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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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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의 게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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ファミリーコンピュータ /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 현대 컴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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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TAR 2011에 전시된 모델과 컨트롤러. 일본판 패밀리 컴퓨터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Famicom-Console-Set.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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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패밀리 컴퓨터)

북미판[1] 및 유럽판(NES), 한국판(현대 컴보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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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 패미컴의 카트리지.[3] 게임보이 어드밴스용과 흡사하다.

미국판, 유럽판 NES의 카트리지.[4] 용량은 패미컴용 카트리지보다 적지만 크기는 두 배이다(…).[5]

ファミリーコンピュータ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intendo-Famicom-Console-Set-FL.jpg

개발사

닌텐도

발매일

1983년 7월 15일

파일:일본 국기.png

1985년 10월 18일

파일:미국 국기.png

1986년 2월

파일:캐나다 국기.png

1986년 9월 1일

파일:유럽 연합 깃발.png

1987년

파일:호주 국기.png

1989년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 개요2. 상세3. 사양
3.1. 특수칩
3.1.1. 닌텐도 특수칩3.1.2. 서드 파티 특수칩
4. 패밀리 컴퓨터 개발5. 패미컴 출시6. NES 해외 진출7. 다른 가정용 콘솔과의 경쟁8. 닌텐도의 사후지원
8.1. 이후 소프트웨어
9. 불법 복제판 범람10. 주변기기 및 기타 하드웨어11. 복각판
11.1. NES 클래식 미니 에디션11.2. 닌텐도 클래식 미니 패밀리 컴퓨터

1. 개요[편집]

닌텐도의 첫 카트리지 교환식 8비트 비디오 게임기이자 닌텐도의 시작을 알린 게임기. 그리고 아타리 쇼크 이후 게임업계를 살린 레전드 콘솔[6].

런칭 타이틀은 동키콩, 동키콩 Jr, 뽀빠이 3 작품.
흔히 런칭타이틀이라 착각하기 쉬운 슈퍼 마리오브라더스는 85년 9월에야 나온다.

2. 상세[편집]

1983년 7월 15일, 일본에 처음 발매되었고, 북미에는 1985년 10월 18일에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고, 유럽에는 1986년 9월 1일에 북미판과 같은 이름으로 발매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1989년에 현대전자에서 북미판인 NES를 '현대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했다.

패밀리 컴퓨터의 약칭은 패미컴과 FC이고,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의 약자는 NES이다.

자사의 히트 아케이드 게임 동키콩을 뛰어난 퀄리티로 이식하여 초반에 인기를 끌어모았고, 이후에도 허드슨이나 남코 등의 서드파티가 참여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슈퍼 마리오브라더스로 사회현상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또한 젤다의 전설, 드래곤 퀘스트,파이널 판타지, 록맨 등 패미컴만의 뛰어난 오리지널 게임들이 나오면서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기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서드파티 비즈니스의 기준 확립 등 현재 게임기 산업 구조의 표준을 구축해 놓기도 했다. 명실상부한 1980년대의 대표적인 발명품으로 봐도 부족하지 않다.

전 세계에 6191만대 판매했으며, 일본에 1935만대, 북미/남미에 3400만대, 기타 지역에 856만대 판매했다.#

가격이 오르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튼튼한 ABS수지로 만들었고, 대신 가격 절감을 위해 패드는 본체에 부착시키게 된다. 색깔이 흰색빨간색인데, 빨간색은 당시 사장인 야마우치 히로시가 두르고 있던 목도리와 비슷한 색으로, 그가 좋아하던 색이라고 한다.

한동안은 세이브 시스템이 없어서 패스워드 따위를 통한 간이 세이브를 해야만 했다. 마스크 롬에 추가로 SRAM을 붙이기 쉽지 않은 구조였기 때문으로, 86년에 나온 디스크 시스템은 쓰기가 가능한 특징 덕분에 편리하게 세이브가 가능했다. 그러나 87년부터 배터리 백업 시스템이 등장하게 되었다.

2018년부로 35주년을 맞았다. 북미판인 NES는 33주년을 맞았다.

17 Best Old Nintendo Commercials

3. 사양[편집]

롬 카트리지 방식

CPU

리코 2A03 1.79MHz[7]

음원

별도의 사운드 칩 없이 CPU에서 직접 출력[8]

PPU

리코 2C02 5.37MHz[9]

RAM

워킹 RAM: 2KB SRAM
VRAM: 2KB SRAM

표시화소수

256×240[10]

색 표시 성능

52~56색[11]
동시발색수: 25색[12]

스프라이트
오브젝트

사이즈는 8×8 또는 8×16으로 1화면 중 64매 표시가능 (수평은 8매까지)
스프라이트의 캐릭터 패턴(그래픽)은 64종류 정의 가능
스프라이트는 수평/수직 반전 가능
스프라이트 표시 위치는 BG의 앞뒷면 선택 가능

BG 화면

256×240 영역 2개 화면[13]
BG 캐릭터는 스프라이트처럼 8×8도트 256개.
단, 스프라이트는 별도의 BG 캐릭터 셋을 가지고 있다.

규격

254㎜×203㎜×64㎜, 1.25㎏


8*8 도트의 스프라이트를 1화면에 64매까지(수평에는 8매까지) 표시할 수 있다. 이는 1983년 당시의 게임기로서는 매우 높은 성능이었다. 가격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제약으로 스프라이트를 가로로 64픽셀까지만 표시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 이상을 표시하면 화면에 보이지 않는 것이 보통으로 이런 제약 사항 때문에 개발자들에겐 여러 공부功夫를 통해 이것을 극복해냈다. 보통 8x8 픽셀은 너무 작기 때문에 탄환을 표시하는데에나 쓰고, 대부분의 캐릭터는 16x16 으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렇게 캐릭터를 그리면 한 줄에 4개까지 표시할 수 있는 것이 상식이나, 개발자들은 여기서 스프라이트의 우선순위를 매 틱마다 반전시켜서 4장 이상을 표현시킬 수 있었다. 4개 이상의 캐릭터가 한 줄에 설 때 깜빡이는 것은 보통 이런 이유 때문이다. 쿠파가 쏘는 화염은 32픽셀이지만 마찬가지로 번갈아 표시하는 것으로 온전히 보이게 할 수 있다.

이 게임기의 특징 중 하나가 뛰어난 컨트롤러/게임패드 설계. 컨트롤러의 버튼 배치(왼쪽에 일체형 십자키, Select/Start 버튼, 오른쪽에 A/B 버튼) 가 무척 뛰어나서, 당시 중구난방이던 컨트롤러 배치의 '표준'이 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닌텐도의 대답은 십자키 특허 초기형 패미컴의 버튼은 고무로 된 네모 버튼인데,(개요 문단의 광고를 보면 알수 있다) 버튼을 세게 누르면, 가끔 눌러진 채로 빠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며, 또한 고무 재질이라 쉽게 닳는 문제점도 있었다. 그래서 후기에는 내구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플라스틱제 동그라미 모양 버튼으로 바뀌었다. 앞부분에는 확장 입력단자가 있는데, 이는 재퍼와 같은 주변기기를 사용하기 위한 것. NES는 패드가 탈착식이라서 없다.

그리고 쓸데없어 보이는 기능이나 외장 장치들도 많은데, 가장 대표적인 기능이 일본판 2P 패드에 내장된 마이크이다. 이런 마이크를 장착한 이유는 자신의 목소리가 TV를 통해 나오면 어린이들이 좋아할까봐 였다고 하는데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고. 그래도 이걸 활용한 게임이 젤다의 전설, 그리고 또 하나는 어찌꼭 쿠소게계의 거성타케시의 도전장(…).[14] 마이크를 달아놓은 건 장난 비스무리한 심정으로 넣은 것으로, 딱히 마이크를 사용하는 기획 같은 것이 있는 건 아니었다고 한다. 패미컴용 가라오케 소프트라고는 언라이선스로 만들어진 '까치와 노래친구'.[15]

하지만, 폼으로 "컴퓨터"라는 이름을 단건 아니라서 이래뵈어도 별매의 키보드를 애드온하고 BASIC(별매)을 돌릴 수도 있는 등, 닌텐도에서는 어떻게든 "컴퓨터"다운 컨셉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특히 이러한 노력은 아타리 쇼크등으로 게임기에 대한 신뢰를 많이 잃은 상태인 북미 시장에서는 거의 필연적인 움직임이었다. 1984년에 CES에서 키보드가 있는 컴퓨터로 주변기기로 카세트 테이프를 쓸 수 있다고 홍보했고, 발매 당시에 R.O.B을 같이 주면서 게임기 느낌을 덜 내려고 했으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원래대로 열심히 게임기로 광고했다.

이 패미컴 베이식은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연산자가 더하기, 빼기, 2배로 하기, 1/2 나누기밖에 없다고 한다. 이는 칩의 집적도 문제로, 연산자의 종류가 단순해진 건 흔한 일이다.. 원래 8비트 CPU는 하드웨어적으로 곱셈과 나눗셈 지원이 안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며, 특히 패미컴 CPU[16]의 베이스가 되는 MOS technology 6502의 경우는 8비트 CPU 사이에서도 인스트럭션이 단순한 편에 들어간다. 싼거라 그렇다. MOS technology 650X 패밀리들은 아타리 2600 시절부터 썼을 정도로 오래되기도 했다.[17]

패미컴 베이식으로 이런 것도 만들 수 있는 듯.

NES 컨트롤러 같은 경우는 이후에 닌텐도가 공식적으로 아케이드 게임 스타일의 조이스틱처럼 십자버튼이 조이스틱으로 되어있고 버튼도 큼지막해진 대신 평평한 모양의 NES advantage와, 십자버튼을 슬라이드 패드 비슷하게 바꾸고 그립도 추가한 NES max라는 별도의 게임패드를 내놓았다. 두 컨트롤러 공통점으로 Turbo 버튼이 있어서 A와 B 버튼을 연타할 필요가 없다.

3.1. 특수칩[편집]

패미컴 출시 3년차가 지나던 시기에 패미컴의 하드웨어 사양은 서서히 한계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패미컴은 CPU에서 32KB, PPU에서 8KB를 포함, 최대 40KB의 ROM까지 지원할 수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또한 메모리 역시 워크 메모리 2KB 및 비디오 메모리 2KB로 총 4KB 밖에 되지 않았던 것도 문제였다.

RAM 추가 및 대용량 ROM을 지원하기 위해 게임 카트리지 안에 뱅크 전환 기능과 같은 메모리 관리 제어장치를 집어넣은 것이 특수칩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그래픽 처리 보조 기능, 추가 음원 기능까지 집어넣은 특수칩도 등장했다. 패미컴 게임팩에 출시된 특수칩이 들어간 게임들 중 주로 MMC1과 MMC3 그리고 UNROM이 널리 쓰였다.

패미클론이나 컨버터로 구동 시 특수칩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3.1.1. 닌텐도 특수칩[편집]

3.1.2. 서드 파티 특수칩[편집]

닌텐도에서 특수칩을 포함한 게임을 내놓자 남코, 코나미 같은 회사들도 특수칩을 포함한 게임을 내놓을 수 있도록 닌텐도에 요청했고, 1986년부터 특수칩이 포함된 게임을 내놓았다. 서드 파티의 특수칩이 들어간 게임은 닌텐도의 카트리지 생산 통제 정책에 의해 주로 일본에서만 출시됐다. 이 때문에 이런 특수칩들이 들어간 게임이 북미나 유럽판으로 이식된 경우 그래픽이나 음악, 사운드 효과가 미묘하게 서로 다르게 나온다.

  • 액티브 인터렉티브 228

    • 닌턴도의 라이선스를 받지 않은 MMC로, 특이한 점이 있다면 레지스터의 값을 변경하지 않고 다시 사용하므로 글리치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액션 52치타맨 2에 사용되었다.

4. 패밀리 컴퓨터 개발[편집]

게임 & 워치가 히트하면서 닌텐도의 개발 1부가 활발해졌을 때 닌텐도의 개발2부는 사람도 줄었고 할 일도 없어진 상태였다. 개발 2부 부장 우에무라 마사유키는 할일이 워낙 없어서 퇴근도 일찍 했을 정도인데, 사장 야마우치로부터 전화를 통해 다음번은 테레비 게임을 해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닌텐도에서도 컬러 TV 게임을 낸 적이 있으니 그것의 후속기를 준비하라는 뜻으로 알았지만 야마우치는 조건을 내걸어서 소프트웨어 내장이 아니니 카세트 교환 방식으로, 3년은 경쟁자가 나오지 못할 사양으로 이 지시를 1981년 10월에 받았다. 그 밖에도 기한은 내년 중순까지, 아 그리고 샤프랑 같이 일하면 안된다. 에폭의 카세트비전과 게임 카트리지보다 저렴하게라는 조건이 추가되었다. 당시 샤프와 게임 & 워치를 만들었기 때문에 샤프와 합작을 또 하면 게임 & 워치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패미컴 개발 프로젝트 가동 직전에 콜레코에서 동키콩 라이센스를 얻기 위해 콜레코비전의 프로토타입을 들고 닌텐도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화려한 화면 매끄럽게 움직이는 영상을 봤을 때 개발 2부 직원 전원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는 패미컴 개발에 큰 자극이 됐다고 우에무라 마사유키가 훗날 말했다.개발 2부 부장이었던 우에무라 마사유키 역시 동키콩을 가정에서 플레이 가능한 게임기를 만들고 싶어했다. 야마우치의 지시를 받고 실현 가능 여부를 탐구한 결과 동키콩의 회로를 IC화 하면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LSI 칩 개발 파트너 회사를 찾아다니는 우에무라였으나 닌텐도라는 회사의 위치와 무리한 요구조건 덕분에 번번히 거절당하는 나날이었다. 그러다가 개시 2개월만에 최신 설비가 놀고 있다는 리코에서 연락이 왔다. 닌텐도는 컬러 TV 게임의 LSI를 미츠비시와 공동으로 개발했었는데, 마침 그 LSI 개발자가 리코로 이직해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쉬워진 것도 있었다. 거기서 꺼낸 동키콩이 돌아가는 칩을 만들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은 그 어떤 요구사항 문서보다도 이해하기 쉬운 것이었다. 수십개의 칩으로 돌아가는 아케이드용 기판을 원칩으로 한다는 도전과제도 과제지만, 자신들이 잘만 하면 동키콩을 집에서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큰 자극이 된 것이다. 또한 닌텐도는 동키콩 아케이드 게임기를 리코에 갖다 놓기도 했다.

거기서 리코는 CPU로 애플 II에도 쓰인 MOS technology의 6502를 제안했다. 리코에서는 MOS technology의 6502가 자일로그 Z80 칩 사이즈의 1/4밖에 되지 않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MOS technology의 6502의 칩 사이즈가 작아 저렴하다는 점과 일본 내에 잘 알려지지 않는 CPU라는 점, 두 가지 장점을 보고 닌텐도는 리코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특히 후자는 엄청난 강점으로 작용해서 타사에서는 1년 동안 패미컴에 손도 댈 수 없었다. 하지만 닌텐도에서도 당시에 유행한 인텔 8080이나 자일로그 Z80을 건너뛰고 생소한 6502를 선택하면서 사내에서 크게 반발했다. 닌텐도 역시 생소한 6502의 개발 도구를 만들어야 했고, 동키콩을 이식 및 게임들을 개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MOS technology 6502로는 경쟁 게임기와 당시 유행이었던 카세트비전이나 퍼스컴을 압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우에무라의 닌텐도 개발 2부는 그래픽 보조 처리 칩인 PPU(Picture Processing Unit)를 개발했다. 그러나 야마우치 사장이 CPU와 PPU 한세트당 2천엔을 넘기면 안된다는 조건과 설계 변경을 즉각 반영할 수 있는 유연한 공정등을 리코에 제시했다. 그러자 리코는 최소 100만대 이상 주문할 것을 조건으로 계약이 성립됐다.[34]

그리고 1982년 3월부터 구체적인 게임기 개발 프로젝트를 가동했는데 프로젝트 이름은 GAMECOM이었다.

5. 패미컴 출시[편집]

패미컴 발매 초반엔 그렇게 순조롭지는 못했다. 발매 1년만에 100만대, 그리고 1984년까지 250만대가 팔렸지만 기기 불량으로 인한 클레임 처리, 쏟아지는 반품으로 상당히 고생했다. 컨트롤러의 버튼은 100만회나 테스트 한 것인데도 실제로 버튼을 눌러대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쑥 들어갔고[35] RF 단자에 연결할 줄 모른다거나, 게임화면이 옆집 텔레비전에 나온다거나 본체와 연결된 컨트롤러를 끊어먹는다거나 등등 당시 닌텐도로서는 스스로의 역량 이상의 물건을 만들어 낸 것이기에 문제가 많았다. 특히 설계 회로 불량은 치명적이었다. 83년 연말 연시 시즌이 되기 전 야마우치 사장은 패미컴 전량 회수를 지시하면서 그 해 시즌을 놓치고 말았고,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됐다.

패미컴 초기엔 서드파티가 존재하지 않았다. 닌텐도 역시 아타리처럼 서드파티라는 걸 만들 생각도 못했고, 게임을 못만들게 하려고 CPU의 정체도 감췄기 때문. 허드슨이야 당시 pc소프트웨어의 강자였으니 패밀리 베이직을 만들다가 게임을 만들 기회를 주긴 했지만 남코는 갑자기 게임을 들고와서는 서드파티로 참여시켜 달라고 한 것이었다. 남코에도 이와타[36]처럼 6502에 강한 프로그래머가 있었고, 보유한 기술력도 뛰어났기에 다들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엄청나게 해댔다. 이렇게 업계의 큰손들이었던 허드슨, 남코, 타이토, 캡콤, 코나미, 자레코 6개 회사에 라이선스 우대(생산량 제한 없음, 직접 생산 가능 등)를 해줬으나 사실은 통제를 못한 것이었고 닌텐도에서 할 수 있던 것이라고는 '패밀리 컴퓨터는 닌텐도의 상표'라는걸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부랴부랴 라이선스 우대 규칙을 만들기 시작하여 그것을 완성한 해는 1986년이다. 아무튼 남코의 아케이드 히트작 덕분에 84년을 버틸 수 있었으니 닌텐도로서도 잘 된 일이었던 셈.

그리고 이런 고생은 1985년 슈퍼 마리오브라더스가 발매되고 패미컴 사회현상이 발생하며 모두 보상받게 된다.

6. NES 해외 진출[편집]

닌텐도는 패미컴 출시 초기부터 북미 시장의 진출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당시에는 게임기 관련 세계 최대 기업이었던 아타리와 협상을 시작했다. 아타리에게 패미컴을 독점 공급하기로 하고, 이에 대한 내용을 1983년 여름 미국 소비자 가전 박람회(CES)에서 아타리가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소비자 가전 박람회에서 콜레코가 가정용 컴퓨터 콜레코 아담을 발표하면서 동키콩을 시연한게 문제가 됐다. 콜레코가 시연한 동키콩은 콜레코 아담의 콜레코비전 하위 호환 기능을 이용해 시연된 것이었으나, 아타리는 계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해[37] 출시를 연기시켰다. 이후 북미 게임 시장은 아타리 쇼크로 큰 타격을 입었고, 이를 추진했던 레이 키사르 아타리 사장도 이 때문에 경질되면서 이 거래는 유야무야 되버렸다. 닌텐도 역시 그래픽 칩 불량으로 인한 리콜 문제로 잠시 북미 시장 진출을 접었다.

1985년이 되자 닌텐도는 다시 북미 시장 진출을 추진했는데 이번엔 독자적인 진출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아타리 쇼크가 진행중이던 시기였기 때문에 미국의 소매상들은 비디오 게임을 지나간 유행이라고 생각해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를 취급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닌텐도는 패미컴을 가정용 컴퓨터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Nintendo Advanced Video System이라는 제품으로 출시하려 했다. 패미컴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마치 컴퓨터처럼 보이도록 디자인을 했고, BASIC 인터프리터 카트리지와 키보드, 카세트 테이프 데이터 레코더와 동봉해 판매하기로 했다. 그리고 1985년 1월 소비자 가전 박람회에 출품했다. 그러나 컴퓨터 기능은 열악했을 뿐더러 아무리 봐도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이 시스템을 주문하지 않았다. Electronic Games라는 미국 게임 잡지에서는 이에 대해 1985년 3월호에 "미국의 비디오 게임 시장은 사실상 사라졌다. 이는 닌텐도의 오판일 수 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닌텐도는 패미컴을 가정용 컴퓨터 제품으로서의 접근을 포기하고 장난감 제품으로서 접근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1985년 6월 소비자 가전 박람회에 다시 출품했다. Nintendo Advanced Video System에서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으로, 카트리지라는 이름 대신 팩으로, 콘솔 대신 컨트롤 덱으로 개명했다. 또한 재퍼라는 광센서 총과 R.O.B.라는 로봇 액세서리를 강조해 어디까지나 장난감임을 강조했다. 또한 디자인도 다시 변경했는데 가전 제품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투박하게, 그리고 게임 카트리지를 넣는 곳이 보이지 않도록 디자인됐다.[38] 그러나 그런 전략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였다는 것을 다들 알아챘기 때문에 아무도 주문하지 않았다.

결국 닌텐도는 1985년 10월 18일 뉴욕에 한정해 10만대를 시범 출시하기로 결정했다. 슈퍼 마리오브라더스가 번들된 $130 모델과 재퍼덕헌트 게임이 번들된 $150 모델, 그리고 재퍼, R.O.B.가 모두 포함된 $250 디럭스 세트 모델로 출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매상들은 여전히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라면서 제품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았는데, 닌텐도 본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보증 하에 소매상들이 90일 이내에 상품을 판매하면 가격을 그 때 지불하고, 팔리지 않은 상품은 반납하기로 합의하면서 상품을 진열할 수 있게 됐다.

1985년 10월 18일, 뉴욕 10만대 시범 출시 이후 9주 만에 9만대 가까이 팔려나갔다. 이 기세로 1986년 2월부터 로스엔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카고를 포함한 12곳의 미국 대도시에 출시됐고, 9월에는 미국 전역에 출시될 수 있었다. 닌텐도는 NES를 1986년 한 해에만 110만대를 팔아치웠으며, 1987년에는 누적 판매량 500만대를 돌파했다. 미국에서의 NES의 성공 덕에 아타리 쇼크 이후 1985년 1억 달러 규모밖에 되지 않았던 비디오 게임 시장은 1986년에는 무려 4.3억 달러로 4배 넘게 팽창할 수 있었다. 1986년 닌텐도는 무려 3.1억 달러의 매출액을 달성했다. NES는 북미 지방에서 3400만대 가량 판매했는데 이는 아타리 2600의 판매량을 경신한 수치였다. 미국 진출 이듬해인 1986년에는 서유럽 일부 지역에도 출시되었으며, 1987년에는 서유럽 전 지역과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지역에도 출시됐다.

7. 다른 가정용 콘솔과의 경쟁[편집]

발매 당시 일본에서는 에폭사에서 만든 카세트비전이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패미컴은 이 구조를 깨부수고 단숨에 1위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경쟁사에서 스펙이 뛰어난 기기(세가 마스터 시스템)가 나오거나, 메가드라이브 처럼 16비트 기종이 먼저 나오긴 했으나, 닌텐도에서는 시장 선점자의 절대적 지위로 항상 뛰어난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수 있었고, 때로는 교활할 정도의 언론플레이(곧 있으면 슈퍼패미컴 나온대!!)로 경쟁사를 묵사발로 만들었다.

참고로, 패미컴은 1983년 7월 15일에 나왔고, 같은 날에 경쟁 기종인 세가SG-1000이 나왔으며, 세가 마크 3는 1985년 10월에 나왔다.[39] 실제로 패미컴은 메인 CPU 밖에 그래픽 프로세서를 따로 채용했고, 탑재된 램도 같은 시대의 다른 기종들보다 고용량이기 때문에 한화면에 표현 가능한 화소수도 압도적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15,000엔에 발매된 SG-1000 보다도 200엔 낮은 14,800엔이었기에 가격대 성능비에서도 게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아타리 2600의 일본판인 아타리 2800이 24,800엔에 발매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패미콤의 가격은 당시로써는 성능에 비하면 말도 안될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당시에 일본에서 판매된 8비트 게임기 사이에서는 가장 낮은 가격이었으며, 발매 당시에 이보다도 낮은 가격을 보인 기기는 13,500엔의 카세트 비전 정도뿐이었으나 그쪽은 8비트급이 아니다 보니 아타리 2600보다도 훨씬 낮은 성능이다.[40]

MSX 및 비슷한 사양의 SG-1000은 '부드러운 화면 스크롤' 조차 구현하기 어렵고[41], 아무튼 당시를 기억하는 제작자들에게는 아타리 5200 따위는 비교도 안되는 파워풀한 차세대기였다는 평가를 받고있다.[42]

사실상 경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시장 독점 상태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MSX는 마이컴의 영역에 가격도 엄청나게 차이가 났으니 애시당초 경쟁의 분야조차 달랐고, 고성능 차세대기인 메가드라이브는 발매일에 슈퍼마리오3를 내보내 압살했다. PC엔진은 '어차피 이기지 못할테니 마음대로 해보셔'라고 했다는 패기로운 루머조차 존재할 정도. 단 닌텐도 역시 놀고만 있지 않았고 디스크 시스템으로 가격을 낮춘다거나, 우수한 게임을 개발한다거나 하는 노력이 따랐다.

후속기종인 슈퍼 패미컴이 1990년에 나왔지만 이후에도 패미컴의 목숨은 질기게도 이어졌다. AV 패미컴/NES 2라는 신형 모델을 다시 발매하기도 했고, '타카하시 명인의 모험도 4'가 1994년에 나오고 나서야 신작 소프트웨어 공급이 끝난다.[43] 일본보다 2년 정도 늦게 출시한 미국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 심해서 오히려 SNES를 팀킬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1993년 10월 3일 나온 NES 모델 101(일명 탑로더)는 위에 꽂는 형태로 나왔다. 패미컴과는 다르게 어떤 게임이 실행되고 있는지를 한눈에 봐도 알수 있단 장점이 있지만 먼지가 쉽게 쌓여 글리치가 자주 일어난다는 단점이 있다.

그 외에 양덕들의 개조품들도 많이 나왔는데, 토스터기 처럼 생긴 닌토스터부터 NES는 물론이고 슈퍼 패미컴, 아타리 2600, 세가 제네시스가 전부 기동 가능한 "슈퍼 제닌타리" 도 있다.

8. 닌텐도의 사후지원[편집]

패미컴 생산 자체는 2003년 9월 30일[44]까지 이어졌고, 자주 고장나는 디스크 드라이브 벨트도 이 당시까지 계속 생산해서 판매했다. 다만 북미판인 NES는 1995년 8월 14일에 일찍이 단종되었다.

2007년 10월 말, 닌텐도에서는 패미컴 시리즈와 게임보이 시리즈 그리고 닌텐도 64 같은 구형 게임기에 대한 사후지원을 종료한다고 했다.

발매된 지 10년이 넘은 기종들이라 부품 조달이 어려운 상태이고 구매를 희망하는 사람과 수리요청이 거의 없기 때문. 뒤집어 보면, 2007년까지[45] 패미컴 정식 A/S를 요청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24년 동안 해왔다는 것이다. 참고로 플레이스테이션은 AS 접수를 20년 동안 해왔다.

8.1. 이후 소프트웨어[편집]

2008년에 발매된 록맨 9도 패미컴용으로 낼 계획이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2013년에 30주년을 맞아 'RIKI'라는 만화가가 '키라키라 스타 나이트'라는 홈브루 인디 게임을 공개하고 약 1년 뒤에 발매하였는데, 게임 자체는 평범한 점프 액션게임이지만 패미컴 성능을 극한까지 돌린 그래픽 때문에 이슈가 되었다관련 글. 만화가는 이후에 칩튠 음반 성격의 '8비트 뮤직 파워'라는 패미컴용 소프트웨어 카트리지를 2016년 1월에 발매했다관련 글, (영상). 그리고 키라키라스타나이트 DX판[46]패미컴용 롬카세트로 7월 하순에 발매할 예정이었으나 늦어져서 10월 6일에 발매하였다. 가격은 4,980엔.

또, 록맨 9와 エスカ&ロジーのアトリエ(에스카 & 로지의 아틀리에)의 악곡을 다룬 시모다 유우가 이끄는 프로그레시브 게임즈의 작품인 노벨 게임 '西武ロードリスト蘭のチップチューン地獄'가 2016년에 처음 공개되었고, 2017년 8월에 완성시킨다고 한다.

9. 불법 복제판 범람[편집]

복제 패미컴은 보통 패미클론으로 지칭된다. 중국, 대만, 러시아 등지에서 패미컴을 그대로 복제한 게임기들과 해적판 게임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와서 이들 국가에서는 한때 게임 시장의 90% 이상이 불법 게임 시장으로 점철된 적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위의 현대전자 NES기반 정식 라이선스판인 현대 컴보이와는 달리 당시 다른 대기업(?)들에서도 패미클론을 내놓기도 했다. (해태 슈퍼콤, 영실업 파스칼 등) 삼근물산의 조이콤같은 경우는 당시 인기 아역배우였던 이건주를 앞세워 대놓고 TV와 유명 잡지에 광고를 해대서 매우 높은 인지도를 얻기도 했다. (당시 광고)

그리고 90년대 앞뒤로 나온 국산 패미컴 게임[47]도 사실은 비라이선스 작품들이 많으며 그 가운데에 몇몇은 롬 덤프가 아직 되지 않아서 원 롬팩은 프리미엄이 붙어서 거래되고 있다. 주옥 같은 여러 게임들이 있지만 참고로, <둘리 부라보 랜드>와 <도술동자 구구>는 2017년 2월에 롬 파일로 덤프되었다. 게다가 국산 패미컴 소프트웨어 사이에는 바둑학습용 게임도 있는데, 당시에 프로바둑기사이던 장두진의 이름을 내세운 <장두진의 바둑교실>이라는 소프트웨어도 있다.[48]

참고로, 당시의 패미클론 제조 업체들은 아직도 그 때와 같은 짓을 하고 있다. 비공식적으로는 발매 후 30년이 넘은 현재도 신종 패미컴 기계, 심지어는 휴대용 패미컴도 생산되고, 새로운 패미컴용 게임이 개발되어 나오고 있다(…). 이는 중국 등에서 패미클론이 아이들의 완구 장르 하나로 아예 자리잡아버린 탓이 크다.

이런 패미클론이 만들어진 원인은 닌텐도일본, 북미, 서유럽 이외의 지역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패미클론에 대해 무작정 불법 불법 하면서 불무새짓만 할 수는 없는게, 해당 지역 국민들도 패미컴을 즐기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이고 그로 인한 수요가 분명이 존재하지만 닌텐도는 이들을 무시했고 이는 패미클론이 범람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실제로 패미컴 이외의 기기가 불법 호환기종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패미컴 본체 아키텍처의 라이선스 보호 기간이 이미 지났기에 현재는 일본에서도 복제 패미컴이 생산되고 있다. 정식만 아닐 뿐, 거의 똑같다고 한다.

한국에서 패미컴 게임을 만들던 회사를 게임월드가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최소 3000개는 팔아야 이윤을 볼 수 있었는데 몇 만개씩 팔리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10. 주변기기 및 기타 하드웨어[편집]

어디까지나 장난감임을 강조했던 NES 덕분인지, 그에 따른 주변기기 또한 아타리 2600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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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4인치 C1)

  • 1983년 같은 해에 샤프사에서 '패미컴 테레비 C1'이라는 패미컴이 내장된 TV가 발매되었다. 크기는 14 인치, 19 인치 두 종류. 정가는 각각 9만 3천엔, 14만 5천엔. 북미에는 1989년에 '샤프 닌텐도 텔레비전'이란 이름으로 발매되었다.

  • 샤프사에서 발매한 또 다른 패미컴으로 '패미컴 타이틀러'라는 기종이 있는데, 본체에 붙어있는 태블릿으로 자막을 넣을수 있는 등의 기능과 S단자를 기본으로 지원하기 때문에[49] 패미컴 수집의 끝판왕 취급받지만 당시 출고가가 40,000엔... 정도인지라 현재도 매우 비싸고 보통 경매로 팔린다.

  • 일본에 패미컴 박스라는 것도 출시 된 적이 있는데, 카트리지와 컨트롤러가 NES의 것과 같고, 최대 15개의 카트리지를 넣을 수 있다.

  • 한편, 1993년 12월 1일에 AV 단자를 지원하는 새로운 패미컴이 출시되었다.[50] . 원본과는 달리 컨트롤러가 분리형이며[51] 성능은 조금 떨어진다. 북미에도 같은 디자인 모델이 NES2라는 명칭으로 판매되었으나[52] 초기형은 RF 단자로만 TV에 연결할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어 혹평이 심했다.[53] 이후에 닌텐도 전용 AV단자에 대응되는 방식도 나왔으나 판매량이 적다.

  • 패미컴에 사용되는 일명 '팩'은 분해하면 PC의 램과 비슷한 모양의 칩이 나오는데 이는 앞뒤 구분없이 패미컴에 꽂아도 정상 작동한다.

  • 북미판 NES에서 일본판 팩을 사용하기 위한 전용 젠더도 있다. 일판 팩에 젠더를 끼워 사용하는 것, 동네 게임숍에서 북미판 팩은 잘 가지고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고육지책이다.

  • 일부 NES 게임팩을 까보면 일본판 팩에 젠더를 사용한 구조로 되어있다. [54]

  • 슈퍼 패미컴을 개발하면서 슈퍼 패미컴의 컨트롤러와 호환되는 패미컴 어댑터[55]라는 새 모델을 출시하려고 한 것으로 보이지만, 취소되었다.

11. 복각판[편집]

참고로 아래의 복각판들은 모두 한국에서는 정식발매되지 않았다. 닌텐도의 한국 시장에 대한 무관심으로 아래 게임기들이 발매되지 않은 사이[56], 한국에서는 쌍문동 시리즈 등의 저질 게임기들이 아래 게임기들을 대신하여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쌍문동 시리즈가 패미컴을 접했던 세대들은 물론 저연령층에게도 어필하는 현상을 볼 때 한국에서도 충분히 수요가 있다고 판단되지만, 닌텐도의 무관심때문에 한국인들은 짝퉁 게임기를 접할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57]

11.1. NES 클래식 미니 에디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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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4일, 닌텐도에서 고전게임 팬들을 위한 미니어쳐 복각판 NES의 출시를 발표했다. 2016년 11월 11일에 발매되었으며, 출시 가격은 59.99달러이다.

닌텐도는 이 NES 클래식은 그냥 올드 닌텐도 게임 팬들을 위한 추억팔이 기념품 정도로 생각하여 반쯤 재미삼아 만들었는데, 워낙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고나서야 일본판의 제작도 결정하고, 이후 슈퍼패미컴 미니 버전도 기획하기에 이르게 된다.

30종의 NES 게임을 자체 내장해 80년대에 자라온 게이머들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닌텐도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닌텐도 스위치가 나오기 이전까지 이런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주었다. 그러나 롬 카트리지 슬롯이 존재하지 않아 기존 게임팩은 사용할 수 없고 비디오 출력은 HDMI 단자로, 아날로그 TV는 사용할 수 없다.[58] 메모리 카드 슬롯도 없으며 온라인 네트워크 기능도 없기에 확장성은 전무하다. 게임 컨트롤러는 북미판 NES의 컨트롤러와 같은 모양의 컨트롤러로 1개만 포함되어 있다.[59] Wii 리모트에도 연결 사용가능하고 물론 버추얼 콘솔에도 대응. NES 클래식에 Wii 클래식 컨트롤러나 Wii 클래식 컨르롤러 프로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며[60] 심지어는 눈차크도 끼울 수 있다. 하지만 사용은 불가능. 단, 컨트롤러 줄이 좀 짧다. 기존 NES 컨트롤러 줄 길이의 반 정도밖에 안되다보니 불편하다는 평이 있다.

게임을 리셋하면 게임 진행 상황이 저장시키는 기능이 존재하며, 각 게임마다 4개까지만 보존할수 있다.

발매 후 금방 매진되었고 이베이등에서 거래 가격이 판매가의 3배 가량인 무려 180달러 가량으로 치솟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판인 패미컴 버전도 금방 매진되어 판매가가 2배로 거래되었다. 연말에는 거래가가 최고 $300로 치솟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고 2017년 3월에도 $150를 유지할 정도로 물건을 구하기 어렵다. 게다가 닌텐도는 2017년 4월 말까지만 공급하고 생산을 중단해 중고나 이베이 값이 폭등하기도 했다. 예고한 대로 북미 지역에서는 2018년 6월 29일 부터 다시 일반 판매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아마존 베스트 바이 등 주요 소매점에서는 금방 제품이 매진되어 물건을 구하기가 어렵다. 한동안은 물량부족이 이어질 거로 보인다. 추가 컨트롤러는 재생산을 안했는지 가끔씩 정가에 올라오는 본체와 다르게 정가에 올라온적이 한번도 없다 2018년 6월에 플스랑 스위치를 제치고 제일많이 팔린 콘솔이 되었다 #

기기의 스펙은 중국의 팹리스 반도체 업체인 Allwinner Technology의 R16 1.2GHz SoC와 Spansion의 512MB 용량의 NAND 플래시 메모리, 그리고 SK 하이닉스의 256MB PC3-14900 DDR3 SDRAM으로 구성됐으며, 내장된 패밀리 컴퓨터 게임들은 패밀리 컴퓨터와 호환성이 전혀 없기에 완전히 소프트웨어로만 에뮬레이팅한다. Allwinner R16 SoC는 ARM Cortex-A7 쿼드코어 기반의 CPU와 ARM Mali-400MP2 GPU가 탑재됐다.# OS는 리눅스가 사용되었다.# 위의 패미컴에 비하면 필요이상의 오버스펙이긴 하지만 설계미스는 아니고 현재 생산되는 부품들의 최소사양으로 만든다는게 이정도다. 심지어는 패미컴이 나오던 시대의 슈퍼컴퓨터 Cray X-MP를 깔아뭉갠다. 그야말로 30년의 격차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닌텐도의 주력이자 8세대 휴대용 게임기인 닌텐도 3DS와 비교해 보아도 GPU 성능을 제외하면 우위이다. 결국 분명 복각은 복각이지만 내부 구조는 전혀 다른, 원제작사가 보증하는 공식 에뮬레이터 셔틀 쯤 되는 기기.

내장 게임은 총 30개로, 목록은 다음과 같다. NES 시절의 황금기 게임들은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패미컴 클래식에는 없고 NES 클래식에만 있는 게임에는 ★로 표시.

11.2. 닌텐도 클래식 미니 패밀리 컴퓨터[편집]


공식 사이트
일본 닌텐도 토픽스

NES 클래식 에디션이 발표되고 나서 일본에서는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16년 9월 30일, 일본에 닌텐도 클래식 미니 패밀리 컴퓨터를 발매한다고 발표했다. 2016년 11월 10일에 발매되었으며, 가격은 5,980엔(VAT 미포함)이다. 2017년 9월 현재 생산중단 상태이며, 2018년에 생산 재개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원판과 동일한 크기의 패드가 동봉된 NES 클래식 에디션과 달리 본체가 작아지면서 패드의 사이즈도 작아졌다. 뭔가 묘하게 닌텐도 스위치의 조이컨 크기와 비슷해보이지만, 둘을 직접 비교해보면 패미컴 미니쪽이 훨씬 더 작다. 전면부의 확장 입력 단자 구현이 안 되어 있어 Wii 프로 패드등으로 플레이는 불가. 다만 NES 클래식 에디션과 하드웨어 사양은 동일하다.[62] 2P 컨트롤러에 MIC란 글자가 적혀있고 겉모양도 꽤나 흉내를 냈지만 막상 마이크 모듈은 들어있지 않아 젤다의 전설에서 폴스 보이스[63]를 소리쳐서 잡는게 불가능하다. 저 부분을 빼면 나머지 게임 중 내장 마이크를 활용하는 게임 자체가 없다.

원래 패미컴 본체 크기를 약 60%로 소형화한 손바닥에 얹을 수 있는 크기라고 한다. HDMI로 TV 화면에 출력하고 USB로 전원을 공급한다[64]. TV에 USB 포트가 탑재되어 있으면 거기에 바로 연결도 가능하다. 화면 출력 모드는 4:3, 아날로그 TV, 픽셀 퍼펙트 사이에서 선택 할 수 있다. NES 클래식 에디션과 달리 언어설정기능이 없으며, NES 클래식 에디션처럼 게임팩 교환은 불가능하지만 역시 30개의 타이틀을 내장 수록됐다. 단, 타이틀 라인업은 NES 클래식 에디션과 조금 다르며, 개중에는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 타이틀도 있다.

수록 타이틀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목록은 발매일 순이다. 디스크 시스템 타이틀은 굵은 글씨 로, NES 클래식에는 없고 패미컴 클래식에만 있는 게임은 ◆로 표시.


마개조를 해서 클래식 둠 시리즈를 돌리는게 가능하다는 모양(...).# 해당 일본인은 "패미컴 미니에서 리눅스가 돌아간다"→"리눅스가 돌아가면 둠도 돌릴수 있을것같다"→"???"→"PROFIT!"의 발상으로 개조한듯 하다.

패미컴으로 발매된 슈퍼 마리오 시리즈 중에 유일하게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2[67]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데,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난이도가 슈퍼 마리오 시리즈 중에서 난이도가 높다 못해 최악이라 불릴 정도라 그런지 포함시키지 않은 듯 하다. 대신에 일본판에도 북미판과 똑같이 슈퍼 마리오 USA가 들어갔다.

외관이 똑같이 생긴 중국제 짝퉁(...)이 돌아다녀서 구별에 주의를 요한다. 중국제는 400개 게임을 내장했으며 원판과 마찬가지로 팩 교체는 불가능. 또, 전원공급에 마이크로5핀을 사용하지 않고 미니5핀을 사용한다.


소년 점프의 창간 50주년 기념으로 점프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들로만 구성된 특별한 버전의 패미컴 미니가 2018년 7월 7일에 일본 한정으로 출시되었다.

[1] 포켓몬스터 파이어레드/리프그린의 주인공의 집에서도 패미컴이 나오는데, 북미판에는 NES가 나온다. 참고로 포켓몬스터 하트골드/소울실버에서는 Wii가 나온다.[2] 이후 북미판의 컨트롤러는 주먹왕 랄프에서 잠금 장치로 나온다. #[3] 모델은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3. [4] 모델은 배트맨(패미컴). [5] 디스크 시스템의 디스크 라이터도 동일한 카트리지를 사용한다. 대신 구별을 위해서인지 노란색 카트리지를 사용했다[6] 타임지는 이를 두고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서 패미컴이 지니는 위치는 로큰롤의 역사에서 비틀즈의 위치와 같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비틀즈가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선언하기 이전에 미국에서의 로큰롤은 인기 뮤지션들의 잇따른 스캔들때문에 그 뜨거웠던 열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어 이미 한물간 장르 취급받고 있었으니 적절한 비유라고 볼 수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 의문의 아타리 그리고 비틀즈영국락 음악의 주도권을 미국으로부터 빼앗는 계기를 마련했듯이 패미컴의 출시 역시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콘솔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게 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의의가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미국은 거의 모든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정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두 분야만은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이는 상황이기도 하다.[7] NTSC 지역에 쓰인 칩. PAL, SECAM 같은 50Hz 필드 출력이 필요한 지역에는 2A07이 들어갔다. MOS technology 6502에 음원칩과 음원 처리용 DAC, DMA 전송 기능을 추가하고 BCD 연산 기능은 제거한 커스텀칩.[8] pAPU(Pseudo Audio Processing Unit). 5채널로 구성.(구형파 채널 2개, 삼각파 채널 한개, 노이즈 채널 한개, 샘플링이 가능한 PCM 채널 한개)[9] NTSC 지역에 쓰인 칩. PAL, SECAM 같은 50Hz 필드 출력이 필요한 지역에는 2C07이 들어갔다. 래스터 검출가능 (0번 스프라이트의 표시라인을 거쳐서)[10] TV의 표시범위에 들어가는 것은 위 아래로 8도트씩 뺀 224 라인[11] 색 표시 수가 어중간한 이유는 패미컴의 색 표시가 RGB 지정이 아닌 NTSC 신호를 직접 생성하는 방식이기 때문이고 적절한 패러미터가 64종이기 때문에 (유채색 12+무채색 2계통) X 휘도 4계조 = 일부는 중복되어있다. 패밀리 베이식에는 52색으로 기술되어있다. 실제 사양은 색을 하나하나 고르는게 아닌 색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52색이라는 색 표현의 선택폭을 결정했다고 보는 것이 맞는다.[12] 스프라이트, 배경용 각 4팔레트. 1팔레트는 4색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1색은 모든 팔레트 공통색(스프라이트면 투명.) 록맨 캐릭터들 같이 투명 포함 4색 이상으로 구성 된 캐릭터들이 있는 게임들도 있는데 이는 2개 이상의 스프라이트를 겹쳐서 만들기 때문이다.# 8팔레트 x 3색 + 공통1색 = 25색[13] 추가 VRAM 장착하면 최대 4면 가능[14] 하지만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까지 묶으면 좀 있다. 대표적으로 디스크 시스템의 빛신화 파르테나의 거울에 나오는 상점에서 마이크에 대고 '깎아주지 않겠습니까.'라고 최대한 정중하게 얘기하면 가격을 깎아주거나 퉁명스럽게 얘기하면 가격이 비싸지는 등 자잘한 기능이 대표적.[15] 패미컴 해적판(슈퍼콤)용으로 만들어졌다. 일본에서 방송으로 소개된 적도 있고.[16] 리코 RP2A03. 상단 사양 참조[17] 사실 2배로 곱하거나 나누는 것은 디지털에서는 매우 쉽다. 자리수를 옮기면 되기 때문이다. 10진수에서 자리수를 옮기면 10배가 되거나 1/10이 된다. 나머지는 소프트웨어로 때운다... 5L와 3L로 4L 만들기를 생각해보자. 하다못해 뺄셈조차 이진수의 특성을 이용해 0과 1을 뒤집은 뒤 덧셈만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었다.[18] 게임팩 버전[미] 19.1 19.2 북미판. 참고로 유럽판은 NES로 발매되지 않았다.[21] 일본에 있는 닌텐도의 R&D3에서 만들었으나 일본에 출시되지 않았다.[22] 북미, 유럽판[23] 일본에서는 전설의 기사 엘론드로 출시됐다.[일] 24.1 24.2 24.3 24.4 24.6 24.8 24.9 일본판[28] 야마하 YM2413 OPLL칩에 비해 3채널의 리듬 채널이 제거되었고, 악기 세트가 다르다.[30] 다만 특정 개수 이상의 채널 및 샘플링을 사용하게 되면 음질 저하와 노이즈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33] 이 게임에만 3채널의 PSG 음원을 추가 지원하는 야마하 YM2149F 코어가 추가됐으며, 선소프트 5B칩이라고도 부른다. 참고로 야먀하 YM2149F는 제너럴 인스트루먼트 AY-3-8910 PSG칩을 수정한 모델이나 기능은 거의 같다. 참고로 유일하게 야마하 YM2149F를 쓰는 Gimmick!에서도 사운드 칩 기능의 극히 일부분만 썼다. 그래서 정확도보다는 성능을 중요시 하는 일부 에뮬레이터에서는 야마하 YM2149F 기능의 일부분만 구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34] 계약이 2년간 300만대라는 설이 있으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인한바 있다.[35] 당시엔 버튼이 통고무로 되어 있었다. 그후 개량형에선 플라스틱 버튼과 고무 접지판을 분리한 형태로 출시 하었다.[36] 2015년까지 닌텐도의 사장으로 지내다가 별세한 그 인물이 맞다.[37] 그 당시 동키콩에 대해 콜레코는 콘솔용 라이센스를, 아타리는 가정용 컴퓨터 라이센스를 갖고 있었다. 콜레코의 가정용 컴퓨터였던 콜레코 아담에 동키콩이 돌아가는 것에 대해 아타리는 라이센스 계약 위반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38] 다만 이렇게 앞에서 카트리지를 넣는 방식 때문에 잔고장이 많아졌으며, 카트리지 인식률도 좋지 않게 되었다. 이후 슈퍼 패미컴 출시 즈음에 아타리 2600처럼 삽입구를 변경하고 경량화한 염가판이 출시되었다.[39] 몇십년전이니 동시대라고 대충 뭉개는 경향이 있는데, 현실에서 2~3년이면 반도체 집적도가 두배하고도 조금더 늘어났을 시간이고, 드림캐스트에서 엑스박스로 넘어갔을 정도의 시간이다.[40] 이후 패미컴의 가격에 충격을 받아서 반다이에서 자사에서 수입하던 아카디아 2001을 50%나 할인한 9800엔에 판매했고, 에폭에서도 기존의 카세트비전을 기반으로 원가절감을 한 카세트비전 Jr을 5천엔이라는 초특가에 발매하기는 했으나 결국 패미컴의 가성비 앞에서는 한수 접어야 했다.[41] 제대로 된 성능을 구현한 건 MSX2부터이다.[42] AVGN에서 아타리 관련 영상을 보자. 패미컴과 비교했을 때 안습할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아타리 5200과 패미컴으로 발매된 슈퍼 마리오브라더스의 그래픽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43] 이 게임은 타카하시 명인이 허드슨 영업부 사원에게 아직도 패미컴 게임이 팔린다는 말에 재빨리 기획해서 만든 게임으로 쏠쏠하게 팔렸다는 후문이 있다.[44] 2003년이면 증손자 뻘인 게임큐브엑스박스까지 발매되고 2년 가까이 흐른 시기이다. 이는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생산되어 온 플레이스테이션 2보다도 월등히 길다![45] 이 때 '최신예'였던 PS3XBOX360은 보편적인 게임기 세대 구분법 보면 패미컴 이후 4세대 뒤의 기종이다.[46] 기존 키라키라 스타 나이트보다 화려하고 다양한 음악에...[47] 사실 패미컴이 현역인 80년대 중후반에 국산 콘솔게임의 주된 하드웨어는 MSX였다. 한국에서의 패미컴 붐은 일본보다 약간 늦었기 때문에 이러한 소프트들도 보통 1990년 앞뒤로 나온 것들.[48] 당시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기 전이었던 시절이었으며 닌텐도도 한국 시장에 관심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게임회사들이 닌텐도와 라이센스를 맺기는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었다.[49] 순수한 수집목적이 아닌 이상 보통 이 때문에 구입한다.[50] 기존 패미컴은 RF 단자만 지원했다. [51] 디자인이 슈퍼패미컴의 컨트롤러와 흡사한 약간 둥근 모양인데, 이 때문에 북미에서는 개껌 패드라고 불렸다.[52] 원 북미판인 NES가 팩을 밀어서 넣는 구조 때문에 내구성이 낮아서 NES2를 찾는 경우도 있다.[53] 참고로 NES는 일본판 패미컴과는 달리 AV 단자를 지원한다. 슈퍼 패미컴부터 게임큐브까지 사용된 닌텐도 전용 단자가 아닌 일반적인 AV단자로.(단, 스테레오가 아닌 모노 방식).[54] 자이로 마이트와 스택업이 게임내 타이틀명이 다른 이유가 이런구조이기 때문이다[55] 확장 기기같지만 별개의 기기로 작동된다.[56] 하지만, 한국 닌텐도 관계자에의 말에 의하면 정발을 검토했지만 물량부족으로 인해 출시하지 못했다고한다[57] 실제로 nes미니를 검색해보면 짝퉁을 정품으로 잘못 알고 구매해서 리뷰한 사람들도 볼 수 있다. 그나마 짝퉁가격에 샀다[58] 굳이 사용하려면 HDMI를 RCA로 변환해 주는 장비를 쓰면 된다.[59] 두명이서 플레이를 하고 싶다면 컨트롤러를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그냥 NES는 컨트롤러가 두개 포함되어있었다는게 함정[60] 클래식 컨트롤러 사용 시 a, y버튼이 A버튼, b, x버튼이 B버튼에 대응된다. HOME 버튼을 누르면 본체의 리셋 버튼을 눌렀을 때처럼 바로 리셋이 가능하다.[61] 여기서 말하는 슈마브2는 북미판에서 로스트 레벨로 불리는 것이 아닌 일본판에서 USA라고 불리는 것이다.[62] 단 NES 클래식 미니와 다르게 대만제 Nanya 256MB DDR3 SDRAM과 Macronix 512MB NAND 플래시 메모리가 들어가 있다.[63] 귀가 커서 소리에 민감하다는 설정이 있고, 실제로 2P 컨트롤러에 소리를 내서 여러마리를 한번에 잡을 수 있었다.[64] 마이크로 5핀 케이블 사용가능. USB 충전기 형태의 AC 어댑터도 1,000엔에 별도 판매한다.[65] "그 슈퍼 마리오를 넘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슈퍼 울트라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카피로 광고했다.[66] 순서대로 99개의 ZONE과 마지막 FINAL ZONE, 그리고 숨겨진 FINAL ZONE이 존재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폭탄을 던져 폭발시키면 등장하는 숨겨진 문이 도처에 존재하며 특정 구멍에 떨어지거나 특정 장소에서 폭탄으로 자살하거나 특정 공간을 향해 점프하거나 하면 갑자기 다른 ZONE으로 워프하는 등 숨겨진 요소가 너무나도 많아 100개의 ZONE을 전부 클리어할 일은 없다. 게다가 버그로 인해 갈 수 없는 ZONE이 3개(55,59,84) 있다. 이쪽은 비기를 이용해 직접 ZONE 선택을 하지 않는 이상 갈 수 없다.[67] 일본에서 USA가 아닌 북미에서 로스트 레벨이라 불리는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