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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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플레이션(超inflation) / Hyper-Inflation

1. 개요2. 시작과 끝
2.1. 원인2.2. 종결
3. 실제 사례
3.1. 독일
3.1.1. 이야기
3.2. 짐바브웨3.3. 헝가리3.4. 중화민국3.5. 베네수엘라
3.5.1. 원인3.5.2. 고액권의 등장3.5.3. 파급3.5.4. 화폐개혁
3.6. 온라인 게임에서
4. 가공 매체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인플레이션이 악화되어 더 이상 수습할 수 없는 상태일 때 사용하는 경제학 용어.

보통 초인플레이션은 '한 달 사이에 전 달 대비 물가가 50% 이상 상승'한 것을 말한다. 즉, 1년에 물가가 129.75배, 아니면 50일마다 물가가 2배로 뛸 때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고 한다. 느낌이 안 온다면, 이 자료에 따른 1990년부터 2015년까지의 25년간 한국의 물가상승률을 다 합친 게 대략 100%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지난 25년 동안 물가 오를 게 50일만에 뛰는 셈.

쉽게 말해서 4천원에 먹는 자장면을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내년엔 40만원, 내후년엔 4천만원을 내고 먹어야 한다. 유머집 등에 소개되어 있는 '화장실에서 휴지가 없어 옆 칸에 있는 사람에게 돈을 줄 테니 휴지를 팔라고 하자 그 돈으로 닦으라고 했다'는 유머가 이 상황에서는 유머가 아니다.(…)

2. 시작과 끝[편집]

2.1. 원인[편집]

초인플레이션의 주 원인은 전쟁이나 국가부도, 자연 재해, 내란, 사회적 공황, 갑자기 닥친 식민지 청산, 독립 같은 "국가비상사태"인 경우가 많다. 물론 경제학적 지식이 전무한 인간이 경제에 관련된 고위직 공무원이 될 경우에도 벌어진다. 예를 들어 로버트 무가베의 경우 순수 인문학 전공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사실 간단한데 화폐발행 주체인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심각할 정도로 훼손되어 화폐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히 하락한 반면, 화폐 발행 규모는 유지되거나 심지어 커지는 경우 발생하게 된다.

생각 없이 돈만 찍으면 돈의 가치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떨어지므로 이 꼴 나기 좋다. 이러한 인플레이션이 벌어진 나라들은 인플레이션 수치 상승에 민간의 인플레이션 기대가 반영되어 정부가 찍어내는 그 이상으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사람들이 돈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니까 돈을 저축하지 않고 생길 때마다 쓰거나 물건을 사재기하기 때문. 한마디로 찍어내는 것보다 더 빠르게, 가속화된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심지어 전쟁 때는 적국의 경제를 망가뜨리기 위해 상대국의 지폐를 위조해 대량 살포하는 경우도 있다. 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나치 독일은 서로 상대국에 위조지폐를 뿌리려고 시도했으며, 일본 제국도 중국 대륙에 거액의 위조지폐를 살포하였다. 그런데 당시 국민당 정부가 중일전쟁 전비 마련을 위해서 통화를 남발하여 스스로 초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버리면서 일본이 준비했던 위폐들은 효과를 발하지 못했다.(…) 당대의 중국에서는 10 ~ 15억 위안이 통용되고 있었고, 일본이 항공모함 하나 찍을 돈인 8천 9백만 엔을 들여 40억 위폐 위안을 만들었는데, 국민당에서 당시 통화량의 100배를 넘는 1890억 위안을 찍어서 뿌렸다. 이거 남 얘기만은 아니다 당시 일본의 계획 입안자의 말: 중국은 실로 사람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나라다.(…)

한국에서는 해방 직후 조선총독부에서 일본인들과 일본 기업 퇴각 자금 마련을 위해 통화를 남발하거나 한국전쟁 전후로 북한남한에 대량으로 위조지폐를 뿌려 초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 밖에도 다수의 사례가 있다. 블로그

전세계 모든 국가가 위조지폐를 최대한의 중형으로 처벌하는 것은 이런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초인플레이션을 겪는 주민들에게는 고통이지만, 초인플레이션은 경제학자들의 좋은 연구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2.2. 종결[편집]

초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정부의 지속적인 통화 발행은 통화발행 외에는 정부의 재원 조달 수단이 없기 때문에 시도된 것이다. 민간에서는 정부의 지속적인 통화발행과, 역시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예상한다. 화폐수요(L)는 인플레이션 기대에 영향을 받아 감소하는데 이는 한층 더 높은 물가상승을 유발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경기침체와 (실질)세수감소를 막기 위해 통화량을 더 늘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은 지속된다.

이러한 초인플레이션은 사람들이 향후 오랜 기간 통화발행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정부재정의 건전성과 신뢰성을 회복하지 못한 채, 통화정책만으로는 초인플레이션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초인플레이션도 언젠가는 종식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경제학자 토마스 사전트는 저서 '초인플레이션의 종말'에서 오스트리아, 헝가리, 독일, 폴란드 등 역대 초인플레이션과 그 종식 사례를 연구했는데, 이들 국가에서는 다음과 같은 공통된 특징이 나타났다. 첫째, 초인플레이션 진행 도중 물가상승이 통화량증가를 선행한다. 둘째, 초인플레이션은 일정시점에 갑자기 사라진다. 셋째, 초인플레이션 종료 이후에도 일정기간 통화량 공급은 증가한다.

대부분의 초인플레이션 현상은 '재정개혁'으로 종식되었다. (새고전학파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지만, 초인플레이션의 종식은 종종 재정적인 현상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모 국가는 위의 사항과 일부 다를 수 있다(...). 이 나라도

3. 실제 사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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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플레이션으로 유명한 짐바브웨10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 사진. 이 지폐를 발행할 당시 100조 짐바브웨 달러는 한국 환율로 1만 5천원 내외에 불과했다. 그리고 마지막 공식 환율을 적용하면 0.28센트. 그러니까 이거 하나 가진다고 부자가 되는 게 아니다. 달걀 하나도 못 사는 가격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거 없고 종이쪼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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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헝가리의 청소부가 쓰레기 지폐더미를 빗자루로 쓸고 있는 사진. 아무도 저 지폐더미를 주우려고 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다. 참고로 이쪽의 세계 기록은 헝가리가 갖고 있다.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에서도 1945년 일제의 항복선언 직후 한 가마니 가격이 1945년 11월~1946년 3월까지 무려 55배가 치솟았다고 한다. 4개월에 55배면 복리로 환산할 경우 1년에는 무려 166,375배가 된다. 이 사태의 원인으론 미국의 명령으로 1945년 8월 15일 이후에도 계속해서 행정권을 행사하던 조선총독부가 자국민의 귀환 자금을 위해 조선은행권을 무차별 방출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여기에 당시 한반도를 통치하던 미 군정청의 미숙한 통치능력도 한몫 거들었다.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서울특별시에서는 북한위조지폐 대량 살포로 밀가루 한 말 가격이 1950년 7월 ~ 1950년 10월 기간에 120배가 뛴 적도 있다.

1973년 10월 칠레에서 한 달 동안 88%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한 적도 있다. 이 목록에 나온 나머지 사례에 비하면 믿기 힘들 수준의 안정적 물가지만.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벌어지는 동안 연방 전체 및 구성국에서도 이걸 피해 가지 못했다. 1993년 한 해 동안 물가가 1027배 이상 뛰었고 1994년 1월 한 달 동안 20 배가 넘는 물가 상승을 경험했다. 이 때 발행된 5000억 디나르는 KBS 스펀지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방송 당시 한국 환율로 환산하면 무려 1원. 스르프스카 공화국에서도 초고속으로 물가가 올라서 1994년 1월 한 달 동안 300만 배나 물가가 뛰었다.

남아메리카에선 1990년~1992년 기간 동안 초인플레이션을 겪은 전력이 있다. 예를 들어 1990년 니카라과 코르도바의 환율이 30,000,000C$=1$까지 치솟았다.

터키도 2004년까지 초인플레이션까진 아니어도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의 결과로 2004년 12월 1,339,000리라=1$의 막장 환율에 이르르자 결국 1,000,000 구 리라 = 1리라로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1779년 11월 미국에서도 당시 대륙회의가 발행한 화폐인 대륙화폐(Continental Currency)의 월간 인플레이션율이 47%에 달해 간신히 초인플레이션 기준(50%)은 안 넘은(...) 사례가 있다. 이 때문에 'Not worth a continental'이라는 영어 숙어가 생겨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로 인해 세계 각국 정부가 묻지마식으로 을 쏟아붓고 있는데, 닥터 둠으로 불리는 마크 파버는 미국마저도 짐바브웨 꼴이 날 것이라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2009년에는 윗동네화폐개혁을 잘못 해서 초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고 카더라. 저 동네가 워낙에 숨기는 게 많고, 그렇다고 정보가 잘 퍼지지 않으니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덕분에 화폐개혁을 주도했던 박남기 계획부장이 공개 총살당했다.

3.1. 독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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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어린이들이 가치가 무의미해진 돈다발을 쌓으며 놀고 있는 모습 (1923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불과 약 3년(1919년~1921년)만에 물가가 무려 1조 배나 올랐다. 독일이 제1차 세계 대전에 패한 이후로 각종 생산시설이 붕괴된 데다가 전쟁 기간 동안 필요한 재원을 조달한다며 엄청나게 통화를 발행하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었다. 독일의 전시 국채 상환 액수만으로도 연합국의 배상금을 초과할 정도. 연합국에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지폐를 찍어내지는 않았다. 연합국이 요구한 배상금은 금 마르크로 지폐는 해당이 안 된다. 거기에 더해 패전 뒤에 공업력이 떨어져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지는 못하는데 반해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생긴 현상. 그게 어느 정도였냐 하면, 땔감을 사는 것보다 지폐를 땔감으로 쓰는 게 오히려 더 알뜰하고, 벽지를 사느니 그냥 지폐로 을 도배할 정도였다. 실제 지폐로 도배를 하는 사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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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니 방석을 사느니 문자 그대로 돈더미로 방석을 만드는 게 더 낫다고 할 수도 있겠다. 심지어 어떤 강도는 돈이 꽉 찬 바구니를 훔친 다음 길거리에 바구니 속에 있던 돈을 뿌리고 바구니만 들고 도주했다고 한다. 바구니가 바구니 속의 돈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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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발행된 지폐.지폐 찍을 돈도 없어서 1,000 마르크 지폐 위에 10억 마르크라고 고쳐 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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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미를 장식할 이 동전. 이 동전은 무려 1조 마르크짜리 동전으로 인류 역사상 최고액면의 동전이라고 한다… 이것이 10억 아니냐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미국에 한정되는 것이고, 독일에서는 1조를 billion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저 동전에 새겨진 사람은 슈타인 남작인데, 나폴레옹에게 프로이센이 패전하여 엄청난 배상금의 지불과 군대 축소를 겪게 된 후 하르덴베르크 수상과 함께 프로이센을 재건하고 후일 빈 회의에서 폴란드-작센 영토와 베스트팔렌을 획득해 1815년 이후 프로이센을 유럽의 강대국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사람이다.

고종황제가 독일 은행에 맡겨둔 52만 마르크의 내탕금도 휴지조각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물론 내탕금의 주인인 고종 황제는 이미 죽었고 일제가 이미 고종 황제도 모르는 사이에 문서를 날조하여 그 내탕금을 탈취한 후였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다는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가 고종 황제로부터 부여받은 마지막 임무가 바로 내탕금을 찾아오라는 것이었지만 끝내 그 내탕금은 찾지 못했다.

어쨌든 1920년대 독일에는 억만장자가 아닌 사람이 없었다. 개나소나 다 억만장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가 배고픈 억만장자들이었다.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돈은 몇 억, 몇 십억, 몇 백억씩이나 되는데 그 돈으로는 빵 하나, 우유 하나 사먹기도 버거울 정도였으니까. 이 인플레이션은 바이마르 공화국1923년 11월 렌텐마르크라는 새 화폐를 발행하고 옛 마르크와 1조 대 1의 비율로 화폐교환을 실시하면서 겨우 수습될 수 있었다.이를 위해 농지와 산업시설을 담보로 하는 렌텐은행이라는 새 은행을 설립하였다.

이 초인플레이션의 충격이 너무 커서 바이마르 공화국이 히틀러 때문에 무너질 때까지 이런 인플레이션이 지속되었다거나 1929년부터 시작한 경제 대공황 때 다시 일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심지어 88만원 세대 같은 유명 대중서에서도 그런 병크를 저지른 적이 있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바이마르 초기의 초인플레이션은 렌텐마르크를 발행하면서 수습을 했으며, 대공황 때는 본질적으론 '디플레이션'이므로 이런 폭발적인 물가상승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때는 돈가치는 떨어지고, 사람들은 물건을 안 사려고 해서 문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큰 인플레를 겪었고, 유대인 재산 몰수를 지켜 보았던 당시 전쟁을 겪었던 사람들 중엔 은행을 믿지 못해 재산을 현물로 바꾸어 개인금고에 보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사람들이 늙어서 사망하고 나서 자식들이 유품 정리를 하기 귀찮아서 대행업체에 맡기고는 했는데, 집구석 정리하다가 금덩어리나 보석이라도 나오면 다 내꺼ㅋ가 성립이 돼서 외국인(주로 터키계) 노동자들이 이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루르 점령 참조.

3.1.1. 이야기[편집]

알베르트 슈페어의 자서전에 의하면 슈바르츠발트라는 지역의 물가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이곳의 물가는 정말 싸다! 하루 숙박에 40만 마르크, 저녁 한 끼에 180만 마르크, 우유 한 통에 25만 마르크." 추가적으로 나중에 물가가 최고조에 도달했을 때에는 레스토랑의 한끼 식사가 100~200억 마르크, 학교 구내식당에서도 저녁 한끼가 10억 마르크, 극장표가 3~4억 마르크였다.

또 이런 이야기들도 있다.

어떤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성실하게 일해서 번 돈을 꼬박꼬박 저축해 두었고, 동생은 집에서 술이나 마시며 빈둥빈둥 놀고 있었다. 그런데 1차대전이 끝나고 초인플레이션이 터졌고, 형이 번 돈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다행히 동생이 마시고 모아 둔 술병이 더 값어치가 나가게 되어 어떻게든 생계는 유지할 수 있었다.

독일 어느 도시에 한 과부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 스위스로 건너가 살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독일은행에 60만 마르크[1]를 예금해 놓고 스위스로 떠났다. 4년만에 독일로 다시 돌아온 그녀의 집에는 은행으로부터 3통의 우편물이 와 있었다.

첫번째 것은 평소에 잘 알던 은행원이 보낸 것이었는데, "부인이 당은행에 맡기신 거액의 예금을 차라리 다른 곳에 투자하시길 권합니다. 마르크화의 가치가 떨어질 전망이니 다른 실질적인 것에 투자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언제 시간이 나시면 저와 상의하도록 하십시오."

두번째 편지는 다른 은행원이 쓴 것이었는데, "귀하의 예금은 액수가 너무 적어서 은행 입장에서 더 이상 수지타산이 맞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예금을 찾아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온 편지는 그녀가 스위스에서 돌아오기 몇 주 전에 보낸 것으로, "아무리 연락을 드려도 소식이 없어서 귀하의 구좌를 임의로 폐쇄했습니다. 현재 저희 은행에서 보유하고 있는 소액권이 없어서 백만 마르크짜리 지폐를 동봉합니다."

그래서 이 과부는 지폐를 찾으려고 봉투를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지폐는 보이지 않고 겉봉투에 우체국 소인이 찍힌 백만 마르크짜리 우표만 붙어 있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60만 마르크의 예금이 4년만에 우표 한 장 값에도 못미치게 된 것이다.


출처

또 당시를 다룬 단편소설로 슈테판 츠바이크보이지 않는 소장품이란 작품이 있다. 렘브란트를 비롯한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어느 장님 수집가에 대한 소문을 들은 주인공이 그 작품들을 보고 싶어 늙은 수집가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그런데 자신을 열렬히 환영하는 수집가의 뒤에서, 그의 아내와 딸이 사색이 되어 "손님이 배가 고프실 게 틀림없으니까, 식사를 하고 먼저 작품을 보여드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노인을 뜯어말리는 것이 아닌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주인공은 배가 고프다는 핑계를 대고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집가의 딸이 그를 찾아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편은 세계대전 중에 전사하고 벌이가 시원치 않아 장님인 아버지 몰래 작품을 내다 팔고 비슷한 크기의 종이로 바꿔치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품을 팔아 거액을 받긴 했으나 며칠 만에 그게 휴지조각 값이 되어버렸고 다시 다른 작품들을 내다 팔았으나 죄다 며칠 만에 휴지조각만도 못한 가격으로 추락하면서 엄청난 가치를 가진 작품들을 죄다 팔아버리고도 빵 하나도 사지 못할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돈이라도 많이 받았으면 모르겠는데 거의 길거리에 내다 버리다시피 한 꼴이 되어버려서 아버지에게 말도 못하고 남은 식구들만 사색이 되어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주인공이 작품을 보러 와서 "이게 웬 백지들입니까?"라고 하면 아버지는 그야말로 심장마비로 그 자리에서 돌아가셔도 이상할 것이 없었고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제발 식사를 하고 작품을 보자고 사정을 한 것이다.

어쨌거나 소설의 결말은 주인공이 백지들을 가리키며 기뻐서 설명을 하는 장님 수집가에게 열렬히 호응을 해주며 작품들을 칭찬하고 수십년간 만져온 무게와 작품의 무게가 다른 것을 보고 이상함을 느낀 수집가에게 "이러 이러한 점이 이 작품의 특징이 아니냐?"라고 재빨리 거들며 위기를 넘긴다. "1차 대전에서 패배한 뒤로 이렇게 행복해하는 독일인을 본 적이 없다."는 주인공의 말을 끝으로 소설은 끝난다.

3.2. 짐바브웨[편집]

짐바브웨는 인플레이션이 상상을 초월했던 걸로 유명했다. USD로 1,000억 달러라면 2009년 1월 환율로 100조원이 훨씬 넘어간다. 그러나 짐바브웨 달러로 1,000억 달러는 고작 달걀 세 개 값밖에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짐바브웨 달러 지폐를 보면 0이 무식하게 많이 붙어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이게 왜 무섭냐면 예를 들어 오늘 1,000억 짐바브웨 달러를 벌었다고 치자. 그럼 오늘 물가로는 이 1,000억 짐바브웨 달러에 달걀 3개를 살 수 있는데, 이 돈을 다음 달까지 가지고 있으면 1,000억 짐바브웨 달러로 달걀 3개는 커녕 1개도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짐바브웨의 인플레이션율은 2008년 1월~7월간 2억%였다. 즉 오늘 짐바브웨에서 1 짐바브웨 달러에 산 물건이 있고 그걸 1년 뒤에 되팔면 200만 짐바브웨 달러를 손에 쥘 수 있다. 만약에 이걸 한국식으로 계산해 보면, 500원 하던 두부 1모의 가격이 1년 뒤 10억원으로 폭등하는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짐바브웨에서 물건 사서 판 다음 몇천억 짐바브웨 달러를 손에 쥐고 "난 부자다!" 할 사람은 없겠지 짐바브웨 화폐 개혁 전인 2008년 7월 기준으로 환율은 1달러 = 69,484,070,056 짐바브웨 달러, 즉 700억 짐바브웨 달러를 벌어와도 당신은 1달러 벌어온 거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1천억 짐바브웨 달러를 은행에 가서 바꿔달라고 내밀면 아마 1,500원을 내 줄 것이다. 그래도 4자리 수인 게 어디냐 물론 이것도 2009년 얘기고 지금은 그냥 종이쪼가리... 짐바브웨 달러의 최종 공식 환율은 1달러에 3경5,000조 짐바브웨 달러였다! 고로 짐바브웨 달러 역사상 최고액 화폐였던 100조 짐바브웨 달러를 환전해 봤자 0.28센트이다. 고로 우리 돈으로 100원 가치에도 못 미친다는 뜻이다. 100조 달러가 그 정도인데 1,000억 짐바브웨 달러를 환전해 봤자 2.8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아예 환전이 불가능하다.

2009년 2월에 세계적인 경제잡지인 포브스(Forbes)에서는 짐바브웨의 2008년 초인플레이션을 6.5×10108% = 6,500만 구골%이라고 발표했다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다. 2008년 11월 중순에 최고점 찍었는데 그 때 월 상승률이 1억배에 좀 못 미치는 79억 6천만%.# 10108 %로 오르려면 매달 10억(109)배 가까이 올라야 한다.

그러니까,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큰 수를 표현할 때 '천문학적인'이란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곳의 인플레이션은 이미 천문학에서 쓰는 숫자의 단위를 돌파했다. 리처드 파인만 드립 돋네

그래서 결국 통화발행을 금지하고 달러를 통화로 사용하는 걸로 해결했다. 외국 통화의 유통은 인플레를 해결하는 검증된 방법 중 하나다. 흥선 대원군당백전이라는 실책을 청나라의 돈을 들여오는 것으로 땜질한 바 있다. 문제는 그러고도 완전 수습이 안 됐다. 이유는 간단한데, 청나라 동전 자체가 관리들이 밀수한 동전으로 이것도 악화였다. 당시 화폐인 상평통보 기준 1/3의 가치. 당백전은 6/100의 가치. 청전은 당백전에 비하면 양화이지만, 상평통보에 비하면 악화이기 때문에 문제가 계속된 것이다. 더구나 이게 당백전보다는 부작용이 적다는 이유로 흥선 대원군 지배 시기 동안에는 폐지도 되지 않았다. 폐지된 것은 고종 친정 이후이고, 청전을 폐지한 결과 조선은 디플레이션에 시달렸다. 폐지하기 전에는 화폐불신과 인플레이션에 시달렸고.

3.3. 헝가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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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때 헝가리에서 발행된 1해 (100,000,000,000,000,000,000 = 1020) 펭괴 지폐. 통용되진 않았다.

흔히 초인플레이션으로는 독일이나 짐바브웨의 사례가 유명하지만, 최고 기록을 세운 것은 의외로 헝가리다. 숨겨진 1인자 1923년부터 1924년까지 최대 월 98%의 인플레이션을 자랑했는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나라 전체가 독소간 전쟁으로 말 그대로 평탄화가 되면서 물자는 부족한데 수요는 늘고, 여기에 정부가 아무 생각없이 돈을 막 찍은 결과 1945년부터 1946년까지 15시간당 물가가 2배씩 뛰는 초막장 인플레이션이 또 일어났다. 역사상 평균적으로 2번째로 물가가 빨리 오른 짐바브웨 인플레이션의 경우 1일에 2배씩 뛰었다는 것에 비교하면 별 차이 아닌 것 같겠지만 계산해보면 이는 1달에 1.3경 배(1.3×1017)%의 물가상승이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1944년 6월 30일에 1 미국 달러당 33.5 펭괴이던 환율이 1945년 8월(앞으로 모든 날짜는 일을 명시하지 않으면 그 달 마지막 날)에 1,320 펭괴, 1945년 10월에 8,200 펭괴, 1945년 11월에 108,000 펭괴, 1945년 12월에 128,000 펭괴가 되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1946년의 첫 7개월에 비하면 매우 안정적이었다. 1946년 1월에 795,000 펭괴, 1946년 3월에 175만 펭괴, 1946년 4월에 590억 펭괴, 1946년 5월에 4경 펭괴가 되더니 7월에는 46양 펭괴(4.6×1029)까지 올라갔다.

이에 도무지 버틸 수가 없자 1946년 7월 31일부로 결국 화폐 단위를 펭괴에서 포린트로 바꿨다. 교환 비율도 무지막지했는데 40양[2]펭괴당 1포린트였다. 그 덕분에 1946년 7월 한 달 동안 화폐가치가 2억 7,000만 분의 1로 떨어졌고, 8월이 되자 시중에 있는 모든 펭괴 지폐를 다 합쳐도 당시 환율로 미국 돈 0.1센트밖에 안 되는#, 말 그대로 휴짓조각보다 못한 물건이 되어버렸다.

3.4. 중화민국[편집]

의외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중화민국의 초인플레이션도 꽤나 지독했다. 주요한 원인은 전쟁으로 인한 물자유입 부족과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 때문. 흔히 국민당 정부의 화폐투기로 그렇게 되었다고 잘못 알려졌으나 1945년 이후로 화폐발행이 인플레이션보다 높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중일전쟁 기간 일본은 중화민국의 경제를 날려버리기 위해서 위조지폐를 제조했지만 이 잘못된 경제 정책 때문에 일본이 만든 위조지폐 양보다 수십배나 되는 통화가 유통되어서 쓸모없는 짓이 되어버렸다.

인플레이션 자체는 중일전쟁 발발 직후부터 시작되었으나 1939년 6월까지는 완만하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1939년 6월 이후로 광저우 함락, 주요 철도노선 단절, 왕징웨이 괴뢰정권의 등장, 난닝-하노이 노선의 차단과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이전까지 년당 수십%(...) 정도의 완만한 인플레이션은 순식간에 몇백% 단위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1945년 간신히 전쟁은 승리했으나 하도 지독하게 황폐화 당한 상황에 전쟁에 승리했다고 이전의 문제점들이 한 순간에 해결될 리도 없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동부 연안의 산업 시설들을 가동시켜야만 했으나 소유권을 둘러싸고 또 다시 갈등이 벌어졌다. 우선 화폐문제가 있었는데 왕징웨이 괴뢰정권이 발행한 '저축은행권'과 국민당 정부가 발행한 '법폐'와의 적당한 교환비율 때문에 대공황이 발생한 것이다. 국민당 정권은 '중국의 정통정부'라는 명목으로 법폐의 가치를 높게 책정했는데 문제는 1944년도에 이미 일본군이 국민당 정부의 법폐를 낮은 가치로 저축은행권으로 바꿔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하여 기존의 400위안은 불과 1위안으로 추락되었고, 결과적으로 화폐가 동부로 유입되어 인플레이션을 불러왔다.

또한, 일본 자본이 소유하던 생산 설비의 전후처리 또한 문제가 많았는데 임시로 중앙정부가 관리하면서 원주인에게 환수하는것을 원칙으로 했으나 이러한 방칙을 두고 충칭-청두 지역의 자본가들이 '항일전쟁을 수행한 우리들이 그 보상으로 받아야한다.'라고 주장하였고, 동부 연안가의 자본가들도 '경제를 운영하는것은 우리들이 더욱 능숙하다.'라고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하며 충돌했다. 이에 궁여지책으로 정부는 기업을 국영화시켰으나, 이는 관료자본의 부패를 가져왔고 국민당 정권에 강한 반발을 가져와 국공내전의 패배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한편 중일전쟁을 거치면서 '명확한 생산물(농산물)'을 확보한 농민을 제외한 대부분의 계층의 수입원은 급락했다. 농민층도 20% 정도의 소득이 줄어들었고 일반 공무원은 무려 90% 정도의 수입이 인플레이션으로 허무하게 사라졌다. 여기에 국공내전의 재개로 다시 엄청난 지출이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국민당 정부 화폐 가치는 급격히 떨어져 갔고 1946년 6월 한 달 만에[3] 350%가 넘는 인플레이션이 닥쳤으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1947년도에 들어오면서 국민당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졌고 1월달에 다시 300%, 2월달에 1,100%, 5월달에는 3,000%, 10월달에는 5,000%, 1948년 2월에는 무려 18,000%가 폭등했다. 결국 1949년 8월 상하이가 함락되기 직전에는 한 달 만에 600,000(60만)%가 넘게 오르며 1,368,049%의 물가지수를 기록했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이 감당이 되지 않다보니 상인들은 하루에 몇번씩 가격표를 바꿔야 했고 나중에는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가능한 한 늦게 팔아야 손해를 덜 보기 때문이었다.

국민당 정부도 이를 예측하고 1945년도 초에 화폐개혁을 위한 새로운 화폐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물가폭등은 국민당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겨버렸다. 1947년 2월에 물가를 통제하고 임금을 동결하였으나 불과 석달을 가지 못해 모든 조치를 해제하였다.

국민당 정부는 최후의 수단으로 1948년 8월 19일, 재정경제긴급처분령을 발표, 8월 23일을 기하여 구권과 신권의 교환 비율을 300만분의 1로 정한 금 본위제 기반의 통화를 도입하려고 했으나 이미 상황은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을 넘겨 버렸다. 결국 정부의 지시에 순응한 중산층만 파산시키는 대재앙을 남긴 채 공허히 끝나버렸다. 부자들은 정부를 불신해 화폐개혁에 협조하지 않았고 물건을 강제로 유통시키려고 하자 밀수, 나중에는 아예 물건을 상하이 등의 대도시로 옮기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타 도시의 지방관이 물건이 빠져나가는 걸 금지하기도 하였다. 결국 화폐개혁을 담당하던 장징궈는 10월 31일 화폐개혁이 실패한것을 인정하고 11월 11일 금, 은, 외환의 소지를 허용하였고 이는 사실상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저지하는 걸 포기했다고 자백하는 꼴이었다. 이러한 화폐개혁은 국민당 정권에 대한 지지를 결정적으로 추락시켰고, 국공내전에서 민심이 공산당으로 돌아서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3.5. 베네수엘라[편집]

이 나라의 인플레이션은 현재 진행형이다.

3.5.1. 원인[편집]

우고 차베스 정권 시절 외화 확충을 위해 외환 거래를 전면 금지하고 공식 환율과 시장 환율이라는 이중 환율 체계를 고집하여 화폐 시장을 교란시킨 게 화근이었다. 현재 볼리바르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추락하여 2017년 기준 비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단위 가치가 낮은 화폐가 되었다. 왜 비공식이란 말이 붙었느냐면 공식 환율은 여전히 1달러에 10 볼리바르 선이라고 구라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 4일,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환율은 1달러에 3,345 볼리바르이며 암시장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가치가 떨어져서 108,279.53 볼리바르를 줘야지만 1달러를 구할 수 있다. 2017년 올해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은 700%를 넘어설 것으로 관측되며 2018년에는 IMF 예측으로 2,30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한다.기사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 정부는 공식 환율을 끝까지 1달러에 10 볼리바르라는 가짜 환율을 꾸준히 밀고 있다. 그 이유는 안 봐도 비디오인데 바로 정권 유지를 하기 위해서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물가를 잡는답시고 생필품, 의약품, 공공재 등을 모두 공식 환율로 팔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2017년 12월 4일 기준으로 시장 환율과 공식 환율의 갭이 무려 330배를 넘는데다 암시장 환율로는 1만배 넘게 차이난다는 것이다.

본래 베네수엘라 자체가 석유 팔아서 생필품을 수입하는 나라인데 생필품 수입상들이 미쳤다고 국영 상점에다 팔겠는가? 최소 300배, 최대 1만배 넘게 손해를 보면서 말이다. 당연히 이들이 국영 상점에다 팔리는 없고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나마 시장 환율 가격으로 쳐주는 일반 상점에 팔고 비양심적인 사람이라면 암시장에다 팔아버린다.

여기서 일반 상점이란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대형마트 같은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베네수엘라에서 일반 상점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최소 중산층 이상들이다. 중산층 이하 계층들은 돈이 없어서 국영 상점밖에 못 간다. 그러니 국영 상점은 물품이 없어서 텅텅 비어 있고 살 사람은 줄을 서니 물가는 계속해서 오를 수밖에 없다.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 물가는 올라가기 마련이니까. 이러니 병원의 의약품조차도 없어서 환자들이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도 못 받는 실정이고 항암제가 암시장에서 굴러다니는 등 말이 아니다.기사

3.5.2. 고액권의 등장[편집]

2016년까지만 해도 최고액 화폐는 100 볼리바르로 버티고 있었으나 이제 더는 상승하는 물가를 통제할 수 없게 되자 500 볼리바르 발행을 시작으로 1,000 볼리바르, 2,000 볼리바르, 5,000 볼리바르를 발행하더니 연말에는 급기야 1만 볼리바르, 2만 볼리바르를 발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2017년에는 더욱더 물가 상승폭이 커져서 결국 11월에 10만 볼리바르를 추가 발행했다.기사

10만 볼리바르라고 해 봤자 베네수엘라 정부에서 고지한 시장 환율로는 그래도 30달러 정도는 받을 수 있지만 현실에 가깝다고 하는 암시장 환율은 발행일 당시 1달러에 41,290.28 볼리바르로 거래되고 있어 실제로는 2달러 42센트 정도 가치에 불과한 실정이다. 당시 환율을 적용하면 한화로 2,660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2달러 이상 받던 것도 며칠밖에 안 되고 불과 34일 지난 12월 4일에는 암시장 환율이 2배 이상으로 더 뛰어버려 역대 최고치인 1달러에 108,279.53 볼리바르를 기록했다. 그러므로 실제 10만 볼리바르의 가치는 92센트 정도에 불과하고 한화로는 1,000원 조금 안 되는 정도이다. 물론 베네수엘라와 한국의 물가 차이를 고려해야겠지만 최고액권인 10만 볼리바르의 가치는 고작 캔 음료 1캔이라고 말할 수 있다.

파일:베네수엘라 지폐가방.jpg
2018년 벽두부터는 지폐로 공예품을 만들어서 그걸 외국 관광객들에게 판매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인터뷰에 의하면 원재료인 베네수엘라 볼리바르화 지폐는 암시장에서 1센트 동전 5~6개에 뭉텅이로 사올 수 있다고 하며 길거리 좌판에 뭉치 채로 놔 두어도 한번도 도난당한 적이 없다고 한다. 저 베네수엘라 돈으로 만든 핸드백을 자세히 보면 흰색은 시몬 로드리게스의 안경이 보이고 오렌지색은 시몬 볼리바르의 구레나룻이 보인다. 최상위에 해당되는 고액권인 10,000 볼리바르와 20,000 볼리바르가 이런 식으로 사용되는 처지에 몰렸다. 대한민국으로 따지면 5만원권과 1만원권을 이용해 손가방을 만든 셈이다.

3.5.3. 파급[편집]

나라가 망해가자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주변국으로 국경을 넘어 탈출하고 있으며, 유엔 산하 국제이주기구에 따르면 2018년까지 230만명이 베네수엘라를 탈출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는 전체 인구의 7.2%에 달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정부에서는 국경경찰대를 창설하여 국경 탈출을 막고 있으며, 합법적으로 출국하기 위해 여권을 신청하는 국민에게는 자국 가상화폐인 페트로를 강매하는 등 폭압을 일삼고 있다.

3.5.4. 화폐개혁[편집]

결국 2018년 8월 액면가를 10만분의 1로 줄이는 리디노미네이션을 감행하고, 자국의 석유에 연동된 가상화폐페트로를 개발하여 자국 통화를 여기에 페그시켰다. 일종의 석유본위제를 실시하는 것인데, 초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은 자국 통화에 대한 불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때까지의 처방 중에서는 가장 핵심을 찌르는 처방이라 할 수 있다. 볼리비아 정부는 페트로로 석유를 구입하면 최대 30% 할인을 해 주겠다고 말하는 등,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8월과 9월 물가상승률이 223%와 233%를 각각 찍으면서 석유본위제도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페트로로 거래가 이루어 질 경우 암호화폐로 각종 경제재제를 피할 수 있기에 미국이 페트로마저 경제제재 대상으로 삼으면서 페트로의 신용도에 큰 타격을 주었다. 결론적으로는 1 페트로 = 1배럴이라는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의 약속은 시행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는 것이 시장의 의견인 것.

3.6. 온라인 게임에서[편집]

온라인 게임 내에서도 운영자들이 경제 밸런스 잡는 데 실패하거나, 작업장에서 돈을 무한히 찍어낼 경우 생긴다. 대표적으로 메소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는 메이플스토리, 억단위 수표가 그냥 단위로 쓰이고 있는 대항해시대 온라인. 이 게임은 현재 한국 내 서비스 중인 온라인 MMORPG중 가장 극렬하게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초보자에게 권하는 선박이 수십억단위를 찍고있고, 이로인하여 10억두캇은 중산층 취급 받지도 못 한다. 그렇다면 본 서버인 일본서버를 가보자, 이쪽 동네도 조금 낌새가 보이지만 어쨌든 거리 금액 단위 수 부터가 한국보다 낮다.

또한 최근에 발생한 엘소드의 인플레이션이 이런 경우이다. 단, 이 사례는 작업장에서 변조핵을 사용해 게임 내 화폐를 말그대로 찍어낸 경우이다. 아무리 게임내라도 인플레이션이 그리 쉽게 일어나진 않는다. 게임으로 배우는 경제! 나를 빼놓으면 섭하지

다만 게임머니가 지나치게 풀릴 경우 이를 회수하기 위한 해결책도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는 강화로 돈의 소모를 유도하거나, 게임 내 아이템을 사기 위한 유료 캐시와 게임상 돈을 변동환율로 교환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다. 길드워 2 같은 경우가 후자인데 변동환율이므로 게임상 돈이 늘어날수록 유료 캐시를 사는 비용이 비싸져서 더 많이 회수되므로 균형이 맞춰진다. 유료 캐시인 젬이 초기에는 100젬당 0.5골드 정도의 환율이었다면 발매 5년 후에는 무려 31골드까지 올라갔다. 반면 로블록스란 웹 게임은 틱스(Tix, ticket의 줄임말)를 로벅스(Robux,게임화폐이다. 유로.)로 바꿀 수 있었는데 틱스가 삭제된다는 무슨 미국달러에서 센트를 빼는 소리를 했다. 지금은 삭제되었지만 아무튼 삭제되기 전에는 기간이 남아 있었는데, 그 기간 동안에는 로벅스1:틱스30까지 올라갔었다. 이 인플레이션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웹 게임인 동물농장에서는 한 때 치트오매틱으로 돈을 최대 21억 4,748만 3,647포인트[4]로 미친 듯이 불리고 탐험 컨텐츠의 최종 보스를 주무를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당연히 아이템 시세가 박살났고 그 후로도 여전히 박살난 상태라서 와글와글 장터에서 좀 귀해보이는 물건이다 하면 몇 백만, 몇 억 포인트 단위로 입찰되는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2016년 6월 30일을 기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 이상 볼 수 없다.

4. 가공 매체[편집]

애니메이션 C에서는 제니퍼 사토타케다자키 시게오미가 공모해 일본에 초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엔화를 쓰레기로 만들기도 했다. 결국 달러가 새로운 공식화폐가 되는 걸로 끝.

라이트노벨 무책임 남자 시리즈(무책임함장 테일러의 원작) 에서는 타일러가 라르곤 공화국 대통령에 취임한 후 우주태풍의 위기를 은폐하려는 목적으로 전우주 스케일의 초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 픽션이니만큼 몇달도 안되는 사이에 10억분의 1 디노미네이션 끼워서 '자'를 넘어간다. 떡하니 자기 이름으로 화폐단위를 삼아 놓고서는 느긋하니 다음 수 단위가 어떻게 나가는지 읊는 장면이 압권.

라이트노벨 만능감정사 Q의 사건수첩에서도 초반부에 세토우치 리쿠가 리사이클 숍의 경영 정상화를 위하여 위조지폐 트릭으로 초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데 성공하였다. 초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현금보다 현물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 즉, 세토우치는 중고품으로 빚을 청산하고 오히려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원래 8만 3천엔 하던 니시이케부쿠로 3정목의 원룸멘션 월세가 순식간에 40만엔으로 올랐고, 180엔 하던 JR 기본운임이 3,200엔(!)까지 치솟았으며[5], 곧 영원히 욕먹을 회사[6]와 도쿄가스는 아예 광열비를 달러로만 납부받는 상황이 벌어진다.

소설 내의 초인플레이션은 꽤 세세하게 묘사되는데, 위폐 보도 이틀 후 패스트푸드점은 치즈버거세트 35,200엔, 데리버거세트 55,000엔, 주간소년점프 최신호 6만엔, 도시락 6만엔, 오이 5개 6천엔/80센트, 장어 1조각 4,500엔/1달러, 무조림 100g 5,200엔/1.2달러, 톳나물 100g 6천엔/1.5달러, 청어조림 100그램 6,800엔/2달러, 카페의 스몰사이즈 블렌드커피 22,000엔/2.9달러, 택시 기본요금 42,000엔, 원래 40,900엔이던 하네다-나하 전일공 요금은 312,000엔(이건 리코가 사건 전모를 밝힐 생각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드러난 것).

작중에서 이전 가격을 명확히 밝힌 장어 1조각(120엔)을 기준으로 하면 대략 33시간만에 37.5배 인상되었으니그나마도 햄버거는 더 올랐다 위에서 언급한 헝가리나 짐바브웨를 아득히 쌈싸먹는 캐막장 인플레다.물론 주인공 린다 리코의 활약에 의해 검거되고 물가는 정상화되기는 하지만. 애초에 작중에서 위조지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빠르게 정상화 된 케이스다. 실제로 위조지폐가 돌아다녔다면 빠른 정상화는 어림도 없다. 화폐의 진위를 의심할 수 밖에 없으니까. 만화판에서 공예관 토도 슈이치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 와중에도 이익을 챙기려 발버둥치던 높으신 분들이 있었던 모양. 실제로 그새 자산을 불린 경우도 꽤 많았다. 만능위조사라든가.

5. 관련 문서[편집]

[1] 당시 환율 달러당 4.2마르크, 원으로는 약 1억4천만원.[2] 4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 4×1029, 1양은 1해의 1억 배=10×1028[3] 1945년 9월의 물가지수를 100%로 환산해서.[4] 32비트 정수(Integer) 최대값이다.[5] 그나마도 사철의 반값이다[6] 첫 출간은 2010년이라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기 1년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