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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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멤버3. 1기4. 2기5. 해체 이후6. 재결성: 3기
6.1. 6집 활동6.2. 미니 앨범
7. 소속사 문제8. 음반9. 여담

1. 개요[편집]

터보 멤버(나이 순)

김정남

김종국

마이키

파일:터보 가요톱10.png
[1]
위의 사진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199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레전드 댄스 그룹.
능력자의 리즈시절

1995년에 결성되어 2001년까지 활동했던 남성 2인조 댄스 그룹. 2명의 가수로 이루어진 그룹으로 김종국이 메인보컬, 나머지 한 명은 댄스 및 랩을 담당하는 구조였다.[2] 그룹명은 터보 문서의 1번 문단처럼 가요계의 차트를 터보처럼 쉬지 않고 빠르게 1위를 향해 무한질주하겠다는 뜻으로 터보만의 빠른 댄스곡과 현란한 춤이 그룹명과 꽤나 어울렸다. 앨범 커버 디자인도 자동차 계기판이나 배기구 프레임 등으로 터보라는 이름에 맞게 디자인했다. 오죽하면, 1집 앨범 이름이 <280km/h Speed>일 정도.

1기 멤버와 2기 멤버가 다르다. 결성 당시 짝을 이룬 1기 멤버는 김종국김정남으로 1996년 2집까지 활동했고 1997년 3집부터는 2기 멤버로 김종국마이키가 짝을 이루었다. 정규 6집부터는 김종국, 김정남, 마이키의 3인 체제로 재결성했다. 트윈터보에서 트리플터보로

2. 멤버[편집]

이름

생년월일

포지션

김정남

1972년 1월 25일

메인댄서, 서브래퍼

김종국

1976년 4월 25일

메인보컬

마이키

1980년 1월 30일

메인래퍼


김정남과 마이키가 나이를 먹어서 역변하거나 노화된 모습이 보이는데 김종국 혼자만 데뷔했을 당시 그대로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실 김종국의 얼굴은 결코 못생긴 얼굴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귀족턱. 그래서 김종국의 동안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3. 1기[편집]

1995년 1집의 타이틀 곡인 "나 어릴적 꿈"' 과 후속곡인 "검은 고양이 네로", "선택" 등을 모두 히트시키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2집 타이틀곡인 "트위스트 킹", "Love is...", "어느 째즈바" 도 대박을 치면서 최고의 댄스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소속사의 노예계약과 무리한 스케줄 등으로 인한 혹사로 힘들어하던 중 김정남과 김종국이 아는 소속사가 있어서 그 쪽으로 소속사를 옮기려다가 사기를 당해 잠적했고, 두 멤버가 잠적한 뒤 소속사의 만행이 드러나자 검찰과 경찰이 소속사를 조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얼마 못 가 김종국은 소속사로 돌아왔지만 다른 멤버인 김정남은 복귀를 거부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결국 터보를 탈퇴했다.

나중에 김정남이 밝히길 1기 멤버가 한명 더 있었다고 한다. 그 멤버는 인디고의 곽승남# 메인보컬 포지션. 하도 소속사가 조폭같은 탓에 데뷔 직전에 탈퇴도망했다고 한다.[3] 그래서 서브보컬이던 김종국이 리드보컬로 자리를 옮겨서 그대로 댄스 듀오로 데뷔했다고. 물론 더 형인 김정남이 당시에도 리더인 건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4. 2기[편집]

그 후, 김정남이 탈퇴하고 소속사 오디션 끝에[4] 마이키를 영입해 1997년 2기 터보를 구성하여 오랜 공백 끝에 3집으로 컴백하게 된다.

2기도 "Goodbye Yesterday", "회상", "금지된 장난", "애인이 생겼어요", "X", "White love"[5] 등의 히트곡들을 연달아 내며 다시금 최고의 댄스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White love"라는 노래는 2000년대 현재까지도 크리스마스 때면 어김없이 틀어주는 노래들 중 한 곡이다. 또한 리메이크도 많이 되었는데, 대표적인 그룹이 코요태. 아직까지 유명 가수가 만든 노래 중에 이 노래만큼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음악이 없는 모양이다.

1998년 말 한중일 콘서트 때 공연 자세가 불성실하다며 김종국에게 내려진 가수 활동 무기한 정지 처분 등의 사태로 인해 쇠퇴기를 걷게 된다. 이 일의 전후사정에 대하여 김종국이 솔로데뷔 이후 언급한 인터뷰가 있는데, 해당 링크의 4번째 단락 참고. 1999년 가을 징계가 풀려서 2000년 초에 5집 앨범으로 컴백했지만 타이틀 곡 'Cyber lover', 'Tonight'이 전보다는 못한 평가를 받고 활동을 마감했다. 이후 계약 문제로 2001년 마지막 앨범 "History" 를 끝으로 김종국이 터보를 탈퇴하고 그룹은 사실상 해체 수순에 들어간다.

5. 해체 이후[편집]

2001년 'History' 앨범 활동 이후 마이키는 터보에 홀로 남아 새 멤버를 선발하여 3인조 혹은 혼성 그룹으로 변모를 시도할 거라는 계획을 내비치기도 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이후 암흑기를 보내다가 2005년 김종국과의 디지털 싱글로 다시 얼굴을 내보이며 동시에 새로운 혼성 그룹 M3를 만들어 활동을 재개했지만 망했다. 2011년 역시 싱글도 역시...

마이키는 이후 미국에 건너가서 보험설계사와 옷가게 등 여러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가 김종국의 컴백 제안으로 터보 완전체로 돌아오기 위해 한국으로 다시 왔다. 여담으로 이단옆차기의 마이키랑은 전혀 다르다! 혼동이 없기를 바란다.[6]

김정남 역시 연예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1999년에 스냅이라는 5인조 댄스 그룹 결성 후 활동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해체되어 연예계를 접었다가, 6년 후인 2005년에 솔로로 다시 컴백하며 활동했지만 망했다. 현재는 과거에 최고의 춤꾼으로 불리던 실력을 살려 댄스학원을 경영하여 후배 댄서들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그렇게 추억 속으로 묻히는가 했는데, 무한도전 토토가 특집에서 18년 만에 1기 완전체로 다시 무대에 섰다!!! 본래는 김종국 섭외 장면만 나와 김종국만 나오는 듯 했으나 그 녀석 때문에 김종국 섭외분을 다시 찍어야 하는 상황이 왔고 그 사이에 김종국이 김정남과 연락이 되어 드디어 터보 완전체 무대를 정말 오랜만에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김정남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토토가 문서 참조. 김종국 뺨치는 예능감을 보여주며 실시간 검색어 랭킹에도 오르는 등 상당히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2014년 12월 27일, 본 무대 촬영 분에서 드디어 그들의 무대가 나왔다. 그들이 부른 노래는 '나 어릴적 꿈', 'Love is...(3+3=0)', 'White Love(스키장에서)'. 특히, 'White Love(스키장에서)'의 경우, 크리스마스 앨범으로 내긴 했으나, 김정남과 김종국이 무대에서 부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드디어 두 사람이 이 노래를 부르는 무대가 실현된 것이다. 박명수, 정준하 고마워요 물론, 김종국의 10주년 기념 스페셜 앨범에 있는 2005 White Love (스키장에서) 버전을 썼다. 이것도 마이키가 부르긴 했으나, 마이키 버전을 지우고, 김정남이 대신 불렀다.

그들이 첫 무대였는데, 시작부터 공연장을 매우 뜨겁게 달구었다. 김정남은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관계로 '나 어릴적 꿈' 끝부터 체력이 딸리는 모습을 보여 세월의 야속함을 느끼는 듯 했으나 관중들의 뜨거운 반응에 체력을 극복한 열정으로 상당히 좋은 무대를 보여줬다.[7] 물론 김종국도 변함없는 가창력으로 무대 퀄리티를 상승시켜주었으며 엔딩 곡 '트위스트 킹' 으로 토토가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무대가 끝난 뒤 정말 재밌었다는 말로 무대 소감을 밝혔으며 그 와중에 김정남은 벌써부터 2탄을 생각하고 또 재결합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안 본 사이 예능왕 다 됐다

이 일로 인해 2015년 1월에 뜬금없이 '터보 - Reboot: The Best' 라는 이름으로 베스트 음반이 하나 나왔다. 2CD 구성이며 리마스터링 및 5곡의 보너스 트랙이 수록되어 있다. 이에 김종국은 팬카페에 "이번 앨범은 저는 물론 정남이 형 그리고 마이키 어느 누구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고 예전처럼 저나 회사의 동의 없이 기존 음원을 리마스터링해서 제작한 앨범입니다." 라며 자신들의 의지로 발매된 앨범이 아님을 강조해 토토가 열풍을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또한 2015년 1월 25일 방송된 SBS 인기가요에서도 토토가로 시작된 90년대 복고 열풍에 힘입어 터보가 출연했는데 이번엔 김정남이 아닌 마이키와 함께 등장했다! 사실은 사전녹화된 분량인 김종국과 마이키의 무대만 전파를 탔지만 생방송 현장 무대에서는 김정남을 포함한 3명이 모두 등장했다고. 덧붙여 방송이 끝난 후에 어느 카페에서 이 3명이 함께 팬미팅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컴백을 몇 시간 앞둔 2015년 12월 20일 오후, 런닝맨 X맨 특집에서 김정남이 원조 X맨 멤버들과 함께 출연했는데 본인은 김종국과 함께 팀을 이루었고, 원조 댄싱머신 풀가동을 시전했다! 그리고 동시에 비아이와 함께 콜라보레이션 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본인이 "예전엔 2인조였는데 지금은 3인조라 분량이 줄었다."며 폭소를 자아냈으니 말 다했다.

6. 재결성: 3기[편집]

예전의 터보는 우리의 터보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가 만드는 터보를 만들고 싶었다. - 김종국

돌아온 전설.

2015년 12월 2일 김종국이 자신의 공식 팬카페에 직접 글을 올려 터보의 정식 재결합과 정규 6집 발표 소식을 알렸다. 그것도 김정남과 마이키가 모두 포함된 3인조 구성이다! 한 마디로 한국 가요계에서 볼 수 없는 진정한 그레이트 합체를 실현했다. 이게 왜 한국 가요계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경우냐 하면 이전 몇몇 그룹들도 해체 후 재결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한두명이 빠진 상태로 재결성을 하는경우가 대부분인데 원조 멤버와 나중에 교체 투입된 멤버까지 모두 참여하여 재결성한 그룹은 터보가 세계최초[8]이기 때문이다.[9] 자신들만의 프로젝트 기획사 '더 터보 컴퍼니'를 세워 음반을 제작한 후 컴백했으며 음반의 온라인 배급은 벅스가, 오프라인 CD매체 발매는 유니버설 뮤직이 담당했다. 터보 6집은 2015년 12월 21일 00시에 발매되었다. 원점회귀를 넘어선 레알 궁극체 참여진들은 이단옆차기[10], 주영훈, 윤일상, 유재석, 박정현, 제시, 케이윌, 이상민, 이하늘, 라이머, 산이, 지누, 소야, Jake K 등등. 엄청나다[11]

앨범 공개 직후 타이틀곡 '다시'가 8개 음원차트 1위를 점령했고, 다른 수록곡들도 줄세우기나 100위권 안에 드는 등 전성기 못지 않은... 아니. 전성기때보다 더한 화력을 보였다. 터보 다시, 음원 사이트 점령…"차트 줄세우기 시작" 화력 인증 괜히 그레이트 합체가 아니다! 그리고 CD음반의 경우에도 초도물량을 모두 완판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1월 3일 SBS 인기가요에서 1위후보였던 YGiKON싸이 사이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티저영상. 능력자의 수트핏 폭풍간지


타이틀곡 '다시' 뮤직비디오.

뮤비 끄트머리에 차태현이광수가 특별출연한다. 후반부는 홍콩영화를 패러디한 것이라고. [12] 그리고 도중에 영어로 빼곡이 적어놓은 공간이 나오는데 모두 터보의 과거 곡의 영어 이름이다!

두 번째 타이틀곡 '숨바꼭질' 뮤직비디오

이후 2017년 여름 컴백을 목표로 음반 작업 중이라는 근황을 밝혔다.

6.1. 6집 활동[편집]

위에 기술된 대로 음원차트 1위를 달성하는 등 많은 반응을 이끌어 냈지만 방송활동 관련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 때 소속사가 기사를 통해 신곡에 대한 반응이 이렇게까지 뜨거울 것이라 예상하지 못해 방송 활동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라 입장을 발표했다. 세상에 안 뜰 줄 알고 계획을 안 세운 소속사가... 여기 있네 기사

아쉬움이 더해가던 중 싸이DJ DOC콘서트에서 게스트로 다시 첫 공연을 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 팬들의 아쉬움과 원성을 샀다. 12월 26일 녹화/ 1월 7일 방송된 해피투게더가 유일하게 출연한 예능 방송이다.

그렇지만 이후 소속사가 생각을 고쳐먹은 건지 1월 5일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녹화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방송은 1월 8일 밤.

1월 3일 인기가요 1위를 차지했지만 출연은 하지 않았다.

1월 8일 방송된 뮤직뱅크에 컴백영상이 나왔다. 1월 15일 출연 확정.

1월 16일 팬싸인회를 진행한다.

1월 17일에 히든 싱어 생방송에 터보 완전체로 특별출연했다.

2월 17일 컬투쇼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한 시간동안 입담을 과시했다. 덕분에 '터보 콘서트'가 실시간 검색어를 차지하기도.

2월 26일 터보 V앱이 첫방송되었다.

3월 5-6일 터보 콘서트가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5일 콘서트는 V앱을 통해 전체 3시간 중 약 1시간 반 가량 생중계되었고 게스트는 송중기, 이광수, 여자친구였다. 6일 콘서트는 박보검, 정태호, 김지민이 게스트로 나왔다.

4월 2일 부산 벡스코에서 콘서트가 열린다.

한편 음원공개 당일 차트 1위를 차지하자 김정남, 마이키는 음악감상회에서 걸었던 공약대로 입수... 대신 얼음물을 몸에 쏟아 부었다. 영상 다만 김종국은 런닝맨 녹화로 인해 함께하지 못 했다.

12월 31일 MBC 가요대제전에 출연한다. 녹화는 29일 사전녹화로 진행된다.

6.2. 미니 앨범[편집]

2017년 7월 25일 미니 앨범 <TURBO SPLASH>로 컴백, 타이틀곡 '뜨거운 설탕'을 비롯한 'Paradise', '그림배경', '남자답게' 4개의 신곡이 담겨있다.


티저 1


티저 2


'뜨거운 설탕' 뮤직비디오. 조세호, 남창희, 이용진, 양세찬, 서장훈, 박준형(god), 장혁, 쇼리, 하하 등이 카메오로 대거 출동했다.

7. 소속사 문제[편집]

터보의 소속사는 KS미디어로 권승식, 김광수가 공동대표를 맡았다. 김광수는 오늘날 티아라의 소속사로 유명한 MBK엔터테인먼트의 실권자[13]이다.

소속사가 온갖 폭력[14]과 갈취에 혹사까지 시키고는 솔로로 전향하려는 김종국을 완전히 묻어버리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낸 김종국의 1집 앨범은 아예 활동도 못 하고 망했다. 심지어 김종국이 뜬 후 뻔뻔하게 나타나 김종국에게 피처링 제의까지 했다고 김종국 본인이 과거 강심장에서 직접 밝혔었다.

김광수의 터보에 대한 혹사가 어느 정도였냐면 하루에 국내선 비행기 5번 탑승 이걸로 설명 끝. 보통 사람이 시내버스도 하루에 2번 타고, 그 좁은 대한민국에서 국내선을 환승할 일은 절대 없음을 감안하면 이건 뭐... 후배 가수 다비치도 매니저 차량의 한 달 주행거리가 25,000km라고 한다. 서울시내 영업용 택시도 이 정도는 안 뛴다. 김광수의 종특인 듯.

정리된 내용을 보면 김종국이 허리디스크로 공익을 갈 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허리디스크 때문에[15] 헬스로 몸을 키운 것이고 이 디스크 때문에 터보 활동 기간 내내 제약이 있었다.

무한도전 토토가 특집에서 녹화 장소에 도착한 김정남이 먼저 와있던 김종국에게 "다 말했어?" 라고 묻자 "그냥 가볍게 이야기했어" 라고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도 방송분에서는 밥 안줘서, 정확히는 댄서들의 밥과 자신들의 밥에 차별을 둔거에 열 받아 도망친 거라고 적당히 둘러댔다. 사실 이걸 다 풀어버리면 예전도 그랬지만 지금도 파장이 장난이 아닐게 뻔하기 때문에[16] 쓸데없는 잡음을 일으키지 않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그래봐야 네티즌들은 이미 인터넷 검색으로 알 거 다 알고 있지만.

재결성 이후로는 김종국을 대표로 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딴 터보컴퍼니 소속으로 활동하게 된다.

8. 음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터보(그룹)/음반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여담[편집]

이쪽도 못지않게 가사를 뜯어보면 상황이 특이한데 '나 어릴 적 꿈' 은 꿈을 키워온 남자가 한 여자를 보고 을 버리고 나만의 여자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나타낸다. 'love is'는 짝사랑을 고백했다 거부당했고, 그 여자가 자기 친구에게 갔는데도 계속 볼 수 있으니 좋다는 내용이고 'X' 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직접 다가갈 용기가 없어서 여자의 친구를 이용했다는 이야기. 'goodbye yesterday'는 알고 지내던 여자아이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걸 보고 뒤늦게 자신의 감정을 깨닫는 이야기로 4곡을 엮어보면 남녀간의 사랑 스토리로 만들어질 수 있다.

"Love is..." 제목 괄호에 3+3=0이라는 것은 가사를 보면 여자를 안 지 6년이 되었는데 처음 안 3년만에 고백했다 차여서 군대를 갔다 오고 어찌저찌하다 보낸 시간이 또 3년인데 완전히 포기해야 되는 상황이라서 0이라는 뜻인 듯하다. 나 어릴적 꿈>X>Love is...(3+3=0) 등으로 순서가 생기는 등, 여러가지 바리에이션까지 존재했을 정도.

자그마치 윌 스미스와 협연한 적이 있다. 그의 히트곡 'Just The Two Of Us' 싱글의 Korean Ver. 의 보컬 부분 피처링을 터보가 맡은 것. 영상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98년 6월 윌 스미스가 김종국 목소리가 독특하다며 터보를 초청했다고 한다. 동영상.

[1] 위 사진은 1997년 12월 17일 KBS 가요톱10으로 당시 젝스키스H.O.T.를 눌렀다. 그 뒤 터보는 4연속 1위를 했다가 98년 1월 둘째 주에 이현우가 '헤어진 다음 날'로 터보의 골든컵을 저지시키고 마지막 골든컵 수상자가 되었다.(사실 3주 1위를 한 뒤 성탄과 연말 특집으로 미집계되지 않았다면 골든컵을 탈 수 있었을 것이다.)[2] 다만 신지처럼 김종국이 너무 많은 파트를 소화하는 구조인데, 랩을 담당하는 마이키나 김정남의 파트가 너무 적었다.[3] 인디고는 터보 해체 이듬해인 2002년에 데뷔하였으며 팀이 해체된 후 곽승남과 김대진은 연기자로 활동중이다.[4] 단 한 명밖에 안 뽑는 그 오디션에 무려 3000명이나 지원해서 경쟁률이 어마무시했다. 3000:1의 경쟁을 뚫은 주인공이 바로 마이키.[5] 이 앨범은 원래 김정남이 있던 시절 발매한 크리스마스 앨범에 수록된 노래인데 이 노래로 활동하기 전에 김정남이 위의 사건으로 인해 탈퇴했기 때문에 실제 활동은 1998년 4집 때 마이키와 같이 했고 흔히 알려진 버전도 김정남 부분만 지우고, 마이키가 다시 부른 버전이다. 김정남이 라이브로 부르는 버전은 아예 들을 수 없는 듯 했으나, 무한도전 토토가에서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원곡 버전은 아니고, 나중에 김종국이 솔로앨범으로 낸 <White Love(스키장에서)> 버전이지만.[6] 이쪽의 본명은 조명익이다.[7] 사실 김정남이 체력이 금세 바닥난 것도 관중들의 뜨거운 반응에 본인도 같이 흥분해서 자신을 주체하지 못한 것이었다.[8] 다른나라에서 이러한 사례가 터보보다 앞선 사례를 알고 있는 위키러가 있다면 해당 내용을 수정 바라며 해당 국가와 그룹명을 필히 기재 바람.[9] 사실 이전 다른 그룹들이 해체된 경우는 그룹 처럼 멤버들간의 불화가 터졌거나 H.O.T --> JTL처럼 소속사와 갈등이 생겼을 경우 그 중 몇몇 멤버만 소속사와 타협하고 나머지는 끝내 소속사와 타협하지 못한 채 결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터보는 팀 내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멤버들 전체가 소속사와 갈등했었다.[10] 총 17곡 중 7곡[11] 앨범에 17번째 곡이 "다시"의 중국어 버전. CD에서만 들을 수 있고 음원 사이트에선 서비스가 되지 않으니 주의해야 한다.[12] 엔딩 크레딧에 한자가 먼저 들어가고, 마지막에 인사하는 걸 보면 중국 시장도 염두에 둔 듯하다. 확실히 김종국 인지도에 이광수까지 더하면...[13] 대외적으로 김광수 사장으로 칭하고 있지만 MBK엔터테인먼트의 공식 CEO는 Mike Kim이다. 하도 병크가 많아서 엔하위키 때는 작성금지 문서였다[14] 김정남의 회고에 따르면 지하실에 감금당해서 의자를 포함한 흉기로 집단 구타를 당했던 것은 약과에 속하는 일이었다고 한다.[15] 일단 김종국 본인 주장에 따르면 디스크는 중학생 시절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터보 시절 김정남의 증언으로 볼 때 최소한 허리디스크가 악화된 이유가 저 악덕 소속사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16] 김광수는 아직도 연예계에서 현역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터보 본인들이 다른 방송도 아니고 무한도전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면 소송은 물론이요 신변의 위협까지도 걱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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