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동설

최근 수정 시각:

파일:external/classroom.re.kr/add5-2.jpg
天動說, Geocentric

1. 개요2. 천동설의 발전 과정3. 지동설의 등장과 천동설 폐기
3.1. 동양
4. 지동설은 지구와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서 내몰았나?5. 트리비아

1. 개요[편집]

움직이지 않는 지구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그 주변을 태양, 그리고 당시까지 발견되었던 5개의 행성이 돈다는 설. 지구 중심설이라고도 불린다.

프톨레마이오스의 그럴듯한 주장을 비롯하여 중화권 등 다른 문명에서도 흔히 나타날 정도로 근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천문학의 주류이던 학설. 물론 자연과학의 발전으로 폐기되었다.

근대에 이르기까진 천동설이 천체의 움직임을 더 정확하고 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었다. 천동설이 '틀렸다, 폐기되었다'라고 하는 것은, 이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언명에 대한 것으로서, 천동설의 폐기는 지구가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냥 우주의 원점을 지구에 둠으로써 천동설을 재현하고 써먹을 수 있지만, 그 중심에 놓인 우주관은 옛날의 우주관과는 판이하다. 옛날에는 우주의 중심은 반드시 지구여야 했다고 여겼다면, 지금은 그냥 아무 데나 중심으로 잡아도 되니까 지구로 잡아도 뭐 어때? 정도. 물론 천동설이 틀렸음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고 우주로 나가서 관측까지 끝난 현대에 천동설이 맞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웃어주면 된다.

2. 천동설의 발전 과정[편집]

플라톤에 의해 동심원 모델이 등장하였고 에우독소스가 플라톤의 모델을 상당부분 개량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동심원 모델이 확립되었다. 2세기 경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천동설을 집대성하여 '알마게스트'를 저술하였다. 그는 이심원 모델과 주전원(epicycle) 모델, 이심점 모델을 이용하여 동심원 모델이 갖고 있는 오류들을 수정하였다. 즉, 궤도의 중심 자체가 지구 주위를 감싼 가상의 원(deferent)을 따라 공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성의 궤도에서 행성만 쏙 빼놓은 셈. 이러한 방법은 비록 여러 개의 주전원을 사용하는 등 복잡하긴 하지만 겉보기 운동을 매우 수학적으로 정교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1] 예를 들면 프톨레마이오스식 주전원 이론을 적용한 아래의 동영상처럼.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는 천동설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였지만, 우주 구조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은 양극단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우주의 구조에 대한 철학적 의문에 집중했던 반면, 프톨레마이오스는 우주의 구조를 수학적 모델을 통해 설명하려는 것에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역작 《알마게스트》는 9세기에 이븐 후나인 등의 학자들에 의해 수차례 번역되었다. 이슬람교 문화권에서 널리 확대되었다가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 중세 사회에 널리 받아들여졌다.

3. 지동설의 등장과 천동설 폐기[편집]

천동설에 대비되는 지동설은 기원전 2세기 아리스타르코스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었고 헬레니즘 시대에는 주요 가설 중 하나로 취급되었으나(대표적 사례가 아르키메데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 개념이 널리퍼지면서 한동안 사장되어 있다가, 코페르니쿠스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의 천문학자들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게 된다. 이는 금성의 역행 운동이나 행성의 위성 등 기존 천동설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로 뒷받침되었다.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교황청에서는 지동설을 '가설의 차원에서는' 논의하는 것을 허용했다. 즉 흔히 알려진 무작정의 탄압은 없었다. 가톨릭이 엄격해진 시기[2]에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하는 책을 내었는데 책 내용이 교황을 모독한다고 여겨져서 재판을 받은건 사실이다. 갈릴레이의 저서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3] 에서 지동설을 주장하는 인물, 중립인 인물, 천동설을 주장하는 인물 3인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천동설을 주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심플리치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단순이, 멍청이 정도로 번역되는데 이름대로 황당한 주장만 되풀이한다.

이 인물이 당시 교황을 모티브로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나름 학문적으로 자부심이 있던 교황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통념상으로 알려지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은 후세에 만들어진 이야기다. 우리가 이 말을 알고 있다는 것은 진짜로 말했거나 말하지 않았거나 두 가지 경우인데, 진짜로 했다면 갈릴레이 본인의 입을 통해 알려졌거나 제 3자가 듣고 퍼져야 하는데 본인이 발설했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제 3자가 들었다면 바로 사형감이다(…). 따라서 누군가 꾸며낸 이야기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 때에도 지동설은 다시 위기에 빠졌다. 초기 지동설의 형태는 천동설보다도 번잡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는 주전원을 27개 썼지만 코페르니쿠스는 46개를 썼다. 주요한 원인은 코페르니쿠스가 원운동 말고 다른 걸 생각하지 못한 탓. 더구나 티코 브라헤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개선해 자기식 천동설을 내놓았는데, 이 천동설은 '달만 빼고 모든 행성이 태양 주변을 돈다, 하지만 달과 태양은 지구 주위를 돈다'는 이론이었다. 그리고 이건 코페르니쿠스식 지동설보다 정확했다. 브라헤가 지동설을 검토해보긴 했으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당시까지는 가장 정확한 관측 데이터에 따르면 '지구가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의문점들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관측기술이 발전해서[4] 그렇지 당시 천동설은, 그 당시 관측기술이 떨어지는 상태에서 나온 제한적인 데이터를 오랜기간 축적시켜 만든 상당히 정교한 학문이었고 따라서 어느 한 학자가 내놓았던 학설이 긴 기간 동안 쌓여 있던 데이터를 한 번에 뒤집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즉 당시 발견된 천체 운동에 대해서는 천동설 자체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동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간단해져서, 천동설의 궤도 모델을 보면 상대적으로 굉장히 머리가 아프다.

파일:attachment/Screen_Shot_2013-10-03_at_3.20.33_PM.png
톨레미 식 모델로 설명한 금성의 궤도.

다시 말해 당시 지동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이유는 종교적인 문제보다도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탓이 크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코페르니쿠스 시절의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지동설은 더 복잡하고, 더 부정확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는 근거랍씨고 "지구를 돌게하니까 기존의 우주 모델보다 더 아름답네요" 같은 소리나 하였으니 사람들에게 어그로 취급을 당했다.

물론 당시 교회에서도 기존의 상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져서 지동설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건 사실이고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이가 (정치적인 이유가 크지만)재판을 받은것도 사실이다. 당시 교회에서는 당연히 천동설을 정설로 가르쳤다. 다만 이를 교리적 차원에서 그렇게 가르친건 아니며, 단지 중세의 교회가 사람들을 교육할때 이렇게 하였을 뿐이다. 많은 현대인들이 '중세 교회가 사람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는 현대의 교회를 중세의 교회에 무작정 대입시키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러나 중세의 교회는 현대 교회와는 달리 단순한 종교 단체를 넘어서 교육, 복지, 학문 등등을 모조리 담당하는 '공공 기관'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현대의 교회와 같은 선상에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즉 '중세 교회가 지동설을 가르쳤다'는 개념은 '교과서에서는 천동설을 정설로 가르쳤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가지지 않는다. 교리와는 전혀 무관한 문제다.

지동설이 받아들여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주된 이유가 교회의 탄압이라고 하는것은 과장이며 천동설이 폐기되고 지동설이 받아들여진 건 과학과 종교의 싸움보단 과학 학계 내의 패러다임 변경의 일종이라고 보는게 더 정확하다. 다만 당시 종교계가 학계를 포함하고 사회를 대표하고 있었기에 사회의 대표자로서 종교가 받아들인 기존 학설과 막 일어난 신생 학설 간의 대결이 종교와 학계의 대립으로 보이는 것은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여기에 정치적인 이유로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이가 재판에 회부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이것이 과학vs종교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천동설은 다 종교 탓이다 식의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다.

이후 지동설이 본격적으로 역전한 것은 요하네스 케플러의 시대였다. 케플러는 행성들의 원 운동이 보여주는 완전한 세계관에 이상을 갖고 티코 브라헤의 아래로 들어가 학문을 배웠다. 그런데 이후에 티코 브라헤의 비협조로 얻지 못하던 관측 자료를 들어 연구하다보니 예측되었던 것과 8분[5]의 각 차이가 있었고, 여기에 케플러는 매우 좌절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연구에 나선 끝에 1618년에 케플러의 법칙을 정립했다.

케플러의 법칙은 지동설을 기초로 행성의 타원 운동(이는 기존의 '완전한 원 운동'의 관념을 뒤엎는 혁신이었다)을 분석하여 내놓은 3개의 법칙이었다. '법칙'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이는 이전의 천문학적 오류들을 깔끔하게 수정하면서 완성된 우주관이었다. 이로써 천체의 움직임을 천동설에 비해 훨씬 간단한 방법으로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됨으로써 중세적 우주관을 뒤집고 지동설이 천동설에 앞서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작 뉴턴물리학 연구에도 기초가 되어, 이후 만유인력의 법칙을 통해 천체의 움직임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됨으로써 천동설에 결정타를 날리게 된다.

그리고 광행차가 1674년 로버트 후크에 의해 처음 관측되고 1729년 제임스 브래들리가 해석하며 천동설에 관뚜껑을 덮었다. 그리고 1838년 프레드리히 베셀이 연주시차를 확인하면서 천동설의 관뚜껑에 못을 박아버렸다. 이후 1961년, 유리 가가린이 직접 지구 밖으로 나가서 우주를 관측하면서 아예 천동설을 못박힌 관 채로 땅 속 깊숙히 묻어버렸다. 물론 유리 가가린의 시대에는 이미 천동설은 완전히 폐기되어 천동설을 반박할 필요 자체가 없었고, 유리 가가린이 관측한 내용 자체도 지동설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천동설이 바탕을 두고 있었던 우주관이 잘못되었음을 인간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현대에는 천동설은 완전히 틀린 이론이 되고 말았다. 상술했듯이 지동설이 맞다는 수많은 추가 이론이 나왔고, 그게 맞음이 증명된데다, 아예 우주로 나가서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관측되었기 때문이다.

3.1. 동양[편집]

한편 동양에서 전통적인 천동설의 붕괴는 상당히 늦었다. 조선의 경우, 김석문, 이익, 박지원, 홍대용 등의 학자들은 지동설과 천동설에 대한 논의를 접하긴 했으나, 보다 현실에 가까웠던 지구 구형설과 지전설의 입증에 집중하여 사실상 천동설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았다. 자전과 공전의 체계를 완전히 정리하여 수용한 것은 1857년 최한기의 '지구전요'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사실 천동설과 지동설의 문제는 우주론적으로도 그다지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듯하다. 동양에서 처음으로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묵자로 보인다. 다른 사람들이 묵자의 주장을 지칭한 표현들 중 하나가 "지구는 둥글고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 이었다. 그러나 당대에, 그리고 그 이후에도 묵자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실 단순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기보다 근본적으로 지구가 둥글고 움직이고 있는가라는 논점 자체가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다.

4. 지동설은 지구와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서 내몰았나?[편집]


태양이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것을 밝혀내어, 지구와 인간은 신이 창조한 것이니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종교적 논리를 부수고 지구와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서 내몰았다는 설이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이건 틀린 얘기다. 오히려 코페르니스적 우주관은 지구와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의 위상을 높였다는 쪽에 가깝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자연철학을 지배한 아리스토텔레스물리학 체계에 따르면,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는 까닭은 무거운 물체가 자연스럽게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 관점에서 무거운 물체를 끌어당기는 것은 거대한 천체가 아니라 우주의 중심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장소 자체가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여' 지구가 가장 무거운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왜 우주의 중심에서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지를 설명할 뿐이다.

중세 시절 지구가 중심에 위치한다는 것은 지구가 고귀한 존재가 아니라 천한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로 여겨졌다. 중세의 철학자였던 모세스 마이모니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주의 경우에는 중심에 가까운 부분일수록 더 흐릿하고 단단하고 둔하고 혼란스럽다. 빛의 원천에서 나오는 가장 고결한 원소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중세의 유명한 기독교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 또한 이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며 다른 천체들로 둘러싸인 지구는 모든 천체 가운데 가장 조악하고 비천한 천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마게스트》 1권 5장에서 또 이렇게 말했다.

"지구는 고정된 별들 사이의 거리에 비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수학의 점처럼 여겨야 마땅하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우주론에서 지구가 중심에 위치했다는 것은 특별함이나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물리적 중심이자 대단히 비천하다는 의미였다. 단테 알리기에리가 쓴 신곡에서 지구의 중심에는 마왕 루시퍼가 박혀있다. 우주의 중심인 지구에서도 다시 중심에 루시퍼가 박혀있다는 것은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이 절대 좋은 의미가 아니었음을 나타낸다.

즉, 지동설은 지구와 인간의 위치를 우주의 중심에서 내몬 게 아니라 반대로 우주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기존의 잘못된 인식이 박힌 이유는 중세 까기에 앞장섰던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영향이다. 베르나르 퐁트넬은 《수많은 세계에 관한 대화》에서 코페르니쿠스를 찬양하며 "코페르니쿠스의 설계가 우주의 중심을 고집하는 인간의 허영을 꺾었다"잘못된 해석을 했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또한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엄청난 특권을 버리게 했다"고 말하며 퐁트넬의 개념을 되풀이했다.

사실 계몽주의자로 자칭했던 사람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중세 때리기에 골몰했던 것은 현대에 들어서까지 매우 성공적이었다. 오늘날 알려진 중세의 이미지, 특히 "인류의 이성과 과학의 발전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종교"라는 뻔한 스토리텔링은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는 세계 지성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 호전적인 일부 과학자들을 비롯하여 흔한 대중들의 인식까지도 당연히 그때는 그랬을 거라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5. 트리비아[편집]

  • 흠좀무하게도 21세기에도 종교적, 개인적 이유로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어차피 그렇고 그런 목적의 블로그라 호기심에 들어가봤다가 후회만 하니 어지간하면 그냥 무시하자. 이 사람은 창조론 관련 서적을 매우 많이 출판한, 나름 그쪽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지만 실제로 과학자도 아니고 과학전공도 아니며 본래직업은 디자이너(…)이다. 그러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자. 좀 많이 믿기는 힘들겠지만 외국에는 천동설을 주장하는 자칭 학회 또한 존재한다. 당연히 학계는 물론 종교계에서조차 인정을 전혀 못 받고 있다.

  • 과거에는 어린이용 과학책에 지동설은 옳고 천동설은 종교적인 이유만으로 지지받은 엉터리 학설이며 갈릴레이와 코페르니쿠스를 억압한 당시의 교회는 좋지 못한 집단으로 묘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이런 경향이 감소했고 사실관계를 좀 더 정확하게 묘사하기 시작했다. 가령 천동설이 지금은 틀린 것으로 판명났지만 상당히 정교한 모델이었으며 초기의 지동설보다도 더 정확히 예측을 했다거나.

  • 조선시대에는 홍대용, 김석문 등이 지동설을 주장하였지만 천동설이든 지동설이든 사상적인 것과 관련이 없어서 이슈가 되지 못하고 묻혔다. 둘 다 선교사들을 통해 받아들인 것으로 자체적인 관측으로 이를 터득한 사례는 되지 못했다. 그거 과거에 나오는가?

  • 2011년 쯤에 초등학교 2학년 슬기로운 생활 교과서에서 낮과 밤이 생기는 이유가 태양이 돌아서(!)라고 나온다. 2012년 기준으론 그런 말은 쓰여있지 않다.

[1] 수학적으로는 복잡한 궤도를 푸리에 해석을 통해서 분석한 것과 정확히 동일하다. 각 주전원은 푸리에 급수의 항 하나에 해당된다. 단지 프톨레마이오스 시기에는 아직 무한급수와 허수, 자연상수의 개념(즉, einπx=cos(nπx)+isin(nπx)e^{in\pi x}= \cos\left(n\pi x\right) + i \sin\left(n\pi x\right))이 없었으므로 사람의 손으로는 정확한 궤도를 계산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뿐이다.[2]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하며 출간한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는 1632년에 출간되었는데 당시는 30년전쟁 기간이라 구교, 신교의 대립이 격화된 시기였기에 구교가 점점 교조화되고 엄격화되는 추세였다. 때문에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당한것은 지동설을 주장함으로써 야기된 여러가지 복합적 사태들, 이를테면 개신교측과의 관계애 대한 의혹과 교황에 대한 모독 의혹 등등이 엮여버려서 일어난 일이다. 신학자들이 천동설이 교리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냐 정도의 사유는 하였고 개개인의 호오는 존재하였으나 그것을 교리로 주장한 것은 아니다.[3] 다만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는 틀린 과학상식도 꽤 있다. 예를 들자면 지구가 빙빙 도는 자전때문에 썰물,밀물이 생긴다고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달의 인력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다.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는 대화형식으로 그리고 모자란 사람 심플리치오를 등장시켜 이에 대한 반박 형식으로 재미있게 글을 써서 과학에 문외한이라도 쉽게 읽을수 있어서 지동설을 보급했다는데 의의가 있다.[4] 지구 공전의 근거로 연주시차(1초 이하)와 광행차(20.47초)가 있는데 둘 다 초 단위다. 참고로 3600초가 1도다. 원 한 바퀴는 360도. 관측기술이 뒤떨어진 옛날에 0.0056도 차이나는 것을 관측해서 지동설을 주장하는 건 무리다.[5] 원을 360도라고 할때 그 도(degree)의 또 60분의 1이 '1분'이다. 8분을 도로 환산하면 고작 0.133도. 브라헤의 관측 자료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가 없었다면 이 정도의 오차를 의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