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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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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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공식 국기

제정 시기

조선 (1883년 3월 6일)
대한제국 (1897년 10월 12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1942년 6월 29일)[1]
대한민국 (1948년 7월 12일)[2]

근거 법령

대통령령 제11361호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 (2007년 폐지)
법률 제12342호 <대한민국국기법>(제정법령, 현행법령)

도안자

고종 (1883년, #)

제작자

이응준[3] (1882년)

색상표[4]

#F2F2F2

#0D0D0D

#CD313A

#0047A0

1. 개요2. 대한민국국기법3. 역사
3.1.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후의 태극기 변천
4. 국기 달기
4.1. 국기 다는날4.2. 공공기관 등에서의 국기 달기
5. 국기에 대한 경례6. 도안법7. 그 밖의 이야기들8. 태극기의 오용 사례9. 태극기 반대에 대한 잡설10. 관련 문서11. 둘러보기 틀

1. 개요[편집]

대한민국국기. 하얀 배경에 중앙에는 파란색과 빨간색의 태극이, 네 귀퉁이에는 검은색의 사괘[5]가 그려져 있다. 유니코드는 '🇰🇷'이다.[6]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 태극기의 내력과 담긴 뜻, 제작, 게양, 관리에 관해 상세히 설명했으니 참고하면 좋다.

2. 대한민국국기법[편집]

제1조(목적) 이 법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기의 제작·게양 및 관리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기에 대한 인식의 제고 및 존엄성의 수호를 통하여 애국정신을 고양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3조(다른 법률과의 관계) 국기에 관한 사항은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

제4조(대한민국의 국기) 대한민국의 국기(이하 "국기"라 한다)는 태극기(太極旗)로 한다.

제5조(국기의 존엄성 등) ① 모든 국민은 국기를 존중하고 애호하여야 한다.
②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국기의 제작·게양 및 관리 등에 있어서 국기의 존엄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한다.

대한민국국기법 제10조(국기의 관리 등) ① 국기를 게양하는 기관 또는 단체의 장 등은 국기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아니하도록 국기·깃봉 및 깃대 등을 관리하여야 한다.
②여러 사람이 모이는 집회 등 각종 행사에서 수기(手旗)를 사용하는 경우 행사를 주최하는 자는 국기가 함부로 버려지지 아니하도록 관리하여야 한다.

형법 제105조는 국기·국장모독죄(國旗國章冒瀆罪)라 하여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제거 또는 오욕하는 행위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

군사 정권 시절에는 국기 관리를 몹시 엄격하게 하여 국기가 더러워진 경우 빨지 않고 소각해야 한다는 관습이 생기기도 했다.[7] 하지만 현행법상 올이 풀리지 않을 정도라면 세탁도 가능하니 되도록 소각은 자제하자. 다만, 국기가 세탁으로 원상복구되지 못할 정도로 훼손되었다면 지체 없이 소각 등 적절한 방법으로 폐기하여야 한다.[8] 만약에 도저히 재사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국기가 엄청 더러워지거나 많이 찢어지거나 한다면 가까운 읍면동 주민센터, 시청에 가면 국기 수거함이 비치되어 있으니 되도록이면 그 곳에 버리자.

국기를 영구(靈柩)에 덮을 때에는 국기가 땅에 닿지 않도록 하고 영구와 함께 매장하여서는 아니 된다(같은 조 제4항 전문). 따라서, 관을 매장할 때에도 관을 감쌌던 국기는 수거한 뒤 매장한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될 때 태극기를 관 위에 올려놓고 매장을 진행하던 중 행정안전부가 "국기법 위반이다"라고 지적함에 따라 다시 꺼낸 일도 있다. 관련기사

대한민국국기법 제11조 제1항(국기 또는 국기문양의 활용 및 제한) 국기 또는 국기문양(태극과 4괘)은 각종 물품과 의식(儀式) 등에 활용할 수 있다. 다만,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 깃면에 구멍을 내거나 절단하는 등 훼손하여 사용하는 경우

  • 국민에게 혐오감을 주는 방법으로 활용하는 경우

3.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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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강화도 조약의 계기가 된 운요호 사건에서 일본 국기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조선에도 국기가 필요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리하여 1882년에 태극기가 첫 선을 보였다.

제작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1883년에 박영효가 처음 만들었다는 설이 기존에 통용되었으나, 2011년 현재 국사학계는 김홍집에게 명을 받아 1882년에 이응준이 만들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본다.

자세한 내막은 다음과 같다. 임오군란 이후 청은 기존의 전통적인 조공과 책봉 체제 아래 번속국(제후국)인 조선을 근대적 의미에서 속국으로 만들고자 했다. 여기서 절대 '원래부터' 조선이 속국이었다든가 조공 관계가 종주국-식민지 관계와 같았다든가 하는 오해는 금물. 이 속국화 역시 청나라의 개혁파가 전통적인 관계를 버리고 서구의 식민지 개념과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주변 조공국간 관계를 왜곡한 억지였다. 청나라는 한편으로는 서구 열강에 침략에 맞서면서도 변방인 조공국들을 '근대식'으로 장악하고자 한 것. 이것은 베트남에서도 마찬가지로, 청불전쟁이 일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정식으로 '속국'이 된 적은 하단에 나와있듯이 없다. 다만 그런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청에 대해서는 원래부터 관계도 썩 좋지 않았고 감정이 굉장히 안 좋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시달리게 한 외세'라는 인식으로 독립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청나라가 명나라에 이어지는 중국이라는 역사관도 현대 관점이고 당시 조선인들에게 청은 서유럽 식민제국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한들 본래부터 썩 달갑지 않은 외세로 받아들였다.[9] 한편 이러한 관계 때문에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에서 규정했듯, 조선은 청의 속국 대접을 받았는데 서양은 조선과 청에 모두 대등관계를 맺었으니 이러한 이중 관계 때문에 외교마찰이 일어나기도 했다. 임오군란 이후 흥선 대원군이 되돌린 관제를 다시 고치는 과정에서, 청나라는 조선 정부 조직까지 뜯어고치고 고문을 수십 명 파견하는 등 주권 침해의 정도가 매우 심각하였다.

청나라는 당시 청 황실의 깃발로 사용하던 삼각형 황룡기를 변형하여 속국의 모습을 보이라고 제안하였는데, 말이 제안이지 사실상 명령이었다.황룡기 이 과정에서 황색을 청색으로 바꾸어 청룡기를 쓰라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었다. 동양의 오방색에서 황색은 중앙을, 청색은 동쪽을 의미한다. 또한 청룡은 동쪽을 관장하는 신수이니, 청나라가 황룡기를 사용하고 조선이 청룡기를 사용하라는 의미를 충분히 알 만하다. 또한 조선의 용은 격식을 낮게 표현하여 발톱이 하나 적게 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고종은 절대 못 받아들이겠다며 거부하였다. 그로 인해 조선 측의 김홍집과 청나라 측의 마건충(마젠창)이 국기 문제로 마찰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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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태극기인 이응준 태극기

조선국왕의 어기[10]

그러던 중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 조인식에 사용할 국기를 지정해달라는 미국 공사 로버트 슈펠트의 요청을 받은 김홍집은 역관 이응준에게 국기를 그리게 하였다. 이게 최초의 사용례이다. 이게 속칭 이응준 태극기로 2004년 미국 해군부 해상국의 자료에서 그 실체가 발견되었다. 2018년에는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이응준 태극기의 앞선 자료보다 두달 먼저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도안이 발견되었다.#

실제로 고종은 이 단계에서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하기로 마음을 거의 굳힌 듯하다. 그러나 이응준이 태극기를 사용함은 첫 공식사용이라는 의의가 있지만 정부의 공인이 없는 약식에 가까웠다.

이에 대해서 중국인 고문으로 당시 조선에 파견 중이던 마젠창[11]은 태극 팔괘도를 건의했다. 그냥 조선 왕조 어기를 국기로 쓰자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이것이 태극 팔괘도가 언급된 첫 사례이다. 실제로 태극기의 건곤감리는 아마 어기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물론 어기도 고종 혼자만의 개인적인 식견으로 없던 것을 창조해낸 것은 아니다. 임진왜란 때부터 사용했다던 좌독기를 보면 테두리에 둘러싸인 낙서(洛書)를 제외하고 고종이 만든 어기와 모양이 똑같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팔괘로 둘러싸인 태극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모양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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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 태극기

독립문 태극기

그리고 박영효가 일본 기선 메이지마루 호를 타고 수신사로 일본으로 건너가던 와중에 정식으로 사용하였다. 이때 메이지마루호 선장인 영국 사람 제임스 역시 8괘는 너무 많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대각선의 4괘만 남기라고 건의하였고 박영효도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서는 고종이 태극 팔괘도 대신 태극기의 원안을 고수하라고 박영효에게 명령을 내렸고, 배 내부에서 서양인들과 논의하여 신뢰성을 강화한 것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4괘 역시 일본 신문에 실린 그림과 박영효가 귀국한 뒤 고종에게 올린 서한의 내용이 다른 등 태극기의 정확한 도안을 확정하지 못하다가 결국 1883년 1월에 공포했다. 이 시기 확정된 태극기 모양은 독립문에 새겨져, 속칭 독립문 태극기라고 부른다. 이후 태극기는 구한말조선대한제국에서 공식국기로 쓰였고 대외적으로도 국기로 인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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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르 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에 실린 1900 파리 엑스포 대한제국 국가관 삽화로 우측상단에 태극기가 그려져있다.[12]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대한제국이 망하게 되자 당연히 국기로서의 태극기도 없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태극기는 독립운동의 상징이 되어서 3.1 운동 때 휘날렸다. 일제는 태극기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보아 제조·소지를 금하였다. 그 결과 소용돌이치는 중앙의 태극과 대각선의 팔괘라는 기본 개념 외에는 고정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3.1운동 시기 들고 나온 태극기의 도안도, 의병 전쟁 시기 사용된 태극기의 도안도, 임시정부가 사용한 태극기의 도안도 모두 달랐다.

따라서 광복 무렵에 나온 태극기는 이후 태극이 좌우에 놓이거나 사괘 대신 팔괘가 그려지거나, 심지어 태극을 가운데에 두고 1괘를 가운데에 주욱 그은 약식 태극기까지 나오는 등 형태가 각양각색이었다. 결국 광복 이후 국기에 간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태극기의 모습을 확정할 필요가 있어서 여러 유력 인사들을 불러서 토론을 하였다. 사실 광복과 함께, 이 참에 새로 국기를 만들자는 주장을 한 인사도 있었으나 사상이 불손하다는 이유로 바로 배척되었다.

이 과정에서 처음 지지를 얻어서 확정된 것은 당시 정부의 주요인사들이 망라된 '우리국기 보양회'가 제안한 태극기였다. 그런데 독립문에서 발견된 태극기 모습이 전해지자 갑론을박 끝에 다시 태극기는 독립문으로 번복되어서 발표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독립문 태극기에서 4괘가 역리에 맞지 않다는 주장[13]이 나와 다시 '우리국기 보양회' 안으로 변경,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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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이 태극기

데니 태극기

여담으로 현존하는 실물 태극기 중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기는 1883년 푸트 미국공사의 수행원이었던 쥬이가 1884년 입수해서 미국으로 가져간 것으로, 이른바 '쥬이 태극기'이다. 스미소니언 역사 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상단 이미지에서는 붉은색이 아래로 내려간 형태인데, 상하를 바꾸면 이응준 태극기와 유사하다. 대한민국 국내에서 소장한 태극기 실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이른바 '데니 태극기'이다. 대한제국 시기 미국인 고문이었던 데니에게 고종 황제가 1890년 수여한 태극기이다. 1981년 데니의 외손자인 윌리엄 롤스턴 1세가 태극기를 소장했다는 알려지자[14] 당시 정부가 환수에 나섰다. 롤스턴 2세[15] 부부가 한국에 방문하여 해당 태극기를 기증하였고,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이다. 한국 내에 없는 쥬이 태극기와는 달리 국내 소장품이라 데니 태극기를 은근히 밀어주는 경향이 있다. 발견 당시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알려져서 그런 것도 있고.

대한민국 탄생의 시발점이 된 3.1 운동에서 탑골공원에 모인 시민을 비롯한 모든 참가자들이 민족의 공통된 상징으로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시 태극기를 국기로 채택했으며, 일제로부터 해방된 8.15 광복이 이루어지자 사람들은 태극기를 들고 감격을 표출했다. 1948년 정식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도 대한민국 국기로 태극기를 채택하였다.

3.1.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후의 태극기 변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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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태극기.
태극의 방향과 크기, 4괘의 배치가 현재와 달랐다.[16]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1949년까지의 태극기.
태극의 크기와 4괘의 두께가 바뀌었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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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1997년까지 사용된 태극기.
4괘의 배치가 달라졌다.[18]

1997년~현재의 태극기.
태극의 색조가 달라졌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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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독립군들이 사용하던 태극기를 바탕으로 한 군기인 '진군기'. 태극기의 옆과 아래에 황색, 적색, 녹색 천을 덧대어서 군기로 사용하였다. 그당시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은 무장독립투쟁의 최전선에서도 태극기를 휘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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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해 서울이 함락당한 뒤, 인천 상륙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했을 때 중앙청 청사에도 태극기를 계양하여 서울이 국군 치하에 들어왔음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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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19 혁명,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에도 폭력 진압으로 사망한 민주화 열사들의 시신을 태극기로 덮었고, 1987년 6월 항쟁에서도 시민들이 태극기를 들었다. 당시 서면 중앙대로에서 촬영된 위 사진 "아! 나의 조국"은 6월 항쟁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유명하다.

4. 국기 달기[20][편집]

국기 게양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행정안전부의 관련 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4.1. 국기 다는날[편집]

현재 대한민국 법에서는 3월 1일(삼일절), 6월 6일(현충일), 7월 17일(제헌절), 8월 15일(광복절), 10월 1일(국군의 날), 10월 3일(개천절), 10월 9일(한글날) 국기를 달도록 되어 있다.[21] 그 외에 국가장 기간이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날에도 달도록 되어 있다.[22]

경축일 또는 평일에는 깃봉과 깃면의 사이를 떼지 아니하고 단다.[23] 그러나, 현충일과 국가장 기간 등 조의를 표하는 날에는 태극기 하나가 들어갈 공간만큼을 내려 다는 조기(弔旗)를 달도록 되어있다.[24] 과거에는 제헌절, 국군의 날 등 쉬지 않는 국경일에만 게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사람들이 국가주의 및 공동체주의적 사고를 과거보다 회의하는 분위기가 생기자 다는 것 자체가 드물어졌다.

1980년대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절까지만 해도 오후 5시가 되면 도심이나 농촌을 가리지 않고 관공서 등에서 국기를 내리며 1분간 애국가를 울리면, 길 가던 시민들이나 농사짓는 농민들이 움직이지 않은 채로 가슴에 손을 얹는 의례가 있었다. 이후로는 폐지되어 하지 않는다. 시민의식이 현대화되어 전체주의적인 행동이라는 시각이 퍼져 이렇게 되었다.(물론 군부대에서는 유지 중이다.)[25] 비슷한 사례로 국민의례도 있다.[26]

과거에는 태극기에 물 한 방울, 티끌 한 점 묻히지 못하도록 우천 시 올리는 것을 금지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관련법이 개정되어 달고 싶으면 1년 365일 게양할 수 있다.[27] 하지만, 비나 눈 등은 상관이 없으나, 국기가 찢어질 염려가 있을 정도로 심한 악천후라면 지금도 게양하지 못하도록 한다.[28] 아파트 고층에서는 국기게양에 많이 유의해야 한다. 가끔 강풍에 날려서 발코니 난간에 깃봉을 꽂아 게양한 태극기가 깃봉 채로 빠져 떨어져 차량을 파손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플라스틱이라도 고층에서 떨어지면 차 유리창 정도는 우습게 부순다.

4.2. 공공기관 등에서의 국기 달기[편집]

국가,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의 청사 등에는 국기를 연중 계속 달아야만 하며[29], 다음 각 호의 장소에는 가능한 한 연중 국기를 달아야만 한다.[30]

  • 공항·호텔 등 국제적인 교류장소

  • 대형건물·공원·경기장 등 많은 사람이 출입하는 장소

  • 주요 정부청사의 울타리

  • 많은 깃대가 함께 설치된 장소

  • 그 밖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장소

위와 같이 청사 등지에 국기를 연중 계속 다는 경우 야간에는 적절한 조명을 하여야 한다.[31] 그러나, 각급 학교군부대의 주된 게양대에는 국기를 매일 낮에만 단다.[32] 학교 등에선 직원들이 그냥 적당한 때에 올리고 내리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군부대에선 정해진 시각에 각군 및 부대별로 정해진 복장[33]을 착용한 2명을 각각 국기수와 호위병으로 동원해 애국가를 배경으로 올리고 내린다.

5. 국기에 대한 경례[편집]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행사에서 국민의례를 할 때 가장 처음 하는 일이 모든 참석자가 태극기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것이다. 애국가 제창은 생략하는 경우가 자주 있으나 국기에 대한 맹세를 생략하는 일[34]은 거의 없다. 국기에 대한 경례시 태극기를 직접 바라보아야 하며, 일반 국민은 오른손을 왼쪽 가슴 위에 얹고, 군인이나 경찰관은 오른손으로 거수경례를 하되 경례구호를 외치지 않는다. 총을 들었다면 집총경례인 받들어 총을 해되 역시 경례구호를 외치지 않는다.

국기에 대한 맹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7년 7월 27일에 개정하여 지금에 이른다.

(변경 전)
나는 자랑스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변경 후)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스런' 이라는 표현은 국어사전에도 없는 틀린 표현이기 때문에 올바른 ㅂ 불규칙[35] 활용형 표준어인 '~스러운'으로 개정하였으며, 좀 더 현실적인 내용으로 내용의 일부를 개정하였다.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한다"라는 내용이 제국주의,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아니냐는 논란에 의해 결국엔 수정되었으며,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문구를 새로 만들어 대한민국이 자유롭고 정의롭지 않다면 충성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올바른 민주주의적인 사상을 더욱 강조하였다. 민주주의의 최선봉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상기한 충성의 맹세를 통해 국기와 국가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의식이 여전히 행해지긴 하지만 미국은 의외로 굉장히 앞뒤가 안맞는 나라라서 국가주의적인 사상이 강한 나라다.[36] 일단 판례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 자에 대한 학교 등의 징계에 대해 적법하다고 판단한 적이 있다.

진보 정당들[37]을 비롯해 진보, 노동단체 대부분은 각종 행사 때 국민의례,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을 일체 거부하고, 대신 '민중의례'라 하여 노동 열사에 대한 추모 묵념과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대체한다. 2004년 첫 민주노동당 첫 원내진입 이후, 대한민국 국회에 등원하는 공식 정당 의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을 거부함을 허용해야 하는지 논란이 벌어졌다. 요즘에는 진보 정당 인사들도 당내 행사가 아닌 외부 행사에서는 국민의례를 할 때는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도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경례를 하지 않는다.

참고로 깃발로 행해지는 제식 중 받들어 기를 행할 때, 국기인 태극기는 그 어디에도 굽히지 않는다. 나라 자체를 상징하는 태극기가 어딘가에 굽혀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6. 도안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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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세로 비율이 3:2다. 물론 A4용지와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태극과 사괘[38]가 그려진 이 도안은 동양사상에서의 우주의 원리가 담겨 있다. 즉, 동양 철학을 집대성한 국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앙의 태극은 을 상징하는 것이며 좌측 상단의 건괘는 하늘, 우측 하단의 곤괘는 , 우측 상단의 감괘는 , 좌측 하단의 이괘는 을 상징한다. 세계에 몇 안 되는 우주의 원리를 담겠다는 의도를 나타내는 국기.[39][40] 흰색,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이 들어간 국기에 깃발의 봉의 노란색까지 넣어 오방색이 모두 들어갔다고도 한다.[41]

여기에 사용되는 빨간색과 파란색의 색의 정확한 도안은 빨간색은 CIE 색좌표로 x=0.5640, y=0.3194, Y=15.3이고, 파란색은 x=0.1556, y=0.1354, Y=6.5이다.(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 별표 2) 인쇄물 등에 태극기를 인쇄할 때에도 되도록이면 정해진 색을 써야 하지만, 그럴 수 없을 경우에는 흰색 부분과 빨간색 부분을 인쇄물 등의 바탕색으로, 파란색 부분과 괘를 검은색으로 표시한다.

도안이 비교적 복잡한 관계로 외국인에게 그리기 몹시 어려운 국기로 꼽히나, 구불구불한 유기적 형태의 그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형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형상이기 때문에 자와 컴퍼스 정도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충분히 그릴 수 있다. 사실 전세계의 문장, 상징 등을 디자인적으로 놓고 보면 태극기는 그다지 복잡한 도안도 아니다. 다만 국기들이 워낙 이색기니 삼색기니 십자가기니 하는 것들이 많아서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워 보일 뿐이다. 거꾸로 말하면 그들 색상기가 단순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42] 앞에서 말했듯이 태극기는 기하학적 형상이기 때문에 샤하다가 쓰여진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나 부탄()[43], 멕시코 국기(독수리을 물고 선인장에 앉아있는 모습), 과테말라 국기(과테말라의 국조(國鳥)로 지정된 새인 케찰(케트살)[44] 및 과테말라 독립 문서), 투르크메니스탄 국기(설명이 힘든 기하학적 문양), 바티칸 시국(교황관과 성 베드로의 천국 열쇠), 벨라루스 국기 등 '그림 그리기' 류 국기에 견주면 양반이다. 그래서 이런 나라들은 대내적으로는 아예 문양이 없는 국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비교적 그리기 까다롭기는 하지만 외국인들에게는 태극 문양이 주는 동양적 이미지가 꽤 인상적이라고 한다. 외국인에게 태극기 의미 설명하기 태극과 건곤감리가 들어간 지극히 도교스러운 디자인 때문에, 중국에서는 태극기를 보고 한국인의 조상들 중에서 도사가 많았거나, 혹은 조선이나 대한민국 자체가 도사들이 세운 나라가 아니었나 생각하면서 말이 통하는 한국인에게 이걸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45]

3   5
 태극 
4   6

태극기를 그릴 때 헷갈리는 요소는 사괘, 태극 문양의 경계선과 위아래의 색 등이 있다. 쉽게 외워서 그리는 팁 중 하나는 사괘와 태극 문양의 경우에는 S를 왼쪽으로 90도 돌린 후, S를 쓰는 순서대로 3(건괘), 4(이괘), 5(감괘), 6(곤괘)를 그리면 된다. 태극 문양의 경계선 역시 S를 왼쪽으로 90도 돌린 모양처럼 왼쪽이 아래로 볼록하고, 오른쪽이 위로 볼록하기 때문에 같이 외우면 된다. 소문자 n을 쓰는 순서로 줄 수가 늘어난다고 외워도 좋다. 또는 책 읽는 순서로 하나씩 외워도 된다. 물론 괘의 순서만 맞게 그린다고 태극기를 제대로 그렸다고 볼 수는 없고, 태극과 각 괘의 모양, 위치, 크기 등이 전부 세밀한 규격이 있다. 다만, 괘를 대칭이 되도록 그려야 한다를 조건으로 그리기 시작하면 비교적 쉽게 외울 수 있다.[46] "4괘의 위치 기억은?" "위아래위위아래"

태극의 위아래 색을 헷갈리는 이들도 있는데 정말 단순하지만 쉽게 외우는 방법으로 위는 태양, 아래는 바다라고 생각하면 더 이상 헷갈릴 일은 없다. 태극의 두 색을 나누는 경계선이 치우친 방향을 헷갈리는 이들도 있는데, 왼쪽 절반은 아래쪽으로 볼록하고, 오른쪽 절반은 위로 볼록하다. 애국가를 떠올리면 쉽다. '동해물과 백두산이'에서 동해는 깊으니까 아래, 백두산은 높으니까 위.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위쪽 아래쪽 오른쪽으로 가서 다시 위 아래 순으로 3.4.5.6.순인데 4와 5가 가운데가 찢어진 대칭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감괘(4)와 리괘(5)는 다른거 똑같은데 가운데가 떨어져 있는 것만 다르고 마주보고 있다. 위는 해 아래는 바다 그리고 4와 5가 가운데 찢어진 게 대칭이라는 것만 기억한다면 헷갈리는 것은 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태극기를 제작할 때 규격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의외로 자주 발생하며, 인터넷상에 잘못된 규격의 국기 이미지가 돌아다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특히 실수가 많이 발생하는 경우는 4괘 부분으로, 4괘를 이루는 효(막대기 1개)의 두께는 정확히 효와 효 사이의 간격의 2배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효의 두께가 얇아서 효와 효 사이의 간격과 동일하거나 그보다도 얇은 경우 국기에 힘이 없어보이고 국기의 위엄이 급격히 저하된다. 이런 잘못된 규격의 태극기가 2008 베이징 올림픽 시상식에서 사용되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 선수단이 공식 국기로 개막식에서 사용하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사

7. 그 밖의 이야기들[편집]

태극기는 《주역》의 계사상전(繫辭上傳)에서 나와 있는 태극→양의(兩儀)→사상(四象)→팔괘(八卦)라는 우주 생성론을 나타내는 태극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조선의 태극팔괘도는 복희선천팔괘(伏羲先天八卦)가 아닌 문왕후천팔괘(文王後天八卦)이다.

원이 나타나는 태극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근원을 의미하며 도교에서는 태소(太素), 탄드라밀지에서는 카르마무드라라고 하며 사고의 개입이 없는 순수하고 완전한 행위를 의미하는 무아전위(無我全爲)의 우주일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상징한다.

태극기를 항시 게시해도 된다는 법 개정과 더불어, 2002년의 월드컵을 기점으로 태극기가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는 등 이전보다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게 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태극기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아 국기법 위반이나 아니냐로 논란이 있는 편. 원칙상으로 태극기에 구멍을 내거나 절단하는 행위는 법률로 금지돼있다. 또한 태극기 응원이 범람하다보니 응원이 끝난 후 수많은 태극기가 길바닥에 버려지거나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런 응원도구들은 가급적 집에 가져가서 조용히 처리하라고 권한다. 2010년대 들어선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를 비롯한 보수 집회에서 이런 모습이 자주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많다.

또한 폭주족들이 삼일절, 광복절 등에 오토바이에 태극기를 달고 질주하는 바람에 경찰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기도 한다. 자기들은 애국심이라고들 하지만 이건 자기들 범법 행위를 태극기를 이용하여 애국적인 것으로 포장하는 행위다. 애국이라는 말로 욕 좀 안 얻어먹으려나 한 것 같은데, 그저 허울 좋은 구실일 뿐이다. 한편 2008년 이후 북악산길을 태극기를 달고 자전거로 질주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아마도 시야 방해와 국기 훼손 때문인 듯하다.

영광이 있는 곳에 태극기가 있습니다.
태극기가 있는 곳에 내가 있습니다.
태극기는 또 다른 나의 얼굴입니다.

1997년에는 태극기를 주제공익광고가 제작되기도 했다. 한국 전통화가가 붓으로 그린 듯한 애니메이션 영상을 잘 보면 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태극마크 형상의 공을 던져 스트라이크를 맞추고, 축구 경기에서 축구선수들 역시 태극마크 형상의 공을 주고 받으며 골문을 뚫는데 성공하여 국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에는 펄럭이는 태극기와 한반도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여 어떤 남성이 국민의례를 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20년이 지난 2017년에도 좋은 평을 들을 정도로 예술미와 전달력이 뛰어난 광고로 손꼽히고 있으며, 실제로도 이 광고를 기점으로 공익광고협의회가 만드는 광고의 질이 크게 좋아졌다. 내레이션은 김기현.

1997년 당시에 박찬호 선수가 한국인 최초로 미국 야구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무대에서 멋진 활약을 하고 있었던데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또한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좋은 행보로 승승장구 하며 국가대표팀 공식 서포터즈 붉은악마가 본격적인 틀을 갖추었을 정도로 스포츠 경기에 대한 범국민적인 관심과 사랑이 많던 시절이었다. 해방 이후 국내 시위 등에서 공식적으로 태극기가 불태워진 적은 없으나, 한때 통일이 되면 예멘이 통일 후 새 국기를 제정했던 것처럼 태극기가 아닌 국기(ex. 한반도기)를 써야 하나에 대한 주제가 나온 적이 있는데, 태극기는 분단 이전부터 사용했기 때문에 독일이 통일하고도 국기를 안 바꾼 것[47]처럼 이대로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2004년에 조선일보가 가장 오래된 태극기를 공개했다. 한국어 판, 영어판(두번째 부분), 일본어 판(아쉽게도 비밀번호가 걸려있다), 비교사진, 한국의 비교사진.[48]

외국에서는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상대팀 관중이 태극기를 들기도 한다. 유로 2004의 조별리그에서는 덴마크 관중이 태극기를 꺼내들었고 그 경기에서는 무득점 무승부로 끝났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조별리그에서도 뉴질랜드 관중이 태극기를 꺼내들었고 그 경기 또한 1대1 무승부를 거뒀다.

태극기는 세계 네티즌들 사이에서 펩시기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것은 태극기의 태극펩시의 마크와 닮은 것을 이용한 범 세계적 유머로, 구글에 Pepsi Korea flag를 검색하면 수많은 펩시 마크와 합성한 이미지들을 볼 수 있다. 당연히 실제로 펩시콜라와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지극히 우연일 뿐이다. 덧붙여서, 덕분에 태극마크를 모티브로 만든 대한항공 로고 또한 펩시로고와 자꾸 나란히 놓이는 모양이다. 실재로 예전의 팹시콜라 마크는 굴곡이 조금 더 적은 태극마크와 유사했으나, 이후 로고를 바꾸면서 유사성이 약간 떨어졌다.

대한민국 국대를 통틀어서 특히 태극 색깔을 베이스로 한 유니폼을 입는 축구대표팀을 '태극 전사'라고 부르는데 이 표현은 이제 외국에서도 자주 쓰는 표현이 되었다. 문제는 영문 표기시 대부분 'Taegeuk Warrior'가 아니라 'Taeguk Warrior' 라고 한다는 것이다. 외국에서야 어떻게 발음하든 별 상관이 없긴 하지만 한국인이 보기에 좀 거슬리는건 어쩔 수 없는 듯.[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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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부터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전군 군복에 태극기를 부착하게 되었다.[50] 전투복 오른쪽 팔에 부착하며 일반적인 색상의 태극기와 위장색 태극기 두 종류를 벨크로로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다.[51] 사진은 국방부 의장대 대원들. 참고로 도입 예산은 37억원이었다. 시행 당시에도 베레모 도입에 이어 또 미군 ACU에 성조기 붙이는것 따라하기냐는 비판이 밀덕후들 사이에 높았다. 사실 이것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태극기를 부착하기로 했다는 말이 나온다는 점이다. 애국심을 고취시키겠답시고 부착물이나 늘리겠다는 발상을 했으니 예비역 등에서 반응이 좋을리가 없다.

파일:국정교과서 홍보물.jpg
2016년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발표 때 나온 홍보물에 태극기가 있는데 4괘의 순서가 Z자로 잘못 표시됐다! 정확히 얘기하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부터 1949년까지 사용된 태극기를 첨부한 것이다. 다시말해서 67년 전 태극기를 태극기를 정부부처라는 곳에서 뜬금없이 자랑스레 내건 것이다.[52]

이 태극 무늬가 기묘하게도 위쪽이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으로도 잘 쓰이는 빨간색이고 두 색의 경계선 모양이 군사분계선과 흡사해서, 옛 사람들이 태극기를 고안하면서 한국이 분단 국가가 될 것을 예언했다는 도시전설이 있다.

일부에서는 원래 우리 민족의 태극인 삼색 태극[53]을 써야 오방색이 모두 갖춰지는데 노랑이 태극에서 빠진 바람에 중국 도교의 2태극이 되어버려서 우리나라의 국운이 쇠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태극기가 빨강, 파랑 2색 태극만 쓴 것 때문에 그 모양대로 남북이 분단되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6.25 전쟁 무렵에 꽤 널리 퍼지기도 했고, 반 농담으로 4괘가 주변 4대 강국(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을 뜻한다는 얘기도 있었다.[54]

파일:펄럭.jpg

파일:74234.jpg

인터넷에서 자주 사용되는 태극기 짤방. 짤방으로 쓰일 때는 반어법으로 국뽕들을 조롱하는 용도로 사용했지만, 어느새 진짜로 자랑스러운 것에도 쓰게 된 마성의 짤방이다. 즉 국뽕용으로도 국까용으로도 쓰는 짤방. 갓극기 혹은 펄-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대 디자인 관점에서 봤을 때 태극기의 빨간색과 파란색은 보색이면서도 매우 어정쩡한 조합으로, 그리 어울리는 색은 아니었다는 주장이 있다. 변천 과정에서 1997년 이후 바뀐 색깔은 색조 보정을 통해 이를 그나마 어울리는 색으로 맞춘 것이다. 또한 바탕의 흰색은 이런 보색 조합의 시각적 긴장감(다른 말로 불편함)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만약 태극만 따로 떼어내서 본다면 태극기와는 다르게 다소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데, 대한항공은 태극을 로고로 사용하면서 가운데 하얀 무늬를 넣어서 이를 해결하였다. 단, 도교 철학적 시각으로는 태극의 중간을 벌리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에, 대한항공이 사고의 대명사였던 시절에 이 로고를 탓하는 역술인들이 있었다. 아무튼 디자인 면에서만 보자면, 의도했든 아니든 북한이나 태국의 국기에서 빨간색과 파란색 사이에 하얀 줄이 있는 것도 괜찮은 판단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공군대한민국 육군이 사용하는 라운델에도 빨간색과 파란색 사이에 흰 줄을 집어넣었다.

8. 태극기의 오용 사례[편집]

갓-극기에서 틀극기[55]


백괴사전

태극기 사용의 나쁜 예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례.

2017년에 들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또 하나의 이미지가 태극기에게 생겨버렸다.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서 극우단체들이 많은 태극기를 가져와서, '촛불'에 대응하는 아이템으로 태극기를 적극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촛불은 애국심에 반대되는 것이 결코 아님에도 태극기(=애국)에 반대되는 촛불이 매국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것이다. 비뚤어진 애국심을 지닌 극우 세력이 자신들의 애국 정통성을 강조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깃발이라는 점에서 극우집단의 태극기 집회에서 사용되는 태극기의 이미지가 실추되었다. 그 때문에 극우집단을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극우집단이 쓰는 태극기에 대한 시선이 나빠지고 있는 상황이며, 이에 대해 우려를 품는 시각이 많다. 이러한 이미지 변질을 일부 집단의 오용일 뿐이라고 선을 그어야 할 언론 측에서도 언론에서도 '태극기 VS 촛불' 식으로 이런 구도를 자제하기는 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상황.

물론 아직까지는 태극기가 지닌 긍정적인 의미가 완전히 훼손되지는 않았다. 이것까지 훼손당하면 태극기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기인데 정작 국민들이 혐오하는, 그야말로 국기로써의 지위가 굉장히 애매해지게 된다. 그러나 극우 단체들의 오용 때문에 정상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태극기 역시 이미지 변질의 역풍을 뒤집어 쓸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태극기를 게양하는 3.1절 기념식을 비롯해서 태극기를 쓰는 국가 행사들이 의미 변질의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독립유공자 단체인 광복회도 이를 우려하며 태극기가 정치적인 용도로 변질되면 안된다는 성명을 냈다. 극우 단체들의 태극기 오용에 반발하는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 일부 참가자들도 "태극기가 왜 탄핵 반대의 상징이냐"면서 태극기에 세월호 참사 추모상징인 노란 리본를 달고 집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기사

2018년 광복절을 앞두고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는 이런 이미지 변질이 실제로 작용한다는게 밝혀졌다. 광복절에 국기를 게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양하지 않겠다는 반응이 의외로 많았으며, 탄핵 반대 집회로 인해서 태극기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의견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9. 태극기 반대에 대한 잡설[편집]

인터넷에서 어떤 이들은 태극기는 친일파가 제작한 깃발이라며 우리 민족의 정통성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하고, 과거 군사 독재정권 당시의 태극기는 말 그대로 국가의 강압, 즉 전체주의권위주의를 상징했다고 보고 국가의 권위주의를 상징하는 태극기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경우도 드물게 있다.[56] 실제 국기에 대한 경례 파트에서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멘트가 전체주의적 사상이 표방된 부분이라는 지적을 받아 변경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멘트가 바뀐 이후에도 극좌 단체에서는 민중의례를 할 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생략한다던가 심지어 태극기조차 걸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여전히 역사적 이유로 태극기에 대한 시선이 부정적인 것이다. 상술한 태극기 방화 같은 건 역시 이러한 시선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시위에서 태극기를 태우는 행위를 저질렀던 건 치명적인 병크다.

여기에 극좌진영에서는 태극기의 음양과 사괘가 봉건주의적인 미신으로 여긴다. 실제로 북한에서 태극기가 폐지된 이유도 그 때문이기도 한데, 1947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부위원장 김두봉은 소련 장군 레베데프에게 태극기의 내력을 설명했지만, 반동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인공기가 지정된 후, 북한에서는 태극기 폐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댔다.

  • 태극기는 새로운 민주 국가의 성질에 위반된다.

  • 태극기는 그 근거 되는 주환의 '학설'이 비과학적이며 미신적이다.

  • 태극기는 처음부터 일정한 의의와 표준이 없이 제정된 것이다.

  • 태극기는 무용한 난해로 인한 각양각색의 불통일 된 폐가 있다.

이 때문에 남민전 사건 당시에 남조선민족해방전선에서는 인공기를 본뜬 깃발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일부 극좌진영뿐만 아니라 일부 과격 민족주의 진영에서도 태극기에 대해서 비판적일 때가 있는데, 태극과 사괘가 우리 민족 고유의 문양이 아니라 동양풍이거나 중국풍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태극을 했더라도 전통적인 삼태극을 그려야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태극기가 친일파 박영효가 제작했으므로 국기로서 자격이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펴는 경우도 있는데, 물론 문서 상단에서 보듯이 태극기 제작자는 이응준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애초에 당시 태극기 디자인이 제안됐을 때에도 다들 별 말 없이 괜찮게 받아들였을 정도로 거부감 없는, 조선인이라면 생각해볼 만한 도안이었다.

10.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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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이전까지 태극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깃발로 사용했다.[2] 제헌 국회에서 국기로 공식 지정되었으나, 현재와 같은 사괘의 배치가 확립된 것은 1949년 10월 15일 문교부 고시 이후부터이다.[3] 나무위키에 항목이 개설된 이응준과는 동명이인이니 오해하지 말자. 애초에 그 이응준은 이 사람과는 생몰년도가 전혀 다르고, 거기다가 민족주의적 개화 사상가인 이 이응준과는 달리 친일반민족행위자이기까지 하다.[4]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기준.[5] 건(乾, ☰), 곤(坤, ☷), 감(坎, ☵), 리(離, ☲). 팔괘 중 상하대칭인 괘들.[6] 모바일 혹은 Mac OS 환경의 컴퓨터에서 볼 때 정상으로 보인다. 안드로이드 누가안드로이드 오레오에서는 이모티콘 업데이트로 펄럭이는 듯이 보인다.[7] 국기에 대한 경례가 생겨난 것도 이 때. 사실 이런 관습의 이면에는 그 당시 섬유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빨면 색이 바랜다는 이유도 있었다.[8] 대한민국국기법 제10조 제3항[9] 조선의 전통적인 화이관에만 따르더라도 은 어디까지나 비한족 왕조이며 명나라로 대표되는 중화의 정통을 단절한 참칭 왕조이다.[10] 깃대 방향이 반대인데, 동양과 서양이 글 읽는 방향이 반대였듯 깃발도 마찬가지였다.[11] 마젠창도 그렇고 묄렌도르프 등도 그렇고 청나라 고문들은 초반에는 청의 의도를 따르는 듯 하다가 결국 조선에게 유리한 제안을 하다 못해서 청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향까지 보였기 때문에 청은 이 고문들을 모조리 소환해버렸다. 후일 일본이 보낸 고문인 미국인 샤를 르 장드르도 원래 일본의 대만 점령을 돕는 등 친일파였다가 조선에서 지내면서 조선을 돕고 일본에 반대하는 정책을 펴는 등 조선에 동화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서양인이 일본에 동화된 경우도 있지만.[12] 엄밀히 말하면 국장이다. 대한제국은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이화문말고도 매문양등 다양한 국장을 사용했는데 여기있는것은 태극국장이다.[13] 그런데 지금은 현행 태극기 역시 기존의 순행 태극이 팔괘가 아니라는 이유로 역리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 나왔다.[14] 데니의 행적과 유물들을 다루면서 데니 태극기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일 것이라고 적은 김원모 교수의 논문을 당시 한국일보 기자였던 임종건(이후 한남대교수, 서울경제신문사장 역임)이 읽고 미국 현지 취재를 하면서 알려졌다. 조병우 지국장과 임종건 기자는 이 보도로 특종상을 탔다.[15] 윌리엄 롤스턴 1세는 당시 나이가 80세였다.[16] 단 1942년 제정된 임시정부의 국기도안은 1948년~1949년 당시의 국기 도안과 같았다.[17] 이 때까지는 4괘의 배열이 3456 순으로 Z자 배열이었다.[18] 우리국기 보양회가 제시한 태극기 도안을 받아들여, 이때부터 4괘의 배열이 Z자 배열에서 지금과 같이 뒤집은 N자(И) 배열이 되었다.[19] 비율은 종이:태극으로 3:1이며 정확한 헥사코드로는 양은 #C60C30, 음은 #003478이다.[20] 태극기를 게양한다는 표현에 많이 익숙한 사람들이 있는데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이는 일본식 한자어라고 한다. '게양하다'는 '달다' 혹은 '올리다'의 표현으로 다듬어서 사용함이 바람직하겠다.[21] 대한민국국기법 제8조 제1항 제1호, 제2호[22] 대한민국국기법 제8조 제1항 제3호 내지 제5호[23] 대한민국국기법 제9조 제1호[24] 대한민국국기법 제9조 제2호[25] 재미있는건 약간 더 위험한 방송에서 평상시에도 군인들이 애국가가 울리면 정말로 태극기 앞에서 경례를 하는지 실험해본 적이 있다. 결과는 사람마다 각자 다른 듯.[26] 1980년대에 초, 중, 고등학교 에서는 아침 8시와 오후 5시에 각각 애국가를 틀고 계양, 하강을 했고 매주 월요일 1교시는 애국조회를 하며 전교생이 모두 운동장에 모여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후 제6공화국으로 바뀐 1988년을 기점으로 1990년대 이후로 거의 다 사라졌다. 사실 애국조회를 위한 구령대 자체가 일제시대의 잔재라 요즘 개교하는 학교에는 구령대가 없는 경우도 있다.[27] 대한민국국기법 제8조 제2항[28] 대한민국국기법 제8조 제5항.[29] 대한민국국기법 제8조 제3항 전문 전단[30] 대한민국국기법 제8조 제3항 전문 후단[31] 대한민국국기법 제8조 제3항 후문[32] 대한민국국기법 제8조 제4항[33] 육군 및 공군, 해병대 일선 부대는 전투복에 단독군장, 해군 부대 대부분은 정복을 착용하며, 정복 착용이 곤란한 해군 고속정에선 고속정복을, 의장대가 있는 부대에선 의장병들에게 의장대 행사복을 착용시켜 실시한다.[34] 수정 전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와 혼동하였으나, 국기에 대한 경례는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국장이나 추모식 같이 엄숙함을 유지해야 하는 행사에서는 국기에 대한 맹세나 애국가 제창이 아예 없고 대신 국기에 대한 경례와 고인에 대한 묵념 혹은 순국 선열에 대한 묵념이 있다.[35] 아름답다 → 아름다운, 어둡다 → 어두운, 선생답게 행동해라 → 선생다운 행동 등, 어간에 ㅂ받침이 있는 경우 활용시 'ㅂ'이 탈락하며 'ㅜ'가 따라오는 현상[36] 물론 도날드 트럼프 당선 직후 일부(특히 서부) 지역에선 저항권의 의미가 다시 강조되어, 한 쪽 무릎을 끓는 등 거부행위에 관대하다.[37] 2018년 현재 노동당(한국), 녹색당(한국), 민중연합당, 사회변혁노동자당 등.[38] 사괘의 원류는 태호복희가 도안한 복희팔괘인데 이것이 주나라 때 한 번 수정되어 이전 복희씨가 그린 팔괘를 선천팔괘, 주나라 때 그려진 팔괘를 후천팔괘라 한다. 팔괘는 태극기에 그려진 건(乾, 하늘), 곤(坤, 땅), 감(坎, 물), 리(離, 불) 외에 진(震, 번개), 손(巽, 바람), 간(艮, 산), 태(兌, 늪)가 있다.[39] 세계 대다수 국가의 국기는 해당 국가의 건국 과정이나 비전을 표현한다.[40] 태극 문양의 경우 몽골의 소욤보 문장, 티베트(아직 정식 국가는 아니지만) 국기에도 사용되고 있다.[41] 각각의 방위는 청(靑)은 동쪽, 백(白)은 서쪽, 적(赤)은 남쪽, 흑(黑)은 북쪽, 황(黃)은 중앙을 가리킨다.[42] 애초에 삼색기프랑스 혁명 이후 모든 인민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명제 아래서, 교육 수준과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기억하고 따라 그릴 수 있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다.[43] 특히 이 쪽은 부탄 정부에서 아예 공식적으로 따라 그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했다.[44] 과테말라의 화폐 단위이기도 하다.[45]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팔괘와 태극은 도교보다는 유교에 가까운 문양이다. 도교의 태극문양은 몽골 국기에서 볼 수 있다.[46] 무조건 대칭이 되도록 그려야 할 땐 3, 4, 5, 6 모두 한가지 도안 밖에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47] 단, 독일은 동독이 멸망하여 서독으로 흡수된 형태이며, 서독 정권과 역사, 국기를 계승하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붕괴되어 대한민국으로 합병된다면 몰라도(물론 현재로선 이쪽이 가능성이 높지만) 같은 위치에서 통일하는 상황이 된다면 독일은 예시로써 조금 부적합하다. 더구나 통일 이전 동독과 서독은 국기 가운데에 문장이 들어가냐 안들어가냐의 차이만 있을 뿐 검,빨,노 삼색기 디자인이 같았기 때문에 통일 이후 서독이 쓰던 국기를 계속해 쓰는 것에도 별 어려움이 없었다.[48] 참고로 위 사진 중 두번째 사진을 토대로 대청국고려국기였다고 하는 이야기는 오해다. 1874년 통상장정에 나왔다는 것은 오류고 1883년작 이홍장의 개인저서 통상장정성안휘편(通商章程成案彙編)에 수록된 것으로 한마디로 중국인이 혼자 낙서한 것이다. [49] ㅡ를 u에 반달점을 찍은 것으로 표기하는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의 영향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냥 영어 화자에게 eu라는 모음 표기가 생소해서 그런 것이다. 흔히 쓰지도 않을 뿐더러 쓰더라도 ㅡ와는 전혀 다른 ㅠ에 가까운 발음으로 읽는다. (예: feudalism, eucalyptus, euro 등등) 이럴 거면 차라리 ㅜ로 읽는 u로 표기하는 게 ㅡ에는 더 가깝다. 애초에 음성학 상 ㅡ는 ㅜ를 발음하면서 입술 오므린 것만 펴면 되기 때문이다.[50] 특수부대, 민정경찰, 파병부대, 카투사, 대한민국 해병대에서만 사용했으나 2015년 10월부터 전 군 병력이 모두 부착하게 되었다.[51] 태극기의 흰 색깔은 전시에 좋은 표적이 될 수 있다. 보어 전쟁제1차 세계 대전에서 널리 알려진 사례로, 일반 색상 태극기를 평시에 기본으로 하다가 위장색 태극기를 기본으로 하고 영외에서만 일반 태극기를 붙이도록 시행방안이 개정 된 것도 이 원인이다.[52] 당장 갑자기 개연성도 없이 미국 백악관 계정에서 별의 갯수가 49개인 성조기를 내건 풍경을 상상해보자.[53] 태극부채나 북에 그려진 것처럼 빨강, 파랑, 노랑 3색으로 된 태극. 사족으로 삼국 시대 때 고구려 백제 신라의 상징 색은 각각 붉은색, 노란색, 푸른색이었다. 묘한 아이러니.[54] 그런데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를 묘사한 그림들이나 유물들을 보면 2색 태극이 많이 눈에 띈다. 위의 주장도 어느 정도 그럴싸하지만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자. 삼색 태극은 삼국 시대에 두드러졌지만 그 후엔 2태극도 쓰인 상황이 빈번하다.[55] 좀더 점잖게 말하면 '우리의 자랑스러운 국기 태극기가 극우들의 장난감으로 전락했다' 정도 된다.[56] 하지만 군부독재정권에 항거하는 5.18 항쟁이나 6월 항쟁에서도 시민들은 태극기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