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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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직역하면 안 되는 경우3. 그 밖에4. 서브컬처에서5. 직역이 필요한 곳?

1. 개요[편집]

외국어로 된 원문의 내용에 충실하게 번역하는 것.

2. 직역하면 안 되는 경우[편집]

일차적으로, 언어는 역사성 때문에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의미변화 문서도 참고.

2.1. 관용구[편집]

'입이 무겁다' 같은 관용구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일본어 '口が重い'로 곧이곧대로 번역하는 것이 직역인 동시에 오역인 예이다.[1] 또한 의역 문서에도 실려 있듯이, 일본어에서 '億千の' 같은 표현이 나온 때에 '억천의'라고 글자 그대로 번역하는 것은 직역이자 오역이며, 이를 올바르게 표현하려면 양이 많다는 뜻을 살려서 '수많은'이라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비슷한 식으로 'raining cats and dog'라고 하면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는 뜻인데, 직역하면 무슨 뜻이 될지 생각해봐라.
하늘에서 개와 고양이가 내려와요
그냥 비가 개같이도 온다잖아?

이 정도로 멀리 갈 것 없이 우리가 자주 쓰는 숙어 모순(矛盾)만 보아도 직역해서 '창과 방패'라고 하면 의미를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2.2. 언어간 동형이의 한자어[편집]

한자어 문화권에서는 한자가 나타내는 뜻이 통한다고 섣불리 외국어를 번역할 때 그대로 뜻을 풀이해 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당장 한국어 내에서도 융합 합성어는 어근과 합성어를 나타내는 뜻이 전혀 별개여서 따로 배우지 않으면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다른 진화를 거친 타국어야 어떠하겠는가. 해당 문서에 들어가면 알겠지만 대표적으로 '애인'이 있다. 이는 한국에서는 '연인'이라는 뜻이지만, 중국에서는 혼인한 상태인 배우자, 일본에서는 불륜의 상대를 뜻한다.

또한 외국의 한자 합성어를 음만 읽어 버리는 경우도 이따금 보인다. 이 또한 한국에서 쓰이지 않는 낱말이거나 반쯤 죽은 낱말, 상황에 맞지 않는 낱말이면 상황에 맞는 낱말로 바꾸는 게 좋은 번역이다. 예컨대, '구축'(驅逐/駆逐)은 현재 표준어이고 조선 시대에도 많이 쓰였지만 현대의 한국에서는 일본 살다 온 사람 아니면 '구축함' 말고는 거의 쓰지 않는 표현이다. 이 낱말을 중2 배틀물에 사용하면... 캐릭터에게 일빠 중2속성을 부여할 게 아니면 무난하게 '몰아내다'나 '제거' 정도로 바꿔 주는 게 알맞다.

3. 그 밖에[편집]

한편, 한국에서 이상하게 많이 오해되는 '의역 = 오역'과 비슷한 부류로 '직역 = 번역기 돌리기'(번역기 돌린 후 살짝 교정하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One hour of driving will take you there.

'직역'이란 단어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여 직역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문제인데, 위의 문장을 번역했을 때 '한 시간의 운전은 널 그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중2병?라고 번역해 놓고 직역이라고 우기는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이건 그냥 번역투 문장이며, 애초에 번역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번역은 단순히 의미만을 전달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의미를 전달하는 데는 해석만으로도 충분하다) 결과어로 자연스럽게 재구성, 가공하는 게 중요한데, 저 문장은 의미는 전달되었으나 가공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 직역이 글자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라고 하여서 언어간의 어순 차이조차 고려하지 않고 단어별로 1:1 대응시키는 이런 것을 직역이라 칭하는 것은 틀린 것이며, 번역의 기본은 직역임을 알아야 한다. 해당하는 표현 자체가 언어적, 문화적 차이에 따라 대응되는 표현이 없는 드문 경우에만 의역을 사용하는 것이고 직역이 딱딱하게 느껴지는 번역이고 의역은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느껴지는 거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을 하는 것이다. 참고로, 저 원문을 직역하면 '그곳까지 가는 데엔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나 '한 시간 정도 운전하면 도착한다.' 정도가 되겠다.

4. 서브컬처에서[편집]

사람에 따라 직역의 범주가 제각각이어서 번역계에서 직역과 의역의 범위를 두고 키배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그 언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 관용구 등을 직역해 버리면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듣는 경우가 나올 수 있으므로 적절한 의역이 필요하다. 단, 이게 도를 넘으면 창작이 되거나 발번역이 되어 버린다. 원래 번역이 또 다른 창작이긴 하나[2] 원문이 전달하는 뜻에서 너무 멀어져 버리면 오류가 되는 것이다.

대개 애니플러스, 애니맥스 등 정식 수입 경로의 자막의 경우 전문 번역가를 고용해 의역하는 경우가 많고, 임의로 자막을 제작하는 이들은(불법 자막 제작 포함) 직역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는 전문 번역가들이 의역이 필요한 책이나 서류 번역을 맡은 경험이 많아서나 개인 자막 제작자들이 번역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서브컬처라는 매체의 특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각 캐릭터들은 말투나 어조, 사투리 그리고 특유의 조어 방식으로 성격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역할 경우 이들이 전부 뭉뚱그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3] 또한 원문의 대사 자체가 해당 상황을 가장 잘 전달하기 위해 제작진이 고르고 고른 연출의 일부이므로 이를 누락, 각색시킬 경우 원문의 분위기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문장 성분의 도치나 어미의 변화까지 그대로 옮기는 극단적인 직역이 자막을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에게 선호된다. 하지만 서브컬처 대사 특성상 언어 유희가 많이 나오고 문장 성분의 누락이나 도치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말의 억양이나 뉘앙스까지 담기 힘든 자막만으로는 완전한 직역에 한계가 있어 적절한 의역 및 각색이 동반되어야 한다.

일본어를 어설프게 들을 줄 알지만 자막이 없이 볼 정도는 아닌 사람들에게 들리는 대사와 1:1로 매치되지 않는 자막은 상당히 거슬리기 때문에 직역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한국어와 문장 성분의 순서도 같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실 그 정도 되면 좀 더 공부해서 자막 없이 보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지만. 또한 일본어에서는 '~의'라는 수식 어구를 상당히 남발하는 편인데 한국어에서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므로 '~하는', '~에 있는', '~가 가진' 등의 적절한 번역으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이때 자막 제작자의 배경 지식 부족 등으로 격이나 시제가 틀릴 경우도 많아 차라리 듣는 이가 간극을 메꿀 수 있도록 그냥 직역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5. 직역이 필요한 곳?[편집]

직역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바로 언어 교과서. 이 경우엔 외국어를 구사하기 위해 문장 구조를 그대로 알려 줘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직역투 번역문을 싣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 등 고전어를 공부할 때에는 1차적으로 직역을 하는 것이 권장된다. 고전어는 현대어에 비해 문법이 엄격하기 때문에(일례로, 단수와 복수를 엄밀하게 구분하여 사용) 어설프게 의역을 하려고 들면 해당 언어를 정확하게 배우지 못하게 된다. 한문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직역이 선호되는 분야 중 대표적인 것이 성경. 의역을 하다 보면 번역자/번역팀의 주관(주관적 해석)이나 신학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기에[4] 진지한 묵상·통독·연구 용도 위주로 고안된 번역본들은 거의 직역 위주 역본이다.[5] 일부 직역본은 번역된 언어에서는 어색한 어법이나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으며(KJV, NASB, ESV 등), 일부러 그렇게 번역하기도 한다(NASB, ESV 등). 하지만 이러한 직역본들은 초신자나 비신자들이 보기에는 어려운 편이기에 이들을 위해 직역과 의역을 절충한 NIV나, 의역 중심 번역본(NLT, GNT 등)의 성경도 나와 있다.

[1] 올바른 표현은 '口が固い'로, 한국어로 직역하면 '입이 딱딱하다'다. 재미있는 건, 입이 가볍다는 표현은 일본어로도 입이 가볍다는 뜻의 '口が軽い'를 쓰는 것.[2] 이에도 이견이 있다. 안정효 씨는 번역이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이 잘못이라고 말한다.[3] 고의로 잘 쓰이지 않는 어려운 어휘를 쓰거나 귀여움을 어필하기 위해 문장 앞뒤를 바꾸는 경우 등.[4] 하지만 직역본도 번역자/번역팀의 신학적 편향성에서 완전 무결할 수 없다.[5] 한국 개신교에서 '공동번역'을 배척하는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의역이 너무 심하고 실제로 공동번역성서 번역자(문익환 목사 등)의 주관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