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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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명칭

청와대

한문 명칭

靑瓦臺

영문 명칭

Cheong Wa Dae / Blue House [1]

기능

대통령 관저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비서실
대통령경호처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세종로 1)[2]

전화번호

02-730-5800

관저 입주자

대한민국 대통령

현 입주자

문재인

설립

1948년 7월 24일(경무대)
1961년 1월 13일(청와대)

색상 코드

군청색(#003478)
순청색(#005BA6)
흰색(#FFFFFF)

공식 사이트[3]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파일:유튜브 아이콘.png[4]


1. 개요2. 역사3. 건물
3.1. 본관
3.1.1. 대통령 집무실
3.2. 영빈관3.3. 여민관
3.3.1. 대통령 간이 집무실
3.4. 대통령 관저3.5. 수궁(守宮)터 (구 본관 터)3.6. 상춘재3.7. 녹지원3.8. 춘추관3.9. 시화문3.10. 연풍문3.11. 청와대 사랑채3.12. 칠궁
4. 관람
4.1. 민간인이 청와대에서 숙식하는 일이 가능한가?
5. 청와대 개축 또는 이전 주장6. 청와대 국민청원7. 이모저모8. 관련 문서와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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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 대통령관저. 또는 대통령과 관련된 직속 행정기구(비서실, 경호실, 각 분야의 수석 등)를 통틀어 일컫는 말. 직역하면 '파란 기와집'이다. 국가기관으로서 대통령, 또는 대통령비서실을 줄여서 그냥 청와대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대통령 관저 그 자체뿐만 아니라, 미국 대통령을 보좌하는 행정기구들을 통틀어 '백악관'이라 표현하고, 중국의 주석 관저 그 자체뿐만 아니라, 중국 주석을 보좌하는 행정기구들을 통틀어 '중난하이'라 표현하는 것과 같다.

대략 1,000 여명의 직원이 있는걸로 추정[5]된다. 그중 경호처 소속 직원이 절반 조금 넘고(500여명) 나머지 400여명이 비서실 소속 직원이 있다. 기타 안보실 관련 직원도 있는데 직제상 인원은 2~30여명이지만 업무에 따라 정부 각부처 소속으로 파견 나와 있는 직원도 있어서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2. 역사[편집]

청와대 터의 기원은 고려 숙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풍수가인 김위제가 국토를 저울로, 지금의 서울인 당시 남경을 저울추에 비유하며 천도를 주장하였고, 1104년에 궁궐이 준공되어 숙종이 직접 남경에 행차하기도 하였으나, 이 때 남경은 서경처럼 지역 세력이라든지 지역 중심지로서의 중요성이 크지 않아 정치적 논의만 거친 채 흐지부지 끝났다. ... 다만 당시 남경개창도감을 설치하여 궁궐터는 조성을 했는데, 그게 현재의 청와대 자리다(!). 이후 조선 시대에 들어서 경복궁을 건설하면서 현재 청와대 자리는 경복궁의 후원으로 사용되다가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 사라진 후 한동안 방치되었다가[6] 고종대에 이르러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이 지역에도 각종 전각들을 세우고 과거장이나 권농, 연무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당시 네 개의 전각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중 한 건물의 이름이 경무대로, 훗날 이승만 정권 시절 경무대라는 명칭의 기원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일본은 이 전각들을 헐고 공원부지로 만들었으며, 1937년 이 지역을 조선 총독 관저 부지로 선정하여 오늘날의 청와대 구본관 자리에 관저를 세우게 되었다. 1939년 완공 후 6대 총독 미나미 지로가 관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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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으로 재현한 청와대 구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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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구본관

이후 해방이 되면서 미군정 치하에서 미국군정장관 존 하지 중장의 관저로 쓰이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존 하지 중장이 물러나며 이승만 대통령에게 관저를 주고 그렇게 대한민국 대통령의 관저로 쓰이게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 이후 이 자리에 있던 경복궁의 전각 중 하나인 경무대(景武臺)로 불리게 되었다.[7]

서울이 2차례 함락당한 6.25 전쟁 당시에는 임시수도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에 임시 관저를 두었는데 이 건물은 경상남도 도지사 관사를 거쳐 현재 임시수도기념관이 되었다.[8] 그리고 환도 이후 그동안 잠시 버려졌던 경무대가 다시 대통령 관저가 되었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에 대한 반감의식 때문에 경무대라는 이름은 원성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한 후 윤보선이 취임하면서 경무대라는 이름을 바꾸는 것을 두고 논의가 이뤄졌다. 당시 서울시사 편찬위원이던 김영상 씨가 윤보선에게 불려가 경무대라는 이름을 바꾸지 말 것을 요청했지만, 확고한 윤 대통령의 의지에 두 가지 안을 제시했다. '화령대'와 '청와대'의 2가지 제안에 윤보선은 백악관(화이트 하우스)과 대조되는 의미에서 '청와대'를 선택하였다.

박정희 당시, 청와대라는 명칭을 황와대로 바꾸자는 의견이 제기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청색보다는 황색이 더 고귀하다는 의미에서[9] 논란이 일었지만, 박정희는 '청와대 이름을 또 바꿀 수는 없다'며 기존 이름을 고수하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청와대를 '블루 하우스'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육영수가 불쾌감을 표하여 청와대를 한국어의 발음대로, 'Chong Wa Dae'로 표기하게 했다고 한다. (당시 로마자 표기는 Chong Wa Dae였고 추후 'Cheong Wa Dae'로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대통령 측근을 비롯한 청와대 직원들은 블루 하우스, 약칭 BH로 부른다. 대통령의 지시를 'BH의 하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제시대 총독부 관저로 지어진 건물이었던 만큼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기에는 협소하고 노후화되어 재건축하자는 의견이 여러차례 있었으나 이승만이나 윤보선은 청와대 건물에 별로 손을 대지 않았다. 이후 취임한 박정희는 청와대를 대대적으로 개보수, 증축하였다. 박정희 당시 청와대 1층은 집무 공간으로 대통령 집무실과 서재 등이 있었고, 2층은 대통령 가족의 생활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건물이 노후화되고 협소하여 외국 정상 방문시 수행원이 머물 공간 조차 없어서 청와대를 재건축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박정희는 재건축 건의는 무시했다고 한다.

이후 노태우 시절 본관과 관저, 프레스 센터인 춘추관을 신축하여 2년 2개월간의 공사 끝에 1991년 9월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복궁, 창덕궁 등 전통 궁궐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청와대 관저를 신축하는 과정에서 땅을 파다가 "천하제일복지"라고 쓰인 비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1993년에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철통같이 막힌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을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PC통신 하이텔에 '청와대 큰마당'[10]을 개설했고, 1995년에는 인터넷 홈페이지까지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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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정부 시절, 기존 로고의 낡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탈피, 다양한 사용 환경에 맞춰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는 명목으로 디자인을 개선한 새 청와대 로고가 확정되었다. '청와대를 상징하는 청와대 본관 건물의 이미지를 그대로 살리면서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단순화, 명징화한 것으로 전체적인 형태와 색상을 개선하여 균형 잡힌 유연한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이는 국민을 섬기는 청와대, 국민과 가까운 청와대를 시각화한 것이다. 기존 로고보다 밝고 투명한 청색 컬러를 활용하여 '투명한 청와대'와 '진취적이고 젊은 청와대'의 이미지를 강조했으며, 로고 타입도 보다 현대적인 서체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획의 강약을 조정하여 이미지를 세련되게 현대화했다.'는 것이 작업 취지.

3. 건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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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사진은 여기를 참고하자. 또한 청와대는 당연히 국방부 국가중요시설 지정 및 방호 훈령에 따른 "가"급 국가중요시설이며 그 중에서도 맨 첫 번째에 올라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상세하게 서술하지는 못하며 국내 포털사이트(예 : 네이버)에서 검색 가능한 언론에 보도된 정도로만 서술 가능하다. 그래서 네이버지도같은 포털 사이트의 지도상에는 나타나지 않는다.[11]
그러나, 구글 어스 등 해외 지도에서는 선명하게 잘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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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본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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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9월 4일 새로 지어진 건물로[12], 의외로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 청와대라는 이름이 붙은 사진에 등장하는 건물은 거의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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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2층 구조. 출처는 중앙일보 2012년 12월 13일기사(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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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이기 때문에 2층에 대통령 집무실이, 1층에 영부인 집무실이 있다. 대통령이 회의나 정상회담을 하는 집현실도 여기 있고, 만찬장이나 소규모 식당 등도 있다. 중요한 언론브리핑을 하는 충무실도 여기 있다. 이 본관 앞에는 엄청나게 넓은 대정원이 있는데, 대통령이 참석하는 야외행사에 주로 사용된다. 국빈 환영식이 대부분 여기서 진행된다.

본관이 완공된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한 본관와 비서실이 위치한 여민관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대통령과 비서관 사이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새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청와대 본관을 리모델링 해서 대통령 비서관들을 입주시키거나, 본관 옆에 비서동을 새로 만들자는 안이 제출되었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번번히 무산되었다.[13]

전직 대통령 비서관들의 말에 따르면 여민관에서 본관으로 가는데 차로 5분, 걸어서 최소 10분이 걸린다고 하며, 같은 청와대 경내임에도 불구하고 검색대를 따로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같은 건물안에서 대통령 비서관들이 수시로 만날 수 있는 백악관과는 천양지차. 자세한 내용은 아래 여민관 문단으로. 결국 본관 집무실은 문재인대통령이 집권하여 여민관 간이 집무실이 주 집무실이 되면서 국무회의 및 귀빈 방문시에만 사용하는 보조 집무실이 되고 말았다.

옛 궁궐 양식에 대입해 보면, 전면 9칸에 지붕 처마 끝에는 잡상이 11개가 올려져 있다.[14] 황제의 격에 맞는 건축이다.[15] 조선의 법궁경복궁의 정전, 근정전은 전면 5칸에 처마에는 잡상 9개를 올렸다.[16]

3.1.1. 대통령 집무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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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넓은데, 넓이가 약 100m²이 넘는다고. 출입구부터 의자까지 15미터에 달할 정도로 넓은데, 백악관의 경우그 거리가 8~10m 정도에 불과하다. 천장 높이도 3m가 된다고 한다.

너무 넓어서 장관이 보고를 마치고 뒷걸음으로 나오다 뒤로 넘어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전임 대통령들도 대부분 문제 인식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명박은 처음 집무실을 둘러본 뒤 "운동을 해도 되겠다"고 했을 정도. 김영삼은 아예 정부중앙청사로 옮기고 싶어했고, 노무현은 비서관들과 소통하기 위해 비서동에 집무실을 설치했고 이명박도 가끔 여민관 집무실을 사용하였으며 박근혜는 업무를 아예 관저에서 봤고 문재인은 국무회의나 귀빈 방문시에만 본관에서 업무를 보고 그 외의 평시에는 여민관에서 근무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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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집무실에 선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3.2. 영빈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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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2월 준공된 청와대 경내의 현대식 건물 중 제일 오래된 건물로, 대규모 회의와 외국의 국빈들을 맞이하는 장소다. 민속공연이나 만찬, 연회, 회의등을 하는 곳. 석조 양식으로 건축된 건물이다. 이 곳이 준공되기 이전까지 소규모 국빈 접객은 청와대 본관에서 이루어졌으며, 대규모 접객은 서울 신라호텔의 영빈관에서 이루어졌다.

1층은 대접견실로 외국 국빈의 접견행사를 치르는 곳이다. 만찬행사시에는 음악과 무용 공연이 행해지기도 하 며, 국빈행사 외에 대규모 회의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내부 정면 벽 중앙의 원형 속에 새겨져 있는 봉황 문양은 태평성대와 대통령을 상징하고, 천장의 원형은 대화합을 상징한다.
2층은 대규모 오찬 및 만찬 행사를 하기 위한 장소로서, 내부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무궁화와 월계수 등으로 장식하였다.

1970년 이후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국빈들은 증가하였지만 청와대 내에 만찬이나 연회 등 행사를 치를 공간이 마땅치 않아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또 국가 위상과도 걸맞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 대규모 회 의도 자주 열리게 되었는데 당시 청와대에는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따라서 청와대 내에 대규모 행사장을 갖춘 지금의 영빈관을 마련하였다

3.3. 여민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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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여민1관이다.

與民館

국민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곳


대통령 비서실이 위치한 건물로, 대통령 관련 업무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곳. 이 건물은 볼거리가 별로 없고, 흔히 볼 수 있는 콘크리트 건물이다. 대통령실 행정을 위한 건물로 3개 동이 있다. 1관은 2004년, 2관은 1969년, 3관은 1972년에 지었다. 1관에는 대통령 간이집무실이 있다. 이명박정부 시절 위민관(爲民館)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오면서 여민관으로 복귀했다. 위민이라는 이름이 청와대가 주체가 되어 권위적인 인상을 주기 때문에, 국민과 함께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름을 복구시켰다고 한다.

너무 오래 돼서 안전진단결과 D등급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청와대 시설유지보수 담당자는 재건축 심의에 적용되는 내진설계기준이 강화돼서 그런 것이라며, 2008년에는 2관이 C등급, 3관이 B등급을 받았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2관에 위치한 경제수석실 천장이 내려앉아 유리창이 깨지는 사고도 발생할 정도니 말 다했다...관련기사

2015년 대통령실 재건축 및 재배치를 위한 예산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여야 의원들은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을 밝혔는데, 이에 대해 이재만 비서관이 소통에는 문제가 없다고 오히려 예산을 거절하는 묘한 상황이 연출됐다. 돈을 준다는데도 거절하는 대인배 마인드?! 가뜩이나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는 상황에서 예산을 덜컥 받아버리면 그걸 인정하는 꼴이 될까 걱정됐던 모양.자기도 찔렸겠지 관련기사

여러 언론에서 실무진과 대통령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비서실 재배치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비서동에서 본관까지 가는데 2개의 관문과 경비초소를 지나야하고 검색대까지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국회는 예산을 받으라고 재요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긴급상황 때 벙커에 모이려면 20분?-조선일보 JTBC 팩트체크에서는 물리적 거리과 소통의 상관관계에 관한 경영학 이론에, 다른 나라 행정부 수반의 집무실과 실무진 사무실 사이의 거리와 구조까지 비교하며 재배치의 필요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5110700323_0.jpg 청와대와 백악관 비교

3.3.1. 대통령 간이 집무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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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비서관들과의 소통을 위해서 당시 여민1관에 설치한 간이 집무실이다. 본관 집무실의 절반 정도 크기인 87m²로, 짙은 베이지색과 갈색으로 내장을 꾸몄으며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현대적인 느낌. 이명박 정부 때에는 본관 집무실과 비슷한 인테리어로 변경되고 몇번 쓰이고 박근혜정부 시절에는 쓰이지 않았다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비서관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주 집무실로 다시 쓰이고 있다. 정부서울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할때까지, 기존 본관 집무실은 해외 국빈 방문 등 행사시에만 쓰고 평시에는 계속 여기서 집무할 예정이라고.

간이집무실 의자가 집무실 의자보다 좋다. 대통령까지 간이 집무실로 옮겼다니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3.4. 대통령 관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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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 25일 완공된 전통 한옥 양식의 건물. 대통령과 그 가족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생활공간인 본채, 접견공간인 별채, 전통양식의 뜰과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에는 구 본관 2층을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였다.

3.5. 수궁(守宮)터 (구 본관 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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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경복궁 후원이었던 곳. 일제강점기때 일본이 여기를 허물고 총독 관사를 지었다. 이 총독 관사를 그대로 대통령 집무실 및 관저로 사용한 것이 청와대의 시작이다. 새 본관과 관저가 완공된 뒤, 구 본관은 1993년 철거되었고 그 터를 옛 지형대로 복원하여 수궁터로 부르고 있다.

3.6. 상춘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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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때에는 이곳에 "매화실"이라는 이름의 조선총독부 별관 건물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상춘실"로 이름만 바꿔 사용하다가 1977년 12월에 철거되었다. 1978년 3월 양식 목조건물이 들어섰으나 다시 철거되고, 규모를 크게 키워 1983년 4월 5일 전통 양식으로 다시 지었다.

외빈 접견이나 비공식회의 장소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3.7. 녹지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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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도 무슨 날(특히 어린이날)이면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 큰 소나무가 있는 잔디를 깐 야외 행사장이다. 본관 앞 대정원이 국가적인 귀빈을 맞는 행사 등에 쓰인다면 이 녹지원은 좀더 대중적인 행사에 주로 쓰인다. 어린이나 어르신, 장애인 초청 행사 등 국민을 초청하는 행사는 대부분 여기서 치러진다. 1995년에는 이곳에서 열린음악회가 열리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본인의 국회의원 시절 만들었던 전산시스템인 노하우에서 착안해 청와대 사상 최초 도입된 전산 시스템인 'E-지원'도 이 녹지원에서 따온 이름이다.

3.8. 춘추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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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는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건물. 청와대 프레스센터로 각 언론사의 기자들이 이곳에 출입한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기자회견장도 여기에 있다.

비공식적인 쓰임새가 또 있는데 바로 극장(...). 2000년대 이전만 해도 대통령이 일반 극장에 방문한다는 인식은 생소해서 쉽게 방문하기 어려웠다. 한 번 극장에 갈 때마다 경호원들이 따라 붙어야 하고 극장에서도 경호 문제로 신경써야 할 게 많아지기 때문에 일반 관람객들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컸다. 그래서 대통령과 그의 가족, 그리고 청와대 상주 직원들이 영화를 보려 할 때 이 춘추관에서 영화를 본다고. 한 예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대흥행할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춘추관에서 직원들과 함께 서편제를 감상했다. 물론 영화 상영을 위한 준비 또한 상당히 번거로운 관계로 춘추관에서의 영화 상영은 상당히 드문 편이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는 대통령의 일반 극장 방문도 이루어지는 편이다. 한 예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일반 영화관에서 넛잡: 땅콩 도둑들,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등을 관람한 적이 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도 일반 영화관에서 택시운전사1987을 관람하였다.

3.9. 시화문[편집]

시화문(時和門)은 경호실 업무를 위한 건물이다.

3.10. 연풍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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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풍문(年豊門)은 외부인의 공무수행을 위해 출입 절차를 밟을 수 있는 2층짜리 건물이다. 외부인이 이용할 수 있는 복지시설이 있으며 각종 국정홍보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2009년 초에 준공되었으며 이명박 정부 당시 정책이었던 "저탄소 녹색성장"에 걸맞는 태양광 발전, 독도 수호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독도 CCTV 영상 중계시설(KBS 제공) 등이 있다. 즉 공무상 방문한 민원인에게는 첫 대외적 공간 역할을 하므로 각 대통령의 정책을 홍보하는 건물 역할도 한다. 또한 은행업계에서 큰 화제를 몰고온 NH농협은행 청와대지점도 이 건물에 있다. 금융공동망 상의 지점번호도 뭔가 위엄있어 보이는 숫자 0100007이다. 다만 농협은행 청와대지점을 포함한 연풍문 건물 내부에 일반 시민이 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사전에 명확하게 공무 약속이 되어 있어야 한다.

3.11. 청와대 사랑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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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비서실장 공관이 있던 자리로, 1996년 2월 청와대 앞길 개방과 함께 대통령이 해외에서 받은 각종 선물을 전시[17]하는 전시관으로 개장하였다.

원래 "효자동사랑방"이라는 이름의 소규모 전시관이었으나, 건물이 너무 작고 노후화되어 일단 허물고 새 건물을 지어 2010년 1월에 재개장하였다. 현재 청와대 사랑채 신축건물이 들어선 부지는 서울시 시유지[18]였으며 이름도 "청와대사랑채"로 바꿨다. 새 건물은 기존 전시관에 있던 전시물과 함께 국정홍보관 역할도 하고 있다.

이곳은 늘 개방되어 있는 곳으로 언제든지 구경이 가능하다. 청와대 관람 여부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한 곳이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마지막 입장은 오후 5시 30분까지다. 입장료는 무료. 하루에 4회 전시해설을 해 준다. 자세한 것은 공식 홈페이지 참조.

3.12. 칠궁[편집]


조선 시대 후궁들 중 왕(추존왕 포함)의 생모이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또는 왕비가 되었다가 쫓겨난 후궁의 위패를 모신 곳. 원래는 한성 곳곳에 흩어져 있었으나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 결과 모두 7개의 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서 칠궁(七宮)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유명한 장희빈의 위패도 여기 있다. 2001년 11월 24일 일반에게 개방되었으나 청와대 관람코스에 들어있기 때문에 하지만 따로 요청해야 갈 수 있다 아무 때나 가기는 힘들다. 주의사항으로가면 귀에 딱지앉도록 예기하겠지만 보안상 문제로 담넘어 청와대 찍으면 안된다! 잘못하면 폰이나 카메라가초기화 될수있거나 무섭게 생긴 아저씨들에게 붙들려 어디론가 끌려가 코렁탕 시식을 할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한다.
칠궁에 모셔진 후궁들은 다음과 같다.

궁호

후궁

남편

아들

저경궁(儲慶宮)

경혜인빈(敬惠仁嬪) 김씨(金氏) (1555~1613.10.29)

선조

원종

대빈궁(大嬪宮)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 장씨(張氏)[19] (1659.9.19~1701.10.10)

숙종

경종

육상궁(毓祥宮)

화경숙빈(和敬淑嬪) 최씨(崔氏) (1670~1718.3.9)

숙종

영조

연호궁(延祜宮)

온희정빈(溫僖靖嬪) 이씨(李氏) (?~1721)

영조

진종

선희궁(宣禧宮)

소유영빈(昭裕暎嬪) 이씨(李氏) (?~1764.7.26)

영조

장조[20]

경우궁(景祐宮)

현목유비(顯穆綏妃) 박씨(朴氏) (1770~1822.12.26)

정조

순조

덕안궁(德安宮)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 엄씨(嚴氏) (1854.11~1911.7.20)

고종

의민태자

여담으로 해설 중 누군가가 가운데 길로 오면 해설자가 귀신이 왔다고 하는 전통이 있다.[21]

4. 관람[편집]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한 청와대 관람 신청이 가능하다.청와대 관람 신청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화요일~금요일과 둘째·넷째 주 토요일에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개인관람(10명 이하)과 단체관람(11명 이상~200명 이하)이 가능하며, 토요일은 10인 이하의 개인관람만 받는다. 관람은 1일 4회로 오전 10시, 11시와 오후 2시, 3시이다. 매년 7월 1일부터 9월 16일까지는 오후 시간대가 1시간씩 늦춰져서 3시와 4시에 관람이 가능하다. 1회 350~450명까지 신청이 가능하다.

관람 희망일 6개월 전부터 최소 20일 전까지 신청이 가능하며, 신청정보가 변동되었을 시 내국인의 경우 관람일 전주 화요일, 외국인을 동반할 경우 관람일 기준, 2주 전 일요일까지 수정이 가능하다. 관람 당일 인원 추가 및 교체는 불가능하다.

인기가 상당히 좋은 편으로, 봄이나 가을 같은 시즌에는 한두달 전에 신청해야 할 정도이며 관람시간은 90분 정도다. 경복궁 바로 위쪽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이왕 경복궁에 가는 김에 같이 청와대에 들렀다가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은 편으로,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온다. 홍보관(춘추관 옆)과 녹지원, 수궁터(구 본관 터), 본관, 영빈관, 칠궁 순으로 둘러보는 코스다. 홍보관 외에는 건물 외부만 둘러보는 코스이며 간단한 기념품도 제공된다(손지갑, 지구본) 그리고 관람한다고 해서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므로, 청와대의 건물 겉모습을 살짝 둘러본다는 마음으로 가면 된다.청와대 관람 정보

아무래도 국가 중요 시설이기 때문에 사진 촬영이 엄격한 편. 지정된 장소에서만 촬영이 가능하고, 동영상 촬영은 아예 안 된다.음식물 반입도 안되므로 주의하자. 또한 망원렌즈, 대형가방(여행용 가방 및 캐리어 등), 애완동물, 주류, 악기, 정치적 표현물(플래카드 포함), 무전기, 기타 위험물 등도 반입이 금지된다.

과거에는 말 그대로 "공개"가 이루어진 시절도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인 1954년부터 봄철에 2,3일씩 일반에게 경무대 공원을 공개했고 수천 명씩 관람을 오곤 했다. 윤보선, 박정희 시절에도 이 전통은 이어져서, 1주일의 봄철 청와대 개방 기간 동안 청와대를 구경하러 온 국민학생들이 점심을 먹으러 가던 박정희와 마주쳐 "대통령이다!"하고 법석을 떨자 "공부 열심히 하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1.21사태 이후 경호가 강화되면서 청와대는 수십 년간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철옹성이 되었다.

그 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야 2017년 6월 26일부터 청와대 앞길을 24시간 전면개방하기로 했다.#

4.1. 민간인이 청와대에서 숙식하는 일이 가능한가?[편집]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다만 그 과정이 매우 어려울 뿐.

청와대는 특별한 허가가 없으면 숙식은 커녕 민간인이 접근할 수 없는 1급 중요 경계 시설이지만 2017년 3월 10일부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민간인이라도 청와대 시설 관리자인 대통령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의 승인이 있으면 숙식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또한 민간인의 숙식 기간 또한 2017년 5월 시점으로는 별다른 규정이 없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시설 관리자(= 대통령)의 승인만 있으면 이론상으로는 무제한 숙식도 가능하다.

실제로 박근혜의 경우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이 일어난 후 두 동생들과 한동안 청와대에 있었고, 헌재의 대통령 파면 선고 이후에도 민간인 자격으로 56시간동안 체류하다가, 쫒겨났다. 이는 가장 최근의 유고인 1980년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의 하야 선언 이후 퇴거까지 걸린 46시간의 기록을 10시간 경신하는 것이다(...).

5. 청와대 개축 또는 이전 주장[편집]

청와대 본관은 1991년 완공 이래 25년 간 이따금씩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주로 내부 소통이 어려운 구조라서 리모델링하거나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선거철마다 나온다. 논란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건물의 배치, 구조 및 형태, 자리 잡은 터 문제다.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과 보안상의 어려움이 있지만...

  • 한국은 전통적으로 각종 건축물을 세울 때 그냥 기능과 편의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고 그 안에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理相)이나 철학(哲學)을 담고자 건물의 배치나 각종 상징이나 명칭 등에 그러한 뜻을 관철시켜 놓았다. 예를 들자면, 경복궁의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의 경우 임금의 공적인 근무처이니만큼 “부지런한 가운데 맑은 정치를 하라”는 뜻을 그 명칭에 부여한 것이고, 편전인 사정전(思政殿)도 “임금이 깊게 생각하여 옳고 그름을 가려 백성을 굽어 살필 수 있도록 취해야 할 마음가짐”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단순히 푸른 기와가 얹혀진 집이기에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그래서 건축물의 소재를 작명에 썼으니 당연히 국가 기관의 이름을 정하는데 고심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아 청와대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 본관 건물은 전통 목조 건물 구조에 팔작지붕을 올리는 등 궁궐 건축양식을 따랐다. 그런데 규모가 너무 커서[22] 나무가 아니라 콘크리트로 지었다. 그래서 청와대를 “전형적인 봉건왕조 건축의 짝퉁”이라고 평가하는 건축가도 있다. 실제로 해방이후 최악의 건물들 7위에 선정되었다. 당시 설계를 맡았던 정림건축의 김정식 대표(현 목천김정식문화재단 이사장)는 2011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청와대는 여러 가지 논란이 많았다”며 “본관을 2층으로 하려니 지붕을 어떤 형태로 하느냐를 놓고 서양식이냐 한국 스타일로 전통적인 양식을 취할 것이냐 하다가 전통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또한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게 전통 한국 건축의 기본인데 청와대 건물은 주변의 지형이나 앞에 있는 경복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 본관 좌우로 배치된 별채의 이름이 실로 엉뚱하다는 지적이 있다. 하나는 세종실이고, 또 하나는 충무실인데, 제아무리 대통령 공관일지라도 후손된 도리로서 그들의 이름을 좌청룡 우백호의 건축물에 빗대어 마치 신하를 거느리듯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동쪽 별채가 충무실이고, 서쪽 별채가 세종실인데, 본채가 남향할 경우 음양오행 이론상 왼편인 동쪽이 문(文)이고, 오른편인 서쪽이 무(武)다. 그런데 문을 상징하는 세종실을 서쪽에, 무를 상징하는 충무실을 동쪽에 두어 위치를 서로 바꿔 놓았다. 경복궁의 융문루(동쪽·좌측)와 융무루(서쪽·우측) 배치 상태와, 삼문 출입 시 가운데 문을 기준으로 동쪽 문을 문관, 서쪽 문을 무관이 각각 이용한 사실만 보더라도 그것은 한국 건축의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건물 내부의 경우 업무 공간이 지나치게 커서 사람을 압도한다는 지적이 많다. 본관 2층 대통령 집무실은 운동장만 한 크기에 책상과 회의용 탁자가 집기의 전부다. 구조 자체가 사람을 주눅들게 한다.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간 고위 관료가 뒷걸음질쳐 나오다 넘어졌다거나 너무 긴장해 오줌을 쌌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 대통령이 수시로 조언을 구하고 지시를 해야 할 비서실 직원들과 동떨어진 공간에서 근무하는 불통과 비효율 문제도 계속 지적되어 왔다. 청와대 비서실 건물인 여민관에서 500여 m 떨어진 본관의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하러 가려면 아직도 두 개의 초소를 통과해야 한다. 물리적·심리적 거리감이 배가 될 수밖에 없다.

  • 청와대 경내에는 대통령이 마음을 가다듬거나 닦을 수 있는 상징물이 없다. 미국은 워싱턴 기념탑을 중심으로 백악관과 제퍼슨 기념관, 국회의사당과 링컨 기념관이 각각 대칭을 이루고 있어 대통령의 수심(修心)에 큰 역할을 해주고 있다. 조선왕조 때에도 경복궁을 중심으로 배치된 동서축의 종묘사직단, 남북축의 북악신사와 목멱신사가 있었다. 종묘는 왕실의 조상에게 한 점 부끄럼 없는 올바른 정치를, 사직단은 토지신에게 풍년을 빌어 백성의 살림살이를 궁핍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애민(愛民)정신을 왕에게 심어주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현 청와대 경내에는 기껏해야 역대 대통령들이 기념 식수해 놓은 나무와 푯돌, 그리고 세종실 입구에 걸어 놓은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가 전부다. 대통령의 수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상징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 청와대가 땅을 너무 많이 차지해 주변 개발에 장애가 되고 있다. 경비를 위한 군부대,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는 지역까지 합하면 엄청난 땅이 사실상 청와대 때문에 묶여 있다. 그런데 청와대를 옮기면 그 터와 주변 지역이 강북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서민만을 위한 주택 단지를 만들 수도 있고, 역사·문화의 중심지로 서울을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다. 청와대를 본래대로 경복궁의 후원으로 복원한다면 서울의 4대문 안 전역을 관광 자원화할 수 있다.

  • 청와대가 서울 시내에서 너무 외진 곳[23]에 있어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래서 서울의 배꼽이라고 할 수 있는 용산구로 청와대 이전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 특히 용산 미국군 기지 이전으로 청와대의 용산 이전론이 탄력을 받은 적이 있었다. 현재 서울 시내에서 청와대가 옮겨갈 만큼 넉넉한 부지가 용산 이외에는 없을 뿐만 아니라 용산 지하에 있는 벙커 등을 지하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 무엇보다 원주민에 대한 보상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혔다.

  • 청와대가 풍수지리상 터가 좋지 않아(...)[24] 역대 대통령들의 말년이 대부분 나쁜 것이라며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굳이 풍수지리가 아니더라도 본래 청와대 터가 조선시대 칠궁과 같은 사당이나 호위무사 연습 터로 쓰던 자리였기 때문에 자연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 앞 내용들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문제가 청와대가 너무 크고 넓다는데 있는데, 이 때문에 경호상에도 문제가 있고,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충격적인 내용들을, 그동안 하나도 몰랐을 정도로 대통령이 작정하고 숨거나 뭔가를 숨기려면 숨길수 있는 구중궁궐같은 공간으로 악용하기 딱 좋은 수준의 관저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업무에만 쓸수 있는 적절한 새로운 공간을 대통령 관저로 쓰고 청와대는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야한다는 주장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이후 제기되었다.

  • 아예 세종시에 제2집무실을 건설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사실 청와대 자체를 아예 세종시로 이전시키고 싶었지만,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결정[25]으로 인해 이전은 못하고, 제2집무실 설치 정도로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세종시에는 비록 건물은 지어지지 못했으나 청와대 제2집무실 부지와 국회의사당 분원 부지는 남겨뒀다. 혹시 나중에 개헌해서 서울시에 있는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을 철거한 뒤 수도를 세종시로 옮긴 뒤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을 세종시에 새로 짓기로 결정할지 모르니까.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유력 후보들도 이구동성으로 당선되면 집무실부터 정부서울청사 등 보다 소통이 원활한 장소로 옮기고, 장기적으로는 대통령 관저 자체를 이전하고 현재 청와대는 박물관 등의 공간으로 변경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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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7년 5월 10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제 19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면서 공약 이행에 따라 청와대와 북악산이 단번에 개방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하고 청와대 지하벙커, 영빈관 등은 대통령 시설로 사용하되 본관, 관저, 녹지원 등은 대통령박물관, 시민공원 등으로 변경하겠다고 공약했다.[26] 그러나 정부서울청사에 집무를 위한 보안시설, 지휘시설 등을 갖출 때까지는 기존 청와대 집무실을 이용할 예정이다.# 한편 정부서울청사 내에 대통령 집무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청사를 사용하던 일부 부처가 추가로 세종시 정부청사로 이전할 계획이다.#

정부서울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이 이전할 때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할 예정이므로 대통령의 거주지인 관저도 함께 이전해야 하는데,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을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기사 말미에 언급 국무총리공관은 세종시에 제2공관이 이미 만들어져있기 때문에 세종시로 이사가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문재인 대통령,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과 친분이 깊은 건축가 승효상은 청와대를 정부서울청사가 아닌 경복궁국립고궁박물관 또는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을 개조하여 새 청와대로 만들자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6. 청와대 국민청원[편집]

문재인 정부가 국민 소통을 위해 신설한 청와대 게시판으로 여기에 청원을 올리고 1달 동안 20만 명 이상이 동의하면 청와대가 직접 답해준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7. 이모저모[편집]

  • 청기와집, 초원의 집이라는 별칭도 있다. 또한 청대로 잘못 불리는 경우가 있는데, 청화대는 중국[27]에 있는 대학교의 이름이다. (중국식으로 읽으면 '칭화') 반대로 청화대를 청와대로 부르는 경우도 있는 듯. 착각하지 말도록 하자.

    • 이런 사정 때문에 인터넷에서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비꼴 때 청와대학교 총장이라고 돌려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의 명문대인 칭화(청화)대를 모르는 사람들도 약간 있기 때문인지 그렇게 많이 쓰이진 않는 듯.

  • 청와대 근처에서의 시위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 (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 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청사 또는 저택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 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2. 대통령 관저(官邸),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청와대는 1km 이내 정도에도 시위를 하지 않았었지만,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퇴진 요구 시위가 2016년 11월 27일 기준 청와대 앞 200m 까지 허가를 받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12월 3일 집회때는 청와대 앞 100m까지 허가를 받았다!

  • 본관 정원 쪽에는 사슴 일가족이 살고 있다. 사람들 말에 따르면 정말 운 좋을 때 한 번씩 볼 수 있다고 하지만 가끔 정원에서 튀어 나오면 앞쪽 도로가 차단되고 사슴을 다시 정원으로 돌려 보낸다. 그 외에도 연못에는 원앙이 날아와서 한가롭게 떠다닐 때도 있다.

  • 수도방위사령부 직할 부대에서 복무 중 자신이 연대장/주임원사/대대장/중대장/행정보급관/소대장/분대장 등 지휘관이 된다면 연대장/대대장/중대장/소대장/분대장 교육 과정 중 하나로 이 곳을 견학한다. 참고로 부연대장/부대대장/부중대장/부소대장/부분대장은 견학 기회가 없다. 사실 수방사가 청와대로부터 이런 배려를 받는 이유는 수방사가 대통령을 지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청와대 정문의 석등이 야스쿠니 신사와 같은 양식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확산되었다.#

  • 나라에 따라서는 자국 최고지도자 관저를 '궁(宮)'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꽤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최고지도자 관저는 엘리제'궁'이다. 물론 프랑스는 진짜 왕들이 쓰던 궁궐을 사용 중인 것이기에 그렇지만 그래서 외국에서는 대통령 관저들을 통칭 대통령궁(presidential palace)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고, 또 나라에 따라서는 아예 대통령 관저 공식 명칭이 그냥 대통령궁인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청와대를 궁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외국에서는 청와대를 한국의 대통령궁이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나 우리의 관례와 맞는 건 아니다.

    • 일본 언론에서는 청와대란 표현보다는 뒤에 '부(府)'를 붙여 대통령부(大統領府)란 표현만 쓰든가,[28] 청와대를 언급하되 괄호로 대통령부라는 설명을 달아주는 경우가 많다. 자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고유명사를 쓰면 설명을 덧붙여야 하니까 그냥 일반명사를 쓴 것.[29] 우리나라에서 외국의 대통령이 거주하고 집무를 보는 곳을 그냥 대통령 관저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NHK의 경우 대통령부보다는 대통령 관저를 선호하는 듯. 확인바람.

  • 대만에서는 '青瓦臺', 홍콩, 중국, 일본에서는 '青瓦台'로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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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홈페이지 서버다운 알림창이 매우 고급스럽다. 사진은 2013년 청와대 홈페이지가 해킹으로 서버가 내려졌을 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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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에 방문하면 기념품을 준다. 위 사진은 이명박 정부 때의 기념품. 당시에는 성인은 볼펜, 미성년자에게는 수첩을 주었다. 보면 매우 고급스럽다. 위의 검은색과 금색이 섞인 형태의 볼펜은 정부 관련 시설 기념품의 필수품목인 것처럼 똑같이 생긴것만 있다. 현재는 미성년자에게는 지구본, 성인은 한국풍 지갑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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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군 정원테마파크에 68% 규모로 축소해서 건설된 청와대 본관 세트장이 있다. 겉모습만 만든 게 아니라 내부 구조도 실제 청와대 본관의 방 배치와 똑같이 만들어서 대통령 집무실에서 기념 촬영을 할 수도 있는 등 합천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 영화 강철비에서 청와대 외부 장면 촬영을 한것으로 보인다. 경상북도 모처에 있는 이 곳(경상북도청)은?

  • 청와대 내부에는 역대 대통령의 식단도 전시되어 있다. #역대 식단#MB 식단#역대 애식 물론 상식적으로 매일 저 식단만 먹었을리는 없고 대체로 이런 음식들을 좋아했다고만 생각하자.

    • 이승만은 미국물을 먹은 사람답게 식사가 서양식이다. 주요 식단이 피자, 치킨, 햄버거, 샌드위치, 와인, 카스테라다.[30]

    • 윤보선은 귀족적인 성격에 걸맞게 비교적 화려하게 먹었다. 더덕구이, 갈비찜, 잣죽, 해물전골 등 매우 푸짐하게 먹었다.

    • 박정희는 윤보선과는 반대로 비교적 소박하게 먹었다. 쇠고기 편육 몇 조각, 순두부, 막걸리, 소량의 열무김치 정도에 불과했다.

    • 최규하도 박정희처럼 간단하게 먹었다. 나물, 생선구이, 전골 정도다.

    • 전두환은 육식주의자였다. 불고기, 편육, 고기회, 생선회, 조개구이, 떡갈비, 청주 등 순 고기 위주의 식단이었다.

    • 노태우는 전두환과 식단은 비슷하지만 스케일이 더 작았다. 갈비구이, 생선튀김, 두부조림, 복분자주, 맥주 정도다.

    • 김영삼은 전두환 못지 않게 잘 먹었다. 그 유명한 칼국수를 비롯하여 양갈비구이, 설렁탕, 랍스터, 야채 샐러드, 전복죽, 와인 등이 포진되어 있다.

    • 김대중은 친구인 김영삼과 원수인 전두환을 절충한 형식이었는데 홍어삼합, 우거지갈비탕, 된장찌개, 해물전골, 매운탕, 냉면 등이었다.

    • 노무현은 박정희와 비슷했다. 막걸리가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고 삼계탕, 해물탕, 강냉이, 군고구마(...)[31] 등이 포함되어 있다.

    • 이명박은 이승만과 박정희의 절충형이다. 그리고 김영삼이 칼국수를 좋아하는 것처럼 이명박은 냉면을 좋아했다. 그 외에도 샌드위치, 나물, 배추김치 등이 포함되어 있다.

    • 박근혜는 평상시에는 일반적인 청와대 식단을 먹었으나, 자신의 기준에서 특별한 날에는 호화 만찬을 즐겼다.[32]

    • 문재인은 다른 역대 대통령과 달리 여민2관 직원식당에서 식권으로 구내식당 밥을 먹는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긴급 회의가 있거나, 주요 인사들을 초청하여 오찬 및 만찬 자리를 갖는 특수한 경우. 선호하는 음식은 부산 사람답게 생선회해산물 종류이다.

  • 청와대는 보안시설이므로 지도와 내비게이션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청와대 근처에서 비행 물체를 띄운다면 군인들이 뛰어와 말리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 문재인이 대통령 당선 후 청와대에 바로 들어가지 않았는데 그 이유로 '거울방' 때문이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 2017년 8월 17일,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차에 맞추어 국민소통플랫폼으로 홈페이지를 전면 개편하였다. 플랫폼 활용과 컨텐츠 구성에 있어 비주얼적인 면이 보다 크게 강조되었으며, 기존 브리핑 코너를 확대 개편한 청와대 뉴스룸 메뉴와 더불어, 대통령의 사진을 공개 및 제공하는 효자동 사진관 및 국민 청원과 제안, 인재 추천[33], 토론이 가능한 국민소통광장 메뉴가 신설되었다.

8. 관련 문서와 사건사고[편집]

[1] 공식명칭은 Cheong Wa Dae지만 외국에서는 보통 Blue House로 많이 알려져있다.[2] 우편번호는 03048이다.[3] 1995년 개설 당시 홈피 주소는 'www.bluehouse.go.kr'이었으나,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뒤 'www.cwd.go.kr'로 바뀌었다가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현재의 주소가 되었다.[4] 현재의 청와대 공식 SNS 계정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 다시 새로 만든 것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SNS 계정들(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직후인 2017년 3월 14일 아침을 기해 일제히 계정이 삭제되었다. 기존 청와대 SNS 계정이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중인 2010년에 개설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부 기관의 공식 계정은 물론, 그 시점까지 수시로 게재하면서 축적된 8년 간의 대통령 사이버 기록물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마치 사유물처럼 날려버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정작 박 씨 자신의 트위터 계정은 대통령 타이틀을 단 채로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비판을 의식한 모양인지 2017년 3월 25일 기점으로 다행히 공식 트위터는 복구되었으나 정권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새로 트위터 계정이 만들어졌다.[5] 가장 중요한 국가 기관이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는다.[6] 이때 경복궁을 대신하여 창덕궁이 조선의 정궁 역할을 했다. 즉 임진왜란 이후의 궁내 얘기는 다수가 창덕궁 내에서 일어난 일이다.[7] 1, 2, 1948년 정부 수립 직전 대통령의 관저가 '景武臺(경무대)'로 결정되었다는 신문기사[8]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서양식 저택으로 내부가 당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임시수도 관련 문서, 이승만 대통령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 토성역부터 이곳까지 임시 수도 기념 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임시수도 정부청사(현 동아대학교 박물관)와도 가깝다.[9] 황색은 황제의 색이기도 하다.[10] 해당 통신망 자유게시판에 올려진 글들 중 일부는 <우째 편지가 이리 많노>라는 책으로 엮어져 출판되었다.[11] 네이버 지도에서 위성사진으로 찾아보려해도 절대 찾을 수 없는 이유가 그냥 청와대를 숲으로 바꿔놨다. 거기에다 화질을 흐리게까지 해놨다.합성티 안날려고 [12] 기공일 : 1989년 7월 22일[13] 예산 사용에 대한 부담감 혹은 공사기간 동안 청와대 밖에서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 등[14] 출처: 도서 "우리시대의 궁궐 청와대", 백승철 지음[15] 비록 중국 황제들은 11칸 정전에 잡상 11개를 올려 건축했으나 (자금성 태화전) 중국이니 이해하자.[16] 과거 일제강점기 촬영된 사진에는 잡상 9개로 세어지나, 현재는 7개가 올려져있다. 확인 [17] 대통령이 해외, 그리고 외교 사절로부터 받은 각종 선물은 국민을 대신해서 받은 것으로 개인 소유가 될 수 없다. 공직자윤리법은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하며 외국 정상이나 외국인·외국단체 등으로부터 받은 선물이 시가로 10만원(미화 100달러) 이상이면 즉시 신고하고 국고에 귀속되도록 되어있으며, 대통령의 경우에는 더 엄격해서 받은 선물의 가치에 상관없이 신고 후 국고로 귀속되도록 되어있다. 대통령의 경우 국가와 국민을 대신해 선물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선물 자체가 정상회담의 중요한 사료가 되기 때문인데다 선물 자체가 중요한 외교 수단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취식하는 음식물 등을 제외한 모든 선물은 금액에 상관없이 대통령이 받은 선물은 국고에 귀속된 후에는 바로 청와대 사랑채에 전시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외교 사절로부터 받은 선물 목록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것이 큰 논란이 된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최순실 집에 있었다. 결국 이 선물들은 청와대 사랑채에 전시되지 못하고 검찰에 의해 범죄 증거물로 채택되는 촌극이 벌어졌다.[18] 2013년 2월 25일까지 청와대 무상사용 기간이였으며 그 이후 유상계약으로 바꾸면서 세종시로 이전해서 빈 건물이 된 국세청 남대문별관 부지와 교환이 이뤄졌다. 대한성공회 주교좌 성당을 가리던 남대문별관은 지금은 허물었으며 그 부지를 시민광장으로 조성할 계획으로 있다.[19] 왕비가 된 적도 있었으나 얼마 못가 쫓겨나 다시 희빈이 되었다. 다른 빈들과는 달리 대빈이라 칭하는 이유는 왕비 유경험자라서이다.[20] 어처피 링크 처리 돼있지만사도세자다[21] 유교식 사당 구조에서 가운데 길은 원래 사람이 다니지 못하고 사당에 모셔진 혼령만이 다닐 수 있는 신도(神道)이다.[22] 약 25헥타르(253,504m²)에 이르는 청와대 터는 미국의 백악관(7.3헥타르)보다 3.5배가 더 크고 중국의 중난하이(3헥타르)보다 2.5배가 더 크다.[23]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 중심인 종로구에 있다. 그렇지만 바로 뒤에 북악산이 자리잡고 있다. 중심이라면 중심인데 중심이 아닌 느낌.[24] 조선시대에는 귀신과 혼들이 노니는 음기가 강한 곳이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25]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사실이 관습헌법이라고 선언하여, 수도 기능의 핵심인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은 이전할 수 없으며, 수도 이전을 하려면 개헌해야 한다고 결정했다.[26] 집무실 이전지 후보로는 정부서울청사 건물, 서울지방경찰청, 국립고궁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어쨋든 세종대로와 가까운 서울 모처일지도.. 그런데 일단 당장은 여민1관 간이집무실이 내정되었다.[27] 칭화대학교는 대륙과 타이완 섬 포함해서 2개가 있다. 대륙에는 베이징에 소재하며 타이완 섬에는 신주시에 있다. 사실 타이완의 칭화대학교는 원래 베이징에 있던 학교의 대부분 인원들이 국부천대 당시 타이완으로 도망가 다시 세운 대학교다. 대륙의 칭화대학교는 캠퍼스의 시설을 이어받아 대부분 새로운 인원들이 세운 대학교다. 대륙의 칭화대학교는 중국 탑급의 명문대로 유명하지만, 대만의 칭화대학교도 대만 내에서 명문대로 유명하다. 국립대만대학만큼은 아니지만.[28] 그런데 중국에서는 해외의 대통령궁/대통령관저를 전부 총통부(總統府)라는 명칭으로 부른다.[29] 하지만 일본 총리가 집무하는 곳은 또 수상관저 또는 총리대신관저라고 부른다. 그러니 자국민 눈높이에 맞춘 번역도 아니다.[30] 참고로 김구중식 이승만과 정반대로 중국물을 먹은 사람답게 식사가 중식이다. 주요 식단이 짜장면, 짬뽕, 탕수육, 백주, 월병이다.[31] 이건 노무현의 어린시절의 아픈 기억이기도 한데 노무현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먹을 게 고구마 밖에 없었던 적도 있었고 그래서 고구마를 실컷 먹고 싶어했는데 이게 어른이 되고 나서도 변하지 않았다.[32] 구치소 음식이 입에 안 맞아 한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에는, 호화 식단만 먹어온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33] 이렇게 선발된 인원들은 별도로 분류하여 정부 드림팀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