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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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盧 / Pro Roh Moo-Hyu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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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사람이 먼저다 중[2]

유시민, JTBC 썰전[3] 도중. 전원책의 질문에 대한 답

1. 개요2. 이념3. 정의
3.1. 정의의 다양성에 대한 설명
4. 친노의 역사5. 현재 시점의 친노 분류
5.1. 친노 직계
5.1.1. 부산팀5.1.2. 금강팀
5.1.2.1. 이해찬
5.2. 친문5.3. 범친노계
5.3.1. 정세균5.3.2. 정의당 참여계5.3.3. 박원순5.3.4. 더불어민주당의 당내 진보 강경파5.3.5. 더불어민주당의 진보성향 전ㆍ현직 기초자치단체장
5.4. 넓은 의미로서의 친노 (또는 비노)
6. 분류의 문제점7. 비판과 반론8. 친노패권 논란
8.1. 친노패권이 존재한다8.2. 친노패권은 존재하지 않는다8.3. 모든 정치계파는 패권을 추구한다
9. 친노의 종류10. 정치 외 친노 인사11. 관련 문서 및 정보

1. 개요[편집]

동교동계와 함께 민주당계 정당의 거대한 기둥

노무현대통령의 정치적 이념 계승을 표방하거나 대통령 시절 측근이었던 정치세력을 의미하는 말이다. 옛 상도동계, 동교동계 같이 굳이 표현한다면 봉하마을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의 의미는, 단순히 계파가 아닌 정파의 의미가 강하다. 이후 범위가 점점 확대되어 일각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직접적인 인연이 없더라도 고인을 우호적으로 평가하거나 혹은 친노계와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범친노'라는 말로 포함시키고 있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한명숙 전 국무총리, 유시민 전 장관,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이 정파의 리더격인 인물로 불린다. 친노의 반댓말로 사용되는 단어는 비노. 과거 반노(反盧)도 사용됐으나, 지금은 이전만큼 쓰이지는 않는다.

2000년대 초에 친노 성향의 정치인들은 개혁국민정당새천년민주당에 있다가 2003년 말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며 옮겨갔다. 그러나, 참여정부 말기에는 '폐족'이란 말까지 붙으면서 몰락하였으나[4]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2010년 6.2 지방선거 등을 거치면서 다시 부활하게 된다.

2010년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등이 국민참여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또한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참여당유시민 후보는 경기도지사에 도전했다가 낙선했지만 민주당의 친노계 인사들인 안희정 통합민주당 최고위원과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각각 충남도지사와 강원도지사에 당선되었으며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참패할 것이라는 예측을 뒤엎고 개표 막판까지 오세훈 시장을 제치고 앞서 나가다가 강남 3구의 몰표로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1.6% 간발의 차이로 낙선했다.[5]

국민참여당은 이후에 치러진 재보선에서 원내 진출에 실패하고 난 뒤 진보대통합에 참여하여 민주노동당진보신당 탈당파인 새진보통합연대와 합당하여 통합진보당을 결성했다. 그러나 2012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의 여파로 정의당으로 옮겨갔다. 한편, 통합진보당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재정통일부 장관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교육감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참여계의 수장이었던 유시민이 정계은퇴를 한 이후, 참여당 출신의 친노계 인사들은 민주당에 대부분 복당하거나 정계를 떠나 정의당의 친노 색채가 약해졌다. 다만 정의당 내 친노, 소위 참여계 색깔이 많이 빠졌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조금 있을 수도 있다.

2012년 4월 총선과 2012년 12월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이 패배하고, 새정치연합과의 통합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된 이후로는 과거에 비해서 세력이 많이 약해졌으나, 여전히 비주류와 복잡미묘한 갈등을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2015년 2월 8일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가 문재인이 되면서, 그 해 7월 17일까지 두 원내 야당의 당대표(새정연 - 문재인, 정의당 - 천호선[6])가 모두 친노 계열이 되었다. 하지만, 문재인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꾸고, 전권을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7]에게 일임하면서 소위 친노계는 현재 2선으로 물러나 있는 상태다.

2016년 총선에서 문재인 대표의 당권을 외부영입 인사의 김종인 대표와 이종걸, 박영선 등 비주류에게 양보하고 총선 승리를 도왔으며 더불어민주당 내의 계파 중에서 가장 많은 의원을 당선시켜 다시 국회로 진입시키는데 성공했다. 호남/영남/충청/수도권/강원도 할 것 없이 전국 단위로 의원을 당선시킴으로써 오랜시절부터 김대중 前 대통령의 꿈이었던 전국정당으로 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물론 이 결과를 친노 세력 혼자서 만든 것은 아니지만[8] 김대중 前 대통령과 노무현 前 대통령의 숙원이었던 지역주의 타파를 물려받아 끊임없이 노력해왔던 친노세력의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대신 야권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이였던 광주/전라에서 어느 정도 민심을 잃었다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9]

이명박 정부 시절, 박연차 게이트로 인해 노무현이 연루되고, 이후 이명박 정부가 친박 계열을 당에서 완전히 몰아낸 다음 친이계 전체로 당을 장악하는 데 실패하고, 2008년 광우병 파동 등으로 지지율이 감소하면서 그 대안으로 박연차 게이트로 인해 연루된 노무현을 트집잡아서 공격했다는 비판이 있어서 대체적으로 현재도 이명박 前 대통령에 대해서는 매우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 친노와 친문 지지층 사이에서는 집권하면 박근혜는 물론이고 이명박도 구속해서 감옥으로 보내야한다는 말도 심심치않게 나올 정도다.##[11] 언론 역시 '기계적 중립'이라는 구실로 좌우 가리지 않고 노무현과 친노 세력을 파멸시키고 보수 세력에게는 20대 총선까지 제대로된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안철수를 더 부각시켜서 문재인을 낙선시키려 했다고 여기기에 반감이 심하다. 이명박에 대한 구속 수사 가능성이 높아지는데도 노무현만큼 '적극적인' 취재를 하지 않는 기자들을 조롱하기도 한다.# 거기다가 이명박이 실제로 구속 되자, 친노계로 분류 되던 정치인들은 이명박이 구속 되던 밤이나 구속된 다음 날 대부분이 페이스북 등의 SNS에 '이제서야 정의가 구현되었구나!' 하며 매우 환영하는 코멘트를 남기기까지 했다.

19대 대선 이후 대한민국 의전 서열 1위의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과 2위의 국회의장 정세균이 모두 친노계의 인사로 채워진 상황이 됐다. 이에 상당수가 친문으로 들어가게 되고, 거기에 일부 상도동계동교동계가 친문 방계 (범 친문 세력)가 되면서 친노 계파는 발전적으로 흐지부지되어 친노는 정치용어로서는 사장됐다. 물론 추상적인 용어로서는 남아있지만... 친문 세력에 합류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부 이 세상을 하직했거나 아니면 정계에서 완전히 은퇴한 경우다.

2. 이념[편집]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 노무현 前 대통령.#


상기 슬로건과 그 의미하는 바가 그대로 노무현과 친노무현 계열 정치 세력과 그 지지자들의 핵심 이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살펴보면, 이념적으로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사회자유주의를 추구해왔다. 경제적/문화적/정치적 자유주의를 아울러 추구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사회 안전망을 중시하는 것이 친노 세력의 일반적인 정치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당 운영에 있어서는 그들이 선택한 정권의 이름이 참여정부 였던 것처럼 당원과 일반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권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계파 정치를 부정하며, 국회의원직이나 당직을 계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나누는 것을 강력하게 비토하는 편이다.

과거 열린우리당의 당원 참여 축소에 유시민이 강력하게 반발했던 것이나 문재인이 더불어민주당의 대표로서 인터넷 당원 제도를 통해서 시민들의 당원 가입을 훨씬 용이하게 만들고, 당원들이 전당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투표권 행사를 수월하게 도운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계파 정치 타파와 함께 지역주의 타파 또한 핵심적인 가치 중 하나로 삼고 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의 인생 그 자체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전국정당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정의[편집]

  • 노무현의 참여정부 출신 핵심세력.

  • 노무현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지지하고 공유하는 정치세력.

3.1. 정의의 다양성에 대한 설명 [편집]

초기에는 노무현 정권 핵심세력[12]을 일컬었던 '친노'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구분이 모호해질 정도로 다양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노무현과 정치적 스펙트럼을 공유하는 정치적 세력으로 정의할 경우, 스스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고 말한 국민의당까지 포함하고, 문재인을 위시한 더불어민주당 당권파를 정의라고 인정한다고 해도 이 상황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를 뿐더러(...) 아직도 참여정부에 참여한 인사들을 일컫는 용어로도 자주 사용되고, 정의당참여계라는 반례도 존재한다.

"노무현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그의 정치적 후계자 집단과 전국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정치세력 및 그의 동맹세력을 지지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그 동맹세력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이냐에 따라서 사람마다 보는 범주가 달라지고 이 범위는 좁게 보면 친문이지만 넓게 보면 더불어민주당 전체로 볼 수 있으며 심지어 더 확장하면 국민의당까지 동맹세력으로 포함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공식적인 친노라는 집단을 이루는 성질 자체는 희미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단체활동을 벌이고 노무현 지지 정치인들과 친노 시민단체들이 단결하여 활동, 시위, 집회, 기념식 등을 하기에, 친노 세력을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다.

4. 친노의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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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재 시점의 친노 분류[편집]

5.1. 친노 직계[편집]

노무현 의원실, 참여정부, 대통령 비서실 출신으로 참여정부 핵심 세력의 일부였으며, 노무현 前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졌던 기간에도 참여정부를 지지했고, 대부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에 참여한 어떤 기준에서도 모두가 친노로 인정하는 인물들이다.

보통 문재인 대통령, 안희정충청남도지사, 이광재[13]강원도지사, 한명숙 前 총리, 이해찬 前 총리[14], 김경수 경상남도지사 등을 여기에 포함시킨다.

다만 이런 분류는 호사가들이 주로 하는 말이지, 그들이 직접 나서서 자신들을 친노 직계라고 지칭하는 경우는 드물다.

유시민의 분류[15]에 따르면 부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인물들(), 국회의원 시절부터 함께 한 인물(), 대선국면부터 함께 한 인물(유시민, 문성근 등 개혁국민정당 출신등)로도 나눌 수 있다고 한다. [16] 그래서, 유시민은 스스로 자원봉사자라고 이야기한다.

대체적으로 친노직계는 부산팀이랑 금강팀으로 분류 되는데, 두팀이 뿌리가 다르기 때문에, 참여정부 초부터 가벼운 충돌이 있었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경선 이후로 부산팀은 친문과 금강팀은 안희정계로 재편되었고, 몇몇 의원은 팀을 옮기거나, 이탈한 의원도 일부 있다.

하지만 안희정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 이후 안희정계가 와해되면서, 일부 친문으로 옮긴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계를 은퇴했다.

5.1.1. 부산팀[편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를 했던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말한다. 원래는 그룹 형태가 아니었으나, 2002년 대선때 문재인을 중심으로 부산선거대책위원회가 생기면서 팀이 형성됐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당계 정당에서 처음으로 영남권(정확히는 PK권) 대선 후보가 되었던 경력 때문에, 영남권 특히 부울경에서 활동하는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을 친노 부산팀으로 포함하기도 한다.[17]

대표적인 인물으론 문재인 대통령, 최인호 의원, 이호철 전 민정수석비서관, 김정길 前 장관[18], 송인배 정무비서관,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 최도술 전 비서관 등이 있다.

사실상 '친문'계파로 이어지는 핵심 라인이다. 부울경꼬마민주당 시절부터 노무현의 정치적 도전지역이었으며 문재인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내에 입성한 지역구도 이 지역이고, 참여정부 대통령 비서실장 문재인 직속의 비서관 출신 인사들이 모조리 투입되어 전면에 나서서 공략한 지역이다. 결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재호, 전재수, 김경수, 최인호 등이 당선되면서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끈 주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5.1.2. 금강팀[편집]

1993년에 노무현 대통령에 당시 정치적 파트너들이 조직한 싱크탱크인 지방자치실무연구원 모임의 후신, 해당 사무실이 있던 여의도의 금강빌딩 이름을 따서 일명 금강팀이라고도 불린다.

이 금강팀은 문재인 등을 필두로 한 부산계 친노 그룹과는 뿌리가 다르기 때문에, 당시 금강팀과 부산팀의 각각 후신인 안희정계와 친문계는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차이점이 있다. 러프한 표현으로 부산팀은 정치인 노무현의 동네친구, 금강팀은 직장동료에 가깝다.

대표적인 인물은 소위 좌희정 우광재라 불렸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19],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그외 서갑원 전 의원, 백원우 현 민정비서관, 염동연 전 의원, 김병준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이강철 전시민사회수석등이 있다.

정치적 실무를 이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떠안은 만큼 그에 따른 노무현의 정치적 오물을 뒤집어쓴 역할도 상대적으로 금강팀쪽이 더 많이 했고 그런 이유로 정작 참여정부시절때 안희정, 염동연등 금강팀 인사들은 구속되거나 공직을 맡지 못하는 등의 부침이 있었고, 그럼에도 노무현 사후에도 정치권에 신용을 얻어 친노 딱지를 달고 오래 살아남았다.[20]

금강팀은 참여정부 이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안희정, 이광재가 도지사로 당선되면서 당내 입지를 키웠고, 이후 민주통합당 18대 대선 경선때 김두관을 지지했다.[21] 다만 팀에 대표주자였던 이광재, 서갑원이 각각 도지사, 의원직을 상실해, 기둥이 안희정 한명만 남으면서 친안희정계파로 이어진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충청대망론의 유력주자로 손꼽혔던 만큼 충청권 전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세종특별자치시가 건설되게 된 계기가 노무현의 대선 공약이었고, 참여정부가 주도해서 만든 도시이니만큼 충청권은 친노의 두 번째 근거지로 손꼽힐 수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충청권 호각지세를 이끌면서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를 이끌어 낸 주역 중 한 명이었으나...

2018년, 성범죄로 몰락해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아 안희정계가 와해되면서, 일부 인물은 사실상 친문으로 계파를 옮겼고, 나머지는 대부분 정계를 은퇴했다. 김병준처럼 자유한국당으로 간 경우도 있다.

5.1.2.1. 이해찬[편집]

다만, 이해찬의 경우는 분명히 세종특별자치시 건설을 주도하면서 현역 의원으로 재임 중이기까지 한 충청권의 거물인사인 데다 더 이상 의심할 여지도 전혀 없는 친노 직계로 분류되기까지 하지만 굳이 친노금강팀으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이해찬도 한때는 엄연한 대권주자급이었고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노무현 前 대통령보다도 정치적 위상이 커서 친노로 불리기에는 너무 거물급이라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래서, 이해찬을 친노금강팀에 속한다고 지칭하는 것은 그저 실례가 될 뿐이다.

이해찬은 김대중 前 대통령의 평민당 시절부터 정계입문을 했기 때문에 문재인이나 안희정보다도 까마득한 대선배이고 정치 경력부터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훨씬 크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치 초년생 시절의 유시민 前 보건복지부 장관도 이해찬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정계입문을 했다.[22]

현재는 문재인이 스스로 친노계의 수장으로서 노무현 정신을 이어갈 후계자 역할을 도맡아하고 있지만, 오히려 문재인이나 안희정을 넘어서 친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실질적인 정신적 지주는 이해찬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문재인은 국회의원 1선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장관급)출신이고 안희정은 재선에 성공한 충남도지사이지만 이해찬은 실세 국무총리 + 무려 7선 의원이다.

물론, 이해찬은 친노 세력에서 굳이 스스로 계파를 만들지 않더라도 누구나 인정하는 친노계의 리더이자 수장으로서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사실상 친노계의 실질적인 수장은 문재인이해찬 2명이 존재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 문재인을 정계로 데려온 사람이 이해찬이며, 이해찬을 선배로 존경하면서 깍듯하게 리더로 인정해준다. 노무현참여정부김대중 前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져서 내려온 김대중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해찬은 김대중의 평민당 시절부터 영입된 인사였기 때문이다.

5.2. 친문[편집]

원래는 친노의 하위 분파였으나, 더불어민주당 창당 이후, 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영입한 인사들과 기존 친노 인사들 중 일부가 합쳐져 독자적 색채를 가진 새로운 계파색을 가지게 됨에 따라 분리되었다. 해당 항목 참조.

5.3. 범친노계[편집]

친노 직계를 제외하고도 다양한 친노 계파가 존재하며, 이를 통칭 범친노라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된 직후 민주당(2008년), 국민참여당, 자유선진당[23], 재야 활동으로 세력이 나뉘면서 단일 세력으로 모이지 않았고, 통합민주당에서 친노직계와 우호적으로 평가받는 인사들이 대거 이 범주에 분류되게 된다. 국민의당이 창당된 현재 더불어민주당에서 친노 직계의 동맹자 역할을 하고 있는것이 대부분이나, 예외도 있다. 또한 천신정중 천정배와 정동영은 비노계로 꼽히나, 신기남은 친노-범친문계 인물이라는 차이점이 있다.[24]

5.3.1. 정세균[편집]

범친노 최대계파. MB정부 시절에는 친노 최대계파였다. 참여정부 말기 친노의 퇴조속에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많은 수의 친노 인사들이 불출마하거나 공천에서 배제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열린우리당의 압승의 영향으로 다수의 친노 인사(한명숙, 이광재 등)들이 정계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이 시기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2008년)에 모두 잔류하며 원내에 남은 친노 인사들과 중도세력의 수장이 된 것이 정세균이며, 이것이 정세균계의 유래.

또한 정세균은 친노 중진들 중 호남에 지역기반을 둔 드문 사례이기도 했다. 정세균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호남의 지역구(무주, 진안, 장수)에서 출마했으며, 이에 따라 호남의 친노 인사들을 정세균계로 분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세균 본인이 서울 종로구로 지역구를 옮김에 따라 호남에서의 영향력은 감소한 대신에 수도권에서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계파수장 정세균 본인이 친노직계로 분류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인물[25]인지라 친노직계에 가장 우호적이고 협조적인 동맹자로 분류되는 일이 잦다. 그러면서도, 정세균의 넓은 인망을 갖고 있어서 비노계에서도 인물평가가 가장 좋은 친노계에 속한다. 결국, 정세균은 여야를 막론하고 넓은 인망을 인정받고 20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으로 재직했었다.[26][27]

그러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호남 전역이 국민의당에게 넘어감에 따라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수도권에서의 영향력도 역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과정의 컷오프 등에 의해 많은 타격을 입기도 했다. 다만, 이것은 당연히 친노계의 탓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부터 워낙 숫자가 압도적이라서 범친노 최대계파의 자리는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호남 탈환을 위해서 노력하는 상황에서 호남 지역의 실질적인 수장이 이끄는 계파라는 점 탓에 더욱 큰 역할을 맡을 여지가 있다.

다만, 수장격인 정세균 의원은 6선에 성공하고나서 20대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면서 더불어민주당에서 자리를 비운 상태라서 당 내에서 큰 영향력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존부터 우호적이었던 친문계이나, 486그룹, 민평련계와 연대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보이지만 정세균은 친문계와도 우호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비노계와 범친노계를 통합할 수 있는 매우 위상이 높은 인물로 봐도 부족하지 않다.

단, 정세균 개인의 경우 정치 행보 및 노무현과의 관계 특성상, 친노 직계에 분류된다는 의견도 많다.

5.3.2. 정의당 참여계[편집]

유시민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끄는 개혁국민정당에서 시작하여 열린우리당을 거쳐 국민참여당을 창당하여 현재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세력. 유시민 前 보건복지부 장관과 천호선 前 정의당 대표 그리고 참여정부 출신으로 정의당 창당 후 참여한 김종대 의원이 리더격이다. 자세한 것은 참여계 항목 참고.

친노의 일원으로 참여계는 특이한 특징을 지니는데, 그것은 진성당원제에 대한 강력한 지지이다. 참여계를 제외한 친노는 사실 진성당원제에 별 관심이 없는 편이나, 진성당원제를 추구했던 개혁국민정당의 영향으로 유시민의 참여계는 진성당원제를 지지했으며, 열린우리당 시절에도 진성당원제를 강력히 요구했던 집단이다.

사실 국민참여당 시기 다른 친노들과 사회, 경제적 이슈에서 비슷한 지향점을 지녔으며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과는 거리가 멀었던 참여계가 현재 정의당의 일원이 된 것도 유시민 개인의 정치적 행보를 별도로 하면 진성당원제에 대한 지지가 핵심적이었다.

하지만, 진보정당운동의 전통에 따라 정의당 당내에서는 진성당원제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정의당 내에서는 계파의 특징으로는 분류되지 않는다. 친노의 일원으로의 특징인 셈이다.

5.3.3. 박원순[편집]

서울특별시장 박원순을 지지하는 계파다. 대표적인 직계인사로는 기동민이 있다. 본래 박원순이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을 도와준 안철수의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에 안철수와 동맹을 맺는 방향으로 추측되었으나, 안철수의 민주당 입당이 매우 늦어지면서 전혀 다른 계파에 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박원순의 시민사회계 경력이 엄청난 탓에 시민사회계 인사들의 영향력이 크다. 그래서 국민의당 분당에 반대했으며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 시점에서는 친노의 일원으로 분류되는 일이 잦으나, 박원순이 대권주자로 부각되면서 떨어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사실상 범친노계라고 봐도 부족하지 않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물론, 문재인 전 대표나 안희정 충남지사와 같이 경선 레이스에 나선다면 서로서로 적당히 네거티브를 하지 않고 정책으로서 평가하고 정당하게 승부를 보자는 룰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박 시장이 안철수 의원처럼 친노 진영이나 친문 진영을 대놓고 적대시할 이유도 없다.

우선 양쪽 사이에 감정의 골이 생길 만한 일이 일어난 적이 없고, 박원순 시장 본인도 노무현 거리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등 친노 세력과 그 지지자들에게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박원순 시장이 처음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되었을 때 가장 큰 승리 요인은 안철수 당시 교수와의 깔끔한 단일화와 반이명박 정서였지만 친노 진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도움도 컸었다고 전해진다.

애초부터, 박 시장도 스스로 친노를 자처할 정도로 잘 지내고 있는 데다가 친노인 듯 친노 아닌 친노 같은 너어 1987년 노무현 前 대통령이 대우조선 노동자들을 변호하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감옥살이를 했던 시절에 직접 그의 변호인을 맡아서 도와줬던 인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탄핵정국이 다이나믹하게 전개가 되면서 박원순의 대권후보 지지율은 너무 떨어지게 되었다. 결국, 친문계를 상대로 네거티브 전략을 꺼내들자 친문성향 당원들이 배신감을 크게 느끼면서 좋은 평가를 많이 깎아먹게 되었다.

결국, 박원순은 더불어민주당의 대권 경선도 들어가기 이전에 스스로 리타이어를 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 과정에서 친노계와 어느 정도 갈등의 골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지만 당분간은 은연자중할 가능성이 높아보이며 대립각을 세우지 않은 채 적대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긴 하다. 게다가, 박원순계의 의원들도 문재인 캠프로 들어오는 상황이며 문재인과 박원순은 같은 사법연수원 동기생으로 사적으로도 매우 친한 사이라서 그렇다.

현재로서는 박원순의 행보도 그렇고, 박원순이 예전부터 강한 친노 성향을 보여왔고[28], 김대중-노무현 시절부터 기용돼던 인사인 기동민까지 박원순 직계로 분류돼면서 범친노계로 분류하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5.3.4. 더불어민주당의 당내 진보 강경파[편집]

이 그룹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 후보들로 국회에 입성한 의원들이 주를 이룬다. 당시 민주통합당의 당대표가 친노인사였던 한명숙 전 총리라 참여정부와 큰 연관이 없거나, 연관이 있어도 먼 변방에 있었던 사람들이었는데도 친노 그룹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노무현과의 관계설정만 두고 보자면 '친노무현계'라는 이름이 가장 어울리지 않는 그룹 중의 하나다. 특히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 의원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보적 정책은 재해석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하긴 하지만 그의 보수적 정책에 대해선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친노의 감성을 공유하는 것이지, 통상적으로 말하는 계파적인 의미에서는 노무현과 관계가 없다. 다만, 2016년 현재 대부분이 친문계가 주류라서 친노계를 지지자하는 사람들이 선호하기 때문에 쉽게 친노로 분류되는 것이다.

18대 국회의 민주당에서 가장 진보적인 계파가 전통적인 진보파였던 천정배계, 김근태/386 계, 2009년 이후 진보로 급선회한 정동영의 영향을 받아 진보파가 된 정동영계였으며 친노의 경우 사실 손학규계와 비교해서도 별달리 진보적이지 않은 가장 미온적인 계파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29] 상당한 아이러니. 이 인사 중 상당수는 실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천정배정동영, 혹은 386 운동권 계의 영향으로 공천된 편이며, 천정배나 정동영이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내진입에 성공했다면 가장 강경한 비노에 속하는 천정배계나 정동영계에 속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계파는 상대적으로 진보성향이 뚜렷한 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보수적 정책은 비판하면서도 진보적 정책은 재해석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진보 정당들과 차이를 보이지만 말이다.

현직의원으로는 신경민 [30], 진선미[31]의원이 있으며, 전직 국회의원으로는 김광진, 김용익[32], 장하나 의원[33], 김기식[34] 의원 같은 19대 비례대표 의원들이 이 분류 그룹에 포함되며, 따져보자면 정청래 前 의원도 포함된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장으로는 은수미 성남시장이 있다.[35]

사실, 정청래는 과거 정동영계에 속했지만, 이제는 별로 의미도 없어졌고 본인이 특정한 계파에 속한다는 사실을 매우 싫어하고 있다. 정청래 의원 특유의 성격[36]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5.3.5. 더불어민주당의 진보성향 전ㆍ현직 기초자치단체장[편집]

김성환 의원[37], 최성 前 고양시장, 김영배 정책조정 비서관[38] 등이 있다. 진보강경성향 의원들과 달리, 대부분 2000년대 초중반 일찍부터 민주당계 정당에 참여해 온 점이 차이가 있다.

이들의 정치 성향은 진보 강경파 의원들보다는 온건하며, 진보 성향을 표방하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평균 수준의 포지션에 위치한다고 평가된다.

5.4. 넓은 의미로서의 친노 (또는 비노)[편집]

친노의 계파는 하도 많은 계파와 하도 많은 정치인이 포함되었다 말았다 했다 보니 친노인지 아닌지가 애매한 계파나 정치인들도 굉장히 많다. 애당초 제16대 대통령 선거부터 노무현과 그 동맹자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 용어가 친노이니만큼 친노직계의 동맹자 역시 친노가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기도 하고. 게다가 열린우리당을 거쳐가지 않은 야권 정치인이 드물 지경이라 한때는 정말로 죄다 친노였던 시절이 있기까지 하니, 야권의 거의 모든 계파가 친노인지 아닌지 헷갈릴 여지도 충분하다.

사실 작성 시점에서 친노라는 단어는 여당과 보수 언론은 물론, 야당 내부에서도차 일종의 프레임 및 낙인 효과[39]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아서, 그냥 싫어하거나 자신과 반대편인 야권 정치인을 "너 친노지?"라고 공격하는 용도로 변질되었기 때문에, 이 공격이 아예 통하지 않으며 여야 막론하고 친노가 아니라고 누구나 인정하는 정치인과 그 계파만 비노라고 인정이 가능하다.

5.4.1. 김근태계 & 386 운동권[편집]

학생운동 출신 야권 정치인들의 수장 김근태 전 의원은 제16대 대통령 선거부터 노무현의 확고한 지지자였고, 당연히 친노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참여정부 중후반기에 들어 친노에 비해 뚜렷하게 진보적인 색채를 띈 김근태계 또는 민평련은 친노와 대립하게 되었고 비노에 속하게 된다.

이것은 친노의 몰락 시기에서 뚜렷히 드러나, 제17대 대통령 선거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거치면서 김근태계, 혹은 386계는 확연하게 비노로 분류된다. 그러나 2009년 이후 강경 진보파를 이끌게 된 정동영계와 전통적으로 민주당 내에서 가장 강경한 진보계파였던 천정배계와는 달리, 2010년 이후 진보적인 색채를 띄게 된 친노의 부활 시기에 김근태계, 혹은 386계는 친노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는 김근태 전 의원이 사망한 이후의 19대 국회를 거치면서 더욱 명확해져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더불어민주당내의 386 계열은 대개 친노의 동맹세력으로 분류될 때도 있다. 김근태 전 의원의 사후부터는 민평련계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런 배경 탓인지 친노와 386세대계는 싸잡아묶이는 일이 잦고, 분명히 전혀 다른 별개의 계파임에도 자주 혼동되기도 한다.

그러나, 친노가 당권을 잡지 않았을 때에도 당의 지도부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무조건 민평련계 출신을 친노로 분류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참고로, 386 출신 정치인의 경우 바로 윗 문단인 진보 강경파에 포함되는 정치인이 많다.

민평련 참조.

5.4.2. 정동영계 & 천정배[편집]

민주당계 정당을 통틀어 더불어민주당이재명, 정청래 등과 함께 현존하는 가장 좌파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계파.[40] 천정배참여정부 시절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으로 초강경 진보로 분류되었으며, 한미 FTA에 반대해 장관직을 사임했을 정도로 열린우리당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띄었고 이후에도 이 입장을 고수했다.

정동영의 경우 참여정부시기에는 당 내 보수파에 속했으나, 2009년 이후 입장을 급선회해 근데 당시 적이었던 세균맨도 같이 좌향좌했다는 건 함정이다 민주당계 정당의 인사들 중 가장 좌파적인 인사로 분류되고 있으며, 진보정당으로의 이적까지도 수차례 타진되기도 했다.

김근태계와 같이 제16대 대통령 선거열린우리당 창당까지는 친노의 일원이었고, 친노의 주도세력으로 취급받기도 했으나 참여정부 중후반기에 비노로 이탈했다. 그리고 김근태계와 달리 친노와 확연히 구별되는 진보적 색채 탓에 친노의 부활 이후에도 친노와 강경하게 대립하던 편. 민주통합당 창당 시점에 경제민주화를 가장 강력하게 주창한 계파이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에는 호남계 계파의 속성을 보다 확고히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강경한 진보적 성향을 띄고 있어 안철수김한길새정치민주연합 창당 시점에 가장 당 주류파와 심하게 대립한 계파로, 특히 기초선거 무공천 문제에서 안철수와 정면 충돌해 결국 안철수가 입장을 철회하게 만들기도.[41]

그 결과 안철수, 김한길 지도부에 의해 숙청되다시피하며 천정배정동영은 차례 차례 탈당했으나, 정작 현재는 안철수와 함께 국민의당에 참여하면서(...) 친노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온갖 욕을 먹고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천정배가 광주의 승리를, 정동영이 전북에서의 승리를 견인한 결과 20대 국회에서는 둘 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면서 세력이 죽어있었던 19대 국회와 달리 어느 정도 세력을 회복했다.

문제는 이게 딱히 좌파적이라거나 어째서가 아니고, 지역주의 기반이라는 것이 차이이다. 결국 국민의당은 20대 총선을 통해서, 호남 자민련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지역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는데[42], 천정배와 정동영 역시 지역 득표에서 일익을 한 것이다. 애초에 국민의 당의 포지션이 새누리당 보다는 왼쪽, 더불어 민주당보다는 오른쪽이라는 위치라서 천정배와 정동영의 이전 성향은 발휘될 일이 없었다.

다만 안철수+김한길 계열+舊 친이 계열이 온건보수정당인 바른정당과의 합당을 주도하자, 이에 반발하여 박지원+호남계인사 들과 손을 잡고서 민주평화당으로 분당절차를 밟았다.

5.4.3. 김한길[편집]

열린우리당에서 시작된 김한길 개인의 계파로 당연히 한때는 친노였으나 비노로 바뀐 계파다. 참여정부 말기에 김한길과 같이 움직였던 인사들을 지칭하며, 김한길 본인을 필두로 조배숙, 주승용, 이종걸, 박영선, 강봉균, 김낙순, 노현송, 박상돈, 변재일, 서재관, 양형일, 우제창, 우제항, 이근식, 장경수, 조일현, 최규식 등이 김한길계로 구분되었다.[43]

이후 김한길이 2008년 1월에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와해되었다. 저 중에서 상당수는 다른 비노계열로 옮겨갔다. 이후 특기할 것은 없었으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서 다시 정계로 되돌아온 김한길이 이해찬, 문재인을 필두로 한 친노와 전면대립하면서 비노계의 중심으로 급부상한다. 안철수와 연합해 새정치민주연합을 건립할 시점이 최전성기였지만 재보궐선거의 대패로 인해 몰락한다. 중간 공백기가 있었기에, 일종의 물갈이가 되었는데, 박혜자, 노웅래, 민병두, 김관영, 변재일, 주승용, 이상민 등으로 축소되었다. 다만 김한길계는 좀 미묘하게 구분되는데, 어떻게 구분해도 주승용, 김관영은 포함되지만, 비노계열 인사 중에서 보수적이다 싶으면 김한길 세력으로 묶어버리는 감이 없지 않다.

그래도 국민의당의 창당에 조배숙, 박혜자, 주승용, 김관영 같은 자신의 계파에 속하는 의원들이 [44][45]국민의당으로 같이 옮겨가면서,존재감을 보이나 싶었지만 국민의당이 내홍에 빠지면서 천정배의 편을 들어줬다가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으로 현재는 조금 거시기하게 돼버렸다.

안철수 상임대표와 수도권 단일화를 놓고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다가 안 대표의 주장이 당내 분위기로 굳어졌고, 김한길 전 대표는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망했어요. 물론, 지역구 지지율이 그닥 좋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측면도 크다. 천정배계는 호남에서의 압승을 견인해 승승장구하고 있으나 김한길 전 대표는 수도권 유세에서 그다지 역할을 못 했을 뿐더러 단일화가 없이도 수도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해버리면서 안 대표의 의견이 적중한 것으로 되어버려 입지도 영 좋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김한길은 분당과정에서 안철수를 따라서 바른미래당으로 가버렸으며, 주승용, 김관영도 동참했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에 비노를 대표하는 핵심 계파로 취급받고 있다. 참고로, 더불어민주당에 잔류한 뒤 각종 기이한 행동으로(...) 친노 성향 당원에게 욕을 먹고 있는 이종걸박영선의 경우는 이제는 위상이 김한길보다 훨씬 영향력이 큰 상황이니 더 이상 김한길계라고 찍어서 부르기도 어렵다.

5.4.4. 영남권 비노[편집]

더불어민주당에서 영남권은 친노의 본산이지만, 의외로 비노 인사들도 많다. 경상도에서도 친노로 분류되는 정치인과 당직, 공천권 등을 놓고 경쟁 관계를 형성하는 정치인들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김영춘 의원, 김부겸 의원, 김두관 의원, 조경태 의원[46], 이해성 전 홍보수석[47] 등. 이들의 공통점으로는 친노 직계에 분류되도 이상할 게 없는데도 비노라는 점이다.(...)

독수리 5형제의 일원이었던 김부겸 의원과 김영춘 의원은 참여정부 말기부터 친노와 거리가 먼 정치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부겸의 경우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며 내리 3선을 했던 경기도 군포시를 떠나 새누리당의 심장인 대구에 도전해 계속 낙선하면서 중앙정치와 멀어져서 그렇지, 친노 계열 지지층의 호의를 얻고 있을 뿐, 당내 세력 구도로 치면 줄곧 온건한 비노, 또는 중도 계열로 분류되어 왔다. 부산에서 비슷한 행보를 걸은 김영춘도 마찬가지다.

꼬마민주당 출신인 데다가 지역시민에게 삥뜯겨간 세금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는 전형적인 친노 진보정치인의 행동까지 하지만 그래도 따지고 보면 비노로 분류된다.(...) 물론 이에 대해 "친노행세하면서 비노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장점은 다 가지고 간다고 종편이 안 까서 좋겠네?"라고 냉소하는 사람도 일부 있다.

또한 경기 김포의 김두관 의원[48], 부산 사하구의 조경태 의원은 예전에나 친노로 분류되었지, 더 이상 친노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원조 친노"를 자처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했었던 과거 경력과 본인의 주장을 살펴보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비노로 분류되는 것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쉽게 얘기하면 자신들이 노무현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이지, 지금의 주류 친노는 원래 노무현이 추구하려던 본질과는 멀어진 집단이라는 그런 논리다.

김두관 전 지사는 참여정부의 행정자치부 장관을 맡기도 했었고 노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지역주의 타파'를 소신으로 내걸고 계속 영남권에 도전하는 행보 덕분에 '리틀 노무현'이라 불리며 한때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불렸던 인물이었고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 때 무소속으로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53.5%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과 대립각을 세우며 비노로 분류된 케이스.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하겠다고[49] 어렵게 당선된 경남지사직을 내던져 결과적으로 경남지사직을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에게 안기는 짓을 저질렀고[50], 민주통합당의 대선 경선에서 노무현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문재인 후보에게 지우는 등의 병크로 친노 성향 지지층의 지지를 상실하고 말았다.#

조경태 의원은 2차 꼬마민주당 시절부터 노무현의 최측근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3당 합당 이후 민주당 후보로는 처음으로 부산 지역에서 당선된 그를 두고 '조경태 학습법'을 배워야한다고 칭찬하기도 했으며, 노무현이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 '반노'로 불린 '후보단일화협의회' 의원들에게 공격당했을 때도 그를 끝까지 비호했다.

대연정 파동 당시에도 이 기획을 강력히 옹호하는 등, 영남권 친노와 함께 후술할 '영남 패권주의'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영남권에서의 다선을 통해 지역구 성향을 따라 우경화되기 시작하여, 문재인이 노무현의 후계자로 부상하면서 친노 주류와 대립각을 세웠다, 19대 국회 들어 더욱 당내 의원들과 이질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더 이상 '친노'계로 분류하지 않는다. 게다가, 탈당 이후 그렇게 노무현이 적대시하던 새누리당으로 이적해버림으로써 친노는 물론이고 아예 민주당 쪽과는 깨끗이 관계를 끊어버렸다. 이쯤 되면 친노의 분류 기준에서 노무현은 빼도 될 듯하다 그냥 조경태가 탈친노일 뿐인데?

이해성 전 홍보수석은 참여정부의 첫 번째 홍보수석으로 임명되어 활동한 친노계라 볼 수 있는 인물이다. 다만 특이하게 주류 친노계와 친문계와는 서먹서먹했는지 2016년에는 안희정을 지지하였고, 이후 2017년 초반 안철수를 지지하며 국민의당으로 당적을 옮겼고, 2018년 바른미래당 창당 이후에도 잔류하여 바른미래당 내에서 유일한 친노 정치인으로 꼽힌다.[51] 조경태의 중도 버전

친노 출신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애매하지만 열린우리당 당적으로 17대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강길부, 박명재, 엄용수, 이만기 등도 넓게 보자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52] 참고로 위에 열거된 네 사람은 모두 2008년 이후로 보수정당으로 전향하였다. 박명재는 참여정부 말기에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냈음에도 당을 옮겼다.

5.4.5. 동교동계새천년민주당의 생존자들[편집]

위에서 언급한 친노의 역사를 읽었던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소리야?"라고 기겁할 수밖에 없지만(...) 친노로 분류되기도 한다.

도대체 대북송금 사건 특검으로 투옥되면서 열린우리당 분당의 계기가 되었던, 친노라는 게 말이 되나 싶은 박지원 의원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이해찬과 동맹해 원내대표를 노린 이후 비노성향 지지층들에게 친노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으며[53], 국민의당에 소속된 지금도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거의 최후의 순간까지 국민의당 입당을 거부하며 더불어민주당의 야권 통합을 요구하다가 마지막 순간에야 입당했으며,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유일의 더불어민주당 전라남도 당선자인 이개호 의원이 박지원계로 분류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에 잔류한 추미애 의원이나 설훈 의원은 한술 더 뜨는데, 노무현 탄핵 사태를 주도하며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던 추미애와 최후의 동교동계 인사인 설훈 조차 친노에 속한다고 분류한 기사도 여럿이며, 추미애는 아예 친노직계 핵심 친문에 분류되기도 한다(...)#

사실 추미애는 탄핵 정국 이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인 동지이자 유력한 후계자들 중의 한 명이었는데,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당내 입장 때문에 잔류했다가 친노 계파와 척을 지었고 당내 원로들의 등쌀에 못 이겨서 탄핵 찬성을 하게 되며 친노에게 미운털이 제대로 박히게 되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본인은 추미애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지 않아 정부에 입각시키는 권유(법무부 장관, 환경부 장관)를 하기도 했다.

이렇다보니 추미애의 경우는 친노 계파에는 속하지 않지만 성향은 친노 성향이 강했고, 덕분에 친노라고 부르기에는 거리가 있고 꺼림직했으나 친노 내에서 친문이 떠오르고 외부인사들을 흡수하면서 친노=친문이 아니게 되자 친문으로 분류되었다. 그동안 특정 개인에게 충실했다기 보다 본인이 속한 조직 전체에 충실한 성향을 보여왔기 때문에 추미애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추미애는 친노가 아니냐?"라고 까기라도 한다면 역으로 "추미애는 예전에 노 대통령을 탄핵한 적이 있었는데 어떻게 친노라 부를 수 있는가?"라고 반박하거나, "추미애는 비노인데 당대표에 선거에 나간다."라고 까는 경우에도 "추미애는 문재인이 최고위원에 임명했던 사람인데 왜 비노인가?"라고 모두 반박이 가능해졌다. 게다가, 추미애 본인도 어느 파벌에 속한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데다 계파정치를 싫어하면서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러모로 비노계의 "친노 패권주의를 반대한다"라는 정치 공세가 통하지 않는 인물인 셈이다.

6. 분류의 문제점[편집]

보스가 명확하고 행동대장이 명확해 계파가 비교적 알기 쉽게 정리되는 새누리당[54]과 정의당[55], 동교동계와 달리, 열린우리당 분당 이후 이어온 더불어민주당에서 '친노'의 분류 기준은 지나치게 다양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이는 참여정부의 특징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친노'는 그 규모가 매우 급격하게 확장되다가 축소된 바 있다. 노무현이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주자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노사모로 대표되는 자발적 노무현 지지 세력이 대거 민주당에 입당하였고, 이들은 김대중에 의해 발탁된 새천년민주당 내 개혁성향 정치인과 연합하였다. 또한 이들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이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급격하게 세력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을 지지하거나 참여정부에 참여한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때까지는 친노계라는 계파였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친노계는 유력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분화하게 된다. 정동영계, 김근태계, 김한길계, 천정배계 등이 이렇게 분화됐으며, 이들은 친노의 원 취지보다는 계파성이 뚜렷하다. 그러나 참여정부 말기에는 정권 핵심 세력 중 일부가 지지를 철회[56]하였고, 이 와중에서 범친노는 분열한다. 일부는 완전히 비노로 돌아서고, 또 일부는 시류에 따라 어느 한쪽으로 분류되기 애매한 독립적인 집단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때 각 계파에 소속되지 않거나 남은 인사들이 친노로 불리게 된다. 한명숙, 이해찬[57], 유시민[58]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그리고 6.2 지방선거 이후 또 한 번 변화가 생긴다. 민주당은 기존의 친노와 별 관련없이 이명박정부의 실정과 노대통령과 참여정부 인사들의 정치적 탄압에 분개한 진보적 성향이 강한 당원들을 끌어안기 시작했고[59], 19대 총선에서 이들이 본격적으로 정계 진출, 의정 활동 활약으로 민주통합당에서 주목을 끌게 된다. 그런데 이들은 당내 친분으로는 친노와 가까울지 몰라도, 이념과 정책에서는 참여정부(기존 친노)가 보여준 것보다 훨씬 진보적 성향이 강했다.

이렇게 성향이 차이가 나고 민주당 계파 간 피아 식별, 새누리당 정권의 정치공세 타겟 설정 등 반대파가 그 필요에 따라 친노의 범위를 자기들 멋대로 재설정하면서, 이제는 친노의 정의도 지나치게 다양해져서 엄밀한 구분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른다. 오죽하면 민주당 내에서조차 정확한 친노인사가 누구냐는 말이 나올 정도니.

언론에서 거론되는 명단을 보면 친노 성향의 더불어민주당 주류에 동조하는 다양한 출신의 의원들이 결국 주류에 동조하면 친노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에 반대하여 누구누구는 원래 누구계로 들어왔으니 친노가 아니다라며 순혈친노 논쟁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 친노의 의미가 (보수언론을 포함한)반노진영에서 '빨갱이'와 같은 수준의 단어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야권 지지자 중에선 친노란 단어 자체가 실체 없는 프레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60] 기계적으로 정계입문 인맥만을 잣대로 삼아 분류해보면 노무현 대통령은 애초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영입한 상도동계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은 3당 합당에 반대하면서 뛰쳐나왔지만...

그러나, 친노성향으로 분류되는 한명숙 총리는 노 전대통령보다 더 고령이고 1960년대부터 민주화 운동을 하는 등 정치활동이 더 빠른데다가, 이해찬 의원의 경우는 역시 재야 운동권출신으로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영입되면서 평민당계로 입문했으니 엄밀히 따지면 노무현 대통령이 정계입문을 시켜준 인물들이 아니다.

이 두 정치인은 참여정부에서 실세 총리를 맡았기 때문에 대부분 친노성향으로 분류한다. 또한, 진보성향 야권 지지자들이 정청래가 정동영계 출신이라서 친노가 아니라고 극구 친노 구분을 거부한 것과 별개로 정청래조차도 자신이 친노라고 커밍아웃을 하고 썰전 출연 시 일관되게 민주당 친문성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여 비례대표가 된 이철희 소장도 역시 김한길 보좌관 출신임을 들어 "친노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철희 소장 같은 경우는 문재인 의원이 대표시절에 영입해서 1월 19일에 입당하였으나, 언론에서 제목만 보면 호남행을 말리는 듯한 이상한 기사가 나서 "김종인이랑 같이 노는 것인가?"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문재인 전 대표가 대표 시절에 영입한 인사가 맞다.

하여튼 친노의 의미를 지나치게 작게 보아서 원래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뽑은 사람이 아니면 친노가 아니다"라는 주장도 역시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다. 사실 새누리당에서도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운동권 출신 보좌관을 많이 뽑은 것도 공공연한 사실인데 "이제는 우파 청년들을 키워야 해요!"라면서 한 때 "운동권 출신이었던 보좌관을 뽑지 말자!"라는 결의(?)까지 했으나 결국 아무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이 정계로 입문하면 새누리 출신으로만 보는 것도 이상할 것이다. 박노자는 러시아에서 트로츠키 공부를 하며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던 명문대 출신 청년이 학교 선배가 부르자 한국 보수정당 보좌관으로 들어간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헌데, 일단 대통령은 법률상 7천여 곳의 자리에 대한 인사권이 있다. 그래서 친노를 노무현에 의해 임명된 사람만으로 한정을 짓더라도 지나치게 범위가 너무 커진다는 것이다.

명백히 '보스'의 지근거리에서 행동하고 정치권에 참가한 이들만 부여받는 친박, 친이, 동교동계, 상도동계 같은 타이틀과는 다르게 본 문서에도 볼 수 있듯이 단순히 지지를 표명한 연예인들, 네티즌들까지도 친노라고 불리는 것을 봐도 이 단어가 계파적인 분류와는 결을 달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핵심 정치권 인사+직책과 자리를 나눠먹는 자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계파'와는 달리 '친노'라는 단어를 쓸 때는 지지자를 뭉뚱그려서 지칭하는 표현으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말 그대로의 '친노무현'의 구심점이 되는 노무현 前 대통령은 2009년에 사망하면서 2016년 기준 중심이 사라진지 7년이 지났다. 친박, 친이 같은 계파와는 달리 어원적으로 구심점이 되어야 할 인물이 사멸한지 7년이 넘었는데도 지속중인 것이다. 게다가 친이의 경우, 이명박 前 대통령의 퇴임 이후 비박의 일원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더 잦았으나, 최근에 이명박의 최측근인 이재오늘푸른한국당을 창당하고, 이명박 또한 사실상 이들을 지원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서, 친이계열 또한 다시 정계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동교동계, 상도동계도 구심점이 되는 양김이 연이어 대통령을 지내고 퇴임을 하자 대부분 정치일선에서 은퇴하여 물러났고 남은 이들은 박지원계, 한화갑계 등으로 분화되었다. 이와 달리 구심점이 되는 인물의 사망 이후에도 장기간 친노라는 집단적 정체성을 내외세력으로부터 인정받고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친노에게만 볼 수 있는 특징적인 모습이다. 사실, 이는 구심점이 될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6년 초까지는 친문이라는 말보다 친노라는 말이 더 잘 쓰이던 것만 봐도 문재인은 어디까지나 친노 지지자들의 '대체 가능한' 대표 정치인일 따름이욨다.[61] 물론, 문재인이 직접 인재영입한 인사들로 구성된 친문이라는 명칭이 나오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친노의 정체성이 더 강하기 때문에 애초부터 영입된 인사들부터가 스스로 친문이라고 말하는 것을 어색해했기 때문이다. 이후 친문이라는 말이 생명력을 얻게 된 것은 20대 총선에서 벌어진 정계개편으로 친문의 성향이 단순한 친노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62]

이는 현 시점에서 친노라는 분류가 단순히 인맥,인사권 분배를 통한 계파적 개념이 아니라 탈권위와 지역주의 타파와 전국정당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느냐? 아니냐?"로 구분지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노무현 정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개념이 애매모호한데, 굳이 노무현 정신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자면 "민정당계 정당을 반대하는 민주당계 정당으로 지역주의 타파를 목표로 하는 전국정당화를 위해서 노력한다."라고 봐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유시민의 경우, 열린우리당 창당 이전까지는 노무현과 같은 당에 소속된 적도 없었고 이너서클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 당시나 지금이나 그를 친노로 분류하는 데에 누구도 심지어 본인도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참고로, 유시민은 16대 대선에서 개혁국민정당을 결성해서 노무현을 외부에서 지원한 바가 있다. 이처럼 친노는 태생부터 노무현의 이너서클 극소수 + '노무현의 사상에 공감하는 외부 인사'가 대다수 참여한 정치적 운명공동체라는 성격을 띠게 되는 독특한 면모를 지닌다.

또한, '범친노'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이 혼란을 가중시킨다. 언론에서 보도하는 '범친노'는 다른 계파에 비해서 유독 중구난방인 경우가 많다. 위에서 범친노 최대주주라고 서술한 정세균만 해도 그저 친노에게 '우호적이고 협조적일' 뿐인데, 과거 새정치민주연합 분당과정에서 박지원계가 안철수에 우호적이었다고 안철수를 '범박지원계'라고 분류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정치에는 타협과 협상과 연대가 필연적으로 이뤄지기 마련인데, 그 과정에서 단지 친노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이유 하나로 이들을 친노라고 묶어서 분류해 규모를 부풀리고 후술하는 '친노패권주의'의 정황증거로 활용하는 음해세력이 존재한다.

따라서, 사안별로 친노에 대한 옹호나 비판은 가능하겠지만 각 사안별로 "어디까지를 친노로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도 매번 달라짐을 유의해야 한다. 종편의 프레임 타령하면서 그런 건 없다고 주장하거나 반대로 모든 운동권, 시민사회출신 야권 정치인이나 진보성향 유권자들을 친노라고 부르라는 것이 아니라, 친노냐 아니냐의 문제는 비슷한 성향의 모임을 세부적으로 파악하고 각 사안별로 각 모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친노친문의 정치세력은 오늘날의 민주당계 정당에서 핵심세력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며 친노의 정신을 계승한 후계자로 문재인19대 대선에서 41.1%의 지지율로 압승을 하고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정권교체를 이뤄내기도 했다.

이처럼 오늘날의 친노와 친문세력은 "노무현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그의 정치적 후계자 집단과 전국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정치세력 및 그의 동맹세력을 지지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의견도 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사망 이후 현재까지도 그의 정치적인 사상은 더불어민주당의 구심점이자 핵심목표가 되었다는 것과 한국 정치사에 끼친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7. 비판과 반론[편집]

8. 친노패권 논란[편집]

소위 친노패권[63]이라 불리는 논란이 있다. 언론 매체에서도 종종 다루곤 하는 논란이지만, 이는 진보 진영뿐만 아니라 보수 진영의 정치평론가들 중에서도 실체 논란에 대해 현재 논란 중인 부분이 있고 아래의 서술 역시 존재 여부에 대한 논란이다.

8.1. 친노패권이 존재한다[편집]

1. 새정치민주연합의 당원분포는 2015년 1월18일 기준 전체 권리당원 262,611명 중 호남이 무려 145,254명으로 당 내에서 55%에 이르는데, 그에 비한 대의원수는 15.7%에 불과하고 반면 PK의 당원은 고작 3.3%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대의원수는 18.5%에 해당하는데 1인1표제가 원칙인 대의민주주의에서 영남당원은 산술적으로 1인이 20표 이상을 행사하는 셈이된다. 출처

2. 문재인은 대선에서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한명숙 등의 친노가 주도했던 총선 등에서도 4전 전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명숙 전 총리 등은 이전부터 '혁신과통합'이라는 페이퍼정당을 만들어 60년 전통의 민주당을 접수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는데, 그 결과, 손학규와 혁통의 야합으로 전체 대의원의 정족수 및 과반수마저 조작하며 이 두 당은 합당에 이르게 된다. 이때 한겨레를 위시한 진보성향의 언론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당원들을 또 다시 소위 '난닝구'라고도 하는 프레임에 가두기까지한다. 이 과정에서 전당대회의 비율을 대의원 30%, 모바일 70%로 만들고 화룡점정으로 5:5 합당에 걸맞게 대의원 구성은 의석 80석이 넘는 민주당도 10,500명, 의석 0석인 시민통합당도 10,500명 해서 총 21,000명의 대의원에게 무려 지분 30%를 몰빵해주기까지 했다.

3. 한명숙 당시 대표가 치른 총선에서 127석이 야권이 거둔 선거 중 두 번째로 승리한 선거란 건 어불성설이다. 일단 여당 단독 과반을 허용한 것에 대해 패배로 보는 게 당시 평가였다. 그리고 선거구도가 사실상 여야가 양당구조로 바뀌었고, 이전 다당구조와 단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며 정권 심판론으로 야당 과반이 유력한 상황에서 종북 논란을 빚은 통합진보당과 당내외 반발을 무시하고 야권연대로 퍼주기 호구 협상 끝에 종북세력의 의석진입을 도와준 꼴이었다.

그리고 정통민주당 핑계를 대는데 정통민주당이 격전지 5곳에서 득표 잠식을 해서 손해를 본 건 맞는다. 그러나 통진당과의 연대도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속된 말로 야당이 깃발만 꽂아도 되는 지역구를 조공 바치듯 연대했는데, (친노들이 비아냥거리는 표현대로) 호남 노인들 가오 세워줘서 몇 석 챙겨줬으면 나갈 일도 없었다. 그러니 통진당 NL과의 연대는 '착한연대'요. 기존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서 고정상수로 몰빵투표했던 호남 노인들의 지지를 얻는 구태정치인들은 청산대상이어서 잡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임수경같이 꽂아넣기식 비례공천과 총선 막바지엔 김용민의 막말 파동에도 공천 철회를 하지않아 수도권 격전지와 비례대표에서 큰 손실을 봤다는 평이었는데, 몇 년 지나자 127석이 선방했다며 평가 뒤집기에 나서는 선동을 벌이고 있다.

실제 팩트를 짚어 보면 1988년 13대 총선에선 현재보다 국회의원이 적은 299석 중에 YS, DJ가 총재인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 의석수가 합쳐서 129석이었고 게다가 이 당시는 군사정권하에 부정시비가 난립한 데다가 4당 구조였다. 1992년 14대 총선에선 3당합당으로 이전 여당 의석수가 200석이 넘었지만 선거결과는 3당제하에서 야당의석이 역시 야대구조였고 (97+31 /299)였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도 새천년 민주당은 전체 273석 중에 115석을 차지했고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 연립정권을 감안하면 한나라당 133석과 단 한 석 차이가 나는 132석이었다.

결국 한명숙 전 대표의 체제로 역대 2위의 결과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2000년대 이전 야당의 역사를 모르거나 민주당계 정당 계보를 무시하거나 역사왜곡인 셈이다.

4. 친노나 친노계 당대표나 원내 대표가 재임 시에는 정당한 비판, 정체성 확립이라면서 다른 계파 의원들을 극딜 하면서 문재인 대표나 친문 친노 세력이 당권을 잡을 때 비노진영에서 이의 제기는 뒷총질, 새누리 첩자, 회색분자, 라며 꼬우면 나가라고 선동하는 내로남불 성향이다. 이들은 정청래가 주승용에게 막말하여 당내에서 징계를 받았음에도 잘 한행위라며 포장하고, 조경태 등이 문재인 대표나 체제에 대해서 비판을 하면 출당 조치 해야된다고 펄펄 뛰는 진영논리를 보여준다.

또한, 인사영입에 대한 평가도 내로남불이다. 국민의당이태규, 김성식)은 여당 경력으로 친노들에게 까이는데 이태규는 이명박 선거캠프와 청와대에서 한 달 정도 비서관을 지낸 것, 김성식은 새누리당에서 의원직을 지낸 경력이 있으니 너희는 새누리 2중대라는 것.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20대 총선 전 영입 인사를 보면 한때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고, 이명박 찍었다고 밝힌 표창원을 영입한 정도는 애교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을 지낸 조응천 비서관은 청와대 수석 중 갑중지갑 인 민정수석을 능가할 정도의 권력을 누렸고 [64] 박근혜 정부 실정에도 책임이 있는 위치였지만 이에 대한 비판은 찾아볼 수도 없다. 사퇴도 청와대 문건유출 파문으로 파워게임 벌이다가 짤린 것이지 이태규처럼 뜻이 안 맞아 스스로 그만둔 것도 아니었고, 문재인이 영입하여 당대표로 옹립한 김종인은 앞서 전두환 시절 국보위에 참여하여 비례대표 2번, 노태우에게 비례대표 1번한 여당에서도 거의 따당하는 군사독재시절 민정계 인사인데, 정청래는 앞서 김종인과 함께 박근혜 캠프에서 일하다 경제민주화로 소원해진 이상돈 교수의 영입은 박영선이 시도하여 막무가내로 반대했으나 문재인이 영입한 김종인은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 운운하며 긍정적으로 평가 했다. 한편 역시나 총선 끝나고 당대표 임기 연장 후엔 원색적인 비난으로 다시 비웃음을 사고 있다.

5. 친노패권이 없다면 친노패권을 주장하는 내로라하는 유명정치인들과 수많은 정치평론가를 위시한 언론과 정치부기자 등 전문가들은 그럼 왜 친노패권이라는 실체도 없는 허상을 연일 방송과 미디어 등의 언론매체에서 주장을 하는지에 대한 반박이 있어야한다. 먼저 최초로 친노패권의 용어를 쓴 것은 한광옥과 정통민주당이라고 하는데 그전에 16대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 이인제가 노무현에게 패배한 직후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었다.[65] 즉 이인제, 한광옥, 한화갑, 박지원, 권노갑, 정동영, 천정배, 김한길, 박주선, 안철수 등의 내로라하는 이름난 정치인들부터 김무성, 원유철, 오세훈, 김문수, 서청원 등 여야를 막론하고 친노패권의 실체를 주장했고 정치평론가나 대학교수, 정치부 기자 등의 전문가 집단은 그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구체적으로 친노 정치인에 속하는 김두관 전 도지사의 경우 다음과 같이 발언했고 "당시 한 토론회에서 내가 '문재인은 비서실장으로서 노 대통령 죽음에 책임이 있지 않나'라고 발언하자 친노 세력이 '장관을 한 김두관은 책임이 없나'라며 발끈했다. 그 뒤로 범(汎)친노가 문재인 쪽으로 쏠렸다. 거의 9대1쯤 됐다." 박준영 전 도지사의 경우 친노를 홍위병에 비유하였다.출처 정동영에게도 문재인 측이 알바를 동원해 사이버상에서 "복당조건으로 전주 공천을 요구했다"는 근거없는 흑색선전 유언비어를 퍼뜨렸다고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으며 기사중반 안철수에게는 새민련 시절부터 갈등이 많았고 급기야 최근에는 갤럽에서 여론조사결과로 문재인의 알바로 추정되는 세력들이 갤럽 공식 온라인 공간에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하기도 하였다.출처 출처 출처

급기야 온라인상에서의 광신도적인 행태로 신적인 존재로까지 일부 지지자들이 추앙하고 있으며 출처 이에 대해 김종인 대표 측도 비판적인 의견을 언론에 여러 차례 피력했다.출처

친노패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김두관, 박준영, 김한길, 안철수, 정동영, 천정배, 김종인 등 지나치게 많은 유력정치인들과 갈등이 있었던것을 근거로 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포용의 리더쉽을 발휘했다. 더군다나 실체가 없다던 그 친노패권 때문에 이인제, 한화갑, 한광옥, 박지원, 김한길, 천정배, 안철수 등은 모두 유령실체인 친노패권 때문에 당을 떠났다는 셈이 된다. 즉, 패권이 없는 것치고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과 정치인들, 심지어 호남인들과 수도권에서도[66] 친노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친노패권이 허상뿐인 유령이라면 더더욱 큰 문제다. 실체가 없음에도 뺄셈의 정치가 계속되는데, 실체가 등장한다면 정말 친노 골수만 남고 다 떠날 것이다. 참여정부 말기의 열린우리당처럼 말이다.

급기야 현재 국민의당 소속인 박지원 의원이 최근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실을 무단점거한 사태와 관련해 "국회의장실 점거? 우리가 그러다 야당 됐다"며 야권의 열린우리당 시절을 돌려까는 일까지 발생했다. 기사 더군다나 열린우리당이 노무현 정권 5년 내내 원내 소수당이라서 투쟁 방식으로 삼을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면 모를까 분명히 적어도 4년 동안은 원내 제1당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시기를 흑역사로 생각하는 야권 정치인들이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8.2. 친노패권은 존재하지 않는다[편집]

"패권이 있으면 좀 휘둘러보고 싶다" - 어느 친노 지지자


1. 권리당원 논란에 얽혀 있는 페이퍼 당원, 당비 대납 등의 문제들은 친노가 저지른 폐단이 아니라 수십 년간 민주당 내에 쌓여 있던 폐단이다. 민주당의 역사가 깊고 반노 의원이 많은 호남의 경우에는 지역위원장(현역 의원)이 당원명부를 중앙당에 넘기지 않고 본인만 가지고 있으면서 당내 경선 때 활용하는 수법이 분명히 존재했다.* '비노' 쪽에서 권리당원 문제를 걸고 넘어지면서도 전수조사를 요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이 당비 대납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노=영남이 아니다. 당장 새누리당으로 가 버린 조경태, 대구의 김부겸 등을 떠올려보자. 영남 쪽 대의원이 권리당원 비율에 비해 많다고 해도 이들이 다 친노는 아니며, 애초에 이러한 대의원 배분 자체가 20대 총선 이전까지는 민주당에게 완벽한 사지(死地)였던 영남을 배려한 조치다. 온라인 입당제도 개시 이전에는 권리당원의 구성 자체가 심각하게 호남 편중이었기 때문이다. 친노패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단락에서는 영호남만을 선택 비교하며 영남=친노임을 은연중에 부각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대의원에서 영남뿐만이 아니라 수도권도 과대대표되었다. 영남만 과대대표된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실제 인구비례에 최대한 근접하게 배분한 것이다.

2. 지역의원장의 70~80%를 친노가 장악하고 있다는 주장도 근거가 부족하다. 친노의 구분 자체가 모호한 마당에 어떻게 수치가 나온단 말인가? 관습상 자당 의원이 당선된 지역의 지역위원장들은 거의 현역 의원들이 맡고 있고 #,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지역위원장 선출은 권리당원들의 투표소 투표와 ARS 투표로 진행된다 #. 만일 지역위원장의 70~80%가 친노라면 이는 지역에서 당선된 의원들 및 위원장 선출에 참여한 당원들 중 다수가 친노 성향이라는 이야기인데, 단지 선거에 강한 정치인과 친노 당원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음험함이 연상되는 '패권'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이는 것은 낙인찍기에 불과하다.지를 기반으로 하는데 그렇다면 친노패권이 있다 한들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대중들이 지지하는 계파가 패권을 잡는건 민주주의의 기본에 매우 충실한 정치이며 친노패권을 부르짖는 그들이야말로 대중의 열망을 무시하고 청치공학질 하는 반민주적 정치인이라는 소리밖에 안 된다.

8.3. 모든 정치계파는 패권을 추구한다[편집]

다만, 친노는 권력의 정점에 올랐지만 계파가 아니었고, 그 이유가 패권을 행사하지 않아서라는 친노의 특이한 정체성때문에 이런 제3의 의견이 나오는 것.

정치가 학술활동이 아닌 이상 모든 정치계파는 자신의 철학을 현실정치에 즉시 반영하기 위해서 다수결의 힘을 이용하고, 그로 인해 패권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이는 동서고금을 구분할 것 없이 정치판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6.10 민주항쟁을 통해 신군부 군사정권이 종식된 이후 87년 이후 구성된 의회에서 가장 민주적인 정치 체제라 불리던 3당 합당 이전까지 4개당이 나눠가진 여소야대 정국에서도 3김을 포함해 한국의 다양한 정치지도자들은 자기 계파의 수장이었으며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당 내부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댜수결의 힘으로 패권을 잡았고 국가적으로는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을 배출해 패권을 잡았다.

그리고 정치권에서 패권이란 아주 간단한데 전술했듯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선거에서는 유권자의 표를 얻고 일상에서는 대중의 지지를 얻어, 그것을 힘으로 조직내, 당내 혹은 정부,공기업등에 인사권 및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를 단순하게 표현하면 인기가 많고 지지자가 많으면 당선되고, 당선되면 패권을 얻는다.[67] 물론 그 인기는 연예계나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의 인기와는 달라서 정치적인 의사결정과정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능력과 행정가로서 정부조직을 관할하는 능력, 그리고 대중들에게 정치현안을 전달하고 소통하는 능력 등이 뛰어나면 인기가 많아진다.

미국처럼 정치자금이 합법이라 슈퍼팩이 난무하는 것도 아닌 한국의 정치판에서 친노가 계속해서 정치권에서 크게 영향력을 확대해 가는 것은 그들이 무슨 비밀금괴를 가지고 있다거나 미국의 CIA에게 비밀리에 지원을 받고 있다든가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들이 받을수 있는 표가 제일 많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본인에 대한 인기는 여론조사에서 1,2위를 다투고 이명박근혜정부의 실정에 대한 충격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인한 참여정부에 대한 향수도 크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중용했던 인물들의 인기는 꼭 친노가 아니더라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문재인 대표는 사람이 호감형이라서 선거유세를 나가면 새누리, 더민주, 정의당 지지자들과 상관없이 유세지원자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요청하며 유시민은 탁월한 말솜씨와 글솜씨로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있고 안희정은 새누리당 정치인, 이명박 전 대통령조차도 인정할 정도로 신용이 있고 능력있는 정치인에다 뛰어난 행정가와 도지사로서 충남도민 외에도 진보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정세균은 적을 만들지 않는 너그러운 성격과 일솜씨로 대중들에게 많은 신뢰를 주고 있으며 20대 총선에서도 종로구에 출마하여 차기 대권후보로 유력했던 오세훈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다른 국회의원들로부터 넓은 인망을 인정받고 현재 국회의장으로 재직 중이다. 무엇보다 이들 대부분은 노무현 대통령의 권력이나 친노의 다수결 횡포같은 권위적 방식이 아닌 합법적인 수단으로 지위를 얻었기 때문에 패권에서 오히려 자유롭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 본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변호인은 관객이 1000만 명을 넘어가는 등 인기가 아주 많다. 이렇게 정치, 문화, 행정에서 다양한 행보를 보이면서도 능력을 인정 받았기에 이들의 인기와 지지를 바탕으로 친노라는 집단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친노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소위 비주류 세력들도 당연히 친노패권을 공격함으로서 자신들의 세력이 패권을 잡으려고 하는 숨겨진 의도가 있다. 이러한 행동들 또한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지만 문제점은 비주류 세력의 패권쟁탈전이 너무 저열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새누리당 보수세력이 민주정부 10년의 패권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쓴 방법은 경제문제와 남북관계였다. 그들은 경제적으로는 감세와 작은 정부를 통한 낙수효과를 주장했고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북한에 대해 좀 더 강경한 태도를 주장했으며 이 의견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패권을 받아 올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위키러는 보수세력의 경제관과 외교관이 결과적으로 옳고 그름을 논할 수도 있고 성공과 실패를 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수세력의 10년 집권기간주의 후반부 8년차부터 실시된 20대 총선에서 보수정권이 패배하면서 이에 대해 국민들의 지지가 철회되었다고 논할 수도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친노가 추구하는 자신들의 철학과 정책을 갖고 패권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주류 세력들은 자신들의 철학과 비전이나 정책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친노가 패권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친노를 무너뜨릴 궁리만 하고 있는 중이다. 이는 권투장에서 청코너 선수가 홍코너 선수에게 "너는 나보다 강하다! 그러니까 약한 나한테 져달라!"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 없는 것이다. 결국, 홍코너 선수는 어처구니 없어하면서 강펀치를 날릴 테고 청코너 선수는 패배할 것이다. 물론, 비주류 세력도 또한 이와 같은데 권투에서 펀치는 정치에서 철학과 정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의원이 대선패배 이후 다시 당대표로 복귀할 때까지 비주류 세력은 국민들에게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비주류가 된 것이다. 사실, 정치란 완전경쟁시장과도 같아서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하면 자연적으로 도태되면서 유권자들이 지지를 보내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치세력들은 그저 외연이 축소되어가면서 자연스레 소멸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비주류 세력도 또한 패권을 추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결과 호남권에서만 자신들의 세력을 크게 확장하면서 국민의당으로 부활하는데 성공한다. 딱히 새로운 대안과 정책을 가지고 있지도 못했고, 이 과정 속에서도 수도권을 비롯한 비호남권, 나아가 전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리고, 그들이 찾아낸 것은 호남 출신 지역 유권자들의 소외감이었다. 호남 유권자들의 소외감을 달래기 위해서 이들은 리틀 DJ론, 호남 정치부활론 등을 내세웠고 이 점이 호남시민들에게 동의를 받아서 호남권에서 완승하는 결과를 얻어내었다.

여기서 그들의 승리에 대해서 잘잘못을 따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비주류 세력도 패권을 추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일정부분에서는 패권을 얻어내는 것에 성공했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다만, 자신들은 패권을 추구하는 주제에 남에게는 패권을 추구하지 말라는 주제넘고 모순적인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 모순이다. 친안패권주의도 추구하는 내로남불

또한, 더불어민주당의 비주류 세력도 역시나 20대 총선 과정에서 컷오프 논란, 비례대표 경선 논란 등으로 인해 패권을 추구한 결과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전당대회 관련 법까지 고쳐가면서 당권을 넘보고 있는 상황이다.

즉, 결론적으로 정치적 의미로 계파의 정의상 권위와 권능이 있고 그것을 행사하면 패권이고 패권이 있는데 행사하지 않은 것을 패권이 없다고 말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친노도 패권을 가졌던 정치세력으로 분류가 가능하나 패권이 없다고 말할수 있는 제3의 의견이 가능한 것이다.

9. 친노의 종류[편집]

  • 민주당내 친노

    • 친노직계 - 이해찬

    • 범친노 - 노무현과 연관성이 떨어지지만 노무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노무현 사후 정계에 입문한 사람도 포함된다.

    • 친문 - 문재인 계파성이 확실한 사람.

    • 비문재인 - 친안희정, 정세균계 등

  • 비리 논란으로 정계에서 멀어진 구 친노 계열 - 이광재, 서갑원 등.

  • 정의당계 친노(구 참여계)

10. 정치 외 친노 인사[편집]

연예인, 언론인 등 비정치인 인사들이다. 이 중에서도 그냥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했다" 정도에 그치는 사람부터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지지활동을 한 사람까지 분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죄다 친노라고 말하기에는 좀 애매한 감도 있다.

솔직히 말하여 전자 같은 경우로 계산할 경우엔 수백~수천만 명(...)이 친노라고 해도 얼추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보라는 분류 속에서도 친노가 포함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진보=친노가 아니긴 하다. 또한 이들 중에서도 친노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할 점은 비판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많을 것이다.

  • 명계남 : 배우 문성근과 함께 원조 친노 중 한 사람으로, 문성근 씨처럼 정치에 본격 진입하진 않았지만 대표적인 친노 연예인 중 한명이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 사저가 있는 봉하마을에서 거주할 정도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 신해철 : 대표적인 친노 연예인 중 1명으로, 100분 토론에도 여러 번 출연했던 경력이 있다. 2002년 16대 대선 당시 자신이 맡고 있던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 진행도 중단하고 민주당 캠프 DJ를 맡을 만큼 노무현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지지연설을 직접 해주기도 하였으며 2009년 노무현이 사망하자 본인이 별세하기 전까지 추모콘서트에 매년 참석했다. 2014년 의료사고로 그가 세상을 떠나자 석정현[68]세월호 희생 학생들과 신해철, 그리고 노무현이 해변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그려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빈소에는 문재인 전 의원도 참석하여 애도했다.

  • 윤도현 : 평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해 왔었고 2002년 자신의 콘서트에 당시 후보였던 노무현 후보가 보러오자 자신의 싸인 CD과 "이번 대선에서 노무현 찍겠다!"라고 공개적인 지지 의사도 밝혔다. 그 후 2009년 노무현이 사망하자 노제에 등장하여 '너를 보내고' 를 열창하였으며 매년 추모 콘서트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사망 당시 봉하마을까지 찾아가 조문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김제동 : 보수 성향이 강한 대구광역시 출신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를 찾아가기도 하였고, 2009년 노무현이 사망하자 분향소에 조문을 하며 눈물을 보였다. 노제에서 직접 사회를 보기도 했다. 이후 매년 열리는 추모콘서트에 꼬박꼬박 참석을 하고 있다.

  • 전인권 : 노무현 추모제 콘서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 안치환 : 역시 노무현 추모제 콘서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 송강호 : 직접적인 언급을 한 적은 드물지만, 2013년 노무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에서 직접 주연을 맡았다. 이후 천만 관객을 달성하고 봉하마을 묘소에 참배한 후 '영광이였습니다'라는 글을 방명록에 쓰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사건 당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다만, 2015년 4.29 재보궐선거 때 새누리당 비박계 오신환 후보와 함께 유세용 사진을 찍기도 하는 것을 보면 정치적으로 마냥 배타적인 성향은 아닌 듯 하다.

  • 이승환 : 노무현 사망 5주기에 헌정가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를 발표했다. 개인적으로도 고인을 존경해왔다고 한다. 그 외에도 사비를 털어 진보 활동을 지원한다거나 SNS 등으로 진보 진영을 대변하는 발언을 종종 하고 있다.

  • 이은미 : 이승환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헌정 싱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2012년 대선 당시엔 직접 문재인 후보 찬조 연설을 하기도 했다.

  • 김어준 : 딴지일보를 시작하던 시절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해왔다. 2009년 노무현이 사망하자 노제에 참석해 소방차 뒤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후 2011년 추모콘서트에 참석해 MC를 보기도 했다. 또한, 노무현의 사망를 이명박심복들이 저지른 살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사망 7년이 지난 2016년 현재까지도 검은 옷을 입고 있다.

  • 태연 : 사망 전까지는 친노임이 불확실했으나 데뷔한 지 겨우 2년차였는데 뭐... 2009년 노무현이 사망하자,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 태연의 친한친구에서 "노무현은 새로운 길만 가서 그곳에서도 어려운 길을 걸으실 것이다." 라면서 눈물을 보였고 추모곡으로 김연우의 '사랑한다는 흔한 말'을 불렀다. 이후 분향소에 찾아가 조문을 하기도 하였으며 국민장에도 참석하였다.

  • 구하라 :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 류준열 : 2016년 SNS에 글을 올렸는데 이게 일베 유저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할 때 쓰는 표현 아니냐고 논란이 일자,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일베가 아님에도 상처를 받고 있을 많은 팬들이 걱정되고 또한 제가 존경하는 분이 저의 일베 해명 기사에 언급되는 것도 속상합니다."라는 해명을 하였다. 반강제 인증 또 20년 지기 친구가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류준열이 직접 그 친구에게 노 대통령 엽서도 선물해준 적이 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 조관우 : 팔세토 창법과 가성으로 유명한 그 조관우이다. 봉하마을도 꾸준히 가며 봉하음악제에 자주 참석한다. 노무현 추모 헌정곡 중에 "그가 그립다" 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다만, 상술했듯이 그냥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는 정도에 그치는 사람들부터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지지 활동을 한 사람까지 분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특정 발언만 가지고 죄다 친노라고 부르기에는 좀 애매한 감이 있다. 자신을 진보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일부 가치나 정책에 반대할 수는 있더라도 사람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추측되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친노라고 부르는 연예인들이 모두 정치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11. 관련 문서 및 정보[편집]

[1] 참고로 본음은 친이다. 盧의 음이 '로'이기 때문. 자세한 사항은 두음 법칙 참조.[2] 이 둘은 1982년 법률사무소를 같이 꾸리는 걸 포함해 수십년 인연이 있고, 둘 다 대통령에 올랐다.[3] 2016년 3월 17일 1부[4] 여담으로, 폐족이라는 표현은 친노 유력 인사이자 노무현의 보좌관 출신이었던 안희정이 사용했던 말이었다.[5] 당시 민주당 구청장후보들이 얻은 표보다 30만 표 가량 더 낮은 득표를 보이면서 낙선했다.[6] 2015년 7월 18일부터는 심상정 의원이 정의당의 대표를 맡고 있다[7] 새누리당에서 박근혜에게 통수를 맞고 나오면서 안철수를 돕기도 했지만 결국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8] 당장 대구 수성갑에서 당선된 김부겸 의원은 열린우리당 말기에 비노로 바뀌었고, 당 비주류에 속한다.[9] 문재인, 이해찬, 안희정 등 친노인사가 다수 소속되어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안철수, 정동영, 천정배, 박지원 등 비주류 + 호남세력 중심의 국민의당에게 호남에서 3:23의 완패를 당했다. (더민주 3, 국민의당 23). 하지만 국민의당이 바른정당과 새누리당에 어느 정도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내면서 호남에서 점점 민심을 잃기 시작 하고 19대 대선에서 과도한 문모닝, 안철수의 삽질[10]인한 지지율 하락과 자유한국당 홍준표의 반등을 보고 확실한 정권교체를 위해 문재인에게 60%대의 호남표가 쏠리고 문재인 당선 이후에도 전남도지사 이낙연 총리 내정과 5.18 정신 계승 선언, 국민의당의 호남출신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인준반대 등으로 호남의 국민의당 지지도가 바닥이 나면서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의 지지도가 치솟고 있다.[10] 특히 토론회에서 "실망입니다.", "저 좀 그만 괴롭히십시오.", "제가 안철숩니까 갑철숩니까.", "제가 MB 아바타입니까 아닙니까."같은 삽질을 남발해서 안초딩 같은 이미지로 굳어졌다.[11] 정의당 부대표 한창민의 페이스북으로, 정의당 內 친노참여계 인물 중한 명이다. 페이스북 내에서 전직 대통령이라는 예우 차원에서 해명할 기회는 줘야겠지만 '그 자리는 반드시 검사 앞이어야 한다' 이런 코멘트를올렸다. 또한 이런 글까지 올리는 것을 봤을 때, 일부 친노계 인물들은 아예 이명박에게 증오 수준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수있다.[12] 다만 2002년 당시에는 민주당 경선당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세력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한것이 압도적이었다.[13] 노무현 前 대통령이 국회의원이었던 시절, 보좌관 출신이다.[14] 단, 유시민은 계파적 의미에서의 친노를 논할 때 이해찬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이는 서울대 운동권 출신으로 88년도부터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DJ 때 해양수산부장관(2000~2001)을 지낸 노무현보다도 우위인 교육부장관(1998~1999)을 먼저 지낸 이해찬을 노무현의 수하(手下) 간단히 말해서 똘마니로 분류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물이라는 이유에서다. 물론 이해찬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유시민이 이해찬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러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15] 정봉주의 전국구 138화[16] 여기서 이해찬은 친노가 아닌 더 앞세대의 인물로 친다.[17] 다만 부울경 지역의 더불어민주당 정치인이라고 해서 전부 친노 혹은 부산팀에 속하지는 않는다. 김영춘 의원은 '독수리 오형제' 출신으로 참여정부 말기부터 비노에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들었고, 경상남도지사 출신 김두관 의원은 대개 PK 친노로 분류되어왔으나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이 대선후보로 결정되자 반발해서 금강팀으로 이탈했다. 조경태의 경우 의심할 여지 없는 PK친노였지만 문재인이 당 대표를 지내던 시기에 갈등을 빚고서 새누리당으로 전향했다. 다만 조경태는 이후 새누리당으로 전향한 것, 그리고 새누리당이 친박계인 자유한국당과 비박계인 바른정당으로 분열된 와중에도 친박계 자유한국당에 남은 것 때문에 자칭 친노로 조롱받는 처지다. 또한, TK의 경우 친노와 거리가 먼 편인데 TK더불어민주당 대표주자 김부겸도 '독수리 오형제' 출신으로 참여정부 말기부터 비노에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들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구 북 을의 홍의락은 김부겸과 가까운 사이로, 역시 비노계로 본다.[18] 12~13대 의원을 부산 영도구에서 지냈다. 노무현의 13대 의원 시절 지역구는 부산 동구.[19] 안희정이 타 친노계 중진에 비해 연령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노무현이 김영삼에게 영입되었던 시절에 같이 영입되었다. 3당 합당을 반대하고 김영삼에게 반발하면서 노무현과 함께 민자당을 탈퇴한 직후부터 노무현과 함께 행적을 쭉 같이했기 때문에, 정치적 군번으로서는 안희정이 나름대로 친노계의 최고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20] 그 이명박 대통령조차 립서비스일수도 있을 지언정, 왜 내 옆에 좌희정 우광재 같은 가신이 없냐고 주변에 말한 적이 있다. 그게 복선이었나[21] 다만 당시 안희정은 문재인을 지지했고, 이광재는 손학규를 지지했다.[22] 이 때는 공식 보좌관이 아니라, 보좌관 급여를 나눠서 썼다고 한다.[23] 대전이 지역 기반이었던 권선택은 18대 국회에서 자유선진당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선진당 원내대표까지 맡았는데, 이 시기 자유선진당은 충청계열 보수정당 치고는 꽤 진보적으로 합리적인 행보를 보였다. 권선택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인사비서관을 지낸 바 있다. 그러다 이후 선진당이 19대 총선에서 몰락(...)하고 급기야는 이인제 주도로 새누리당과의 합병 절차를 밟게 되자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오게 된다. 현재는 대전광역시장을 역임하다가 비리로 시장직을 잃었다. 권트램[24] 그 덕분인지 신기남 前 의원은 2018년 4월부터 대통령 직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장으로 임명되었다.[25] 그러나, 정세균 본인을 제외하면 이 그룹에는 딱히 친노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다. 최재성, 전병헌, 강기정은 친노색이 약한 편. 그래서 정세균계는 범친노로 본다. 정세균 의장만 따로 보면 친노로 구분되는 일이 많은 편.[26] 비노계의 수장이었던 박지원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27] 다만 같은 비노계열이지만 정동영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 정동영이 2007년에 열린우리당을 아예 없애버리고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해서 대패하는 병크를 저지르면서 사이가 멀어졌고, 여기에 정동영의 원 지역구인 전북 전주 덕진의 현직의원 김세웅이 의원직을 잃어서 치뤄진 2009년 보궐선거에 출마선언을 하자 당대표인 정세균이 정동영을 공천에서 떨어뜨리자 적이 된 것.[28] 실제로 노무현 前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봉하마을 조문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이명박을 비판하기도 했고, 박원순은 문재인뿐만 아니라 한명숙하고도 상당히 친분이 있다.[29] 2010년을 전후해 민주당 자체가 좌선회를 시작했지만, 부총리를 맡았던 김진표라던가 참여정부 자체의 보수성 탓에 친노의 경우 입장 변경에 한계가 있었다.[30] 2009년까지는 MBC에서 보도국 앵커로 있었다. 19대 총선을 압둔 2012년 1월 민주당에 입당.[31]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 출신인 열린우리당 前 의장 이부영과 접점이 있다.[32] 국민의 정부 시기 의료보험 개혁을 주도했으며 참여정부 시기에는 청와대 행정관이었다. 그래서인지 의료보험공단 이사장으로 가게 되었다.[33] 열린우리당이 있던 시절인 2007년 민주당(舊 새천년민주당) 제주도당 대변인 출신이다. 당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사이가 험악한 편이었다.[34] 참여연대 출신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선거대책위원회 보좌관 출신.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금융감독원장에 임명되었으나, 정무위원회 간사 시절의 행보가 논란이 되어 사직.[35] 19대 비례대표, 2018년 7대 지선에서 성남시장 당선.[36] 그래서, "나는 친노도 비노도 아니다. 나는 홀로다. 그러나 불의에는 격노다. 소주는 진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37] 재선 노원구청장 출신.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노원구 병 지역구 의원 당선.[38] 이들은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거쳐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거나(최성)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한 경력(김성환, 김영배)이 있는 사람들이다.[39] 변희재처럼 친노와 아무 상관 없는 종북주의자를 묶어서 친노종북좌파로 쓰는 경우가 많고, 좀 점잖은 케이스여도 친노 = 운동권 + 영남패권주의 + 야권의 배신자(대연정을 비롯한 노무현의 한나라당 관련 결정 등을 비난하는 의도에서) 등으로 각종 안 좋은 이미지를 씌운다.[40] 이렇다보니 친노=좌파, 친노=진보, 친노=강경파로 착각하는 이들에게 아직까지도 친노로 혼동되기도 한다.[41] 의외로 친노는 이 시점에 안철수, 김한길 지도부와 강하게 대립하지 않았다. 친노는 거의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기만 했었을 뿐이며 실제로 당 지도부와 전면대립한 건 정동영천정배.[42] 높은 비례대표 득표는 안철수 지지 +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중간이라는 절묘한 포지셔닝의 결과였다.[43] 박상돈, 강봉균은 열린우리당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의원들이었다.[44] 다만 이종걸, 박영선, 노웅래, 민병두, 정성호, 변재일, 최규식 같은 일부 김한길계는 김한길과 그 과정에서 결별하고 더불어민주당에 잔류했다.[45] 더불어민주당에 잔류한 舊 김한길계 세력은, 20대 전반기 국회의장이 정세균이 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예전처럼 반기를 들기보다 순한 양(...)이 되어서 공기업 사장이나 해외대사 등으로 빠지는 편. 원내 인사도 비노출신인 추미애 대표체제가 출범하자, 고분고분하게 당론을 따르며, 제 2의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라는 비극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편.[46] 탈당 이후 새누리당으로 입당했다. 물론 조경태 본인은 아직도 자신이 친노라고 주장하며 노무현의 정신을 끝까지 잊지 않겠다고 하지만 대다수 친노계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도 않고 오히려 통수를 친(?) 조경태를 자칭 친노로 멸시하고 있다.[47] 2018년 현재 바른미래당의 부산시당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바른미래당 내에서는 유일하게 친노 출신이다.[48] 전 경남지사[49] 대선후보가 되서 사퇴한 것이 아니다(!)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다고 사퇴한 것(...)[50] 홍준표는 한나라당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19대 총선에서도 떨어져서 재기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보궐선거로 당선된 경남지사를 기반으로 자유한국당의 19대 대선후보와 당 대표직에 올랐다.[51] 재미있는 건 같은 당 내에 동교동계박주선 공동대표, 이동섭 의원 밖에 없으며, 상도동계정병국 의원이 끝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해성 위원장이 당내에서 특이한 경우인 건 사실.[52] 수도권 및 충청권까지 확장시키면 박상돈, 오시덕, 이우현 등도 포함된다.[53] 이러한 비난이 전설적인 만주당을 살사건의 원인 중 하나다(...)[54] 어느 정권에서 더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느냐, 어느 인물이 더 '보스의 신망을 얻었느냐'에 따라 이른바 '친이', '친박' 등으로 비교적 쉽게 구분할 수 있다.[55] NLPDR/PD와 같은 운동권의 계열로도 나뉘지만, 계속되는 분당과 합당 속에서 어느 당에 몸담았느냐를 기준으로 인천연합, 진보신당 탈당파, 참여계로 비교적 쉽게 구분할 수 있다.[56] 대표적으로 정동영 의원과 천정배 의원. "천신정" 으로 불리며 노무현 정부의 탄생 주역이었다. 정권 후반 지지를 철회하고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취하였다.[57] 이해찬은 자신의 계파를 가지고 있었으나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계파의 세력이 약해져서 두각을 내지 못했다.[58] 유시민 또한 참정연이라는 개혁당 출신의 인사들로 구성된 자신의 계파를 가지고 있었다.[59] 대표적으로 신경민 전 MBC 앵커, 정의당에 있었다가 안철수의 '새정치연합'으로 이적했지만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합당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 -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온 강동원 의원 등.[60] 보수언론에서는 친노종북좌파라고 이를 한 세트로 묶은 단어를 사용했고, 민주당 내 반노였던 박지원이나 조경태도 이를 사용한 전례가 있다.[61] 실제로 2012년 문재인이 대선후보로 전면에 등장하기 전에는 유시민이 있었고, 유시민의 지지율은 이후 별 탈 없이(...) 문재인에게 흡수되었다.[62] 다만 이들도 친노라는 네이밍 태그만 부정하지, 노무현 정신을 잇는데는 모두 찬동하는 정치인들이다.[63] 혹은 친노패권주의로도 포탈사이트에서 자동완성으로 검색된다.[64] 청와대 민정수석은 검찰과 사정을 담당하여 실제 권력서열이 비서실장을 넘나든다는 평가가 많다. 문재인 대표도 참여정부 민정수석 -비서실장 출신[65] 이후 박상천의 대표 시절 민주당에서도 이인제는 이와 비슷한 회고를 반복했다.[66] 20대 총선 비례대표 결과는 새누리당에 이어 국민의당이 2위를 차지했다.[67] 이는 박근혜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당대표 시절 천막당사를 이끌었고 선거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선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많은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었다.[68] 다만, 발언이나 그림을 그릴 때 정치색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비노 계열 네티즌들에겐 조금 우려를 받기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69] 정체성은 매우 이질적이지만 노무현이 정치입문을 김영삼의 권유로 시작했기 때문에 연관은 있다.[70] 비노의 한 축을 담당하며, 한때 노무현을 도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지만 노무현 정권 당시 대북송금 논란과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친노에게 뒷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하여 갈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