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타큐슈 감금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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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九州監禁殺人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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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건의 시작3. 오가타 준코 학대4. 토라야 부녀 감금 살인 사건5. 여성 감금 폭행 사건6. 오가타 일가 감금 사건
6.1. 오가타 일가 연쇄살인 사건
7. 토라야 딸의 탈출과 재감금8. 발각9. 사건의 수법과 살인 방식10. 재판 과정11. 뒷이야기

1. 개요[편집]

파일:attachment/kita_murder.jpg

방송에서 보여준 관계도.

1996년부터 1998년 사이에 마츠나가 후토시의 지시로 오가타 준코가 저지른 연쇄살인사건. 피살자는 전직 경찰관 토라야 쿠미오와 오가타 일가족 여섯 명이다. 법적으로는 고문치사한 오가타 일가족의 가장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 명이 살인죄로 인정되었다

범인들은 철두철미한 수법으로 사람을 죽였다. 이아고식 살인이라는 평도 있다. 너무 충격적인 범행 내용이라 일본 정부언론을 통제했기 때문에, 키타큐슈 지역에서만 알려졌다. 그나마도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1] 다만 인터넷에서 사건의 전모가 탄로나서, 예전에 비해서는 위키에 관련 항목이 작성될 정도로 많이 알려졌다.

2. 사건의 시작[편집]

이 사건의 주범인 마츠나가 후토시는 1961년 생으로, 기타큐슈 고쿠라시에서 태어났다. 반항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학창시절 잦은 말썽을 일으켰으며, 고교생 때 여중생을 임신시킨 결정적인 사건으로 다른 학교로 전학 처분을 받고 19살 나이에 결혼을 했다. 부모가 이불 사업을 했기 때문에 마츠나가 역시 가업을 물려받아 1983년에 "월드"라는 회사를 차려 이불 판매 사업을 시작했다. 사장 마츠나가는 보통의 사업가들과는 다른 막장의 극치를 보여주었는데, 소비자들에게 싸구려 이불을 고가로 강매하는가 하면 직원들에게도 할당량을 강제로 부과하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거나 본인의 기분이 나쁘면 직원들을 방음처리된 방에 가두고 전기 충격을 가하는 등의 믿지 못할 폭행과 폭언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직원들은 감히 퇴사할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마츠나가가 "나의 배후엔 야쿠자가 있다. 사표? 쓰기만 해봐. 내가 야쿠자를 시켜 너와 너의 가족들 다 죽여버릴테니까." 라고 협박을 가한 탓이었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중에도 다른 유부녀들과 관계를 맺는 막장 행각을 벌이기도 했는데, 9명의 주부들과 불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1980년, 졸업 앨범을 보던 마츠나가는 동급생이었던 오가타 준코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마츠나가가 매력적인 남자였기 때문인지 준코는 마츠나가가 결혼을 한 유부남임에도 사랑에 빠져서 불륜을 저지르게 되었다.

3. 오가타 준코 학대[편집]

공범 오가타 준코는 마츠나가보다 한 살 아래인 1962년생으로 당시 단기 대학을 나와 유치원 교사로 일하던 중이었다. 준코가 마츠나가와 사귄다는 것을 알게 된 준코의 부모인 오가타 타카시게와 오가타 시즈미는 마츠나가의 재산 현황 및 경력 등을 파악한 뒤[2] 준코에게 마츠나가와 헤어질 것을 종용했다. 그러자 마츠나가가 직접 타카시게와 시즈미를 찾아와 예의바른 청년의 모습을 보이면서, 말발로 두 사람을 완전히 회유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 준코와 마츠나가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으나, 준코가 우연히 예전에 사귄 남자친구 이야기를 꺼내면서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마츠나가는 이때부터 준코를 마구 폭행하고 학대했다고 한다. 마츠나가는 준코에게 이전에 쓴 일기장을 모두 가져오라고 한 뒤, 일기장을 보면서 내용을 캐묻고 폭행을 가했다.

폭행이 지속되자 괴로워진 준코는 어떻게 하면 날 믿겠느냐고 하소연했고, 마츠나가는 '담배로 너의 팔뚝을 지져서 내 이름을 새겨라' 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태연하게 지껄였고, 준코는 결국 그대로 해야만 했다.[3]

마츠나가의 학대를 견디지 못한 준코는 결국 1985년 2월, 부모님의 집에서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자살 기도 이후 마츠나가는 더욱 준코를 학대하며 아예 친가에서 나오게 하고 유치원 교사 일도 그만두게 했다. 더 중요한 건, 이때 마츠나가는 아직 이혼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이다. 어쨌든 이로 인해 준코는 마츠나가에게 절대 복종하는 상태가 되었고, 이는 더 큰 불행을 낳게 되었다.

4. 토라야 부녀 감금 살인 사건[편집]

마츠나가가 하던 이불 판매 사업은 견디다 못한 고객들과 직원이 경찰에 고발하면서 1992년 막을 내렸고, 마츠나가는 사기죄와 공갈협박죄로 지명수배를 당했다.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한 틈을 타 1996년 1월, 도피 중 마츠나가는 이전에 가짜 회사를 차리자고 자신에게 제안했던 전직 부동산 회사 직원 토라야 쿠미오를 떠올리고 준코와 함께 키타큐슈시에 몰래 숨어들어가 토라야 쿠미오와 그의 17살 된 딸(이름은 밝혀지지 않았다)을 납치했다. 그 뒤 토라야가 저지른 사소한 범죄들을 약점 삼아 이를 이용해 토라야를 학대하고 고문했다. 토라야를 욕조에 묶어두고 전기 고문을 하는 것이 마츠나가가 가장 즐겨하는 짓이었다.

2월 26일, 학대와 고문에 시달리던 토라야가 결국 생을 마감하자 마츠나가는 준코와 토라야의 딸에게 토라야의 시신을 훼손할 것을 지시했고, 두 여자는 시신을 훼손한 뒤 바다에 갖다 버렸다. 마츠나가는 토라야의 딸에게, 토라야가 사망하기 직전에 토라야의 팔을 아주 세게 물도록 강요한 뒤에 그것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이는 시신 훼손과 더불어 토라야의 딸에게 아버지의 학대에 가담했다는 죄의식을 심어주려는 목적이었다. 이후 토라야의 시신을 훼손한 뒤 유기했다는 점과 그 사진을 보여주며 정신적으로 학대를 가하는 인간 말종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된 토라야의 딸은 무기력해졌고, 마츠나가는 그녀를 계속 감금하고 감시했다.

5. 여성 감금 폭행 사건[편집]

토라야 사망 이전에 토라야를 통해 한 유부녀를 알게 되었던 마츠나가는, 교토대 출신의 카와이 학원 강사로 자신을 위장한 뒤 그녀와 사귀게 되었고, 그녀는 3살 된 그녀의 작은 딸과 함께 마츠나가, 준코와 동거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1996년 12월 30일부터 1997년 3월 16일까지 마츠나가와 준코는 이 여성과 작은 딸을 방에 감금하고 매일 폭행했으며 총 560만 엔을 갈취했다.

3월 16일 새벽, 폭행을 참다못한 그녀는 방의 창을 열고 밑으로 뛰어내려 도주를 했다. 그녀가 탈출하자 마츠나가와 준코는 서둘러 그곳을 떠났고, 남겨진 그녀의 어린 딸은 어차피 증언을 할 수 없어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그녀의 전남편 집 앞 대문에 버려두었다.

그래도 이 시점까지는 계획적으로 사람을 죽이지는[4]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6. 오가타 일가 감금 사건[5][편집]

드디어 마츠나가 연쇄살인극의 전설이 시작됐다. 특이점은 이간질의 형태였다는 것이다.

토라야를 살해한 뒤에도 마츠나가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는지 준코를 오이타 현 유후인쵸에서 호스티스로 일하게 했다. 이 기회를 틈타 준코는 마츠나가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했고, 낌새를 눈치 챈 마츠나가는 준코에게 토라야를 살해한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냐며 협박해, 준코를 다시 자신이 사는 맨션으로 오게 했다.

그러나 1997년 4월, 마츠나가를 견디다 못한 준코가 도망치자, 마츠나가는 준코를 붙잡기 위해, 준코와 자주 만나던 준코의 여동생 오가타 리에코의 귀에 들어가도록 '마츠나가가 자살했으며 이미 장례까지 마쳤다'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결국 이 헛소문은 리에코의 귀에 들어갔고, 리에코를 통해 마츠나가가 죽었다는 헛소문을 들은 준코가 안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런 준코 앞에 나타난 것은 멀쩡하게 살아있는 마츠나가였다.

차라리 이때 도망쳤던 준코가 경찰에 자수해 범행에 대해서 실토했다면, 이후 일어날 더 큰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마츠나가에 의해 정신적으로 지배된 상태였던[6] 준코는 결국 다시 마츠나가의 손아귀에 떨어지고 말았다. 마츠나가는 교묘하게도 준코가 자기 외에는 갈 데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유후인쵸에 있는 준코의 직장의 사장이나 동료들에게 준코가 갖은 험담을 퍼붓는 전화를 걸도록 강요했다.

이후 마츠나가는 준코의 부모와 여동생을 준코의 문제로 상의할 게 있다면서 불러냈고, 도피 자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돈을 뜯어내기도 했다. 또한 준코의 아버지인 타카시게에게 토라야 살해 현장의 배관을 교체하도록 해서 증거 인멸에 가담한 혐의를 안게 했다. 준코의 부모와 여동생이 이때 명확한 태도를 취해서 경찰에 신고했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딸이 살인을 했다는 이유로 세상에 드러나서 체면이 깎이고 싶지 않았던 부모와 여동생의 잘못된 생각이 그들을 파멸로 이끌었다. 결국 끔찍하게 학대당하다 죽음에 이르고 말았으니... 아무리 체면이 중요해도 목숨까지 잃어버리는 것에는 비할 바 아니지 않은가?[7]

언니의 문제 때문에 준코의 여동생 리에코가 자꾸 집을 나가자, 리에코의 남편인 오가타 카즈야는 리에코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마츠나가는 카즈야가 그런 의심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더욱이 데릴사위로 들어온 카즈야가 장인 타카시게가 주기로 한 땅을 받지 못했고, 리에코가 낙태를 한 경험이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자 교묘하게 장인과 아내에 대한 의심을 부추겼다. 이에 카즈야는 점점 장인과 아내에 대한 의심이 커져갔고, 마츠나가는 마치 좋은 이해자인 양 "당신은 속아서 결혼한 거야. 속인 건 그들이니까 마구 때려도 상관없어" 라며 조언하는 척, 폭력을 부채질했다. 결국 카즈야는 마츠나가의 꼬드김에 넘어가, 사실 확인도 해보지 않고 장인, 장모와 아내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즈야가 마츠나가에게 리에코가 방에 더블사이즈 침대를 두어서 방이 비좁아졌다고 푸념하자, 마츠나가는 되려 리에코 편을 들면서 카즈야를 몰아세웠다. 믿었던 마츠나가가 이렇게 나오자 당황한 카즈야는 마츠나가에게 잘 보이려 했고, 이를 이용해 마츠나가는 카즈야에게 토라야 살해 현장의 욕실 타일을 새로 바르게 하여 증거인멸에 가담시켰다. 이후 마츠나가는 카즈야에게 증거인멸에 가담한 것을 교묘하게 되풀이해 언급하여 카즈야에게 공범의식을 심어주었고, 카즈야로 하여금 오가타 일가를 거느리게 해 저항이 나오지 않도록 만드는 치밀한 행보를 보였다.

카즈야의 "아이들을 놔두고 고쿠라(키타큐슈)에 오는 게 걱정이다"라는 입방정(...)을 들은 마츠나가는 8월의 여름 마츠리를 핑계삼아 카즈야의 큰 딸 아야와 작은 아들 유키를 자신들이 있는 고쿠라의 멘션으로 데려온 뒤, 다니던 초등학교와 보육원에 돌려보내지 않았다. 카즈야의 일가 4명은 서류상으로는 구마모토 현 타마나 시로 이사를 간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고쿠라에 살고 있었던 것.

아이들까지 모두 손아귀에 넣은 마츠나가는 오가타 일가를 마음껏 이용했다. 카즈야는 아예 마츠나가에게 면허증과 차 열쇠를 맡기고 필요할 때마다 허락을 받아야 했고, 필요한 돈도 일일이 마츠나가에게 보고해 돈을 받고 차용증을 써야 했다. 쿠루메 시로 갈 때도 카즈야는 마츠나가에게 전화를 걸어서 일일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를 보고해야 했다.

자금이 부족해지자 타카시게에게 농협 대출을 받게 하고, 시즈미는 소비자 금융에서 돈을 빌렸으며, 리에코와 카즈야는 사표를 쓰고 퇴직해서 퇴직금을 받아 고스란히 마츠나가에게 갖다 바쳤다. 이런 일련의 행보에 다른 친척이 의심을 품게 되자, 아예 절연장을 보내서 고립시켜버렸다. 더 이상 돈을 빌리거나 마련하기가 어렵게 되자, 마츠나가는 오가타 일가 6명을 전부 감금한 뒤, 고문을 가해 서로가 말하는 것을 들려주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잘못된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마츠나가에게 약점을 잡혀 놀아나게 된 오가타 일가는 서로 싸우고 의심하는 상태가 되었고, 결국 이들은 완벽하게 마츠나가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6.1. 오가타 일가 연쇄살인 사건[편집]

이후 마츠나가는 본격적인 살인 행각에 들어갔다. 일단 기준은 마츠나가의 범행이다.[8]

  • 2번째 범행(상해치사) : 1997년 12월 21일, 마츠나가는 준코에게 지시해 준코의 아버지인 타카시게에게 전기 고문을 가했고, 그 과정에서 타카시게가 사망했다.[9]

  • 3번째 범행(살인교사) : 1998년 1월 20일, 준코의 어머니인 시즈미가 거듭된 전기 고문에 미쳐서 괴성을 지르자, 마츠나가는 범행이 발각될 것을 우려하여 준코와 리에코, 카즈야에게 지시해 살해하게 했다.[10]

  • 4번째 범행(살인교사) : 1998년 2월 10일, 준코의 여동생 리에코가 거듭된 전기 고문으로 청력이 약해져 소리를 못 듣게 되자, 마츠나가는 카즈야와 딸 아야에게 리에코를 죽이도록 했다.

  • 5번째 범행(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 카즈야 역시 거듭된 전기 고문과 식사 제한으로 인해 몸이 쇠약해진 상태가 되어, 마츠나가는 카즈야를 욕실에 감금했다. 1998년 4월 13일 카즈야는 욕실에서 굶어죽었다.

  • 6번째 범행(살인교사) : 카즈야의 딸 아야는 마츠나가에게 "절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겠다. 남동생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겠다. 집에만 돌아가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마츠나가는 유키가 불쌍하니까 엄마(리에코) 곁에 가게 해주면 어떨까라고 은근히 유키를 죽일 것을 꼬드겼다. 아야는 결국 마츠나가의 교묘한 말에 넘어가서, 1998년 5월 17일 "엄마에게 데려다 주겠다"고 하고 동생을 살해했다. 준코도 범행에 가담했다.

  • 7번째 범행(살인교사) : 아야의 입을 막기 위해, 마츠나가는 준코에게 "저 녀석(아야)은 경찰에 잡히면 자백을 할 것 같으니 해치워야 한다"고 꼬드겨 준코에게 살해를 지시했다. 1998년 6월 7일 아야는 준코에게 목이 졸려 살해되었다.


6, 7번째 범행의 경우 아이들을 죽인 것이 특징인데 정상적인 의사표현능력 및 상황판단력이 전무한 3살짜리 아이는 살려준 것과 대조된다. 5살, 10살짜리 아이는 범행을 어느 정도 진술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이제 총 일곱 명이었던 오가타 일가 중 살아있는 사람은 (애초에 마츠나가의 공범격이었던) 준코 혼자 뿐이었다.(...)

다만 같이 동거하던 토라야의 딸은 죽이지 않았고, 범행에도 가담시키지 않았다.

7. 토라야 딸의 탈출과 재감금[편집]

한편, 17살 때 최초로 부친인 토라야와 함께 감금된 후, 몇 년 동안이나 마츠나가에게 잡혀있던 토라야의 딸(상술했듯 이름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은 2002년 1월 30일에 마츠나가의 감시가 잠시 느슨해진 틈을 타 키타큐슈에 살던 토라야의 부모(즉 토라야의 딸에겐 조부모) 집으로 도망쳤다. 그녀는 조부모의 집에서 약 보름 정도 생활하며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국민건강보험에도 가입하는 등 생활의 기반을 쌓아갔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마츠나가와 연애 중이던 그녀의 큰어머니가 그녀의 행방을 마츠나가에게 알렸고, 마츠나가는 바로 조부모의 집에 쳐들어와 그녀를 다시 납치해갔다. 다시 잡혀간 그녀는 전기 고문을 당하거나 펜치로 꼬집히는 등 학대를 당했다. 그러나 위험 인물이라는 게 명백해져 제거해야 하는 상황임에도[11], 지금까지의 행태와 달리 무슨 생각에서인지 마츠나가는 토라야의 딸을 죽이지 않은 채 가둬놓기만 했다.

8. 발각[편집]

2002년 3월 6일, 토라야의 딸이 조부모 집에 몰래 전화를 걸어 자신이 감금된 곳을 알리며 도움을 청했다. 전화를 받은 조부모가 경찰에 신고를 했고 다음 날인 3월 7일, 경찰이 마츠나가와 준코를 체포했다.

체포 당시 마츠나가와 준코는 모든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자신들의 신원도 밝히지 않았으나 준코가 가지고 있던 사진첩으로 이들의 신원이 드러났다. 경찰은 이 사건을 마츠나가와 준코가 토라야의 딸을 감금한 사건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토라야의 딸이 본인의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자백하면서 수사 방향은 살인 사건으로 바뀌었다. 경찰은 살해 현장으로 의심되는 곳의 배관까지 잘라서 수거된 DNA 감정을 의뢰했으나 건진 게 없었다. 마츠나가가 치밀하게도 모든 피해자들의 시신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배관과 타일을 바꿔버렸기 때문이었으며 설령 그것이 아니었더라도 범행 발생부터 발각 시점까지 무려 4년 가까이 지났기 때문에 도무지 물적 증거를 찾아낼 수가 없었던 것. 게다가 마츠나가는 설령 물적 증거가 있다고 해도, 자신이 직접 살해한 것이 아니라고 우길 참이었다.

그런데 준코가 마츠나가를 배신하고 자백을 했다. 준코는 마츠나가의 지시에 의해서 7명이 살해됐고 자신도 그 중 일부에 가담했으며 시신은 모두 바다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비록 물적 증거는 없었으나 오가타 일가가 학대를 받으면서 작성한 사실 확인서나 시체를 토막 내는 데 사용한 톱과 날의 구입일자를 알 수 있는 영수증, 마츠나가가 살던 맨션의 다른 거주자의 증언 등 정황상의 증거들이 차곡차곡 모였다.[12]

마츠나가가 토라야의 딸을 살려둔 이유도 후에 밝혀졌는데, 마츠나가는 토라야의 딸에게 네 명의 아이를 돌보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이 아이들 중 두 명은 마츠나가와 준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고, 나머지 두 아이는 쌍둥이로 다른 여성의 가정불화를 이용해 맡은 아이들이었다. 마츠나가는 이 아이들의 어머니에게 양육비 명목으로 2,500만 엔을 뜯어냈다고 한다. 토라야의 딸은 모든 진상이 드러나면서 마츠나가와 준코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사체유기죄로 형사처벌을 받게 되었는데, 마츠나가는 토라야의 딸이 '설마 빨간줄에 패륜아 낙인까지 찍혀가며 경찰에 진술을 하겠느냐'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 밖의 피해자들로는 마츠나가가 사기죄로 지명수배 되자 마츠나가의 강요로 함께 도피생활을 하던 월드의 전(前) 직원이 있었는데, 이 직원은 학대를 견디다 못해 결국 도망쳐버렸다. 마츠나가의 체포 이후에도 이 직원은 '마츠나가를 다시 대면하기도 싫다'면서 피해 진술을 거부해, 이 직원을 학대한 혐의는 기소되지 못했다.

또한 마츠나가의 동창생 여성도 있는데, 역시 유부녀였던 그녀는 결혼을 미끼로 마츠나가에게 1,160만 엔을 뜯겼다. 그 후 그녀는 1994년 3월 오이타현 벳푸만에서 투신 자살했다. 그러나 이 역시 마츠나가의 타살이라는 주장이 있다. 경찰이 수사했으나 증거를 찾지 못해 기소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녀의 1살 된 딸도 죽었는데, 겉으로 보면 사고사지만 워낙 그 과정이 부자연스러워 피살 가능성이 있는 거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어 기소되지 않았다.

그리고 토라야의 딸이 돌보던 쌍둥이 아이들의 엄마도 있는데, 마츠나가는 이 여성을 풍속점(風俗店)[13]에서 일하게 하면서 양육비 명목으로 2,500만 엔을 뜯어냈다. 중범죄와의 연관성은 전무했고 그녀도 피해 진술을 거부해 이 건도 기소는 되지 않았다.

9. 사건의 수법과 살인 방식[편집]

  • 약점 잡기 : 우선 마츠나가는 교묘한 말로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한 다음, 상대가 자신의 약점을 술술 털어놓게 만들었다. 상대의 약점을 알게 된 마츠나가는 약점을 이용해서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조종할 수 있었고, 돈을 쉽게 뜯어낼 수 있었다. 전형적인 사기꾼의 방식. 마츠나가는 이런 사람을 "자본주"라고 불렀다고 한다. 토요타 마사요시에 의하면, 마츠나가의 자본주가 된 사람들의 특징은 '순수한 성격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사가 풀려있다', '적당히 유복한 집안이다', '아이가 있는 사람이다' 라고 한다.

  • 학대 : 상대의 약점을 잡은 마츠나가는 상대를 학대하기도 했는데, 특히 마츠나가가 즐겨 애용한 학대 수법은 바로 전기 고문이었다. 마츠나가가 이전에 운영하던 회사의 전기공고 출신 직원에게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전기 고문을 했다. 처음엔 아주 약한 전기를 흘려서 찌릿한 느낌을 나게 하는 수준에 불과했으나, 강도를 점점 높이며 피해자를 학대했다. 마츠나가는 이를 "월드" 직원들에게 사용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토라야나 토라야의 딸, 오가타 일가들에게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5살의 유키만이 전기 고문을 피했지만, 10살 아야나 감금 폭행했던 여성의 3살짜리 아이에게까지도 전기 고문을 가했다. 3살짜리 아이에게까지 손을 댄 이유는, 그 아이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복종하는 효과를 노리기 위해 자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 각서 : 마츠나가는 피해자들에게 약점을 잡거나 학대를 가해 갖가지 각서를 쓰게 만들었다. 각서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는데, 첫째는 상대방이 마츠나가를 위해 훗날 뭔가를 하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으로, 그 내용의 대다수는 마츠나가의 생트집을 실행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피해자가 과거의 약점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마츠나가는 이를 이용해서 피해자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구실로 삼았다. 셋째는 마츠나가가 피해자들에게 뭔가를 해주겠다는 내용의 각서로, 상대방에게 이 각서의 내용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믿게 만들었다. 또한 각서의 내용에는 '이 각서는 절대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작성했다' 라는 내용이 첨가되어 있거나, 문서의 내용을 낭독하는 것을 테이프에 녹음해두기까지 했다. 마츠나가는 재판 과정에서 이 점을 언급하며 각서들은 모두 평온한 과정에서 작성된 거라고 우겼으나, 이미 돌아가는 꼴을 다 파악한 재판부는 당연히 이를 믿지 않았다.

  • 생활 제한 규칙 : 마츠나가는 약점을 잡거나 학대를 하여 피해자들로 하여금 생활을 제한하는 규칙을 지키게 강요했다. 이 규칙이란 게 얼마나 정신이 나간 것들인가 하면 추운 겨울에도 얇은 한 겹 옷만 입게 했으며, 본인의 기분이 나쁘면 아예 윗옷을 모두 벗도록 하는 짓거리도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옷을 딱 한 벌만 주고, 세탁도 가끔씩만 하도록 했다. 또한 집안을 다닐 때도 방과 방 사이로 다니지 못하게 하는가 하면, 방 사이를 다닐 때에는 포복전진을 의무화시키는 막장 행각을 벌였다.

잠을 잘 때는 이불 없이 부엌에 신문지를 깔고 자야 했고, 코골이가 심하면 자물쇠를 채운 욕실에 가두었다. 그나마도 잘 수 있는 시간은 한낮의 서너 시간에 불과했다고 한다. 마츠나가가 허락할 때만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며, 식사는 말 그대로 막장의 극치. 하루 한 번이나 잘해야 두 번 정도 마루에 신문지를 깔고 거지처럼 먹어야 했다. 제한 시간은 7~15분 정도. 다른 피해자가 감시자로서 타이머를 재야만 했다. 식사의 내용은 매우 불량해서, 배달 음식이나 편의점에서 사오는 간단한 것들이었다. 그 밖에도 화장실을 갈 때도 마츠나가의 허락하에 다른 이성 피해자가 보는 앞에서 배설을 해야 했으며, 마츠나가의 허락하에서만 모든 물건을 쓸 수 있었고, 외출도 극도로 제한되어 외출시에는 마츠나가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고해야 했다고 한다. 마츠나가는 지리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경과시간을 미리 계산한 뒤에, 모처에 언제까지 도착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이런 규칙을 위반하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마츠나가의 학대와 고문이었다.

마츠나가는 가끔씩 좋은 음식점에서 고가의 음식 배달을 시키거나 외식을 시키는 걸로 피해자들이 행복감을 느끼게 해 본인에게 더욱 복종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혹시나 여기까지만 읽고 마츠나가가 사회적 출세도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상당한 수준의 지능과 지혜, 혹은 본능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 착각하는 위키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츠나가의 수법은, 정상인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낮은 지능을 가진 피해자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한 후 약간의 배상을 함으로서 더더욱 복종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폭군의 우민통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마츠나가가 피해자들에게 가한 생활 통제 방식은, 전형적인 사이비 종교들이 신도들을 통제하는 방법인 BITE 모델(Behavior Control, Information Control, Thought Control, Emotion Control)과도 유사한 방식이다.

보통 이런 흉악한 연쇄살인범이 '천재 수준의 지능'을 가졌다 하며 놀라워하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굉장히 많은데, 이런 식으로 사람을 말로 현혹해 범죄로 이끌어 가는 범죄자들은 절대로 정상적인 사람들을 타겟으로 하지 못한다. 이들이 늘어놓는 말들은 청산유수에 달변이어서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차분히 되짚어 보면 앞뒤가 안 맞는 말들이 많고 방금 전에 본인이 내뱉은 말을 얼마 안 가 번복하는 등 허술한 점도 많다[14]. 말에 진실성과 논리가 없는 것은 '사이코패스인 사기꾼[15]'들의 주된 특징이기도 한데, 마츠나가 또한 재판을 받을 때 사망한 피해자들에게 혐의를 미루려는 목적에서 앞뒤가 안 맞는 거짓말들을 늘어놓고 본인의 진술을 법정에서 번복하는 모습들을 보인 바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설령 마츠나가와 같은 범죄자가 접근한다 하여도 말도 섞지 않거나 경찰에 신고를 했을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도를 아십니까 부류의 선교에 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의 순수하다 못해 멍청한 사람들은 그 선교행위에 넘어가 사이비 종교에 빠진 끝에 인생을 망친다. 그런 정도의 판단력도 없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술했듯이 피해자들의 유형은 '순수하지만 약간 나사가 풀려있'는 사람들이었으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제대로 된 판단력과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저 지경이 되기 전에 도주를 하거나 경찰서를 찾는다. [16]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이 사건의 피해자들이면서 가해자가 된 사람들처럼 마츠나가의 말도 안 되는 강요를 끝까지 따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츠나가에게 보통 사람과 다른 특출난 재능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줄 호구를 알아보는 감각과 애저녁에 인간이길 포기한 파렴치함일 것이다.

  • 마인드 컨트롤 : 우선 마츠나가를 정점에 두고 피해자들을 서열화시켰다. 전기 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최저의 인간이라고 규정했고, 사소한 이유로도 마츠나가의 기분 내키는 대로 전기 고문이 가해졌다. 또한 마츠나가는 피해자들에게 다른 피해자를 욕하거나 비방을 하면 피해자를 칭찬하며 상위의 인간이 되는 것처럼 각인시켜서 서로를 비방하고 욕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오가타 일가가 마츠나가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이유였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고, 서로 일치해서 마츠나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마츠나가의 인정을 받는 상위의 인간이 되려고 서로 발버둥쳤다. 누군가가 하위의 인간으로 떨어지면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안도했고, 마츠나가의 관심을 얻으려고 그에게 절대복종했다. 이쯤 되면 서로가 가족인지 원수인지조차도 분간이 안 될 정도. 세간이 경악한 이유가 '어떻게 오가타 일가는 서로를 아무렇지도 않게 살해하고 시체를 토막 낼 수 있었을까'였는데,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결국 오가타 일가는 마츠나가에게 관심을 받고 인정받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버려서, 이미 자신들이 가족이라는 사실은 완전히 잊혀져 머릿속에서 싹 사라진 상태였다는 설명. 이 때문에 마츠나가는 자신은 직접 손대지 않고 살인과 시체 처리를 손쉽게 할 수 있었다.

  • 살인과 시체 처리 : 마츠나가는 철저하게 자신이 직접 손을 대지 않고 피해자들끼리 서로를 살해하고 시체를 처리하도록 유도했다. 이때의 유도방식은 거의 이아고의 현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살인을 지시할 때도 명확한 언어로 하지 않고, 피해자가 저 사람은 죽일 수밖에 없겠다라는 말이 나오도록 유도해서, 후에 재판에서 검찰이 정확한 사실 파악을 못하게 했다. 사체는 훼손한 뒤 공중 화장실 등에 버리거나 바다에 던졌다. 마츠나가는 이런 시체 처리 방식을 "나만의 오리지널. 해산물 조림을 만드는 것을 응용했다"라고 태연히 진술할 정도. 또한 배관과 타일을 교체하도록 해 증거를 인멸했다. 결국 이 사건은 직접 증거 없이 범인들의 진술과 정황 증거에만 의존해야 했다.

10. 재판 과정[편집]

준코는 토라야와 자기 아버지의 피살에 상해치사를 주장했고 조카 남매에 대해서는 살인 혐의를 인정했으며 3건의 살인은 마츠나가의 지시에 의해 이미 피살된 사람들이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마츠나가는 7명의 죽음에 대해서 무죄를 주장했다. 일본 사법체계상 범인들이 서로 다른 주장을 펼 때에는 분리심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준코가 '마츠나가 저 인간을 끝까지 지켜보고 싶다'라고 주장해, 병합심리가 계속 진행되었다.

마츠나가는 "토라야와 타카시게의 납치 및 고문에 가담한 것은 사실이지만 살해는 전적으로 준코의 짓이고, 오가타 일가의 죽음은 자신과는 무관하다. 내가 7명을 죽일 동기가 어디 있냐, 나는 토라야와 타카시게의 사망현장 외에는 있지도 않았다, 타카시게의 살해 직전에 아이들은 여관으로 옮겼기 때문에, 아이들은 타카시게의 살해를 보지 못했다" 라면서 살인죄와 상해치사죄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또한 마츠나가는 시즈미와 리에코가 자신과 성적 관계를 맺고 있어서 '모녀지간에 날 두고 싸움을 벌인 결과로, 나는 휘말린 것뿐이다' 라는 어처구니없는 진술도 해 방청객의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마츠나가의 진술 중에는 '타카시게의 회사 설립은 빚이 많아서 무리였다, 무직 상태이던 리에코가 빚을 어떻게 지나, 타카시게의 살해를 목격한 덕에 토라야의 딸이 사건 경위를 소상히 진술한 거다' 라는 등의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도 많아서 본인이 재판 진행 중에 진술을 번복하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또한 7명을 살해한 잔인무도한 범행임에도 태연하게 마치 만담을 하는 듯한 말투로 진술해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고 한다.[17]

1심 재판에 화상회의 방식으로 증언한 토라야의 딸은 "나에게는 마츠나가와 준코가 모두 악마로 보였습니다. 내게 원수를 갚는 길은 저 둘에게 사형이 내려지는 것 뿐입니다"라고 진술했고, 1996년부터 1997년 사이에 감금당했다가 탈출했던 여성은 역시 화상회의 방식의 증언을 했지만, 마츠나가가 전기 고문을 가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정신적 충격으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여, 재판장이 잠시 정회(停會)를 선언해야 했다. 재판이 속개된 후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제발 마츠나가를 죽여주세요"라고 겨우 한 마디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리에코의 시어머니이자 카즈야의 어머니 또한 법정에 증인으로 나서서 준코를 노려보면서, "내 손녀가 집에 돌아가게 해달라고 애원할 때, 애까지 낳았다는 네 년은 아무 느낌이 없었느냐"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2005년 3월 2일, 검사는 최후진술로 "선악의 개념이 없는 입안자 마츠나가와 오로지 충실하게 실행한 실행자 준코는 차바퀴의 양쪽 축이라 할 만한 관계로 전락했다. 희대의 연쇄대량살인으로 두 피고의 죄는 일본 범죄사상 최악의 중대한 범죄다. 돈줄로서 이용가치가 없어진 피해자들을 입을 막고 7명을 말살한 귀축(鬼畜)의 소행을 저지른 두 피고인에게는 극형을 가하는 게 마땅하다"라고 하며 두 사람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또한 마츠나가와 준코의 관계를, 채찍질하는 마부와 달리는 말에 비유하기도 했다.

2005년 9월 28일, 1심 재판부인 후쿠오카 지방재판소는 판결로 "마츠나가의 증언은 서로 불일치하며 모순이 많기 때문에, 마츠나가의 지시에 의해서 5명이 살해되고 1명은 직접 살해했으며 1명이 사망[18]한 것이 인정된다. 준코의 경우 마츠나가의 지배에 의해 서로 적대시했던 토라야의 딸의 증언과 그 내용이 일치하며,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의 증언도 기꺼이 하고 있는 점[19], 아버지의 경우는 소생시키려고 했다는 정황이 인정되어 상해치사가 인정되지만, 토라야의 경우는 명백한 살인이다"라고 평가하고, 조카 남매에 대한 살인도 모두 유죄로 인정하여, 두 사람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마츠나가는 항소했고, 준코의 경우는 자신은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다며 판결에 승복하려 했으나, 폭력 및 지배구조의 문제로 인해,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닌 상황에서 마츠나가와 동일하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변호인단의 설득에 항소에 동의했다.

2심에서는 준코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부각되었다. 변호인단은 준코가 가정폭력과 성폭행의 피해자로서 마츠나가에게 복종하게 된 것인 만큼 감형해달라는 논지를 폈다. 이에 호응해 성폭행 피해자 단체에서 준코의 감형을 탄원하는 탄원서가 올라오기도 했다.

2007년 9월 26일, 후쿠오카 고등재판소는 마츠나가에 대해서는 사형의 원심을 유지했지만, 준코는 카즈야가 전직 경찰관으로서 두 건의 살해에 가담한 점, 그리고 폭력으로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닌 점과, 비록 검거된 이후라고는 하지만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자신의 범행을 반성하는 점, 세 건의 살인은 준코가 가담한 것은 아니므로 정신이상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사형을 반드시 선고해야 하는 나가야마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점 등을 들어, 기존 판결을 파기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마츠나가는 다시 항소했고, 준코의 경우는 검찰이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2011년 12월, 일본 최고재판소는 마츠나가와 검찰의 항소 모두를 기각하면서, 마츠나가와 준코의 형이 확정되었다. 최고재판소는 준코에 대해서도 "사형을 생각할 수 있지만, 장기간 학대를 당했다는 점에서 지시에 순응적일 수밖에 없는 심리상태였다는 점과 나가야마 기준상 반드시 사형에 해당하지는 않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물적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수사에 적극 협력해서 진상을 밝히게 된 것으로도 (교화의 여지가 있으므로) 생명을 박탈하여, 사회로부터 영구적으로 격리시킬 이유는 없다"라고 결론 내렸다. 다만 한 최고재판관은 "오가타 준코 피고인의 사정이 딱하다는 점은 인정되며, 모든 것을 피고에게 유리하게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흉악한 범죄의 중대성을 감안한다면, 이런 경우는 안타깝지만 부득이하게 사형을 내릴 수밖에 없다"라고 반대의견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2015년 7월 현재 마츠나가 후토시는 사형이 확정된 상태로 구치소에 수감 중이며, 집행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20] 오가타 준코는 무기징역으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한편 같이 범행에 가담한 토라야의 딸은 알려진 것이 없는데 본인이 모든 걸 털어놓은 이상 사체유기죄로 기소되어 처벌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11. 뒷이야기[편집]

논픽션 작가인 토요타 마사요시는 이 사건을 다룬 논픽션 《사라진 일가》를 집필했다. 평론가 미야자키 아키라미가 이 책을 높게 평가하면서 영화화 되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하기도. 또한 추리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신도 휴우키의 소설 《서로 죽이는 가족》은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사채꾼 우시지마/세뇌하는 남자편》 26~28권에 실린 '세뇌' 편도 이 사건을 소재로 한다.

양상이 조금 다르긴 하나, 우리나라에서도 이 사건을 연상시키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세간에 엄청난 이슈를 불러일으킨 기계교 사기 사건이 바로 그것. 기계교 사기 사건도 희생자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범행을 더 확대하기 전에 잡혔다는 점을 빼면, 교묘한 말로 손대지 않고 가족을 파탄냈다는 점에서 이 사건과 유사하다.

유사한 사건으로 아마가사키 사건 (尼崎事件)이 있는데 아직은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공범 중 하나가 한국계 일본인이다.

『스트로베리 나이트』 시리즈, 『지우』 시리즈로 유명한 혼다 테쓰야가 해당 사건을 모티브로 한 『짐승의 성』을 발표했다. 반응은 살육에 이르는 병보다도 더 끔찍하다는 게 대세.[21] 그런데 작가 왈, 실화가 너무 끔찍해서 소설에서 나온 것도 그 수위를 반 이상 줄인 것이라고... 도가니를 연상케 하는 이야기다.

[1] 사실 이게 그대로 보도됐다면, 가뜩이나 야쿠자 문제로 평이 안 좋은 키타큐슈는 그야말로 범죄 소굴 취급받으며 몰락했을 가능성이 높다.[2] 반대로 마츠나가 측도 오가타 일가는 물론 시즈미 본가의 재산까지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3] 마츠나가가 오른쪽 가슴에 담배로, 오른쪽 허벅지에 핀으로 이름을 새기라 명령했다는 설도 있다.[4] 토라야 쿠미오는 살해가 목적은 아니었다는 것이 마츠나가의 진술이다. 다만 법정에서는 미필적 고의로 살인죄가 인정되었다.[5] 이 글은 마츠나가와 준코의 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한 것이므로,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다.[6] 실제로 이런 사례는 꽤 많이 나타난다. 프랑스의 연쇄살인범 미셸 푸르니레의 아내 같은 경우에도 연쇄살인 행각을 중간에 막을 수도 있었지만, 이미 상습 학대로 인해 정신적으로 장악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결국 그 대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며, 오스트리아에 서식하는 악질 패륜아 요제프 프리츨의 범행이 수십 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족들이 사실상 프리츨의 노예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7] 이건 일본의 가장 큰 문제점들 중 하나인데, 미국 등 다른 서방국가의 경우 범죄자를 엄벌하긴 하지만, 그와 별도로 범죄자 본인의 책임과 가족의 책임을 명확히 구분하고 최소한의 선을 긋는 데다, 범죄가 아닌 다른 문제는 이해해주는 반면, 일본은 범죄자의 잘못, 아니 지적장애나 발달장애, 사회성 부족 등의 못난 면조차도 가족의 불명예인 양 취급하며 사회 전체가 따돌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구미(歐美)에 비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이 같은 가치관이 좀 남아있긴 한데, 일본과는 전통적으로도 비교거리가 못 된다.[8] 준코의 경우 토라야에 대한 살인을 포함해 2번, 6번, 7번 범행에 가담하여 3건의 살인과 1건의 상해치사가 인정.[9] 준코가 살리려 했다고 말했고 마츠나가도 살해 의도를 부인했기에 이 사건만 상해치사로 처리되었다.[10] 진술에 의하면 준코가 등으로 몸을 눌러 붙이는 사이에 카즈야가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한다.[11] 실제로 마츠나가는 오가타 일가의 살해를 목격, 가담한 아야를 증거인멸 목적으로 살해한 바 있다.[12] 준코는 "차라리 감옥 생활이 더 편하다"면서 "교도소는 식사도 할 수 있고, 화장실에도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독서할 시간도 있다"고 말했다.[13] 일본에서는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게를 이렇게 말한다.[14] 사기꾼들의 말이 논리적이지 못한데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달변이라 느끼고 받아들이는 이유는, 커뮤니케이션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피해자를 꼬드기기 위해 자신감 있는 태도와 매력적인 모습을 연출하는데 이러한 비언어적 요소들이 말의 내용보다 더 크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15] 사이코패스라 하면 일반인들은 연쇄살인마나 토막 살인만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사기범들의 수가 훨씬 많다. 유영철이나 강호순과 같은 연쇄살인마 사이코패스들은 신문지상에서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지만, 사기 범죄를 저지르는 사이코패스들은 현실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유형이다.[16] 철저히 감시했다지만 용기만 냈다면(마츠나가가 외출을 허락해주었을 때라든가) 얼마든지 뛰쳐나가거나 신고를 할 수 있었다. 마침내 이 사건을 끝낸 토라야의 딸처럼 말이다.[17] 이는 사이코패스의 특성이기도 하다. 다만 사이코패스도 어린아이를 죽이는 일은 거의 없는데, 물론 이것은 거부감을 느껴서가 아니라, 어차피 신고나 증언을 해봐야 신빙성이 없어서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18] 상해치사.[19] 이것이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다.[20] 다만 일본의 사형제도는 죄질이나 확정 시간대와 무관하게 무작위로 집행 명령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아서, 의외로 빨리 집행될 수도 있긴 하다. 대표적인 예로 묻지마 살인범 가나가와 마사히로의 경우 불과 3년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21] 참고로 살육에 이르는 병은 19세 미만 구독불가 딱지까지 받았는데 이 책은 안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