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행보인데, 프란치스코 교황의 검소한 품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차를 쓰기로 한듯. 앞서 설명했지만 방탄 개조같은 것은 하지 않은 무개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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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방문때는 이스즈의 픽업 트럭을 개조한 것을 사용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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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왔을 때는 방한 때 기증된 기아 카니발을 사용했다.

그 외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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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용 건설차량 기아 카렌스급의 차 폭스바겐 투란도 이용하였다.

씀씀이가 매우 소탈하고 검소하기로 유명하다. 50달러도 안 하는 저렴한 스와치 시계를 사용하며, 이동 간에 사용하는 차량으로 추기경이었을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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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4.

이탈리아로 왔을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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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소형차를 이용한다

으레 교황용 의전차는 메르세데스-벤츠의 특수개조 SUV차량을 이용해온 것이 관례이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런 고급차를 마다하고 16,000달러도 안 하는 구형 포드 포커스. 국산차로 비유하자면 아반떼나 i30 정도 수준이다. 게다가 지금 포커스는 3세대이지만 교황의 포커스는 2세대 전기형으로, 2004년식 차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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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몰고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터뷰에서 "사제들이나 수도자들이 고가의 최신 차량을 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물론 업무 목적으로 자동차가 필수적이긴 하지만, 고가의 비싼 차를 구입하기 전에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의 어린이들이 얼마나 많이 굶어죽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라며 성직자들의 사치 자제를 몸소 주문하였다. 바티칸 근처에서 돌아다니는 SCV 009** 번호판의 파란색 포드 포커스를 발견하면 그것은 교황의 차이다. 2013년 남미 방문 때에도 쏘울급, 혹은 벤가급의 소형 MPV인 피아트 이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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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전차로 사용했으며, 2014년 여름 내한 때에도 한국산 소형차를 의전차로 사용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면서 기아 쏘울을 의전차로 사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준비 당시 국산 경차 및 소형차로 택한다는 소식에 국내 중-소형차 4사 관계자들이 긴장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교황 의전차로 선정될 시의 홍보효과를 노릴수 있기 때문. 특히 경차를 만드는 한국GM기아자동차가 큰 관심을 보얐는데 최종적으로는 경비 문제 등으로 기아 쏘울이 의전차로 선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방탄차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저격 사건 이후로는 경호를 위해 방탄차를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경우에는 "정어리 깡통 안에서는 소통이 안 됩니다."는 말을 하며 의전 때는 앞서 말했다시피 소형차를, 퍼레이드 때는 사방이 뚫린 무개차를 즐겨 탄다. 심지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 지역 방문 때도!! 물론 근위대들은 심히 죽을 맛 프란치스코 교황 본인은 경호 문제에 대해 "내 나이쯤 되면 잃을 것도 없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라는 말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있다. # 쿨가이 프란치스코 하지만 바티칸과 성하의 근위대는 잃을 것이 많지 말입니다...

  • 오펠 CEO Karl-Thomas Neumann이 최근 바티칸을 방문하여 친환경차 Ampera-e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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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면이 합쳐져서 상당히 인기가 많은 교황이다. 당장 나무위키에도 하위문서가 있는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일하다. 하지만 개혁적이고 동성애자 및 무신론자들에게 관용적인 면 등으로 인해 극렬 안티가 많고, 심지어는 적그리스도 소리까지 듣는 교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비종교인들은 그에게 매우 큰 감동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베네딕토 16세의 퇴위와 연관시켜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의 재임기간을 종신제에서 임기제로 바꾸려는 게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하기도 한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기에 대해서 어떤 언급도 한 바 없지만, 만약 프란치스코 교황도 전임자처럼 선종이 아닌 생전 퇴위를 선택한다면 가톨릭 내에서 교황 임기제에 대한 논란이 불붙을 가능성도 있다. 어떤 추기경 曰: 교황은 로마워싱턴 D.C.에 있는 선출직 공무원 따위가 아니란 말입니다!

2014년 3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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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성하께서 성전을 원하신다! 검... 아니 총을 들어라!!!(…)


번역기 하나가 교황을 전쟁광으로 만들어 버렸다(…)[34] Deus Vult! 우르바노 2세의 재림 사실은 전쟁은 절대 안 된다고 2번 강조한 것 뿐이다. 이것때문인지 방한 이후 교황의 인기가 급격히 올라간 한국 인터넷 상에서 교황의 발언마다 교황님께서 (OO와의) 전쟁을 원하신다!!결코 다시 전쟁! 결코 다시 전쟁!!, 성전이다 우매한 이단들아! 같은 장난스런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는 개드립이 생겼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호의가 섞인 농담이지, 부정적으로 비꼬는 의미가 아니니 가톨릭 위키니트들은 안심하자. 심지어 네이버 검색어에도 서로서로 연관검색어로 나온다. 그렇게 신자(?)가 늘어납니다 교황이 창문을 통해서 손으로 하트를 그리는 모습도 있는데 이게 얼핏 보면 버섯구름(...)인지라 관련 드립이 또 흥했다. 하필 창문의 공기구멍도 방사능 표시 모양과 비슷하다. 성하께서 핵전쟁을 원하신다 우매한 이단들아! 결코 다시 핵전쟁! 결코 다시 핵전쟁!

2014년 방한 때 했던 연설 때문에 아이언맨 드립이 흥하기도 해 처음에는 사진만 합성하다가 나중에는 플짤 버전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런 교황마저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에 대해서는 전세계의 협력 하에 군사적으로 토벌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이들은 그 만한 비난을 들어도 싼 놈들인건 맞다. 매우 많은 악행을 저지른 북한에게조차도 평화를 내세운 교황이 저런 말까지 할 정도라면 어느 정도일지는 해당 항목 참고. 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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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맥기?[35]
교황의 젊었을 적 모습으로 알려진 사진. 다행히도 이 사진은 합성이다. 하지만 필리핀 방문 당시의 사진을 보면 헤비메탈이랑 인연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수화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란 의미다.

2014년 5월 5일/12일자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기사를 쓴 사람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인터넷은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제공하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며 극찬했다. 하지만 "그러나 인터넷에 계속 접속해 있으려는 과도한 욕망은 친구와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소외될 수 있다"라는 발언으로 인터넷 중독에 대한 주의를 촉구했다. 인터넷을 극찬한 반면 인터넷 중독을 조심하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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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보 빼기가 특기인듯 하다.그 와중에 추기경 얼굴[36]

2015년, 교황의 친구 엘리자베타 피크의 책 <교황 프란치스코의 인생과 혁명>을 바탕으로 한 아르헨티나 영화 Francis: Pray for Me가 개봉했다. 해당 영화는 2016년 3월 10일 국내 개봉 예정.

2016년 촬영 예정인 종교 영화 <Beyond the Sun>에 본인 역으로 출연 예정이라고 한다.(...) 가톨릭 역사상 최초로 교황이 영화에 출연해 연기를 하게 되는 것. 다만 예전에 비오 12세도 연기까지는 안 했지만 독일 영화에 찬조출연한 적은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8aLzycbkH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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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배우 조나단 프라이스[37]도플갱어 수준으로 닮았다. 이미 해외에서는 유명한 사실. 심지어 이런 동영상이 만들어지거나 대놓고 프라이스가 교황을 연기하는 중이라는 드립도 있다. 하필 프라이스가 에비타에서 아르헨티나인인 후안 페론 역을 맡은 적도 있어서, 프라이스의 새 역할도 아르헨티나인이라는 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거기다가 왕좌의 게임에서는 칠신교의 수장인 하이 스패로우 역할을 맡았는데 작중에서의 행적이나 역할도 상당히 매치된다! 다만 조나단 프라이스는 부패로 악명높은 추기경인 토머스 울지 역도 했다는 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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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문구가 전혀 달라보이는 것은 기분탓인거다. 안경이 교황님이라고 한다 안경이 본체?

8.1. 홀리 슈퍼게임[편집]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16강 7경기가 말 그대로 바티칸 동족상잔 매치[38]였던지라 바티칸 트위터에서 이런 이미지를 유머로 올릴 정도였고 이런 이미지가 올라와서 진짜 따로 본…줄 알았는데, 해당 글의 리플에 달린 링크를 보면 저 사진은 2013년 5월 4일에 보도된, 전혀 다른 일의 사진이다. 홀로 외로이 앉으신 교황님 귀요미 그래서 메시에게 버프를 걸어줬나 이런 말도 안되는 치트가 다 있나(…)

하지만 이는 서막에 불과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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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께서 독일과의 전쟁을 원하신다.
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독일의 대결이 성사됨으로 인해, 전/현직 교황이 선출된 국가간의 홀리한 슈퍼매치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젠 경비병과의 대결이 아니라 전직 교황과의 파이널 스테이지!!! 전직 교황이었던 베네딕토 16세독일 출신의 요셉 라칭어 추기경이었고, 이례적으로[39] 생존해 있던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대단히 스케일이 커진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교황청은 "교황께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 이 경기를 관전하지 않았다"고 발표했으며교황의 버프가 사라지자 메시도 힘을 잃었다 베네딕토 16세의 비서인 게오르크 겐스바인 대주교도 "베네딕토 16세께서는 결승전을 직접 보지 않고 먼저 주무셨다"고 밝혔다.

[1] 사진이 아니라 초상화다. 기사 [2] '베르골리오'라는 표기로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지침에는 이탈리아어식으로 '베르골료(/berˈɡɔʎʎo/)', 스페인어식으로는 '베르고글리오(/βerˈɣoɣljo/)'라고 표기하게 되어 있다. 가톨릭 굿뉴스에서는 '베르골료'로 표기하고 있지만, 국립국어원에서는 비록 이탈리아계더라도 스페인어를 쓰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점을 들어 스페인어식인 '베르고글리오'로 표기를 심의하였다.[3] 이전의 요한 바오로 2세의 범세계적인 지지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둘 다 이전의 가톨릭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준 점에서 공통점도 많다.[4] 물론 아르헨티나인이라 이탈리아'계'가 정확하긴 하지만, 이탈리아인임은 확실하다. 아, 그렇다고 그가 이탈리아 국민인 것은 절대로 아니다.[5] 해당 항목에 자세히 나오지만 전임 교황들인 요한 23세바오로 6세를 본받겠다는 이유로 2개의 이름을 나란히 붙인 이름을 처음으로 썼고, 거기에다 자의적으로 '1세' 를 덧붙여 부른 것은 처음. 아마 요한+바오로의 알파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듯하다. 거기다가 요한 바오로 1세는 교황으로 선출될 당시에 이미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여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의 죽음 이후에 교황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았던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 추기경을 교황으로서 가장 적격인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마도 후임자로 하여금, 자신이 추진하고자 했던 정책들을 이어나가 달라는 무언의 부탁으로서의 의미도 있었던 모양이다.[6] 하지만 같은 죄목으로 납치된 교구 교사 4명과 그들의 남편 2명은 이후 실종된다. 총 8명이 납치된 상황에서 신부들 2명만 빼낸 것이다.[7] 이 시기 라틴아메리카 군사 독재정권이 얼마나 잔혹했느냐면, 군사독재 시절 한국에서조차 적용하지 않던 법적 처벌로서의 연좌제가 당당히 집행됐고, 심지어 재판도 없이 그저 정권에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수만 명을 항공기에 태워 대서양이나 태평양 앞바다에 던져버리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제국 주변의 안정이라는 미명 하에 그걸 적극 지원했다. 이슬람처럼 서방을 무작정 증오할 만한 다른 이유도 없고,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자신의 제국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세속 가치관을 서방과 공유하기까지 하는 라틴아메리카인들이 괜히 미국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다.[8] 로메로 대주교 암살범들은 후에 미국에서 대주교의 유족들의 고발로 재판을 받아 유죄판결이 나기는 한다.[9] 김대중전두환에게 사형 선고를 받고 감옥에 수감되었을 당시, 이를 알아낸 요한 바오로 2세가 직접 전두환에게 제발 김대중의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간청했고, 전두환은 이를 마지 못해 들어줬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간청 덕분에 살아난 김대중은 이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10] 나머지 생존자 프란시스코 할리스 신부는 이후 독일로 망명한 이후 은둔생활 중으로, 어떠한 발언도 하지 않았다.[11] 굉장히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좌파 일각엣서는 요한 바오로 1세와 요한 바오로 2세 시기 로마 교황청이 남미의 군사 쿠데타를 지지했다는 의혹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가톨릭의 텃밭 남미에서 좌파정권을 몰아내고 집권했기 때문이다.[12] 정확하게는 페론당이 분당되어 나온 정당인 "승리를 위한 전선" 소속이다.[13]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표정변화에 주목해 보자.[14] 두 사람 뒤에서 웃고 있는 사람은 베네딕토 16세 때 교황청의 2인자로 군림하던 국무원장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이다. 얼마 뒤 베르토네 추기경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때 잘리게 된다.[15] 일반적으로 콘클라베의 구체적 사항은 잘 알려지지 않지만 2005년 콘클라베 당시는 어느 정도 바티칸 취재기자들에게 퍼져 있었다고 한다. 당시 유력 후보는 보수성향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과 개혁파의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이었으나, 마르티니 추기경은 파킨슨병 때문에 교황 후보를 포기했고, 개혁파가 대타로 찾은 후보가 바로 베르골료 추기경이었다고 한다. 초반 투표에서 라칭거 추기경이 1위였으나 베르골료 추기경도 40표 이상을 확보해 다시 투표를 해야 했는데 베르골료 추기경이 자신을 지지한 추기경들에게 라칭거 추기경을 지지할것을 부탁하면서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에 선출되었다고 한다. 베르골료 추기경이 중도사퇴한 이유는 바티칸에 그가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정권과 결탁했다는 소문이 퍼진 탓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16] 2004년 12월 30일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크로마뇽 공화국(República Cromañón)'이라는 이름의 나이트클럽에서 화재가 발생해 194명이 사망하고 15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다친 대참사. 말이 나이트클럽이지 사실은 큰 시설로, 화재 당시에는 3000명이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고 한다. 소화기나 스프링클러 설치 등 화재 안전 대책이 미흡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이 설립 허가를 내 준 것이 밝혀져 이후 정부는 상당한 욕을 얻어먹었다.[17] 신앙교리성성 장관 뮐러 추기경의 출간기념회에 연사로 나왔으며 교황이 직접 초대했는지의 언급은 없다.[18] 흔히 특히 성소수자, 비종교인, 반개신교인들이 가톨릭에선 동성애를 온전히 인정한다고 착각하는 것이지만 본래 가톨릭의 공식입장이다.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것과 동성결혼은 다르다고 보는 것.[19] 동성결혼은 인정하지 않지만, 동성애자를 교회의 구성원으로 존중한다는 방향으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당초 방침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20] 하지만 말이 그렇지 사실상 교리를 뒤엎어버리겠다는 걸 적절한 언어유희로 말을 숨겨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는 일부 교부들의 트릭이라며 반발도 만만찮다. 애초에 그 몇몇 교부들 중 1명인 독일의 발터 카스퍼 추기경도 이혼 후 재혼한 신자들[21]에게 따로 재판절차 없이 영성체를 허용하겠다고 20년 전부터 주장해오다 당시 동료 추기경이던 베네딕토 16세에게 호되게 까인 전적이 있다. 그리고 그걸 올해 시노드에서도 주장하다 또 까이고 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21] 교회법에 따르면 조당으로 영성체가 거부된다.[22] 그러나 교황청 측에서는 교황이 킴 데이비스 측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23] 애초에 가톨릭도 미국이나 한국의 개신교만큼 대놓고 막나가지 않아서 그렇지, 동성애자들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신부나 신자가 꽤 많은 만큼, 교황 입장에서는 이들도 존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24] 원제: Dialogo tra credenti e non credenti[25] 다산 정약용의 조카.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방한 때 어머니 유소사 체칠리아, 여동생 정정혜 엘리사벳과 함께 시성되어 성인품에 올랐다. 아버지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시복되었다.[26] 프란치스코 교황이 '무신론자들은 본인의 양심에 따라 살아라'라고 말했다고 해도, 가톨릭 신앙이 필요없이 착하게만 살면 구원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앙을 강요하는 것이 무의미함과 하느님의 자비로움을 강조하는 언급으로 봐야 한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가톨릭은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느님이 알아서 판단하실 몫'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27] 종교가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아브라함계 종교 사회에서 무신론자는 정말로 가혹한 대우를 받는다.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말하는 것이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에 비견될 정도. 성경이나 코란에서는 무신론자를 죽이라는 구절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이를 실제로 행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무신론을 테러리즘으로 취급하는 것이 법률에 명시되어 있을 정도다.[28] 프레시안동아일보의 보도 참조.[29] 좋게 말해서 떡밥이지, 흑인 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인종차별적 모욕이다.[30] 개혁적인 행보를 보이다가 교황 재위 33일만에 선종한 요한 바오로 1세의 죽음과 관련된 음모론과 관계가 있는 농담인 듯하다.[31] 아일랜드 출신의 후손답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데, 스스로를 '세계 최강의 가톨릭'이라고 부른다. 교황도 제쳤다는 뜻. 가톨릭 사제나 신자와 교리 및 성경 지식에 관한 논쟁에서 매우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자기가 국가 수반으로 있는 콜베어네이션(Colbertnation)의 전임 사제도 예수회 출신이다.[32] 교황이 대외적으로 움직일 때 의전용으로 쓰는 차[33] 그런데 한국 기사에서의 덧글을 보면 "교황님 제발 급발진 조심하십시오" "검소해 보이니까 현대차를 쓴다" "뚜껑이 없으니 물은 새지 않아 좋겄네" 등등의 조롱조 덧글이 은근 많다. 사실상 현대가 까일 짓을 해오긴 했지만서도 이런 땐 좀 자제합시다 하지만 그래도 한국 차가 선점된 점에 대해 좋아하는 댓글도 적지 않다. 주로 비꼬는 쪽은 교황이나 한국을 욕하는게 아니라 현대차가 선정된 점에 대해 불만을 가진 듯 하다. 하여간 교황청 내에서 최초로 한국차가 선정된 점에 있어선 카매니아들 모두 적잖게 놀란 듯하다.[34] 애초에 번역기를 탓할 것도 못 되는 게, 번역기는 그저 'never' 를 '결코' 라고 번역했을 뿐이다. 그리고,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결코'는 (아니다’, ‘없다’, ‘못 하다’ 따위의 부정어와 함께 쓰여)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라는 의미, 즉 부정의 의미로 쓰인다. '결코 무엇을 하지 말라' 고 사용하는 표현이지, '결코(반드시) 무엇을 하라는 표현이 아니라는 것. 즉, 제대로 번역된 건 맞다. 그저 현대 한국어 언중이 '결코' 라는 표현을 사전적 의미보다 폭 넓게 해석하기에 가능해진 일 뿐이다.[35]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36] 물론 실제로는 연출이 몇 개 섞인 영상이다.[37] 대중들에겐 캐리비안의 해적엘리자베스 스완의 아버지 웨더비 스완 총독 역, G.I. Joe 실사영화 시리즈의 미국 대통령 역, 왕좌의 게임하이 스패로우로 유명하다.[38]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사람인데 하필 바티칸 경비는 스위스 용병들이 맡아가지고… 거기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명한 축구광이다.[39] 일반적으로 교황은 죽은 뒤에 승계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