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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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Jigme Khesar Namgyel Wangchuck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ing_Jigme_Khesar_Namgyel_Wangchuck_%28edit%29.jpg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의 사진

재위기간

2006년 12월 14일
현재 재위 중

정식 즉위일

2008년 11월 1일

실제 즉위일

2006년 12월 14일

전대 국왕

지그메 싱계 왕축

후대 국왕

현재 재위 중

왕후

제선 페마

결혼기념일

10월 13일

출생일

1980년 2월 21일(현재 만 38세)

1. 개요2. 가족관계3. 왕자로서의 삶4. 갑작스러운 양위5. 왕으로서의 삶
5.1. 로얄 웨딩5.2. 마침내 이루어진 부탄민주주의5.3. 토지 개혁과 공항 건축5.4. 국민을 돕는 시스템, Kidu5.5. Desuung 교육 프로그램5.6. 교육백년지대계
6. 외교 관계7. 그의 평가8. 여담

1. 개요[편집]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Jigme Khesar Namgyel Wangchuck) 국왕부탄 왕축 왕조의 제 5대 국왕이다. 정식 즉위일은 2008년 11월 1일이지만, 실제 정사 업무는 2006년 12월 14일부터 시작하였다.

2. 가족관계[편집]

그는 아버지 지그메 싱계 왕축와 3번째 왕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에게는 배다른 형제 3명과 누나 1명, 그리고 여동생 1명이 있다.[1]

3. 왕자로서의 삶[편집]

그는 부탄에서 고등학교 교육까지 받은 후, 미국의 유명 사립학교인 필립스 아카데미와 쿠싱 아카데미, 그리고 미국의 대학교인 막달라 대학교, 그리고 휘튼 대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그는 부탄 대내외적으로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잘생긴 용모와 겸손한 태도로 인기가 많으며, 그의 아버지 지그메 싱계 왕축이 참석하는 세계 곳곳의 행사에 동반하면서 부탄을 알리고 있다. 2002년 8월, 그는 27일 열린 UN 총회에서 연설해 부탄을 알리고 세계 지도자들에게 수백만의 전세계 어린이에게 대한 복지 문제 해결에 대해 연설했다.

2006년 6월 12일에서 13일 동안은 태국의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의 재위 60주년 행사에 참가하였는데, 그중 26세의 제일 어린 막내라서 태국 여성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Charming Prince, 이상적인 왕자로 순식간에 등극하였고, 사진은 언제 찍었는지 태국에서는 그의 사진집도 나왔다. 이외에도 각종 세계 행사에 참석해 부탄을 대내외로 열심히 알렸다. 2006년에는 태국에 다시 방문하여 란싯트 대학에서 명예 학사 직위를 받았다.

4. 갑작스러운 양위[편집]

그의 아버지인 지그메 싱계 왕축은 본디 2005년부터 자신은 2008년에 왕권을 양위할 것이라는 의사를 표현해 왔는데, 급작스럽게 2006년 12월 13일 왕위를 그에게 양위하고 물러난다. 선왕이 직접 밝힌 그 이유는 '아들이 충분한 통치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서'라 고 한다. 그는 다음날인 12월 14일 왕위에 즉위해 정사를 시작했지만, 정식 즉위식은 2년이 지난 2008년 11월 1일에 하게 된다. 이 행사에는 인도 공화국의 대통령과 다른 국가의 고위 인사 및 국민 수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CNN은 부탄의 대관식 모습을 보도했다.

5. 왕으로서의 삶[편집]

그는 급작스럽게 왕위에 올랐는데도 며칠만에 정국을 바로잡고 정사를 보기 시작한다.

5.1. 로얄 웨딩[편집]

그는 그와 같이 해외 유학파인 제선 페마(Jetsun Pema)와의 결혼식을 2011년 10월 13일에 거행했다. 이 결혼식은 부탄에서 가장 큰 파장을 일으켰다. 결혼식 때 왕은 부탄에서 가장 신성한 사원이라 여겨지는 종(Dzong) 사원에서 왕의 왕관을 수여받고 제선 페마에게 왕후의 왕관을 건넨 뒤 그녀를 공식적인 왕국의 왕후로 선포하였다.

5.2. 마침내 이루어진 부탄민주주의[편집]

그의 아버지 지그메 싱계 왕축 국왕은 자신의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행복정책을 펼치고 있었는데, 행복정책의 최종 목표는 바로 부탄민주화였다. 그의 아버지는 지난 2000년대부터 기틀을 잡기 시작하여 부탄의 민주화 프로젝트를 이끌어왔지만, 왕이 정치를 너무 잘 하는 바람에(...) 현재의 왕정에 전혀 불만이 없었던 국민들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반대하면서 프로젝트는 큰 굴곡을 겪어 왔고 결국 선왕 대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는 즉위한 뒤 민주화 프로젝트를 천천히 진행시키면서 국민들을 설득하고 민주화를 알리기 위해 부탄 전역을 돌아다니며 그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민주주의를 국민들에게 알렸고 민주주의는 점차 국민들의 삶에 녹아들어가는데 성공한다.[2] 이후 2008년 3월 24일, 부탄에서도 하원의회를 뽑는 민주주의의 꽃 선거가 진행되면서 부탄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는 총선 이후로도 부탄의 임시헌법과 각종 법률을 논의하면서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민주주의를 국민이 아닌 국왕이, 그것도 2대에 걸친 왕축 왕조의 국민 사랑과 민주화는 근대사에서 민주주의를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사례이다.

5.3. 토지 개혁과 공항 건축[편집]

그는 공식적인 대관식 후 첫 번째로 가장 시급한 부탄의 토지 문제[3]를 해결하기 위해 2009년 3월 전국의 모든 토지 지적 재조사를 실시했다. 이 개혁의 의의는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대에 초점을 맞춘 토지 재활 프로젝트이다. 그밖에도 국왕은 교통이 불편한 곳에 사는 주민들을 위하여 오지에 공항을 건설하고 개량했는데, 이 때 개량되거나 건설된 공항은 총 3개로, 자카르 바트팔라탕 공항사르팡 겔레푸 공항, 그리고 트라시강 용플라 공항이다.

5.4. 국민을 돕는 시스템, Kidu[편집]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바로 Kidu라고 하는 국민을 돕는 시스템이다. Kidu를 이용해 국민들은 왕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며, 왕은 전국 각지[4]를 돌며 국민들을 직접 만나고 무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그들의 고충을 직접 들으면서 문제점을 해결해 나간다. 이 Kidu는 도움 요청 말고도 다양한 곳에 있어서 진면목을 발휘하고 있는데, 땅이 없는 농민에게 왕실 소유의 토지를 배분한다던가, 장학금 등을 책정해서 전국의 학교를 돕는 식이다. 단 외국인과 결혼한 부탄인은 이 정책 수혜대상에서 제외된다.

5.5. Desuung 교육 프로그램[편집]

왕은 여러 청소년들의 요청에 따라, 2011년 DeSuung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교육 프로그램은 자원 봉사자 형식으로 참가자를 받아, 군사 스타일로 교육을 하여 비상 사태시 긴급히 지원을 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히게 하는 것이다. 1,000명 이상의 자원 봉사자들이 이 교육 프로그램을 완수하였으며, 다수의 공공 행사와 비상 사태를 위해 봉사하며 상당히 성공적이라 알려졌다.

5.6. 교육백년지대계[편집]

그는 그의 거의 모든 인터넷 사이트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수시로 학교를 방문한다. 그에게 있어 교육이란 부탄이라는 나라의 뿌리를 굳건히 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Kidu에서도 장학금을 편성하여 우수한 학생을 부탄의 대학 뿐만이 아니라 인도 공화국,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일본, 유럽 등지의 여러 학교에 유학을 보내준다.

또한 위에 얘기한 것처럼 부탄 국민에게 페이스북, 트위터를 적극 이용하여 전세계와 교류하라는 얘기를 자주 꺼내며, SNS 이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알렉스 퍼거슨 부탄원정 1패

6. 외교 관계[편집]

그는 그의 아버지 지그메 싱계 왕축 국왕처럼 인도 공화국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7년 2월 그는 인도 공화국과의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는 또한 여러 차례 인도를 방문하고 행사에 초청되기도 한다. 꽤나 인기가 많은 편. 한 예시로 이전에 서술한 2006년의 태국 방문 이후, 그는 태국 사람들로부터 매우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이 때문인지 부탄을 찾는 태국 관광객의 수는 그가 태국을 방문한 이후 꾸준이 증가하고 있다.

7. 그의 평가[편집]

선왕 지그메 싱계 왕축 국왕부터 노력해왔던 민주화가 결실을 맺게 하였고, 선왕 때부터의 국민 행복 정책에 또 다른 효율적인 정책들을 많이 도입해서 대내외적으로 평판이 좋은 편이다. 국민들도 그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편.

8. 여담[편집]

참고로 정식 즉위 기준으로 당시에 최연소 국가수반이었다. 그러나 2011년 12월 17일, 북한의 세습독재자 김정은이 27살로 국가수반 자리에 올라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이런 분을 김정은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이 분한테 치욕이다.

2016년 2월 6일 왕자를 얻었다. 이름은 게쉐이름에 신경쓰지 말자.라고 알려졌으나 본명은 지그메 남기엘 왕축이며, 게쉐는 왕자를 뜻하는 종카어이다.

바로 아래 동생인 지그옐 우곈 왕축은 부탄 올림픽 조직위원회 회장이고,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부탄 선수단 단장으로 참여했었다. 덕분에 조직위는 부탄 경기 때마다 경호하느라 죽어났다.

2016년 10월 부터 약 2주간 오지에 있는 국민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도보로 현지를 걸으며(!!) 일정을 수행하였으며, 이 방문기엔 제선 페마 왕후와 수행원 몇몇만을 대동하고 다녔다고 국왕 페이스북에 기록되어 있다.

외모가 특히 뛰어난 점으로도 유명하다. 객관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세계 국가 지도자들의 외모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그와중에 부동의 1위를 지키는 이분. 그리고 꼴찌는...... 그와중에 문재인은 9위다 그런데 리히텐슈타인의 한스 아담 같은 미남이 중하위권인 것이 많이 이상하다. 무슨 기준인지...

[1] 이런 경우 흔히 왕자의 난으로 대표되는 왕권 승계싸움을 생각하기 쉽지만, 나머지 배다른 가족들하고도 사이가 굉장히 좋다. 왕권을 승계받기 직전의 가족회의에서도 만장일치로 다른 형제자매들, 어머니들에게 지지를 받았을 정도.[2] 이 과정을 서양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바 있다. 영상을 보면, 국왕이 마치 구도자 같은 간소한 옷차림에 호위 서넛을 대동하고 논두렁에 앉아 둘러 모인 열댓 명의 농부들에게 민주주의의 좋은 점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 국내에서도 심야시간 대에 방영한 바 있다. 자세한 방송 내용을 아시는 분은 추가 바람.[3] 부탄 국민의 80% 이상이 농업에 종사 중이니 가장 시급한 문제일 수 밖에 없다.[4] 부탄의 면적은 47,500km2이로, 남한의 1/2 정도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