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퇴(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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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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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궁궐의 호위무사들이 사용했던 은입사철퇴[1]

조선의 과()[2]라는 철퇴

1. 개요2. 플레일과의 차이점3. 역사
3.1. 중국의 철퇴3.2. 한국의 철퇴
3.2.1. 삼국시대3.2.2. 남북국 시대3.2.3. 고려시대3.2.4. 조선시대
3.3. 일본의 철퇴3.4. 서양의 철퇴3.5. 성직자들이 애용한 무기?
4. 사용법5. 미디어 믹스
5.1. 드라마5.2. 게임 - 성직자용 무기?5.3. 애니메이션5.4. 철퇴를 사용하는 캐릭터

1. 개요[편집]

병장기의 하나. 끝에 돌기나 무게추가 달려있고 한손으로 휘두를 수 있는 몽둥이다.
철추(鐵椎)라고도 한다. 우리말로는 쇠몽둥이.
구조가 간단하고, 만들기 쉽고, 사용법도 직관적인 파괴적인 무기로서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모습과 다양한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판타지 등의 창작물에서 묘사되는 것과 달리 철퇴의 머리, 즉 추 부분의 크기는 어른 주먹 정도의 크기다.[3] 창작물에는 사람 머리만한 철추가 달린 거대 철퇴가 종종 등장하지만.
엄격한 규제나 처벌을 철퇴로 은유하는 경우도 많다. "법의 철퇴를 맞았다"는 식으로.

드라마 태조 왕건에 따르면 궁예마구니를 없애기 위해 자주 사용했다고 한다

2. 플레일과의 차이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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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일(Flail)[4]

보통 한국에서 철퇴라고 하면 가시가 달린 둥근 철퇴머리가 줄이나 사슬로 자루와 연결된 무기, 그러니까 플레일(Flail)[5]을 생각하는데 원래는 몽둥이형 무기를 부르는 게 맞다.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철퇴=플레일로 각인이 됐지만, 정작 진짜 철퇴가 본격적으로 나온 것도 태조 왕건이다. 정작 처음만 빼고는 철퇴라고 부르지 않고, 특별히 '법봉'이라고 불리는 그 가시 쇠몽둥이다. 그리고 아래의 링크 영상에서도 보겠지만 처음엔 쇠방망이(쇠몽둥이)라고 원래 의미에 맞게 썼다.

플레일은 정식 한국명칭이 없어서 편의상 철퇴로 불리게 된 듯 한데 오히려 메이스를 제쳐버린 듯. 플레일은 도리어 철구, 철추, 도리깨 등에 가까운 존재다.[6] 특히 철퇴머리에 뾰족한 가시가 많이 튀어난 아종은 모닝스타(Morning Star)라고 부른다. 그리고 도리깨는 탈곡용으로 쓰이는 그 농기구의 이름이 맞다. 플레일 역시 도리깨와 똑같은 원리의 탈곡기가 무기로 발전한 것이기 때문에 도리깨라고 하면 적절한 번역명이 되는 것이다. 디아블로 3에서도 이런 이류로 '플레일'이 '도리깨'로 번역되었다.[7]

3. 역사[편집]

철퇴는 역사적으로 곤봉의 타격력을 강화하는 형태로 시작했다. 금속을 다루기 이전부터 주먹돌이나 수석을 매달아서 사용했으므로 돌도끼와 비슷한 연원을 지니고 있다.

3.1. 중국의 철퇴[편집]

고대 중국에서는 퇴(槌)는 '망치'를 가리키는 말이고, 위에서 이야기하는 철퇴는 곤봉의 개량으로 취급되었다. 따라서 수(殳)·곤(棍)·저(杵)·장(杖)·봉(棒)이 모두 철퇴라는 뜻과 통하는 말.[8]

그 중에서도 중후을묘에서 출토된 전한대의 수(殳)는 창과 철퇴를 결합한 상당히 특이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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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후을묘 출토 수.출처:바이두 막대 부분은 복원품. 3개 중 좌우의 철퇴가 달린 게 수다.

이후 중국 송나라, 특히 남송 시대에 들어 금나라의 중장기병에 대항하기 위해 대부(大斧, 전부戦斧)나 각종 둔기류가 발달하면서 철퇴류의 종류도 세분화되었다.

명나라척계광기효신서를 인용한 무예도보통지를 참조하면, 봉 끝을 쇠붙이로 싼 가려봉(訶蔾棒/訶藜棒), 칼날과 쌍갈고리를 단 구봉(鉤棒), 쇠끌개만을 단 조자봉(抓子棒), 우리가 흔히 철퇴 하면 생각나는 삐죽삐죽한 침이 사방에 돋은 낭아봉(狼牙棒)과 골타(骨朶, 질려골타蒺藜骨朶)[9], 낭아봉과 비슷하나 절굿공이처럼 위아래로 모두 철침과 철추가 달린 저봉(杵棒)[10], 도리깨처럼 생긴 철련협봉(鐵鏈夾棒), 머리가 참외처럼 생긴 철퇴인 과(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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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가 구봉, 그 오른쪽에 있는 것이 가려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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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조자봉, 백봉[11], 저봉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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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병서 <무비지>에 실린 낭아봉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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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요략>에 실린 낭아곤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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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아봉 유물 중 하나의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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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려골타(蒺藜骨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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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철련협봉, 철(철편의 일종), 연주쌍철편(連珠雙鐵鞭).

3.2. 한국의 철퇴[편집]

3.2.1. 삼국시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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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성 출토 고구려 철퇴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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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만들어진 경주 능지탑지 십이지신상 중 미(未)상(*). 편곤과 비슷한 도리깨 형태의 철퇴를 들고 있다.늑대 아니다. 양이다.

고구려의 무기 유물 중에도 철퇴가 있고, 고려에도 의장대 중 철퇴의 일종인 골타를 든 골타자대가 있었다. 이를 통해 오래 전부터 철퇴가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2.2. 남북국 시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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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시대에는 고구려식 각궁과 함께 발해군의 주력 무기였다. 일반적으로 흔히 생각하는 철퇴와 비교하면 굉장히 특이하게 생겼는데, 무게추가 한쪽으로 쏠려 있어서 도끼처럼 찍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오히려 망치에 가까운 느낌이다.콩나물

3.2.3. 고려시대[편집]

이방원이 부하이자 자객조영규로 하여금 선지교에서 정몽주철퇴로 때려죽이도록 교사한 사건이 있다. 후술하겠지만 조선 초에 유난히 암살용으로 자주 쓰인 것을 보면 고려시대에도 자객들의 필수품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부월과 함께 고려군의 주력 무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3.2.4. 조선시대[편집]

조선 시대에는 암살이나 반역용으로 많이 사용했는데 우선 칼에 비해 길이가 짧아 숨기기 쉽고, 사용이 쉬워 쉽게 반란군을 숙달시키는데 유용했기 때문이다. 상술했듯 대표적으로 고려 말에 정몽주이방원의 수하에게 철퇴로 암살당했고, 조선 단종 계유정난수양대군 일파의 김종서 암살 시도 때 철퇴가 이용되었다. 김종서는 철퇴를 맞고 의식을 잃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국에는 발각되어 살해당했다.

유명한 야사(野史)에서 태조 이성계는 아들이 보낸 함흥차사를 죽이다 못해 나중에 태종에게 옥새를 넘겨주었을 때, 첫 면전에서는 활을 쏘았으나 태종이 기둥으로 숨었으며, 좌정 후에도 태조의 화가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꿰뚫어 본 하륜의 충고대로 태종이 직접 술을 올리지 않고 내시를 통해 술잔을 올리자, "이게 하늘의 뜻이로구나"라 하면서 소매에 숨기고 있던 철퇴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흠좀무.정몽주를 죽였던 그 방식 그대로 죽을 뻔 했다 동서양 모두 철퇴의 위력에 관심을 가져서 철퇴의 위력과 파괴력, 실전성을 시험해보았다.

맨 위에 있는 과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의장용으로 자주 쓰인 금립과는 색깔이 금색이고 참외 모양의 머리가 서 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고, <세종실록오례의>에 따르면 민간에서 부르는 말(향명鄕名)으로는 패라올(孛剌兀, 한자는 당시 공문서의 음차표기.[12])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머리를 은색으로 칠한 것은 은립과, 머리가 옆으로 뉘여져 있는 것은 색깔에 따라 금횡과(金橫瓜)/은횡과(銀橫瓜)라고 했다.

의장용 과는 머리까지 나무로 만들기도 했다. 실제로 전쟁터에서 휘두를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의례 때 철퇴를 들고 행진하거나 한참 서 있어야 하는데 금속제라면 힘든 게 당연지사. 물론 자비 따윈 없이 몸통까지 금속으로 만든 유물도 존재한다. 작은 거라면 버틸만 하지만 큰 거라면... 의례도 근성이다? 조선시대 가혹행위 참조.

3.3. 일본의 철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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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츠보(鉄棒) 또는 카나보(金棒)
이미지 출처 & 내용 출처

테츠보/카나보(かなぼう)일본 헤이안 시대 말기에 소수 쓰였던 무기다. 대개 기다란 나무 몽둥이에 쇠로 된 돌기가 박힌 형태의 곤봉으로, 일본의 요괴오니가 쓰는 것으로 자주 묘사된다. "호랑이날개를 단 격"이라는 의미로 "鬼に鉄棒"라는 표현까지 있을 정도. 이것이 일제강점기 때 우리 나라로 역수입되어, 우리나라 도깨비가 돌기가 박힌 방망이를 휘두른 것으로 오인되곤 한다. 도깨비 방망이라고 했을 때 흔히 떠올리는 그거 맞다. 자세한 것은 금쇄봉 항목을 참고.

3.4. 서양의 철퇴[편집]

고대 이집트인도, 페르시아 등에서 널리 사용했는데, 의외로 로마제국에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 편인 듯하다. 군단병들은 갑옷도 튼실했고, 필룸글라디우스 위주의 밀집대형을 사용했으니 휘두르는 공간이 필요한 철퇴를 꺼려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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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지드 메이스(Flanged Mace)

사슬 갑옷이 일반화된 중세 유럽 전장에서는 12세기 쯤부터 단순한 쇳덩어리 머리가 아닌 여러장의 철편을 부착해서 만든 플랜지드 메이스(Flanged Mace)가 유행한다.[13] 이런 형태는 타격 면적이 좁아서 큰 압력이 집중되기 때문에 사슬 갑옷을 관통해서 타격을 먹이고, 튼튼한 판금 갑옷에 대해서는 관통을 하지 않더라도 내부에 충격을 전달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판금 갑옷을 착용한 사람이 한번에 제압되는 것은 아니고 머리를 여러 차례 가격해서 피해가 누적되도록 해야된다. 아주 흉악한 무기라 하겠다


실험 영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철판은 둔기에도 상당한 반발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찌그러지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에 충격을 전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살상을 하지는 못해도 전투 불능상태로 만들수는 있다. 사실 전투 불능상태라 하더라도 중세 야전 의료수준의 한계를 생각하면 사소한 골절로 후유증이 남거나 사망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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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위키백과)
위의 비슷한 구조의 철퇴들이 인도/페르시아의 철퇴 쉬시파르(Shishpar) 중에서도 발견 된다.

3.5. 성직자들이 애용한 무기?[편집]

성직자들은 날이 달린 무기는 사용이 금지되어서 철퇴를 썼다고 알려져 있는데, 뭐 수사신부들이야 엄격한 수도생활동안 날붙이로 사람죽이는 연습할 기회를 갖는다는 자체가 무리였겠지만, 중세유럽의 주교좌 성직자들은 수도자 생활하다 뽑힌 극소수의 평민 외에는 거의 장성하여 가산을 장남에게 양보하고 출가한 귀족가의 차남들이라 검술을 모를 리도 없었고 검의 사용을 피할 이유도 없었다. 더군다나 기사수도회 가입자들은 기본적으로 기사이면서 성직자였고, 오랜 전투로 심신이 상한 기사나 군인들이 몸을 위탁하기 위해 수도승으로 들어간 사례도 많다는 걸 생각하면...

반대사례를 보면, 샤를마뉴의 12기사 전설에서 랭스의 주교 튀르팽이 사용하는 무기도 검이었으며 심지어 교구 신부가 자기 관구의 교인과 여자를 놓고 검으로 결투를 해서 상대를 죽여버린 경우도 있었다.(물론 그 일로 성직자 일은 그만 뒀지만.) 또한 서양 검술 기록 중 가장 오래된 문서인 1280년대 I.33문서의 내용이 수도자 루테게루스가 검술을 가르치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면 검 잘 다루고 검을 장비하고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수도승들이 많았으면 많았지 금지되거나 없었다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다. 그나마 근거로 추측할 만한 것이라면, 검에 비해서 저렴하고 요구 숙련도가 낮은 데다가 평시엔 지팡이로 쓰다가 위급시 호신무기로 쓸 수 있기에 순례자들이 잘 애용하던 것이 와전된 것이라고 여겨지는 정도.

다만 칼에 비해 덜 폭력적인 무기라는 인식엔 역사적 근거가 없지 않다. 중세의 부빈 전투(1214년)[14]를 기록한 연대기 작가는 백병전에서 '끝이 가느다란 신형 검으로 프랑스 기사의 투구 눈구멍을 꿰뚫어 죽이는' 영국-신성로마제국-플랑드르 연합군을 잔인하다고 비난하는 한편, 필리프 2세의 사촌인 보베의 주교 필리프가 전열이 무너질 뻔한 위기 상황에서 '철퇴를 들고 여러 명의 영국인들의 투구 위를 내리쳐 바닥에 쓰러트린'것은 호신용이라 괜찮다(...)며 옹호했는데, 프랑스 입장에 편향된 서술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타격무기로 갑옷 외부에 충격을 가하는 전투법이 갑옷 틈새로 치명적인 급소를 집요하게 노리는 갑주 검술에 비해 덜 잔인해 보인다는 것은 당시 기준으로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건 그렇고, 주교 정도면 나이 많은 성직자일텐데 힘이 왜 이렇게 좋아? 왕족이라 낙하산 주교였거든.[15]

종합하면, 검으로 직접 상처를 내는 게 좋지 않아 보였다는 정도지 금지되었다라고는 할 수 없다고 보는 게 맞을 듯.

4. 사용법[편집]

철퇴를 다룰 때는 막대기나 검으로 때릴 때와는 달리, 어깨와 팔꿈치를 먼저 휘두르고 하완부와 팔목, 철퇴의 막대, 그리고 추에 이르는 길이를 살려 마치 채찍이 날아가듯 후려치는 것이 좋다.[16] 이렇게 하면 같은 힘으로 휘두르더라도 종말속도는 더 빨라지고, 무게x속도는 즉 타격력으로 이어지므로 적을 효과적으로 때려눕힐 수가 있다. 물론 타격과 타격 간의 간격이 길어지고, 다시 자세를 잡는 것도 힘들어지지만 그냥 휘둘렀을 때에도 철퇴가 빗나갔다는 것은 이미 큰 약점을 보인 것이기 때문에 별 의미 없다. 일격필살의 기세로 휘둘러야 한다. 비슷한 메커니즘이라 채찍처럼 팔꿈치가 먼저 몸 앞으로 나온 뒤 팔이 자연스럽게 회전하며 내리찍는 느낌이다.

5. 미디어 믹스[편집]

5.1. 드라마[편집]

"좋은 철퇴를 구했으면 좋겠소이다. 쇠방망이 말이오. 3척 쯤 되는 쇠방망이면 좋겠는데."# 영상


태조 왕건에서는 궁예가 애용한다. 궁예 눈에 거슬리거나, 기침을 한 사람, 머리에 마구니가 가득한 사람죄 지은 사람(또는 죄를 뒤집어쓴 사람)들은 철퇴에 맞아 죽었다.

삼년산성 전투에서 호족들의 배신으로 크게 패한 왕건은 진노하여 배신자와 그의 가족들을 모조리 철퇴로 처형시켰는데, 이를 지켜본 신료들은 이런 광경을 어디서 본 것 같다면서 겁을 먹는다. 마지막 생존한 아이가 비는데도 자비가 없었다...[17] 다만 궁예는 지 눈에 거슬리면 다 때려잡았고 왕건은 호족들의 배신으로 분노가 폭발한거니 동일선상에 두기 어렵다. 이 때 왕건의 대사는 철퇴 사용의 의도를 정확히 드러낸다. "칼을 쓰는 것은 시체를 온전히 남겨주는 처형법이다, 철퇴를 써라!" 우리는 여기서 사약이 얼마나 인도적인 사형방식인지 알 수 있다[18]

무인시대에서는 이의방경대승 휘하의 도방 장사 오척이 주무기로 사용한다. 이의방은 긴 자루와 철침이 돋은 철퇴(낭아봉)를, 오척은 사슬이 달린 철퇴(도리깨)를 사용한다.

5.2. 게임 - 성직자용 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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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붙이를 사용할 수 없던 성직자들이 사용하던 무기. 베는 것보다 뼈를 부수는게 덜 폭력적이라는 발상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것일까?
- 국내 인디 게임 서프라이시아에서


많은 판타지 작품에서 성직 종사자들의 주무기로 등장한다. 사실 이는 D&D 클래식의 설정을 무분별하게 가져온 것이다.
던전 앤 드래곤 섀도 오버 미스타라에서는 신성 치유깡패 클레릭의 최강 무기로 등장했다.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배틀필드 1에 근접전용 무기로 등장한다. 곤봉에 톱니바퀴나 못을 박아서 만든 급조 철퇴들이 일반 무기로 등장하며, 아예 철퇴를 주 무기로 쓰는 정예 병과인 참호 강습병도 DLC로 추가되었다. 일반 철퇴 및 곤봉류만 해도 적당히 뒤통수를 때리거나 들러붙어서 난타하면 적이 금방 누워버리며, 참호 강습병의 철퇴는 딱 한 방에 모든 보병이 즉사하는 황당한 파괴력을 보여준다.

5.3. 애니메이션[편집]

기동전사 건담 철혈의 오펀즈의 주역기체 건담 발바토스를 상징하는 무장이기도 하다. 양손 메이스에 파일벙커가 내장된 흠많무한 무기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갓빠따(...)라는 별명 등으로 불리며 칭송(...)받고 있다. 다만 실제 건프라로 상품화 된 상품들 중에서 메이스가 부속된 등급은 HG와 1/100 6형태, 신규발매인 SD-EX(BB전사), 넥스엣지 뿐이라 많은 사람들에게 메이스가 빠지는 것에 대해 아쉽다는 소리를 듣고있다. 한편 로봇혼은 작중 나왔던 파일벙커 기믹을 재현하여 나왔다. 다만 HG에 비해 메이스의 크기 등의 아쉬움이 있어 임팩트가 부족하단 평을 듣고 있다. 1/100은 발매 당시에는 메이스가 포함되지 않았으나 긴 세월 끝에6형태의 상품에서 파일벙커 기믹까지 재현되어 추가되었다. 상기한 메이스는 지구 강하 당시 전투로 유실되었고[19] 5형태 지상전 사양부터 전기톱 기능을 내장한 신형 렌치 메이스를 사용한다. 이 메이스는 그레이즈 아인과의 결전에서 파괴되어 타치로 그레이즈 아인을 쓰러뜨리게 된다. 그리고 G.B.L 렉스로 개조 되면서 기존보다 더 큰그리고 더 아름다운 철퇴를 무기로 쓰게 되었다.

5.4. 철퇴를 사용하는 캐릭터[편집]

[1] 참고로 조선시대 은입사철퇴는 현대에 입사장 최교준이 복원한 게 있다. 실물 사진은 여기 참조.[2] 차폭(車幅)이라고도 한다.*[3] 플랜지드 메이스는 예외. 이 쪽은 추가 아니라 철판이 여럿 달려 있는 철퇴라서 부피가 더 크다.[4] 중세의 플레일은 대부분 모닝스타형 머리를 달았으며 머리가 두 개 이상 달린것도 흔했다. 호신용이라고 한다[5] 또는 볼 앤 체인(Ball and Chain)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만 이 명칭은 말그대로 '철구가 달린 사슬'을 의미하기에 죄수의 발목에 채우는 철구 달린 족쇠를 의미 하는 경우도 많다.[6] 조선시대에도 편곤, 바로 쇠도리깨를 군사용으로 사용하였다. 한 손용이 아니라 창끝에 철막대기가 달려있는 형태 - 즉, 말 그대로 쇠로 만든 도리깨였지만.[7] 현재 한국에서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에 한해 둔기류는 메이스, 둔기머리에 뾰족한 가시가 튀어한 종류는 모닝스타, 사슬이 달린 형태는 플레일이라고 부르도록 통용되고 있다.[8] 무기화된 도리깨를 괜히 곤봉+채찍, 즉 편곤(鞭棍)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9] 삼국지연의에서 무릉만의 왕 사마가의 무기인 철질여골타는 최소한 남송 이후에야 나온 무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대부분의 무기가 사실 원말명초의 무기이긴 하지만...[10] 오봉이라고 잘못 적은 자료들이 있는데 저봉이 맞다.[11] 무예도보통지에 인용된 중국 장수 척계광의 기록에는 중국 북방에선 곤봉을 백봉(백방), 남쪽에서는 곤이라 부른다고 적고 있다.[12] 뜻이 아닌 음차로 표기하는 건 중국에서부터 있던 일이다. 훈민정음이 나오기 전은 물론이요, (당장 이두를 생각해보자.) 이후에도 공문서는 한자로 쓰다보니 이런 사례가 꽤 있다. 예를 들어, 북송의 손목이 쓴 고려견문록 겸 어휘집인 <계림유사>에 보면 고려의 어휘를 기록하면서 고려에서는 활 궁 자를 '활'로 발음하는 걸 표기하기 위해 弓曰活(궁왈활)이라고 적어놓았고, 과일인 을 중국에선 시(枾)라 하지만 고려에선 감이라 한다고 구덩이 감(坎)자를 사용해 표기했다. 참조.[13] 물론 플랜지드 메이스 형태 자체는 고대에도 존재했다.[14] 백년전쟁 이전까지 프랑스가 영국이 통치하던 아키텐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토(노르망디 포함)를 한방에 회복하게 된 전투다. 영국의 존 왕은 이 패배를 당한 후 귀족들에게 몰려 마그나카르타를 서명하는 굴욕을 겪게 된다.[15] 보베 주교 필리프 드 드로이(Philippe de Dreux)는 1158년생으로, 실제 부빈 전투 당시 나이는 56세였다. 3년 뒤에 사망한다.[16] 글로 이해가 안 간다면 야구에서 오버핸드 투수의 투구법을 보면 된다. 메카니즘이 완전히 동일하다.[17] 처형을 명한 왕건, 형을 집행하는 군사가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긴 했다. 그러나...[18] 사실 그렇기 때문에 부관참시가 있는거다. 망나니를 통한 처형도 그렇고. 조선조때는 사약을 통한 처벌은 명예형으로 취급받았다. 다만 이런 인식은 유교에서 비롯된 것이라 화장을 하는 불교국가인 고려에 적용하긴 무리가 있기떄문에 고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19] 25화에서 1기가 종료되고 우주공간에 잠시 스쳐 지나가긴 했다.[20] 플렌지드 메이스 형태.[21] 이쪽은 모닝스타.[22] 이쪽은 폴 웨펀 형태이다.[23] 이쪽은 플레일인데 손잡이가 짧은 반면 사슬이 엄청나게 길어서 거의 유성추처럼 날려서 쓴다.[24] 아치 코믹스에서 발매한 '소닉 붐' 3호에서.[25] 라인하르트의 스승으로 아이헨발데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26] 소설에서 모닝스타를 사용한다.[27] 인간 형태 한정.[28] 정확히는 플레일로 가장 현실과 비슷하게 사용한다.[29] 카나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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