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자(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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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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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동윤, 박준석, 김영민[1], 김형준.

그룹명

태사자
太四子

활동기간

1997년 10월 20일~ 2001년 11월

데뷔앨범

1997년 정규 1집 '도'

팬덤

천우운풍(天.雨.雲.風.)[2]


1. 개요2. 활동
2.1. 수상 내역2.2. NRG와의 관계
3. 그 후, 개인 활동4. 트리비아

1. 개요[편집]

한국의 남성 4인조 댄스 그룹. 그룹명은 삼국지에서의 오나라 태사자에서 유래했다. 같은 소속사이자 <도>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김희선삼국지를 하다가 태사자가 좋아서 지었다는 이야기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홍보를 위해 합의하에 김희선의 이름을 빌린 것이며, 실제로는 소속사 사장이 지었다고 한다. 삼국지의 태사자와는 발음만 같고 한자 이름을 새로 만들어 太四子라고 지었다.

김희선이 소속되었던 회사 (주)매스컴에서 제작된 팀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으며 이후 같은 시기(8일 차이)에 데뷔한 NRG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2000년대 초반까지 1.5군 아이돌로 활약했다. 확실하게 2집 타이틀곡까지는 순위가 비슷하면서도 태사자가 살짝 우위관련 동영상에 있었다.[3]

데뷔 날짜는 1997년 10월 20일. 데뷔곡 '도'는 UP의 뿌요뿌요, H.O.T.의 캔디, 행복 등을 작곡했으며 당시 고등학생 작곡가로 유명했던 장용진이 작곡했다. 첫 1위 날짜는 1998년 4월 18일이다. '도'의 인기에 뒤이어 'Time'이라는 명곡으로 1위를 거머쥐었다.관련 잡지

팬클럽명은 천우운풍(天.雨.雲.風.)으로 1집 활동 당시 각 멤버들의 닉네임으로 사용했다. 상징색은 하늘색으로 리더 김형준의 닉네임에서 비롯된 듯 하다.

활동 당시 태사자는 의상부터가 수트를 위주로 한 댄디한 콘셉트였으며 이런 점에서 아기자기하거나 또는 헐렁한 힙합 패션 위주였던 당시 다른 보이그룹의 콘셉트와는 차별화되어 있었다.

2. 활동[편집]

  • 1집 태사자(1997년 11월)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 <>는 아~예~ 태사자 인 더 하우스!이라는 도입부가 인상적인 댄스곡이며 가요톱텐 기준으로 10위 권 안에 들면서 선전했다. 당시 1세대 아이돌이 전성기 시절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꽤 선전한 것이다. 응답하라 1997에서는 H.O.T젝스키스에 비해 엄청 초라한 인기인 것처럼 묘사했으나 앞의 두 아이돌 그룹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초라한 것처럼 보일 뿐이지 실제 우후죽순처럼 생기다가 사라진 수많은 1세대 그룹들 중 앨범을 3집 이상 발표하면서 5년 가까이 장기 활동한 아이돌 그룹은 흔치 않았다. 때문에 이들은 나름 많은 수의 고정팬들을 보유하고 무시 못할 인기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후속곡은 <Time>으로 1위에 오르면서 성공적으로 데뷔 활동을 마쳤다.[4]

  • 2집 태사자 이(1998년)
    리드 싱글 <애심>으로 상승세를 이어갔으며 1998년 SBS 가요대전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가장 활동 기간이 길었던 2집의 후속곡인 <아그작>은 태사자의 유일한 밝은 분위기의 댄스곡으로 이 곡을 후속곡으로 활동해주길 바랬던 팬들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한다.

  • 3집 2000-1(1999년 7월)
    3집 앨범 <회심가>는 소속사 내부 문제 등으로 인해 활동이 원활하지 않았으며 그래도 가요차트에서는 중위권을 기록하면서 선전했다.

  • 4집 도약(2000년 6월)
    4집 앨범 '도약'의 타이틀곡으로 내정했던 <Episode>가 가사중 '뻑이가 뻑가'라는 구절이 있다는 이유로 방송 금지를 먹는 바람에[5] 후속곡인 'Again'과 '체념'이라는 곡으로 타이틀을 바꿔 활동했지만 20위권 안팎의 순위를 기록하면서 예전과 같은 인기는 얻지 못한다.

  • 베스트 앨범 Forever History (2001년 11월)
    이후 소속사의 내부 사정까지 겹치게 되면서 2001년 베스트 앨범격이었던 4.5집을 마지막으로 그룹은 공중분해 수순을 밟았다. 사실 4.5집은 멤버들과 별다른 논의 없이 발매된 앨범이라 멤버들도 출시 이후에야 알았다고 전해진다. 그 뒤 베스트 앨범의 타이틀곡이었던 <영원히>를 메인보컬 김영민 혼자 MBC 생방송 음악캠프에 출연해서 불렀다. 영상


사실 태사자의 계약 만료 조건은 4장의 정규 앨범 발매였다. 당시 소속사는 작은 규모의 회사였기 때문에 자금도 충분하지 않았고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자질도 부족했다. 한참 활동을 활발하게 했던 시기에도 팬미팅을 공지해놓고 장소 빌릴 돈이 없다며 취소하겠다고 하는 등 멤버들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면, 멤버들 중 상대적으로 재력이 있는 멤버의 부모가 장소 대관에 직접 발 벗고 나서기도 했다고 한다. 4집 발매도 마찬가지였는데, 4집을 만들기 이전에도 돈이 없어 앨범을 내줄 수 없다 하여 그 멤버의 부모가 자금을 마련해주었고 그 덕에 태사자 멤버들은 별 탈 없이 4집을 끝으로 소속사와 계약을 종료할 수 있었다.

2.1. 수상 내역[편집]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1998년

영상음반대상[6]

SKC 신인 가수상[7]

SBS 가요대전

신인상

2.2. NRG와의 관계[편집]

태사자와 관련하여 자꾸 엔알지가 거론되는 이유는 최근까지 활동하고 있는 엔알지 멤버들의 계속되는 언급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태사자는 1997년 10월 20일, 엔알지는 1997년 10월 28일, 단 8일 차이로 데뷔하였기 때문에 라이벌로 불릴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엔알지 멤버 중 일부는 “저희는 라이벌이 H.O.T.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태사자라는 그룹이 나오더니 저희 발목을 잡았다. 저희는 H.O.T.를 따라잡기 바빴는데 갑자기 태사자의 강제 라이벌이 됐다”라고 이야기하여 논란이 되곤 하였다. 굳이 따지자면 태사자가 먼저 데뷔했기 때문에 태사자가 갑자기 나와 엔알지의 발목을 잡은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엔알지가 태사자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기간은 1집과 2집뿐이다. 1집은 데뷔 시기가 거의 같았고, 2집은 같은 시기에 컴백하였기 때문이다. 3집은 태사자가 1999년 7월에, 엔알지는 1999년 11월에 활동했으며, 4집은 태사자가 2000년 6월, 엔알지가 2001년 6월에 활동했으므로 활동 시기가 1년이나 차이가 난다.[8] 그런데 두 앨범 모두 가요 프로그램 성적으로는 태사자가 앞섰다. 두 그룹 다 10위 안쪽에서 크게 차이 날 것 없는 성적을 기록했으나 태사자가 근소한 차이로 앞섰음은 당시의 가요 프로그램 순위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공식 기록상으로 태사자는 1집 후속곡 <Time>으로, 엔알지는 5집 <Hit Song>으로 1위를 차지했는데 Hit Song 1위는 2003년 3월 22일이었으므로 태사자는 이미 해체된 후였고 엔알지는 활동을 계속하면서 승승장구하였다.[9]

위와 같은 이유로 태사자 멤버들과 팬들은 엔알지 멤버들이 방송에 출연하여 아직까지도 "개인적으로 팬덤으로 보나 순위로 보나 태사자는 저희에게 안 됐었다"며 "객관적인 지표가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서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10]

두 그룹의 팬덤 또한 차이가 확연했는데, 태사자는 슈트 위주의 댄디한 콘셉트로 성숙한 이미지를 풍기면서 20대와 30대 여성들에게 많은 지지를 얻었다. 10대에서도 중학생보다는 고등학생 팬이 많았고, 말끔한 이미지로 아이돌로서는 보기 드물게 10대 후반, 20대의 남성들에게도 많은 지지를 얻었다.[11] 반면 엔알지는 발랄한 콘셉트로 태사자보다는 조금 어린 연령층의 소녀팬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방송에서 엔알지 멤버들의 이러한 발언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태사자 멤버들은 이에 대한 팬들의 투정에도 보살급 대처를 하고 있다. 2014년 7월, KBS 2채널의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라는 엔알지의 멤버 천명훈이 패널로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연예부 기자 홍종선 씨가 엔알지에 대해 “H.O.T.의 대항마로 키워졌던 엔알지가 태사자를 압승하였다.”라고 평가하여 태사자 팬들이 매우 분개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한 팬들의 불만 표출에도 태사자의 멤버들은 지금 열심히 활동하는 그분을 위해 좋게 말해준 것이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2015년 1월 24일, MBC의 세바퀴라는 프로그램이 토토가 시즌 2라는 주제로 방송을 진행하면서 패널로 출연했던 엔알지의 멤버 노유민이 태사자의 김형준과 통화를 희망하여 전화 연결을 하였다. 후에 김형준은 팬과의 만남에서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유민이가 연락을 해주어 더 좋았다.”라고 이야기하였고, 이 일을 전해 들은 이동윤은 팬들에게 “엔알지의 문성훈, 노유민, 김환성을 참 좋아했다.”라고 추억했다.

3. 그 후, 개인 활동[편집]

그룹 해체 후 박준석은 배우로 전향해 KBS2 드라마 구미호 외전과 SBS 시트콤 귀엽거나 미치거나 등에 출연했고, 영화 <두뇌유희프로젝트 퍼즐>에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당시 박준석이 출연했던 여러 CF 중 SKY 뮤직폰 광고는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해당 CF 동영상

재미교포 출신의 이동윤은 2008년 결혼했으나 5개월 만에 파경을 맞이한 바 있으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요식업계에 종사하고 있다.

입술 위의 점이 포인트였던 리더 김형준은 2001년부터 1년간 Mnet의 VJ로 활동한 바 있으며 이후 클레오박예은과 쇼핑몰을 운영한 적이 있다.

리드보컬이자 막내인 김영민은 인터뷰에서 멤버들과 연락이 두절됐다며 재결합 가능성은 부정적인 편이라 답했고 태사자 활동 당시 가수를 큰 꿈 없이 시작하여 성의없는 활동을 했던 것 같다며 후회의 뉘앙스를 전했다. 얼굴살이 불어나면서 가장 역변이 심한 멤버.

그 뒤 2017년 4월 17일에 소속사 팁탑엔터테인먼트는 박준석의 결혼 소식을 밝혔다. 그의 예비 신부는 4세 연하의 영화계 엔터사 대표로, 두 사람은 한 영화제에서 만나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최근 상견례를 마친 뒤 결혼 준비에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식은 반포한강공원에 위치한 새빛섬에서 진행되었으며, 멤버인 김영민이 축가를, 김형준이 디제잉을 해주었다고 한다. 신혼여행은 프랑스로 한 달 동안 떠났다. 이후에 자기야 - 백년손님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4. 트리비아[편집]

  • 호기심 천국이 방영될 당시 게스트로 출연하여 실전화기 실험을 하다 개사자가 된 적이 있다.

  • 삼국지 디펜스에서는 동명의 장수 태사자가 퇴각대사로 이 그룹의 히트곡 의 랩가사인 '아 예 태사자 인더 하우스!'를 외친다.

  • 1집 데뷔곡 '도'의 뮤직비디오를 당시 건설중이던 인천국제공항영종도 부지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태사자 '도' 뮤직비디오

  • 태사자는 데뷔 전 원래 혼성 그룹으로 준비 중이었으며, 당시 함께 연습했던 여자 멤버로는 가수 채연이 있다. 연습하던 도중 H.O.T.가 잘 되는 것을 보고 급히 남성 그룹으로 전향하면서 데뷔조가 꾸려졌기 때문에 태사자의 멤버들은 당시 여자 멤버들에게 매우 미안한 마음을 가졌으며, 후에 채연이 잘 되었을 때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 2017년 5월 보이그룹 EXO의 팬들이 걸그룹 트와이스가 자신들이 한국아이돌 최초로 시도한 초능력 컨셉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와중에 태사자가 초능력 콘셉트를 먼저 시도했다는 반론이 있었다. 그런데 90년대 언론 기사에서는 태사자와 초능력을 같이 언급한 기사를 찾을 수 없으며[12], 뮤직비디오에서도 초능력 콘셉트가 드러나지 않는다. 실제 팬의 회고에 따르면 태사자는 초능력 콘셉트로 활동한 적이 없고 천, 우, 운, 풍은 단순 닉네임일 뿐이다. 2017년 5월의 논쟁에 대해 태사자 팬들도 트위터 서치 등을 통해 두 후배 그룹 팬들 간의 논쟁과 그로 인해 생겨난 태사자 콘셉트에 대한 거짓 글들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지만 괜히 끼어들었다가 태사자와 천우운풍의 이름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길 것을 우려하여 나서지 않았다. 이제 두 후배 그룹 팬분들도 논쟁을 멈추고 평화로워지길 바라는 바다.

  •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제작진이 시즌1부터 계속해서 이들을 섭외하려고 했지만 끝내 무산되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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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명은 김영득.[2] 4집에 동명의 팬송이 존재하는데 팬송임을 감안하면 분위기가 어두운 편. 이후 SBS 인기가요 2000년 11월 12일 방송에서 이 곡을 통해 4집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기도 했다.[3] 3집 활동 이후로 태사자가 주춤한 반면, NRG는 이후 예능 등으로 더 오랜 기간 활동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NRG가 더 많이 기억되는 편이다. 관련 내용은 아래 NRG와의 관계 탭에서 확인[4] 케이블에서 '사랑, 눈물, 기쁨, 상처'라는 곡으로도 짤막하게 활동했다.[5] 10년 뒤, GD&TOP의 '뻑이가요'라는 곡도 같은 이유로 방송금지를 먹었다. 영어 욕설과 비슷하게 들린다는 점을 염두에 둔 듯 하지만 제제가 과도하다는 비판이 크다.[6]골든디스크 시상식. 2001년부터 '골든디스크'로 명칭이 바뀌었다.[7] 참고로 동반수상한 팀이 무려 S.E.S.핑클이다.[8] 물론 엔알지의 경우 중간중간 캐럴 앨범 등을 내긴 했으나 3집부터는 태사자와 활동 시기가 겹친 적은 없다.[9] 태사자는 2000년 6월의 4집 활동 이후로 2001년 4월 21일 서울 창동에서의 마지막 완전체 무대를 가졌고, (지역 행사였기에 멤버들과 팬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현재 2018년까지 완전체 무대는 전혀 없었다.[10] 세월이 지나면 진실도 변하는 것인가? 태사자에 대한 추억거리만 이야기해준다면 많이 응원해 줄텐데 아쉽다는 반응들이 대부분.[11] 태사자 데뷔 이후로 남자가 네 명 모이면 태사자라고 자칭하던 현상이 그 연령대의 남성들에게 아직까지도 나타나고 있다.[12] 네이버 뉴스 및 뉴스라이브러리에서 태사자 초능력, 태사자 구름, 태사자 비 등으로 검색함.[13] 시즌 1의 종영이 늦춰지는데 단단히 한몫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