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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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世衡
1931년 8월 22일 ~ 2009년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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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거이력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 정치인이다. 호는 백천(百川)이다.

1931년 8월 22일 전라북도 김제군에서 태어났다. 제11대 민주한국당 국회의원 정진길과는 고향 친구 사이였다. 전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조선일보 베트남 전쟁 종군기자한국일보 편집국장을 거친 언론인이었다.

이철승의 권유로 1978년의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정래혁 후보와 동반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당시 조세형의 공천에 대해 이철승은 재야 출신 영입 차원이었다고 하였다[1]. 그러나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음에도 지구당위원장 자리는 유신 정권에 의해 피선거권이 제한되어 출마하지 못했던 조윤형(조병옥의 장남)에게 양보하였다. 그리고 이철승계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고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이당시 정치활동이나 언론활동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야인으로 지내면서 비정치적인 잡지인 스크린을 창간한다.

1984년 2월 정치규제에서 해금된 이후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세기 후보와 신한민주당 박용만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낙선 후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동구 을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서울특별시장 후보 경선에 참여하였으나 조순에게 밀려 패하였다.

그러나,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판사 출신의 신한국당 김학원[2]에게 패해 정계 은퇴 위기를 겪었다.

그러다가 김대중이 15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새정치국민회의의 총재권한대행[3]으로 여권 중진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1998년 7월 21일 치러진 제15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4]에서 경기도 광명시 을 지역구에 출마, 최초의 민선 여성시장을 지낸 전재희광명시장을 꺾고 당선되면서 다시 한번 화려하게 재기하는 듯했다. 하지만 1999년 4월 5일, 세풍 사건과 관련된 서상목 한나라당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여권의 수적인 우세 속에서도 부결되자 총재권한대행직에서 물러났다.

이듬해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광명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접전 끝에 한나라당 손학규 후보에게 일격을 당하면서 5선에 실패했다.

이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일본 대사를 지냈다.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에 반대하며 열린우리당에 입당, 상임고문을 역임했다.

2009년 6월 1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충격을 받아 뇌경색으로 입원하여 수술을 받았으나 2009년 6월 17일, 향년 78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2. 선거이력[편집]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78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4선거구)[5]

신민당

136,016 (56.9%)

당선 (1위)

1985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동)

민주한국당

88,204 (24.4%)

낙선 (3위)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동 을)

평화민주당

43,901 (41.5%)

당선 (1위)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동 을)

민주당

52,833 (48.0%)

당선 (1위)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동 을)

새정치국민회의

26,358 (40.5%)

낙선 (2위)

1998

1998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15대 국회 경기 광명 을)[6]

새정치국민회의

29,901 (51.1%)

당선 (1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광명)

새천년민주당

64,044 (46.0%)

낙선 (2위)

[1] 이 과정에서, 유옥우(배우 유지태의 할아버지) 등 다른 인물을 밀던 중진들의 반대가 있었다.[2] 이후 1997년 신한국당을 탈당하여 이인제가 창당한 국민신당이라는 정당에 입당하였고, 이듬해 국민신당이 해체되자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이후 여러 의원들의 탈당과 총선 패배로 인해 미니 정당이 되었음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2006년 한나라당과의 합당에 동의하면서 10년만에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이 되었다.[3] 당시 국민회의 총재는 대통령인 김대중이었으나, 자신은 정부를 이끄는데 주력하겠다면서 사실상 당무를 총재권한대행에게 일임한 상태였다.[4] 당시 경기도 광명시 을 지역구의 한나라당 손학규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5] 성북구[6] 전임자 손학규 경기지사 선거 출마로 사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