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암 103편 폭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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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4개월 전인 1988년 8월 독일 프랑크프루트 암 마인 국제공항

Pan Am Flight 103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

1988년 12월 21일

유형

폭탄 테러

발생 위치

스코틀랜드 로커비

탑승인원

승객: 243명

승무원: 16명

사망자

승무원과 승객 전원 사망

지상 주민: 11명

기종

Boeing 747–121

항공사

팬 아메리칸 항공

기체 등록번호

N739PA

출발지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도착지

디트로이트 웨인 카운티 국제공항

1. 개요
1.1. 사고기
2. 사건 개요3. 사보타주? 테러?4. 조사5. 보상
5.1. 리비아5.2. 팬암
6. 사고 후 조치
6.1. 영국6.2. 미국
7. 기타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news.bbcimg.co.uk/_62948100_lockerbiefuselage.jpg
사건을 다룬 항공 사고 수사대 영상 영문 국내방영본

1988년 12월 21일(현지시각) 영국 스코틀랜드의 로커비 상공에서 팬 아메리칸 항공 103편 보잉 747 여객기가 리비아의 테러 집단에 의해 비행 도중 폭파된 사건. 사건 장소의 이름을 따 로커비 테러(Lockerbie Bombing)로도 불린다.

1.1. 사고기[편집]


1978년 BBC 다큐멘터리 Diamond in the Sky의 에피소드4 Conquering the Atlantic에 등장했던 Clipper Morning Light(N739PA)시절 사고기[1]

팬암 103편의 기체 내력은 보잉사에서 15번째로 만들어진 보잉 747기 였으며 1970년 팬암에게 인도되었다. 등록번호는 N739PA였다. 팬암은 여타 자사 비행기처럼 이름을 붙여줬으며 Clipper Morning Light였으나 1980년 Clipper Maid of the Seas라고 개칭했다. 사고기는 1970년 출고당시 JT9D-3A형 엔진을 장착했으나 3A형 전량에 이루어진 개선 프로그램으로 JT9D-7A형으로 개수됐으며 1987년 10월 국가 비상상황시 민항기를 군수기로 이용가능하도록 하는 CRAF(Civil Reserve Air Fleet)[2][3]에 준거한 개조가 이루어져 일반 B747-100형이 아닌 메인덱 바닥이 카고기급으로 보강되고 SCD(Side Cargo Door)가 설치된 C-19형이다[4]. CRAF개조 당시 오버홀(D Check)(overhaul 분해점검)[5]을 완료했다. C Check또한 1988년 10월 27일 인테리어 교체를 시행하며 완료했으며 B Check 또한 11월 2일 완료했다. 그외에도 경점검 2회가 사고전까지 완료됐다. 한마디로 팬암의 명성답게[6]비행기 보수는 제때 이루어졌으며 오래되어 노후화로 인한 추락을 의심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애초에 비행기는 정비만 잘 이루어진다면 수십년도 쓸 수 있는데다가, 18년이라는 기령은 2014년 델타항공의 평균 기령인 17.1년에 근접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사고기의 기록 중 사고가 1건 존재하는데 1970년 난기류속에서의 Incident급 사고이며 사망자 부상자 기체손상 None(0%)급의 사고이다.

2. 사건 개요[편집]

먼저 이 테러를 제대로 알려면 카다피 원수의 행보를 알 필요가 있다. 1969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뒤집어엎은 카다피는 강대국들이 테러라고 부르는 행위는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는 무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영국에서부터 필리핀에 이르는 세계 전역에서 테러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리비아의 비밀 문서에 따르면 카다피USS 빈센스 함 사건에 대한 서방 세계로의 보복으로 팬암 103편을 택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지만 힘을 얻고 있는 주장은 리비아에 1986년 폭격을 한 것(리비아 공습)에 대한 보복이라는 주장이다.

팬암 103편은 대서양 횡단 노선으로, 독일 헤센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영국 런던히드로 공항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경유하여 미시간디트로이트 웨인 카운티 국제공항으로 가는 황금 노선을 운행하는 비행기였다. 항공기는 약 243명과 16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있었다. 1988년 12월 21일 비행기가 남부 스코틀랜드의 로커비 상공을 지나고 있을 때 로커비에선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잠시 후 파편들이 하나 둘 씩 떨어지더니 종국에는 거대한 불덩이가 마을 중심부를 덮치면서 11명이 사망했다. 마을 경찰관은 파편을 조사하면서 비행기 티켓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는 팬암 항공사의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뉴욕 JFK라고 써져 있었다.

아침이 되자 마을이 입은 피해가 정확히 드러났고 마을 중심부에 떨어진 불덩이에 휩싸였던 거대한 파편은 보잉 747기의 날개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날개는 91,000kg(200,000 파운드)의 등유를 싣고 있었고 마을과 부딪힌 즉시 점화되어 부딪힌 집들을 말그대로 태워버렸던 것이다.

3. 사보타주? 테러?[편집]

팬암 103편이 추락한 1988년은 인도항공 182편이 테러로 대서양에서 공중분해 된지 3년이 지난 후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테러가 주 원인으로 의심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팬암기의 잔해는 마을 중심부를 덮친 날개로부터 비행기의 부서진 콕핏이 발견된 동쪽으로 2km떨어진 들판까지 이어져 있었으며 승객들의 사체가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비행기는 공중분해 됐다는 사실이 확실했다. 또한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비행기와의 교신이 아무 경고도 없이 두절되었다.

기체 결함으로 볼 가능성도 적었다. 위의 사고기 항목에 나왔듯이 팬암 103편은 기령이 다소 오래되기는 했지만 충분한 정비를 받았었기 때문에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가능성은 낮았다.

4. 조사[편집]

AAIB는 경찰과 군인들을 동원하여 10000개가 넘는 부품에 일일이 태그를 붙이고 컴퓨터 추적 시스템에 입력했다.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인도항공 182편은 대서양 속에 가라 앉아있기 때문에 만족할만한 자료가 모이지 않았기에 비슷한 이 사건 조사는 상당히 신중하게 임했다. AAIB는 또한 그렇게 모은 부품들을 가지고 보잉 747을 재조립 했으며 결국 조사관들은 비행기의 앞부분 화물 적재실에 450g 짜리 폭탄이 폭발하면서 남긴 20인치(51cm=510mm)짜리 구멍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이 폭탄은 시한폭탄이었으므로 원래 증거가 남지 않도록 바다에서 폭발하게 시간이 맞추어져 있었으나 팬암 103편의 출발지연으로 인하여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폭발하게 된 것이다.

조사관들은 수상한 라디오 칩을 발견하면서 이 제품이 도시바의 라디오였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 라디오는 아이러니하게도 폭발적인 사운드의 라디오[7]라고 홍보하는 제품이었다. 라디오와 같이 담겨있었던 옷은 아무 옷이나 몰타에서 한 상인에게 산 옷이며 담았던 여행가방이 팔레스타인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는 샘소나이트 가방이란 것도 알아내었다.

폭탄이 최초 출발지인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서 실렸다는 것이 확인되어, 공항의 허술한 수하물 검사도 문제로 제기되었다. 테러범은 알 메그리히로 스코틀랜드 법원에서 팬암 103편의 폭파 용의자로 기소한 용의자 가운데 한 명으로 유일하게 유죄가 선고된 인물이였다. 그는 8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그리녹 감옥에서 복역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2009년 8월 20일 석방되었지만 2012년 5월 21일 사망했다.[8]

5. 보상[편집]

5.1. 리비아[편집]

리비아는 2002년 5월 29일 팬암 103편의 폭탄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고 270명의 팬암 103편의 희생자들에게 27억 달러를 배상했다.

5.2. 팬암[편집]

1992년 미국 연방법원은 수하물 검사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팬 아메리칸 항공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팬암 103편의 폭발은 안 그래도 무너져가는 팬암에게 거대한 타격을 입혔고 결국 1991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태평양 노선은 유나이티드 항공에 대서양 노선은 델타 항공에 넘어갔다.

6. 사고 후 조치[편집]

1985년에 329명의 사망자를 낸 인도항공 182편 폭파 사건과 1989년 발생한 팬암 103편의 사고는 항공 업계에 폭탄테러의 심각성을 일께워주게 되었고 이 사건으로 인해서 연결 항공편의 짐을 싣는 행위가 금지되었다. 항공업계는 승객과 수하물이 일치해야 비행기가 출발하는 규칙을 만들게 되었다.[9] 또한 승객의 짐과 승객이 같이 탑승하지 않을 경우 비행기는 출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규칙은 1996년 TWA 800편 추락 사고의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좀 더 자세한 사고 후 조치는 아래와 같다.

6.1. 영국[편집]

비록 미국 국적 항공기였지만 실질적인 사고가 일어난 영국은 특이하게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Aviation and Maritime security Act 1990 (항공 및 해양 보안 법률 1990)이란 것이 생겼지만 Air Cargo Agent라는 짤막한 항목이 추가된 것을 제외하고는 동종의 사고를 미래엔 어떻게 막을것인지에 대한 법률이 거의 전무하다.
이 법률을 간략하게 하자면

  • 수하물 추적 및 검사 능력 보완

  • 테러범들을 단죄할 수 있는 법 추가


이 두개의 항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당연히 백번 낫지만 최단시간 내로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 미국과는 달리 수하물 추적이나 엑스레이 기기 통과와 승객과 수하물이 같이 항공기에 올라야 한다는 법 두 가지는 1995년이 되서야 필수가 되었다. 물론 시스템 구축에 시간이 드는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1988년의 사고를 일으킨 간접적인 원인과 직접적인 원인을 1995년이 되서야 막으려 했다는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

6.2. 미국[편집]

9/11 당일까지만해도 미국의 항공 보안법은 물러터졌다는 말들이 많았지만 사실 이 사고를 통해 미국은 상당한 보안 법률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 법률은 Aviation Security improvement Act 1990 (항공 보안 개선 법률 1990) 이라고 불리는데 미국 본토에 미치는 영향들 중 일부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FAA에 민간 보안부서가 생김

  • 수하물을 자체적으로 검사 할 수 있음

  • 항공기에 다가갈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검사할 수 있는 권한이 생김

  • 엑스레이 기기 도입

  • 탑승 전 승객들을 검사하는것이 필수가 됨

  • 승객들과 승무원/조종사들을 위한 테러 위협시의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짐

  • 보안을 최대화하기 위해 공항 디자인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구축됨

  • 보안이 필요한 미국 공항들에 연방 보안 요원이 파견됨 (비슷하게 아마 동의나 요청에 따라 해외 공항에도 파견될 수 있음)

  • 모든 공항 직원들의 뒷조사 (범죄 경력)를 실시함

  • 매년 한번씩 연방 의회에 항공 보안에 대해서 리포트를 올려야함

  • 미국 국내 항공기에 위협이 가해질 만한 낌새가 보이면 FBI가 개입할 수 있음

  • 보안 시스템 개선에 더 투자함

  • 폭발물 탐지기들의 구매와 설치를 법으로 제재함 (법으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 구매나 설치를 못한다는 뜻[10])

  • 테러 위협을 받을 경우 항공편을 취소할 권한

  • FBI, CIA, FAA 그리고 미국 운수부 (Department of Transportation) 사이에 원활한 자료 및 정보 공유

  • 항공기에 실리는 모든 수하물 (우편, 화물 등등)을 검사할 보안 방법 연구


이외에도 국외에 나가있는 미국인들을 보호하고 팬암 103편의 미국인 사망자들에게 어떤 조치가 취해질것인지 대략적으로 쓰여있는데

  • 미국인들이 관련되어있는 사고엔 연방정부 요원 두명을 해당 사고 지점으로 파견한다.

  • 연방정부는 미국인 탑승객들의 시신 수습 의무를 진다.

  • 대통령을 설득하여 테러의 피해자들에게 감세로 보상이 가능하게끔 한다.


등등이 있다. 더 자세한 건 위의 링크를 타면 된다.

영국과 비교하면 1990년 10월에 법률이 상정되고 같은 해 11월에 법률이 통과되었다. 실질적으로 1995년에 발효된 영국의 법과는 조금 대조적인 부분. 물론 이 법이 선언되고 11년 후에 생긴 사건을 보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7. 기타[편집]

  • 김진명의 소설 '한반도'(현재는 10.26으로 개칭)에서는 음모론적 시각을 차용하고 있다. CIA가 다량의 미국제 무기를 이란에 반입되도록 하고, 헤로인을 뉴욕으로 반입하는 시리아 테러범을 비호하고 있었는데, 이를 알게 된 CIA 요원들의 귀국과 폭로를 막기 위해 미국이 시리아 테러범을 통해 팬암 103편을 폭파했으며, 걸프전 때 미국에게 도움을 준 시리아 대신 리비아를 그 배후로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그 내용. 하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 실제 역사와는 다르다. 김진명은 리비아 폭격이 팬암 103편 폭파 사건 이후인 것 처럼 서술하였으나, 리비아 폭격은 팬암 103편 폭파 사건보다 2년 앞서기 때문이다.

  • 이 사고로 인해 당시 경영난에 빠져있던 팬암은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물론 이전에도 경영란과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회사의 존립자체가 위태로웠던 회사였으나 이 사고로 결정타를 맞아 재기불능이 된 셈이다.


[1] 촬영당일도 런던 뉴욕간 노선을 운항 중 이었다.[2] 팬암은 2차세계대전부터 군수물자를 운송하거나 극비임무를 수행했으며 CRAF른 지원하는 회사였다. 팬암 파산직전 걸프전 CRAF임무 또한 팬암 재정을 악화시켰을정도[3] 3일내 카고기로 민수기를 전환[4] 20여대중 한대[5] A가 경점검을 나타내며 D가 최대수준을 나타낸다(8년에 한번 2~3개월간 주기되어 받는다)[6] 초기 항공 운항 및 운영 정비를 정립한 회사다[7] BomBeat. 당시 도시바라디오카세트 상품명이다.[8] 일부 매체에선 알 메그리히가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건강 악화로 인해 인도적인 차원에서 본국으로 환송되었다고 하니 참고 바람.[9] 보딩패스를 확인하여 승객이 탑승하지 않았다면 짐을 죄다 내려서 안 탄 사람의 수하물은 빼고 출발해야 한다.[10] 테러리스트들이나 각종 범죄자들이 기기를 구입해서 우회방법을 찾아내는것을 막아내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