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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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Eugene "Jim" Carrey
제임스 유진 짐 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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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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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주연상 - 드라마

제55회
(1998년)

제56회
(1999년)

제57회
(2000년)

피터 폰다
(율리스 골드)

짐 캐리
(트루먼 쇼)

덴젤 워싱턴
(허리케인 카터)

남우주연상 - 뮤지컬 및 코미디

제56회
(1999년)

제57회
(2000년)

제58회
(2001년)

마이클 케인
(작은 목소리)

짐 캐리
(맨 온 더문)

조지 클루니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1. 개요2. 코미디언으로 활약3. 영화배우로 활약
3.1. 수상경력
4. 주요 출연작품5. 트리비아

1. 개요[편집]

코미디의 황제.
동시에 정극 연기자를 뛰어넘는 연기력을 가졌다는 평을 받는 코미디언 중 한 명.

캐나다배우코미디언.

1962년 1월 17일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뉴마켓[1]에서 태어났다. 노동직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자주 이사를 다녔으며 데뷔 전까지는 꽤 빈곤했다고 한다. 어렸을 적 장난감이 없어서 거울을 보며 표정짓기하고 놀곤 했는데 그것이 특기가 되었다고.[2]

멋진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특유의 과도한 몸짓과 기기묘묘한 얼굴 구기기 덕분에 한국에는 인기 코미디언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에이스 벤추라> 에서 부터 시작해 <마스크> 를 거쳐 <예스맨> 까지 보여줬던 행보를 보더라도 코미디언으로 인식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짐 캐리는 코미디 이외의 분야에서도 폭넓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이기도 하다. 평범한 일반인이 매카시즘의 광기에 휩싸인 시대에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혀 아둥바둥거리는 모습을 보여준 <마제스틱> 에선 웃음기를 뺀 정극연기를 선보였고, <이터널 선샤인> 에선 진지한 멜로연기를 선보이는가 하면[3], 스릴러인 <넘버 23> 에서는 지금까지의 이미지를 모두 날려버리고 정신병자 역할을 멋지게 소화하여 내공을 드러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면 미국 내에선 짐 캐리를 연기파 배우로 인식할 것 같지만, 사실 대다수 미국인들에게도 짐 캐리는 코미디의 제왕으로 인식된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2. 코미디언으로 활약[편집]

짐 캐리의 커리어는 10대 후반,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것으로 시작된다. 데뷔하자마자 주목받는 신인 코미디언으로 뽑혀서 언론에서 인터뷰도 하는 등 커리어의 처음 시작은 순조로웠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할 당시 짐 캐리의 주요 레퍼토리는 유명인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것이었다. 참고로 짐 캐리의 스탠드업 코미디인 Unnatural Acts 영상은 꽤나 쉽게 구할 수 있는데, 파일로 퍼진 영상은 중간이 좀 잘린 영상이고 유투브에 풀 버전이 수록되어있다. 풀 버전에는 유명 배우들의 얼굴 묘사 씬이 들어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차츰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짐 캐리는 방송으로 활동영역을 확장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1981년SNL의 고정 크루를 뽑는 오디션에서 탈락하고 1984년, 짐 캐리를 높게 평가한 PD의 추천으로 난생 처음 주연을 맡은 시트콤 <The Duck Factory>는 시청률 부진으로 1시즌 만에 종료되는 등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 승승장구했던 것과 달리 짐 캐리의 방송 커리어는 순탄하지 못했다. 이후 그는 긴 무명시절을 보낸다.

당시 짐 캐리는 일거리가 없어서 버려진 차 안에서 잠을 자고 세수도 공중화장실에서 했으며, 매 끼니를 햄버거로 때웠다고 한다. 결국 계속되는 무명생활에 지친 짐 캐리는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 당시 그는 꼭 스타가 되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스스로에게 천만 달러 짜리 수표를 써 주고, 지갑에 넣어 다니면서 3년 안에 꼭 천만 달러를 받는 배우가 되고 말리라는 다짐을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는 이후 그가 <배트맨 포에버> 에서 출연료로 천만 달러를 받게 되면서 현실로 이루어졌다. 서프라이즈에서 나온바에 따르면 짐캐리가 이렇게 노력한 이유는 아버지에게 1000만달러를 드리겠다는 약속 때문이었다고한다. 그런데 약속을 지키게 되었을 때는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였다고.

그러던 중 짐 캐리는 훗날 <무서운 영화> 시리즈로 유명해진 웨이언스 형제가 메인 크리에이터를 맡아서 1990년부터 방영되기 시작한 TV 코미디 쇼 <In Living Color> 에 고정 출연하게 되었고 쇼의 성공으로 비로소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다. 특히 Fire Marshall Bill이라는 과격한 안전강사 캐릭터가 큰 인기를 끌었다. 유행어는 "Let Me Show You Something!" 당시 <In Living Color> 에서 함께 출연한 배우 중에는, 미국의 흑인 뮤지션 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그린 '레이'에서 레이 찰스역을 맡아 각종 연기상을 휩쓴 배우 제이미 폭스도 있었다.

1994년, <In Living Color> 가 종영하고 <에이스 벤추라>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짐 캐리는 본격적으로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In Living Color> 의 짐 캐리 출연본은 유튜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기존의 짐 캐리 영화에서도 보기 드문, 그야말로 천재적인 개그감을 확인할 수 있으니 캐리의 팬이라면 한 번쯤 보는 것을 추천한다.

3. 영화배우로 활약[편집]

짐 캐리의 영화 데뷔작은 1986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페기 수 결혼하다> 에 단역으로 출연한 것이다. 이후 짐 캐리는 의욕적으로 도전한 방송일이 잘 풀리지 않자 푼돈이라도 벌기 위하여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더티 해리> 시리즈의 마지막편인 <추적자 (1988)>, < Earth Girls Are Easy (1989)>[4] 등 몇몇 영화들의 단역으로 출연했다.[5]

<In Living Color>의 성공으로 TV에서 어느정도 얼굴을 알리는데 성공하자 짐 캐리는 1993년, 자신이 직접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In Living Color> 의 조감독으로 일했던 톰 새디악을 감독으로 영입해서 워너브라더스와 함께 1500만 달러라는 저예산으로 <에이스 벤추라>를 제작한다. 1994년 초에 소규모로 개봉을 시작한 <에이스 벤추라>는 북미 7221만달러, 해외 3000만 달러 흥행을 거두었고 할리우드는 비로소 짐 캐리를 주목하기 시작한다.[6] 이에 더해 짐 캐리는 같은 해인 1994년 연이어 <마스크>[7], <덤 앤 더머>[8] 등에 출연, 대성공을 거두며 확실한 흥행 보증 배우로 자리매김을 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마스크> 의 경우 그의 애드리브로 반쯤은 완성된 캐릭터이며, 극장개봉 후 배급사인 뉴 라인 시네마에서는 관객들이 현란한 SFX를 보기 위해 올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도 짐 캐리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는 것에 쇼크를 먹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

1995년 짐 캐리는 <에이스 벤추라 2>와 블록버스터 영화 <배트맨 포에버> 의 리들러역에 캐스팅된다. 해당 영화의 리들러는 짐 캐리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아예 캐릭터가 짐 캐리에 맞춰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죽하면 당시 같이 악당 투페이스역으로 영화에 출연한 토미 리 존스는 "다음부터는 절대로 짐 캐리가 나오는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겠다."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 [9]

1996년 짐 캐리는 캐스팅 제의가 온 수 많은 각본 중 벤 스틸러 감독의 블랙 코미디 영화 <케이블 가이> 를 선택, 2천만 달러에 출연하기로 계약하면서 당시 최고액수의 출연료를 받는 헐리우드 배우로 기네스북에 오른다. 하지만 짐 캐리 특유의 오버하는 캐릭터를 기대하고 온 관객들은 기괴하고 어두운 짐 캐리의 모습에 실망을 받았고 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10] 케이블 가이가 흥행에 실패한 반면 당시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짐 캐리가 SNL의 호스트로 출연한 에피소드는 레전드로 칭송받는다. 다음 해인 1997년, 짐 캐리는 에이스 벤츄라에서 함께 작업했던 감독 톰 새디악과 다시 의기투합하여 가족 코미디 <라이어 라이어> 에 출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함으로서 다행히 커리어의 하락세는 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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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짐 캐리는 <트루먼 쇼>와 밀로스 포먼 감독의 <맨 온 더 문>[11] 에 출연하여 코미디언으로서가 아닌 정극 연기자로서의 능력을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트루먼 쇼> 는 익살끼와 정극 연기가 모두 가능한 짐 캐리 특유의 연기력이 매우 적절한 조화를 이룬 예로 짐 캐리의 팬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로 손꼽힌다.

하지만 대중들과 평론가들의 극찬에 비해 빌 머리와 같이 코미디언 이미지가 여전히 강하기 때문인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유독 찬밥 신세다. 물론 골든 글로브에서는 <트루먼 쇼> 와 <맨 온 더 문> 으로 2년 연속 남우주연상[12]을 수상하면서 인정을 받았지만, 아카데미에서는 단 한번의 노미네이트조차도 못받았다. 운이 지지리도 없는지 캐리가 명연을 했을 때는 다른 배우들의 연기들도 짐 캐리에 못지않게 무시무시하거나 넘사벽일 경우가 보통. <트루먼 쇼> 때는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톰 행크스, <갓 앤 몬스터>에는 이언 매켈런과 <아메리칸 히스토리 X>는 에드워드 노턴넘사벽 연기를 하면서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고, 같은 코미디 출신으로도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의 빌 머리가 훨씬 높은 평가를 많이 받았다. <맨 온 더 문> 때는 <아메리칸 뷰티> 의 케빈 스페이시, 허리케인 커터의 덴절 워싱턴, <인사이더> 의 러셀 크로가 넘사벽으로 극찬을 받으며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지 못했다.[13] 이터널 선샤인 때는 <레이> 의 제이미 폭스가 넘사벽이었고 그 뒤론 <에비에이터> 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훨씬 좋은 평을 들었다.

어쨌든 빌 머리와 같이 오스카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습이다. 캐리와 비슷한 행보를 걸었던 로빈 윌리엄스[14]가 아카데미에 총 4번 노미네이트되어, 굿 윌 헌팅으로 남우조연상을 타고, 골든 글로브에서도 남우주연상을 4번씩이나 수상한 것을 감안하면 캐리는 진짜 눈물나는 수준이다. 그래서인지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15]에 편집상 시상자로 나와서 "예, 제가 시상자입니다... 제 볼일은 그게 답니다..."라고 자학개그를 하다가 북받쳐서 울기도 했다.[16]

<케이블 가이> 나 <맨 온 더 문> 이라든지 <마제스틱> 같은 몇 몇 영화들은 흥행에서 참패한 경우도 있긴 있지만 평균적으로 대박을 거둔 영화가 많고, 해외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하여 국제적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 뿐만 아니라 평론가들에게도 극찬을 받고있다. 미국내에서 인기가 많지만 해외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애덤 샌들러 주연의 영화들과 짐 캐리 주연의 영화들을 비교해봐도 캐리 영화들의 해외 흥행 수익이 더 압도적인 걸 알 수 있다.

3.1. 수상경력[편집]

1994년 런던 비평가협회 신인상
1998년 MTV 영화제 코미디연기상
1999년 골든 글로브 드라마 부분 남우주연상
1999년 MTV 영화제 남우연기상
2000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 뮤지컬, 코미디 부분 남우주연상
2001년 피플스 초이스 어워즈 코미디언상
2003년 텐 초이스 어워즈 코미디언상
2006년 MTV 영화제 MTV 제너레이션상
2009년 MTV 영화제 최우수 코미디언상

4. 주요 출연작품[편집]

5. 트리비아[편집]

  • 노래실력이 수준급이다. 예스맨은 물론이거니와 마제스틱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뽐냈다. 비틀즈"I am the Walus" 커버곡도 있다. 라디오헤드"Creep"도 불렀다. 마스크의 Cuban pete는 왜 빼놓는거지?

  • 결혼생활에선 굉장히 굴곡이 많은데, 첫번째 아내는 웨이트리스 출신이며 이혼.[23] 두번째 부인인 영화배우 로런 홀리(1963년생)[24]와도 이혼했고 2000년 영화배우 르네 젤위거(1969년생)와는 파혼했다. 2006년부터 월간 플레이보이 모델 출신 제니 매커시(1972년생)를 사귀었다. 이후 2012년부터 미국 뉴욕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23세 연하 아일랜드 출신 카트리나 화이트와 사귀고 있었다. ## 그녀는 안타깝게도 2015년 9월 약물과다복용으로 30세의 나이에 LA 인근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짐 캐리는 그녀의 장례 비용을 모두 지불했으며, 장례식에서 그녀의 관을 직접 들었다. * 그런데 화이트의 모친과 전 남편이 화이트의 죽음은 짐 캐리 때문이라고 소송을 걸었다.[25] 카트리나가 남긴 자필 편지들[26]에는 짐 캐리와 사망 4일 전에 헤어졌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으며, "그 남자(짐 캐리)는 지킬 박사가 아니라 하이드 씨였다. 그가 성병과 약물을 소개해 내 인생을 망쳤다. 짐이 내 몸을 더렵혔고, 나를 모욕 당하게 했다. 그는 날 창녀라 불렀으며, 기회주의자였다. 성병[27] 은 나를 하자있는 물건 처럼 여겨지게 만들었다." 라고 쓰여있어, 그녀가 성병으로 인해 우울증에 걸렸음을 짐작하게 한다. 짐 캐리는 이에 대해 "나는 성병을 옮기지 않았으며, 카트리나 가족들의 이 같은 행동은 오직 돈 때문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는데, 법원에 제출된 그의 2013년 진료 기록[28] 에는 그가 헤르페스1형과 2형, 클라미디아, A형 간염을 보유한 것이 확인되었다.

  • 어릴 때부터 곤충류를 공포증에 가깝게 싫어한다. 에이스 벤추라2 촬영시 무대가 곤충이 우글거리는 정글인 탓에 영화사와 심한 마찰을 빚었었다. 결국 촬영장소를 방충망으로 도배해가면서 촬영을 끝마쳤는데 그 당시 국내영화 잡지에서는 이를 두고 겨우 벌레 가지고 난리다. 잘 나가더니 까탈스러워졌다고 비판조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그런데 짐 캐리가 후일 이 당시 상황에 말하기를 로케이션 장소에 도착해보니 비둘기만한 나방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고. 그래서 법적문제를 감수하면서까지 일방적인 계약파기도 생각했었다고 한다. 사실 어떤 사람의 혐오증 내지 공포증은 단순한 근성론으로 극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국내 더빙전담 성우는 김환진이나 오세홍이지만 대체로 김환진이 전담을 맡고 있다. 트루먼 쇼가 MBC에서 방영될 당시 안지환이 더빙했던 것과 이터널 선샤인이 SBS에서 방영될때 성완경이 연기했던걸 제외하면 모든 짐 캐리 영화는 김환진이 더빙했다. 코미디 이미지에 맞춘 캐스팅인지 어째 짐 캐리가 정극을 맡을 경우엔 김환진을 기용을 안하는듯. 어쨌든 김환진의 짐 캐리는 이정구브루스 윌리스처럼 싱크로율이 완벽할 정도로 뛰어난 편이라고 성우팬들에게 회자된다.

  • 무한 목춤 영상으로 유명한 What is Love 영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본 영상은 SNL의 과거 유명 스케치였던 'A Night At Roxbury' 의 한 에피소드로, 크리스 커턴과 윌 페렐이 함께 나온다.

  • 팬들에게는 슬프게도 반(反)예방 접종의 지지자이다. 안티 백신 운동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웨이크필드의 주장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내기사 이게 얼마나 무모한 짓이냐면... 이런 지지자들 때문에 부모가 백신 접종을 안 해줘서 매년 사망하는 어린이들이 굉장히 많다. 미국에선 이게 사회 문제 수준이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신 접종을 반드시 해줄 것을 부탁하며 본인이 직접 백신 주사를 맞는 모습을 백악관 사진을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미친부모 집단이 상당히 존재하는 편이다. 자세한 내용은 안예모 문서 참고.)

  • 정치성향은 진보에 가깝다. 보수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여러 번 깠었고 지난 선거 때는 "With Obama I'll pay more but I'll sleep well"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세금은 더 내겠지만 더 편하게 잘 수 있겠죠) 라고 하면서 오바마를 지지했다.[29] 사실 진보진영에도 이따금 반과학주의자들이 있기때문에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녹색당의 대선 후보 였던 질 스타인이 이런 의혹을 받고 있다.

  • 말하는 속도가 빠름에도 불구하고 발음이 좋아서 알아듣는 데에는 큰 불편이 없는 편이다.

  • 공식 홈페이지가 있었는데, 팀 버튼 영화를 보는것 처럼 굉장히 기괴하고 재치있는 플래시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금은 폐쇄된 듯 하다.

  • 90년대 당시 인기에 힘입어 그의 3대 히트작인 에이스 벤추라(1995~2000), 마스크(1995~2000), 덤앤더머(1995~1996)는 모두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시리즈로 방영되었다. 전부 짐 캐리에서 파생된 캐릭터인데다 방영 시기가 비슷하다 보니 에이스 벤추라에 마스크가 출연하는등 크로스오버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1] 토론토 근교의 작은 소도시이다.[2] 한국의 개그맨 정종철도 어릴 때 입으로 소리내며 놀다가 성대모사의 귀재가 되었다.[3] 이 진지한 멜로연기 와중에도 간간이 얼굴 개그를 하거나 어린아이처럼 구는 개그 연기를 선보였다.[4] 이 영화에는 무려 지나 데이비스와 제프 골드브럼이라는 제법 인지도가 있던 배우가 나왔다. 이전에도 국내에 소리소문없이 개봉했었는데 1991년에 오아시스 비디오에서 <에이리언과 지구연인>이라는 유치한 제목으로 비디오로 낸 바 있다. 물론 비디오 표지 어디에서도 짐 캐리 이름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국내에서도 알려지지 못한 배우였다.[5] 이 시절 나온 영화들은 짐 캐리가 유명해지자 그의 이름을 달고 다시 2차 매체에서 그가 주연인양 포스터를 새롭게 만들어 재출시된다.[6] 극장 흥행도 성공했지만 특히 2차 시장에서 대박을 거둬들였다. 비디오 시장은 물론이고 1996년에는 7th Level 사에서 어드벤처 게임으로도 만들어졌다.(이 게임에서도 에이스 벤추라 목소리를 짐 캐리가 맡았다.) 다만 게임이 발매된 시기인 90년대 중반은 어드벤처라는 장르 자체가 하락세에 치닫고 있던지라 흥행에는 실패하였다.[7] 94년 8월 개봉[8] 94년 12월 개봉[9] 물론 위트성 발언이였긴 하지만 토미 리 존스이라는 배우에게 배트맨 포에버의 투페이스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배역이었다. 원작의 투페이스는 인간의 양면성을 가진 광기 넘치는 악당인 반면 배트맨 포에버의 투페이스는 그냥 주책바가지. 물론 리틀러라는 캐릭터도 주책바가지이긴 했지만 이런 배역은 짐캐리에게는 맞춤 배역이라 당시 토미 리 존슨은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었다.[10] 제작비 4700만 달러 및 광고비까지 합쳐 6000만 달러를 들여 1억 200만 달러를 벌어들였기에 손익분기점 1억 2천만 달러에 도달하지 못해서 손해를 보긴 했지만 쫄딱 망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 연이어 대박중이던 짐 캐리 출연의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망한 편이었고 짐 캐리에게 거액의 출연료까지 내준 터라 이 영화 배급사인 콜럼비아 픽처스의 소유주인 소니는 콜럼비아 사장이던 마크 캔튼에게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해고시킨다.[11] 8200만 달러로 제작되어 전세계에서 7천만달러도 벌지 못했기에 흥행은 망했다.[12] 전자는 드라마 부문, 후자는 코미디 부문[13] 이 부분은 맨 온 더 문의 감독인 밀로스 포먼도 깠다.[14] 코미디언으로 시작, 정극배우 연기력, 좋은 필모그라피, 심지어 탁월한 노래실력까지.[15] 이때가 바로 트루먼 쇼때이다![16] 물론 연기고 개그다! [17] 짐 캐리가 다시는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하면서 선택한 작품일 정도로 애착을 가지며 찍은 영화였다. 짐 캐리의 연기 자체는 괜찮은 평을 받았지만 흥행과 비평 모두 혹평을 받고 팬들에게까지 어울리지 않게 웬 정극이냐고 욕을 먹자 캐리는 2003년 브루스 올마이티로 재기할 때 까지 공백기를 갖는다. 감독은 쇼생크 탈출로 알려진 프랭크 다라본트.[18] 만사에 부정적이던 남자가 트레이닝을 통해 모든 것에 'Yes!'를 외치는 긍정적인 사나이로 거듭나며 생기는 해프닝을 그린 영화. 영화 자체는 무난한 코미디물이며 캐리가 한국어 강습에도 그만 예스를 해 버려서 한국어를 배우며 하던 대사인 "청주 날쒸는 어때여?"가 조금 화제가 되었다. 일각에선 "정준하씨는 어때요?"로 들린다는 주장도 있다.[19] 이완 맥그리거와 공동주연한 게이 코미디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아이 러브 유 필립 모리스'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국내 개봉 예정 홍보의 경우 짐 캐리의 코미디 연기에만 집중. 때문에 홍보물에 낚여 평범한 코미디물을 보러 왔다가 게이 코미디와 노골적인 정사 시퀀스에 식겁하거나 당황한 사람들이 다수 있었다. 특히 커플 관객들이 당황하기도...[20] 두 주연 배우가 출연하는 20년만의 후속편. 흥행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평가면에선 전작 팬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21] 오랜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다. [22] 메이킹 필름에 나온 바로는 속성으로 해당 대사만 연습한 걸로 보인다. 진정한 한국어 실력은 미지수.[23] 첫 번째 아내 사이에서 낳은 '제인 캐리'(1987년생·싱어송라이터)가 있고 그 제인이 2009년 2월 26일 손자 잭슨을 낳아 47살의 나이에 할아버지가 되었다![24] '덤 앤 더머'의 여주인공으로 또 다른 대표작은 NCIS의 제니 셰퍼드 국장役.[25] 정확하게는 과다복용한 약물은 처방진통제인데 불법적으로 짐 캐리를 통해서 약을 얻었다는 내용의 소송이다[26] 소송 당시 증거로 제출되었다. 여기에는 짐 캐리가 카트리나 화이트와 만날 당시 헤르페스 발병에 대해 거짓말을 한 후 그녀에게 옮겼다는 주장도 포함되어있다.[27] 짐 캐리는 카트리나 화이트에게 헤르페스1형과 2형, 임질 등의 성병을 옮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28] 짐 캐리는 성병을 치료하면서 Jose Lopez라는 가명을 사용했다.[29] 트위터를 통하여 이러한 발언을 한 바가 있다.[30] 단, 전반적인 이름과 성격은 1991년 영화, 러시의 동명의 주인공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