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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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행해지던 조리돌림. 죄수는 등에 북을 지고 나졸들이 북을 치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은 후 죄목과 죄상을 널리 알려 망신을 주는 일종의 부가적 명예형이었다. 조선 후기의 형식적 팽형과 의도 면에서는 비슷하다. (물론 사회적 매장 정도는 팽형이 훨씬 더 심한 형벌이었다.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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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돌림 당하는 이정재의 화랑동지회. 바로 이 분이야말로 어찌보면 최초로써 삼청교육대를 온 몸과 마음으로 만천하에 경험해보이신 유일무이한 암적인 네임드상징이시자 곧 조금 더 뒤에 나올 모든 삼교대생들의 최초아버지가 되셨다카더라[1]

1. 형벌
1.1. 옹호론1.2. 비판론1.3. 대한민국1.4. 대한민국 국외1.5. 조리돌림을 당한 실존인물1.6. 조리돌림을 당한 가공인물1.7. 관련 문서
2. 1에서 유래된 인터넷 용어

1. 형벌[편집]

형벌의 한 가지. 명예형의 일종이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죄인의 머리 위에 저지른 죄를 써놓고 길거리를 끌고 다니면서 사람들이 구경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구경꾼들은 "저런 못된 놈"하면서 구경거리가 된 죄인을 손가락질한다. 신체적으로는 위해를 끼치지 않지만 인간으로서의 명예를 그야말로 말살해버리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는 매우 잔인(?)한 형벌이다. 참수 후 여러 장소를 옮겨다니며 효수하는 것도 조리돌림이라고 한다.

현대에도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게 존재하는데 실형을 선고받은 성범죄자신상을 공개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성범죄자 알림e이라는 사이트에서 자기 집 주변에 사는 성범죄자의 신상을 조회할 수 있다. 직접 찾아보면 내 집 주변에 이렇게나 성범죄자가 많았던가 충격과 공포에 빠질 수 있다.

명분은 조리돌림이지만 결국 성범죄자들의 사회 적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악법이라는 비판도 있는데, 사실 집 앞에 성범죄자가 거주하고 있다고 표시하도록 강제한 적도 있는 미국에 비하면 양반이다. 강간죄 문서 참고. 실제 성범죄자 알림e에 기재되는 신상정보는 미국의 신상 공개에 비하면 대략적이고 많이 제한된 수준이다.

비슷한 형벌로 자아비판이 있다.

조리돌림을 당하는 강아지들

1.1. 옹호론[편집]

  • 공개 수배야말로 가장 전형적인 조리돌림인데 경찰에서 가끔 전국적인 공개수배로 범인을 잡기도 한다.

  • 애초에 범죄를 짓지 않았으면 망신 당할 일도 없다. 범죄를 지었다는 자체가 자신의 명예를 스스로 실추시키는 행동이다. 또한 타인의 인권과 권리를 침해한 이는 자신의 인권과 권리도 제약받을 이유가 있다. 특히 공익을 위해서는. 현대 형벌에서 마치 범죄자의 갱생 여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흔히 주장하는데, 이건 원칙이 아니라 방향성의 문제다. 대표적으로 영미법계인 미국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 이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자격 없다."의 대표격이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보다 시민의식이나 사법 체계가 후진국이라거나 구시대적인 사법 체계라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그저 일제시기라는 역사적인 배경 상 일본 법을 거의 그대로 이어왔고, 그 일본 법이 독일 법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을 뿐이다.

  • 당신 같으면 전과 있는 놈이랑 같이 일하고 싶은가? 구시대적 발상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전과사에 대한 이러한 거부감은 범죄자에 대한 교화 기능이 "교도소"라는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있고 그에 따라 범죄자의 재범 비율이 무시 못할 정도로 높은 상황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심리다. 흔히 인권단체라고 자신들을 지칭하는 무리는 범죄자들을 보호하려는 자신들의 사상을 정당화하려고 본질을 왜곡하고 호도하는데, 전과자와 일을 하고 싶은가 문제는 전과자의 품성이 아니라 같이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허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지 전과자를 받아들이도록 어떤 의무가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를 강제하는 것은 오히려 부도덕하고 비민주적이며 이를 알아볼 권리를 막는 것 역시 알 권리의 침해고 개인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할 권리의 침해다. 각 공기업, 공무원, 심지어 이윤 추구를 제1의 목표로 삼고 이윤추구를 위해서라면 능력주의가 제1원칙인 사기업까지 면접이나 시험으로 인적성에 의심이 가거나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불합격 처리하고 다른 인원을 채용하며,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인원을 채용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그 조직의 인사관리의 자율이고 이는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아무런 하자가 없다. 이 역시 국민의 생명, 신체의 안전, 재산의 보호라는 헌법에도 규정된 중요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함이고 이 역시 기본적인 '인권'이다.

  • 전과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의 분위기를 인권단체가 주장하는대로 선진화되지 않은 인식의 문제라고 보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다. 오히려 범죄에 대해 과도하게 관대한 처벌로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하락시키고 반성을 하찮게 여기며 재범을 두렵지 않게 한 결과 결과적으로 범죄자들을 올바르게 재교육하지 못하고 전과자의 신뢰도를 더욱 하락시킨 것이 그들에 대한 인식을 저하시키는데 일조했다고 봐야 한다. 첫째로는 범죄자 스스로, 둘째로는 말만 앞선 채 높은 재범률을 바로잡지 못한 국가의 교화 시스템이 그 원인이다. 결국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 없이 덮어놓고 전과자들을 당신의 옆에 두라는 강요만 계속된다면, 범죄자의 신상을 알아내고자 하고 나아가 범죄자 및 전과자들을 비난하려는 현상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 당신이 범인을 잡는 경찰인데 본인 얼굴은 방송에 드러나고 범죄자의 얼굴은 마스크로 가려진다면? 범죄자의 인권을 중시한다는 소위 인권단체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와 같은 침묵은 인권 단체라는 이들이 말 그대로 "범죄자의 인권"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 어이 없는 현상을 인권단체들이 문제삼지 않는 것은 범죄자 이외의 사람에게도 당연히 지켜져야 할 인권, 특히 더 크게 보호받아야 할 비범죄자 내지 피해자의 인권에 대해선 소극적이고 무관심한 채 법치주의라는 방패 뒤에서 자신들의 비겁한 외면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 범죄자의 신상이 중요할까? 국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게 중요할까? 물론 둘 다 중요하겠지만, 범죄자보다는 비범죄자이자 일반인, 개인보다는 다수의 인권이 그 최소한도 내에선 더 우선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특히 성범죄자와 사기, 특수 폭행 등 특정 범죄의 경우 높은 비율의 재범 가능성을 생각할 때 신상 공개를 통한 주의와 관련 직종 취업이나 시설 접근 제한은 불필요하다고 할 수 없으며, 세계 각 국가에서 신상 공개를 하는 국가는 이러한 필요성에 근거한다. 방송에서의 실시간 범죄 용의자 공개 역시 이러한 필요성에 의한 것으로,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 각 국가에서도 예능과 같이 각종 성범죄 등에서도 실시간으로 모자이크 없이 공개해버리며, 이는 범죄자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특히 권력형 범죄를 방지하는 유효하고 구체적인 수단이 된다. 흔히 조리돌림과 같은 행태를 후진국적 행태라며 왜곡하나 이와 같은 현상은 오히려 신상이 공개되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두드러지며, 이러한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국가들이 모두 후진국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한국의 허위 명예훼손과 별개로 규정되어 있는 사실 명예훼손죄가 오랜 기간 그 문제점을 비판받아오고 폐지가 끊임없이 논의되어 온 사실을 볼 때, 이것이 후진성의 문제는 아님은 더더욱 명확해진다.

  • 결국 죄형법정주의도 사회적 합의에 의해 법이 제정되고 그것이 준수되는 것일 뿐, 사회적 합의에 의해 얼마든지 폐지 혹은 제정될 수 있다. 죄형법정주의, 법치주의라는 논리 속에서도 역설적으로 조리돌림 혹은 신상공개 등이 법적으로 범죄라고 규정되지 않는 한 그것이 옳지 않다고 할 근거도 빈약하고, 미개하다고 할 근거도 빈약하다. 장단점이 있는 문화의 하나일 뿐이다. 전과자에 대한 사회 재적응이 문제된다면, 이는 범죄자의 교화 프로그램을 더 강화하고 효과적으로 개선하여 전과자가 형을 살고 나오면 충분히 반성하고 재범 비율이 낮으며 적응을 잘 하더라는 사회의 신뢰를 높이고 볼 일이지 덮어놓고 재범 비율이 높든가 말든가 일단 사회에 보내고 보자는 식은 납득받기 어려운 논리다.

  • 조리돌림 현상이 설득력이 떨어진 처벌 체계에서 강해진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처벌은 그 의의부터 이미 사회적인 질서 유지와 동시에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복수를 적정 선을 지켜 국가가 대신 함을 의미한다. 피해자 본인의 의사가 아닌 제3자에 의해 행해진 가해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은 피해자의 심리적, 사회적인 회복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다. 언론 노출에 의한 주목도가 조리돌림 현상이 강화되는 데 가장 큰 요인임은 부정할 수 없으나, 동시에 언급되는 것은 사회 통념 상 부당한 수준으로 감형, 또는 약한 처벌을 받았다는 것 역시 추가적인 제재를 요구하게 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이와 같은 대표적인 반응이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조두순 사건과 같은 경우고, 이런 현상은 역시 부자병 논란이 일었던 미국이나 각종 범죄 현장을 모자이크 없이 실시간으로 예능이나 다큐로 생중계해버리는 서구 선진국 사회에서의 모습을 볼 때 선진국, 후진국과 관련 없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즉, 단순히 후진국적인 행태가 아닌, 오히려 시민 의식이 강화되고 사회 도덕을 더 중시하는 문화에서도 그 나름의 이유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죄형법정주의, 법치주의도 결국은 법의 기본 원리는 관습과 사회 신의 성실과 같은 사회 상식 중 조문화 할 수 있고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성문화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성문화한 법과 불문화한 사회 인식이 충돌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조리돌림 현상이 증가하려는 움직임은 과연 사법체계가 적절한 것인지부터 따져봐야 할 중요한 신호다. 흔히 조두순 사건에서 피의자를 헛지목한 사건을 신상공개의 위험성으로 지적하는데, 애초에 신상공개가 이루어졌다면 헛지목 사건은 벌어지지도 않았다.

1.2. 비판론[편집]

  • 공개 수배는 수배중인 용의자(또는 범인)의 소재를 파악하여 신병을 확보한다는 명확한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수배자의 신상을 공개하여 망신을 주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조리돌림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 성범죄자(특히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 공개 역시 재범 가능성이 높은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여 주변 주민들의 피해를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저 놈 나쁜 놈이니 신상을 공개해서 망신주자는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즉, 이러한 조치들은 얼핏 보면 죄인에게 망신을 주는 전근대적 명예형인 조리돌림과 유사해 보이지만 그 목적은 전혀 다르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조치를 취해야 할 당위성이 인정되기에 부작용을 감수하고 이뤄지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고려 없이 공개 수배도 조리돌림이나 다를 바 없는데 왜 조리돌림은 하지 말라고 하냐는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

  • 범죄에 대한 처벌은 법(형법)에 의거하여 이루어진다.(죄형법정주의) 그리고 물론, 현대 한국의 형법 체계에는 '조리돌림' 이라는 형벌이 없다. 즉, 한국 법에 따르면 범죄자에 대해서 조리돌림의 형벌을 가할 수 없다. 이를 무시하고 '애초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면 망신 당할 일도 없다' 며 조리돌림을 옹호하는 것은 '애초에 죄를 짓지 않았으면 맞을 일도 없다'는 논리로 사적제재를 옹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 강도 전과가 있는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은지의 여부는 사실은 그 전과자 본인의 품성에 달려있다. 강도 전과가 있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과 함꼐 일하는 것을 굳이 꺼릴 이유도 없고, 그 사람이 성실한 사회인으로 복귀할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 반면, 사회의 인녕을 위해 특정한 사람의 전과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이는 충분한 고려를 거쳐 제도화하여 역시 충분한 고려를 통해 시행되어야 할 일이지, 덮어놓고 '전과자와 함께 일하고 싶으냐'는 식의 감정에 호소하는 언사로 조리돌림과 같은 전근대적 형벌체계를 옹호할 일이 아니다.

  • 애초에 방송을 통한 얼굴 공개는 조리돌림과 전혀 다른 문제다. 설령 경찰관의 얼굴이 언론등을 통해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이는 그 사람의 사생활과 초상권에 대한 문제이지, 형벌로써의 조리돌림과는 전혀 다른 문제인 것. 애초에 이 부분은 조리돌림에 대한 적절한 옹호 근거조차 못 된다.

  • 범죄자의 신상(범죄에 대한 정당한 처벌과는 별개로 지켜져야 할 인권)과 시민의 경각심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둘 다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범죄자의 인권 보호와 시민의 경각심 고취가 함께 충족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시민의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한 수 많은 방법 중에서 굳이 전근대적 형벌체계인 조리돌림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근거가 없는 셈.

  • 벌금형이나 징역등과 같이 오판으로 판단되었을 경우 금전적으로라도 보상할 여지가 있는 다른 형벌들과 달리, 조리돌림은 설령 해당 인물의 무고함이 밝혀지더라도 무고한 처벌을 보상하여 피해를 만회하기가 극히 어렵다. 한번 퍼진 소문을 어떻게 되돌리겠는가? 더욱이, 현재 형법 체계에 조리돌림이라는 형벌이 없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면적인 형법 개정이 없는 한)범죄자에 대한 조리돌림이란 결국 사적제재로써 가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런 경우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사적 폭력일 뿐, 정당한 처벌이라고 볼 여지 또한 전혀 없다. 이에 더해, 조두순 헛지목 사건과 같은 예를 생각한다면, 생각없는 사람들의 부화뇌동과 폭력이 얼마나 쉽게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경계해 마땅한 일이다.

  • 조리돌림에 대한 옹호론이 종종 나오기는 하나, (당장 이 문서의 옹호론을 보더라도) 전근대적 형벌로써 폐지되어가는 추세이고, 아직까지 시행되는 몇몇 사례에서도 그 반인권성때문에 비판받는 경우가 많은 조리돌림을 굳이 시행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극히 미비한 것이 사실이다. 형법에 규정된 다른 형벌들이 있는데, 이미 폐지된 전근대적 형벌을 굳이 되살려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가능하면 갱생하여 바람직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복귀할 길을 열어두는 것이 현대 형법의 원칙이자 목적 중 하나이다. 조리돌림의 경우, 해당 범죄자의 명예를 말살함으로써 이러한 갱생과 사회 복귀의 여지를 차단한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1.3. 대한민국[편집]

왕조 시대에는 저자에서 공개처형을 할 사형수들은 기본적으로 조리돌림부터 하였는데 이때 웃옷을 벗기고 귀에 관이전(貫耳箭)이라고 하는 짧은 화살을 끼워 고통과 수치심을 가중시켰다. 928년에 고려 태조가 견훤에게 항복한 장수의 가솔들을 조리돌림 시키고 참형한 사례가 전하고 1423년에는 간통죄로 체포된 이귀산의 아내 유씨를 참형에 처하기 전에 저자거리에 3일동안 세워놓은 사례가 있다.

현대에는 성범죄자 알림e를 통해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한다. 사실 성범죄자 알림e의 경우, 취지와 목적만 보면 조리돌림과 거리가 멀었으나, 결과적으론 조리돌림의 일종으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민주화 이후에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위의 사진처럼 정치깡패들을 가두행진 시키는 행위를 한 적은 없다.

1.4. 대한민국 국외[편집]

  • 저자거리에서 조리돌림(시츄히키마와시, 市中引き回し: しちゅうひきまわし)
    일본에도 시대에는 조리돌림이 단독의 형벌로 집행되지 않았고, 사형 집행 전의 사형수를 말에 태워 죄상을 적은 깃발과 함께 형장까지 연행하는 식으로 실시되었다.

  • 중국 문화대혁명 시절의 홍위병들도 반동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패고 그들의 목에 이름과 죄목을 써놓은 간판을 씌우고 그들을 욕보였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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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위병에게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는 펑더화이

  • 지금도 중국에서는 매춘 등을 저지른 범죄자들을 조리돌림하여 인권단체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 일부 서방국가의 경우 무기수 이상의 흉악범죄자들의 얼굴 등을 공개하는데 길거리를 끌고 다니지 않았다 뿐이지 조리돌림의 요건은 어느정도 만족시킨다.

  • 1989년쯤 KBS에서 하던 국내 공익광고 애니메이션(이현세 만화 주인공 설까치가 나온)에선 유럽 어느 나라 음주운전 적발시 32 Km를 해당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했다는 푯말을 들고 걸어가게 하는 처벌을 한다고 나오기도 했다. 곁에는 경찰관이 느긋하게 자전거로 따라가며 감시한다고. 헌데 문제는 이 애니에서 나온 다른 나라 음주운전 처벌에 엘살바도르 문서에도 나온 한번에 사형을 때려버린다는 엉터리도 나왔기에...

  • 미국의 일부 주에서도 1990년대 후반에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한해서(음주운전, 좀도둑질 등) 길에서 하루 종일 자신이 지은 죄명이 쓰인 간판을 들고 길에 서있게 하는 처벌이 존재했다. 오하이오 주에서는 2014년 현재까지도 존재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취재해서 뉴스에 보도하였다.

1.5. 조리돌림을 당한 실존인물[편집]

1.6. 조리돌림을 당한 가공인물[편집]

1.7. 관련 문서[편집]

2. 1에서 유래된 인터넷 용어[편집]


1에서 유래된, 마녀사냥의 다른 표현, 또는 마녀사냥 방법의 한 가지. 해외발 SNS, 특히 트위터에서 주로 사용되는 표현인데, 자신의 닉네임이 자기가 생각없이 썼던 글과 함께 리트윗되면서 다수에게 보여짐과 동시에 글 작성자는 욕을 먹는 형식이 1과 유사한 데서 온 표현인 듯하다. 한국 트위터리안의 친목질의폐해이자 병폐.

자신이 보기에 문제가 있거나 마음에 안 드는 트윗을 발견하면 그것을 인용, 리트윗한 뒤에 조롱, 폄하, 욕설하는 글을 덧붙이는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의 팔로워가 1000명이라면 1000명에게 원 글쓴이의 트윗이 전파되게 되고, 물론 그 1천 명이 모두 거기에 반응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중 누군가는 또 리트윗을 할 테니, 이런 식으로 트위터의 강력한 파급 효과가 발현, 글쓴이가 상상도 못 했던 규모의 사람들이 멘션이나 리트윗으로 비웃음, 조롱, 욕설을 하게 된다.

조리돌림을 받는 대상이 유명인이나 정부기관 혹은 기업의 공식 SNS계정일 경우 심심찮게 기사화되는 일도 흔하다. 이 경우 트위터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읽게 되고, 홍보는커녕 강력한 역효과를 얻게 되므로 담당자라면 SNS 내 언어 사용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비단 국내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며,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야말로 자신의 트윗 하나가 전세계로 퍼져나갈 수도 있다! 트윗 하나로 인생이 (나쁜 쪽으로) 바뀐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관련 기사

이러한 조리돌림 현상은 당연히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데, 첫째로 이러한 현상이 마땅히 욕을 먹어야 할만한 언행뿐만 아니라 자신이 보기에 마음에 안 드는 글이나 오타, 착각,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서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정말 억울하게 악의 없이 말한 트윗이 심하게 왜곡되어 조리돌림당하는 경우도 정말 많다. 예를 들어 트윗 하나당 140자까지밖에 적을 수 없는 트위터의 경우 장문의 글이라도 여러 개의 트윗으로 나누어 적어야 하는데, 이 때문에 의도적이건 아니건 전체의 내용에서 일부만 쏙 빼서 리트윗하는 악마의 편집이 가능하다.[4] 그리고 안타깝게도 조리돌림에 동참하는 사람이 전체 내용을 직접 찾아가 읽어볼 생각을 하는 경우는 매우 적기 때문에 결국 앞뒤 다 잘라먹고 민감한 내용만 전체인 것처럼 퍼지고 까이는 것이다.

게다가 퍼지기는 쉽고 사과하거나 덮기는 어려운 온라인 및 SNS의 특성이 합쳐져, 수습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진다. 글쓴이가 공신력 있거나 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팔로워가 적은 일반 유저인 경우에는 사과문을 사람들에게 읽게 하기조차 어렵기 때문. 조리돌림을 당하는 사람은 갑자기 리트윗이나 욕설이 포함된 멘션이 수십개씩 날아오고, 오해에 대해서 해명, 반박, 자신이 실수한 것에 대해서 바로 잡고 다시 글을 올린다고 해도, 이미 리트윗된 것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멘션이 날아오게 된다. 멘션을 보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괄적으로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일일히 답멘션을 보내야 하는데, 한두명이라면 모르겠지만 수십명이 떼로 멘션을 보내면 거기에 대해 수십번씩 일일히 답멘션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게시판을 가지고 비교해보자면 게시판에서 어떤 글을 쓰고 그것에 대해 누군가가 댓글로 실수나 오류를 지적한다면, 원래 글을 수정하면 모든 사람이 수정한 것에 대해서 알수 있다. 그러나 트위터에서는 그것이 되지 않는다.

설령 사과문도 같이 리트윗되서 어찌어찌 읽혔더라도, 사과의 진정성으로 까이는 경우도 있어서 답이 없다. 만약 이 글을 보는 위키러가 오해나 모함으로 인해 조리돌림 행위에 당한 경우라면, 자신이 정말로 욕먹을 발언을 한 것이 아니라면 그냥 무시해라. 정말 욕 먹을 만한 발언을 한 경우, 그냥 그 트윗은 삭제하고 다음에 그러지 않으면 된다. 당신이 일부러 그런 걸 노리고 조리돌림 당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그냥 원글 삭제하고 가만히 있으면 대부분 지나간다. 해명을 하든 입을 다물든 계정을 폭파하든 뭘 해도 단기간 조롱당하는 건 피할 수 없지만 어지간히 큰 병크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오래 사람들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물론 조리돌림을 즐겨 하는 악질적인 몇 유저는 캡처본을 뜨기도 하지만 이후 또 병크가 터지지 않는 한 보통 그 캡처가 활용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또다른 문제는, 글쓴이의 잘못을 지적하며 고치도록 유도하는 긍정적인 기능보다는 화력을 모아 욕하거나 조롱하기 위한 측면이 더 강하다는 점이 있겠다. 조리돌림을 당하는 사람의 경우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우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행동을 하고, 도리어 자신이 조리돌림을 당할 정도의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 않냐며 억울해하기가 더 쉽다.

2.1. 박제[편집]

조리돌림에 수반하는 수단 중 하나로 이용되며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1] 읍니다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당시에는 '습니다'가 아닌 '읍니다' 로 표기하는 게 맞았다. 정확히는 'ㅆ' 받침 뒤에는 읍니다가 오게 되어 있었는데, 1989년 맞춤법 개정으로 'ㅂ' 받침 뒤에 오는 '-ㅂ니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습니다'로 맞춤법이 통일되었다.[2] 영화 패왕별희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3] 이 사례는 2에 가깝다. 자국 정치인을 조리돌림하는 것은 어느 나라 인터넷을 가나 비슷하다. 세계 어디서든 정치인은 까야 제맛[4] 트위터 시스템상 자기 트윗에 멘션을 달고 아이디를 제거해도 대화 형식은 그대로 남기 때문에 이 시스템을 사용하면 조금이라도 더 문맥 전체를 알리는 게 가능하다. 물론 그래도 안 볼 사람은 안 본다. 문제 있어 보이는 트윗이 눈에 띄는 즉시 리트윗과 멘션 버튼을 누르는 경우가 비일비재.