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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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광진구 을)

선거구 분리
강수림[1]

제15·16대
추미애

제17대
김형주

제17대
김형주

제18~20대
추미애

현직

파일:1L458YYHC0_1.jpg

이름

추미애 (秋美愛, Choo Mi-ae)

출생일

1958년 10월 23일 (59세)

출생지

경상북도 대구시 남산동[2]

본관

추계 추씨

가족

배우자 서성환, 자녀 1남 2녀

학력

한양대학교 법학 학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과정 수료)
연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소속 정당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서울 광진구 을

소속 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의원 선수

5

의원 대수

15, 16, 18, 19, 20

현직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제20대 국회의원

당대표 임기

2016년 8월 27일 ~

종교

불교[3]

약력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춘천지방법원 판사
광주고등법원 판사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방문교수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링크

공식 사이트, 트위터


파일:/image/001/2016/04/14/PYH2016041415760001300_P2_99_20160414151210.jpg
2016년 4월 14일, 제20대 총선 당선 감사 인사를 하는 모습.뒷배경이 윈도우 7이다...

1. 개요2. 학력3. 경력4. 수상5. 생애6. 정계 활동
6.1. 시기별6.2. 논란
7. 선거 이력8. 트리비아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더불어민주당 대표
여성 최초 지역구 5선 국회의원

대한민국법조인, 정치인이다. 대한민국의 제15대 ~ 16대, 18대 ~ 20대 국회의원으로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지역구 5선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서울 지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 최초의 여성 판사 출신 국회의원, 판사 출신 최초의 야당 국회의원 등 다양한 최초 기록을 가지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여당 대표이며[4],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최초의 TK 출신 당 대표다.[5] 그리고 만약 2018년 8월까지 2년의 당 대표 임기를 채우게 된다면, 민주당계 정당에서 임기를 다 채운 최초의 당 대표가 되기도 한다.[6].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법원에서 10여년 간 판사로 일했고,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7]에 의해 스카웃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현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 지역구는 서울특별시 광진구 을이다.

2. 학력[편집]

3. 경력[편집]

4. 수상[편집]

  • 1997년 ‘여성권익디딤돌'수상 <한국여성단체연합> (남녀평등실현과 여성권익 향상에 디딤돌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 1999년 새천년을 이끌 ‘아시아 밀레니엄 정치지도자’로 선정 <시사주간지 (ASIAWEEK)> (홍콩에서 발간되는 <시사주간지 [ASIAWEEK]>)

  • 1999년 국회의정활동 행정자치위원회 최우수상 <한국유권자운동연합>

  • 2000년 ‘국민화합상'수상 <국민화합운동연합>

  • 2000년 ‘20세기를 빛낸 여성 21세기를 빛낼 여성선정 <한국여성유권자연맹>

  • 2000년 새천년 밝은정치인상 <바른사회 밝은정치 시민연합>

  • 2003년 차세대 지도자감 1위 <시사저널> (시민단체 활동가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 2004년 국민이 뽑은 정당의 최고 정치지도자 1위 <월간중앙-ANR공동 여론조사>

  • 2009년 백봉신사상 수상 <백봉 나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 2012년 전자도서관 이용 최우수상 <국회도서관>

  • 2013년 안중근 평화대상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

  • 2014년 국정감사 우수의원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 2014년 국정감사 과학기술 최우수 의정상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 2015년 국회를 빛낸 바른 언어상

  • 2015년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5년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5. 생애[편집]

1958년 경상북도 달성군(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남 2녀 중 셋째이자 차녀로 태어났다. 대구남산초등학교, 구남여자중학교, 경북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1985년, 같은 대학의 캠퍼스 커플이었던# 서성환 변호사[10]와 7년 간의 연애 끝에 결혼하여 법조인 부부로 이름을 알렸다.#

서 변호사는 호남 출신인데, 당시만 해도 영남호남지역감정이 극심했던 때라 영남의 집에서 호남 사위를 보는 일은 흔치 않았다. 게다가 서 변호사는 고등학생 때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이에 추미애의 집안에서는 결혼을 반대하였지만, 추미애는 이를 무릅쓰고 결혼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언론에서는 추미애를 가리켜, 그리고 추미애 스스로도 '대구의 딸, 호남의 며느리'라고 부른다.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도 추미애를 정계에 영입한 이후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 슬하에는 3명[11]의 자녀가 있다.

정계 입문 전에는 춘천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서 일했다. 판사 시절 추미애는 ‘까칠한 여성 판사’로 통했다고 한다. 당시는 군부 독재 정권 시기였는데, 수사 당국이 공안 정국을 등에 업고 구속영장을 남발할 때 ‘법적’으로 용납이 안 되면 기각하기 일쑤였다.

한 번은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며 경찰서장이 한밤 중에 추미애 당시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와 “내일 다시 신청할 테니 꼭 발부해달라”며 신경질을 낸 일이 있었다. 추미애가 “영장청구권자는 검사인데 서장께서 왜 직접 전화를 하는가? 판사가 한 번 결정해 외부로 나간 일은 번복할 수 없다”라고 응수했는데, 다음 날 법원장이 불러 “아버지 같은 경찰서장에게 도대체 뭐라 했길래 서장이 그리 화가 난 것이냐”라며 질책했다. 추미애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검찰 쪽으로 문제 제기를 했고 결국 경찰서장이 찾아와 사과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됐다. 나이 어린 초임 판사에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만만하게 보던 주위 사람들에게 추미애는 그렇게 ‘껄끄러운 여판사’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관련하여 판사 재직 시절 이런 일도 있었다. 1985년 봄, 당시 전두환 정권은 공안 통치를 위해, 오늘날에는 명작으로 평가 받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 100권이 넘는 책을 불온서적이라는 딱지를 붙여가며 압수수색하였다. 전국 검찰에선 일제히 영장을 청구했고, 전국 법원은 예외 없이 영장을 발부했다.

그때 춘천지방법원에서 초임 판사로 일하던 추미애에게도 영장이 청구되었다. 춘천의 가장 큰 서점을 상대로 불온 서적을 압수수색하고자 하니 허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추미애는 부당한 청구라며 영장을 기각하였다. 전국에서 유일한 영장 기각이었다. 이후 법원장은 추미애를 호출해서 “당신, 김대중 정치 운동하는 판사냐?”며 비아냥대듯 야단쳤다고 한다.

훗날 추미애는 이 일에 대해 "독재 정권이 저지르는 진시황분서갱유 같은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날 밤을 새우며 영장을 기각했다.", "당시만 해도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 자는 금기와 편견의 상징이었고, 불온의 대명사였다. 그렇게 저에게 ‘김대중’의 이름이 씌워졌지만 그 분과는 생면부지였다. 실제로 인연이 맺어진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에 우연히 찾아왔다."고 회고하였다.# #

판사 생활 10년 차이던 1995년, 추미애는 법원에 사표를 내고, 정계에 입문하여 이후의 삶은 정치인으로서 살아가게 되는데, 정치인이 된 이후의 생애는 아래 '정계 활동' 문단에서 서술한다.

6. 정계 활동[편집]

6.1. 시기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추미애/정계 활동 문서의 해당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2.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추미애/정계 활동 문서의 해당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7.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을)

새정치국민회의

36,570 (43.77%)

당선 (1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을)

새천년민주당

42,787 (57.35%)

당선 (1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을)

새천년민주당

26,973 (30.08%)

낙선 (2위)

[12]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을)

통합민주당

34,854 (52.29%)

당선 (1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을)

민주통합당

45,980 (55.19%)

당선 (1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을)

더불어민주당

43,980 (48.53%)

당선 (1위)

8. 트리비아[편집]

  • 대한민국 불교계의 대원로였던 성철 스님과 대면한 적이 있다. 그것도 2번씩이나. 이게 대단한 이유가 뭔가 하면 성철 스님은 "나를 만나고 싶거든 부처님 앞에 3,000배를 하고 오라"고 시켰는데, 추미애는 실제로 3,000배를 했기 때문. 참고로 박정희해인사를 방문했을 때 성철 스님을 만나려고 했지만, 성철 스님이 같은 조건을 내세우는 바람에 만남을 포기했었다.

  • KBS 2TV '슈퍼맘 다이어리'라는 리얼 다큐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시청자의 반응은 "평소에 정치인으로서 굉장히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여장부[13]의 면모와 달리, 해당 프로그램 속의 주부 추미애는 대한민국의 여느 아줌마들과 같은 모습"이라는 평. # 그리고 2017년 7월에는 KBS 2TV의 오락 프로그램 냄비받침에 출연하여 진행자인 이경규와 대화를 나눴다.

  •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삼성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돈 안 받는 정치인' 인증(?)을 받은 바 있다. 2007년 11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 때 이건희 회장의 지시사항이 적힌 삼성 내부 문건이 공개됐는데, 이 문건을 통해 이 회장이 추미애를 가리켜 '돈 안 받는 정치인'이라고 표현한 사실이 알려졌던 것이다.

  • 2000년 7월 5일, 동료 의원들 및 기자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술에 취해 'X같은 조선일보', '이회창이 이놈' 등의 발언을 했고, 동아일보 기자와 싸움이 번져 '사주같은 놈', '누구의 지시를 받아 기사를 썼느냐'는 등의 불호령을 내렸다. 정동영 등 동료 의원들이 말리면서 데리고 나오자 '정의가 바로 서야 하는데 왜 이러느냐' 하고 마당에 주저 앉아 펑펑 울었다고 한다. 다음날, 조선일보에는 추미애의 'X같은 조선일보' 발언이 대문짝만하게 실려서 곤욕을 치렀는데, 오프 더 레코드로 사석에서 나온 말을 기사화한 것은 업계 상도의에 어긋나는데다, 당시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한 보복성 보도였다는 평가가 주론이다. 그날 추미애 의원에게 일어난 일들

  • 추 의원에 대해 허위 기사를 쓴 지역 매체 기자에게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 4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이 내려졌다. 법원은 "기자로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 의무조차 이행하지 않고 허위 기사를 작성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도 피해자의 고소가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해 범행 이후의 정황도 좋지 않아 징역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

  • 더불어민주당제19대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때는 줌마개그를 선보였다(...) 호남권 경선 대회 때 개표 발표를 맡았던 홍재형 당시 선거관리위원장은 후보의 이름이나 총 득표율을 잘못 말하는 실수를 여러번 하였다. 이에 이름이 잘못 불리워진 후보 측에서 반발이 생기자 이후 충청권 경선 대회 때 자신의 말 실수를 공식 사과했다. 이후 추미애는 홍재형 위원장의 사과를 너그럽게 받아달라고 말하며 "제 이름을 거꾸로 하면 애미가 되겠지요?"라는 농담을 했다.

  • 제19대 대선 기간 동안 문재인 후보가 내세운 문재인 1번가를 홍보하는 홍보 영상금태섭 의원과 함께 직접 출연했다. 물론 추미애가 전문 배우는 아닌 관계로 발연기를 선보였다.(...) 그러나 금태섭의 발연기가 더 심해서 묻힌 감이 없잖아 있다. 금태섭 의원의 연기에 대해서는 "금씨 성을 가진 더민주 인사는 무기한 출연 금지 요청합니다"라는 반응도 있었다.(...)

파일:추미애여성중앙.jpg

  • 2018년 4월 1일, 만우절을 맞아 추미애 대표의 네이버 블로그페이스북이 초선 의원이던 시절로 맞춰져 변경되었다.# 심지어 블로그 포스트의 내용도 당시 시절로 깔맞춤되었다.## 만우절에 쓴 블로그 글 중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추미애 의원이 배우 채시라 씨를 닮았다고 말씀하셨다며 자신의 미모(?)를 자랑하는 자뻑글도 있는데, 마땅히 대중의 공분을 사야할 이 글은 다른 이유로 화제를 모았다. 그 이유가 알고 싶다면 이쪽으로. 이후 추미애 블로그에 이 만우절 드립 제작의 후기가 올라왔다. 제작을 위해 고생한 보좌관들의 노고를 알 수 있다.

  • 남편인 서성환 씨는 아내와는 달리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법무법인을 설립해서 본업인 변호사 업무를 행하며 정치와는 사실상 무관하게 활동하고 있다. 아내인 추미애에 대한 기본적인 외조나 선거 캠프 등에서 실무 작업으로 참여하는 정도를 제외하면 대외 행사에도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9. 둘러보기[편집]

[1] 광진구 선거구의 제14대 국회의원이다.[2]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3] 출처[4] 이전에 박근혜가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 그리고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으나, 말 그대로 비상대책위원장이었을 뿐 당 대표는 아니었다. 박근혜가 당대표였던 때도 있었으나, 그땐 여당 대표가 아니라 야당 대표였다. (2002년 한국미래연합 대표, 2004년~2006년 한나라당 대표)[5] 앞서 새천년민주당 시절, 경북 출신의 김중권이 당 대표를 지낸 적이 있으나, 그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당 대표 위에 당 총재(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당 총재였다)가 있었고, 당 대표는 선출직이 아니라 총재가 임명하는 자리였다.[6] 보통 당 대표는 선거 패배 시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민주당계 정당의 경우 선거 패배 사례가 워낙 많다 보니, 여지껏 임기를 다 채운 당 대표가 없었다. 추미애 이전에 민주당계 정당에서 가장 오래 당 대표를 지냈던 인물은 정세균(통합민주당 시절부터 약 2년 정도)이지만, 그도 재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바람에 임기를 다 채우진 못했다.[7] 다만, 당시 김대중은 대통령은 아니었고, 야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의 총재였다.[8] 현 구남중학교[9]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었으나 2016년 8월 당 대표에 선출됨에 따라 상임위 활동이 어려워져, 상대적으로 부담이 작은 외교통일위원회로 이동(사보임)했다.[10] 서성환은 추미애보다 3살 많지만, 대학을 늦게 입학한 까닭에 같은 과 같은 학번의 동기였다. 두 사람은 연애를 하며 사법시험 공부를 함께 하기도 했다고 한다.[11] 1남 2녀[12] 노무현 대통령 탄핵정국 시절[13] 이 때문에 정치인 스타일 중에서는 탱커형으로 종종 분류된다.[14]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한 이유로 트위터에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본인이 직접 언급[15] 정작 이 별명은 이분한테 밀려 잘 안 불린다(...).[16] 추미애라는 글자를 키보드 영자로 치면 'cnaldo', 즉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약자처럼 된다. 브라질 축구황제 호나우두가 현역이던 시절, 어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등에 C.Ronaldo 를 쓰기도 하였었는데, 이때 사람들이 씨날두, 크날두로 부르곤 했었다. 나중에는 등에 Ronaldo 만 표기한다.[17] 당시 바른정당의 당 대표였다.[18] 추미애 의원이 개띠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