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법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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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法高爐
중국어: 土法炼钢/土法煉鋼

1. 소개2. 후폭풍

1. 소개[편집]

그 유명한 제사해 운동을 능가하는 마오쩌둥 주연의 대참사. 대약진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 사실 대약진 운동 때 중국인 수천만 명을 굶어 죽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것은 제사해 운동보다는 오히려 이쪽의 악영향이 컸다.

토법고로란 전통적인 기술(토법)로 만든 작은 괴철로에서 농민들이 강철을 직접 생산하자는 운동이다. 이는 현대적인 기술로 거대한 용광로를 만들어서 대량으로 철강을 생산하기에는 기술력도, 자본도 모자라니 인해전술로 따라잡자는 것이다.

중국은 건국 이후 여러 부문에서 소련벤치마킹하는 정책을 폈고, 마오쩌둥도 짧은 기간에 후진 농업국에서 선진 공업국으로 탈바꿈한 소련의 발전 경로를 따라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따라 소련에서 많은 원조를 받고, 소련의 기술자들을 고용해서 개발 계획을 실시했으나 니키타 흐루쇼프가 취임하고 서방과의 화해를 추진하는 등 변화가 일자 소련과의 관계가 틀어졌다.

결국 제대로 된 우방이 남지 않게 되자 다급해진 마오쩌둥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속도로 최대한 빨리 발전시킨다는 미명하에 중공업 생산력을 늘리려 했고,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인 이오시프 스탈린의 5개년 계획을 따라 단기간에 국가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9천만 명이나 되는 농민들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일자무식인 당시 농민들은, 강철 생산은커녕 담금질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강철을 만드려고 했으니 당연히 제대로 진행될리가... 전통 방식으로 강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대로 이외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철에 적절한 비율의 탄소를 주입해야 하는데 이것이 매우 까다로워 대장장이 같은 전문가들이나 가능한 것이었다.[1][2]

하지만 높은 곳에서 명령이 내려온데다 사실상 절대왕정이나 다름없던 당시 상황 상 농민들은 하라는대로 무조건 해야 하는 입장. 결국 농민들은 고철들을 주워다 토법고로에 집어넣었다. 여기까진 그래도 괜찮았다. 아무리 토법고로에서 나온 의 품질이 우수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해도 그냥 쓰레기보단 써먹을 수는 있는 쓰레기가 낫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윗선에서는 매달 강철 얼마씩을 만들라고 할당량을 정해줬고 못 채우면 여러 불이익이 가해졌다. 그런데 당시엔 또 식량을 배급제로 줬던지라 패널티를 무시할수도 없는 상황인데 굴러다니던 고철은 당연히 금방 끝을 보였다.

덕분에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각종 농기구와 트랙터 같은 농기계들도 토법고로에 처박혔다. 여기에 인민공사가 설립되자, 개인들이 식사를 준비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집에서 쓰던 식기구들도 토법고로에 집어넣었다. 그래도 모자라면 양철 지붕까지 뜯어냈다. 억지로 고철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금속이면 되는 대로 용광로에 처넣은 것이다.

2. 후폭풍[편집]

문제는 이렇게 제철은커녕 글자도 모르던 농민들을 억지로 굴려서 중세도 아닌 고대 수준의 원시적인 메커니즘을 가진 괴(怪)철로로 녹이는 것이었으니, 나온 이 쓸모없는 똥철이라는 점이다.

아니, 가축의 분뇨는 비료라도 만들 수 있지, 이런 똥철은 그 자체로는 전혀 사용할 용도를 찾을 수 없는 쓰레기 그 자체였다. 애초에 저런 조악하기 그지 없는 고로에 별다른 처리도 하지 않은 고철을 마구잡이로 집어넣는 건, 그나마 멀쩡한 에다가도 불순물을 일부러 섞는것과 매한가지다. 덕분에 만들어진 산물 중 60%가 똥철이고, 40%가 그나마 쓸 수 있는 강철이라 60% 똥철은 다시 재처리해야 했다.

근데 저기서 나온 똥철은 원래 없던 불순물까지 잔뜩 섞인 상태라 재처리하려면 제대로 된 현대식 고로(용광로)에서 액체 산소까지는 못 가더라도 최소한 고품질 코크스같은 연료를 사용해서 녹인 다음 불순물을 제거해야 하는데, 경제적으로 수지타산이 안 맞는 건 당연하고, 당시 중국에는 그나마 있던 근대식 용광로를 별 꼴같잖은 이유로 놀리고 있었다.

또한 이 프로젝트로 강철을 생산하려는 이유가 '생산된 강철로 농기구 등을 만들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상기하자. 굴러다니던 고철의 40%라도 강철로 바꿔서 써먹는 것으로 끝났다면, 꽤나 성공적인 정책으로 평가받았을 수도 있겠으다. 그러나 상술했듯이 현지 상황을 전혀 모른 채 탁상공론만 일삼던 윗선에서 할당량을, 그것도 과도하게 정해준 덕분에 현실에서는 농기구를 녹여 똥철을 만들고 있었다.완벽한 무한루프

토법고로가 100% 완벽하게 돌아간다고 가정해 보아도, 애초부터 제철소의 고로에 비해서는 효율성이 한없이 낮았다. 연료 사용 측면에서 볼 때 토법고로는 크기도 작고 단순한 흙 벽돌로 쌓은 용광로라 단열처리 같은 게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크기가 커다란 고로보다 상대적으로 열 에너지를 대기에 쉽게 빼앗기고, 체계화된 제철소와 달리 열의 재사용을 위한 시스템도 없었다. 따라서 철광석 한 단위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연료의 양이 멀쩡한 용광로에 비해 훨씬 많았다. 웃기게도 이 정책이 시행된 시기, 토법고로에 모든 연료가 투입되어 버려 정작 국민 정부 시기에 설치된 우한의 근대형 제철소는 가동도 되지 않아 마오쩌둥이 바랐던 중공업 성장에 악영향을 끼쳤다.

이 정신 나간 악순환에 더하여, 괴철로의 불을 피우기 위해 인근 산천의 나무란 나무들을 모두 벌목해 땔감으로 썼으며, 그래도 모자라자 과수원의 과수들까지 싸그리 벌목해 땔감으로 썼다. 때문에 이렇게 생겨난 민둥산들은 비가 오면 토사가 씻겨 나가 산사태를 일으켰다.

그런데다 이런 쓸데없는 정책 때문에 9천만 명에 달하는 농민들은 해야 되는 추수는 안 하고 모두 고철 찾아 땔감 찾아 돌아다니느라 논밭의 작물들을 그냥 썩혀 버렸다. 사실 제대로 수확을 했어도 수확량이 형편없긴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인민공사라는 병신같은 제도 덕분에 어차피 수확을 해도 자기 소유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농민들은 논밭을 제대로 돌보지도 않았고 작물들이 잘 자라는지 확인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자신에게서 농작물을 수확할 임무와 그것을 소유할 권리를 박탈한 채 강철을 생산할 임무를 부여한 국가는 당연히 수확의 임무를 다른 사람에게 부여해야 하고, 생산물의 소유권을 가진 국가가 그걸 자신에게 배급해 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허황된 망상에 빠져있던 마오쩌둥은 농민들의 생각을 파악하지 못했고, 결과는 대참사로 끝나고 말았다.

병신 짓들의 향연과 적절한 자연 재해로 대약진 운동 기간 굶어 죽은 사람들은 3천만~5천만으로 추정된다. 결국 마오쩌둥도 그 상상을 초월하는 병잡스러움에 GG를 쳐야 했다. 하지만 너무 늦어서 문제지. 그나마 중국의 인구가 워낙 많고, 그 당시 출생률이 높아서[3] 이런 엄청난 인구 손실을 감당했지, 타국 같았으면 인구의 급감으로 인해 그대로 나라가 결딴날 수 있었을 정도의 엄청난 위기였다.

마오쩌둥이 토법고로 운동의 영감을 얻은 것은, 중일전쟁 기간 중 홍군이 일본군89식 척탄통을 전통적인 용광로를 사용하여 다수 복제해 냈던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 용광로에 들어간 들은 굴러다니던 고철이나 철광석 원광이 아니라 일본군의 교통망을 파괴하기 위해서 절단한 철도의 레일이었다. 이미 정제된 강철로 만들어진 것을 다시 녹여서 무기로 만든 것인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던 마오는 여기서 비약을 한 것이다.

관련 작품으로는 옌롄커의 소설인 <사서(四書)>가 대표적이다. 토법고로의 실상을 다루고 있다. 또한 장예모 감독의 영화인 인생은 토법고로를 포함한 마오의 전반적인 실책을 다루는 작품으로 참고하면 좋다.[4]

소련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도 이런 짓을 하는 통에, 중국 대사관에서 고로를 만들고 불을 피워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자 소련에서 "쟤네 무슨 기밀문서라도 소각하는 거 아니냐" 며 난리가 났다가[5] 전후사정을 전해듣고 그만 할 말을 잊어버렸다는 뒷얘기도 있다. #

2010년대 이르러 중국 축구계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1] 현대적인 제철소에서 제선 및 제강 과정이 폼으로 있는 게 아니다. 제대로 된 산업용 강철을 만들어 사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탄소 함유량을 2.11% 이하로 줄여야 되고, 2.11%~5%에서는 주조용 철인 주철이 되어버리며, 5% 이상 넘어버리면 산업용으로는 못 쓰는 철이 되어버린다. 철에서 탄소와 불순물을 걸러내는 이 과정은 산소의 주입량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걸 알고 시켰을 리가 없다.[2] 딱 잘라 말해서, 이건 불가능한 걸 하라고 강요한 거다. 현직 철물 기술자의 말에 따르면 "전문 기술대학교에서 배우고 갓 나온 졸업생들을 데리고 해도 애로사항이 넘쳐나는데, 전문 기술이 없는 사람들에게 용광로를 던져주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금속을 녹이는 게 전부"라고 단언했다.[3] 참고로 대약진 운동 이후 1960년대 중반 ~ 1970년대 초반 당시에 중국의 연 출생아 수는 2,100만~2,800만 명에 출산율은 5명 대선을 기록했고, 2010년대에는 연 1,600만 선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출산율은 1.5~1.6명대로 떨어졌다.[4] 영화 내에서 촌장은, 인민을 갈아 생산한 그 X철로 대만을 정복하고 부강해질 거라고 호언장담을 한다. 이 와중에 주인공 푸궤이의 아들 요우칭은 밤새 용광로에서 일한 후 지쳐 학교에서 쪽잠을 자다가 애먼 교통사고에 휘말려 요절한다. 얄궂게도 차량 운전사인 춘셩이 푸궤이와 같이 전에 유랑극단을 하던 아는 동생이었다.[5] 대사관에서 기밀문서를 소각한다는 것은, 보통 선전포고 직전에 취하는 조치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