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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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된 대한민국 만세!"[1]

太永浩

1962년 7월 25일 ~

1. 개요2. 이력3. 탈북4. 탈북 이후5. 특이사항

1. 개요[편집]

太永浩 / Tae Yeongho / Thae Yong Ho[2]

1962년 평양 출생. 본관은 영순 태씨이다. 북한외교관던 인물이자 북한이탈주민으로, 주영 북한 공사로 근무 중, 탈북하여 2016년 8월 대한민국에 입국하였으며, 2016년 12월 주민등록을 하여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탈북 이전까지는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로 현학봉 대사에 이어 주영 북한대사관에서 서열 2위였다. 1996년 탈북한 잠비아 주재 북한 대사관 서기관이었던 현성일과 함께 북한 외무성에서 손꼽히는 유럽 전문가다. 또 대사관 내 당 책임자인 '세포비서'로, 외교관과 그 가족들의 사상교육 업무까지 관장해왔다고 한다.

초기에는 언론에 '태용호'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으나, 이는 영문 언론이 북한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태영호의 영문 이름을 간소화하여 표시하면서 일어난 혼동이었다. 북한은 한국과 달리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기반을 둔 조선어의 라틴문자 표기법을 사용하는데, 이 방법에 따르면 한글 "영"은 "Yŏng"으로 쓴다. 그런데 신문에서 편의를 위하여 반달표를 생략하고 "Yong"으로 표기했고, 이걸 대한민국에서 "용"으로 읽게 된 것이다. 과거에 김정은의 이름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도 한글 "은"을 조선어의 라틴문자 표기법에 따라 적은 "ŭn"을 단순하게 un으로 썼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김정운"이라는 추측을 하기도 하였다.

태씨가 생소한 한국인들이 많을텐데 발해 대씨의 대조영의 후손으로 북한지역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2. 이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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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 초기에는 위 사진 자료에 나온 것처럼 그의 아버지가 항일 빨치산 1세대이자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활동한 태병렬 인민군 대장이라고 알려졌었으나, 국정원에 의해 태병렬의 아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거기에 2016년 12월 27일 통일부 출입 기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태병렬 인민군 대장쪽 집안은 아니라고 부정한 바 있다. 하지만 어차피 북한처럼 혈통 중시 국가에서 엘리트 가문은 맞다.

출신이 탁월한 금수저 가문에서 태어난 덕분에 고등중학교 재학 중 중국으로 건너가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고, 이 때문에 각종 외국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돌아온 뒤 5년제 평양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됐다. 얼마 후 그는 곧바로 김정일 총비서의 전담통역 후보인 덴마크어 1호 양성통역으로 선발돼 덴마크 유학길에 올랐다.

1993년부터 주 덴마크 대사관 서기관으로 활동하다가 1990년대 말 덴마크 주재 북한 대사관이 철수하면서 스웨덴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웨덴 생활은 길지 않았고 곧 귀국해 EU 담당 과장을 거쳐 2006년 경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으로 파견됐다.

국제 외교무대에 처음 이름을 올린 것은 그가 40세인 2001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한과 유럽연합(EU)의 인권대화 때 대표단 단장으로 나서면서부터이다. 이때 그의 직책은 서구라파국(외무성 8국)에서 EU를 담당하는 과장 겸 구주국장 대리였다.

유럽런던 등지에서 북한의 상징체제와 김일성 · 김정일 우상화를 선전하는 등, 북한의 홍보에 적극 앞장섰다.[3] 2015년 5월 김정철이 런던 에릭 클랩튼의 공연장을 찾았을 당시 수행하기도 했다.

3. 탈북[편집]



2017년 태영호가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 따르면 김정일 말기 때부터 북한 정권에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정은이 승계하자 뭔가 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를 가졌지만 크게 실망했다고 증언했으며 몇년 간 탈북 준비를 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김정은이 승계하고 1~2년 정도 뒤에 탈북을 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김정은 체제에 염증을 느낀 태영호는 가족들을 데리고 지난 7월 망명길에 올랐으며, 제3국 망명 신청을 하고 2016년 8월 17일 한국에 입국하게 된다. 10년 간의 영국 공사 활동을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한국으로 탈북한 것이다. 그리고 12월에 있던 국회 정보위에서 체제에 대한 환멸감이 커져 귀순 결심을 굳혔다고 전했다. 고위 관리 출신 탈북자들 공통된 래퍼토리. #

귀순 소식이 보도되자 정부는 8월 17일 오전까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이미 입국했으나 안전과 안보를 위해 일부러 공개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외신과 몇몇 기자들의 잘못된 기사로 인해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급하게 발표를 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태영호의 탈북을 미리 알고 있어서 광복절 축사 때 주민 말고도 북한 당국 간부도 따로 언급했던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왜 탈북했는지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일단 북한 외교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영국 대사관[4]에서 근무한 것으로 보아 황장엽과는 달리 권력투쟁에 밀려서 탈북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언론에서 많이 나오는 추측은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 탈북했다는 점이다. 또, 대북제재로 북한 외교관들의 활동에 제약이 커지고 생활도 궁핍해진 현실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때 추방당한 BBC 기자의 입국보증 담당자가 태영호였고, 그에 따른 문책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 직접적인 동기 중 하나라는 주장도 있다.출처

그리고 대사관에서 관리하던 580만 달러 (약 64억원)의 거액을 갖고 탈북한 것으로 보인다(!). # 하지만 돈 한 푼도 없을 가능성도 있다.# 하단에서 언급하는 비슷한 시기 다른 간부의 탈북 건과 내용이 섞여서 나온 오보로 보인다.

북한 당국의 입장이 안 나왔지만, 북한 관계자는 한국 정보당국이 뇌물을 줬거나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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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후 자세한 내막이 공개되었다. 북한을 떠나겠다는 생각이 든 후 골프장에서 영국 정보기관 관계자들과 처음 접촉한 뒤, 미국 요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어디든 갈 수 있었지만 남한으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후 7월 어느날 새벽 영국 공군기지를 떠나 독일의 미군 기지인 람슈타인 공군기지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들어왔다.[6]

탈북 소식을 들은 김정은은 크게 분노하면서[7] 대대적으로 해외에 있는 북한인을 단속하고자 검열단을 급파하였으며, 해외주재 외교관 · 무역일꾼 가족 소환령을 내렸다. 이후 북한 당국은 사건 발표 나흘만에 입장을 발표했다. 태 공사를 배신자라며 비난하는 것은 물론 반공화국 선전을 주장하였고, 심지어 미성년자 강간범이라는 누명까지 씌워 인간 쓰레기 취급을 하며 여론몰이를 보여주었다. 다만 예전과 달리 이번 탈북이 납치나 강압이라고 지랄 주장하지는 않는데 이전에 탈북한 식당 종업원과 달리 외교관은 국제법상 보호를 받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납치라고 주장했다간 UN 등에서 정식조사가 들어갈 것이고, 그랬다가는 북한의 구라가 그대로 드러나 손모가지가 날아가버리는 외교적으로 자살골에 가까운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또, 태영호의 부인 오혜선이 빨치산 가문의 딸이 아니라고 돌기도 했으나, 국정원에서 직접 빨치산 가문 맞다고 했으며, 2남 1녀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두 아들만 두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군사기밀 유출 건[8]으로 탈북을 했다는 얘기도 있으나 태영호 공사가 입국후 주성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공식으로 부인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북한 외교관은 주재국의 군사과학기술을 빼내라는 지시를 매년 1회 받긴하나 강제성은 없다고 한다. 기술을 빼내는데 성공하면 표창등 포상을 받지만 성과가 없다고 해서 처벌하지는 않는다며 자신은 실제로 시도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북한외교관이라서 더 영국정보기관들의 감시를 받는데 섣불리 움직이다 걸려서 추방당할 위험이 높다.

입국 후의 한 인터뷰에서 현재의 대북 공세에 대해 NGO에게 맡길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접근해 "북한 주민들이 북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컨텐츠를 만들어야한다." 라고 이야기하는 한편 북한이 바라는 것은 제 2의 베트남 사태라며 김정은은 얼마를 줘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핵을 완성할 경우 그 핵과 미사일 활동을 동결하는 대가로 제재 해제를 요구할 것인데 그러한 제안에 응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2016년 12월 23일부터 조사기간이 끝나고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내에서의 사회활동에 나서게 된다. 2016년 12월 국방위 의원들과의 회견에서 그는 북한의 지속적인 신변 위협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위하여 대외활동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천명했으며 그리고 북한에서 자기 자신을 두고 자금 횡령 등 범죄를 저지르고 처벌이 무서워 도주했다고 비난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자신의 망명에 북한측이 그런 말을 할 것을 대비하여 미리 대사관 내 자금 현황을 문서로 정리하고 그걸 사진까지 촬영해 놨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보도와는 달리 자신에게는 아들 둘만 있고 딸은 없으며 현재 가족 전원 대한민국에 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12월 23일. 첫 공식 일정으로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했다. 촛불시위에 대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정치적 혼란에 불구하고 국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과 청문회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고 한다.#, # 2016년 12월 29일 주성하 기자와 이만갑측과의 인터뷰 자료에 따르면 기자 간담회에서 한 만세는 노예에서 해방되었다는 기쁨에서 취한 제스처이며, 원래 공항에서 하려고 했으나 사람들이 없었고 주변에서도 말려서 못했다고 한다. 그 후 연설단이 없어서 못할 뻔했는데, 다행히도 기자 간담회가 있어서 한 것이라고 한다. 그 만세 이후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자기에 대한 환영 댓글보다는 공개 장소에서 만세를 한 것이 누군가가 시켜서 한 거냐는 내용 일색이라는 것에 제법 놀랐다고 한다.#

4. 탈북 이후[편집]

2017년부터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소속으로 활동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주영국 북한대사가 교체되었으며 최일 외무성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최일은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북한 김씨왕조가 핵에 대해 집착하는 이유는 유고 내전미군이 폭격하는 것을 보고 북한의 급변상황시 이처럼 미국이나 한국의 군사적 개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그런거고 북한은 핵을 절대 포기 하지않을것이고 북한 구조상 암살이나 군사쿠데타는 거의 불가능하고 내부 봉기가 현실성있다고했다.# 그리고 1994년 북핵위기를 벗어나는 데 결정적으로 맺은 제네바 합의에 대해서 빌 클린턴과 김정일의 사기 합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태영호의 가족들은 북한의 선전에 이용되었다.# 그리고 탈북 이후 첫 공식 방미에서 미 하원 외교위원회서 김정은 정권의 목표는 핵 개발 완료한 다음 미국과 협상을 벌어서 협상 대상 중 주한미군 철수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CNN에 출연했다.#

5. 특이사항[편집]

  • 영국 공사 근무 시절 골프에 열광하였으나 ‘골프채를 놓지 않으면 평양으로 돌아가겠다’는 부인의 불평에 골프 대신 테니스를 선택했다고 한다.

  • 탈북 전에 한국 교민과의 접촉도 꺼리지 않았고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 김정일 사망 때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탈북자들이 난입,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축하드리며'라는 고인드립성 유인물과 김정일의 영정사진을 대사관 건물에 붙이고 만세를 부르는 행사를 벌인 적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분명 '대사관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유인물을 떼어내면서 하필 김정일의 사진을 찢고 구겨 처리하는 장면이 포착되었는데, 이 인물은 문명신 2등 서기관이었다. 이 사건이 문제가 되어 북한 대사관 내에서 연일 심각한 회의가 있었는데, 태 공사의 강력한 선처 주장으로 살아났다는 증언이 있다.# 그러나 주성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김정일이 죽을 당시에 태영호는 북한에 있었고, 2013년부터 다시 대사관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모르고 그런것이기 때문에 처벌은 전혀 받지 않았을거라고 한다.기사

  • 2015년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이 영국에서 에릭 클랩턴의 공연으로 보러갔을 때 현학봉 대사와 함께 김정철 지근거리에서 수행한 적이 있다.

  • 그의 부인 오혜선은 북한군 총참모부 오금철의 일가이며, 오금철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자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의 아들이다. 북한판 성골인 '항일 빨치산 가문'이 탈북해 입국한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다.[9] 오혜선은 대외무역 · 외자유치 · 경제특구 업무를 맡고 있는 대외경제성에서 영어 통역을 담당했으며, 홍콩 근무를 거쳐 런던에 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태영호 본인도 자기는 빨치산 가문 출신이 아니지만 아내는 빨치산 가문 출신이 맞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 그의 큰 아들은 영국의 한 대학에서 공중보건경제학 학위를 받았고, 덴마크에서 태어난 작은 아들은 막 고교를 졸업하고 임페리얼 칼리지 진학을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사족으로 작은 아들은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를 자주 했다고 하며, 심지어 닉네임은 폴란드볼을 비롯해 영미권 인터넷에서 북한을 비꼬는 의미의 으로 쓰이는 North Korea is Best Korea라고 한다(...).[10] 참고로 2017년 1월 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큰 아들은 대학 졸업을 하지 못하고 바로 대한민국으로 귀순하였기에 대한민국에 와서 다시 대학을 다닐 예정이라고 한다.

  • 북한 외교관 및 해외 주재원의 탈북 사례는 해당 사건 이전부터 여러차례 있어 왔는 데 대표적인 사례로는 1997년에는 장승길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가 부인과 형[11]과 함께 탈북하여 미국에 망명하는 일도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알려진 외교관 출신 탈북자라고 한다면 국정원 산하 국가 안보 전략 연구원 부원장으로 있는 고영환씨[12]가 있다.

  • 태영호의 귀순 소식이 전해진지 며칠도 되지 않아 유럽에서 북한 자금을 관리하던 한 간부가 2개월 전인 2016년 6월 4천억원을 들고 잠적[13][14]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이를 두고 태영호에게도 빨리 찾으라고 압박이 들어왔고 결국 감당이 안돼 탈북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 탈북 전에는 북한 대사관 인근 아파트에 살았다고 한다.#

  • 태영호 탈북 이후 모 학생이 해외 주재 북한 대사관에 이를 인용해 장난전화를 거는 일이 있었다. #

  • 북한 전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대장의 숙청 사유에 대해 직접 언급했다. 고위층 인사들에 대한 정권의 감시가 일상화된 상황에 자택에서 말을 잘못한 것이 발각되어 처형당했다는 것이다.

  • 한국드라마 중 불어라 미풍아를 즐겨보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주인공 탈북 여성일가에 대해서 동질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또 이만갑, 모란봉클럽, 유튜브에 업로드되는 배나TV의 몰랐수다 북한수다같은 탈북자 관련 방송도 자주 봤다고 한다. 드라마 같은 TV 프로그램과 달리 탈북자이면서도 대한민국 유력 신문사들 중 하나인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 중인 주성하 기자에 대해서 평소에 존경해왔다고 밝히면서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블로그도 꾸준히 읽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6년 12월 29일 동아 미디어 센터에서 주성하 기자와 이만갑 출연으로 유명세를 탄 여성들 중 하나인 신은하씨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 영국 대사관 근무 때 당에서 한국 휴대폰을 경계하여 삼성 휴대폰 사용 금지령이 떨어졌으나 평양에선 한국산 휴대폰은 LG 것도 있다는 건 몰라서 LG 폰을 사용했다고 한다.# LG폰 연전연패중

  •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국 술이 참이슬이라고 밝혔다. 망명 초기에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많이 마셨으나 아내의 만류와 북한정권이 무너지는것을 보지 못하고 죽을까 하는 걱정에 요즘은 술을 줄였다고.[15]

  • 1997년에서 1998년 사이에 덴마크에서 부인과 함께 처음 한국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그 영화가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이었다고 한다. 영화 말미에서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후퇴하던 인민군이 후퇴에 앞서 주민을 학살하는 것에 지식인 김범우(안성기 분)가 전남 보성군당위원장 염상진(김명곤 분)을 찾아가 "당신들은 그런 식으로 하기 때문에 실패한 거요. 아주 철저히 말이오. 사람들을 수단으로 삼고, 사람들의 증오에 토대하는 한 그 어떤 사상도 사람들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일갈하는 장면에 이르러서 북한 체제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되었고, 이것이 훗날 한국으로의 귀순을 결심하는 계기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 김정남(북한) 암살 이후,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과거 이한영, 김정남, 장성택등 북한 정권, 특히 김정은에 거슬리는 자들은 살해당해왔듯이, 그 역시 북한에선 "제거해야 할 1급 반동분자" 일것이다. 김정은이 정찰총국에 지시를 내린 살해 대상 리스트에 (언젠가는 집행해야 하는)"스탠딩 오더" 상태에 올라와 있을 것이라는 것.

  • 그의 말에 의하면 이미 자신 뿐만 아니라 한국에 왔거나, 올 예정인 공개가 되지 않은 북한 외교관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 BBC 서울-평양 특파원 스티브 에반스가 밝히길 그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커리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뇨병이 있어 난(빵)이나 밥 없이 먹는다고 한다.


[1] 탈북 후 공개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들 중 하나다.[2] 북한의 로마자 표기법과 연관이 있다. 후술.[3] 영국의 체제를 비판하고 러시아의 사회주의를 으뜸으로 내세우며 러시아 2차대전 군가를 우리말로 번역한 정의의 싸움이라는 노래를 영국 반제국주의 모임 강연에서 부르기도 하는등 대대적인 선전을 했다.[4] 영국은 서방권 국가 가운데 북한과 상호 대사를 파견한 몇 안 되는 국가다. 그럼에도 한국전쟁 때 UN군으로 참전할 만큼 남한과 가까운 나라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가장 신뢰할 만한 외교관을 보내고 있다.[5] 위 사진에서 나온 BAe 146영국항공의 암만에서 히드로로 가는 항공편이 아니라 브리티시 에어로 스페이스라는 항공기 제작 회사의 비행기의 이름이다. 즉 BAe 146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당 사건 진행을 볼 때 보안 유지를 위하여 영국 공군이 보유한 VIP 전용기인 BAe146 여객기 4대 중 한 대를 사용하였을 것이다.[6] 망명 직후 기사들에는 런던의 테니스 클럽에서 한국 측과 접촉하여 직접 귀순 의사를 표시하여 제 3국으로 경유하지 않고 직행으로 들어왔다고 전해졌다.[7] 분풀이로 권총을 꺼내 여기저기 난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개 버릇 남 못 주는 인간 [8] 영국 핵전력 기밀을 고작 100만 파운드(14억)으로 알아내라고 했다. 이 정도 돈으로 영국 같은 나라의 핵 담당 장교를 매수하거나 공작을 벌이는 건 택도 없는 일이다.[9] 과거 탈북했던 황장엽의 경우 모스크바 대학교 석박사 등 학문으로 인정받아 권력을 가진 케이스라 혹부리의 빨치산 활동과는 전혀 무관하다.[10]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게이머들은 닉네임과 런던이라는 위치를 가지고 기어이 스팀 프로필을 찾아냈다. 프로필에 실명까지 써있어서 확인사살.[11] 장승호 프랑스 주재 북한 대표부 참사관[12] 탈북 당시 직책은 콩고 주재 북한 대사관 참사관.[13] 북한 일년 예산이 우리 돈으로 8조 정도이므로 5%이다. 군사비나 체제 유지비를 생각하면 이 4천억원은 상당히 엄청난 액수다. 김정은이 빡쳐서 권총 난사하며 날뛴 게 당연하다 우리나라 자금으로 이러한 것을 비교했을 때, 약 20조원을 들고 잠적한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 20조원은 서울특별시의 일년예산에 맞먹는 규모이다이 정도면 세계 부호 순위 100위권 내에도 들 수 있다 [14] 이 고위층 간부가 탈북하여 한국에 정착 후 미국으로 이민가서 탈북 단체장들을 만나 북한 망명정부를 주도한 사람이라는 얘기가 있다.[15] 실제로 1983년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대한민국 공군 대령이 북한의 가족들 생각에 술을 자주 먹다가 이게 원인이 되어 2002년 간 기능 부전증으로 사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