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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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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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5px-Munhwa_Broadcasting_Company.svg.png 연기대상 대상

김혜수
(1996)

최진실
(1997)

김지수
(1998)


역대 파일:daejongfilmawards_logo.png

파일:daejongawards.png

여우주연상

제32회
(1994년)

제33회
(1995년)

제34회
(1996년)

윤정희
(만무방)

최진실
(마누라 죽이기)

심혜진
(은행나무 침대)


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김정은
(2005)

최진실
(2006)

손예진
(2007)

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배종옥
(1993)

최진실
(1994)

최명길
(1995)


파일:external/mimgnews2.naver.net/news1208696384_108787_1_m.jpg

이름

최진실(崔眞實)

출생

1968년 12월 24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1]

사망

2008년 10월 2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가족

어머니 정옥숙, 남동생 최진영, 아들 최환희, 딸 최준희

신체

164cm, 46kg

혈액형

B형

종교

기독교

학력

불광초등학교
동명여자중학교
선일여자고등학교

데뷔

1988년 화장품 광고 '센시티브'

팬 페이지

만인의 연인 최진실과 함께

SNS

미니홈피

서명(싸인)

링크


1. 개요2. 생애
2.1. Right of Publicity2.2. 최진실 사단2.3. 공익 활동 12.4. 공익 활동 2
3. 사망
3.1. <신한>의 기괴한 논리
4. 사후
4.1. 친족법 개정
5. 사건, 사고6. 여담7. 출연 작품
7.1. 드라마7.2. 영화7.3. 광고
8. 수상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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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990년대를 상징하는 배우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귀여운 외모, 슬픈 눈, 소탈한 스타일, 정의로운 행동으로 대중의 마음을 오래도록 사로잡았다. 더불어 훌륭한 연기력으로 거의 모든 연령층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1988년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 이래 20년 동안 지속적인 인기를 누렸다.#

2. 생애[편집]

최진실은 1968년 12월 24일에 태어났다. 고등학생 시절에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 최국현이 가출하면서, 어머니 정옥숙, 남동생 최진영과 생활한다.[2] 정옥숙은 화장품 외판원 혹은 포장마차 운영을, 최진실은 아르바이트로 햄버거 가게 점원을, 최진영은 아르바이트로 교복 모델을 했다. 그러다가 최진실도 연예계에 발을 디디게 되고 최진영도 본격적으로 연예인의 길을 걷게 되는데, 통상 최진실은 1988년, 최진영은 1990년을 공식 연예계 입문 연도로 본다. 정옥숙은 최국현과 13년간 별거하다가 1998년 비혼자가 된다. 그 13년 동안 정옥숙은 자녀 돌봄 노동을 전담하고 딸의 사회적 부상과 함께 촬영장 동행 등 최진실 매니저 역할에 매진한다.# 최진실은 2000년 기혼자가 되었다가 2004년 비혼자가 된다. 자세한 내용은 최진실/사건사고를 참조하면 된다. 2001년 8월에는 아들 최환희를, 2003년 3월에는 딸 최준희를 낳아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정옥숙은 고등학교 시절 소설광이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에는 미용사로 일했다. 정옥숙은 어린 최진실에게 직접 근사한 옷을 만들어 입히기도 하고 멋진 시를 써서 보여주기도 하며 최진실의 예술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정옥숙의 자매 중에는 소설가가 된 사람도 있고 막내 여동생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최국현은 고등학생 시절 연극을 하고 KBS 탤런트 공채 1기였다고 한다. 배우 최재성은 6촌 오빠였고 최재성의 아버지이자 최국현의 사촌 형은 KBS의 연출가였다. 중학생 시절에 아역 배우로 유명했던 2살 연상 배우 강수연이 같은 재단 고등학교를 다녔고 최진실은 강수연을 우상으로 삼는다. 이런 배경 속에서 성장한 최진실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고 연기에도 재능을 보이는 등 예체능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최국현은 정조의무 위반, 가정폭력 등의 일탈 행위를 하고 최진실과 최진영을 상대로 일종의 분리 통치를 한다. 여기서 분리 통치란 최진실은 잘해주고 최진영은 괴롭히는 형태. 남존여비가 극심했던 시절임에도 부담스러운 아들은 배척하고 만만한 딸은 귀여워 한 것. 더 가관은 배우자 정옥숙 아닌 다른 여성과 연애할 때 어린 최진실을 놀이공원에 같이 데리고 가는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 것. 최진영을 괴롭히는 행동에 정옥숙은 최국현을 질책하고 최진실도 어린 최진영이 기죽지 않고 성장하도록 잘 돌봐준다.

최국현의 행패를 관찰하면서 최진실은 연애나 결혼에 회의적인 입장이 되고 가부장제의 폐해에 눈을 뜨게 된다. 최진영도 자기 몸에 악의 피가 흐른다는 생각에 자식 갖는 걸 꺼려하게 되고 정옥숙, 최진실, 최준희 등 여성 혈연을 남성우월의식 없이 각별하게 생각하게 된다. 연예인이 된 후 인터뷰에서 최진실은 왜 자신과 최진영을 두고 1녀1남이라고 하지 않고 1남1녀라고 하느냐, 자식은 갖고 싶지만 결혼은 안할 수 있으면 안하고 싶다 등의 말을 한다. 연애와 결혼을 강권하는 문화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갖는다. 인터뷰할 때마다 쓸데없이 연애, 결혼을 묻던 기자들이 2002년과 2004년 사이에는 왜 이혼안하냐고 난리치는 모습에 기가 차 한다. 그러면서 연애와 결혼을 강권하는 사회의 본질에 접근해 가게 되고 이성애중심사회에서 동성애라는 주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대중예술인으로서 사회통념을 존중하는 모양새는 취해준다. 2006년 12월에 최진실, 최진영, 최환희는 여성의식 캠페인 사진전에 함께 참여한다.

정옥숙이 포장마차를 운영할 때 최진실은 포장마차 하는 어머니를 부끄러워해 피했지만 최진영은 포장마차를 밀어주며 어머니 일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최진영은 그런 최진실을 질책하고 최진실은 그런 최진영을 고마워 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 말은 잘 안들어도 최진영의 조언은 늘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최진영은 최준희에 대해서도 '최준희의 수호천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최진실은 최진영과 연기합을 맞추며 연기력을 연마하다가 1986년 'KBS 탤런트 공채 시험'에 함께 합격한다. 하지만 정옥숙은 최진실의 연예계 진출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방송사 연수비도 마련하지 못해 배우 꿈은 좌절되고 미대 진학도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형편 때문에 좌초되면서 고등학교 졸업 직후인 1987년 호텔에 취직하게 된다. 하지만 배우 꿈을 접을 수 없어 1988년 호텔을 그만두게 되고 단식투쟁에 들어간다. 이 때 최진영은 모델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은 셈. 얼마 후 정옥숙은 항복하게 되고 최진영도 최진실을 돕기로 한다. 최진영은 최진실의 프로필 사진도 직접 찍어주고 그 사진들을 들고 모델 에이전시들을 직접 찾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다가 최진영의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게 되고 1988년 4월에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를 하게 된다. 초기에는 최진영이 최진실을 따라다니며 뒷바라지를 한다. 모델 박영선이 주인공인 광고에서 뒷배경 역할을 맡게 된 최진실은 추운 날씨에 수영장에 뛰어드는 연속 촬영으로 호된 신고식을 치르게 되고 함께 동행한 최진영은 덜덜 떠는 최진실에게 수건을 덮어주며 이렇게 힘든데도 계속 할거냐고 물었다는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최진영은 급한 마음에 컨셉 가리지 않고 일을 하려는 초짜 모델 최진실에게 처음부터 길을 잘 들어야 한다고 조언하며 최진실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배우로 성장하도록 이끈다.

이후 배우 김희애가 주인공인 화장품 광고 '센시티브'에 여러 조연 중 한 명으로 출연한다. 이게 A안이다. 근데 광고 감독 박경삼은 콘티에 변주를 줘서 김희애와 최진실 투톱인 B안을 만들어 본다. 사내에서 B안에 대한 선호도가 좋아 B안이 낙점되고 전파를 탄다. 신예 모델을 찾던 삼성전자 후배에게 박경삼은 지체없이 최진실을 추천한다. 최진실은 곧 삼성전자와 전속 계약을 맺는다. 1988년 가을 삼성전자에 출연한 광고가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최진실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였다. 초창기 광고 모델 시절에는 성우 권희덕이 목소리를 맡았는데, 권희덕이 목소리를 담당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광고 대사는 널리 알려져 유행했다. 이 대사가 담긴 광고는 최진실이라는 사람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치솟는 인기 속에 활동 영역을 넓혀 1989년 2월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한중록>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한다. 1989년 4월 MBC 베스트셀러극장 <시진읍>은 드라마 첫 주연작. 1992년 MBC 드라마 <질투>에 출연하여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면서 배우로서 강인한 인상을 남기고 한국을 흔들어 버린다. 이때부터 한국 드라마 흐름이 바뀌어 트렌디 드라마가 대거 제작된다. 1993년 MBC 드라마 <폭풍의 계절>에서 배우 김희애와 멋진 자매애를 펼치며 성숙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1994년에 6촌 오빠 배우 최재성과 연인 연기를 할 뻔 했으나 배우 이병헌이 상대 배우로 선택되며 SBS 드라마 <사랑의 향기>에 출연한다. MBC 특채 출신이라 문화방송에서만 활동하다가 거액의 계약금을 받으며 SBS로 옮겼으나 최진실을 놓칠 수 없었던 MBC는 SBS와 협의 끝에 최진실을 전속 배우로 다시 데려오게 된다.

1997년 MBC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그대 그리고 나>에 출연한다. <그대 그리고 나>는 최고 시청률 66.9%라는 기염을 토하게 되고 최진실은 연말 시상식에서 연기 대상을 받는다. 2005년 KBS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서 적나라한 서민 연기를 실감나게 해서 대중을 감동시킨다. 그 결과 한국갤럽이 조사한 '2005년을 빛낸 탤런트'에서 1위를 한다. MBC 전속 배우였는데 KBS 드라마에 출연한거다. 그 해 MBC 드라마 출연 계획이 없어 경영진과의 딜 끝에 KBS에 한 해 잠깐 출연한 건데 거기서도 잘해내고야 만다. 그래서 KBS 사장 정연주도 최진실에게 고마워한다. 다시 MBC로 돌아와 2007년 <나쁜 여자 착한 여자>에 출연하고 시청률로 MBC에 보답한다. MBC 사장 최문순도 그런 최진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2008년 MBC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 출연하여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킨다.

이렇게 방송계도 주름잡았지만 영화계에서도 그에 못지않게 강력한 파워를 드러낸다. 1990년 '남부군'을 시작으로 '나의 사랑 나의 신부'으로 대박을 터뜨리며 영화 배우로 자리잡는다. 1990년 '꼭지딴', 1991년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1993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1999년 '마요네즈' 등으로 캐릭터 다변화를 이룬다. 1994년 '마누라 죽이기'로 대종상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는다. 1997년 '편지'는 청룡영화상영화제에서 한국영화최대관객상을 받는다. 이를 통해 1990년대 한국 영화계 부흥을 견인하고 1990년대 청룡영화상 최다 '인기 스타상' 수상자로서 이름을 떨친다.

<질투>는 한국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이자 중국으로 수출된 첫 한국 드라마, <째즈>는 한국 최초의 동성애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는 최초의 한류드라마라고 할 만큼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드라마다. 이렇듯 최진실은 1990년대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상징적 인물이고 한류 배우 1세대였으며 한국 영화사에서도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밝고 경쾌한 연기부터 인간의 깊은 내면을 드러내는 연기까지 모두 잘 소화해내는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였다.

나아가 코미디언 유재석을 방송 진행자로 추천하는 등 예능계에서도 타고난 감각을 드러낸다.[3] 이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이 새로 편성되면 첫회에 출연하는 단골 연예인이었다. 이러한 발군의 능력과 인기로 인하여 2008년에 진행자로 나선 OBS <최진실의 진실과 구라> 출연료가 예능계 최고 주가의 유재석의 출연료보다 더 높아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2.1. Right of Publicity[편집]

최진실은 계약 기간보다 5년을 더 자신의 초상을 사용한 제약업체를 대상으로 5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낸다. 사법부는 2000년 이 제약업체에 4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다. 최진실은 이 재판을 통해 연예인 퍼블리시티권의 초석을 다진다.

2.2. 최진실 사단[편집]

최진실은 톱스타였지만 대단히 소탈한 성향의 인물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의 연예계 사람들과 친분을 나눈다. 코미디언 이영자, 모델 이소라, 모델 홍진경, 배우 엄정화, 코미디언 정선희, 배우 최화정, 메이크업 아티스트 조성아 등과 특별히 가깝게 지낸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영자와 조성아는 최진실 사후 최진실 재단을 추진한다.

2.3. 공익 활동 1[편집]

  • 1991년 5월에 소년소녀가장 돕기 자선 공연 열어 공연 수익금 3천만 원을 소년소녀 가장들을 돕는 데 사용한다.

  • 2002년 6월 7일 재정이 어려운 대학교들에 컴퓨터 등 IT 학습기자재를 지원한다.

  • 2002년 6월 12일 한동대학교에 5천만 원을 기부하고 한동대학교에는 '최진실 장학금'이 생긴다.

2.4. 공익 활동 2[편집]

  • 1993년 금융실명제 광고에 출연한다.

  • 2000년 6월에 대중예술인으로서 공공외교관을 자임한다.

  • 2004년 10월에 노숙인들을 돌본다.

  • 2004년 10월에 보육원생들을 돌본다.

  • 2004년 12월에 자신의 범죄 피해 경험을 사회적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면서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을 공익에 부합되게 사용하였는데,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피해자인 광고 모델에게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광고주의 행동에서 사회적 모순을 목격하게 되고 사회가 가정폭력을 인권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변호사 강지원 등 여성운동계와 연대한다.

  • 2005년 12월에 백혈병 환자들과 히말라야를 등반한다.

  • 2006년 4월에 굿네이버스 친선대사가 된다.

  • 2007년 7월에 저소득층 아동들을 돌본다.

  • 2008년 3월에 <최진실의 진실과 구라>에서 동성애를 다루고 싶다고 한다. ​

  • 2008년 3월에 최진영에게 베트남 봉사활동을 권하고 최진실은 드라마 촬영 중이라 2009년에 갈 계획을 세운다. 최진영은 최진실 사망으로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2008년 11월에 베트남 봉사활동을 다녀온다.

  • 2008년 7월에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나 일본군 위안부 발뺌에 대해 질타한다.​

  • 2008년 10월 1일 북측 아동들을 위한 자선사업,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한다.# 1989년 영화 '남부군'(1990년)을 찍으면서 남측 반공교육의 문제점을 인식한다.

  • 2008년 10월 1일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한다.

3. 사망[편집]

매니저 배병수의 사망과 관련된 거짓 소문을 겪은 바가 있었고#, 이혼 과정에서도 유책 배우자라는 거짓 소문을 겪은 바 있으며[4], 배우 안재환의 사망과 관련된 거짓 소문도 겪었다.[5] 이러한 끝모를 허위사실 유포에 심적으로 큰 고통을 토로하다가, 결국 2008년 10월 2일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사망 후 산기슭에 위치한 사립 묘원에 묻혔다. 광고 모델 최진실은 2심 판결에 불복한 광고주 <신한>으로부터 소송을 당해 3심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3.1. <신한>의 기괴한 논리[편집]

2004년 8월 1일 최진실은 자택에서 범죄의 피해자가 된다. 범죄의 형태는 폭행. 당연히 최진실은 얼굴을 다쳤고 집안 내부도 어질러졌다. 직접 보지 않아도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면 누구나 추측할 수 있는 상황인거다. 그리고 피해자는 필요하면 그 모습을 공개할 수도 있는거다. 실제 최진실은 그렇게 한다. 왜? 범죄자가 여론조작질도 하고 다녀서.[6]

근데 뜬금없이 2004년 11월에 광고주 <신한>은 광고 모델 최진실이 다친 얼굴과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금을 청구한다. <신한>은 그 범죄 현장이 '가정폭력 현장'이 아니라 '교통사고 현장'이었어도 소송을 제기했을까? 또 그 범죄를 '배우자'가 아니라 '조직폭력배'로부터 당했어도 소송을 제기했을까?

범죄 '피해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신한>의 기괴한 논리대로 따져 보자. 피해자의 반의어는 가해자. 피해자가 소송감이면 가해자는 추앙감? 그래서 최진실이 범죄 '가해자'였으면 잘했다고 칭찬하며 보너스라도 줬을 것인가?

<신한>은 범죄 피해자에게 '기업의 이미지 실추' 라는 어처구니 없는 짐을 지운 것. 근데 계약 종료 후에도 <신한>이 최진실의 사진이 박혀 있는 쇼핑백과 브로셔를 계속 사용한 것은 '기업 이미지 실추'에 대해 걱정해서 소송을 건 것이 아니라는 자백.#

이후 대법관 박시환도 이 기괴한 논리에 편승하는 걸 보게 됨. 국가가 범죄자 편이라는 자백.

4. 사후[편집]

  • 2008년 11월에 청룡영화상에서 '명예 인기 스타상'을 받게 되고 영화 '남부군'에 같이 출연한 배우 안성기가 대신 이 상을 수상했고, 2008년 12월 MBC 연기대상에서 '공로상'을 받게 되고 텔레비전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 같이 출연한 배우 정준호가 대신 이 상을 수상했다.

  • 2009년 8월에 최진실의 유골함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한 남성 자영업자가 최진실이 자기에게 빙의해 지금 묏자리가 답답하니 자신을 꺼내달라고 부탁해서 유골을 훔쳤다고 한다.

  • 유골을 되찾은 후 유족들은 2009년 9월에 유해를 재안장하면서 묘원 내부에 최진실을 기념하는 공간을 꾸몄다. 참배객들이나 등산객들은 그 공간에서 최진실을 추억하기도 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다.

  • 2010년 3월에 남동생 최진영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최진실의 묘 옆에 안장되었다. 각자의 묘 위에는 각자의 얼굴이 담긴 비석이 세워져 있고 그 두 얼굴은 서로 바라보며 웃고 있다.

  • 2011년 어머니 정옥숙은 생전에 거짓 소문에 시달린 딸과 아들을 위해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하였다. 이 에세이에는 최진실과 최진영 남매의 어린 시절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생애가 개괄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제목은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 2012년 9월에 아들 최환희와 딸 최준희가 KBS <남자의 자격> '패밀리 합창단'에 함께 출연했다. 최환희는 '섬집아기'를, 최준희는 '하늘나라 동화'를 불렀고, 듀엣곡으로는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을 불렀다. 이들 남매는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을 고른 연유에 대해 모친의 생일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2013년 5월에 최준희는 아프리카TV에서 개인 방송을 하였는데, 방송 채팅창에 최진실과 최준희 모녀를 모독하는 글이 도배되어, 이들 악플러들은 사회적 공분을 샀다. 이후 큰 상처를 받은 최준희는 방송을 중단했다.#

  • 2013년 9월에 최환희는 제주도에 있는 국제중학교에 입학했다.#

  • 2013년 9월 9일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에서 최진실의 사망에 대한 언론의 선정적 보도 행태가 베르테르 효과를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 2013년 11월 17일 방영된 MBC <섹션TV 연예통신>에서 '연예가 5대 사건' 중 '최진실의 사망'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최진실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4.1. 친족법 개정[편집]

최진실은 단독 친권자였다. 단독 친권자의 사망은 관행상 생존 부모의 친권 자동 부활로 여겨졌다. 하지만 단독 친권자가 사망하면 생존 부모의 친권이 자동으로 부활한다는 법 조항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죽은 거나 다름없던 생부가 갑자기 나타나 최환희와 최준희의 재산을 관리하겠다고 나대자 이런 인간 말종들이 입질조차 못하도록 친족법을 개정하자는 여론이 형성된다. 2011년 친족법이 개정되어 단독 친권자 사망시 생존 부모 친권 부활과 관련하여 생존 부모에 대해 가정법원이 자격 심사를 하도록 규정하였다. 이 법의 시행은 2013년 7월부터.

5. 사건, 사고[편집]

최진실/사건사고를 참조하자. 해당 문서는 최진실이 논란을 일으켜서 만들어진 문서가 아니다. 타인에 의해 벌어져 최진실이 피해를 입은 사건사고를 정리한 문서다.

6. 여담[편집]

  • 정옥숙의 외가는 시골에서는 부자에 속하는 집안이었다. 최진실의 외할아버지가 한국전쟁이 벌어지던 와중에 벌어진 이념전쟁의 희생자였던 반면에 최진실의 친할아버지는 경찰 공무원이었다.

  • 1990년대 시절의 배우 최진실, 배우 김희애, 배우 채시라 등을 두고 2000년대 이후 언론에서는 '트로이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7]

  • 1992년 '저축의 날'에 대통령 표창장을 받는다. 대통령 노태우는 저축유공자 최진실을 청와대 오찬에 초대한다.

  • 1992년 KBO 한국시리즈에서 시구한다. 한국시리즈 연예인 시구는 최진실이 최초.

  • 김영삼대통령긴급명령으로 1993년 8월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된다. 최진실은 금융실명제 홍보 모델로 발탁되어 투명한 금융 흐름이 가능해졌음을 전 국민에게 알린다. 금융실명제 정착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1994년 김영삼은 최진실을 청와대 오찬에 초대한다.

  • 인기 스펙트럼이 넓어 거의 모든 연령대의 유권자들한테 호감형이었다. 서민 이미지가 아쉬웠던 신한국당에서 1996년 최진실을 자당 모델로 발탁한다. 최초의 연예인 정당 모델이 된 거다. 이로써 정치가 최진실을 타고 일상으로 침투하는 생활 정치가 도래하게 된다.

  •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유책배우자로 몰려 세상으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아 자존감에 상처를 받게 되고 이를 선행으로 치유하게 되는데 도시락 수십 개를 직접 싸서 노숙인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보육원을 방문하며 입양에 관심을 두기도 한다.

  •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고수(高手)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데 이혼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일타다피의 성과를 낸다. '이혼 소송 당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며 자기를 유책배우자로 몰았던 자들을 보기좋게 제압해 버렸다. 그 결과 2004년 이후에도 승승장구하게 된다. 서병기 등 적대 세력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 건 덤.

  • 2007년 SBS <좋은 아침>에 배우 신애 등과 출연해 자신이 즐겨 만들어 먹는 '참치고추장수제비'를 소개했다. 최진실이 사망하자 신애는 최진실이 해주던 김치찌개와 수제비를 못 먹게 됐다고 하며 최진실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8]

  • 2008년 1월에 개정된 친권법이 시행되자 자녀들이 자신의 성인 '최'를 따르도록 한다. 이를 지상파 메인 뉴스에서도 관심있게 다루면서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다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다. 이로써 대한민국 친족법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자리매김 한다. 자녀들의 성을 변경할 때 딸의 이름을 '준희'로 바꾼다. 애시당초 최진실은 아들 '환희'와 운을 맞추어 딸의 이름도 '신희'로 지으려고 했으나 임신부 폭행범 조성민의 만용을 일단 받아들여 '수민'으로 정했었다. 그것을 바로잡아 더 나은 이름을 부여한 셈이었다. 조주형은 이 일과 관련해서 최진실한테 까불다가 이렇게 걷어차임.#

  • 악플을 당한 역사가 의외로 길다. 인터넷 활성화 이전 PC 통신 시절부터 악플러들의 공격 대상이었는데 "어떻게 그 정도 뒷담화 가지고 거물급 연예인이 일반인인 날 고소해서 경찰서로 오라가라 하냐"며 징징대는 한심한 글을 꽤 자주 볼 수 있었다. 물론 자기가 뭘 했는지는 쏙 빼놓고 작성한 글[9]인데 온라인상에서의 모욕과 명예훼손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시절이라 최진실씩이나 되는 연예인이 뭐 그런 걸로 일반인을 경찰서로 부르냐며 악플러 편을 드는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 2008년 9월에 악덕 사채업자라는 거짓 소문이 떠돌 때 이와 관련되어 인터넷상에서 쏟아져 나온 악성 댓글들을 접하며 큰 위기감을 느낀다. 최진실은 이미 20년간 대중의 허위사실유포행위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자결(自決)로써 무려 20년간 벌여온 대중과의 갈등을 마무리지어 버린다. 이 자결의 여파로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사상 초유의 베르테르 효과가 발생한 거다.

  • 생전에 황색언론의 밥이었다. 최진실의 사망 후 그 여파로 뒤를 따라간 사망자들이 많았던 게 언론의 책임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옐로 저널리즘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알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치듯 언론의 역할을 조명하는 데 일조했다.

  • 생전에 드라마 집필을 꾀하고 드라마 가제 <사노라면>을 기획했다. 이 드라마에 배우 천정명 등을 캐스팅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드라마 작가로서 입봉도 못한 채 사망하면서 드라마 시놉시스만 남기고 이 시도는 미완인 채로 남았다.

  • MC몽 정규 5집 〈Humanimal〉의 수록곡 '진실은 천국에서라도'라는 곡은 최진실을 추모하는 곡이다.

  • 자전에세이 '그래, 오늘 하루도 진실하게 살자'(1998년)가 있다. 이 책은 최진실 사망 직후에 출판사에서 재출간하였으나 최진영이 이에 항의해서 출판사에서 모두 회수했다.

  • 배우 최재성과는 6촌 관계이다. 최재성의 아버지 최상현은 최진실의 아버지 최국현과 4촌 관계로 최진실의 5촌 당숙이 된다.

  • 사망 전에는 인터넷에서 "사실이냐?"는 뜻으로 "최진실?" 혹은 "최트루?"라는 식의 문장이 유행하며 널리 쓰였었다. 하지만 사망 이후[10] '허참', '트루' 등으로 대체되어 쓰이다가 '레알'이라는 단어로 완전히 대체된 상태이다.

  • MBC 공무원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유독 MBC에서 많은 작품을 찍었다.[11]

  • 데뷔 초기 광고에서 성우 권희덕이 최진실의 목소리를 담당한다.

  • 본관은 전주 최씨다.

  • 2008년 10월 4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 예배한다.

7. 출연 작품[편집]

7.1. 드라마[편집]

방영 연도

방송사

제목

배역

1988년

MBC

조선왕조 5백년 한중록

장미

1989년

MBC

잠들지 않는 나무

찬주

조선왕조 오백년 파문

박선아

제 5열

당신의 축배

김범경

1990년

MBC

각시방에 사랑 열렸네

오도희

두 권의 일기

양해리

추억여행

심미리

우리들의 천국

승미

1992년

MBC

약속

정인

질투

유하경

매혹

이지훈

1993년

MBC

폭풍의 계절

이진희

1994년

SBS

사랑의 향기

영진

1995년

SBS

아스팔트 사나이

오화련

째즈

채송화

MBC

아파트

차나리

1997년

MBC

별은 내 가슴에

이연이, 소피아

그대 그리고 나

윤수경

1998년

MBC

추억

서인영

1999년

MBC

장미와 콩나물

손미나

2002년

MBC

그대를 알고부터

이옥화

2004년

MBC

장미의 전쟁

오미연

2005년

KBS

장밋빛 인생

맹순이

2007년

MBC

나쁜 여자 착한 여자

이세영

2008년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홍선희

7.2. 영화[편집]

개봉 연도

제목

배역

관람인원

1990년

남부군

민자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2

다혜

꼭지딴

혜지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미영

1991년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수잔 브링크

1992년

미스터 맘마

영주

227,294명

숲 속의 방

소양

1993년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

유라

69,743명

1994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민주

마누라 죽이기

소영

344,900명

1995년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

주영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은재

1996년

고스트 맘마

인주

257,688명

1997년

베이비세일

지현

홀리데이 인 서울

교환수

편지

정인

724,747명

1999년

마요네즈

아정

2000년

단적비연수

7.3. 광고[편집]

8. 수상[편집]

연도

시상식

수상

작품

1990년

제11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남부군

1990년

제11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1991년

제15회 황금촬영상

신인여우상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91년

제29회 대종상

신인여우상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91년

제12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1992년

제13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1992년

TV저널 올해의 시상식

탤런트부문 최우수상

질투

1992년

MBC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질투

1993년

제29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

질투

1993년

제31회 대종상

여자인기상

1993년

제14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1993년

TV저널 올해의 시상식

탤런트부문 우수상

폭풍의 계절

1993년

MBC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폭풍의 계절

1994년

제3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1994년

제32회 대종상

여자인기상

1994년

제18회 황금촬영상

인기여우상

1994년

제15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1994년

S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사랑의 향기

1995년

제3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

마누라 죽이기

1995년

제33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마누라 죽이기

1995년

제16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1995년

S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째즈, 아스팔트 사나이

1997년

제3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

고스트 맘마

1997년

제18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1997년

MBC 연기대상

베스트커플상

별은 내가슴에

1997년

MBC 연기대상

대상

별은 내가슴에, 그대 그리고 나

1998년

그리메상시상식

최우수 여자연기자상

그대 그리고 나

1998년

제25회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

그대 그리고 나

1998년

제19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1999년

제3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

마요네즈

2005년

KBS 연기대상

베스트커플상

장밋빛 인생

2005년

KBS 연기대상

여자 네티즌상

장밋빛 인생

2005년

K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장밋빛 인생

2006년

제42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장밋빛 인생

2008년

제29회 청룡영화상

명예 인기스타상

2008년

MBC 연기대상

공로상

2014년

제3회 에이판 스타 어워즈

공로상


[1] 현저동[2] 여담이지만 정옥숙은 최국현에게 아들 두 명이 있다는 사실을 결혼 후에 알았다. 이 결혼이 최국현의 재혼인지는 드러나지 않았다.[3] 당시 무명 개그맨에 지나지 않았던 유재석을 최진실은 평소 자신과 친분이있던 PD에게 MC로 적극 추천하였는데, 그 프로그램이 바로 목표 달성 토요일의 <동고동락>이다. 따라서 최진실은 유재석에게 있어서 정말 은인과도 같은 존재다. 훗날 유재석은 <해피투게더 시즌 3>를 통해 최진실에게 고마움을 전했고, 또한 최진실의 장례식에도 참석한다.[4] 2002년 12월 조성민은 언론을 통해 최진실이 유책 배우자라고 주장했으나 이후 3년 동안 그 주장을 입증하지 못하는 걸 대중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허위사실유포자임을 입증한다.[5] 최진실이 수십 억 원을 안재환에게 빌려주었고 그 돈을 갚으라고 압박을 가하자 안재환이 자살했다는 쪽지가 유포된다.[6] 안티 카페 애들은 이 때 공개된 최진실 얼굴을 카페 대문에 거는 파렴치한 짓하며 최진실 조롱. 최진실 죽을 때까지 그 짓. 기레기들도 이 사진 남용하며 최진실 조롱. 최진실 사후 TV조선이나 채널A 같은 종편은 범죄자의 여론조작질도 퍼뜨리고 이 사진도 굳이 방송으로 내보내며 최진실 조롱. 인간 말종짓 작렬.[7] 인기로 놓고 보면 최진실이 압도적이었다. 트로이카라는 말과 관련해 최진실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냐고 하면, 1990년대 트로이카라고 해서 언론에 언급되고 있는 배우로는 영화쪽으로는 강수연, 최진실, 심혜진이고, 방송쪽으로는 위에서 언급된 3명인데 최진실은 이 2개에 모두 들어가 있다. 영화와 방송 어느 한쪽에 편향되지 않고 두 분야에서 타 배우를 압도하는 인기를 누렸다는 점에서 최진실이 1990년대 초, 중반에 넘사벽의 인기를 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진실이 누렸던 인기를 가진 배우의 계보는 이후 김희선으로 넘어가지만, 김희선의 경우에는 최진실과 달리 영화에서의 흥행이 많이 아쉬운 편이다.[8]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해서 수제비를 먹는 건 질색이라고 했다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1991년 MBC 어느 방송에 나와 "아직도 수제비를 먹는 사람도 있어요?"라고 말했다고 하고, 이에 대해 언론은 수제비 좋아하는 이들이나 식당들이 분노했다고 기사를 썼다고 한다. 어느 기자는 가난한 시절을 잊는 것을 넘어 남까지 비웃는다며 칼럼으로 최진실을 비난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최진실은 자신이 워낙 수제비를 질리게 먹어서 그랬다고 해명하기도 했다고 한다.[9] 진짜 거두절미하고 자기가 경찰서로 불려간 상황부터 쓴다. 무슨 뒷담화를 했냐고 질문하는 글에는 결코 대답이 없다.[10] 사망 초기에도 그대로 사용하다가 고인드립 취급받기도... [11] 텔레비전 드라마 데뷔작 <조선왕조 오백년 한중록>(1988년), 출세작 <질투>(1992년), 연기 대상작 <그대 그리고 나>(1997년), 마지막 작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년) 등 작품 대부분이 그러하다. 1990년대에 MBC와 전속 계약을 맺는다. 배우가 매니지먼트사가 아니라 방송사와 전속 계약을 맺은 거다. MBC를 드라마 왕국으로 이끈 주역이다. 애초에 MBC 특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