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최근 수정 시각:

파일:Semi_protect2.png
이 문서는 비로그인 사용자 및 가입 후 15일이 지나지 않은 일반 사용자의 편집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사유는 여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New_Progressive_Party-logo.svg.png

진보신당

표어

평등, 평화, 생태, 연대

창당일

2008년 3월 17일

해산일

2012년 4월 12일

당 색

빨간색 (#E62020)

정치적 스펙트럼

좌파

이념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 여성주의[1]

해산 전 대표

홍세화

해산 전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70길 19
대하빌딩 801호

해산 당시 국회의원

0석 / 299석[2]



1. 개요2. 역사
2.1. 민주노동당 분당과 진보신당 창당2.2. 진보신당 창당과 총선2.3. 2010년 지방선거2.4. 통합파들의 탈당
3. 역대 지도부 4. 역대 선거 결과5. 여담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2008년~2012년까지 존재했던 대한민국의 PD계 진보 정당.
정의당[3], 노동당[4]의 전신이다.

진보신당의 강령과 역사를 계승했다는 점에서는 노동당이[5], 진보신당의 정신과 인적 자원을 계승했다는 점에서는 정의당이 각각 진보신당의 계보를 간접적으로 잇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역사[편집]

2.1. 민주노동당 분당과 진보신당 창당[편집]

민주노동당 분당의 근본적인 이유는 노선에 따른 구조적 차이였다. 민족해방파(NL)의 경우 지도자 1인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제를 구축한다. 강력한 집권층에게 선거로 권력을 위임하고, 일단 위임했으면 끝까지 밀어주는 것이 NL의 방식. 그러나 이러한 체제는 당연히 지도부가 거의 모든 권력을 누리게 되므로 많은 병폐를 낳을 수밖에 없다. 반면 진보신당 및 민중민주파(PD)는 지도부를 정책 실행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인식하며,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 인물보다는 노선과 정책이 중요하여, 인물이 노선과 정책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경우 당연히 노선과 정책을 우선시한다. 이런 성격상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으나, 의견 하나 내는 데 시간을 다 잡아 먹는 안습한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민주노동당의 NL계는 NL과 PD의 동거만으로 한국 진보정치를 낙관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으나, 당내 PD계는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과거의 운동 노선을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때 제기된 구호가 바로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였다.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수호하는 데 더욱 충실하면서도, 생태주의와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생태주의뿐만 아니라 여성주의, 평화주의, 소수자 운동과 결합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제기되었다. 이른바 전통적인 자민통(NLPDR)노선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평가할 수 있다. 자민통 계열인 NL계는 민주당계 정당과의 선거 연대를 통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목표로 하였으나, 평등파인 PD계는 사회주의 이념의 재구성을 통한 좌파의 재구성을 목표로 하였다. 그러니 PD계가 민주당과의 선거 연대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이렇듯 민주노동당의 분당은 단순한 감정 대립이나 헤게모니 투쟁 때문이라기보다는, 확연히 구분되는 노선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종북주의를 비판하며 탈당했던 진중권이 진보신당에 입당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고, 그 외 유명인으로는 언론인 홍세화, 박노자 교수, 영화감독 박찬욱, 영화배우 문소리 등이 있다. 참고로 이들은 모두 이전부터 민주노동당 당원이었으며, 분당 과정을 거치며 이적(?)한 케이스.

2.2. 진보신당 창당과 총선[편집]

한국사회당과 노선이 비슷해서 합당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창당 당시에도 한국사회당과 합당을 추진하였으나 무산되었다.# 이후 한국사회당은 등록이 취소되었지만 사회당으로 재등록하였고, 다시 합당이 논의되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사태로 인한 촛불시위 이전에는 존재감이 흐릿했지만, 진보신당에서 운영하는 아프리카 개인방송인 칼라TV로 점점 존재감을 알리는 동시에 인터넷상에서 어느 정도 세력 확장을 하였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두자릿수 지지율과 비례대표 6번까지 당선을 목표로 선거에 임하였다. 그러나 노회찬, 심상정이 여론조사에서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낙선하였고, 정당 득표율 3%에 미치지 못하면서 한 명의 의석도 확보하지 못하였다.
2009년 3월 당원 목수정이 정명훈과의 사건에서 많은 논란을 사기도 했다. 문서 참조. 2009년 4월의 보궐선거에서 울산광역시조승수 의원의 당선으로 처음으로 원내진입에 성공하였다.

여담으로 이명박 前 대통령이 진보신당 창당식 및 진보신당 창당 2년차때 축하 화환을 보내서 축하의사를 표하기도 했다.[6]

2.3. 2010년 지방선거[편집]

2010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총 등에서 각종 통합 떡밥이 나돌았지만 전반적으로 정서가 비판적이었다. 제대로 이혼한 부부에게 재결합하라는 강요에 대한 반응이라고나 할까. 자신들과 이념이 다른 민주당과의 연대에 대한 각 당의 갈등도 있는 상황에서, 모든 잘잘못을 덮고 통합을 강요하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민주노동당 임시대의원대회에서는 단독 후보 발의안이 부정되고 선거 시 진보대통합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고, 이 상황에서 노회찬 대표는 2009년 12월 16일, 통합정당은 선거 이후에 논의하더라도 민주당을 제외한 진보대연합으로 선거 연합을 하자고 제안하였다. 국민참여당은 크게 반발하였다. 근데 훗날 시점에선 결국 그렇게 됐잖아? 민주노동당에서는 통합정당 논의를 왜 선거 이후에 하느냐고 노회찬을 까고 있다. 결국 노회찬은 민주계와 민주노동당 양쪽으로부터 비판받게 되었고, 5당 + 4시민단체 회의의 파행 끝에 선거 연대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치러지게 되었다.

결국 일부 지방을 제외하고는 선거 연대 없이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치렀다. 이 선거에서 진보신당은 광역의원 3명과 기초의원 22명을 배출했다. 하지만 경기도지사로 출마했던 심상정 후보는 선거 하루 전에 유시민 후보를 지지하고 사퇴하였다. 서울시장으로 출마했던 노회찬 후보는 선거를 완주하며 3.3%를 득표하였다.

한명숙 민주당 후보가 예상밖의 선전으로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를 거의 따라잡았으나 단일화를 거부한 노회찬 때문에 오세훈의 재선을 막지 못했다며 까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사전에 단일화를 제안한 적도 없으며,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진보신당에 돌리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진보신당 홈페이지나 노회찬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는 엄청난 수의 악플들이 달렸다. 사실 이 자체는 병크에 가까웠던 것이나, 민주 진영이 그렇게 비판하는 조중동 프레임과 마찬가지논리보다 쪽수로 밀어붙이는 여론몰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7]

2.4. 통합파들의 탈당[편집]

파일:external/www.labortoday.co.kr/106286_48150_2017.jpg
(탈당한 통합파들.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이른바 '노심조'.)

2011년 5월, 지도부는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추진하였다. 5월 27일 1차적으로 협상이 결렬되었으나#, 6월 1일 새벽까지 계속된 재협상 끝에 합의안이 통과#되었다.

6월 19일 고양시 일산신도시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정책 당대회에서 조승수 대표가 지난 분당 과정에서의 자신의 발언과 행동에 대해 사과를 기초로 한 축사를 발표하였다. 22일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도 17대 대선과 분당 과정에 대해 사과하였다.

진보신당은 2011년 9월 4일 오후 서울 삼전동 송파구민회관에서 개최된 당대회에서 통합 합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그 결과 재석 대의원 410명중 찬성 222명, 반대 188명. 찬성이 반대보다 우세하긴 하였으나 정족수의 2/3(274명)을 넘지 못하여 통합 합의안은 최종 부결되었다.

9월 5일 통합을 추진하던 지도부가 사퇴하였고, 11월 1일 진보진영의 명망가들이건 '노심조'를 비롯해 윤난실 전 부대표 등 많은 당원들이 탈당한다. 이들은 '새진보통합연대'를 결성하여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과 통합하여 통합진보당을 결성한다. 이 이후의 진보신당은 사실상 다른 역사로 보아야 한다.

결국 노회찬과 심상정을 비롯한 통합파들은 통합진보당에서 한국 진보정치 사상 가장 을 겪은 후, 다시 탈당하여 진보정의당을 창당한다. 이 당은 현재 정의당의 전신이다.

통합파 탈당 이후의 역사는 문서 참조.

3. 역대 지도부 [편집]

  • 1기 대표단(2008.3 ~ 2009.3)

    • 상임대표: 노회찬, 심상정

    • 공동대표: 박김영희, 이덕우, 김석준

  • 2기 대표단(2009.3 ~ 2010.9)

    • 대표: 노회찬

    • 부대표: 정종권, 이용길, 박김영희, 윤난실

  • 3기 대표단(2010.9 ~ 2011.9)

    • 대표: 조승수(중도사퇴)

    • 부대표: 김은주(권한대행), 윤난실, 김정진, 박용진[8]

  • 비상대책위원회(2011.9 ~ 2011.11)[9]

    • 위원장: 김혜경

    • 위원: 김윤기, 이건수, 허윤영, 박육남, 이근선, 전원배, 정상천

  • 4기 대표단(2011.11 ~ 2013.1)

    • 상임대표: 홍세화[10]

    • 공동대표: 안효상[11]

    • 부대표: 강상구, 김종철(권한대행), 심재옥, 김선아

  • 5기 대표단(2013.2 ~ 2015.1)

    • 대표: 이용길

    • 부대표: 정진우, 장석준, 이봉화, 박은지[12]

4. 역대 선거 결과[편집]

5. 여담[편집]

진보신당이나 그 후계 정당인 노동당의 지지자들을 얕잡아 부르는 비칭으로 진신류가 있는데 진신류의 '진신'이 바로 진보신당을 줄인 말이다.

6. 둘러보기[편집]


[1] 사회주의적 여성주의를 추구한다.[2] 당의 유일한 의원이었던 조승수 의원이 통합진보당으로 옮겨 갔다.[3] 엄밀하게는 정의당은 진보신당 탈당파가 다른 정당인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과 합쳐서 만든 통합진보당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기에 진보신당과 관계는 있지만 직계후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4] 노동당도 역시 사회당의 후신이 되어버렸지만, 2017년에 비선 논란으로 박살난데다, 이갑용 대표가 노동자의 정당으로 재구성하고 있기에 직계후신에 가까워지고 있다.[5] 물론 2018년 현재는 정신까지 계승하고 있다고 해도 된다. 당 대표부터가 진보신당 계열의 이갑용이다.[6] 이명박 前 대통령은 민주노동당과는 친분이 없다시피 했지만, 진보신당 창당의 주축인 노회찬, 심상정과는 상당한 친분이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7] 어쨌거나 이는 후에도 정의당과 민주당의 사이가 험악해지면 단골로 나오는 레퍼토리(…)가 되었다.[8] 現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9] 조승수 대표 사퇴 이후 김은주 부대표가 권한대행을 맡았으나, 얼마 후 물러나고 비대위 설치.[10] 사회당과의 합당 이후 상임대표. 일신상의 이유로 2012년 10월 사퇴.[11] 사회당과의 합당 당시 사회당 대표로 합당 이후 공동대표 취임. 2012년 11월 김순자 대선후보 출마 문제와 관련하여 사퇴.[12] 임기 도중 사망.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노동당(한국)/역사 문서의 r12 판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노동당(한국) 문서의 r675 판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