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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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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POSCO(POhang Iron & Steel COmpany)

파일:SWs27OU.jpg

형태

주식회사

설립

1968년 4월 1일

국가

대한민국

본사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안로 6261

그룹 시가총액

33조 6,105억 원
(2018년 1월 21일)#

공식 홈페이지


1. 개요2. 연혁
2.1. 창업 및 포항제철소 건설2.2. 광양제철소 건설2.3. 이후 현재까지
2.3.1. 대략적인 개관2.3.2. 2009년 ~ 2018년
3. 사가4. 역대 임원
4.1. 명예회장4.2. 회장4.3. 부회장4.4. 사장
5. 계열사
5.1. 철강5.2. 엔지니어링 & 건설5.3. 무역5.4. IT5.5. 에너지5.6. 소재·화학5.7. 지원5.8. 기타5.9. 비영리재단5.10. 영리재단
6. 특징 및 이야기거리
6.1. 공화 기업6.2. 조직문화6.3. 연봉6.4. 초대 회장6.5. 비판6.6. 교육6.7. 직원 복지6.8. 무노조6.9. 광고6.10. 기타

1. 개요[편집]

세상을 더 넓게 Unlimit the Limit


포스코의 캐치프레이즈

50년의 도전, 100년의 새꿈


포스코 창립 50주년 기념 슬로건


세계 1위의 제철회사[1]

대한민국의 대기업이자 포스코그룹의 지주회사.[2]

철강산업을 주 산업으로 하며, 2018년 현재 포스코그룹은 대한민국에서 시가총액 5위의 기업 집단으로 자산규모는 약 69조 8천억원이다.

전신은 1968년 설립된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이며, 2002년 공식 회사 명칭을 포스코로 변경하였다.[3] IMF 외환위기 이후 민영화 과정을 거쳐 2000년에 완전 민영화가 되었으며, 몇 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포스코와 그 계열사가 공식적으로 기업집단으로 분류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전문 경영인이 운영하는 대기업 집단이며, 지배구조 최우수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2. 연혁[편집]

2.1. 창업 및 포항제철소 건설[편집]


포항종합제철공장 착공식


포항종합제철 제2기 설비공사 준공식 및 화입식


포항종합제철, 제 3기 설비확장공사 준공식


포항종합제철, 제 4기 설비 준공식

60년대 우리나라의 종합제철소 건설은 시작부터 장애물이 많은 상황이었다. 세계은행은 채산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국내외의 많은 기관이나 회사들도 마찬가지로 제철소 건설을 회의적이라 보았다. 그러나 산업화 초입에 들어선 입장에서 철강의 자체생산은 필수불가결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제철소 건설을 성사시켜야 했었다고 한다. 이에 군인 출신으로 박정희의 신임을 받던 박태준한일기본조약 배상금을 전용하는 획기적 아이디어로통수치기 제철소 건설을 시작할 수 있었으며, 1968년 4월 1일 회사를 설립하고 70년부터 건설에 들어간다. 물론 그 결과 일본이 각출한 배상금은 실제 피해자에게는 10%도 돌아가지 않았으나 이후 포스코가 대성공한 이후에도 당시 피해자들에게는 한푼도 낼 수 없다고 맞섰고, 그 결과 양금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이후 포스코에 소송을 거는 등 꾸준한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 당시 소송에서 포스코는 김앤장을 동원하여 일명 찍어누르기를 시전하여 소송에서 승소하였으나, 본래 중립을 지키는 판사도 이례적으로 판결문에 "법리적 배상 책임과 별도로 도의적 지원을 하는게 옳지 않겠느냐"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등 포스코의 태도는 상당한 논란거리다. 하지만 반일에 가려져 배상이 있었으며 이를 포스코가 전용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부지 선정에서도 잡음이 있었는데, 당시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장이었던 황병태[4] 등의 에 의하면 당시 대한중석 사장이던 박태준이 종합제철추진단장으로 사업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제철소 후보지는 충남 서천(비인)[5], 경남 울산[6][7], 삼천포[8] 등 3곳이었고, 포항은 후보에도 없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도 자기고향 챙기기는 여전해서 충남 출신인 공화당 김종필 의장과 김용태 원내총무(현재의 원내대표격)가 서천을 밀고,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이 울산을 밀고, 박정희의 대구사범학교 동창 서정귀[9]가 삼천포를 밀고 있었다.[10] 큰 돈이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각 지역을 미는 쪽에서는 대규모 투자라 거의 반목숨걸듯 들이댔고 박정희는 세 부지를 둘러보고 신중히 결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황병태만 있는 자리에서 슬쩍 물어보고 포항에 대한 설명[11]을 들은 후 연극을 하자고 했다고 한다. 이후 열흘쯤 후 경제동향 보고회 자리에서 뜬금없이 황병태를 찾은 후 제철소 부지 설명을 요구하고 포항 이야기를 하게 하더니 즉석에서 포항으로 낙점했다고 한다.[12]구두로 전하는 이야기라 영상, 녹음도 없고 당시 인물들도 사망한 사람도 많기 때문에 다소 MSG가 첨가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포항제철소는 채산성이 없었기 때문에 건설은 83년 4기 공사가 완공될 때까지 총 13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첫 쇳물은 73년에 쏟아졌다. "선조들의 핏값이니선조 허락은 안 받았지만[13] 성공하지 못하면 영일만에 빠져죽자"는 정신이 이룬 성과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우향우 정신으로[14] 포스코 전체에서 아직도 유효한 이념이다. #1 #2

2.2. 광양제철소 건설[편집]


광양제철소 1기 설비공사 준공식


광양제철 2기 공사 준공


광양 제철 3기 준공

현대차그룹현대제철과의 치열한 경합 끝에 포항제철 측이 제2제철소 사업권을 갖게 되었고[15], 지리적인 영향을 다각도로 종합해서 전두환 정권 때 광양만에 있는 금호도가 제2 제철소 부지로 결정되었다. 다른 후보지[16]울진은 너무 북쪽에 있어 안보 위협이 문제가 되고, 서산시·태안군의 아산만은 수심이 얕고 조수 간만의 차가 크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반면 광양만은 수심이 깊고 조수간만의 차도 그다지 크지 않았을 뿐더러 전라도에 있다는 점에서 균형발전에도 들어맞아 높은 점수를 받았다.[17][19] 부지조성작업을 거쳐 1985년 시작된 광양제철소 건설은 1992년 4기 공사가 완결됨으로써 포스코는 조강생산 2,080만 톤(연간)을 달성하게 되었다.

파일:external/monthly.chosun.com/0906_034_4.jpg

제철소 부지가 굉장히 크다.대지 넓이가 무려 2,080만㎡(630만평)[20]로 세계 최대 규모의 제철소이며 대한민국 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생산공장 중 단일부지로는 제일 넓다.[21] 1992년 제철소가 세워진 이후에도 잦은 간척 사업이 이뤄지면서 넓이가 더 넓어졌다. 넓이 만능 측정기 여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며 기초자치단체서울 성동구의 경우 면적이 1,684만㎡ 정도인 것을 볼 때 일개 제철소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제철소 견학을 가 보면 공장 안내를 해 주는 간부직원이 포항제철은 주조부터 압연까지의 공정이 U자 형태로 돌아나오게 배치되어 있지만, 광양제철은 그보다 뒤에 지은지라 신기술이 적용되었고 부지도 훨씬 넓어서 용광로 주물부터 압연까지 전체 공정이 일자형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설명해주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제철소 뒤에 있는 금호동 사원 주택단지까지 합치면 조그마한 신도시[22]라 불릴 정도. 실제 제철소와 광양 시내는 교량으로 연결된 또 다른 도시처럼 구성되어 있다.

여담으로 이 광양제철소가 들어선 광양만 지역은 본래 어업, 특히 김 양식이 대단히 발달한 지역이었다. 마침 김(金)과 철을 뜻하는 한자가 같아서 호사가들이 이에 대한 말을 많이 하는 편. 광양제철소 한켠에 이를 기념하는 비석이 남아 있으며 현지 어민들은 이주 보상금 및 제철소 취업의 우선권 등의 보상을 받고 광영동 등에 이주했다.

2.3. 이후 현재까지[편집]

2.3.1. 대략적인 개관[편집]

이후 포스코는 1992년 김영삼 정부의 세무조사로 박태준 회장이 일본으로 떠나는 등 체제가 흔들리면서 부진을 겪을 뻔 했으나 다행히 위기를 모면했다. 박태준 회장은 1997년경 재보선으로 복귀했고 DJP연합으로 정권교체를 이루고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업은 다시 안정되었다. 뉴욕런던 증시에 상장되는 등 기업가치를 높였으며, 외환위기 이후 2000년에는 정부지분을 완전 매각함으로써 민영기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23]

2007년에는 차세대 제선 공법인 파이넥스 상용화 설비를 준공하여 운영 중이며, 인도베트남을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진행 중이다.

포스코의 경우 외부에서 그룹 회장이 온 경우는 단 한 번, 김영삼 정부 시절 박태준 사단을 퇴출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만제 전 회장 뿐이다.[24] 이외에는 모두 포스코 내부 인사가 임명되었는데, 특히 이구택 전 회장은 포스코 공채 1기이다. 하지만 공기업에서 출발한 기업이니만큼, 여전히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편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박태준 사단은 대거 복귀하였는데 김대중 정부 시기 5대 유상부 회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6대 이구택 회장에게 자리를 내주고 이구택 회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7대 정준양 회장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회장 교체 과정에서 모두 정치권 개입이 있었다는 잡음이 있었다. 그리고 정준양 회장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사퇴(...)했고 후임으로 권오준 회장이 취임했다. 그리고 권오준 역시 문재인 정부 성립 11달 만에 사임하며 그 전통?을 이어갔다. 포스코 회장 임기는 대략 5년이다.

2.3.2. 2009년 ~ 2018년[편집]

2008년까지만 해도 포스코는 일본의 경제학자들이나 산업학자들, 심지어 일본 재계조차 두려워하던 초우량 대기업이었지만, 그러한 포스코 본사를 비롯한 전 그룹의 경영상태는 정준양 회장과 권오준 회장을 거치면서 매우 나빠졌다.

포스코의 내부 고발자인 정민우[25] 씨가 김어준의 다스 뵈이다 15회에 나와서 말하길,

"창업자이신 박태준 회장 이래로 재직한 회장들 중 가장 흠결이 많고 양아치 같은, 천박한 인간이다.", "혀를 낼름거리는 걸 보면 M이랑 똑같아요. 그래서 ㅇㅇㅇ에서 '언제 포토타임을 잡아야 할 지 모르겠다. 맨날 혀를 낼름거리고 있어서....'라고 말했어요."


라고 말하며 극딜을 퍼부었다. 사실, 정준양은 당시에 포스코건설 사장이었고, 그와 경쟁하던 윤석만 사장은 포스코 본사[철강부문]의 사장이어서 윤석만 사장의 회장 취임을 점치는 이들이 더 많았다는데, MB의 또 다른 집사이자 그 당시 실세 중 하나였던 박영준이 정준양을 밀기 위해 윤석만에게 회장 후보 사퇴를 권고했고, 이구택 회장마저 이명박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여 정준양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2008년에 대우조선해양이 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나오자 인수를 검토하던 이구택 당시 포스코 회장이 이동희 기획재무부문장(전무)에게 지시하여 포스코그룹 내부의 실탄을 점검하게 했는데, 금고에 축적된 현금이 8조 원, 2~3일 내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 5조 원으로 총 실탄이 13조 원이었다. 당시에 그 정도 실탄을 보유한 국내기업은 정말 드물었고 2018년 현재도 거의 없다. 그런데 그룹 내부의 현금이 정준양 회장 시절을 거치면서 비상식적인 인수합병과 투자 사업으로 모두 고갈되어 기본적인 운영자금 1조 5천억 원을 마련하려고 보유 주식이나 부동산, 채권 등 회사 내의 돈 되는 자산을 처분하면서까지 현금을 조달해야 할 지경까지 몰렸다. 심지어 그 돈 되는 자산들도 제 값을 받고 판 게 아니라 헐값에 팔아넘긴 경우도 빈번했고, 같은 시기에 5.4조 원에 불과했던 부채는 29조 원으로 늘어나는 등[27] 회사 상태가 껍데기만 겨우 유지할 정도로 사정이 어려워졌다.

이렇게 그룹 전체에서 빠져나간 돈의 규모가 사실상 uncountable이지만 최대 50조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이 문제에 대해 이명박, 이상득 형제가 관여했을 거라는 의혹이 있다. 그 유출된 50조 원에 의문 투성이인 해외투자 실패 사례들이 포함된다고 하는데, 그 예가 에콰도르의 작은 부실 건설회사인 산토스 CMI, 그리고 세트로 인수한 EPC 에쿼티스 인수 건이었다. 포스코건설과 포스코엔지니어링이 산토스 CMI와 EPC 에쿼티스를 800억 원에 인수했는데, 실무자들은 산토스 CMI의 가치를 100억 미만으로 산정했고, 인수를 해도 큰 효과를 못 볼 거라고 했다. 그럼에도 800억 원에 인수한 건 윗선에서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기 때문. 대한민국 여느 대기업이 거의 다 그렇지만, 창업자부터가 장군 출신인 포스코 그룹의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 특성상 절대 거역할 수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의 이 EPC 에쿼티스는 주소지인 영국 런던의 사무실에 가도 직원이 한 명도 없고 주소지만 빌려서 등록한 완벽한 페이퍼 컴퍼니였는데도 산토스보다 300억이 더 많은 550억 원에 인수하여 총 800억 원을 원래 소유주인 도밍게스라는 사람에게 지불했다. 그리고 인수 중개 수수료 300억 원을 EPC에 지불했다는데, 수수료가 에콰도르가 아니라 스위스 은행 계좌로 흘러 들어갔다고 한다. 그 다음, 해마다 증자를 해서 총 600억 원을 투입했는데, 실적이 안 좋아서 철수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매각 직전에 800억 원을 EPC 에쿼티스에 증자하고는 산토스와 세트로 묶어서 68억 원을 받고 회사의 원래 주인이었던 도밍게스가 세운 IAA에게 산토스와 EPC를 되팔았는데, 총 1,400억 원을 증자받았다는 EPC를 0원으로 손실처리했다고 하는 등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업상 손실이 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돈이 사라져 버린 것. 게다가 산토스 CMI는 중남미 각국에 지사가 있는데, 그 동안 포스코에서 산토스에 지원한 운영지원금 등의 자금이 최소 1천억 원 내지 최대 3천억 원에 달할 거라고 한다(...). 결국 산토스를 인수한 건 그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더 크고, 은밀하게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이게 사실이라면 이 한 건으로만 3,500억 원 내지 5,500억 원이라는 거액이 증발(...)한 게 된다.

한편, 국내에서는 대우인터내셔널 인수협상 때 SK그룹에서 2조 원 이하가 아니면 인수하지 않겠다고 하여 포기[28][29]했음에도 3조 4천억 원이라는 가격에 인수했다고 한다.

이후 다스 뵈이다 16회에도 정민우 씨가 나왔는데,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한 건 이들의 해외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전 세계의 쓰레기 같은 광산이나 유전, 가스전 등을 알아본 다음, 포스코나 자원개발공기업들로 매입하게 하여 투자 명목으로 자금을 투입한 다음, 그 돈을 각종 명목의 투자 손실로 처리하고 뒤로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라고 추가로 폭로했다.

이 과정에서 인수 주관사였던 메릴린치 증권에 커미션으로 최소 1천억 원 이상, 최대 3천억 원에 달하는 비용이 지출됐을 거라고 한다. 이후, 하베스트와 날의 인수 주관사도 메릴린치에서 맡았고, 다른 자원 투자 주관사도 메릴린치가 많이 맡았다(2018년 2월 27일 PD수첩 방송분 참고). 참고로 당시 메릴린치 서울지점장이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의 아들이었던 김형찬(...)[30]이다.

이 내용은 최승호 MBC 사장이 뉴스타파에서 활동하던 2014년 경에 방송했던 에피소드였는데, 내부 고발자인 정민우의 증언을 통해 신빙성을 얻게 되었다. 이후, 다스 뵈이다 15화 2부 "마적떼와 포스코"[31]에도 출연한 그녀는 이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산토스 CMI 인수처럼 1천억 단위 이상의 건은 시작에 불과하고 이보다 작은 100억 단위 액수의 건들은 수도 없이 많아서 상기한 것처럼 손실 규모가 uncountable이며, 이를 통해 이명박 정권 당시의 실세들은 물론이고, 당시 포스코의 사외이사이자 이사회 의장이었던 안철수까지 비판하였다.

여기서 나온 발언을 인용하면 정준양 때는 10원에 불과한 회사를 1,000원에 사는 식으로 포스코의 현금을 MB 일당이 빼돌렸고, 안철수는 포스코 이사회 시절 때 이런 말도 안 되는 투자들을 이사회 이사의 직권으로 모두 찬성했다고 한다.[32] 불우이웃돕기 후원, 포스텍 기숙사 건립 지원 같은 사회공헌 활동 안건 3건은 모두 반대했고, 사외이사들에게 2천 주씩 스톡옵션을 줄 때는 넙죽넙죽 받아먹었다는 것.[33]

후임이었던 권오준 때는 더 가관이어서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1,000원짜리 자산을 10원에 파는 식으로 거덜냈다고 한다. 포스코가 보유한 각종 빌딩이나 주식 등의 우량 자산을 헐값에 매각하고 정준양 때 인수했던 그 썩은 부실회사들을 기존의 그룹 내 우량회사들과 합병시키고는 직원들을 대량으로 해고했다는 것[34].

또한 권오준 회장은 차세대 사업 아이템으로 리튬을 찍었는데, 의도는 좋아보였지만 실상은 엉망 그 자체였다. 볼리비아 리튬 개발 프로젝트는 현지 정권의 자원 국유화 때문에 불가능했는데도 MOU라는 형식적인 퍼포먼스를 마치 실제 사업 계약이 성사된 것처럼 과대광고해서 리튬 투자, 나아가 자원외교에 대한 환상을 퍼뜨린 것. 그 후, 정권이 바뀌고 포스코가 아르헨티나 광산 회사 리테아에서 인수해 개발하겠다고 했다가 포기한 리튬 염호는 해발 4천 m(!!!)의 고지대에 있는 데다,[35] 지도도 명확하지 않고 전파 수신도 엉망이어서 현장 탐사취재 차 파견된 PD 수첩 담당자들과 이들을 안내하던 현지인들 모두 "(여기 오는 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라고 푸념을 늘어놓을 정도의 험지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여기서 염수를 공급 받아 가공하겠다고 광양에 건설한 리튬 가공 플랜트는 자연증발 가공법[36]이 아니라 화학약품 가공법[37]이어서 환경 영향 평가 및 경제성 면에서 수지타산이 안 맞고, 염수 공급이 안 돼서 폐배터리를 재가공(...)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호주 필바라 지역의 로이힐 광산[38]은 철 성분 함량이 포스코가 기존에 수입하던 것보다 낮고,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 지역에 있는 데다 채굴과 수송을 위한 위한 인프라도 전혀 개발되지 않은 신생 광산이라 업계 관행에 따라 할인율이 최소한 13%는 되어야 하는데, 정작 핸콕 프로스펙팅에서는 그에 훨씬 미달하는 8%의 할인율을 제시했음에도 투자에 나섰다고 하고[39], 똑같은 호주 지역의 흄이라는 석탄 광산은 경관이 매우 수려해서 니콜 키드먼의 별장이 있을 정도인 곳이라 당연히 개발이 안 될 게 뻔한 데도 그걸 개발하겠다고 계속 투자하는 등(...) 크고 아름답고 버라이어티하게 삽질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고래해체팀(...)'이라고 포스코를 삼성에게 넘기려는 계획(!)까지 세우고 추진한 팀이 있었다고 하는데, 박태준 회장의 아들 박성빈이 이걸 알아채고는 "너희들 그거 안 멈추면 그동안 해 처먹은 거 다 까발릴 테다."라고 경고해서 그 계획이 무산됐다고 한다. 그 대신, "한 텀 더 가자, 우리 사람 한 번 더 세워서 반대로 빼먹자!"로 계획을 틀어서 내세운 게 권오준이고, 그 기간 동안 리튬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뭔가 사업을 하는 액션만 취하면서 비자금을 조성해 해외로 유출시키고, 돈 되는 자산들을 헐값에 내다 팔았던 것. 그 중 하나가 포스코건설 송도 쌍둥이사옥인데, 건설비로만 3,500억 가량이 들어간 건물을 부영그룹에 겨우 3천억 원만 받고 팔았다고 한다.

이렇게 회장이란 인간이 계속해서 리튬 사업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처럼 떠들고 다니는데, 정말 중요한 건 아르헨티나의 리테아 사와 포스크를 연결하던 브로커 최 모라는 인간이 자원개발 분야에서 유명한 사기꾼이고, 이 프로젝트를 통해 홍콩의 투자자들로부터 1천억 원(!)을 땡겼다고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포스코랑 사업한다고 하니 믿을 만하다고 여긴 투자자들에게 사기를 친 것으로 보인다. 권오준이 정말로 정상적인 인간이었다면 이런 사기꾼과 일할 리가 없는 데도 같이 손잡고 일했다는 건 누군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테고, 그렇게 그 사기꾼 최 모가 투자자들에게 사기친 돈은 그 누군가와 나눠먹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리고 대외협력팀장으로서 자신이 사내에서 맡았던 업무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회사, 특히 회장을 비롯한 고위층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들이 뒤로 밀려나도록 인터넷 포털 사이트나 홍보 에이전시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B2B 기업이라서 일반 광고가 불필요했던 포스코가 5대 광고 메이저가 된 건 결국 언론 통제 때문이었다고.

이런 오만가지 삽질에도 불구하고 포스코가 껍데기나마 유지할 수 있는 건 자원외교로 부실해진 공기업 3사와 달리 포스코는 철강과 건설 같이 현금이 유입되는 기본 수익 모델이 있어서라고 한다. 그래서 회사 내부가 얼마나 곪아터졌는지 알려면 결국엔 언론에서 이를 공론화해주고 정권에서 이에 호응해 수사에 나서는 것밖에 없는데, 전술한 것처럼 대부분의 언론은 포스코의 광고비 때문에 침묵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각종 비리 문건들이 수사기관과 일부 양심적인 언론들에게 입수되어 공개되고 있어서 시간문제일 거라고 한다. 게다가 산토스 CMI 건은 브라질 사정 당국에서도 3월 말 내지 4월 초에 공개할 거라고 한다.

2015년 3월 현재 포스코건설이 10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압수수색을 당하고 이어 포스코 P&S와 포스코 플랜텍 등 여타 계열사까지 수사 대상을 확대할 조짐을 보이자 포스코 직원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 회장이 불명예 퇴진하고 수사 대상이 됐던 전례가 되풀이될까 우려하면서 수사의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리고 정준양 전 회장이 출국금지가 되는 등 포스코도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결국 정준양 전 회장은 검찰 수사를 받았고 포스코도 2015년 3월부터 11월까지 검찰수사를 받았다. 그런데, 이마저도 정민우의 증언에 따르면 우병우의 대표적인 기획수사였다고 한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최윤수우병우 라인(...)이기 때문이었다고.

포스코가 이 지경이었으니 한 번 주식을 매입하면 10년은 아무렇지도 않게 보일만큼 오래 보유하기로 정평이 난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이 괜히 주식을 매각한 게 아니었다.

투자 관련해서는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아라!? – POSCO(005490) 참조.

최근에는 철강산업 자체가 불황을 맞으면서 역사상 처음 적자를 기록했다. 주가는 날이 갈수록 최저를 갱신하는데 관세폭탄에 온갖 악재가 겹쳐서 개스코 소리 들으면서 수난을 겪고 있다.

조선업 불황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조선업 자체가 철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업종 중 하나이니... 자동차까지 망한다면? 설마.... 그나마 트럼프 정부의 무역수지 균형 추구 기조와 중국의 친환경 정책 등이 맞물리면서 LNG 수요가 높아진 덕분에 이를 운송할 LNG 운반선 수요가 2020년까지 최대 400척으로 예상되고, 그 중 대부분을 LNG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기술력을 쌓아올린 한국 조선소 3사가 대부분을 수주할 거라고 하여 이로 인한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그리고 2018년 4월 18일, 만악의 근원 권오준 회장이 사임하며 포스코에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자진 사퇴를 할 정도면 이미 꽤 많은 내부 자료들, 그것도 자신과 자신의 뒤를 봐주던 이들과 연관된 비리 관련 자료들을 파기했을 수 있기 때문에 사정기관에서 수사를 해야 전말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3. 사가[편집]


1973년 제정. 작사는 박목월, 작곡은 김동진이 맡았다. 2008년 재녹음 이전까지 후렴구는 '포항종합제철'이었다.

(1절)끓어라 용광로여 조국근대화 / 줄기차게 밀어가는 장엄한 심장
겨레의 슬기와 의지를 모아 / 통일과 중흥의 원동력 되자
내일의 풍요한 조국건설의 / 내일의 풍요한 조국건설의
기적을 이룩하는 / 우리의 포스코

(2절)녹아라 쇳물이여 조국산업의 / 성장을 다짐하는 뜨거운 동맥
고도로 닦아낸 기술과 역량 / 우리의 자랑을 세계에 심자
예지의 굳센 날개 힘차게 펴고 / 예지의 굳센 날개 힘차게 펴고
육대주로 비약하는 / 세계의 포스코

(3절)보아라 해돋이를 푸른 영일만 / 쇠와 땀의 성지에 소망의 태양
철강인의 긍지와 사명감으로 / 불타는 정열을 함께 사루자
국민의 신뢰와 축복을 받아 / 국민의 신뢰와 축복을 받아
무궁하게 발전하는 / 영원한 포스코


출처는 여기이다.

4. 역대 임원[편집]

4.1. 명예회장[편집]

4.2. 회장[편집]

현재 총 9명의 역대 회장 중 7명이 본사 사원 출신이다.

  • 박태준 (1981 - 1992)

  • 황경로 (1992 - 1993)

  • 정명식 (1993 - 1994)

  • 김만제 (1994 - 1998)

  • 유상부 (1998 - 2003)

  • 이구택 (2003 - 2009)

  • 정준양 (2009 - 2014)

  • 권오준 (2014 - 2018)

  • 최정우 (2018 - )

4.3. 부회장[편집]

  • 황경로 (1990~1992)

  • 정명식 (1992~1993)

4.4. 사장[편집]

  • 박태준 (1968~1981)

  • 고준식 (1981~1985)

  • 안병화 (1985~1987)

  • 정명식 (1987~1992)

  • 박덕표 (1992~1993)

  • 조말수 (1993~1994)

  • 김종진 (1994~1998)

  • 이구택 (1998~2003)

  • 강창오 (2003~2006)

  • 윤석만 (2006~2009)

  • 정준양 (2007~2009)

  • 이동희 (2009~2010)

  • 최종태 (2009~2012)

  • 박한용 (2012~2013)

  • 권오준 (2012~2014)

  • 김준식, 박기홍 (2013~2014)

  • 김진일 (2014~2017)

  • 황은연 (2016)

  • 오인환 (2017~ )

  • 최정우 (2017~2018)

  • 장인화 (2018~ )

5. 계열사[편집]

파일:external/www.newsprime.co.kr/208266_109886_4711.jpg

십억

매출액

영업이익

순이익

2012

2013

2014

2012

2013

2014

2012

2013

2014

철강

52,869

48,024

49,597

2,896

2,341

2,430

2,246

1,449

857

무역

26,414

25,919

31,261

212

196

413

325

10

181

E&C

9,726

10,782

10,304

339

464

314

345

147

13

에너지

2,881

3,045

2,663

267

224

137

170

117

33

ICT

1,132

1,213

1,078

29

67

44

19

22

11

화학·소재 등

3,568

3,627

3,325

166

122

119

113

58

(35)


지배구조 사업별 손익계산서.

E&C는 건설과 엔지니어링을 의미한다. 별도 재무제표의 단순합산 기준이기 때문에 실제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순이익의 사업부문별 비중이 크게 다른데 이는 포스코의 모태가 철강업으로 투자가 성숙한 덕분도 있겠지만, 무역을 영위하는 포스코대우의 특징 때문에 그렇다. 대우인터를 비롯한 종합상사들은 재화나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게 아니라 중간거래 위주라서 영업이익률이 1~2% 수준으로 매우 낮다.

5.1. 철강[편집]

  • 포스코

  • 포스코강판 : 구 포항강판, 동국제강과 포스코의 50:50 지분으로 설립된 포항도금강판과 포스코와 삼성중공업이 50:50 지분으로 설립한 포항강재공업이 합병되어 포항강판이 되었으며 2008년 포스코강판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포스코의 Full Hard(미소둔강판)을 사용하여 알루미늄 강판, 알루미늄-아연 도금강판, 알루미늄-마그네슘-아연 강판 및 컬러 강판을 생산하는 업체이자, 현재 포스코의 유일한 철강 계열사다.

  • 포스코P&S : 구 포스틸, 철강판매 및 철강 가공센터 운영 등 대우인터 흡수 합병 전, 포스코의 철강상사 역할을 했으나, 대우와 사업분야가 겹치는 한계로 합병되었다. [40]

  • SNNC : 페로니켈(Fe-Ni), 뉴칼레도니아-대한민국 합작회사

  • 포스하이메탈 : 페로망간(Fe-Mn) 생산회사로 포스코에 흡수합병되었다.

  • 포스코특수강 : 구 삼미특수강 강봉 및 강관부문→창원특수강, 지금은 세아그룹으로 넘어가 세아창원특수강이 되었다. 포스코는 국내 주요 철강업체 중 가장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자랑하지만[41] 특수강 분야는 세아그룹이 꽉 잡고 있는지라[42] 구조조정 차원에서 매각한 것으로 보인다.

5.2. 엔지니어링 & 건설[편집]

  • 포스코건설 : 舊 포스코개발, 종합건설

    • 블루O&M : 환경기초시설 운영

    • 메가에셋 : 부동산관리

    • 포스코엔지니어링[43] : 구 대우엔지니어링, 인프라산업 엔지니어링

    • 호텔라온제나 : 구 범어세인트웨스튼호텔 --포스코엔지니어링이 수주해서 시공하다가 공사비를 받지 못해서 대물로 인수하였음

  • 포스코플랜텍 : 舊 포철산기 + 포철기연, 플랜트설비

  • 포스코A&C : 설계/감리/시공관리

    • 포스코A&C건축사사무소

5.3. 무역[편집]

  • 포스코대우 : 무역, 백화점, 자원개발, 프로젝트 오거나이징

    2017년 3월에 포스코 P&S의 철강사업부분을 인수했으며, 잔존법인이 아직 있다. 아래 사업체들은 P&S에 먼저 합병된 뒤, 포스코대우의 식구가 되었다.

  • 포스코TMC : 구 한국코아, 전력계통 기계부품

  • 포스코AST : 스테인리스 냉연제품, 포스코NST를 합병했다.

  • SPFC : 후판가공

  • 포항SRDC : 철스크랩 순환유통

5.4. IT[편집]

  • 포스코 ICT : 구 포스데이타 + 포스콘, 정보통신/EIC엔지니어링

    • 포뉴텍 : 원자력 계측제어(매각된 후 ㈜수산ENS로 사명 변경링크)

5.5. 에너지[편집]

  • 포스코에너지 : 舊 경인에너지, 발전산업

    • 탐라해상풍력발전 : 두산중공업과의 합작사이다.

    • 포스파워 : 舊 동양파워, 화력발전

    • PSC에너지글로벌 : 베트남 발전사업

  • 포스코LED: TMC에 매각 글로우원으로 사명변경

  • 포스코그린가스텍: SNG 제조판매

5.6. 소재·화학[편집]

  • 포스코켐텍 : 포스렉(舊 포철로), 내화물, 이차전지 양극재 생산

    • PMC텍 : 침상코크스 생산

  • 포스코엠텍 : 구 삼정P&A, 금속소재가공/철강포장

    • 포스하이알 : 알루미나 생산, 부도가 나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 PNR : 철강부산물재활용

  • 포스코ESM : 이차전지 음극재용 활물질 제조

  • 포스화인 : 슬래그파우더, 사모펀드에 매각됨

5.7. 지원[편집]

  • 포스메이트 : 舊 동우사, 주택/시설물유지관리, 순천시에서 골프장을 운영하던 승광을 합병했다.

  • 포스코터미날 : 대량화물유통(CTS)[44]

  • 엔투비 : 기업간 전자상거래

  • 포스코경영연구원 : 경영컨설팅

  • 포스코기술투자 : 기술금융

  • 포레카 : 브랜드관리

  • 포스코휴먼스 : 스틸하우스 부분인 에코하우징과 장애인표준사업장 포스위드 합병

  • 포스코인재창조원

  • 포스코알텍 : 포스코그룹 계열사 특허관련 대행업무 아웃소싱

5.8. 기타[편집]

5.9. 비영리재단[편집]


한국철강협회 : 포스코는 소속사의 형태로 가입되어있으나 협회장은 관례적으로 포스코의 현직 회장이 맡고 있다.

5.10. 영리재단[편집]

6. 특징 및 이야기거리[편집]

6.1. 공화 기업[편집]

다른 대기업[48]들과는 달리 초대 회장인 박태준은 자기 후손들에게 회장자리를 물려주지 않았고 사원 출신들에게 회장직을 넘겼으며, 이는 포스코가 계속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는 요인들 중 하나가 되었다. 비록 포스코가 공기업으로 시작되었으며 박태준에게 회장직을 승계할 수 있을 정도의 의결권이 없었던 점은 고려해야겠으나 애초에 과거에 포스코에서 상당한 양의 주식을 박태준에게 주려 했는데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므로 마음먹고 노력했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수밖에 없다. 보통 애사심으론 불가능한 선택.

6.2. 조직문화[편집]

포스코는 상당히 남성적인 문화를 가진 기업이다. 일단 박태준 명예회장을 위시한 창립멤버 대부분이 군인 출신이고, 제조업 중에서도 건설업과 더불어 현장이 가장 위험한 철강산업이기 때문에 남성적이고 수직적이고 일사불란한 문화가 강한 편이다. 한마디로 군대 분위기가 강하다. 이런 분위기 덕인지 포스코 임원 기내 승무원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6.3. 연봉[편집]

포스코의 대졸 신입사원 연봉은 세전 5,200만원 정도(2016)이며, 다른 계열사도 비슷하다. 그러나 포스코 생산기술직 사원의 경우 교대근무자[49]는 초봉이 4,800만원 수준(2017)이고 보통은 특근과 잔업이 많아서 이보다는 훨씬 많이 받는다. 노동 강도가 빡세고 위험하기도하고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한 현장의 특성상 연차가 쌓일수록 연봉이 크게 증가한다. 또 구조조정이 끝난 현재로써는 현장노동자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한번 입사할 경우 정년퇴직을 노려볼 만한 정도이다.

2015년 기준으로 생산직원의 평균 근속연수 18.3년, 평균연봉은 7,000만원에 육박한다. 거기에 자녀 2명의 대학 등록금이 전액 지원되기 때문에 실질소득은 이보다 높다. 최근에는 개정되서 자녀 수는 제한이 없고 인당 8,000만원 한도로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바꿨다. 다만 이런 복지는 현재처럼 대기업들 사이에서는 상향평준화가 되어있는 상황에서는 그리 큰 메리트로 작용하지는 않고 포항이나 광양이나 각각 근처 울산, 여수 화학산단에 입주한 기업들을 보고 있자면 연봉에서 상당히 차이가 나고 이게 좁혀지는 게 아니라 점점 벌어지는걸 보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껴서 퇴사(이직)를 결정하는 사원의 수도 꽤 많다. 그리고 노조가 없다는 것도 큰 디메리트로 작용해서 강성노조가 버티고있는 현대제철로 이직하는 사람도 많다.

6.4. 초대 회장[편집]

초대 회장이었던 박태준은 경제에 관해 생판 모르는 군인이었음에도 적자투성이인 대한중석[50]을 맡아 1년 만에 흑자 전환시켰으며, 이후 포항제철의 초대 사장으로 임명된다. 포스코의 성장에 있어 박태준 회장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는데,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대일청구권 자금을 전용하여 제철소 설립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도 하였고, 이후 정치계에 진입하는 대신 포스코에 대해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전두환으로부터 받아내기도 하였으며, 92년 포스코 양대 제철소의 완공 이후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면서 회장직을 사퇴하였다. 정치인으로서의 박태준의 역할을 차치하고서라도, 기업인으로서 박태준은 큰 업적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역시 군 출신에 사업가이자 일본/정치의 막후에 있었던 허풍쟁이세지마 류조도 자기보다 수완이 뛰어나다고 칭찬한 적이 있다.

6.5. 비판[편집]

선조들의 피로 얼룩진 회사라고 밝혔듯 포스코 자체가 한일협정으로 일본 정부에게서 받은 금액 중 상당부분에 해당되는 거액이 투입되어 만들어진 회사인데, 당연히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개인 배상금을 정부가 제철소를 만드는 데에 사용한 격이니 이에 강제징용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이 포스코에 배상을 요구했지만 포스코는 여전히 '정부가 나서면 돕겠다'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거론된 수많은 사원복지를 생각하면 피해자들 입장에선 더더욱 아쉬운 부분. 참고.

또한 공기업에서 사기업으로 전환되어 KT와 함께 낙하산 임원들이 많다.

6.6. 교육[편집]

포스코의 교육지원은 포스코교육재단을 중심으로 한 초·중·고등학교 교육과 포항공과대학교·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포항가속기연구소 등 고등교육·연구로 나뉠 수 있으며, 이 역시 상당히 혁신적인 역할을 하였다.

포스코교육재단은 산하에 4개 고등학교, 2개 중학교, 4개 초등학교와 몇 개의 유치원 및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자녀 교육에 신경쓰지 않고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도록 설립했다는 특징이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특별활동에 상당히 많은 투자를 해 왔으며 많은 분야의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있으며, 중학교 역시 이의 연장선상에 운영되고 있다. 포항제철고광양제철고자립형사립고로 운영되며[51]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는 전문계 고등학교 중에는 매우 잘나가는 학교이다. 지금은 마이스터고등학교로 지정되었다. 여기 졸업하면 어떻게든 포스코 관련된 회사는 보내준다고 보면 된다 근데 원체 잘나가서 별 차이는 없다는 듯 [52] 학생들의 소질을 최대한 계발해 주자는 것이 이 교육재단의 목표였는데, 7~80년대에 이런 목표를 세웠다는 사실이 특기할 만하다.

포항제철고나 포철공고 모두 경북권에서는 알아주는 일반계/전문계 고등학교이고, 광양제철고 역시 90년대 초반부터 매년 서울대 진학생을 5명 안팎으로 배출하는 학교였다.[53] 광양제철고는 현재 매년 10명 안팎의 서울대 진학생을 배출하는 학교로 거듭났다. 문제는 포항이나 광양이나 학구열을 비롯한 치맛바람이 쎄다는 것(...) 따라서 과외[54]를 비롯한 각종 선행학습이 지나친 편이다. 이는 부모들 간의 경쟁의식이 상당히 강하기 때문이다. 각 학교가 위치한 직원주택단지는 부모간의 학력이나 소득, 지위의 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자녀들의 학교 성적이 부모들의 자존심에 정말 큰 영향을 미쳤다.

2015년에는 송도국제도시인천포스코고등학교를 개교하였다.[55]

포항공과대학교(POSTECH)는 박태준의 이공계 연구중심대학 구상 계획에 따라 설립된 학교로, 2010년 영국 THE 선정 세계 28위 대학[56]으로 선정되는 등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포항공과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방사광가속기는 90년대에 국내 최초로 지어진 가속기 시설이며, 국내 과학 기술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포항공대와 가속기의 건설에 관한 박태준과 김호길 포항공대 초대 총장의 일화를 찾아보면 상당한 대인배스러움에 흠좀무..할 것이다. 또한 포항공과대학교 캠퍼스 내에 위치한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은 포스코, 포스텍과의 산학연 협동을 위해 포스코가 전액 출연하여 설립한 민간연구기관이다.

6.7. 직원 복지[편집]

직원 복지 면에서 포스코의 투자는 상당한 편이다. 다른 회사들과는 차별화된 복지 정책이 주택 정책인데, 회사가 주택을 공급하여 분양함으로써 직원들이 주택 걱정을 하지 않도록 힘쓴 바 있다. 포항제철 건립 초창기인 1960년대 직원주택과 학교 건설을 시작함으로써 쓸데 없는데 돈 쓴다고 욕을 엄청나게 먹었으나, 지금 와서 보면 상당히 진보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울산 현대그룹 계열사들과 함께 몇 안되는 성공적인 포드주의의 성공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포항과 광양 양쪽 모두에 주택단지를 대규모로 조성하면서 당시 기준으로 주변 주민들이 질투할 정도로 괜찮은 주거단지를 마련하였다. 포항이나 광양의 주택단지를 보면 동시기에 지어진 다른 주택단지들에 비해 엄청난 녹지비율과 체육시설을 자랑하고 있다. 포항 효곡동 주택단지의 경우 경상북도 지곡시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포항 시가지와는 차원이 다른 주거환경을 보여준다. 심지어 포항에는 미관상 안 좋다고 (...) 전선을 모두 매립해서 전봇대가 하나도 없다.

다만 그렇게 모여사는 탓인지, 기묘한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단지 내의 사람들은 밖의 사람들보다 준법의식이 높고, 아이들은 밖과는 달리 비행청소년이 적다...라는 것 등등.[57][58] 광양의 경우 건물의 노후화, 구조 문제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단지가 공장지역 바로 옆에 있는데다가 저 바다건너에는 국내 최대규모 여수화학단지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 공기가 매우 나쁘다. 자녀 교육 문제만 아니라면 그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직원들이 굉장히 많은데, 자녀들을 포스코교육재단 산하 학교에 보내려면 포스코에서 조성한 주거 단지에 거주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자녀가 공부를 굉장히 잘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60%에도 못 들어서 못가는 경우는 그보다 일찍 나간다만 있고 그 이후로는 다들 금호동에서 탈출하려고 한다.[59]

그리고 생활비가 상당히 싸게 먹히는 편인데, 제철소에서 냉각수로 사용된 온수를 이용하여 온돌식 난방을 하기 때문에 한겨울에 펑펑 난방을 하고 온수를 사용해도 월 3만원이 안나올 정도로 난방비가 적게 들고, 단지 내에서의 전화는 회사 내선처럼 연결되어 있어 무료이기 때문에 전화비도 적게 든다. 심지어 포항지역 주택단지와 광양지역 주택단지간의 전화도 내선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식비는...

6.8. 무노조[편집]

회사 차원에서도 꾸준히 노조 설립을 막기도 했고 노조설립 붐이 있었던 80년대와 90년대에는 경찰과 검찰 정부 안기부에서 합심해서 정말 가혹하게 막은 덕분에 노조 설립이라는 것에 상당한 두려움이 남아 있는 회사이고 포스코에는 사실상 노조의 기능이 없고 인원이 십수명 이내의 노경만 남아 있다.[60]그러나 2011년 6월 복수노조제가 통과됨으로써 포스코에도 추가적인 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이 있고 노조 탄압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직원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이후는 두고 볼 일이다. 강성노조인 이곳과 아주 대비되는 느낌은???

6.9. 광고[편집]

포스코는 주력 업종이 'B2B(기업간 거래)'성격을 가진 기업으로서, 일반 소비자와 직접 거래할 일이 거의 없다. 때문에 기업 이미지 광고에 주력하고 있는데, 좀처럼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수준 높은 광고를 여러차례 선보인 바 있다.
참조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전광판 광고


5달러 자전거 광고


I AM #STEELSTRONG 광고


포스코 평창 동계올림픽 광고


포스코 2018 평창 동계올림픽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광고


숫자로 보는 포스코 광고


포스코 창립 50주념 기념 광고

6.10. 기타[편집]

  • 한국의 10대 기업집단 중에서 현대중공업(울산)과 함께 단 둘뿐인 본사가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지방 도시(포항)에 위치한 기업이기도 하다. 덕분에 포항시의 세수에 혁혁한 공을 세워오고 있는 중이다. 포항의 본사 아래에 포스코 서울 지사가 있는 형태인데, 강남구 테헤란로포스코센터에 서울사무소가 위치해 있다. 그렇지만 사실 포스코는 1980년대 후반부터 본사의 서울 이전을 수차례 추진했으나 번번이 포항을 비롯한 대구·경북 지역민들의 반발여론에 부딪혀 무산되자 김만제 회장 시절 서울에 포스코센터를 지어 경영기획, 인사, 자금, 마케팅 등 핵심기능은 서울로 옮기고 법인등기부상의 본사 소재지는 포항에 두는 이중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2002년 포스코가 완전 민영화되고 외국인 지분이 60∼70%로 늘면서 정기주주총회도 서울에서 개최하는 등 포항은 형식상의 본사에 불과하며 사실상 실질적인 본사는 서울 포스코센터다. 또한 현재 포스코 자회사 29개 사 중 포항에 본사를 둔 자회사는 8개가 있는데, 포스코건설은 본사를 인천 송도국제도시로 옮기려다가 무산된 적이 있으며,[61] 2013년 3월에 사장이 바뀐 포스코 ICT도 신임 사장 취임식을 포항이 아닌 경기도 판교사무소에서 열어서 논란이 되는 등 실질적인 본사 기능은 판교사무소로 가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충주시가 포스코ICT를 유치했다고 자랑하고 있다.[62] 어쨌든 포스코 포항 본사와 포스코 자회사들 중에서 포항에 있는 본사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며 사실상 본사 기능은 서울이나 수도권에 가 있다고 말이 많다. 그런데 서울 테헤란로에 있는 포스코센터도 인천 송도로 이전한다는 얘기가 있다.

  • 정준양 회장 시절부터 강제적인 금연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다이어트 정책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회사 안팎으로 회장을 비난하는 말들이 많다. 물론 금연자들은 쌍수 들고 환영하고, 다이어트의 경우에도 회사에서 전적으로 지원해주긴 하지만... 무엇이든 너무 밀어붙이면 좋은 반응만은 나오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현재는 유야무야된 정책이다.

  • 특이점으로 입사시 "인성"부분을 상당히 중요시 본다. 기본적으로 토익 900이상 학점 4.0근처의 고스펙이어야 합격할 수 있을 정도이로 입사 난이도가 높은 것도 있지만 여기에서 덤으로 "사회봉사경력" 역시 필요. 있으면 좋은 게 아니라 그냥 있어야 한다. 보편적으로 100시간 정도를 목표로 잡고 채우고 공고가 나온 날부터 3년 이내만 인정해준다.

  • 2013년 4월 15일, 포스코의 계열사인 포스코에너지의 한 상무가 LA로 가는 비행기 비즈니스석에서 승무원에게 진상을 부리다 기장이 착륙 허가를 받고 미국 당국에 신고, FBI가 출동해 결국 귀국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원인은 라면 때문인데, 최대한 친절하게 대접한 여 승무원 눈두덩을 책을 말아 때리는 등의 행동을 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자세한 사건의 전개는 이 항목으로

  • 여담으로 야구팀을 잠깐 운영한 적이 있었다. 한국실업야구팀인 포스틸 야구단으로 1978년에 창단해 2002년에 해체했다. 하지만 역시 스포츠 투자에 대해선 축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박태준 초대 회장이 대단한 축구 매니아여서 축구 분야에 대해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 제철소 자체가 국가중요시설('가급' 국가보안시설)이다 보니 네이버 지도나 다음 지도와 같은 국내 지도에는 군부대에 준하게 표시되고, 로드뷰에도 모자이크 처리되어 나온다. 그만큼 보안도 까다롭다. 사전에 출입등록은 필수요, 당일 제철소내 작업이 있다면 신청서에 반입하는 물자를 빠짐없이 기록해야 한다. 출입증을 받으면 각 게이트에 있는 보안요원이 신청서에 적인 물자대로 있는지 차량 트렁크까지 검사하고, 신청서에 있는 물자와 일치하면 통과시킨다. 작업을 마치고 나올 때는 내부에서 승인 없이 반출하는 물자가 있는지 다시 검사한다.

  • 포항 해군 6전단에서 근무하는 수병들은 전역하기 전 포항 투어를 시켜주는데 코스 중 한 곳이 포항제철소이다.

  • 제철소가 위치한 두 지역 사원 주택단지의 선거 표심이 각자 다르다. 포항 제철동과 지곡동에서는 영남 표심과는 반대로 민주당 계열 정당 득표율이 가장 높게 나오고, 광양 금호동에서는 역시 호남 표심과는 반대로 보수 계열 정당 득표율이 호남지역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 위에 나온 이야기처럼 전국 각지에서 온 포스코 직원들의 영향이 끼친 것이다. 다만 효곡동에서 보수 계열 정당 표가 다소 낮은 것은 포항공대 교수나 학생들 같은 젊은 사람들이 유입됐기 때문이다. 본격 지역감정 해소에 기여하는 포스코

  • 2018년은 포스코가 창립 50주년을 맞는 연도이다. 그래서 포스코가 '포스코 50년사'라는 사사(社史, 회사의 역사책)를 발간하려고 하는데, 문제는 이 책에 실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 관련 내용을 대폭 삭제, 수정시킬 것이라는 얘기가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관련 매일신문 사설

  • 포항시 지역 사회에서는 포스코에 대해 서운함이나 섭섭한 감정을 조금 가지고 있는 듯하다. 관련 기사


[1] 생산능력인 조강량에서는 아르셀로 미탈이 9,703만 톤으로 1위이고, 포스코는 4,219만 톤으로 5위에 불과하지만, 종합 경쟁력으로는 1위를 기록하고 있다.[2] 자회사들은 사실상 포스코에 필요한 사업을 영위한다.[3] 그래도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항제철이라고 부른다. 애초에 '포스코'라는 사명 자체가 '포항제철'을 영문화시켜서 만든 명칭이기 때문.[4] 경북 예천 출신으로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 한국외대 총장, 주 중국 대사, 통일민주당 부총재 등을 지냈으며 노태우 정권기에 서울 강남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김영삼 정권 말기 문경·예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5] 서해안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으므로 종합제철소 건립에 따른 파급효과가 전국적으로 골고루 미칠 것을 내세웠다고 한다. 반면, 약점으로는 바다의 수심이 얕아 화물선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 지적되었다.[6] 이미 다른 공장들이 들어서고 있었으므로 제철소가 추가로 들어선다면 경제적인 상승효과를 낼 것이라는 장점을 어필하였다고 한다. 약점으로 이미 다른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상태여서 대단위 부지를 필요로 하는 종합제철 사업에서는 터를 잡기가 곤란하고 정유, 비료공장과 같은 기간산업체들과 한데 있어야 한다는 위험부담도 존재했다고 한다.[7] 당시는 광역시가 아니라 경상남도 울산시였다.[8] 현재의 사천시로 기존의 항만 시설을 확장하는 식으로 제철공장 부지를 마련할 경우 개발비용이 적게 들어간다는 것을 앞세웠다고 한다. 약점으로 연관공장이나 야적장을 마련할 만한 배후지가 부족하다는 것이 지적되었다.[9] 1958년에서 1961년까지 통영 지역구 민의원으로 활동했고, 재무부 정무차관도 역임했다.[10] 사실 이렇게 따지면 TK출신 박정희와 황병태가 TK챙기기를 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뭐 결과적으로야 성공했지만..[11] 6·25 당시 미8군 사령관으로 작전을 지휘했던 밴플리트 장군이 육군대장으로 예편한 뒤 웨스팅하우스의 고문을 맡으면서 미국 기업 대표들로 방한 투자단을 구성해 종합제철소 예비조사를 실시한 후 포항을 추천했다고 한다. 또한, 포항 바다가 깊어 추가로 준설을 하지 않아도 10만 톤급의 화물선이 드나들 수 있었던 데다 배후지도 넓었다는 장점을 들었다.[12] 예정에 없던 이야기라 김종필 의장은 다른 일정으로 참석하지 않았고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박충훈 상공부 장관, 구태회 공화당 정책의장도 뻥쪘다고 한다. 국장급이 상급자인 부총리도 모르게 질러버린 거라..[13] 한일기본조약 배상금을 불법적으로 유용하여 탄생한 회사이므로 회사가 문 닫을 때까진 이러한 막중한 사회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14] 오른쪽으로 가면 동해니까...[15] 현대는 이후 인천제철과 한보철강을 인수한 뒤 현대제철을 출범시킴으로써 일관제철소를 갖게 된다.[16] 추가적으로 삼천포도 있었다.[17] 실제로는 광양만이 최적의 입지인데도 아산으로 하라는 압박이 있었다고 한다. 부지가 광양만으로 정해진 이후에도 포철 고위직들이 "호남인데..."라며 난색을 표하면서 광양만에서도 경상도 쪽인 하동에 짓자는 말을 했으나, 박태준 회장이 직권으로 광양으로 결정했다고 한다.[18] 이러한 이야기들이 보여주듯이 박태준이라는 상식과 합리적인 사고를 갖춘 유력자가 없었다면, 광양제철소는 없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발 더 나아가자면 여수국가산업단지까지 말이다.[18] 국영기업 고위직들에게서 이런 말이 나올 정도인 걸 보면 당시에 호남에 대한 지역차별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19] 이 부지선정을 두고, 포항제철소 설립시부터 포스코 측과 합작관계를 맺어 온 일본 기업인 도멘(동양면화: 원래 미쓰이물산의 레이온사업부였다가 훗날 종합상사로 독립) 서울지사장이었던 모모세 타다시는 자서전에서 "하동 쪽으로 붙여 지으려는 것에 대해 내가 반대 의견을 낸 적 있다"라고 써놓았는데, 판단은 각자 알아서...[20] 서울 도봉구의 면적과 비슷하다.[21] 포항 포스코 부지 넓이는 약 1,200만㎡, 울산 현대중공업 공장 넓이는 약 500만㎡로 알려져 있다.[22] 공기질은 영...[23] 지분율만 따지고 보면 포스코는 외국계 기업이다.[24] 1994~1998년 재임. 전두환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냈다.[25] 고려대를 졸업했고, 1993년도에 입사해서 23년 간 포스코에서 근무한 중견 간부급 인물로, 퇴사 전 마지막 직책이 포스코 대외협력팀장이었다고 한다. 2016년부터 스스로 회사를 나와서 싸우는 지금은 회사 사람들한테 '마녀', '또라이' 등의 악평을 받았지만 이구택 회장 말년 때만 해도 우수한 여성 인재로 인정받아서 회사의 지원을 받아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였다. 방송과 팟캐스트, 유튜브 등을 타면서 비리가 폭로되자 포스코 안팎의 인사들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사정기관 중에서 가장 먼저 연락이 온 곳이 국가 공인 흥신소였다고 한다. 놀라서 "이거(김어준의 다스 뵈이다) 보세요?"라고 물었더니 "사정기관에서 정보하는(다루는) 사람 치고 그거 안 보는 사람이 없다."라고 대답했다고...... ㄷㄷㄷ.[철강부문] [27] 이는 자회사 중 무역회사인 포스코대우의 특성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인수 당시의 부채비율과 지금의 부채비율을 비교하면 답이 나올 듯.[28] 당시에 SK그룹은 대우인터내셔널의 교보생명 지분을 고려해도 대우인터의 종합상사 부문 가치를 3천억 원으로도 생각하지 않아서 포기했다고 한다.[29] SK네트웍스라는 종합상사가 있음에도 SK그룹이 인수를 고려한 것은 SK네트웍스가 최태원 회장의 사이가 나쁜 사촌인 최신원 회장의 몫이어서 이를 대체할 회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던 걸로 추정된다.[30]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하베스트 관련 에피소드에서 예의없는 인터뷰로 공분을 자아낸 인간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2008년에 한국투자공사의 자금으로 메릴린치에 증자 형식으로 20억 달러를 직접 투자한 다음, 바로 상무로 스카우트되어 메릴린치 서울 지점장이 됐다고 한다. 그 대가로 한국투자공사는 서브프라임 모시지로 망하게 된 메릴린치를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서 인수하면서 10년 만인 2018년에 이르러서야 본전이 되어서 엄청난 기회손실이 발생했다.[31] 마적떼는 포스코 계열사의 전임 사장 한 명이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7화 57:10초부터 음성 변조 인터뷰를 통해 이명박 일당을 가리킨 표현인데, 그가 말하길 "MB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 내가 아는 단어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너무 거대해서 거기에 적합한 (단어가 없다.) 하여튼 내 느낌은 완전히 마적단이 와 가지고 포스코를 휩쓸고 불 지르고 간 꼬라지다. 한 단어로 설명이 안 된다."라고 표현한 데서 나온 말이다. 여기에 다스뵈이다에서 추임새를 담당하는 김용민은 한 술 더 떠서 "똥도 싸고 가지 않았나요?"(...)라고 질문하여 게스트인 정민우를 비롯한 모든 좌중들이 폭소를 터뜨렸다.[32] 이와 반대로 같은 시기에 같은 사외이사로서 이사회 멤버였던 박원순 시장은 정준양 회장의 회장 후보 추천을 반대하다가 사외이사에서 사퇴했다고 한다.[33] 잠시나마 같은 기간에 이사회에서 활동했던 박원순 시장은 사외이사가 스톡옵션을 받는 게 불합리하다고 여겨 반대했다고 한다.[34] 부채비율이 1,600%(!)인 성진지오텍을 1,600억 원에 인수하고 1조 원까지 증자시킨 뒤, 포스코 플랜텍에 합병시키고 나서 1천 명이 넘는 직원들을 정리해고 했다.[35] 너무 고도가 높아 PD수첩 취재원이 삽질도 제대로 못했다. 고산병에 걸리지 않은 게 용할 지경.[36] 염수를 퍼다가 염전에서 소금을 만든 다음, 여기서 리튬을 추출하는 것. 때문에 1년가량의 시간이 소모된다.[37] 플랜트에 염수와 대량의 화학약품을 넣고 리튬을 추출하는 방식. 추출 속도는 자연증발 가공법보다 훨씬 빠르지만 폐수 처리 비용 때문에 채산성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38] 호주 최대의 광산 재벌인 지나 라인하트가 100% 소유한 핸콕 프로스펙팅이 개발하고 있는 광산이다.[39] 포스코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인프라 공사를 삼성물산이 담당했는데, 지나 라인하트가 이병철 급으로 노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노사갈등 때문에 공기가 늦어져서 1조 원 이상의 손실이 났다고 한다. 경쟁사보다 저가에 수주했다고 하는데, MB 시절에 이건희가 사면된 것을 고려하면 MB와의 커넥션이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듯.[40] P&S가 TMC와 AST를 먼저 합병했으며, 포스코대우가 2017년 3월에 P&S와 합병하였다.[41] 냉연, 열연, 후판, 선재, 철근 등 그야말로 생산하지 않는 강종이 없을 정도.[42] 다만 현대제철이 동부특수강을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국내 시장에서 경쟁이 심화, 지배력이 약화되고 있다.[43] 포스코건설에 합병되었다.[44] 원래 미쓰비시에서 설립해 준 거양해운이라는 해운회사가 있었으나, 김만제 회장 때 한진에 매각되었다. 이후 비슷한 업종의 회사를 다시 설립.[45] 원래 3개 고등학교였으나 2015년 3월에 인천포스코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46] 원래 5개 초등학교였으나, 2017년에 포항제철서초등학교가 포항제철동초등학교와 통합되었다.[47] 원래는 포스코교육재단의 산하 학교였으나 1995년 포스코에서 3,000억의 자금을 출자하여 학교법인 포항공과대학교로 독립되었다. 그러나 법인 이사장을 전현직 포스코 회장이 겸임하고 있고, 여러모로 포스코와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48] 유한양행제외.[49] 용광로는 가동을 시작하면 멈출 수 없기 때문에 24시간 직원이 근무하여야 한다. 포스코의 경우 과거에는 4조로 나누어 3교대로 8시간 근무에 6일 근무 2일 휴무를 하는 형태였다. 현재는 거의 대부분의 부서와 많은 계열사가 4조 2교대로 12시간 근무에 2일근무 2일휴무의 근무패턴을 가지고 있다.[50] 지금의 대구텍[51] 이 두 학교가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를 신청한 이유 중 하나는 직원 자녀들을 확실하게 받아주기 위해서이다.포항은 60%를, 광양은 70%를 포스코 및 계열사 자녀로 뽑는 전형이 따로 있다.[52] 그리고 이것도 옛말인 게, 2010년 이후부터는 포스코에서 군대 때문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사람은 잘 안뽑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탑클래스 그룹을 제외하면 추천서는 구경도 못한다.[53] 당시 광양의 경우 워낙 촌이었기 때문에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모두 순천고·순천여고로 유학가는 형편이었다.[54] 포항의 경우 포항제철고를 비롯한 지곡단지가 포항공과대학교 바로 옆에 위치하여 과외교사 공급이 매우 용이하다. 아예 포스텍 수학과 졸업하고 눌러앉아 학원교사하는 경우도 있다[55] 포스코건설, 포스코대우 등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포스코 계열사들의 자녀들이 많이 재학 중이다. 학교 부지가 포항-광양 두 제철고교보다 많이 협소하다.[56] 영국 타임'지'가 아닌 The Times Higher Education 이라는 영국의 고등교육전문지이다.[57] 사실 일부 고위 임원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생산직 직원들 역시 일반 시민들과 다를 바 없는 성장배경과 학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연봉이 도시 서비스 산업의 기반이 되는 탓에 이러한 우월의식이 존재한다. 여튼 이 때문에 지역의 일반 주민들은 단지 주민들을 질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질투가 아니다.[58] 아이들이 비행청소년이 적다는 21c에 이르기 전 까진 반 즈음 맞는 말이었다. 외부와 단절 되어있고 사립학교에서 부모 환경이 사실상 같다시피 한 아이들만 모여있다보니 문제가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가진 건 너도 갖고 있다'보니 성격 차이를 제외하곤 갈등 요소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땐 제철소 단지 밖에 나가도 학생들이 갈 곳이 없었으니...) 하지만, 인터넷의 보급 및 단지 외 광양 지역과의 교류가 쉬워지면서 지금은 다 똑같다.[59] 광양지역의 경우 원래 현재와 같이 공장 바로 옆에 단지를 조성하지 않고 현 광양읍 근처에 조성할 계획이었다고 하지만, 그놈의 보상 문제 때문에...[60] 2010년대에도 설립됐다가 강제해산 또는 자진해산되는 과정을 거친 회사이다.[61] 무산되었다고 해도 실질적인 본사는 인천 송도로 가 버렸다.[62] 충주에 있는 것은 포스코ICT 데이터센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