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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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70724조윤선석방.jpg

'집행유예 석방' 수갑 푼 조윤선

이름

조윤선 (趙允旋)

출생일

1966년 7월 22일 (51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거주지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본관

함안 조씨

학력

상명여자중학교
세화여자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외교학과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 법학 석사

신체

168cm

종교

불교

정당

자유한국당

가족

남편 박성엽, 슬하 1녀 박진성 2녀 박정연

현직

무직

수상

2008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우수국감의원
2009 서울 석세스 어워즈 정치부문 정치인상
2010 국회 함께 일하고 싶은 의원 1위

약력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제18대 국회의원(한나라당 비례대표 13번)
한나라당 대변인
제3대 여성가족부 장관
박근혜정부 제3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제49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외부 링크

블로그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인스타그램[1]


1. 개요2. 행적3. 경력 및 약력
3.1. 정계에서의 활동3.2. 박근혜와의 인연3.3. 여성가족부 장관 시절3.4.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3.5.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시절
4. 몰락
4.1. 사법 절차4.2. 뇌물 수수 혐의
5. 논란6. 기타7. 선거 이력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책임자 중 핵심 인물.
서울대 최악의 동문

대한민국법조인, 정치인이며, 현직 장관 1호 구속피의자[2]라는 영광스런(?) 타이틀이 있었으나 일단은 7월 28부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나와 풀려났다. 아래 참조.

국민들에게는 박근혜정부 시절,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가장 잘 알려졌으며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몰락하여 구속됐다. 현직 장관이 재임 중 구속된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조윤선이 최초이며, 이 외에도 본문에 서술되어 있듯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최초'와 '첫' 타이틀을 많이 갖고 있는 인물이다. 대한민국 정치계의 레코드 브레이커 그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기록은 현직 장관 1호 구속 피의자 타이틀이다.

2. 행적[편집]

1966년 7월 22일 서울특별시 용산구에서 태어나 서초구에서 자랐다.

1남 1녀 중 장녀로, 아버지 조용섭[3]은 유명 농약회사의 부사장 출신으로 퇴직 후에는 골프장 잔디관리 회사를 창업했으며, 어머니 권혁순은 제약회사에 다니다가 약국을 경영했다고 한다.#

상명여자중학교 [4], 세화여자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박민식[5]새누리당 의원과 학과동기로 알려져 있다.

제33회 사법시험(1991)에 합격하여 1994년부터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여자 변호사로서 김앤장에 들어간 최초의 인물이라고.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변호사로 활동했다. 미국 연방항소법원에서 4개월간 인턴으로 근무했다.

3. 경력 및 약력[편집]


3.1. 정계에서의 활동[편집]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후보 측이 발탁했다. 이회창의 고리타분하고 노후한 이미지를 세탁하고자 발탁한 여성 보좌관으로 그중 한 사람이 나경원, 다른 한 사람이 조윤선이었다. 한나라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공동대변인을 맡으면서 정계와 인연을 맺었다. 보수 정당 사상 첫 여성 대변인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2007년 1월부터 2008년 3월까지 한국시티은행 부행장 겸 법무본부장을 맡았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 13번으로 공천되었다. 국회 정무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활동했다. 2008년 3월 17일 한나라당 대변인에 다시 임명되어서 2010년 2월 4일까지 대변인직을 맡아 한나라당 최장수 대변인으로 기록되었다. 2008년 국정감사 우수의원 시상식에서 국정감사 우수국회의원상을 수상하였다.

국회의원 보좌진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의원' 으로 2년 연속 1위를 차지하였다. 기사

2010년에는 'We remember and share'라는 기치 아래 6.25 전쟁 참전국 용사들의 후손들에게 장학사업을 하는 한국전쟁기념재단을 발족하였다. 2010년 7월 27일 한국국제협력단의 대외 원조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서울특별시 종로구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친박계 홍사덕 후보와의 경선에서 탈락하였다.[6]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뒤엔 여성가족부 장관과 청와대 정무수석을 연이어 역임 했다.

2016년 서울특별시 서초구 갑 지역구에 제20대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이혜훈 후보와의 경선에서 불과 13표의 차이로 밀려 탈락하였다. 조윤선 전 장관의 입장에서 보면 이 경선의 패배가 자신의 정치 인생을 결정지은 셈인데 이 경선에서 승리, 국회의원에 당선 됐다면 굳이 장관직을 맡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이후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친박계였던 만큼 정치 입지는 줄었겠지만 구속 되는 상황까지는 맞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패배 이후 새누리당에서는 전략 공천으로 당시 컷오프에 반발하여 탈당한 그리고 진영을 바꿔 버린 진영을 대신해 용산구에 내보내려고 했지만, 조윤선 본인은 "서초구 주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고사하고 당에 잔류했다.

2016년 9월부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내다 2017년 1월 말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구속되고 장관직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2017년 7월 말에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가 없어 석방되었다.[7]

3.2. 박근혜와의 인연[편집]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요청으로 새누리당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에서 이상일 의원과 공동 대변인을 맡았으며, 박근혜 경선 캠프 대변인, 새누리당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중앙선대위 대변인을 거치면서,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파일:조윤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jpg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 시절

3번의 큰 선거를 치르는 동안, 조윤선은 박근혜를 지근거리에서 오랫동안 그림자 수행을 하면서 박근혜의 큰 신임을 얻었고 신 친박계 여성정치인으로 떠올랐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여성가족부 장관[8] ,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9]을 역임헸다.

3.3. 여성가족부 장관 시절[편집]

2013년 3월 11일 제3대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여성가족부 장관 시절, 직장 어린이집 확대정책, 성폭력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2013년 국정과제 평가에서 여성가족부가 전 부처 2위에 올랐으며, 부처 간 업무 장벽을 낮추기를 홍보했다. 기사

6월엔 가정폭력 피해 여성 및 아동을 위한 보호시설인 경남범숙의집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까 내가 그동안 인생이란 것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학교를 다닐 때는 인생을 100m 달리기라고 생각했다. 조금 늦게 출발하면 따라잡기 어렵고, 중간에 넘어지면 완전히 낙오되고, 빨리 뛰어 들어오는 순서대로 등수가 매겨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 문을 나와서 보니까 ‘인생은 막막한 광야 한가운데 탁 떨어진 것, 이제부터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정해야 되고, 어느 방향을 정했으면 혼자서 자기 길을 가야 된다.그러나 빨리 갔다고, 제일 멀리 간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학교를 졸업하고 살면서 느꼈다”, “어차피 이 학교를 벗어나면 광야에 혼자 서게 된다. 지금부터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 찾아서 자기만의 방향을 찾다보면 재미있는 것이 생기고 돈도 벌고 명예도 얻을 수 있다” "


여성가족부 장관으로는 처음으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여성정책을 합의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적도 있다.

조윤선 장관은 처음엔 셧다운제에 대해 "강제적 제도로 인해 가정에서의 지도 책임을 방기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라며 반대입장을 표명했지만 제도가 시행된 이후에는 "게임중독 청소년을 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로서 효과를 보고있다는 국민들의 평가가 있으므로 아직 초기단계 이므로 지속적으로 시행하며 성과를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며 찬성으로 입장을 바꾼 적이 있다.

2014년 1월 31일부터 2월 2일까지 프랑스 앙굴렘시에서 열린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한국만화기획전 '지지 않는 꽃'을 기획하기도했다. ‘봉제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설립하고 동대문 봉제 공장을 돌며 사회 소외계층 및 경력단절 여성의 자립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조윤선 장관을 '친(親) 섬유인'으로 분류한 기사도 있다.# 남녀평등을 외치며 여성정책에 협조를 해달라고 각 부처들과 한국 관료 사회에 말하기도 했다.

3.4.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편집]

2014년 6월 12일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발탁되었는데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정무수석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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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3일 1박 2일 일정으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이 한국을 국빈방문하였고, 조윤선은 나선화 문화재청장 등과 함께 펑리위안 여사의 의전을 맡았다. 통상적으로 이런 경우 영부인이 영접을 해야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여성이고 독신이라서 퍼스트레이디가 부재했기 때문에 대신해서 의전을 수행했다. 하지만 원래 외교부에서 담당해야 하는 역할을 정무수석이 나서서 영부인 노릇을 해서 그래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여하튼 당시 펑리위안을 배려해서 화려하지 않은, 단아한 패션으로 의전을 수행하여 주목받았다.

2015년 5월18일 공무원 연금 개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표명하며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직에서 사퇴했다.

3.5.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시절[편집]

2016년 9월5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취임당시 취임식 대신 모든 사무실을 돌며 직원들과 악수를 하며 각과의 업무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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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 장관과 걸그룹 레드벨벳 [10]

조윤선 장관은 오래 전 문화관련 서적을 펴낸 적도 있다. 한 권은 국회의원 시절 문광위에서 활동했던 생각을 모아서 임기 끝날 때 즈음에 출판한 책이고, 또 한 권은 정계에 입문하기 전 변호사 시절에 오페라를 가지고 쓴 교양서이다. 이 서적들이 장관 임명에 영향을 많이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장관 임명 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약 5개월간 많은 행보를 보였다. 남성 장관에 비해 여성 장관이라 그런지 조금은 부드러운 느낌으로 여성가족부 장관 때처럼 많은 국민과 소통하고 각계 인사를 만나는 등 가까이하고 특유의 적극적인 모습을 다른 이들에 비해 많이 보여줬다. K-POP 관련 행사에 참석해 레드벨벳, 걸스데이, 인피니트 등 많은 가수, 보이•걸그룹과 만난적도 있으며 문체부 장관 전이지만 지드래곤과 잡지화보를 찍은적도 있다.

조 장관은 평창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개막한 제1회 한중일 스포츠장관 회의에 참석하기도 하고 일본으로 첫 해외출장을 떠나 세계 스포츠•문화 포럼에 참석해 평창동계올림픽에서의 스포츠 청렴에 대해 발표했고 일본 문부과학성 대신과 NHK회장을 만나 한•일 콘텐츠 교류 협력 확대와 다양한 행사의 공동 개최 및 공동 방송 등에 대해 면담하고 양국 관광교류와 관련해 국토교통성 대신과 면담하기도 하는 등 국내외로 국제행사를 많이 참석하며 대한민국문화체육관광을 짧은시간 이었지만 알리고 다녔다.

한글을 알리는데도 기여를 한 바 있다. 담당부처이기도 하므로 세계한글작가대회, 한글문화큰잔치, 한글날 경축식에 참석하기도 하고 해외 한국 문화원에서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을 찾아가 격려하기도 했다.

2016년 9월 경주 지진 당시에는 첨성대 등 문화재의 피해여부 등을 문화재청장과 함께 점검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당시 직접 YTN과 전화 인터뷰를 하며 문화재 상태를 설명하는 등 다른 이들보다 상반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2016 한국 방문의 해 기념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을 한복을 입고 맞이한 적이 있고 한복의 날 기념식에도 한복을 입고 참석해 오상진 아나운서를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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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 장관과 오상진 아나운서


2016-2017 프로농구 개막전에 참석해 시투를 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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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하는 장관

명절 전엔 관광객으로 붐빌 것으로 예상되는 관광지나 명동관광특구를 둘러보기도 하고 평창올림픽과 연계해 관광을 통한 경제발전 등 관광산업 발전에 의지를 보이며 구속 1주일 전까지 관광업계 인사들과 접촉하며# 관광부 장관으로서의 역할도 보여주었고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한옥 명소를 외국인 관광객과 함께 둘러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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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선비촌 방문

체육장관이기도 했으므로 평창동계올림픽 준비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장관 취임초기 부터 사퇴 전까지 시설점검, 각종 올림픽관련 경기와 행사 그리고 평창올림픽 카운트다운 행사들에 참석하는 등 올림픽과 관련한 업무를 많이 했다. 2016년 연말부터 구속 직전까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뱃지를 고위인사로는 최초로 달고 활동했다.

아래 사진은 4종류의 올림픽 뱃지로 나눠 시간순으로 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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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윤선 평창 사각형 뱃지.jpg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원형 뱃지를 달고있는 조윤선장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정사각형 뱃지를 달고있는 조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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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청백색 사각형 뱃지를 달고있는 조 장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사각형 뱃지를 달고있는 조윤선 장관 (구속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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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 장관과 김연아 선수

또 체육계 인사들도 많이 만났는데 스포츠영웅 헌액식, 평창올림픽 G-500 행사, 대한민국 체육상 시상식 등 많은 체육 관련 행사를 참석하면서 김연아 선수도 만난 적이 있는가 하면 쇼트트랙 월드컵 대회에선 심석희 선수를 만나기도 했다. 이때 조 장관이 직접 스케이트를 타고 빙상 위에서 시상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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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테스트이벤트 쇼트트랙 월드컵대회 (여자) 에 조윤선 장관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참석했다.

조윤선 장관이 금메달 심석희 선수와 포옹하고 있다.


하지만 2017년 1월 21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지시 혐의, 청문회 위증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고 장관직을 내려놓고 6개월이 지난 2017년 7월 말 작성과 지시 혐의가 없고 위증 혐의만 인정돼 석방되었다.

4. 몰락[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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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짤의 상태가...

박근혜 정부에서 총애를 받고 승승장구하던 조윤선도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터지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당연히 본인은 수십 차례 부인했지만, 2017년 1월 18일 특검팀은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현직 장관이 영장심문을 받은 것은 헌정사상 최초였으며, 결국 2017년 1월 21일 새벽 3시 48분 김기춘과 동시에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장관' 신분으로 구속되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영장심사 직전에 사퇴한 장관은 몇 명 있었고 공무원 중 선출직(국회의원 등)은 옥중에서 당선되거나 현직인 채로 구속되어 옥중 집무를 한 경우가 가끔 있었다. 하지만 장관급의 임명직 공무원이 현직 신분을 유지한 채로 구속까지 된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1월 21일 사퇴 의사를 표명하였고, 황교안 권한대행도 이를 신속하게 수리한다고 하였다. 구속이 될 때까지 장관직을 내려 놓지 않은 까닭은 장관직이 구속 영장 방어에 도움이 되니까 유지했던 거고, 이제서야 사퇴하는 이유는 장관직을 유지한 상태로 재판에 들어가면 형사 처벌 시 가중 처벌이 되기 때문에 법적 형량을 낮추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있다. 본인 역시 법조인 출신이라 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한편 20일 영장 심사를 받으러 법원에 출두할 때는 문체부 공무원을 동원해 경호를 한 사실도 드러나, 지위를 이용해 문체부 직원들에게 헌법 유린 행위를 지시한 혐의로 구속 영장을 청구받은 현직 장관이 끝까지 공무원을 사사로이 이용했다는 비난도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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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50대답지 않은 동안이라는 평이 많았지만 구속이 된 이후부터, 점점 초췌하게 변하기 시작하는 외모 변화도 화제가 되었다. 피부과 보톡스 안 받아서 그랬다 카더라 1년 생활비가 7억이었다고 하니

구치소 입소 초기엔 5분 간격으로 시간을 물어보는 강박 증세를 보였고, 사실상 귤만 먹고 있어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는 기사가 나왔다. # 하지만 수감 생활 약 5주 동안 113만원의 영치금을 사용하고 다수의 책과 옷을 반입하는 등 다른 수감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안한 구치소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남편이자 변호사인 박성업이 물심양면으로 조윤선의 옥바라지를 하고 있기 때문에, 건강이나 멘탈에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4.1. 사법 절차[편집]

2017년 4월 6일부터 조윤선 및 김기춘 등에 대해 문화 및 예술계 지원 배제명단(일명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를 주도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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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6일 첫 재판에 출석하는 조윤선


자세한 내용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김기춘·조윤선·김상률·김소영 문서 참고.

피고인 신문을 앞두고 특검팀에서는 조윤선 전 장관이 '동정론'에 호소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피고인 신문에서 조윤선 전 장관은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하는 데 개입한 혐의를 적극 부인했다. 변호사와 수없이 상의했으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고 한다.#

특검팀은 조윤선 전 장관에게 징역 6년을 구형했다.#

최후변론에서 조윤선 전 장관과 남편이자 조 전 장관의 변호인 박상엽 변호사는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블랙리스트 혐의에 대해선 부인했다.#

구치소에서 잘 적응하지는 못하는 듯 하며,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읽었다고 한다.#[11]

2017년 7월 27일 1심 선고재판에서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는 증거가 약해 무죄, 국회 청문회 위증과 관련해서는 유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자세한 재판상황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김기춘·조윤선·김상률·김소영에서 참조. 현재 여러 여론에서도 조윤선만 콕 집어서 무죄로 만들었다고 핀셋 무죄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다.기사

이에 박영수 특검팀은 피고인 전원에 대해 항소하였고, 조윤선 역시 8월 3일 항소장을 제출하여 2심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8월말 제2부속실에서 다량의 문건이 발견되고[12] 그 곳에서 조윤선이 문화계블랙 리스트와 관련된 정황이 발견 되었다.

항소심에서는 조윤선의 변호인측은 위증죄에 대해 당일 선서를 안했으니까 위증이 아니다는 신박한 주장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4.2. 뇌물 수수 혐의[편집]

JTBC는 조윤선, 현기환 전 정무수석이 재임 기간 동안 매달 500만원씩 국정원의 특별활동비(≒ 국민 세금)를 상납 받은 것으로 검찰조사 결과 드러났다고 2017년 10월 31일 보도했다. 네티즌들은 작년처럼 날 추워졌으니 따뜻하게 큰 집 들어가자(?)는 반응 보였다.

상세는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 문서 참조.

5. 논란[편집]

해당 문서로.

6. 기타[편집]

박성엽 변호사(역시 김앤장 근무)와 사법시험 합격 전인 1990년에 결혼하여 3년 뒤인 1993년에 큰딸, 1997년에 둘째 딸을 낳았다.[13] 조 장관이 법조인이 된 계기가, 당시 연인이었던 박 변호사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어쨌든 그녀의 행보는 순탄대로의 출세의 연속이었고, 대통령을 제외하면 사실상 한 정치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영화는 모두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르게 해석하면, 그녀는 유복한 가정에서 풍부한 지원을 받으며 자아성취를 향해 고생없이 성장한 전형적인 금수저 엘리트였지, 갖은 풍파를 거치며 역경을 돌파하는 능력과 높은 가치관을 이룩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능력있고 훌륭한 인간과는 전혀 거리가 먼 부류였던 셈이다. 그녀에 대한 대중들의 야유에는 블랙리스트 작성이라는 직접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실상 모든 부와 권력, 물질적 행복을 독점하고, 사회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금수저들에 대한 분노도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다.

로데오거리에 있는 클래식 음반 전문 매장인 '풍월당'(소개(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의 단골 고객이라고 하며,#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다.

2015년 12월에 채널A와 인터뷰를 하였는데,# 당시 한 발언들을 돌이켜 보면 뭔가 씁쓸하다.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멘토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국정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담대함, 진심에 대한 믿음, 언행을 무겁게 하는 박 대통령의 장점을 닮고 싶다.

내 어머니가 늘 2가지를 강조하셨다. 염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순실 본 적 없다”던 조윤선...정유라와 함께 찍은 사진 공개돼 사람들이 요청할 때 찍어주던 사진에 찍어준 것이고, 저 사진 말고도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이 같이 찍어 달라고 해서 찍어준 사진도 있다고 한다. # 비판의 소지가 많은 인물이지만 이것은 제대로 해명된 사안. 하지만 이는 해당 사진에 대한 해명일 뿐, 실제 정유라와 친분관계를 해명한 건 아니다. 계속되는 궤변과 위증으로 이 사실 역시 언제 뒤집히는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실제 2014년 정유라를 옹호한 사실이 단순 관계가 아님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장관 후보자가 되기 전 1년 4개월간 교통법규를 29번 위반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관련기사 이는 주정차위반 19회, 속도위반 9회, 좌석안전띠 미착용 1회로, 예비선거운동기간을 포함한다.

2017년 1월 21일 현직장관으로선 최초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수감되었다.

조윤선 전 장관의 18대 비례대표 시절 '국회의원 조윤선 및 그 후원회의 회계보고서'를 토대로 작성한 '조윤선 맛집지도'가 화제가 되었다.#

김건모의 어머니인 이선미여사가 미운 우리 새끼에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수여하는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수상 후기를 밝히던 중 장관도 없는데 누가 상을 줬는지 모르겠다며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7.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한나라당

6,421,727 (37.48%)

당선 (13번)

[14]

8. 둘러보기[편집]

[1] 2017년 8월 첫째 주말 쯤, 조 전 장관의 모든 SNS계정이 삭제되거나 비활성화되었다.[2] 집행유예가 나왔지만 현직 장관이 구속수사를 받은 것 자체가 하나의 희귀한 기록이다. 대개는 구속수사를 받을 정도의 논란이 있으면 장관직을 사퇴하는 것이 보통이다.[3] 그녀와 같은 서울대학교를 나왔다. 다만 아버지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4] 1994년에 노원구 중계동으로 이전하였으며, 이후 2010년에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어 상계동으로 이전하였다.[5] 박민식도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다.[6] 이 때만 해도 조윤선은 친이계였다. 이 후 친박으로 전향.[7] 1심 선고[8] 장관 청문회 당시 전병헌 의원의 5.16 군사정변 관련 질문에 대해 '역사적인 관점에서 평가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그럴 정도의 깊은 공부는 돼 있지 않다'고 대답해 논란을 샀다.[9] 2016년 8월 16일 청와대 개각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내정되었다. 게임업계는 조윤선의 게임규제 찬성 전적 때문에 우려하고 있고관련 기사, 웹툰과 만화 쪽에서는 환영하는 이도 있는 등관련기사 찬반이 엇갈리는 듯하다. [10] 2016년9월30일 코리아 세일페스타 특집 뮤직뱅크 방송현장[11] 탈옥과 복수극(...)으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이다[12] 부속실만 접근 가능한 공유폴더에서 발견된 문서 파일들이다.[13] 첫째 낳기 전에 한 번 유산한 바 있다고 모 잡지에서 밝혔다.[14] 이후 새누리당으로 당명 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