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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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파리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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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도시경관. 중간에 판때기로 가린 공사현장은 파리 경시청, 우리나라로 따지면 경찰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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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

파리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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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상징이자 프랑스의 상징 에펠탑

국가

프랑스

표어

Fluctuat nec mergitur[1]

인구

2,243,833명[2] (2010년 기준)

면적

105.4 km²

레지옹

일드프랑스

시간대

UTC+1 (서머타임 준수)

서울까지

10시간 9분
8,988km

한국과의 시차

-8시간, -7시간(서머타임)


1. 개요
1.1. 기후
2. 파리의 기원과 역사3. 파리의 행정구역
3.1. 구별 개요3.2. 주요 명소
4. 트리비아

1. 개요[편집]




예술가들의 수도이자 낭만의 도시

프랑스의 수도이자 최대도시. 유럽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이칭은 빛의 도시(La Ville Lumière).

Paris의 s는 묵음이고 실제 프랑스어 발음은 빠히나 빠리[3]에 가깝지만(빠히가 더 정확하다), 된소리를 쓰지 않는다는 외래어 표기법 규정에 따라 한글 표기시 '파리'로 쓴다.

1.1. 기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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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카이유보트 - 비오는 파리

이런 날씨가 일상이다. 그래도 런던보단 낫겠지 생각하고 갔다가 뒤통수 맞기 십상이다.

파리는 같은 프랑스어권인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과 함께 한참 북쪽으로 올라가있다.[4] 그래서인지 온난한 곳이 아니다. 걸핏하면 비가 오고 축축하며 싸늘하고 쓸쓸하며 어두컴컴하고 해 안비치는 것은 런던과 다를 바가 없다. 연간 일조시간 런던 1,630시간, 파리 1,660시간으로 큰 차이가 없다.[5] 현지인들에 따르면 런던과 파리는 우중충한 날씨가 보통이라고 한다. 흠좀무.[6] 위도 만을 본다면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과 위도가 동일하다. 하바롭스크 지방, 사할린 섬, 등이 대부분 유럽 (남유럽 제외) 와 그렇게 차이 나지 않는다.

애초에 파리-런던간 거리는 부산광역시~서울특별시 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서북 방향으로 직선거리 약 340km.

2. 파리의 기원과 역사[편집]


그 이름의 유래는 고대 파리 지역에 살았던 갈리아의 일족 파리시(Parisii)에서 나왔다.[7] 고대 로마가 갈리아를 정복한 후에 파리시 족이 살던 곳에 도시를 세운 것이 오늘날 파리시의 기원이 되었다. 로마 제국 당시에는 루테시아[8]라고 불렸는데 정식 명칭은 "파리시의 루테시아(Lutetia Parisiorum)"였다. 파리시 족이 살던 센 강의 시테 섬에 로마인들이 그대로 도시를 세웠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 당시의 루테시아는 센 강의 시테 섬에서 센 강의 좌안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오늘날 파리 제5구역에는 루테시아 시절에 세워진 원형극장의 유적이 남아있기도 하다. 로마 제국이 쇠퇴하면서 이민족들의 침입 때문에 결국 센 강의 좌안 지역은 포기하고 시테 섬을 요새화하게 되어 그후 상당기간은 시테 섬을 중심으로 한 요새도시로 남게 되었다. 그 때부터 루테시아라는 이름 대신 오늘날의 파리라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5세기말, 클로비스 1세는 파리를 점령했고 508년, 파리는 메로빙거 왕조의 수도가 되었다. 카롤링거 왕조 시절엔 아헨이 수도가 되었다. 885년에서 886년까지 파리에 바이킹 족이 쳐들어왔는데 이때 프랑크 왕국의 샤를3세(독일어로는 카를 3세)는 막대한 조공을 지불하고 바이킹과 강화를 맺어서 무마했다. 이에 반발한 파리 시민들은 프랑크 왕국의 왕 대신 파리 백작을 더 따르게 되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 센강의 우안 쪽으로 파리가 확장되었다.

989년, 서프랑크 왕국의 카롤링거 왕조가 단절되자 파리 백작 위그 카페가 프랑스 국왕으로 추대되어 카페 왕조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에 따라 파리는 프랑스 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필리프 2세 때에는 파리를 둘러싸는 성벽이 완성되어 파리는 강력한 요새도시가 되었다. 11세기에 파리 대주교좌 부속 학교로 시작한 파리 대학이 발전하여 스콜라 신학의 중심지로 유럽에 명성을 떨쳤다. 독특하게 센강 좌안은 대학을 비롯한 학교들이 발전했고,[9] 센강 우안은 시장이 발전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파리의 대체적인 구조가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백년전쟁 당시에는 오를레앙파와 브르고뉴파의 치열한 혈전으로 파리는 상당한 혼란에 빠져야 했다. 그 후에 잉글랜드 왕과 동맹을 맺은 브르고뉴측이 파리를 점령했고 잔 다르크는 이를 탈환하려다가 붙잡혀서 마녀재판을 받은 후 화형당했다.[10]

우여곡절끝에 프랑스군이 파리를 다시 탈환하여 파리는 다시 프랑스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프랑스군도 화형! 그러나 이후 왕들은 파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루아르 계곡에 세운 성을 더 좋아해서 파리에는 오래 머무르지 않는 경향이 생기기도 했다.

위그노 전쟁 당시에 파리는 가톨릭 세력의 중심지였고 이로 인해 1572년에는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 일어나기도 했다. 위그노 전쟁 이후 등극한 앙리 4세는 파리를 프랑스 왕국의 명실상부한 수도로 부활시켰고 이후 파리에는 튈리르 궁, 루브르 궁, 폐병원 등의 대규모 건물들이 잇달아 세워졌다.

그러나 루이 14세 때 사실상의 행정수도나 다름없는 베르사유 궁전을 건축하면서 파리는 수도의 위상을 잃게 되었고 프랑스 혁명 전까지 베르사유가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11] 결국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부녀자들의 베르사유 행진으로 루이 16세 일가가 튈리르 궁으로 끌려오면서 파리는 다시 정치의 중심지가 된다. 프랑스 혁명 당시 중요 사건들이 파리에서 일어났으며 파리에서 혁명이 과격해진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19세기에 이르러 파리는 정치적으론 잇달아 일어난 혁명과 파리 코뮌 등으로 혼란스럽긴 했지만 경제적, 문화적으로는 산업화로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1837년에 파리와 생 제르망 안 레이 사이에 철도가 놓인 것을 시작으로 이후 파리에서 각처로 철도 노선들이 이어지게 되었다.

파리를 근대도시로 탈바꿈한 인물은 나폴레옹 3세 당시 센 현의 지사였던 조르주 오스만 남작으로 중세 이래 이어져온 좁은 골목을 넓은 도로로 바꾸고,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었으며 도심부를 재개발하고 사회기반시설들을 갖추는 파리 개조 작업을 진행했다. 오늘날 파리의 모습은 조르주 오스만에 의해 갖춰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나폴레옹 3세가 패전하면서 파리는 다시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제2제정이 붕괴하고 제3공화정이 탄생했지만 파리는 프로이센군의 포위로 70여일이 넘게 고립된 끝에 제3공화정의 보수파 정권은 프로이센에게 항복하게 된다. 파리의 노동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정권에 저항하여 파리 코뮌을 결성하여 봉기하였지만 결국 베르사유 정부군에게 진압되어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와해되었다.

19세기 말에서 제1차 세계 대전 발발전까지 파리는 큰 발전을 이룩했다. 여러 차례의 만국 박람회가 개최되었는데 1889년 만국 박람회를 기념하여 에펠탑이 건설되었고, 1900년 만국 박람회에는 파리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의 침공으로 파리는 함락 일보직전까지 놓였고 프랑스 정부는 보르도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마른 전투에서 독일군이 패배해 파리는 간신히 함락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사이 파리에는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몰려들어서 예술도시로 세계적 명성을 날렸다. 그리고 그 당시 파리로 건너온 예술가들은 에콜 드 파리(파리 파)라고 불리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파리는 개전 1개월 만에 별 저항없이 독일군에게 점령되고 말았다. 상젤리제를 행진하는 독일군을 본 시민들은 보불전쟁 때 겪었던 수모를 또 겪게 되어서 참담했다고 한다(자료화면중에는 울면서 독일군에게 손을 흔드는 파리 시민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 있다). 파리 시민들 중에는 독일에 협력한 사람도 있었는가 하면, 레지스탕스 활동에 뛰어들어 독일에 저항한 사람들도 있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1944년 8월 15일에 파리는 연합군과 자유 프랑스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파리가 함락당하기 직전, 아돌프 히틀러는 파리에 주둔한 독일군 사령관 디트리히 폰 콜티츠 중장(Dietrich von Choltitz,1894~1966)에게 파리를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노트르담 대성당, 루브르 박물관, 콩코드 광장 등 파리의 유명한 문화유산들에 폭탄들이 설치되어 콜티츠가 히틀러 명령을 충실하게 따랐다면 파리의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파괴되었겠지만 콜티츠는 나는 히틀러의 배신자가 될지언정, 파리를 불바다로 만들어 인류의 죄인이 될 수는 없다며 히틀러 명령을 거부하고 항복하는 길을 택했다. 이 때, 콜티츠는 명령을 따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자신의 아내에게 전화했다. 그리고 명령을 거부하겠다는 콜티츠의 말을 들은 아내는 '당신이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당시 히틀러는 9번이나 전화를 하여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Brennt Paris? /Is Paris Burning?"라고 질문했는데 이 말은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6년작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Paris Brule-t-il? 로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영화제목이 되었다(코만도스2의 마지막 미션 제목도 'Is Paris Burning?'). 명령을 무시하고 항복한 콜티츠와 부하들은 파리 한복판을 끌려가면서 파리 시민들에게 야유 및 욕설, 침까지 맞는 비참한 신세를 겪지만 레지스탕스와 경찰들이 적어도 그들을 지키면서 안전을 보장했다. 레지스탕스 지도자 앙리 롤 탕기에게 항복 조건으로 자신과 1만 7천명 파리 주둔 독일군 목숨을 보장했기 때문. 물론 롤 탕기는 나중에 회고하길, "파리를 지켜준 그의 마음에 고마워하며 설령 그런 조건이 없었다해도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콜티츠 중장은 종전 뒤에 전범 재판을 받아 2년정도 복역했지만 파리를 불바다로 만들지 않은 공을 높게 인정받아 가석방되었고 파리 시를 무사하게 놔둔 것에 대한 감사장과 명예시민증까지 받았다. 콜티츠는 1956년에 파리를 조용히 방문했는데 바로 나치 독일군 지휘본부가 있었던 바로 그 ‘호텔 르 뫼리스’를 잠깐 들러갔다고 한다. 당시 호텔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직원의 말에 의하면, 콜티츠는 아주 단정한 자세로, 하지만 세월의 경과에 조금은 놀란듯한 눈치로 호텔을 둘러봤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호텔 매니저가 콜티츠에게 샴페인을 권했지만, 콜티츠는 사양한채 몇 분을 둘러보다 호텔을 떠났다.

콜티츠가 1966년 숨을 거두자 프랑스에서는 레지스탕스 지도자와 프랑스 전현직 장군들과 외교관까지 콜티츠의 장례식에 참여하여 명복을 빌었고 히틀러의 명령을 어기고 파리를 놔둔 것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2014년 7월 6일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코너인 Extreme Surprise에서 이 부분을 다루었다.

헌데 콜티츠에 대한 비난이 있다. 전쟁 와중에 학살 및 전쟁범죄에 관여한 인물이건만 파리 시를 히틀러 명령을 씹고 놔뒀다는 이유로 칭송할 건 없다는 것. 하지만 워낙에 이 공로가 커서(?) 그의 죄가 덮어지고 말았다.

전후에 파리는 교외로 확장되어 인구가 증가했다. 1968년의 68운동은 파리에서 전 세계로 확산되기도 했다. 오늘날 파리는 프랑스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자 세계적인 문화, 예술, 패션의 도시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3. 파리의 행정구역[편집]

파리는 20개의 구와 주변 위성도시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흔히 파리라고 부르는 지역은 외곽순환고속도로 안쪽의 20개 구를 말한다. 우편번호가 750(00)[12]이면 파리 시내이다. 시내 인구는 217만여명, 외곽까지 합하면 1184만명에 달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행정개편에서 파리는 센 현의 현청소재지로 제1코뮌에 해당했고 시의 영역은 오늘날처럼 크지는 않아 파리 지하철 2호선, 6호선의 안쪽이 당시의 시 영역에 해당했다. 지금의 형태가 된 것은 1860년 시 영역 확대시행 때였다. 이후 1968년에 센 현을 폐지해 파리시는 현과 동격의 자치단체로 규정되었다가 1978년에 프랑스를 각각 레지옹(지역권)으로 나누면서 파리는 일 드 프랑스 레지옹의 수도로 속하게 되었다. 한국의 상황에 비유하자면 '서울특별시'이기보다는 '경기도 서울시'와 같은 식이다.[13] 20개 구는 파리를 달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며 배치되어있다. 대체적으로 센강 서안(강 남쪽지역)이 조용하고 안전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고, 최중심부와 북동쪽은 막장을 달린다고 평가받는다.

서울(1963년), 도쿄(1932년), 베를린(1920년), 런던(1965년) 등이 20세기 들어서 행정구역의 대규모 확장을 단행한 반면에 파리는 19세기에 획정된 시 경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광역행정의 후진국 이를 서울에 비유하자면 사대문 안과 성저십리 지역[14][15][16] 만 '경기도[17] 서울시'이고 그 주변을 경기도 노원시, 도봉시, 강남시, 서초시, 영등포시, 구로시, 강서시 등이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이다.[18] 이토록 행정구역 확장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좌파 성향의 코뮌들과 우파 성향의 코뮌들 간의 갈등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출처: 브리태니커 대백과) 아무튼 이러한 도시행정체계 때문인지 브리태니커 대백과에 따르면 광역행정 상의 문제가 만만치 않다고.

그래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 파리시의 외곽도시들을 편입하여 큰 도시를 형성하는 '그랑파리(grand paris)' 계획을 발표했고, 현재 외곽도시에서는 이 계획의 일환으로 지하철 15호선 등이 건설 중이며, 도시들은 정비사업 및 재개발이 한창 진행 중에 있다.

3.1. 구별 개요[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aris_arr_jms-num.gif
달팽이 껍데기 모양이다

1구

그야말로 파리 중의 파리. 핵심지역이며, 콩코르드 광장-튈르리 공원-루브르 박물관으로 대표된다.

2구

1구 북쪽에 있으며 오페라 지구라고도 한다. 대충 눈치채겠지만, 주거지역이 거의 없는 상업구이다.[19] 7호선이나 14호선의 Pyramide역에서 내리면 그 옆 언덕에 한국과 일본 식당, 식료품점들이 모인 동네가 있다.

3구

2구 동쪽에 있으며 상트르 퐁피두로 대표되는 구. 박물관이나 극장과 같은 문화시설이 집중되어있어 유동인구가 많다. 여담으로 퐁피두 센터 동쪽과 4구 사이에 마레지구를 비롯한 곳들은 게이들을 위한 클럽이나 바가 많기로 유명하다.

4구

시테 섬을 포함해서 북쪽에 있고, 시청과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대표된다. 이곳도 문화시설이 빽빽하게 집중되어 있는 편.

5구

시테 섬 남쪽에 있는 구로 팡테옹과 소르본 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소르본 대학이 있는 라틴 구역과 그 일대는 맛집이 많기로 유명하다. 치안도 좋고 식물원(녹지대)이나 도서관 같은 조용한 문화시설이 많아서 시끄럽지가 않다. 그러다보니 주거지역으로서 인기가 극에 달해 땅값이 두 번째로 비싸다. 사족이지만, 파리에서 제일 좋은 TRPG/보드게임 상점들이 여기에 매진해 있으므로 참고하자.

6구

5구 서쪽에 있으며, 생제르맹 거리와 뤽상부르 공원으로 대표된다. 박물관과 영화관 및 극장, 미술관, 카페 거리 같은 시설이 가장 많고, 대중교통도 거미줄처럼 쳐져있어 편리하다. 그러므로 땅값은 최고조를 달린다.

7구

6구 서쪽에 있으며, 에펠탑으로 대표된다. 옛부터 부촌을 이루던 이 지역은 정부청사가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며, 대사관도 많이 모여있다. 주불한국대사관 역시 이 지역에 위치해 있다. 파리에서 제일 치안이 좋은 동네로 손 꼽히기도 한다.

8구

7구에서 강 건너 북쪽에 있다. 루이비통을 비롯한 명품 브랜드의 메카인 샹젤리제 거리와 엘리제 궁 및 개선문이 자리하고 있어 관광객이 항상 넘쳐나는 구이다. 그야말로 부자들을 위한 곳. 샹젤리제 거리가 8구의 끝과 끝을 가로지른다.

9구

2구 북쪽, 8구 동쪽에 있다. 북쪽의 대규모 주거지구, 남쪽의 대규모 상업지구 사이에 끼어 있다 보니 상권과 대중교통이 가장 발달한 지역이 되었다. 그만큼 교통량과 도로량도 폭주하여 각종 공해가 가장 심각한 지역이기도 하다.

10구

9구 동쪽에 있으며, 파리 북역파리 동역이 자리하고 있다. 역 주변 상황이 다 그렇듯 하층민이 많이 살고, 치안은 막장을 달리는 것으로 악명높다. 인도, 파키스탄, 중동 출신의 이주민 비중도 상당히 크며, 주민간 갈등이나 사회문제로 중범죄가 잦은 지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가 섞여있고 이곳의 유흥가나 맛집들이 주목을 받기도 한다.

11구

레푸블리크 광장과 바스티유 광장을 경계로 두고 3구와 마주하고 있다. 중저가 주거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으로, 젊은이가 많아 밤문화가 발달해 있다.

12구

강북지역 파리 남동쪽 끝에 자리한 지역. 공원과 정원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대중교통은 약간 불편한 편인데 눌러앉아 살기에는 가장 좋은 지역이다. 최근 Bercy를 비롯한 동네가 떠오르는 중심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Père la chaise 공동묘지를 경계로 20구와 맞닿아 있다.

13구

강남지역 파리 남동쪽 끝에 자리한 지역. 파리 차이나 타운이 여기에 있다. 중국인이 많이 살고, 기타 동양인들도 많이산다. 오스마니안 양식의 건축물들이 주를 이뤘던 파리 중심가와는 다르게 고층건물들이 주를 이뤄 이색적인 동네, 또는 아시아 느낌이 나는 동네로 알려져있기도 하다. KPOP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이 곳에 있으며 그 가게들 근처엔 KPOP 팬들이 가득하다. Bibliotheque fr.mitterrand역 주변은 파리같지 않은 현대적인 분위기로 사람들이 많이 찾으며 실재로도 신도시 개발이 진행 중에 있다. 하지만 13구 외곽지역(주로 7호선 maison blanche역 아랫쪽)으로 갈 수록 방리유인 발 드 마른(주로 94지역이라고 불린다) 주와 가까워서 치안은 좋지가 않으며 파리가 원래 그렇듯 밤 늦게는 돌아다니지 않는 게 좋다. 외곽지역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늦은 시간대에 길을 배회하는 불량(?)한 무리들을 마주할 수 있다.

14구

몽파르나스역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 자리한 지역. 조용한 파리 남쪽답게 치안은 좋은 편이지만 나름대로 유흥가가 많아 시끄러운 편이기도 하다. 대중교통 이용도 어렵지 않아 학생들에게 특히 각광받는 지역이다.

15구

몽파르나스역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 자리한 지역. 조용한 중산층 지구이며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마트, 한국식당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파리 사람이라면 다 아는 거리인 Rue du Commerce[20]가 있는 구이기도 하고 Beaugrenelle라는 파리 내에선 보기 힘든 대형쇼핑몰이 위치한 구이기도 하다. 2013년 12월 프랑스 신문기사에 따르면 2013년 1년 동안 파리의 구 중에서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으로 1위를 달성한 곳이 15구이다.[21]

16구

파리 남서쪽 끝에 자리한 지역으로 부촌 중 하나. 센강과 에펠탑으로 접근이 쉽고 샤이요 궁과 트로카데로가 있다. 또 불로뉴 숲을 비롯한 공원들이 많다. 부촌이라 집값이 비싸고, 꼭대기층에 하녀방을 가지고 있는 집도 많으며 많은 수의 유학생들과 대학생들이 이런 하녀방에 산다. 엘레베이터도 없는 아파트의 8~9층을 매일 오르락 내리락하는 흙수저들ㅠㅠ 공원 등 녹지가 많으며 동시에 스포츠 홈구장들이 위치한다. 바로 파리 생제르맹 FC의 홈구장인 파르크 데 프랭스프랑스 오픈이 열리는 롤랑 가로스 스타디움이 여기에 위치한다.럭비 구장도 있지만 관심없다.

17구

8구에서 북서쪽으로 접한 지역. 8구에 가까울수록 부자들이 많고, 18구에 가까울수록 서민들이 많은 완충지대이다. 18구 근처와 외곽지역은 치안이 매우 좋지 않다. Place de clichy 근처는 유명한 펍들이나 카페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역시 치안이 좋진 않다. 그러나 역사적으론 매우 중요하며 9구, 18구를 비롯해 이곳이 진짜배기 파리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17구 너머로는 파리 신도시라고 할 수 있는 라데팡스(La Défence)가 위치해 있다.

18구

파리 북부에서 서쪽에 있는 지역으로, 서민들의 거처이다. 가난한 예술가가 모이는 몽마르트 언덕으로 대표되는 이곳은 여행객들에게 조용한 곳인지 시끄러운 곳인지 애매하게 만든다.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치안은 비교적 좋지 않은 편이다.[22]

19구

파리 북부에서 동쪽에 있는 지역으로, 샤를 드 골 공항과 가깝다. 또한 생마르땅운하(canal saint Martin)가 위치하고 있는 구이다. 한국인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파리의 숨겨진 명소[23]로 운하주변 경치가 좋아 산책하기 꽤 좋은 곳이고 운이 좋으면 배가 운하를 지나가면서 갑문을 닫고 물을 빼고, 채우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운하주변 집값은 파리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비싸다. 그 외의 19구 지역은 집값이 매우 저렴한 편인데, 한국인이 많지 않지만, 한국 민박이 있어서 Crimee역 주변에서 한국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라비에뜨 공원도 있고, 배를 탈 수 있는 지역도 있다. 한국으로 치면 홍대 같은 곳이라 축제나 이벤트도 많고, 놀 공간도 많지만 치안이 좋지 않아 블록마다 치안대가 하나씩 있을 정도다. 중국인과 흑인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 중 하나다. 한국인을 봐도 니하오 한다 그거 인종차별인데... 그만큼 아시아 상점도 많다 아시아 상점이라 쓰고 중국 가게라 읽는다

20구

11구 동쪽과 12구 북쪽에 있는 지역으로, 이주민이 정말 많이 사는 지역이다. 땅값도 싸서 집촌이 대량 존재한다. 치안이 좋지 않다. 대규모 시위가 종종 이곳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몇몇 동네는 젠트리피케이션에 성공해서 옛말이라는 평도 종종 있고 그런 동네들은 땅값도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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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조사한 일드프랑스의 경제 규모. GDP(국내총생산)가 6,692억 달러로 일본 수도권, 뉴욕, 로스앤젤레스, 한국의 경인, 그레이터런던에 이어 6위를 차지하였다.

3.2. 주요 명소[편집]


베르사유 궁전은 파리 외곽, 베르사유시 (Versailles Ville) 에 있다. 파리에서 RER 을 타고 갈 수 있다.


4. 트리비아[편집]

뉴요커처럼 파리인을 지칭하는 파리지앵이라는 말이 제법 자주 쓰인다. 뉴요커가 세련된 직장인들 느낌을 준다면 파리지앵은 선진적인 예술인, 문화인쯤을 나타내는 듯하다. 뉴욕 항목에 있듯 현실은 냉혹하지만.

프랑스 사람들도 이탈리아 사람들만큼이나 미인이라면 정신끈을 놓는다고.

프랑스 TV에서 미인 배우를 카페 의자에서 혼자 책을 읽게 하자 파리 떼처럼 남성들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성에게 큼지막한 결혼반지를 끼워보았는데... 그래도 몰려들었단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시하는 게 아니라 올 때마다 "저 유부녀에요"라고 말하게 했는데, 그러자 답변이 죄다 "저도 유부남이에요" 아니면 "그래서요?"였다.

서유럽의 유명한 도시들 중 가장 위생 상황이 개판인 것으로 악명높다. 쓰레기나 개똥이 많은 탓도 있고, 도시 자체가 박물관을 겸하는 특성상 도로조차 제대로 갈아엎지 못해서 꼭 오물 문제가 아니더라도 꽤 지저분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기사 그래도 쓰레기통[25]을 설치하고 잡기 운동을 전개하는 등 위생 개선을 위한 노력은 어느 정도 하고 있다. 그리고 파리 메트로는 유럽의 메트로중 최악(...)이다.

몽마르트르 언덕이 두 개가 있기 때문에 말을 잘못하면 엉뚱한 몽마르트르로 갈 수 있으니 조심. 야경 본다고 절대 밤에 가지 마라. 신변을 보장하지 못한다. 18-19구는 오후 6시 이후엔 파리에 익숙하지 않은 관광객이라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해가 길고짧고, 시간대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위험 할 수 있는 곳이다. 파렴치한을 피하기 위해, 가급적이면 도보로 몽마르뜨 올라가는 것보다 몽마르트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도보로 별로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야트막한 곳이라고 도보로 올라가다가 이들을 만나면... 참고로 이들은 한국어도 능숙하게 한다. 굳이 도보로 올라가겠다면 공원으로 올러가는 쉬운 길 말고 그 옆에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이 그나마 덜 위험하다. 다만 이쪽은 공원으로 손쉽게 올라가는 것과 비교되지 않게 힘들고(대신 유산소 운동의 효과는 있다(...))올라가는 동안 찌린내에 코가 고문당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이쪽도 팔찌단과 같은 이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위의 코르티츠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파리에는 온갖 아름다운 건물들과 문화 유산이 가득하다. 따라서 파리의 건물들은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건물 내부 리모델링은 자유롭지만 외부 리모델링은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심지어는 이제는 아예 쓰지 않는 굴뚝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고 있다. 이는 파리의 모습을 후손에게까지 온전히 남겨두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니 영화 G.I. Joe: 더 라이즈 오브 코브라에서 이 파리 시내를 부수는 것은 그야말로 충공깽. 잡혀갈만 했다. 두번 다시 입국 불가인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판결이고 어찌보면 너무 약한 처벌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파리지앵들은 도시를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박물관의 전시품처럼 다룬다는 비웃음을 받는 경우도 있으니 참고하자. 즉, 사람이 사는 도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습이 바뀌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곧 도시의 발전이자 변화인데 '지금 이 순간의' 형태에 극단적으로 집착한 나머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형태와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포기해버렸다는 것. 이런 입장에서 보는 사람들은 파리는 사실상 현대도시라기보다는 벨 에포크 시대의 도시처럼 보인다고 말하기도 한다.

파리뿐만 아니라 유럽의 대도시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저언정 보통 이런 경향이 강하다. 단적으로 체코프라하같은 경우는 공산정권 시절을 거치며 실제로도 발전 자체가 정체되었단 점을 감안한다고 쳐도 구시가지 경관에 대한 집착이 파리보다 훨씬 더 심하다. 더구나 유럽은 다른 문화권의 대도시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편이고 현재 기준으로도 멀쩡하게 리모델링만 해서 쓸 수 있는 건물들이 태반인데다 어지간한 전쟁이나 화재, 자연재해로 인해 도시 전체가 리셋되지 않는 이상[26] 딱히 일부러 갈아엎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어쨌든 시간에 따라서 도시경관이 지나치게, 너무 많이 뒤집어져버리는 아시아, 북미권 대도시와는 달리 좀 낙후된 느낌이 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반대로 옛것을 보존하며 그 개성을 지키는 모습이 아름다우며 그냥 유럽에서 '도시'를 이해하는 방식이 타 문화권과는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더군다나 이러한 도시들로 벌어들이는 관광수입도 무시 못할 것이다

도시의 유명세만큼 사람들은 몰리고 도시와 건물은 확장되어야 하는데, 위의 이유들과 함께 지반의 특성상 옛 건물들을 유지 중이다. 파리라는 도시 자체의 지반이 그다지 단단한 땅이 되지 못하다고 한다. 늪지 위에 지어진 도시라 건물을 새로 높게 올리고 싶어도 골치가 아픈지라, 인구는 늘어나고 집은 한정되어 있고, 집값은 한도 끝도 없이 올라가고[27], 오늘도 유학생들은 폭 1m가 안되는 나선계단을 기어올라 6층 옛 하녀방에서 새우잠을 잔다.

파리에서는 절대로 아무데서나 사진을 찍지 말자. 2016년부터 프랑스 정부에서 저작권을 이유로 현대건축물이나 조각품 등에 대한 촬영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브르 박물관도 박물관 건물은 찍을 수 있지만, 유리피라미드는 찍을 수 없다.[28] 이 법률과 관련해서 가장 황당한 사례는 에펠탑이다. 19세기에 지어진 것이니 낮에 찍는 건 자유지만, 밤에는 조명시설에 저작권이 걸려 있어서 찍을 수 없다는 것. - 에펠탑을 밤에 찍으면 안 되는 이유

프랑스동성애자들이 많다는 사실이 유명하거니와 특히 파리에서는 마레 지역에 세련된 동성애자들이 많이 모여든다. 지하철에서 동성인 사람이 내게 윙크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착각이 아닐 수 있다.문이 열리네요 숨겨왔던 나의

빛이 있으면 어둠이 따르는 법이다. 유명한 도시인 만큼 성공을 위해 몰려온 사람들의 여파로 인해 치안이 좋지 못하다. 불법 이민자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취업, 교육, 의료가 보장되지 않으니 도시의 부랑자로 전락한다. 일부 지역 경찰력은 치안 유지가 아니라 사건수습에 가깝다. 낭만에 취해 경계를 놨다간 호되게 당한다. 어느 낯선 곳을 가나 적용되는 당연한 소리지만,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다가올 이유가 없다. 다가왔다면, 원하는 게 있는 것이다. 낯선 도시에서의 운명같은 만남? 영화 테이큰(Taken)의 무대도 파리라는 걸 기억하자.걔는 아빠가 리암 니슨이었기 망정이지 나는...RIP 전반적으로 온 도시에 소매치기가 많으며, 심지어 소매치기 주제에 걸려도 당당하다. 주로 조심할 곳은 지하철-, 카페 테라스, 맥도날드.[29] 절대 주머니에 귀중품 또는 핸드폰을 넣지 않도록 하자. 청바지 주머니도 훅 털어간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이 뭘 하건 내 가방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다.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말을 걸어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이미 늦었다.

특히 파리 명소에서는 집시차림의 유색인종 미성년자 강도단에 대한 피해가 심하다. 특이점은 대낮에 주로 활동하며 주범을 잡아도 미성년자에 주거지가 불분명한 떠돌이인데다, 이미 훔쳐낸 귀중품은 다른 운반책이 가지고 날라버리기 때문에 신고를 해도 해결도 안될뿐더러 물건을 되찾을 확률도 낮다. 주로 파리에 처음 방문한 관광객들이 표적이 되는데 범행 수법은 다음과 같다.

까무잡잡한 아랍계 혼혈 여자아이들이 먼저 피해자를 낚는다. 관광객들에게 미소로 여자아이들이 접근해서 앙케이트에 참여해 달라거나 또는 길을 안내해준다고 한뒤 관광객이 호감을 보이거나 경청하면 주변에 흩어져있던 집시들이 어느새 그 관광객 주변을 쭉 애워싼다. 단체로 표적을 정신없게 만든 뒤 지갑이나 스마트폰을 훔쳐가는데 관광객의 혼을 쏙빼는 여자애들과 금품을 훔쳐서 달아나는 남자애들이 4~10인 1조로 행동한다. 특히 아시아권 및 한국 관광객들은 현지에서 관광객티를 매우 많이내는 편인데다 강도들이 노리는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어서 피해사례가 잦다. 특히 한국인들이 피해사례가 극심한데 고가의 DSLR 카메라, 100만원 상당의 스마트폰, 다량의 현찰과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갖고 다니는 국민적(?) 특성 때문에 표적이 되기 쉽다고 한다.

프랑스어의 r[30] 발음은 한글로 표현이 되지 않으나 파리 현지인들은 '빠히'와 비슷하게 발음[31]하고, 영어로는 '패리스'라고 한다. 헌데 미국에서 속물들은 '패리'라고 발음한다고 하는 유머가 있다. MTV에 보면 그러한 사람이 나올 때마다 " '파리'도 아니고 '패리'래 "하는 농담이 흔히 나온다. 사실 영어 사용자에게 ㅍ와 ㅃ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빠리'도 아니고 '빼리'라고 해도 같은 말이다. 웃음의 포인트는 프랑스어 특유의 마지막 자음의 묵음처리와 a의 발음이다. 그리고 '파리'의 발음과 표기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종종 농담거리가 된다. 외래어 표기법상 맞는 표기는 '파리'인데, 종종 외래어 표기법보다 발음 재현을 중시하여 '빠리'라고 표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파리 아니죠. 빠리 맞습니다' 라는 식의 농담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이에 대해 '그런 식으로 치면 빠리도 아니고 빠히잖아!' 라고 받아치는 사람도 있는 식. 진지 빨자면 어차피 한글로는 어떻게 쓰든 다 틀렸다. 한글 외국어 표기법을 존중한다면 '파리', 영어 발음을 따른다면 '패리스', 원어 발음을 존중한다면 '빠히'로 발음하는 것이 그나마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혁명기념일마다 파리에서 한국 광복절 행사 이상으로 큰 축제를 벌인다. 개선문 쪽에서 온갖 라팔전투기와 군 수송기들이 곡예 비행을 벌이며 팡테온에서는 군악대 연주 공연이나 프랑스군 전투 차량 체험 행사도 벌인다.(2014년 기준) 밤에는 에펠탑 아래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며 거의 마지막에 가서는 불꽃놀이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밤에 하는 행사는 당연지사 방송으로 나간다. 더욱이 2014년은 1차 세계대전 100주년이라 더더욱 크게 연 것으로 보인다.

한국 수도권 못지 않게 프랑스 역시 파리를 중심으로 정치, 경제, 사회 기능이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서울 집중보단 훨씬 덜 한 편이다. 단순 인구만 봐도 파리 권역은 프랑스 인구의 1/6이 거주하지만 우리나라 수도권은 우리나라 인구의 반이 거주한다. 파리나 리옹이나 마르세유나 정말 지방 시골 도시가 아닌 이상은 생활하는 환경이나 접하는게 비슷하다. 하지만 서유럽에서는 사실 프랑스만큼 수도에 많은 기능과 인구가 집중된 나라가 별로 없다.

매년 여름 7, 8월 경, 파리해변 이라는 뜻의 파리플라쥬 Paris plage라는 볼거리가 생긴다. 센느강을 중심으로 인공 해변을 만든다! 지방도시에서 백사장 모래를 가져와 미쳐 바캉스를 가지 못한 현지인과 관광객들에게 해변 느낌을 선사하고, 반대로 파리의 예술품들을 지방 도시에 보내 볼거리를 제공한다.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 이원복 교수發 오해 중 하나가 프랑스인은 자국 문화 자부심이 높아서 영어를 사용하면 무시하고 지나간다?인데 사실은 그 프랑스인이 그냥 영어를 모르는 거다. 애초에 이원복 교수 본인부터가 만화에서 저 편견이 오해라고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영어 못하는 한국인한테 외국인이 접근한 것과 같다. 현재는 한국처럼 영어 교육이 많이 나아진 상태.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보다 영어는 더 잘하는 편이다. 마트에서 계산하는 아줌마들도 영어는 한다. 길 가다 젊은 사람에게 어설픈 프랑스어로 길을 물어보면 영어로 답해주는 경우가 많다.

19세기 때부터 망명을 온 사람들이 많은 도시로 유명했다. 정치가, 사상가, 작가, 심지어 구 왕족 등등 신분에 따라 다양했는데 카를 마르크스, 블라디미르 레닌레프 트로츠키, 호치민 등등 매우 많다. 1979년에는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터키, 이라크 등을 떠돈 끝에 몇 개월 정도 파리에 머물다가 이란에서 혁명이 터지자 귀국한 바 있으며 대한민국에서는 1971년 건축가 김중업이 서울의 도시계획 및 건축에 관한 정부시책을 비판한 일 때문에 당국으로 부터 찍혀 추방된 적이 있었는대 주한프랑스대사관을 설계한 공으로 프랑스로 부터 받은 훈장으로 인해 파리로 망명할 수 있었다. 1979년 홍세화 씨가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자 파리로 망명하여 20여 년 간 생활한 적이 있었다. 그가 지은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가 그의 생애와 파리에서의 생활을 담은 책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사유로 망명을 떠난 이예다는 그의 난민심사 기간에 파리에 머무른적이 있었다.

2015년 11월 13일, 무장괴한들에 의한 테러로 백여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2015년 11월 파리 테러 문서 참고. 이로 인해 프랑스 수도권에 황색경보, 그 외 지역에 남색경보가 발령됐다.

2017년 7월에 LA와 삼자합의가 이루어지면서 파리가 2024년 올림픽 개최도시로 선정되어, 1924년에 치러진 대회에 이어 무려 100년만에 하계올림픽을 다시 열게 되었다. 정상적으로 개최된다면 영국런던의 뒤를 이어서 파리는 올림픽을 3번 치르는 2번째 도시가 된다. 원래 2012년 올림픽을 두고 영국의 런던과 경쟁을 했으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결정적인 실언으로 인해 결국 런던이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었다.


난민촌을 중심으로 슬럼화가 진행된다는 의견이 있다.

[1] 라틴어흔들릴지언정 가라앉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이 문장이 지금도 파리 호텔시청(Hôtel de Ville)에 쓰여 있다.[2] 인구밀도가 비 아시아 지역에서 알아주는 수준이다. 유럽 최고치이며 105.4km²의 면적에 220만명이 넘는 인구가 산다는건 시 전체 평균 인구밀도가 이미 2만명/km²를 넘는다는 얘기다. 참고로 인구밀도 2만명/km² 이상 도시는 인도의 뭄바이, 첸나이, 방글라데시의 다카, 필리핀의 마닐라등 대부분 아시아에 있다. 서울특별시조차 16,000명/km²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3] http://frdic.naver.com/fkEntry.nhn?entryNO=50133[4] 뮌헨보다 북쪽이며, 밴쿠버와 비슷한 위도에 있다.[5] 참고로 서울이 2,070시간, 뉴욕이 2,530시간.[6] 사실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는 런던이나 파리나 둘 다 비슷하다(Cfb). 사실 유럽의 도시들은 동아시아 관점에서는 굉장히 북쪽에 있는데. 파리는 울란바토르보다 북쪽이다. 밀라노베네치아하얼빈과, 아테네개성특급시와 동위도이고, 바이칼호 연안의 이르쿠츠크베를린과 동위도이며 런던보다는 약간 북쪽에 있다. 북위 60도의 노르웨이 오슬로핀란드 헬싱키는 겨울 평균기온이 춘천, 평양과 비슷하다. 이는 대륙 동안과 서안의 기후 자체가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인데, 특히 대서양의 경우엔 멕시코 만에서 밀려드는 난류인 멕시코 만류로 인해 유럽 쪽이 위도에 비해 훨씬 온난한 기후를 갖게 된다.[7] 역시 여기서 유래하여 이탈리아어로는 파리를 파리지(Parigi)라고 부른다.[8] 현대 프랑스어로는 Lutèce(뤼떼쓰)라고 한다. 원소 이름 루테튬은 여기서 유래했다.[9] 대표적인 대학 지역으로 꺄르띠에 라땅이 있다[10] 기실 말하자면 잔 다르크를 처형한 건 잉글랜드군이 아니라 파리 시민들이었다. 그러한 탓에 오늘날 파리에는 커다란 잔 다르크 동상이 세워졌다. 파리 시민들의 잔 다르크에 대한 속죄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11] 이는 파리 시민들의 불만거리였고 프랑스 혁명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12] 괄호 안은 구를 표기한다. 1구는 75001, 10구는 75010인 식.[13] 프랑스 파리의 경우와 다르게 한국 서울, 미국 워싱턴 DC, 중국 베이징,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등 상당수 국가의 수도는 상급 지자체에 속하지 않고 별개로 독립된 지자체인 경우가 많다.[14] 파리시의 면적을 고려하자면 조선후기나 구한말 당시의 성저십리 영역보다는 조선초기의 성저십리 영역에 빗대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15] 남동쪽 13구에서 북서쪽 17구까지 고작 10-15km정도이다(...).[16] 근데 이 조그만 곳에 200만명이나 몰려살고있다[17] 파리는 서울과 달리 독립된 광역자치단체가 아닌, 일드프랑스라는 광역자치단체(프랑스의 경기도)에 속한 기초자치단체다.[18] 프랑스의 행정구역 체계에 대해 언급하자면, 레지옹(région)은 광역자치단체로서 한국의 도에 해당되고, 데파르트망(départements)은 한국의 특정시에 해당된다. 아롱디스망(arrondissements), 캉통(canton)은 일반시 내지는 읍/면/구, 코뮌(commune)은 프랑스내의 최소 행정 단위로 보통 시를 의미한다. 파리, 리옹같은 구(아롱디스망)가 있는 도시를 제외하고는 최소 행정 단위는 시이다. 우리나라처럼 동이나 읍, 면이 없다. 파리에도 동이 없다. 파리의 최소 행정 단위는 구(아롱디스망)이고 다른 지역의 시와 비슷한 지위를 지니고 있다. 설명은 이렇게 했지만 단순히 우리나라의 행정구역과 비교하기 어렵다. 파리만 하더라도 하나의 Département 이면서 하나의 Commune이다. 그리고 파리나 리옹 마르세유같은 도시에 있는 arrondissement은 다른 도시와 비슷한 위치이다. [19] 파리에서는 상업지구 주거지구의 구분이 없다. 라파예트같은 백화점 건물이나 샹젤리제 거리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건물이 아랫층은 상가이고 윗층은 아파트이다. 대부분 건물이 주상복합건물이라고 보면 된다.[20]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면 상업의 거리로 명품을 제외한 프랑스에 들어와 있는 대부분의 메이커를 이 거리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거리를 지나는 사람은 많지만 장사는 잘 안되는 편인지 최근에는 많은 상가들이 문을 닫고 있다.[21] 파리에서 치안이 제일 안 좋다는 18구는 의외로 4위.[22] 위의 이미지 중에 북쪽에 18구 구획과 면한 국립경기장(스타드 드 프랑스 Stade de France)이 위치한 생 드니(St.Denis)는 경기장 주변만 빼고는 그 밖으로는 파리 10구보다도 수도권에서 제일 치안이 안 좋기로 악명 높은 동네다. 실사판 북두의 권?![23] 한국인들만 잘 모른다. 다른나라 관광객들은 대부분 들르는 관광지.[24] 13개의 마경 중 하나[25] 다만 링에다 봉지 걸어놓은 허접한 쓰레기통이다. 테러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26] 단적으로 유럽에서 몇 안 되는 현대식 도시들인 프랑크푸르트, 로테르담, 바르샤바는 모두 2차대전 당시 송두리째 작살난 곳들이다. 하지만 전 문장에서 언급한 도시들조차 도시경관을 현대식으로 만든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고 대부분의 도시구역을 빠르면 2차대전 종전후 늦어도 냉전 종료 후에 전쟁 전 모습으로 복원하는 편이다.[27] 파리 월세는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싸다. 그 덕분에 유럽에선 런던과 함께 주택 임대료가 가장 비싼 도시(...)로 손꼽힌다. 그러나 매매가격은 서울과 큰 차이가 없다. 잠깐만 뭐라고?[28] 위키피디아에서도 이 문제 때문에 사진이 상당수 삭제되었고, 유리피라미드에 까맣게 덧칠한 사진으로 교체되었다.[29] 특히 18 구역 내에 위치한 맥도널드 매장에서는 심지어 소매치기등을 막기 위한 경비원(키 190Cm는 족히 넘어보이는 다부진 체격의 흑형이 정장 차림으로 서있다)까지 세워놓고 있다. 흠좀무[30] 구개수음의 일종인 유성 구개수 마찰음. 유럽 밖에서는 보통 g(가령 타타르어에서는 ğ, 알류트어에서는 ĝ라고 쓴다.)라고 쓰며 아이티 프랑스어에서는 r을 그냥 g 비슷하게 발음한다. 유럽의 언어들중 이 발음이 있는 언어에선 보통 r로 이 발음을 표기하는데 덴마크어, 독일어, 노르웨이어, 스웨덴어, 그리고 독일어처럼 상당히 많은 언어(단, 지역에 따라 다르다)에서 이 발음이 발견된다.[31] 그래서 파리에 거주하는 한국 교포들은 파리가 아니라 빠히라고 불러달라는 이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