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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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Orwell
1903년 6월 25일 ~ 1950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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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조지 오웰'이라는 이름3. 생애
3.1. 초기3.2. 밑바닥 생활3.3. 스페인 내전 참가와 〈카탈로니아 찬가〉3.4. 2차 세계대전과 "동물농장"3.5. <1984>와 죽음
4. 여담5. "오웰 리스트"

1. 소개[편집]

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 그의 소설 1984에서 나오는 당의 슬로건


영국의 가장 위대한 전후 작가[1]

BBC에서는 지난 천 년 동안 가장 위대했던 영어 작가 3위로 선정했다.[2]

<동물농장>, <1984>, <카탈로니아 찬가>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2. '조지 오웰'이라는 이름[편집]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란 이름은 필명이며, 남성의 이름으로 흔한 '조지'와 영국의 이스트 앵글리아 지방에 있는 '오웰' 강을 합친 것.

흥미롭게도 그가 <1984>에서 주인공의 이름으로 사용한 '윈스턴 스미스' 역시 윈스턴 처칠의 이름에 흔한 성인 '스미스'를 합친 것이다. '윈스턴'은 원래 지명이다.

이 필명에 관한 일화 하나. 어느 날,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호텔에 머물고 있었는데, 어떤 이름 모를 영국인이 자신을 '에릭 블레어'라고 소개하며 인사하길래 헤밍웨이가 퉁명스레 답했다. "그래서? 뭐?" 그러자 그 영국인이 "그리고 '조지 오웰'이라고도 하지요." 라고 말하기에 헤밍웨이가 깜짝 놀라 "이런 젠장, 진작 말씀하시지. 자, 어서 한잔 합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디르급 태세전환

<1984>를 본뜬 소설이 나올 때나 대체역사물을 쓸 때 작가들이 이 본명을 자주 쓴다. 대표적인 예로 복거일비명을 찾아서가 있는데, 책 맨 앞의 작가 주석에다가 '조지 오웰은 에릭 아서 블레어로 표기하겠다'고 대놓고 적었다.

3. 생애[편집]

3.1. 초기[편집]

1903년, 인도 벵골에서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좋은 성적과 수상 경력 등등의 덕을 보아 1917년부터 1921년까지 왕립 장학생이었기에 하급 관리의 아들임에도 이튼 사립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으나, 갈수록 학업을 등한시하기 시작했고, 졸업할 즈음엔 그다지 성적이 좋지 못했다(167명 가운데 137등). 몇몇 교사들이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당시 이튼 학교의 교육목적은 식민지 관료, 군인, 제국주의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는데, 오웰은 이런 분위기 자체를 싫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 <멋진 신세계>를 집필한 영국의 명소설가 올더스 헉슬리가 오웰의 프랑스어 교사였다. 헉슬리도 제국주의자를 양성하는 이튼의 풍조에 적응하지 못해서 어설픈 선생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성적이 나빴기 때문에 인도 제국 경찰 시험에 합격해 미얀마에 부임하였다. 더 정확히는 대학교 진학은 가능했지만 가정에서 살인적인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독립을 권한 것이다. 그는 이 시기에 꽤나 고독하게 지냈으며, 미얀마어를 쉽게 익혔다. 하지만 식민 체제와 제국주의에 혐오감을 느낀 나머지 5년 뒤에 스스로 사표를 냈다. 그리고 오웰은 1934년에 <버마의 나날>(또는 버마 시절)을 집필해 이 시기를 신랄하게 깠다.

3.2. 밑바닥 생활[편집]

사표를 낸 뒤, 그는 이모가 사는 파리로 이주하였다. 처음에는 글로 먹고 살 생각이었지만 현실은 시궁창. 한 호텔에서 하루에 열세 시간씩 접시닦이로 일하다 돈을 벌기는커녕 병만 얻고 돌아왔다. 런던으로 돌아온 뒤엔 <버마 시절>을 집필하기는 했지만 가정교사 일도 잠시 하였고, 홈리스 생활을 하던 중에 켄트로 가서 줍는 일도 하다 한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기도 하였다.

바로 이 때의 경험을 밑천으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라는 책을 쓰게 되었고, 이 책은 조지 오웰을 르포작가로서 세상에 알린 첫 작품이 되었다. 이 책에는 그가 실제로 겪었던 노숙생활에서 본 부랑자, 일용직 노동자, 불량배 등 다양한 사람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한 내용이 가감없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지금도 영국 하층민의 생활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르포로 주목받은 오웰은 탄광 노동자의 생활에 대한 글을 써줄 것을 요청받았는데, 그렇게 탄생한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오웰의 첫 히트작이 되어 '먹고 살 만한' 상황에 진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

3.3. 스페인 내전 참가와 〈카탈로니아 찬가〉[편집]

1936년 겨울, 그는 스페인 내전에서 인민정부를 지지하며 의용군으로 참전하여 카탈루냐 지방으로 갔다. 이곳은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POUM)의 장악 아래 평등한 분위기가 넘쳐흘렀다. 오웰은 여기서 인간적인 희망을 얻었다. 하지만 상황은 열악해서, 전투는 얼마 없었지만 추위와 굶주림으로 많은 병사들이 죽어갔다고. 스페인판 참호전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였다고 한다.

전쟁 중에 그는 목을 관통당하는 부상을 입었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았다.[3] 그런 와중에, 그가 소속되어 있는 통일노동자당이 스페인 공산당으로부터 트로츠키파로 의심을 받기 시작하였고[4], 결국 우여곡절 끝에 아내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와 유명한 <카탈로니아 찬가>를 썼다. 그가 스페인에서 겪은 일들을 더 알고 싶으면 네이버 역사 캐스트의 해당 기사를 참조할 것. 여담이지만 안토니오 가우디의 걸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왜 안 부수냐는 대목도 있다.

뒤이어 1937년, 오웰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출간한다. 본디 스페인 내전 이전에 쓰인 이 책은 이 시기에야 출간되었다. 오웰이 사회주의자로서의 의식을 표현한 첫 번째 책으로 간주되기도 하는데, 오웰의 장기인 '정치적 발언 파트'가 처음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나타난 책이기 때문이다. 그 뒤에 심신이 피로해진 오웰은 모로코로 떠나 요양하면서 <숨 쉬러 나가다 (coming up for air)>를 집필하고 농사를 지으며 1년간 생활하게 되었다.

3.4. 2차 세계대전과 "동물농장"[편집]

1939년, 아돌프 히틀러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오웰에게 복귀의 계기가 되었다.

오웰은 1941년BBC에서 대인도 선전방송의 원고와 라디오를 담당했지만[5] 제국주의적 태도와 검열 등에 불만을 품고 그만두게 되었다. 1943년부터 그는 '트리뷴'에서 문예 편집자로 일했으며[6], 1945년에는 스탈린 체제 소련을 풍자한 우화 <동물농장>을 출간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영국과 동맹 관계였던 소련과 스탈린을 신랄하게 깠기 때문에 한동안 출판은 어려웠으며, 심지어 쓰는 와중엔 런던 공습 중에 원고가 타버릴 뻔했다. 하지만 반공적인 내용 덕분에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읽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갓 정부가 수립된 대한민국에서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세계 최초로 <동물농장>을 번역한 나라(언어권)가 되었다.

<동물농장>이 애니메이션화된 당시, 그 배후에는 FBI가 있었다고 한다. 소설과 달리 애니메이션에서는 민중혁명으로 돼지 나폴레옹 일당이 몰락하는 최후가 나온다.

3.5. <1984>와 죽음[편집]

<동물농장>으로 유명해진 오웰은 런던이 싫다는 이유로 스코틀랜드 주라 섬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그는 결핵으로 고생했으며, 그 와중에도 <1984>를 집필하여 1949년 11월에 드디어 출간하였다. 그로부터 2개월 뒤인 1950년 1월 21일, 결국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는 사회주의자였지만 소련식 체제를 혐오하였다. 소련은 마르크스는 물론이고 심지어 레닌의 이상마저도 퇴색시켜 버린 독재 국가에 불과하다고 간주한 것이다. 특히 <동물농장>과 <1984>는 그가 생각하는 소련스탈린주의를 멋드러지게 풍자한 것으로 명성이 높다. <동물농장>과 <1984>, 이 두 걸작품은 이후에도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었으며, 특히 <1984>의 빅 브라더는 개인의 모든 정신과 생활까지 체제에 따라 빠짐없이 감시하는 상황을 비유하는 대명사로까지 정착되었다. 나아가 이 소설의 영향으로 소설 속의 오세아니아처럼 정부가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통제하는 전체주의 사회를 '오웰리언(Orwelli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4. 여담[편집]

그의 소설들은 북한의 모습과 비슷하다. 돼지를 독재자로 묘사한 걸 보면 예언 같을 정도다.

현재 기준으로도 굉장한 장신(6피트 2인치 반. 거의 190 cm)이었다. 그래서 막장을 취재할 때 엄청 고생했다고 한다. 막장의 갱도는 높이가 1미터 (3~4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몸을 거의 반으로 접어야 했다고.

자유주의자(리버럴)를 '권력을 탐하는(숭배하는) 무권력자'들이라 평하기도 했다(Liberal: a power worshipper without power.)

잠시 에스페란토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수필 가운데에 〈영국 요리에 대한 옹호〉라는 작품이 있다. 원문 실천문학사에서 출판한 산문집 '코끼리를 쏘다'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영국 요리가 무조건 맛이 나쁘다는 것은 오해이며 영국요리가 맛 없기로 소문난 이유는 가정식 위주로 발달했고, 그 가정들이 가난에 시달려 제대로 요리를 할 여건이 못되어 그것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을 뿐더러 외국인들이 싸구려 펍에서만 영국 요리를 접해서 그런 것. 그러나 해기스를 옹호하려 한 시점에서 신뢰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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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살던 집 앞에 놓인 텔레스크린 CCTV. 재미있지만 합성이다. #

한국의 유명한 기자인 조갑제가 존경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오웰이 정통 사회주의자임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작가 실탄이 쓴 소설에서 나오는 남주 또는 남주와 밀접한 인물의 퍼스트네임이 이 인물의 본명에서 나왔다. 남은 것을 블레어뿐이니, 차기작을 기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5. "오웰 리스트"[편집]

말년의 흑역사가 있는데, "오웰 리스트(Owell List)"란 것이다. 1949년 3월, 노동당 정부가 정보검색부 등을 통해서 반공선전을 할 때, 오웰은 친공(친소)적인 영어권 작가들를 다룬 리스트를 한때 청혼했던 여성인 실리아 커원(Celia Kirwan)에게 넘긴 적이 있다.# 리스트 명단에는 E.H 카, 찰리 채플린(!)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2003년에야 공개되었는데, 그래서 "빅 브라더를 반대하던 그가 냉전 시대에 빅브라더의 하수인이었다니!"(동아일보)하고 경악하는 경우도 많다고. 초기에 공개된 기사 제목 가운데 하나도 "Socialist Icon Who Became an Informer"(정보원이 된 사회주의자의 아이콘)이다.

리스트가 공개된 때의 충격은 아직 살아있던 오웰의 친구(대표적으로 그보다 열살이 어렸던 마이클 풋 전 노동당 당수)들까지도 경악했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단순히 이 리스트만으로 그를 매카시즘으로 바꿨다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 리스트는 '체제 전복 위험 인물 리스트'가 아니라 단순하게 '방첩 활동을 하기엔 부적합한 사람들'을 언급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 소련용 선전을 위해 원고청탁이나 방송을 맡기기엔 부적합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 사람은 위험하다'가 아니라 '이 사람을 대북선전 전문가로 고용하지 마시오'라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위키피디아에서도 "unsuitable as writers for the Department......"라고 적었다. 처음에는 대개 언론사의 선전으로 '조지 오웰이 알고보니 정부의 끄나풀이었다니!'라는 식의 충격적인 반응이 퍼졌으나 아직 살아 있는 동시대 언론인과 지인들의 회고를 통해 저 명단이 무슨 대단한 살생부도 아니고, 오웰에게 스탈린주의자들은 스페인 시절부터 유언비어와 음해를 한 악연이면 악연이지, 오웰이 이들을 지켜야 하는 의리도 딱히 없었고, 무엇보다 저 명단이 기껏해야 그냥 해당 정부 부서의 단편적인 목적을 위한 작은 명단에 불과했다는 점이 부각되며 다시 잠잠해졌다.

그리고 오웰의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저런 코민테른 계열 주류 공산주의자들은 사실 우익세력 못지 않게 욕 튀어나올 만하다. 오웰의 입장에서 저들은 스페인 내전 참전 때부터 오웰과 그가 몸 담고 있던 정치 세력을 음해하고, 박해하던 웬쑤들이다. 오웰을 비롯한 비소련계 좌익들이 우파에게 처맞을 때는 해 준것도 없고, 오히려 소련의 직접적인 힘이 닫는 곳에서는 지들이 더 노선통일이란 권위주의로 찍어 눌렀던 소련계 좌파가 오웰을 두고 배신자 운운할 건덕지기는 눈곱만큼도 없다. 출저까지 붙은 내용이므로 신뢰해도 좋을 듯하다. 문제는 한겨레에서 낸 책 소개에서 오웰 리스트에 대한 대목이 나오는데, 정보출처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잘못된 정보가 들어가 비방이 되어버렸다.

[1] 한동안 1위를 계속 거머쥐었는데, 2008년더 타임스의 조사에서는 시인 필립 라킨에게 애석하게 밀렸다. 이 사건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 데에는 그 동안 필립 라킨이 알려지지 못했던 탓도 있다.[2] 1위는 셰익스피어, 2위는 제인 오스틴. 4위는 찰스 디킨스, 5위는 이언 뱅크스, 6위는 J.R.R. 톨킨, 7위는 제임스 조이스, 8위는 도스토예프스키, 9위는 세르반테스, 10위는 마크 트웨인. 신뢰성은 알아서 판단하자. 영어권 작가가 아닌 사람도 보인다. 1999년 2월 한 달 동안에 BBC 웹사이트에서 진행한 투표로 매겨짐.# [3] 총알에 맞고 먼저 떠오른 생각은 가족 생각 같은 게 아니라 '총알이 내 어디에 맞은거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라고 한다. <카탈루냐 찬가>에 총에 맞았던 당시의 느낌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4] 이때부터 그는 스탈린주의를 경멸하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대표적으로, 그가 초기에 내전에 참여할 때 함께 한 아나키스트는 스탈린주의자에게 가장 많은 탄압을 받고 사라지게 되었다.[5] 여러 시인을 초청해 시를 읽고 대담을 가졌다고 한다.[6] 이때 쓴 칼럼들 대다수는 한글 번역본이 없는 상태. 일부를 모아 번역한 책으로 한빛비즈에서 나온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